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藉緣生煩惱 藉緣亦生業 藉緣亦生報無一不有緣。’
본송의 “연(緣)에 자리하여 (의지하여) 번뇌가 생기고, 연(緣)에 자리하여 업도 생기며
연(緣)에 자리하여 과보 또한 생기는 것이니, 어느 것 하나도 연(緣) 없이 생기는 것이 없다”에서,
若有煩惱。則有種種,無量種業。及種種業。所生果報。彼皆共因共緣。應當知之。無有一處無因緣者。
만약 번뇌가 있으면 곧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업이 있게 되며,
그 갖가지의 업에서 과보가 생기게 되나니,
그들은 모두 인(因)을 공유하고 연(緣)을 공유하고 있으니, 어디에도 인연 없이 생기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又爲明彼義今更說譬喩。‘誦燈印鏡音 日光種子酢 衆續不超到智應觀彼二。’如誦。
또 이러한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비유를 말하였으니,
외울 송(誦)ㆍ등불 등(燈)ㆍ도장 인(印)ㆍ거울 경(鏡)ㆍ소리 음(音)과
햇빛의 일광(日光)ㆍ씨앗의 종자(種子)ㆍ식초 초(酢)와 오온(五蘊)은 이어지는 것으로,
오온은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니니,
지혜로운 이는 이러한 원인(因)과 결과(果)라는 두 가지를 잘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有教誦者受誦者。所有教誦,不到受誦。何以故?教誦者,仍安住故。其教誦者,亦不相續。何以故?自不生故。如燈次第生。非是初燈。超到亦非第二。無因而生。
가령 외울 송(誦)에는 송을 가르치는 교송자(教誦者)와 송을 배우는 수송자(受誦者)가 있으니,
가르치는 송이 배우는 사람에게 이르는 것이 아니니, 왜냐하면 가르치는 송은 여전히 가르치는 교송자(教誦者)에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가르친 송이 상속하는 것도 아니니, 그 이유는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마치 등불이 차례로 생겨날 때 처음의 등불이 뛰어넘어 이르는 것도 아니고, 두 번째 등불이 원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如是印與像二種。面與鏡二種,音與響二種,日與火二種,種子與芽二種酢與舌涎二種,此等所有,皆不超到。亦非不生。亦非無因。而生彼二種。
五受衆相續到時,非是初受衆超到而第二受衆。亦非不生,亦非無因,而生智者,於此受衆,相續不超。而次第到。應當正觀。
이와 마찬가지로 도장 인(印)과 거울에 비친 형상의 상(像)의 두 가지와,
얼굴과 거울의 두 가지, 소리와 메아리의 두 가지, 햇빛과 불의 두 가지,
씨앗과 싹의 두 가지, 식초와 입 속의 침의 두 가지,
이러한 것들은 모두 뛰어넘어 이르는 것도 아니고,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며,
인(因) 없이 그 두 가지가 생기는 것도 아니며,
오수중이 상속하여 이를 때에 첫 번째의 오수중이 뛰어넘어 이르는 것도 아니고
두 번째의 오수중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며, 인(因)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지혜 있는 지자(智者)는 이 오수중의 상속이 순서를 뛰어넘지 않고 차례로 도달한다는 것을 응당 바르게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又外內受用俱有十種皆應當見。於中外十種者:一者非常故,二者非斷故,三者不超到故,四者無中閒故,五者非彼體故,六者非別異故,七者無作者故,八者非無因故,九者念念空故,十者同類果相繫故。
또 외수용(外受用)과 내수용(內受用)에 각각 열 가지가 있다는 것을 올바로 관찰하여야 하나니,
그 중, 외수용의 열 가지란, 첫째는 항상하지 않음의 비상(非常),
두 번째는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 아닌, 비단(非斷),
세 번째는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닌, 불초도(不超到),
네 번째는 중간이 없는 무중간(無中間),
다섯 번째는 앞의 몸이 아닌, 비피체(非彼體),
여섯 번째는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닌, 비별이(非別異),
일곱 번째는 짓는 자가 없는 무작자(無作者),
여덟 번째는 원인이 없지 않다는 비무인(非無因),
아홉 번째는 생각 생각이 공한, 염염공(念念空),
열 번째는 같은 종류의 결과가 함께 묶이는 동류과상계(同類果相繫)이니,
彼外所有種子滅無餘故。非常芽出生故,非斷種子滅無餘已其芽本無,今有生故 不超到。彼所相續,無有斷絕。因果相繫故,無中閒。種子、芽差別故,非彼體。從彼出生故非別異因緣和合故無作者種子爲因故非無因種子芽莖枝葉、花、果等,傳傳相生故,念念空。甜、酢、鹹苦辛澀隨因差別果轉出故同類果相繫於中。
저 외부의 모든 종자인 외종(外種)은 남김없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하는 것이 아닌 비상(非常)이고,
싹이 생겨서 나오기 때문에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닌 비단(非斷)이며,
종자가 소멸하여 다 없어졌을 때 그 싹은 본래 없었으나 지금 생긴 것이기 때문에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닌 불초도(不超到)이며,
저 상속하는 바가 단절됨이 없이 원인과 결과가 서로 묶여 있기 때문에 중간이 없는 무중간(無中間)이며,
종자와 싹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앞의 몸이 아닌 비피체(體)이며,
그것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닌, 비별이(非別異)이며,
인연이 화합한 것이기 때문에 짓는 자가 없는 무작자(無作者)이며,
종자가 원인이기 때문에 원인이 없지도 않은 비무인(非無因)이며,
종자ㆍ싹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 등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 생겨나기 때문에 생각 생각이 공한, 염염공(念念空)이며,
달고 시고 짜고 쓰고 맵고 떫은 것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겨나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결과가 함께 묶이는 동류과상계(同類果相繫)인 것이다.
內十種者,一者死邊受衆,滅無餘故,非常。二者得次生分受衆故,非斷。三者死邊受衆滅。無餘已,次生分受衆。本無今有生故,不超到。四者受衆相續,無有斷絕,因果相繫故,無中閒。五者死邊次生,分受衆差別故,非彼體。六者從彼出生故,非別異。七者因緣和合故,無作者。八者煩惱業爲因故,非無因。九者迦羅邏、頞浮陁、箄尸、伽那、奢佉、出胎、嬰孩、童子、少年長宿等,傳傳相生故,念念空。十者善不善熏,隨因差別果轉出故,同類果相繫。
내수용(內受用)의 열 가지란,
첫째는 죽은 오수중은 남김없이 멸하기 때문에 항상하지 않은 비상(非常)이며,
두 번째, 다음 생의 오수중을 얻기 때문에 끊어지지 않는 비단(非斷)이며,
세 번째, 죽은 오수중이 남김없이 없어졌을 때 다음 생의 오수중이 본래는 없다가 이제 생기게 되는 까닭에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닌 불초도(不超到)이며,
네 번째, 오취온이 상속하며 끊어짐이 없고 원인과 결과로 서로 묶여 있기 때문에 중간이 없는 무중간(無中間)이며,
다섯 번째, 죽은 오수중과 다음 생의 오수중이 다르기 때문에 앞의 몸이 아닌 비피체(體)이며,
여섯 번째, 앞의 것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르지 않은 비별이(非別異)이며,
일곱 번째, 인연의 화합으로 생겼기 때문에 짓는 자가 없는 무작자(無作者)이며,
여덟 번째, 번뇌와 업이 원인이기 때문에 원인이 없지 않은 비무인(非無因)이며,
아홉 번째, 가라라(迦羅邏, kalala)ㆍ알부타(頞浮陀, arbuda)ㆍ폐시(箄尸, peśi)ㆍ가나(伽那, ghana)ㆍ발라사거(鉢羅奢佉, praśakhā)ㆍ출태(出胎)ㆍ갓난아기ㆍ어린아이ㆍ청소년ㆍ어른 등으로 연결되어 상속하여 생기므로 생각 생각이 공한 염염공(念念空)이며,
열 번째, 선(善)과 불선(不善)의 훈습은 원인의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나오므로 같은 종류의 결과[同類果]가 함께 묶인, 동류과상계(同類果相繫)인 것이다.
又有三偈:또한 세 개의 게송인 삼게(三偈)가 있으니,
‘如燈炎轉生 識身亦如是 先際與後際亦無有聚集。
마치 등불의 불꽃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것과 같이
식신(識身) 또한 그와 같아서,
앞의 찰나인 선제(先際)와 뒤의 찰나인 후제(後際)가 모여서 쌓임이 없으며,
無生亦有生 破壞無相著生已亦無住 而此作業轉。
생김이 없는 무생(無生)과 생김의 생(生)을 파괴하여서 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미 생겨난 이생(生已)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이것이 업의 굴림인 업전(業轉)을 짓는 것이다.
若於彼緣生而能觀知空 爲其施設教 彼亦是中道。’
만약 저 연생(緣生)에 대하여 잘 관찰하여서 공함을 능히 알게 되면
그것이 시설한 가르침이며, 또한 그것이 중도(中道)라네.
於中無明、行、渴愛、取、有。是爲集諦。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是爲苦諦。彼等十二分滅,是爲滅諦。若於緣生,如實能知。是爲道諦。緣生論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이 가운데 무명ㆍ행ㆍ갈애ㆍ취ㆍ유는 집제(集諦)이고,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는 고제(苦諦)이며,
이들 열두 가지가 소멸하는 것이 멸제(滅諦)이니,
만약 연생(緣生)에 대하여 진실하게 알게 된다면, 이것이 곧 도제(道諦)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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