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4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6) 십지품③ㅡ8
(3) 발광지(發光地)①ㅡ1
제삼 발광지(第三發光地)를 이제 해석하려고 하니, 앞의 지위와 마찬가지로 오문(五門)으로 나누어 설명하겠다.
첫째, 지위의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니, 어찌하여 이 지위를 발광지(發光地)라 부르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팔선정(八禪定)을 닦기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수행을 잘 통달하고, 세간의 선정인 세간선(世間禪)의 선체(禪體, 본질)와 마음의 작용 및 그에 대응하는 대치(對治)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니,
이는 삼계(三界)에 존재하는 장애와 번뇌의 양상을 분명히 통달하며, 이를 통해 지혜가 더욱 밝고 청정하게 하기 때문에 발광지(發光地)라 하는 것이다.
초지와 이지에서는 욕계(欲界) 가운데에서 중생을 따라 얽어매는 번뇌와 수번뇌의 수전법(隨纏法, 속박을 따르는 법)를 잘 요달하여 다스리고,
이제 삼지(발광지)에서는 색계와 무색계의 사선(四禪)과 팔정(八定)의 법문을 잘 요달하여 삼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얻어서, 지혜의 광명이 눈앞에 드러나서 현전하게 되는 것이니 그러한 때문에 발광지(發光地)라 하는 것이다.
만약 욕계의 번뇌만을 다스리고, 팔정(八定)을 수행하여 색계와 무색계를 요달하지 못한다면, 위의 두 세계인 색계와 무색계의 장애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발광지라 부를 수 없지만,
이 지위에서는 삼계의 업장(業障)을 닦아 다스려 없애기 때문에 그 명칭이 발광지이니, 선정(定)이 지혜의 광명인 혜광(慧光)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ㅡ삼계(三界)
욕계(欲界) 감각적 욕망과 여러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는 세계
색계(色界)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났지만 미세한 물질적 형상이 남아 있는 세계
무색계(無色界) 물질적 형상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정신적인 선정의 경지에 머무는 세계
ㅡ팔선정(八禪定)은 색계의 사선(四禪)과 무색계의 사무색정(四無色定)을 합한 여덟 가지 선정의 경지.
색계의 사선(色界四禪)
1. 초선(初禪) ㅡ 욕계의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선정.
2. 이선(二禪) ㅡ 거친 사유와 관찰이 가라앉고, 선정에서 비롯되는 기쁨과 즐거움이 더욱 깊어지는 선정.
3. 삼선(三禪) ㅡ 기쁨의 들뜸도 가라앉고, 깊은 평온과 즐거움이 나타나는 선정.
4. 사선(四禪) ㅡ 즐거움과 괴로움의 감각을 넘어 평정과 마음의 청정함이 이루어지는 선정.
무색계의 사무색정(四無色定)
1.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 무한한 허공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
2.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 무한한 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
3.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 아무것도 소유할 것이 없다는 경지에 머무는 선정.
4.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 생각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단정할 수 없는 미세한 선정의 경지.
ㅡ발광지(發光地)는 빛을 발하는 지위, 또는 지혜의 빛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정과 지혜를 통해 무명과 번뇌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광명이 드러나는 과정을 선정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 욕계의 번뇌를 관찰하여 다스리고,
-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을 익히고,
- 선정의 본질과 마음 작용을 이해하고,
- 삼계에 걸쳐 있는 장애와 번뇌를 관찰하고,
- 선정력을 바탕으로 지혜가 더욱 밝고 청정하여 진다.
따라서 발광지에서는 단순히 깊은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정을 통해 지혜가 밝아지고 번뇌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이 지위에서는 어떤 행문을 닦는지를 밝히는 분이다.
인바라밀(忍波羅蜜)을 중심 행의 체(體)로 삼고, 나머지 아홉 바라밀을 그에 따르는 보조로 삼는 것이니,
이는 삼계(三界)의 업장(業障)이 다하여 멸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인욕(忍)을 순무생인(順無生忍)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ㅡ수순무생인(順無生忍)
- 順(수순): 그 이치에 따르고 부합한다는 뜻.
- 無生(무생): 모든 법에는 고정된 자성으로서의 생겨남이 없다는 뜻.
- 忍(인): 그 이치를 깊이 받아들이고 흔들림 없이 감당하며 체득한다는 뜻
만약 초발심주(初發心住)에서 부처님의 지혜가 현전한다면, 이를 모든 부처님의 불지혜가(佛智慧家)에 처음 태어나는 것이며, 이미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迴向)에서 모두 무생인(無生忍)을 얻었고 말하는 것은 바로 총체적인 뜻이다.
그러나 수행의 거칠고 미세한 추세(麤細)를 구분하여 점차 나아가는 관점에서 말한다면,
지전(地前, 지위 이전)의 삼현(三賢)은 부처님의 지혜로 자신을 조복시키는 단계이므로 복인(伏忍)이라 하고,
초지(初地) · 이지(二地) · 삼지(三地)는 무생인(無生忍)을 따른 것이며,
사지(四地) · 오지(五地) · 육지(六地)에 이르러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고, 아우러 세간의 장애가 사라짐을 얻어서 비로소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칠지(七地) · 팔지(八地) · 구지(九地)는 무공용(無功用)의 적멸인(寂滅忍)이라 하며,
십지(十地)에 이르면 자비와 지혜가 원만하여져서 그 지위가 모든 부처님과 같은 것이다.
ㅡ수행이 점차 깊어지는 과정
수행 단계인(忍)의 명칭의미
| 지전삼현(地前三賢) | 복인(伏忍) | 부처님의 지혜로 번뇌와 분별을 조복함 |
| 초지·이지·삼지 | 수순무생인(順無生忍) | 무생의 이치에 점차 따르고 부합함 |
| 사지·오지·육지 | 무생인(無生忍) | 무생의 이치를 더욱 깊이 체득함 |
| 칠지·팔지·구지 | 무공용적멸인(無功用寂滅忍) | 의도적인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적멸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작용함 |
| 십지 | 자비와 지혜의 원만함 | 자비와 지혜가 두루 갖추어져 부처님의 경지에 가까워짐 |
셋째,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법을 나타냄을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으니,
선재동자가 이 지위에서 희목관찰중생야천신(喜目觀察衆生夜天神, 기쁜 눈으로 중생을 관찰하는 야천신)이 보리장(菩提場, 보리도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연화장사자좌(蓮華藏師子之座)에 앉아 있음을 보게 되고,
선재동자는 그곳에서 대세력보희당해탈문(大勢力普喜幢解脫門)을 얻는 것은, 초지(初地)에 처음 들어가 발심하는 초발심(初發心)을 나타내는 것이며,
ㅡ희목관찰중생야천신(喜目觀察衆生夜天神)
- 喜目(희목): 기쁘고 자애로운 눈, 중생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
- 觀察衆生(관찰중생): 중생의 상태와 근기, 고통을 살펴봄.
- 夜天神(야천신): 밤을 상징하는 천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선지식.
ㅡ대세력보희당해탈문(大勢力普喜幢解脫門)
- 大勢力(대세력): 수행을 실현하는 크고 강한 힘.
- 普喜(보희): 널리 기쁨을 일으킴.
- 幢(당): 깃발이나 당번으로, 어떤 가르침이나 공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모습을 상징함.
- 解脫門(해탈문):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게 하는 수행의 문.
제2 이구지(離垢地)는 첫 회상의 보리의 체(體)를 계의 체(體)로 삼는 것이며, 계율(戒)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제3지는 이 보리(깨달음)에 의지하여 인행(忍行)을 성취하기 때문이니, 인욕은 수행의 첫머리가 되는 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신이 보리도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한 것이니, 이는 깨달음(菩提)을 바탕으로 인욕의 수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또한 연화장사자좌(蓮華藏師子之座)에 앉아 있다고 한 것은, 연꽃이 수행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나타내고, 사자좌는 주체가 되는 법에 의지한다는 의주(依主)의 뜻을 밝힌 것이다.
희목관찰중생(喜目觀察衆生)이라고 호칭한 것은 법인(法忍)을 바탕으로 자비를 행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야천신(夜天神)이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선재동자가 대세력보희당해탈(大勢力普喜幢解脫)을 얻었다는 것은 삼계를 벗어난 장애가 다하여 법인(法忍)의 수행이 원만하게 성취하여서 탐욕(貪)과 성냄(嗔), 분노(忿)와 원한(恨)의 미혹(번뇌)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므로 법인(法忍)이 현전하여 대세력이 있음을 밝힌 것이며,
보희당해탈(普喜幢解脫)이란 것은 능히 자타(自他)의 번뇌를 꺾어버리는 것이며,
또한 모든 경계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모든 위순(違順, 거스르는 경계와 순조로운 경계)에서 법락(法樂)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넷째, 삼계에서 이 지(地)가 어떤 계(界)의 해탈을 얻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는 삼계의 해탈을 얻으니,
앞의 초지와 2지는 욕계를 대치하였고,
이 3지(三地)는 단계적으로 위에 있는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2계의 장애에 대치하는 것이니, 팔선정(八禪定)은 총체적으로 삼계의 장애에 대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지(四地)에서는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닦아 관찰하고,
오지(五地)에서는 십제관(十諦觀)을 닦으며,
육지(六地)에서는 십이연생관(十二緣生觀)을 닦아서, 출세간(出世間)의 지혜와 세간(世間)의 지혜를 함께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ㅡ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
1. 사념처(四念處) — 몸·느낌·마음·법을 바르게 관찰함.
2. 사정근(四正勤) — 악을 끊고 선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함.
3. 사여의족(四如意足) — 선정과 수행을 성취하는 네 가지 기반.
4. 오근(五根) — 신(信)·정진(精進)·염(念)·정(定)·혜(慧).
5. 오력(五力) — 오근이 장애를 이기는 힘으로 성숙한 것.
6. 칠각지(七覺支) —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요소.
7. 팔정도(八正道) — 바른 견해·사유·말·행동·생활·노력·마음챙김·선정.
ㅡ십이연생(十二緣生) 십이연기(十二緣起);
1. 무명(無明) 2. 행(行) 3. 식(識) 4. 명색(名色) 5. 육입(六入) 6. 촉(觸)
7. 수(受) 8. 애(愛) 9. 취(取) 10. 유(有) 11. 생(生) 12. 노사(老死)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에서 두 가지 뜻은 앞서와 같으니,
5-1,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은, 이 발광지(發光地)의 경문을 일곱 부분으로 장과하겠다.
5-1-1, “이 때 금강장보살” 이하 “제3지를 얻는다(得第三地)”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제2지(第二地, 이구지)의 수행을 바탕으로 제3지(第三地, 발광지)에 나아가면서 열 가지 마음의 십종심(十種心)을 일으킴을 밝힌 분(分)이다.
5-1-2, “불자여(佛子)”이하 “말로만 청정하다고 해서 청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非但口言而可淸淨)”에 이르기까지 52행 반의 경문은,
제3 발광지(發光地)에 바르게 머물면서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관찰하고, 일체 중생을 향해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는 수행과 법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존중하며, 법을 듣기 위해서는 불구덩이에 들어가 고(苦)를 받으면서도 법을 즐겨 들음을 밝힌 분이다.
5-1-3, “불자여(佛子)”이하 “그러나 즐겨 집착하는 바가 없다(而無所樂著)”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발광지에 머물면서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사선정(四禪定)과 팔선정(八禪定)을 닦고, 법성(法性)에 수순하여 수행하되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밝힌 분이다.
5-1-4, “불자야” 이하 “또한 다시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이 지위가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4무량심(四無量心)을 닦음을 밝힌 분이다.
5-1-5, “불자야” 이하 “의원력으로 그 가운데 태어난다(明以願力而生其中)”에 이르기까지 33행의 경문은,
이 지(地)에 머물 때 선정(禪定)을 닦아 신통력(通力)을 얻음으로서, 육근(六根)이 청정해지는 수행을 밝힌 것이다.
5-1-6, “불자야” 이하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而說頌言)”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부처님을 친견하는 범위의 넓고 좁음과 직분을 받는 수직(受職)을 밝힌 분이다.
5-1-7,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而說頌言)”는 게송을 설한 분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면,
5-1-7-1, “그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에서부터 시작하는 5 행의 경문은,
제2 이지(離垢地)의 수행을 바탕으로 제3 발광지(發光地)에 나아가면서 열 가지 마음의 십종심(十種心)을 일으키는 과정을 밝힌 것으로,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5-1-7-2, “불자야” 이하 52행 반의 경문을 다시 다섯 단락으로 나눈다.
5-1-7-2-1,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제3지에 머물러서” 이하 “이것이 10이 된다(是爲十)”에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유위법(有爲法)이 괴로움이며 무상(無常)하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열 가지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수행을 밝힌 분이다.
ㅡ유위법(有爲法)은 인연과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모든 현상으로,
우리가 의지하는 몸과 마음, 재산,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 등도 모두 유위법에 속하며, 이러한 것들은 인연따라 잠시 유지되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 것이므로 그것들을 영원한 행복의 근거로 삼으면 결국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5-1-7-2-2, “보살이 이렇게 중생계를 보아서” 이하 “구경 열반의 즐거움(究竟涅槃之樂)”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려면 어떤 방편(方便)을 사용해야 하며, 중생을 어디에 머물게 해야 궁극적인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수행을 밝힌 분이다.
5-1-7-2-3, “문득 이러한 생각을 했다” 이하 “이같이 관찰해서 다 요달해 알았다(如是觀察了知已)”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어디에 안치해야 하는지, 그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고 아는 구경처(究竟處)를 앎을 밝힌 분이다.
5-1-7-2-4, “배(倍)나 정법에 대해” 이하 “관찰하여 수행한다(觀察修行)”에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배나 더 부지런히 법을 구하며, 법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생명의 신명(身命)까지도 버릴 수 있고, 큰 불구덩이에 들어가더라도 괴로워하지 않는 수행을 밝힌 것이다.
5-1-7-2-5, “이 보살” 이하 2행의 경문은,
보살이 단지 말로만 수행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하고 결정적으로 실제 수행을 행한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ㅡ이 대목은 보살의 자비가 막연한 감정에 머물지 않고,
- 중생이 어떤 괴로움을 겪는지 관찰고,
- 그 괴로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살피고,
- 어떤 방편으로 도울 수 있는지 생각하여서,
- 궁극적으로 어디에 이르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으로, 따라서 자비와 지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살의 수행은
관찰(觀察) → 자비(慈悲) → 방편(方便) → 구법(求法) → 실천(修行)으로 연결됩니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4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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