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4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6)
십지품③ㅡ8

(3) 발광지(發光地)①ㅡ1

 

제삼 발광지(第三發光地)를 이제 해석하려고 하니, 앞의 지위와 마찬가지로 오문(五門)으로 나누어 설명하겠다.

 

첫째, 지위의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니, 어찌하여 이 지위를 발광지(發光地)라 부르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팔선정(八禪定)을 닦기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수행을 잘 통달하고, 세간의 선정인 세간선(世間禪)의 선체(禪體, 본질)와 마음의 작용 및 그에 대응하는 대치(對治)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니, 
이는 삼계(三界)에 존재하는 장애와 번뇌의 양상을 분명히 통달하며, 이를 통해 지혜가 더욱 밝고 청정하게 하기 때문에 발광지(發光地)라 하는 것이다.

 

초지와 이지에서는 욕계(欲界) 가운데에서 중생을 따라 얽어매는 번뇌와 수번뇌의 수전법(隨纏法, 속박을 따르는 법)를 잘 요달하여 다스리고, 
이제 삼지(발광지)에서는 색계와 무색계의 사선(四禪)과 팔정(八定)의 법문을 잘 요달하여 삼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얻어서, 지혜의 광명이 눈앞에 드러나서 현전하게 되는 것이니 그러한 때문에 발광지(發光地)라 하는 것이다.

 

만약 욕계의 번뇌만을 다스리고, 팔정(八定)을 수행하여 색계와 무색계를 요달하지 못한다면, 위의 두 세계인 색계와 무색계의 장애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발광지라 부를 수 없지만, 
이 지위에서는 삼계의 업장(業障)을 닦아 다스려 없애기 때문에
그 명칭이 발광지이니, 선정(定)이 지혜의 광명인 혜광(慧光)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ㅡ삼계(三界)
욕계(欲界) 감각적 욕망과 여러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는 세계
색계(色界)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났지만 미세한 물질적 형상이 남아 있는 세계
무색계(無色界) 물질적 형상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정신적인 선정의 경지에 머무는 세계

 

ㅡ팔선정(八禪定)은 색계의 사선(四禪)과 무색계의 사무색정(四無色定)을 합한 여덟 가지 선정의 경지.

색계의 사선(色界四禪)
1. 초선(初禪) ㅡ 욕계의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선정.
2. 이선(二禪) ㅡ 거친 사유와 관찰이 가라앉고, 선정에서 비롯되는 기쁨과 즐거움이 더욱 깊어지는 선정.
3. 삼선(三禪) ㅡ 기쁨의 들뜸도 가라앉고, 깊은 평온과 즐거움이 나타나는 선정.
4. 사선(四禪) ㅡ 즐거움과 괴로움의 감각을 넘어 평정과 마음의 청정함이 이루어지는 선정.

무색계의 사무색정(四無色定)
1.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 무한한 허공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
2.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 무한한 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
3.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 아무것도 소유할 것이 없다는 경지에 머무는 선정.
4.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 생각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단정할 수 없는 미세한 선정의 경지.

 

ㅡ발광지(發光地)는 빛을 발하는 지위, 또는 지혜의 빛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정과 지혜를 통해 무명과 번뇌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광명이 드러나는 과정을 선정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 욕계의 번뇌를 관찰하여 다스리고, 
-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을 익히고, 
- 선정의 본질과 마음 작용을 이해하고, 
- 삼계에 걸쳐 있는 장애와 번뇌를 관찰하고, 
- 선정력
을 바탕으로 지혜가 더욱 밝고 청정하여 진다.
따라서 발광지에서는 단순히 깊은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정을 통해 지혜가 밝아지고 번뇌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이 지위에서는 어떤 행문을 닦는지를 밝히는 분이다.
인바라밀(忍波羅蜜)을 중심 행의 체(體)로 삼고, 나머지 아홉 바라밀을 그에 따르는 보조로 삼는 것이니, 
이는 삼계(三界)의 업장(業障)이 다하여 멸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인욕(忍)을 순무생인(順無生忍)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ㅡ수순무생인(順無生忍)
- 順(수순): 그 이치에 따르고 부합한다는 뜻.
- 無生(무생): 모든 법에는 고정된 자성으로서의 생겨남이 없다는 뜻.
- 忍(인): 그 이치를 깊이 받아들이고 흔들림 없이 감당하며 체득한다는 뜻


만약 초발심주(初發心住)에서 부처님의 지혜가 현전한다면, 이를 모든 부처님의 불지혜가(佛智慧家)에 처음 태어나는 것이며, 이미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迴向)에서 모두 무생인(無生忍)을 얻었고 말하는 것은 바로 총체적인 뜻이다.

 

그러나 수행의 거칠고 미세한 추세(麤細)를 구분하여 점차 나아가는 관점에서 말한다면,

지전(地前, 지위 이전)의 삼현(三賢)은 부처님의 지혜로 자신을 조복시키는 단계이므로 복인(伏忍)이라 하고,

초지(初地) · 이지(二地) · 삼지(三地)는 무생인(無生忍)을 따른 것이며, 

사지(四地) · 오지(五地) · 육지(六地)에 이르러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고, 아우러 세간의 장애가 사라짐을 얻어서 비로소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칠지(七地) · 팔지(八地) · 구지(九地)는 무공용(無功用)의 적멸인(寂滅忍)이라 하며,

십지(十地)에 이르면 자비와 지혜가 원만하여져서 그 지위가 모든 부처님과 같은 것이다. 

ㅡ수행이 점차 깊어지는 과정

수행 단계인(忍)의 명칭의미

지전삼현(地前三賢) 복인(伏忍) 부처님의 지혜로 번뇌와 분별을 조복함
초지·이지·삼지 수순무생인(順無生忍) 무생의 이치에 점차 따르고 부합함
사지·오지·육지 무생인(無生忍) 무생의 이치를 더욱 깊이 체득함
칠지·팔지·구지 무공용적멸인(無功用寂滅忍) 의도적인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적멸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작용함
십지 자비와 지혜의 원만함 자비와 지혜가 두루 갖추어져 부처님의 경지에 가까워짐

 

셋째,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법을 나타냄을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으니, 

선재동자가 이 지위에서 희목관찰중생야천신(喜目觀察衆生夜天神, 기쁜 눈으로 중생을 관찰하는 야천신)이 보리장(菩提場, 보리도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연화장사자좌(蓮華藏師子之座)에 앉아 있음을 보게 되고, 
선재동자는 그곳에서 대세력보희당해탈문(大勢力普喜幢解脫門)을 얻는 것은, 초지(初地)에 처음 들어가 발심하는 초발심(初發心)을 나타내는 것이며,

ㅡ희목관찰중생야천신(喜目觀察衆生夜天神)
- 喜目(희목): 기쁘고 자애로운 눈, 중생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
- 觀察衆生(관찰중생): 중생의 상태와 근기, 고통을 살펴봄.
- 夜天神(야천신): 밤을 상징하는 천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선지식.

 

ㅡ대세력보희당해탈문(大勢力普喜幢解脫門)
- 大勢力(대세력): 수행을 실현하는 크고 강한 힘.
- 普喜(보희): 널리 기쁨을 일으킴.
- 幢(당): 깃발이나 당번으로, 어떤 가르침이나 공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모습을 상징함.
- 解脫門(해탈문):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게 하는 수행의 문.

 

제2 이구지(離垢地)는 첫 회상의 보리의 체(體)를 계의 체(體)로 삼는 것이며, 계율(戒)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제3지는 이 보리(깨달음)에 의지하여 인행(忍行)을 성취하기 때문이니, 인욕은 수행의 첫머리가 되는 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신이 보리도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한 것이니, 이는 깨달음(菩提)을 바탕으로 인욕의 수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또한 연화장사자좌(蓮華藏師子之座)에 앉아 있다고 한 것은, 연꽃이 수행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나타내고, 사자좌는 주체가 되는 법에 의지한다는 의주(依主)의 뜻을 밝힌 것이다.

 

희목관찰중생(喜目觀察衆生)이라고 호칭한 것은 법인(法忍)을 바탕으로 자비를 행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야천신(夜天神)이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선재동자가 대세력보희당해탈(大勢力普喜幢解脫)을 얻었다는 것은 삼계를 벗어난 장애가 다하여 법인(法忍)의 수행이 원만하게 성취하여서 탐욕(貪)과 성냄(嗔), 분노(忿)와 원한(恨)의 미혹(번뇌)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므로 법인(法忍)이 현전하여 대세력이 있음을 밝힌 것이며,

 

보희당해탈(普喜幢解脫)이란 것은 능히 자타(自他)의 번뇌를 꺾어버리는 것이며,

또한 모든 경계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모든 위순(違順, 거스르는 경계와 순조로운 경계)에서 법락(法樂)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넷째, 삼계에서 이 지(地)가 어떤 계(界)의 해탈을 얻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는 삼계의 해탈을 얻으니,

앞의 초지와 2지는 욕계를 대치하였고,

이 3지(三地)는 단계적으로 위에 있는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2계의 장애에 대치하는 것이니, 팔선정(八禪定)은 총체적으로 삼계의 장애에 대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지(四地)에서는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닦아 관찰하고,
오지(五地)에서는 십제관(十諦觀)을 닦으며,

육지(六地)에서는 십이연생관(十二緣生觀)을 닦아서, 출세간(出世間)의 지혜와 세간(世間)의 지혜를 함께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ㅡ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
1. 사념처(四念處) — 몸·느낌·마음·법을 바르게 관찰함.
2. 사정근(四正勤) — 악을 끊고 선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함.
3. 사여의족(四如意足) — 선정과 수행을 성취하는 네 가지 기반.
4. 오근(五根) — 신(信)·정진(精進)·염(念)·정(定)·혜(慧).
5. 오력(五力) — 오근이 장애를 이기는 힘으로 성숙한 것.
6. 칠각지(七覺支) —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요소.
7. 팔정도(八正道) — 바른 견해·사유·말·행동·생활·노력·마음챙김·선정.

 

ㅡ십이연생(十二緣生) 십이연기(十二緣起);
1. 무명(無明)  2. 행(行)  3. 식(識)  4. 명색(名色)  5. 육입(六入)  6. 촉(觸)
7. 수(受)  8. 애(愛)  9. 취(取)  10. 유(有)  11. 생(生)  12. 노사(老死)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에서 두 가지 뜻은 앞서와 같으니,

5-1,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은, 이 발광지(發光地)의 경문을 일곱 부분으로 장과하겠다.
5-1-1, “이 때 금강장보살” 이하 “제3지를 얻는다(得第三地)”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제2지(第二地, 이구지)의 수행을 바탕으로 제3지(第三地, 발광지)에 나아가면서 열 가지 마음의 십종심(十種心)을 일으킴을 밝힌 분(分)이다.


5-1-2, “불자여(佛子)”이하 “말로만 청정하다고 해서 청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非但口言而可淸淨)”에 이르기까지 52행 반의 경문은, 
제3 발광지(發光地)에 바르게 머물면서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관찰하고, 일체 중생을 향해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는 수행과 법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존중하며, 법을 듣기 위해서는 불구덩이에 들어가 고(苦)를 받으면서도 법을 즐겨 들음을 밝힌 분이다.

 

5-1-3, “불자여(佛子)”이하 “그러나 즐겨 집착하는 바가 없다(而無所樂著)”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발광지에 머물면서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사선정(四禪定)과 팔선정(八禪定)을 닦고, 법성(法性)에 수순하여 수행하되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밝힌 분이다.


5-1-4, “불자야” 이하 “또한 다시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이 지위가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4무량심(四無量心)을 닦음을 밝힌 분이다.


5-1-5, “불자야” 이하 “의원력으로 그 가운데 태어난다(明以願力而生其中)”에 이르기까지 33행의 경문은,

이 지(地)에 머물 때 선정(禪定)을 닦아 신통력(通力)을 얻음으로서, 육근(六根)이 청정해지는 수행을 밝힌 것이다.


5-1-6, “불자야” 이하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而說頌言)”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부처님을 친견하는 범위의 넓고 좁음과 직분을 받는 수직(受職)을 밝힌 분이다.

 

5-1-7,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而說頌言)”는 게송을 설한 분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면, 

 

5-1-7-1, “그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에서부터 시작하는 5 행의 경문은,

제2 이지(離垢地)의 수행을 바탕으로 제3 발광지(發光地)에 나아가면서 열 가지 마음의 십종심(十種心)을 일으키는 과정을 밝힌 것으로,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5-1-7-2, “불자야” 이하 52행 반의 경문을 다시 다섯 단락으로 나눈다.


5-1-7-2-1,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제3지에 머물러서” 이하 “이것이 10이 된다(是爲十)”에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유위법(有爲法)이 괴로움이며 무상(無常)하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열 가지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수행을 밝힌 분이다.

ㅡ유위법(有爲法)은 인연과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모든 현상으로, 
우리가 의지하는 몸과 마음, 재산,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 등도 모두 유위법에 속하며, 이러한 것들은 인연따라 잠시 유지되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 것이므로 그것들을 영원한 행복의 근거로 삼으면 결국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5-1-7-2-2, “보살이 이렇게 중생계를 보아서” 이하 “구경 열반의 즐거움(究竟涅槃之樂)”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려면 어떤 방편(方便)을 사용해야 하며, 중생을 어디에 머물게 해야 궁극적인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수행을 밝힌 분이다.


5-1-7-2-3, “문득 이러한 생각을 했다” 이하 “이같이 관찰해서 다 요달해 알았다(如是觀察了知已)”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어디에 안치해야 하는지, 그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고 아는 구경처(究竟處)를 앎을 밝힌 분이다.

 

5-1-7-2-4, “배(倍)나 정법에 대해” 이하 “관찰하여 수행한다(觀察修行)”에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배나 더 부지런히 법을 구하며, 법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생명의 신명(身命)까지도 버릴 수 있고, 큰 불구덩이에 들어가더라도 괴로워하지 않는 수행을 밝힌 것이다.


5-1-7-2-5, “이 보살” 이하 2행의 경문은,

보살이 단지 말로만 수행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하고 결정적으로 실제 수행을 행한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ㅡ이 대목은 보살의 자비가 막연한 감정에 머물지 않고,

- 중생이 어떤 괴로움을 겪는지 관찰고, 
- 그 괴로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살피고, 
- 어떤 방편으로 도울 수 있는지 생각하여서, 
- 궁극적으로 어디에 이르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으로, 따라서 자비와 지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살의 수행은 
관찰(觀察) → 자비(慈悲) → 방편(方便) → 구법(求法) → 실천(修行)으로 연결됩니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4권을 마침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4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6)
십지품③ㅡ8
(2) 이구지(離垢地) ㅡ4

(3) 발광지(發光地)① ㅡ1

 

애욕의 빽빽한 숲의 애욕조림(愛欲稠林)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것은,

모든 생사(生死)가 애욕(愛欲)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

생사가 매우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마치 빽빽하게 우거진 숲의 조림(稠林)과 같다고 한 것이다.

 

일찰나(一剎那) 사이에 팔백 번의 생멸하는 마음의 팔백생멸(八百生滅)이 일어나서 끊임없이 유주(流主, 흘러 들어감)하는 것이니, 찰나의 때가 멸진하여 다하면 생멸이 나란히 함께 일어난다는 뜻이다.

ㅡ한 찰나 사이의 팔백생멸(八百生滅), 우리 마음은 한 가지 생각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어떤 대상을 보고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좋아하는 마음은 곧 그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발전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불만과 분노가 일어나고, 
 다시 다른 대상을 찾아 욕망하고 집착하는 것과 같이,

마음의 작용은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며, 다음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탐내고 애착하는 대상에 깊이 물들어 오염된 집착한다는 심생염착(深生染著)이란는 것은,

깊은 생사(生死)의 업(業)을 지어서 거듭 이어져 멈추지 않고 전전(轉轉)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또한 아만의 언덕과 언덕처럼 높이 솟은 아만원부(我慢原阜)란 것은, 만(慢)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곧 칠만(七慢)으로,
1. 만만(慢慢) 자신이 남보다 못하지 않거나 더 낫다고 여기며, 특히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도 우월감을 품는 마음
2. 교만(憍慢) 자신의 지위·재산·능력·젊음 등을 믿고 스스로 우쭐해하는 마음
3. 과만(過慢)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과 비교하면서도 자신이 더 낫거나 동등하다고 여기는 마음
4. 비만(卑慢, 또는 비하만 卑下慢) 자신이 훨씬 뛰어난 사람보다 조금만 못하다고 여기며, 실제 차이를 축소하는 마음
5. 아만(我慢) 오온(五蘊)을 나 또는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마음
6. 증상만(增上慢) 아직 얻지 못한 높은 수행의 경지나 깨달음을 이미 얻었다고 여기는 마음
7. 사만(邪慢) 실제로 갖추지 못한 덕이나 능력이 있다고 믿거나, 잘못된 견해를 옳다고 내세우는 마음

ㅡ애욕(愛欲)은 무엇인가를 붙잡으려는 마음이고,

아만(我慢)은 그것을 붙잡는 주체인 ‘나’를 실체로 세우는 마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고 싶고, 내가 가진 것을 잃고 싶지 않으며, 나의 생각과 지위가 옳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와 ‘내 것’이라는 집착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부(原阜)란 것은 교만한 만(慢) 위에 다시 만이나 과만(過慢) 등을 더하여 거듭 쌓이는 것을 부(阜)라 칭하는 것이다.

예컨대 세간의 평지 위에 다시 높은 고지(高地)가 있고, 그 위가 평탄한 것을 원(原)이라 하며,

그러한 원(原)에서 보다 조금 더 높은 것을 퇴(堆)라 하고,

퇴(堆)에서 다시 더 높은 것을 부(阜)라 하는 것이니,

이는 아만 위에 여섯 가지 만을 더하는 것이 부가 됨을 밝힌 것이다.

이는 아만(我慢) 위에 여섯 가지 교만이 더해져 겹겹이 높아지는 모습을 밝힌 것으로, 이를 부(阜)라고 하는 것이다.

 

육처(六處)의 취락(處聚落)에 안주한다는 것은, 교만(憍慢)의 원부(原阜) 위에 다시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의 육처(六處)를 더하여,

명색(名色)의 경계에 취착(取着)해서, 집착하고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로 인해 괴로움의 원인(苦因)이 더욱 증장한다는 뜻이다.

그 이하의 14 행의 경문은 문맥에 따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이 열 단락의 경문은 이구지(離垢地)에서 관고(觀苦)하여 중생의 괴로움을 관찰하고,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구제하고 보호하는 기비구호(起悲救護)함을 밝힌 분이다.

ㅡ괴로움의 원인을 깊이 관고(觀苦)하여서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원인을 이해하고,

올바른 길을 가르쳐서 지혜를 회복하도록 돕는 기비(起悲)에서 다시 구호(救護)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불자야(佛子)” 이하 31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원력으로 다백천(多百千)의 부처를 보게 됨을 밝힌 분(分)인데, 이 단락을 다시 열 단락으로 나누겠다.

5-1, “불자여(佛子)”부터 “나유타의 부처님(那由他佛)”에 이르기까지 3 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원력으로 많은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내용을 밝힌 것이다.

 

5-2, “여러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於諸佛所)”부터 “또한 모든 승가에게 공양한다(亦以供養一切衆僧)”까지 2행 반의 경문은,

두 가지 마음의 이심(二心)의 다섯 가지 공양물의 오사(五事)를 갖추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함을 밝힌 분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불·법·승(佛法僧) 삼보란 것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을 불보(佛寶)로 삼고,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을 법보(法寶)로 삼으며,

보현행(普賢行)을 승보(僧寶)로 삼으며, 

삼승(三乘)과 인천(人天, 인간·천상) 및 육도(六道)가 모두 총체적으로 이 삼보 안에 있으니, 이는 모든 것이 보현행(普賢行)을 따라 가르침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ㅡ불·법·승 삼보를 각각 비로자나·문수·보현에 배대한 것으로,

불보(佛寶) — 비로자나불(毘盧遮那) ㅡ 우주 법계에 두루한 부처님의 지혜와 깨달음, 즉 모든 존재와 현상을 비추는 법신불.
법보(法寶)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 ㅡ 지혜, 문수의 지혜는 진리를 바르게 관찰하고 분별과 집착을 넘어서는 지혜, 
승보(僧寶) — 보현행(普賢行) ㅡ 보현보살의 서원과 실천, 즉 깨달음의 지혜를 실제 행으로 펼쳐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살행입니다. 승보를 보현보살이라는 한 인물로만 설명하지 않고 보현행(普賢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수 보살의 지혜(文殊智)와 보현 보살의 실천(普賢行)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비로자나의 깨달음(毘盧遮那佛)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5-3, “삼선근(三善根)” 이하 “보시와 지계가 청정하게 원만히 갖추어진다(布施持戒淸淨滿足)”까지 4 행의 경문은,

십선계(十善戒)를 거듭 받아 지니는 부분을 밝힌 것으로, 

이는 초지(初地)의 보살도 최상위의 상상십선(上上十善)을 받아 지닌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여기에서는 다시 그 수행을 더욱 단련하고 연마하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5-4, “비유하자면 진금(眞金)” 이하 “계율을 지남이 청정하고 만족스럽다(持戒淸淨滿足)”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진금을 연마하는데 다시 반석(礬石)을 더해서 더욱 맑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수행을 거듭 단련하여 더욱 청정하게 하는 비유를 밝힌 것이다.  

 

5-5, “불자여(佛子)” 이하 “다만 자신의 능력과 분수에 따라(但隨力隨分)”까지 2 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행하는 바의 행을 밝힌 분이다.

 

5-6, “불자여(佛子)” 이하 “일체지지(一切智智)”까지 6 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직분(職)을 받음을 밝힌 분이다.

 

5-7, “또 이렇게 생각한다(又作是念)” 이하 “일체지지의 의지처(一切智智依止)”까지 2 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자신이 얻은 도가(道家)가 수승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아는 내용을 밝힌 분이다.

 

5-8, “이 보살은(是菩薩)” 이하 “권속으로 삼는다(以爲眷屬)”까지 4 행 반의 경문은,

이 보살 역시 집과 처자(妻子)를 버리고 출가하여 천삼매(千三昧)를 얻고, 부처님을 친견하는 내용을 밝힌 것이다.

 

5-9, “만약 보살의 수승한 원력으로(若以菩薩殊勝願力)” 이하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不能數知)”까지의 경문은,

수승한 원력으로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 이전의 의보업력(依報業力)에 의지하는 경우보다 훨씬 뛰어남을 밝힌 분이다.

 

5-10, “그때(爾時)” 이하의 경문은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게송을 설하는 분이다.

여섯 번째, “게송을 설하다” 이하 42행의 게송을 다시 5 단락으로 나누겠다.
6-1, “질직(質直)과 유연(柔軟)과 감능(堪能)” 이하 “모든 불자를 위해 이미 개연했다(爲諸佛子已開演)”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게송은, 앞에서 설명한 열 가지 법문을 다시 게송으로 읊은 것으로, 2 행을 한 게송으로 삼아 설명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경문에 갖추어져 있다.  

 

6ㅡ2, “불자여(佛子)” 이하 “제이지 가운데 수행하는 모습(第二地中之行相)”까지 4 행의 게송은, 대중이 법문을 듣고 기뻐하며 공양을 일으키는 부분을 밝힌 것이다.

 

6-3, “이 모든 보살들이(是諸菩薩)” 이하 “바라건대 제삼지의 법문을 설하여 주십시오(願爲演說第三地)”까지 3 행의 게송은,

여러 보살이 제이지(第二地)의 법문을 듣고 나서 다시 제삼지(第三地)의 법문을 설해 주실 것을 청하는 부분을 밝힌 분이다.

 

6-4, “법과 상응하는 여러 지혜의 행(與法相應諸智業)” 이하 “부처님의 청정한 수행과 서원을 모두 설하여 주십시오(佛淸淨行願皆說)”까지 3 행의 게송은, 여러 보살이 함께 법문을 청하는 내용을 밝힌 분이다.


6-5, “그때 해탈월보살이 다시 청하여 말하였다(時解脫月復請言)” 이하 두 행의 게송은,

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이 다시 한 번 제삼지(第三地)의 법문을 설해 주실 것을 청하는 부분을 밝힌 분이다.

 

앞에서 말한 일체종(一切種)이란, 가행(加行)을 통해 훈수(熏手)하는 종(種)이며,  이것이 (일체지) 곧 근본지(根本智)이다.

 

또한 지(智)라는 것은 근본지에 가행을 더하여 차별지(差別智)를 이루는 것을 밝힌 것이다.

가령 근본지는 삼매를 인(因)해 나타나는 것이고, 차별지는 근본지를 통해 관찰하는 가행력을 말미암아 닦아서 성취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가행의 관찰력과 대원력(大願力)을 갖추지 않는다면, 근본지는 고요한 공적에 머물러 정체하게 되는 것이니,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성문승(聲聞乘)과 같은 상태가 되어 실제로 활용할 작용(用)이 없게 되는 것이다.

 

① 근본지(根本智)는 진리의 본성을 깨닫는 지혜, 분별과 집착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현상이 인연에 따라 생겨나며 고정된 독립적 실체가 없다는 진리를 직접 아는 지혜로서, 여기에서는 근본지가 삼매(三昧)를 인연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삼매를 통해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고요해지면, 사물을 분별하고 집착하던 마음의 작용이 가라앉아 근본적인 지혜가 드러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구별해야 할 점은, 삼매의 고요함 자체가 곧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삼매는 지혜가 드러나는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 지혜를 실제 삶과 보살행 속에서 활용하는 수행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② 차별지(差別智)는 근본지에 의지하여 각각의 현상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는 지혜입니다.
- 근본지는 모든 존재가 고정된 자아 없이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고, 
- 차별지는 각각의 중생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어떤 괴로움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살펴 볼 수 있는 것이고, 
- 근본지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지혜이고, 

차별지는 그 지혜를 바탕으로 중생을 돕는 방법을 아는 지혜입니다.

따라서 차별지는 근본지에 바탕을 두고 여러 상황에 맞게 드러나는 지혜입니다.

ㅡ 가행(加行)
여기에서 '근본지만 있고 가행과 관찰력, 대눵력이 없다면 근본지가 적멸한 고요함에 머물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행(加行)은 깨달음을 향해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실천하는 수행으로, 단순히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혜를 바탕으로 실제 대상과 상황을 관찰하며 필요한 수행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며, 근본지는 그 사람과 나 자신이 모두 인연에 의해 존재하며, 고정된 자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고, 그러나 그 깨달음만으로는 그 사람의 구체적인 고통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으니까, 그 사람의 상황을 살피고, 무엇이 괴로움의 원인인지 관찰하여서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주는 것이 차별지의 작용이며, 그래서 가행과 대원력(大願力)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근본지(根本智)
법계의 본성을 깨닫는 지혜
삼매를 통해 드러나는 근본적인 지혜
↔
가행·관찰·대원력의 
차별지 差別智
각각의 상황을 살피는 지혜
중생과 현상에 맞게 지혜를 구체적으로 활용함
→
보현행 普賢行
깨달음의 지혜를 실제 행동으로 펼쳐 중생을 이롭게 함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4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6)
십지품③ㅡ7
(2) 이구지(離垢地) ㅡ3

 

네 번째 단락 중 40행의 경문은 제2지(第二地)에서 자비를 일으키는 기자비(起慈悲)를 밝힌 분(分)으로서,

이를 다시 열 단락으로 나누겠다.
4-1, “불자야” 이하 40행의 경문은, 중생을 자비롭게 생각하는 열 가지 마음의 십종자념중생(十種慈念衆生)의 마음과 중생이 겪는 괴로움의 고도(苦道)를 열 가지 측면에서 살펴서 그들을 열 가지 즐거움의 십종락(十種樂) 가운데 편안히 안주하도록 하려는 것이니, 스스로 단계적으로 열 가지의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를 갖추고 있다.  

중생은 신견(身見)·변견(邊見)·견취견(見取見)·계금취견(戒禁取見) 등의 잘못된 견해가 사견(邪見)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러한 것을 먼저 들어 첫머리에 있다고 표하고, 

ㅡ身見(신견) 오온으로 이루어진 몸과 마음을 영원하고 독립적인 자아라고 여기는 견해
邊見(변견) 영원히 존재한다거나 완전히 없어진다고 보는 극단적인 견해
見取見(견취견) 잘못된 견해를 진실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견해
戒禁取見(계금취견) 잘못된 계율이나 의식, 수행법을 궁극적인 해탈의 길이라고 집착하는 견해
邪見(사견) 인과와 진리 등을 그릇되게 이해하는 견해

ㅡ 오견(五見)은 신견·변견·사견·견취견·계금취견이지만, 원문은 그 가운데 네 가지를 먼저 언급하면서 이러한 견들이 사견에 의지하여 일어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신견이 다른 견해들이 일어나게 하는 바탕이라는 것입니다.

 

'육도(六道)와 삼계(三界)의 무명(無明)이 명색(名色)에 의지하여 일어나며, 그릇된 지혜의 악혜(惡慧)와 그릇된 욕망의 악욕(惡欲)을 낳으니, 이로 인해서 중생은 부처님의 뜻을 멀리 여읜다'는 것은 근(根, 6근)이 대상(境, 경)에 따라 변하고, 자기 안에 본래 갖추어진 부처님의 지혜의 불지(佛智)를 미혹하기 때문이다.

ㅡ명(名): 정신적인 작용과 요소
색(色): 물질적인 형상과 요소,

명색은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로서, 이러한 존재의 구조를 자기 자신이라고 집착하고,

 그 집착을 바탕으로 잘못된 지혜와 욕망을 일으키면 근본지를 제대로 보지 못는 것입니다.

ㅡ 눈·귀·코·혀·몸·뜻의 6근이 대상과 접촉하면, 그 대상에 집착해서 본지를 잊고 분별과 망상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나니, “나는 이와 같은 험난한 곳에서 중생들을 구해 내어, 두려움 없는 일체지(一切智, 부처님의 지혜)의 성(城)에 머물게 하리라.”는 것은 중생의 괴로움(苦)을 생각(念)하여 자비심을 일으키고, 그들이 본지(本智, 근본지)를 요달하게 하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또한 생각하기를, “일체의 모든 중생이 거대한 폭포수와 같은 물결에 휩쓸려 잠겨 있다.”란 것은 애욕의 물(愛水)에 빠지게 된 것을 밝힌 것이며, 

"욕류(欲流) · 유류(有流) · 무명류(無明流) · 견류(見流)에 들어가 생사의 소용돌이에서"란 것은

모두가 애욕의 강물에 휩쓸려 생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류하면서 전전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ㅡ사류(四流). 사폭류(四暴流)

欲流(욕류) 감각적 욕망에 휩쓸리는 흐름
有流(유류) 존재와 생존에 대한 집착, 삼계에 머무르려는 흐름
無明流(무명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흐름
見流(견류) 잘못된 견해와 분별에 휩쓸리는 흐름.
이 사폭류는 서로 분리되어 작용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욕망에 집착하면 그것을 계속 소유하고 유지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강해지는 것으로, 그러한 근본에는 무명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센 물살이 빠르게 굽이치고 세차게 흘러 중생들이 살펴볼 겨를조차 없다"는 것은,

앞의 네 가지 흐름의 욕류(欲流)·유류(有流)·무명류(無明流)·견류(見流)가 매우 거세고 빠르게 대상(경계)을 좇아 움직이며, 견(見)을 따라 온갖 망령된 망업(妄業)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를 관찰(觀)하고 다스릴 겨를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욕각(欲覺)ㆍ에각(恚覺)ㆍ해각(害覺)을 좇으면서 버리지 않는 것은, 이러한 세 가지 악작(惡作)의 흐름이 신견(身見)의 나찰(羅刹)에 의지하여 생겨나고, 그 가운데서 집착함으로써 영원히 애욕의 조림(稠林)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니,

이는 신(身) 등의 5견(五見)이 함께 생기함을 말미암아서 62견(六十二見)이 모두 일어남을 밝힌 것이다.

ㅡ 욕각(欲覺):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는 생각
에각(恚覺): 성냄과 분노를 일으키는 생각
해각(害覺): 다른 존재를 해치려는 생각
여기서의 각(覺)은 깨달음이라는 긍정적인 뜻이 아닌, 생각이나 사유 작용을 의미하고, 
욕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화를 내고, 화가 깊어지면 다른 존재를 해치려는 마음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들이 신견이라는 나찰에게 붙잡혀 애욕의 숲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육십이견(六十二見)이란, 비바사론(毘婆沙論)의 설명에 따르면 오온(五蘊) 각각에서 네 가지 견해의 사견(四見)이 일어나므로, 이러한 4 가지에 5을 곱하여 스무 가지가 되고, 그리고 삼세(三世)의 과거 · 현재 · 미래의 각각에 20을 적용하면 모두 60 가지가 된다. 여기에 몸과 자아의 관계에 관한 두 가지 견해, 곧 몸이 곧 자아라는 견해의 신신동일(神身同一)과 몸과 자아가 서로 다르다는 견해의 신신이(神身異)를 더하면 모두 육십이견(六十二見)이 되는 것이다.

ㅡ 오온(五蘊); 

색온(色蘊) 몸과 물질적 현상
수온(受蘊) 느낌과 감수작용
상온(想蘊) 생각하고 표상하는 작용
행온(行蘊) 의지와 여러 정신적 형성작용
식온(識蘊) 대상을 인식하는 의식

ㅡ 오온 각각에 네 가지의 견해가 있으므로 5 × 4 = 20
이를 과거·현재·미래 삼세에 적용하면 20 × 3 = 60
여기에 몸과 자아가 같다는 신신동일(神身同一) 
견해와 다르다는 신신이(神身異)의 견해를 더하면 62
따라서 육십이견은 단순히 숫자 62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오온과 자아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여 생기는 견해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또한 색온(色蘊)에 관한 네 가지 견해가 있으니,

1. 색(色)이 곧 나(我)라는 견해의 즉색시아(卽色是我),→몸이 변하면 나도 변하고, 몸이 사라지면 나도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

2. 색을 여읜 것이 나(我)라는 견해의 이색시아(離色是我),→몸과 별개로 변하지 않는 자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3. 나(我) 속에 색(色)이 있다는 견해의 아중유색(我中有色),→‘나’라는 주체가 따로 있고, 그 안에 몸과 물질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4. 색(色) 안에 나(我)가 있다는 견해의 색중유아(色中有我)→몸이라는 물질적 존재 안에 독립적인 자아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와 같이 오온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ㅡ이 네 가지는 모두 몸과 자아의 관계를 실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생각으로, 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정신의 여러 요소를 영원하고 독립적인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래 부처 지혜인 불지(佛智)를 타고서(乘) 다섯 수행 단계의 오위(五位)를 거칠 때, 제(諦, 진리)를 보는 안목이 점차 밝아지면서 다시 다섯 가지 원인의 오인(五因)이 있고, 다섯 가지 결과의 오과(五果)가 있으니,

이것은 본래의 근본 오위(五位)으로 세운 것으로, 원인과 결과를 합쳐 10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백열 가지의 백일십법문(百一十法門)이 있으니,

그 각각에는 진리를 미혹하게 하고 수행을 가로막는 어리석음 등의 법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선재동자(善財童子)의 행을 들어 밝힌 바와 같으니, 그 각각의 해당 지위에 도달하는 것을 기다려 자세히 밝히리라.

ㅡ부처의 지혜가 수행을 모두 마친 뒤에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갖추어진 부처의 지혜를 믿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수행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외부에서 새로운 지혜를 얻어 자기 안에 채워 넣는 과정이라기보다, 본래의 지혜를 가리고 있는 미혹과 집착을 점차 밝혀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행의 각 단계마다 새로운 가르침과 과제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각 단계의 장애를 미리 하나의 일반적인 설명으로 모두 다루기보다는, 해당 수행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 장애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밝힌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 지위(位)에 따라 닦아 나아가지만 아직 자재(自在)함을 얻지 못한 상태에 남아 있는 어리석음의 우치(愚癡)란 한 것은, 곧 바로 부처님의 불과(佛果)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것이며, 그 가운데에는 이른바 산수와 헤아림의 광대함에 관한 어리석음의 산수광대우(筭數廣大愚)와 수호광명의 공덕이 지닌 광대한 분량에 관한 어리석음의 수호광명공덕분량광대우(隨好光明功德分量廣大愚)는 오로지 부처의 궁극적인 과(果)라야 비로소 요달해 아는 것이다.

ㅡ처음에는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거친 집착을 살펴보고, 수행이 깊어질수록 미세한 무지와 장애를 알아차리게 되는 그 과정이 자신 본래의 자불지(自佛智)를 바탕으로 수행한다는 것으로, 이를 3 가지로 정리하면,
1. 미혹을 알아차림: 오온을 실체적인 나라고 여기는 잘못된 견해를 살펴봄.
2. 본지(本智)
에 의지함: 수행의 근거를 외부의 어떤 대상에 두지 않고 자신의 본래 부처 지혜(自佛智)에 둠.
3. 단계마다 더욱 깊이 밝히는 것: 수행이 진전될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미세한 무지와 장애까지 살피게 됨.
따라서 수행이 단순히 번뇌를 제거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본래의 자불지(自佛智)를 바탕으로 점점 더 깊고 미묘한 진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승기품(阿僧祇品)과 수호광명공덕품(隨好光明功德品)에서 여래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각 수행 단계의 지위(地位)에 따라 점차 닦아 나아가는 가운데 나타나는 미혹의 장애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찾아간 선지식(善知識)들이 각각 나타내는 법문과 수행에 하나하나 대응시켜 자세히 설명한다. 이는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며, 중생이 삿된 길의 사도(邪道)를 따라가는 모습을 밝히기 위한 것이며, 

ㅡ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재동자의 선지식(善知識)들이 각각 법을 나타내는 표법(表法)으로, 선지식들은 각각 다른 수행의 모습과 깨달음의 측면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선재동자의 구도 과정은 각 선지식이 보여 주는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수행을 점차 넓히고 깊게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또한 일체중생 가운데 인간(人), 천상(天), 마왕(魔), 범천(梵), 성문(聲聞), 연각(緣覺), 정토의 보살(淨土菩薩)이 모두 사견(邪見)이면서도 다만 그들이 받는 괴로움(苦)과 즐거움(樂)이 서로 다를 뿐이며, 모두가 참된 정견(正見)이 아니다.

ㅡ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기준에서 보면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에 머무는 것, 범천의 높은 선정에 머무는 것, 성문과 연각의 깨달음에 만족하는 것, 정토의 보살이라 하더라도 아직 부처의 지혜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상태에 머무는 것은 모두 궁극적인 정견(正見)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기서 사견(邪見)이라고 표현한 것은 반드시 그들이 모두 악하거나 잘못된 수행을 한다는 것이 아닌, 불지(佛智)를 기준으로 볼 때 아직 궁극적인 진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 견해와 수행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행(顚倒行)이란 네 가지의 사도(四倒)와 여덟 가지의 팔전도(八顚倒) 등을 말한다.

ㅡ사전도(四四倒), 4 가지의 잘못된 생각
상전도(常顚倒)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생각함
낙전도(樂顚倒) 괴로움이 있는 것을 즐거움이라고 생각함
아전도(我顚倒) 무아인 것을 나라고 생각함
정전도(淨顚倒)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생각함

 

마치 장님과 같아서 이끄는 스승이 없다(猶如盲人無有導師者)는 것은, 보살이 미혹을 관찰하고 자비를 일으켜서 출요도(出要道,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요긴한 길)를 구해 군품(群品, 중생)을 지혜로서 제도함을 밝힌 것이며, 그 이하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의 경계(魔境界)에 들어간다는 것은 오온마(五蘊魔), 번뇌마(煩惱魔), 사마(死魔), 천마(天魔)의 네 가지 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ㅡ사마(四魔)는 수행자가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를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
오온마(五蘊魔); 오온으로 이루어진 몸과 마음에 얽매여 생기는 장애
번뇌마(煩惱魔); 탐욕·성냄·어리석음 등 번뇌의 장애
사마(死魔); 죽음으로 인해 수행과 생명의 흐름이 끊기는 장애
천마(天魔); 수행자를 유혹하고 깨달음을 방해하는 마왕의 작용
여기서 마(魔)는 반드시 외부 악한 존재가 아니라, 오온에 대한 집착, 번뇌, 죽음의 두려움처럼 수행자의 마음과 삶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로서, 마의 경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러한 장애에 사로잡혀 진리를 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악한 도적에게 사로잡힌다(惡賊所攝者)는 것은 육근(六根)이 각각의 대상(境, 경계)을 따라가면서 여러 사견(邪見)를 일으키는 것을 말하며, 

 

수순마심(隨順魔心)하여 마음이 마의 작용을 따라가면 참된 진(眞)에서 멀어지고, 미혹하여서 명색(名色)을 망령되이 취하여서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계취(戒取)ㆍ견취(見取)ㆍ사견(邪見) 등을 취하여 스스로 올가미가 되어 얽매이고, 고통(苦)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윤회함을 밝힌 것이며, 

 

'우치조림(愚痴稠林, 어리석음의 빽빽한 숲)의 미혹한 바'란 것은 일체중생이 바로 그러한 어리석음의 숲에 빠져 있는 것과 같다.

 

대략 요약하면 팔만사천(八萬四千)이 있으니, 그 대체(大體)를 총론하면, 하나를 미혹하면 허공과 동등하게 미혹하는 것이라서, 자신의 여래 보광본지혜해(普光本智慧海)를 미혹하면 곧 법계(法界)와 허공계(虛空界)와 동등하게 총체적으로 미혹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어리석음이 광대하고 많아서 근본 지혜를 가리기 때문에 조림(稠林)이라 칭하는 것이다.

ㅡ여래의 지혜는 특정한 장소나 한정된 존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계와 허공계에 두루하지만, 중생은 그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무명(無明)과 집착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위에 들어가는 보살도(菩薩道)를 미혹한 어리석음은 5위(五位)를 따라 닦아 나가는 인과(因果)가 100(一百)이 있으니, 이는 오위의 각 단계에 십바라밀(十種波羅蜜)이 있으며, 이것을 수행의 바탕인 행체(行體)로 삼는다.  

예를 들자면, 십주(十住)에서는 십신(十信)을 마친 뒤 방편삼매(方便三昧)를 닦는 것은, 십주 가운데 첫 단계인 초발심주(初發心住)의 과위(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마침내 발심주의 과(果)에 바르게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기억하고 염하는 억념제불지혜(憶念諸佛智慧)의 광명(光明)을 얻는다는 것이 이러한 것이며, 해문국(海門國)에 들어가서 관(觀)하는 것은 치지주(治地住)를 향해 닦는 것이며,

일체중생해(一切衆生海)가 바로 청정법계해(淸淨法界海)라는 것을 관찰하여, 보안법문(普眼法門)을 얻는 것은 바로 치지주의 과위(果)에 올바르게 들어가는 것이다.

ㅡ보안법문(普眼法門)을 얻는 것이 바로 치지주의 과위에 올바르게 들어간다는 뜻으로, 보안(普眼)은 글자 그대로 두루 보는 눈으로, 일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존재와 현상을 넓고 두루 관찰하는 지혜를 나타냅니다.
발심주에서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기억하고 염하는 수행을 했다면,

치지주에서는 그 지혜를 바탕으로 일체중생과 법계를 넓게 관찰하는 수행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위에는 모두 오십 가지의 오십개법문(五十箇法門)이 있으며,

각각 두 가지 원인과 결과의 이종인과(二種因果)가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100 가지 향상과 진전의 승진법문(昇進法門)이 있다.

ㅡ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迴向), 십지(十地) X 10 바라밀 = 50 법문.
각 법문에 두 가지 인과(二種因果)가 있어서 50 법문 X 2 = 100

 

또한 초발심주로부터 생사조림(生死稠林)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를 첫머리가 된다고 표시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여러 견해의 제견(諸見)이 본래 실체가 없다는 것을 밝게 안다면, 그 여러 견해도 곧 법계의 연기로 태어난 법계연생(法界緣生)임을 알게 된다.
일어나는 기(起)는 오직 법에 따라 일어나는 법기(法起)요, 
보는 견(見) 또한 오직 법에 따라 보는 법견(法見)이요,
지혜를 따라 그 대상에 대한 인식과 작용이 구르는 수지이전소연(隨智而轉所緣)인 것이다.
그렇게 반연된 바인 삼계(三界)와 육도(六道)의 착하지 못한 불선도(不善道)가 모두 이 다섯 가지의 견해를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만약 이를 깨달아 요달하면 곧 부처의 불지견(佛知見)지견에 들어가며, 그 이후에는 모든 번뇌가 총체적으로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며, 이와 같이 5견상(五見相)을 파괴하는 자는 세간의 업을 여의는 것이다. 

이러한 5견(五見)으로 인(因)해서 투쟁과 성냄과 원한이 생겨나는 것이니,

가령 탐냄으로 인해서 그릇된 생계 수단의 사명(邪命)을 일으키고,

삼독(三毒)을 원인으로 탐욕·성냄·어리석음에 따른 업이 일어나고, 악업이 더욱 왕성해지는 것을 치연(熾然, 치열하게 타는 것)이라고 한다. 반면 청량한 열반(淸涼涅槃)이란 업이 사라지고 지혜가 드러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또 어리석음의 무거운 어둠과 망령된 견해의 막(膜)을 들은 것은 총체적으로 미혹된 장애의 업이 많음을 밝힌 것이니, 명색(名色)을 미혹함으로써 바른 지혜의 정지(正智)를 가로막게 되는 것을 전체적으로 밝히기 위한 것이다.

 

또한 지옥 · 축생 · 아귀에 떨어지는 것을 들어 설명한 것은, 앞에서 말한 미혹의 장애로 인해 그릇된 길에 빠져 지옥 등에 떨어지게 됨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여기서 말하는 지옥은 십팔지옥(十八地獄)을 가리킨다.

십팔지옥(十八地獄)이란 다음과 같은 열여덟 종류의 지옥을 말하는 것이니, 
1. 확탕지옥(鑊湯地獄) — 큰 가마솥의 끓는 물에 들어가는 지옥
2. 노탄지옥(鑪炭地獄) — 화로와 숯불의 뜨거운 고통을 받는 지옥
3. 도산지옥(刀山地獄) — 칼로 이루어진 산에서 고통받는 지옥
4. 검수지옥(釰樹地獄) — 칼날로 된 나무에서 고통받는 지옥
5. 흑암지옥(黑闇地獄) —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지옥
6. 한빙지옥(寒冰地獄) — 극심한 추위와 얼음의 고통을 받는 지옥
7. 화거지옥(火車地獄) — 불타는 수레에 의해 고통받는 지옥
8. 화륜지옥(火輪地獄) — 불타는 바퀴에 의해 고통받는 지옥
9. 철망지옥(鐵網地獄) — 쇠그물에 얽히는 고통을 받는 지옥
10. 동주지옥(銅柱地獄) — 뜨겁게 달구어진 구리 기둥과 관련된 고통을 받는 지옥
11. 비시지옥(沸屎地獄) — 끓는 오물 속에서 고통받는 지옥
12. 발설지옥(拔舌地獄) — 혀를 뽑히는 고통을 받는 지옥
13. 정신지옥(釘身地獄) — 몸에 못이 박히는 고통을 받는 지옥
14. 토화지옥(吐火地獄) — 불을 토하는 고통을 받는 지옥
15. 음동지옥(飮銅地獄) — 녹은 구리를 마시는 고통을 받는 지옥
16. 우치지옥(愚癡地獄) — 어리석음과 관련된 지옥
17. 화성지옥(火城地獄) — 불로 둘러싸인 성에서 고통받는 지옥
18. 회하지옥(灰河地獄) — 재와 뜨거운 물질이 흐르는 강에서 고통받는 지옥.

 

이상의 열여덟 가지 지옥은 마음으로 지은 악업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곳에서 과보를 받는다는 뜻이다.

악견의 그물인 악견망(惡見網)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중생이 오온(五蘊) 각각에 이러한 4 가지의 사견(四見)를 모두 갖추고 있음을 밝힌 것이며,

이와 같은 여러 견(見)은 모두 신(身)에 의거해서 일어나는 바이기 때문에 이 경전에서 “신(身)도 없고 또한 견(見)도 없으면 부처의 무상신(無上身)을 얻는다(無身亦無見,得佛無上身)”고 한 것이다.

ㅡ네 가지 견해의 사견(四見)은
1. 즉온시아(卽蘊是我): 오온이 곧 나라고 생각함.
2. 이온시아(離蘊是我): 오온을 떠나 별도의 내가 있다고 생각함.
3. 아중유온(我中有蘊): 나라는 실체 안에 오온이 있다고 생각함.
4. 온중유아(蘊中有我): 오온 안에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함.
이러한 4 가지 견해를 색온(色蘊)· 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蘊) 각각에 적용한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수온에 대해서도 느낌이 곧 나라고 생각하거나, 느낌과 별도로 내가 있다고 생각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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