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九 十迴向品第二十五之七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2

 

ㅡ제7.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 ㅡ2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以淨志願(이정지원菩提心力(보리심력

修諸善根時(수제선근시作是念言(작시념언此諸善根(차제선근

是菩提心之所積集(시보리심지소적집是菩提心之所思惟(시보리심지소사유

是菩提心之所發起(시보리심지소발기是菩提心之所志樂(시보리심지소지요

是菩提心之所增益(시보리심지소증익皆爲憐愍一切衆生(개위연민일체중생

皆爲趣求一切種智(개위취구일체종지皆爲成就如來十力(개위성취여래십력)  

作是念時(작시념시 善根增進(선근 증진永不退轉(영불퇴전)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지원(志願)과 보리심의 힘으로 선근을 닦을 때, 생각하기를 

‘이러한 31 가지의 모든 선근은 보리심으로 쌓아 모은 것이며, 보리심으로 사유한 것이며,

보리심으로 일으킨 것이며, 보리심으로 지요(志樂)한 것이며, 보리심으로 증장한 것이니,

모두가 일체 중생을 연민(憐愍)하는 것이요, 일체종지를 구하기 위한 것이요,

여래의 십력(十力)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로다’ (생각) 하나니,

이렇게 생각할 때에 선근이 더욱 증진(增進)하여 영원히 퇴전(退轉)하지 않습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復作是念(부작시념) 願我以此善根果報(원아이차선근과보)

盡未來劫(진미래겁) 修菩薩行(수보살행) 悉以惠施一切衆生(실이혜시일체중생) 

悉以廻向一切衆生(실이회향일체중생) 普遍無餘(보변무여)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다시  생각하나니, 나는 이러한 선근의 과보로서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아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할 것이요,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베풀것이요,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하여 남김없이 두루 가득하기를 원하며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珍寶充滿(진보충만)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衣服充滿(의복충만)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妙香充滿(묘향충만)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莊嚴具充滿(장엄구충만)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無量摩尼寶充滿(무량마니보충만)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妙華充滿(묘화충만)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上味充滿(상미충만)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財貨充滿(재화충만)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牀座充滿(상좌충만) 

蓋以寶帳(개이보장) 敷以妙衣(부이묘의) 阿僧祇世界(아승지세계) 種種莊嚴寶冠(종종장엄보관)

充滿(충만) 假使一人(가사일인) 盡未來劫(진미래겁) 常來求索(상래구색) 以此等物(이차등물) 

而惠施之(이헤시지) 未曾厭倦(미증염권) 而有休息(이유휴식) 

如於一人(여어일인) 於一切衆生(어일체중생) 悉亦如是(실역여시) 

아승기 세계에 진보(珍寶, 진귀한 보배)로 가득하고, 아승기 세계에 의복이 충만하고,

아승기 세계에 묘한 향이 가득하고, 아승기 세계에 장엄구(莊嚴具)가 가득하고, 

아승기 세계에 무량하게 많은 마니보(摩尼寶, 여의보, 여의주)가 가득하고, 

아승기 세계에 묘화(妙華, 묘한 꽃)가 가득하고, 아승기 세계에 맛이 좋은 상미(上味)가 가득하고, 

아승기 세계에 재화(財貨)가 충만하고, 아승기 세계에 상좌(牀座, 좋은 의자, 평상)가 가득하여서,

보배 휘장(장막)을 두르고 묘의(妙衣, 아름다운 천)을 깔았으며,

아승기 세계에 갖가지로 장엄한 보배관이 가득하여서, 

가사(假使, 가령) 어떤 사람이 미래겁(未來劫)이 다하도록 항상 와서 구걸을 할지라도,

이러한 물건들로서 보시하되, 일찍이 싫어하는 생각도 없고 쉬지도 않으리라 원하며,

그와 같이 한 사람에게 하는 것과 같이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ㅡ보살의 다섯 가지 마음의 오종심(五種心)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施時(여시시시) 無虛僞心(무허위심)

無希望心(무희망심) 無名譽心(무명예심) 無中悔心(무중회심) 無熱惱心(무열뇌심) 

但發專求一切智道心(단발전구일체지도심) 一切悉捨心(일체실사심) 

哀愍衆生心(애민중생심) 敎化成熟心(교화성숙심) 皆令安住一切智智心(개령안주일체지지심)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諸善根(이제선근) 如是廻向(여시회향)

盡未來劫(진미래겁) 常行惠施(상행혜시) 住一切智智心(주일체지지심)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보시할 때에는

무어위심(無虛僞心)하여, 거짓된 마음이 없으며,

무희망심(無希望心)하여, 바라는 마음도 없으며, 
무명예심(無名譽心)하여, 명예를 위하는 마음도 없으며, 

무중회심(無中悔心)하여, 도중에 후회하는 마음도 없으며,
무열뇌심(無熱惱心)하여 들끓는 번뇌(망상과 온갖 시비 갈등)하는 마음도 없이, 

오로지 전심으로 일체지의 도(道)를 구하는 마음과 모든 것을 버리는 마음의 사심(捨心)과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애민심(哀愍心)과 교화하여서 성숙하게 하려는 마음과,

그 모두를 일체지의 마음에 안주하게 하려는 마음을 내나니,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모든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하며,

미래겁이 다하도록 항상 보시를 행하여서 차별지(差別智)와 평등지(平等 智)를 아는 지혜의

일체지(一切智智)의 지혜의 마음에 머뭅니다.

ㅡ보살이 다섯 가지 마음이 없이  은혜로운 보시를 행하여 다섯 가지 마음을 성취함을 밝힌 분이니,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첫머리를 삼은 것이며,  

이상의 다섯 단락으로 앞의 31 가지의 선근을 매듭지은 것이.

 

ㅡ십종(十種)의 헤아릴 수 없는 물건의 불가수물(不可數物)로서 

헤아릴 수 없는 불가수겁(不可數劫)이 다하도록 항상 베푸는 것을 밝힌 분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復作是念(부작시념) 我爲一衆生故(아위일중생고) 

欲令阿僧祇世界(욕령아승지세계) 寶象充滿(보상 충만) 七支具足(칠지구족) 

性極調順(성극조순) 上立金幢(상립금당) 金網彌覆(금망미부) 種種妙寶(종종묘보)

而爲莊嚴(이위장엄) 以用布施(이용보시)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다시 또,

내가 한 중생을 위하여 아승기 세계에 보상(寶象, 귀한 코끼리)가 가득하게 하되,

칠지(七支, 코ㆍ상아 두 개ㆍ네 다리)를 구족하였으며, 성질이 지극히 유순하며,

그 위에 황금 깃대를 세우고, 황금의 그물을 덮었으며, 갖가지의 기묘한 보배로 장엄하여서,

그것으로서 보시하고자 생각하며,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寶馬充滿(보마 충만) 如龍馬王(여용마왕)

種種衆寶莊嚴之具(종종중보장엄지구) 而嚴飾之(이엄식지) 持用布施(지용보시) 

또한 아승기 세계에 말(馬)들이 충만하게 하여서, 마치 용과 같은 마왕(馬王, 훌륭한 말)들이

갖가지의 중보(衆寶, 보배들)로 된 장엄구로서 장엄하게 장식하여서, 그러한 것으로서 보시하기를 원하며,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妓女充滿(기녀충만) 

悉能敷奏種種妙音(실능부주종종묘음) 持用布施(지용보시)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男女充滿(남녀충만) 持用布施(지용보시)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己身充滿(기신충만) 發菩提心(발보리심) 而用布施(이용보시) 

또한 아승기 세계에 기녀(妓女, 아름다운 여인)들이 충만하되,

그 모두가 갖가지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나니, 그러한 것으로서 보시하기를 원하며,

또한 아승기 세계에 남자와 여자가 가득 충만하게 하여서 그러한 것으로 보시하기를 원하며, 

또한 아승기 세계를 내 몸으로 충만하게 하고, 보리심을 발하여서 보시하기를 원하며,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己頭充滿(기두충만) 起不放逸心(기불방일심)  而用布施(이용보시)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己眼充滿(기안 충만) 而用布施(이용보시)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己身血肉(기신혈육) 及以骨髓(급이골수) 充滿其中(충만기중) 

心無顧戀(심무고연) 持用布施(지용보시)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自在王位(자재왕위) 充滿其中(충만기중) 持用布施(지용보시)

願令阿僧祇世界(원령아승지세계) 奴僕作使(노복작사) 充滿其中(충만기중) 持用布施(지용보시) 

또한 아승기 세계에 나의 머리가 가득 충만하게 하되, 방일(放逸, 게으름)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켜 보시하기를 원하며,

또한 아승기 세계에 나의 눈으로 충만하게 하여서,  그러한 것으로서 보시하기를 원하며,

또 아승기 세계에 내 몸의 혈육(血肉, 피와 살)과 골수로 충만하게 하여서

마음에 아무런 미련 없이 그러한 것으로서 보시하기를 원하며,

또한 아승기 세계에 자재한 왕위로서 충만하게 하여서 그러한 것으로서 보시하기를 원하며,

또한 아승기 세계에 노복과 작사(作使, 하인, 사환)이 가득하게 하여서 그러한 것으로 보시하기를 원하나니, 

 

ㅡ보살이 십종시(十種施)로써 무한한 중생을 만족하게 하면서도 무한겁이 다하도록 일념의 피로도 없음을 밝힌 분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如是等種種諸物(이여시등종종제물) 盡未來劫(진미래겁) 

安住廣大一切施心(안주광대일체시심) 施一切衆生(시일체중생) 如一衆生(여일중생) 

盡衆生界一切衆生(진중생계일체중생) 皆如是施(개여시시)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갖가지의 물건들로써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일체의 모든 것들을 보시하고자 하는

광대한 시심(施心)에 머물러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하나니,

한 중생에게 하는 것과 같이 중생계의 모든 중생들에게 모두에게도 이와 같이 보시합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於一世界(어일세계) 盡未來劫(진미래겁) 

修菩薩行(수보살행) 以是等物(이시등물) 施一衆生(시일중생) 如是給施一切衆生(여시급시일체중생) 

皆令滿足(개령만족) 如於一世界(여어일세계) 於盡虛空遍法界(어진허공편법계) 一切世界中(일체세계중) 

悉亦如是(실역여시) 大悲普覆(대비보부) 終無間息(종무간식) 普加哀愍(보가애민) 

隨其所須(수기소수) 供給供養(공급공양) 不令施行(불령시행) 遇緣而息(우연이식)

乃至(내지) 不於一彈指頃(불어일탄지경) 生疲倦心(생피권심)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하나의 세계에서 미래겁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으면서,

이러한 등의 물건들로서 한 중생에게 보시하고, 그와 같이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베풀어 주어서

모두를 만족하게 하며,

하나의 일세계(一世界)에서와 같이 온 허공과 법계에 두루 가득한 모든 세계에서도 그와 같이 하나니,

대자비로서 널리 감싸기를 끝없이 쉬지 않으며,

모두를 애민하게 여기어서 들의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을 공급하고 공양하나니,

그러한 보시의 시행(施行)이 우연이식(遇緣而息, 장애가 많아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그만두지 않는 마음)하여도 스스로 쉬거나 그만두지 않으며,

내지 손가락 한 번 퉁기는 동안의 일탄지경(一彈指頃)에도 고달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ㅡ비구니스님 증엄스님의 보천삼무(普天三無), 온 천하에 세 가지가 없기를 원하는 것으로,

   온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온 천하에 내가 믿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그 스님 말씀에는 “큰 자비로써 보부(普覆)하여 두루 덮는다.”는 말보다, “자비의 물로써 온 세상을 다 적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성인입니다. 증엄스님의 봉사단체는 육군사관학교 교육보다도 더 철저한 교육을 받은 봉사자들이 전 세계에 1000만 명입니다. 제가 가서 그냥 봉사하는 봉사하는 사람만 봐도 감동이 돼요. 월호스님과 유명한 목사와 신부가 가서 보고 눈물을 펑펑 쏟았잖아요. 그것이 불교가 낳은, 화엄경과 같은 이러한 가르침이 그런 사람을 탄생시킨 것입니다.ㅡ무비스님

 

ㅡ열 가지 집착이 없는 십종무착해탈심(十種無著解脫心)으로서 시자(施者, 배풂의 주체)를 삼음을 밝힌 분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施時(여시시시) 生於此心(생어차심)

所謂無着心(소위무착심) 無縛心(무박심) 解脫心(해탈심) 大力心(대력심) 

甚深心(심심심) 善攝心(선섭심) 無執心(무집심) 無壽者心(무수자심) 善調伏心(선조복심)

不散亂心(불산란심) 不妄計心(불망계심) 具種種實性心(구종종실성심) 不求果報心(불구과보심)

了達一切法心(요달일체법심) 住大廻向心(주대회향심) 善決諸義心(선결제의심)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 住無上智心(주무상지심) 生大法光明心(입일체지지심)

入一切智智心(입일체지지심)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보시할 때에는 이러한 마음을 내나니,

이른바 집착이 없는 마음의 무착심(無著心)ㆍ속박되지 않은 마음의 무박심(無縳心),

해탈하는 마음의 해탈심(解脫心)ㆍ눈치 보거나 미련과 집착이 없이 자유로운 마음의 대력심(大力心),

매우 깊은 마음의 심심심(甚深心)ㆍ잘 거두어주는 마음의 선섭심(善攝心),

고집이 없는 마음의 무집심(無執心), 오래 살고자 하지 않고 목숨이라는 관념이 없는 마음의 무수자심(無壽者心)ㆍ

잘 조복한 마음의 선조복심(善調伏心)ㆍ산란하지 않은 마음의 불산란심(不散亂心),

헛되게 계획하거나 억측하지 않는 마음의 불망계심(不妄計心),

갖가지의 참 성품을 잘 갖춘 마음의 구종종보성심(具種種寶性心),

과보를 구하지 않는 마음의 불구과보심(不求果報心)

모든 법을 분명히 아는 마음의 요달일체법심(了達一切法心),

큰 회향에 머무는 마음의 주대회향심(住大廻向心),

모든 이치를 잘 결정하는 마음의 선결제의심(善決諸義心),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지혜에 머물게 하는 마음의 일체중생주누무상지심(一切衆生住無上智心),

큰 법의 광명을 내는 마음의 대법광명심(大法光明心),

일체 지혜에 들어가는 마음의 입일체지지심(入一切智智心)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九 十迴向品第二十五之七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1

ㅡ제7.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 ㅡ1

 

ㅡ제7 등수순일체중생(等隨順一切衆生) 회향은 방편바라밀을 체(體)로 삼아서 대비문(大悲門)을 주재하는 것이니,

이전의 6 바라밀은 생사를 벗어나는 마음을 닦는 것이며,

이 제7 이후의 4바라밀은 이 방편의 지혜로 생사 속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때문에 법을 나타내는 가운데에서의 선재동자의 지식(知識)인 관세음보살을 이 제7의 일체 중생을 수순하는 대자비의 회향의 행으로 삼은 것이며, 이 신경(新經)에서 관세음보살이라 이름한 것이 옳은 것이다.

 

시방 세계가 다 함께 하나의 불국(佛國)이 되는 것이지 서방에 별개의 따로 아미타가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여래의 방편 시설이 유위(有爲)의 몽매한 이를 이끄는 방편으로서 마음을 따라 전념(專念)하여, 그 남은 악심(惡心)을 다스리면서도 심념처(心念處)를 따라서 화불(化佛)을 보아 스스로의 심량(心量)에 부합하게 하는 것이거늘, 모든 대덕(大德)들이 잘못 이해하여서 이 시바세계에 관세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니, 그러한 때문에 구경(舊經)의 판본을 고쳐서 관자재(觀自在)를 지은 것이니,

관자재(觀自在)라 말한 것은 단지 명칭을 기준으로하여 행을 드러내는 가운데, 세간과 출세간을 관조하는 무상(無相)의 이지(理智)가 자재함을 드러낸 것일 뿐, 자비행(慈悲行)을 밝힌 것은 아니다.


관세음보살과 문수 보살과 보현 보살, 이 세 분의 법은 3세(三世) 고금(古今)의 일체 모든 부처의 공통된 공행(共行)이라서 시방으로 공통된 것이니,

문수(文殊)는 법신의 묘혜(妙慧)의 이(理)를 주재하고,

보현(普賢)은 지신(智身, 지혜의 몸)으로서 근기를 알아 만행(萬行)의 문을 성취함을 밝히고 있으며,

관세음(觀世音)은 대자비로 생사에 처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세 분의 법이 한 분의 덕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를 비로자나(毘盧遮那)라 칭하는 것이다.

일체 중생이 모두 이 세 가지의 삼법(三法)에 의지하기에, 그것을 칭하여 불(佛)이라 하는 것이니, 하나라도 빠진다면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범본(梵本)에서 관세음보살(光世音菩薩)이라 말한 것은, 교광(教光, 가르침의 광명)과 행광(行光, 행의 광명)과 대자비광(大慈悲光, 대자비의 광명)이 중생과 동등하면서도 사물을 이롭게 함을 밝힌 것이니, 그러므로 일체처가 문수이고 일체처가 보현이며 또한 일체처가 관세음이란 이름을 얻는 것이다.
이제 관세음이라고 말한 것은 정념심(正念心, 정념의 마음)이 성취되면서 마음에 의거하여 응현(應現)하는 것을 취하여 명칭을 세운 것이니, 관자재로서 법을 나타내는 바의 표법(表法)를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관자재란, 명칭을 잡아 법을 나타내는 표법의(表法義) 가운데에서 제6 반야바라밀의 지위를 나타낸 것이니, 이 방편바라밀로 생사에 들어가 중생과 함께 하는 행인 4섭법(四攝法)과 4무량심(四無量心)으로써 번뇌를 끊지 않는 명칭은 아니니, 이는 번역한 자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찌하여 그 명칭이 등수순일체중생 회향(等隨順一切衆生迴向)이 되는 것인가?
이 제7 방편바라밀이 대비문(大悲門)을 주재해서 바라밀에서 닦은 지혜의 힘으로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서 일체 중생의 근품(根品)에 따라 행을 같이 하는 동행(同行)을 하면서 중생을 이롭게 함을 밝히기 때문에 그 명칭이 등수순(等隨順)인 것이니,
가령 10주에서의 제7주(第七住)인 대비위(大悲位)에서 휴사(休捨) 우바이가 “나에게는 동행하는 권속이 8만 4천 나유타가 있는데 항상 이 정원에 거처한다”고 한 것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 대의(大意)를 설명하자면, 일체 중생의 8만 4천과 불가설(不可說)의 번뇌를 같이하면서 함께 동행하는 것이며,
또한 이 지위의 제7 회향과 아울러 선재동자가 본 관음이 이 지위이니, 이로서 알 수 있을 것이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等隨順一切衆生廻向(등수순일체중생회향) 

불자들이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일체 중생들을 평등하게 따르는

수순일체중생홰향(隨順一切衆生廻向)이라 하는 것인가?

ㅡ우리는 그저 분별하고 차별하고, 나도 모르게 벌써 저울질해서 따지고, 상대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따라, 나를 대해 주는 것에 따라서 순식간에 기가 막히게 빠른 속도로 산출해서 차별하기 시작하는데,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수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서 차별과 분별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ㅡ무비스님

 

ㅡ31종의 선근.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隨所積集一切善根(수소적집일체선근) 

所謂(소위) 小善根(소선근) 大善根(대선근) 廣善根(광선근) 多善根(다선근) 無量善根(무량선근)

種種善根(종종선근) 微塵數善根(미진수선근) 阿僧祇善根(아승지선근) 無邊際善根(무변제선근)

不可思善根(불가사선근) 不可量善根(불가량선근) 佛境界善根(불경계선근) 

法境界善根(법경계선근) 僧境界善根(승격계선근) 善知識境界善根(선지식경계선근) 

一切衆生(일체중생) 境界善根(경계선근) 方便善巧(방편선교) 境界善根(경계선근) 

修諸善心(수제선심) 境界善根(경계선근) 內境界善根(내경계선근) 外境界善根(외경계선근) 

無邊助道(무변조도) 法境界善根(법경계선근) 勤修(근수) 一切捨善根(일체사선근) 

立勝志究竟(입승지구경) 持淨戒善根(지정계선근) 一切捨(일체사) 無不受堪忍善根(무불수감인선근) 

常精進(상정진) 心無退善根(심무퇴선근) 以大方便(이대방편) 入無量三昧善根(입무량삼매선근) 

以智慧(이지혜) 善觀察善根(선관찰선근) 知一切衆生(지일체중생) 心行差別善根(심행차별선근) 

集無邊功德善根(집무변공덕선근) 勤修習菩薩業行善根(근수습보살업행선근) 

普覆育一切世間善根(보부육일체세간선근) 

불자들이여, 이보살마하살은 가는 곳마다 일체의 모든 선근을 쌓아 모으나니,

소위(所謂) 작은 소선근(小善根), 대선근(大善根), 넓은 광선근(廣善根), 많은 다선근(多善根)과,

무량선근(無量善根), 갖가지의 종종선근(種種善根), 티끌과 같은 수의 미진수선근(微塵數善根)과, 

아승지선근(阿僧祇善根), 끝이 없는 무변제선근(無邊際善根), 불가사의선근(不可思善根)과,

불가량선근(不可量善根), 부처님 경계의 불경계선근(佛境界善根), 법 경계의 법경계선근(法境界善根)과, 

승경계선근(僧境界善根), 선지식경계선근(善知識境界善根), 일체중생경계선근(一切衆生境界善根)과,  

방편이 선교한 경계의 방편선교경계선근(方便善巧境界善根)과 

선한 마음을 닦는 경계의 수제선심경계선근(修諸善心境界善根)과 

안 경계의 내경계선근(內境界善根), 바깥 경계의 외경계선근(外境界善根) 

가이없는 도를 돕는 법 경계의 무변조도법경계선근(無邊助道法境界善根)과, 

일체를 버리는 것을 힘써 닦는 근수일체사선근(勤修一切捨善根)과,

수승한 뜻을 세워 청정한 계를 구경에도 지키는 입승지구경지정계선근(立勝志究竟持淨戒善根)과,   

일체의 버리는 것을 모두 받고 참아내는 일체사무불수감인선근(一切捨에 無不受堪忍善根)과,   

항상 정진하는 마음이 퇴전치 않는 상정진심무퇴선근(常精進心無退善根)과,   

큰 방편으로 무량 삼매에 들어가는 이대방편 입무량삼매선근(以大方便入無量三昧善根)과,   

지혜로 잘 관찰하는  이지혜선관찰선근(以智慧善觀察善根)과, 

일체 중생들의 심행이 차별함을 아는 지일체중생심행차별선근(知一切衆生心行差別善根)과,  

가이없는 공덕을 모으는 집무변공덕선근(集無邊功德善根)과, 

보살의 업행을 힘써 수습하는  근수습보살업행선근勤修習菩薩業行善根)과,  

일체 세간을 감싸 기르는 보부육일체세간선근(普覆育一切世間善根)입니다  

ㅡ평등할 등(等)과 버릴 사(捨)는 거의 같은 뜻으로 쓰여서, 사(捨)는 차별을 버린다는 뜻으로 평등을 뜻합니다.

 

선근을 심는 이유와 목적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於此善根(어차선근) 修行安住(수행안주) 

趣入攝受(취입섭수) 積集辦具(적집판구) 悟解心淨(오해심정) 開示發起時(개시발기시) 

得堪忍心(득감인심) 閉惡趣門(폐악취문) 善攝諸根(선섭제근) 威儀具足(위의 구족)

遠離顚倒(원리전도) 正行圓滿(정행 원만) 堪爲一切諸佛法器(감위일체제불법기)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선근들을 수행함에 안주하며,

나아가 취입(趣入)하여 섭수(攝受)하며, 쌓아 모아서 판구(辦具, 갖추어 마련)하며 
깨달아 알아서 마음을 청정하게 심정(心淨)하며,  

개시(開示)하여 일으킬 때에는, 인내하는 마음의 감인심(堪忍心)을 얻어서 악한 갈래의 악취문(惡趣門)을 닫아 버리며, 
제근(諸根,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선섭(善攝)하여 잘 관리하고 거두어 들여서
위의(威儀)를 갖추었으며, 잘못된 견해의 전도(顚倒)를 멀리 떠나서,
바른 정행(正行)을 원만하게 하여서 능히 일체제불의 법기(法器, 법의 그릇)을 감당하게 되나니

 

能作衆生福德良田(능작중생복덕양전) 爲佛所念(위불소념) 長佛善根(장불선근) 

住諸佛願(주제불원) 行諸佛業(행제불업)

능히 중생들에게 좋은 복밭의 양전(良田)이 되어주며,

부처님의 호념하심이 되어 부처님의 불선근(佛善根)을 기르며,

부처님께서 소원하시는 바의 불원(佛願)에 머물러서 모든 부처님의 불업(佛業)을 행하며,

권실쌍행(權實雙行), ‘권(權)’은 융통성, 변동성, 특수성 등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논어(論語)'에서는 균형을 맞추는 지혜를 권(權)이라고 했다. 
그래서 ‘권(權)’은 가(假) 또는 임시, 방편을 의미하게 되고, 진실로 이끌기 위해 근기에 응해 일시적으로 설하는 법의 실(實)에 대칭이 되는 말로 쓰였다.

‘실(實)’은 진실을 의미하며, 마지막 궁극의 변하지 않는 참되고 완전한 법을 지칭했다.
따라서 ‘권(權)’은 진실로 이끌기 위해 근기에 맞게 일시적으로 설하는 법으로, 실(實)에 대칭이 되는 임시방편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삶을 흔히 업(業)이라고 한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모두가 업이다. 부처가 지으면 불업(佛業)이고, 보살이 지으면 보살업(菩薩業)이다. 그래서 일체를 업 노름이라는 말까지 쓴다. 업(業)이란 사람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하는 일체의 소행을 말한다.

그리고 불업(佛業)은 한 마디로 권실쌍행(權實雙行)이어야 한다.

권(權)과 실(實), 방편과 진실을 쌍으로 행할 줄 아는 그것이 불업이라 했다.

부처님의 깊은 이치는 하근기의 중생은 쉽게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방편으로써 처음에는 옅은 이치의 차별법(差別法), 즉 중⋅하 근기에게 설한 가르침을 권교(權敎)이라 하는데, 소승교를 가리신다.

그리고 나중에는 참된 실상(實相)의 둘 아닌 불이법(不二法), 영원히 변함이 없는 구극적(究極的)인 진리법을 설한 가르침을 실교(實敎)이라 하는데, 대승교를 가리킨다. 이렇게 권과 실을 병행해서 행함을 권실쌍행이라 했다.

그리고 세상사와 출세간사를 쌍으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말고 실천하며 살라. 그리하여 여자이면서 남자의 입장을 이해하며 살고, 남자이면서 여자의 입장을 이해하며 살고, 출가인이면서 재가인의 입장을 이해하며 살고, 재가인이면서 출가인의 입장을 이해하며 살고, 어디에도 매이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또한 권실쌍행이고, 이것이 곧 불업(佛業)의 참모습이라고 했다.ㅡ아미산

 

心得自在(심득자재) 等三世佛(등삼세불) 趣佛道場(취불도량) 入如來力(입여래력)

具佛色相(구불색상) 超諸世間(초제세간) 不樂生天(불락생천) 不貪富樂(불탐부락)

不着諸行(불착제행) 一切善根(일체선근) 悉以廻向(실이회향) 爲諸衆生功德之藏(위제중생공덕지장) 

마음이 삼세의 부처님들과 같이 자재하여, 부처님의 불도량(佛道場)에 나아가며 

여래력(如來力)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불색상(佛色相, 상호)을 갖추었으니 

모든 세간을 초월하며, 천상에 태어나기를 좋아하지 않고, 부락(富樂, 부귀의 낙)을 탐하지 않으며

모든 행에 집착하지 않으며, 일체의 선근으로 모두 회향하여서 모든 중생들을 위한 공덕의 창고가 되며, 

ㅡ중생, 즉 남을 위해서 회향하는 것이 중생들의 공덕의 창고가 되는 것이지,

‘내가 선행을 하고 내가 선근을 닦고, 내가 복을 지어서 내가 갖는다면, 그것은 중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住究竟道(주구경도) 普覆一切(보부일체) 於虛妄道中(어허망도중) 拔出衆生(발출중생) 

令其安住一切善法(영기안주일체선법) 遍諸境界(편제경계) 無斷無盡(무단무진) 

開一切智菩提之門(개일체지보리지문) 建立智幢(건립지당) 嚴淨大道(엄정대도) 

普能示現一切世間(보능시현일체제간) 令除垢染(영제구염) 心善調伏(심선조복)

生如來家(생여래가) 淨佛種性(정불종성) 功德具足(공덕 구족) 作大福田(작대복전) 

爲世所依(위세소의) 安立衆生(안립중생) 咸令淸淨(함령청정) 常勤修習一切善根(상근수습일체선근) 

구경도(究竟道, 궁극의 경지인 도)에 머물러 일체를 두루 감싸 덮으며 

허망(虛妄)한 도(道) 가운데에서 중생들을 구해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일체의 모든 선한 법에 안주하게 하며

모든 경계에 두루하여 끊임도 없고 다함도 없으며,  

일체지(一切智)와 보리(菩提)의 문을 열고 지당(智幢, 지혜의 깃대)를 세워서 대도(大道)를 깨끗하게 장엄하며,

능히 일체세간에 널리 시현(示現)하여 나타내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구염(垢染, 더러운 때)를 씻어 버리게 하며

마음을 잘 조복하여 여래가(如來家)에 태어나 부처의 불종성(佛種性)을 청정하게 하며,  

공덕을 구족하여 대복전(大福田)을 지어서 세간의 의지처가 되어 중생들을 안립(安立)하여 바로 세우고 

그 모두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고자 일체의 모든 선근들을 항상 힘써 수습합니다.

ㅡ보살이 위와 같이 닦은 31 가지의 무한한 복전(福田)의 선근 회향이 일체 중생의 공덕장이 됨을 밝힌 분.

 

가사(袈裟)는 산스크리트어 카샤야(Kāṣāya)에서 유래했으며, 본래는 '부정한 색', '탁한 색', '단색(壞色)'을 의미합니다. ​

승려가 가사(장삼) 위에 걸쳐 입는 법복(法衣)으로, 출가와 수행자의 무소유 정신을 상징합니다. ​ 

가사를 만드는 재료를 의체(衣體)·의재(衣財)라 하며, 대체로 사람이 버린 옷 또는 죽은 사람의 옷 등 낡은 옷을 조각조각 벤 뒤, 백팔번뇌(百八煩惱)의 의미를 본떠서 108개의 천 조각을 모아 꿰매어 만듭니다.

 

가사의 종류에는 승가리(僧伽梨)·울다라승(鬱多羅僧)·안타회(安陀會)의 삼의(三衣)가 있으며,  

승가리(僧伽梨)는 산스크리트 saṃghāṭi의 음역으로 대의(大衣)·잡쇄의(雜碎衣)·고승의(高勝衣)·중의(重衣)라고도 하며, 탁발이나 왕궁에 출입할 때 입는 정장으로, 9~25개의 천 조각을 붙여 만들기 때문에 구조의(九條衣)라고도 하고, 
울다라승(鬱多羅僧)은 산스크리트 uttãrasanga의 음역으로 상의(上衣)·중가의(中價衣)·팔중의(八衆衣)라고도 하며, 예배(禮拜)·청강(聽講)·포살(布薩)을 할 때 입으며, 7개의 천 조각으로 만들기 때문에 칠조의(七條衣)라고도 하고, 
안타회(安陀會)는 산스크리트 antarvāsa의 음역으로 중의(中衣)·중숙의(中宿衣)·내의(內衣)라고도 하며, 일상적인 일을 할 때나 잠을 잘 때 입는 것으로, 5개의 천 조각으로 만들기 때문에 오조의(五條衣)라고도 합니다.

무더운 인도지방에서는 가사만을 입었기 때문에 의(衣)라 하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일본에서는 장삼(衣)을 입고 그 위에 가사를 걸쳤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의 의(衣)와는 구별됩니다.

스님들이 가사를 수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는데, 
왼쪽 어깨를 덮고 오른쪽 겨드랑이로 둘러매는 전통적인 편단우견(偏袒右肩) 방식과 양 어깨를 덮는 통견(通肩) 방식이지만, 근세 들어 전통의 대가사 이 외에도 어깨만 띠로 연결하는 반가사,낙자(絡子)라 부르는 띠 가사 등으로 착용법이 다양해졌습니다.

 

대가사는 평범한 직사각형 천이지만, 조계종 등 일부 종단에서는 법계에 따라 조각 수가 다른 가사를 수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대종사와 명사는 25조, 종사와 명덕은 21조, 종덕과 현덕은 19조, 대덕과 혜덕은 15조, 중덕·정덕은 9조, 견덕·계덕은 7조각입니다.
멀쩡한 천을 여러 조각으로 자른 다음 다시 꿰매어 가사를 만드니 ‘이게 뭐야?’ 하시겠지만 전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함경(Agama, 불교의 초기경전)에서 아난 존자와 왕비의 대화에서, 
“스님들은 가사가 낡아서 입기 어려우면 어떻게 합니까?”
“잘 수선하여 입습니다.”
“도저히 수선하기 어렵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깨끗이 빨아서 행주로 사용합니다.”
“행주로 사용하기도 어려우면 어떻게 합니까?”
“깨끗이 빨아서 걸레로 사용합니다.”
“걸레로 사용하기도 어려우면 어떻게 합니까?”
“잘게 잘라서 흙과 섞어서 벽을 바르는 데 사용합니다.”
이와 같이 철저하게 검소한 정신을 실천한 불교는 친환경적 종교입니다.ㅡ 여러분들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八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六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11

 

爲聞法故施其身(위문법고시기신修諸苦行求菩提(수제고행구보리

復爲衆生捨一切(부위중생사일체求無上智不退轉(구무상지불퇴전

법문을 듣기 위하여 몸을 바치고 모든 고행을 닦으면서 보리를 구하여서

다시 중생들을 위하여 모두 버리고 최상의 지혜 구함에 물러서지 않는도다.

 

以於佛所聞正法(이어불소문정법) 自捨其身充給侍(자사기신충급시) 

爲欲普救諸群生(위욕보구제군생) 發生無量歡喜心(발생무량환희심) 

부처님의 처소에서 바른 정법을 듣기 위하여 그 몸을 보시하여 시중을 들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서는 무량한 환희심을 내는도다.

 

彼見世尊大導師(피견세존대도사) 能以慈心廣饒益(능이자심광요익) 

是時踊躍生歡喜(시시용약생환희) 聽受如來深法味(청수여래심법미) 

그들이 대도사(大導師) 세존께서 자비심으로 능히 중생들을 널리 이익하게 하시는 것을 보고는

뛸듯이 기뻐하면서 환히하면서 여래의 깊은 법문을 청수(聽受)하여 듣고 받아들이는도다.

 

菩薩所有諸善根(보살소유제선근) 悉以廻向諸衆生(실이회향제중생) 

普皆救護無有餘(개능구호무유여) 永使解脫常安樂(영사해탈상안락) 

보살은 소유한 바의 모든 선근들로서 중생들에게 모두 회향하여서

남김없이 그 모두를 구호하여 해탈하게 하여서 영원히 안락하게 하는도다.

 

菩薩所有諸眷屬(보살소유제권속) 色相端嚴能辯慧(색상단엄능변혜) 

華鬘衣服及塗香(화만의복급도향) 種種莊嚴皆具足(종종장엄개구족) 

보살의 여러 권속들은 색상(色相, 모습)이 단정하고 지혜로운 변재(辯才)와

화만과 좋은 의복고 여러 가지의 도향(塗香, 바르는 향)으로 갖가지의 모든 장엄을 구족하였도다.

 

此諸眷屬甚希有(차제권속심희유) 菩薩一切皆能施(보살일체개능시) 

專求正覺度群生(전구정각도군생) 如是之心無暫捨(여시지심무잠사)

이러한 모든 권속들이 모두 희유하거늘, 보살은 이러한 모두를 보시하여

오로지 정각을 구하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잠시도 버리지 않는도다.

 

菩薩如是諦思惟(보살여시제사유) 備行種種廣大業(비행종종광대업) 

悉以廻向諸含識(실이회향제함식) 而不生於取着心(이불생어취착심)

보살은 이와 같이 제사유(諦思惟)하여 살펴서 생각하여, 갖가지의 광대업(廣大業)을 갖추어 행하여,

그 모두를 함식(含識, 중생)들에게 회향하지만 취하거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도다.

ㅡ업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는 모든 것은 전부 업이라서, 부처는 불업이 있고 보살은 보살업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업이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업이 있는 것으로 '업'이라는 말 자체에는 선악이 없지만, 무엇을 하는가에 따른 뿐인 것입니다. 

 

菩薩捨彼大王位(보살사피대왕위) 及以國土諸城邑(급이국토제성읍) 

宮殿樓閣與園林(궁전누각여원림) 僮僕侍衛皆無悋(동복시위개무린) 

보살이 대왕위(大王位)와 국토와 모든 성읍(城邑)과 궁전(宮殿), 누각(樓閣)과 함께
원림(園林)과 동복(僮僕)과 시위(侍衛) 모두를 무린(無悋, 아까워하지 않음)하게 보시(捨)하는 도다.

 

彼於無量百千劫(피어무량백천겁) 處處周行而施與(처처주행이시여) 

因以敎導諸群生(인위교도제군생) 悉使超昇無上岸(실사초승무상안) 

 무량한 백천(百天, 일만)의 겁 동안 처처(處處, 곳곳)를 다니면서 보시를 베풀고

모든 중생들을 가르쳐서 인도하여서 위없는 무상안(無上岸, 무상의 언덕)에 뛰어 오르게 하는도다.

 

無量品類各差別(무량품류각차별) 十方世界來萃止(시방세계래췌지) 

菩薩見已心欣慶(보살견이심흔경) 隨其所乏令滿足(수기소핍영만족) 

무량하게 각각으로 차별한 여러 품류(品類,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의 제취)들이

시방의 세계로부터 모여 올지라도, 보살이 보고서 환희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모자람을 만족하게 하여주는도다.

 

如三世佛所廻向(여삼세불소회향) 菩薩亦修如是業(보살역수여시업) 

調御人尊之所行(조어인존지소행) 悉皆隨學到彼岸(실개수학도피안)

삼세(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들께서 회향하시는 것과 같이 보살 역시도 그러한 업을 모두 닦으며

조어장부(調御丈夫) 인중존(人中尊)께서 행하신 바들을 모두 따라 배워서 피안에 이르는도다.   

 

菩薩觀察一切法(보살관찰일체법) 誰爲能入此法者(수위능입차법자) 

云何爲入何所入(운하위입하소입) 如是布施心無住(여시보시심무주)

보살이 일체법을 관찰하여서, 누가 능히  법에 들어가는 것이며?

어떠한 것이 들어가는 것이며? 어디로 들어가는 것인가?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법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으니)

이와 같이 보시심(布施心)으로 마음은 무주(無住)하여 머물지 않는도다.

(마음은 무주상보시를 행하여 머무는 바가 없고 집착하는 바가 없도다.) 

ㅡ보시와 보살행하는 거듭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집착하지 않아서, 상(相, 생색)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菩薩廻向善巧智(보살회향선교지) 菩薩廻向方便法(보살회향방편법) 

菩薩廻向眞實義(보살회향진실의) 於其法中無所着(어기법중무소착)

보살은 선교지(善巧智, 교묘한 지혜)에 회향하고, 보살은 방편법(方便法)에 회향하며

보살은 참된 이치의 진실의(眞實義)에 회향하지만, 그러한 법에 조금도 집착하지 않는도다.

ㅡ이상회향(離相廻向), 상(相, 생색)을 내지 않아야 되는데,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좋은 일을 해놓고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했다는 상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ㅡ무비스님 

 

心不分別一切業(심불분별일체업) 亦不染着於業果(역불염착어업과) 

知菩提性從緣起(지보리성종연기) 入深法界無違逆(입심법계무위역) 

마음은 일체의 모든 업을 분별하지 않고, 받는 업과(業果)에도 집착하여 물들지 않고

보리성(菩提性, 보리의 성품)이 인연을 쫓아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서

위역(違逆, 거스름)하지 않고 법계에 들어가는도다.

 

不於身中而有業(불어신중이유업) 亦不依止於心住(역불의지어심주) 

智慧了知無業性(지혜요지무업성) 以因緣故業不失(이인연고업불실) 

업(業)은 몸 가운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마음을 의지하여 있는 것도 아니니, 

지혜로서 업에는 성품이 없는 무업성(無業性)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인연으로 업을 잃지 않는도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업과를 받는도다)

ㅡ업은 연기, 인연의 도리로 일어나는 것이라서, 지혜로는 무업성(無業性)이라서,

업의 본성(성품)은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닌, 고정불변한 자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인연고(以因緣故), 인연을 따라 그 업의 과보를 받는다.

 

心不妄取過去法(심불망취과거법) 亦不貪着未來事(역불탐착미래사) 

不於現在有所住(불어현재유소주) 了達三世悉空寂(요달삼세실공적) 

지나간 과거의 법을 허망하게 취하지 않고, 미래의 일에도 탐착하지 않으며

현재에 머물지도 않나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공적(空寂)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요달하였도다.

ㅡ주련에도 많고, 스님들이 많이 인용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마음이 과거의 법을 망령되게 취하지 않고, 또한 미래사에도 탐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있는 바, 머무는 바에도 있지 않는 것이라서, 삼세가 다 공적함을 요달 하였지만,  

그러나 돌아보니 업의 인연은 여여해서, 결국은 업 놀음으로, 업으로써 이러쿵저러쿵 살아가더라.  

인연의 자성(自性)은 없지만, 전부 인연과 업이고,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이지만 전부가 죄업 때문에 문제가 야기되지만,

이치는 이치대로 분명히 있어서, 업이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사실 또한 분명히 있지만, 

그 본성은 그야말로 텅 비어 없는, 적정한 것이니까 

마음으로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든지 간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미래사에도 탐착할 것도 아니고, 현재에도 머물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菩薩已到色彼岸(보살 이도색피안) 受想行識亦如是(수상행식역여시) 

超出世間生死流(초출세간생사류) 其心謙下常淸淨(기심겸하상청정) 

보살은 이미 색(色)의 피안에 이르렀으며, 수ㆍ상ㆍ행ㆍ식 또한 그러하여서
세간의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났으니, 그 마음은 겸손하여 항상 청정하도다.

 

諦觀五蘊十八界(체관오온십팔계) 十二種處及己身(십이종처급기신) 

於此一一求菩提(어차일일구보리) 體性畢竟不可得(체성필경불가득)

5온(五蘊)과 18계(十八界), 12처(十二處)와 스스로의 몸까지를 체관(諦觀)하여 살피고 관찰하여서 
그 하나하나에서 보리를 구하자 하나, 
그 체성(體性, 성품)은 필경에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한 것이로다.

ㅡ십이처(十二處)에서 처(處)는 들어오는 곳으로  육근(六根) + 육경(六境)
육근(六根) 안, 이, 비, 설, 신, 의=6내처(六內處)  + 육경(六境)ㅡ색, 성, 향, 미, 촉, 법=6외처(六外處)  
6근(六根)은 안이비설신의의  안계(眼界)  이계(耳界) 비계(鼻界) 설계(舌界) 신계(身界) 의계(意界)

육경(六境)은 색계(色界) 성계(聲界)  향계(香界)  미계(味界)  촉계(觸界)  법계(法界) 

 

ㅡ18계(十八界)는 육근(六根) + 육경(六境) + 육식(六識)

육식(六識)은, 안식계(眼識界) 이식계(耳識界) 비식계(鼻識界) 설식계(舌識界) 신식계(身識界) 의식계(意識界)

 

不取諸法常住相(불취제법상주상) 於斷滅相亦不着(어단멸상역불착) 

法性非有亦非無(법성비유역비무) 業理次第終無盡(업리차제종무진) 

제법이 상주(常住)하여 항상하다는 상(相)을 취하지 않고, 

단멸(斷滅)하여 곧 사라지는 것이라는 상(相)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법성(法性, 현상과 성품)은 있지도 않은 것이요 없지도 않은 것이라.

업리(業理, 업의 이치)는 차제(次第, 차례)대로 무진하여 계속 되는 것이로다. 

ㅡ상주(常住)와 단멸(斷滅), 있다(有)와 없다(無)를 떠나서 중도(中道)라는 것 입니다.  

 

不於諸法有所住(불어제법유소주) 不見衆生及菩提(불견중생급보리) 

十方國土三世中(시방국토삼세중) 畢竟求之無可得(필경 구지무가득) 

제법(諸法)이 머물러 있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으며, 중생이나 보리는 보지도 않으며, 

시방 국토의 삼세 가운데에서 끝까지 구하여 찾아도 (실체를) 필경에는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로다

ㅡ우리가 이렇게 번듯이 보고ㆍ듣고ㆍ말하고ㆍ주고ㆍ받고ㆍ시시비비하면서 살고 있지만, 또 어떤 한 면으로는 적멸할 뿐이고, 그러면서 또한 이렇게 여여하게 실재하지만, 필경에는 그 실체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若能如是觀諸法(약능여시관제법) 則如諸佛之所解(즉여제불지소해) 

雖求其性不可得(수구기성불가득) 菩薩所行亦不虛(보살소행역불허)

만약 이와 같이 제법(나ㆍ너, 산하대지ㆍ산천초목 등 모든 존재)을 능히 관찰할 수 있다면,

곧 부처님께서 이해하신 바와 같을 것이니
비록 그 성품을 구하여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보살의 행을 행하는 바가 헛되지 않도다.ㅡ 중도(中道)

 

菩薩了法從緣有(보살요법종연유) 不違一切所行道(불위일체소행도) 

開示解脫諸業跡(개시해탈제업적) 欲使衆生悉淸淨(욕사중생실청정)

보살은 법이 인연을 따라 있게 되는 것임을 알아, 일체의 행할 바의 소행도(所行道)를 어기지 않고

제업(諸業)의 적(跡, 자취)을 개시(開示)하여  해설하나니, 

(그러한 이치를 열어 보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하게 (훌륭하게)하는도다.

 

是爲智者所行道(시위지자소행도) 一切如來之所說(일체여래지소설)  

隨順思惟入正義(수순사유입정의) 自然覺悟成菩提(자연각요성보리) 

이러함이 지자(智者)가 행하여야 할 바의 소행도(所行道)이라 (중도로 행하는 바이라)

일체의 모든 여래(如來, 깨달으신 분)들께서 말씀하신 바이니

수순하여 사유하여서 정의(正義, 팔정도)에 든다면, 보리를 자연각오(自然覺悟)하여 깨달아 이루리라

 

諸法無生亦無滅(제법무생역무멸) 亦復無來無有去(역부무래무유거)

不於此死而生彼(불어차사이생피) 是人悟解諸佛法(시인오해 제불법) 

제법(諸法)은 무생(無生)이요 또한 멸하지도 않는 무멸(無滅)이요,

역시 오는 것도 아닌 무래(無來)요 감도 없는 무유거(無有去)요,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라면,

그 사람은 제불법(諸佛法)을 오해(悟解)하여 깨달아 이해한 것이로다

 

了達諸法眞實性(요달제법진실성) 而於法性無分別(이어법성무분별)

知法無性無分別(지법무성무분별) 此人善入諸佛智(차인선입제불지) 

제법의 진실성(眞實性)과 법성(法性)에 분별이 없다는 것을 요달하여, 법의 성품에 분별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이러한 이는 모든 부처님의 불지(佛智)에 잘 들어간 것이로다.

 

法性遍在一切處(법성편재일체처) 一切衆生及國土(일체중생급국토) 

三世悉在無有餘(삼세실재무유여) 亦無形相而可得(역무형상이가득) 

법성(法性)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하여 일체의 중생들과 국토와 

삼세에 모두 빠짐없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역시 그 형상(形相)을 얻을 수가 없도다.

ㅡ법성은 일체의 모든 곳(處)과, 일체중생과 모든 국토에 두루 가득 차있지만 법성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닌, 

전부 법성이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전부 '법성'이다. 

‘너도 법성ㆍ나도 법성ㆍ산도 법성ㆍ하늘도 법성ㆍ강물도 법성ㆍ바다도 법성으로 법성 아닌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一切諸佛所覺了(일체제불소각료) 悉皆攝取無有餘(실개섭취무유여) 

雖說三世一切法(수설삼세일체법) 如是等法悉非有(여시등법 실비유) 

일체의 모든 제불들이 소각료(所覺了)하시어 깨달으신 바를

그러한 모두를 남김없이 섭취(攝取)하여, 비록 삼세(三世)의 일체법을 설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법 모두는 있는 것이 아닌 비유(非有)로다.

 

如諸法性遍一切(여제법성편일체) 菩薩廻向亦復然(보살회향 역부연) 

如是廻向諸衆生(여시회향제중생) 常於世間無退轉(상어세간무퇴전)

 

제법의 법성(성품)이 일체에 두루한 것을 알며, 보살의 회향 역시도 그러하다는 것을 아나니

(보살이 선용기심善用其心하여 그 마음 잘 쓰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아나니)

세간에서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에게 항상 회향하면서 물러서지 않는도다. 

 

화엄경(華嚴經) 제28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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