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八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六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⑥ ㅡ 11
爲聞法故施其身(위문법고시기신) 修諸苦行求菩提(수제고행구보리)
復爲衆生捨一切(부위중생사일체) 求無上智不退轉(구무상지불퇴전)
법문을 듣기 위하여 몸을 바치고 모든 고행을 닦으면서 보리를 구하여서
다시 중생들을 위하여 모두 버리고 최상의 지혜 구함에 물러서지 않는도다.
以於佛所聞正法(이어불소문정법) 自捨其身充給侍(자사기신충급시)
爲欲普救諸群生(위욕보구제군생) 發生無量歡喜心(발생무량환희심)
부처님의 처소에서 바른 정법을 듣기 위하여 그 몸을 보시하여 시중을 들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서는 무량한 환희심을 내는도다.
彼見世尊大導師(피견세존대도사) 能以慈心廣饒益(능이자심광요익)
是時踊躍生歡喜(시시용약생환희) 聽受如來深法味(청수여래심법미)
그들이 대도사(大導師) 세존께서 자비심으로 능히 중생들을 널리 이익하게 하시는 것을 보고는
뛸듯이 기뻐하면서 환히하면서 여래의 깊은 법문을 청수(聽受)하여 듣고 받아들이는도다.
菩薩所有諸善根(보살소유제선근) 悉以廻向諸衆生(실이회향제중생)
普皆救護無有餘(개능구호무유여) 永使解脫常安樂(영사해탈상안락)
보살은 소유한 바의 모든 선근들로서 중생들에게 모두 회향하여서
남김없이 그 모두를 구호하여 해탈하게 하여서 영원히 안락하게 하는도다.
菩薩所有諸眷屬(보살소유제권속) 色相端嚴能辯慧(색상단엄능변혜)
華鬘衣服及塗香(화만의복급도향) 種種莊嚴皆具足(종종장엄개구족)
보살의 여러 권속들은 색상(色相, 모습)이 단정하고 지혜로운 변재(辯才)와
화만과 좋은 의복고 여러 가지의 도향(塗香, 바르는 향)으로 갖가지의 모든 장엄을 구족하였도다.
此諸眷屬甚希有(차제권속심희유) 菩薩一切皆能施(보살일체개능시)
專求正覺度群生(전구정각도군생) 如是之心無暫捨(여시지심무잠사)
이러한 모든 권속들이 모두 희유하거늘, 보살은 이러한 모두를 보시하여
오로지 정각을 구하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잠시도 버리지 않는도다.
菩薩如是諦思惟(보살여시제사유) 備行種種廣大業(비행종종광대업)
悉以廻向諸含識(실이회향제함식) 而不生於取着心(이불생어취착심)
보살은 이와 같이 제사유(諦思惟)하여 살펴서 생각하여, 갖가지의 광대업(廣大業)을 갖추어 행하여,
그 모두를 함식(含識, 중생)들에게 회향하지만 취하거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도다.
ㅡ업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는 모든 것은 전부 업이라서, 부처는 불업이 있고 보살은 보살업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업이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업이 있는 것으로 '업'이라는 말 자체에는 선악이 없지만, 무엇을 하는가에 따른 뿐인 것입니다.
菩薩捨彼大王位(보살사피대왕위) 及以國土諸城邑(급이국토제성읍)
宮殿樓閣與園林(궁전누각여원림) 僮僕侍衛皆無悋(동복시위개무린)
보살이 대왕위(大王位)와 국토와 모든 성읍(城邑)과 궁전(宮殿), 누각(樓閣)과 함께
원림(園林)과 동복(僮僕)과 시위(侍衛) 모두를 무린(無悋, 아까워하지 않음)하게 보시(捨)하는 도다.
彼於無量百千劫(피어무량백천겁) 處處周行而施與(처처주행이시여)
因以敎導諸群生(인위교도제군생) 悉使超昇無上岸(실사초승무상안)
저 무량한 백천(百天, 일만)의 겁 동안 처처(處處, 곳곳)를 다니면서 보시를 베풀고
모든 중생들을 가르쳐서 인도하여서 위없는 무상안(無上岸, 무상의 언덕)에 뛰어 오르게 하는도다.
無量品類各差別(무량품류각차별) 十方世界來萃止(시방세계래췌지)
菩薩見已心欣慶(보살견이심흔경) 隨其所乏令滿足(수기소핍영만족)
무량하게 각각으로 차별한 여러 품류(品類,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의 제취)들이
시방의 세계로부터 모여 올지라도, 보살이 보고서 환희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모자람을 만족하게 하여주는도다.
如三世佛所廻向(여삼세불소회향) 菩薩亦修如是業(보살역수여시업)
調御人尊之所行(조어인존지소행) 悉皆隨學到彼岸(실개수학도피안)
삼세(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들께서 회향하시는 것과 같이 보살 역시도 그러한 업을 모두 닦으며
조어장부(調御丈夫) 인중존(人中尊)께서 행하신 바들을 모두 따라 배워서 피안에 이르는도다.
菩薩觀察一切法(보살관찰일체법) 誰爲能入此法者(수위능입차법자)
云何爲入何所入(운하위입하소입) 如是布施心無住(여시보시심무주)
보살이 일체법을 관찰하여서, 누가 능히 이 법에 들어가는 것이며?
어떠한 것이 들어가는 것이며? 어디로 들어가는 것인가?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법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으니)
이와 같이 보시심(布施心)으로 마음은 무주(無住)하여 머물지 않는도다.
(마음은 무주상보시를 행하여 머무는 바가 없고 집착하는 바가 없도다.)
ㅡ보시와 보살행하는 거듭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집착하지 않아서, 상(相, 생색)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菩薩廻向善巧智(보살회향선교지) 菩薩廻向方便法(보살회향방편법)
菩薩廻向眞實義(보살회향진실의) 於其法中無所着(어기법중무소착)
보살은 선교지(善巧智, 교묘한 지혜)에 회향하고, 보살은 방편법(方便法)에 회향하며
보살은 참된 이치의 진실의(眞實義)에 회향하지만, 그러한 법에 조금도 집착하지 않는도다.
ㅡ이상회향(離相廻向), 상(相, 생색)을 내지 않아야 되는데,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좋은 일을 해놓고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했다는 상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ㅡ무비스님
心不分別一切業(심불분별일체업) 亦不染着於業果(역불염착어업과)
知菩提性從緣起(지보리성종연기) 入深法界無違逆(입심법계무위역)
마음은 일체의 모든 업을 분별하지 않고, 받는 업과(業果)에도 집착하여 물들지 않고
보리성(菩提性, 보리의 성품)이 인연을 쫓아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서
위역(違逆, 거스름)하지 않고 법계에 들어가는도다.
不於身中而有業(불어신중이유업) 亦不依止於心住(역불의지어심주)
智慧了知無業性(지혜요지무업성) 以因緣故業不失(이인연고업불실)
업(業)은 몸 가운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마음을 의지하여 있는 것도 아니니,
지혜로서 업에는 성품이 없는 무업성(無業性)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인연으로 업을 잃지 않는도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업과를 받는도다)
ㅡ업은 연기, 인연의 도리로 일어나는 것이라서, 지혜로는 무업성(無業性)이라서,
업의 본성(성품)은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닌, 고정불변한 자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인연고(以因緣故), 인연을 따라 그 업의 과보를 받는다.
心不妄取過去法(심불망취과거법) 亦不貪着未來事(역불탐착미래사)
不於現在有所住(불어현재유소주) 了達三世悉空寂(요달삼세실공적)
지나간 과거의 법을 허망하게 취하지 않고, 미래의 일에도 탐착하지 않으며
현재에 머물지도 않나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공적(空寂)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요달하였도다.
ㅡ주련에도 많고, 스님들이 많이 인용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마음이 과거의 법을 망령되게 취하지 않고, 또한 미래사에도 탐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있는 바, 머무는 바에도 있지 않는 것이라서, 삼세가 다 공적함을 요달 하였지만,
그러나 돌아보니 업의 인연은 여여해서, 결국은 업 놀음으로, 업으로써 이러쿵저러쿵 살아가더라.
인연의 자성(自性)은 없지만, 전부 인연과 업이고,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이지만 전부가 죄업 때문에 문제가 야기되지만,
이치는 이치대로 분명히 있어서, 업이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사실 또한 분명히 있지만,
그 본성은 그야말로 텅 비어 없는, 적정한 것이니까
마음으로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든지 간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미래사에도 탐착할 것도 아니고, 현재에도 머물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菩薩已到色彼岸(보살 이도색피안) 受想行識亦如是(수상행식역여시)
超出世間生死流(초출세간생사류) 其心謙下常淸淨(기심겸하상청정)
보살은 이미 색(色)의 피안에 이르렀으며, 수ㆍ상ㆍ행ㆍ식 또한 그러하여서
세간의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났으니, 그 마음은 겸손하여 항상 청정하도다.
諦觀五蘊十八界(체관오온십팔계) 十二種處及己身(십이종처급기신)
於此一一求菩提(어차일일구보리) 體性畢竟不可得(체성필경불가득)
5온(五蘊)과 18계(十八界), 12처(十二處)와 스스로의 몸까지를 체관(諦觀)하여 살피고 관찰하여서
그 하나하나에서 보리를 구하자 하나, 그 체성(體性, 성품)은 필경에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한 것이로다.
ㅡ십이처(十二處)에서 처(處)는 들어오는 곳으로 육근(六根) + 육경(六境)
육근(六根) 안, 이, 비, 설, 신, 의=6내처(六內處) + 육경(六境)ㅡ색, 성, 향, 미, 촉, 법=6외처(六外處)
6근(六根)은 안이비설신의의 안계(眼界) 이계(耳界) 비계(鼻界) 설계(舌界) 신계(身界) 의계(意界)
육경(六境)은 색계(色界) 성계(聲界) 향계(香界) 미계(味界) 촉계(觸界) 법계(法界)
ㅡ18계(十八界)는 육근(六根) + 육경(六境) + 육식(六識)
육식(六識)은, 안식계(眼識界) 이식계(耳識界) 비식계(鼻識界) 설식계(舌識界) 신식계(身識界) 의식계(意識界)
不取諸法常住相(불취제법상주상) 於斷滅相亦不着(어단멸상역불착)
法性非有亦非無(법성비유역비무) 業理次第終無盡(업리차제종무진)
제법이 상주(常住)하여 항상하다는 상(相)을 취하지 않고,
단멸(斷滅)하여 곧 사라지는 것이라는 상(相)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법성(法性, 현상과 성품)은 있지도 않은 것이요 없지도 않은 것이라.
업리(業理, 업의 이치)는 차제(次第, 차례)대로 무진하여 계속 되는 것이로다.
ㅡ상주(常住)와 단멸(斷滅), 있다(有)와 없다(無)를 떠나서 중도(中道)라는 것 입니다.
不於諸法有所住(불어제법유소주) 不見衆生及菩提(불견중생급보리)
十方國土三世中(시방국토삼세중) 畢竟求之無可得(필경 구지무가득)
제법(諸法)이 머물러 있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으며, 중생이나 보리는 보지도 않으며,
시방 국토의 삼세 가운데에서 끝까지 구하여 찾아도 (실체를) 필경에는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로다
ㅡ우리가 이렇게 번듯이 보고ㆍ듣고ㆍ말하고ㆍ주고ㆍ받고ㆍ시시비비하면서 살고 있지만, 또 어떤 한 면으로는 적멸할 뿐이고, 그러면서 또한 이렇게 여여하게 실재하지만, 필경에는 그 실체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若能如是觀諸法(약능여시관제법) 則如諸佛之所解(즉여제불지소해)
雖求其性不可得(수구기성불가득) 菩薩所行亦不虛(보살소행역불허)
만약 이와 같이 제법(나ㆍ너, 산하대지ㆍ산천초목 등 모든 존재)을 능히 관찰할 수 있다면,
곧 부처님께서 이해하신 바와 같을 것이니
비록 그 성품을 구하여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보살의 행을 행하는 바가 헛되지 않도다.ㅡ 중도(中道)
菩薩了法從緣有(보살요법종연유) 不違一切所行道(불위일체소행도)
開示解脫諸業跡(개시해탈제업적) 欲使衆生悉淸淨(욕사중생실청정)
보살은 법이 인연을 따라 있게 되는 것임을 알아, 일체의 행할 바의 소행도(所行道)를 어기지 않고
제업(諸業)의 적(跡, 자취)을 개시(開示)하여 해설하나니,
(그러한 이치를 열어 보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하게 (훌륭하게)하는도다.
是爲智者所行道(시위지자소행도) 一切如來之所說(일체여래지소설)
隨順思惟入正義(수순사유입정의) 自然覺悟成菩提(자연각요성보리)
이러함이 지자(智者)가 행하여야 할 바의 소행도(所行道)이라 (중도로 행하는 바이라)
일체의 모든 여래(如來, 깨달으신 분)들께서 말씀하신 바이니
수순하여 사유하여서 정의(正義, 팔정도)에 든다면, 보리를 자연각오(自然覺悟)하여 깨달아 이루리라
諸法無生亦無滅(제법무생역무멸) 亦復無來無有去(역부무래무유거)
不於此死而生彼(불어차사이생피) 是人悟解諸佛法(시인오해 제불법)
제법(諸法)은 무생(無生)이요 또한 멸하지도 않는 무멸(無滅)이요,
역시 오는 것도 아닌 무래(無來)요 감도 없는 무유거(無有去)요,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라면,
그 사람은 제불법(諸佛法)을 오해(悟解)하여 깨달아 이해한 것이로다
了達諸法眞實性(요달제법진실성) 而於法性無分別(이어법성무분별)
知法無性無分別(지법무성무분별) 此人善入諸佛智(차인선입제불지)
제법의 진실성(眞實性)과 법성(法性)에 분별이 없다는 것을 요달하여, 법의 성품에 분별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이러한 이는 모든 부처님의 불지(佛智)에 잘 들어간 것이로다.
法性遍在一切處(법성편재일체처) 一切衆生及國土(일체중생급국토)
三世悉在無有餘(삼세실재무유여) 亦無形相而可得(역무형상이가득)
법성(法性)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하여 일체의 중생들과 국토와
삼세에 모두 빠짐없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역시 그 형상(形相)을 얻을 수가 없도다.
ㅡ법성은 일체의 모든 곳(處)과, 일체중생과 모든 국토에 두루 가득 차있지만 법성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닌,
전부 법성이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전부 '법성'이다.
‘너도 법성ㆍ나도 법성ㆍ산도 법성ㆍ하늘도 법성ㆍ강물도 법성ㆍ바다도 법성으로 법성 아닌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一切諸佛所覺了(일체제불소각료) 悉皆攝取無有餘(실개섭취무유여)
雖說三世一切法(수설삼세일체법) 如是等法悉非有(여시등법 실비유)
일체의 모든 제불들이 소각료(所覺了)하시어 깨달으신 바를
그러한 모두를 남김없이 섭취(攝取)하여, 비록 삼세(三世)의 일체법을 설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법 모두는 있는 것이 아닌 비유(非有)로다.
如諸法性遍一切(여제법성편일체) 菩薩廻向亦復然(보살회향 역부연)
如是廻向諸衆生(여시회향제중생) 常於世間無退轉(상어세간무퇴전)
제법의 법성(성품)이 일체에 두루한 것을 알며, 보살의 회향 역시도 그러하다는 것을 아나니
(보살이 선용기심善用其心하여 그 마음 잘 쓰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아나니)
세간에서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에게 항상 회향하면서 물러서지 않는도다.
화엄경(華嚴經) 제28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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