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4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6) 십지품③ㅡ6
(2) 이구지(離垢地) ㅡ2
(22권의 제1 환희지(歡喜地) 다음으로 이어지는 과목의)
두번째,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 단락(捨惡從善段)의 43행 경문은 다시 두 단락으로 나누면,
첫째 “그때 금강장보살이(爾時金剛藏)” 이하부터 “이 열 가지 마음으로 이구지에 들어갈 수 있다(以此十心得入離垢地)”까지의, 4행 반의 경문은, 열 가지 마음의 십심(十心)으로 제2지로 나아가는 수행을 닦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두번째, 부분인 "불자(佛子)여, 보살이 이구지(離垢地)에 머문 뒤로부터" 이하 "다른 이로 하여금 수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경우는 있을 수 없다"까지의 38행의 경문은,
제2지(第二地)의 보살이 지닌 종성(種性, 본래의 성품과 자질)이 스스로의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을 잘 조절하고 선하게 다스리며, 십선(十善)의 선한 마음을 따라 자비를 갖춤을 밝힌 분(分)이다.
십선(十善)이란, 몸으로는 살생(殺生) · 투도(偸盜) · 사음(邪婬)을 하지 않고,
뜻으로는 탐욕(貪) · 성냄(嗔) · 어리석음(癡)을 일으키지 않으며,
입으로는 거짓말의 망언(妄言) · 꾸미는 말의 기어(綺語) · 악한 말의 악구(惡口) · 이간질하는 말의 양설(兩舌)을 하지 않는 것이니,
욕계(欲界)에서는 이 십선을 산선(散善), 즉 선정에 들지 않은 상태에서 닦는 선행으로 수행하지만,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서는 십선을 선정의 정업(定業)과 함께 닦으니, 생각과 분별의 상념(想念)이 쉬어야 비로소
이른 것이다.
ㅡ몸의 3 가지 악업: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입의 4 가지 악업: 망언(妄言),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뜻의 4 가지 악업: 탐욕(貪), 진에(瞋), 사견 또는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한 마음의 우치(愚癡)
ㅡ 치(癡)를 보통 어리석음으로 표현하지만, 일부에서는 삿된 견해(邪見)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의 “불자야” 이하 39행 반의 경문은, 상(上)의 10선을 훌륭히 지님을 밝힌 분(分)으로, 이를 다시 세 단락으로 나누겠다.
3-1, “불자야” 이하 “이 같은 방편을 보살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如是方便菩薩當學)”에 이르기 까지 14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10선도(十善道)를 지키는 것을 밝힌 분(分)으로, 이 단락에 여섯 가지 뜻이 있으니,
3-1-1, 열 가지 불선(不善)의 십악(十惡)을 지으면 지옥이나 축생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염(생각)하는 것이며,
3-1-2, 10선업(善業)의 십선업도(十善業道)를 닦으면, 다시 삼계(三界)에 태어나게 되서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를 염(念, 생각)하는 것이나, 이 10선(十善)이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비상정 非想頂)에 이르기까지 두루 수행할 수 있으므로, 이를 통틀어 닦아서 총체적으로 유정(有頂)이라 이름붙이는 것이며,
3-1-3, 상등의 십선인 상품십선(上品十善)을 닦는 사람 가운데 고통(苦)을 두려워하여 참된 진(眞)을 닦아서 성문승(聲聞乘)을 얻으니, 이들은 삼계의 유위심(有爲心), 즉 조건에 의해 생겨나는 마음을 벗어나고, 삼계의 번뇌를 굴복시키고 다하여 변화생사(變化生死)에 들어가고, 어떤 이들은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 여러 겁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하기도 하며,
3-1-4, 상등의 십선을 닦는 사람 가운데 스스로 인연으로 생겨나는 연생(緣生)을 깨달았으나 자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이는 독각승(獨覺乘)을 성취하고, 또한 변화생사를 얻으니, 근기가 예리한 까닭에 대보리(大菩提)를 향해 회향하면서 쉽게 십천(十千劫, 만겁)이 걸리며,
3-1-5, 상등의 십선을 닦으면서 광대한 서원의 광대원(廣大願)을 세우고 중생을 버리지 않으며, 부처님의 대지혜를 구하는 이는 보살행(菩薩行)을 이루는 것이다.
3-1-6, 최상급의 상상십선(上上十善)을 닦아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청정하게 하기 때문에 십력(十力)과 사무외(四無畏)를 성취한다. 그러므로 이를 최상승(最上乘)이라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하늘(天)에 태어나는 길과 세간을 벗어나는 길에 걸쳐, 십선업도(十善業道)에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10선업(十善業)의 도(道)가 있는 것이다.
ㅡ이 해설은 십선의 수행을 통해 여러 수행의 길이 펼쳐질 수 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 성문승(聲聞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추구하고,
- 독각승(獨覺乘)은 인연으로 생겨나는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 길을 추구하고,
- 보살승(菩薩乘)은 광대한 서원을 세우고 중생을 버리지 않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십선이라는 선행 자체만으로 수행의 궁극적인 방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는가, 그 수행을 누구를 위해 회향하는가가 중요한 것으로, 자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수행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보살행은 출발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서원과 지향하는 바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불자야, 이 보살마하살” 이하 “가없는 무리의 대고취(無邊大苦聚)”에 이르기까지 23행의 경문은,
십불선업(十不善業)을 행할 때 각각 두 종류의 원인과 결과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경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또한 십불선(十不善) 가운데에도 상·중·하의 세 등급의 삼품(三品)이 있으며, 그에 따른 인연이 서로 다르므로 받게 되는 괴로움(苦)도 같지 않으니, 이 내용 역시도 경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ㅡ주석은 십불선업을 행하더라도 그 원인과 조건, 행위의 정도가 서로 다르므로 결과로 받는 괴로움 역시 같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즉 악업의 결과를 단순히 하나의 고정된 결과로만 보지 않고, 행위의 강도와 그에 관련된 인연을 살펴본 것입니다.
셋째, “이 때문에 보살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하 “그 가운데 머물게 한다(令住其中)”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보살이 스스로 십선(十善)을 실천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교화하여 십선업(十善業)을 행하게 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앞에서 말한 상상(上上)의 십선(十善)이란 것은 지혜에 의지하여 발심하는 의지발심(依智發心)을 밝힌 것이며,
그 나머지의 3품은 비록 모두 삼계(三界)의 업을 여의고 삼계를 벗어나는 결과(果)를 얻었다 할지라도, 모두 공(空)에 의지하여 발심한 것이기 때문에 점차 부처님의 지혜를 구해야 비로소 보현의 원행(願行, 서원과 행)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삼승(三乘)에 속하는 보살은 원행(願行, 서원과 행)이 비록 광대할지라도, 부처님의 지혜를 완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의 국토(國土)를 부처님의 과보로 나타나는 불경계(佛報境)로 삼는 것과 같다.
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혜 가운데서 보현행(普賢行)을 실천하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삼승의 수행자는 공을 관찰하는 수행(觀空)과 오위(五位)의 행문(行門, 수행문)을 통해 이치에 나아가고, 궁극적인 진리에 이른 뒤, 비로소 여래종지(如來種智)의 문을 바라게 된다. 그러나 그 뒤에도 다시 보현의 서원과 수행에 들어간다면,
곧 부처님 과위의 불과(佛果)에 들어가서, 십신(十信)과 오위의 수행을 마친 뒤에 있으며, 삼기(三祇, 3 아승기겁)을 채워야 비로소 도달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마음을 돌이켜 대승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들은 모두 문밖의 풀로 지은 암자인 초암(草庵)에 머무는 것과 같은 것이다.
ㅡ삼승과 일승의 차이
ㅡ 삼승; 공을 관찰하고 오위의 수행문을 거쳐 점차 진리에 나아가는 수행으로, 여기에서는 수행이 부처님의 지혜를 완전히 갖추기 전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ㅡ일승; 처음부터 부처님의 지혜를 믿음의 바탕으로 삼는 수행
부동지불(不動智佛)의 지혜를 믿음의 근본으로 삼고, 보광명지(普光明智)를 바탕으로 십신에서 십지와 십일지에 이르는 수행을 이해하고, 부처님의 지혜와 보현행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ㅡ若不迴心者,俱在門外草庵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모두 문밖의 풀로 지은 초암(草庵)에 머문다”는 뜻으로,
‘마음을 돌이킨다는 회심(迴心)’은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방향을 전환하여 부처님의 지혜와 보살의 광대한 서원을 향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삼승의 수행이 일승의 지혜에 이르기 전의 단계로 설명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상상(上上)의 십선(十善)과 일승(一乘)의 문에서는 여래의 일체처에서 흔들림 없이 머무는 지혜의 부동지불(不動智佛)을 믿음의 바탕으로 삼고, 십주위(十住位)에 들어가면 곧바로 여래의 지혜라는 과위(果)에 들어간다.
십신과 오위의 수행은 모두 부처님의 과위에 해당하는 큰 지혜의 불과대지(佛果大智)로서 행문(수행의 길)을 성취하기 때문에 곧 여래의 보광명지(普光明智)를 바탕으로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迴向)·십지(十地)·십일지(十一地)를 성취하여 그 체(體)로 삼는다.
곧, 부처님의 과위의 불과와 보현행은 서로 같은 바탕에 의지하는 것으로, 지혜의 체가 뚜렷하게 밝고 원만하여서 분별과 집착에서 비롯된 견해를 벗어났으므로 삼세(三世)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삼승(三乘)을 돌이켜 지혜의 바다인 지햬(智海)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 이를 용녀(龍女)로서 나타내고, 이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들어가는 불문(佛門)을 단박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니,
이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상징하는 바와 같은 것이다.
선재동자는 비록 여러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구했지만,
그러나 발을 각모(覺母, 문수를 뜻함)의 앞에서 발걸음을 옮기지도 않았고,
자씨(慈氏, 미륵보살)는 비록 일생에 부처를 이루는 일생성불(一生成佛)의 공(功)을 주었지만,
그러나 한 생각의 일념(一念)의 전후가 없는 무생지해(無生智海, 낳음이 없는 지혜의 바다)를 여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일체지(一切智)의 수레를 타고서 고금의 견(見)이 멸진한 것이다.
만약 마음 속에 앞뒤와 전후의 분별을 남겨 두면, 부처님의 지혜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풀로 지은 초암(草庵)에 머물면서 문밖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논주(論主)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었으니,
一切衆生金色界 白淨無垢智無壞 智珠自在內衣中 只欲長貧住門外
일체 중생의 금색계(金色界, 금빛 세계)는 희고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으며, 그 지혜는 무너짐이 없도다.
지혜의 구슬인 지주(智珠)가 자신의 내의(內衣) 속에 있거늘, (이를 알지 못하여)
다만 영원히 가난하게 문 밖에서 머무는도다.
ㅡ금색계(金色界): 일체중생을 금빛 세계에 비유한 것으로, 중생을 바라보는 화엄의 관점이고,
ㅡ 지주(智珠)는 법화경의 옷 속에 감춰진 보배 구슬의 비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廣大寶乘住四衢 文殊引導普賢 扶肥壯白牛甚多力 一念遍遊無卷舒
광대한 보배 승(乘, 수례)이 사거리 한 가운데에 머물러 있으니,
문수 보살이 이끌어 인도하고, 보현 보살이 도와서 붙들어 주시며
건장하고 살찐 백우(白牛, 흰 소)는 그 힘이 매우 힘이 세어서
일념(一念)에 두루 노니나, 나아가고 물러섬의 권서(卷舒)가 없도다.
ㅡ 문수보살은 지혜를, 보현보살은 서원과 실천의 행(行)을 상징하며, 지혜와 실천은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如是寶乘不能入 但樂勤苦門前立 不覺自身常住中 遣上恒言我不及
이 같은 보배 승(乘, 수레)에 능히 올라타지 못하고
다만 고달픈 수행의 근고(勤苦)함을 좋아하여 즐기면서 문 앞에 서 있을 뿐,
자신이 본래 그 가운데 항상 머물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나아가게 하는 상승(上乘)을 버린 채, 항상 “나는 미치지 못한다(나는 부족하다)”라고 말하는도다.
ㅡ법화경(法華經)의 일곱 가지 비유
1. 제3품 비유품(譬喻品)에서의 불타는 집과 세 수레의 비유의 화택삼거유(火宅三車喻)
한 부자의 큰 집에 불이 났지만, 아이들은 놀이에 빠져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 수레·사슴 수레·소 수레를 주겠다고 하여 집 밖으로 나오게 합니다. 그런 다음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큰 흰 소의 수레를 모두에게 줍니다.
→ 불타는 집은 괴로움이 가득한 삼계(三界)를, 아이들은 중생을, 아버지는 부처님을 상징합니다. 부처님은 중생의 근기에 맞는 방편(方便)으로 이끌어 마침내 일승(一乘)의 가르침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2. 신해품(信解品)에서의 부자와 가난한 아들의 비유의 궁자유(窮子喻)
어린 시절 집을 떠난 아들이 오랫동안 가난하게 떠돌다가 부유한 아버지의 집에 도착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그 집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금씩 일을 맡기고 신뢰를 쌓게 한 뒤, 마침내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재산을 물려받을 자격을 알려 줍니다.
→ 중생은 자신이 부처님의 지혜와 얼마나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라고 여기지만, 부처님은 중생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점차 이끌어 갑니다.
3. 제5품 약초유품(藥草喻品)의 약초와 나무의 비유(藥草喻)
큰 구름이 비를 내리면 여러 종류의 풀과 나무가 각자의 크기와 성질에 따라 물을 흡수하며 자랍니다. 비는 고르게 내리지만 식물마다 자라는 모습은 다릅니다.
→ 부처님의 가르침은 차별 없이 중생에게 미치지만, 중생은 각자의 근기와 능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서로 다른 수행의 모습이 있다고 해서 가르침의 자비가 차별한 것은 아닙니다.
4. 제7품 화성유품(化城喻品)의 화성(化城)과 보처(寶處)의 비유
사람들이 멀고 험한 길을 따라 보배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지쳐 포기하려 합니다. 길잡이는 신통력으로 잠시 쉴 수 있는 환상의 도시를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이 충분히 쉰 뒤에는 그 도시가 임시로 마련된 곳임을 알려 주고, 다시 보배가 있는 목적지로 이끕니다.
→수행 중에 얻는 특정한 경지나 안락함을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방편은 중생을 쉬게 하여서 충전하게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부처님의 지혜에 이르는 것입니다.
5. 제8품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에서의 옷 속에 감춰진 보배 구슬의 비유(衣裏繫珠喻)
친구의 집에서 술에 취해 잠들자, 친구는 그가 앞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값비싼 보배 구슬을 옷 속에 몰래 넣어 줍니다. 그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한 채 가난하게 떠돌다가 훗날 친구를 만나 보배 구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이미 지니고 있는 소중한 가능성을 알지 못한 채 밖에서만 행복과 깨달음을 찾는 모습을 비유합니다. 앞서 살펴본 화엄경 주석의 “지주(智珠)가 자신의 옷 속에 있다”는 것이 이 비유입니다.
6. 제14품 안락행품(安樂行品)에서의 상투 속의 귀한 보배 구슬의 비유(髻中明珠喻)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운 장수에게 왕은 여러 가지 상을 내리지만, 가장 귀한 보배 구슬만큼은 쉽게 주지 않습니다. 그 구슬은 왕이 가장 아끼는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장수가 큰 공을 세우자 왕은 그에게 구슬을 줍니다.
→부처님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여러 가르침을 설하시다가, 마침내 가장 깊고 귀한 일승의 가르침을 드러내십니다.
7. 제16품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서의 훌륭한 의사와 독을 먹은 아이들의 비유(良醫病子喻)
훌륭한 의사의 아이들이 독을 먹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의사는 좋은 약을 만들어 주지만, 독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아이들은 약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제야 아이들은 아버지가 남긴 약을 먹습니다.
→부처님은 중생의 상태에 맞게 방편을 사용하여 그들을 구제합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고 열반에 드는 모습도 중생을 깨우치기 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그 밖의 비유로서, 제12품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에서 용녀의 성불(龍女成佛);
용왕의 딸인 어린 용녀가 부처님의 지혜를 드러내며 성불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성별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만으로 성불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앞서 읽으신 주석에서는 삼승을 돌이켜 지혜의 바다로 이끄는 가르침을 나타내는 사례로 인용됩니다.
제20품 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서의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사람마다 공경하며, 그들이 장차 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그를 조롱하거나 괴롭히지만, 그는 사람들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현재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가능성을 단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가 보살행의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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