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11

 

㉻ 結勸受持 - 받아 지니기를 권하다

若人於此普賢願에 讀誦受持及演說하면 果報唯佛能證知니 決定獲勝菩提道하리라

약인어차보현원      독송수지급연설         과보유불능증지      결정획승보리도

만약 어떤 이가 보현보살의 이러한 서원을 독송하고, 받아 지녀서 펼쳐 설한다면,

그 과보는 오직 부처님께서 능히 아시나니, 결정코 수승한 보리도를 획득하리라.

若人誦此普賢願하면 我說少分之善根을 一念一切悉皆圓하야 成就衆生淸淨願하리라

약인송차보현원          아설소분지선근        일념일체실개원      성취중생청정원

만약 어떤 이가 보현보살의 이러한 서원을 읽고 외우면, 그 선근의 한 부분만을 내가 설하여도,

한 순간에 모든 공덕을 원만히 하고 중생들의 청정한 서원을 성취하리라.

 

我此普賢殊勝行의 無邊勝福皆廻向하야 普願沈溺諸衆生으로 速往無量光佛刹하야지이다

아차보현수승행      무변승복개회향          보원침익제중생        속왕무량광불찰

내가 이러한 보현보살의 수승한 행과 끝없이 수승한 복을 모두 회향하오니,

삼계고해에 침몰하고 익사하는 모든 중생들을 히 무량광불 아미타정토로 왕생하여지이다.

 

경전을 공부하고 나서 그 내용에 감동하고 그 가르침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에서 무엇인가 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법사(法師)라 한다. 법사에는 다섯 가지의 법사[五種法師]가 있다고 법화경에서는 설하였다.

첫째, 종이와 먹으로 된 경전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다. 지닌다는 뜻에는 마음속에 깊이 감동하여 그 사상이 잘 배어 있는 사람들을 지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만 가장 손쉬운 수지(受持), 즉 지니는 일은 경전 책을 지니는 것이다.

둘째, 경전을 읽는 일이다.

셋째는 경전을 외우는 일이다.

넷째는 경전을 쓰거나 출판하는 일이다.

다섯째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이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하더라도 이미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전하는 법사라고 한다. 이 얼마나 쉬운가. 법사는 부처님이 하시는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며, 또한 부처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다. 참으로 큰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삶을 사는 사람이다. 보현행원품을 끝내면서 모든 사람들이 보현행자가 되어서 이 다섯 가지 중에 하나만이라도 실천하기를 권하는 게송이다.

 

(15) 如來讚歎 - 여래가 찬탄하다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於如來前에 說此普賢廣大願王淸淨偈已하신대

이시      보현보살마하살     어여래전    설차보현 광대원왕 청정게이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이 부처님 앞에서, 이러한 보현의 광대한 대서원의 청정한 게송을 마치니,

善財童子가 踊躍無量하며 一切菩薩이 皆大歡喜어늘

선재동자     용약무량         일체보살      개대환희 

如來가 讚言하사대 善哉善哉라하시니라

여래     찬언             선재선재

선재동자는 뛸 듯이 기뻐하였으며, 또한 여러 보살들도 크게 환희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여래께서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하시며 찬탄하셨습니다.

 

불교의 이상인 보살의 실천덕목을 흔히 육도만행(六度萬行), 또는 십도만행(十度萬行)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바라밀을 상황에 따라 무수히 많은 방향으로 응용하여 실천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이다. 그 행원을 모두 이야기 하였고, 다시 게송으로 못다 한 가르침과 앞에서 하신 말씀도 아름답고 외우기 쉽도록 노래하였다. 그러자 우리 모든 불교수행자들의 대표이자 본보기인 선재동자가 뛸 듯이 기뻐하였다. 물론 선재동자와 처음부터 선지식 탐방을 함께하였던 5백 동자와 5백 동녀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그 외의 일체 보살들도 모두 모두 환희하였다고 한다. 그것을 바라본 부처님은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라고 찬탄하였다. 이 말은 번역하지 말고 그냥 “선재 선재(善哉善哉)라”라고 읽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훌륭하다.”라는 뜻 외에도 “착하다. 잘 했다. 귀엽다. 고맙다. 감사하다. 똑똑하다.”등등 여러 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유통분(流通分) - 신수봉행(信受奉行)하더라

時會大衆 信受奉行
시회대중 신수봉행
이 때에 법회의 대중들이 믿고 받아서, 받들어 행하는 도다.

 

爾時에 世尊이 與諸聖者菩薩摩訶薩로 演說如是不可思議解脫境界勝法門時에

이시      세존     여제성자 보살마하살   연설여시 불가사의 해탈경계 승법문시

그 때에 부처님 세존께서 모든 성자와 보살마하살과 더불어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해탈 경계의 수승한 법문을 펼쳐 설하실 때,

文殊師利菩薩이 而爲上首하시며 諸大菩薩과 及所成熟六千比丘와 

문수사리보살      이위상수             제대보살      급소성숙 육천비구    

문수사리 보살을 상수(우두머리)로 하여 모든 대보살과 그들이 성숙시킨 육천 비구와 

彌勒菩薩이 而爲上首하시며 賢劫一切諸大菩薩과 

미륵보살        이위상수          현겁일체제대보살       

미륵보살을 상수로 하는 현겁의 일체 모든 대보살과 

無垢普賢菩薩이 而爲上首하시며 一生補處로 住灌頂位한 諸大菩薩과 

무구보현보살      이위상수           일생보처      주관정위     제대보살       

무구보현 보살을 상수로 하는 일생보처로서 관정의 지위에 머문 모든 대보살과

及餘十方種種世界에 普來集會한 一切刹海極微塵數諸菩薩摩訶薩衆과 

급여시방 종종세계  보래집회       일체찰해 극미진수 제불보살마하살    

여타 시방의 갖가지 세계에서 모여 온 일체 세계의 티끌같이 수 많은 모든 보살마하살들과 

大智舍利弗과 摩訶目犍連等이 而爲上首어든 諸大聲聞과 幷諸人天一切世主와 

대지사리불     마하목건련등      이위상수  제대성문      병제인천 일체세주

대지사리불과 마하목건련 등을 상수로 하는 모든 대 성문들과 하늘세상의 주인들과 

일체 인간 세상의 주인들과

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와 人非人等의 一切大衆이

천룡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인비인등    일체대중 

천신, 용왕,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 한 등등의 일체 대중들이 

聞佛所說하사옵고 皆大歡喜하야 信受奉行하시니라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 모두 크게 환희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경전 중에서 가장 길고 방대한 대방광불화엄경의 끝이다. 화엄경은 길고 방대할 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리고 방편이라는 거품도 없이 진리의 순수성을 철저히 드러낸 경전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며 그 깨달음의 내용을 남김없이 표현한 화엄경은 인류가 남긴 최대의 걸작품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거의 모든 경전은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보고 들었습니다[如是我聞].”라고 시작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습니다[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라고 끝을 맺는다. 물론 이 보현행원품은 길고 긴 화엄경의 81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맨 끝 부분이다. 그러나 화엄경의 결론과 불교의 결론이 잘 나타나 있어서 하나의 완벽한 경전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만약 이 보현행원품도 길다고 느껴지면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들어보였던 한 송이 꽃을 불교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한 송이 꽃도 번거롭다면 구지선사(俱胝禪師)의, 아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한 손가락으로도 불교는 충분하다. 이와 같이 불교는 늘리면 팔만장경이요, 줄이면 한 손가락이다. 모두가 이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있고 안목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보현행원품을 읽고 또 읽어서 몸소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리라. 보현행원을 가장 간단하게 요약해서 표현하면 “사람사람이 모두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또한 행복하다. 나아가서 모든 사람이 이 이치를 실천하면 전 인류가 모두 행복하게 사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아, 이대로가 화장장엄세계요,

이대로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것을.” - 무비스님.

 

무사히 대방광불 화엄경을 마칠 수 있게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비스님의 강설을 정리하고 요약하여 이통원 장자의 신화엄경론을 기본으로 하고, 많은 여러 분들이 올려주신 글들을 비교하고 참조하여 화엄경 공부를 마치게 되어 그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수승한 공덕의 복을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10

 

㉵ 結歸普賢 - 결정코 보현보살에 귀의하다
一切如來有長子하니 彼名號曰普賢尊이라 我今廻向諸善根하야 願諸智行悉同彼로다

일체여래유장자          피명호왈보현존          아금회향제선근       원제지행실동피

일체 모든 여래에게 장자가 있나니, 그 명호는 보현존자이라.

내가 이제 모든 선근으로 회향하여 모든 지혜와 행(실천)이 그와 같아지기를 원하며,
 
願身口意恒淸淨하며 諸行刹土亦復然이니 如是智慧號普賢이라 願我與彼皆同等이로다

원신구의항청정           제행찰토역부연        여시지혜호보현         원아여피개동등

신구의가 항상 청정하나니, 모든 행과 세계 또한 그러하나니,

이러한 지혜를 보현이라 하나니, 나도 그와 더불어 동등하여 지기를 원하며,

 

이 게송을 설하는 보현보살이 보현보살과 같아지기를 원하는 내용이다. 게송을 설하는 보현보살은 무엇이며 같아지고자 하는 그 보현보살은 또 누구인가. 게송을 설하는 보현보살은 우리들 독자 모두, 즉 불교의 정법에 의한 불교적 인생을 살고자하는 보현보살이며, 같아지고 싶은 그 보현보살은 우리들의 이상이며 모든 불자들의 이상으로서의 보현보살이다. 깨달음의 지혜를 바탕에 깔고 몸으로 힘차게 실천궁행하는 중생제도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바람직한 불자의 상은 곧 보현행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보현행이 완전무결하게 된 사람은 곧 보현보살이며 곧 그는 여래의 장자이다.
   
㉶ 結歸文殊 - 결정코 문수보살에게 귀의하다
我爲徧淨普賢行과 文殊師利諸大願하야 滿彼事業盡無餘하야 未來際劫恒無倦이로다

아위변정보현행       문수사리제대원        만피사업진무여        미래제겁항무권
나는 이제 보현보살의 청정한(훌륭한) 행과 문수보살 대 서원을 훌륭히 닦아
남음 없이 가득하게 다 원만히 하여 미래겁이 다하도록 항상 싫어함이 없으며,  

 

我所修行無有量하야 獲得無量諸功德하며 安住無量諸行中하야 了達一切神通力이로다

아소수행무유량          획득무량제공덕          안주무량제행중        요달일체신통력

내가 닦은 바 수행(보현행)은 한량이 없나니, 한량없는 모든 공덕을 획득하고,

한량없는 온갖 행 가운데 안주하여 일체의 신통력을 요달하며,
 
文殊師利勇猛智요 普賢慧行亦復然하니 我今廻向諸善根하야 隨彼一切常修學이로다

문수사리용맹지       보현혜행역부연          아금회향제선근        수피일체상수학

문수사리 보살의 용맹한 지혜와 보현보살의 지혜의 행 또한 그러하나니,

내가 이제 모든 선근을 회향하여 그분들을 항상 따라 닦아 배우고 수순합니다.

 

불교에서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인물은 부처님이다. 그러나 부처님이라는 한 분만으로는 그 위대함과 훌륭하고 뛰어남을 다 표현하고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함이 없지 않다. 그래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두 가지 입장을 한분 한분이 맡아 담당하고 있다. 때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과 미륵보살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이분들을 불교에서 오대(五大)보살이라 한다.
화엄경에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사람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삶을 표현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지혜를, 보현보살은 지혜에 의한 실천을 상징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한 보살이다. 지혜가 있어야 바른 실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친견하는데도 처음에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끝에는 보현보살을 친견한다. 법화경도 처음에는 문수보살이 등장하여 부처님의 상서(祥瑞)를 설명하고 끝에 가서 보현보살이 등장하여 결론을 짓는다.
지혜가 없는 자비는 자비가 아닌, 치우친 인간의 정으로 흐른다. 그래서 자비의 실천 이전에 반드시 지혜를 갖추기를 권한다. 그러므로 경문에서 “나는 이제 보현보살 거룩한 행과 문수보살 크신 서원 훌륭히 닦아 그분들이 하는 일을 다 원만히 하리라.”고 말하고 있다.
 
㉷ 結歸廻向 - 선근회향(善根廻向)을 원하다
三世諸佛所稱歎인 如是最勝諸大願을 我今廻向諸善根하야 爲得普賢殊勝行이로다

삼세제불소칭탄      여시최승제대원     아금회향제선근        위득보현수승행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고 찬탄하신 바와 같이 가장 수승한 모든 대서원을

내가 이제 모든 선근으로 회향하여 보현보살의 수승한 행을 얻고자 합니다.

 

불교는 첫째도 보살행이요, 둘째도 보살행이요, 셋째도 보살행이다. 수많은 보살행 중에서 열 가지로 요약한 것이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이다. 그래서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은 그 방대한 화엄경의 결론이며 팔만대장경의 총 결론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불자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인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을 친견하면서 한결같이 질문하는 말이 오직 보살행이었다. 이처럼 보살행을 실천하자는 것이 불교라는 뜻이다.
보살행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불자들이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밥을 주고 옷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보살행이므로 그런 것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다. 훌륭하고 매우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천상천하(天上天下)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들의 스승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로서 의식주보다 더 값지고 더 유익한 것으로써 사람들에게 이바지하는 길은 없을까. 언제나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를 해야 하리라. 만약 의식주보다 몇 백만 배의 가치가 있는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그것으로 보시하고 봉사하는 것이 인류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사는 최고의 제자다운 모습이리라.  
 
㉸ 原生淨土 - 정토(淨土)에 나기를 원하다
願我臨欲命終時에 盡除一切諸障礙하고 面見彼佛阿彌陀하야 卽得往生安樂刹이로다

원아임욕명종시      진제일체제장애         면견피불아미타        즉득왕생안락찰

내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일체의 모든 번뇌와 장애를 다하여 소멸하고,

아미타불을 만나 뵙고, 즉시 안락한 국토에 극락 왕생을 얻기를 원하오며,
 
我旣往生彼國已에 現前成就此大願하야 一切圓滿盡無餘하야 利樂一切衆生界로다

아기왕생피국이      현전성취차대원          일체원만진무여         이락일체중생계

내가 이미 저 세계에 왕생하면, 나의 이러한 대서원을 성취함이 앞에 나타나리니,

모든 것을 남김없이 원만히 하여서 일체 중생들을 이익되고 기쁘게 하며,
 
彼佛衆會咸淸淨이어든 我時於勝蓮華生하야 親覩如來無量光이 現前授我菩提記로다

피불중회함청정              아시어승연화생         친도여래무량광      현전수아보리기

저 부처님 대중 법회를 모두 청정(훌륭)하게 하고, 나는 그 때 수승한 연꽃 위에서 태어나,

무량광불 아미타 여래를 친근하여 뵈오며, 그 앞에서 보리 수기를 내게 주시리니,
 
蒙彼如來授記已에 化身無數百俱胝하며 智力廣大徧十方하야 普利一切衆生界로다

몽피여래수기이      화신무수백구지          지력광대변시방        보리일체중생계

여래의 이러한 보리 수기를 모두 받아, 무수한 백구지의 변화신을 나타내어,

광대한 지혜의 힘으로 두루 시방의 일체 중생계를 널리 이익되게 하리라.

 

사람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삶이 불교적인 가치관에 의한 삶이며, 불교적 가치관으로서 또한 가장 빼어난 삶의 모습이 보현행원을 실천하면서 사는 일이다. 그런데 보현행원을 마음껏 실천하고 난 그 다음 또한 보현행원을 더욱 잘 실천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나서 보현행원을 계속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평생을 보현행원을 실천하고 나서 죽은 뒤에는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여 깨달음에 대한 수기를 받고 무수한 변화신을 나타내어 크고 넓은 지혜로써 시방세계에 두루 두루 다니면서 일체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더욱 더 열심히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불(成佛)을 하는 것도 보살행을 하자는 것이며, 견성(見性)을 하는 것도 보살행을 실천하자는 것이며,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것도 역시 보살행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처음도 보살행이며, 중간도 보살행이며, 끝도 보살행이다. 오로지 보살행을 하자고 불교를 믿고,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수행한다. 보살행이 없는 불교는 불교가 아니며 보살행이 없는 불교는 생각할 수 없다. 한 가지 더 첨부할 것은 보살행에도 저급한 보살행이 있고 우수한 보살행이 있다. 부처님의 제자는 가장 우수한 보살행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 總結十門無盡 - 열 가지 행원을 모두 맺다
乃至虛空世界盡하야 衆生及業煩惱盡이여 如是一切無盡時니 我願究竟恒無盡이로다

내지허공세계진          중생급업번뇌진         여시일체무진시      원아구경항무진
허공계와 중생계가 다한다면, 이내 원도 그와 함께 다하려니와
중생들의 업과 번뇌 끝없으므로 나의 원도 마침내 다함이 없으리라.

 

이 게송을 앞에서의 산문형식으로 고쳐서 읽으면 더욱 분명해 진다. “허공계가 다하여야 나의 이 보현행원도 다하려니와 허공계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이 보현행원도 다함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야 나의 보현행원도 다하려니와, 중생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이 보현행원도 다함이 없느니라. 염념이 계속하여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이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견성성불을 하고나서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보현행원을 수행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가능하다. 답은 역시 보현행원을 수행할 것이다. 미래가 다하더라도 영원히, 영원히, 또 영원히 보현행원을 수행하리라는 금강과 같은 보현행자의 인생관이다. 이것이 불교인의 삶이며 불교적 인생관이다.
   
㉺ 經殊勝 功德 - 경전의 수승한 공덕
1) 보현행원을 들은 이익과 비교하다
十方所有無邊刹에 莊嚴衆寶供如來하며 最勝安樂施天人하야 經一切刹微塵劫이라도

시방소유무변찰       장엄중보공여래        최승안락시천인         경일체겁미진겁

한량 없는 시방세계를 장엄하고, 갖가지 보배로 부처님께 공양하며,

가장 수승한 안락을 천상과 인간들에게 보시하여, 일체 세계의 미진같은 겁을 지나도,
 
若人於此勝願王에 一經於耳能生信하야 求勝菩提心渴仰하면 獲勝功德過於彼로다

약인어차승원왕      일경어이능생신          구승보리심갈앙        획승공덕과어피

만약 어떤 이가 수승한 대서원을 한 번 스쳐 들을지라도, 능히 믿음을 내어,

수승한 보리심을 얻고자 갈망한다면, 이러한 공덕은 저보다 훨씬 수승하리라.

 

불교의 경전에는 그 경전의 공덕에 대하여 설명한 내용이 많고 화엄경 보현행원품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경전을 읽고 경전의 내용들을 충분히 이해하였으면 그 사람은 이미 공덕을 입은 사람이다. 그러나 경전의 깊은 뜻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세속적인 가치기준인 금은보화와 칠보 등 온갖 값진 것으로써 비교하여 밝혔다. 세속에서 아무리 값어치가 있는 금은보화라 하더라도 이 보현행품의 공덕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보현행원이란 사람사람들이 모두가 부처님이며, 부처님인 까닭에 부처님인 사람보다 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밝힌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가치를 굳이 설명하자면 무량무변 불가사의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아승지라 하여도 아직은 그 진정한 가치의 수 억만 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법문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가치는 이와 같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양나라 무제라는 임금이 인도에서 온 큰스님이라고 생각하여 친견하였다. 친견하자마자 자신이 지금까지 절을 수백 개 짓고, 탑을 수천 개 쌓았으며, 스님들을 수십만 명 교육시켰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는 가를 물었는데 달마대사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하였다. 달마스님이 보기에는 임금님이 지은 공덕보다 그 공덕을 묻고 있는 그 활발발한 살아있는 사람 부처님이 수억 만 배의 공덕이 갖춰져 있음을 보았던 것이리라. 스스로에게 있는 크나 큰 공덕은 살펴보지 않고 곧 사라져 없어질 유형의 절과 탑을 공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양무제가 안타까웠으리라. 보현행원품도 역시 이와 같은 이치를 밝힌 경전이므로 그 공덕이 매우 많다고 한 것이다.

 

선어록에 아래와 같은 법어가 있다.
대주(大珠)스님이 처음 마조(馬祖)스님을 친견하니 마조스님이 물었다.
“무엇을 하려고 왔느냐?”
“불법을 구하려고 왔습니다.”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거늘 무슨 불법을 구하려는가?

자기의 보물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집을 버리고 돌아다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어떤 것이 저의 보물입니까?”
“지금 바로 나에게 묻는 그것이 바로 너의 보물이니라. 그것은 일체를 모두 갖추었다. 

그런데 무슨 바깥으로 구할 것이 있는가?”
마조스님의 이 말씀에 대주스님은 크게 까달았다.
불교란 궁극적으로 이 사실을 가르쳐주는 일이며, 이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으며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보현행품은 가르치고 있다.
 

2) 보현행원의 여러 가지 이익을 다 나타내다

卽常遠離惡知識하며 永離一切諸惡道하고 速見如來無量光하야 具此普賢最勝願하면

즉상원리악지식          영리일체제악도         속견여래무량광        구차보현최승원

나쁜 악지식은 항상 멀리 여의고, 일체의 모든 악도 또한 영원히 여의고,

무량광불 아미타불 여래를 속히 뵙고, 보현보살의 수승한 서원을 구족하며,

 

此人善得勝壽命하며 此人善來人中生하며 此人不久當成就 如彼普賢菩薩行하리라

차인선득승수명           차인선래인중생         차인불구당성취  여피보현보살행

이러한 사람은 수승한 수명을 얻고, 이러한 사람은 인간 가운데 좋은 곳에 태어나고, 

이러한 사람은 오래지 않아 저 보현보살과 같은 행을 성취하리라.

 

往昔由無智慧力하야 所造極惡五無間이라도 誦此普賢大願王하면 一念速疾皆消滅하며

왕석유무지혜력          소조극악오무간             송차보현대원왕         일념속질개소멸

옛적에는 어리석고 지혜가 없었던 탓에 다섯 가지의 극악한 무간 죄업 지었을지라도

보현보살 이 서원을 읽고 외우면, 한 순간에 저 죄업이 소멸하리라.

 

族姓種類及容色과 相好智慧咸圓滿하며 諸魔外道不能摧하야 堪爲三界所應供하리라

족성종류급용색      상호지혜함원만         제마외도불능최         감위삼계소응공

종족과 성품과 종류와 용모와 색신(몸)과 상호와 지혜가 모두 원만하며,

모든 마군과 외도들도 능히 꺽지 못하고, 마땅히 삼계의 중생에게 좋은 공양 받게 되리라.  

 

速詣菩提大樹王하야 坐已降伏諸魔衆하고 成等正覺轉法輪하야 普利一切諸含識하리라

속예보리대수왕           좌이항복제마중        성등정각전법륜         보리일체제함식

오래잖아 대 보리수 아래에 앉아 보리에 나아가 온갖 마의 무리들을 항복받고

정등각을 성취하고 법륜을 굴하여(법을 설하여) 일체 중생들을 두루 이익 되게 하리라.

 

보현행원을 수행함으로 나쁜 벗을 만나지 않고, 악도에도 떨어지지 않으며,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또다시 보현행원을 갖추게 된다고 하였다. 설사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죄업을 지었더라도 보현행원을 읽고 외우면 그 죄업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하였다. 보현행원이 얼마나 위대한가. 보현행원을 실천한 그 이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크다. 일일이 다 소개하지 못하므로 경문을 숙독하고 음미하여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10

 

㉻ 不離願 - 함께하기를 원하다

所有與我同行者가 於一切處同集會하야 身口意業皆同等하야 一切行願同修學하며

소유여아동행자      어일체처동집회          신구의업개동등         일체행원동수학

나와 더불어 보현행을 닦는 도반들은 모든 태어난 곳마다 함께 모이어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업)도 같아, 모든 수행과 모든 서원을 같이 닦으며,

 

所有益我善知識이 爲我顯示普賢行하고 常願與我同集會하야 於我常生歡喜心이로다

소유익아선지식      위아현시보현행         상원여아동집회        어아상생환희심

가진 바로 나를 이익되게 하는 선지식께서 나를 위하여 보현보살의 행을 나타내 보이고,

항상 나와 함께 이러한 법회에 모여, 내가 항상 환희심 내기를 원함이로다.

 

언제 어디서나 더불어 함께하기를 원하는 가르침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공간이 다르고 시간을 달리하여 몇 백 년, 몇 천 년의 시간적인 거리를 두고 산다하더라도 뜻이 같고 마음이 같고 삶의 가치관이 같고 관심사가 같으면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함께하는 것이 된다. 설사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같이 있다 하더라도 관심사가 다르고 인생의 가치관이 다르고 뜻이 다르면 함께한다고 할 수 없다. 보현행원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고 모든 삶을 보현행원에 초점을 맞추어서 사는 사람이라면 서로 시간이 다르고 공간이 다르더라도 늘 함께한다는 뜻이다. 마주하고 있어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르고, 꿈이 다르고, 삶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지금 여기에서 부처님과 함께하고 보현보살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은 뜻을 같이 하고, 삶의 가치관을 같이하는 길이다.

 

㉮ 供養願 - 공양하기를 원하다

願常面見諸如來와 及諸佛子衆圍遶하고 於彼皆興廣大供하야 盡未來劫無疲厭하며

원상면견제여래      급제불자중위             어피개흥광대공         진미래겁무피염

항상 모든 부처님 여래를 만나 뵙기를 원하나니, 모든 불자들이 부처님을 둘러 모시었거든,

풍성한 대공양을 올리며, 오는 세상이 다하도록 피로하고 싫어함이 없으며,

 

願持諸佛微妙法하야 光顯一切菩提行하고 究竟淸淨普賢道하야 盡未來劫常修習이로다

원지제불미묘법          광현일체보리행          구경청정보현도       진미래겁상수습

부처님의 묘한 법을 받아 지니기를 원하고, 갖가지 모든 보리행을 빛나게 하며,

청정한 보현의 도를 구경까지 닦아, 미래겁이 다하도록 항상 수행하여 익히기를 원합니다.

 

앞의 산문에서 있었던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내용에 오는 세상이 끝난다 하더라도 푸짐한 공양을 올리는 일에 지칠 줄을 모른다는 내용과 함께 부처님의 법을 받아 지니고 갖가지의 보리행을 빛나게 드러내며 보현행원을 철저히 닦아 영원히 수행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부처님께 물질로써 공양을 올린다 하더라도 그 일을 통해서 부처님의 참다운 이치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는데 목적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불교에 있는 수많은 방편을 통해서 결국에는 부처님의 진리의 가르침을 배우고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데 그 목적이 있다. 방편에만 그치고 방편이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크게 잘못된 불교가 된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일을 통해서 법을 받아 지니고 자비와 지혜의 보리도를 더욱 빛나게 하며 보현행원을 철저히 실천하여야 한다.

 

㉯  利益願 - 이익을 원하다

我於一切諸有中에 所修福智恒無盡하야 定慧方便及解脫에 獲諸無盡功德藏하며

아어일체제유중      소수복지항무진         정혜방편급해탈      획제무진공덕장

내가 일체의 모든 있음 가운데에서 항상 복과 지혜를 닦음에 다함이 없으며,

선정, 지혜, 방편, 해탈의 법으로 모든 다함이 없는 공덕장을 얻었으며,

 

一塵中有塵數刹하고 一一刹有難思佛이어든 一一佛處衆會中에 我見恒演菩提行이로다

일진중유진수찰          일일찰중난사불              일일불처중회중     아견항연보리행

한 티끌 가운데 티끌같이 수 많은 세계가 있고,

각각의 세계마다 생각하기 어려운 부처님이 계시나니,

하나 하나의 부처님의 대중 법회 가운데에서 보리 행을 펼침을 나는 항상 뵙는 도다.

 

불교를 믿고 공부하여 무엇을 얻는 것인가를 밝힌 게송이다. 불교를 믿는 공덕으로 건강이 좋고, 재산이 많고, 벼슬이 높아서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다 소유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덕과 지혜와 선정과 방편과 해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곳곳에서 부처님을 만나자는 것이고, 만나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를 부처님으로 보는 그런 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지혜와 자비의 보리행을 설법하는 자리에서 자신도 동참하여 정법을 깊이 깨닫고 진리를 알고 사는 것이 진정한 이익이다.

 

㉰ 轉法輪願 - 법륜 굴리기를 원하다

普盡十方諸刹海와 一一毛端三世海와 佛海及與國土海하야 我徧修行經劫海로다

보진시방제찰해     일일모단삼세해       불해급여국토해        아변수행경겁해

널리 끝없는 시방의 모든 법계바다의 하나 하나의 털끝마다 삼세의 바다와

한량없는 부처님과 국토를 겁의 바다를 지나도록 내가 두루 수행하며,

 

一切如來語淸淨하사 一言具衆音聲海하야 隨諸衆生意樂音하야 一一流佛辯才海하며

일체여래어청정          일언구중음성해          수제중생의요음        일일유불변재해

모든 부처님 여래의 말씀은 청정하시고, 한 말씀에 여러 중생의 음성을 구족하시어,

모든 중생들이 좋아하는 음성을 수순하시어, 각각의 음성마다 부처님의 변재를 펴시도다.

 

三世一切諸如來가於彼無盡語言海로 恒轉理趣妙法輪이어든 我深智力普能入이로다

삼세일체제여래     어피무진어언해      항전이취묘법륜            아심지력보능입

삼세 일체의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그와 같은 다함이 없는 말씀의 바다로,

항상 깊은 이치의 묘한 법문을 설하시나니, 나의 깊은 지혜력으로 두루 능히 들어감이로다.

 

이 경문은 산문에서 법륜 굴리기를 청하는 내용을 발원하는 마음으로 게송으로 표현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은 훌륭하다고 하면서, 한 말씀에 여러 가지 음성을 갖추고 중생들이 좋아하는 음성을 따라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설법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 내용도 중요하지만 음성도 대단히 중요하다. 아름답고 마음이 담긴 음성은 그 소리만으로도 듣고 싶지만 음성이 듣기에 부담을 주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오래 듣기가 거북스럽다.

그리고 부처님은 깊은 이치로 묘한 법문을 연설하신다고 하였다.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이나 모든 깨달음을 이루 사람들은 모든 존재의 참다운 이치[眞理]를 깨달았고 그 가르침도 모두가 참다운 이치를 설하신다. 여기서 다시 불교를 생각해 본다면, 즉 깨달은 사람들의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이다. 깨닫지 못해도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불교와 비불교의 차별이 명백해진다.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참다운 이치를 가르치는 것이 진짜 불교다. 만약 깨닫지 못한 사람으로서도 할 수 있는 지극히 도덕적이거나 상식적인 가르침이라면 그것은 굳이 불교의 진리라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쉬운 일도 어느 정도의 지혜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나의 깊은 지혜로 들어가리라.”라고 하였다.

 

㉱ 淨土願 - 정토에 들어감을 원하다

我能深入於未來하야 盡一切劫爲一念하고 三世所有一切劫으로 爲一念際我皆入하며

아능심입어미래         진일체겁위일념          삼세소유일체겁         위일념제아개입

내가 능히 미래세에 깊이 들어가나니, 일체의 모든겁이 한 생각(일념)이요,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의 겁을 한 생각으로 내가 모두 들어가며,

 

我於一念見三世의 所有一切人獅子하고 亦常入佛境界中의 如幻解脫及威力이로다

아어일념견삼세      소유일체인사자          역상입불경계중      여환해탈급위력

나의 한 생각으로 삼세의 한량없는 부처님(인사자)들을 모두 뵈옵고

또한 항상 부처님의 경계 속에 늘 들어감은 환술과 같은 해탈의 위력이로다.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도 능히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고, 깨달은 사람들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을 게송으로 표현하였다. 부처님과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경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분들과 모든 수준이 같고 정신세계가 같다는 뜻이다. 경문에서 환술과 같은 해탈과 위신력으로 들어간다고 한 것은, 환술과 같이 실제 하지는 않지만 뜻에 따라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자비와 해탈과 온갖 위신력이라야 깨달은 사람들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옛말에 “도가 같아야 가히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부처님의 경계 속에 들어감이며 정토에 들어감을 원하는 일이다.

 

㉲ 承事願 - 받들어 섬기기를 원하다

於一毛端極微中에 出現三世莊嚴刹하고 十方塵刹諸毛端에 我皆深入而嚴淨하며

어일모단극미중       출현삼세장엄찰        시방진찰제모단     아개심입이엄정

한 터럭 끝의 극히 미세한 가운대 삼세의 장엄한 세계가 나타나며,

시방의 티끌같이 많은 모든 털 끝마다 내가 모두 깊이 들어가 장엄하며,

 

所有未來照世燈이 成道轉法悟群有하사 究竟佛事示涅槃이어든 我皆往詣而親近이로다

소유미래조세등      성도전법오군유         구경불사시열반             아개왕예이친근

가진 바 미래의 세간을 비추는 등불로 성도하고 법륜을 굴려 중생 깨닫게 하고,

구경의 온갖 불사를 성취하고 열반에 드심을 보이나니, 내가 두루 나아가 친근함이로다.

 

신라 의상스님의 법성게에 “하나의 먼지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있으며 모든 먼지 속에도 똑 같이 그러하다.”고 하였다.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홀로 독립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 서로 연관관계를 맺을 때에만 존재가 가능하다는 존재원리의 깊은 이치를 간단히 설명한 것이다. 이 경문에는 그와 같은 내용과 아울러 보현행자의 크고 깊은 서원을 이야기 하였다. 그렇게 많고 많은 세계에 삼세에 걸쳐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님의 성도와 설법과 중생제도와 온갖 불사를 성취하고 열반에 드시는 모든 일들을 내가 두루 나아가서 친히 모시리라는 서원이다. 한 중생, 한 생명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내가 모두 돌보며 섬기리라는 깊고 깊은 서원의 마음이다.

 

㉳ 成正覺願 - 정각(正覺) 이루기를 원하다

速疾周徧神通力과 普門徧入大乘力과 智行普修功德力과 威神普覆大慈力과

속질주변신통력      보문변입대승력     지행보수공덕력     위신보부대자력

몹시 빠르게 두루 미치는 신통의 힘과 넓은 문에 두루 들어가는 대승의 힘과

지혜의 행을 널리 두루 닦은 공덕의 힘과 위신력으로 덮어주는 큰 자비의 힘과

 

徧淨莊嚴勝福力과 無着無依智慧力과 定慧方便諸威力과 普能積集菩提力과

변정장엄승복력     무착무의지혜력      정혜방편제위력     보능적집보리력

청정하게 두루 장엄한 수승한 복덕의 힘과 집착도 없고 의지함도 없는 지혜의 힘과

선정과 지혜와 방편의 온갖 위신력과 널리 두루 쌓아 모은 보리의 힘과

 

淸淨一切善業力과 摧滅一切煩惱力과 降伏一切諸魔力과 圓滿普賢諸行力으로

청정일체선업력      최멸일체번뇌력      항복일체제마력     원만보현제행력

청정한 일체 공덕의 선업의 힘과 온갖 번뇌 물리쳐서 소멸시키는 힘과

모든 마군을 항복받는 힘과 보현행을 원만하게 닦은 힘으로

 

불교수행의 열네 가지 힘을 말하였다. 불교를 믿고 공부하면 큰 힘이 생긴다. 힘이 생긴다는 것을 잘못 이해하여 남의 전생 일을 알고 미래를 아는 힘이나, 영가들을 천도해 주고 병을 낫게 하는 힘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경문에서 밝혔듯이 주로 지혜와 자비와 선정과 방편과 보리심과 일체의 공덕을 닦은 선업의 힘과 온갖 번뇌를 소멸함과 보현보살의 행원을 원만히 수행한 그와 같은 힘을 말한다. 이와 같은 힘을 갖추는 것이 불교적인 힘이다. 그 외에는 설사 놀랄만한 힘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삿된 마군이나 외도들의 힘이다. 불교를 바르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명심하여야할 사실이다. 여기에서 소개한 불교적인 진정한 힘을 무엇을 하기 위함인가 하는 것은 아래에서 설명하고 있다.

 

㉴ 總結大願 - 큰 원을 모두 맺다

普能嚴淨諸刹海하며 解脫一切衆生海하며 善能分別諸法海하며 能甚深入智慧海하며

보능엄정제찰해          해탈일체중생해         선능분별제법해        능심심입지혜해

능히 두루 모든 세계를 청정하게 장엄하고, 모든 중생들을 해탈하게 하며,

능히 모든 법문을 잘 분별하며, 능히 깊고 깊은 지혜 바다에 들어가며,

 

普能淸淨諸行海하며 圓滿一切諸願海하며 親近供養諸佛海하며 修行無倦經劫海하며

보능청정제행해          원만일체제원해         친근공양제불해         수행무권경겁해

능히 모든 행을 두루 청정히 닦으며, 일체의 갖가지 서원을 원만히 하며

모든 부처님들을 친근하고 공양하며, 오랜 겁의 동안 권태로움 없이 수행하며,

 

三世一切諸如來와 最勝菩提諸行願을 我皆供養圓滿修하야 以普賢行悟菩提로다

삼세일체제여래       최승보리제행원      아개공양원만수       이보현행오보리

일체 삼세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가장 수승한 보리와 모든 행원을

내가 모두 공양하고 원만히 닦아, 보현보살 행원으로 보리를 이룸이로다.

 

위에서 열거한 열네 가지의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밝혔다. 모든 세계를 장엄한다는 것은 보현행원을 실천 수행하는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 세계를 장엄하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그 집에 있으면 그 집이 장엄이 되고, 어떤 모임에도 훌륭한 사람이 참석하면 그것만으로도 그 모임은 잘 장엄이 된 것이다. 한 마을이나 한 나라나 한 세계나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 있어서 장엄하는 것이다. 어떤 경전에서는 보살이 있음으로서 국토를 장엄한다고 하였다. 바라건대 온 세상이 모두 보현보살로 가득하여 장엄하여지이다.

열네 가지의 힘으로 중생들을 해탈케 하며, 모든 법문을 잘 분별하며, 지혜의 바다에도 깊이 들어가며, 일체의 수행을 청정하게 닦으며, 온갖 서원을 원만히 하며, 부처님을 친근하고 공양하며, 오랜 세월동안 수행하며, 모든 부처님들의 온갖 법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지혜와 자비인 보리의 행원을 원만히 닦아 보현보살의 행원을 성취한다.

즉 불교적 수행의 힘이 충만하면 지금보다 더 높은 단계의 불사를 실현하게 된다. 예컨대 선한 행위를 한 결과, 다시 더욱 선행을 보다 쉽게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악행도 마찬가지이고, 사업을 하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 등이 모두가 같은 원리이다.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9

 

(14) 열 가지 행원을 게송으로 노래하다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宣此義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偈言하사대

이시      보현보살마하살     욕중선차의         보관시방       이설게언

그 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뜻을 거듭 펴고자,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여 말하였습니다.

 

㉮ 禮敬諸佛 -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다

所有十方世界中에 三世一切人獅子를 我以淸淨身語意로 一切徧禮盡無餘호대

소유시방세계중      삼세일체인사자       아이청정싱어의      일체변례진무여

(온 법계 허공계의)시방세계 가운데 계시는 삼세의 모든 사람들의 스승이시여, 

제가 청정한 신구의로 한 분도 빼지 않고 모든 예를 다하오며,

 

普賢行願威神力으로 普現一切如來前하며 一身復現刹塵身하야 一一徧禮刹塵佛이로다

보현행원 위신력         보현 일체여래전       일신부현찰진신         일일변례찰진불

보현보살의 행과 원의 크신 힘으로 널리 모든 여래 앞에 나아가며,

다시 한 몸으로 티끌같은 수 많은 몸을 나타내어,

하나 하나의 국토의 티끌과 같이 수 많은 모든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경전을 기록하는 데는 산문형식과 게송 형식의 글이 있다. 게송 형식의 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고기송(孤起頌)이라 하여 산문의 설명 없이 게송만으로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법구경과 같은 유의 경전을 말한다. 둘째는 중송(重頌)이라 하여 앞에서 산문형식으로 이치를 설명하고 나서 다시 거듭하여 그 뜻을 밝히려고 게송의 형식을 빌어서 이중으로 설법한 내용이다. 보현행원품의 경전도 후자의 형식에 준하여 지금까지는 산문으로 열 가지의 행원을 설명하였고 여기서부터는 게송으로 그 뜻을 거듭 밝히는 부분이다. 

지금부터 나오는 게송의 경문은 백팔참회문을 읽어 본 사람이면 익히 들어 본 내용이다. 보현행원품의 가르침이 대단히 훌륭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백팔참회문을 지으면서 참회의 정신을 이 보현행원으로 귀결시키기 위해서 게송을 거의 다 옮겨 놓았다. 다행히 백팔참회문은 선문일송(禪門日誦)이라는 책에서 전하여 온다. 그래서 어떤 선방에서는 백팔참회문을 외우면서 백팔배(百八拜)를 하는 것을 일과로 삼기도 한다. 참선이든 참회든 보살행으로 회향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결국은 보살행을 실천궁행하는 것으로 회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살행이 없는 참선이나 참회는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아무리 오랫동안 한다하더라도 아무런 가치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행이 진정한 불교이기 때문에 선원의 수선납자(修禪衲子)들이나 법당의 기도행자들은 반드시 보현행원으로 정신무장을 해서 보살행을 실천궁행해야 진실로 부처님의 밥값을 하리라 생각한다. 만약 보살행이 없는 불교는 외도며 사도며 가짜 불교다. 선문에서 매일 외우는 선문일송을 보현행원품의 내용으로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稱讚如來 - 부처님을 찬탄하다

於一塵中塵數佛이 各處菩薩衆會中하니 無盡法界塵亦然이라 深信諸佛皆充滿하고

어일진중진수불       각처보살중회중        무진법계진역연        심신제불개충만

하나의 티끌 속에도 티끌같이 수 많은 부처님들이 각각의 보살 대중 법회 가운데 계시며,

법계가 다함이 없듯이 티끌 또한 그와 같아서 부처님들께서 모두 충만하심을 깊이 믿으며,

 

各以一切音聲海로 普出無盡妙言詞하야 盡於未來一切劫토록 讚佛甚深功德海로다

각이일체음성해     보출무진묘언사         진어미래일체겁         찬불심심공덕해

각각 이러한 모든 음성의 바다로 널리 다함 없는 묘한 말씀을 널리 펴시나니,

미래의 모든 겁이 다하도록 부처님의 깊고 깊은 공덕 바다를 찬탄합니다.

 

여래를 찬탄하는 마음이 곧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찬탄하는 데로 옮겨간다면 진정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보현행자이며, 그 보현행자가 있는 곳은 곧 행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 廣修供養 - 널리 공양 올리다

以諸最勝妙華鬘과 妓樂塗香及傘蓋인 如是最勝莊嚴具로 我以供養諸如來하며

이제최승묘화만     기악도향급산개       여시최승장엄구     아이공양제여래

가장 수승한 아름다운 모든 꽃다발과, 기예와 음악, 바르는 향과 일산 등의

이와 같은 가장 수승한 장엄구로 제가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올리며,

 

最勝衣服最勝香과 末香燒香與燈燭을 一一皆如妙高聚하야 我悉供養諸如來하며

최승의복최승향      말래소향여등촉      일일개여묘고취        아실공양제여래

가장 수승한 의복들과 가장 수승한 향, 가루 향, 사르는 향과 더불어 등불과 촛불을
하나 하나마다 모두 수미산 같이 쌓아서, 제가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올리며,

 

我以廣大勝解心으로 深信一切三世佛하고 悉以普賢行願力으로 普徧供養諸如來로다

아이광대승해심          심신일체삼세불          실이보현행원력       보변공양제여래

제가 이러한 광대하고 수승한 이해심으로 삼세의 모든 여래를 깊이 믿으며,

보현보살 행과 원의 크신 힘으로 두루 모든 부처님 여래께 공양올립니다.

 

불공이란 어떤 것이 참다운 불공인가 하는 문제를 잘 밝힌 내용이다. 게송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다시 산문으로 돌아가서 불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서 바른 불공을 행해야 하리라. 불공의 의미만 바로 알면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도 다 따라 오리라고 생각된다.

 

㉱ 懺提業障 - 업장을 참회하다

我昔所造諸惡業이 皆由無始貪恚癡라 從身語意之所生이니 一切我今皆懺悔로다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어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제가 지난 세상에 지은 모든 악업은 모두 한 없는 과거 이래로 탐진치의 신구의로 지었사오니,

그 모든 것을 제가 이제 속속들이 참회합니다.

 

백팔참회문에도 있지만 독송용 천수경에도 인용하여 쓰이고 있다. 일반적인 불교에서는 몸과 말과 뜻으로 탐, 진, 치, 삼독을 지어 온갖 업장이 만들어 졌으므로 이 모든 업장을 지성으로 참회한다는 것이다.

 

㉲ 隨喜功德 -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다

十方一切諸衆生과 二乘有學及無學과 一切如來與菩薩의 所有功德皆隨喜로다

시방일체제중생     이승유학급무학      일체여래여보살     소유공덕개수희

시방세계 일체의 모든 중생들과 성문, 연각, 이승, 배우는 이, 다 배운 이와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온갖 공덕을 지성으로 받들어서 기뻐합니다.  

 

㉳ 請轉法輪 - 설법하여 주기를 청하다

十方所有世間燈의 最初成就菩提者에 我今一切皆勸請하야 轉於無上妙法輪이로다

시방소유세간등      최초성취보리자     아금일체개권청          전어무상묘법륜

시방의 모든 세간 비추는 등불이시여, 최초로 큰 보리를 성취하신 분이시여,

제가 이제 위 없는 묘한 법륜을 굴리시기를 권하고 청합니다.

 

㉴ 請佛住世 -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무시기를 청하다

諸佛若欲示涅槃에 我悉至誠而勸請호대 惟願久住刹塵劫하사 利樂一切諸衆生이로다

제불약욕시열반      아실지성이권청         유원구주찰진겁        이락일체제중생

모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심을 보이고자 하시나니, 제가 이제 지성으로 

오직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고 즐겁게 하기 위하여 세간에 오래 머무시기를 권청합니다.

 

㉵ 普皆廻向 - 널리 다 회향하다

所有禮讚供養佛과 請佛住世轉法輪과 隨喜懺悔諸善根을 廻向衆生及佛道로다

소유예찬공양불      청불주세전법륜     수희참회제선근     회향중생급불도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양한 복과

부처님께서 세간에 머무시어 법륜을 굴리시기를 청하는 복과

따라서 기뻐하고 참회한 모든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불도에 회향합니다.

 

위의 글은 수희공덕과 청전법륜과 청불주세와 보개회향의 모든 공덕을 널리 다 회향한다는 내용들을 모두 함께 게송으로 거듭 설하였다. 산문은 산문대로 게송은 게송대로 그 느낌이 다르다. 

 

㉶ 常隨佛學 -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다

我隨一切如來學하야 修習普賢圓滿行호대 供養過去諸如來와 及與現在十方佛과

아수일체여래학          수습보현원만행        공양과거제여래      급여현재시방불

제가 모든 부처님 여래의 가르침에 수순하여 배우고, 보현보살의 원만행을 닦아 익혀서,

과거의 모든 여래와 현재의 시방 부처님을 공양하오며,

 

未來一切天人師하야 一切意樂皆圓滿이니 我願普隨三世學하야 速得成就大菩提로다

미래일체천인사         일체의요개원만          아원보수삼세학         속득성취대보리

미래의 모든 하늘과 인간의 스승들께 모두 다 같이 여러 가지 즐거움이 원만하도록, 

제가 널리 삼세의 배운 바에 수순하여 빨리 대보리를 성취하기를 원하옵니다.

 

㉷ 恒順衆生 - 항상 중생들을 수순하다

所有十方一切刹의 廣大淸淨妙莊嚴에 衆會圍遶諸如來가 悉在菩提樹王下하시며

소유시방일체찰     광대청정묘장엄      중회위요제여래     실재보리수왕하

시방의 모든 세계를 광대하고 청정하고 묘하게 장엄하시나니,

모든 부처님 여래를 대중 법회에서 둘러 모시어 대보리수나무 아래에 모두 앉아 계시니,

 

十方所有諸衆生을 願離憂患常安樂하야 獲得甚深正法利하야 滅除煩惱盡無餘로다

시방소유제중생      원리우환상안락         획득심심정법리        멸제번뇌진무여

시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의 근심과 걱정을 모두 여의어 항상 안락하게 하시고자, 

깊고 깊은 정법의 이익을 획득하셨나니,

온갖 번뇌가 다하여 남음이 없이 제멸하기를 원하옵니다.

 

㉸ 受持願 - 받아 지니기를 원하다

我爲菩提修行時에 一切趣中成宿命하고 常得出家修淨戒하야 無垢無破無穿漏하며

아위보리수행시     일체취중성숙명          상득출가수정계         무구무파무천루

내가 보리를 얻고자 수행할 때, 모든 갈래 가운데에서 숙명통을 이루고,

출가하여 항상 청정한 계행을 닦았나니, 때가 없고, 파괴됨이 없고, 새지 않으며,

 

天龍夜叉鳩槃茶와 乃至人與非人等의 所有一切衆生語를 悉以諸音而說法이로다

소유일체중생어      실이제음이설법     천룡야차구반다      내지인여비인등

천신들과 용, 야차, 구반다,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 한 이들 등등의

그 모든 중생들들이 쓰고 있는 말을 가지각색 음성으로 설법하시도다.

 

보현보살이 자신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온갖 수행을 한 내용들을 게송으로 말하였다. 참다운 이치의 가르침을 듣고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출판하고 널리 해설하기를 발원하는 뜻이 담겨있다. 온갖 천신이나 용왕이나 야차까지도 알아듣는 말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천차만별의 근기를 따르고 갖가지 중생들을 모두 수순한다는 수순중생의 행원이 잘 나타나있다. 불교는 첫째도 중생들을 위한 것이고 둘째도 중생들을 위한 것이고 셋째도 중생들을 위한 것이다. 부처님이나 보살들도 모두 중생들 때문에 부처님이 되고 보살이 되었다는 이치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 修行二利願 -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을 원하다

勤修淸淨波羅蜜하며 恒不忘失菩提心하야 滅除障垢無有餘하야 一切妙行皆成就하고

근수청정바라밀          항불망실보리심        멸제장구무유여        일체묘행개성취

청정한 바라밀다 꾸준히 닦나니, 항상 보리심을 잊지 않고

번뇌 업장 남김없이 소멸하고, 모든 묘한 행을 모두 성취하며,

 

於諸惑業及魔境과 世間道中得解脫하야 猶如蓮華不着水하며 亦如日月不住空이로다

어제혹업급마경      세간도중득해탈          유여연화불착수       역여일월부주공

모든 혹(번뇌)와 업과 마의 경계와 이 세간의 온갖 일에서 해탈을 얻나니,

비유하면, 연꽃에 물이 묻지 않고, 해와 달이 허공에 머물지 않음과 같도다.

 

보현보살이 지난 세상에서 여러 가지의 수행을 한 것을 나열하고 있는 글이다. 자신의 수행은 곧 자신에게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마음에 장애되는 온갖 일들, 아무리 떨쳐 버리려 해도 떠나지 않는 갖가지 집착들, 심지어 이런 저런 인연들까지 훌훌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 글에서처럼 연꽃이 물방울과 진흙에 물들지 않듯이, 해와 달이 허공중을 돌지만 허공중에 머물지 않듯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이 경문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자리행(自利行)이 곧 이타행(利他行)의 도리가 여기에 있다.

 

㉺ 成熟衆生行願 - 중생들을 성숙시킴을 원하다

悉除一切惡道苦하고 等與一切群生樂호대 如是經於刹塵劫토록 十方利益恒無盡하며

실제일체악도고         등여일체군생락          여시경어찰진겁        시방이익항무진

일체 악도의 온갖 고통을 모두 없애고, 모든 중생들에게 평등한 즐거움을 주나니,

이와 같은 티끌같이 수 많은 세계와 겁을 지나, 시방중생을 이익되게 하여 항상 다함이 없으며,

 

我常隨順諸衆生하야 盡於未來一切劫토록 恒修普賢廣大行하야 圓滿無上大菩提로다

아상수순제중생          진어미래일체겁         항수보현광대행       원만무상대보리

내가 항상 모든 중생들에게 수순하리니, 미래의 모든 겁이 다하도록

항상 보현보살의 광대한 행을 닦고, 위없는 대 보리도를 원만히 하리라.

 

보현보살이 일체의 악한 길과 온갖 고통들을 모두 없애고 중생들에게 평등하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악과 고통이 본래부터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즐거움을 준다고 하지만 즐거운 꺼리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가져다가 준다는 뜻도 아니다. 세상사와 인생사의 참다운 이치를 아는 것이 곧 악과 고통을 없애는 일이고, 세상사와 인생사의 참다운 이치를 아는 것이 곧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보현보살은 인생사의 참다운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서 사람들에게 낱낱이 깨우쳐주는 일을 하는 것이 곧 악과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보현보살은 그와 같이 중생들을 성숙시킨다.

보현보살이 설하는 게송 안에 다시 보현보살이 등장하여 보현행원과 온갖 수행을 말하는 것은 보현보살은 어느 누구의 한 사람의 보현보살이 아니다. 보현행원도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의 보현행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보현행원이기 때문에 보현행을 하는 사람은 곧 보현보살이며 보현보살은 곧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특정인으로서의 보현보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보현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8

 

(13) 행원(行願)의 수승한 공덕 (The merit and various benefits) 

㉮ 행원(行願)을 들은 공덕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滿十方無量無邊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

약유선남자선여인      이만시방 무량무변 불가설 불가설 불찰극미진수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시방에 가득한 한량없고 끝이 없으며,

불가설 불가설한 세계의 극히 미세한 먼지과 같이 

一切世界上妙七寶와 及諸人天의 最勝安樂으로 布施爾所一切世界所有衆生하며

일체세계 상묘칠보     급제인천     최승안락         보시이소 일체세계 소유중생 

수 많은 모든 세계의 가장 좋은 칠보를 보시하고,

또 모든 천상과 인간들의 가장 수승한 안락으로 모든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보시하고, 

供養爾所一切世界諸佛菩薩호대 經爾所佛刹極微塵數劫토록 相續不斷하야

공양이소 일체세계 제불보살        경이소불찰 극미진수겁          상속부단 

모든 세계의 불보살들에게 공양하기를,

불국토의 극히 미세한 먼지같은 수 많은 겁이 지나도록 계속하여 끊임이 없다면 

所得功德을 若復有人이 聞此願王하고 一經於耳한 所有功德으로 比前功德하면

소득공덕      약부유인    문차원왕          일경어이      소유공덕         비전공덕 

그 얻을 바 공덕은,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열 가지 행원을 한번 스쳐 지나듯 들은 공덕을 비교하면,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乃至優波尼沙陀分에도 亦不及一이니라

백분      불급일        천분      불급일        내지 우바니사타분       역불급일

앞의 공덕은 뒤의 공덕에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우파니사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불자들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불공드리는 일이 공덕이 가장 많은 것으로 생각을 하여 불공하는 것을 불자의 도리며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불공을 올리는 그 공물도 밥이나 떡이나 쌀이나 돈이나 과일이나 향과 초 등을 제일로 삼는다. 그와 같은 공물을 올리는 일이 공덕이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전에서는 아무리 값이 비싼 것이나 많은 금은보화와 칠보를 한량없는 부처님께 올린다하더라도 보현행원품의 열 가지 행원을 한 번 귀로 듣는 공덕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즐길 거리들을 많이 장만해서 그것을 무수한 사람들에게 보시하더라도 그것도 역시 이 보현행원의 열 가지 내용을 한 번 듣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그냥 못한 것뿐만 아니라 수 억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참다운 불공은 물질과 생활용품으로 이바지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뜻하는 바의 보현행원을 듣고 알고 실천에 옮기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처님께 불공을 올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물질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써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며 이미 잘 하고 있는 일이다. 보건복지부에서나 자선단체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은 오직 이 보현행원품에서 만이 들을 수 있는 일이며 불교에서만이 배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편 물질의 보시는 아무리 많아도 한정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끝나는 때가 있지만 이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은 한 번만 듣고 설사 실천에 옮기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것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날이 오면 물질로 보시한 공덕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불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아서 경전에서 가르치는 뜻을 바로 이해하고 진정한 불공을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 다른 여러 가지를 행한 공덕

或復有人이 以深信心으로 於此大願에 受持讀誦하며 乃至書寫一四句偈하면

혹부유인       이심신심        어차대원       수지독송      내지서사 일사구게 

速能除滅五無間業하며

속능제멸 오무간업

혹 또한 어떤 사람이 깊이 믿는 마음으로 이러한 열 가지 대서원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한 사구게만이라도 베껴 쓴다면, 다섯 가지 무간지옥에 떨어질 죄업이라도 이내 소멸될 것이며,

所有世間身心等病의 種種苦惱와 乃至佛刹極微塵數一切惡業이 皆得消除하며

소유세간 신심등병     종종고뇌와 내지불찰 극미진수 일체악업    개득소제

이 세간에서 받은 몸과 마음의 병, 갖가지 고통, 내지 온 세계의 아주 작은 티끌같이

수많은 모든 악업이 다 소멸될 것이며,

一切魔軍과 夜叉羅刹과 若鳩槃茶와 若毘舍闍와 若部多等의 飮血噉肉하는

일체마군      야차나찰      약구반다     약비사사     약부다등     음혈담육 

일체의 모든 마군, 야차, 나찰, 구반다, 비사사, 부단나 등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諸惡鬼神이 皆悉遠離하며 或時發心하야 親近守護하리라

제악귀신      개실원리         혹시발심        친근수호

모든 악한 귀신들이 모두 멀리 떠나거나, 혹은 발심하여 가까이 있으면서 수호할 것이니라.

 

이 단락에서는 열 가지의 행원이 기록된 책을 지니고 다니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한 사구게송을 쓴다면 어떠한 공덕이 있겠는가하는 사실을 밝혔다.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의 큰 죄를 지었더라도 이 열 가지 행원을 지니고 다니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베껴 쓰면 곧바로 소멸된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받은 몸과 마음의 병이나 갖가지 괴로움과 내지 온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수의 모든 악업까지도 모두 다 소멸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온갖 마군이나 야차나 나찰이나 구반다나 비사사나 부단나 따위로서 피를 마시고 살을 먹은 몹쓸 귀신들이 모두 멀리 떠나거나 아니면 좋은 마음을 내어 가까이 있으면 수호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얼마나 큰 공덕인가. 결코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보현보살처럼 열 가지 행원을 실천하며 선량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 볼 때 분명한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경전을 지니거나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까지 한다면 그것을 일러 부처님을 대신해서 경전의 가르침을 전하는 오종법사(五種法師)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중에 한 가지만 하더라도 부처님을 대신해서 경전을 가르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 행위는 곧 부처님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와 같은 일을 어찌 자선단체나 보건복지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인가. 불자가 아닌 사람이 어찌 할 수 있는 일인가. 오로지 불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대승경전을 공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대승경전을 공부하여 부처님의 올곧은 사상을 바로 배운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그 격이 다르다. 또한 기타 다른 종교인들과도 현격하게 다른 사람들이다. 불교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은 반드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 왜 그런가. 부처님을 대신해서 대승경전의 가르침을 알고 실천하는 법사(法師)이기 때문이다.

 

是故로 若人이 誦此願者는 行於世間호대 無有障礙호미 如空中月이 

시고       약인    송차원자      행어세간         무유장애        여공중월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이 행원을 독송(외우는)하는 이는

세상에 다니더라도 공중의 달이 구름을 벗어나듯 

出於雲翳하야 諸佛菩薩之所稱讚이며 一切人天이 皆應禮敬이며

출어운예        제불보살 지소칭찬          일체인천      개응예경         

 一切衆生이 悉應供養이니라

일체중생     실응공양

아무런 걸림이 없을 것이며,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칭찬하고 일체 천신들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마땅히 예경하고, 일체중생이 모두 마땅히 공양함이 되느니라.

此善男子는 善得人身하야 圓滿普賢의 所有功德하야 不久當如普賢菩薩하며

차선남자     선득인신         원만보현      소유공덕        불구당지 보현보살 

이러한 선남자는 사람의 몸을 잘 얻어, 보현보살의 공덕을 원만하게 구족하고,

오래지 않아 마땅히 보현보살 같이 

速得成就微妙色身하야 具三十二大丈夫相하며

속득성취 미묘색신         구삼십이 대장부상 

미묘한 색신을 빠르게 얻어 성취하고, 서른 두 가지 대장부의 상을 구족하리니, 

若生人天하면 所在之處에 常居勝族하야 悉能破壞一切惡趣하며

약생인천          소재지처      상거승족        실능파괴 일체악취

만약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면, 있는 곳마다 항상 수승한 가문에 태어나며, 

능히 모든 악한 갈래를 깨뜨리고

悉能遠離一切惡友하며 悉能制伏一切外道하며 悉能解脫一切煩惱호미

실능원리 일체악우         실능제복 일체외도         실능해탈 일체번뇌

능히 악한 친구를 멀리 여의며, 능히 모든 외도들을 제어하여 항복받으며,

능히 모든 번뇌를 해탈하여

如獅子王이 摧伏群獸하야 堪受一切衆生供養하리라

여사자왕       최복군수         감수일체 중생공양

마치 큰 사자가 뭇 짐승들을 항복시키듯 할 것이며, 일체중생들의 공양을 받을 것이니라.

 

불교공부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은 경전을 읽고 쓰는 것이다. 2, 3번 읽어보고는 다시 쓰는 것이 경전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많이 쓰다보면 외우는 것도 저절로 된다. 옛날 서당에서 우리 선조들이 공부하신 방법 중에 하나가 외우는 일이다. 배운 것은 반드시 외워서 바치도록 한다. 외워서 바친다는 것은 선생님 앞에서 어제 배운 부분을 책을 덮어 놓은 채 줄줄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연송(連誦)이라고 하여 그 책의 처음부터 어제 배운 곳까지 연결해서 외우는 일을 해야 한다. 부분 부분을 외우기는 쉬우나 책 한권을 모두 연결해서 외우기란 어려워서 반드시 연송을 시킨다. 연송을 해야 그 한권의 공부를 평생 동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우지 못하면 자신의 것이 못된다.

만약 이 보현행원품을 모두 외우고 다 쓸 줄 안다면 그는 보현행원사상이 몸에 배고 마음에 배어서 어디를 가나 몸과 말과 생각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보현행원사상이 몸과 마음에 무장이 되어 있다면 이 세상 어디를 다니더라도 구름에 달 가듯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모든 생명들을 부처님으로 보고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며 예배하고, 공양하고, 존중하며, 찬탄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사람의 삶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또 다른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사람이라면 그도 또한 부처님처럼 존경받고 찬탄을 받을 것이므로 어디를 가나 그들도 행복하고 자신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처님과 보살들이 모두 다 칭찬하고 천신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예경하고 일체 중생들은 반드시 공양, 공경, 존중, 찬탄한다고 하는 경전의 말씀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는 곧 보현보살이기 때문이며 보살의 중요한 열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추고 살아가는 가장 수승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선 열심히 읽고 정확하게 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경(寫經)을 하도록 해야 한다. 사경을 하는 일은 정신을 집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며 정신을 집중하여 사경을 하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마음 속 깊이 새겨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외우게 된다. 또한 어디를 가서 판서(板書)를 하더라도 자신 있게 써 내려갈 수 있어서 남을 가르치고 전해주는 일에도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又復是人은 臨命終時最後刹那에 一切諸根이 悉皆散壞하며

우부시인      임명종시 최후찰라   일체제근      실개산괴 

또한 이 사람은 임종하려는 마지막 찰나에 일체의 모든 육근(육신)이 모두 다 무너져 흩어지고, 

一切親屬이 悉皆捨離하며 一切威勢가 悉皆退失하며

일체친속      실개사리        일체위세       실개퇴실 

모든 친척 권속들을 모두 버리고 떠나게 되며, 모든 권세 또한 모두 사라지며, 

輔相大臣과 宮城內外와 象馬車乘과 珍寶伏藏인 如是一切가 無復相隨호대

보상대신      궁성내외     상마거승      진보복장    여시일체    무부상수

임금을 보좌하는 대신과 궁성 안팎의 코끼리, 말이 끄는 수레와 진기한 보배 창고 등의 모든 것을 

唯此願王은 不相捨離하야 於一切時에 引導其前하야 一刹那中에

유차원왕      불상사리         어일체시     인도기전        일찰나중 

卽得往生極樂世界하나니

즉득왕생 극락세계

다시는 따르지 아니하리니, 오직 이 대서원을 여의어 버리지 않고, 언제나 그 앞길을 인도하나니,

한 찰나 동안에 곧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함을 얻을 것이니라.

到已에 卽見阿彌陀佛과 文殊師利菩薩과 普賢菩薩과 觀自在菩薩과

도이      즉견아미타불     문수사리보살     보현보살      관자재보살 

극락에 도달하면, 즉시 아미타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자재보살, 

彌勒菩薩等이니 此諸菩薩이 色相端嚴하며 功德具足하야 所共圍遶니라

미륵보살등           차제보살    색상단엄         공덕구족         소공위요

미륵보살 등을 친견할 것이며, 이 모든 보살은 색상이 단아하고 장엄하며,

공덕을 구족하였나니, 함께 아미타불을 둘러앉아 있을 것이니라.

 

사람에게서 참다운 재산은 금생에 수용하고 다음 생에까지, 또 그 다음 생에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재산이라야 자신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선업의 재산도 악업의 재산도 자신의 것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따라간다. 요는 무슨 업이든 업이 따라간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글에서 말하는 것은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이다. 이 열 가지 행원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출판하고 해설하여 화엄행자, 보현행자로서 충실하게 그 할 일을 다 하는 공덕이 다음 생, 그 다음 생까지 계속 따라간다. 아무리 잘 가꾼 육신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무너지고 친척과 권속들도 뿔뿔이 떠난다. 권세와 재산과 부귀영화야 말을 해 무엇 하랴. 일체가 무상이요, 허망한 것을. 그러나 오직 자신이 지은 업은 세세생생 따라다닌다. 만반장불거(萬般將不去)요, 유유업수신(唯有業隨身)이라 하지 않았던가. 쌓아놓은 재산과 명예가 천만가지라 하더라도 한 가지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업만 따라갈 뿐이다. 그러므로 업을 잘 지어야 한다. 가장 잘 짓는 업은 바로 이 보현행원의 실천이다.

죽음을 맞이하여 모든 것이 다 떠나고 내가 지은 이 보현행원만이 진실한 재산이 되어 나의 앞길을 인도한다. 일생을 살면서 수많은 업을 지었지만 무거운 업 쪽으로 먼저 따라가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적당하게 지어서는 안 된다. 보현행원을 열심히 실천하고 그 실천을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모든 힘을 다 기울여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송장이라도 올라타고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와야 하는 것과 같은 절체절명의 심정이 되어 보현행원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와 같은 삶이라면 죽은 뒤에 무엇이 인도하여 극락세계로 가고 가서는 곧 아미타불과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관자재보살과 미륵보살 등을 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곧 최상의 삶이며, 부처님으로서의 삶이며, 극락의 삶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대로가 곧 아미타불이며 문수보살이며 보현보살이며 관자재보살이며 미륵보살이다. 달리 다른 불보살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또 달리 다른 곳에 불보살이 존재한들 자신과 무슨 상관이랴. 그러므로 자신과 함께하는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이 모두 불보살이며 내가 사는 그곳이 곧 극락세계이리라.

 

其人이 自見生蓮華中하야 蒙佛授記하고 得授記已에

기인      자견생연화중         몽불수기         득수기이 

그 사람은 스스로의 몸이 연꽃 가운데 태어나 모든 부처님의 수기 받음을 보나니,

이렇게 수기를 받은 후에는, 

經於無數百千萬億那由他劫토록 普於十方不可說不可說世界에 以智慧力으로

경어무수 백천만억 나유타겁         보어시방 불가설불가설세계    이지혜력 

무수한 백 천만 억 나유타의 세월을 지나, 널리 시방의 불가설 불가설한 세계에서 지혜의 힘으로 

隨衆生心하야 而爲利益하며 不久에 當坐菩提道場하야 降伏魔軍하고 

수중생심           이위이익        불구     당좌보리도량         항복마군 

중생심에 수순하여 이익되게 하고, 오래지 않아 마땅히 보리 도량에 앉아 마군을 항복 받고, 

成等正覺하야 轉妙法輪하야 能令佛刹極微塵數世界衆生으로 發菩提心하야

성등정각         전묘법륜         능령불찰 극미진수 세계중생      발보리심 

등정각을 이룰 것이며, 묘한 법륜을 굴리어 능히 불국토의 티끌같이 수많은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고, 

隨其根性하야 敎化成熟하며 乃至盡於未來劫海토록 廣能利益一切衆生하리라

수기근성          교화성숙        내지진어미래겁해         광능이익 일체중생

그들의 근기와 성품에 따라 교화하고 성취시키며, 내지 미래세계가 다하도록

능히 모든 중생들을 광대하고 이익되게 할 것이니라.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한 순간 한 순간의 삶이 그대로 최상의 삶이며, 부처님의 삶이며, 크게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을 밝힌 대목이다. 이것을 보현행을 실천한 이익이며 공덕이라고 한다. 그렇게 살기위해서 공부하며 불교를 믿으며 참선하며 염불하며 기도하며 돈을 벌고 사업을 한다. 인생의 지고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모든 성인들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부귀영화보다도 천만 배 더 가치가 있는 삶을 사신 길이 이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섬기며 예경하는 일과 모든 사람들을 여래와 같이 보며 그 불가사의한 무량공덕과 무량한 생명들을 끝없이 찬탄하는 일이다. 마치 법화경의 상불경(常不輕)보살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으로 예배하며 찬탄하고 섬기는 삶이 곧 최상의 삶이며 부처님의 삶이라는 사실을 거듭 거듭 가슴에 심어주는 가르침이다.

특히 수기를 받는다는 말은 사람사람이 본래부터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보증하는 가르침이다. 사람이 본래로 부처님이므로 언제나 부처님으로 살아야 한다. 부처님으로 사는 길은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이해하고 예배하고 받들어 섬기며 사는 일이다. 자신도 부처님이며 다른 사람도 부처님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여 온 세상이 모두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 된다.

 

善男子야 彼諸衆生이 若聞若信此大願王하야 受持讀誦하고

선남자      피제중생     약문약신 차대원왕        수지독송 

선남자여 저 모든 중생들이 만약 이 열 가지 대서원(행원)을 듣고, 믿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廣爲人說하면 所有功德이 除佛世尊하고는 餘無知者라

광위인설          소유공덕     제불세존             여무지자

광대하게 사람들을 위하여 펼쳐 설한다면,

그 모든 공덕은 부처님 세존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으며,

是故汝等은 聞此願王에 莫生疑念하고 應當諦受하며 受已能讀하며

시고여등      문차원왕     막생의념          응당제수       수이능독 

이러한 까닭으로, 그대들은 이 대서원을 듣거든 의심을 내지 말고, 응당 자세히 받아 들이고,

받아 들인 후에는 능히 읽고, 

讀已能誦하며 誦已能持하며 乃至書寫하야 廣爲人說이니

독이능송         송이능지          내지서사       광위인설 

읽고 나면, 능히 독송하고, 독송하면 능히 지니며, 쓰고 베껴서, 

광대하게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설하여야 하느니라. 

是諸人等은 於一念中에 所有行願이 皆得成就하며 所獲福聚가 無量無邊하야

시제인등      어일념중      소유행원      개득성취       소획복취     무량무변

이러한 사람들은 한순간에 가진 바의 모든 행원을 성취하리니,

그 얻는 바의 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을 것이며,

能於煩惱大苦海中에 拔濟衆生하야 令其出離하야

능어번뇌 대고해중      발제중생         영기출리 

皆得往生阿彌陀佛極樂世界하리라

개득왕생 아미타불 극락세계

능히 이러한 번뇌의 고해 가운데 빠진 모든 중생들을 건져내어 구제하고,

그들을 빠져나와 여의게 하고, 모두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서 왕생을 얻게 할 것이니라.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을 듣고, 믿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출판하고 남을 위하여 연설하면 그 공덕은 부처님 외에는 알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이 일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이며, 최고 최상의 일이며, 가장 값어치 있는 일이며, 가장 소중한 일이며, 가장 수승한 일이며, 가장 우수하고 빼어난 일이며, 이 일보다 더 이상 가는 일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외에는 그 공덕과 그 복덕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이다.

불자로서 보현행원품을 읽어서 아는 사람들은 많으나 이와 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슴으로 몸으로 느끼기는 참으로 어렵다. 열심히 읽고 사유하고 마음 깊이 새겨서 자신의 삶이 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보현보살마하살은 듣고, 믿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출판하고, 남을 위하여 연설하기를 당부하시고 또 당부하신 것이다.

생각해보면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보현행자가 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첫째 종이와 먹으로 된 보현행원품이라는 책자를 주머니에나 손가방에나 넣고 다니기만 해도 보현행자며 보현행원법사가 된다. 둘째 읽기만 해도 역시 보현행자며 보현행원법사가 되며, 셋째 책을 출판하여도 마찬가지로 보현행자며 보현행원법사이다. 넷째 외워도 역시 그렇고, 사경을 해도 역시 마찬가지며, 남을 위해서 설명하는 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한 가지만 해도 모두가 보현행자며 보현행원법사가 된다. 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와 같이만 살면 극락에 가지 않고도 극락과 같은 삶을 살게 되고, 다른 사람까지도 모두 같은 삶을 누리게 되리라.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7

 

(10) 항상 중생들을 수순하다(Always accommodating and adapting to all beings)

復次善男子야 言恒順衆生者는 謂盡法界虛空界十方刹海所有衆生의

부차선남자      언항순중생자     위진법계허공계 시방찰해 소유중생 

또한 선남자여, 항상 중생들의 뜻에 수순함이란, 이른바,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세계의 중생들이 

種種差別이니 所謂卵生胎生濕生化生이 或有依於地水火風而生住者하며

종종차별          소위난생태생 습생화생    혹유의어 지수화풍 이생주자 

갖가지로 차별하나니, 이른바, 卵生=알에서 태어나고, 胎生=태에서 태어나고, 

濕生=습기에서 태어나고, 化生=변화하여 태어나는 것이며, 혹은 지수화풍에 의지하여 살고, 

或有依空及諸卉木而生住者하니라

혹유의공 급제훼목 이생주자    卉 풀 훼,

혹은 허공에 의지하여 살며, 초목(풀)에 머물러 사는 등이니라.

種種生類와 種種色身과 種種形狀과 種種相貌와 種種壽量과 種種族類와

종종생류      종종색신     종종형상     종종상모     종종수량     종종족류 

갖가지 생물의 종류, 갖가지의 색신(몸), 갖가지의 형상, 갖가지의 모습, 갖가지의 수명, 갖가지 종족, 

種種名號와 種種心性과 種種知見과 種種欲樂과 種種意行과 種種威儀와

종종명호      종종심성     종종지견     종종욕락     종종의행      종종위의 

갖가지의 명호(이름), 갖가지 마음의 성품(성질), 갖가지의 지견(소견), 갖가지의 욕락(욕망),

갖가지의 뜻과 행동, 갖가지의 위의, 

種種衣服과 種種飮食으로 處於種種村營聚落城邑宮殿하니라

종종의복      종종음식        처어종종 촌영취락 성읍궁전  

갖가지의 의복, 갖가지의 음식, 갖가지의 시골 마을, 취락, 성읍, 궁전에 살며

乃至一切天龍八部人非人等과 無足二足과 四足多足과 有色無色과

내지일체천룡 팔부인비인등     무족이족      사족다족    유색무색      

내지 천신과 용, 팔부신중, 사람인 듯 아닌 듯 한 것들이며, 발이 없는 것과 두 발을 가진 것,

네 발을 가진 것과 여러 발을 가진 것,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들이며, 

有想無想과 非有想非無想이니라

유상무상      비유상비무상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 등이니라.

如是等類를 我皆於彼에 隨順而轉하야 種種承事하며 種種供養호대

여시등류      아개영입     수순이전         종종승사          종종공양 

이와 같은 등등의 종류들에게 내가 모두 수순하여, 갖가지로 받들어 섬기고, 갖가지로 공양함에 

如敬父母하며 如奉師長과 及阿羅漢과 乃至如來하야 等無有異하며

여경부모          여봉사장     급아라한     내지여래        등무유이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스승과 어른 같이 받들고,

아라한과 내지 부처님이나 다름이 없이 받들어 모시며,

 

항상 중생들의 뜻에 수순한다는 것은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 중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이 잘 표현된 내용이다. 중생들의 뜻에 수순할 줄 아는 사람은 시대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에도 수순할 줄 안다. 이미 결정된 일과 변하여가고 있는 대세(大勢)에 대해서 거역하거나 불만을 가지지 않고 잘 받아 들이고 수순하며 살줄 안다. 또한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도 잘 수순하여 거스르지 않으면서 순리대로 살줄 안다.

경전에서 말했듯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고 많은 생명체와 중생들과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 태어나는 모습과 의지하여 사는 곳도 각양각색이다. 종류는 얼마나 많으며 몸과 형상과 모양과 수명과 종족과 이름과 성질과 소견과 욕망과 뜻 등등의 차별과 가지 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사는 곳은 또 얼마나 각양각색인가. 수천 년 전에 이미 그와 같은 다종다양한 생명들이 존재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사람들 사는 모습도 옛날보다 더욱 다양해져서 생각과 주의 주장은 또 얼마나 복잡한가. 이와 같이 많고 많은 중생들의 뜻을 다 수순하겠다는 마음자세는 진정한 보살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중생들의 뜻이 한결같지 않아서 수시로 변하니, 하루에도 몇 번을 변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들의 변하는 뜻을 모두 따라준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비운 사람이 아니면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로지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오로지 중생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보살의 비원이 잘 표현된 가르침이다. 진정으로 남을 위해서 살겠다는 보살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於諸病苦에 爲作良醫하며 於失道者에 示其正路하며

어제병고      위작양의         어실도자       시기정로 

모든 병든 이들에게는 훌룽한 의원이 되고, 길 잃은 이들에게는 바른 길을 보여주고, 

於暗夜中에 爲作光明하며 於貧窮者에 令得伏藏이니

어얌야중      위작광명         어빈궁자     영득복장

어두운 밤에는 빛이 되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묻혀있는 숨은 보배를 얻게 하며,

菩薩이 如是平等饒益一切衆生하나니 何以故오 菩薩이 若能隨順衆生하면 

보살      여시평등요익 일체중생             하이고       보살 약능수순중생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을 평등하게 이익되게 하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만약 능히 중생들을 수순하게 됨은 

則爲隨順供養諸佛이며 若於衆生에 尊重承事하면 則爲尊重承事如來며

즉위수순 공양제불         약어중생     존중승사        즉위존중 승사여래 

바로 모든 부처님께 수순하여 공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만약 중생들을 존중하여 받들어 섬기면, 바로 부처님을 존중하여 받들어 섬김이 되는 것이요, 

若令衆生으로 生歡喜者면 則令一切如來로 歡喜니

약령중생         생환희자      즉령일체여래     환희

만약 중생들을 환희하게 하면, 바로 모든 부처님을 환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위에서는 갖가지의 중생들을 열거하였고, 다시 중생들의 뜻을 따라 수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갖가지로 받들어 섬긴다는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거주할 곳과 의약품까지 모두를 받들어 공양 올리는 일이다. 나아가서 세상과 인생의 존재의 원리에 대한 바른 이치까지 깨우쳐주어 소중한 삶을 의미 있고 보람되게 살도록 보살펴드리는 일이다. 그와 같이 하기를 마치 부모를 공경하듯이 하며, 스승을 받들어 섬기듯이 하며, 큰스님이나 도인들이나 성인들을 섬기듯이 하여야 한다. 나아가서 부처님을 섬기는 것과 같이 하여 하나도 다름이 없이,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한다. 자기의 자손들에게 모든 재산을 베풀어주는 일은 누구나 하는 일이다. 그러나 보살행을 하는 사람은 친지나 권속이나 지연이나 학연 등등을 분별하는 친소가 없다. 친소가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그 뜻을 수순해주는 마음을 쓴다. 

 

부처님은 왜 존재하며, 왜 존재했었는가? 또 보살들과 조사들과 일체 성인들은 왜 존재하는가? 그들은 모두 중생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불교가 존재하는 것도 중생들을 위한 것이고 일체 성인들의 가르침이 존재하는 것도 중생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중생들을 위하지 않는 부처님과 조사와 성인들과 선지식들은 있을 수도 없지만 존재할 가치도 없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보살들은 모든 일이 중생을 중심으로 하고, 중생들이 보살의 화두이다. 부처님과 같이, 조사들과 일체 성인들과 같이 오로지 중생들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보현보살을 닮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은 진정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은 중생들에게 공양 올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은 중생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부처님께 수순하는 일은 중생들을 수순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중생들을 위한 일을 곧 부처님을 위한 일이며 부처님이 하실 일을 대신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참다운 불공(佛供)은 중생들에게 공양 올리는 일이다.

성철(性徹,1912~1993)스님“참다운 불공”이라는 글에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부모입니다. 내 집에 계시는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발밑에 기는 벌레가 부처님입니다. 보잘 것 없이 보이는 벌레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머리 위에 나는 새가 부처님입니다. 날아다니는 생명들을 잘 보호하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넓고 넓은 우주, 한없는 천지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이리 가도 부처님 저리 가도 부처님, 부처님을 아무리 피하려 하여도 피할 수 없으니 불공의 대상은 무궁무진하여 미래 겁이 다하도록 불공을 하여도 끝이 없습니다. 이렇듯 한없는 부처님을 모시고 항상 불공을 하며 살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께 한없는 공양구를 올리고 불공하는 것보다, 곳곳에 계시는 부처님들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이 억 천만 배 비유할 수 없이 더 복이 많다고 석가세존은 가르쳤습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올바른 불교사상이며 부처님 마음이다. 중생들을 수순하는 일은 곧 부처님을 수순하는 일이다.

 

何以故오 諸佛如來가 以大悲心으로 而爲體故로

하이고      제불여래      이대비심       이위체고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부처님은 대비심으로 몸을 삼기 때문이니,

因於衆生하야 而起大悲하며 因於大悲하야 生菩提心하며

인어중생          이기대비         인어대비        생보리심 

중생으로 인하여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심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내고, 

因菩提心하야 成等正覺하나니라 譬如曠野沙磧之中에 有大樹王하니 

인보리심         성등정각                  비여광야 사적지중     유대수왕

보리심으로 인하여 등정각을 이루시니, 비유하면 광야의 모래 벌판 가운데 큰 나무가 있으니,

若根得水면 枝葉華果가 悉皆繁茂인달하야 生死曠野菩提樹王도 亦復如是하야

약근득수      지엽화과      실개번무                생사광야 보리수왕      역부여시

그 나무의 뿌리가 만약 물을 얻게 되면,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모두 다 무성함과 같나니,

생사의 광야의 큰 보리수 또한 이와 같느니라.

一切衆生으로 而爲樹根하고 諸佛菩薩로 而爲華果하야 以大悲水로

일체중생         이위수근         제불보살     이위화과        이대비수 

모든 중생들은 나무의 뿌리가 되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은 꽃과 열매가 되나니,

饒益衆生이면 則能成就諸佛菩薩智慧華果하나니 何以故오 若諸菩薩이 

요익중생          즉능성취 제불보살 지혜화과            하이고     약제보살 

이러한 대비의 물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면,

능히 즉시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지혜의 꽃과 열매를 성취할 수 있게 하나니, 

왜냐하면 만약 모든 보살들이

以大悲水로 饒益衆生이면 則能成就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라

이대비수      요익중생        즉능성취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고

이러한 대비의 물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면, 능히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是故로 菩提가 屬於衆生이니 若無衆生이면 一切菩薩이 終不能成無上正覺이니라

시고      보리     속어중생        약무중생        일체보살      종불능성 무상정각

그러므로 보리심은 중생들에게 있나니, 만약 중생들이 없다면,

모든 보살은 끝내 위 없는 바른 깨달음(정각)을 얻을 수 없게 되느니라.

 

불교를 흔히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지혜가 왼팔이면 자비의 실천은 오른팔이 된다. 지혜가 어머니라면 자비의 실천은 아버지가 된다. 이와 같이 현명한 지혜가 내면에 충만하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해서 자비의 실천이 행해져야 이상적인 종교가 되며 조화로운 삶이 된다. 한 인간에게 그와 같은 조화가 완벽하여 졌을 때, 그를 일러 부처님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의 화신이다. 지혜에서 표현된 진정으로 자비한 마음이 근본이 되어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들을 보면 저절로 자비심이 샘솟는다. 그들 중생들을 진리의 세계에서 살도록 하려고 보리심을 발하고 다시 보리심으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더욱더 중생들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베풀게 된다.

그러므로 실은 부처님이 부처님 된 것도 중생들 덕분이다. 불쌍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이 있어서 그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지혜와 자비를 더욱 보강하고 결국은 정각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치 자식들을 많이 둔 부모가 자식들을 모두 다 잘 먹여 살리기 위해서 재산을 많이 모으게 되고 그로 인해 부자가 되어 넉넉히 나눠줄 수 있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제도할 중생이 없다면 굳이 지혜를 닦고 자비를 기르며 정각을 이룰 필요가 없다.

제도할 중생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적 사고 때문에 제도해 줘야할 중생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는 보살들은 이와 같이 중생들을 수순하는 마음이 일상적인 생활 속에 뿌리 깊게 내려져 있어야 하리라.

 

善男子야 汝於此義에 應如是解니 以於衆生에 心平等故로

선남자      여어차의    응여시해      이어중생      심평등고 

선남자여 그대들은 이와 같은 이치를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나니,

중생들의 마음을 평등하게 한 까닭으로 

則能成就圓滿大悲하며 以大悲心으로 隨衆生故로 則能成就供養如來니라 

즉능성취 원만대비          이대비심        수중생고      즉능성취 공양여래

즉시 능히 원만한 대비를 성취하고,

대비심으로 중생들을 수순하게 한 까닭으로, 즉시 능히 부처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菩薩이 如是隨順衆生하야 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보살      여시수순중생         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들을 수순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衆生煩惱盡하야도 我此隨順은 無有窮盡이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중생번뇌진              아차수순       무유궁진      염염상속          무유간단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신어의업      무유피염

중생들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나의 이러한 수순함은 다함이 없나니,

염념이 끊어짐이 없이 계속되나니,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음이니라.

 

어떻게 진정한 자비를 실천할 수 있을까! 자비란 보통 사람들의 인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정이란 가까운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 즉 자신의 가족, 친지들, 이웃들 그리고 인연이 있어서 늘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자연스럽게 가는 단순한 정이지 자비는 아니다. 자비란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의 마음이다. 자신과 전혀 인연이 없거나, 오히려 자신을 미워하여도 어여삐 여겨서 온갖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베푸는 마음으로, 그것을 무연자비(無緣慈悲)라 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건네주는 사랑이 아니라 현명한 지혜로 밝게 관찰하여 상대에게 진정으로 이로운 길이 무엇인가를 잘 살펴서 베풀어야 한다.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듯이 불교에서는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진정한 자비를 베푸는 일을 보통의 중생들은 이해가 안 될 경우도 많다. 우리들의 잣대로 계산하는 자비와 깨어있는 눈으로 보는 자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은 손해인 것 같이 보이나 결과적으로는 큰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선행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마치 병이 든 사람을 완전하게 치료하기 위해서 수술을 하는 일과 비슷하다. 우선은 없는 상처를 일부러 만들고 칼로써 살을 베지만 그런 일을 통해서 몸속에 깊이 숨어있는 모진 병을 제거하여 결과적으로 병을 완치하는 큰 소득을 가져다주는 경우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진정한 자비는 중생들에게 마음을 평등하게 함으로써 원만한 자비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모든 중생들, 가까운 사람, 먼 사람,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등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원만한 자비이다. 진정한 자비가 이루어질 때 중생들을 자비로 수순할 수 있게 되고, 자비로 중생들을 수순할 때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이 성취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생들을 수순하는 일을 하루 이틀이나, 한 두 번 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결코 지치거나 싫어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보살의 인생이다.

 

(11) 모두 다 회향하다(Giving - The practice of making offerings.)

復次善男子야 言普皆廻向者는 從初禮拜로 乃至隨順히 所有功德을

부차선남자      언보개회향자      종초예배     내지수순   소유공덕

또한 선남자여, 널리 두루 모두 회향한다는 것은, 처음 예배하고 공경함으로부터

중생들의 뜻에 수순함에 이르기까지 있는 바 공덕을

皆悉廻向盡法界虛空界一切衆生하야 願令衆生으로 常得安樂하야 無諸病苦하며

개실회향 진법계허공계 일체중생       원령중생          상득안락        무제병고 

모두 온 법계, 허공계,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안락을 얻게 하고,

모든 병고가 없기를 원하고, 

欲行惡法은 皆悉不成하고 所修善業은 皆速成就하며 關閉一切諸惡趣門하고 

욕행악법      개실불성        소수선업        개속성취      관폐일체 제악취문         

하고자 하는 악법은 모두 이루어지지 않게 하고, 닦은 바 선업은 빨리 성취하게 하며, 

일체의 나쁜 갈래의 문은 닫아 버리며,

開示人天涅槃正路니라 若諸衆生이 因其積集諸惡業故로 所感一切極重苦果를 

개시인천 열반정로         약제중생      인기적집 제악업고    소감일체 극중고과     

인간과 천상의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은 열어 보이며,

만약 모든 중생들이 나쁜 업을 쌓아 모은 까닭으로 받게 되는 모든 지극히 중한 고통의 과보는

내가 모두 대신하여 받으며,

我皆代受하야 令彼衆生으로 悉得解脫하고 究竟成就無上菩提니

아개대수          영피중생          실득해탈        구경성취 무상보리

내가 모두 대신하여 받으며, 그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해탈을 얻게 하고,

마침내는 구경의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이니,

菩薩의 如是所修廻向이 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보살     여시소수회향      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보살이 이와 같이 닦은 바를 회향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衆生煩惱盡하야도 我此廻向은 無有窮盡이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중생번뇌진              아차회향     무유궁진        염염상속         무유간단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신어의업      무유피염

중생들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나의 이러한 회향은 다함이 없나니,

염념이 계속하여 끊어짐이 없이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어떤 일을 하던지 회향이 가장 중요하다. 용두사미가 되는 것 보다 사두용미가 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시작하여 작게 끝나는 것보다, 작게 시작하여 크게 끝나는 것이 더욱 좋은, “유종의 미”와 같다.

불교에서의 모든 가르침은 선행을 행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그 선행의 결과를 자신이 혼자 누리기를 바라지는 않고,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을 회향이라 한다. 회향하지 않는 선행은 이기적이고 소승적인 선행이다. 불도를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른 경우도 마찬가지로, 도를 닦아 자신만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닦은 도를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회향해야 한다.

흔히들 오랫동안 많이 쌓은 뒤에 나누어도 주고 중생제도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하루를 수행했으면 하루 한 것만치만 베풀면 된다. 경전 한 줄을 배웠으면 한 줄 공부 한 것만 베풀면 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하지 않던가. 베푸는 것과 구하는 것,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진정한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다. 예컨대 돈을 버는 일과 흡사하다. 1만원을 벌었으면 1만원을 모두 다 투자를 해야 10만원도 되고 100만원도 되는 길이 빨라진다. 아예 100만원이 된 뒤에 투자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사람은 100만원이 되는 길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100만원이 되더라도 투자를 하거나 나누어 주는 일이 용이하지가 않다.

공부가 다 된 뒤에 전법(傳法)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평생을 전법 한 번 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러나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만이라도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평생 동안 전법을 잘 하게 되고, 스스로의 공부도 전법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하게 된다.

한국의 불교가 큰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점이다. 2만여 명이나 되는 불교의 전문가인 승려가 포교를 하거나 전법활동을 하는 사람은 고작 몇 명밖에 안 된다. 공부가 가득 차기를 기다리고 있다. 30년 40년이 되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을 모른다. 부처님이 비유하신 마을 사람들에게 우유를 대접하려던 예와 같이, 매일 매일 우유를 짜던 사람이 그날그날의 우유는 너무 적어서 이웃집에 나누어 줄 수가 없으니 한 달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짜서 온 동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리라고 마음먹고 기다렸다가 한 달 후에 우유를 짜려니 우유는 이미 다 말라버리고 없었다는 이야기다.

경전에서 말하는 온갖 선행을 중생들에게 모두 다 회향하고 그 회향마저 역시 중생들에게 온갖 이익과 행복이 되도록 서원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불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삶의 길이며 아름다운 인생의 본보기인 보살은 반드시 실천해야할 덕목이다. 이렇게 회향하는 일이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나더라도 끝나지 않아야 하니, 보살은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12) 이익을 밝히다(Benefiting and Bringing happiness to all sentient beings)

善男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大願이 具足圓滿이니 若諸菩薩이

선남자     시위보살마하살      십종대원     구족원만           약제보살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십종 대서원을 구족하게 원만케 함이니,

於此大願에 隨順趣入하면 則能成熟一切衆生하며 則能隨順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어차대원      수순취입          즉능성숙 일체중생      즉능수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만약 모든 보살이 이러한 대서원을 수순하여 나아가면, 즉시 능히 모든 중생들을 성숙하게 하며,

즉시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수순하게 되며, 

則能成滿普賢菩薩諸行願海하리니 是故로 善男子야 汝於此義에 應如是知니라

즉능성만 보현보살 제행원해            시고     선남자     여어차의     응여시지

즉시 능히 보현보살의 모든 수행과 원력을 원만히 이루어 만족하게 되리니,

이러한 까닭으로 선남자여, 그대는 이러한 이치를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화엄경은 불교의 결론이고 보현행원품은 화엄경의 결론이다. 즉 보현행원품을 간략하게 줄여서 말하면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이며,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은 불교의 총 결론이다. 불교가 아무리 복잡하게 설명되어도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만 잘 알고 몸소 실천에 옮기면 된다.

왜냐하면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불교를 묻고 그 53명의 선지식들은 당신들이 평생의 수행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선재동자에게 모두 다 설명하고 있는 것에서 우리는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데 선재동자의 질문과 선지식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보살행을 묻고 보살행을 대답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이 불교의 결론이라고 단언하는 까닭은 그 많은 보살행에 대한 설명도 결국은 여기에서 밝히고 있는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으로 압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큰 서원을 수순해서 나아가면 능히 모든 중생들을 성숙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곧 최상의 깨달음을 수순하게 되며 능히 보현보살의 수행과 원력을 원만하게 성취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십대행원을 실천하는 이익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를 믿고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실천하는 이익이 바로 이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불교를 믿는 것이며, 이 일을 위해서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견성(見性)하고 성불(成佛)해서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하면 보살행을 행하자는 것이며, 그 보살행이란 여기에서 밝힌 열 가지 행원이다. 모든 불자는 이러한 이치를 알아야 한다.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6

 

(8)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무시기를 청하다

(Requesting that the Buddhas abide in the world)

復次善男子야 言請佛住世者는 所有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一切佛刹極微塵數

부차 선남자     언청불주세자     소유진법계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 극미진수

또한 선남자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무시기를 청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에 계시는 모든 불국토(세계)의 극히 미세한 미진과 같이 수 많은 

諸佛如來가 將欲示現般涅槃者와 及諸菩薩聲聞緣覺有學無學과

제불여래      장욕시현 반열반자    급제보살 성문연각 유학무학

부처님께서 장차 반열반에 드심을 나타내 보이시고자 하시거나,

모든 보살과 성문과 연각과 배우는 이=有學와 배울 것 없는 이=無學과 

乃至一切諸善知識을 我悉勸請하야 莫入涅槃하야

내지일체 제선지식     아실권청        막입열반 

내지 일체의 모든 선지식들에게 내가 모두 권하여 열반에 드시지 말고, 

經於一切佛刹極微塵數劫토록 爲欲利樂一切衆生이니

경어일체불찰 극미진수겁        위욕이락 일체중생

모든 불국토의 미세한 미진과 같이 수 많은 겁을 지나도록

일체중생들을 이익되고 즐겁게하여 주시기를 청함이니,

如是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衆生煩惱盡하야도 我此勸請은

여시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아차권청 

이와 같이 하기를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중생들의 번뇌가 다 할지라도, 나의 이러한 권하여 청함은 다함이 없나니,

無有窮盡이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무유궁진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염념이 계속하여 잠깐도 끊어짐이 없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음이니라.

 

그 많고 많은 사람 부처님들과 일체 생명 부처님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보살피며, 오래 오래 사시도록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돌보아 드리고 의료와 약을 제공하는 일은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보살의 필수 덕목이다. 범망경(梵網經)에는 병든 사람을 보고 간병(看病)하지 않으면 보살계를 범하는 것이라고까지 경고하였다. 

어떤 생명이든 생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극히 존귀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죽음을 앞 둔 어떤 사형수가 남긴 글이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며 우리들을 감동시킨다. 감방 한 모퉁이에서 꾸물대는 작은 벌레를 보고 “차라리 저 보잘 것 없는 미물이 되어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放生)을 권장한다. 방생을 하면 내 생명도 건강해지고 연장이 된다고 가르친다. 미물까지도 방생을 하여 죽을 목숨을 살리는데 하물며 사람 부처님의 병을 낫게 하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 수 있게 하는데 구체적인 도움을 준다면 그것은 진정 큰 복이 되고 아름다운 보살의 삶이 되리라. 한두 번으 하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날 때까지 내가 가진 모든 재산 모든 능력 모든 시간을 다 기우려서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9)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다(Dedication to practicing Dharma)

復次善男子야 言常隨佛學者는 如此娑婆世界毘盧遮那如來가

부차선남자      언상수불학자     여차사바세계 비로자나여래 

다시 또 선남자여, 부처님을 따라서 배운다는 것은 이 사바세계의 비로자나부처님께서 

從初發心으로 精進不退하사 以不可說不可說身命으로 而爲布施하며

종초발심          정진불퇴         이불가설불가설신명          이위보시 

초발심부터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으시고, 불가설 불가설의 몸과 목숨으로 보시하였으며,

剝皮爲紙하고 析骨爲筆하고 刺血爲墨하야 書寫經典을 積如須彌하시니

박피위지          석골위필        자혈위묵          서사경전      적여수미  剝 벗길 박, 

살 가죽을 벗겨 종이로 삼고, 뼈를 발라 붓을 삼고, 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

경전을 베껴 쓰기를 수미산 높이같이 하였으니,   

書寫서사=글씨를 원본과 똑같게 베낌

爲重法故로 不惜身命이어든 何況王位와 城邑聚落과 宮殿園林과

위중법고       불석신명            하황왕위     성읍취락    궁전원림 

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으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니, 하물며 임금의 자리나

성읍, 취락, 궁전, 정원 등의 

一切所有와 及餘種種難行苦行이리오

일체소유      급여종종 난행고행

모든 가진 바와 그 외의 갖가지 난행과 고행은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닮고자 하는 이가 부처님이다. 막연하게 부처님이 좋고 부처님이 살아 온 생애가 좋고 그 생애 중에서 하나하나가 모두 감동적이어서 좋다. 그래서 부처님이 하신 일이면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삶이 있게 된다.

무엇보다 부처님으로서 부처님이 된 것은 보시를 많이 행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6바라밀에도 그 첫째가 보시며, 사섭법(四攝法) 중에서도 그 첫째가 보시다. 무엇을 베풀든 무상으로 베풀어 주는 일은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과 재물과 산해진미가 모두 임금의 것이다. 그러나 시골의 촌부가 정성을 드려서 장만해온 보잘것없는 곶감 몇 개라도 그것을 갖다 준 사람이 어여쁘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임금의 자리에서 곶감 몇 개가 무엇이 그리 귀하겠는가 만은 주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베푸는 일은 그와 같이 중요하다.

법을 아껴서 보시하지 못한다면 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며 성불이니 견성이니 하는 것은 모두가 공염불에 불과하다.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고 아름다운 보살의 삶이 아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법을 위해서 보시하는 일을 연습하다보면 자신의 재산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서 법을 펴는 일에 큰 보시도 할 수 있게 되며 아름다운 보살행의 실천도 어렵지 않은 때가 멀지 않을 것이다.

 

乃至樹下에 成大菩提하사 示種種神通하며 起種種變化하며

내지수하      성대보리         시종종신통          기종종변화 

또한 보리수 아래에서 대보리(큰 깨달음)를 이루심과 갖가지 신통을 보이고,

갖가지의 변화를 일으키고, 

現種種佛身하사 處種種衆會하사대 或處一切諸大菩薩衆會道場하며

현종종불신          처종종중회            혹처일체 제대보살 중회도량 

갖가지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시어 온갖 대중이 모인 법회에 계시나니,

혹은 일체 모든 대보살 대중 법회 도량에 계시고, 

或處聲聞及辟支佛衆會道場하며 或處轉輪聖王小王眷屬衆會道場하며

혹처성문 급벽지불 중회도량          혹처전륜성왕 소왕권속 중회도량 

혹은 성문과 벽지불의 대중 법회 도량에 계시고,

혹은 전륜성왕과 소왕들이나 그 권속들의 대중 법회 도량에 계시고,

或處刹利及婆羅門長者居士衆會道場하며 乃至或處天龍八部人非人等衆會道場하사

혹처찰리 급바라문 장자거사 중회도량        내지혹처천룡팔부 인비인등 증회도량  

혹은 찰제리와 바라문과 장자와 거사들의 대중 법회 도량에 계시고,

내지 혹은 천신들과 용과 팔부 신중과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이들이 모인 도량에까지 계시었나니,

處於如是種種衆會하야 以圓滿音으로 如大雷震하사 隨其樂欲하야 成熟衆生하며

처어여시종종중회          이원만음         여대뢰진        수기낙욕         성숙중생 

이와 같은 갖가지 대중 법회에서 원만한 음성이 커다란 천둥소리와 같으며,

그들의  즐겨하고 좋아하는바에 따라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乃至示現入於涅槃이어시든 如是一切를 我皆隨學하니라

내지시현 입어열반                여시일체      아개수학

마침내 열반에 듦을 보이시는, 이와 같은 온갖 일을 내가 모두 수순하여 배웠느니라.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일 중에서 깨달음을 이룬 일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방법이든 인생과 일체 존재에 대한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이라는 밝은 안목이 없다면 불교를 배우고 공부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깨달음의 안목을 갖추고 나면 세상이 온통 꽃과 금은보화로 꾸며져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보인다. 화엄경 첫머리에도 “부처님이 처음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나니 그 땅은 견고하여 모두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라고 하였다.

여러 가지 신통과 변화와 몸을 나타내는 등등의 일은 모두가 깨달음의 안목에 의한 긍정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깨달음의 안목은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많은 대중들이 모인 도량인 보살들이 모인 도량과 성문들이 모인 도량과 벽지불들이 모인 도량과 전륜왕, 작은 왕, 찰제리와 바라문과 장자와 거사들이 모인 도량이나, 내지 천신들과 용과 팔부 신중과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 한 이들이 모인 도량에 법을 설하여 중생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일이다. 부처님은 6년간의 고행과 49년간의 설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화하였다. 위에서 열거한 갖가지의 도량들이 일생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가르침을 펴고 깨우침을 전하였던 그 법석(法席)이다.

부처님의 일생에서 만약 설법하신 것을 뺀다면 아무 것도 없다. 팔만대장경이라는 위대한 가르침도 수많은 제자들도 모두가 설법을 통하여 성취한 업적이다. 부처님을 따라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배운 것만치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불자(佛子)들의 가장 큰 약점이 남을 가르쳐주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겸손이 아니라 불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일이며, 그동안 들은 법문에 대한 빚을 지는 일이다.

부처님에게 정성을 다하여 불공을 올리는 일은 몇 푼의 금전과 공양미와 꽃이나 향이나 초 등등으로써 할 일을 다 하였다고 생각해서는 부족하다. 부처님의 식성은 법공양이다.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일 중에 가장 하기 쉽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설법이다.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참다운 이치를 사람들에게 깨우쳐주는 일은 보살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일이다. 법을 전하는데 있어서 경전의 가르침이 어려우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인과의 법칙만이라도 가르치면 될 것이다.

마승(馬勝)비구가 사리불과 목건련을 교화할 때에도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소멸한다. 우리 부처님 큰 사문(沙門)께서는 항상 이와 같은 이치를 설하십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존재의 이치에 눈을 뜨게 하여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았던가.

 

如今世尊毘盧遮那하야 如是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一切佛刹所有塵中

여금세존 비로자나        여시진법계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 소유진중

지금의 비로자나 세존과 같이 이와 같은 법계와 허공계가 다하도록

시방 삼세 모든 불국토에 있는 미진 속의 

一切如來도 皆亦如是어든 於念念中에 我皆隨學이니

일체여래      개역여시         어염염중     아개수학

모든 부처님들 또한 다 이와 같이 하신 것을 염념 가운데 내가 모두 수순하여 배우나니,

如是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衆生煩惱盡하야도 我此隨學은

여시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아차수학 

이와 같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중생들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나의 이러한 수순하여 배움은 

無有窮盡이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무유궁진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다함이 없나니, 염념이 계속되어 끊어짐이 없이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에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음이니라.

 

비로자나 부처님이라는 이름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이야기 하였고, 그 생애를 모두 따라 배운다고 하였다. 불교의 경전에는 부처님이 무수히 등장하나 그것은 모두가 경전상에 등장하는 부처님이다. 그 여러 부처님들의 모델은 석가모니부처님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 그대로 과거의 부처님도 미래의 부처님도 다 그와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예불문에도 “우리들의 근본스승[是我本師]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라.”고 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은 경전상에 등장하는 모든 부처님들의 근본 부처님인 셈이다. 아무튼 그 많고 많은 부처님들의 아름다운 삶을 따라 배우는 것은 보살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화엄경의 근본정신이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 이 셋이 차별 없이 같다고 하였으니 부처님을 보는 시각이 보다 더 넓어야하고 전체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큰 눈과 넓은 안목으로 모든 사람, 모든 생명, 일체 존재에게서 배울 것을 찾아 낱낱이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별한 부처님만 찾는 생각도 잘못이지만 그와 같은 특별한 부처님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 사람들에게서 훌륭한 점을 배우는 일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심지어 바위에게는 그 굳은 것을 배우고, 소나무에게는 늘 푸른 지조와 고상함을 배우고, 대나무에게는 그 곧은 것을 배우고 바다에게는 드넓음을 배우고, 허공에게는 텅 빈 마음을 배우고, 흘러가는 구름에게는 그 변화를 배운다. 눈을 뜨고 배울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낱낱이 배울 점이요 곳곳이 스승이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배우기를 청한 일도 또한 그와 같은 맥락이리라.

이러한 마음가짐을 하루나 한 달로 끝나지 않고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나더라도 나의 이 따라서 배우는 일은 끝나지 않고 염념이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늘 남을 따라 배우는 자세와 같은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보살로서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5

 

(5) 업장을 참회하다(Repenting for Karmic hindrances)

復次善男子야 言懺除業障者는 菩薩이 自念호대

부차 선남자     언참회업장자       보살   자념 

또한 선남자여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我於過去無始劫中에 由貪瞋癡하야 發身口意하야 作諸惡業이 無量無邊하니

아어과거 무시겁중     유탐진치        발신구의         작제악업     무량무변 

내가 과거 세상 오랜 겁=無始劫 가운데 탐내고 성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신구의의 업을 지은 것이 무량무변하였나니,

若此惡業이 有體相者댄 盡虛空界에 不能容受리라

약차악업      유체상자     진허공계      불능용수

만약 이러한 악업들이 체가 있고, 형상이 있다면,

온 허공계를 다할지라도 능히 그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리라.

我今悉以淸淨三業으로 徧於法界極微塵刹一切諸佛菩薩衆前하야

아금실이 청정삼업         변어법계 극미진찰 일체제불 보살중전

내가 이제 이러한 청정한 삼업으로 법계에 두루한 아주 미세한 티끌같이

수 많은 세계의 모든 불보살들 앞에

誠心懺悔하고 後不復造하야 恒住淨戒一切功德이라하니라

성심참회         후불부조          항주정계 일체공덕

지성으로 참회하고 이후로 다시는 악한 업을 짓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계율의 모든 공덕에 머물리라.’하는 것이니라.

 

如是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衆生煩惱盡이면

여시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이와 같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중생들의 번뇌가 다하면, 

我懺乃盡이어니와 而虛空界와 乃至衆生煩惱가 不可盡故로 我此懺悔도

아참내진                  이허공계    내지중생번뇌      불가진고     아차참회 

나의 참회도 다하려니와, 이러한 허공계와 중생들의 번뇌가 다할 수 없는 까닭으로

나의 이러한 참회도 

無有窮盡이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무유궁진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다함이 없나니, 생각 생각마다 계속하여 잠깐도 끊임이 없나니,

몸과 말과 뜻으로=身口意 하는 일에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음이니라.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있어서 하는 참회만은 아니다. 자신의 업장과 다른 사람의 업장까지 모두 다 참회한다. 세상이 이처럼 어렵고 힘들고 고통이 많은 원인이 대개는 사람들이 악한 업을 지어서 돌아오는 결과다.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 더 가지려고 탐욕을 부려서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나라를 빼앗고, 권력을 빼앗느라고 숱한 악업을 거침없이 짓는다. 인류역사에 벌어진 모든 전쟁은 더 가지려는 탐욕에서 시작되었다. 탐욕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의식주가 충분하건만 더 가지려고 막무가내로 자연을 훼손하여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피해는 또 얼마인가.

사람관계에서의 싸움이나 전쟁이 대개는 탐욕이 원인이지만 때로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일어나는 싸움과 전쟁도 적지 않다. 전쟁에 소모되는 인명과 물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나라와 나라사이가 그렇고 사람과 사람사이도 그렇다. 그로 인하여 저지르는 악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찍이 당신의 고국 카필라성을 침범하여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은 이웃나라가 있었건만 마음을 텅 비우고 맞서 싸우지도 않았고 원한을 품거나 원수를 갚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참고 견디고 용서하는 것만이 해결의 열쇄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이다.

탐욕과 분노 못지않게 어리석음이 또한 악업을 짓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리석음이란 지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 실은 탐욕을 부리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음 때문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도 없고 분노도 없다. 모든 재산도 권력도 부귀영화도 그 근원을 알며, 모든 존재의 근본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으므로 결코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면 모든 악업의 근본 원인은 어리석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어리석어서 남의 말이 먹히지 않거나 도대체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쇠말뚝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악업을 지을 수밖에 없다.

악업을 짓는 데는 몸과 말과 생각, 이 셋이 모두 동원이 된다.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탐진치(貪瞋癡)를 부려 갖은 악업을 다 짓는다. 내가 지었거나 남이 지었거나 그 지은 악업이 만약 형상이 있다면 얼마나 클까. 경전에서 말한바 대로 저 드넓은 허공으로도 그것을 다 수용하지 못하리만치 크고 많으리라. 그것을 본래로 청정하여 텅 비어 없는 신구의 삼업으로 참회한다고 한 것은 신구의의 세 가지도 텅 비어 없으며, 그 셋이 짓는 업도 또한 텅 비어 없는 도리를 아는 일이다.

경전에 말하기를 “죄업이란 자성이 없는데 다만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것도 궁구해보면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죄업의 근본 바탕인 마음이 근본 실체가 없다면 실체가 없는 것 위에 건립된 죄업이 또한 존재할 수 없는 이치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죄업도 없고 마음도 없어서 모두가 청정하고 텅 비어 공적한 그 무엇뿐이다. 이것이 사람 사람들의 본래의 참 모습이다. 없는 죄업을 참회할 것이 없지만 굳이 참회라고 한다면 이것이 참다운 참회라고 할 것이다[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참회가 없는 참회를 무수한 부처님과 보살대중 앞에서 이 몸과 이 마음을 다해서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하는 것, 이것이 또한 자신을 철저히 관리할 줄 아는 아름다운 보살의 쉼 없는 정진이요 생활이다.

 

(6)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다(Rejoicing in the meritorious deeds of sentient beings)

復次善男子야 言隨喜功德者는 所有盡法界虛空界 十方三世一切佛刹

부차선남자      언수희공덕자는 소유진법계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

또한 선남자여, 공덕에 수순하여 기뻐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 모든 불국토의

極微塵數諸佛如來가 從初發心으로 爲一切智하사 勤修福聚하야 不惜身命하고

극미진수 제불여래     종초발심          위일체지         근수복취        불석신명 

극히 미세한 미진과 같이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들의 초발심으로부터 일체지를 위하여

부지런히 복을 닦음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經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劫토록 一一劫中에 捨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

경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겁         일일겁중      사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 

불가설 불가설 불국토의 극히 미세한 미진과 같은 수 많은 겁 동안,

낱낱의 겁 가운데, 불가설 불가설 불국토의 극히 미세한 미진과 같이 수 많은 

頭目手足하야 如是一切難行苦行으로 圓滿種種波羅蜜門하고 證入種種菩薩智地하야 

두목수족          여시일체 난행고행        원만종종 바라밀문         증입종종 보살지지

머리와 수족을 보시하였으며, 이와 같은 온갖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갖가지의 바라밀문을 원만하고, 갖가지 보살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 

成就諸佛無上菩提와 及般涅槃에 分布舍利한 所有善根을 我皆隨喜하며

성취제불 무상보리     급반열반      분포사리    소유선근      아개수희

모든 부처님의 가장 훌륭한 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였으며, 열반에 든 뒤에는

그 사리를 나누어 분배하였나니, 있는 바 모든 선근을 내가 모두 수순하여 기뻐하였으며,

及彼十方一切世界六趣四生一切種類의 所有功德을 乃至一塵이라도 我皆隨喜하며 

급피시방 일체세계 육취사생 일체종류    소유공덕      내지일진           아개수희

또한 시방 모든 세계의 여섯 갈래에서 태어나는 네 가지=胎卵濕化의 모든 종류들이

지은 바 공덕과 내지 한 개의 먼지만한 것이라도 모두 수순하여 기뻐하며,

十方三世一切聲聞과 及辟支佛인 有學無學의 所有功德을 我皆隨喜하며

시방삼세 일체성문     급벽지불     유학무학     소유공덕       아개수희

시방 삼세의 모든 성문, 벽지불, 배우는 이=有學와 배울 것 없는 이=無學들의

온갖 공덕을 내가 모두 수순하여 기뻐하며,

一切菩薩의 所修無量難行苦行으로 志求無上正等菩提하는

일체보살      소수무량 난행고행       지구무상정등보리 

廣大功德을 我皆隨喜니

광대공덕      아개수희

모든 보살이 한량없는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으면서 무상정등각의 보리를 구하는,

광대한 공덕을 내가 모두 수순하여 기뻐하며,

如是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衆生煩惱盡하야도

여시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이와 같이 하여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중생들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我此隨喜는 無有窮盡이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아차수희      무유궁진         염염상속          무유간단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신어의업      무유피염

나의 수순하는 기쁨은 다하지 않으리니, 생각과 생각이 계속되어 끊어짐이 없이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이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음이니라.

 

남의 공덕이나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같이 기뻐하고 칭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그래서 보살이 실천해야할 덕목 중에 들어간다. 

보현행원품에서 함께 기뻐하고 찬탄해야할 대상을 열거하였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다 들고 있다. 불교에서 모든 생명체라면 4성(聖) 6범(凡)과 4생(生)을 말한다. 부처님과 보살과 연각과 성문이 4성(聖), 즉 성인에 들어가는 분들이다.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가 6범(凡), 즉 범부의 부류이고,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 4생(生)이다. 부처님으로부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들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기뻐하고 찬탄하라는 내용이다.

먼저 석가모니부처님의 역사적 생애를 공부하여 그 어렵고 훌륭했던 삶을 찬탄한다. 또한 경전에서 나타난 부처님의 세세생생의 수행을 공부하여 그 자세한 내용들을 일일이 찬탄한다. 보현행원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처님에 대한 뛰어난 점들은 역사적인 석가모니부처님을 넘어서 사람 사람들의 내면에 이미 갖추고 있는 본래의 부처님 능력과 공덕을 찬탄한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6년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님이 되고 보니 실은 수행이란 것을 하지 않고도 이미 사람 사람들이 다 갖추고 있는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화엄경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서 이렇게 토로하였다.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어느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지 않은 이가 없는, 본래로 이미 부처님이나, 그 사실을 모를 뿐이구나. 마치 자기의 주머니 속에 수 억만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듯이. 이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음과 망상과 집착만 없다면 온갖 위대한 지혜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6조 혜능(慧能)대사도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마음이 밝아져서 일체 만법이 자신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음을 알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자성이 수행하지 않더라도 본래 저절로 청정하다는 사실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수행하지 않더라도 본래로 불생불멸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짐작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 안에 온갖 지혜와 복덕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내 어찌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들 보통 사람들도 모두가 본래부터 완전무결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찬탄하고 또 찬탄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와 같은 의미의 부처님뿐만 아니라, 실은 모든 존재 모든 생명이 다 그와 같은 불가사의한 내용을 갖추고 있으며 모두가 한결 같은 존엄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찬탄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성문, 연각, 보살이야 말 해 무엇 하며, 4생(生) 6취(趣)가 모두 다 하나 같이 지극한 존엄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찬탄하여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해서 찬탄하여야 할 대상들은 내 가족, 내 친지, 내 이웃, 내 도반 등등 나와 인연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모든 면면들을 깊이 이해하고 수용하여 언제나 부처님으로 찬탄하고 공경하며 더불어 살아갈 때 그들도 행복하고 나 또한 행복하리라. 그래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보살의 인생에서 꼭 실천해야하는 것이 남의 공덕을 찬탄하는 일이다. 그래서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 때까지 쉼 없이 찬탄하리라.

 

(7) 설법하여주기를 청하다(Requesting the turning of the Dharma wheel)

復次善男子야 言請轉法輪者는 所有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一切佛刹極微塵中에

부차선남자      언청전법륜자    소유진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 극미진중 

또한 선남자여, 설법(법륜 굴리기)을 청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 모든 불국토(세계)의 극히 미세한 미진 가운데 

一一各有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廣大佛刹하며

일일각유 불가설불가설불찰 극미진수 광대불찰

그 하나 하나마다 각각 불가설 불가설 불국토(세계)의

극히 미세한 미진과 같은 수 많은 광대한 불국토가 있으며,

一一刹中에 念念有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一切諸佛이 成等正覺하사

일일찰중      염염유불가설 불가설불찰 극미진수 일체제불  성등정각

그 낱낱의 국토 가운데 잠깐잠깐 동안에 불가설 불가설한 극히 미세한 미진과 같은 불국토에서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정등각을 이루시어,

一切菩薩海會가 圍遶어든 而我悉以身口意業의 種種方便으로 殷勤勸請하야

일체보살해회      위요         이아실이 신구의업     종종방편        은근권청 

모든 보살 대중들이 둘러앉아 있나니, 내가 모두 신구의 업과 갖가지 방편으로

轉妙法輪이니 如是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전묘법륜          여시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미묘한 법문을 굴리시기를 은근히 청함이니,

이와 같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衆生煩惱盡하야도 我常勸請一切諸佛하야 轉正法輪은 無有窮盡이니

중생번뇌진               아상권청 일체제불      전정법륜     무유궁진.

중생들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내가 항상 일체 부처님께 정법을 설하여주시기를 

청함은 다함이 없을 것이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염념이 계속되어 끊어짐이 없이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음이니라.

 

이 세상에는 많고 많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계시고, 많고 많은 선지식과 스승님들이 계신다. 그 많은 불보살과 선지식들에게 언제나 가르침을 청하여 무엇이든 배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 발전과 향상에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나 공부와 수행에 뜻이 있는 사람들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화엄경의 선재동자다. 선재동자는 그 유명한 53명의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면서 숱한 고행과 난행을 겪으면서 자기 향상과 수행을 쌓아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선지식을 만날 때 마다 훌륭한 가르침을 듣고 수행을 쌓아가지만 결코 지치거나 싫어하지 않고 다음의 선지식을 소개받는다. 소개를 받은 선지식은 반드시 찾아가서 새로운 가르침을 듣는다. 그러다가 마지막 미륵보살을 만나서는 미륵보살이 손가락을 한번 퉁기는 사이에 그동안 52명의 선지식에게서 일생동안 배운 모든 가르침을 다 잊어버린다. 그래서 미륵보살은 맨 처음 만났던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서 그동안 배운 공부와 쌓은 수행을 다시하기를 지시한다. 그 말씀을 듣고 선재동자는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 그대로 문수보살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밟아 온 과정을 새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53명의 선지식은 스승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의심스런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삿된 종교를 믿는 외도가 있는가 하면 기생도 있고 어린 사람도 있고 바라문도 있고 비구 비구니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 있다. 그래도 그들에게 배울 것을 다 배우고 한 번도 싫증을 내지 않는다. 이러한 것이 수행하기를 마음먹은 사람으로서, 또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보살로서 당연히 걸어 가야할 길이며 덕목이다.

사람들은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배우기를 좋아해서 무엇이나 묻기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누구에게나 물으면 가르쳐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자님도 아랫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마음이 있었기에 천하의 공자가 된 것이리라. 하물며 인류 최고의 가르침,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묻고 가르쳐주기를 간청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태도라고 하겠다.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4

 

(4) 널리 공양하다(Extensive cultivation of offerings)

㉮ 꽃과 향과 등불로 공양하다

復次善男子야 言廣修供養者는 所有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

부차선남자      언광수공양자      소유진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또한 선남자여, 광대한 공양을 닦음이란,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의 

一切佛刹極微塵中에 一一各有一切世界極微塵數佛하며 一一佛所에

일체불찰 극미진중    일일각유 일체세계 극미진수불        일일불소 

모든 불국토의 극히 미세한 티끌 가운데, 하나 하나마다 각각 모든 세계의 극히 미진수와 같은

부처님이 계시고, 하나 하나의 부처님의 처소마다 

種種菩薩海會가 圍遶어든 我以普賢行願力故로 起深信解하며

종종보살해회      위요          아이보현행원력고     기심신해 

갖가지의 보살대중들이 둘러싸고 있나니, 나의 이러한 보현보살의

수행과 서원의 힘인 까닭이며, 깊은 믿음과 이해를 일으켜,

現前知見하야 悉以上妙諸供養具로 而爲供養이니라

현전지견           실이상묘 제공양구   이위공양

지견이 앞에 나타나나니, 모두 이러한 높고 묘한 공양구로 공양함이로다.

 

널리 공양하는 덕목이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예경하고, 다음은 찬탄의 인사말로 상대를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게 해주는 일이고, 다음은 말에 끝나지 않고 반드시 무엇인가를 가지고 공양하는 일이다. 부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부처님이 좋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고 부처님의 도량이 좋아서 다닌다.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 좋은 것을 나누어주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든지 건네줄 것을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음식도 좋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도 좋고 어느 사찰의 불사에 대한 소식도 좋고 합장주(合掌珠) 하나라도 좋지만 불자는 당연히 법공양(法供養)을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법공양에 대해서는 뒤에 여러 가지가 소개 되겠지만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작은 책자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필자(무지스님)는 강원의 학인들에게 늘 당부하기를 은사(恩師)스님을 뵙기 위해서나 어른들을 찾아갈 때는 빈손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한다. 금정산의 돌 하나 나무 한 토막이라도 좋지만 법공양이 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공양 올린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경전에 근거한 일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법공양이 공양 중에는 최상의 공양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 부처님들을 만나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경전에서는 “온 법계 허공계의 시방삼세 모든 세계의 먼지 속에 낱낱이 모든 세계의 먼지 수처럼 많고 많은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였으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 부처님부터 공양해야 한다. 내 가족과 친지들과 이웃들과 동료들에게 가장 먼저 공양하고 나아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양하도록 생각해야 하리라. 사람을 보되 부처님을 눈앞에 대한 듯이 보기란 어렵더라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존경과 친절한 마음을 내어 공양하라는 뜻이다.

 

所謂華雲과 鬘雲과 天音樂雲과 天傘蓋雲과 天衣服雲과 天種種香과

소위화운      만운     천음악운      천산개운      천의복운    천종종향 

이른바, 꽃 구름, 꽃 다발 구름, 하늘 음악 구름, 하늘 일산 구름, 하늘 옷 구름, 하늘의 갖가지 향, 

塗香과 燒香과 末香이라 如是等雲이 一一量如須彌山王하며

도향     소향      말향        여시등운    일일양여 수미산왕 

바르는 향, 사르는 향, 가루 향, 이와 같은 등등의 구름 하나 하나의 양이 대 수미산과 같으며, 

然種種燈호대 酥燈油燈과 諸香油燈이니 一一燈炷가 如須彌山하며

연종종등          소등유등     제향유등         일일등주     여수미산 

갖가지 등불을 밝히나니, 우유 등, 기름 등과 모든 향유등과 같은

낱낱의 등불 심지가 수미산과 같고, 

一一燈油가 如大海水하야 以如是等諸供養具로 常爲供養이니라

일일등유      여대해수         이여시등 제공양구    상위공양

낱낱 등의 기름은 큰 바닷물과 같나니,

이와 같은 등등의 모든 공양구를 구족하여 항상 공양하느니라.

 

부처님께 받치고 사람들에게 이바지 하는 공양거리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옛날 인도에서는 꽃 공양을 중요하게 생각한 관례가 있어서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법당에 꽃을 올리는 것이나 불교행사 때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을 표현할 때도 반드시 꽃을 보내고, 또 즐거운 일에는 음악이 빠질 수 없다. 그리고 햇빛이 뜨거운 인도에서는 해를 가리는 일산이 필수적이다. 옷이 귀하던 옛날에는 옷이야말로 매우 큰 공양이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을 아주 고급으로 장만하여 공양 올리므로 천상(天上)의 것이라 하였다. 향료가 발달한 인도에서 향을 공양하는 것도 훌륭한 공양이었으리라. 전기가 없던 시절에 등불을 밝히는 일도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일이었을까.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거리로서 빠질 수 없다.

이와 같은 등등의 공양거리로서 그 양은 세상에서 가장 큰 수미산과 같은 크기로 한다. 꽃이든 일산이든 옷이든 향이든 모두를 그렇게 많이 올린다. 등불공양에는 등불의 심지는 수미산처럼 크게 하고, 기름은 저 큰 바닷물과 같은 양으로 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얼마나 크고 넉넉한 마음인가. 보시하고 공양할 때 돈이든 물건이든 음식이든 이와 같이 여한 없이 시원스럽게 해야 한다.

사찰에서는 공양시간이 되면 대상이 누구든 “공양하십시오.”라고 한다. 공양이라는 말은 부처님께 이바지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을 보고 공양하라는 그 말 속에는 그가 누구든 당신도 부처님이니 공양을 받아 마땅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러 온 사람이거나 사찰에 해를 끼치러 온 사람이거나 선악을 불문하고 모두가 부처님이니 공양 받아 마땅하다는 숭고한고 거룩한 뜻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불자의 가정에서는 반드시 공양이라는 말부터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 법공양(法供養)이 으뜸이다(Requesting the turning of the Dharma wheel)

善男子야 諸供養中에 法供養이 最니

선남자     제공양중      법공양      최

선남자여,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으뜸이니,

所謂如說修行供養과 利益衆生供養과 攝受衆生供養과 代衆生苦供養과

소위여설 수행공양    이익중생공양      섭수중생공양      대중생고공양

이른바 (부처님이)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하는 공양,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공양,

중생들을 거두는 공양, 중생들의 괴로움을 대신하는 공양과

勤修善根供養과 不捨菩薩業供養과 不離菩提心供養이니라

근수선근공양       불사보살업공양     불리보리심공양

부지런히 선근을 닦는 공양, 보살의 업(보살의 해야할 일)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들이 그것이니라.

 

일곱 가지의 법 공양을 들고 있다.

첫째,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如說修行] 공양,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려면 먼저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야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말씀이란 곧 가르침, 불교란 두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먼저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나, 대다수의 불자들은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것을 등한시한다. 가르침을 알고 난 뒤에 그것을 수행 하든지 하지 않든지 할 일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하는 법공양이 제일 우선이다. 그래서 경전을 보시하고 법문을 들려주고 한 쪽짜리의 일지경(一紙經)이라도 널리 전해 주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공양이며 다른 공양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利益衆生] 공양이다.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고 하여 고급종교인 불교가 나서서 복지부에서나 다른 종교에서 흔히 하는 의식주문제를 돌보는 것으로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단 한 번도 의식주문제를 도와준 일이 없다. 다만 참다운 이치[眞理]를 가르침으로서 중생들에게 공양을 하였고 보시를 하였다. 조사(祖師)스님들의 어록이 무수히 많건만 어디에도 의식주문제로서 중생들을 교화하였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 설사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역사에 기록할만한 일은 못되기 때문이다. 역대 조사스님들도 오로지 진리의 가르침으로서 사람들에게 공양하고 보시하였다. 오히려 의식주문제는 언제나 세상 사람들에게 의지하였다. 물론 법공양을 위한 방편으로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방편을 쓴다고 하여 방편에만 그치고 법공양이 없는 의식주 공양은 잘못된 것이므로 불자는 언제나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공양하고 보시하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법공양이며 다른 공양보다 수백만 배나 수승한 공양이 된다.

셋째,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攝受衆生] 공양이다. 자비심으로 사람들을 거두어 주는 것으로, 자기의 어린 자녀들은 사랑하여 보살펴 주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잘 섭수하고 거두어 주는 것인데, 절대적으로 진리의 가르침으로 섭수하고 거두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거두어 주는 일은 사람이면 다 하는 일이고 자선단체에서도 얼마든지 하는 일이다. 불교라는 이름하에 사람들을 거두어 준다면 반드시 바른 이치로써 어리석은 생각과 견해를 깨우쳐주고 바로잡아주는 것이 불교적인 섭수다. 그래야 법공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물질적 공양보다 수백만 배나 수승한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하는[代衆生苦] 공양이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한 행복의 길을 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공통을 대신하는 일도 진실한 불자에게는 행복이며 즐거움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볼 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그런 일을 왜하는가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대단한 즐거움과 행복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도 감내하기 어려운데 남의 고통까지 대신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살의 자비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통은 잊은 지 오래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사실이 눈에 보이고 마음 아플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대신하는 일로써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삼는다. 이런 일은 부처님의 마음에 계합하는 것이고 또 이것이 물질적 공양보다 수백만 배나 수승한 법공양이다.

다섯째, 부지런히 선근을 닦는[勤修善根] 공양이다. 불교를 믿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 모두가 선근을 닦는 일이다. 선근을 닦는 것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교를 믿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일은 당연히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의 온갖 잡다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보다는 부처님이 깨달으시고 널리 전하신 진리의 가르침으로 이익이 되게 해야 한다.  
여섯째,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不捨菩薩業] 공양이다. 보살이 할 일은 많고 많지만 흔히 두 가지를 든다. 보살은 부단히 자신의 향상과 발전을 위해서 정진하고, 한편으로는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며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자신의 향상과 발전을 위한 정진도 잘 살펴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해야 한다. 세상에는 가르침도 많고 공부를 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러므로 잘 살펴서 가장 우수한 공부, 즉 성인이 가르치신 인류 최고의 공부를 해야 사람들에게도 보다 훌륭한 혜택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함에도 반드시 부처님이 하시고 조사님들이 하셨듯이 진리의 가르침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라야 경전에서 밝힌 대로 다른 물질적 공양보다 수백만 배 수승한 공양이 되기 때문이다.  

일곱째,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不離菩提心] 공양이다. 보리심이란 깨달은 사람의 마음이고, 깨달은 마음이란 깨달은 사람, 즉 부처님과 조사님들이 중생들을 대하여 쓰는 마음으로, 흔히 보살의 자비심으로도 표현된다. 부처님과 조사님들이 중생들을 대하여 쓰는 마음은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건져주려는 마음이며, 지혜의 가르침으로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려는 마음이며, 어떤 방편을 쓰더라도 진리의 길로 인도하려는 마음이다.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이 송장이라도 타고 헤엄을 쳐서 바다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절박한 심정과 같은 마음으로 보살이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또 사형에 처할 죄수가 화장실의 똥통 속을 지나서라도 도망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듯이 보살은 중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이 보리심이다. 이러한 마음을 여의지 않는 공양은 진정한 법공양이며 다른 물질적으로 의식주를 공양하는 것 보다 수백만 배나 수승한 공양이다.
그러므로 불교를 아는 불자는 법공양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 때문에 법공양에 힘써야한다. 경전에서 밝힌 대로 “꽃과 꽃다발과 천상의 음악과 천상의 일산과 천상의 옷과 천상의 여러 가지 향과 바르는 향과 사르는 향과 가루 향들을 수미산과 같이 크게 공양하고, 또 여러 가지 등불을 켜는데 우유[酥]등과 기름 등과 온갖 향유 등인데 낱낱 등의 심지는 수미산과 같고, 낱낱 등의 기름은 큰 바닷물과 같은 이러한 공양거리로 항상 공양한다.”고 하는 것 보다 법공양은 수백만 배, 수천만 배, 수억만 배가 더 수승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부처님께 공양[佛供]하는 일이 무엇인기를 화엄경의 결론이며 불교의 결론이라고 하는 이 보현행원품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불교가 물질의 공양만 중요시하고 법공양을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이 보현행원품이 널리 읽혀져야 할 것이다.

 

善男子야 如前供養無量功德으로 比法供養一念功德컨대

선남자      여전공양 무량공덕        비법공양 일념공덕

선남자여,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한량없는 공양의 공덕과, 한 생각의 법공양의 공덕을 비교하면,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俱那由他分과 迦羅分과

백분      불급일         천분      불급일        백천구지 나유타분     가라분 

그 백분의 일이 못 되고, 천분의 일도 못 되며, 백 천구지 나유타 분의 일도 못되며,

가라분의 일도 못되며, 

算分과 數分과 喩分과 優波尼沙陀分에도 亦不及一이니라

산분      수분      유분     우바니사타분        역불급일

산수 분, 비유 분, 우파니사타 분의 일에도 또한 미치지 못하느니라.  

 

부처님의 식성(食性)에 맞는 음식은 법공양이다. 우리가 올리는 물질적 공양은 부처님의 식성을 무시하고 우리들의 입장에서 올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손님은 싫어하는데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만을 대접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동안 불공을 올린 것을 되돌아보자, 부처님의 식성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불공을 하였는가. 부처님은 관심이 없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올려놓고 불공을 하지는 않았는가.

 

何以故오 以諸如來는 尊重法故며 以如說行에 出生諸佛故라

하이고       이제여래     존중법고     이여설행    출생제불고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들은 법을 존중하시기 때문이요,

설하신 바와 같이 수행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을 출생하기 때문이며,

若諸菩薩이 行法供養하면 則得成就供養如來니 如是修行이 是眞供養故니라

약제보살      행법공양          즉득성취 공양여래   여시수행      시진공양고

만약 모든 보살이 법 공양을 행하면, 즉시 부처님 여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나니, 

이와 같이 닦아 수행함이 진실한 공양이기 때문이니라.

此廣大最勝供養을 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차광대최승공양      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이는 광대하고 가장 수승한 공양이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衆生煩惱盡하면 我供乃盡이어니와 而虛空界와 乃至煩惱가 不可盡故로

중생번뇌진          아공내진                  이허공계      내지번뇌     불가진고 

중생들의 모든 번뇌가 다한다면 나의 공양도 다하겠지만,

이러한 허공계와 중생들의 번뇌가 다할 수 없는 까닭으로, 

我此供養도 亦無有盡이니라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아차공양      역무유진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나의 이러한 공양 또한 다함이 없고, 생각 생각마다 서로 계속하여 끊어짐이 없이

신구의로 하는 일=業에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인 부처님은 법과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곧 깨달은 사람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깨달음의 가르침에 의하여 깨달은 사람이 출생한다고 하였다. 깨달음의 가르침을 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법공양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법공양을 행하면 그것은 곧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일을 불공(佛供)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이나 쌀이나 먹을 것이나 기타 물질적인 것들을 불상 앞에 올린다. 그리고는 무엇을 얼마나 맡겨 두었는지 빌고 또 빌고, 조르고 또 조른다. 한 번 빌고 두 번 빌고 세 번까지 빈다. 그것을 재고축(再告祝), 삼고축(三告祝)이라 한다. 부처님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처사다. 법공양을 해야 참으로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불공을 해야 불교가 바로 갈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것이다.

불교의 특색을 수행이라고 하는데 보현행원품에서 밝히기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 수행이며, 따라서 그것이 진실한 법공양이며, 광대하고 가장 훌륭한 공양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삶이란 눈을 뜨면서부터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또는 평생 동안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아내를 만나고, 남편을 만나고, 부모를 만나고, 자녀들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동료들을 만나고, 도반들을 만나는 등등의 일로 일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며, 사람을 통해서 평안과 행복을 느끼는 일이 될까. 그것은 곧 이 보현행원품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의 세 가지 가르침이 답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예를 다하고, 다음으로는 상대를 찬탄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무엇인가를 공양하고 이바지하는 것이다. 예경제불(禮敬諸佛)이며, 칭찬여래(稱讚如來)며, 광수공양(廣修供養), 이 세 가지만 잘한다면 사람관계에서의 평화와 행복은 보장되어 있다.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3

 

(2)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다(禮敬諸佛, Venerating the Buddhas)

Always accommodating and adapting to all beings.

항상 모든 존재에 맞추어 적응한다.

 

普賢菩薩이 告善財言하사대 善男子야 言禮敬諸佛者는

보현보살       고선재언           선남자      언예경제불자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하였으니, 선남자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것은 

所有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一切佛刹極微塵數諸佛世尊을 我以普賢行願力故로

소유진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 극미진수 제불세존    아이보현 행원력고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 모든 세계의 극히 미세한 티끌과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들께

나의 이러한 보현의 수행과 서원의 힘의 연고로

深心信解하야 如對目前하야 悉以淸淨身語意業으로 常修禮敬호대

심심신해           여대목전         실이청정 신어의업       상수예경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여 마치 눈앞에서 뵙듯이 받들고,

청정한 몸과 말과 뜻=身口意로 항상닦아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

 

一一佛所에 皆現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身하야 一一身으로

일일불소       개현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신        일일신 

낱낱의 부처님 처소에 불가설 불가설 불찰미진수의 몸을 나타내어, 그 한 몸 한 몸이 

徧禮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佛이니 虛空界盡하면 我禮乃盡이어니와

변례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불           허공계진        아례내진 

불가설 불가설 불찰미진수의 부처님께 두루두루 다 예를 올리는 것이니,

허공계가 다하면, 나의 이러한 예경함도 다하려니와

以虛空界가 不可盡故로 我此禮敬도 無有窮盡이며

이허공계       불가진고      아차예경     무유궁진

허공계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이러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음이요.

 

如是乃至衆生界盡하고 衆生業盡하고 衆生煩惱盡하면 我禮乃盡이어니와

여시내지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아례내진

이와 같이 내지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야 나의 예경함도 다하려니와,

而衆生界와 乃至煩惱가 無有盡故로 我此禮敬도 無有窮盡이니

이중생계       내지번뇌     무유진고     아차예경     무유궁진

중생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이러한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으며,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생각 생각마다 서로 계속되는 끊임없는 신구의 업은 피곤하거나 싫어함이 없도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보살의 열 가지 인생지침의

첫째는 사람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것이다. 우선 경문에는 분명히 부처님이라고 하였는데 왜 자꾸 사람들이라고 하는가! 화엄경의 근본종지 중에 반드시 생각하고 기본으로 삼아야 하는 구절은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다른 호칭이 부처님이다. 그리고 경문에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 모든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만치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들”이라고 하였다. 그 말은 역사상에 기록된 석가모니불이나 경전상의 아미타불이나 연등불과 같은 부처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저 많은 부처님이란 곧 모든 사람을 뜻하며, 나아가서 모든 생명체를 가리키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삼라만상과 우주만유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떤 문제든지 지금 우리에게 문제되는 사항만 문제시해야 하므로 경전의 뜻이 아무리 광대하고 폭이 넓다하더라도 잠시 제쳐두고 사람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한다. 사람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 우주만유와 삼라만상에 눈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자연과 삼라만상들을 모두 다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며 예경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 사람들을 모두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수행이며 보살행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받들어 섬기며 예경하는 일이 사람과 사람관계에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일이며 행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예경하면 그도 행복하고 나 또한 행복하다. 만약 사람이 부처님이 아니라면 법화경의 상불경(常不輕)보살은 참선도 하지 않고, 경전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염불도 하지 않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며 예경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지 않을 것이며,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경전 중에 왕이라는 법화경의 가르침이 어찌 허망한 말이겠는가.

사찰의 법당에 와서 불상에게 예경하는 것은 훈련이며 연습이다. 법당에서 훈련한 것을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익숙하게, 그리고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기고 자연스럽게 실천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만약 운동선수가 연습장에서는 실수 없이 잘하면서 실전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실수를 연발한다면 그 경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처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면 한두 번은 부처님으로 예경할 수는 있다. 마음이 편안하고 나에게 잘 보일 때는 조금은 부처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금방 잊어버리고 부처님을 대하면서 아귀처럼 아수라처럼 혹은 동물을 대하 듯이 분노하여 화를 내며 욕심을 부리고 피해도 입히고, 욕도 하고 악담도 하고 음해도 서슴지 않는다. 무엇이나 초심(初心)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끊임없이 예경하는 일을 “이와 같이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야 나의 예경함도 다하려니와, 중생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이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느니라. 염념이 계속하여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예경하는 일을 일상사처럼 하고 숨을 쉬는 일처럼 해야 한다. 경문의 내용은 참으로 눈물겨운 보살의 아름다운 비원이다.

 

(3)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다(稱讚如來, Praising the Tathagatas)

復次善男子야 言稱讚如來者는

부차 선남자      언칭찬여래자

다시 또 선남자여, 부처님을 찬탄한다는 것은 

所有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一切刹土所有極微一一塵中에

소유진법계허공계 시방삼세 일체찰토 소유극미 일일진중

온 법계와 허공계, 시방 삼세의 모든 국토에 있는 바

극히 미세한 하나 하나의 티끌(먼지) 가운데

皆有一切世界極微塵數佛하며 一一佛所에 皆有菩薩海會圍遶어든

개유일체세계 극미진수불         일일불소       개유보살 해회위요

모두 모든 세계의 극히 미세한 티끌같은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하나 하나의 부처님 처소마다 모두 보살 대중들이 모여 둘러싸고 모시는 것이나니,

 

我當悉以甚深勝解現前知見으로 各以出過辯才天女微妙舌根하야 一一舌根에

아당실이 심심승해 현전지견          각이출과 변재천녀 미묘설근     일일설근 

내가 마땅히 이러한 매우 수승한 이해의 지견이 앞에 나타나나니,  

깊고 깊은  각각의 변재가 천녀의 미묘한 혀=舌根보다 훌륭하며, 그 낱낱의 혀로 

出無盡音聲海하며 一一音聲에 出一切言詞海하야 稱揚讚歎一切如來諸功德海호대

출무진음성해           일일음성    출일체언사해        칭양찬탄 일체여래 제공덕해 

다함없는 음성의 바다를 내고, 낱낱의 음성마다 모든 언사의 바다를 내어,

모든 여래의 일체 공덕 바다를 칭찬하고 찬양하고 찬탄하나니,

窮未來際토록 相續不斷하야 盡於法界하야 無不周徧이니라

궁미래제          상속부단         진어법계          무불주변

(그 찬탄이) 미래가 다하도록 서로 계속하여 끊이지 않으며,

온 법계가 다하도록 두루하지 않음이 없도다.

 

如是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衆生煩惱盡이면

여시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이와 같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중생들의 모든 번뇌가 다한다면, 

我讚乃盡이어니와 而虛空界와 乃至煩惱가 無有盡故로 我此讚歎도 無有窮盡이니

아찬 내진                  이허공계     내지번뇌      무유진고     아차찬탄     무유궁진

나의 찬탄이 다할지라도, 이러한 허공계 내지 번뇌가 끝날 수 없는 까닭으로

나의 이러한 찬탄도 다함이 없으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생각 생각마다 서로 계속하여 끊임이 없나니,

신구의 업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사람을 만나면 제일먼저 진심으로 마음이 가득담긴 말씀으로 찬탄을 하고 무엇이든 건네주어야 한다. 또 헤어질 때는 반드시 격려해주고 빌어줘야 한다. 이쯤만 되어도 참 좋은, 인품이 된 사람이다. 아름다운 보살이라 할만하다. 찬탄이란 칭찬이며 건네주는 것은 공양이며 격려와 빌어줌이란 축원이다.

이 글에서는 찬탄을 이야기할 체례다. 이 경전의 서두에도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 여러 보살과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라고 시작하였다. 어느 특정한 한 사람 한 부처님만을 찬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부처님들께 나도 또한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몸을 나타내어 찬탄한다.

살펴보면 모든 존재는 중중(重重) 중중 중중하고 무진(無盡) 무진 무진하여 중중무진과 무진중중으로 서로 서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사람과 자연들은 모두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일체 존재들을 내 자신을 위하듯이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살아가야 인류가 바라는 평화와 행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찬탄할만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찬탄한단 말인가?”라고 하는 것은 안목이 부족해서다. 열린 안목으로 잘 살펴보면 아무리 악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아무리 쓸모없는 물건들도 모두가 좋은 점이 있고 쓸모가 있다. 그것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과 장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매력과 장점이 있어서 찬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장엄하였기에 충분히 찬탄할 일이다.

설사 그와 같은 차원이 아니고, 백보 양보하여 우리들의 일상에서 가족과 이웃과 친지들을 칭찬하는 일도 마음만 먹으면 찬탄할 점은 많다. 문제는 자신이 남들을 찬탄할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가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삶을 살려는 보살은 남을 찬탄할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사람이다.

불자들은 보살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언제 누구에게나 찬탄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덕목이다. 한두 번에 지치거나 싫증내지 말라. “이제 더 이상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음해하는 일은 어제까지로서 끝이다. 나의 삶에 그와 같은 일은 아예 없다. 앞으로는 영원히 영원히 누구를 막론하고 찬탄하며 살리라.”라고 강인한 서원을 세워서 자신의 일상이 되게 하자. 그래서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을 찬탄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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