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三十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6

 

ㅡ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 ㅡ1

ㅡ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은 원바라밀(願波羅蜜)을 체(體)로 삼는다.

이 지위는 제8지(第八地)에서 지혜가 두드러지면서 원(願)을 통하여 지업(智業)을 야기하여 대자비를 성취하는 것과 동등하기 때문에 원(願)으로 지혜를 막음을 밝힌 것이다.

지체(智體)가 청정하기 때문에 이로움을 주는 교화의 이화(利化)가 넓지 못하나니, 법을 나타내는 중에서 선재동자가 동방의 정취(正趣)보살을 보는 것이 바로 그 행(行)이다.

동방은 지혜를 나타내고 서방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이니,  태양이 떠서 밝게 비추는 것과 봄의 햇살이 발생하는 것과 청룡의 길상(吉祥)은 지혜를 나타내는 것이며, 해가 져서 혼미하여지는 것과 가을의 서리로 영락하는 것과 백호(白虎)의 살해(殺害)는 지혜로 자비에 들어가서 고통의 흐름인 고류(苦流)에 처해서 중생을 제도하여 이익이 되게 함을 밝힌 것이다.
제8의 원바라밀(願波羅蜜)은 지체(智體)의 성정(性淨, 성품의 청정함)을 막고서 원(願)으로서 자비를 회통하여 보현행을 성취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승진할 때 그 행위(行位)에 따라서 회통하여 보면 알수 있으리라.ㅡ신화엄경론

 

ㅡ보살이 이 진여상 회향의 지위에 들어가매, 스스로 얻은 선근으로 다시 회향을 발원하는 소연(所緣)을 가하여서 지위의 승진을 성취함을 밝힌 분(分)

佛子(불자) 何者(하자) 是菩薩摩訶薩(시보살마하살) 眞如相廻向(진여상회향) 

佛子(불자) 此菩薩摩訶薩 正念明了(정념명료) 其心堅住(기심 견주)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진여상(眞如相) 회향이라 하는 것인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바른 생각의 정념(正念)이 명료(明了)하여서 그 마음이 견고하게 머물러 있으며,

ㅡ정념(正念)은 선정이나, 여기에서는 바른 생각을 정념(正念)이라 합니다. 

명료(明了)는, 명료한 의식이나 지혜에 밝은 것으로,

확고한 선정과 지혜를 나타낸 것은,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을 하려면 사마타와 비파사나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관쌍수(止觀雙修) 지(止)는 사마타의 지관(止觀), 관(觀)은 비파사나의 관관(觀觀)으로, 흔히 지관(止觀)이라 하며, 

정념명료(正念明了)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이고, 지관(止觀)은 거치고 살피는 인과를 따졌을 때 인(因)이고,

거치고 살피는 힘의 결과로서 선정과 지혜로 나올 때, 결과물의 입장에서는 정혜(定慧)가 되고,

인(因)의 입장에서는 지관(止觀)이라고 합니다. 

원각경에 정ㆍ환ㆍ즉, 사마타를 먼저 닦아야 될 사람 또 비파사나를 닦아야 될 사람, 삼마발제를 닦아야 될 사람 등이 그 근기에 따라서 다 다르다고 나와 있습니다ㅡ이하의 설명들은 무비스님의 해석입니다.

 

遠離迷惑(원리미혹) 專意修行(전의수행) 深心不動(심심부동) 成不壞業(성불괴업)

미혹을 멀리 떠나서 전의(專意, 전심)으로 오롯하게 수행하며,

깊은 마음의 심심(深心)이 동요하지 않아서 무너지지 않는 불괴업(不壞業)을 이루었으며,

ㅡ미혹한 마음을 환하게 밝히면 명료한 지혜의 정혜(定慧가 되고,

잡념없이 산란하지 않고 흔들림없이 바른 것이 專意修行(전의수행)하는 선정으로,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혜쌍수가 바로 도의 근원으로, 선정의 힘, 즉 사마타가 깊어야 화두가 끊어지지 않고,

염불도 끊어지지 않는데, 잡념이 많은 사람은 들끓는 번뇌 때문에 자꾸 끊어지는 것입니다.

ㅡ심심(深心), 어떤 반연경계가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으로, 이렇게 깊은 마음이 되기까지의 선행조건으로는 곧은 직심(直心)이 있어야 됩니다. 아주 곧은 직심이 되었을 때 깊은 마음이 될 수 있고, 깊은 마음이 되었을 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넓어지면서 광대심ㆍ방편심이 더욱 넓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ㅡ불괴업(不壞業)이란, 이치ㆍ진리에 계합해서 흔들림이 없는, 요지부동한 상태로서,

경계에 대하여 심심(深心)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불괴업을 이루는 것입니다.

 

趣一切智(취일체지) 終不退轉(종불퇴전) 志求大乘(지구대승) 勇猛無畏(용맹무외)

일체지에 나아감에 퇴전하지 않으며, 두려움없이 용맹하게 대승을 구하며,

ㅡ일체지(一切智)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궁극적인 우리의 목적지가 일체지(一切智), 일체종지를 얻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구해서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악업장이 소멸된 사람만이 물러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정진력이 굳건하고, 완벽하고, 수승함을 말합니다.

천수경의 心無罣碍無罣碍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심무가애무가애무유공포원리전도몽상) 

전도몽상하여서 탐진치가 있는 사람은 욕심이 많으니까

'있는 것을 잃어버릴까, 없는 것을 못 잡을까'하는 공포심으로 떠는 것입니다.

 

植諸德本(식제덕본) 普安世間(보안세간) 生勝善根(생승선근) 修白淨法 

大悲增長(대비증장) 心寶成就(심보성취) 

덕본(德本, 덕의 근본, 자비)을 심어서 (지혜로서) 세간을 두루 안락하게 하며,

수승한 선근을 내어서 선하고 청정한 백정법(白淨法)을 닦으며, (백정법을 닦아서 선정을 얻으며)

대비(大悲)가 증장하여 심보(心寶, 마음의 보배)를 성취하며,

ㅡ심보(心寶, 마음의 보배), 탐 진 치가 있으면 삼매에 들 수가 없고, 

삼매에 들지 못하면 마음의 보배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攝心爲戒(섭심위계)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거두어 잡아 들이는 것을 계(戒)라고 하고,

   因戒生定(인계생정)이라. 그 계율로 인해서 선정이 돋아나고

   因定發慧(인정발혜)라. 그러한 선정으로 인해서 지혜가 돋아난다. 

계정혜 삼학을 닦기 전의 전제조건인 삼점차(三漸次)는

   除其助因(제기조인)ㆍ刳其正性(고기정성)ㆍ 違其現業(위기현업)의 3 가지 조건이 안 되면 신심이 일어나지 않고,

신심이 일어나서 무르익지 않으면 발심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常念諸佛(상념제불) 護持正法(호지정법) 於菩薩道(어보살도) 信樂堅固(신락견고)

成就無量淨妙善根(성취무량정묘선근) 勤修一切功德智慧(근수일체공덕지혜)

爲調御師(위조어사) 生衆善法(생중선법) 以智方便(이지방편) 而爲廻向(이위회향) 

항상 염제불(念諸佛)하여 모든 부처님들을 생각하고 바른 정법을 호지(護持)하여 보호하여 지니며,

보살도에 대한 신락(信樂, 믿음의 즐거움)이 견고하여서 무량하게 청정한 정묘선근(淨妙善根)을 성취하며,

모든 공덕과 지혜를 근수(勤修)하여 부지런히 힘써 닦으며,

조어사(調御師)가 되어서 여러 선한 법의 중선법(衆善法)을 내게 하나니, 

이러한 지혜와 방편으로 회향하는 것입니다.

 

菩薩이 爾時에 慧眼普觀(혜안보관) 所有善根(소유선근) 無量無邊(무량무변) 

其諸善根修習之時(기제선근수습지시) 若求緣(약구연) 若辦具(약판구) 若淨治(약정치)  힘쓸 려

若趣入(약취입) 若專勵(약전려) 若起行(약기행) 若明達(약명달) 若精審(약정심) 若開示(약개시)

보살이 그 때에 혜안(慧眼, 지혜 눈)으로 관찰하니, 있는 바의 선근이 무량하고 무변하며, 

이러한 선근들을 닦아 모을 때,

약구연(若求緣)하여 연(緣, 간접적이고 보조적인 조건)을 구하기도 하였으며, 
약판구(若辦具)하여 도구를 마련하기도 하였으며, 
약정치(若淨治)하여 청정하게 다스렸으며,

약취입(若趣入)하여, 취하여 들어가기도 하였으며,
약전려(若專勵)하여 오롯하게 전력을 다하였으며,

약기행(若起行)하여 행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약명달(若明達)하여, 분명하고 밝게 통달하였으며,

약정심(若精審)하여, 자세하고 세밀하게 살피었으며,
약개시(若開示)하여 열어보였으니,

 

如是一切(여시일체) 有(유) 種種門(종종문) 種種境(종종경) 種種相(종종상)

이러한 일체의 모든 것들에는

종종문(種種門), 갖가지 문(방편문 또는 수행문)과

종종경(種種境), (모든 부처님의 경계나, 법의 경계 등을 따라가는) 갖가지의 경계와 

종종상(種種相), 갖가지로 다른 상과,

ㅡ같은 전단나무라도 불상을 조성하면 부처님이 나오고, 보살상을 조성하면 보살이 나오고, 중생상을 조성하면 중생상이 나오는 것과 같고, 한 그루의 소나무에서 소나무 잎들이 길고 짧고,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고, 한 그루의 사과 나무에서 각각의 사과가 다른 것과 같이, 일상(一相)에서 천차만별하게 다양한 모양이 나오는 것을 종종상(種種相)이라 합니다.

 

種種事(종종사) 

종종사(種種事), 갖가지의 일들과

ㅡ어떤 일에 대해서 물리적이나 심리적인 현상들이 바깥으로 표출되어 나오는 것을 종종사건이라 해서, 사람에 있어서는 인사가 되고, 물건에 있어서는 사물이 됩니다.

 

種種分(종종분) 種種行(종종행) 種種名字(종종명자) 種種分別(종종분별)  

種種出生(종종출생)  種種修習(종종수습) 

종종분(種種分), 갖가지의 분수와, 

종종행(種種行), 갖가지 행 ( 8만4천 가지의 바라밀 행)

종종명자(種種名字), 갖가지의 이름들과

종종분별(種種分別), 갖가지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종종출생(種種出生), 갖가지의 출생과, 

종종수습(種種修習), 갖가지의 수습들이 있지만

 

其中所有一切善根(기중소유일체선근) 悉是趣向十力 乘心之所建立(실시취향십력승 심지소건립) 

皆悉廻向一切種智(개실회향일체종지) 唯一無二(유일무이) 

그러한 모든 선근들은 십력을 취향(趣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건립된 것이며,

그러한 선근들 모두는 일체종지(一切種智)에 회향하는 것이니,

오직 하나요 둘이 없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입니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21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ㅡ제9 무착무박해탈(無着無縛解脫) 회향

 

ㅡ제9 무착무박해탈(無着無縛解脫) 회향은 역바라밀(力波羅蜜)로 체를 삼으며,

선재동자가 본 천신(天神)으로서 이 지위의 행을 나타내고 있다.

거주하는 성(城)의 명칭은 타라발저(墮羅鉢底)이며, 신의 명호는 대천(大天)이다.

 

성의 명칭이 타라발저인 것은 한역하면 유문성(有門城)이며,

이는 이 계(界)의 건곤(乾坤)이라서 건(乾)으로 천문(天門)을 삼고 이후는 차례로 지신(地神)을 보는 것이며, 

이 두 지위로써 10회향위(廻向位)의 지극(智極, 지혜의 극)과 비종(悲終, 자비의 종결)을 융화하여 회통함을 밝힌 것이다.

 

천신은 법공의 묘한 지혜의 극(極)을 나타내는 것이며,

지신(地神)은 대자비의 지극함을 나타낸 것이니,

만물을 후덕하게 실어서 중생을 양육하기 때문에 부모의 지위와 같다는 것을 표상한 것이다.

천신이 무량한 종류의 온갖 보배를 나타내나니, 그 쌓임이 산과 같으며,

지신이 광명을 놓으니 대지가 진동해서 장엄하고 땅이 청정한 찰(刹)이 되어서

일체의 많은 보장(寶藏)이 자연히 솟구침은

천신과 지신이 업을 따라 양육하는 제물(濟物)의 덕이 광대함을 밝힌 것이다.

 

경문에 이르면 밝히겠지만, 법을 나타낸 뜻을 대략 회통함을 거양함으로써 나중에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게하여  교행(敎行)에 미혹하지 않고 수행에 걸리지 않도록 하리라.

법을 나타내는 가운데에서, 지혜가 청정하여 천(天)에 부합한 성품을 밝힌 것은

바로 법재(法財)가 충만하여 공덕의 보배가 출현함이 산과 같다는 것이며,

또 순수청정한 대자비로 만물을 실어 기르는 것은 마치 대지에 수고로움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대지의 체(體)가 본래 정토일 뿐이니, 이것은 오직 지혜와 자비의 청정함이 지극한 때문이니, 곧 불국의 장엄이 청정하다는 것이다.

이는 신지(神智)가 진(眞)에 응하고 덕이 천지에 회통해서 사물을 길러서 구제함을 밝힌 것이며,

또한 천지의 신령(神靈)이 바로 보살인 것으로, 그 지위가 감당하여 다스리는 진속(眞俗)의 행을 기준으로 해서 이 지위의 천신으로 나타낸 것이니, 이는 승진의 이지(理智)가 그윽하고 미묘해서 천령(天靈)과 같이 측량치 못하는 것이며, 신공(神功)의 만유(萬有)가 불작(不作)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첫 번째로, “불자야” 이하 “게송을 설한 이래(說頌已來)”에 이르기까지의 7 단락으로 장과하면, 
1.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무착무박해탈 회향이라 하는 것인가?” 이하 “수순인가(隨順忍可)”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인(因) 가운데에서 선근을 심어서 열 가지의 십종존중(十種尊重)을 냄을 밝힌 분(分)이다.
2. “불자야” 이하 “의지하는 바가 없는 지혜를 내며, 일체 불법의 지혜를 낸다(生無所依智生一切佛法智)”에 이르기까지 이상 15지(紙)의 경문은,

처음으로 열 가지의 십종선근(十種善根)을 닦고 열 가지의 십종존중행(十種尊重行)을 닦아서,

무착무박해탈의 회향으로 보현보살의 미세지경(微細智境, 미세한 지혜 경계)에 들어가는 것을 밝힌 분이다.
3. “불자야” 이하 “법이든 지혜이든 분별치 않는다(不分別若法若智)”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무분별을 얻음의 득무분별(得無別分)을 밝힌 분이다.
4. “불자야” 이하 “제9 무착무박해탈의 회향(無著無縛解脫迴向)”에 이르기까지 15행 반의 경문은,

이 회향을 닦으니 3업(三業)의 무착무박(無着無薄,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음)을 얻어서

3세불(三世佛)의 회향과 같이 자재함을 밝힌 분이다.
5. “보살마하살” 이하 “보살의 자재로운 신통을 성취한다(成就菩薩自在神通)”에 이르기까지 9행의 경문은,

이 회향을 닦아서 불괴(不壞)의 선근을 얻음으로써 태어나는 곳에서 곧바로 부처를 만나 자재로운 신통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6. “이 때 금강당보살”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관찰하고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7. 이하 120행의 게송은 경문에 뜻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으며, 2행이 하나의 게송이다.

 

두 번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으니, 
무엇을 무착무박해탈의 회향이라 하는 것인가?

자체성 없는 이지(理智)가 의지함이 없는 것이 바로 일체에 무착(無着)하는 것이고, 일체에 무박(無縛)한 것이니,

그러므로, 경문에서, “매우 깊고 깊은 미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로 보살행을 닦고

보현의 도(道)에 머물러 문(文, 경문)이나 의(意, 뜻) 모두가 여실한 지혜의 여실지(如實智)이니,

림자 같은 지혜의 영지(影智)와 꿈과 같은 여몽(如夢), 허깨비 같은 여환(如幻), 메아리와 같은 여향(如響),

마술과 같은 여화(如化)요, 마치 허공과 같으며, 나아가 의지하는 바가 없는 무소의(無所依) 등의 지혜를 낳는다”고 한 것이다.

 

경문에서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이 일체의 선근에 대하여 마음으로 존중을 일으킨다(於一切善根心生尊重)”는 것이란,

열 가지의 십종의(十種意)가 무진(無盡)함에 있다는 것이며,

“소위(所謂)”란 것은 진술한 바의 법을 논급(論及)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사를 벗어나는 마음의 출생사심(出生死心)으로 존중을 일으킨다”고 한 것은,

3승 중에서는 분단생사(分段生死)를 벗어나 변역생사(變易生死)를 얻는 것으로,

생사를 싫어하고 적정(寂靜)을 즐겨하기 때문에 변역생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이는 일승(一乘)의 지생신(智生身)으로 찰해에 두루 하면서 근기에 따라서 응현(應現)하면서도

생사성(生死性, 생사의 성품)이 아니며, 

나아가 세간의 법과 같이 하면서도 생사성(生死性, 생사의 성품)이 아닌것보다 못한 것이다.

견도(見道)하여 도를 보는 모든 이들은 응당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

만약 스스로의 과보를 논한다면, 지합(智合)하여 지혜가 합하여지고,

행동(行同)하여 행이 같아져야 비로소 능히 볼 수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이 생사성(生死性, 생사의 성품)을 벗어나야 존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경문에서 “일체 선근을 섭취하여서 마음으로 존중을 내게 된다(於攝取一切善根心生尊重)”는 것은,

선(善)을 섭수(攝收)하는 것이 법계(法戒)이며,

“일체의 선근을 희구하는 데서 마음이 존중을 일으킨다(於希求一切善根心生尊重)”는 것은

10신(十信)의 유루(有漏)가 희구하는 것과 10주(十住) 이후의 무루(無漏)가 희구하는 것 모두에 대하여 마음으로 존중하는 것이며, “모든 과오(過誤)의 업을 참회하는 데서 마음이 존중을 일으킨다(於悔諸過業心生尊重)”는 것은, 

지난 과거의 왕업(往業)을 참회하는 것이니, 이하는 경문의 뜻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인(因)을 존중하기 때문에 과(果)가 더욱 물러나지 않는 것이,

마치 10층의 누각은 그 아래가 튼튼하기 때문에 위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는 것으로,

이상의 한 단락에서 인(因)을 존중하는 존중인(尊重因)을 마친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저 선근에서 모두 존중을 일으켜서 때(時)에 따라 인가(忍可)한다”로부터 “의지함이 없는 지혜를 낳고 일체법의 지혜를 낳는다(生無所依智生一切法智)”에 이르기까지 15지(紙)의 경문은,

3세제불(三世諸佛)의 과덕(果德)과 보현의 과행(果行)이 모든 미세법(微細法)을 성취함을 밝힌 것으로,

이러한 미세법문에서 간략하게 열 가지의 십종미세(十種微細)로 대략으로 나눌것이니, 그 나머지는 모두 이에 의하면 되리라.
1. 불신미세(佛身微細)란,

부처의 불보신(佛報身) 가운데에서, 하나의 일불신(一佛身)이나 하나의 일중생신(一衆生身)에 불가설불가량(不可說不可量, 설명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의 불신이 있는 것과 같으니,  일체의 불신과 일체의 중생신도 모두 그러한 것이다.
2. 불지미세(佛智微細, 부처 지혜의 미세함)란,

하나의 일지혜(一智慧)가운데에서, 불가설하고 불가량하게 허공계에 두루 한 중생들의 즐거움에 따르는 수락법(隨樂法)의 차별함을 모두 아는 차별지(差別知)인 것이다.
3. 부처가 생(生)을 받는 것의 미세함의 불수생미세(佛受生微細)란,

시방으로 있는 일체의 불찰들을 모두 부수어서 티끌로 만들고, 그 하나하나의 티끌에서 일시에 수태(受胎)하고, 일시에 초생(初生, 처음으로 태어남)하고, 일시에 도량에 나아가고, 일시에 법륜을 굴리는 것 등인데, 이와 같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존재들에 맞추어 수류신(隨類身)을 일으켜서 그 각각에 마주하는 대현(對現)함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다.

4. 세간의 일체 중생을 다스림의 섭세일체중생미세(攝世一切衆生微細)란,

일체 불찰의 하나하나의 티끌 가운데에도 보현행을 갖추여서,

하나하나의 중생 앞에 그 유(類, 종류)를 따라 형상을 나타내어서 설법으로 교화하는 것이

저마다 차별하게 달라서 끝없이 겹치면서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5. 국토미세(國土微細)란,

하나하나의 티끌 가운데에서도 무량한 허공과 같은 광대한 국토가 존재하며, 그 하나하나의 국토가 서로 참입(參入)하고 중중무애(重重無礙)하여서, 마치 ‘화장세계해(華藏世界海)’와 같이 서로 걸림 없이 겹겹으로 있는 것이다.

6. 보살중해미세(菩薩衆海微細)란,

위와 같은 불찰의 그 하나하나의 티끌 가운데에 있는 각각의 일일불소(一一佛所)에 마치 허공과 같은 양(量)의 광대한 도량이 있으며, 그 도량에는 보살 대중들이 바다와 같이 충만하나니, 이와 같이 일체 불찰의 티끌 하나하나 속에도 그와 같은 도량과 그와 같은 대중들의 바다가 모두 서로 참입(參入)하고 중중무애(重重無礙)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 마치 빛과 같고 마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7. 보살이 부처를 보는 것의 보살견불미세(菩薩見佛微細)란,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를 따라 모두가 여래를 마치 눈앞에 있는 것과 같이 우러러보며, 각자의 성취 단계에 알맞는 가르침을 듣고 그 단계에 상응하는 몸을 보는 것이다. 
8. 부처 음성의 불음성미세(佛音聲微細)란,

여래의 음성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 불종심출(不從心出)이요,

몸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닌 불종신출(不從身出)인 것이면서도,

항상 시방(十方)에 두루한 끊임없는 소리가 있어, 듣는 자를 따라 모두 듣게 하는 것이다.
9. 시겁미세(時劫微細)란,

3세 불가설겁(不可說劫)의 일체 제불(諸佛)들이 일념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금과 같이 널리 있으며,

바로 지금 현전하는 제불 또한 과거와 미래에 있는 것으로서,

일시와 3세가 겁겁에 참입參入)하고 중중무애(重重無礙)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다.10. 신통도력미세(十神通道力微細)란,

법성이 두루 하기 때문에 지신(智身) 또한 마찬가지로 두루하며, 의지하여 머물지 않는 무의주지(無依住智)로서 색신을 대현(對現)하여 시방으로 메아리와 같이 응하면서도 가고 옴이 없는 무왕래(無往來)이며, 아울러 변화하고 조작하는 마음도 없으니,

지혜가 본원(本願)을 따르는 법이 응당 이와 같으며, 또한 일체의 티끌 속의 경계 역시도 이와 같아서 끝없이 겹쳐진 것이다.

 

이상으로 안립(安立)한 열 가지의 십종법문(十種法文)으로 이 지위에서의 회향법이 대체로 이와 같다는 것을 해석하여서,

이 무착무박회향의 지위에서는 보살이 이와 같이 들어간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나머지 경문은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의(大意)는 작위 없는 무작법신(無作法身)과 머묾이 없는 무주지(無住智)와 10회향의 대원(大願)으로 조화롭게 하여서 대자비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해(行海)를 성취하게 함으로써, 일체의 사량분별의 지용(智用)을 삼게 하며,

일체의 지견(知見)으로 총체적으로 선문(禪門)의 본래부동(本來不動)을 삼게 하며, 이성(理性)의 근본 적정문(寂定門)으로 차별지신(差別智身)과 혜신(慧身)과 변역신(變易身)을 일으키게 하며,

하나의 일모공(一毛孔)으로 일체의 불찰과 중생찰을 안립하여서 그 모두로 하여금 걸림이 없게 하며,

유위와 무위로 일법계(一法界)의 자재로움을 삼게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회향하는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九 十迴向品第二十五之七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7

 

ㅡ제7.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 ㅡ7

 

爾時(이시金剛幢菩薩(금강당보살承佛神力(승불신력普觀十方(보관시방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금강당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여 살펴보고 게송으로 설하였다.

 

菩薩所作諸功德(보살소작제공덕微妙廣大甚深遠(미묘광대심심원

乃至一念而修行(내지일념이수행悉能廻向無邊際(실능회향무변제)

보살이 지으시는 모든 공덕들은 미묘 광대하고 심심원(甚深遠)하여 매우 심오한 것이나, 
일념(一念, 한 순간) 닦아 행하여 그 모두를 무변하게 회향하는도다.

 

菩薩所有資生具(보살소유자생구種種豊盈無限億(종종풍영무한억

香象寶馬以駕車(향상보마이가거衣服珍財悉殊妙(의복진재실수묘

보살이 지닌 모든 자생구(資生具, 생활 도구)들이 갖가지로 풍영(豊盈, 풍부하고 가득함)하여 무량하나니, 
향상(香象, 향기로운 코끼리) 보마(寶馬, 보배로운 말), 가거(駕車, 수레)에

의복과 진재(珍財, 진귀한 재물)들 모두가 수묘(殊妙)하여 뛰어나게 좋은 것들이로다.  

 

或以頭目幷手足(혹이두목병수족或持身肉及骨髓(혹지신육급골수

悉遍十方無量刹(실변시방무량찰普施一切令充遍(보시일체영충변

혹 머리와 함께 눈이나 수족(手足, 손과 발)이나, 혹 그 몸의 신육(身肉, 몸에 붙은 살)과  뼈와 골수를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여서 일체에 널리 두루 보시하여 충만하게 하는도다
.

 

無量劫中所修習(무량겁중소수습一切功德盡廻向(일체공덕진회향

爲欲救度諸群生(위욕구도제군생其心畢竟不退轉(기심필경불퇴전

무량겁(無量劫) 동안에 수습(修習)하여 닦아 익힌 일체의 공덕이 다하도록 회향하나니,
모든 군생(群生,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필경에도 퇴전하지 않는도다.

 

菩薩爲度衆生故(보살위도중생고常修最勝廻向業(상수최승회향업

普令三界得安樂(보령삼계득안락悉使當成無上果(실사당성무상과

보살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최승(最勝)의 회향업(廻向業)을 항상 닦아서
널리 삼계의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여서,

그 모두로 하여금 위없는 무상과(無上果)를 이루게 하는도다.

 

菩薩普興平等願(보살보흥평등원隨其所集淸淨業(수기소집청정업

悉以廻施諸群生(실이회시제군생如是大誓終無捨(여시대서종무사

보살이 평등한 원(願)을 널리 일으키어, 그러함으로 모은 바의 청정업(淸淨業)들 모두를
모든 군생(群生, 중생)들에게 회향하나니, 이와 같은 대서(大誓, 큰 서원)를 끝내 버리지 않는도다. 

 

菩薩願力無限碍(보살원략무한애一切世間咸攝受(일체세간함섭수

如是廻向諸群生(여시회향제군생未曾暫起分別心(미증잠기분별심

보살의 원력(願力)은 막힘이 없고 무한하니, 일체의 모든 세간을 섭수(攝受)하여 거두어들여서
그와 같이 모든 군생(중생)들에게 회향하나, 잠깐도 분별심을 일으킨 적이 없도다

 

普願衆生智明了(보원중생지명료布施持戒悉淸淨(보시지계실청정

精進修行不懈廢(정진수행불해폐如是大誓無休息(여시대서무휴식

널리 중생들의 지혜가 명료(明了)하여 밝게 알게 되고, 보시와 지계가 모두 청정하며, 
정진하고 수행함에 게으르지 않기를 원하는, 이러한 대서(大誓, 큰 서원)를 행함에 쉬지 않는도다. 

 

菩薩廻向到彼岸(보살회향도피안普開淸淨妙法門(보개청정묘법문

智慧同於兩足尊(지혜동어양족존分別實義得究竟(분별실의득구경

보살이 회향으로 피안(彼岸)에 이르러서 청정하고 묘한 청정묘법문(淸淨妙法門)의 문을 널리 열었으며,

지혜는 양족존(兩足尊)과 같아서 실의(實義, 실상의 이치)를 분별하여 구경을 얻었도다.

 

菩薩言詞已通達(보살언사이통달種種智慧亦如是(종종지혜역여시

說法如理無障碍(설법여리무장애而於其中心不着(이어기중심불착)

보살은 언사(言詞)를 이미 모두 통달하였으며, 갖가지의 지혜도 그와 같거든
이치대로 여리(如理)하게 법을 설함에 막힘이 없으니,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도다.

 

常於諸法不作二(사어제법불작이亦復不作於不二(역부불작어불이)

於二不二並皆離(어이불이병개리知其悉是語言道(지기실시어언도

제법을 항상 둘로 나누지 않는 불작이(不作二)이며,

또한 둘로 나누지도 않는 것도 아닌 불작불이(不作不二)라,  
둘(二)과 둘이 아닌 불이(不二)를 모두 떠났으니 (중도이니),

그러한 것이 언어도(語言道)라는 것을 아는도다.

 

知諸世間悉平等(지제세간실평등莫非心語一切業(막비심어일체업)

衆生幻化無有實(중생환화무유실所有果報從玆起(소유과보종자기)

모든 세간이 실로 모두 평등하여서, 심어신(心語身, 마음과 말과 행동)이 일체업(一切業)이 아닌 것이 없으니,

(신身ㆍ구口ㆍ의意 3업으로 된 모든 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아나니)
중생이란 환화(幻化, 요술)와 같은 것이라 무유실(無有實)하여 실체가 없는 것이거늘, 
지닌바의 소유과보(所有果報)가 거기(신구의 삼업)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아는도다.

 

ㅡ來無一物來(내무일물래)요, 올 때 한 물건도 가져오지 못했고, 

去亦空手去(거역공수거)라, 돌아 갈 때 역시도 한 물건도 가져가지 못하나니

萬般將不去(만반장불거)요, 만가지 중 어떠한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지만

唯有業隨身(유유업수신)이라. 오로지 업만이 따를 뿐이로다.  

얼굴이 다르고ㆍ태어난 가정이 다르고ㆍ처지가 다르고ㆍ현재 사는 것 일체가 다르고, 

천차만별한 얼굴, 천차만별한 두뇌, 천차만별한 지식, 천차만별한 습관, 천차만별한 속 사정 모두가

과거에 각자가 지은 업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一切世間之所有(일체세간지소유種種果報各不同(종종과보각부동

莫不皆由業力成(망불개유업력성若滅於業彼皆盡(약멸어업피개진)

일체의 세간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갖가지로 과보가 제각각으로 부동(不同)하여 다르지만, 
그 모든 것들은 업력으로 생기지 않은 것이 없으니, 업이 멸한다면 그러한 모든 것들이 다하게 되는도다.

 

菩薩觀察諸世間(보살관찰제세간身口意業悉平等(신구의업실평등

亦令衆生住平等(역령중생주평등猶如無等大聖尊(유여무등대성존)

보살이 모든 세간를 관찰하니, 몸과 입과 뜻의 신구의업(身口意業)이 모두 평등하고,

중생들 역시도 마치 짝할 수 있는 이가 없는 무등(無等)의 대성존(大聖尊)과 같이,

그러한 평등에 머물게 하는도다.

 

菩薩善業悉廻向(보살선업실회향普令衆生色淸淨(보령중생색청정

福德方便皆具足(복덕방편개구족同於無上調御士(동어무상조어사

보살은 선한 선업(善業)을 모두 회향하여 중생들의 색신(色身)을 청정하게 하며
복덕과 방편을 모두 구족하여 위없는 조어사(調御士, 부처님)와 같이 되게 하는도다.

 

菩薩利益諸群生(보살이익제군생功德大海盡廻向(공덕대해진회향

願使威光特超世(원사위광특초세得成勇猛大力身(득성용맹대력신

보살이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자 공덕의 대해(大海)를 모두 다하여 회향하나니
그들이 위광(威光, 위덕과 광명)을 지니어, 세간을 초월한 용맹대력신(勇猛大力身)의 이루기를 원하는도다.

 

凡所修習諸功德(범소수습제공덕願使世間普淸淨(원사세간보청정

諸佛淸淨無倫匹(제불청정무윤필衆生淸淨亦如是(중생청정역여시)

무릇 수습(修習)하여 닦아 익인 모든 공덕으로써 모든 세간을 두루 청정하게 하나니, 
모든 부처님들의 청정하심이 무윤필(無倫匹)하여 짝할 이가 없는 것과 같이

중생들의 청정함도 그와 같아지기를 원하는도다.

 

菩薩於義得善巧(보살어의득선교能知諸佛最勝法(증지제불최승법

以衆善業等廻向(이중선업등회향願令庶品同如來(원령서품동여래)

보살이 의(義, 이치, 진리)에서 훌륭하고 익숙한 선교(善巧)를 얻어서,

모든 부처님들의 모든 가장 좋은 최승법(最勝法)들을 능히 알며,
여러 가지의 선한 선업을 골고루 회향하여 서품(庶品, 중생)들이 여래와 같아지기를 원하는도다.

 

菩薩了知諸法空(보살요지제법공一切世間無所有(일체세간무소유

無有造作及作者(무유조작급작자衆生業報亦不失(중생업보역부실)

보살은 모든 제법이 공(空)한 것이요, 일체의 모든 세간도 있는 것이 아닌 무소유(無所有)요, 
지음도 없는 무유조작(無有造作)이요, 짓는 이도 없는 무유작자(無有作者)이나,

중생들의 업보(업과 과보, 업력) 또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도다.

 

諸法寂滅非寂滅(제법적멸비적멸遠離此二分別心(원리차이분별심

知諸分別是世見(지제분별시세견入於正位分別盡(입어정위분별진) 斟 짐작할 짐 / 酌 따를 작,

모든 제법이 적멸하다 적멸하지 않다라는, 두 가지의 이분별심(二分別心)을 멀리 여의면
일체의 이변(二邊, 분별, 양변) 모두가 짐작(二邊)에 의한 세간의 견해라는 것을 알고서

바른 지위의 정위(正位, 불위 佛位)에 들어가서 분별이 다하게 하는도다.

ㅡ옳다ㆍ그르다는 등으로 나누어지는 두 가지 견해는 각자의 관념으로 짐작한 견해,

즉 세속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짐작한 것으로, 지혜로서 바르게 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如是眞實諸佛子(여시진실제불자從於如來法化生(종어여래법화생

彼能如是善廻向(피능여시선회향世間疑惑悉除滅(세간의혹실제멸) 

이와 같이 진실한 모든 불자들은 여래의 법으로 태어난 종여래법(如來法)으로 화생하였으니, 
그러한 이들이 능히 이와 같이 잘 회향한다면, 세간의 모든 의혹을 멸하게 할 수 있으리라.

 

ㅡ이 회향에서는 관세음으로 자비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니, 무릇 큰 가르침은 현유(玄悠)해서 문장이 꽃과 같고, 뜻이 넓어서 법문의 명구(名句)가 명백하고 완연하다. 그리하여 십십(十十)의 수가 서로를 따르고, 만만천천(萬萬千千)이 차례이니, 조그마한 연못을 거대한 바다에 첨가해선 안 될 것이며, 그 깊은 곳에 이르기에는 만족하지 않고, 미약한 등불을 켜서 태양의 광명에 더하나니, 어찌 멀리까지 비추는 것에 능히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이 경문은 뜻이 넓고 언어가 구비되고 이(理)가 갖추어져 있고 언사(言詞)가 풍부하기 때문에 우선 그 대의(大意)만을 대략적으로 해석하였을 뿐, 은밀한 지혜는 그윽하게 잠겨 있으니, 따라서 약간의 지취(旨趣)만을 편 것이라. 나머지 경전의 법상(法相)을 더해서 이 묘장(妙章)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뜻을 얻어 수행하는 자라면, 이(理)가 정(定)으로부터 발해지고, 지(智)가 이(理)로써 밝아지고, 자비가 원(願)을 빌려 일어나는 것이니, 행(行)이 성취되니 원(願)이 발하여지고, 이(理)가 넓어지니 지(智)가 해박하여지고,

원(願)이 확장되니 자비가 넉넉하여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

불종(佛種, 부처의 종자)이 이로 인하여 태어나서 이 연(緣)을 통하여 법계를 제도하는 것이니,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ㅡ신화엄경론

 

제29권 27. 십회향품(十廻向品)⑦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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