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ㅡ제9 무착무박해탈(無着無縛解脫) 회향
ㅡ제9 무착무박해탈(無着無縛解脫) 회향은 역바라밀(力波羅蜜)로 체를 삼으며,
선재동자가 본 천신(天神)으로서 이 지위의 행을 나타내고 있다.
거주하는 성(城)의 명칭은 타라발저(墮羅鉢底)이며, 신의 명호는 대천(大天)이다.
성의 명칭이 타라발저인 것은 한역하면 유문성(有門城)이며,
이는 이 계(界)의 건곤(乾坤)이라서 건(乾)으로 천문(天門)을 삼고 이후는 차례로 지신(地神)을 보는 것이며,
이 두 지위로써 10회향위(廻向位)의 지극(智極, 지혜의 극)과 비종(悲終, 자비의 종결)을 융화하여 회통함을 밝힌 것이다.
천신은 법공의 묘한 지혜의 극(極)을 나타내는 것이며,
지신(地神)은 대자비의 지극함을 나타낸 것이니,
만물을 후덕하게 실어서 중생을 양육하기 때문에 부모의 지위와 같다는 것을 표상한 것이다.
천신이 무량한 종류의 온갖 보배를 나타내나니, 그 쌓임이 산과 같으며,
지신이 광명을 놓으니 대지가 진동해서 장엄하고 땅이 청정한 찰(刹)이 되어서
일체의 많은 보장(寶藏)이 자연히 솟구침은
천신과 지신이 업을 따라 양육하는 제물(濟物)의 덕이 광대함을 밝힌 것이다.
경문에 이르면 밝히겠지만, 법을 나타낸 뜻을 대략 회통함을 거양함으로써 나중에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게하여 교행(敎行)에 미혹하지 않고 수행에 걸리지 않도록 하리라.
법을 나타내는 가운데에서, 지혜가 청정하여 천(天)에 부합한 성품을 밝힌 것은
바로 법재(法財)가 충만하여 공덕의 보배가 출현함이 산과 같다는 것이며,
또 순수청정한 대자비로 만물을 실어 기르는 것은 마치 대지에 수고로움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대지의 체(體)가 본래 정토일 뿐이니, 이것은 오직 지혜와 자비의 청정함이 지극한 때문이니, 곧 불국의 장엄이 청정하다는 것이다.
이는 신지(神智)가 진(眞)에 응하고 덕이 천지에 회통해서 사물을 길러서 구제함을 밝힌 것이며,
또한 천지의 신령(神靈)이 바로 보살인 것으로, 그 지위가 감당하여 다스리는 진속(眞俗)의 행을 기준으로 해서 이 지위의 천신으로 나타낸 것이니, 이는 승진의 이지(理智)가 그윽하고 미묘해서 천령(天靈)과 같이 측량치 못하는 것이며, 신공(神功)의 만유(萬有)가 불작(不作)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첫 번째로, “불자야” 이하 “게송을 설한 이래(說頌已來)”에 이르기까지의 7 단락으로 장과하면,
1.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무착무박해탈 회향이라 하는 것인가?” 이하 “수순인가(隨順忍可)”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인(因) 가운데에서 선근을 심어서 열 가지의 십종존중(十種尊重)을 냄을 밝힌 분(分)이다.
2. “불자야” 이하 “의지하는 바가 없는 지혜를 내며, 일체 불법의 지혜를 낸다(生無所依智生一切佛法智)”에 이르기까지 이상 15지(紙)의 경문은,
처음으로 열 가지의 십종선근(十種善根)을 닦고 열 가지의 십종존중행(十種尊重行)을 닦아서,
무착무박해탈의 회향으로 보현보살의 미세지경(微細智境, 미세한 지혜 경계)에 들어가는 것을 밝힌 분이다.
3. “불자야” 이하 “법이든 지혜이든 분별치 않는다(不分別若法若智)”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무분별을 얻음의 득무분별(得無別分)을 밝힌 분이다.
4. “불자야” 이하 “제9 무착무박해탈의 회향(無著無縛解脫迴向)”에 이르기까지 15행 반의 경문은,
이 회향을 닦으니 3업(三業)의 무착무박(無着無薄,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음)을 얻어서
3세불(三世佛)의 회향과 같이 자재함을 밝힌 분이다.
5. “보살마하살” 이하 “보살의 자재로운 신통을 성취한다(成就菩薩自在神通)”에 이르기까지 9행의 경문은,
이 회향을 닦아서 불괴(不壞)의 선근을 얻음으로써 태어나는 곳에서 곧바로 부처를 만나 자재로운 신통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6. “이 때 금강당보살”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관찰하고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7. 이하 120행의 게송은 경문에 뜻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으며, 2행이 하나의 게송이다.
두 번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으니,
무엇을 무착무박해탈의 회향이라 하는 것인가?
자체성 없는 이지(理智)가 의지함이 없는 것이 바로 일체에 무착(無着)하는 것이고, 일체에 무박(無縛)한 것이니,
그러므로, 경문에서, “매우 깊고 깊은 미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로 보살행을 닦고
보현의 도(道)에 머물러 문(文, 경문)이나 의(意, 뜻) 모두가 여실한 지혜의 여실지(如實智)이니,
그림자 같은 지혜의 영지(影智)와 꿈과 같은 여몽(如夢), 허깨비 같은 여환(如幻), 메아리와 같은 여향(如響),
마술과 같은 여화(如化)요, 마치 허공과 같으며, 나아가 의지하는 바가 없는 무소의(無所依) 등의 지혜를 낳는다”고 한 것이다.
경문에서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이 일체의 선근에 대하여 마음으로 존중을 일으킨다(於一切善根心生尊重)”는 것이란,
열 가지의 십종의(十種意)가 무진(無盡)함에 있다는 것이며,
“소위(所謂)”란 것은 진술한 바의 법을 논급(論及)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사를 벗어나는 마음의 출생사심(出生死心)으로 존중을 일으킨다”고 한 것은,
3승 중에서는 분단생사(分段生死)를 벗어나 변역생사(變易生死)를 얻는 것으로,
생사를 싫어하고 적정(寂靜)을 즐겨하기 때문에 변역생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이는 일승(一乘)의 지생신(智生身)으로 찰해에 두루 하면서 근기에 따라서 응현(應現)하면서도
생사성(生死性, 생사의 성품)이 아니며,
나아가 세간의 법과 같이 하면서도 생사성(生死性, 생사의 성품)이 아닌것보다 못한 것이다.
견도(見道)하여 도를 보는 모든 이들은 응당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
만약 스스로의 과보를 논한다면, 지합(智合)하여 지혜가 합하여지고,
행동(行同)하여 행이 같아져야 비로소 능히 볼 수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이 생사성(生死性, 생사의 성품)을 벗어나야 존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경문에서 “일체 선근을 섭취하여서 마음으로 존중을 내게 된다(於攝取一切善根心生尊重)”는 것은,
선(善)을 섭수(攝收)하는 것이 법계(法戒)이며,
“일체의 선근을 희구하는 데서 마음이 존중을 일으킨다(於希求一切善根心生尊重)”는 것은
10신(十信)의 유루(有漏)가 희구하는 것과 10주(十住) 이후의 무루(無漏)가 희구하는 것 모두에 대하여 마음으로 존중하는 것이며, “모든 과오(過誤)의 업을 참회하는 데서 마음이 존중을 일으킨다(於悔諸過業心生尊重)”는 것은,
지난 과거의 왕업(往業)을 참회하는 것이니, 이하는 경문의 뜻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인(因)을 존중하기 때문에 과(果)가 더욱 물러나지 않는 것이,
마치 10층의 누각은 그 아래가 튼튼하기 때문에 위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는 것으로,
이상의 한 단락에서 인(因)을 존중하는 존중인(尊重因)을 마친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저 선근에서 모두 존중을 일으켜서 때(時)에 따라 인가(忍可)한다”로부터 “의지함이 없는 지혜를 낳고 일체법의 지혜를 낳는다(生無所依智生一切法智)”에 이르기까지 15지(紙)의 경문은,
3세제불(三世諸佛)의 과덕(果德)과 보현의 과행(果行)이 모든 미세법(微細法)을 성취함을 밝힌 것으로,
이러한 미세법문에서 간략하게 열 가지의 십종미세(十種微細)로 대략으로 나눌것이니, 그 나머지는 모두 이에 의하면 되리라.
1. 불신미세(佛身微細)란,
부처의 불보신(佛報身) 가운데에서, 하나의 일불신(一佛身)이나 하나의 일중생신(一衆生身)에 불가설불가량(不可說不可量, 설명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의 불신이 있는 것과 같으니, 일체의 불신과 일체의 중생신도 모두 그러한 것이다.
2. 불지미세(佛智微細, 부처 지혜의 미세함)란,
하나의 일지혜(一智慧)가운데에서, 불가설하고 불가량하게 허공계에 두루 한 중생들의 즐거움에 따르는 수락법(隨樂法)의 차별함을 모두 아는 차별지(差別知)인 것이다.
3. 부처가 생(生)을 받는 것의 미세함의 불수생미세(佛受生微細)란,
시방으로 있는 일체의 불찰들을 모두 부수어서 티끌로 만들고, 그 하나하나의 티끌에서 일시에 수태(受胎)하고, 일시에 초생(初生, 처음으로 태어남)하고, 일시에 도량에 나아가고, 일시에 법륜을 굴리는 것 등인데, 이와 같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존재들에 맞추어 수류신(隨類身)을 일으켜서 그 각각에 마주하는 대현(對現)함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다.
4. 세간의 일체 중생을 다스림의 섭세일체중생미세(攝世一切衆生微細)란,
일체 불찰의 하나하나의 티끌 가운데에도 보현행을 갖추여서,
하나하나의 중생 앞에 그 유(類, 종류)를 따라 형상을 나타내어서 설법으로 교화하는 것이
저마다 차별하게 달라서 끝없이 겹치면서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5. 국토미세(國土微細)란,
하나하나의 티끌 가운데에서도 무량한 허공과 같은 광대한 국토가 존재하며, 그 하나하나의 국토가 서로 참입(參入)하고 중중무애(重重無礙)하여서, 마치 ‘화장세계해(華藏世界海)’와 같이 서로 걸림 없이 겹겹으로 있는 것이다.
6. 보살중해미세(菩薩衆海微細)란,
위와 같은 불찰의 그 하나하나의 티끌 가운데에 있는 각각의 일일불소(一一佛所)에 마치 허공과 같은 양(量)의 광대한 도량이 있으며, 그 도량에는 보살 대중들이 바다와 같이 충만하나니, 이와 같이 일체 불찰의 티끌 하나하나 속에도 그와 같은 도량과 그와 같은 대중들의 바다가 모두 서로 참입(參入)하고 중중무애(重重無礙)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 마치 빛과 같고 마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7. 보살이 부처를 보는 것의 보살견불미세(菩薩見佛微細)란,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를 따라 모두가 여래를 마치 눈앞에 있는 것과 같이 우러러보며, 각자의 성취 단계에 알맞는 가르침을 듣고 그 단계에 상응하는 몸을 보는 것이다.
8. 부처 음성의 불음성미세(佛音聲微細)란,
여래의 음성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 불종심출(不從心出)이요,
몸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닌 불종신출(不從身出)인 것이면서도,
항상 시방(十方)에 두루한 끊임없는 소리가 있어, 듣는 자를 따라 모두 듣게 하는 것이다.
9. 시겁미세(時劫微細)란,
3세 불가설겁(不可說劫)의 일체 제불(諸佛)들이 일념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금과 같이 널리 있으며,
바로 지금 현전하는 제불 또한 과거와 미래에 있는 것으로서,
일시와 3세가 겁겁에 참입參入)하고 중중무애(重重無礙)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다.10. 신통도력미세(十神通道力微細)란,
법성이 두루 하기 때문에 지신(智身) 또한 마찬가지로 두루하며, 의지하여 머물지 않는 무의주지(無依住智)로서 색신을 대현(對現)하여 시방으로 메아리와 같이 응하면서도 가고 옴이 없는 무왕래(無往來)이며, 아울러 변화하고 조작하는 마음도 없으니,
지혜가 본원(本願)을 따르는 법이 응당 이와 같으며, 또한 일체의 티끌 속의 경계 역시도 이와 같아서 끝없이 겹쳐진 것이다.
이상으로 안립(安立)한 열 가지의 십종법문(十種法文)으로 이 지위에서의 회향법이 대체로 이와 같다는 것을 해석하여서,
이 무착무박회향의 지위에서는 보살이 이와 같이 들어간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나머지 경문은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의(大意)는 작위 없는 무작법신(無作法身)과 머묾이 없는 무주지(無住智)와 10회향의 대원(大願)으로 조화롭게 하여서 대자비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해(行海)를 성취하게 함으로써, 일체의 사량분별의 지용(智用)을 삼게 하며,
일체의 지견(知見)으로 총체적으로 선문(禪門)의 본래부동(本來不動)을 삼게 하며, 이성(理性)의 근본 적정문(寂定門)으로 차별지신(差別智身)과 혜신(慧身)과 변역신(變易身)을 일으키게 하며,
하나의 일모공(一毛孔)으로 일체의 불찰과 중생찰을 안립하여서 그 모두로 하여금 걸림이 없게 하며,
유위와 무위로 일법계(一法界)의 자재로움을 삼게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회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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