又如殖種於空(우여식종어공) 終不得生(종불득생) 糞壤之地乃能滋茂(분양지지내능자무)
糞 똥 분, 壤 흙 양, 흙덩이 양, 滋 불을 자, 茂 우거질 무, 무성할 무
또한 마치 허공에 종자를 심으면 싹이 끝내 날수 없지만, 똥과 흙의 거름으로 비옥한 땅=糞壤之地에서는 무성하게 자라는 것과 같으며,
It is also like a seed planted in the void, which will never be able to grow. But if you sow the seed upon a soil that’s fertile with manure, it will grow and flourish.
如是入無爲正位者(여시입무위정위자) 不生佛法(불생불법)
이와 같이 무위의 올바른 경계=정위에 들어간 사람은 불법에서 일으키지 않지만,
Thus, the ones who enters the unconditioned place of awakening cannot grow the Buddha’s Dharma.
起於我見如須彌山(기어아견여수미산) 猶能發于(유능발우)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生佛法矣(생불법의)!
'나'라는 고집=我見을 수미산과 같이 일으키는 사람은 오히려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불법을 일으킬 수 있으니,
While those who raise a view of a self as large as Mount Sumeru can still develop an aspiration for attaining unsurpassed complete perfect enlightenment and bring forth the Buddha’s Dharma.
是故當知(시고당지) 一切煩惱(일체번뇌) 爲如來種(위여래종)
그러므로 마땅히 일체 모든 번뇌가 여래의 종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Therefore, you should know that all afflictions are the seed of the Tathagata.
譬如不下巨海(비어불하거해) 不能得無價寶珠(부능득무가보주)
비유하자면 마치 大海=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을 능히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For instance, if one does not go into the ocean, one can never obtain a priceless pearl.
如是不入煩惱大海(여시불입번뇌대해) 則不能得一切智寶(증부능득일체지보)
번뇌의 대해에 들어가지 않으면 一切智=일체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So likewise, it is impossible to attain all the treasures of wisdom without entering the ocean of afflictions.
[사람에게는 번뇌가 있고, 세상에는 악이 있기 때문에 여래가 있고 불교가 필요한 것이다.]
◎大迦葉歎言
爾時大迦葉歎言(이시대가섭탄언) 善哉善哉(선재선재) 文殊師利(문수사리) 快說此語(쾌설차언)
그 때에 가섭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말씀을 명쾌하게 설하시니,
At this point, Mahakasyapa sighted and said, Wonderful! Wonderful! Manjusri, these words of yours are truly well-spoken.
[여기서 가섭존자는소승불교의 최고 단계인 '아라한(阿羅漢)'을 상징하며, 아라한은 번뇌를 떠난 수행의 단계입니다.
그러나 번뇌가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번뇌 = 아뇩다라삼먁사보리심'이라는 공식에서 보면, 아라한은 번뇌가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없다는 말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고(苦)=번뇌(煩惱)=삶=오온(五蘊)'이라는 공식이 다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몸과 정신을 이루는 오온과 그 오온으로부터 생기는 모든 고(번뇌)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붓다가 되려면 번뇌를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고통으로부터 아묙다라삼먁삼보리심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입니다.-남일스님]
誠如所言(성여소언) 塵勞之疇爲如來種(진노지주위여래종) 疇 두둑 주
진실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塵勞之疇=온갖 번뇌의 벗이 여래의 종자가 됩니다.
Indeed, as you said, the companions of worldly afflictions are the seeds of the Tathagata.
我等今者(아등금자) 不復堪任發(불수감임발)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이제 다시 저희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But for those like us, we are no longer capable of aspiring to attain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乃至五無閒罪(내지오무간죄) 猶能發意生於佛法(유능발의생어불법)
而今我等永不能發(이금아등영불능발)
또한 설사 5무간 지옥에 떨어질 죄를 지었다 하여도 오히려 능히 뜻을 내어 불법을 일으킬 것이나, 지금 저희들은 영원히 (그 마음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Even those who have committed the five rebellious acts can still give rise to the Buddha’s Dharma. Yet we are now forever unable to generate such aspiration.
[번뇌가 바로 여래의 씨앗이기에 번뇌가 없는 우리('아라한'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생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 오무간지옥에 갈 정도의 죄를 지어야 부처님 가르침에 뜻을 낼 수 있다 하셨는데, 우리는 이제 아라한이 되어 영원히 불법의 뜻을 낼 수 없으니]
譬如根敗之士(비여근패지사) 其於五欲不能復利(기어오욕불능부리)
비유하자면, 마치 根敗=육근의 불구자가 된 사람은 5욕락을 다시 만족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이
It is as if we are now people whose sense faculties are defective and can no longer enjoy the five desires.
如是聲聞諸結斷者(여시성문제결단자) 於佛法中無所復益(어불법중무소부익)
永不志願(영불지원)
그와 같이 모든 결박(번뇌)를 끊은 성문(아라한)은 불법 안에 더 이상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으니, 앞으로 (그러한) 서원을 영원히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Thus, sravakas who have severed all the mental fetters, can no longer have any further benefits from the Buddha’s teachings, and will never have the aspiration.
是故文殊師利(시고문수사리) 凡夫於佛法有返復(범부어불법유반복) 而聲聞無也(이성문무야)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범부는 불법에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돌아 오지만) 성문은 그렇지 못합니다.
So, Manjusri, an ordinary person can still return to the Buddha’s Dharma, but a sravaka can not.
[凡夫於佛法有返復(범부어불법유반복)= 이 문을, 나집은 “불법(佛法)으로 다시 되돌아온다”고 했으나 승조(僧肇)는 이것을 주석하여 “범부는 법(法)을 듣고 능히 불(佛)의 종(種)을 이을 수가 있으니, 곧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여 불법으로 되돌아옴[反復]이 있다(僧肇 選, 注維摩詰經, 卍續藏 27, p.492下)”고 했다. 현장, 티베트 역은 “불은(佛恩)에 보답한다”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 凡夫聞佛法(범부문불법) 能起無上道心(능기무상도심) 不斷三寶(부단삼보)
왜냐 하면, 범부는 불법을 들으면 능희 최상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無上道心을 내어서 불․법․승 3보를 단절하지 않지만,
Why? Upon hearing the Buddha’s Dharma, a common individual can conceive the intent of attaining unsurpassed enlightenment and does not cut off the Three Jewels.
正使聲聞(정사성문) 終身聞佛法(종신문불법) 力無畏等(역무외등)
永不能發無上道意(영부능발무상도의)
정작 성문은 설사 목숨을 마치도록 불법의 십력과 두려움 없음=4無畏 등을 들어도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영원히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But for a sravaka, even if he spends his entire life listening to the Buddha’s Dharma, powers, fearlessness, and others, he would still never be able to conceive the intent for attaining unsurpassed enlightenment.
[불교는 참다운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인생과 세상의 바르고 참된 이치를 깨우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가르침이다. 이 유마경은 그와 같은 불교를 공부하노라 하면서 엉뚱하게도 길을 잘못 들어 존재의 참된 이치를 모르고 치우치고 편벽된 좁은 소견에 사로잡혀서 오히려 불교를 아예 공부하지 않은 사람보다도 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소승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깨우쳐서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지극한 가르침이다. 소승성문의 대표격인 대가섭 존자의 입을 통해서 스스로 토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선불교에서 대가섭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한다면 야기될 문제가 매우 많을 것이다.]
爾時會中有菩薩(이시회중유보살) 名普現色身(명보현색신) 問維摩詰言(문유마힐)
그때 이 법회 가운데 한 보살이 있어, 이름이 보현색신(sarvarpasadarana)이라는 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Thereupon, a bodhisattva in the assembly named Universally Manifest Form Body asked Vimalakirti,
居士(거사) 父母妻子(부모처자) 親戚眷屬(친척권속) 吏民知識(사민지식)
悉爲是誰(실위시수)?戚 겨레 척 僕 종 복
거사님, 그대의 부모와 처자, 친척, 권속, 하인=吏民, 벗(도반)=知識, 이들은 모두 어떤 사람들이며(누구이며),
Who are your parents, wives, relatives, subordinates, servants, and friends?
奴婢僮僕(노비동복) 象馬車乘(상마거승) 皆何所在(개하소재)?
노비와 심부름꾼=僮僕, 코끼리와 말, 수레 따위는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Where are the indentured servants, boy servants, elephants, horses, chariorts, and carriages?
於是維摩詰以偈答曰(어시유마힐이게답왈)
이에 유마힐은 게송으로 답하였다.
Thereupon, Vimalakirti replied with a verse:
[반드시 알고 읽어야 하는 유마경 핵심주제-남일스님
첫째. ‘현실의 국토가 불국토(정토)’, 불국토라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곳이라는 것입니다. '불국품'에서 “직심(直心), 심심(深心), 보리심(菩提心)이 보살의 정토이다.” “이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도 청정하다.”라고 하여 정토(불국토)라는 것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보살(사람들)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실천하고 표현해서 마음과 행위를 같게 한다면 현실국토(고통의 땅)가 바로 정토(불국토. 행복의 땅)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둘째. 자비정신의 실천입니다. '문질품'에서 “어리석음과 탐욕,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일 모든 중생들의 병이 나으면,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라는 유마거사의 말은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보살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보살(우리들)의 병은 자비로운 마음에 의해서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보살 (우리들)의 병은 이 자비를 실천하여야 치유되며, 타인의 치유에 의해서 보살(우리들)도 함께 치유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번뇌에 싸인 중생(병든 중생)들을 깨달음(치유)에로 인도하는 것이 보살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병을 치유해주기 위해서는 5무간죄.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 탐, 진, 치의 3독에 몸을 던지면서도 주저하거나, 망설이거나, 비하려하거나, 무서워하거나 하는 마음 없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옥을 갈지언정, 이것이 자비로 누군가를 치유해 줄 수 있다면, 그 길을 가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평등과 존중의 불이사상(不二思想)입니다. 출가, 재가. 부처와 중생. 정토(행복의 땅)와 예토(불행의 땅). 보리(깨달은 즐거운 마음)와 번뇌(힘들고 지친 중생마음)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는 불이(不二)사상을 통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장 이상적인 ‘진리’는 사실 볼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글로 적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오직 자신의 확실한 신념과 의지에 달려 있다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넷째. 중생들에게 모두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유마거사는 현실의 인간이 비록 번뇌를 가지고 악을 행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악인줄 알고, 번뇌인줄을 알아서 바꿀수만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체의 번뇌가 곧 부처의 씨앗이다.”라고 하여 부처님 가르침은 이러한 중생의 번뇌에 기인하고, 그것을 고쳐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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