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본각(本覺)
글쓴이 : 효암(孝菴) 박규택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한역은 진제(眞諦, Pramārtha, 499∼569)가 553년에 번역한 1권본과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가 695∼704년간에 번역한 2권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경(金剛經)』·『원각경(圓覺經)』·『능엄경(楞嚴經)』 등과 함께 불교전문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예로부터 학습되어 왔던 논서(論書)이다.
저자 마명(馬鳴)은 생존연대가 불확실하고, 그의 다른 저술의 성격과 비교할 때 이 논은 현격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위작(僞作)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이 논은 불교문학상으로 볼 때 최대 걸작 중 하나이며, 그 구성의 치밀성과 정확하고 간결한 문체, 독창적인 철학체계는 모든 불교학자들의 찬탄과 함께 뛰어난 명작으로 평가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그 연구가 활발하였다. 원전인 산스크리트 원본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진제(眞諦)의 한역본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여기서는 『대승기신론』에서 본각(本覺)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Ⅰ.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의미(意味)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Awakening of Mah āyāna Faith)』은 대승불교의 논서이다. 줄여서 『기신론(起信論)』이라고도 한다. “대승기신론”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대승(큰 수레) 또는 대승불교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또는 일으키기 위한 논서”이다.
대승기신론은 전통적으로 인도의 마명 보살(馬鳴菩薩, 아슈바고샤, Aśvaghoṣa: c. 100-160)이 기원후 2세기에 저술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저자와 성립 시기에 대해 전통적인 견해와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은 산스크리트어 원본이나 티베트어 역본 없이 중국 양(梁)나라 진제(眞諦, Paramārtha: 499-569)와 당(唐)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 Śikṣānanda: 652-710)의 2종의 한역본만 존재한다. 대승기신론이 인도에서 성립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승기신론은 크게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논의 본문인 정종분은 다시 인연분(因緣分),입의분(立義分), 해석분(解釋分),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의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일심(一, One Mind), 이문(二門,Two Aspects), 삼대(三大, Three Greatnesses), 사신(四信 · Four Faiths), 오행(五行, Five Practices)으로 요약된다. 대승기신론은 이론과 실천 양면에 있어서 여러 교리사상을 받아들여 작은 책 속에 대승불교의 진수를 요약해 놓은 것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체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귀경술의(歸敬述意:삼보에 귀의하고 논을 쓴 뜻.)의 게송이 서두에 설해져 있고 본론에 해당되는 정립논체(正立論體)의 대목이 있으며 마지막에 총결회향(總結廻向)의 부분으로 전문이 구성되어 있다. 정립논체의 대목이 다시 논을 지은 이유를 밝힌 인연분(因緣分)과 논의 주제를 제시하는 입의분(立義分), 제시된 주제를 자세히 풀이하는 해석분(解釋分), 어떻게 믿는 마음을 내어 수행할 것인가를 밝힌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그리고 수행을 권하고 그 이익을 말하는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으로 나누어진다.
이 논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심오하면서도 포괄적이다. 불교사상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사상(唯識思想)이 포함되어 있고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까지 조화되어 있다. 논이란 대개의 경우 특정 경전에 대한 논술이라는 일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기신론』의 경우는 어느 특정한 경전에 국한시켜 논해 놓은 내용이 아니고 대승의 요지를 두루 포괄적으로 논했다 할 수 있다. 물론 『능가경(楞伽經)』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여 능가경의 별신서(別伸書)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승의 대의를 독특한 논리를 전개하여 종합적으로 논했다는 것이다. 일심을 의지하여 두 문을 열어 대승의 법(法)과 의(義)를 설명한 것이 『기신론』의 대의이다. 예로부터 이것을 의일심 개이문 (依一心開二門)이라 하였다.
고래로 이 논에 대한 주석서(註釋書)가 많이 나와 중세까지 나온 것이 무려 190여 종에 달하고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의 삼국에서 역대로 수많은 주소가(註疏家)들이 나왔는데 이 중 일본에서 나온 주석서가 150여 종에 달한다. 그러나 예로부터 가장 많이 읽혀온 주석서로 우리나라 신라 때 원효(元曉, 617∼686) 스님이 쓴 『기신론소(起信論疏, 일명 해동소(海東疏)』와 중국 당나라 때의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 스님이 저술한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와 또 중국 수나라 때의 정영 혜원(淨影慧遠, 523∼592) 스님의 『기신론의소(起信論義疏)』가 있다. 이를 3대 소라 한다. 일본 학자들의 손에 의하여 영역(英譯)이 되어 서양에도 소개되었는데 스즈키 다이세쓰의 영역본과 요시토 하케다의 영역본 『The Awakening of Faith』가 있다.
『대승기신론』은 불교의 논장에 들어 있는 책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철학 내지 심리학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마음이 어떤 것인가, 그 정체를 『기신론』처럼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책은 없다. ‘마음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경전 속에 나오는 구절처럼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세상을 살면서도 마음을 모르는 것이 중생이라 한다. 기원 1세기를 전후하여 마음에 대하여 논리 정연하게 분석을 한 『기신론』의 내용을 보고 감탄한 서양 학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행의 요지를 간명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설해서 수행의 지침을 명쾌하게 밝혀놓았다.
Ⅱ.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본각(本覺)이란
본각(本覺, origianal enlightenment)은 불교철학, 특히 대승불교철학과 원효철학의 궁극적 관심을 반영하는 개념이다. 본각에 대한 독법에는 두 가지 상이한 사유방식이 혼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본각이라 부르는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이 이미 인간 내면이나 존재의 이면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유방식으로서, 형이상학적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본각이라 부르는 ‘참됨/온전함’, 달리 말해 ‘온전한 경험지평’ 혹은 ‘궁극적 이로움을 누리는 경험지평’은, 아직 경험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이제부터 확보하는 능력에 의해 비로소 경험하게 되고 또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 보는 사유방식으로서, 경험주의적 유형이다.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의 내면적/이면적 선재(先在)를 설정하는 형이상학적 사유방식과, ‘참됨 및 온전함’의 경험적/역동적 후현(後顯)을 주장하는 경험주의적 사유방식의 차이인 것이다. 형이상학적 사유방식으로 보면, 본각이라 할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은 언어와 분별망상에 가려 드러나지 않다가 언어를 초월하고 분별의 베일을 거두면 환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주의적 사유방식으로 보면, 존재나 삶의 ‘참됨/온전함’은 마음이나 내면에 이미 있지만 가려져 있던 것을 마치 보물 캐내듯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인지능력의 전의(轉依)적 향상을 통해 비로소 그 지평에 눈떠 경험으로 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참됨/온전함을 경험하기 위한 마음/인지 능력의 향상은, 언어와 사유의 퇴행적 폐기가 아니라 ‘언어와 사유’ 능력의 전진적 차원 향상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본각(本覺)에서 불각(不覺)과 시각(始覺)이 있으니 이 세 가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본래 깨어있음[본각(本覺)]은 애초 괴로움이 없음을 말하고, 깨어있지 못함[불각(不覺)]은 꿈속에서 헤매는 괴로움의 대명사이며, 깨어나기 시작함[시각(始覺)]은 괴로움을 제거해 가면서 깨어 가는 마음을 말한다.
그런데 본래 깨어있다면[본각(本覺)] 깨어 있지 못한 불각(不覺)이 있을 수 없으며 불각(不覺)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각(始覺) 또한 필요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고통[불각(不覺)]이라는 현실에 본각이 있음을 증명해 준다.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 정신적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고 관(觀)해 보면 고(苦)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여 주체가 없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자각이 바로 고(苦)에서 벗어나 마음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각(始覺)이다. 주체가 없는 고(苦)와 번뇌란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하면 이는 본래 깨어있음과 다르지 않다.
본각에 의지한 시각과 불각의 삼자 관계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현실의 괴로움 때문에 삼자가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둘째, 서로 의지하는 연기(緣起)의 모습이지만 그 개체는 자성이 없어 공(空)하기에 본각을 의지한 불각의 괴로움이 발생하는 한편 괴로움이 소멸하는 시각(始覺)의 길을 보여준다.
셋째, 삼자관계가 자성이 없는 공(空)이므로 평등일성(平等一性)이며 이 평등일성을 깨치고 보면 본래 무각(無覺)이요 닦아 도달해 보면 무수(無修)요 증득하고 보면 무증(無證)임을 말한다. 본각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깨달음이 번뇌에 가려있기 때문에 본각이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불각(不覺)과 시각(始覺)에 상대하여 세운 말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처음부터 본각, 시각, 불각이라 하여 세울 것 없는 무차별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삼자의 관계는 중생이 괴로움을 일으킴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근본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마음의 근원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한 것은 마음의 근원을 가리고 있는 무명불각(無明不覺)을 깨트려 가는 것이 시각(始覺)이 도달하는 최종단계임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부터는 시각의 4단계를 기술하여 중생이 온갓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음에는 네 가지 층이 있다.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 감각과 의식(意識)과 말나식(末那識;자아의식)과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보고 듣는 등 모든 경험을 유실하지 않고 함장하여 나타내는 아리야식(阿梨耶識)이 있다. 이것을 정념(正念)으로 차례로 관(觀)하여 심층으로 들어가면 망념(妄念)은 生・住・異・滅의 네 가지 모습[사상(四相)]을 보이고 있으며 거친 번뇌[망념(妄念)]에서 점차 미세한 번뇌[망념(妄念)]에 이르러 최종 무념(無念)의 구경각을 이루는 것이다.
깨달아가는 과정[시각(始覺)]을 긴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으로 비유할 수 있다.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에서는 망념의 네 가지 모습[생, 주, 이, 멸(生住異滅)]을 꿈속의 생각[망념(妄念):몽념(夢念)]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망념의 사상(四相)을 차례로 깨쳐 소멸해 나가는 과정을 꿈을 꾸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생이라는 긴 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몽관(夢觀)이라 하고, 괴로움의 꿈에서 깨어나는 네 단계인 범부각(凡夫覺)・상사각(相似覺)・수분각(隨分覺)・구경각(究竟覺)은 마음이 처음으로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각(始覺)에 비유하고 있다.
원효(元曉)는 그의 『금강삼매경론』에서 본각(本覺)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중생[유정(有情)]은 오랜 과거로부터 무명(無明)의 긴 밤에 들어가 망상의 큰 꿈을 꾸니, 보살이 관법(觀法)을 수행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할 때 중생이 본래 적정(寂靜)하여 오직 본각일 뿐이라는 것을 통찰하여 평등한 진여의 침상에 누워 이 본각의 이익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한다.
무생법인을 증득한 보살은 본각의 이익으로써 중생의 허망한 분별식을 전변시켜 암마라식(唵摩羅識, amala-vijnana)에 들어가게 한다. 암마라는 무구식(無垢識), 혹은 청정식(淸淨識)으로서 아리야식의 미혹을 떠나 본래 청정한 자리를 회복한 의식이다. 그러므로 이 식은 바뀌거나 변하지 않고 언제나 여여(如如)한 본각(本覺)에 다름 아니다. 본각에 들어갈 때 팔식이 본래 적멸함을 깨닫고, 깨달음이 완전해졌으므로 모든 분별의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수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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