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一 十迴向品第二十五之九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⑨ ㅡ 5

ㅡ제9(第九) 무착무박해탈회향(無着無縛解脫廻向) ㅡ 5

 

ㅡ보살의 행덕(行德)의 미세지혜(微細智慧)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立深志樂(입심요락) 修普賢行(수보현행)

能知一切菩薩(능지일체보살) 從初發心(종초발심) 爲一切衆生(위일체중생) 

修菩薩行甚微細(수보살행심미세) 菩薩住處甚微細(보살주처심미세) 

菩薩神通甚微細(보살신통심미세) 菩薩遊行無量佛刹甚微細(보살유행무량불찰심미세) 

菩薩法光明甚微細(보살법광명심미세) 菩薩淸淨眼甚微細(보살청정안심미세) 

무착무박해탈심으로 깊은 뜻을 세운 즐거움의 심지락(深志樂)으로 보현행(普賢行)을 닦아서(修)

일체 모든 보살들의 초발심(初發心)에서부터,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행(菩薩行)을 수행함에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주처(菩薩住處, 보살이 머무는 곳)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신통(菩薩神通)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무량한 불찰(佛刹, 부처님 세계)에 유행하는 것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법광명(法光明)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청정안(淸淨眼, 청정한 눈)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菩薩成就殊勝心甚微細(보살성취수승심미세) 

菩薩往詣一切如來道場衆會甚微細(왕예일체여래도량중회심미세) 

菩薩陀羅尼門智甚微細(보살다라니문지심미세) 

菩薩無量無畏地一切辯才藏演說甚微細(보살무량무외지일체변재장연설심미세) 

菩薩無量三昧相甚微細(보살무량삼매상심미세) 

菩薩見一切佛三昧智甚微細(보살견일체불삼매지심미세) 

菩薩甚深三昧智甚微細(보살심심삼매지심미세) 

보살이 성취하는 수승심(殊勝心)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일체의 모든 여래도량중회(如來道場衆會)에 나아가는 것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다라니문지(陀羅尼門智, 다라니문 지혜)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무량하고 두려움 없음의 무량무외지(無量無畏地)에서 일체의 변재장(辯才藏)으로

연설(演說)함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무량삼매상(無量三昧相)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일체불(一切佛)을 보는 삼매지(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매우 깊은 심심삼매지(甚深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菩薩大莊嚴三昧智甚微細(보살대장엄삼매지심미세) 菩薩法界三昧智(보살법계삼매심미세) 

菩薩大自在神通三昧智甚微細(보살대자재신통삼매지) , 

菩薩 盡未來際廣大行住持三昧智甚微細(보살 진미래제광대행주지삼매지 심미세)

보살의 대장엄(大莊嚴)한 삼매지(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법계삼매지(法界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대자재(大自在)한 신통삼매지(神通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진미래제(盡未來際,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광대한 행(行)에 머물러 지키는

주지삼매지(住持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菩薩 出生無量差別三昧智甚微細(보살 출생무량차별삼매지 심미세) 

菩薩 出生一切諸佛前(보살출생일체제불전) 勤修供養(근수공양) 恒不捨離(항불사리)

三昧智甚微細(삼매지심미세) 

菩薩 修行一切甚深廣博無障無碍(보살 수행일체심심광박무장애) 三昧智甚微細(삼매지심미세)

菩薩 究竟一切智地(보살 구경일체지지) 住持行智地(주지행지) 大神通地(대신통지)

決定義地(결정의지) 離翳三昧智甚微細(이예삼매지 심미세) 

如是等一切甚微細(여시등일체심미세) 悉能了知(실능요지)

보살이 출생(出生)시키는 무량차별(無量差別)한 삼매지(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일체의 제불전(諸佛前)에서 근수공양(勤修供養)하는 것을

항상 버리지 않는 항불사리(恒不捨離)를 출생(出生)시키는 삼매지(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수행하는 일체의 모든 심심(甚深, 심오)하고 광박(廣博, 널고 큰)한

무장무애(無障無碍)한 삼매지(三昧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일체지지(一切智地)와 보살행에 머물러 지키는 주지행지지(住持行智地)와 

대신통지(大神通地)와 결정의지(決定義地, 결정적인 뜻의 지위)에 구경(究竟)하여

이예삼매지(離翳三昧智, 번뇌의 장애를 여의는 삼매지혜)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 등을

능지(能知)하여 능히 알아서 이와 같은 일체의 심미세(甚微細) 모두를 능히 요지(了知)합니다.

ㅡ심미세(甚微細), 대단히 깊고 은밀하고 자세한 내용, 즉 사연으로, 각 분야에 미세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우리 각각도 정말 본인만 알고, 표현이 안 되는 미세한 사연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능력을 갖추기까지 쌓은 수행들이 쉽게 표현 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ㅡ보살지(菩薩地)의 덕을 아는 미세한 지혜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普賢行(수보현행) 

悉知一切菩薩安立智(실지일체보살안립지) 甚微細(심미세) 

菩薩地甚微細(보살지심미세) 菩薩無量行甚微細(보살무량행심미세) 

菩薩出生廻向甚微細(보살출생회향심미세)  

菩薩 得一切佛藏(보살득일체불장) 甚微細(심미세) 菩薩 觀察智(보살관찰지) 甚微細(심미세) 

菩薩 神通願力(보살신통원력) 甚微細(심미세) 菩薩 演說三昧(보살 연설삼매) 甚微細(심미세) 

菩薩 自在方便(보살 자재방편) 甚微細(심미세) 菩薩印甚微細(보살인심미세)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행(普賢行)을 닦아서(修)

일체의 모든 보살의 안립지(安立智, 안립하는 지혜)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지(菩薩地, 보살 지위)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무량행(無量行)의 심히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출생(出生)시키는 회향(廻向)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얻는 일체불장(一切佛藏, 모든 부처님의 창고)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관찰지(觀察智)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신통(神通)한 원력(願力)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연설삼매(演說三昧)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자재(自在)한 방편(方便)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인(菩薩印)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ㅡ중생이 뭔가를 하는 것에도 말할 수 없는 많은 사연들이 있는데,

불보살들의 수행에는 더 더욱 설명할 수 없이 깊은 불가사의한 사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菩薩一生補處(보살일생보처) 甚微細(심미세) 菩薩 生兜率天(보살생도솔천) 甚微細(심미세) 

보살의 일생보처(一生補處)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는 것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ㅡ보처보살(補處菩薩) 앞으로 한번만 더 태어나면 석가보니의 뒤를 잇는 부처가 될 것으로 예정된 보살.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보처보살'이며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은 약사여래(藥師如來)의 '보처보살'이며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석가여래의 보처보살입니다.

이와 같은 '보처(補處)의 보살(菩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승에서 말하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근거에 의한 것이고, 소승교에서는 '부처는 오직 석가여래 한 분'이고 석가 여래가 성도하기 전에는 보살이요 그 뒤를 이을 보살은 '오직 미륵보살'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ㅡ부처님이 도솔천에서 하강해서, 가비라궁으로 내려오신, 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하고, 세세한 사연, 세세한 조건들, 세세한 인연들이야말로 “심미세”라고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ㅡ무비스님

 

菩薩 住止天宮(보살 주지천궁) 甚微細(심미세) 菩薩 嚴淨佛國(보살 엄정불국) 甚微細(심미세)

보살이 주지(住止, 머무름)하신 천궁(天宮)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불국(佛國, 불국토)을 엄정(嚴淨)하게 하시는 것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菩薩 觀察人中(보살 관찰인중) 甚微細(심미세) 菩薩 放大光明(보살 방대광명) 甚微細(심미세) 

菩薩 種族殊勝(보살 종족수승) 甚微細(심미세) 菩薩 道場衆會(보살 도량중회) 甚微細(심미세) 

菩薩 遍一切世界受生(변일체세계수생) 甚微細(심미세) 

보살이 인중(人中, 인간 세상)을 관찰하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대광명(大光明, 가르침)을 놓으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종족(種族)의 수승(殊勝)함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도량중회(道場衆會)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일체의 세계에 두루 수생(受生)하여 태어나심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ㅡ수생(受生), 사람이 죽어서 다시 몸을 받는 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업력으로 몸을 받는, 업력수생(業力受生)이고, 다른 하나는 원력으로 몸을 받는, 원력수생(願力受生)입니다.
업력수생이란 살아생전의 모든 업보가 제 8아뢰야식, 즉 종자식(種子識)에 저장되었다가 다음 생에 그 지은 업보대로 몸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업력수생을 급류에 떠내려가는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업력수생이 정신없이 떠내려가는 것이라면, 원력수생은 급류에 떠내려가면서도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마음을 바꾸는 것이고, 마음을 바꾸는 것은 업을 바꾼다는 것인데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데이비드 호킨스(David Roman Hawkins)박사도 한 생에 5퍼센트의 업만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글에 어떤 이가 5백 생 동안 물고기의 몸을 받은 후, 사람의 몸을 받게 되었는데, 어부의 몸을 받았다고 합니다.
물고기는 사람이라고는 어부밖에 몰랐기 때문에 어부의 몸을 받았고,
어부는 물고기 밖에 몰랐기 때문에 물고기의 몸을 받는다고 합니다.
매일 물고기만 잡고 물고기만 보았기 때문에, 물고기에서 어부로, 어부에서 물고기로의 윤회의 고리를 끊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가 애쓰며서 한 생을 정진하고 살아도, 업을 바꾸기가 힘들다고 하면 너무 원통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법장(法藏)비구가 48원으로 다겁생을 수행하여서, 아미타불이 되었듯이, 금생에 모자라고 부족하더라도 원력을 세우고, 그것을 마음으로 키우면 다음 생에는 더 나은 몸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고, 종국에는 성불하는 것입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사바세계를 떠날 때의 마음이 중요하고, 사바세계를 떠날 적의 수행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미타경>에서 임종 시 ‘나무아미타불’ 열 번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 원력을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늘 일체중생의 고통을 다 거두어 주겠습니다’하는 서원으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되어서 일체중생의 고통을 다 거두어 주겠다는 서원은 다겁생을 닦아갈 서원입니다. 아직도 진심과 어리석음으로 물들어 있지만, 법장비구와 같은 마음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세세생생 가난한 집에 태어나 출가하여 비구의 몸으로 정진하겠다‘는 서원입니다. 전생에도 이런 서원이었기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독신을 고수하다 출가하였겠지요. 가난이 어린 시절에는 고통이었으나, 결국은 삶의 무상(無常)을 깨우치게 한 보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ㅡ연지당 본연 스님(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菩薩 於一身(보살 어일신) 示現一切身命終(시현일체신명종) 甚微細(심미세)

菩薩 入母胎(보살 입모태)甚微細(심미세) 菩薩 住母胎(보살 주모태)甚微細(심미세) 

菩薩 在母胎中(보살 재모태중) 自在示現一切法界道場衆會(자재시현일체법계도량중회) 甚微細(심미세) 

菩薩 在母胎中 示現一切佛神力(보살 재모태중 시현일체불신력) 甚微細(심미세)

보살의 일신(一身)에서 일체의 신명종(身命終)을 시현(示現)하여 나타내보이심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입모태(入母胎)함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주모태(住母胎)하여 모태에 머무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모태(母胎)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일체법계의 도량중회에서의 자재(自在)함을 시현(示現)하는 것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모태(母胎) 중에 있으면서 불신력(佛神力)을 시현(示現)하는 것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ㅡ무비스님의 일화; 저는 어릴 때 왜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행자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고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새벽예불 나가서 지심귀명례~ 하면서 머리 내려가면 그 때부터 잠이 오기 시작해서 머리를 마룻바닥에 대면 한숨 푹 자고 꿈까지 꾸고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어납니다. 야~ 신기한 그런 이치가 있습니다. 그것 또한 심미세(甚微細) 아니겠습니까?  

 

菩薩 示現誕生事(보살 시현탄생사) 甚微細(심미세) 

보살이 탄생사(誕生事)를 시현함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ㅡ8상 성도로 간단하게 표현하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사연과 인연들이 있는 것입니다.

 

菩薩 師子遊行七步智(보살 사지유행칠보지) 甚微細(심미세) 

菩薩 示處王宮(보살 시처왕궁) 巧方便智(교방편지) 甚微細(심미세) 

菩薩 出家 修調伏行(보살 출가 수조복행)甚微細(심미세)

菩薩 菩提樹下(보살 보리수하) 坐道場(좌도량) 甚微細(심미세) 

菩薩 破魔軍衆(보살 파마군중)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아뇩다라삼막삼보리) 甚微細(심미세) 

보살의 사자유행칠보(師子遊行七步智, 사자의 일곱 걸음을 딛는 지혜, 유아기)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왕궁(王宮)에 처한 교방편지(巧方便智, 선교한 방편 지혜, 성장기)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출가(出家)하여 조복행(調伏行, 6년 고행)을 수행함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의 菩提樹下(보리수하)에 坐道場(좌도량)하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보살이 마군중(魔軍衆)들을 파(破)하여 깨뜨리고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이루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ㅡ일체의 모든 일에는 그에 따르는 사연과 사정과 인연들이 있는 것입니다.

 

ㅡ앞에서는 보살이었지만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이루었으니까 이제부터는 여래인 것입니다.

如來 坐菩提座放大光明(여래 좌보리좌방대광명) 照十方界 甚微細(조시방계 심미세) 

如來 示現無量神變(보살 시현무량신변) 甚微細(심미세) 

如來 師子吼大涅槃(여래 사자후대열반) 甚微細(심미세) 

如來調伏一切衆生(여래조복일체중생) 而無所碍(이무소애) 甚微細(심미세) 

如來 不思議自在力如金剛菩提心(여래 불사의자재력여금강보리심) 甚微細(심미세)  

如來 普護念一切世間境界(여래 보호념일체세간경계) 甚微細(심미세)

如來普於一切世界 施作佛事(여래보어일체세계 시작불사) 盡未來劫(지미래겁)

而無休息(이무휴식)甚微細(심미세) 

여래가 보리좌(菩提座)에 앉으시어 대광명(大光明)을 놓으시어

시방의 세계들을 비추심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여래가 무량한 신변(神變, 신통변화)를 시현하시는 것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여래가 사자후(師子吼, 가르침)하시고 대열반(大涅槃)에 드심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여래가 일체의 중생들을 장애 없이 조복(調伏)하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여래의 불사의(不思議)한 자재력(自在力)과 금강과 같은 보리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여래의 일체 세간의 경계(境界)들을 보호념(普護念)하시어 두루 보호하시는 것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여래가 일체의 모든 경계(世界)에서 불사(佛事)를 베푸시어(施)

미래겁(未來劫)이 다하도록 무휴식(無休息)하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ㅡ부처님이 하는 불사(佛事)라는 것은 오로지 중생제도인 것입니다.

 

如來 無碍神力(여래 무애신력) 周遍法界(주변법계)甚微細(심미세) 

如來 於盡虛空界一切世界(여래 어진허공계일체세계) 普現成佛(보현성불) 調伏衆生(조복중생) 甚微細(심미세)

如來 於一佛身 現無量佛身(여래 어일불신 현무량불신)甚微細(심미세) 

여래의 무애(無碍, 걸림이 없음)한 신력(神力)으로 법계에 두루하심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여래가 허공계(虛空界)가 다하도록 일체의 세계에서 성불(成佛)하심을 두루 나타내 보이시어  

중생들을 조복(調伏)하심의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여래가 일불신(一佛身)에서 무량불신(無量佛身)을 나타내시는 것에 대한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와, 

1. 불신미세(佛身微細)란,

부처의 불보신(佛報身) 가운데에서의 하나의 일불신(一佛身)이나, 하나의 일중생신(一衆生身)에 불가설불가량(不可說不可量)한 불신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일체의 불신과 일체의 중생신도 모두 그러한 것이다.

 

如來於去來今三世中(여래어거래금삼세중) 皆處道場自在智(개처도량자재지) 甚微細(심미세) 

如是等一切微細 悉能了知(여시등일체미세 실능요지) 成就淸淨(성취청정) 

普能示現一切世間(보능시현일체세간) 

於念念中 增長智慧(어념념중 증장지혜) 圓滿不退(원만불퇴) 善巧方便(선교방편) 

修菩薩行 無有休息(수보살행 무유휴식) 成就普賢廻向之地(성취보현회향지지) 

具足一切如來功德(구족일체여래공덕) 永不厭捨菩薩所行(영불염사보살소행) 

出生菩薩現前境界(출생보살현전경계) 無量方便 皆悉淸淨(무량방편 개실청정) 

여래가 거(去, 과거), 래(來, 미래), 금(今, 현재)의 삼세(三世) 가운데에서의 모든

도량(道場)에서 자재지(自在智)가 매우 깊고 자세한 심미세(甚微細)들을 모두 실지(悉知)하여 알아서

이와 같은 등의 일체미세(一切微細)를 모두 능히 요지(了知)하여 청정(淸淨)함을 성취하여 

능히 일체의 모든 세간에 두루 나타내 보이시며,

염념(念念, 순간순간)마다 지혜를 증장(增長)시켜서 원만(圓滿)하게 하여서 불퇴(不退)하며,

선교(善巧)한 방편으로 보살행(菩薩行)을 수행하되 무휴식(無休息)하여 쉬지 않아서,   

보현회향(普賢廻向)의 지(地, 지위, 경지)를 성취하고,

일체 모든 여래의 공덕을 구족하여서 보살이 행하여야 할 바의 보살소행(菩薩所行)을 영원히 싫어하거나 버리지 않으며, 

보살의 현전경계(現前境界)를 출생시키고 무량한 방편을 개실청정(皆悉淸淨, 모두 청정하게 함)하게 합니다.  

ㅡ무량한 방편이 모두 훌륭하며, 법과 이치에 맞는 것이 개실청정입니다. 

방편을 씀에 있어서 그 처음도 좋고ㆍ중간도 좋고ㆍ끝도 좋아야 되는, 수단과 목적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일 듣기 거북한 것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한다는 말이지요.ㅡ무비스님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2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6) 십지품(十地品)① ㅡ4


1. 환희지(歡喜地)① ㅡ4

 

(두 번째의 승진의 단계를 세 가지 문으로 나눈 것 중 두 번째에서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수위진수차제(隨位進修次第)를 설명함에 있어서 10 가지의 문을 세운 것에서).

2-4. 대원(大願)으로 이(理)와 사(事), 비(悲)와 지(智)를 원융시켜 다함이 없는 무진문(無盡門)이니,

곧, 제5회인 도솔천궁에서 10회향을 설하여 다함이 없는 무진대원(無盡大願)으로 이지대비(理智大悲)를 원융하게 하여 보현행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니,

열 개의 불과(佛果)의 이름의 첫 글자가 묘(妙)인 것은 이 지위의 과(果)이며,

열 개의 보살 명칭의 아랫 글자가 모두 같은 당(幢)인 것은 이 지위의 수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며,

열 개의 세계 명호가 묘(妙)인 것은, 이 지위의 수행하는 법이니,

이지(理智)의 비원(悲願)과 만행의 묘용이 세계가 된 것을 밝힌 것이다.

 

이는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내는 가운데에서 육향 장자의 청련화를 본 것이, 이 지위의 법이 이지자비(理智慈悲)의 원행(願行)과 일체의 다함 없는 무진차별지혜(無盡差別智慧)와 차별의 원행(差別願行)으로서 회향의 꿀과 합쳐서 한 알의 계(戒)ㆍ정(定)ㆍ혜(慧)의 향(香)을 만들고,

의지 함이 없는 무의주지(無依住智)로서 법계에 두루 하면서 색신을 대현(對現)하여, 그 병을 따라 조복하면서도 5분법신향(五分法身香)과 더불어 집착하는 바가 없는 것이, 마치 청련화가 색깔과 향이 제일이지만 집착할 바가 없는 것과 같으며,

원(願)ㆍ지(智)ㆍ비(悲)와 법신과 10바라밀과 4섭법과 4무량심과 37조도분과 세간의 출세간의 법을 화합해서 다 함께 일법(一法)을 만드는 것이 마치 향을 만듬에 있어서 일체의 온갖 향들을 합쳐서 한알의 일환(一丸)으로 만드는 것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2-5. 수행을 쌓아 덕을 성취하는 온수성덕문(蘊修成德門)이니,

제6회의 타화자재천궁에서 10지법(十地法)을 설한 것은, 앞에서의 십회향(十廻向)의 서원과 수행의 원행(願行)을 성취하여 덕행의 공덕을 원만하게 갖추는 길은 오직 10회향의 법을 닦는 것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불과(佛果)의 경지에 대해서도 다만 10회향 중의 묘용(妙用)의 동일한 공(功)을 취할 뿐, 따로 안립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이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서 법좌를 펴서 부처님을 맞이하는 등의 일이 없으니,

이는 10지(十地) 중의 법칙(법리)이 마치 10회향(十廻向)의 융화회통으로 종결된 것과 같은 것이나,

다만 그에 대한 친숙함(익숙함)이 같지 않은 것이며, 다시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다만 십지(十地)와 십일지(十一地)의 행문(行門, 수행)의 관지(觀智)로써 오히려 앞서의 전과(前果)를 자량하는 것은 마치 복채(菔菜, 무우)의 잎이 길어서 뿌리를 자양하는 것과 같이, 앞에서 얻은 결실을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가령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내는 가운데에서 선재가 마갈제국(摩竭提國)의 가비라성(迦毘羅城)에서 주야신(主夜神)인 파산파연저(婆珊婆演底, 한역으로 춘시주당 春時主當)를 본 것은, 이 신이 봄에 묘가(苗稼)를 주재하고 담당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또한 두려움이 없는 안식처의 의지무외(依止無畏)라고 이름한 것은 일체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는 안식의 의지무외(依止無畏)를 제공하는 것을 일컬은 것이다.

몸에서 성수(星宿, 별자리)를 내어 중생을 비춘 것은 몸의 일일모공(一一毛孔)에서 행을 나타내어 무수한 악도(惡道)의 중생을 교화 제도하는 것이며,

가비라성(迦毘羅城)을 한역하면 황색(黃色)이니, 이 성이 염부제의 중앙에 있음을 밝힌 것이며, 중궁토(中宮土)가 황색이 됨을 밝힌 것이니, 10지가 중도(中道)에 계응(契應)하여 진(眞)에 응하여 치우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여래가 성도한 곳을 보이는 나라이다.

 

신(神)이란 것이란 것은 진(眞)에 응하는 것으로, 그 지혜가 분별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도 모든 존재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지혜가 작위하지 않고 사념이 없으면서도 두루 만유를 자량하는 것이니, 이 신은 최초의 환희지(歡喜地)를 나타내는 것이며,

제9 회향 이래 곧바로 제9지에 이르기까지의 모두가 신위(神位)에 들어가는 것은 승진지(昇進智)가 통하니, 우물(祐物, 만물을 돕는 것)이 무한해서, 작위하지 않고 사념이 없으면서도 지혜가 스스로 두루 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우선 간략히 설한 것일 뿐, 자세한 내용은 나중의 경문에 있다.


무릇 선재동자가, 선지식의 발심한 기간의 구근(久近, 짧고 김)과 세상에 머문 기간의 다소(多少, 많고 적음)를 물은 것 모두는 대비(大悲)의 행을 성취하여 길이 함양하고 키워나감을 밝힌 것이며,

주겁(住劫)의 구원(久遠)은 대자비의 깊고 두터움을 밝힌 것이니, 지혜에 있으면 구원의 겁도 1찰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관세음보살은 명호와 설한 바의 법으로써 자비경(慈悲經)이라 호칭하는 것과 같으며,

또 10회향에서 제7회향(七迴向)의 선지식으로서 제8회향의 정취(正趣) 보살과 함께 7회향과 8회향의 자비와 지혜의 비지이문(悲智二門)을 성취하는 것이니, 반드시 이와 같이 그 전후(前後)를 회통하여야, 비로소 그 경문의 뜻을 요달할수 있는 것으로,

하나의 법만 보아서는 능히 불심(佛心)을 요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십지(十地)는 십회향(十廻向) 및 여러 법문(法門)들과 함께 원만하게 수행을 쌓아서 자비와 지혜가 완성되고 과거의 서원이 성취됨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환희지에서 원구성만심(願求成滿心)을 얻는 것은 이전 10회향의 원심(願心)에 의거해서 원만함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2ㅡ6. 덕(德)과 행이 원만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재롭고 무한한 문(德滿行圓利生自在無限門)이니,

이는 제3선(第三禪)에 있으며, 제7회의 경문이니, 범본(梵本)이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백만억의 게송은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의 교설에 의하여 설한것이다.

이 경전은 여래가 3승인(三乘人)을 교화한 후, 3승의 대중들을 거느리고 보리수 아래에 가서 최초로 정각을 성취하였을 때에 '화엄경'을 설한 것으로서 하나하나를 차례대로 배열하여 거듭 그 회상을 펴서 제3선(第三禪)에 이른 것이다.

'영락본업경'에서는 “11지의 등각위(等覺位)가 일생보처 보살의 지위가 된다”고 하였으니,

이 11지(十一地)에서 보현행이 원만하여져서 12지에서 묘각여래(妙覺如來)가 되기 때문에,

이를 일생(一生)의 주(主)로 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선재동자가 수행으로서 법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 불모(佛母)인 마야 부인을 본 것이 바로 그 수행의 실천이다.

이는 자비에서 비롯된 지혜의 실천으로 좇아 행을 성취하는 십지의 행문(行門)을 밝히는 것으로,

곧 야천(夜天), 여신(女神) 및 여래가 태자였을 때의 아내인 구파(瞿波, 한역으로 수호지 守護地)의 열 분의 여중(女衆, 여자 대중)들로서 대비(大悲)를 성장시켜 대자비지(大慈悲地)를 수호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예를 들어, 보살의 수행단계인 등각위(等覺位)에서 자비를 행하는 행이 원만하여져서, 바로 자비로부터 지혜를 낳아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곧 불모를 보는 견불모(見佛母)로 나타낸 것이니, 모(母)는 자비의 뜻이다.

대지혜를 낳아서 중생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등각위(等覺位)에서의 열 분의 선지식에 해당되기 때문에 마야생불(摩耶生佛,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낳았다)이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부처가 바로 지혜이기 때문이다.


2ㅡ7. 덕행이 원만한 불과의 성취를 끝낸 문이니(德行圓滿成佛果終門), 

즉 제8회 보광명전에서 설한 11품의 경문인 것으로,

'십정품'이 그 처음이 되고, 그 다음은 '십통품'과 '십인품'과 '아승기품'과 '여래수량품'과 '보살주처품'과 '불불사의법문'과 '여래십신상해품'과 '여래수호광명공덕품'과 '보현행품'과 '여래출현품' 등이다.

 

초회에서 질문한 것에 준거하여 보면, 10정(十頂, 십정품)은 있어도 설한 곳이 있지 않으니 이는 경문에서 온전하게 갖추지 못한 때문이다. 총체적으로는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낸 것 중에서 미륵보살을 본 것이 바로 그 행이니, 이는 선재 동자가 일생에 불과를 성취한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밝힌 때문에, 마침내 누각 안에서 3생(三生)의 행 모두가 금(今, 현재) 가운데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3생(三生)이란,

첫째 과거의 구원(久遠)에서 도를 보아 수행하는 생(生, 전생)이며,

둘째 현재에 과(果)를 얻어서 원만한 생(현생)이며,

셋째 미래에 정각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일 생(후생)이니,

이러한 모두가 누각 안의 지금에 현전하여 (今現前), 고금(古今)과 거래(去來)와 현재(現在)가 없어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3생의 상(相, 특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운데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니, 다만 지혜로서 세속을 따라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곧 3생인 것이다.

 

만약 진(眞, 진리)을 기준으로 하여 논한다면, 보리심을 발한 때(時)도 없고, 수행하여 도를 본 때(時)도 없으며, 현재의 생에서 과(果)를 얻은 때(時)도 없고, 미래에 정각을 성취함을 보일 때(時)도 없는 것이니,

이는 3세(三世)와 심량(心量)이 성품의 체(體)가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본성에는 본질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이며)

안립(安立)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처소도 없는 무처(無處)이고 의지함도 없는 무의주(無依住)이기 때문에 성불하는 때의 성불시(成佛時)라 이름한 것이다.

 

만약 자심(自心, 자기 마음)에서 능히 보리심을 발하는 때(순간)나 미래에 정각을 성취할 때(순간)가 있음을 본다면,

곧 정식(情識, 분별하는 의식)의 생멸인 것일 뿐이니, 보리심을 참되게 발심하는 때(時)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현보살의 끊임없는 수행을 포함한 신심(信心)과 불과(佛果)는 결코 보광명전(普光明殿)을 떠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이세간품(離世間品)’ 또한 보광명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는 인(因)과 과(果)가 ‘보광명(普光明)의 부동한 대지혜’라는 동일한 본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바로 이 지혜가 수행의 길에서 도달하는 궁극적인 귀결점이 됩니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신심(信心)과 불과(佛果) 모두가 보광명전을 여의지 않는 것이며,

나아가 늘 보현의 시종(始終)이 없는 행을 행하는 '이세간품'이 역시도 보광명전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인(因)과 과(果)가 본질적으로 부동(不動)인 보광명대지(普光明大智)와 동본(同本, 같은 본성)의 승진공(昇進功)의 종결(귀결점)로 삼기 때문에, 때(時)도 다시 체(體, 실체)가 없고 지혜 또한 고정되게 의지함이 없는 무의(無依)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미륵 보살이 선재동자로 하여금 문득 최초의 스승인 문수사리 보살을 다시 보게 한 것은, 그 과(果)에 이르는 것이 인(因)의 기초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밝힌 것이며,

선재동자가 문수 보살을 생각하는 순간에 문수 보살의 이름을 듣고는 자신의 몸이 보현 보살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은, 정각(正覺)의 행(行, 수행)의 과(果)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인(因)과 과(果)와 행(行, 수행)이 일시에 회통하여 성취되어서 모두가 원만한 것을 포괗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이는 지혜의 경계에서 능히 일체 중생의 다겁(多怯, 오랜 세월)의 정량(情量, 심량, 역량)이 바로 일시(一時)에 포함되기 때문이며,  이는 지혜는 무정(無情)이기 때문이며,

다만 10신(十信)의 단계에 있는 부동지불(不動智佛)의 전제(前際)ㆍ중제(中際)ㆍ후제(後際)가 없기 때문이며,

이것은 문수사리 보살이10신에서 설한 게송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ㅡ게송; "일념으로 무량한 겁을 널리 관(觀)하니 (一念普觀無量劫)
가는 곳도 없고 오는 곳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구나. (無去無來無住處)
이와 같이 3세의 일을 요달하여 안다면 (如是了知三世事)
모든 방편을 초월해 10력(力)을 이루리라.(超諸方便成十力)"

2ㅡ8. 보현의 행해(行海)가 항상 행하는 문이니(普賢行海常行門),

즉 제9회에서 설한 '이세간품'이 이에 해당된다.

세간에 상주하여 무한한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 정(情)에 이끌린 업(業)의 작용에 상응(相應)하지 않는 것이니,

가령 선재동자가 행(行, 수행)을 나타낸 것 중에서, 최초의 선지식인 문수 보살을 억념하자, 문득 보현 보살의 명호를 듣게 되는 것과 자신이 보현 보살의 몸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스스로 불과(佛果)를 성취해 마치고 나서 항상 보현 보살의 시종(始終)이 없는 행을 수행하는 것이니,

이러한 보현행 역시 본보광명(本普光明)의 의주(依住)함이 없는 지혜에서 옮겨가지 않은 것임을 칭한 것이다.

 

고인(古人, 옛 성현)이 해석하기를, “보광명전(普光明殿)이 거듭 언급되는 것, 구체적으로 ‘보광명전에서의 세 차례의 법회’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세 번의 법회가 실제로 반복해서 열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 대체(大體)는 다만 하나의 보광명의 의주(依住)함이 없는 대지혜(一箇普光明無依住大智)가 초발심의 인(因)과 불과(佛果)와 행만(行滿, 수행의 성취)를 행하는 것을 원만히 회통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의 삼사(三事) 모두가 이 보광명의 지혜를 여의지 않기 때문에 시(時)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지혜에 의거하여 발심한 이후로 시종일관 정견(情見)의 자취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2ㅡ9. 여래의 출현하지도 않고 사그라지지도 않는 부처 지혜의 항과문(恒果門)이다(如來不出不沒佛智恒果門).

즉 제10회에서 설한 '법계품' 1품의 경문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법계가 부처의 영속적인 과보의 항과(恒果)이기 때문이다.

 

2ㅡ10. 믿음을 통해서 6위(位)의 인법(人法)이 나아가 구해야 할 문을 나타낸 것이다(表通信六位人法所進求門).

즉 각성동회(覺城東會) 대탑묘의 처소에서 선재동자가 문수 보살과 아울러 하입위(下入位, 아래 지위)의 5위(五位)의 선지식을 보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상의 열 가지 십문(十門)은 보광명전에서 10신(十信)의 가르침을 설한 이래에 총체적으로 거듭 서술함으로써 배우는 학자(學者)들로 하여금 쉽게 경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아울러 선재동자가 만난 선지식(善知識)들로서, 법을 나타내는 단계를 대략적으로 들어서 회통하여서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다.

 
승진의 단계를 세 가지 문으로 나눈 것 중에서의 세 번째, 부처님께서 법을 설한 설법처(說法處)와 법좌의 좌체(座體)를 거듭 편다는 것의 뜻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법을 설한 처소와 의취(意趣)를 편 것이며,

둘째 광명을 놓은 처소와 의취(意趣)를 편 것이며,

셋째 법좌의 체(體)와 의취(意趣)를 편 것이다.


3ㅡ1 법을 설한 처소와 의취를 편것에서, 그 처소에 10 가지가 있고 그 의취에는 12 가지가 있다.
처소 1, 보리장 보리수 밑의 1회(會)는 희련하(熙連河)의 강변에 있으며,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의 취락까지의 거리가 5리이니 1우후지(牛吼地, 한 마장)이 된다.

 

이 아란야(숲속의 고요한 수행처)의 처소에서 도(道)를 성취한 것은 세간법(세간의 관습)에 의지한 것이며, 이는 중생을 교화하는 법칙(방편)이지만, 부처 자신에게는 그러한 집착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승천(昇天)하는 것도 모두가 방편으로 나타낸 것이지만,

여래의 지체(智體)는 시방으로 두루하면서도 가고 옴이 없이 색신(色身)을 대현(對現)하는 것이다. 이는 세간을 위하여 색신을 나투어서 법을 성취하는 것을 보임으로써 본받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 한 단락은 여래가 스스로의 자과법(自果法)을 들어서, 중생들을 수행하도록 권하고 이끌어 수행하게 하는 거자과법권중생수행문(擧自果法勸衆生修行門)인 것이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2권을 마침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一 十迴向品第二十五之九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⑨ ㅡ 4

ㅡ제9(第九) 무착무박해탈회향(無着無縛解脫廻向) ㅡ 4

 

ㅡ보현 보살 대지(大智)의 사원(四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爲一切衆生(위일체중생) 

修普賢行(수보현행) 生大智寶(생대지보) 於一一心中(어일일심중) 知無量心(지무량심) 

隨其依止(수기의지) 隨其分別(수기분별) 隨其種性(수기종성) 隨其所作(수기소작) 

隨其業用(수기업용) 隨其相狀(수기상상) 隨其思覺(수기사각) 

種種不同(수기부동) 靡不明見(미불명견) 

무착무박해탈심으로 일체의 중생들을 위하여 보현행(普賢行)을 닦아서(修)   

대지보(大智寶, 대 지혜의 보배)를 내고  

일일심(一一心, 낱낱의 마음) 가운데에서 무량심(無量心)을 알아 

그 의지함을 따라 수기의지(隨其依止)하고, 그 분별함을 따라 수기 분별(隨其分別)하고,

그 종성을 따라 수기종성(隨其種性)하고, 그 짓는 바를 따라 수기소작(隨其所作)하고, 

그 업의 작용을 따라 수기업용(隨其業用)하고, 그 형상을 따라 수기상상(隨其相狀)하고,

그 생각으로 깨닫는 바를 따라 수기사각(隨其思覺)하여서 

갖가지의 종종(種種)이 부동(不同)함을 미불명견(靡不明見)하여, 밝게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成就普賢大願智寶(성취보현대원지보) 

於一處中(어일처중) 知於無量(지어무량) 不可說處(불가설처) 

如於一處(지어일처) 於一切處(어일체처) 悉亦如是(실역여시)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대원(大願)과 지보(智寶, 지혜보배)를 성취하여 

일처(一處, 한 곳)에서 무량하고 불가설한 처(處, 곳)을 알고,  

마치 일처(一處, 한 곳)에서와 같이 일체처(一切處, 모든 곳)에서도 모두 그와 같이 알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習普賢行業智地(수습보현행업지지) 

於一業中(어일업중) 能知(능지) 無量不可說不可說業(능지무량불가설불가설업) 

其業(기업) 各以種種緣造(각이종종연조) 明了知見(명료지견) 如於一業(여어일업) 

於一切業(어일체업) 悉亦如是(실역여시)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행업(行業)과 지지(智地, 지혜의 지위)를 수습하여서

일업(一業, 하나의 업) 가운데에서 능히 무량하게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업(業)을 알아서 

그 업이 각각 저마다의 연(緣)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밝게 보아서, 지견(知見)하여 알고,

일업(一業, 하나의 업)에서와 같이 일체업(一切業)에서도 모두 그와 같다는 것을 알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習普賢知諸法智(수습보현지제법지)  

於一法中(어일법중) 知不可說不可說法(지불가설불가설법)  

於一切法中(어일체법중) 而知一法(이지일법) 如是諸法(여시제법) 各各差別(각각차별)

無有障碍(무유장애) 無違無着(무위무착)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이 제법지(諸法智, 모든 법을 아는 지혜)를 수습하여서

일법(一法, 하나의 법) 가운데에서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법을 알고  

일체법(一切法) 가운데에서 일법(一法, 하나의 법)을 알아서  

이러한 제법(諸法)들이 각각(各各)으로 저마다 차별(差別)하다는 것을 앎에  

장애(障碍)가 없으며, 어긋남도 없는 무위(無違)요 집착함도 없는 무착(無着)입니다.

 

ㅡ보현 보살의 문설(聞說) 이원(二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住菩薩行(주보살행) 

得具普賢無碍耳根(득구보현무애이근) 於一言音中(어일언음중)

知不可說不可說言音(지불가설불가설음) 無量無邊種種差別(무량무변종종차별) 

而無所着(이무소착) 如於一言音(여어일언음) 於一切言音(일체언음) 悉亦如是(실역여시)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살행(菩薩行, 보현 보살의 행)에 머물러서 

보현 보살의 무애이근(無碍耳根, 장애없는 이근)을 구족하여  

일언음(一言音, 하나의 말소리) 가운데에서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언음(言音)을 알아서  

무량하고 무변하여서 종종(種種)으로 차별함에 무소착(無所着)하여 집착하지 않으며,

일언음(一言音, 하나의 말소리)과 같이 일체언음(一切言音)에서도 모두 그와 같다는 것을 알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普賢智(수보현지) 起普賢行(기보현행)

住普賢地(주보현지) 於一一法中(어일일법중) 演說不可說不可說法(연설불가설불가설법)

其法廣大(기법광대) 種種差別(종종차별) 敎化攝受(교화섭수) 不可思議方便相應(불가사의방편상응)

於無量時(어무량시 於一切時(어일체시) 隨諸衆生(수제중생) 所有欲解(소유욕해) 

隨根隨時(수근수시) 以佛音聲(이불음성) 而爲說法(이위설법) 以一妙音(이일묘음) 

令不可說(영불가설) 道場衆會無量衆生(도량중외무량중생) 皆悉歡喜(개실환희)

一切如來所(일체여래소) 無量菩薩(무량보살) 充滿法界(충만법계) 立殊勝志(입수승지)

生廣大見(생광대견) 究竟(구경) 了知一切諸行(요지일체제행) 住普賢地(주보현지)

隨所說法(수소설법) 於念念中(어념념중) 悉能證入(실능증입) 一刹那頃(일찰나경) 

增長無量(증장무량) 不可說不可說大智慧聚(불가설불가설대지혜취)

盡未來劫(진미래겁) 如是演說(여시연설) 於一切刹(어일체찰) 

修習廣大虛空等行(수습광대허공등행) 成就圓滿(성취원만)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지(普賢智, 보현 보살의 지혜)를 닦고 

보현행(普賢行, 보현의 행)을 일으키고, 보현지(普賢地, 보현의 지위)에 머물러서

일일법(一一法, 낱낱의 법) 가운데에서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법을 연설하나니, 

그 법이 광대하고 갖가지로 종종(種種)로 차별하며 

불가사의한 방편으로 상응(相應)하여 교화(敎化)하고 섭수(攝受)하며, 

무량시(無量時, 무량한 시간)와 일체시(一切時, 모든 시간)에서  

중생들의 소유욕해(所有欲解, 중생들의 모든 욕망과 이해)를 따라

그들의 근성과 시(時, 시기)에 따라 (적당한 때에 맞추어) 부처님의 음성으로 설법(說法)을 하나니, 

일묘음(一妙音, 하나의 묘음)으로 

불가설하게 많은 도량의 대중들과 무량한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환희(歡喜)하게 하며,

일체의 모든 여래소(如來所, 여래의 처소)에서마다 무량하게 많은 보살들이 법계(法界)에 충만하여 

수승지(殊勝志, 수승한 뜻)를 세우고, 광대견(廣大見, 광대한 견해)을 일으켜서, 

구경(究竟)에는 일체의 제행(諸行)을 요지하여 분명하게 알며, 

보현지(普賢地, 보현 보살의 지위)에 머물러서 설법(說法)하는 바를 따라서,

염념(念念, 순간순간)마다 능히 모두에 증입(證入, 증득하여 들어감)하여

일찰나경(一刹那頃, 한 찰나 사이)에 무량하게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대지혜취(大智慧聚, 대지혜의 무더기)를 증장하게 하고 

미래겁(未來劫)이 다하도록 그와 같이 연설하여서

일체찰(一切刹, 모든 세계)에서 광대한 허공등행(虛空等行, 허공과 같은 행)을 수습하여 원만하게 성취합니다.

 

ㅡ보현 보살의 요지제근(了知諸根)의 일원(一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習普賢諸根行門(수습보현제근행문) 

成大行王(성대행왕) 於一一根中(어일일근중) 悉能了知無量諸根(실능요지무량제근)

無量心樂(무량심락) 不思議境界(불사의경계) 所生妙行(소생묘행)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제근행문(諸根行門, 모든 근기를 아는 행)을 닦아서

대행왕(大行王)이 되어 일일근(一一根, 낱낱 근기) 가운데에서

능히 무량하게 많은 제근(諸根)과 무량심락(無量心樂, 무량한 마음의 즐김)과

불가사의한 경계(境界)에서 생기는 바의 묘행(妙行)을 분명하게 압니다.

  

ㅡ보현 보살이 세간법(世間法)을 미세지혜(微細智慧)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住普賢行大廻向心(주보현행대회향심) 

得色甚微細智(득색심미세지) 身甚微細智(신심미세지) 刹甚微細智(찰심미세지) 

劫甚微細智(겁심미세지) 世甚微細智(세심미세지) 方甚微細智(방심미세지) 時甚微細智(시심미세지) 

數甚微細智(수심미세지) 業報甚微細智(업보심미세지) 淸淨甚微細智(청정심미세지) 

如是等一切甚微細(여시등일체심미세) 於一念中(어일념중) 悉能了知(실능요지)

而心不恐怖(이심불공포) 心不迷惑(심불미혹) 不亂不散(불란불산) 不濁不劣(불탁불열) 

其心一緣(기심일연) 心善寂定(심선적정) 心善分別(심선분별) 心善安住(심선안주)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행(普賢行)의 대회향심(大廻向心)에 머물러 

색(色, 물질)에 대한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신(身, 몸)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찰(刹, 세계)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겁(劫)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세(世, 세상)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방(方, 방위)에 대한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시(時, 시간)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수(數, 숫자)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업보(業報)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청정(淸淨)함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를 얻나니(得), 

이와 같은 모든 것에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들을

일념(一念, 한 순간)에 능히 모두 요지(了知)하나,

그 마음은 불공포(不恐怖)하여 두렵지 않으며, 

그 마음은 불미혹(不迷惑)하여, 미혹하지도 않으며,

그 마음은 불란(不亂)하여 어지럽지도 않으며, 불산(不散)하여 흩어지지도 않으며,

불탁(不濁)하여 탁하지도 않으며, 불열(不劣)하여 열등하지도 않아서

그 마음은 일연(一緣, 하나에 반연)하고 (한 가지의 일이나, 하나의 사물에 반연하고)

마음이 선적정(善寂定)하여 고요하게 잘 머무르며, 그 마음은 선불별(善分別)하여 잘 분별하고 

그 마음은 선안주(善安住)하여 잘 안주합니다.

 

ㅡ보현 보살의 중생취(衆生趣)를 아는 미세지혜(微細智慧)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住菩薩智(주보살지) 修普賢行(수보현행)

無有懈倦(무유해권) 能知一切衆生(능지일체중) 趣甚微細(생취심미세) 

衆生死甚微細(중생사심미세) 衆生生甚微細(중생생심미세) 衆生住甚微細(중생주심미세) 

衆生處甚微細(중생처심미세) 衆生品類甚微細(중생품류심미세)

衆生境界甚微細(중생경계심미세)  衆生行甚微細(중생행심미세)

衆生取甚微細(중생취심미세) 衆生攀緣甚微細(중생반연심미세) 

如是等一切甚微細(여시등일체심미세) 於一念中(어일념중) 悉能了知(실능요지)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살지(菩薩智, 보살의 지혜)에 머물러 

보현행(普賢行)을 수습함에 있어서 무유해권(無有懈倦)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능히 일체의 모든 중생들의 위(趣,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등의 갈래)를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사(衆生死, 중생들의 죽음)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생(衆生生, 중생의 태어남)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주(衆生住, 중생들의 머뭄)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처(衆生處, 중생들이 사는 처소)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품류(衆生品類, 중생들의 품류)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경계(衆生境界)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행(衆生行)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취(衆生取, 중생 취함)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반연(衆生攀緣, 중생 각자의 반연하는 바)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 모두를 능히 알아서,

이와 같은 일체의 모든 심미세(甚微細)를 일념(一念, 한 순간)에 능히 요지(了知)합니다.

 

ㅡ환생자는 뛸꾸, 양씨, 린포체, 라마 등으로 불립니다. 
뛸꾸는 화신이란 뜻이지만, 부처님의 4신 중 하나인 화신과는 동음이의어입니다.

대부분의 환생자는 부처가 아니니까, 높은 분이 다시 오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합니다. 
양씨는 다시 존재함, 다시 태어남을 뜻합니다.
린포체는 귀중하다는 의미입니다. 보석도 린포체라고 부르고 온갖 귀하고 좋은 것들을 다 린포체라고 부릅니다.

성스러운 산이라는 카일라스도 강 린포체(귀중한 눈(산))이라고 부르죠.
라마는 스승이란 뜻입니다.
제도적으로 겔룩파에서 린포체가 되는 방법은 제가 알기론 셋이 있습니다. 이전 생에 린포체였던지, 이번 생에 다창(티벳 사원의 특정 단위) 규모의 사원의 방장을 지내던지, 수행으로 큰 성취를 이뤄 이름을 떨치면 됩니다. 때문에 린포체 중에는 성자가 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이전 생의 수행의 성취와 상관없이 린포체가 된 경우도 아주 많아서, “활불”이라는 번역이 맞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제가 린포체를 이해하는 방식은 이전 생의 보상입니다. 공부로든(다창 방장이 되려면 학창시절 최상위권의 성적이 필요조건입니다. 충분조건은 아니고요.), 수행으로든 특정 기준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면 다음 생에 받는 보상이죠. (물론 스스로 린포체로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유언을 남기는 분들도 종종 계십니다.)
린포체가 되면 사원 내에서 많은 대우를 받습니다. 좋은 스승에게 공부를 배우고, 사원의 단체 행사시 상석에 앉고, 육체노동에서 모두 열외 되는 등의 혜택이 있습니다. 그러나 린포체의 수가 매우 많다 보니 모든 린포체가 존경받을 만한 행실을 보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원 안에서도 린포체 제도에 대해 시선이 마냥 좋지만은 않고, 여러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린포체 제도가 없어지지 않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그래도 린포체 출신 수행자들이 꽤 높은 비율로 모범적인 삶을 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린포체 역시 한 번 되면 영원히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의 행실에 따라 다음 생에 다시 찾아질지, 말지가 결정되니까요. 전생의 삶이 엉망이었다면 대개 더 이상 찾아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주 방한하시는 여러 종파의 린포체들을 린포체라는 이유만으로 존경하거나 우러러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각자 스스로의 경험으로 잘 검증한 뒤, 가르침을 받거나 스승으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린포체를 찾고 검증하는 과정 역시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습니다. 이전 생에 스승께서 입적하시기 전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을 예언하시기도 하고, 또 다른 큰 스승들께서 환생자가 태어나실 즈음 점을 쳐서 발견하시기도 하십니다. 또 새로 태어난 환생자를 발견한 후에도 정말 전생의 스승이 맞는지 여러 단계의 테스트를 거칩니다. 여러 물건 중 전생에 쓰던 물건을 정확히 골라내는 것 역시 이 과정 중 하나입니다.
관련 일화로는 현 달라이 라마 스님의 자서전에 보면, 달라이 라마 스님이 어릴 적 부모님께 “나는 높은 사람이니 잘 대우하라”고 하셨다는 대목이 있죠. 또 우리나라에도 개봉한 적 있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다큐멘터리가 이 검증 과정을 조금 다루기도 합니다. 이 다큐의 주인공인 린포체가 마지막 검증 단계를 통과 못해 사원에서 쫓겨나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죠.
깨달은 자 혹은 부처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는 견해는 소승학파의 견해입니다. 설일체유부가 대표적으로 이 견해를 주장했죠. 설일체유부에서는 부처가 되면 소멸합니다.
이와 달리 대승학파에서 부처는 화신으로 욕계의 중생을 제도하러 태어나고, 보신으로 보살들을 제도하러 태어난다고 합니다. 윤회를 벗어났는지 여부는 있는 공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번뇌장을 제거했는지 여부에 따릅니다. 윤회하는 중생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고 꼭 여전히 윤회에 머문다는 뜻은 아닌 것이죠.ㅡ출처 린포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작성자 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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