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⑧ ㅡ 13

 

ㅡ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 ㅡ7

 

ㅡ금강당(金剛幢) 보살의 게송(偈頌)

爾時에 金剛幢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이 때에 금강당 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다.

 

菩薩志樂常安住(보살지요상안주) 正念堅固離癡惑(정념견고이치혹) 

其心善軟恒淸凉(기심선연항청량) 積集無邊功德行(적집무변공덕행) 

보살은 지락(志樂, 세운 뜻의 즐거움)에 항상 안주(安住)하며,   

정념(正念)이 견고하여 어리석음의 치혹(癡惑)을 여의었으며

그 마음이 선유(善軟)하여 매우 부드럽고 항상 청량하여서,  

무변한 공덕의 행을 적집(積集)하여 쌓아 모으는도다.

ㅡ정념(正念) 그 자체가 어리석음과 미혹을 떠난 것으로, 어리석고 미혹한 것은 정념이 안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菩薩謙順無違逆(보살겸순무위역) 所有志願悉淸淨(소유지원실청정) 

已得智慧大光明(이득지혜대광명) 善能照了一切業(선능조요일체업)

보살이 겸손하여서 무위역(無違逆)하여 어기지 않으며,

그 가진 바의 지원(志願, 뜻과 소원)은 항상 청정하며, 
지혜의 대광명(大光明)을 이미 얻어서,

능히 일체의 모든 업(業)들을 조료(照了)하여 비추어 아는도다.

 

菩薩思惟業廣大(보살사유업광대) 種種差別甚希有(종종차별심희유) 

決意修行無退轉(결의수행무퇴전) 以此饒益諸群生(이차요익제군생) 

보살이 생각하는 광대한 업이 가지가지로 차별하여 희유하거늘 ㅡ 업력 난사의(業力 難思議)이니

뜻을 굳게 결의(決意)하여 퇴전(退轉)하지 않고 수행하여서, 

그러함으로서 모든 군생(群生, 중생)들을 요익(饒益)하게 하는도다.  

 

諸業差別無量種(제업차별무량종) 菩薩一切勤修習(보살일체근수습) 

隨順衆生不違意(수순중생불위의) 普令心淨生歡喜(보령심정생환희) 

모든 업들이 무량하게 갖가지로 차별하거늘 

보살은 이러한 일체의 모두를 부지런히 수습(修習, 여기서는 특별히 닦는 것이 아니라 다 안다는 뜻)하여서
중생의 뜻에 불위(不違)하여 어기지 않아서

그 모두로 하여금 마음이 청정하여서 환희하게 하는도다

 

已昇調御人尊地(이승조어인존지) 離諸熱惱心無碍(이제열뇌심무애) 

於法於義悉善知(어법어의실선지) 爲利群生轉勤習(위리군생전근습) 

이미 조어사(調御師)의 인존지(人尊地, 인중존)의 지위에 올라서 

모든 뜨거운 열뇌(熱惱, 번뇌)가 없어서 마음에 장애가 없으며

법의(法義, 법의 이치)를 모두 선지(善知)하여 밝게 잘 알아서 

군생(群生,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힘써 근습(勤習)하여 나아가는도다.  

 

菩薩所修衆善行(보살소수중선행) 無量無數種種別(무량무수종종별) 

於彼一切分別知(어피일체분별지) 爲利群生故廻向(위리군생고회향) 

보살이 닦은 여러 선행들이 무량하고 무수하게 종종별(種種別)하여 갖가지로 차별하나,

그러한 일체의 모두를 분별하여 모두 알아서  

군생(群生,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회향을 하는도다.

 

以妙智慧恒觀察(이묘지혜항관찰)  究竟廣大眞實理(구경광대진실리) 

斷諸有處悉無餘(단제유처실무여) 如彼眞如善廻向(여피진여선회향) 

미묘혜(妙智慧, 미묘한 지혜)로 구경(究竟)에는 광대하고 진실한 이치를 항상 관찰하고

제유처(諸有處, 모든 존재의 문제, 경계) 모두를 남김없이 끊어서

마치 저 진여(眞如)와 같이 잘 회향하는도다. 

 

譬如眞如遍一切(비여진여변일체) 如是普攝諸世間(여시보섭제세간) 

菩薩以此心廻向(보살이차심회향) 悉令衆生無所着(실령중생무소착)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一切)에 두루한 것과 같이 

그와 같이 모든 세간을 보섭(普攝)하여 널리 섭수하여서, 보살은 그러한 마음으로 회향하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무소착(無所着)하여 집착이 없게 하는도다.

 

菩薩願力遍一切(보살원력변일체) 譬如眞如無不在(비여진여무불재) 

若見不見念悉周(약견불견염실주) 悉以功德而廻向(실이공덕이회향) 

보살의 원력(願力)이 일체에 두루한 것을 비유하자면,

마치 진여(眞如)가 무불재(無不在)하여 있지 않은 곳 없는 것과 같으니, 

약견불견(若見不見)하여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모두에 생각이 두루하나니, 

그러한 모든 공덕으로 회향하는도다. 

 

夜中隨住晝亦住(야중수주주역주) 半月一月亦隨住(반월일월역수주) 

若年若劫悉住中(약년약겁실주중) 眞如如是行亦然(진여여시행역연) 

야중수주(夜中隨住)하여 밤에는 밤을 따라 머물고,

주역주(晝亦住)하여 낮에도 낮을 따라 머물고 

반월(半月, 보름)이나 일월(一月, 한달) 역시도 그에 따라 머물며

약년(若年, 여러 해)나 약겁(若劫, 오랜 세월)에도 모두 따라 머무르나니

진여(眞如)의 이와 같은 행(行, 선근회향) 역시도 그러하도다. (진여가 이러함과 같이 선행 또한 그러하도다.)

 

所有三世及刹土(소유삼세급찰토) 一切衆生與諸法(일체중생여제법) 

悉住其中無所住(실주기중무소주) 以如是行而廻向(이여시행이회향) 

모든 삼세(三世)와 찰토(刹土, 세계국토)와 일체의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제법의 그 모든 가운데에서 머물고 있으나 무소주(無所住)하여 머무름없이 머물러서 

이와 같은 머무름이 없는 행으로 회향하는도다

 

譬如眞如本自性(비여진여본자성) 菩薩如是發大心(보살여시발대심) 

眞如所在無不在(진여소재무불재) 以如是行而廻向(이여시행이회향) 

비유하자면, 진여의 본자성(本自性)과 같이 보살은 그러한 대심(大心)을 일으키나니, 

진여(眞如)는 있지 않은 곳이 없는 무불재(無不在)라.   

이와 같이 대심의 무불재(無不在)의 행으로 회향하는도다.

 

譬如眞如本自性(비여진여본자성) 其中未曾有一法(기중미증유일법) 

不得自性是眞性(불득자설시진성) 以如是業而廻向(이여시업이회향) 

비유하자면, 진여의 본자성(本自性)과 같이  

그 안에는 어떠한 하나의 일법(一法)도 있지 않아서 (어떠한 일법도 진여와 다르지 않나니)

고정된 자성(自性)을 얻지 못하는 것이 진성(眞性, 참 성품, 진여)이라,

(얻을 수 있는 고정된 어떤 자성은 진성=진여가 아니니)  

이와 같은 업(얻을 수 없는 자성이 진여라는 것)으로 회향하는도다.

 

如眞如相業亦爾(여진여상업역이) 如眞如性業亦爾(여진여성업역이) 

如眞如性本眞實(여진여성본진실) 業亦如是同眞如(업역여시동진여) 

마치 진여의 상(相)과 같이 업(業)의 상(相) 역시도 그러하고

마치 진여의 성(性, 성품)과 같이  업(業)의 성(性, 성품) 역시도 그러하며

마치 진여의 성본(性本, 성품의 본성)이 진실한 것과 같이  

업(業)의 성본(性本, 성품의 본성) 역시도 그와 같이 진실하도다.

 

譬如眞如無邊際(비여진여무변제) 業亦如是無有邊(업역여시무유변) 

而於其中無縛着(이어기중무박착) 是故此業得淸淨(시고차업득청정)

비유하자면, 진여가 끝이 없는 무변제(無邊際)인 것과 같이

업(業) 역시도 그와 같이 끝이 없는 무변제(無邊際)요,   

그러한 가운데에 속박이나 집착도 없는 무박착(無縛着)이니,

그러한 까닭에 이 업(業)이 청정(空)함을 얻는도다(아는도다)

 

ㅡ업이라고 하는 것을 진여와 같다고 보는 것으로 ‘업, 우리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결국 진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업과는 다른 개념으로, 여기에서의 업이라는 것은 '하는 짓, 행위인데, 진여 없이는 그 짓(행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분 1초의 아무리 작은 행위 하나하나에 진여가 개입되지 않는 행위는 없고, 어느 한 순간에도 진여가 개입되지 않는 시간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如是聰慧眞佛子(여시총혜진불자) 志願堅固不動搖(지원견고부동요) 

以其智力善通達(이기지력선통달) 入於諸佛方便藏(입어제불방편장) 

이와 같이 총혜(聰慧, 지혜가 있고 총명한)한 진불자(眞佛子)는

지원(志願)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으니

지력(智力)으로 잘 통달하여, 모든 부처님들의 방편장(方便藏)에 들어가는도다.

 

覺悟法王眞實法(각오법왕진실법) 於中無着亦無縛(어중무착역무박) 

如是自在心無碍(여시자재심무애) 未曾見有一法起(미증견유일법기) 

법왕의 진실법을 각오(覺悟)하여 깨닫는다면,

그러한 가운데에서 무착(無着)으로 집착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박(無縛)으로 속박도 없어서, 

이와 같이 자재하여 마음에 장애가 없으니, 

일찍이 하나의 일법(一法)도 일어나는 것을 보지 않는도다.

 

如來法身所作業(여래법신소작업) 一切世間如彼相(일체세간여피상) 

說諸法相皆無相(설제법상개무상) 知如是相是知法(지여시상시지법) 

여래의 법신(法身)이 지으시는 업이나 일체의 모든 세간은 마치 그와 같은 상(相)이니,   

(일체의 모든 세간은 전부 여래법신의 상이니)

그러므로 제법(諸法)의 상(相) 모두가 무상(無相)이라 설하나니, (제법이 무상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상(相)을 아는 것이 법(法)을 아는 것이로다.

 

菩薩住是不思議(보살주시불사의) 於中思議不可盡(어중사의불가진) 

入此不可思議處(입차불가사의처) 思與非思皆寂滅(사여비사개적멸) 

보살의 머무는 곳은 부사의라.(보살은 이와 같은 불가사의에 머무르나니)

그러한 가운데에서 사의(思議)하여 헤아림은 다함이 없는 불가진(不可盡)이라, 

그러한 불가사의처(不可思議處)에 들어간다면, 

사(思, 생각하여 헤아림)와 비사(非思, 헤아리지 않음)가 모두 적멸(寂滅)일 뿐이로다.

ㅡ사(思, 생각하여 헤아림)와 비사(非思, 헤아리지 않음)이 모두 적멸(寂滅)한 자리, 모든 것이 끊어진 자리,

아무 생각없이 불가사의한 진여자성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소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은 상당히 편하고 넉넉한 자리라서 이 구절을 선사들이 좋아합니다.ㅡ무비스님

 

如是思惟諸法性(여시사유제법성) 了達一切業差別(요달일체업차별) 

所有我執皆除滅(소유아집개제멸) 住於功德無能動(주어공덕무능동)

이와 같이 법성(法性, 법의 성품)을 사유하여,

일체의 모든 업이 차별(差別)하다는 것을 요달(了達)하여서 

스스로에게 있는 소유(所有, 모든)의 아집(我執)을 모두 제멸(除滅)하여 멸하여서

공덕에 머물러서 무능동(無能動)으로 흔들리지 않는도다.

ㅡ법성의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끊어져서 ‘몰라ㆍ몰라’, ‘오직 모를 뿐입니다.

거기에 맛들인 선사들은 중생제도도 다 귀찮고, 중생 제도나 교화도 자기가 지금 앉아있는 그 자리까지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ㅡ무비스님
 

菩薩一切業果報(보살일체업과보) 悉爲無盡智所印(실위무진지소인) 

如是無盡自性盡(여시무진자성진) 是故無盡方便滅(시고 무진방편멸) 

보살의 모든 업(業)과 과보(果報)는 다함이 없는 무진지(無盡智)의 소인(所印, 인가)한 바이라

(보살의 업과 과보는 지혜에서 나온 것이라서 무진지의 인정을 받은 바이니)

이와 같은 다함이 없는 무진자성(無盡自性)이 다한 것이라(盡),

그러므로 다함이 없는 무진방편(無盡方便)으로 멸(滅)하는도다.

 

菩薩觀心不在外(보살관심불재외) 亦復不得在於內(역부불득재어내) 

知其心性無所有(지기심성무소유) 我法皆離永寂滅(아법개리영적멸)

보살은 마음이 불재외(不在外)하여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 불재내(不在內(역부내)하여 안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관찰하고

그 마음(心)은 성무소유(性無所有)한 것으로, 자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아(我, 나 주관)와 법(法, 객관) 모두를 떠나서 영원히 적멸(寂滅)하도다.  

ㅡ이것은 능엄경의 칠처징심(七處徵心)과 같은 내용으로,

능엄화상에서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마음의 소재를 물으시고, 아난 존자가 일곱 군데에 마음이 있다고 일곱번 답한 것으로 부처님께서 마음은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 常住眞如(상주진여)이며, 性淨明體(성정명체)임을 가리키시고 客塵煩惱(객진번뇌)를 설하여 眞見(진견)으로 이끌어 가는 내용입니다.

① 내재(在內)- 마음이 몸 속에 있다고 함, 방안에 있으면서 먼저 방 안의 것들을 보지 않고 밖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몸 안에 있는 마음이 먼저 몸 속을 보아야 하나 안을 보지 못하므로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② 재외(在外) -마음이 몸 밖에 있다고 함. 한 사람이 밥을 먹음에 여러 사람이 따라 배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지 못하나니 너의 각료능지(覺了能知)하는 마음이 실(實)로 몸 밖에 있다고 하면 밖(外)인 몸(身)과 안(內)인 마음(心)과는 하등의 상관(相關)이 없어 마음의 대상을 몸이 느끼지 못할 것이며, 반면 감각(感覺)이 신제(身際)에 있을진댄 마음이 또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나의 손을 볼 때에 마음이 따라서 작용(分別)하나니 몸과 마음이 서로를 안다면 어찌 마음이 몸 밖에 있다 할 수겠는가?  

③ 잠근(潛根) -눈 속에 있다고 함. 

④ 장암(藏暗) -어두운 몸 속에 있다고 함. 

⑤ 수합(隨合) -합하는 곳을 따라 있다고 함. 

⑥ 중간(中間) -근(根)과 진(塵)의 중간에 있다고 함. 

⑦ 무착(無着) -안 밖, 중간 어디에고 있지 않다고 함. 

 

彼諸佛子如是知(피제불자여시지) 一切法性常空寂(일체법성상공적) 

無有一法能造作(무유일법능조작) 同於諸佛悟無我(동어제불오무아) 

일체의 모든 법성(法性)이 항상 공적(空寂)하여서 지을 수 있는 법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저 모든 불자들이 이와 같이 안다면 모든 부처님들과 같은 무아(無我)를 깨달으리라.

 

了知一切諸世間(요지일체제세간) 悉與眞如性相等(실여진여성상등) 

見是不可思議相(견시불가사의상) 是則能知無相法(시즉능지무상법) 

일체 세간의 모든 성상(性相, 성품과 상)이 진여(眞如)와 더불어 동등하다는 것을 아나니, 

그러한 불가사의한 상(相)을 보게 된다면, 이러한 것이 곧 무상법(無相法)을 아는 것이로다.

 

若能住是甚深法(약능주시심심법) 常樂修行菩薩行(상락수행보살행) 

爲欲利益諸群生(위욕이익제군생) 大誓莊嚴無退轉(대서장엄무퇴전) 

만약 능히 이러한 심심법(甚深法)에 머물 수 있다면, 항상 즐거이 보살행을 수행하여서

제군생(諸群生, 모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려는 대서(大誓, 큰 서원)로 장엄(莊嚴)하여 퇴전하지 않으리라

 

是則超過於世間(시즉초과어세간) 不起生死妄分別(불기생사망분별) 

了達其心如幻化(요달기심여환화) 勤修衆行度群生(근수중생도군생) 

이러한 것이 곧 세간을 초월하는 것이요, 생사의 헛된 망분별(妄分別)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그 마음이 마치 환화(幻化, 헛깨비)와 같다는 것을 분명하게 요달하여 아는 것이니,    

여러 가지의 중행(衆行)을 근수(勤修)하여 군생(群生, 중생)들을 제도하는도다.

 

菩薩正念觀世間(보살정념관세간) 一切皆從業緣得(일체개종업연득) 

爲欲救度修諸行(위욕구도수제행) 普攝三界無遺者(보섭삼계무유자) 遺 남길 유

보살이 정념(正念)으로 세간에서 일체의 모든 것들이

종업연(從業緣)하여 업의 연으로 인하여 얻어진다는 것을 관찰하고

구호하고 제도하고자 모든 제행(諸行)을 닦아서, 삼계에서 남김없이 보섭(普攝)하여 널리 섭수하는도다.

 

了知衆生種種異(요지중생종종이) 悉是想行所分別(실시상행소분별) 

於此觀察悉明了(어차관찰실명료) 而不壞於諸法性(이불괴어제법성)

중생들이 종종이(種種異)하여, 갖가지로 다른 것은  

모두가 상행(想行, 생각과 행)으로 분별하는 바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서

이러함을 관찰하여 모두에 밝게 명료(明了)하나, 

모든 법의 법성(法性)을 불괴(不壞)하여 파괴하지 않는도다.

ㅡ상(想)과 행(行)은 마음의 작용으로, 마음이 가만히 있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으로 나아가서 생각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TV를 틀든지ㆍ책을 보든지ㆍ염불을 하든지 등등 6근으로 작용을 하는 것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일종의 작용입니다. 

눈은 뭔가 보려고 하고, 귀는 뭔가 들으려고 하고, 코는 뭔가를 감지하려고 하고, 말은 입은 혀는 뭔가 먹으려고 하고, 숨 쉬려고 하고 또 대화하려고 하고, 어쨌든 가만히 안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앉아 있는데 화두가 여러 수 100번 드는 겁니다. 놓쳤다ㆍ들었다, 놓쳤다ㆍ들었다, 놓쳤다ㆍ들었다.

그렇게 되는 그것이 사람의 본래 생김새입니다. 

상(想)의 행(行) 또는 상(想)과 행(行)은 마음의 행. 생각의 행, 생각의 움직임인 것입니다.

육창원후(六窓猿猴), 원숭이를 구멍이 6개가 있는 상자 안에 넣어놓고 부르면 부르는 방향을 따라 원숭이가 얼굴을 내민다는 비유가 아주 적절한 것입니다. 금강경의 應無所住(응무소주) 절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而生其心(이생기심) 그 마음이 날뛰는, 사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어서 제어하기 어렵지만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자꾸 공부하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ㅡ결(結)

智者了知諸佛法(지자요지제불법) 以如是行而廻向(이여시행이회향) 

哀愍一切諸衆生(애민일체제중생) 令於實法正思惟(영어실법정사유)

지혜로눈 지자(智者)는 제불법(諸佛法)을 모두 요지(了知)하여 분명하게 알아서,  

이와 같은 행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애민(哀愍)하게 여겨서 실법(實法)을 정사유(正思惟)하는도다. 

ㅡ중생의 지혜가 바로 부처의 지혜이며(以衆生智是佛智)
부처의 지혜가 바로 중생의 지혜이니(佛智本是衆生智)
미혹한 자는 부처의 지혜가 중생을 짓고(迷者佛智作衆生)
깨달은 자는 중생이 바로 부처의 지혜이네.(悟者衆生是佛智)

이와 같이 체(體)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요달하면(如是了達體同別)
중생과 더불어 의지(依止)를 지음을 감당하리라.(堪與衆生作依止)

 

화엄경(華嚴經) 제30권을 마침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2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6) 십지품(十地品)① ㅡ3


1. 환희지(歡喜地)① ㅡ3

 

또한 10회향의 광대하고 무한한 비원(悲願)으로 회통하고 융화하여서 행(行)을 광대하게 하여서 법계의 지용(智用)에 부합하면서도 무작자(無作者)이고, 행을 갖추었으나 의지하는 자가 없는 무의자(無依者)로서 바로 보현행을 갖추고 있으나,

세상의 선비는 크게 미혹되어서 성취하기 쉽고 공덕이 넓은 것은 믿지 않고,

다겁 동안 굴곡된 수행(복잡하고 잘못된 수행)으로 없애거나 고칠 수 없고 성취하기 어려우며, 공덕이 낮은 것에 오히려 그 정(情)을 두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생(多生) 끝에 다시 이 가르침으로 반드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전에서 약간의 소신락(少信樂)을 일으키게 되어도 무진하고 광대한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니,

이는 마치 '수호광명공덕품(隨好光明功德品)'에서 설한 것과 같이, 대략 여섯 가지의 육문(六門)이 있다.

 

1. 제일(第一)의 공소획익광다문(功少獲益廣多門)

10신(十信) 중 닦아 나아가는 열 가지의 십종승해력(十種勝解力)을 설한 것이니,

악업을 지어 지옥 속에 떨어진 가운데에서도 신해(信解)의 종자가 있기 때문에

비로자나보살이 도솔천에 거처할 때 그 명칭이 당왕광명(幢王光明)을 놓아서 지옥의 중생을 비추어서 고(苦)를 여의고 천(天)에 태어나게 하여서, 천고(天鼓, 하늘 북)의 설법으로 10지위를 얻어서 이구삼매(離垢三昧)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는 3생(三生)에 과(果)를 얻는 것이니,

3생(三生)이란, 첫째 10승해를 닦는 것이 제1생(生)이며,

둘째 악을 지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제2생이며,

셋째 광명의 비춤을 입고 도솔천에 태어나서 10지의 과를 얻는 것이 제3생인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제1의, 공은 적지만 얻는 이익은 광대하고 많은 제일(第一)의 공소획익광다문(功少獲益廣多門)이다.

 

제2(第二)의 공소익다문(功少益多門),

모든 제천(諸天)들이 과(果)를 얻어서 모공(毛孔)으로 화운(華雲, 꽃구름)을 일으켜서 부처에게 공양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그 향기를 몸에 받게 된다면 일체의 업장(業障)이 모두 녹아서 향당운자재광명청정선근(香幢雲自在光明淸淨善根)을 성취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공은 적어도 이익은 많은 이다.

 

제3(第三)의 공소익다문(功少益多門), 

만약 어떤 중생이 그 개(蓋, 번뇌)를 보는 자라면, 청정한 금망(金網)의 전륜왕 지위를 심게 되어서 1항하사의 선근을 얻나니,

이 전륜왕의 지위가 백천억 나유타 불찰미진수 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은 적어도 이익이 많은 제3(第三)의 공소익다문(三功少益多門)이다.


제사(第四)의 공소익다문(功少益多門), 

이 같은 청정한 금망의 전륜왕 지위가 마니계(摩尼界)의 청정한 광명을 놓아서,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된다면 모두가 보살의 제10지위를 얻고 무량한 지혜 광명을 성취하여서

열 가지의 청정안(淸淨眼)과 나아가 열 가지의  청정의(淸淨意, 청정한 뜻) 등을 얻게 되나니,

이것이 바로 공은 적어도 이익은 많은 제사(第四)의 공소익다문(三功少益多門)이다.


제오(第五)의 공소획익광다문(功少獲益廣多門), 

경문에서 말하기를, “불자야, 가령 어떤 사람이 억나유타 불찰을 부수어 미진(微塵)으로 만들어서 하나의 티끌을 하나의 불찰로 삼고, 이와 같은 등의 미진수 불찰들을 다시 부수어 미진으로 만들어서 이러한 미진들을 모두 오른손에 놓고 동쪽으로 가져가면서 미진수 세계를 지나면서 하나의 티끌을 하나의 세계에 내리고, 이런 식으로 동쪽으로 가면서 이 미진을 다하고

남쪽ㆍ서쪽ㆍ북쪽과 사유(四維)와 상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한다며, 이처럼 시방에 있는 세계의 미진을 붙인 것과 붙이지 않은 것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불국토를 이룰지라도, 어떤 중생이 이 비유를 듣고 능히 신해(信解)를 낸다면, 반드시 알라.

이러한 것이 더욱 드물고 기특한 희유기득(希有奇特)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보수(寶手)야, 그러하느니라. 네가 설한 바와 같이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이 비유를 듣고 믿음을 내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결단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반드시 여래의 위없는 무상지혜(無上智慧)를 얻을 것이라고 수기(授記)할 것이니라.'하고 말씀하셨으니, 이러한 바로 공은 적어도 얻는 이익은 광대하게 많은,

제오(第五)의 공소획익광다문(功少獲益廣多門)이다.

 

제육(第六)의  공소획익광다문(功少獲益廣多門), 

경문에서 말하기를, “보수(寶手)야, 설사 어떤 사람이 천억의 불찰미진수를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이 그러한 광대한 불국토를 부수어 미진으로 만들고, 이 미진을 앞의 비유와 같이 하나하나씩 다 내려놓고, 나아가 이를 모아 1불국토를 성취한 것을 다시 부수어 티끌로 만들어서, 이와 같은 순서를 반복해서 80반(八十返, 80회)에 이를지라도,

일체의 광대한 불국토에 있는 미진수 보살이 업보(業報)가 청정한 육안(肉眼)으로 일념(한 순간)에 능히 모두를 밝게 보고, 또한 백억의 광대한 불찰미진수 부처를 보는 것을 파리(頗梨)로 만든 거울의 청정한 빛이 10불찰미진수의 세계를 비추는 것과 같으니,

보수야, 이러한 것 모두가 청정금망전륜왕(淸淨金網轉輪王)의 깊고 깊은 삼매의 복덕 선근으로 성취한 것이니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공은 적어도 얻는 이익이 광대하게 많은 제육(第六)의  공소획익광다문(功少獲益廣多門)이다.

 

이와 같이 이 화엄경의 법문이 광대하고 무한한 것이니,

일념(一念, 한 생각) 사이에 신해(信解)하는 마음이 무한한 그 마음의 청정함이 무한하고,

모든 부처에게 공양하여 일체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그 마음이 무한하며,

일념(一念, 한 생각)에 상응하면서 무한하고 광대한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으로서 문득 근본지(根本智)를 삼기 때문에, 

그 일으킨 바의 선근 모두가 광대하고 무한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지혜가 무의(無依)하여 의지함이 없고 법계와 동등하기 때문에 지은 바의 선근 역시도 법계와 동등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념(一念, 한 생각) 사이에 법을 들어서 문득 광대한 이익을 얻게 되는 것 모두는 이 교문(敎門, 가르침)에서 신락(信樂)의 종자를 내기 때문이니, 대강은 본 대로이지만,

여래가 태(胎)에 처해서 사바의 예토에 현생하는 출생과 멸도(滅度)하는 부처라는 것은 이해력이 낮은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시설한 가르침이니, 바로 3승(三乘)의 가르침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전에서는 “이해력이 낮은 중생을 위하여 모태(母胎)로 부터 태어나고

상근기의 중생을 위하여 연꽃에 화생(化生)한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화엄의 교문(가르침)은 바로 법계 보광명대지(寶光明大智)의 보불(報佛)이 설한 것이지

예토에 출생하고 멸도하는 몸이 아니기 때문에 상상(上上) 근기를 위하여 설한 것이다.

 

3승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는 비록 교문(가르침)을 인도하여 3승의 법상(法相)의 행위(行位)를 회통한다 할지라도 심상(心想)이 넓지 못해서 가르침에 부합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가르침을 3승의 3기(三祈)의 가르침과 같이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권(權, 방편)을 돌이켜서 실제(實)로 나아가야만 비로소 성심(聖心)에 계합할 것이니,

어찌 실제(實)을 돌이켜 권(權, 방편)으로 나아가서 오히려 성인의 교설을 훼손할 것인가?

이는 승진을 어기고 미혹되는 것이니 어찌 성불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설사 백만억의 3대(大) 아승기를 이롭게 한다 할지라도 끝내 성지(聖旨)를 어기는 것이나,  

3승의 가르침에도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가르침이 있지만, 다만 배우는 자가 능히 요달해 권(權, 방편)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 부처가 위없는 정전(正詮)을 열었지만 미혹된 자가 오히려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금강반야에서 “이 경전은 대승자(大乘者)를 위하여 설하는 것이고, 최상승자(最上乘者)를 위해 설한다”고 햐였으니,

곧 3승의 권교가 대승인 것이며, 최상승이란 것은 1승(一乘)의 가르침인 것이다.

 

'법화경(法華經)'은 3승을 돌이켜 1승으로 향하게 하는 가르침이니, 용녀를 들어서 법계의 실다운 이지(理智)의 때(時)가 없음을 드러내어 1찰나에 3생의 성불을 보인 것은, 3승(三乘)이 겁(劫)에 집착하는 정진(情塵)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나, 오히려 화현(化現)이라고 칭하면서 3승 3기(三祇)의 겁에 나아가 진(眞)을 삼으니, 이는 다만 정(情)이 다생(多生)에 가리워진 것이다.

마치 파리(頗梨)로 만든 묘보경(妙寶鏡)을 거슬려서 구리거울이나 무쇠거울의 밝음과 같다고 돌려버리는 것과 같으며,

염부단(閻浮檀)의 밝고 청정한 진금(眞金)을 기와나 자갈의 가치와 같게 보는 것이니,

이는 보배의 허물이 아니라 보배를 구별하는 자가 공(功)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의 한 단락으로 1승과 3승의 10지(十地)를 다 밝혀 마쳤으니,

수행하는 자는 단지 가르침을 수행하는 것의 지속(遲速, 늦고 빠름)을 가려내어서, 반드시 세정(世情)의 크고 작음과 피아(彼我)의 말을 버리고, 다만 근기에 부합하도록 하라.

 

두 번째의 승진의 단계를 세 가지 문으로 나눈 것 중 두 번째에서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수위진수차제(隨位進修次第)를 설명함에 있어서 10 가지의 문을 세운다.

 

2-1. 십종신(十種信) 중에서 신과성인문(信果成因門, 믿음의 과로 인을 성취하는 문)을 밝힌 것이니,

즉 열 개의 불과(佛果)가 부동지불로서 그 첫머리로 삼고,

문수사리와 각수 등의 10분 보살로서 수행하는 사람을 나타내고,

금색세계 등의 10 가지 색의 세계로는 닦는 바의 수행의 법을 삼은 것이다.

금색(金色)은 법신(法身)을 나타낸 것이며, 그 나머지 아홉의 색은 작용에 따르는 것으로,

10신(十信)은 범부가 유위(有爲)의 마음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색심(色心)으로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 제2회(第二會)의 '보광명전광명각품(普光明殿光明覺品)'에 모인 대중이 이에 해당되며,

선재동자가 문수사리를 보는 것은 신심을 나타내는 신심위(信心位)에서 자기 스스로의 묘혜(妙慧)의 이(理)가 인과의 시종(始終)에 두루 함을 밝힌 것이다.

 

2-2, 믿음으로부터 처음 불과에 오르는 종신창승불지혜문(從信創昇佛果智慧門)이니,

즉 제3의 수미산 정상에 올라가 10주의 지위를 설하는 것에서

10 개의 불과(佛果) 명호의 아래 글자가 같은 월(月)인 것은, 이 지위의 과(果)이며,

법혜 등의 10 분의 보살은 지위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며,

10 개의 세계가 모두 같은 명칭의 화(華)인 것은, 이 지위에 들어가 혜화심(慧華心, 지혜의 꽃)이 열리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선재동자가 묘봉산에서 모든 부처를 억념(憶念)하는 지혜광명문(智慧光明門)을 얻는 것과 같음을 나타낸 것으로,

처음으로 불지혜(佛智慧)에 회통해서 부처의 지혜가 머무는 곳에 머물기 때문에, 이것이 10주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묘봉산이란, 지(止) 중의 묘혜(妙慧)로서, 간(艮)이 되고, 산(山)이 되고, 지(止)가 되고, 문궐(門闕)이 되고,

동몽(童蒙)이, 되고 초명(初明)이 되는 것이니, 수미산에 오르는 자도 이와 같은 것이다.


2-3. 이미 부처의 불혜(佛慧)에 머무는 수행문(修行門)을 밝히는 것이니,

즉 제4회의 야마천궁에서 10행의 법문을 설하는 것이 이에 해당되며,

그 중에 10 개의 불과 명호의 아랫글이 모두 같은 안(眼)인 것은 이 지위에서 수행한 과(果)이며,

공덕림 등 10 분 보살 명호가 모두 같은 임(林)인 것은 수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며,

10 개의 세계 명칭이 모두 혜(慧)인 것은 이 지위 가운데에는 지혜 방편의 법이 있기 때문이다.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낸 것 중에서, 삼안국에서 비구가 숲 아래에서 경행(經行)하는 것을 본 것은 행이 광대해서 감싸 기르는 것이 숲과 같음을 나타낸 것이요,

경행(經行)은 행에 머무름이 없는 무주(無住)를 나타내는 것이며,

3안(眼)이란 지안(智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를 나타낸 것이니,

이 두 지위의 불호(佛號)가 10주에서는 동명의 월(月)이고, 10행에서는 동명의 안(眼)이다.

10회향에서 10 분의 불호(佛號)가 위의 이름과 같은 묘(妙)인 것은 묘용의 지혜가 원만하고,

승진의 공덕이 성숙하여서 묘(妙)함이 그 앞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그 하나하나가 나타내는 바가 있는 것으로, 그저 헛되이 명칭을 시설한 것은 아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⑧ ㅡ 12

 

ㅡ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 ㅡ6

 

ㅡ 체성이 광대함에 대한 비유

譬如眞如(비유진여) 體性廣大(체성관대)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悉能受持(실능수지) 去來今世(거래금세) 廣大佛法(광대불법) 恒不忘失(항불망실) 

勤修一切菩薩諸行(근수일체보살제행) 

譬如眞如(비유진여) 無有間息(무유간식)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爲欲安處一切衆生於大智地(위욕안처일체중생어대지지) 

於一切劫(어일체겁) 無有間息(무유간식) 

譬如眞如(비유진여) 體性寬廣(체성 관광) 遍一切法인(변일체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淨念無碍(정념무애) 普攝一切寬廣法門(보섭일체관광법문) 

譬如眞如(비유진여) 遍攝群品(변섭군품)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證得無量品類之智(증득무량품류지지) 修諸菩薩眞實妙行(수제보살진실묘행) 

譬如眞如(비유진여) 無所取着(무소취착)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一切法에 皆無所取(개무소취) 除滅一切世間取着(제멸일체제간취착) 普令淸淨(보령청정) 

譬如眞如(비유진여) 體性不動(체성 부동)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安住普賢圓滿行願(안주보현원만행원) 畢竟不動(필경부동) 

譬如眞如(비유진여) 是佛境界(시불경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令諸衆生(영제중생) 滿足一切大智境界(만족일체대지경계) 滅煩惱境(멸번뇌경) 悉令淸淨(실령청정)  

譬如眞如(비유진여)  無能制伏(무능제복)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不爲一切衆魔事業(불위일체중마사업) 外道邪論之所制伏(외도사론지소제복) 

譬如眞如(비유진여) 非是可修(비시가수) 非不可修(비불가수)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捨離一切妄想取着(사리일체망상취착) 

於修不修(어수불수) 無所分別(무소분별)

譬如眞如(비유진여) 無有退捨(무유퇴사)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常見諸佛(상견제불)發菩提心(발보리심) 大誓莊嚴(대서장엄) 永無退捨(영무퇴사)하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광대(廣大)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거(去, 과거) 래(來, 미래) 금세(今世, 현재)의 광대한 불법을

능히 모두 수지(受持)하여 항상 망실(忘失)하지 않고 일체의 보살행을 근수(勤修)하여 힘써 닦을 수 있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무유간식(無有間息)하여 중간에 쉬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대지지(大智地)에 안주하게 하고자 

일체의 모든 겁 동안 보살행 닦음에 무유간식(無有間息)하여 쉬지 않으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관광(寬廣)하여 너그럽고 넓어서 일체법에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정념(淨念, 청정한 마음)에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하여서  

너그럽고 넓은 관광법문(寬廣法門)으로서 일체를 널리 섭수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군품(群品, 여러 종류의 중생)들을 편섭(遍攝)하여 두루 섭수하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무량한 품류들의 지혜를 증득(證得)하여,

보살의 진실하고 미묘한 진실묘행(眞實妙行)을 닦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무소취착(無所取着)으로 취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법에 개무소취(皆無所取)하여 일체법에 취하여 집착하지 않아서 

일체 세간의 모든 취작(取着)을 제멸(除滅)하여서, 모든 이들로 하여금 널리 청정(淸淨, 텅비게)하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부동(不動)인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보현의 원만행원(圓滿行願)에 안주하여서 필경(畢竟)에도 부동(不動)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바로 불경계(佛境界)인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의 대지경계(大智境界)를 만족하게 하여서  

그 모두로 하여금 번뇌경(煩惱境, 번뇌의 경계)를 멸하여서 청정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는 무능제복(無能制伏)이라 제압하여 굴복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중마사업(衆魔事業, 마군들의 일)이나 

외도의 사론(邪論, 삿된 논리)로서 제복(制伏)할 수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는 비시가수(非是可修)이라, 닦아서 수습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망상(妄想)과 취착(取着)을 떠나  

수불수(修不修, 닦거나 안 닦거나)에 분별이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는 무유퇴사(無有退捨)하여, 물러나거나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항상 견제불(見諸佛)하여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고,
발보리심(發菩提心)하여서 대서(大誓, 큰 서원)으로 장엄하여서, 영원히 물러나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ㅡ진여는 닦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안 닦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진여자성을 떠나서 어느 누구도 한 순간도 우리는 존재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진여는 선악과도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견성(見性)을 넘어서 용성(用性)하여서 성품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不可須臾離也(불가수유리야) 한 순간도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이니, 

可離非道(가리비도)라. 가히 한 순간이라도 나를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여자성이 아니다.

사실, 자나 깨나 진여자성일일 뿐, 닦고 안 닦고를 떠나있는 것으로,

닦는다는 것은 전부 일체의 망상집착으로 하는 말입니다.

성품을 보아야 된다ㆍ성품을 닦아야 된다는 것은 전부 망상으로 하는 말로서,

우리 모두는 불법과 아무 상관없이 오랜 옛적부터 진여자성을 잘 쓰고 있었고 지금도 잘 쓰고 있습니다.ㅡ무비스님

 

ㅡ보섭일체언음(普攝一切言音)에 진여를 비유함

譬如眞如(비유진여) 普攝一切世間言音(보섭일체세간언음)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能得一切差別言音神通智慧(능득일체차별언음신통지혜) 

普發一切種種言詞(보발일체종종언사) 

譬如眞如(비유진여) 於一切法(어일체법) 無所希求(무소희구)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令諸衆生(영제중생) 乘普賢乘(승보현승) 而得出離(이득출리) 於一切法(어일체법) 無所貪求(무소탐구)하 

譬如眞如(비유진여) 住一切地(주일체지)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 捨世間地(사세간지) 住智慧地(주지혜지) 以普賢行(이보현행) 而自莊嚴(이자장엄) 

譬如眞如(비유진여) 無有斷絶(무유단절)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一切法(어일체법) 得無所畏(득무소외) 隨其類音(수기유음) 處處演說(처처연설) 無有斷絶(무유단절) 

譬如眞如(비유진여) 捨離諸漏(사리제루)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 成就法智(성취법지) 了達於法(요달어법) 

圓滿菩提無漏功德(원만보리무루공덕)

譬如眞如(비유진여) 無有少法(무유소법) 而能壞亂(이능괴란) 令其少分(영기소분) 

非是覺悟(비시각오) 無有少法(무유소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普令開悟一切諸法(보령개오일체제법) 其心無量(기심무량) 遍周法界(변주법계) 

譬如眞如(비유진여) 過去非始(과거비시) 未來非末(미래비말) 現在非異(현재비이)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爲一切衆生(위일체중생) 

新新恒起菩提心願(신신항기보리심원) 普使淸淨(보사청정) 永離生死(영리생사) 

譬如眞如(비유진여) 於三世中(어삼세중) 無所分別(무소분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現在念念(현재념념) 心常覺悟(심상각오) 

過去未來(과거미래) 皆悉淸淨(개실청정) 

譬如眞如(비유진여) 成就一切諸佛菩薩(성취일체제불보살)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發起一切大願方便(발기일체대원방편) 成就諸佛廣大智慧(성취제불광대지혜)

譬如眞如(비유진여) 究竟淸淨(구경청정) 不與(불여) 一切諸煩惱俱(일체제번뇌구)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能滅一切衆生煩惱(능멸일체중생번뇌)하 

圓滿一切淸淨智慧(원만일체청정지혜)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세간의 언음(言音)을 보섭(普攝)하여 두루 섭수하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능히 일체의 차별한 언음에 대한 신통과 지혜를 얻어서

일체의 종종언사(種種言詞)를 널리 구사할 수 있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법에 무소희구(無所希求)하여 구하고자 원하는 바가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보현승(普賢乘, 보현의 수레)를 타고

출리(出離)를 얻어서, 일체법에 무소탐구(無所貪求)하여 탐하여 구하지 않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지(一切地, 모든 땅)에 머무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지(世間地, 세간의 땅)를 버리고 지혜지(智慧地, 지혜의 땅)에 머물면서

보현행으로 자장엄(自莊嚴)하여, 스스로를 장엄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는 무유단절(無有斷絶)하여 단절되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법에 대하여 무소외(無所畏, 두려움 없음)를 얻어서

그 유(類, 품류 종류)에 따른 음(音, 언음)으로 처처(處處, 곳곳)에서 단절되지 않게 연설할 수 있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제루(諸漏, 모든 번뇌)를 사리(捨離)하여 여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법지(法智, 법의 지혜)를 성취하여 

법을 요달(了達)하여서 보리(菩提)의 무루공덕(無漏功德)을 원만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는 어떠한 소법(小法, 작은 법)이라도 능히 괴란(壞亂)하여 부수거나 혼란하게 할 수 없으며, 

어떠한 소분(少分, 작은 부분)일지라도 각오(覺悟, 깨달음)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소법(少法)도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하여금 널리 일체의 모든 법을 깨우치게 하여서

그 마음이 무량하게 법계(法界)에 두루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는 과거에 시작된 것이 아니요,

미래에 끝나는 것도 아니요,

현재에서 달라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보리심원(菩提心願, 보리심의 서원)을 신신항기(新新恒起)하여 항상 새롭게 새롭게 일으켜 

두루 청정하게 하여서 생사를 영원히 여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삼세(三世) 가운데에서 분별함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그 마음이 현재의 념념(念念, 순간순간)마다 항상 깨어있으며,  

과거와 미래에도 모두 청정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의 모든 제불보살(諸佛菩薩)을 성취하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대원(大願)과 방편(方便)을 일으켜서 

모든 부처님들의 광대한 지혜(智慧)를 성취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구경(究竟)에도 청정하여서 일체의 모든 번뇌와 함께하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능히 일체 중생들의 번뇌를 멸하여서 

일체의 모든 청정한 지혜를 원만하게 합니다. 

 

ㅡ위와 같은 회향이 모두 자체성 없고 집착이 없는 진여(眞如)로 회향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진여로서 회향의 체(體)를 삼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서, 

진여가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에 두루 하기에 회향도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에 두루 함을 밝힌 것이다. 

왜냐하면 회향을 방편으로 삼아서 무작(無作)의 진여 속의 대지혜, 대자비, 대다라니문, 대신통도력을 일으켜서,

진여의 작위 없는 대자재(大自在)에 부합하여서 그 작용이 항상 공적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대원과 대비와 대지혜로써 무한하게 회향하지 않고, 다만 무작의 진여에만 의거하여 번뇌만을 청정하게 한다면, 적멸을 즐기는 2승과 육통(六通) 보살의 3승은 단지 일방(一方)의 청정 국토에 태어나서 법계의 참다운 진문(眞門)에 들어가지 않고, 문 밖의 권승(權乘, 방편)에 거처하면서 여전히 초암(草庵)의 지위에 그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반드시 알라. 시방에 가득 한 차별종지(差別種智) 모두가 대원력을 말미암아서 발생하고,

법계에 원만한 행문(行門)이 회향을 빌려서 흥기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르침의 그물을 세워서 인연 있는 자를 제접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는 궤도를 분명히 알아 그 자취를 밟아 나감으로써 배우는 자로 하여금 공(功)을 덜게 하고 잘못되지 않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ㅡ진여상 회향을 통하여 스스로 의(義)와 이익(利益)을 얻음음 밝힌 분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得一切佛刹平等(득일체불찰평등) 普嚴淨一切世界故(보엄정일체세계고) 

得一切衆生平等(등일체중생평등) 普爲轉無碍法輪故(보위전부애법륜고) 

得一切菩薩平等(득일체보살평등) 普出生一切智願故(보출생일체지원고) 

得一切諸佛平等(득일체제불평등) 觀察諸佛 體無二故(관찰제불 체무이고) 

得一切法平等(득일체법평등) 普知諸法 性無易故(보지제법 성무이고)

得一切世間平等(득일체세간평등) 以方便智(이방편지) 善解一切語言道故(선해일체어언도고) 

得一切菩薩行平等(득일체보살행찰평등) 隨種種善根(수종종선근) 盡廻向故(진회향고) 

得一切時平等(득일체시평등) 勤修佛事(근수불사) 於一切時(어일체시) 無斷絶故(무단절고) 

得一切業果平等(득일체업과평등) 於世出世 所有善根(어세출세 소유선근) 

皆無染着(개무염착)하 咸究竟故(함구경고) 

得一切佛自在神通平等(등일체불자재신통평등) 隨順世間(수순세간) 現佛事故(현불사고) 

佛子(불자) 是爲菩薩摩訶薩(시위보살마하살) 第八眞如相廻向(제 8 진여상회향)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는 

일체의 모든 불찰(佛刹, 부처님 세계)의 평등을 얻나니,

널리 일체의 모든 세계를 엄정(嚴淨)하여서 청정하게 장식 하기 때문이요,

일체 중생들의 평등을 얻나니, 널리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의 법륜(法輪)을 굴리기 때문이요,

일체 보살들의 평등을 얻나니, 널리 일체지의 원(願)을 출생시키기 때문이요,

일체 제불(諸佛)의 평등을 얻나니, 모든 부처님들의 체성이 무이(無二)하여 둘이 없음을 관찰하기 때문이요,

알체법의 평등을 얻나니, 모든 제법성(諸法性, 제법의 성품)이 무이(無易)하여 변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요,

일체의 세간 평등을 얻나니, 방편지혜로 일체의 모든 어언도(語言道)를 잘 이해한 때문이요,

일체의 모든 보살행의 평등을 얻나니, 갖가지의 선근을 따라 끝까지 회향하기 때문이요,

일체시(一切時)의 평등을 얻나니, 불사(佛事)을 부지런히 힘써 닦기를

일체시(一切時)에 무단절(無斷絶)하여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요,

일체의 모든 업과(業果)의 평등을 얻나니, 세간이나 출세간의 모든 선근에 무염착(無染着)하여 집착하지 않고

모두를 구경(究竟, 완성)하게 하기 때문이요, 

일체 부처님의 자재신통(自在神通)의 평등을 얻나니, 세간(世間)을 따라 불사(佛事)를 나타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이러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제8(第八)의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입니다.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住此廻向(주차회향) 證得無量淸淨法門(증득무량청정법문) 

能爲如來大師子吼(능위여래대사자후) 自在無畏(자재무외) 

以善方便(이성방편) 敎化成就無量菩薩(교화성취무량보살) 於一切時(어일체시)

未曾休息(미증휴식) 得佛無量圓滿之身(득불무량원만지신) 一身充遍一切世界(일신충변 일체세계) 

得佛無量圓滿音聲(득불무량원만음성) 一音開悟一切衆生(일음개오일체중생) 

得佛無量圓滿之力(득불무량원만지력) 一毛孔中(일모공중) 普能容納一切國土(보능용납일체국토) 

得佛無量圓滿神通(득불무량원만신통) 置諸衆生於一塵中(치제중생어일진중) 

得佛無量圓滿解脫(해탈) 於一衆生身(어일중생신) 示現一切諸佛境界(시현일체제불경계) 

成等正覺(성등정각) 

得佛無量圓滿三昧(득불무량원만삼매) 一三昧中(일삼매중) 普能示現(보능시현)

一切三昧(일체삼매) 得佛無量圓滿辯才(득불무량원만변재) 說一句法(설일구법) 

窮未來際(궁미래제) 而不可盡(이불가진) 悉除一切衆生疑惑(실제일체중생의혹) 

得佛無量圓滿衆生(득불무량원만중생) 具佛十力(구불십력) 盡衆生界(진중생계) 示成正覺(시성정각) 

佛子(불자) 是爲菩薩摩訶薩(시위보살마하살) 以一切善根(이일체선근) 隨順眞如相廻向(수순진여상회향)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회향(廻向)에 머물러, 무량하고 청정한 법문을 증득하고 

여래의 대사자후를 두려움 없이 능히 자재하게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이 좋은 선방편(善方便)으로, 무량하게 많은 보살들을 교화(敎化)하여 성취(成就)하게 하기를, 

일체의 모든 때(時)에 미증휴식(未曾休息)하여, 일찍이 쉬지 않고 하여서, 

부처님의 무량하고 원만하신 몸(身)을 얻어, 일신(一身)이 일체의 모든 세계에 충변(充遍)하여 두루 충만하며, 

부처님의 무량하고 원만하신 음성(音聲)을 얻어서, 일음(一音)으로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개오(開悟)하여 깨우치며,

부처님의 무량하고 원만하신 힘(力)을 얻어서,

하나의 모공(毛孔) 가운데에서 능히 일체의 모든 국토를 용납(容納)하여 담을 수 있으며,

부처님의 무량하고 원만하신 신통(神通)을 얻어서, 모든 중생들을 하나의 티끌 가운데에 놓을 수 있으며,

부처님의 무량하고 원만하신 해탈(解脫)을 얻어서, 일중생신(一衆生身, 한 중생의 몸)에서 일체제불(一切諸佛)의 경계(境界)와 등정각(等正覺)을 이루는 것을 시현(示現)하여 나타내 보이며,  

부처님의 무량하고 원만하신 삼매(三昧)를 얻어서, 하나의 일삼매(一三昧) 가운데에서 능히 일체의 모든 삼매를 시현(示現)하여 나타내 보이며,

부처님의 무량하고 원만하신 변재(辯才)를 얻어서, 일구(一句)의 법(法)으로서 미래제(未來際,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불가진(不可盡)하게 설하여, 일체의 모든 중생들의 의혹을 모두 제거하며,

부처님의 무량하고 원만한 중생(衆生)을 얻어서, 부처님의 십력(十力)을 갖추어서 중생계가 다하도록 시성정각(示成正覺)을 이루어 보이나니 

불자여, 이러한 것이 보살마하살이 일체의 모든 선근(善根)으로서 진여상에 수순하여 회향하는 

수순진여상회향(隨順眞如相廻向)입니다.

ㅡ위와 같이 여래와 똑같은 성도(成道)를 얻음을 밝히면서 이 회향을 마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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