8. 불도품(佛道品)
維摩詰所說經佛道品 第八

Chapter 9. Way of the Buddha

 

◎비도(非道)와 불도(佛道)

[불교에서 사람들의 갖가지 근기와 수준에 맞춘 84000 법문이 가르침이라면 불도(佛道)는 그 가르침의 실천입니다. 가르침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실천하여, 양변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양변을 다 수용하는 중도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보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爾時文殊師利問維摩詰言(이시문수사리문유마힐) 菩薩云何通達佛道(보살운하통달불도)?

그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불도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Manjusri asked Vimalakirti, How does a bodhisattva attain the Buddha’s Way? 


維摩詰言(유마힐언) 若菩薩行於非道(약보살행어비도) 是爲通達佛道(시위통달불도)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도가 아닌 길=非道를 행한다면 곧 불도에 통달한 것입니다.'

Vimalakirti said, If a bodhisattva practices following what is contrary to the Way, then he has attained the Way of the Buddha. 
[금강경에서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라고 한 것과 같이 비도(非道), 즉 도가 아닌 길을 행하되 그에 깊이 빠져들지 않고 중도적인 삶을 살아 간다면 불도(佛道)에 통달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又問(우문) 云何菩薩行於非道(운하보살행어비도)?

또 문수사리가 물었다. '어떻게 비도=도가 아닌 길을 간다는 것입니까?'

Manjusri asked, How can a bodhisattva follow the non-path? 


答曰(답왈) 若菩薩行五無閒(약보살행오무간) 而無惱恚(이무뇌에)

유마힐이 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5무간 지옥에 갈 죄를 범하였어도 괴로워하거나 성내는 일이 없는 것이며, 

Vimalakirti said, Even if a bodhisattva should perform the five heinous deeds that bring immediate retribution, he has no resentment or anger. 

 

至于地獄(지우지옥) 無諸罪垢(무제죄구)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모든 죄나 번뇌가 없으며, 

Even if he is in hell, there are no sinful defilements. 

 

至于畜生(지우축생) 無有無明憍慢等過(무유무명교만등과)

축생에 떨어지더라도 어리석음=無明이나 교만한 마음 등의 허물이 없으며, 

Even if he goes into the animal path, he does not have the faults of ignorance, arrogance, and so forth. 

[無明=세상의 상태나 도리에 대하여 명철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을 어리석음이라 하고, 그것을 현상적으로 파악한 것이 무명(無明)이다. 무명은 12인연(因緣)에서는 모든 미혹의 근원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티베트 역 ‘무지(無智)의 어두움’이라는 뜻에 근거를 두고, 다만 ‘어리석음’이라고만 번역하였다. 또 이 문의 나집 역은 다른 번역에서 보이는 아수라의 세계에 관한 부분이 없다.]

 

至于餓鬼(지우아귀) 而具足功德(이구족공덕)

아귀에 떨어지더라도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Although in the path of hungry ghosts, he is abundant with merits. 

 

行色無色界道(행색무색계도) 不以爲勝(불이위승)

색계나 무색계의 길를 가나 수승=잘났다고 뽐내지 않으며,

He traverses the path of form and formless realm yet still does not consider this to be the most superior. 

 

示行貪欲(시행탐욕) 離諸染著(이제염착)

탐욕을 부리는 것을 보이나, 온갖 번뇌에 물드는 일이 없으며, 

He gives the appearance of desiring sensual pleasures but is free from all contaminated attachments. 

[示行貪欲(시행탐욕)= 이 대문의 나집 역은 “시행탐욕(示行貪欲)”으로 “탐욕(貪欲)을 행하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장은 “행탐욕행취(行貪欲行趣)”로 번역하고 있다. 이하에 있어서도 이 ‘행취(行趣)’의 표현을 인용한 ‘세계(世界),’ ‘장소(場所)’ 등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행(行)’은 ‘간다’는 뜻이며, 그것은 보살이 스스로 그에 타당한 업을 지어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티베트 역에서도 “탐욕(貪欲)이 있는 중생에게로 간다”고 했다.]

 

示行瞋恚(시행진예) 於諸衆生(어제중생) 無有恚閡(무유에애) 閡문 잠글 애, 가득찰 해,

瞋恚=성내는 모습을 보이나, 모든 중생들에게 분노를 품는 장애가 없으며, 

Even when expressing anger, there is no resentment for sentient beings. 

 

示行愚癡(시행우치) 而以智慧(이이지혜) 調伏其心(조복기심)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나, 지혜로써 그 마음을 다스려 조복하며, 

Appears to be ignorant but subdues the mind with wisdom. 

 

示行慳貪(시행견탐) 而捨內外所有(이사내외소유) 不惜身命(불석신명)

인색하고 탐욕스런 모습을 보이나, 안과 밖의 모든 것을 보시하여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며, 

He shows the act of stinginess but willingly gives up everything inside and outside, not sparing even his own life. 

[示行慳貪(시행견탐)= ‘인색하고 탐욕스런 모습’ 이하의 여섯 가지를 불교에서는 청정한 마음을 가리게 하는 여섯 가지 장애라는 뜻의 ‘6폐(蔽)’라고 한다. ①간탐(慳貪), ②파계(破戒), ③진에(瞋恚), ④해태(懈怠), ⑤산란(散亂), ⑥우치(愚痴)이다.]

 

示行毀禁(시행훼금) 而安住淨戒(이안주정계) 乃至小罪(내지소죄) 猶懷大懼(유괴대구)

猶 오히려 유, 懷 품을 회, 懼 두려워할 구

계율을 범한 모습=파계를 보이나, 마음은 편안하게 청정한 계율에 안주하여 아무리 작은 죄라도 오히려 크게 두려워하며, 

He appears to be breaking the precepts, but inwardly, he abides in the pure precepts and is always vigilant, fearful of committing even the smallest sins. 

 

示行瞋恚(시행진에) 而常慈忍(이상자인)

성내는 모습을 보이나 항상 자비하며, 너그럽게 인욕하며, 

He shows aversion and anger but always has compassion and patience; 

[불도를 통달하려면 삼독은 이미 삼독이 아니어야 한다. 어떤 대상에 탐욕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코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다. 성내는 것처럼 보이나 결코 중생에게 성내는 장애가 없다. 어리석은듯하나 지혜로서 그 마음을 항복받는다. 이와 같이 일체 명제에 대해서 그 이름에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하며, 통달무애한 것이 보살이 불도를 통달하는 길이다.]

 

示行懈怠(시행해태) 而懃修功德(이근수공덕)

게으른 모습을 보이나, 온 마음을 기울여 공덕을 부지런히 닦으며, 

appears slack but is diligently cultivating merit; 

 

示行亂意(시행난의) 而常念定(이상념정)

마음(뜻)이 혼란한 모습을 보이나, 항상 조용하게 선정을 생각하며, 

seems to have a chaotic mind but is always in meditative concentration. 

 

示行愚癡(시행우치) 而通達世閒(이통달세간) 出世閒慧(출세간혜)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나,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에 통달해 있으며,
Appears ignorant but understands thoroughly the human world and transcendental world. 


示行諂僞(시행염위) 而善方便(이선방편) 隨諸經義(수제경의)

아첨하거나 거짓된 모습을 보이나, 훌륭한 방편으로 모든 경전의 뜻을 따라 교화하며, 

Appearing to practice flattery and falsehood while his expedient means follows the meaning of the many sutras. 

 

示行憍慢(시행교만) 而於衆生(이어중생) 猶如橋梁(유여교량)

교만한 모습을 보이나, 오히려 중생을 저 언덕에 이르게 해 주는 교량과 같이하며,  

Feigns arrogance yet appears as a bridge for all sentient beings. 

 

示行諸煩惱(시행제번뇌) 而心常淸淨(이심상청정)

온갖 번뇌에 들끓는 모습을 보이나, 마음은 항상 청정하며,

Appears to experience various afflictions while his mind is always tranquil. 

[이와 같이 보살은 일체의 생활이 평범한 중생과 같은 듯하나 그 마음의 내면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이므로 보살이 불법을 통달한다고 하는 것이다.]

 

示入於魔(시입어마) 而順佛智慧(이순불지혜) 不隨他敎(불수타교)

마군들과 함께함을 보이나, 부처님의 지혜에 수순하여 따르고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며, 

He appears to be descending into evil yet follows the Buddha’s wisdom and does not obey other teachings.

 

示入聲聞(시입성문) 而爲衆生(이위중생) 說未聞法(설미문법)

성문들과 함께함을을 보이나, 중생을 위하여 듣지 못한 가르침을 설하며, 

Appears to be joining the voice-hearers, while speaking the unheard teachings to all sentient beings. 

 

示入辟支佛(시입벽지불) 而成就大悲(이성취대비) 敎化衆生(교화중생)

벽지불들과 함께함을 보이나, 대 자비를 성취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Appears to be joining the pratyekabuddhas while helping to teach and transform sentient beings with great compassion. 

 

示入貧窮(시입빈궁) 而有寶手(이유보수) 功德無盡(공덕무진)

빈궁한 사람들과 함께함을 보이나, 보배를 낳는 손=寶手로써 공덕을 다함이 없으며, 

Manifests himself conforming the impoverished yet has jewelled hands of endless merits. 

 

示入刑殘(시입형잔) 而具諸相好(이구제상호) 以自莊嚴(이자장엄)

殘 해칠 잔, 잔인할 잔, 남을 

불구자=刑殘들과 함께함을 보이나, 온갖 훌륭한 형상=相好를 구족해서 스스로를 장엄하며, 

Appears conforming to those with a disfigured form yet adorning himself with all the excellent characteristics that he possesses. 

 

示入下賤(시입하천) 而生佛種姓中(이생불종성중) 具諸功德(구제공덕)

下賤=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음을 보이나, 부처가 될 소질=佛種性의 무리에 태어나서 온갖 공덕을 갖추며, 

Shows himself conforming with the lowly yet growing among the Buddha’s lineage, endowed with all the merits.

[성문을 만나고, 빈궁한 사람들을 만나며, 불구자들이나 하천한 사람들을 만나는 등, 사람이 살다보면 온갖 곳에 가게 되고 온갖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그러나 자신의 불교적 안목과 이해를 견지해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示入羸劣醜陋(시입리열추루) 而得那羅延身(이득나라연신) 一切衆生之所樂見(일체중생지소락견)

羸 여윌 리, 파리할 리, 劣 못할 렬, 醜 더러울 추, 추할 추, 陋 좁을 루, 더러울 루
몸이 쇠약하고, 용렬하고 추하고 미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음을 보이나, 나라연(nryaṇa)과 같이 힘센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이 부러워하며 즐겁게 바라보는 대상이 되며, 

Shows himself joining those who are weak and vile while attaining the body of Narayana, which all sentient beings delight to see. 

[나라연(那羅延) : Nārāyaṇa 또는 나라연나(那羅延那)ㆍ나라야나(那羅野拏). 번역 하여 견고(堅固)ㆍ구쇄 역사(鉤鎖力士)ㆍ인생본(人生本). 천상의 역사(力士)로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


示入老病(시입노병) 而永斷病根(이영단병근) 超越死畏(초월생사)

늙고 병든 사람들과 함께함을 보이나, 영원히 병의 근원(근본)을 끊고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였습니다.

Shows himself joining those that are senile and sick while completely severing the root cause of trouble, transcending the fear of death.

[일생을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모습을 나타내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보살은 그와 같이 무수한 모습을 나타내면서 살아가되 그 모습에 이끌리거나 물들지 않으면서 언제나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제도하려는데 중심을 두고 있다. 결코 밖으로 나타난 모습은 보살의 실상이 아니다.]

衆生의 生死
舍利弗問天(사리불문천) 汝於此沒(여어차몰) 當生何所(당생하소)?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서 죽으면 마땅히 어느 곳에 태어날 것입니까?'

Sariputra asked the celestial maiden, Where will you be born when you are no longer here? 

 

天曰(천왈) 佛化所生(불화소생) 吾如彼生(오여피생)
천녀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화신(nirma)으로 태어나시는 곳에 저도 그와 같이 태어날 것입니다.'
The celestial maiden replied, I shall be born like the Buddha is born through transformation. 

[화신(化身)은 법신(法身), 보신(報身)과 함께 삼신(三身)의 하나이며, 응신(應身) 또는 응화신(應化身)이라고도 한다. 화신은 상호를 구비하지 않고 일정한 형식을 떠난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을 취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불신으로 때와 장소와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나타나 그들을 구제하는 부처인 석가모니불을 포함한 과거불과 미륵불이 여기에 해당한다.

삼신(三身)=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부처님의 속성과 공덕을 간추려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라 한다. 따라서 법신, 보신, 화신은 나를 비롯한 천지우주(天地宇宙)이며, 하나의 우주론이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우주에는 오직 부처님 뿐이라는 것이고, 우주에는 부처님 뿐이라는 대승(大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해야 할 방법은 오직 부처님만 생각하고 부처님이 되는 것으로, 제일 쉽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우주가 다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 중생(衆生)이 번뇌(煩惱)에 가려서 잘못 보고 있는 것으로, 우주는 영원한 세월 동안 오직 부처님 뿐이고, 진여불성(眞如佛性) 뿐입니다. 모양은 하나의 진여불성의 상(相)일 뿐이나 마음이 어두워서 상만 보고 본바탕인 진여불성을 모르는 것이 우리 중생입니다. 우주의 진리(眞理)를 진여(眞如) 또는 불성(佛性)라고 하며, 즉 진리이므로 진여인 것이고 또 생명이므로 그 자리가 바로 생명으로서 불성이기에 부처님이고, 또 이름으로 말하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 菩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스스로 갖추고 있는 삼신일불(三身一佛),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부처님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공부하면 됩니다. -카페 산과들꽃이야기]

 

曰(왈) 佛化所生非沒生也(불화소생비몰생야)
사리불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화신으로 태어나시는 것은 죽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지요.'(부처님의 교화로 태어나는 것은 죽거나 태어남이 아닙니다.)
Sariputra said, The Buddha is born from transformation, and there is no rebirth or birth. 


天曰(천왈) 衆生猶然(중생유연) 無沒生也(무몰생야)
천녀가 말하였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죽거나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The celestial maiden said, The same is true of all beings, without rebirth or birth. 

[사람은 누구나 본래로 생사가 없다. 생사가 없는 가운데서 환영으로 생사를 받는 것을 볼 뿐이다. 없는 듯이 있는, 즉 생사가 있는 가운데 생사가 없는 이치를 밝힌 것이다.]

 

◎보리(菩提)의 무소득(無所得) 
舍利弗問天(사리불문천) 汝久如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여구여당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얼마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됩니까?'
Sariputra asked the celestial maiden, How long will it be before you attain unsurpassed complete perfect enlightenment?  


天曰(천왈) 如舍利弗還爲凡夫(여사리불환위범부)

我乃當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내당성아뇩다라삼막삼보리)
천녀가 말하였다. '만약 사리불님께서 다시 범부로 되돌아간다면, 그때 저는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The celestial maiden said, When you, Sariputra, return to being a common mortal, I will attain unsurpassed complete perfect enlightenment. 


舍利弗言(사리불언) 我作凡夫(아작범부) 無有是處(무유시처)
사리불이 말하였다. '내가 또다시 범부로 되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Asriputra said, There’s no such possibility for me to return to being a common mortal. 


天曰(천왈) 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亦無是處(역무시처)

천녀가 말하였다. '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일 또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 왜냐 하면 깨달음=菩提는 머무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The celestial maiden said, Likewise, there’s no reason for me to attain unsurpassed complete perfect enlightenment.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최상의 깨달음이다. 최상의 깨달음이란 사람 사람이 구원겁 이전부터 본래로 가지고 있는 본각이다. 그러한 본성불이 언제쯤 깨닫겠는가라고 묻는 것은 소승적 어리석음이다. 즉 본각은 머무는 곳도 없거니와 얻을 것도 아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 菩提無住處(보리무주처) 是故無有得者(시고무유득자)
그러므로 (깨달음=보리를) 얻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Why? Bodhi has no abiding abode, and therefore no one can attain it. 


舍利弗言(사리불언) 今諸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금제불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已得當得(이득당득) 如恒河沙(여항하사) 皆謂何乎(개위하호)?

사리불이 말하였다. '현재에 제불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과거에 이미 얻었으며, 앞으로 얻을 부처님이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다는 것은 다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Sariputra said, The number of Buddhas who have attained and will attain unsurpassed complete perfect enlightenment is as many as the sand of the Ganges. 


天曰(천왈) 皆以世俗文字數故(개이세속문자수고) 說有三世(설유삼세)

非謂菩提有去來今(비위보리유거래금)
천녀가 말하였다. '이 모두는 세속에서 쓰이고 있는 문자와 이치=數를 빌렸기 때문에 三世=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있음)을 말하는 것일 뿐, 깨달음=보리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How can you explain this? The celestial maiden said, It is all from the secular characters and numbers, saying there exists the three time periods. Not to say that bodhi have past, present, and future. 

[최상의 깨달음인 본각이며, 성불은 경전 상에서 하근기 중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편의상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니 현재니 미래니 하는 것은 세속적 관점에서 하는 표현일 뿐이다.]


天曰(천왈) 舍利弗(사리불) 汝得阿羅漢道耶(여득아라한도야)?
천녀는 물었다. '사리불이여, 당신은 아라한과=羅漢道를 얻었습니까?'
The celestial maiden asked, Sariputra, have you attained the arhat path? 


曰(왈) 無所得故而得(무소득고이득)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무런 얻을 바가 없는=無所得이기 때문에 얻었습니다.'
Sariputra said, I have attained it because there is nothing to attain. 


天曰(천왈) 諸佛菩薩亦復如是(제불보살역부여시) 無所得故而得(무소득고이득)
천녀는 말하였다. '제불과 보살들 또한 그와 같이 얻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The celestial maiden said, The Buddhas and bodhisattvas are the same, attaining because they are free from attainment. 

[얻을 것이 없다=無所得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중요한 용어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핵심도 무소득(無所得)이다. 수다원이나 사다함이나, 아나함이나 아라한이나, 보살의 경지나 부처의 경지나 어떤 실법이 있어서 얻는 것은 아니다. 처음도 끝도 오직 본래 그대로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주창하는 것이다.]


爾時維摩詰語舍利弗(이시유마힐어사리불) 是天女已曾供飬(시천녀이증공양)

九十二億佛(구십이억불) 已能遊戲菩薩神通(이능유희보살신통) 所願具足(소원구족)

得無生忍(득무생인) 住不退轉(주불퇴전)

그때 유마힐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 천녀는 이미 일찍이 92억의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이미 능히 보살의 신통에 노닐며, 소원을 모두 이룬=具足하며, 무생법인=無生忍을 얻었으며, 생멸이 없는 진리를 얻어서물러섬이 없는 경지=不退轉에 머물지만, 

Thereafter, Vimalakirti said to Sariputra, Ths celestial maiden has already made offerings to ninety-two billion Buddhas and can use the bodhisattva divine powers with playful ease. She has fulfilled her vows, acquiring the fortitude of non-arising and abiding in non-regressing. 

 

以本願故(이본원고) 隨意能現(수의능현) 敎化衆生(교화중생)

그 본래의 서원=本願力 때문에 마음대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는 것입니다.

From her original vow, she can manifest herself at will to teach and transform all sentient beings.

[유마힐이 드디어 그동안 곤욕을 치르며, 수모를 겪은 사리불에게 천녀의 경력을 설명하였다어쩌면 천녀라는 이름으로 유마힐 자신이 증득한 수행이력을 다 토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경전의 설법이란 누구의 이름으로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고, 실재한 인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실재의 사건이든 꾸며낸 사건이든, 아무런 관계없이, 다만 그들의 가르침 속에서 불법의 이치를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설사 실재한 일이며 실재했던 말이라 하여도 그것으로부터 아무런 가르침이나깨달음교훈이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이다.]

◎一切諸法의 實相
舍利弗言(사리불언) 汝何以不轉女身(여하이불전여신)?

사리불이 말하되, 그대는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Sariputra asked, Why do you not change from the form of a woman? 


天曰(천왈) 我從十二年來(아종심이년래) 求女人相了不可得(구여인상요불가득)

當何所轉(당하소전)?

천녀가 대답하되, 저는 지난 12년 동안 (변치 않는) 여인의 모습=相을 구하였지만 끝내 얻지 못하였는데, 마땅히 무엇을 바꾼다는 말입니까? 

The celestial maiden said, For twelve years, I have been seeking the form of a female, but to noavail. So what is there to transform?

 

譬如幻師化作幻女(비여환사화작환녀) 若有人問(약유인문)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사가 마술로 허깨비 여인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으니, 만약 어떤 사람이 허깨비에게 묻기를, 

 It is like an illusionist conjuring up an illusionary woman, and someone asks, 

 

何以不轉女身(하이불전여신)? 是人爲正問不(시인위정문불)?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이 사람의 물음이 옳은 것이 되겠습니까?

Why doesn’t the transform into a female body? Is this even a proper question for a person to ask? 


舍利弗言(사리불언) 不也(불야) 幻無定相(한무정상) 當何所轉(당하소전)?

사리불이 대답하여, 아니지요. 허깨비에게는 고정된 모습=定相이 없는데 왜 바꿀 필요가 있겠습니까?

Sariputra said, No! Illusions would not have a definite form, so what is there to change? 
 
天曰(천왈) 一切諸法亦復如是(일체제법역부여시) 無有定相(무유정상)

云何乃問不轉女身(운하내문불전여신)?

천녀가 말하기를, 일체제법도 이와 같아서 정해진 상=定相이 없는데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으십니까?

The celestial maiden said, The same is true of all Dharmas; there is no fixed form. So how can you ask why I do not transform from the female form? 

[사리불은 아마도 출가 수행자라는 딱지가 아직 덜 떨어져서 세속적인 안목에 매여서 천녀가 여자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소승들의 집착을 깨뜨려 주는 설법이다남녀의 상이나 승속의 상이란 것이 모두가 환영과 같은 것으로,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다]

 
卽時天女以神通力(즉시천녀이신통력) 變舍利弗令如天女(변사리불령여천녀)

天自化身如舍利弗(천자화신여사리불) 而問言(이문언) 何以不轉女身(하이불전여신)?
그때 천녀는 즉시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변화시켜 천녀가 되게 하고, 천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변화시켜 사리불과 같은 모습으로 몸을 바꾸고 물었다.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으십니까?'

At that moment, the celestial maiden, with her divine power, transformed Sariputra into a celestial maiden, and the celestial maiden transformed herself as Sariputra and asked, What is the reason for not changing back from the form of a female? 


舍利弗以天女像而答言(사리불이천녀상이답언)

我今不知(아금불지) 何轉而變爲女身(하전이변위여신)?

사리불이 천녀의 모습을 하고 답하였으니, '나는 지금 어찌하여 여인의 몸으로 바뀌었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Then he replied with the image of the celestial maiden, I do not know why I have now changed into a female body? 

天曰(천왈) 舍利弗(사리불) 若能轉此女身(약능전차여신)

則一切女人亦當能轉(즉일체여인역당능전)

천녀가 말하되, 사리불이여, 만약 당신께서 그 여인의 몸을 바꿀 수가 있으면 일체의 모든 여인들도 몸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The celestial maiden said, Sariputra, if you can transform this female appearance, then all women can also do the same transformation. 

 

如舍利弗非女而現女身(여사리불비여이현여신) 一切女人亦復如是(일체여인역부여시)

雖現女身(수현여신) 而非女也(이비여야)

마치 사리불께서 여인이 아니지만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여인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인이 아닌 것입니다. 

If you, Sariputra, who is not a woman but appears as a woman, then it is the same for all women. Although appearing as a woman, they are not women. 

 

是故佛說(시고불설) 一切諸法非男非女(일체제법비남비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제법은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다’라고 설하셨습니다.

That is why the Buddha said that all Dharmas are not male and not female.

 

卽時天女還攝神力(즉시천녀환섭신력) 舍利弗身還復如故(사리불신환부여고)

그때 천녀가 다시 신통력을 거두어들이자, 사리불의 몸은 본래와 같이 회복되었습니다. 

 At once, the celestial maiden withdrew her divine power, and with it Sariputra returned to his original appearance. 

 

天問舍利弗(천문사리불) 女身色相(여신색상) 今何所在(금하소재)?

천녀가 사리불에게 물었으니, 여인의 몸의 특성=女身色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The celestial maiden asked Sariputra, Where is the female form now?

舍利弗言(사리불언) 女身色相(여신색상) 無在無不在(무재무불재)

사리불이 답하되, 여인의 몸은 있음도 없고, 있지 않음도 없습니다.

Sariputra said, The female form exists everywhere and nowhere. 
[女身色相(여신색상) 無在無不在(무재무불재)=티베트 본에서는 “여인의 몸의 특징은 만들어지지도(kta) 않았고, 변해지지도(vikta) 않았습니다”고 되어 있다.]


天曰(천왈) 一切諸法(일체제법) 亦復如是(역부여시) 無在無不在(무재무불재)

천녀가 말하되, 일체제법 또한 그와 같아서 있음도 없고 있지 않음도 없으니,  

The heavenly maiden said, So are all the Dharmas, also like this, which exists everywhere and nowhere. 

 

夫無在無不在者(부무재무불재자) 佛所說也(불소설야)

대저 있음도 없고 있지 않음도 없는 것이 부처님이 설하신 바입니다.  

And this one existing everywhere and nowhere is as what the Buddha has taught. 

[모두가 장난이며 환영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일체법은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즉 일체법은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 그 이름이 남자며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그 이름이 여자라는 것이다일체상을 떠난 것이 곧 일체법이다.]

 

◎삼승(三乘)
舍利弗問天(사리불문천) 汝於三乘(여어삼슴) 爲何志求(위하지구)?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기를, 그대는 세 가지 가르침=三乘에서 무엇을 구하는가?

Sariputra asked the celestial maiden, Which of the three vehicles do you pursue? 


天曰(천왈) 以聲聞法化衆生故(이성문법화중생고) 我爲聲聞(아위성문)

천녀가 대답하였으니, 저는 성문법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성문이 되기도 하며, 

The celestial maiden said, Since I transform sentient beings by the Dharma of a sravaka, I am a sravaka. 

 

以因緣法化衆生故(이인연법화중생고) 我爲辟支佛(아위벽지불)

인연법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벽지불이 되기도 하며, 

Since I transform sentient beings by the Dharma of dependent arising, I am a pratyekabuddha. 

 

以大悲法化衆生故(이대비법화중생고) 我爲大乘(아위대승)

대비법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대승이 되기도 합니다.
Since I transform sentient beings by the Dharma of great compassion, I am of the Mahayana. 

[또 사리불은 사람이 꼭 어떤 한 가지에 치우치고 국한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잘 아는 삼승법에서 천녀는 무엇을 구하는가? 라고 물었는데 천녀는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국한되지 않고 제도해야할 대상에 따라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하였다.]

 

舍利弗(사리불) 如人入瞻蔔林(여인입첨복림) 唯嗅瞻蔔(수후첨복) 不嗅餘香(불후여향)

瞻 볼 첨, 蔔 무 복, 嗅 맡을 후

사리불이여, 첨복(Campaka)의 숲에 들어가면, 오직 첨복의 향기만을 맡을 수 있을 뿐, 다른 향기를 맡을 수가 없듯이, 

Sariputra, It is like someone who enters the forest of champak and smells only the fragrance of champak and knows no other fragrance. 

[瞻蔔(첨복, Campaka)=황금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로 향기가 좋고, 껍질과 잎과 꽃에서 향료를 취한다. 현대인의 필수품 샴푸도 사실 경전 속 나무이다. 참파카초령목은 ‘첨복’이라 하고 다르게는 ‘황화수’이다. 첨복(瞻蔔)의 champa란 단어가 샴푸의 어원이고, 인도에선 숭배대상이라 나무를 베지 않는다. 인도차이나반도와 말레이시아 등지에는 광택이 좋고 내구성이 강한 이 나무를 보트와 종교상징물 제작에 쓴다.] 

 

如是若入此室(여시약입차실) 但聞佛功德之香(단문불공덕지향)

不樂聞聲聞(불락문성문) 辟支佛功德香也(벽지불공덕향야)

이와 같이 만약 이 방안에 들어오면, 오직 부처님 공덕의 향기만을 맡을 수 있을 뿐, 성문이나 벽지불 공덕의 향을 맡을 수 없습니다.  

In the same way, if one enters this room, one will only smell the fragrance of Buddha’s merits, not the fragrance of Buddha’s merits, not the fragrance of the sravaka’s or pratyekabuddha’s merits. 

[불교라는 큰 바다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그러나 불자라면 오직 불교즉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향기를 맡아야 하겠지만 사람의 근기와 욕망과 성격에 따라 갖가지 향기를 만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향기를 맡고 간다즉 각자의 자기 보자기에 싼 자기의 만의 불교를 절에 들고 와서 자기불교를 하다가 다시 싸들고 가는 격이다인간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부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불교를 믿어야 할 것이다.]


舍利弗(사리불) 其有釋梵四天王(기유석범사천왕) 諸天龍鬼神等(제천용귀신등)

入此室者(입차실자) 聞斯上人講說正法(문사상인강설정법)

皆樂佛功德之香(개락불공덕지향) 發心而出(발심이출)

사리불이여, 대체로 제석천이나 범천, 사천왕, 온갖 천신들, 용, 귀신이라 할지라도 이 방안에 들어오면 (유마힐이라고 하는) 훌륭한 분=上人이 설하는 정법을 듣고, 모두가 부처님 공덕의 향을 좋아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발심을 하고 나가게 됩니다. 

Sariputra, there is Sakra, Brahma, the four heavenly kings, various celestial beings, dragons, and spirits, amongst others, who have entered this room to hear the Superior One speak the true Dharma. All are delighted with the fragrance of the Buddha’s merits and leave after establishing an aspiration )to achieve supreme enlightenment).

 

舍利弗(사리불) 吾止此室十有二年(오지차실십유이년) 初不聞說(초불문설)

사리불이여, 저는 이 방에 머문 지 이미 12년이 되었습니다. 

Sariputra, I have been in this room for twelve years, and at first, 

 

聲聞辟支佛法(성문벽지불법) 但聞菩薩大慈大悲(단문보살대자대비)

不可思議諸佛之法(불가사의제불지법)

그러나 처음부터 성문, 벽지불의 법을 설하는 것을 듣지 않고, 오직 보살의 대자대비와 불가사의한 제불의 가르침만을 들어 왔습니다.

I did not hear the Dharma of the sravaka or pratyekabuddha. But hear of the bodhisattvas’ great compassion and mercy, the inconceivable Dharma of the Buddhas. 

[유마경은 대승불교를 선양하기 위한 대승불교 운동의 선언서다그러므로 유마힐 거사의 방이란 곧 대승불교를 뜻한다천녀가 12년간 유마힐의 방에 있었다고 한 것은 아함부 경전을 12년간 설하신 것을 대승불교 교판의 관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숫자일 것입니다불교는 언제나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수준과 근기에 따라서 달리 보고, 달리 받아들이기 때문에 삼승의 차별이 있게 된 것이니, 처음부터 불교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여기에서는 천녀)에게는 누구이거나, 언제나 보살의 대자대비와 부처님의 법만으로 들린다는 뜻이 되겠습니다이같은 사실은 오늘날의 불교에서도 다 같이 적용됩니다.] 


舍利弗(사리불) 此室常現(차실상현) 八未曾有難得之法(팔미증유난득지법)

사리불이시여, 일찍이 이 방에는 항상 한 번도 없었던=未曾有하며, 얻기 어려운 법=難得之法의 여덟 가지가 나타나나니, 

Sariputra, what are the eight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s that frequently appear in this room? 

 

何等爲八(하등위팔)? 此室常以金色光照(차실상이금색광조) 晝夜無異(주야무이)

不以日月所照爲明(불이일월소조위명) 是爲一未曾有難得之法(시위일미증유난득지법)

무엇이 그 여덟인가 하면, 이 방은 항상 황금빛(지혜의 빛)으로 빛나고 있어 밤과 낮의 차이가 없으며, 해와 달의 빛으로 밝음을 삼지 아니하니, 이것이 첫 번째 전에 없던=미증유하여 얻기 어려운 법이며, 

The room is always shining with golden light, day and night. And is not shining by the light of the sun and moon.

[승속을 초월한 대승불교대중불교인간불교인간보살불교에서는 눈을 뜨고 보면 낱낱이 미증유한 일로 넘쳐난다는 뜻이다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밤과 낮이 없이 항상 금빛으로 빛나는 지혜의 빛이 있으니 그림자가 있는 해와 달의 빛과 같지 않다는 뜻이다.]

 

此室入者(차실입자) 不爲諸垢之所惱也(불위제구지소뇌야)

是爲二未曾有難得之法(시위이미증유난득지법)

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온갖 번뇌에 괴롭힘을 당하는 바가 되지 않으니, 이것이 두 번째 미증유하여 얻기 어려운 법이며, 

All kinds of defilements do not trouble those who enter this room; This is the second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

[정법의 방밝은 눈을 가진 사람 유마힐의 방에 들어오면 마음의 더러움이 있을 수 없다마음에 더러움이 없으므로 괴로움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此室常有釋梵四天王(차실상유석범사천왕) 他方菩薩來會不絕(타방보살래회불절)

是爲三未曾有難得之法(시위삼미증유난득지법)

이 방에는 항상 釋=제석천, 梵=범천, 사천왕천, 그리고 타방의 보살들이 끊임없이 모여 오나니, 이것이 세 번째 미증유하여 얻기 어려운 법이며,

In this room, there are always the coming and going Sakra, Brahma, four kings of heaven, and the bodhisattvas from other places; this is the third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 

[바른 이치를 깨달아 열려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항상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넘쳐난다어린 아기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부목이나 공양주에서부터 학자나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볼일이 있다뵙고 싶은 볼일이며, 묻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다]

 

此室常說(차실상설) 六波羅蜜不退轉法(유바라밀불퇴전법)

是爲四未曾有難得之法(시위사미증유난득지법)

이 방에는 항상 6바라밀과 후퇴하지 않는=不退轉의 법이 설해지고 있으니, 이것이 네 번째 미증유하여 얻기 어려운 법이며,  

In this room, there frequently speaks the non-retrogression of the six paramitas, which is the fourth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 

[바르고 참된 이치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바른 이치를 말하고 참다운 이치를 말하고, 또 공덕이 되고 희망과 꿈이 되는 이야기만 할 뿐 절망적이거나 부정적인 말은 있을 수 없다.]

 

此室常作(차실상작) 天人第一之樂(천인제일지락) 絃出無量法化之聲(현출무량법화지성)

是爲五未曾有難得之法(시위오미증유난득지법) 絃악기줄 현, 밧줄 현

또 이 방에서는 항상 천상과사람들의 가장 훌륭한 즐거움을 지어서 한량없는 법으로 교화하는 소리를 연주나니 이것이 다섯 번째 미증유하여 얻기 어려운 법이며,

The room constantly plays the greatest music of the heavenly beings and strings that produce the sound of infinite Dharma discourses, which is the fifth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 

[천상과 인간에서 제일가는 즐거움, 그것은 한량없는 진리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교화는 설법의 소리이며, 또 그 어떤 음악보다도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此室有四大藏(차실유사대장) 衆寶積滿(중보적만) 賙窮濟乏(주궁제핍)

求得無盡(구득무진) 是爲六未曾有難得之法(시위육미증유난득지법) 賙 진휼할 주

이 방에는 온갖 보배가 가득 차 있는 네 개의 커다란 창고(사섭법)가 있어서, 가난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전부를 베풀어 주지만 그 바닥이 드러나지 않으니, 이것이 여섯 번째 미증유하여 얻기 어려운 법이며, 

There are four great storehouses in this room, filled with countless precious treasure, which the destitute can endlessly seek and still not have depletion. It is the sixth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 

[네 개의 큰 창고란 사섭법(四攝法)을 뜻한다. 이 사섭법이 가득하여 누구에게나 마음으로나 물질로나 넉넉하게 해 줄 수 있는 곳이 대승법으로 살아가는 유마힐의 방이다.]

 

此室釋迦牟尼佛(차실석가모니불) 阿彌陁佛(아미타불) 阿閦佛(아축불)

寶德寶炎(보덕보염) 寶月寶嚴(보월보엄) 難勝師子響(난승사자향) 一切利成(일체리성)

如是等十方無量諸佛(여시등시방무량제불)

이 방에서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아촉불(Akobhya), 보덕불, 보염불, 보월불, 보엄불, 난승불, 사자향불, 일체리성불 등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을 이 훌륭한 분=上人(유마힐)이 

In this room, Sakyamuni Buddha, Amitabha Buddha, Aksobhya Buddha, Jewelled Virtue, Jewelled Flame, Jewelled Moon, Jewelled Sovereign, Difficult to Surpass, Lion’s Echo, Accomplishment of All Benefits, and all other countless Buddhas in ten directions, 

[아촉불(阿閦佛, Akobhya-Tathāgata의 음역)=무동(無動), 무동불(無動佛), 부동(不動),무노불(無怒佛)이라 번역하며, 노(怒)와 음욕(淫欲)을 끊고서 서원하여 부처가 되었다. 정토(淨土)의 해화불(解化佛)이며,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부처님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Aksobhya이며, 아촉불은 이를 음역한 것이다.

일체리성(一切利成)부처님=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이다.]

 

是上人念時(시상인념시) 卽皆爲來(즉개위래) 廣說諸佛秘要法藏(광설제불비요법장)

說已還去(설이환거) 是爲七未曾有難得之法(시위칠미증유난득지법)

念=생각하기만 하면 곧 오시어 제불의 비밀한 가르침=秘要法藏을 설하고 돌아가시, 이것이 일곱 번째 미증유하여 얻기 어려운 법이며,  

will all come the moment the Superior One has thought of them in mind to speak extensively from the secret storehouse of Dharma of the Buddhas and leave when they have finished, and this is the seventh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 

[이는 깨달은 사람의 삶은 언제나 부처의 삶이기 때문에 부처로 현신하여 각자에 맞추어 설법한다는 뜻이다.]

 

此室一切諸天嚴飾宮殿(차실일체제천엄식궁전) 諸佛淨土皆於中現(제불정도개어중현)

是爲八未曾有難得之法(시위팔미증유난득지법)

이 방에는 일체의 모든 하늘의 엄숙하게 장식된 궁전이나 제불의 정토가 모두 나타나나니, 이것이 여덟 번째 미증유하여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In this room, all the magnificent palaces of the heavens and all the Buddhas’ majestic pure lands are manifest, and this is the eight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 

[유마힐의 방, 곧 깨달은 사람의 마음의 방은 수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희유하여 얻기 어려운 점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舍利弗(사리불) 此室常現(차실상현) 八未曾有難得之法(팔미증유난득지법)

사리불이여, 이 방에는 항상 여덟 가지 미증유의 일들이 나타나 있으니,

In this room, Sariputra, the eight unprecedented and rare dharmas are always present. 

 

誰有見斯不思議事(수유견사불사의사) 而復樂於聲聞法乎(이부락어성문법호)?

이 같은 불가사의한 일을 보면서도 누가 성문의 법을 좋아하고 바라겠습니까?

Who is there that sees this and would still revel in the Dharma of the voice hearers?

 

天女華(천녀화)

 

時維摩詰室有一天女(시유마힐실유일천녀) 見諸大人聞所說法(견제대인문소설법)

便現其身(편현기신) 卽以天華(즉이천화) 散諸菩薩(산제보살) 大弟子上(대제자상)

그때 유마힐의 방에 한 천녀가 있어, 여러 보살들의 설법을 듣고는 곧 그 몸을 나타내어 하늘 꽃을 보살들과 (부처님의) 대제자들 위에 흩뿌렸습니다.

At that time, there was a celestial maiden in Vimalakirti’s room, and when she saw these great lords were listening to the Dharma, she appeared in the air and scattered heavenly flowers on the bodhisattvas and chief disciples. 

 

華至諸菩薩(화지제보살) 卽皆墮落(즉개타락) 至大弟子(지대제자) 便著不墮(편착불타)

보살들 위에 뿌려진 꽃은 곧바로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대제자들 위에 뿌려진 꽃들은 그들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When the flowers reached bodhisattvas, they would all fall to the ground, but when they reached the great disciples, they stayed on their bodies and would not fall. 

 

一切弟子神力去華(일체제자신력거화) 不能令去(불능영거)

모든 제자들의 신통력으로 꽃을 떼어내 버리려 하였으나 떼어내지 못하였습니다.
So all the disciples used their divine power yet could not get rid of them. 

[유마경은 한 천녀를 등장시켜 보살의 무집착과 소승성문의 집착심을 밝히고 있다. 대 제자들에게 붙은 꽃들을 아무리 힘을 다해 떨어뜨리려고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은 곧 소승들의 집착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爾時天女問舍利弗(이시천녀문사리불) 何故去華(하고거화)?

때 천녀가 사리불에게 묻기를, 왜 꽃을 떼어 내려고 하십니까?

Then the celestial maiden asked Sariputra, Why do you want to remove these flowers? 

 

答曰(답왈) 此華不如法(차화불여법) 是以去之(시이거지)

사리불이 답하여 말하되, 이 꽃은 법다운=如法(yogya) 않으므로 떼어 버리려 합니다.

He replied, These flowers are not in accord with the Dharma, so we are trying to remove them. 

[如法(yogya)= 출가자가 지키도록 지어진 계율로, 예를 들면 사미(沙彌)는 그 10계(戒) 중에 향을 바르거나 장신구(裝身具)를 몸에 붙이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꽃이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출가가의 계율을 어기는 결과가 된다.]


天曰(천왈) 勿謂此華爲不如法(물위차화위불여법)

천녀가 말하되 이 꽃을 여법하지 못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The heavenly maiden said, Don’t say that these flowers are not in accord with the Dharma. 

 

所以者何(소이자하) 是華無所分別(시화무소분별) 仁者自生分別想耳(인자자성분별상이)

왜냐 하면, 이 꽃은 아무런 분별을 하지 않으나, 당신 스스로가 분별하는 마음(생각)을 일으킨 것일 뿐입니다.

The flower has no distinction, but it is the Benevolent One yourself that creates the thoughts of distinction. 

 

若於佛法出家(약어불법출가) 有所分別(유소분별) 爲不如法(위불여법)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佛法을 받들어 출가하여, 분별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여법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If one has distinctions when following the Buddha’s teachings as a renunciate, then that is not in accord with the Dharma. 

 

若無所分別(약무소분별) 是則如法(시즉여법)

만약 분별을 바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여법한 것입니다. 

If there is no distinction, it accords with the Dharma. 

 

觀諸菩薩華不著者(관제보살화불착자) 已斷一切分別想故(이단일체분별상고)

저 보살들을 살펴 보십시요. 꽃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은 이미 분별하는 마음=分別想을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Look at the bodhisattvas that is without the flowers attaching on them, that is because they have servered all thoughts of differentiations. 

 

譬如人畏時(비여인외시) 非人得其便(비인득기편)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 아닌 것=非人에게 홀리기 쉬운 것과 같듯이, 

For example, when a person is afraid, non-human beings will take advantage of it. 

 

如是弟子畏生死故(여시제자외생사고) 色聲香味觸得其便也(색성향미촉득기편야)

이와 같이 제자들은 생사를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빛깔=色과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등으로 인하여 홀리는 것입니다. (색성향미촉이 그 편의를 얻는 것입니다. )

Thus, if the disciple fears life and death, then form, sound, scent, and touch will take advantage of th opportunity. 

 

已離畏者(이이외자) 一切五欲無能爲也(일체오욕무능위야)

이미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5욕 등이 능히 힘을 미치지 못하나, 

On the other hand, if one is free from fear, all five desires are powerless against him. 

 

結習未盡(결습미진) 華著身耳(화착신이)結習盡者(결습진자) 華不著也(화불착야)

번뇌의 습기=結習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꽃이 몸에 붙는 것일 뿐이며, 

번뇌의 습기가 없어진 이에게는 꽃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The flower will stick to the body only when tenacious tendencies are not exhausted.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고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를 탓한다. 집착과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소승성문(사람)들을 크게 꾸짖고 있는 내용이다.]

 

◎해탈(解脫)
舍利弗言(사리불언) 天止此室(천지차실) 其已久如(기이구여)?

사리불이 말하되, 그대 천녀가 이 방에 머무른 것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Sariputra said, How long have you been in this chamber? 

答曰(답왈) 我止此室(아지차실) 如耆年解脫(여고년해탈) 耆늙은이 기,

천녀가 답하였으니, 제가 이 방에 머무른 것은 어르신=耆年께서 해탈하신 것만큼 오래되었습니다.
She replied, I have been here as long as you have attained liberation. 

[고덕(耆年 기년)= 천녀가 사리불을 부를 때의 호칭은 기년(耆年), 기구(耆舊)이다. 티베트 역에서는 사리불 앞에 반드시 ‘존자(尊者)’를 붙여 존칭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는 불도수행에 오랜 세월을 정진하여 지혜와 학덕이 높은 출가자라는 뜻으로 ‘고덕(古德)’이라고 번역했다.]

 

舍利弗言(사리불언) 止此久耶(지차구야)?

사리불이 말하되, 여기에 오래도록 머물렀습니까?

Sariputra said, Have you been here so long? 


天曰(천왈) 耆年解脫(고덕해탈) 亦何如久(역하여주)?

천녀가 답하되, 고덕께서 해탈하신 것 또한 얼마나 오래되셨습니까?
The celestial maiden said, Senior, how long has it been since you attained liberation? 

舍利弗默然不答(사리불묵연부답)

사리불이 묵묵히 대답하지 않으니, 천녀가 말하였습니다.

Sariputra was silent and did not answer. 

 

天曰(천왈) 如何耆舊大智而默(여하고구대지이묵)?

어떻게 덕이 높으신=古德의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계신 이께서는 묵묵하십니까?
The heavenly maiden asked, Why are you remaining silent when you’re a senior and of great wisdom? 

耆舊(기구)=기로와 고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

答曰(답왈) 解脫者無所言說(해탈자무소언설) 故吾於是不知所云(고오어시불시소운)

사리불이 답하되, 해탈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吾=나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Sariputra replied, Liberation is free from all words, so I don’t know how to answer on this subject. 

[사리불은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이와 사에 밝아서 부처님의 오른팔과 같은 상수제자다. 그런데 천녀와의 대화에서 경계에 집착하고 물든 소승성문으로 취급받는다. 또한 해탈이라는 문제를 논의 하는데 있어서는 아예 해탈에 대해서 말할 줄을 모른다고 천녀에게 손을 드는 광경이다. 틱낫한[釋一行] 스님은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유마경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天曰(천왈) 言說文字(언설문자) 皆解脫相(개해탈상)

천녀가 말하되, 말=言說과 문자야말로 모두가 해탈의 모습입니다. 

The heavenly maiden said, Words and characters are all marks of liberation. 

 

所以者何(소이자하) 解脫者(해탈자) 不內不外不在兩閒(불내불외불재양간)

왜냐 하면,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안(말하는 사람)도 아니며, 마음 밖(말하는 내용)도 아니며, 또 그 사이(음성)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Why Liberation is not within, not without, not in between, 

 

文字亦不內不外(문자역불내불외) 不在兩閒(불재양간)

문자도 이와 같아서 안(말하는 사람)에도 밖(말하는 내용)에도, 또 안과 밖의 중간(음성)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nd words are not within, not without, not in between. 

[不內=언설문자(言說文字)를 입에 담는 사람이다.

不外= 설(說)해지는 그 내용이다.

兩閒= 전달의 매개체인 음성(音聲)이다.]

 

是故舍利弗(시고사리불) 無離文字說解脫也(무이문자설해탈야)

그러므로 고덕(사라불)이시여, 문자를 떠나서는 해탈을 말하지 마십시오. 

Therefore, Sariputra, you do not need to speak of liberation apart from words. 

 

所以者何(소아자하) 一切諸法是解脫相(일체제법시해탈상)

왜냐 하면, 모든 것=一切諸法은 그대로가 해탈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How so? All Dharmas are the marks of liberation. 

[일반불교에서와 같이 사리불도 해탈이라는 것을 대단한 경지로 오인하고 있는데 천녀는 일체제법 모두가 해탈의 모습이라고 한다. 궁극적 불교 즉 어떤 경지도 지금 현재에 존재하는 이대로의 현상을 떠나 있지 않음을 가르친 것이다.]

 

舍利弗言(사리불언) 不復以離(불부이리) 婬怒癡爲解脫乎(음노치위해탈호)?
사리불이 말하되, 그러나 음행=婬, 분노=怒, 어리석음=癡을 떠나는 것을 해탈이라 하지 않습니까?
Sariputra said, Isn’t liberation about freedom from lust, angry and foolishness? 


天曰(천왈) 佛爲增上慢人(불위증상만인) 說離婬怒癡爲解脫耳(설리음노치위해탈이)

천녀가 말하되, 부처님께서는 아만심이 높은=增上慢에 사로잡힌 이들을 위해서만 음행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는 것이 해탈이라고 설하셨을 뿐입니다. 

The celestial maiden replied, The buddha said that for those that are conceited, to be free from lust, anger, and ignorance is liberation. 

[증상만(增上慢)= 깨닫지 못하였으면서도 깨달았다는 교만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증상만(增上慢, 산 adhi-māna, 영어: false arrogance, anticipatory arrogance, arrogance of showing off)은 아직 득(得)하지 못한 상위의 뛰어난 증득할 법=上勝證法에 대하여 '나는 이미 득하였다'고 생각하고, 혹은 아직 도달=至하지 못한 상위의 뛰어난 증득할 법=上勝證法에 대하여 '나는 이미 도달하였다'고 생각하고, 혹은 아직 접촉=觸하지 못한 상위의 뛰어난 증득할 법=上勝證法에 대하여 '나는 이미 접촉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에 연유하여, 지금 오만(傲慢)하고 이미 오만하였고 앞으로도 오만한 마음으로 높은 체 뽐내거나 자신을 높이는 고거심(高舉心)을 내고 자부[恃 믿을 시, 자부할 시: 自負, 스스로 자신이 그렇다고 믿음] 하여 다른 이를 업신여기는[篾] 것이다.
'구사론'에 따르면, 증상만(增上慢)은 아직 증득하지 못한 수승한 덕을 이미 증득하였다고 생각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증상만(增上慢)은 증상(增上) 즉 뛰어난 것을 가지지 못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가졌다고 착각하여 자신을 높이는[慢, 高舉] 것이므로 증상만이라고 한다.]

若無增上慢者(약무증상만자) 佛說婬怒癡(불설음노치) 性卽是解脫(성즉시해탈)

만약 증상만이 없는 사람이라면 음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자성이 곧 그대로 해탈이라고 설하셨습니다.

As for those who are without conceit, the Buddha said that the nature of lust, anger, and ignorance is liberation. 

[드디어 음행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본성이 곧 해탈이다=婬怒癡性 卽是解脫라는 유명한 명언이 등장하였다부처님은 잘난 체하고 아만이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음행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떠난 것이 해탈이라고 설하셨을 뿐이다. 탐욕이 즉시 도라고 한 제법무행경의 말씀과 같다.]


舍利弗言(사리불언) 善哉善哉(선재선재) 天女(천녀) 汝何所得(여하소득)?

以何爲證(이하위증)? 辯乃如是(변내여시)!
사리불이 말하되,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천녀여, 그대는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으로 깨달음을 삼았기에 변재가 이와 같이 훌륭할 수가 있습니까?
Sariputra said, Excellent! Excellent! Celestial maiden, what have you attained? By what means have you reached it? How can you speak so eloquently? 

天曰(천왈) 我無得無證(아무득무증) 故辯如是(고변여시)

천녀가 대답하되, 저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고, 깨달은 것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The celestial maiden replied, It is because I have no attainment and no proof of means that I have such good eloquence. 

 

所以者何(소이자하)? 若有得有證者(약유득유증자) 卽於佛法爲增上慢(즉어불법위증상만)

왜냐 하면, 만약 얻음이 있다든가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불법에서 증상만에 사로잡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불법에 대하여 아만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Why? If there is a person who has attained proof, that is to be conceited of the Buddha’s teaching.

[천녀는 깨달아도 깨달은 상이 없고, 얻어도 얻은 상이 없는 무소득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조금 얻은 것으로조금 아는 것으로 잘난 체하고, 아는 체하고, 얻은 체하는 사람으로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경지이다.]

◎무주(無住)
文殊師利又問(문수사리우문) 生死有畏(생사유외) 菩薩當何所依(보살당하소의)?

문수사리가 또 묻기를, 생사는 두려운 것이니, 보살은 무엇에 의지해야만 합니까?

Manjusri then asked, What should the bodhisattva rely on when there is fear of birth and death? 

 

維摩詰言(유마힐언) 菩薩於生死畏中(보살어생사외중) 當依如來功德之力(당의여래공덕지력)

유마힐이 답하기를, 보살이 생사의 두려움이 있을 때에는 여래 공덕의 힘에 의지해야 합니다.

Vimalakirti said, The bodhisattva should rely on the power of the merits of Tathagata amid the fear of birth and death. 
[인생은 외롭고 생사는 두려운 것이다삶과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접어든 사람은 진정으로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다이러한 때에 불교를 믿고 불교를 공부한 사람의 태도는 오직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여래의 공덕의 힘이란 바로 일심의 위대함이다약간의 방편을 이용하여 일심의 위대한 힘에 의지하여야 한다.]


文殊師利又問(문수사리우문) 菩薩欲依(보살욕의) 如來功德之力(여래공덕지력)

當於何住(당어하주)?
문수사리가 또 묻기를, 보살이 여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Manjusri also asked, When a bodhisattva wishes to rely on the power of the Tathagata’s merits, where should he dwell?  


答曰(답왈) 菩薩欲依(보살욕의) 如來功德力者(여래공덕력자)

當住度脫一切衆生(당주도탈일체중생)

(유마힐이) 답하되, 보살이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度脫=제도하여 해탈시키는 일에 머물러야 합니다.

Vimalakirti: If a bodhisattva wishes to rely on the power of Tathagata’s merits, he should abide upon the liberation of all sentient beings. 

 

又問(우문) 欲度衆生(욕도중생) 當何所除(당하소제)?

또 묻기를,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엇을 제거해야 합니까?

Manjusri: What obstacles should one eliminate to liberate all sentient beings? 


答曰(답왈) 欲度衆生(욕도중생) 除其煩惱(제기번뇌)

답하되,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Vimalakirti: If one wishes to liberate sentient beings, one should remove their afflictions. 

又問(우문) 欲除煩惱(욕제번뇌) 當何所行(당하소행)?
또 묻기를, 번뇌를 제거하고자 하면 마땅히 무엇을 행하여야 합니까?

Manjusri: What should one do to eliminate afflictions? 


答曰(답왈) 當行正念(당행정념)

답하되, 마땅히 正念=올바른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바른 생각을 행해야 합니다)

Vimalakirti: One should practice the right mindfulness. 
[여래공덕의 힘을 의지한다는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다중생이란 자기 중생으로부터 다른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중생을 제도하려면 번뇌를 제거해야 하고 번뇌를 제거하려면 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


又問(우문) 云何行於正念(운하행어정념)?

또 물어 말하되, 어떻게 하면 올바른 마음을 쓸 수 있습니까?(바른 생각을 행합니까?)
Manjusri: What is the practice of right mindfulness? 


答曰(답왈) 當行不生不滅(당행불생불멸)

답하되, 마땅히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不生不滅의 마음을 씀=行해야 합니다.

Vimalakirti: When one practice no arising and no perishing. 

 

又問(우문) 何法不生(하법불생)? 何法不滅(하법불멸)?

또 묻기를, 어떠한 법을 생하지 않게 하며, 어떠한 법을 멸하지 않게 해야 합니까?

Manjusri: What Dharma does not come into being? What Dharma does not extinguish? 
 

答曰(답왈) 不善不生(불선불생) 善法不滅(선법불멸)

답하되, 선하지 않은=不善은 생하지 않게 하고, 선한 법=善法은 멸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Vimalakirti: The unwholesome does not arise, and wholesome Dharma does not perish. 
 

又問(우문) 善不善孰爲本(선불선숙위본)?

또 물었으니, 선과 불선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Manjusri: What is the root of the wholesome and the unwholesome? 


答曰(답왈) 身爲本(신위본)

답하되, 몸(kya)을 근본으로 합니다.(몸이 근본입니다)
Vimalakirti: The body is the root. 

又問(우문) 身孰爲本(신숙위본)?

또 물었으니, 몸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Manjusri: What is the root of the body? 

 

答曰(답왈) 欲貪爲本(욕탐위본)

답하되, 욕심과 탐심=탐욕을 근본으로 합니다.
Vimalakirti: Desire and greed are the roots. 


又問(우문) 欲貪孰爲本(욕탐숙위본)?
또 물어 말하되, 욕심과 탐심=탐욕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Manjusri: What is the root of desire and greed?


答曰(답왈) 虛妄分別爲本(허망분별위본)

답하되, 허망한 분별을 근본으로 합니다.
 Vimalakirti: False distinctions are the root. 

又問(우문) 虛妄分別孰爲本(허망분별숙위본)? 

또 물었으니, 허망한 분별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Manjusri: What is the root of false distinctions? 


答曰(답왈) 顚倒想爲本(전도상위본)

답하되, 도리에 어긋난 그릇된 생각=전도망상을 근본으로 합니다.
Vimalakirti: Upside-down thinking is the root. 


又問(우문) 顚倒想孰爲本(전도상숙위본)?

또 물었으니, 도리에 어긋난 그릇된 생각=전도망상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Manjusri: What is the root of upside-down thinking? 


答曰(답왈) 無住爲本(무주위본)

답하되,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無住를 근본으로 합니다.
Vimalakirti: Non-abiding is the root. 

[현장은 ‘무주(無住),’ ‘무소주(無所住),’ 티베트 역에서는 ‘의지하는 곳이 없는 것’이라 했다.]

[혜능(慧能, 638~713) 대사의 '육조단경'의 삼무사상(三無思想)에서 삼무(三無)란 무념(無念)ㆍ무상(無相)ㆍ무주(無住)를 말한다. 
무념(無念)이란 사물을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에 얽매이지 않음이며,
무상(無相)이란 모양(형체)을 인정하면서도 그 모양에 사로잡히지 않음이며, 
무주(無住)란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한다. 머문다는 말은 마음이 간다, 집착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주란 마음을 내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머묾이 없다’ 혹은 ‘머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무주(無住)’는 ‘무소주(無所住)’라고도 하는데, 불교의 핵심인 깨달음, 해탈, 열반, 반야, 연기, 중도, 공, 무애, 자재 등과 같은 맥락의 말이고, 법계의 실상(實相)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무주(無住)란 사람의 본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몸을 보면 분자의 합성일 뿐이다. 그리고 분자가 분해되는 과정 속에 있다. 
단백질이라고 하는 분자가 합성됐다가 분해되는 것이다. 
이 분자의 분해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생ㆍ로ㆍ병ㆍ사의 흐름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언제나 흐름 속에 있어서,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住)는 머문다는 뜻으로 집착을 의미한다. 오래 머물면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무주란 집착을 떠난 흐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머문다’는 것이 반연(攀緣)한다, 집착한다, 애착한다, 묶여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은 곧 이름과 모양을 분별해서 그 중 자기 좋은 이름과 모양에 머물러 집착하고 묶여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름과 모양에 머물러 집착하고 묶여 있는 것이 곧 번뇌ㆍ고(苦)이다. 불교는 이러한 번뇌와 고로부터의 해탈을 목적으로 한 가르침이다.-작성자 아미산]

又問(우문) 無住孰爲本(무주숙위본)?

또 물었으니,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무주는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Manjusri: What is the root of non-abiding? 

 

答曰(답왈) 無住則無本(무주즉무본)

답하되,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무주는 근본이 없습니다. 

Vimalakirti: Since there is no abiding, there is no such a thing as a root. 

 

文殊師利(문수사리) 從無住本(종무주본) 立一切法(입일체법)

문수사리여, 이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무주가 근본이 되어 모든 법=일체법이 세워졌습니다.

Manjusri It is from the root of non-abiding that establishes all the Dharmas.   

[生死有畏(생사의 공포기 있을 때에는)→

當依如來功德之力(여래공덕의 힘에 의지하며)→

當住度脫一切衆生(여래 공덕의 힘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에 의지하며)→

欲度衆生 除其煩惱(일체 중생을 도탈하려면 번뇌를 제거하여야 하며)→

欲除煩惱 當行正念(번뇌를 제거하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바른생각의 정념을 가져야 하면)→

當行不生不滅(정념을 가지려면 마땅히 불생불멸의 마음을 가져야 하며)→

不善不生 善法不滅(불생불멸이란 선한 법은 일어나게 하고 불선한 법은 일어나게 하지 않는 것이니)→

善不善身爲本(선하고 불선한 것은 몸을 바탕으로 하며,)→

身孰欲貪爲本(몸은 탐욕에 의지하며)→

虛妄分別爲本(탐욕은 허망한 분별을 근본으로 하며)→

顚倒想爲本(허망한 분별심은 전도된 생각을 근본으로 하며)→

無住爲本(전도 망상이란 결과적으로 무주를 근본으로 하며)→

無住則無本(무주란 머물지 않음이니 그 근본이 없으며)→

從無住本 立一切法(무주가 일체법의 근본이다. 무집착, 무애착, 무반연으로 머물지 않음이 일체법의 근본이다)]

◎四無量心(사무량심)의 慈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 若菩薩作是觀者(약보살작시관자) 云何行慈(운하행자)?

문수사리가 묻기를,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관찰한다면, 어떻게 자(maitrī)를 행하여야 합니까?”

Manjusri asked, If the bodhisattva views all sentient beings this way, how do they practice kindness? 


維摩詰言(유마힐언) 菩薩作是觀已(보살작시관이) 

유마힐이 대답하기를, 보살은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서 스스로 다짐하기를, 

Vimalakirti sais When the bodhisattva has made such a view, 

 

自念(자념) 我當爲衆生(아당위중생) 說如斯法(설여사법) 是卽眞實慈也(시즉진실자야)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가르침=法을 설할 것이니, 이것이 진실한 자(사랑)입니다. 

he thinks to himself, I should speak such a Dharma for all sentient beings. This is genuine kindness. 

[보살의 자비희사(慈悲喜捨)에 대한 설법이다. 사랑[慈]에 대한 설법이 특히 많다. 보살이 중생을 위와 같이 관찰하고 나서 설하고자 하는 법은 어떤 것인가? 곧 위에서 중생을 관찰한 그와 같은 내용들을 명백하게 설명하여 중생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한다는 뜻이다. 또한 중생에 대한 실상을 바르게 설법하여 가르친다는 것은 곧 진정한 사랑[慈]이 되기도 한다.]

 

行寂滅慈(행적멸자) 無所生故(무소생고) 行不熱慈(행불열자) 無煩惱故(무번뇌고)

열반의 경지=寂滅함에서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보살에게는) 이미 생멸 함이 없기 때문이며,

번뇌의 불에 타지 않는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보살에게는) 번뇌가 없기 때문이며, 

So, practice the kindness of calmness and extinction so that there is no birth. Treat them with unburning kindness, and there are no disturbing emotions. 

 

行等之慈(행등지자) 等三世故(등삼세고) 行無諍慈(행무쟁자) 無所起故(무소기고)

평등한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보살에게는) 과거․현재․미래의 3세가 없기 때문이며,

다툼이 없는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보살에게는 다툼이) 일어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Practice impartial kindness, which is equal in the three time period. Practice the kindness of non-contention, for nothing arises. 

 

行不二慈(행불이자) 內外不合故(내외불합고) 行不壞慈(행불괴자) 畢竟盡故(필경진고)

차별이 없는=不二(advaya)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보살에게는) 안팎의 얽매임이 없는=內外不合하기 때문이며,

무너지지 않는=不壞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필경에는 다하기 때문이며, 

Conduct the kindness of non-dualism with no union internal and external. Practice the indestructible kindness, for it is the ultimate end. 

 

行堅固慈(행견고자) 心無毀故(심무훼고) 行淸淨慈(행청정자) 諸法性淨故(제법성정고)

견고한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그 마음이 상할 수 없기 때문이며,

청정한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제법의 모든 자성=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Practice solid kindness and the mind be without ruin. Conduct tranquil kindness, for all Dharmas have a pure nature. 

 

行無邊慈(행무변자) 如虛空故(여허공고) 行阿羅漢慈(행아라한자) 破結賊故(파결적고) 

끝이 없는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보살의 마음이) 허공과 같이 끝없기 때문이며,

아라한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번뇌라고 하는 도적=結賊을 물리치기 때문이며,

Practice boundless kindness, which is like the vast emptiness. Conduct the kindness of an arhat as it breaks the thief of knots. 

[사랑이란 사람 관계나 사물관계나 어떤 지위나 일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한 중요한 현상이다. 불교적 견해에서 볼 때 치우침이 없는 진정한 사랑과 대승보살의 사랑을 설하고 있다.]


行菩薩慈(행보살자) 安衆生故(안중생고) 行如來慈(행여래자) 得如相故(득여상고)

보살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중생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제법의) 진실한 모습=如相, 여여함을 얻었기 때문이며, 

Practices the kindness of a bodhisattva so that all sentient beings are at peace. Cultivate the kindness of the Tathagata, as the attainment is the mark of suchness. 

[대승보살의 사랑은 모든 사람의 근기에 낱낱이 다 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밝혔다.]

 

行佛之慈(행불지자) 覺衆生故(각중생고) 行自然慈(행자연자) 無因得故(무인득고)

부처님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며,

자연(svarasamaya)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인연(원인)없이 스스로 깨달음=無因得이기 때문이며, 

Practice the kindness of the Buddha, which is to awaken all sentient beings. Cultivate a natural kindness, which does not have a vause. 

 

行菩提慈(행보리자) 等一味故(등일미고) 行無等慈(행무등자) 斷諸愛故(단제애고)

보리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평등한 일미(한 맛)이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초월한=無等(anropa)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온갖 애욕을 끊었기 때문이며, 

Practice the kindness of bodhi, which is equal to one flavour. Cultivate a kindness that’s without equal for severing the various cravings. 

 

行大悲慈(행대비자) 導以大乘故(도이대승고) 行無厭慈(행무염자) 觀空無我故(관공무아고)

크게 어여삐 여기=大悲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대승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며,

싫어함이 없는=無厭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공과 무아를 관찰하기 때문이며, 

Conduct the kindness of great compassion by leading with the Great Vehicle. Practice the kindness of no aversion, because he views all things as empty and of non-self. 

 

行法施慈(행법시자) 無遺惜故(무연석고) 行持戒慈(행지계자) 化毀禁故(화훼금고)

진리를 베푸는=法施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남겨 두거나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계를 지킴=持戒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계율을 범한=毁禁한 사람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며, 

Practice the kindness of Dharma-bestowing, without leaving behind a regret. Conduct the kindness of upholding precepts, converting those who made transgressions. 

[보살의 사랑은 법을 보시하는 사랑이어야 한다다른 물질을 보시하는 것은 법을 보시하기 위한 방편이다.]


行忍辱慈(행인욕자) 護彼我故(호피아고) 行精進慈(행정진자) 荷負衆生故(하부중생고)

인욕하는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彼我= 나와 남을 보호하기 때문이며,

정진하는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중생들을 짊어지기 때문이며, 

Practice the kindness of forbearance to protect self and others. Practice the kindness of diligence to bear the burden of sentient beings. 

 

行禪定慈(행선정자) 不受味故(불수미고) 行智慧慈(행지혜자) 無不知時故(무불지시고)

선정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감각적인 기쁨의 맛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며,

지혜로운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교화하는) 올바른 때를 알지 못함이 없기 때문이며, 

Practice the kindness of meditation that is without the tastes. Conduct the kindness of wisdom, always knowing when is timely. 

 

行方便慈(행방편자) 一切示現故(일체시현고) 行無隱慈(행무은자) 直心淸淨故(직심청정고)

방편을 갖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모든 것을 나타내어 보여 주기 때문이며,

숨김이 없는=無隱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올곧은 마음=直心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Conduct the kindness of skilful means, manifesting all things. Practice the kindness of non-concealment with the tranquillity of a straightforward mind.

 

行深心慈(행심심자) 無雜行故(무잡행고) 行無誑慈(행무광자) 不虛假故(불허가고)

깊은 마음=深心의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雜行=잡되게 행함이 없기 때문이며, 속

임수 없는=無誑의 자를 실천하는 것이니, 헛되거나 거짓되지 않기 때문이며, 

Practice the kindness of deep mind, which is free from miscellaneous actions. Treat with the kindness of no deceit, for there is no falsehood. 

 

行安樂慈(행안락자) 令得佛樂故(영득불락고) 菩薩之慈(보살지자) 爲若此也(위약차야)

안락(sukha)한 자(사랑)를 실천하는 것이니, 부처님의 행복을 얻게 하여 주기 때문이니,

보살의 자(사랑)는 이와 같아야 합니다.

Practice compassion of peace and happiness to attain the happiness of the Buddha. Such is the kindness of a bodhisattva.

[여기까지는 보살의 사무량심 중에서 사랑=慈에 대하여 밝혔다.]

 

◎四無量心(사무량심)의 悲

文殊師利又問(문수사리우문) 何謂爲悲(하위위비)?
문수사리가 또 묻기를, 무엇을 悲=슬퍼함(karu)이라고 합니까?

Manjusri also asked, What is compassion? 


答曰(답왈) 菩薩所作功德(보살소작공덕) 皆與一切衆生共之(개여일체중생공지)

유마힐이 답하여 말하되, 보살이 지은 공덕을 일체중생에게 다 주어서 함께하게 하는 것입니다.  
His answer was, For a bodhisattva to share the accumulated merits with all sentient beings. 

[사무량심 중에서 슬퍼함[悲]이란 중생들의 고통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슬퍼하고 연민히 여기는 마음이다. 보살이 지은 모든 공덕은 일체중생과 더불어 함께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불쌍한 중생이 있으면 그 공덕을 다 베풀어 준다.]

 

◎四無量心(사무량심)의 喜

何謂爲喜(하위위희)?
무엇을 기뻐함=喜( mudit)라고 합니까?

What is Joy? He answered, 

 

答曰(답왈) 有所饒益(유소요익) 歡喜無悔(환희무회)

답하여 말하되, 이익을 얻으면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뻐하여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When one is of benefit to others and rejoice that there is no regret. 
  

◎四無量心(사무량심)의 捨

何謂爲捨(하위위사)?
무엇을 버림 또는 평온함=捨(upeka)16)라고 합니까? 
What is surrender? 

[捨=모든 차별을 버린 마음의 평등]


答曰(답왈) 所作福祐(소작복우) 無所悕望(무소희망) 祐 도울 우, 복 우

복을 지어 도와주어도 바라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He replied, Doing the works of merit and blessing without wishing for anything in return.

7. 관중생품(觀衆生品)
維摩詰所說經 觀衆生品 第七

Chapter 7 Viewing Living Beings

 

◎중생의 실상
爾時文殊師利(이시문수사리) 問維摩詰言(문유마힐언) 菩薩云何觀於衆生(보살운하관어중생)? 

그 때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어 말하되,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관찰해야 합니까?

Thereupon, Manjusri asked Vimalakirti, How does the bodhisattva view all living beings? 


維摩詰言(유마힐언) 譬如幻師(비여환사) 見所幻人(소견환인)

菩薩觀衆生爲若此(보살관중생위약차)

유마힐이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幻師=마술사(mykra)가 마술로 만들어 낸 꼭두각시를 보는 것과 같이, 보살은 중생을 관하기를 이와 같이 보아야 합니다.

Vimalakirti said, As an illusionist views a conjured figure, the bodhisattva views living beings like that; 

 

如智者見水中月(여지자견수중월) 如鏡中見其面像(여경중견기면상)

(보살은) 지혜로운 사람이 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이 여기며,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는 것처럼 여기며, 

it is the wise man sees the moon in the water, as the reflected images seen from a mirror, 

 

如熱時焰(여열시염) 如呼聲響(여호성향) 如空中雲(여공중운) 如水聚沫(여수취말)

뜨거운 熱時=여름 날의 아지랑이처럼 여기며, 소리를 질렀을 때의 (울리는) 메아리처럼 여기며,

하늘에 뜬구름과 같이 여기며, 물에 있는 물보라처럼 여기며, 

like the heat when the flame is hot, as the echo from a shout, like a floating cloud in the air, as the foam on water, 

 

如水上泡(여수상포) 如芭蕉堅(여파초견) 如電久住(여전구주)

물에 뜬 거품처럼 여기며, 파초의 단단한 줄기처럼 여기며,

번갯불이 오래 머무르는 것처럼 여기며,  

like a bubble on water, like the firmness of a banana tree, as lightning that remains for a long time, 

[如電久住; 나집은 “여전구주(如電久住)”라고 번역했고, 현장 역에는 이 비유가 없고, 티베트 역에는 이 다음의 “제6음(第六陰),” 그 다음의 “제13입(第十三入),” “제19계(第十九界)”가 없다. 그러나 반대로 현장과 티베트 역에는 나집 역에 없는 “거북의 털로 만든 의복(衣服),” “젊어서 죽은 사람의 정욕(情欲)의 즐거움” 등이 있다.]

 

如第五大(여제오대) 如第六陰(여제육음) 如第七情(여제칠정)

(地․水․火․風의 4大 외에) 제5대처럼 여기며, (色․受․想․行․識의 5陰 외에) 제6음처럼 여기며,

(6識이 일으키는 6情 외에) 제7정처럼 여기며,

as the fifth great elements, as the sixth aggregate, like a seventh sense,

[第五大; 만물의 구성 요소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 뿐이고, 다섯 번째로 존재하는 원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6識=식(識)은 산스크리트어 비야나(Vijñāna)를 번역한 것으로 요별(了別) 또는 비사나(毘闍那)라고도 번역되며, 대상을 인식하는 정신의 주체(主體), 6경을 맞아서 인식하는 마음의 작용를 말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마음 작용을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識)으로 분류했다. 즉 안이비설신의 감각 기관 6근이 색성향미촉법의 6경을 인식하여 일어나는 6가지 식(識)이다. 객체에 대해 그 일반적인 상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의 본체를 심왕(心王)이라 하고 그 심왕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심심소(心所)이며, 오직 심왕에게만 '식'이 존재하고 심소는 심왕의 식에 따라서 식을 받아 정신작용을 일으키는 객체에 불과하다고 본다.

심왕에게 존재하는 식을 여섯 가지로 나눈 것이 보고(眼識)ㆍ듣고(耳識)ㆍ맡고(鼻識)ㆍ맛보고(舌識)ㆍ닿고(身識)ㆍ아는(意識) 인간의 기초적인 감각에 대한 6식이며, 유식종에서는 여기에 제6식(의식)을 세분화해서 말나식(末那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해서 8식으로 설명한다. 여기에 또 암마라식(菴摩羅識, amala-vijnana)과 건률다야식(乾栗陀耶識, hrdaya-vijnana)을 더해서 10식이 나왔다. 여기에 무량식(無量識)을 더해서 11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如十三入(여십삼입) 如十九界(여심구계) 菩薩觀衆生爲若此(보살관중생위약차)

(12入處) 외에 제13처와 같이 여기며, (18界 외에) 제19계처럼 여기며,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관찰하여야 합니다.

 like a thirteenth entry, or like a nineteenth realm. The bodhisattva’s view of sentient beings is as thus. 

[12入處=6근+6경. 처(āyatana)는 영역이나 장소의 의미로 '입'(入)이라고도 하며, '십이입' 또는 '십이입처'라고도 한다. 6가지의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와 이들 각각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을 말한다.
앞의 여섯 기관을 6근·6내처라 하고 뒤의 여섯 대상을 6경·6외처라 하므로, 12처는 6근과 6경을 총칭한 것이다. 따라서 주관적이고 내적인 여섯 조건과 객관적이고 외적인 여섯 조건에는 각각 서로 대응관계가 있음을 묶어 표현한 것이 12처이다. 즉 눈은 색깔·형체에, 귀는 소리에, 코는 향기에, 혀는 맛에, 피부는 접촉되는 것에, 마음은 생각되는 것에 각기 대응한다. 원시불교에서 12처는 세계의 모든 것인 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대상세계를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6근은 곧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리키고, 6경은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가리킨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12처는 원시불교 이래 불교를 대표하는 존재 체계의 하나로 간주되며, 오온·12처·18계를 열거하여 '3과'라 칭한다.→ 18계=6근+6경+6식]


如無色界色(여무색계색) 如燋穀牙(여초곡아) 如須陁洹身見(여수타항신견)

燋 홰 초, 穀 곡식 곡, 陁 비탈질 타, 

무색계의 물질=色과 같이 여기며, 燋穀=불 타버린 곡식에서 나는 싹과 같이 여기며,

(身見을 끊은) 수다원이 身見=자신에 대한 이해득실을 갖는 것처럼 여기며, 

It is like form in the formless world, like the bud of burnt grain seed, like a stream-enterer who sees the body, 

[신견(身見)= 유신견(有身見)은 산스크리트어 원어 사트카야-드르슈티(satkāya-dṛṣṭi)를 의역한 것으로 줄여서 신견(身見)이라고도 한다. 음역하여 살가야견(薩迦耶見), 살가야달리슬치(薩迦耶達利瑟致), 삽가야견(颯迦耶見) 또는 삽가사견(薩迦邪見)이라고도 한다. 또한 의역하여 허위신견(虛偽身見), 위신견(偽身見), 괴신견(壞身見) 또는 이전신견(移轉身見)이라고도 한다.신사결(身邪結) 또는 신견결(身見結)이라고도 한다.

소의신(所依身), 즉 5온(五蘊)의 화합체 또는 5취온(五取蘊)을 실유(實有)라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즉, 5온의 화합체 또는 5취온을 실재하는 '나[我]' 또는 '나의 것[我所]'이라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如阿那含入胎(여아나함입태) 如阿羅漢三毒(여아라한삼독)

(다시는 胎를 통하여 태어나지 않는) 아나함이 다시 태에 들어 생을 받음과 같이 여기며, 

(貪․瞋․痴의 3독을 모두 끊어 버린) 아라한이 3독을 갖는 것과 같이 여기며,

like a non-returner who enters the womb, like an arhat that has the three poisons, 

[4쌍8배(四雙八輩)= 성문들이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陀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의 성자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인 수다원향 · 사다함향 · 아나함향 · 아라한향의 4향(向)과 거기에 도달한 경지인 수다원과 · 사다함과 · 아나함과 · 아라한과의 4과(果)를 말한다. 향과 과를 한 쌍으로 하여 네쌍, 곧 8배이다.
수다원은 입류(入流) · 예류(預流)라고 한다.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견혹(見惑)을 끊어 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입류라고 한다. 욕계는 탐욕이 들끓는 세계이고, 색계는 탐욕에서는 벗어났으나 아직 형상에 얽매여 있는 세계이고, 무색계는 형상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순수한 선정의 세계이다.

사다함은 일왕래(一往來)라고 한다. 욕계의 수혹(修惑)을 대부분 끊은 성자이다. 그러나 이 성자는 그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했기 때문에 천상의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한 번 인간계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다고 하여 일왕래라고 한다.
아나함은 불래(不來) · 불환(不還)이라 한다. 욕계의 수혹을 완전히 끊은 성자이다. 이 성자는 미래에 색계 · 무색계의 경지에 이르고 다시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래라고 한다.

아라한은 응공 · 응진 · 무학(無學)이라 한다. 공양 받을 만하므로 응공,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이라 한다.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이다.]

 

如得忍菩薩貪恚毀禁(여득인보살탐에훼금) 如佛煩惱習(여불번뇌습) 如盲者見色(여맹자견색)

진리를 깨달은 경계에 안주=得忍하는 보살이 탐욕과 성냄과 계율을 범함=파계하는 것과 같이 여기며,

부처님께 남아 있는 번뇌의 습기=餘習과 같이 여기며, 장님이 형상=色을 보는 것과 같이 여기며, 

as if a bodhisattva who has attained patience to destroy the precepts from greed and rage, it is as if a Buddha still has afflictions, like a blind man seeing form, 

 

如入滅盡定出入息(여입멸진정출입식) 如空中鳥迹(여공중조적) 如石女兒(여석녀아)

마음의 작용이 이미 다한 경지=滅盡定에 든 사람의 호흡=출식 입식과 같이 여기며,

공중을 날아간 새의 자취와 같이 여기며, 석녀가 낳은 아이와 같이 여기며, 

or as if a person who has entered the attainment of cessation still breathes in an out, as if a bird has a trail in the air, as if a child is born of a barren woman,

 

如化人起煩惱(여화인기번뇌) 如夢所見已寤(여몽소견이오) 如滅度者受身(여멸도자수신)

꼭두각시=化人이 번뇌를 일으키는 것과 같이 여기며,

이미 잠에서 깨어나서 보는 꿈과 같이 여기며,

열반=滅度한 사람이 다시 몸을 받는 것과 같이 여기며, 

as if those have woken up still see the things in their dreams, as if one who has entered extinction receiving a body, 

 

如無煙之火(여무연지화) 菩薩觀衆生爲若此(보살관중생위약차)

연기 없는 불과 같이 여기는 것으로,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관찰하여야 합니다.

or like a smokeless fire. This is how a bodhisattva sees living beings.

[불교는 중생이라는 문제에 크게 걸려있다. 소승불교든 대승불교든 중생에 대한 의식은 거의 한결같다. 이 유마경에서는 특별한 견해를 펼쳐 보여서 중생이라는 존재성을 확연하게 깨달아서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암과 같은 응어리를 씻어 제거하라는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생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라는 설법이다. 경문에서 들고 있는 여러 가지 예들이 한결같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마치 길가의 새끼 줄을 오인하여 뱀으로 본 것과 같으며, 어두운 길을 가다가 비석을 오인하여 사람으로 잘못보고 도망을 가서 넘어지고 자빠져서 온갖 상처를 입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중생을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이것은 참다운 관찰이다. 만약 이와 달리 관찰하면 그것을 삿된 관찰이다.

그렇다면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본래로 공적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본래로 부처인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처음도 끝도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어떤 지극한 수행을 하든, 중생을 제도하든, 성불을 하든, 모든 것이 마치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취와 같다. 가고 또 가도 본래의 그 곳이며[行行本處], 도착하고 도착해도 처음 출발한 그곳[至至發處]이다피나는 고행과 어려운 수행이란 다만 그와 같은 삶의 한 태도일 뿐이다. 그와 같은 숭고한 삶이 또한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키고 발심하게 한다.-무비스님]

◎대가섭의 찬탄

是時大迦葉(시시대가섭) 說菩薩不可思議解脫法門(문설보살불가사의해탈법문)

歎未曾有(탄미증유) 謂舍利弗(위사리불) 

이 때에 대가섭이 보살의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을 설하는 것을 듣고는, 미증유한 것이라고 찬탄하며 사리불에게 말하되,

When Mahakasyapa heard of the inconceivable liberation of the bodhisattva, he marveled at what he had never heard of before. 

 

譬如有人(비여유인) 於盲者前現衆色像(어맹자전현중색상) 非彼所見(비피소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장님(맹인) 앞에서 여러 가지 색상을 나타내 보여 주어도, 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He said to Sariputra, It is like showing various colours to a blind man, which he cannot see. 

 

一切聲聞(일체성문) 聞是不可思議解脫法門(문시불가사의해탈법문)

不能解了(부능해료) 爲若此也(위약차야)

일체의 모든 성문들도 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들어도 능히 이해할 수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So likewise, all the saravakas who hear about this inconceivable Dharma of liberation cannot understand it, just like that. 

[이 유마경은 소승적 인간과 소승적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꾸짖고 배척하여 그들의 견해를 바로 잡고자 하는 의도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 있다. 단순히 배척하고 꾸짖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려는 지극한 자비심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소승성문들을 맹인에 비교한 말씀을 듣고 얼마나 가슴 아프고 슬프겠는가. 이러한 방법을 역연(逆緣), 즉 상대의 마음을 거슬리면서 따끔한 교훈을 주는 방법이다. 듣는 순간은 마음이 상하지만 언젠가는 마음이 돌아서서 열릴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智者聞是(지자문시) 其誰不發(기수불발)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지혜로운 자라면 그 누가 이 법문을 듣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만? 

For the wise that are hearing this, who do not aspire to attain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我等何爲永絕其根(아등하위영절기근) 於此大乘(어차대승) 已如敗種(이여패종)

그럼에도 우리는 어찌하여 이러한 根=마음의 뿌리를 영원히 끊고서, 대승에 있어서 이미 敗種=썩은 종자와 같아져 버린 것입니까? 

Why have we cut off this root and become the seed of corruption of the Great Vehicle? 

[敗種=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한 성자나, 깨달았어도 남에게 설하려고 하지 않는 부처를 이에 비유한다]

 

一切聲聞(일체성문) 聞是不可思議解脫法門(문시불가사의해탈법문)

皆應號泣(개응호읍) 聲震三千大千世界(성진삼천대천세계) 泣 울 읍

일체의 성문들이 누구나 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들으면 반드시 큰 소리로 목놓아 울고, 그 울음소리는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며, 

All the saravakas, when they hear this inconceivable Dharma gate of liberation, will surely cry out and shake the three thousand worlds with their voices. 

 

一切菩薩應大欣慶(일체보살응대흔경) 頂受此法(정수차법)

일체의 보살은 반드시 기쁨에 넘쳐 이 가르침=法을 받아 가질 것입니다. 

All bodhisattvas should rejoice immensely and accept this Dharma. 

 

若有菩薩信解(약유보살신해) 不可思議解脫法門者(불가사의해탈법문자)

一切魔衆無如之何(일체마중무여지하)

만약 어떤 보살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믿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마군의 무리들이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If any bodhisattvas believe in and understand the inconceivable Dharma of liberation, then all demons are helpless against them.


大迦葉說是語時(대가섭설시어시) 三萬二千天子(삼만이천천자)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개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대가섭이 이와 같이 설하였을 때, 3만 2천의 천자들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When Mahakasypa spoke these words, all thirty-two thousand celestial beings aspire to attain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대가섭존자는 선불교에서 가장 높이 존경하는 분이다. 부처님의 법을 가섭존자 홀로 깨달아서 정법안장을 전해 받았다고 생각하는 분이다. 그런데 자신과 함께 모든 소승성문들은 썩은 종자와 같아서 대승보살의 높은 법문을 듣고는 천지가 진동하도록 대성통곡을 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선불교의 초조 가섭존자의 위신과 체면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려가면서 열린 견해와 대승보살의 삶을 권장하였다. 그래서 유마경을 대승불교운동의 선언서라고 하는 것이다.]

[大迦葉(대가섭) 마하카샤파(산스크리트어: Mahākāśyapa) 또는 마하가섭(摩訶迦葉)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이다.가섭 또는 대가섭(大迦葉)이라고도 하며, 의역하여 대음광(大飮光) 또는 대구씨(大龜氏)라고도 부른다.  

‘두타제일(頭陀第一) 가섭존자(迦葉尊者)’라고도 하며, 부처님보다 연세가 많았으며, 과거생 또는 출가하기 전에 음악가 이어서 수행자가 된 후에도 음악연주나 풍류를 보면은 정신을 잃고 멍하니 듣고 바라보았다는 전해지고 있다.
또 가섭은 과거생에 부처님 몸에 개금(改金)하는 시주를 많이 하여서 얼굴이 불그스럼하고 얼굴빛이 좋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인도의 왕사성 마하바드라의 거부였던 브라만 니그루다칼파의 아들로서 태어났다. 비팔라 나무 밑에서 탄생하였으므로 비팔라야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 청결한 인물로서 부처님의 신임을 받아 제자들 중에서 상위를 차지하였다.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신 후 비탄에 빠져서 동요하는 제자들을 통솔하여 교단의 분열을 막았으며, 제1회 불전 결집을 지휘하였다.
영취산(靈鷲山)에서 부처님께서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고사(故事)가 전해진다. 선종에서는 마하가섭을 선법(禪法)을 받아 이어준 제1조로 높이 받들고 있다.]

 

◎마왕

爾時維摩詰語大迦葉(이시유마힐어대가섭) 仁者(인자)

十方無量(시방무량) 阿僧祇世界中(아승지세계중) 作魔王者(작마왕자)

多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다시주불가사의해탈보살)

그 때 유마힐이 대가섭에게 말하되, 인자여, 시방의 무량한 아승지의 세계에서 마왕이 된 자의 대부분은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르는 보살들이니

Then Vimalakirti said to Mahakasyapa, Benevolent One, mos of those who appear as demon kings in the countless asamkhyeya of worlds in the ten directions are bodhisattvas of inconceivable liberation 

 

以方便力(이방편력) 敎化衆生(교화중생) 現作魔王(현작마왕)

그들은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마왕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and teach sentient beings with the power of skilful means and assume the form of demon kings.

 

又迦葉(우가섭) 十方無量菩薩(시방무량보살) 或有人從乞手足耳鼻(혹유인종걸수족이비)

또 가섭이여, 시방의 무량한 보살들은 손이나 발, 귀, 코나

Furthermore, Kasyapa. There are countless bodhisattvas in the ten worlds, or those people that are begging for hands, feet, ears, noses, 

 

頭目髓腦(두목수뇌) 血肉皮骨(혈육피골) 聚落城邑(취락성읍) 妻子奴婢(처자노비) 髓 골수 수

머리나 눈, 뇌수(골수), 피, 살, 피부나 뼈를 구걸하고, 성이나 마을, 아내, 자식, 하인이나 하녀,

heads, eyes, blood, flesh, skin, bones, villages, cities concubines, children, servants, 

 

象馬車乘(상마차승) 金銀琉璃(금은유리) 車璖馬瑙(차거마노) 珊瑚琥珀(산호호박) 璖 옥고리 거

眞珠珂貝(진주가패) 衣服飮食(의복음식)

코끼리, 말, 수레와 온갖 탈것들, 금, 은, 유리, 차거, 마노, 산호, 호박, 진주, 의복, 음식 등을 구걸하는 사람이 있다면, 

elephants, horses, carriages, golds, lapis lazuli, giant clams, agates, ambers pearls, jade shell, clothes, and food. 

 

如此乞者(여차걸자) 多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다시주불가사의해탈보살) 以方便力(이방편력)

而往試之(이왕시지) 令其堅固(영기견고)

이 같은 사람들은 대부분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들이며, 그들은 방편의 힘으로 가서 (당신들을) 시험하고, 이로 하여금 마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Those who are begging in this way, most of them are bodhisattvas who abide in inconceivable liberation, testing them with the power of skilful means to make them steadfast. 

[세상에는 거칠고 험한 사람과 흉악하고 나쁜 사람들이 많아서 매일의 뉴스를 보면 세상은 온통 악으로 넘쳐나는 것 같다. 지위의 고하와 지식의 유무와 재산이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정치인이나 사업가나 종교인이나 교육자나 농민이나 일용직이나 청소부나 모두가 부정과 부패와 사기와 거짓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어차피 이와 같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불교는 이와 같은 모습들을 마왕이라 한다. 그들은 마왕이 되어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시험하느라고 그와 같은 악을 세상에 보인다고 이해하고 해석한다. 사람들을 이 험한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더욱 견고하고 더욱 성숙하게 하고자 하는 보살행이라고 한 것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 住不可思議解脫菩薩(주불가사의해탈보살) 有威德力(유위덕력)

故現行逼迫(고현행핍박) 示諸衆生(시제중생) 如是難事(여시난사)

왜냐 하면,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에 머문 보살에게는 威德=위엄과 덕의 힘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온갖 핍박당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여, 이와 같은 어려운 일들을 중생에게 보여주는 것이나, 

Why? The bodhisattva abiding in unbelievable liberation has the power of majestic virtue, exercising compulsion to show all sentient beings such difficulties. 

 

凡夫下劣(범무하열) 無有力勢(무유역세) 不能如是逼迫菩薩(부능여시핍박보살)

범부는 하열하여 힘이 없으므로 능히 이와 같이 보살을 핍박할 수가 없는 것은, 

Ordinary mortals are inferior and have no such power to force the bodhisattva in such a way. 

 

譬如龍象蹴踏(비여용상축답) 非驢所堪(비려소감)

蹴 찰 축, 踏 밟을 답, 驢 당나귀 려, 堪 견딜 감

비유하자면 마치 용이나 코끼리가 땅을 차며 힘차게 달려올 때 당나귀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Like the trampling of a dragon and an elephant, it is not for a donkey to withstand. 

 

是名住不可思議解脫(시명주불가사의해탈) 菩薩智慧方便之門(보살지혜방편지문)

이것이야말로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에 머무는 보살의 지혜와 방편의 문입니다.

It is called the gate of wisdom and skilful means of the bodhisattva who abides inconceivable liberation.

[나쁜 짓도 아무나 하지 못한다상당한 근기가 되어야 할 수 있다그들을 보살이라 이해하지 않으면 또 어떻게 이해하는 길이 있겠는가그늘에 자란 풀은 연약해서 햇빛을 보면 자칫 말라 죽지만, 뜨거운 사막에서 자란 풀은 생명력이 강하여서 언 듯 보기에 말라 죽은 것 같지만 당당히 살아 있다돌에 붙은 이끼도 그와 같다사람의 삶도 다를 바 없으니, 열악한 환경은 그 열악한 조건이 그 사람을 위한 강력한 에너지가 되어 좋고 올바른 삶을 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又舍利弗(우사리불) 住不可思議解脫菩薩(주불가사의해탈보살)

斷取三千大千世界(단취삼천대천세계)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삼천대천세계를 쪼개어 가지기를 (움켜쥐기를)

In addition, Sariputra, the bodhisattva who dwells in inconceivable liberation, can snap off the three thousand worlds like a potter’s wheel, 

 

如陶家輪(여도가륜) 著右掌中(착우장중) 陶 질그릇 도, 擲 던질 척

擲過恒河沙世界之外(척과항하사세계지외)

陶家輪=마치 도공의 물레를 돌리는 것과 같이, 흙덩이를 오른쪽 손바닥에 움켜쥐고 항하 강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세계의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과 같으나, 

hold it in his right palm, and throw it beyond the worlds, incalculable as the Ganges sands. 

 

其中衆生(기중중생) 不覺不知己之所往(불각불지기지소왕)

그 안에 사는 중생은 자기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All beings in it will not know where they are going. 

[질그릇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진흙덩이를 가지고 그릇을 만들 때 필요한 흙을 잘라서 버리기도 하고 더 가져다가 붙이기도 하는 일이 자유자재하나, 그래도 그 흙은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또 흙의 본성도 아무런 손상이 없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 하다. 즉 공간의 불가사의 함이다.]

 

又復還置本處(우부환치본치) 都不使人有往來想(도불사인유왕래상)

而此世界本相如故(이차세계본상여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도 그 사람들에게는 갔다 왔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지 않고, 이 세계의 본래 모습은 예전과 같습니다.

And when they return to their original place, they will not feel that they are going back and forth, and the world will remain as it was.


又舍利弗(우사리불) 或有衆生(혹유중생) 樂久住世而可度者(낙구주세이가도자)

또한 사리불이여, 혹 어떤 중생이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기를 바라고, 제도되어야 할 사람이라면,

 Also, Sariputra, if there are sentient beings who delight in abiding in the world and can receive saving, 

 

菩薩卽延七日以爲一劫(보살즉탄칠일이위일겁) 令彼衆生謂之一劫(영피중생위지일겁)

그 보살은 곧 7일을 1겁으로 늘려 그 중생에게 1겁이라고 생각하게 하며, 

then the bodhisattva extends seven days as a kalpa, so that those sentient beings may feel that a kalpa has passed. 

 

或有衆生不樂久住(혹유중생불락구주) 而可度者(이가도자)

혹은 어떤 중생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고, 제도되어야 할 자가 있으면 

Perhaps there are sentient beings who do not delight in abiding in the world for a long time and can receive saving, 

 

菩薩卽促一劫以爲七日(보살증촉일겁이위칠일) 令彼衆生謂之七日(영피중생위지칠일)

보살은 곧 1겁을 7일이 되게 줄여서 그 중생에게 7일이라고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so the bodhisattva reduces a kalpa to seven days, so that those sentient beings will think that seven days have passed.

[공간이 불가사의하듯이 시간의 문제도 역시 불가사의함을 밝혔다.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서, 필요에 따라 시간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중생을 제도 할 목적의 보살은 불가사의한 일을 다 나타내 보인다.]

 

又舍利弗(우사리불) 住不可思議解脫菩薩(주불가사의해탈보살)

以一切佛土嚴飾之事(이일체불토엄식지사) 集在一國(집재일국) 示於衆生(시어중생)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일체 불국토의 장엄을 한 나라에 모아서 중생에게 보여 주며, 

Also, Sariputra. A bodhisattva who abides in inconceivable liberation can gather all the majestic splendour of the Buddha’s land in one country for all sentient beings to enjoy. 

 

又菩薩以一佛土(우보살이일불토) 衆生置之右掌(중생치지우장)

飛到十方遍示一切(비도시방편시일체) 而不動本處(이부동본처)

또 보살은 한 불국토의 중생들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놓고, 시방세계를 날아다니며, 일체의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만, 본래 있던 장소에서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In addition, a bodhisattva can place the beings of a Buddha’s land in his right palm and fly in the ten directions to see everything, without moving from his original location.

[아무리 기상천외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더라도 경전의 말씀은 마술과는 다르다. 마술은 눈속임으로 한 순간 사람들의 눈을 속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경전의 말씀은 모든 존재가 이미 그와 같이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의 안목으로 설명한 것이다. 사람에게서 가장 차별이 심한 문제가 안목이다. 한 가지 사실과 한 가지 사물을 두고도 그 견해는 천차만별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은 먼지 하나와 지구 하나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깨달은 사람에게 왜 위와 같은 불가사의한 경지가 없겠는가.]

 

又舍利弗(우사리불) 十方衆生供飬諸佛之具(시방중생공양제불지구)

菩薩於一毛孔(보살어일모공) 皆令得見(개령득견)

또 사리불이여, 시방의 중생들이 제불께 올릴 공양할 물건들을 보살이 하나의 모공 속에서 다 볼 수 있게 하며, 

Again, Sariputra? The bodhisattva can make all the objects that all sentient beings in the ten directions offer to the Buddhas in a single pore. 

 

又十方國土(우시방국토) 所有日月星宿(소유일월성숙)

於一毛孔普使見之(어일모공보사견지)

또 시방의 세계(국토)에 있는 태양, 달, 별등=星座를 하나의 모공 속에서 다 볼 수 있게 하며,

And can make all the sun, moon, and stars of the ten kingdoms visible to all sentient beings in a single opening pore.

[우리의 작은 눈동자에 큰 건물과 큰 산과 빠르게 지나가는 물체들과 저 멀리 있는 태양과 별들, 그리고 어두움과 밝음까지 모두가 들어오는 것도 알고 보면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又舍利弗(우사리불) 十方世界所有諸風(시방세계소유제풍) 菩薩悉能(보살실능)

吸著口中(흡착구중) 而身無損(이신무손) 外諸樹木(외제수목) 亦不摧折(역부최절)

또 사리불이여, 보살은 시방세계의 모든 바람을 남김없이 입 속으로 빨아들여도 몸을 상하는 일이 없으며, 수많은 나무들이 넘어지거나 꺾어지는 일이 없으며, 

In addition, Sariputra. All the winds of the ten worlds, the bodhisattva can breathe them into his mouth without damage to his body, and the trees outside his body will not break.

 

又十方世界劫盡燒時(우시방세계겁진소시) 以一切火內於腹中(이일체화내어복중)

火事如故(화사지고) 而不爲害(이불위해)

또 시방세계의 세월=劫盡이 다하여 불타 없어질 때, 모든 불길을 뱃속에 넣어도 불은 그대로이며 (보살의) 몸도 아무런 해를 입지는 않으며,

And, when the worlds in all ten directions are burning at the end of the kalpa, he can take all the fire into his stomach, and the fire is as before, without causing him harm. 

[劫盡=이 말은 세계의 성립과 괴멸의 과정이 끝났다고 하는 뜻을 포함한다.]

 

又於下方過恒河沙等諸佛世界(우어하방과항하사등제불세계) 取一佛土(취일불토)

또 아래쪽=下方으로 항하의 모래알보다 많은 제불 세계를 지나서 한 불국토를 취하여  

In addition, he can pass through the many Buddha worlds that are as countless as the sand os the Ganges from below and take a Buddha’s land and hold it up above, 

 

擧著上方(거착상방) 過恒河沙無數世界(과항하사무수세계)

如持鍼鋒擧一棗葉(여지침봉거일조엽) 而無所嬈(이무소요)

鍼 침 침, 鋒 칼끝 봉, 칼날 봉, 棗 대추나무 조, 葉 잎 엽, 

위=上方으로 항하의 모래알보다 수많은 불국토를 지나가서 (그 부처님 나라를 그곳에) 두는 것이 마치 대추나무 잎사귀 하나를 바늘 끝 위에 올려놓는 것과 같이 전혀 흔들림이 없으며, 

and cross over innumerable worlds as the sands in the Ganges River, with no difficulty, like holding a jujube leaf with the tip of a needle.

[불가사의해탈의 경전 내용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모든 이야기는 이미 존재하는 사실들을 보다 다른 차원의 안목으로 관찰한 것이다.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 원융무애하고 사사무애하고 융통자재한 도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又舍利弗(우사리불) 住不可思議解脫菩薩(주불가사의해탈보살) 能以神通(능이신통)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능히 신통력으로 

Also, Sariputra. A bodhisattva who abides in inconceivable liberation can manifest 

 

現作佛身(현작불신) 或現辟支佛身(현작벽지불) 或現聲聞身(혹현성문신)

부처님의 모습=佛身을 나타내며, 혹은 성문의 모습을 나타내며, 혹은 벽지불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며, 

with divine power the body of a Buddha, the body of a pratyekabuddha, the body of a sravaka, 

 

或現帝釋身(혹현제석신) 或現梵王身(혹현범왕신) 或現世主身(혹현세주신)

或現轉輪王身(혹현전륜왕신)

혹은 제석천의 모습을 나타내며, 혹은 범천의 모습을 나타내며, 혹은 世主天=세상의 주인의 모습을 나타내며, 혹은 전륜성왕(cakravartin)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며,

or the body of Sakra, the body of Brahma, or the body of a world lord, or the body of a Wheel-Turning King. 

[제대로 된 사람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상대의 입장이 되어 눈높이를 같이한다불가사의해탈에 머문 보살은 자기란 없다부처가 될 필요가 있면 부처가 되고 연각이 필요하면 연각이 되고 성문이 필요하면 성문이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인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지옥도 되고 아귀도 되고 아수라도 되고 축생도 될 수 있는 그것이 보살다운 보살이다.]

 

[世主天= 사천왕, 혹은 범천, 대자재천이라고도 한다. 색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세계의 주(主)라고도 하며, 혹은 욕계의 제6천(第六天)이라고도 한다.]

 

又十方世界所有衆聲(우시방세계소유중성) 上中下音(상중하음) 皆能變之(개능변지)

令作佛聲(영작불성) 演出無常苦空無我之音(연출무상고공무아지음)

또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들의 높은 소리=高音, 중간 소리=中音, 낮은 소리=低音 등 (온갖 소리를) 분별하여, 무상하고, 苦=괴롭고, 공하고, 무아를 말하는 부처님의 음성=佛音으로 변하게 하고, 

In addition, he can transform all the sounds of the world from the ten directions, the upper, middle, and lower sounds, into the voice of the Buddha. And producing the sounds of impermanence, of hardship, emptiness, and non-self, 

 

及十方諸佛(급시방제불) 所說種種之法(소설종종지법) 皆於其中普令得聞(개어기중모영득문)

또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온갖 가르침을 그 소리를 통하여 널리 들을 수 있게 하나니, 

and all the diverse kinds of Dharmas spoken by the Buddhas in the ten directions, all of which one can hear everywhere. 

 

舍利弗(사리불) 我今略說菩薩(아영약설보살) 不可思議解脫之力(불가사의해탈지력)

若廣說者(약광설자) 窮劫不盡(궁겁부진)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보살의 불가사의한 해탈의 힘에 관하여 간략하게 설하였지만, 만약 자세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영원한 세월=劫이 다하여도 설할 수 없을 것입니다.

Sariputra I have only briefly described the inconceivable liberating power of the bodhisattva. If I were to talk about it extensively, it would never end.

[인격으로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아량을 밝혔다. 여러 가지의 인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소리와 다양한 가르침을 다 들어 이해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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