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藉緣生煩惱 藉緣亦生業 藉緣亦生報無一不有緣。’

본송의 () 자리하여 (의지하여) 번뇌가 생기고, () 자리하여 업도 생기며
() 자리하여 과보 또한 생기는 것이니어느  하나도 () 없이 생기는 것이 없다에서,

 

若有煩惱。則有種種,無量種業。及種種業。所生果報。彼皆共因共緣。應當知之。無有一處無因緣者。

만약 번뇌가 있으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업이 있게 되며,

 갖가지의 업에서 과보가 생기게 되나니,

그들은 모두 () 공유하고 () 공유하고 있으니, 어디에도 인연 없이 생기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又爲明彼義今更說譬喩。‘誦燈印鏡音 日光種子酢 衆續不超到智應觀彼二。’如誦。

 이러한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비유를 말하였으니,

외울 ()ㆍ등불 ()ㆍ도장 ()ㆍ거울 ()ㆍ소리 ()

햇빛의 일광(日光)ㆍ씨앗의 종자(種子)ㆍ식초 () 오온(五蘊) 이어지는 것으로,

오온은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니니,
지혜로운  이러한 원인() 결과()라는  가지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誦者受誦者。所有誦,不到受誦。何以故?誦者,仍安住故。其誦者,亦不相續。何以故?自不生故。如燈次第生。非是初燈。超到亦非第二。無因而生。

가령 외울 ()에는 송을 가르치는 교송자(誦者) 송을 배우는 수송자(受誦者) 있으니,

가르치는 송이 배우는 사람에게 이르는 것이 아니니, 왜냐하면 가르치는 송은 여전히 가르치는 교송자(誦者)에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가르친 송이 상속하는 것도 아니니,  이유는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마치 등불이 차례로 생겨날  처음의 등불이 뛰어넘어 이르는 것도 아니고,  번째 등불이 원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如是印與像二種。面與鏡二種,音與響二種,日與火二種,種子與芽二種酢與舌涎二種,此等所有,皆不超到。亦非不生。亦非無因。而生彼二種。

五受衆相續到時,非是初受衆超到而第二受衆。亦非不生,亦非無因,而生智者,於此受衆,相續不超。而次第到。應當正觀。

이와 마찬가지로 도장 () 거울에 비친 형상의 ()  가지와,

얼굴과 거울의  가지, 소리와 메아리의  가지, 햇빛과 불의  가지,

씨앗과 싹의  가지, 식초와  속의 침의  가지,

이러한 것들은 모두 뛰어넘어 이르는 것도 아니고,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며,

() 없이   가지가 생기는 것도 아니며,

오수중이 상속하여 이를 때에  번째의 오수중이 뛰어넘어 이르는 것도 아니고

 번째의 오수중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며, ()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지혜 있는 지자(智者)  오수중의 상속이 순서를 뛰어넘지 않고 차례로 도달한다는 것을 응당 바르게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又外內受用俱有十種皆應當見。於中外十種者:一者非常故,二者非斷故,三者不超到故,四者無中閒故,五者非彼體故,六者非別異故,七者無作者故,八者非無因故,九者念念空故,十者同類果相繫故。

외수용(外受用) 내수용(內受用) 각각 가지가 있다는 것을 올바로 관찰하여야 하나니,

, 외수용의 가지란, 첫째는 항상하지 않음의 비상(非常),

번째는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 아닌, 비단(非斷),

번째는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닌, 불초도(不超到),

번째는 중간이 없는 무중간(無中間),

다섯 번째는 앞의 몸이 아닌, 비피체(非彼體),

여섯 번째는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닌, 비별이(非別異),

일곱 번째는 짓는 자가 없는 무작자(無作者),

여덟 번째는 원인이 없지 않다는 비무인(非無因),

아홉 번째는 생각 생각이 공한, 염염공(念念空),

번째는 같은 종류의 결과가 함께 묶이는 동류과상계(同類果相繫)이니,

 

彼外所有種子滅無餘故。非常芽出生故,非斷種子滅無餘已其芽本無,今有生故 不超到。彼所相續,無有斷。因果相繫故,無中閒。種子、芽差別故,非彼體。從彼出生故非別異因緣和合故無作者種子爲因故非無因種子芽莖枝葉、花、果等,傳傳相生故,念念空。、酢、鹹苦辛隨因差別果轉出故同類果相繫於中。

외부의 모든 종자인 외종(外種) 남김없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하는 것이 아닌 비상(非常)이고,

싹이 생겨서 나오기 때문에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닌 비단(非斷)이며,

종자가 소멸하여 없어졌을 싹은 본래 없었으나 지금 생긴 것이기 때문에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닌 불초도(不超到)이며,

상속하는 바가 단절됨이 없이 원인과 결과가 서로 묶여 있기 때문에 중간이 없는 무중간(無中間)이며,

종자와 싹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앞의 몸이 아닌 비피체()이며,

그것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닌, 비별이(非別異)이며,

인연이 화합한 것이기 때문에 짓는 자가 없는 무작자(無作者)이며,

종자가 원인이기 때문에 원인이 없지도 않은 비무인(非無因)이며,  

종자ㆍ싹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 등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 생겨나기 때문에 생각 생각이 공한, 염염공(念念空)이며,

달고 시고 짜고 쓰고 맵고 떫은 것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겨나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결과가 함께 묶이는 동류과상계(同類果相繫) 것이다.

 

內十種者,一者死邊受衆,滅無餘故,非常。二者得次生分受衆故,非斷。三者死邊受衆滅。無餘已,次生分受衆。本無今有生故,不超到。四者受衆相續,無有斷,因果相繫故,無中閒。五者死邊次生,分受衆差別故,非彼體。六者從彼出生故,非別異。七者因緣和合故,無作者。八者煩惱業爲因故,非無因。九者迦羅邏、頞浮尸、伽那、奢佉、出胎、嬰孩、童子、少年長宿等,傳傳相生故,念念空。十者善不善熏,隨因差別果轉出故,同類果相繫。

내수용(內受用) 가지란,

첫째는 죽은 오수중은 남김없이 멸하기 때문에 항상하지 않은 비상(非常)이며,

번째, 다음 생의 오수중을 얻기 때문에 끊어지지 않는 비단(非斷)이며,

번째, 죽은 오수중이 남김없이 없어졌을 다음 생의 오수중이 본래는 없다가 이제 생기게 되는 까닭에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닌 불초도(不超到)이며,

번째, 오취온이 상속하며 끊어짐이 없고 원인과 결과로 서로 묶여 있기 때문에 중간이 없는 무중간(無中間)이며,

다섯 번째, 죽은 오수중과 다음 생의 오수중이 다르기 때문에 앞의 몸이 아닌 비피체()이며,

여섯 번째, 앞의 것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르지 않은 비별이(非別異)이며,

일곱 번째, 인연의 화합으로 생겼기 때문에 짓는 자가 없는 무작자(無作者)이며,

여덟 번째, 번뇌와 업이 원인이기 때문에 원인이 없지 않은 비무인(非無因)이며, 

아홉 번째, 가라라(迦羅邏, kalala)ㆍ알부타(頞浮陀, arbuda)ㆍ폐시(, peśi)ㆍ가나(伽那, ghana)ㆍ발라사거(鉢羅奢佉, praśakhā)ㆍ출태(出胎)ㆍ갓난아기ㆍ어린아이ㆍ청소년ㆍ어른 등으로 연결되어 상속하여 생기므로 생각 생각이 공한 염염공(念念空)이며,

번째, () 불선(不善) 훈습은 원인의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나오므로 같은 종류의 결과[同類果] 함께 묶인, 동류과상계(同類果相繫) 것이다.

 

又有三偈:또한 개의 게송인 삼게(三偈) 있으니,

 

‘如燈炎轉生 識身亦如是 先際與後際亦無有聚集。

마치 등불의 불꽃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것과 같이

식신(識身) 또한 그와 같아서,

앞의 찰나인 선제(先際) 뒤의 찰나인 후제(後際) 모여서 쌓임이 없으며,

 

 無生亦有生 破壞無相著生已亦無住 而此作業轉。

생김이 없는 무생(無生) 생김의 () 파괴하여서 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미 생겨난 이생(生已)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이것이 업의 굴림인 업전(業轉) 짓는 것이다.

 

若於彼緣生而能觀知空 爲其施設 彼亦是中道。’

만약 연생(緣生) 대하여 관찰하여서 공함을 능히 알게 되면

그것이 시설한 가르침이며, 또한 그것이 중도(中道)라네.

 

於中無明、行、渴愛、取、有。是爲集諦。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是爲苦諦。彼等十二分滅,是爲滅諦。若於緣生,如實能知。是爲道諦。緣生論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가운데 무명ㆍ행ㆍ갈애ㆍ취ㆍ유는 집제(集諦)이고,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는 고제(苦諦)이며,

이들 열두 가지가 소멸하는 것이 멸제(滅諦)이니,

만약 연생(緣生) 대하여 진실하게 알게 된다면, 이것이 도제(道諦)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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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如城喩經中,導師已說此義、又迦栴延經說 正見及空見 破邏具膩經張宿名也亦說殊勝空,

此等三經及以餘處,如是之相,世尊已說彼亦是此,

부처님께서 이미 '성유경(城喩經)'에서 이러한 뜻을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또한 '가전연경(迦栴延經)'에서는 정견(正見) 공견(空見) 설하시고,
'
파라구이경(破邏具膩經)' [장수(張宿) 이름이다]에서도 수승한 수승공(殊勝空) 대하여 설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이  가지 ()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 또한 이와 같으니


緣生若正知 彼知空相應 緣生若不知 亦不知彼空

본송의 만약 반연하여 생기는 연생(緣生) 대하여 바로 안다면이러한 앎이 () 상응하며,

만약 반연하여 생기는 연생(緣生)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에서


於前所說緣生,若有正知,彼知無異,彼復何知 謂知於空。

앞에서 연생을 말한 것과 같이만약 연생을 바르게 안다면 차별이 없음을 아는 것으로,

무엇을 아는 것인가공에 대해 아는 것이며,


緣生若不知,亦不知彼空者。於此緣生,若其不知。亦於彼空,不能解入。

만약 연생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그것의 공함도 알지 못한다 것은

만약 연생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공한 것에 대해서도 능히 깨달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應當知之、於空若起慢 則不厭受衆若有彼無見則迷緣生義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만약 공에 대하여 () 일으키면오수중(五受衆오취온 五取蘊) 싫어하지 않게 되며,

만약 그것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이는  연생의 의미를 미혹한 것이다.


於空若起慢。則不厭受衆者,若起空慢,則於五受衆中,不生厭離。

만약 공에 대하여 자만을 일으키면 오수중(五受衆, 오취온 五取蘊) 싫어하지 않게 된다 것은

만약 () 대하여 자만심을 일으키면 오수중(五受衆, 오취온 五取蘊) 싫어하여서 여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若有彼無見,則迷緣生義者,若復由於無見,迷此緣生義故,

만약 그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이는  연생의 의미을 미혹한 것이다,

만약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이러한 연생의 의미를 미혹하기 때문이다.


則於四種見中隨取何見?一者斷見,二者常見,三者自在化語,四者唯依宿世所作。

 가지의 견해 중에서 어떠한 견해를 따라서 취하게 되는가?

첫째는 소멸하여 없어져 버린다는 견해의 단견(斷見)이며,

 번째는 항상한다는 견해의 상견(常見)이며,

 번째는 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변한다는 견해의 자재화어(自在化語)이며,

 번째는 오직 숙세에 지은 업에 따른다는 견해이다.

 

緣生不迷故 離慢彼知空 及厭受衆故不迷業果合。’

본송의 연생을 미혹하지 않기 때문에, 자만을 여의고 그것이 공함을 알게 되며,

또한 오수중(五受衆) 싫어하기 때문에, 업과 과보의 화합인 업과함(業果合) 미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에서

 

緣生不迷故,離慢彼知空者,於前所說。各各緣生中,若無迷心,及於攝取我我所中。若得離慢,彼則如法能入於空。

‘연생을 미혹하지 않기 때문에 자만을 여의고 그것이 공함을 안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처럼 각각의 연생을 미혹하는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 나의 것인 아소(我所) 취하는 것에서 자만을 여읜다면, 능히 여법(如法)대로 공에 들어갈 있다는 것이며,

 

及厭受衆故,不迷業果合者,五受衆中,攝取我、我所故 則遍世閒,輪轉不息於彼受衆,起厭離故。於此業果相續,則無顚倒,亦不迷惑。

‘또한 오수중(五受衆) 싫어하기 때문에 업과 과보의 화합인 업과함(業果合) 대하여 미혹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오수중(五受衆) 대하여 나와 나의 것을 취하기 때문에 모든 세간에서의 ‘윤회’가 멈추지 않게 되나,

오수중을 싫어하여 여의고자하는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그러한 업과의 상속에 대하여 전도되지도  않고 미혹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又問此義云何‘業作緣續生 亦非不緣 此空緣當有此業報受用具。

다시 묻겠습니다.

업이 반연을 지어 계속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반연하지 않음이 없으며,

이러한 연이 공하므로 반드시 이러한 업보의 수용(受用) 있게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業作緣續生。亦非不緣此者煩惱業染,如前所說,彼以如是淨、不淨業,推遣衆生,傍及上下相續而生。若非此業,則不作緣。若不然者,則未作竟而來。及已作竟而失。

‘업이 반연을 지어 계속 생기니, 이것을 반연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란 번뇌와 업의 오염인 ()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것으로, 이러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은 ()으로써 중생을 밀어부쳐서 옆과 위ㆍ아래로 상속(相續)하여서 생겨나게 하는 것이니,

만약 이러한 () 없다면 연을 짓지 않으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업을 짓지 않았는데도 오게 되고,

이미 지은 것도 잃게 되는 것이다.

 

謂業未作,竟其果卽來。謂業已作竟,其果便失。

‘온다는 ()’라는 것은, 업을 짓지 않았는데도 과보가 오는 것을 말하고,

‘잃는다는 ()’이란, 업을 이미 지었는데도 과보를 문득 잃는 것을 말하며,

 

空緣當有此,業報受用具者,若由此等淨不淨業,有報受用則自性是空。本無有我。作緣發生。彼自性空,亦應當知,彼義今更略說。

‘연이 공한 것이므로 반드시 이러한 업과 과보의 수용이 있게 된다’란 ‘

이러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은 업으로 인한 과보의 수용이 있다면, 자성(自性) 공한 것이니,  본래 내가 있어서 연을 짓고 과보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 것이므로, 자성공(自性空) 반드시 알아야 하나니, 지금 뜻을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十二分差別 前已說緣生 彼煩惱業苦三中如法攝。’無明爲初老死爲邊是十二分緣生差別如前所說。彼中三,是煩惱。二是業。七是苦。皆已攝入。

본송의 "열두 가지의 십이지(十二支) 차별을 앞에서 이미 연생(緣生)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번뇌와 () () 가운데에서 여법(如法)대로 포섭되는 것이다."에서

무명을 처음으로 하고 노사를 끝으로 하는 열두 가지 연생의 차별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가운데 가지는 번뇌에, 가지는 업에, 일곱 가지는 () 포함되며,

 

‘三中生於二 二中生於七 七中復生三有輪如是轉

본송의 ‘ 가지에서 둘이 생기고, 둘에서 일곱이 생기고,

일곱에서 다시 셋이 생기니, 이와 같이 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에서

 

無明渴愛取三種所生,行有二種。彼二所生,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七分。彼七分中,如前所說,還生三種。彼三復二。其二更七。是故二種次第不斷。此之有輪,如是普轉,

무명ㆍ갈애ㆍ취의 가지에서 행ㆍ유의 가지가 생기며,

행과 유의 가지에서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의 일곱 가지가 생기며,

이러한 일곱 가지에서 앞에서 말한 무명ㆍ갈애ㆍ취, 가지가 다시 생기는 것이며,

가지에 행과 유의 가지가 생기고,

가지에서 다시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의 일곱 가지가 생기는 것이므로

행과 , 가지는 차례로 끊임없이 바퀴와 같이 돌고 도는 것이다.

 

‘因果諸生世 無別有衆生 唯是於空法還自生空法。’

본송의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 인하여 존재하는 모든 세간에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오직 공한 공법(空法)에서 다시 돌아와서 저절로 공한 공법(空法) 생겨나는 것이다.”에서

 

因果諸生世,無別有衆生者,無明、行、渴愛、取有五種名因。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七種名果。此等所有,普遍世閒。若我若衆生,若壽若生者,若丈夫若人,若作者,是等爲首。次第分別,其唯虛誑應當知之.

‘원인과 결과로 존재하는 모든 세간에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란

무명ㆍ행ㆍ갈애ㆍ취ㆍ유의 다섯 가지를 원인이라 하고,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의 일곱 가지를 결과라고 하나니,

이들이 존재하는 모든 세간, ()라거나, 혹은 중생이나, 혹은 목숨의 (), 혹은 태어나는  생자(生者)라거나, 혹은 장부(丈夫), 혹은 사람이나, 혹은 행위를 짓는 주체의 작자(作者) 같은 등을 첫머리로 삼아서 차례로 분별하면, 모두 헛된 속임의 허광(虛誑) 것일 뿐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彼云何生?唯是於空法,還自生空法。謂自性空中,假名煩惱業果。唯有別空假名,煩惱業果法生。此是其義。

그러한 것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오직 공한 공법(空法) 다시 공한 공법(空法)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에서,

말하자면 자성이 공한 자성공(自性空) 가운데에서 오직 거짓의  이름인 가명(假名)뿐인 것이 번뇌ㆍ업ㆍ과이니, 단지 따로 공한 가명이 있어서 번뇌ㆍ업ㆍ과의 법이 생김을 말한다.’ 것이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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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又節分摠略有節所攝故 二節及三略 因果雜爲節三四節摠略。

본송의 "() 마디인 유절(有節) 포함되기 때문에
개의 마디인 이절(二節) 가지 요약인 삼약(三略) 있으며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 섞여서 마디() 이루므로
개의 마디와 개의 전체적인 요약의 총략(摠略) 있는 것이다." 에서,

 

有節爲本,發起二節所謂有生兩閒,爲第一節。行識兩閒,是第二節。此二竝爲業果節

() 마디의 기본이 되어  개의 마디인 이절(二節) 생기나니,

이를테면 유(有)와 생(生), 가지 사이가 번째 마디인 제일절(第一節)이며,

행(行)과 식(識)의  가지 사이가 번째 마디인 제이절(第二節)이며,

개의 마디는 모두 업과 과보의 마디인 업과절(業果節)이 되며,

 

受渴愛中,因果共雜。是第三節 此之三節,復爲四種:摠略無明、行二種是第一摠略。

識、名色、六入、觸受五種,是第二摠略。

渴愛取有三種,是第三摠略,生老死二種,是第四摠略,此謂三節及四摠略。

수(受)와 갈애(渴愛) 중에는 원인과 결과가 함께 섞여 있으므로 번째 마디인삼절(第三節) 되며,

개의 마디인 삼절(三節) 다시 가지의 전체적인 요약인 총략(總略) 있으니,

무명ㆍ행의 가지는 번째 전체적인 요약인 일총략(一摠略)이고,

식ㆍ명ㆍ색ㆍ육입ㆍ촉ㆍ수의 다섯 가지는 번째 전체적인 요약인 이총략(二摠略)이며,

갈애ㆍ취ㆍ유, 가지는 번째 전체적인 요약인 삼총략(三摠略)이며,

생ㆍ노사, 가지는 번째 전체적인 요약인 사총략(四摠略) 것이니,

이를 개의 마디인 삼절(三節) 개의 전체적인 요약인 사총략(四摠略)이라 하며, 

 

 

又此等法中住時差別。 ‘二二三三二 苦時有五法 作者胎境界發轉生流行。

또 이러한 등의 법 가운데에는 머무는 시간의 주시(住時)의 차별이 있는 것으로,

본의 "둘과 둘과 셋과 셋과 둘로써 괴로울 때에는 다섯 가지 오법(五法) 있으니

짓는 작자(作者) 모태의 태세(胎歲) 경계(境界), 전생이 시작되는 발전생(發轉生) 흘러감의 유행(流行) 것이다." 에서

 

二二法者,無明行,說爲二種識名色說爲二種

둘과 이란 무명ㆍ행의 가지와 식ㆍ명색의 가지를 말하며,

 

三三者,六入觸受,說爲三種,渴愛取有說爲三種。

셋과 이란 육입ㆍ촉ㆍ수의 가지와 갈애ㆍ취ㆍ유의 가지를 말하며,

 

又二者,生老死說爲二種。此等五法,是苦時中作者 胎藏境界發轉出生,於中流行。

如數當知於中,無明、行二種,說爲苦時中作者。應如是見。

識、名色二種,說爲苦時中胎藏。應如是見。

六入、觸、受三種,說爲苦時中境界。

渴愛、取、有三種、說爲苦時中發轉。

生、老死二種,說爲苦時中出生。

이란 생ㆍ노사의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다섯 가지의 법은 괴로운 상태의 짓는 작자(作者) 모태의 태세(胎歲) 경계(境界) 전생이 시작되는 발전생(發轉生)으로, 태어남의 출생(出生)이며, 흘러감의 유행(流行)인 것이다.

가운데의 흘러감의 유행(流行) 순서대로 알아야 하나니,

가운데 무명ㆍ행의 가지는 괴로운 상태에서의 짓는 작자(作者)라고 설하는 것이니, 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는 것이며
식ㆍ명색의  가지는 괴로운 상태의 모태의 태세(胎歲)이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며,

육입ㆍ촉ㆍ수의 가지는 괴로운 상태의 괴로운 상태의 경계(境界)이며,

갈애 취 유의 세 가지는 상태의 전생이 시작되는 발전생(發轉生)이며,

생ㆍ노사의 가지는 괴로운 상태의 태어남의 출생(出生) 말하는 것이다.

 

又果差別。迷惑發起果 報流果爲二 相應根分中一一三二分

또한 과(果)에 차별이 있으니, 
본송의 "미혹과(迷惑果)와 발기과(發起果)와 보과(報果)와 진류과(津流果)의 둘은
상응하는 근(根) 중에서 하나ㆍ하나ㆍ셋ㆍ둘이다." 에서, 

 

如前所說,此無明根及渴愛根於無明根,第一分中,迷惑、發起、報、流,名四種果。

一、一三、二數分之中,隨其次第。當與相應。

於中無明是迷惑果。行是發起果。識、名色、六入是報果。觸、受是津流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것은 무명근(無明根)과 갈애근(渴愛根)이니, 

첫 번째 무명근에는 미혹과ㆍ발기과ㆍ보과ㆍ진류과가 있으니 네 가지의 사종과(四種果)라 하며,

하나ㆍ하나ㆍ셋ㆍ두 가지로 나뉜 가운데 차례대로 상응해야 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 무명은 미혹과(迷惑果)이고,

행은 발기과(發起果)이며,

식ㆍ명색ㆍ육입은 보과(報果)이고,

촉ㆍ수는 연줄이 되는 진류과(津流果)인 것이다.

 

復有餘殘果 ‘熱惱貧乏果 轉出 津流果 相應他分中二一一一法。’

본송의 "또 다른 과(果)가 남아 있으니, 열뇌과(熱惱果)ㆍ빈핍과(貧乏果)와 

전출과(轉出果)ㆍ진류과(津流果)는 남은 부분의 둘ㆍ하나ㆍ하나ㆍ하나의 법과 상응한다."에서

 

如前所說,第二渴愛根分中,熱惱貧乏轉生、津流果等,隨其數分二、一、一、一,於此法中,當與相應。

於中渴愛、取。是熱惱果有是貧乏果生是轉出果。老死是津流果 如是此等,則有八果

앞에서 말한 두 번째 갈애근 중에서 열뇌ㆍ빈핍ㆍ전생ㆍ진류과 등은 숫자의 순서대로 둘ㆍ하나ㆍ하나ㆍ하나의 법에 상응하며,

그 중에서 갈애ㆍ취는 열뇌과이고,

유는 빈핍과이고, 생은 전출과이고,

노사는 진류과이니,

이와 같은 여덟 가지의 팔과(八果)가 있는 것이다. 

 

‘此有十二種 等力緣自生 無衆生無命無動 以慧知’ 

본송에서 "이 열두 가지는 똑같은 힘의 반연으로써 스스로 생겨나는 자생(自生)인 것이니,
중생도 없는 무중생이고, 수명도 없는 무명(無命)이고, 움직여 짓는 동작자(動作者)도 없음을 지혜로 알아야 한다."에서,

 

如是無明爲初,老死爲邊,有十二分。平等勝故。各各緣生,而無衆生,無壽命,無動作。以慧應知。

이와 같이 무명이 처음이고, 노사가 끝인 열두 가지의 십이분(十二分)은 똑같이 수승하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반연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중생도 없는 무중생(無衆生)이고, 수명도 없는 무수명(無壽命)이며,

움직여 지음도 없는 무동작(無動作)을 지혜로써 알아야 하나니,

 

於中無衆生者,以不牢固故。無壽命者,以無我故。無動作者,以無作者故。

그 중에서 ‘무중생(無衆生)’이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며,

‘무수명(無壽命)’은 무아(無我)이기 때문이며,

‘무동작(無動作)’이라는 것은 짓는 작자(作者)가 없기 때문이다. 

 

‘無我無我所 無我無我因 四種無智空餘分亦如是’

본송의 "무아(無我)이고, 나의 것도 없는 무아소(無我所)이며,
무아(無我)이라서, 나라는 원인도 없는 무아인(無我因)이라는 것을 지혜로서 알아야 하나니, 
이러한 네 가지는 무지공(無智空)이니, 그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에서

 

於無我中無智,無我所中無智,無我中無智,無我因中無智,此中以無我故,四種無智空。

如四種次第,無智空如是行等餘分。亦皆是空。

무아(無我)라는 것에 대한 무지,

나의 것이 없다는 무아소(無我所)에 대한 무지,

결과로서의 무아(無我)라는 것에 대한 무지,

나라는 원인도 없는 무아인(無我因)이라는 것에 대한 무지이니,

이 가운데에서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네 가지의 무지(無智)는 공한 것이니,

이 네 가지가 차례대로 공한 무지공(無智空)이듯이,

행(行) 등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 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應當知之‘斷常二邊離 此卽是中道 若覺已成就覺體是諸佛。’

본송의 "단멸(斷滅)과 상주(常住)의 두 극단인 이변(二邊)을 여읜다면,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이니
만약 이를 깨달아 성취한다면, 그 깨달음의 주체인 각체(覺體)가 바로 모든 부처이라."에서

 

有是常攝,無是斷攝。如此二邊,彼作緣彼處。彼處諸有轉生。

離此二邊,卽是中道。若無智諸外道,則墮於邊。

若已覺悟諸佛世尊,則爲覺體於此世閒,獨能成就。餘人悉無此義。

있음의 유(有)는 항상한 상(常)에 포섭되고, 없음의 무(無)는 단멸의 단(斷)에 포섭된다.

이와 같은 두 극단의 이변(二邊)이 서로를 반연하게 되면, 그곳에서 모든 존재의 유(有)가 전변하여 생기게 되나니,

이 두 극단을 여의면 바로 중도(中道)인데, 지혜가 없는 외도들은 극단에 떨어지나,

깨달은 모든 부처님이라면 깨달음의 주체가 되어서 이 세간에서 홀로 성취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모두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覺已於衆中 仙聖說無我 曾於城喩經導師說此義。’

본송의 "선성(仙聖, 부처님)은 다 깨달은신 뒤에 대중들에게 무아(無我)를 설하셨으니,
일찍이 '성유경(城喩經)'에서 큰 스승이신 도사(導師)께서 이러한 뜻을 설하셨다." 에서,

彼亦是此中道覺已,於諸衆中佛說無我,所謂比丘,有我我所小兒、凡夫、無聞之類順墮假名。

於中無復我及我所比丘生時,但苦生。滅時,但苦滅。

세존께서는 이 중도를 깨닫고 나서 모든 대중들에게 무아(無我)를 설하셨으니,

“비구들이여, 나와 나의 것이 있다고 여기는 어린아이와 같은 범부와

법을 듣지 못한 부류는 가명(假名)을 따라 갈 뿐이나,

그 가운데에서도 또한 나와 나의 것이 없는 무아(無我)이고,  무아소(無我所)일 뿐이니,

비구들이여, 생길 때에는 고통이 생길 뿐이고, 소멸할 때에는 다만 고통이 소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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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無智與業識 名色根三和 知渴及以取 集出熟後邊' 

본송의 "무지(無智, 무명) 즉 업(業)의 식(識),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세 가지 삼화합(三和合)과
앎의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취(取)와
모임의 집(集, 유有), 나옴의 출(出, 생生), 성숙됨의 숙(熟, 노老), 그리고 그 끝의 후변(後邊, 사死)이니" 에서  

 

於中無智者是無明。業者是行,識者是,解。名色者是五衆摠聚,根者是入。三和者是觸。

무지(無智)란 무명이며, 업이란 행(行)이고, 식은 이해의 해(解)이고,

명색이란 오온이 모두 모이는 것이고,

근이란 육입이고, 세 가지의 삼화합(三和合)화합이란 촉(觸)이며, 

 

知者是受。渴者是渴愛。取者是執持。集者是有。出者是生。熟者是老。後邊者是死。

앎이란 수(受)이고, 갈증이란 갈애(渴愛)이고, 취함이란 잡아 지니는 집지(執持)이고,

모임의 집(集)이란 유(有)이며, 나옴의 출(出)이란 태어남의 생(生)이고,

무르익음이란 늙음의 노(老)이고, 뒤의 끝이라는 후변(後邊)이란 죽음의 사(死)이다.

 

又此等差別相攝,我當次第說之於中業煩惱、報差別。

이러한 등의 차별은 서로를 포섭하는 것으로, 그것을 차례대로 설명하였으니,

그 속에는 업과 번뇌와 과보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初八九煩惱 第二第十業 餘七皆是苦三攝十二法。

본송의 "첫 번째인 무지(無智, 무명)와 여덟 번째의 취(取)와 아홉 번째의 집(集, 유有)은 번뇌이고, 
두 번째의 식(識)과 와 열 번째의 출(出, 생生)은 업(業)이며,
나머지 일곱의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삼화합(三和合, 촉觸),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숙(熟, 노老), 후변(後邊, 사死)은 모두 고(苦)이니,
이 번뇌, 업(業), 고(苦)의 셋의 분류에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이 포함되는 것이다." 에서

 

三煩惱者,無明渴愛取 二業者,行有七報者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等此十二法,三種所攝。

세 가지의 삼번뇌(三煩惱)란 무명ㆍ갈애ㆍ취이며, 

두가지 업이란 행(行)과 유(有)이며,

일곱 가지 과보란 식(識)ㆍ명색(名色)ㆍ육입(六入)ㆍ촉(觸)ㆍ수(受)ㆍ생(生)ㆍ노사(老死) 등이니,

이러한 열두 가지 법이 세 가지에 포함되며, 

 

又時差別。‘初二是過去 後二未來時 餘八是現在此謂三時法。’

또 시간(時)에 의한 차별이 있으니,

본송의 "처음의 둘은 과거이고, 뒤의 둘은 미래이고, 나머지 여덟은 현재이니
이것을 삼시법(三時法)이라고 한다." 에서

無明行初二種過去時中。生老死後,二種未來時中。識名色六入觸受、渴愛、取、有八種,現在時中。

又此等各各次第相生。

처음의 두 가지인 무명과 행은 과거이고,

뒤의 두 가지인 생과노사는 미래이고,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갈애ㆍ취ㆍ유의 여덟 가지는 현재이며, 
이러한 것들은 각각 차례대로 생겨나는 것이다.

 

‘惱起業感報 報還生煩惱 煩惱復生業亦由業有報’

본송의 "번뇌가 일어나면 업이 과보를 감응하며, 과보는 다시 번뇌를 생기게 한다.
번뇌는 또 업을 생기게 하고, 업으로 인하여 또 과보가 있게 된다." 에서

煩惱業報三種如前所說。由彼煩惱故有業。由業故有報。還由報故有煩惱。

由煩惱故有業。由業故有報。

번뇌(煩惱)ㆍ업(業)ㆍ과보(果報)의 세 가지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저 번뇌로 인하여 업이 있고,

업 때문에 과보가 있게 되며,

또 과보 때문에 번뇌가 있고,

번뇌 때문에 업이 있으며, 업이 있기 때문에 과보가 있게 되는 것이다.

 

問曰:由煩惱盡,各各寂滅。其義云何?

묻겠습니다. ‘번뇌가 다하게 되면 업과 과보가 각각 없어지게 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가?
답한다. 게송으로 말하겠으니, 

答曰:‘離惱何有業 業壞亦無報 無報則離惱此三各自滅。’

번뇌를 여의고 어찌 업이 있을 수 있으리!
업을 없애면 과보 또한 없으며,
과보가 없으면 곧 번뇌를 여의는 것이니
이 셋이 저절로 각각 자멸(自滅)하는 것이다.

若其此心無煩惱染,則不集業。若不作業則不受報若滅,報者亦不。生煩惱。如是此三,各各自滅。

만약 이 마음이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는다면 곧 업이 쌓이지 않게 되며,

업을 짓지 않는다면 곧 과보를 받지 않게 되며,

과보가 소멸하면 번뇌 또한 생겨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세 가지가 각각 저절로 자멸(自滅)하는 것이다.

 

又此等有因果分。五分因生果 名爲煩惱業 七分以爲果七種苦應念。’

또한 이러함에는 원인과 결과의 구별인 인과분(因果分)이 있으니, 
본송의 "다섯 가지의 원인인 오분인(五分因)이 결과를 생기게 하는 것이니, 이를 번뇌업(煩惱業)이라 하며, 
일곱 가지는 결과이니, 일곱 가지 괴로움인 칠종고(七種苦)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에서,

五種因名爲煩惱業者 如前所說 無明行渴愛取有是也

‘다섯 가지의 원인인 오분인(五分因)을 번뇌와 업이라고 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무명ㆍ행ㆍ갈애ㆍ취함ㆍ유이며, 

 

七種果轉生者亦、如、前所、說、七種苦。所謂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是也 

‘일곱 가지의 결과가 생긴다’는 것도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곱 가지의 괴로움이니,

이를테면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인 것이다.

 

又此因果二種空因、中、空、無、果 因中亦。無因 果中空無因。

‘果中亦無果 因果二俱空 智者與相應梵本本一偈今爲一偈半

또 이 원인과 결과 두 가지는 공(空)한 것이니, 
본송의 "원인의 인(因)이 공(空)하므로 결과가 없는 무과(無果)이고,
원인의 인(因) 가운데에는 원인 또한 없는 무인(無因)이니, 
결과가 공하므로 원인이 없는 무인(無因)이고,
결과 가운데에는 결과 또한 없는 무과(無果)이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모두 공하니, 지혜 있는 지자(智者)는 공과 상응하는 것이다.

[범본(梵本)에서는 한 게송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한 게송 반(半)으로 하였다.]" 에서

 

若此所說因果二種於中若因空果果亦空因。如是因亦空因,果亦空果。於此四際,當與相應。

여기에서 말한 원인과 결과 두 가지 중에서,

만약 그 속에 원인이 결과를 갖지 않는다면 결과 또한 원인을 가지지 않으니,

이와 같이, 원인은 원인을 갖지 않으며, 결과 또한 결과를 갖지 않는 것으로,

이러한 네 가지의 사제(四際)와 마땅히 상응해야 하는 것이다.

又此更有別分。‘世中四種分 因果合故有 煩惱業果合念欲爲六分。’

이것에 또 다른 구별이 있으니,

본송의 "세간 속의 네 가지 구별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화합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번뇌(煩惱), 업(業) 과보(果報)가 화합하면 여섯 부분이 되어야 한다"에서

 

世中四種分因、果合故有者,道中五種因及七種果和合故,摠略爲四種。次第有四種分。

‘세간 속의 네 가지 구별은 원인과 결과가 화합하기 때문에 있다’는 것은 

이치상으로 다섯 가지의 원인과 일곱 가지의 결과가 화합하기 때문에, 그 전체를 간략히 하여서 네 가지가 되는 것이니, 차례로 네 가지 구별이 있는 것이다.

 

於中無明、行過去時中。二法爲第一分。識、名色、六入、觸受現在時中。

爲第二分。渴愛、取、有,亦是現在時中。

爲第三分。生、老死未來時中。二法爲第四分此謂四種分也。

그 중에서 무명과 행은 과거의 법으로써 이 두 법이 제1분(第一分)이며,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는 현재의 법으로써 제2분(第二分)이며,

갈애ㆍ취ㆍ유 역시도 현재의 법으로써 제3분(第三分)이며,

생ㆍ노사는 미래의 법으로써, 이 두 법이 제4분(第四分)이니,

이 네 가지 구별을 사종분(四種分)이라 하는 것이다.

 

煩惱業果合,念欲爲六分者,煩惱業報三種和合。

以次第故,於二根本,有六種分於中無明所攝,乃至受以無明爲根渴愛所攝,乃至老死,以渴愛爲根。

‘번뇌ㆍ업ㆍ과보가 화합하면 여섯 부분이 되어야 한다’에서,

번뇌ㆍ업ㆍ과보의 세 가지가 화합한다면 그 순서 때문에 두 근본에서 여섯 가지의 부분이 있게 되는 것이니,

그 가운데에 무명을 포함한 수(受)까지는 무명을 근본으로 하고,

갈애(渴愛)를 포함한 노사(老死)까지는 갈애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無明根中無明,是煩惱分。行是業分。識、名色、六入、觸受是報分。

무명이 근본이 되는 무명근(無明根) 중에서 무명은 번뇌의 부분인 번뇌분(煩惱分)이고,

행은 업의 부분인 업분(業分)이며,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는 과보의 부분인 보분(報分)이며,

 

渴愛根中,渴愛、取是煩惱分。有是業分。生老死是報分。

갈애가 근본이 되는 갈애근(渴愛根) 중에서

갈애와 취는 번뇌의 부분인 번뇌분(煩惱分)이고,

유는 업의 부분인 업분(業分)이며,

생ㆍ노사는 과보 부분인 보분(報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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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緣生三十論本竟。緣生三十論,我當隨順次第解釋。

연생삼십론(緣生三十論)의 본송(本頌)을 마치고, 이제 연생삼십론에 대하여 차례로 해석하겠다.

 

 ‘從一生於三 從三轉生六 六二二更六從六亦生六'

'하나의 일(一)에서 셋의 삼(三)이 생기고, 셋의 삼(三)이 전전(展轉)하여서 여섯의 육(六)이 생기며, 

여섯의 육(六)에서 둘의 이(二)가 생기고, 둘의 이(二)에서 다시 여섯의 육(六)이 생긴다' 에서 

 

從一生於三者,一謂無智。此無智者,說名無明於苦集滅道中,不覺知故,名爲無智 由無智故,則有福非福不動,說名三行及身行口行心行等,從其轉生。

‘하나의 일(一)에서 셋의 삼(三)이 생긴다’는 것이란 ‘하나의 일(一)’이란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를 말하며,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는 무명(無明)이니, 이는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에 대하여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라 하는 것이며,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이기 때문에 유복(有福)ㆍ비복(非福)ㆍ부동(不動)의 삼행(三行)이 있게 되며,

또한 그것이 전전하여 몸으로 짓는 신행(身行), 입으로 짓는 구행(口行), 마음으로 짓는 심행(心行) 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從三轉生六者,從彼三行,生六識身。所謂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셋의 삼(三)이 전전(展轉)하여서 여섯의 육(六)이 생긴다’는 것은 이 삼행(三行)에서 육식신(六識身)이 생긴다는 것으로, 이를테면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인 것이며, 

 

六二者,彼六識身,轉生二種。所謂名色 

‘여섯의 육(六)에서 둘의 이(二)가 생긴다’는 것은 이 육식신(六識身)이 전전하여 두 가지를 생기게 한다는 것으로서, 소위 명(名)과 색(色)의 명색(名色)인 것이다.

 

二更六者,名色二種轉,生六入。所謂眼入、耳入、鼻入、舌入、身入、意入。

‘둘의 이(二)에서 다시 여섯의 육(六)이 생긴다’는 것은 명(名)과 색(色)의 두 가지가 전전하여 육입(六入)이 생기는 것을 말하나니,

이를테면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의입(意入)를 말하는 것이며,

 

從六亦生六者,從彼六入轉生六觸。所謂眼觸耳觸鼻觸舌觸身觸意觸。

여섯에서 또 여섯이 생긴다’는 것은 이 육입이 전전하여 육촉(六觸, 육촉신)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안촉(眼觸)ㆍ이촉(耳觸)ㆍ비촉(鼻觸)ㆍ설촉(舌觸)ㆍ신촉(身觸)ㆍ의촉(意觸)을 말하는 것이며,

 

從六有於三 此三復有三 三復生於四 四復生於三。

"여섯의 육(六)에서 셋의 삼(三)이 있고, 이 셋의 삼(三)에서 다시 셋의 삼(三)이 있으며, 
셋의 삼(三)에서 넷의 사(四)가 생기고, 넷의 사(四)에서 또 셋의 삼(三)이 생긴다"에서

 

從六有於三者,從彼六觸,轉生三受,所謂樂受苦受不苦不樂受,

여섯의 육(六)에서 셋의 삼(三)이 있다’는 것은 그 육촉(六觸, 육촉신)이 전전하여 삼수(三受)가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낙수(樂受)ㆍ고수(苦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인 것이며, 

 

此三復有三者,還從彼等三受,轉生三種渴愛。所謂欲渴愛、有渴愛、無有渴愛。

‘이 셋의 삼(三)에서 다시 셋의 삼(三)이 생긴다’는 것은 다시 이러한 세 가지의 삼수(三受)가 전전하여 세 가지의 갈애인 삼갈애(三渴愛)가 생기는 것으로, 욕갈애(欲渴愛)ㆍ유갈애(有渴愛)ㆍ무유갈애(無有渴愛)를 말하며, 

 

三復生於四者,從彼三種渴愛,轉生四取。所謂欲取、見取、戒苦行取、我語取。

‘셋의 삼(三)에서 넷의 사(四)가 생긴다’는 것은 이 세 가지의 삼갈애(三渴愛)가 전전하여 사취(四取)가 생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고행취(戒苦行取)ㆍ아어취(我語取)인 것이다.

 

四復生於三者,從彼四取,轉生三有。所謂欲有、色有無色有。

넷의 사(四)에서 또 셋의 삼(三)이 생긴다’는 것은 사취(四取)에서 전전하여 세 가지의 삼유(三有)가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 이를테면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이며, 

 

‘從三生於一 彼一復生七 於中所有苦牟尼說皆攝。’

"셋의 삼(三)에서 하나의 일(一)이 생기고,
저 하나의 일(一)에서 다시 일곱의 칠(七)이 생기나니,
그 가운데에 모든 고(苦)가 있다고 석가모니께서 설하여 다 거두셨다." 에서

 

從三生於一者,還以彼等,三有作緣,生當來一種生。

‘셋의 삼(三)에서 하나의 일(一)이 생긴다’는 것은 이러한 삼유(三有)를 반연하여서 앞으로 하나의 태어남의 생(生)이 있게 되는 것을 말하며, 

 

彼一復生七者,還從彼一,當有老死憂、悲苦、惱困等七種。

‘저 하나의 일(一)인 생(生)에서 다시 일곱의 칠(七)이 생긴다’는 것은 다시 이 한 가지에서 늙음(老)ㆍ죽음(死)ㆍ근심(憂)ㆍ슬픔(悲)ㆍ괴로움(苦)ㆍ고뇌(惱)ㆍ곤궁(困)의 일곱 가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於中所有苦,牟尼說皆攝者,於中無明爲始,困爲終。無量種苦,世尊略說皆此所攝。

‘그 가운데에 모든 괴로움이 있다고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여 거두셨다’는 것은 이 과정은 무명으로 시작되어서 고생의 곤(困)을 끝으로 한다는 것이니,

세존께서는 셀 수 없는 종류의 괴로움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고 간략하게 말씀하셨다.

 

‘十二種差別 善淨說爲空 緣生分力故 應知十二法’ 

‘열두 가지의 차별이 훌륭하고 청정한 공(空)으로'

연생분(緣生分, 연생지)의 힘 때문이니, 마땅히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十二種差別,善淨說爲空者,此無智等,各別不雜。有十二分。又彼皆自性空,應當正見, 如此所說,唯是空法,自生空法緣生分力故,

열두 가지의 차별은 훌륭하고 청정한 것으로 공(空)이라고 말한다’란

이러한 무지(無智) 등은 서로 달라서 섞이지 않는 것이라서 열두 가지의 차별이 있으며, 또 그것들 모두는 자성공(自性空)이라는 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말한 바와 같이 오직 이 공한 공법(空法)이 스스로의 자성(自生)이 공한 자성공법(自生空法)을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應知十二法者,若以次第,生分力故,彼十二法,如是應知

‘열두 가지 법을 알아야 한다’란 것은 차례로 연생분(緣生分, 연생지)의 힘에 의하기 때문이니, 이 열두 가지 법을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니,

 

彼中迷惑相者,是無明彼行句處積集當有相者是行。

저 미혹의 모습인 미혹상(迷惑相)은 무명(無明)이며,

저 행의 구처인 행구처(行句處)가 쌓여서 존재하는 모습이 행(行)이다.

 

*구처(句處)란 이치(理致)`의미(意味) 등의 뜻으로 쓰인 것임.

 

彼識句處,次受生分轉出相者是識。

저 식의 구처인 식구처(識句處)는 그 다음에 생명을 받아서 분리 전변으로 모습을 출현하는 것으로, 식(識)이며,

 

彼名色句處,名身、色身和合相者,是名色。

명색의 구처인 명색구처(名色句處)에서, 명신(名身)과 색신(色身)이 화합하는 것을 명색이라 하며,

 

彼六入句處相安置相者。是六入。彼觸句處。眼色識,共聚相者是觸。

육입의 구처인 육입구처(六入句處)는 상이 상을 안전하에 두는 상안치(相安置)하는 것을 육입이라 하며,

촉의 구처인 촉구처(觸句處)는 안(眼)ㆍ색(色)ㆍ식(識)이 다 함께 모이는 공취상(共聚相)을 촉(觸)이라 하며,

 

彼受句處,愛、不愛受用相者是受。彼渴愛句處無厭足相者,是渴愛。

수의 구처인 수구처(受句處)는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상을 받아들이는 수용상(受用相)을 수(受)라 하며,

갈애의 구처인 갈애구처(渴愛句處)는 만족할 줄 모르는 무염족상(無厭足相)을 갈애(渴愛)라 하며,

 

彼取句處,執持攝取相者是取。彼有句處,名身、色身相者是有。

취의 구처인 취구처(取句處)는 잡아 지녀서 섭취하는 집지섭취(執持攝取)하는 것을 취(取)라 하며,

유의 구처인 유구처(有句處)는 명신(名身)과 색신(色身)의 상(相)을 유(有)라 하며,

 

彼生句處。五衆出生相者是生。彼老句處成熟相者是老。彼死句處。命根斷者是死

태어남의 구처인 생구처(生句處)는 오온이 생겨나는 것을 생(生)이라 하며,

늙음의 구처인 노구처(老句處)는 무르익어서 성숙하는 것을 늙음의 노(老)라 하며,

죽음의 구처인 사구처(死句處)는 목숨의 명근(命根)이 끊어진 것을 죽음의 사(死)라 하는 것이다.

 

彼憂句處,高擧相者是憂, 彼悲句處哭聲者是悲

근심의 구처인 우수처(憂句處)는 마음이 높게 들뜬 상을 근심의 우(憂)라 하며,

슬픔의 구처인 비구처(悲句處)는 우는 소리의 곡성(哭聲)을 슬픔의 비(悲)라 하며,

 

彼苦句處,身燒熱相者是苦彼惱句處,心逼惱相者是惱。彼困句處,極疲乏相者是困,

괴로움의 구처인 고구처(苦句處)는 몸이 뜨겁게 타는 모습을 괴로움의 고(苦)라 하며,

고뇌의 구처인 뇌구처(惱句處)는 마음을 졸이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고뇌의 뇌(惱)라 하며,

곤궁의 구처인 곤구처(困句處)는 매우 피로하고 고생하는 모습을 곤궁이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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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연생삼십론(緣生三十論)의 본송(本頌)

 

從一生於三 從三轉生六 六二二更六 從六亦生六 

하나의 일(一, 무지 無知, 무)에서 셋의 삼(三)이 생기고,
셋의 삼(三, 삼행)이 전전(展轉)하여서 여섯의 육(六, 육식)이 생기며, 

여섯의 육(六)에서 둘의 이(二,  명名과 색色)가 생기고,

둘의 이(二, 명과 색)에서 다시 여섯의 육(六, 육입)이 생기며,

여섯의 육(六, 육입)에서 또 여섯의 육(六, 육처)이 생긴다.

 

從六有於三 此三復有三三 復生於四 四復生於三  

여섯의 육(六, 육촉)에서 셋의 삼(三, 삼수三受)이 있고,
이 셋의 삼(三, 삼수)에서 다시 셋의 삼(三, 삼갈애 三渴愛)이 있으며,
셋의 삼(三, 삼갈)에서 넷의 사(四, 사취 四取)가 생기고,
넷의 사(四, 사취)에서 또 셋의 삼(三, 삼유 三有)이 생긴다.

 

從三生 於一彼一復生七 於中所有苦 牟尼說皆攝

셋의 삼(三, 삼유)에서 하나의 일(一, 생 生)이 생기고,
저 하나의 일(一, )에서 다시 일곱의 칠(七, 노老 사死 우憂 비悲 고苦 고惱 困)이 생기나니,
그 가운데에 모든 고(苦)가 있다고 석가모니께서 설하여 다 거두셨다.

 

十二種差別 善淨說爲空 緣生分力故 應知十二法

열두 가지의 차별이 훌륭하고 청정한 공(空)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연생분(緣生分, 연생지)의 힘 때문이니, 마땅히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無智與業 識 名色根三和 知渴及以取 集出熟後邊,

무지(無智, 무명) 즉 업(業)의 식(識),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세 가지 삼화합(三和合, 촉觸)과
앎의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취(取)와
모임의 집(集, 유有), 나옴의 출(出, 생生), 성숙됨의 숙(熟, 노老), 그리고 그 끝의 후변(後邊, 사死)이니, 

 

初八九煩惱第二第十業 餘七皆是苦。 三攝十二法

첫 번째인 무지(無智, 무명)와 여덟 번째의 취(取)와 아홉 번째의 집(集, 유有)은 번뇌이고, 
두 번째의 식(識)과 와 열 번째의 출(出, 생生)은 업(業)이며,
나머지 일곱의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삼화합(三和合, 촉觸),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숙(熟, 노老), 후변(後邊, 사死)은 모두 고(苦)이니,
이 번뇌, 업(業), 고(苦)의 셋의 분류에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이 포함되는 것이다.

 

初二是過去 後二未來時 餘八是現在 此謂三時法 

처음의 둘인 무지(無智, 무명)와 식(識)은 과거이고,
뒤의 둘인 숙(熟, 노老)과 후변(後邊, 사死)은 미래이고,
나머지 여덟은 현재이니, 이것을 삼시법(三時法)이라 한다.

惱起業感報 報還生煩惱 煩惱復生業 亦由業有報 

번뇌가 일어나면 업(業)이 감응하여 그 보(報, 과보)가 일어나며,
보(報, 과보)는 다시 번뇌가 생기게 하며, 번뇌는 다시 업(業)이 생기게 하고,

업(業)으로 인하여 다시 과보가 있게 되는 것이다.

 

離惱何有業 業壞亦無報 無報則離惱。 此三各自滅 五分因生果 名爲煩惱業, 七分以爲果 七種苦應念

번뇌를 여의면 어찌 업이 있겠는가!
업(業)이 무너지면 과보 또한 없는 무보(無報)이며, 
과보가 없는 무보(無報)이면 곧 번뇌를 여의는 것이니,
번뇌 업 과보, 이러한 셋이 각각 저절로 자멸(自滅)하나니,

이러한 다섯 가지의 직접적인 원인의 오분인(五分因)이 결과(果)를 생하게 하는 것이니,
이를 번뇌업(煩惱業)이라 하며, 
일곱 가지는 결과이니, 일곱 가지의 괴로움인 칠종고(七種苦)를 마땅히 생각(念)하여야 하는 것이다.

 

오분인(五分因)= 첫 번째인 무지(無智, 무명)와 여덟 번째의 취(取)와 아홉 번째의 집(集, 유有)은 번뇌와  
두 번째의 식(識)과 와 열 번째의 출(出, 생生)은 업(業), 즉 번뇌업(煩惱業),

 

고(苦)=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삼화합(三和合, 촉觸),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숙(熟, 노老), 후변(後邊, 사死)
 

因中空無果 因中亦無因 果中空無因 果中亦無果 因果二俱空 智者與相應 [梵本一偈今爲一偈半]

원인의 인(因)이 공(空)하므로 결과가 없는 무과(無果)이고,

원인의 인(因) 가운데에는 원인 또한 없는 무인(無因)이니, 

결과가 공하므로 원인이 없는 무인(無因)이고,

결과 가운데에는 결과 또한 없는 무과(無果)이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모두 공하니, 지혜 있는 지자(智者)는 공과 상응하는 것이다.

[범본(梵本)에서는 한 게송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한 게송 반(半)으로 하였다].

 

世中四種分 因果合故有 煩惱業果合 念欲爲六分

세간 속의 네 가지 구별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의 화합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번뇌(煩惱), 업(業) 과보(果報)가 화합하면 여섯 부분이 되어야 하며, 

 

有節所攝故 二節及三略因果雜爲節 三四節摠略

유(有)의 마디인 유절(有節)이 포함되기 때문에
두 개의 마디인 이절(二節)과 세 가지 요약인 삼약(三略)이 있으며,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섞여서 마디(節)를 이루므로
세 개의 마디와 네 개의 전체적인 요약의 총략(摠略)이 있는 것이다.

 

二二 三三 二 苦時有五法 作者胎境界 發轉生流行

둘(무명과 행)과 둘(식과 명생)과

셋(육입ㆍ촉ㆍ수)과 셋(갈애ㆍ취ㆍ유)과 둘(생ㆍ노사)로써, 괴로울 때에는 다섯 가지 오법(五法)이 있으니, 

짓는 작자(作者)와 모태의 태세(胎歲)와 경계(境界), 전생이 시작되는 발전생(發轉生)과 흘러감의 유행(流行)인 것이다.

 

迷惑發起果 報流果 爲二 相應根分中一一三二分

미혹과(迷惑果)와 발기과(發起果)와 보과(報果)와 진류과(津流果)의 둘은
상응하는 근(根) 중에서 하나ㆍ하나ㆍ셋ㆍ둘이며, 

 

熱惱貧乏果 轉出津流果相應他分中 二一一一法 此有十二種等力緣自生 無衆生無命 無動

열뇌과(熱惱果)ㆍ빈핍과(貧乏果)와 전출과(轉出果)ㆍ진류과(津流果)는 남은 부분의 둘ㆍ하나ㆍ하나ㆍ하나의 법과 상응하며, 

이 열두 가지는 똑같은 힘의 반연으로써 스스로 생겨나는 자생(自生)인 것이니,
중생도 없는 무중생이고, 수명도 없는 무명(無命)이고, 움직여 짓는 동작자(動作者)도 없음을 지혜로 알아야 하며
,

 

以慧知無我無我所 無我無我因 四種無智空餘分亦如是

무아(無我)이고, 나의 것도 없는 무아소(無我所)이며,
무아(無我)이라서, 나라는 원인도 없는 무아인(無我因)이라는 것을 지혜로서 알아야 하나니, 

이러한 네 가지는 무지공(無智空)이니, 그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斷常二邊離 此卽是中道若覺已成就 覺體是諸佛 覺已於衆中仙聖說無我 曾於城喩經 導師說此義

단멸(斷滅)과 상주(常住)의 두 극단인 이변(二邊)을 여읜다면,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이니
만약 이를 깨달아 성취한다면, 그 깨달음의 주체인 각체(覺體)가 바로 모든 부처이라.
선성(仙聖, 부처님)은 다 깨달은신 뒤에 대중들에게 무아(無我)를 설하셨으니,
일찍이 '성유경(城喩經)'에서 큰 스승이신 도사(導師)께서 이러한 뜻을 설하셨다.

 

迦栴延經說 正見及空見 破邏具膩經 [張宿名] 也亦說殊勝空 緣生若正知

'가전연경(迦栴延經)'에서는 정견(正見)과 공견(空見)을 설하시고,
파라구이경(破邏具膩經)' [장수(張宿)의 이름이다]에서도수승한 수승공(殊勝空)에 대해 설하셨다.

 

彼知空相應緣生若不知 亦不知彼空 於空若起慢。則不厭受衆 若有彼無見 則迷緣生義

만약 반연하여 생기는 연생(緣生)에 대하여 바로 안다면, 이러한 앎이 공(空)과 상응하는 것며,
만약 반연하여 생기는 연생(緣生)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공(空)도 알지 못하며, 

만약 공에 대하여 아만(慢)을 일으키면, 온(蘊, 오취온 五取蘊)을 싫어하지 않게 되며,

만약 그것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 이는 곧 연생의 의미를 미혹하게 되는 것이다.

 

오취온(五取蘊)= 신체의 색온(色蘊)과 정신 현상의 느낌의 수온(受蘊), 통각의 상온(想蘊), 성향들의 행온(行蘊), 지각의 식온(識蘊)

 

緣生不迷故 離慢彼知空 及厭受衆故不迷業果合 業作緣續生 亦非不緣此空緣當有此 業報受用具 

연생에 미혹되지 않는다면, 아만의 만(慢)을 없이하여서 공(空)을 알게 되며,

또한 온(蘊, 오취온 五取蘊)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긴 까닭에 업과 과보의 화합인 업과합(業果合)에 미혹되 않는 것이다.

업이 반연을 지어서 계속 생겨나나니,

또한 공(空)에 반연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며, 
공을 반연하여 마땅히 업보의 수용(受用)이 있는 것이니, 업보의 수용(受用)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十二分差別 前已說緣生 彼煩惱業苦 三中如法攝 三中生於二 二中生於七 七中復生 三有輪如是轉

열두 가지의 십이지(十二支) 차별을 앞에서 이미 연생(緣生)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번뇌와 업(業)과 고(苦)의 셋 가운데에서 법대로 포섭되나니,

세 가지에서 둘이 생기고, 둘에서 일곱이 생기고,

일곱에서 다시 셋이 생기니, 이와 같이 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因果諸生世 無別有衆生 唯是於空法 還自生空法。

인과(因果)로 인하여 생긴 모든 세간에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오직 공한 공법(空法)에서 다시 돌아와서 저절로 공한 공법(空法)이 생겨나는 것이다.

 

藉緣生煩惱藉緣亦生業 藉緣亦生報 無一不有緣 藉 깔개 자, 도울 적, 

연(緣)에 자리하여 (의지하여) 번뇌가 생기고, (緣)에 자리하여 업도 생기며
(緣)에 자리하여 과보 또한 생기는 것이니, 어느 것 하나도 연(緣) 없이 생기는 것이 없는 것이니,

誦燈印鏡音 日光種子酢 衆續 不超到智應觀彼二。

외울 송(誦)ㆍ등불 등(燈)ㆍ도장 인(印)ㆍ거울 경(鏡)ㆍ소리 음(音)과

햇빛의 일광(日光)ㆍ씨앗의 종자(種子)ㆍ식초 추(酢)와 오온(五蘊)은 이어지는 것으로,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니니,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원인(因)과 결과(果)라는 두 가지의 조건인 연(緣)을 잘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연생삼십론(緣生三十論)의 본송(本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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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경(緣起經) 一卷

() 사문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한역 

11.  생(生, jāti, Birth or Rebirth) 

 

有緣生者,云何爲生?

() (生, jāti, Birth or Rebirth) 간접적인 원인의 () 되는 유연생(有緣生)이니,  무엇이 ()인가?

 

謂彼彼有情,於彼彼有情類,諸生等生趣,

()이란 각각의 중생, 즉 유정(有情)들이  중생의 무리인 육취(六趣) 가운데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따라 태어나는 것이며

 

起出現薀,得界、得處、得諸薀,生起、命根出現,是名爲生。

태어나서는 온(蘊)을 일으켜, 오온의 몸을 나타내는, 현온(現薀)하여서,

일체의 계(界, 18계)를 득하고, 처(處, 십이처)를 득하고, 모든 온(蘊)을 득하여서,

명근(命根), 즉 생명이 생기고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를 생(生)이라 한다. 

 

일체의 존재를 인식하는 육근(六根)과 인식하는 대상의 육경(六境)과 식(識)이 작용하는  육식(六識)의 18계(界)와
안처(眼處),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의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색처(色處), 성처(聲處), 향처(處), 미처(處), 촉처(觸處), 법처(法處)의 육외입처(六外入處)의 십이처(十二處)와
5온(蘊)을 갖추어서 태어나는, 즉 생명이 생겨서, 전생(前生)에 쌓은 원인에 따라 일정한 수명을 부여받는 명근(命根)이 출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를 생(生)이라 한다.

 

"Whatever birth, taking birth, descent, coming-to-be, coming-forth, appearance of aggregates, & acquisition of (sense) media of the various beings in this or that group of beings, that is called birth."

And adds two more items: acquiring dhatus, and acquiring the life-faculty.

This is interpreted in many different ways by different sources and authors.

 

●온(蘊, स्कन्ध skandha, aggregate, mass, heap);

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온(蘊) 즉 고타마 붓다가 설한 5온의 온(蘊)은 화합 · 적취의 뜻이다.

현대의 불교용어 사전들을 포함한 불교 일반에서 대체로 온(蘊)을 화합 · 적취 · 집합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에서의 3 가지 주장은;

*화합(和合) · 적취(積聚)란 유위법들의 모여서 이룬 집합체를 뜻하며,

*어깨 견(肩), 즉 '결과라는 무거운 물건'이 적취된 곳을 뜻하며, 온의 원어 스칸다(skandha)의 다른 번역어인 음(陰)의 뜻과 관련하며, 
*부분(部分) 또는 나뉘어 질 수 있는 분단(分段)으로 보았다.

모니어 모니어윌리엄스(Monier Monier-Williams)의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에 따르면, 산스크리트어 스칸다(skandha)에는 이들 세 가지 뜻 외에도 다른 여러 뜻들이 있는데, 이 사전의 "skandha" 항목에서 제일 처음에 나오는 대표적인 뜻은 어깨(shoulder, 肩)이며, 불교에서 구성요소(constituent element)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미륵의 《변중변론송》의 주석서인, 세친의 《변중변론》에 따르면 온(蘊)은 하나가 아닌, 비일(非一) · 묶어서 하나로 하여서 총략(總略) · 나눌 수 있는 분단(分段)의 3가지 뜻이 있다.

세친은 《변중변론》에서 이들 3가지 뜻이 모두 '적취의 뜻인 취의(聚義)' 즉 '다수의 유위법 집합이라는 뜻'의 세분화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원어 스칸다(skandha)를 음역하여 색건타(塞建陀) 또는 새건다(塞建陀)라고 하며, 구역(舊譯)에서는 음(陰) 또는 중(衆, 眾)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두 낱말은 모두 온(蘊)에 비해 원어의 함축된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번역어라는 평가가 있으나, 원어 스칸다(skandha)를 '온(蘊)'으로 번역하지만 그 뜻은 음(陰)이라는 번역어에 담긴 뜻으로 해석하는 경전과 논서도 드물지 않게 존재한다.  

 

●잡아합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생(生)은 각각의 중생(衆生)이 각각의 몸의 종류로 한 번의 생을 넘어 화합하여 태어나서는, 음(陰)을 득하고, 계(界)를 득하고, 입처(入處)를 득하고, 명근(命根)을 득하는 것을 말한다.

각각의 중생인 피피중생(彼彼衆生)은 유정(有情)의 구역(舊譯)으로,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유의 세계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소의신(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 개개의 유정을 말하며, 


각각의 몸의 종류인 피피신종류(彼彼身種類)는 중동분(衆同分) 즉 유정의 동류상사성(同類相似性)을 말하며, 


한 번의 생을 넘어 화합하여 태어나는 일생초월 화합출생(一生超越 和合出生)은 5온의 화합이 한 번의 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상속(相續)되고 유전(流轉)하는 것을 말하며, 


음(陰)을 득하는 득음(得陰)은 5온이 갖추어지는 것을 말하며, 


계(界)를 득하는 득계(得界)는 18계가 갖추어지는 것을 말하며, 


입처(入處)를 득하는 득입처(得入處)는 12처가 갖추어지는 것을 말하며, 


명근(命根)을 득하는 득명근(得命根)은 생에서 생으로 윤회하는, 즉 5온이 생에서 생으로 상속되고 유전할 때 전생(前生)에 쌓은 원인에 따라 일정한 수명을 부여받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또한 그 수명 동안 살아가는 것 즉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란, 그 생애 동안 무명(無明)에서 유(有) 즉 5취온으로 이어지는 유전연기를 행하거나 무명(無明)을 단멸시키고 나아가 유(有) 즉 5취온을 5무루온으로 변형시키는 환멸연기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유연생(有緣生) 또는 연유생(緣有生), 즉 유(有)가 있으므로 생(生)이 있다는 것은 욕유 · 색유 · 무색유의 3유 가운데 어느 하나의 존재, 즉 5취온의 상태가 있으므로, 즉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가 있으므로 태어남이 생겨난다는 것 즉 다른 일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5취온은 죽음으로 그냥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상속되고 유전된다는 것을 뜻한다.

유연생(有緣生) 또는 연유생(緣有生)은 또한 이미 발생한 생이 있다면, 즉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하여 받은 삶이 있다면, 즉 자신이 3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유(有)가 존재한다는 것, 즉 5취온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순대고취(純大苦聚)의 상태의 즉 5취온의 상태의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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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경(緣起經) 一卷

() 사문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한역 

10.  유(有, bhava, becoming)

 

取緣有者,云何爲有?

() (有, bhava, becoming) 간접적인 원인의 () 되는 취연유(取緣有)이니,  무엇이 (有, bhava, becoming)인가?

 

有有三種,謂欲有、色有、無色有,是名爲有。

()  가지가 있어서, 욕유(欲有, Sensual becoming)ㆍ색유(色有, Form becoming)ㆍ무색유(無色有, Formless becoming)의 (3유 三有) 말하는 것이니,

이를 (有, bhava, becoming) 하는 것이다.

 

"These three are becoming: sensual becoming, form becoming, formless becoming." 
A Glossary of Pali and Buddhist Terms: "Becoming. States of being that develop first in the mind and can then be experienced as internal worlds and/or as worlds on an external level." - There are various interpretations of what this term means.

 

*욕유(欲有, Sensual becoming)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삼유의 하나로, 유(有)는 존재 또는 그 존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뜻하며, 세계라는 뜻에서는 욕유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에서의 욕계(欲界)와 동의어이다.

존재라는 뜻에서의 욕유는 욕계에 윤회할 수 밖에 없는 상태 또는 경지의 유정을 말하며, 탐욕의 존재라고도 한다.

 

*색유(色有, Form becoming)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 가운데 하나로, 유(有)는 존재 또는 그 존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뜻한다. 세계라는 뜻에서는 욕유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 가운데 색계(色界)와 동의어이며, 존재라는 뜻에서는 색유는 색계에 윤회할 수 밖에 없는 상태 또는 경지의 유정을 말하며, 색유(色有)를 번역하여 빛깔의 존재라고도 한다

 

*무색유(無色有, Formless becoming)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 가운데 하나로, 유(有)는 존재 또는 그 존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뜻한다. 세계라는 뜻에서는 무색유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 가운데 무색계(無色界)와 동의어이며, 존재라는 뜻에서는 무색계는 무색계에 윤회할 수 밖에 없는 상태 또는 경지의 유정을 말하며, 이 경우 무색유(無色有)를 번역하여 빛깔이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3유(三有)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를 말하며,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와 동의어이다.
불교의 우주론 또는 세계관에서 3유 또는 3계는 28천(二十八天)으로 나뉘지만, 수행론과 번뇌론에서는 흔히 9지(九地)로 나누어서, 통칭하여 3계9지(三界九地)라고 한다.

3계9지(三界九地);

3계9지(三界九地)에서 9지(九地)는 욕계 전체를 통틀어 1가지 장소라는 지(地)와,

색계의 초선(初禪) · 2선(二禪) · 3선(三禪) · 4선(四禪)의 4가지 장소라는 지(地)와,

무색계의 공무변처(空無邊處) · 식무변처(識無邊處) · 무소유처(無所有處) ·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4가지 장소하는 지(地)를 합한 총 9가지 장소의 구지(九地)를 말한다.

 

1. 욕계(欲界) 또는 욕유(欲有);

  ①오취잡거지(五趣雜居地), 지옥 · 아귀 · 축생 · 인간 · 천상의 5취(五趣)를 합하여 1지(地)로 한 것으로 미혹한 생존의 상태
2. 색계(色界) 또는 색유(色有);

②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을 말하며, 욕계를 떠남으로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을 느끼는 경지 또는 마음 상태이며, 색계의 4선(四禪) 가운데 첫 번째인 초선(初禪)에 해당한다.

 

③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 색계의 2선천(二禪天)으로, 선정으로부터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을을 느끼는 경지 또는 마음 상태이며, 제2선천(第二禪天)이라고도 하며, 색계의 4선(四禪) 가운데 두 번째인 2선(二禪)에 해당한다. 

 

④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색계의 3선천(三禪天)을 말하며, 2선천(二禪天)의 기쁨(喜)을 떠나는 경지로 마음이 안정되어 묘한 즐거움의 묘락(妙樂)을 느끼는 경지 또는 마음 상태이며, 제3선천(第三禪天)이라고도 하며, 색계의 4선(四禪) 가운데 세 번째인 3선(三禪), 제3선(第三禪)에 해당한다. 

 

⑤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색계의 4선천(四禪天)을 말하며, 3선천(三禪天)의 묘한 즐거움을 떠나는 경지로, 마음이 평온하여 생각이 청정(淸淨)하고 평등한 경지, 즉 마음이 사수(捨受)의 생각에 안주하는 경지 또는 마음 상태이며, 제4선천(第四禪天)이라고도 하며, 색계의 4선(四禪) 가운데 네 번째인 4선(四禪), 제4선(第四禪)이라고 한다. 


3. 무색계(無色界) 또는 무색유(無色有);

⑥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 무색계의 제1천을 말하며, '무한한 허공의 공무변(空無邊)'을 체득하는 경지 또는 마음 상태이다. 무색계 제1천(無色界 第一天)이라고 하며, 4무색정(四無色定) 가운데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에 해당한다.

 

⑦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 무색계의 제2천을 말하며, 제6지에서 획득한 '공무변(空無邊)'을 버리고 마음(識)을 무한히 확장하는 관상(觀想)으로 선정을 닦아 '마음의 무한한 확장의 식무변(識無邊)'을 체득하는 경지 또는 마음 상태이며, 무색계 제2천(無色界 第二天)이라고 하며, 4무색정(四無色定) 가운데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에 해당한다.


 ⑧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무색계의 제3천을 말하며, 식무변처지에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의 작용이 무한하다는 식상(識想)을 버리고, 심무소유(心無所有: 마음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 마음이 그 어디에도 소속 또는 소유되지 않음), 즉 마음(識)의 비존재를 관(觀)하는 선정을 닦아 심무소유(心無所有)를 체득하는 경지 또는 마음 상태이며, 무색계 제3천(無色界 第三天)이라하며, 4무색정(四無色定) 가운데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에 해당한다.

 

⑨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 무색계의 제4천을 말하며, 유상(有想)을 버리는 비상(非想)의 선정과 무상(無想)을 버리는 비비상(非非想)의 선정을 함께 닦아 비상(非想)과 비비상(非非想)을 함께 체득하는 경지 또는 마음 상태이며, 무색계 제4천(無色界 第四天)이라하며, 4무색정(四無色定) 가운데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해당한다.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욕계 · 색계의 거친 생각은 없지만 아주 미세한 생각은 없지 않다. 그래서 생각이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생각이 없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세한 생각이라는 의미의 "비상-비비상"이다. 이 상태를 넘어가면 곧 "상수멸진정"이 되며, 상수멸진정은 붓다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이다. 

 

●잡아합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유(有)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를 말한다.

3유(三有)는 세계라는 측면에서는 3계(三界)를 뜻하고, 

유정이라는 존재의 측면에서는 욕계의 유정 · 색계의 유정 · 무색계의 유정을 뜻한다. 

유정이란 명색의 화합체 즉 5온의 화합체를 말하는 것으로, 유전연기의 관점에서는 취(取) 즉 온갖 번뇌에 물들어 있는 5온, 즉 5취온을 말한다. 따라서, 유전연기의 관점에서는 유(有)는 5취온을 말하며, 달리 말하면, 번뇌로 인하여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 즉 윤회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의 삶을 말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의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5온으로 하여금 5취온이 되게 하는 근본 요인은 욕탐(欲貪)이다. 

고타마 붓다는 "5온이 곧 취(取: 구역에서는 受)인 것은 아니나 또한 5온이 취(取)와 다른 것도 아니다. 5온에 욕탐(欲貪)이 있으면 5온이 곧 5취온이 된다"고 설하고 있다.

취연유(取緣有) 또는 연취유(緣取有), 즉 취(取)가 있으므로 유(有)가 있다는 것은 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의 4취(四取) 즉 108번뇌에 물든 상태가 있기 때문에 5취온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갖가지 번뇌가 있기 때문에 욕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색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무색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취연유(取緣有) 또는 연취유(緣取有)는 또한 이미 발생한 유(有) 즉 욕유(欲有) · 색유(色有) 또는 무색유(無色有)로서의 존재가 있고 이러한 존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취(取)가 존재한다는 것, 즉 갖가지 번뇌에 물든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이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되었으며, 5취온의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유(有)는 현존재 또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애(愛)와 취(取)의 행위가 잠재의식화되는 것에 의해, 즉 자신의 성품 · 마음 · 습관 · 체질의 일부가 되는 것에 의해 현존재인 유(有)가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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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경(緣起經) 一卷

() 사문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한역 

 9. 취(取, upādāna, attachment)

 

愛緣取者,云何爲取?

(愛, upādāna, attachment) () 간접적인 원인의 () 되는 애연취(愛緣取)이니무엇이 (取, upādāna, attachment)인가?

 

謂四取:一者欲取,二者見取,三者戒禁取,四者我語取,是名爲取。

()에는  가지가 있으니,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 계취)ㆍ아어취(我語取, 아취) 말하는 것이니이를 (取, upādāna, attachment)라고 한다.

 

There are four main types: clinging to sensuality (kama), clinging to views (ditthi), clinging to ethics and vows (silabbata, "precept and practice"), and clinging to a self-view (attavada) or clinging to self."  

 

●'잡아합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취(取)는 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의 4취(四取)를 말한다. 여기에서 계취는 계금취(戒禁取)라고도 하며, 아취는 아어취(我語取)라고도 한다.

취(取)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가짐 또는 취함인데, 모니어 모니어윌리엄스(Monier Monier-Williams)의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에 따르면 취(取)의 산스크리트어 원어 우파다나(upādāna)의 일반적인 의미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취하는 행위(the act of taking for one's self),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전용(轉用)하여서 쓸 곳에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려서 쓰는 행위(appropriating to one's self),

받아들임(accepting), 허용함(allowing), 취함(taking), 획득함(acquiring) 등이 있으며,

'갈애 즉 탐욕이 원인이 되어 존재를 꽉 붙잡는 것 또는 집착하는 것으로 유(有) 즉 새로운 태어남들의 원인이 되는 것(grasping at or clinging to existence caused by tṛṣṇā, desire, and causing bhava, new births)'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 후자의 불교 용어로서의 정의는 애연취(愛緣取)와 취연유(取緣有)의 의미를 합쳐서 취(取, upādāna)를 정의한 것이다.

현대의 불교 사전들에 따르면, 취(取)의 일반적인 의미는

잡아서 가지거나, 잡아서 지니거나, 잡고 버티거나, 잡은 후 유지하는 집지(執持),

잡아서 가지거나, 잡아서 취하거나, 잡은 후 받아들이거나, 잡은 후 의지하는 집취(執取)인데,

좁은 뜻으로는 꽉 붙잡은 후 들러붙음,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집착(執著)이라는 번뇌를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모든 번뇌(煩惱)를 뜻한다.

즉, 후자의 넓은 뜻으로는 취(取)는 번뇌의 다른 말인데, 4취(四取)라고 할 때의 취(取)는 이 후자의 뜻이다.

그리고 어떤 번뇌를 취(取)라고 할 때, 마음이 해당 번뇌의 대상을 그릇되이 좋아하여는 악용(惡欲)하여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한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4취(四取, catvāry upādān āni)는 모든 번뇌를 취(取)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 네 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즉 대상을 그릇되이 좋아하여서 악용(惡欲)하여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한다는 면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번뇌를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대체로 견취(見取)는 그릇된 견해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계취(戒取) 또는 계금취(戒禁取)는 그릇된 계율과 그릇된 금지조항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욕취(欲取)는 욕계의 사물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아취(我取) 또는 아어취(我語取)는 색계 · 무색계의 사물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다.  
 
4취(四取)는 모든 번뇌, 정확히 말하면 108번뇌를 취(取)의 관점에서 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의 네 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욕취에 34번뇌, 견취에 30번뇌, 계취에 6번뇌, 아취 또는 아어취에 38번뇌가 있어서 총 108번뇌를 이룬다. 4취를 구역에서는 4수(四受)라고도 한다. 

① 욕취(欲取, kāmopādāna, clinging to sensuality, kama)는 욕계의 5욕(五欲)의 대상을 그릇되이 좋아하는 악욕(惡欲)하여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로, 달리 말하면, 욕계의 색 · 성 · 향 · 미 · 촉의 5경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다. 욕취에는 욕계의 6경 가운데 6번째인 법경(정신적 사물)에 대한 취(取)가 제외되는데, 이것은 4취 가운데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에 속한다.
욕취에 속한 번뇌들이란 욕계의 탐(貪) · 진(瞋)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 · 10전(十纏)을 말하며,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욕취에 속한 번뇌들 중 탐 · 진 · 만 · 무명 · 의는 근본번뇌에 속하고,

무참(無慙) · 무괴(無愧) · 질(嫉) · 간(慳) · 회(悔) · 면(眠) · 도거(掉擧) · 혼침(惛沈) · 분(忿) · 부(覆)의 10전은 수번뇌에 속한다.  

설일체유부의 번뇌론에서 모든 근본번뇌는 견고소단(見苦所斷) · 견집소단(見集所斷) · 견멸소단(見滅所斷) · 견도소단(見道所斷) · 수도소단(修道所斷)의 5부(五部)의 관점에서 나뉘는데, 각각의 근본번뇌마다 5부 모두가 있는 경우도 있고 특정한 몇 부(部)만 있는 경우도 있다. 

욕취에 속한 탐(貪) · 진(瞋)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 · 10전(十纏)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욕계의 탐 · 진 · 만 · 무명에는 모두 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총 20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의(疑)는 견소단의 번뇌이므로 수도소단을 제외한 4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4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10전은 수번뇌인데 비록 수번뇌에 대해서도 5부 분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108번뇌를 헤아릴 때는 수번뇌는 5부로 나누는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10가지의 번뇌가 되므로, 총 34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 34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4사(三十四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4번뇌가 욕취에 속한다.

② 견취(見取, drsty-upādāna, clinging to views, ditthi)는 삼계의 그릇된 견해를 그릇되이 좋아하는 악욕(惡欲)하여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번뇌로서의 견(見) 즉 염오견, 즉 그릇된 견해를 이루는 5견(五見) 가운데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견(見取見)의 4견을 말하며, 욕계의 4견, 색계의 4견, 무색계의 4견을 통칭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4견을 포함한 5견(五見)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하며, 
견취에 속한 3계의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견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총 30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이들 30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0사(三十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0번뇌가 견취에 속한다.

구체적으로, 유신견(有身見)은 현행의 결과, 즉 4성제 가운데 고(苦), 즉 5취온에 대해 미혹하여 생겨난 견해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오직 견고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유신견이 있으므로 유신견으로는 총 3가지의 번뇌가 있으며, 
변집견(邊執見)도 또한 5취온이라는 현행의 결과에 대해 영원한 것 혹은 영원히 소멸되는 것으로 주장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오직 견고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변집견이 있으므로 변집견으로는 총 3가지의 번뇌가 있으며, 
사견(邪見)은 인과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곧 4성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고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의 4부가 존재한다. 따라서 3계 각각에 사견이 있으므로 사견으로는 총 12가지의 번뇌가 있으며, 
견취견(見取見)은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등의 저열한 견해를 진리라고 주장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견고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의 4부가 존재한다. 따라서 3계 각각에 견취견이 있으므로 견취견으로는 총 12가지의 번뇌가 있다.

이상으로 유신견에 3가지, 변집견에 3가지, 사견에 12가지, 견취견에 12가지의 번뇌가 있어서 견취는 총 30가지의 번뇌로 이루어져 있다.

③계취(戒取) 또는 계금취(戒禁取, śīla-vratopādāna, clinging to ethics and vows, silabbata, "precept and practice")는 3계의 그릇된 계율이나 그릇된 금지조항을 그릇되이 좋아하여 악욕(惡欲)하여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번뇌로서의 견(見) 즉 염오견 즉 그릇된 견해를 이루는 5견(五見) 가운데에서의 계금취견(戒禁取見)을 말하는, 즉 욕계의 계금취견, 색계의 계금취견, 무색계의 계금취견을 통칭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계금취견을 포함한 5견(五見)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계금취에 속한 3계의 계금취견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총 6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이들 6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6사(六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6번뇌가 계금취에 속한다.

계금취견(戒禁取見)은 한편으로는 자재천 등이 5온과 세계의 참된 원인이 아님에도 그것을 참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현행의 결과, 즉 4성제 가운데 고(苦), 즉 5취온에 대한 바른 관찰, 즉 고제현관(苦諦現觀)이 있을 때 바로 끊어지는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다.

한편으로는 계금취견은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고행이 참된 길이 아닌데 그것을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참된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견도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계금취견이 있으므로 계금취견으로는 총 6가지의 번뇌가 있다.

④아취(我取) 또는 아어취(我語取, ātma-vādopādāna, clinging to a self-view (attavada) or clinging to self)에서

아취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나를 취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집착'을 뜻한다.

아어취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나에 대한 말을 취하는 것'으로 '(계속하여) 나에 대해 말하는 집착'을 뜻한다.

아취 또는 아어취는 색계 · 무색계의 사물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로, 달리 말하면, 색계 · 무색계의 소의신의 뛰어난 상태를 '나'라고 여겨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색계 · 무색계의 소의신의 뛰어난 상태를 그릇되이 좋아하여 악욕(惡欲)하여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통칭한다.

구체적으로는, 색계와 무색계의 탐(貪)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를 말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이들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욕취의 경우와는 달리 아취 또는 아어취에는 진(瞋)이 포함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진(瞋)은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이기 때문이다.

아취 또는 아어취에 속한 색계와 무색계의 탐(貪)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를 5부에 따라 나누면, 색계와 무색계의 탐 · 만 · 무명에는 모두 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색계에 15가지 번뇌가 있고 무색계에 15가지의 번뇌가 있어 총 30가지의 번뇌가 있다.

의는 오직 견소단의 번뇌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수도소단이 제외되므로 색계에 4가지가 있고 무색계에 4가지가 있어서 총 8가지의 번뇌가 있다.

따라서, 아취 또는 아어취에는 총 38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 38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8사(三十八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8번뇌가 아취 또는 아어취에 속한다. 


애연취(愛緣取) 또는 연애취(緣愛取), 즉 애(愛)가 있으므로 취(取)가 있다는 것은 번뇌 또는 불선인 애(愛)가 있기 때문에 108번뇌, 즉 근본번뇌와 수번뇌를 합한 온갖 번뇌 또는 불선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인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가 원인이 되어서 그러한 들러붙음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또한 더욱 고착화되는 것을 말한다.

애연취(愛緣取) 또는 연애취(緣愛取)는 또한 이미 발생한 취(取) 즉 3계의 갖가지 번뇌가 있고 3계의 사물에 아주 확고히 들러붙어 있어서 이들로부터 떠나는 것이 거의 기대도 되지 않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또는 무색애(無色愛)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취(取)는 집착(執着) 또는 번뇌(煩惱)를 의미하는데, 제8지분인 애(愛)를 연하여 일어나는, 대상에 대한 강한 취사선택(取捨選擇)의 행동이다.

다른 학자에 따르면, 취(取)는 번뇌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아집(我執) 즉 번뇌장(煩惱障)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아집(我執)은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는 견해로,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뜻에서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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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경(緣起經) 一卷

() 사문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한역 

8.  애(愛)

 

受緣愛者,云何爲愛?

() () 간접적인 원인의 () 되는 수연애(受緣愛)이니, 무엇이 ()인가?

 

愛有三種,謂欲愛、色愛、無色愛,是名爲愛。

()에는  가지가 있으니,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 말하는 것이니이를 ()라고 한다.

 

욕애(欲愛): 욕계의 애, 욕계의 법 즉 욕계의 사물을 애착한 결과 집착하여서 욕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색애(色愛): 색계의 애, 색계의 법 즉 색계의 사물을 애착한 결과 집착하여서 색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무색애(無色愛): 무색계의 애, 무색계의 법 즉 무색계의 사물을 애착한 결과 집착하여서 무색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These six are classes of craving: craving for forms, craving for sounds, craving for smells, craving for tastes, craving for tactile sensations, craving for ideas. This is called craving."

These six classes of craving also appear in SA 276. (The Fundamental Teachings of Early Buddhism: A Comparative Study Based on the Sutranga Portion of the Pali Samyutta-Nikaya and the Chinese Samyuktagama) 

It contains three different types of craving: craving for sensuality, craving for form, craving for formlessness.

Three other types of craving: craving for sensuality (kama), craving for existence (bhava), craving for non-existence (vibhava).  

 

애(愛), 즉 탐(貪)은 무명을 바탕하여 구하고 원하는 갈애(渴愛, trsnā) ·

무명을 바탕으로 하는 집착하는 망집(妄執) · 맛들여서 집착하는 미착(味著) · 탐욕의 욕(欲) ·

갈애 또는 애착의 애(愛) · 애욕(愛欲) · 애착(愛著, 愛着) · 애탐(愛貪) · 그릇되게 좋아하는 염애(染愛) ·

그릇되게 집착하는 염착(染著) · 집착(執著, 執着) · 탐독(貪毒) · 탐애(貪愛) · 탐욕(貪欲) ·

오욕에 집착하는 탐욕개(貪欲蓋) · 탐착(貪著, 貪着) · 그릇된 몰입과 집착의 탐착(耽著, 탐耽은 깊이 빠져서 열중하여 즐기는 것, 착著은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잡아합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애(愛)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를 말한다.

애(愛)는 애착(愛著) · 탐(貪) 또는 집착(執著)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대상에 대하여 그릇되게 좋아하여서 바라는 욕(欲)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그 대상에 들러붙러 떠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애(愛)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에는 사랑이라는 뜻이 있으나, 12연기설에서 말하는 애(愛)는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사랑은 불교의 자비(慈悲)에 해당하며, 불교에서도 애(愛)를 사랑 또는 자비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부파불교의 5위 75법과 대승불교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 따르면 12연기설의 애(愛) 즉 탐(貪)은 그 성질이 불선(不善)인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번뇌이다.

이에 비해 자비의 자(慈)는 무진(無瞋)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이고,

비(悲)는 불해(不害)의 마음작용의 성질로서, 자(慈)와 비(悲)는 본질적으로 선(善)이다.

불교에서는 탐(貪)으로서의 애(愛: 갈애, 애착, 집착)는 증(憎: 증오, 미워함)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즉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애(愛: 갈애, 애착, 집착)가 증(憎: 증오, 미워함)을 낳기도 하며 반대로 증(憎: 증오, 미워함)이 애(愛: 갈애, 애착, 집착)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자비 또는 사랑으로서의 애(愛)에는 이러한 면이 없다.

12연기설의 12지 가운데 제1지분인 무명(無明)과 제8지분인 애(愛)와 제9지분인 취(取)는 선 · 불선 · 무기의 3성에 따라 살펴보면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 또는 번뇌이다.

이에 비하여 나머지 지분들은 그 성질이 무기이기 때문에 나머지 지분들은 선이 될 수도 있고 불선이 될 수도 있는, 즉 바른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그릇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즉 청정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오염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특히 12연기의 유전연기, 혹은 연기의 순관(緣起의 順觀) 혹은 순연기(順緣起)는 이들 지분들이 그릇된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며,

반면 12연기의 환멸연기, 혹은 연기의 역관(緣起의 逆觀) 혹은 역연기(逆緣起)는 이들 지분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무명(無明) · 애(愛) · 취(取)는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不善) 즉 악(惡)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다만 이들을 끊음으로써 더 이상 마음이 이들과 계합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환멸연기에서 이들 3가지 지분은 변형인 전의(轉依)의 대상이 아니라 단멸(斷滅) 즉 멀리 떠나는 원리(遠離)의 대상인 것다.

외적 대상인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의 5경(五境)은 그 자체로는 탐욕 · 집착 또는 갈애가 아니지만, 그 안에는 어떤 맛(味)이 들어있는데, 이 맛은 능히 수행자로 하여금 반드시 수(須)탐욕 · 수(須)집착 또는 수(須)갈애를 일으키게 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가짜 스승이 사람들을 끌어들여도 결국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오욕도 이와 같아서 항상 사람을 끌어들여서 온갖 마경(魔境)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5경이 지닌 맛에 의하여 불러일으켜지는 5욕은 꾸짖을 만한 것, 즉 항상 지켜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수연애(受緣愛) 또는 연수애(緣受愛), 즉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것은 수(受)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번뇌 또는 불선인 애(愛)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전도된 3수(三受)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수연애(受緣愛) 또는 연수애(緣受愛)는 또한 이미 발생한 애(愛) 즉 3계의 어떤 사물에 들러붙어서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의 각각을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수(受)의 그릇된 상태 즉 전도된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되어서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애(愛)는 갈애(渴愛)라 하며, 맹목적인 애념(愛念)을 말한다. 고락 등의 감수작용이 강하면 그만큼 애증(愛憎)의 염(念)도 강해지는, 즉 쾌락이 크면 그 쾌락을 가지려는 염이 강해지고, 고통이 크면 그 고통을 피하려는 염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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