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22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이상으로 10 개의 회향문을 정석(正釋)하여 바르게 해석하여 마쳤으며, 
제13 단락을 장과하자면, “부처의 신력으로 인하여(佛神力)” 이하를 다시 5 단락으로 나누겠으니,

첫째. 부처의 위의(威儀)가 대지를 진동하는 분(分)이며,

둘째, 모든 제천(諸天)들이 공양을 일으키는 분(分)이니,

다시 제천(諸天)들이 공양을 일으키는 것에 2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향기로운 꽃과 번개(幡蓋)로 공양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모든 천들이 노래로 찬탄하고 예경(禮敬)하고 광명을 놓는 등의 공양이다.

셋째, “이 도솔천에서와 같이(於此兜率天)” 이하 “모두 다 이와 같다(悉亦如是)”에 이르기까지는,

시방이 모두 그와 같다는 것을 총체적으로 들어서 매듭지은 분이다.

넷째, 시방의 명호가 같은 동호(同號)의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들이 모두 함께 와서 법을 증명하는 분이다.

다섯째,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관찰하고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둘째, 다음과 같이 경문을 따라 뜻을 해석하겠으니, 

무엇을 등법계무량 회향(等法界無量迴向)이라 하는 것인가?

해석함에 있어서,

법계에 중간이나 변두리가 없는 것과 같이, 회향심(迴向心)에도 중간이나 변두리가 없는 무중변(心無中邊)한 회향이며,

법계에 무작자(無作者, 작위하는 자)가 없는 것과 같이 회향심(迴向心)에도 작위하는 자가 없는 회향이며,

법계에 가고 옴이나 멀고 가까움이 없는 것과 같이

회향심(迴向心)에도 가고 옴이나 멀고 가까움이 없는 심무거래원근(心無去來遠近) 회향이며,

법계가 마치 허공과 같으니, 회향지(迴向智)도 마치 허공과 같으며,

법계가 불사의(不思議)하듯이, 회향지(迴向智)도 불사의한 것이며,

법계가 의지하는 바가 없는 무소의(無所依)인 것과 같이, 회향지(迴向智)도 의지하는 바가 없으며,

법계에 일체제불(一切諸佛)들이 공주(共住)하여 함께 머무는 바인 것과 같이,

회향지(迴向智)도 일체제불이 공주(共住)하는 바이며,

법계가 3세(三世)와 일체의 모든 생멸하는 시분(時分)의 소섭(所攝, 거두는 바)이 아닌 것과 같이

회향지(迴向智)도 3세 시분의 소섭(所攝, 거두는 바)가 아니며,

법계가 3세(三世)의 일들이 원만하게 현전하는 바이니, 회향지(迴向智)도 3세 사업이 원만하게 현전하고 있으며,

법계가 유(有)와 무(無)에 자재로우니, 회향지(迴向智)도 유와 무에 자재한 것이니,

이는 자타(自他)로 하여금, 그 모두가 법계와 같이 걸림 없이 자재하여서 모든 부처와 같이 될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명칭이 등법계무량 회향인 것이니, 그 대의는 보리심을 발한 일체의 모든 이들로 하여금 한결같이 법계의 모든 덕용(德用, 덕의 공용)이 자재롭고 원만하게 하고, 광대하고 무한하게 하고, 크고 작은 성품을 여의게 함으로써

1ㆍ2ㆍ3백천만 등의 유한(有限)함에 속하지 않고, 무한(無限)한 법과 동등하여져서,

세간과 출세간의 대지(大智)와 대비(大悲)와 대희(大喜)와 대사(大捨)가 법계와 중생계와 동등한 것이다.
만약 이렇게 회향치 않는다면, 설사 보리를 구한다 할지라도 단지 2승의 적멸에 머무는 보리이거나,

보살의 정토에 즐겨나는 것이거나,

모두가 문 밖의 세 수레인 문외삼거(門外三車, 법화경의 양, 사슴, 소가 끄는 수레)에 머물 뿐인 것으로, 

노지백우(露地白牛, 도로상의 흰 소)는 그러한 분수(능력)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10회향은 세간을 벗어나는 마음을 얻은 출세심자(出世心者)를 얻은 모든 3승으로 하여금,

세간의 생사의 성(性, 성품)의 자성법계(自性法界)를 요달하게 하여서 대자비를 일으키게 하는 것으로,

일체 중생과 더불어 중생의 성품이 바로 법계의 지혜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평등한 자비문을 얻어서 보광명원지(普光明圓智)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초암(草庵)의 화성(化城)에는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다.

 
곧, 유마 거사가 설한 일기법문(一期法文)은 3승을 회향하게 하는 소분(小分)인 것이며,

법화경에서 “노지백우(露地白牛, 도로상의 흰 소)의 승(乘)"은 일분(一分)의 보소(寶所)를 대략 진술하여서 총체적으로 법계문의 보광명대지불과(寶光明大智佛果)인 보현의 행해(行海)와 더불어 널리 종결짓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당 경전 속의 10회향문은 10주와 10행 속의 대지혜와 대자비의 법신만행(法身萬行)과 공덕의 장엄이 자타(自他)를 가로막으며, 비경(悲敬, 자비와 공경)이 참되지 못하고, 지견(知見)이 넓지 못하고, 자비심이 넓지 못하고, 마음이 광대하지 못하여서 무한한 법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니, 이러함을 돌이키기 위하여 이 회향으로 균등하게 다스려서 법계의 걸림 없고 무한한 자재로운 성품에 동등하게 부합시키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무한한 회향으로 발원해서 무한한 법계의 중생을 널리 위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진문(眞門)에만 머물면서 정토에만 치우쳐 태어날 뿐, 법계의 걸림 없는 구정(垢淨, 더러움과 깨끗함)이 평등한 무한의 동체대비(同體大悲)에는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과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10회향으로서 10신ㆍ10주ㆍ10행과 10지ㆍ11지의 행문(行門)과 함께 균형 있게 하는 것이나, 

총체적으로는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뜻은 10지위(十地位)에서 다시 따로 불과(佛果)를 배당하지 않고 단지 이 지위에 있는 10 개 불과의 명칭에서의 첫 번째 글자가  모두 동일한  묘(妙)가 되는 것이며,

보살의 명호도 10지위 중에서의 보살의 명칭의 첫 번째 글자가 이 10회향위의 보살과 더불어 함께 금강(金剛)이 되는 것이다.

다만 당(幢)과 장(藏)이 다른 것은 묘용의 불과와 행하는 바의 법은 다르지 않지만,

축적한 공(功)이 종결되고 대자비의 공이 원만한 것을 장(藏)이라 칭한 것일 뿐,

그 이외의 다른 회향위(迴向位)의 별개의 법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을 밝힌다.

때문에 선재동자의 10회향에서는 장자(長者)와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으로서 선우(善友)를 나타내는 것이며,

10지(十地)의 지식(知識, 선지식)에서는 9 개의 야천(夜天)들 모두가 여자로서,

그 중의 하나는 여래가 태자였을 때의 아내이니, 순수하게 대자비를 닦는 지위의 대비위(大悲位)를 나타낸 것이다.

10주(十住)와 10행(十行)은 수행의 지위(智位)이고,

10회향(十廻向)은 원력(願力)으로 균등하게 융화함으로써 지혜와 자비로 하여금 등진(等進)하여 동등히 나아가게 한 것이며,

10지(十地)는 수행을 쌓아서 대지혜와 대자비를 심광(深廣, 깊고 넓게)하게 갖출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10 분의 여자들로서 나타낸 것이다.

11지(十一地)에서 자비와 지혜가 원만하여져서 보현행문(普賢行門)을 성취하는 것은 바로 자비로써 지혜를 일으킴을 밝힌 것이니, 부처님의 어머니이신 불모마야(佛母摩耶)부인을 11지의 첫 번째 선지식으로 삼아서, 능히 일체의 모든 부처를 낳은 것이니,

모(母)는 자비의 지위이며,

불(佛)은 바로 지혜임을 나타낸 것이다.

자비로 지혜를 낳기 때문에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낳았다는 마야생불(摩耶生佛)”이라 말하는 것이니,

그러함으로서 환생법문(幻生法門)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자비와 지혜의 덕이 성취되면서 보현행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니, 그 닦아 나감의 단계를 밝혀서 이와 같이 안립한 것이지만, 만약 수행이 일시(一時)에 동진(同進)하여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면, 선재동자의 10주위 중 제2 해문국(海門國)의 해운(海雲)비구가 이 초발심주(初發心住)의 비지문(悲智門)을 성취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가운데에서 아수라를 등의 10왕은 생사에 들어가는 행의 입생사행(入生死行)을 나타낸 것이며,

또 해운 비구가 이 회향위에서 능히 생사의 대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또 생사해(生死海)가 곧 불해(佛海) 바다이기 때문에 부처가 출현해서 보안경(普眼鏡)을 설한다고 한 것이며,

10왕 등은 만행(萬行)의 자재로움을 나타낸 것이니,

나아가 10주의 제7주에서 휴사 우바이 등 역시도 이에 해당되지만, 단지 성숙한 관습의 증강처(增降處, 증진하고 하강하는 곳)로써 논하였을 뿐이다.

또한 이 5위 법문이 모두 1찰나를 벗어나지 않고서도 시종(始終)이 성취되는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전후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가령 제20단락에서 법시(法施)의 선근 회향으로 불찰을 장엄한 것은 바로 원력의 장엄이니,

의은(義隱, 은밀한 뜻)은 경문과 같은 것이다.

연무(延袤, 길이)는 누각이 서로 인접되어서 무한히 연장된 것을 말하고,

보창유(寶窓牖, 들창)란 것은 큰 것은 창(窓)이라 말하고 작은 것은 유(牖)라고 하며,

보다라(寶多羅)의 형태가 반월과 같다는 것은 서역에 있는 나무 명칭으로, 이곳의 종려수(椶櫚樹) 같아서 보배로 체(體)를 삼고 반월의 보배로 그 나무를 장엄하였으니, 그 나무 형태가 반월과 같다고는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래의 선근으로 일으킨 바가 아님이 없다(無非如來善根所起)'는 것은

원력이 부처와 같은 선근으로 일어난 장엄으로써 불국을 장엄한 때문이다.

'아승기의 보해(寶海)에 법수(法水)가 가득 차 있다(阿僧祇寶海法水盈滿)"는 것이란,

물이 법을 설함을 말한 것이요,

'아승기 보배의 분타리화가 항상 묘법의 분타리 소리를 낸다(阿僧祇寶芬陁利華常出妙法芬陁利聲)'는 것은

바로 백엽백련화(百葉白蓮華)로서 능히 백 가지 음성을 내어서 백 가지 법을 설하는 것이요,

'아승기 보배의 수미산에서 지혜산왕(智慧山王)이 빼어나게 청정하다는 것(阿僧祇寶須彌山智慧山王秀出淸淨)'은

원(願)과 지혜의 업의 뛰어난 과보로 얻은 것이 그 나머지의 법을 능가하는 것이라서 그 명칭이 수출(秀出, 빼어남)인 것이며,

능히 많은 중업(衆業)을 맑히는 것을 청정이라 칭하는 것이며,

수미(須彌)는 묘고(妙高)를 말하는 것으로,

산은 그 명칭을 지(止)라 함으로써 간(艮)이 산이 되고 그 뜻이 지(止)가 되는 것이며,

왕(王)이란 것은 자재로움으로, 그 마음을 지(止, 멈춤)하면 마음이 바로 청정이고,

만약 그 마음이 청정하면 바로 지혜의 묘용이 자재롭게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보로 얻은 그 산 역시도 이와 같은 것이니, 인과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승기의 8릉묘보(八楞妙寶)를 보선(寶線)의 엄정무비(嚴淨無比, 비할 데 없이 순수함)란 것은 가르침이니, 팔정도의 과보요, 

보선(寶線)이란, 가르침이니, 명언(名言, 가르침)을 대나무나 비단에 꿰어 법이 무산실(無散失)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때문에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다.
보살보(菩薩寶)란, 보살형(菩薩形)과 같은 것이니, 행보(行報, 행의 과보)로 얻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아승기의 보선(寶旋)이 보살지안(菩薩智眼)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무애지(無碍智)의 과보로 얻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하나의 지혜 가운데에서 다함이 없는 무진법문(無盡法門)을 깊고 유현한 무극(無極)으로 알기 때문에 그 명칭을 선(旋)이라 한 것이다.

'아승기 궁전(宮殿)'이란 것은 비궁(悲宮)과 지전(智殿)의 과보상(果報相)을 장엄한 것이다.

'감(鑑)'이란 것은 비추어 사무치는 것이요,

'보산(寶山)이 담장이 된다'는 것은 지(止)를 방호(防護)로 삼은 과보로 얻는 것이요,

'아승기 보화사(寶化事)'란 것은 이 보배가 능히 갖가지 사법(事法)을 화작(化作)하는 것이니,

이는 하나의 지혜로 만행을 행하여 과보로 얻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보장(寶藏)이 일체의 정법(正法)을 나타내 보인다(寶藏現示一切正法)'는 것은 바로 일체의 갖가지 지장(智藏)의 보득(報得)이기 때문이다.

'여래의 당상(幢相)이 우뚝 솟아 있다(如來憧相迥然高出)'는 것은 보배가 부처의 형상과 같이 서서(立) 국토를 장엄한 것이니, 진여지당(眞如智幢)의 기울어지지 않는 보득(寶得)을 밝힌 것이다.

'아승기 보현(寶賢)에 대지현상(大智賢像)이 구족(阿僧祇寶賢大智賢像具足)'한 것은 그 보배가 현인의 형상과 같아서 현인의 상(相)이 있는 것이니, 자현(自賢)으로 과보가 생기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보원(寶園)이 모든 보살 삼매의 쾌락을 낳는다(寶園生諸菩薩三昧快樂)'이란, 삼매를 원림(園林)으로 삼는 보득(報得)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보음(寶音)'이란, 음성으로 보배를 삼는 것이지 형질(形質)이 있는 것이 아니며,

'보형(寶形)'이란, 갖가지 보배로써 갖가지 형상을 짓는 것이며,

'보상(寶相)'이란 것은 보배를 상호(相好)로 삼는 것이며,

'보위의(寶威儀)'란 것은 보배로 보살의 위의를 지어서 상서(庠序)한 것이며,

'보취(寶聚)'란, 보는 자가 모두 지혜취(智慧聚)를 낳는 것이니, 지혜취를 과보로 얻음을 밝힌 것이요,

'보주(寶住)'란, 지혜 경계로써 보살 10주의 지위를 나타내서 지은 것이요,

'보수습(寶修習)'이란, 보배를 닦아 익히는 법문의 단계로 삼아서 보는 자가 일체의 보배를 다 업(業)이라고 아는 것이니, 이는 업보(業報)를 인식하는 것이다.

'보무애지견(寶無礙知見)'이라는 것은 보배를 무애(無礙, 걸림이 없음)의 지견으로 삼아서 보는 자가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어서 청정 지혜의 무애함으로 낳은 바라는 것이며,

'보다라수(寶多羅樹)'란, 이 나무가 종려(椶櫚) 같아서 무쇠같이 견고하고, 잎이 길고 조밀해서 설사 큰 비가 자주 내릴지라도 마치 집안과 같이 항상 건조한 것이다.

 

경문에서 설하는 바는 보배를 체(體)로 삼는다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서역의 인간목수(人間木樹)와는 같지 않은 것이니, 그 인간목수는 가지가 없는 곳이 몸이 되고, 몸이 곧바로 위로 올라간 것이 줄기가 되고, 줄기 위에서 곁으로 난 것이 가지고 되고, 가지 위의 가는 것이 잔가지가 되는 것이다.

 

'왕도(王都)와 취락(聚落)'은 모두 이 대원경으로 화작(化作)하여 불찰을 장엄하게 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요,

'발타라수(跋陀羅樹)'를 한역하면 현(賢)이라 칭하는데, 그 나무 아래에 현인의 거처가 있으며, 또 나무가 현재(賢才)를 배출해서 그 위에 제석천의 보망(寶網)이 장엄되어 있는 것이다.

'보취(寶吹)'란, 능히 음보(音寶)를 내는 것이 마치 소라의 형태와 같은 것이며,

'그 소리가 맑다(其聲淸亮)'는 것은 마음이 맑고 밝은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三十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8

 

ㅡ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 ㅡ3

 

佛子(불자) 菩薩摩訶薩 (보살마하살) 見可愛樂國土園林(견가애락국토원림) 

草木 華果(초목 향과) 名香(명향) 上服(상복) 珍寶財物(진보재물) 諸莊嚴具(제장엄구)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가애락(可愛樂, 사랑스러운)의 국토나 원림(園林)이나, 초목(草木), 화과(華果, 꽃과 열매),

명향(名香, 유명한 향), 상복(上服, 아주 좋은 옷)이나 진보(珍寶, 귀한 보물) 재물(財物) 등의 

모든 장엄구(莊嚴具)들을 보게(見) 되거나,

ㅡ가애락(可愛樂), 좋은ㆍ아주 훌륭한ㆍ아름다운ㆍ사랑스러운ㆍ마음에 든다는 뜻.

 

或見可樂村邑聚落(혹견가락촌읍취락) 

혹은 가락(可樂, 아름다운) 촌읍(村邑, 시골의 외떨어진 마을)이나 취락(聚落, 도시나 촌락)을 보거나, 

ㅡ취락(聚落)은 가옥(家屋)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마을로서, 그 규모가 크면 도시(都市)가 되고 작으면 촌락(村落)이 되지만 촌락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쓰일 때가 많고, 우리말로 마을 또는 벌이라 하며 향리(鄕里) 등과도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或見帝王(혹견제왕) 威德自在(위덕자재) 

혹은 제왕(帝王)의 자재한 위덕(威德)을 보거나,

ㅡ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이 끌날 날 없는 것이 우리 불자들의 ABC로 너무 간단한 것 아닙니까? 

 ‘그저 용서하고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만이 그 원한이 풀어진다.’는 것도 불자들의 ABC로 너무 간단한 이치로, 그런 인과의 이치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대단히 다행스럽고 행복한 사람들이고, 누구보다도 넉넉한 사람들입니다.  

제왕의 위덕이 자재하다는 것은, 그러한 이치를 아는 사람이라고 봐야겠지요.ㅡ무비스님

 

或見住處(혹견주처) 離諸諠雜(이제훤잡) 見是事已(견시사이) 以方便智(이방편지)

精勤修習(정근수습) 出生無量勝妙功德(출생무량승묘공덕) 

爲諸衆生(위제중생) 勤求善法(근수선법) 

혹은 모든 훤잡(諠雜, 복잡하고 혼잡함)을 떠난 주처(住處, 머물 곳)을 보기도 하여서, 

그러한 것들을 보고는 방편지(方便智, 방편지혜)로 정근(精勤)하여 부지런히 수습하여서

무량하게 수승한 승묘공덕(勝妙功德)을 출생시켜서, 중생들을 위하여 선법(善法)을 부지런히 구하나니,

ㅡ일차적으로 “나 중생” 나를 위해서 선법을 구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사람, 즉 다른 중생을 위해서 선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心無放逸(심무방일) 廣集衆善(광집중선) 猶如大海(유여대해) 以無盡善(이무진선) 

普覆一切(보부일체) 爲衆善法(위중선법) 所依之處(소의지처) 以諸善根(이제선근) 

方便廻向(방편회향) 而無分別(이무분별) 

(중생들을 위하여 선법을 부지런히 구함에 있어서) 마음에 무방일(無放逸)하여 방일하지 않으며 

중선(衆善, 많은 선한 일)을 널리 모아서 마치 대해(大海)와 같이 넓으며,

그러하게 다함이 없는 무진선(無盡善)으로 일체를 두루 감싸서 덮으며,  

많은 중선법(衆善法)이 의지하는 바의 소의처(所依處)가 되어서  

그러한 모든 선근으로 분별함이 없는 방편회향을 하나니, 

ㅡ방일(放逸)은 제멋대로의 마음으로 계율이나 바른 질서를 지키지 않고 방종하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선근(善根)을 닦지 않아서 청정하지 못한, 인간으로서 해야 선한 일에 뜻을에 두지 않고, 방탕하고 함부로 하는 정신작용ㅡ관음사

 

開示無量種種善根(개시무량종종선근) 智常觀察一切衆生(지상관찰일체중생) 

心恒憶念善根境界(심항억념선근경계) 

무량한 갖가지의 종종선근(種種善根)들을 열어 보이고, 항상 지혜로 일체의 중생들을 관찰하며,

그 마음은 항상 선근의 경계(境界)를 억념(憶念)하여 기억하며,  

 ㅡ‘무엇이 선(善)이고, 선행인가?

화엄경을 공부하는 지금 이 순간에서 내가 해야 할 선(善)은 공부하고 있는 한 구절ㆍ한 글자 놓치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 또 내 경험에 비추어서 확장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즉 상황에 따라 선(善)을 여러 가지와 여러 각도로 관찰하여서 생각하는 것이 선근경계를 항상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以等眞如平等善根(이등진여평등선근) 廻向衆生(회향중생) 無有休息(무유휴식)

평등한 진여의 등진여(等眞如)와 평등한 선근으로, 중생에게 회향하기를 쉬지 않고 합니다. 

 

ㅡ고려 이후로 우리 국민들의 교과서인 명심보감 첫 편이“繼善篇(계선편)”입니다.

繼는 이어갈 계, 善은 선할 선. 우리 인간은 본래로 선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본래 선한 존재인데, 그것을 계속 지니지 못해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악한 사람이 돼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 본래 타고난 선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명심보감의 첫 편이“繼善篇(계선편)”인 것으로 

공자가 말하기를 “선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써 갚고, 불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는다.”

이것이 유교서적인데, 그 첫 마디가 인과 관계, 즉 인과의 이치입니다. 

선인선과ㆍ악인악과,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는 이치입니다. 

유비가 죽을 때, 자기 아들한데 당부한 말이 勿以善小而不爲(물이선소이불위)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아무리 작은 선이라 할지라도 소홀하게 여기지 말고, 작은 악(惡)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침저녁 불공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고 예불도 잘고, 하루에 좋은 일도 많이 하는데 조그마한 악 좀 저질러도 그것이 다 갚고도 선이 훨씬 많이 남는다.’는 생각으로 작은 악을 무심코 해버릴 수 있는 점 조심해야 합니다. 

또 “황금이 아무리 많이 아들에게 물려주어도 그것 지킬 아들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옛날에는 책이 귀했으니까) 책을 아무리 산더미처럼 쌓아서 아들에게 물려주어도 그것 다 읽고 실천하는 아들은 별로 없다. 

그러니까 자기의 능력이 있을 때  많은 사람에게 베풀어 積德(적덕)을 하면 그 陰德(음덕)이 자손 대대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菩薩爾時(보살이시) 以諸善根(이제선근) 如是廻向(여시회향) 所謂(소위)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諸如來(득제여래) 可愛樂見(가애락견) 

見法眞性(견법진성) 平等平等(평등평등) 無所取着(무소취착) 圓滿淸淨(원만청정)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見諸如來() 甚加愛樂(심가애락) 圓滿供養(원만공양)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往生一切無諸煩惱甚可愛樂(왕생일체무제번뇌심가애락) 淸淨佛刹(청정불찰)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見諸佛() 可愛樂法(가애락법)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常樂護持一切菩薩(상락호지일체보살) 可愛樂行(가애락행) 

보살이 그 때에 모든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 소위

일체 중생들이 모든 여래들의 가애락견(可愛樂見, 훌륭하고 바른 견해)을 얻어서 법의 진성(眞性, 진실한 자성)이

평등하고 평등함을 보아, 취착(取著)하여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원만하고 청정하여 지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모든 여래들의 심가애락(甚加愛樂)하여 모든 여래가 매우 훌륭하심을 보고

원만하게 공양하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번뇌가 없어서 가애락(甚加愛樂, 매우 훌륭한)하여 청정한 불찰(佛刹)에 왕생하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제불(諸佛)들이 좋아하시는 가애락법(可愛樂法, 훌륭한 정법)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일체의 모든 보살들이 사랑하는 가애락행(可愛樂行, 훌륭한 행)을 항상 즐겨 수호하고 간직하기를 원하며,

ㅡ한 마디로하면 중생이 부처가 되고, 중생이 보살이 되라는 것을 이렇게 풀어서 표현한 것으로,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가 성불하라고 하는 말은 너무 모호하니까 이렇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善知識(득선지식) 可愛樂眼(가애락안) 見無所碍(견무소애)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常見一切可愛樂物(상견일체가애락물) 無有違逆(무유위역)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證得一切可愛樂法(증득일체가애락법) 而勤護持(이근호지)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於一切佛可樂法中(어일체불가락법중) 得淨光明(득정광명)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修諸菩薩(수제보살) 一切能捨可愛樂心(일체능사가애락심) 

일체 중생들이 선지식(善知識)의 가애락안(可愛樂眼, 훌륭한 안목)을 얻어서 장애없이 볼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항상 일체의 모든 가애락물(可愛樂物, 사랑스러운 물건)을 봄에 있어서

무위역(無違逆)하여 어긋남이 없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모든 가애락법(加愛樂法, 훌륭한 법)을 증득하여 하여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수호하여 지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모든 가애락법(可樂法, 훌륭한 법) 가운데에서 청정한 광명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모든 보살들이 일체의 모든 분별을 능히 버릴 수 있는 능사(能捨)의 가애락심(可愛樂心)을 닦기를 원하며,

ㅡ捨 버릴 사는 평등을 뜻하며, 차별과 분별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입니다.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無所畏(득무소외) 能說一切可愛樂法(능설일체가애락법) 

일체 중생들이 무소외(無所畏)를 얻어서 일체의 모든 가애락법(可愛樂法, 훌륭한 법)을 설할 수 있기를 원하며,

ㅡ가애락법(可愛樂法), 불법 가운데에서 각자가 나름대로 좋아하는 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스스로의 소신이 되어서 더욱 공부하여서 자신이 있게 되어서 그러한 이치를 전달하고자 할 때 더욱 힘이 실리기 때문입니다,ㅡ무비스님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諸菩薩(득제보살) 極可愛樂甚深三昧(극가애락심심삼매) 

일체 중생들이 모든 보살들의 극(極)히 가애락(可愛樂)한 심심삼매(甚深三昧)를 얻을 수 있기를 원하며, 

ㅡ심심삼매, 마음이 밝게 깨어있으면서도 동요하지 않고 분명하게 분별할 수는 것으로,

목석같이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諸菩薩(득제보살) 甚可愛樂陀羅尼門(심가애락다라니문)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諸菩薩(득제보살) 甚可愛樂善觀察智(심가애락선관찰지)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能現菩薩(능현보살) 甚可愛樂自在神通(심가애락자재신통)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能於諸佛大衆會中(능어제불대중회중) 說可愛樂甚深妙法(설가애락심심묘법)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能以方便(능이방편) 開示演說甚可愛樂差別之句(개시연설심가애락차별지구)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常能發起甚可愛樂平等大悲(상능발기심가애락평등대비)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念念發起甚可愛樂大菩提心(념념발기심가애락대보리심) 

常令諸根(상령제근) 歡喜悅豫(환희열예)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能入一切甚可愛樂諸如來家(능입일체심가애락제여래가) 

일체 중생들이 모든 보살들의 심가애락(甚可愛樂)한 다라니분(陀羅尼門, 총지문)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모든 보살들의 심가애락(甚可愛樂)한 선관찰지(善觀察智)를 얻을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능히 보살의 심가애락(甚可愛樂)한 자재신통(自在神通)을 나타낼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능히 모든 부처님들의 대중회(大衆會, 대중법회) 가운데에서 심가애락(說可愛樂)한

심심묘법(甚深妙法, 심오한 법)을 설할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능히 방편으로 심가애락(甚可愛樂)한 차별구(差別句, 차별한 구절)를

연설하여서 개시(開示)하여 열어보일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능히 심가애락(甚可愛樂)한 평등대비(平等大悲)를 항상 발기(發起)하여 일으킬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염념(念念, 매 순간)마다 심가애락(甚可愛樂)한 대보리심(大菩提心)을 일으켜서

항상 제근(諸根, 6근)으로 하여금 환희하고 열예(悅豫)하여서 생기가 넘칠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능히 일체의 모든 심가애락(甚可愛樂)한 여래가(如來家)에 능히 들어갈 수 있기를 원하며,

ㅡ여래가(如來家)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래와 혼연일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可愛樂能調伏行(득가애락능조복행) 調伏衆生(조복중생) 無有休息(무유휴식) 

일체 중생들이 가애락(可愛樂)하게 능히 조복시킬 수 있는 조복행(調伏行)을 얻어서 

중생들을 쉬지 않고 조복(調伏)할 수 있기를 원하며, 

ㅡ조복행(調伏行)이란, 중생들이 스스로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諸菩薩(득제보살) 甚可愛樂無盡辯才(심가애락법진변재) 演說諸法(연설제법)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於不可說不可說劫(어불가설불가설) 住於一切可樂世界(주어일체가락세계) 

敎化衆生(교화중생) 心無厭倦(심무염권) 以無量方便(이무량방편)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普能悟入甚可愛樂諸佛法門(보능오입심가애락제불법문)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可愛樂無碍方便(득가애락무애방편) 知一切法(지일체법) 無有根本(무유근본) 

일체 중생들이 모든 보살들의 심가애락(甚可愛樂)한 다함이 없는 무진변재(無盡辯才)를 얻어서

제법(諸法)을 연설할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불가설불가설한 겁 동안 일체의 모든 심가애락(甚可愛樂)한 세계에 머물러서  

중생들을 교화함에 그 마음에 무염권(無厭倦, 싫증이나 게으름이 없음)하기를 원하며,

무량한 방편으로 일체중생들이 능히 심가애락(甚可愛樂)한 모든 부처님들의 법문(法門)에

두루 오입(悟入)하여 깨달아 들어갈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가애락(可愛樂)한 무애방편(無碍方便, 걸림이 없는 방편)을 얻어서

일체법(一切法)이 무근본(無根本)한 것이라 그 근본이 없음을 알게 되기를 원하며,

ㅡ무근본(無根本), 일체법에는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可愛樂離貪欲際(득가애락이탐욕제) 

知一切法(지일체법) 畢竟無二(필경무이) 斷一切障(단일체장)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可愛樂離貪欲際(득가애락이탐욕제) 知一切法(지일체법) 平等眞實(평등진실) 

일체 중생들이 심가애락(可愛樂)한 이탐욕제(離貪欲際, 탐욕을 여읜 경계)를 얻어서 

일체법이 필경에는 무이(無二)한 것으로 둘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일체의 모든 장애를 끊을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가애락(可愛樂)한 이탐욕제(離貪欲際, 탐욕을 여읜 경계)를 얻어서

일체법의 평등하고 진실함을 알게 되기를 원하며,

ㅡ탐욕이 있으니까 좋은 법ㆍ나쁜 법이 있고, 좋은 사람ㆍ나쁜 사람이 있고, 

좋은 세상ㆍ나쁜 세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具足成滿一切菩薩(구족성안일체보살) 甚可愛樂無戲論法(심가애락무희론법)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金剛藏精進之心(득금강장정진지력) 成可愛樂一切智道(성가애락일체지도)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具可愛樂無碍善根(구가애락무애선근) 摧伏一切煩惱怨敵(최복일체번뇌원적) 

願一切衆生(원일체중생) 得可愛樂一切智門(득가애락일체지문) 普於世間(보어세간) 現成正覺(현성정각)

일체 중생들이 일체의 모든 보살들의 심가애락(甚可愛樂)한 무희론법(無戲論法)을

갖추어 구족(具足)하여 이룰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금강장(金剛藏)과 같은 정진(精進)의 마음을 얻어서 

가애락(可愛樂)한 일체의 모든 지도(智道)를 이룰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가애락(可愛樂)한 무애선법(無碍善根, 걸림없는 선근)을 갖추어서

일체의 번뇌의 원적(怨敵)들을 최복(摧伏)하여 꺾어 굴복시킬 수 있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가애락(可愛樂)한 일체지문(一切智門, 일체지의 문)을 얻어서 

널리 세간에서 성정각(成正覺)을 이루어 보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21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ㅡ제10 등법계무량(等法界無量) 회향

 

제10 등법계무량(等法界無量) 회향이란, 지바라밀(智波羅蜜)로서 체(體)를 삼으며,

법을 나타냄에 있어서, 선재동자가 본 안주지신(安住地神)은 여신으로,

이와 같은 곤신(坤神)의 분(分)에서 머무는 것은 서남방에 있으며,

또 중궁(中宮)에 처해서 사계(四季)를 다스리는 것은 지혜에 처해 자비를 행하는 것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그 지신(地神)이 머무는 마갈국(摩竭國)은 여래가 성도한 나라이니,

이 지위의 승진이 중도(中道)에 도달해서 여래의 지혜와 자비가 원만함과 같은 지위라는 것을 밝힌 것이며,

마갈국은 바로 염부제의 중심으로 중궁의 지위이다.

 

만약 해당 방위를 따른다면 제왕의 거처가 바로 이에 해당되며,

만약 지위의 승진에 따라 수행 중이라면 지혜와 자비의 원만행(圓滿行)이 이에 해당되며,

만약 회향이 나타내는 지위의 회융(會融)을 조망한다면,

이전의 천신은 지혜를 나타내고, 이 지신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러한 두 지위가 회통하여 일위(一位)를 성취하는 것이니,

중생을 양육하는 도(道)요, 덕화(德化)를 성취하는 문(門)인 것이다.

 

가령 백만의 지신이 대광명을 놓아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한 것은 지혜의 자비를 행하여서 백만의 행문(行門)에 자비 광명의 비춤이 두루 한 것이며,

대지가 우레와 같이 진동하는 것은 자비심이 감응하는 것이며,

갖가지 보물로 처처에 장엄한 것은 대비행이 원만해서 업의 과보가 나타남을 밝힌 것이니,

본위인과(本位因果)의 과보로 얻은 장엄을 말하는 것이니, 자세한 해석은 그 지위에 이르면 밝히겠다.

 

또한 지혜와 자비가 원만히 성취되어서 가르침을 시설하여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그 지혜가 마치 신(神)과 같고 그 마음이 대지와 같아서,

마치 대지가 만물을 양육하면서도 결코 수고롭게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이,

능히 낳아서 능히 양육하고 능히 지탱하여서 시종일관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은 두 가지 뜻에서,

첫째, 해당되는 지위를 장과하여서, 처음의 “불자야” 이하 33권의 게송에 이르기까지를 26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1. “불자야” 이하 “그 선근을 증장해서 성취하게 한다(令其善根增長成就)”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지혜와 자비가 원만하기 때문에 법사(法師)가 되어서 법을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자격을 모두 갖추었음을 밝힌 분(分)이다.

2. “불자야” 이하 “성냄이 없는 범행(無恚梵行)”에 이르기까지 21행의 경문은,

보살이 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며, 스스로는 범행을 닦음을 밝힌 분이다.
3.“불자야” 이하 “또한 중생을 정법에 안주하게 한다(亦令衆生安住正法)”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보살이 범행(梵行)을 행함에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4. “불자야” 이하 “모두 일체지를 성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悉得成就一切智故)”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위와 같은 법시(法施, 법의 베풂)가 낳은 선근의 회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3세의 불법을 연설하여서 걸림이 없는 변설의 무애변(無㝵辯)과 걸림이 없는 음성의 무애음성(無礙音聲)에 들어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5. “불자야” 이하 “나와 같아서 다름이 없다(得如我無異)”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보살이 모든 것을 청정하게 하여서 위와 같은 법시(法施)와 회향으로 발원된 선근으로 다시 회향함으로써,

법계와 동등한 여래가 세간에 출현함을 보게 되고,

세계와 같은 수의 무진한 중생들을 조복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을 밝힌 분이다.
6. “불자야” 이하 “영원히 모든 청정행을 무너뜨려 잃지 않게 한다(不失壞諸淸淨行)”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보살이 회향하는 선근은 마치 법계와 같이 무량함을 밝힌 분이다.

7. “불자야” 이하 “일체법에서 영원히 망실(忘失)치 않게 함이다(於一切法永不忘失)”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법계 등의 무량한 선근회향으로 일체의 중생들이 부처를 보는 견불(見佛)하게 되고

마음이 청정하게 되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8. “불자야” 이하 “차별 없는 성품처럼 회향하다(無差別性迴向)”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법계의 성품과 같이 생기함도 없고 옮겨감도 없는 무기무천(無起無遷)의 회향을 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9. “불자야” 이하 “보살이 법을 설하는 원력(願力)을 성취함이다(成就菩薩說法願力)”에 이르기까지 27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法施)를 회향한 선근으로서 일체 중생들이 부처의 법사위(法師位)에 들어가게 되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10. “불자야” 이하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취해서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不以取著利益衆生故迴向)”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무집착(無執着)으로 회향한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11. “불자야” 이하 “걸림 없는 광명이 항상 끊이지 않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無㝵光明恒,不斷故迴向)”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세간법을 위한 것도 아니고 2승법을 위한 것도 아니고 다만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불지(佛智)에 들게 하고자 회향한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12. “불자야” 이하 “부처의 광대한 문에 들어가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入佛廣大門故迴向)”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일체의 모든 선근은 오로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어서 대보리를 성취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 분이다.
13. “불자야” 이하 “휴식하지 않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다(自在神通無有休息)”에 이르기까지 23행의 경문은,

위와 같은 등의 선근의 회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대자(大慈)ㆍ대비(大悲)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의 사무량심에 머무르며,  그와 함께 두 가지 집착의 이착(二著)을 영원히 여의어서, 불지혜(佛智慧)를 원만히 성취함을 밝힌 분이다.

두 가지 집착의 이착(二著)이란, 유(有)에 집착하고 무(無)에 집착하는 것이니,

시(是)와 비(非), 자(自)와 타(他), 피(彼)와 차(此), 내(內)와 외(外), 능(能)과 소(所)가 모두가 상대적인 둘인 것이다.

14. “불자야” 이하 “응당 선근을 수습함으로써 회향한다(應以修習善根迴向)”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이와 같이 회향할 때 3유(三有)의 5욕(五欲)의 경계에 응당 탐착하지 않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는 무탐진치(無貪瞋癡)인 까닭에 선근을 수습할 수 있음을 밝힌 분이다.
15. “불자야” 이하 “대시회를 베푼다(設大施會)”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보살이 약(惡)을 버리고 선(善)을 성취하여서 일체의 온갖 마업(魔業)을 여의고 법시회(法施會)를 시설함을 밝힌 분이다.
16. “불자야” 이하 “일체 중생의 기나긴 잠을 깨닫는 음(覺悟一切衆生長夜睡眠音)”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보살이 스스로 걸림이 없는 음성의 무애음성(無㝵音聲)의 두루 함을 얻어서, 일체 중생들의 음성을 원만하게 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17. “불자야” 이하 “정념의 지혜와 변재(正念智慧辯才)”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일체 중생들이 과악(過惡, 허물과 악)을 여의고 청정함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18. “불자야” 이하 “일체지신(一切智身)”에 이르기까지 14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선근의 회향으로 청정한 지신(智身)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19. “불자야이하안주해서 보살행을 닦는다(安住修菩薩行)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보살이 법시(法施)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하여서 일체의 (刹, 세계)를 따라 머물면서도 휴식이 없으며,

보는 견자(見者)가 이익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이상의 열아홉 단락은 법시(法施) 회향의 선근으로 자타(自他) 요익(饒益)하게 하는 행문(行門) 밝힌 분이다.


이하는 30권에서의 불찰을 장엄하는 회향을 밝힌 분이니, 등법계무량 회향 가운데에는 모두 32권과 33권의 권의 경문이 있기 때문이다.

 

20. “불자야이하광대한 지보 얻어서 궁극적으로 원만한 것이다(廣大智寶究竟圓滿) 이르기까지 3()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법시공덕보(法施功德寶) 회향으로 무량한 불찰을 모두 장엄하고 청정하게 함을 밝힌 분이다.

21. “불자야이하이같이 널리 설하다(如是廣說)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보살이 보살신(菩薩身)으로 모든 불찰에 두루 하며, 아울러 보배 장엄의 지위가 앞전보다 백천 배를 초과하게 된 것을 밝힌 분이다.
22. “불자야이하불자야, 보살마하살의 모든 선근을 통해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해 이같이 회향한 것이다(佛子菩薩摩訶薩以諸善根普爲一切衆生如是迴向) 이르기까지 28행의 경문은,

총체적으로 보살이 중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23. 다시 선근으로써이하 환희하도록 하기 때문에 회향한 것이다(咸令歡喜故迴向)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회향을 통하여 오로지 법(法)과 행(行)을 설하여 일체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여서 마치 법계와 같이 원만하게 하는 것 밝힌 분이다.
24. “불자야이하여래의 온갖 회상의 도량이 평등함에 머무는 것으로써 회향한 것이다(如來衆會道場平等迴向)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法施)와 대원(大願)의 장엄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서, 그 모두로 하여금 법계의 평등함에 머물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회향하고자 원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25. “불자야이하10 등법계무량 회향(第十等法界無量迴向) 이르기까지 11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일체의 모든 선근에 회향할 때, 같은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심업(心業) 함께 10종법계(十種法界)의 청정에 안주하게 되는 것 밝힌 분이다.
26. 보살마하살이하피안에 이른다(到於彼岸) 이르기까지 24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法施) 등의 선근 회향으로 일체의 모든 중생들 모두가 부처를 보게 되어서 불지견(佛知見) 들어가서 부처의 소득(所得)하심 같아지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25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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