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一 十迴向品第二十五之九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⑨ ㅡ 8
ㅡ제9(第九) 무착무박해탈회향(無着無縛解脫廻向) ㅡ 8
ㅡ실제회향(實際廻向)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廻向(회향)
不分別若世間(불분별약세간) 若世間法(약세간법)
不分別若菩提(불분별약보리) 若菩提薩埵(약보리살타)
不分別若菩薩行(불분별약보살행) 若出離道(약출리도)
不分別若佛(불분별약불) 若一切佛法(약일체불법)
不分別若調伏衆生(불분별약조복중생) 若不調伏衆生(약불조복중생)
不分別若善根(불분별약선근) 若廻向(약회향)
不分別若自若他(불분별약자약타) 不分別若施物(불분별약시물) 若受施者(약수시자)
不分別若菩薩行(불분별약보살행) 若等正覺(약등정각) 不分別若法若智(불분별약법약지)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무착무박해탈심으로 회향하되,
세간(世間)이나 세간법(世間法)을 분별하지 않으며,
보리(菩提)나 보리살타(菩提薩埵)를 분별하지 않으며,
보살행(菩薩行)이나 출리도(出離道)를 분별하지 않으며,
부처님(佛)이나 모든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분별하지 않으며,
중생을 조복시키거나 중생을 조복시키지 않는 것을 분별하지 않으며,
선근(善根)이나 회향(廻向)을 분별하지 않으며,
자기(自己)나 타인(他人)을 분별하지 않으며,
보시하는 시물(施物)이나 보시를 받는 수자(受者)를 분별하지 않으며,
보살행(菩薩行)이나 등정각(等正覺, 깨달음)을 분별하지 않으며
법(法)이나 지(智, 지혜)를 분별하지 않습니다.(법과 지혜는 하나입니다)
ㅡ보살행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이미 정각을 이룬 사람으로,
그래서 깨달음이 하나의 원인이 되고 보살행을 하는 것이 결과가 되는 것으로,
보살행을 위해서 깨닫고, 깨달으면 반드시 보살행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ㅡ결문(結門)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彼善根(이제선근) 如是廻向(여시회향)
所謂心無着無縛解脫(소위심무착무박해탈) 身無着無縛解脫(신무착무박해탈)
口無着無縛解脫(구무착무박해탈) 業無着無縛解脫(업무착무박해탈)
報無着無縛解脫(보무착무박해탈) 世間無着無縛解脫(세간무착무박해탈)
佛刹無着無縛解脫(불찰무착무박해탈) 衆生無着無縛解脫(중생무착무박해탈)
法無着無縛解脫(법무착무박해탈) 智無着無縛解脫(지무착무박해탈)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선근으로서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
이른바 심무착(心無着)하여 마음에 집착이 없고 속박되지 않은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신무착(身無着)하여 몸에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구무착(口無着)하여 입이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업무착(業無着)하여 업에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보무착(報無着)하여 과보에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세간무착(世間無着)하여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불찰무착(佛刹無着)하여 부처님 세계에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중생무착(衆生無着)하여 중생에게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법무착(法無着)하여 법에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하며
지무착(智無着)하여 지혜에 집착하지 않는 무박해탈(無縛解脫)을 위하여 회향합니다.
ㅡ이익(利益)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如三世諸佛(여삼세제불) 爲菩薩時(위보살시)
所修廻向(소수회향) 而行廻向(이행회향) 學過去諸佛回向(학과거제불회향)
成未來諸佛廻向(성미래제불회향) 住現在諸佛廻向(주현재제불회향)
安住過去諸佛廻向道(안주과거제불회향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회향할 때,
마치 삼세(三世)의 부처님들께서 보살로 계실 때에 닦으시던 회향과 같이 회향하나니,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의 회향을 배우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회향을 이루고,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의 회향에 머물러서,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의 회향도(廻向道)에 편안하게 안주하며,
不捨未來諸佛廻向(불사미래제불회향도) 隨順現在諸佛廻向(수순현재제불회향도)
勤修過去諸佛敎(근수과거제불교) 成就未來諸佛敎(성취미래제불교) 了知現在諸佛敎(요지현재제불교)
滿足過去諸佛平等(만족과거제불평등) 成就未來諸佛平等(성취미래제불평등)
安住現在諸佛平等(안주현재제불평등) 行過去諸佛境界(행과거제불경계)
住未來諸佛境界(주미래제불경계) 等現在諸佛境界(등현재제불경계)
得三世一切諸佛善根(득삼세일체제불선근) 具三世一切諸佛種性(구삼세일체제불종성)
住三世一切諸佛所行(주삼세일체제불소행) 順三世一切諸佛境界(순삼세일체제불경계)
佛子(불자) 是爲菩薩摩訶薩(시위보살마하살) 第九(제구) 無着無縛解脫心廻向(무착무박해탈심회향)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회향도(廻向道)를 불사(不捨)하여 버리지 않으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의 회향도(廻向道)에 수순(隨順)하여 따르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의 교(敎, 가르침)을 근수(勤修)하여 부지런히 닦으며,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교(敎, 가르침)을 성취하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의 교(敎, 가르침)을 요지(了知)하여 분명하게 알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의 평등을 만족하게 하며,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평등을 성취하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의 평등에 머물러 안주(安住)하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를 행하며,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에 머물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와 동등하게 하며,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 부처님들의 선근을 얻으며,
삼세(三世) 부처님들의 종성(種性)을 갖추며,
삼세(三世) 부처님들께서 행하신 바의 소행(所行)에 머물며,
삼세(三世) 부처님들의 경계에 순종하나니, 불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제구(第九)의 무착무박해탈심(無着無縛解脫心)의 회향(廻向)이라 하느니라.
ㅡ과위(果位)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住此廻向時(주차회향시) 一切金剛輪圍山(일체금강류위산)
所不能壞(소불능괴) 於一切衆生中(어일체중생중) 色相第一(색상제일) 無能及者(무능급자)
悉能摧破諸魔邪業(실능최파제마사업) 普現十方一切世界(보현시방일체세계)
修菩薩行(수보살행) 爲欲開悟一切衆生(위욕개오일체중생) 以善方便(이선방편)
說諸佛法(설제불법) 得大智慧(득대지혜) 於諸佛法(어제불법) 心無迷惑(심무미혹)
在在生處(처처생처) 若行若住(약행약주) 常得値遇不壞眷屬(상득치우불괴권속)
三世諸佛 所說正法(삼세제불 소설정법) 以淸淨念(이청정념) 悉能受持(실능수지)
盡未來劫(진미래겁) 修菩薩行(수보살행) 常不休息(상불휴식) 無所依着(무소의착)
普賢行願(보현행원) 增長具足(증장구족) 得一切智(득일체지) 施作佛事(시작불사)
成就菩薩(성취보살) 自在神通(자재신통)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무착무박해탈심) 회향에 머물 때
일체의 모든 금강륜위산(剛輪圍山)이 무너뜨릴 수 없으며,
일체의 모든 중생들 가운데에서 색상(色相, 물질, 겉 모습)이 제일이라서
무능급자(無能及者)하여 능히 미칠 이가 없으며,
(이 제9의 무박무착 회향에 이르면 이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마사업(魔邪業, 마군의 삿된 업)들을 능이 최파(摧破)하여 모두 파괴하여 부수고
시방으로 일체의 세계에 두루 나타나서 보살행을 닦으며,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개오(開悟)하여 깨우치게 하고자 선방편(善方便)으로
모든 불법(佛法)들을 설하여 대지햬(大智慧)를 얻게 하며,
모든 불법에 데 대한 마음이 무미혹(無迷惑)하여 미혹하지 않으며,
재재(在在, 처처) 생처(生處, 태어나는 곳)에서마다 약행(若行)하여 다니거나, 약주(若住)하여 머뭄에
항상 불괴(不壞)하여 무너지지 않는 (어기지 않는) 권속들을 만나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설하신 바의 정법(正法법)을 청정념(淸淨念, 청정한 생각)으로
능히 모두 수지(受持)하여 받아 지니며,
미래겁(未來劫)이 다하도록 보살행 닦기를 상불유식(常不休息)하여 항상 쉬지 않으며,
무소의착(無所依着)하여 의지하거나 집착하지도 않아서,
보현 보살의 행원(行願)을 증장(增長)하여서 구족(具足)하여서
일체지(一切智)를 얻어서 불사을 시작(施作)하여 베풀며, 보살의 자재(自在)한 신통(神通)을 성취하느니라.
ㅡ과위(果位), 깨달음을 성취하는 지위 또는 불과(佛果) 또는 인위(因位)를 화엄경에서는
52위로서 10신ㆍ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등각ㆍ묘각의 52단계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뚜렷하게 두부 자르듯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있는 가운데 있고 또 있지 않은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교리상으로 圓融門(원융문)ㆍ行布門(항포문)이라 하며,
원융문은 원융한 가운데에서 낱낱으로 나눠져서 차별, 단계, 보살의 계위, 수행의 계위 또는 지위가 있는 것으로,
계단과 지위가 없는 가운데에서 나뉘어 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하나로 융화된 중도적인 안목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버리면 무질서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원융한 가운데에 항포, 차별된 된 것을 잘 분별하여서 그 차별을 지키고 따르면서, 한편으로 원융한 면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큰 절에 대중이 한 100여 명 산다고 하면, 거기에 천차만별의 차별성ㆍ단계성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또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것만을 고집할 수도 없듯이 과위, 지위, 단계라는 것이 원융한 가운데 항포하고, 또 차별한 가운데 원융한, 원융과 차별이 조화를 이루어서 중도의 길을 가는 것을 화엄경에서는 이야기합니다
ㅡ상불유식(常不休息), 살아있는 생명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ㆍ끊임없이 성장하고ㆍ끊임없이 그 생의 활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혼자 있어 보면, 눈은 뭔가 보려 하고,귀는 뭔가를 들으려고 하고, 입은 뭔가를 먹거나 말을 하려 하고,
생각은 그저 움직여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려 하고, 문득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서 움직이는 등 별별 작용을 하는 것이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잠자면서도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 낮에 본 것을 다 끌어들여서 되 뇌이기도 하고, 또 새로운 세계를 연출하기도 하는 이 한 물건의 작용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 삶은 죽어도 쉬지 않게 되어 있는, 그래서 휴식함이 없는 상불유식(常不休息), 생명이 쉬는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ㅡ무비스님
ㅡ금강당(金剛幢) 보살의 게송(偈頌)
爾時(이시) 金剛幢菩薩(금강당보살) 承佛神力(승불신력) 普觀十方(보관시방) 而說頌言(이설송언)
그 때에 금강당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으니,
普於十方無等尊(보어시방무등존) 未曾一起輕慢心(미증일기경만심)
隨其所修功德業(수기소수공덕업) 亦復恭敬生尊重(역부공경생존중)
시방으로 두루 평등할 이가 없는 무등존(無等尊)이시니,
일찍이 한 번도 경만심(輕慢心, 소홀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셨으며,
그 닦으신 바의 공덕과 업을 따라, 존중(尊重)하는 마음을 내어서 공경(恭敬)하는도다.
所修一切諸功德(소수일체제공덕) 不爲自己及他人(불위자기급타인)
恒以最上信解心(항이최상신해심) 利益衆生故廻向(이익중생고회향)
닦은 바의 일체 모든 공덕을 자기(自己)나 타인(他人)을 위하지 않고
언제나 가장 높은 최상(最上)의 신해심(信解心, 믿음과 이해의 마음)으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시고자 회향하시는도다.
未嘗暫起高慢心(미상잠기고만심) 亦復不生下劣意(역부불생하렬의)
如來所有身等業(여래소유신등업) 彼悉請問勤修習(피실청문근수습)
미증잠(未嘗暫, 잠시)에도 고만심(高慢心, 교만한 마음) 일으키지 않고
또한 하열의(下劣意, 낮고 열등한 뜻)도 내지 않으며
여래가 지니진 바의 모든 등업(等業, 신업ㆍ구업ㆍ의업 등)을
모두 청하고 물어서 근수습(勤修習)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히는도다.
ㅡ하열한 마음의 하열심은 고만심보다 못합니다. 둘 다 잘못된 마음이지만, 하열 심이 더욱 못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위대한 진여불성을 모두가 가지고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부처님과 똑 같은 가치와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똑 같은 존중을 받아야할 존재인데, 자기를 비하해서 심지어 자기 생명을 함부로 한다든지 하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ㅡ무비스님의 일화;
옛날에 어떤 선비가 과거 보러 가면서 좁쌀 한말을 부처님께 올리고 갔는데,
과거에 뚝 낙방하고 내려와서는 담뱃대를 가지고 법당 옆을 툭툭 때리면서
“그래 오냐, 내 좁쌀 한말 잘 따먹고 얼굴이 놀놀하게 되어서 앉아 있느냐”고.....
담뱃대를 그냥 휘저으면서 부처님을 그렇게 꾸중을 했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 듣고는 얼마나 우스웠는지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