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 하권
후한(後漢) 안식(安息) 안세고(安世高) 한역 / 後漢安息三藏安世高譯
佛說大安般守意經 卷下 5
何等爲覺?念念爲覺,念念爲得,覺得是意,便隨道也。外七覺意爲墮生死,內七覺意爲隨道。內七覺意者,謂『三十七品經』;外七覺意者,謂萬物也。覺者爲識事,便隨覺意也。有覺意便隨道覺,有覺意墮罪覺。『三十七品經』便正意,是爲隨道;覺善惡,是爲墮罪也。
무엇이 각(覺)인가? 생각 생각이 각이 되고, 생각 생각을 얻음의 득(得)이니,
이 뜻을 깨달아 얻으면 곧바로 도를 따르게 되며,
밖의 외7각의(外七覺意)는 생사에 떨어지고, 안의 내7각의(內七覺意)는 도를 따르는 것이니,
안의 내7각의는 '37품경(37 조도품)'을 말하고, 밖의 외7각의는 만물을 말하며,
각(覺)이라는 것은, 일을 인식하여 문득 뜻을 알게되는 각의(覺意)를 따르는 것으로,
어떤 각의는 도각(道覺)을 따르고, 어떤 각의는 죄각(罪覺)에 떨어지며,
'37품경(37 조도품)'은 곧 바른 뜻이므로 이것은 도각을 따름이 되고, 악한 뜻은 죄각에 떨어지는 것이다.
問:何等爲從諦身意持報?
謂身持七戒,意持三戒,是爲身意持也。從諦意得休息,從四諦意因緣休;休者爲止,息爲思,得道爲受思也。
묻습니다; 무엇이 진리의 제(諦)를 좇아 몸과 뜻의 신의(身意)를 지니는 것입니까?
답한다; 이른바 몸은 7계(戒)를 지니고, 뜻은 3계를 지니는 것으로, 이것이 몸과 뜻의 신의(身意)를 지니는 것이다.
제(諦)의 뜻을 좇아 휴식(休息)을 얻고, 4제(諦)의 뜻을 좇아 인연이 쉬나니, 쉰다는 휴(休)는은 멈추는 지(止)요,
숨을 쉬는 식(息)은 생각하는 사(思)이며, 도를 얻는 득도(得道)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수사(受思)이다.
貪樂道法,常行道爲愛覺意,持道不失爲力覺意,已得十息身安隱爲息覺意,自知已安爲定覺意。
도법을 탐내고 좋아하여서 마땅히 도를 행하는 것은 애각의(愛覺意)가 되고,
도를 지녀서 잃어버리지 않음은 역각의(力覺意)가 되고,
열 번째의 숨을 얻어서 몸이 안온한 것은 식각의(息覺意)가 되고,
이미 편안함을 저절로 아는 것은 정각의(定覺意)가 되는 것이다.
身意持,意不走爲持,從諦自在,意在所行,謂得四諦。亦可念四意止,亦可四意斷,亦可四神足,亦可五根、五力、七覺意、八行,是爲自在意。在所行從諦。
몸과 뜻의 신의(身意)를 지녀서 뜻이 달아나지 않음이 지님의 지(持)가 되나니,
진리의 제(諦)를 좇아 자재하여 뜻이 행하는 바에 있으면 이른바 4제(諦)를 얻은 것이며,
또한 4의지(意止)와 4의단(意斷)과 4신족(神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의(覺意)와 8행(行, 팔정도)을 생각할 수 있으니, 이것이 자재한 뜻이 행하는 데 있어서의 진리의 제(諦)를 좇음이 되며,
觀者,爲『三十七品經』要。是爲守意覺者,謂諦不復受罪也。
관(觀)은 '37품경(37 조도품)의 요체(要體)를 관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수의(守意)가 되고,
각(覺)은 이른바 진리의 제(諦)를 깨달아 다시는 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八行有內外,身爲殺、盜、婬,聲爲兩舌、惡口、妄言、綺語,意爲嫉、妒、癡。是上頭三法,爲十事在外,五道在內也。
8행(行, 팔정도)에 안과 밖이 있으니, 몸(신업)은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婬)이 되고,
소리(聲, 구업)는 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망언(妄言)ㆍ기어(綺語)가 되고,
뜻(의업)은 질투(嫉妬)ㆍ진에(瞋恚)ㆍ우치(愚癡)가 되니,
이것은 앞의 3법(法)으로 열 가지가 되는 것으로, 밖에 있는 외사(外事)이고, 5직(直)은 안에 있은 내사(內事)이다.
從諦守諦,從爲神,守爲護,謂法不犯罪,諦爲道。
진리의 제(諦)를 좇아서 제(諦)가 따르는 것은 신(神)이 되고, 지키는 것은 호(護)가 되나니,
이른바 법(法)이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며, 진리의 제(諦)는 도(道)인 것이다.
知非常、苦、空、非身、不淨爲直見;非常人計爲常,思苦爲樂,空計爲有,非身用作身,不淨計爲淨,是爲不直見也。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과 비신(非身)과 부정(不淨)을 아는 것은 바른 소견의 직견(直見, 정견)이니,
사람은 무상을 항상한 상(常)으로 계교하며, 고를 낙(樂)으로 생각하고, 공을 헤아려 유(有)로 삼으며, 비신으로써 몸을 짓고, 부정을 계교하여 정(淨)으로 삼는 것 등은 바르지 못한 소견의 불직견(不直見, 불정견)인 것이다.
何等爲直見?信本因緣,知從宿命有,是名爲直見。何等爲直治?分別思惟,能到善意,是爲直治。何等爲直語?守善言,不犯法,如應受言,是名爲直語也。何等爲直業?身應行不犯行,是名爲直業也。
무엇이 바른 소견의 직견(直見, 정견)인가? 본래의 본인연을 믿으며, 숙명(宿命)을 좇아 있는 것임을 아는 것이, 바로 바른 소견이며,
무엇이 바른 대치의 직치(直治, 정명)인가? 분별하고 사유하여 능히 선한 뜻을 이루는 것이, 바로 바른 대치이며,
무엇이 바른 말의 직어(直語, 정어)인가? 선한 말을 지키고 법을 범하지 않아서 응하는 대로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바른 말이이며,
무엇이 바른 업의 직행(直業, 정업)인가? 몸소 행에 응하여 행을 범하지 않는 것을 바른 업이라 하며,
何等爲直治?隨得道者教戒行,是名爲直治也。何等爲直精進?行行無爲,晝夜不中止,不捨方便,是名爲直精進方便也。何等爲直念?常向經戒,是名爲直念。何等爲直定?意不惑亦不捨行,是名爲直定。如是行,令賢者八業行具,已行具足,便行道也。
무엇이 바른 직치행(直治行)인가? 도를 얻은 이를 따라 계행(戒行)을 가르치는 것을 바른 직치행이라 하며,
무엇이 바른 직정진(直精進)인가? 행하고 행하되 행한다는 생각이 없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중단하지 않으며, 방편을 버리지 않는 것을 바른 정진의 방편이라 하며,
무엇이 바른 생각의 직념(直念, 정념)인가? 늘 경(經)과 계(戒)를 향하는 것을 바른 생각이라 하며,
무엇이 바른 선정의 직정(直定, 정정)인가? 뜻이 미혹되지 않고 또한 행을 버리지 않는 것을 바른 정이라 하나니,
이와 같은 행으로 현자(賢者)로 하여금 8업행(業行, 팔정도)을 구족하게 하는 것이니, 이미 구족하였다면 곧바로 도를 행하는 것이다.
八直有治、有行,行八直,乃得出要,身不犯戒,是爲直治。慧、信、忍辱是爲行身,意持是名爲直治。謂無所念爲直,有所念爲不直也。
여덟 가지 바름의 팔직(八直)은 대치(對治)가 있고 행(行)이 있으니, 여덟 가지 바름을 행하여 마침내 뛰어난 요체(要體)를 얻어서 몸이 계(戒)를 범하지 않음이 바로 바른 대치의 직치(直治)가 되며,
혜(慧)와 신(信)과 인욕(忍辱)은 행하는 몸이 되며, 뜻을 지님을 바른 대치라고 하나니,
이른바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 바름의 직(直)이 되고, 생각하는 바가 있음이 바르지 않음의 불직(不直)인 것이다.
十二部經都皆墮『三十七品經』中,譬如萬川四流,皆歸大海。『三十七品經』爲外,思惟爲內。思惟生道故爲內;道人行道,分別『三十七品經』,是爲拜佛也。『三十七品經』亦墮世閒,亦墮道。諷經口說是爲世閒,意念是爲應道。持戒爲制身,禪爲散意。
12부경(部經)은 모두 '37품경(37 조도품)'을 따르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모든 시냇물과 사방의 흐름이 모두 큰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으로,
'37품경(37 조도품)'은 바깥이 되고, 사유(思惟)는 안이 되는 것으로, 사유하여 도(道)를 낳기 때문에 안(內)이 되며,
도인(道人)이 도를 행하여 '37품경(37 조도품)'을 분별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 예배함이 되며,
'37품경(37 조도품)'은 세간을 따르기도 하고 또한 도를 따르기도 하나니,
경을 외워서 입으로 설하는 것은 세간을 위함이요, 뜻으로 생각하는 것은 도에 응함이며,
계를 지니는 것은 몸을 제어하기 위함이요, 선(禪)은 뜻을 흩어버리기 위한 것이다.
行從願,願亦從行。行道所向,意不離;意至佛,意不還也。亦有從次第行得道,亦有不從次行得道。謂行四意止、斷、神足、五根、五力、七覺意、八行,是爲從次第。畏世閒惡,身便一念從是得道,是爲不從次第。
행(行)은 원(願)을 따르고, 원 또한 행을 따르는 것이니, 도를 행하여 향하는 곳을 뜻이 여의지 않는 것이니, 뜻이 부처님께 이르러서 돌이키지 않는 것이며,
차례를 따라 행하여 도를 얻기도 하고, 또한 차례를 따르지 않고 행하여 도를 얻기도 하나니, 이른바 4의지(意止)와 4의단(意斷)과 4신족(神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의(覺意)와 8행(行)을 행하는 것이 차례를 따르는 것이요,
세간을 두려워하고 몸이 편한 것을 싫어하여 한 일념(一念)으로 좇아서 도를 얻는 것은 차례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道人能得三十七品行意,可不順從數息、相隨、止也。身口七事,心、意、識各有十事,故爲三十七品。
四意止、斷、神足屬外,五根、五力屬內,七覺意、八行得道也。
泥洹有四十輩,謂『三十七品經』幷三向,凡四十事皆爲泥洹。
도인이 능히 '37품경(37 조도품)'의 행의 뜻을 얻을 수 있다면 숨을 세는 수식과 서로 따름의 상수와 멈춤의 지(止)를 순종(順從)하지 않아도 되나니,
몸과 입에 일곱 가지가 있고 마음과 뜻과 식(識)에 각각 열 가지씩 있기 때문에 37품이 되는 것이다.
4의지와 4의단과 4신족은 밖에 속하고, 5근과 5력은 안에 속하며, 7각의와 8행은 도를 얻는 것이며,
니원법(열반법)에 40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37품경과 아울러 3향(向)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40가지가 모두 니원법이 되는 것이다.
問:數息爲泥洹,非報數息、相隨,鼻頭止意有所著,不爲泥洹,泥洹爲有不?
報:泥洹爲無有,但爲苦滅,一名意盡。
難:泥洹爲滅。報:但善惡滅耳。
묻습니다; 숨을 세는 수식은 니원법입니까? 숨을 세는 수식과 서로 따르 상수는 코끝에 뜻을 멈추는 것이니, 집착한 곳이 있으므로 니원법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답한다; 니원법은 유(有)가 되는가? 니원법은 무유(無有)이니, 다만 고(苦)를 멸하는 것으로, 일명 뜻이 다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따져 묻겠습니다; 니원법은 멸하는 것입니까?
답한다; 다만 선과 악만이 멸할 뿐이다.
知行者,有時可行四意止,有時可行四意斷,有時可行四神足,有時可行五根、五力、七覺意、八行。諦者爲知定亂。定爲知行,亂爲不知行也。
행을 아는 이는 때로는 4의지(四意止)를 행할 수 있고, 때로는 4의단(四意斷)을 행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4신족(四神足)을 행할 수도 있고, 때로는 5근(根)과 5력(力)과 7각의(覺意)와 8행(行)을 행할 수도 있다.
진리의 제(諦)라는 것은 어지러움을 정(定)할 줄 아는 것이니, 정하게 되면 행을 알게 되며,
어지러우면 행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問:何以故正有五根、五力、七覺意、八行?
報:人有五根,道有五根;人有五力,道有五力;人有七使,道有七覺意;行有八直,應道八種。隨病說藥,因緣相應。
묻습니다; 무슨 까닭에 5근과 5력과 7각의와 8행이 있는 것입니까?
답한다; 사람에게 5근이 있으므로 도에도 5근이 있고, 사람에게 5력이 있으므로 도에도 5력이 있으며, 사람에게 7사(使)가 있으므로 도에도 7각의가 있으며, 행에 8직(直)이 있으므로 도의 여덟 가지에 응하는 것이니,
병에 따라 약을 설한 것이며, 인연이 서로 응한 것이다.
眼受色、耳聞聲、鼻向香、口欲味、身貪細滑,是爲五根。何以故名爲根?已受當復生,故名爲根。
不受色、聲、香、味、細滑,是爲力,不墮七使爲覺意,已八直爲應道行。五根堅意,五力爲不轉意,七覺爲正意,八行爲直意也。
눈은 색(色)을 받아들이고,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입은 맛을 보고, 몸은 부드러움을 탐하나니, 이것이 바로 5근(根)이 되는데, 무슨 까닭에 근이라 하는 것인가?
이미 받아들였다면 마땅히 다시 낳는 까닭에 근이라 하는 것이다.(경험하여서 좋은 것에는 다시 집착하는 까닭에...)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세활(細滑)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바로 역(力)이 되고,
7사(使)에 떨어지지 않음이 각의(覺意)가 되고, 8직(直)은 도행(道行)에 응함이 되나니,
5근(根)은 견고한 뜻이 되고, 5력(力)은 전변하지 않는 뜻이 되며, 7각의(覺意)는 뜻을 멈춤이 되고, 8행은 바른 뜻이 되는 것이다.
問:何等爲善意?何等爲道意?
報:謂四意止、斷、神足、五根、五力,是爲善意;七覺意八行,是爲道意。有道善,有世閒善。從四意止至五根、五力,是爲道善;不婬、兩舌、惡口、妄言、綺語、貪、瞋、癡,是爲世閒善。
묻습니다; 무엇이 선한 뜻의 선의(善意)가 되고, 무엇이 도의 뜻인 도의(道意)가 되는 것입니까?
답한다; 4의지와 4의단과 4신족과 5근과 5력은 선한 뜻의 선의(善意)가 되고, 7각의와 8행은 도의 뜻인 도의(道意)가 된다.
도의 선함인 도선(道善)도 있고 세간의 선함인 세간선(世閒善)도 있으니,
4의지로부터 5근과 5력까지는 바로 도의 선함인 도선(道善)이 되고,
사음(邪婬)ㆍ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망언(妄言)ㆍ기어(綺語)ㆍ탐(貪)ㆍ진(瞋)ㆍ치(癡)를 하지 않는 것은 세간의 선함인 세간선(世閒善)이 된다.
諦見者,知萬物皆當滅,是爲諦見;萬物壞敗,身當死,以不用爲憂,是爲諦觀。
意撗意走,便責對得制,是爲除罪;諸來惡不受爲禪。
자세히 살핀다는 체견(諦見)은, 만물이 모두 마땅히 멸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세히 살피는 체견(諦見)이며, 만물은 무너져 어그러지고 몸도 마땅히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자세히 관찰하는 체관(諦觀)이 되며,
뜻이 날뛰거나 달아나면 곧바로 꾸짖어 대치(對治)하여 제어하는 것은 죄를 제거함이 되며,
모든 몰려드는 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선(禪)이다.
一心內意十二事智慧,七爲數,八爲相隨,九爲止,十爲觀,十一爲還,十二爲淨,是爲內十二事。
일심(一心) 안에 있는 열두 가지의 뜻은, 첫째는 마음, 둘째로부터 여섯째까지는 지혜, 일곱째는 헤아림의 수(數), 여덟째는 서로 따름의 상수(相隨), 아홉째는 멈춤의 지(止), 열째는 관(觀), 열 한번째는 돌이킴의 환(還), 열 두번째는 정(淨)이니, 이것이 안의 열두 가지인 내십이사(內十二事)이며,
外復十二事,一爲目,二爲色,三爲耳,四爲聲,五爲鼻,六爲香,七爲口,八爲味,九爲身,十爲細滑,十一爲意,十二爲受欲,是爲外十二事也。
밖에 다시 열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눈, 둘째는 색(色), 셋째는 귀, 넷째는 소리, 다섯째는 코, 여섯째는 냄새, 일곱째는 입, 여덟째는 맛, 아홉째는 몸, 열째는 부드럽고 매끄러움, 열한째는 뜻, 열두째는 욕심을 받아들임이니,
이것이 밖의 열두 가지인 외십이사(外十二事)이다.
術闍者爲智,凡有三智:一者、知無數世父母、兄弟、妻子;二者、知無數世白黑、長短,知他人心中所念;三者、毒以斷,是爲三也。
술사(術闍, 지혜)라는 것은 지(智)로써, 대체로 세 가지 지(智)가 있으니,
첫째는 수없는 전세(前世) 적 부모와 형제와 처자를 아는 것이요,
둘째는 수없는 전세의 흑백(黑白)과 장단(長短)을 알고 또한 다른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는 것이요,
셋째는 독(毒)이 이미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세 가지이다.
沙羅惰怠者,爲六通智:一爲神足,二爲徹聽,三爲知他人意,四爲知本所從來,五爲知往生何所,六爲知索漏盡,是爲六也。
사라태타(沙羅惰怠, 육통지)는 6통(通)의 지혜인 육통지(六通智)가 되나니, 첫째는 신족(神足)이요, 둘째는 환히 들음이요, 셋째는 다른 사람의 뜻을 앎이요, 넷째는 본래 온 곳을 아는 것이요, 다섯째는 어느 곳에 왕생(往生)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요, 여섯째는 본래 누(漏)가 다한 것을 아는 것으로, 여섯 가지가 되는 것이다.
佛說大安般守意經卷下 終 불설대안반수의경 하권을 마침.
此經按經首序及見經文,似是書者之錯,經注不分而連書者也。義當節而注之,然往往多有不可分處,故不敢擅節,以遺後賢焉。
이 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서문과 경문(經文)을 살펴보면, 착오가 있는 듯한데, 경(經)과 주석(註釋)이 구분이 되지 않고 이어서 씌여 있다. 불법의 의미에는 마디가 있어서 이를 해석하는데, 이 경에서는 때때로 구분되지 않는 곳이 많이 있었으나, 함부로 마디를 짓지 않았으니, 뒤에 있을 현자(賢者)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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