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2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6) 십지품(十地品)① ㅡ4


1. 환희지(歡喜地)① ㅡ4

 

(두 번째의 승진의 단계를 세 가지 문으로 나눈 것 중 두 번째에서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수위진수차제(隨位進修次第)를 설명함에 있어서 10 가지의 문을 세운 것에서).

2-4. 대원(大願)으로 이(理)와 사(事), 비(悲)와 지(智)를 원융시켜 다함이 없는 무진문(無盡門)이니,

곧, 제5회인 도솔천궁에서 10회향을 설하여 다함이 없는 무진대원(無盡大願)으로 이지대비(理智大悲)를 원융하게 하여 보현행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니,

열 개의 불과(佛果)의 이름의 첫 글자가 묘(妙)인 것은 이 지위의 과(果)이며,

열 개의 보살 명칭의 아랫 글자가 모두 같은 당(幢)인 것은 이 지위의 수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며,

열 개의 세계 명호가 묘(妙)인 것은, 이 지위의 수행하는 법이니,

이지(理智)의 비원(悲願)과 만행의 묘용이 세계가 된 것을 밝힌 것이다.

 

이는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내는 가운데에서 육향 장자의 청련화를 본 것이, 이 지위의 법이 이지자비(理智慈悲)의 원행(願行)과 일체의 다함 없는 무진차별지혜(無盡差別智慧)와 차별의 원행(差別願行)으로서 회향의 꿀과 합쳐서 한 알의 계(戒)ㆍ정(定)ㆍ혜(慧)의 향(香)을 만들고,

의지 함이 없는 무의주지(無依住智)로서 법계에 두루 하면서 색신을 대현(對現)하여, 그 병을 따라 조복하면서도 5분법신향(五分法身香)과 더불어 집착하는 바가 없는 것이, 마치 청련화가 색깔과 향이 제일이지만 집착할 바가 없는 것과 같으며,

원(願)ㆍ지(智)ㆍ비(悲)와 법신과 10바라밀과 4섭법과 4무량심과 37조도분과 세간의 출세간의 법을 화합해서 다 함께 일법(一法)을 만드는 것이 마치 향을 만듬에 있어서 일체의 온갖 향들을 합쳐서 한알의 일환(一丸)으로 만드는 것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2-5. 수행을 쌓아 덕을 성취하는 온수성덕문(蘊修成德門)이니,

제6회의 타화자재천궁에서 10지법(十地法)을 설한 것은, 앞에서의 십회향(十廻向)의 서원과 수행의 원행(願行)을 성취하여 덕행의 공덕을 원만하게 갖추는 길은 오직 10회향의 법을 닦는 것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불과(佛果)의 경지에 대해서도 다만 10회향 중의 묘용(妙用)의 동일한 공(功)을 취할 뿐, 따로 안립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이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서 법좌를 펴서 부처님을 맞이하는 등의 일이 없으니,

이는 10지(十地) 중의 법칙(법리)이 마치 10회향(十廻向)의 융화회통으로 종결된 것과 같은 것이나,

다만 그에 대한 친숙함(익숙함)이 같지 않은 것이며, 다시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다만 십지(十地)와 십일지(十一地)의 행문(行門, 수행)의 관지(觀智)로써 오히려 앞서의 전과(前果)를 자량하는 것은 마치 복채(菔菜, 무우)의 잎이 길어서 뿌리를 자양하는 것과 같이, 앞에서 얻은 결실을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가령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내는 가운데에서 선재가 마갈제국(摩竭提國)의 가비라성(迦毘羅城)에서 주야신(主夜神)인 파산파연저(婆珊婆演底, 한역으로 춘시주당 春時主當)를 본 것은, 이 신이 봄에 묘가(苗稼)를 주재하고 담당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또한 두려움이 없는 안식처의 의지무외(依止無畏)라고 이름한 것은 일체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는 안식의 의지무외(依止無畏)를 제공하는 것을 일컬은 것이다.

몸에서 성수(星宿, 별자리)를 내어 중생을 비춘 것은 몸의 일일모공(一一毛孔)에서 행을 나타내어 무수한 악도(惡道)의 중생을 교화 제도하는 것이며,

가비라성(迦毘羅城)을 한역하면 황색(黃色)이니, 이 성이 염부제의 중앙에 있음을 밝힌 것이며, 중궁토(中宮土)가 황색이 됨을 밝힌 것이니, 10지가 중도(中道)에 계응(契應)하여 진(眞)에 응하여 치우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여래가 성도한 곳을 보이는 나라이다.

 

신(神)이란 것이란 것은 진(眞)에 응하는 것으로, 그 지혜가 분별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도 모든 존재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지혜가 작위하지 않고 사념이 없으면서도 두루 만유를 자량하는 것이니, 이 신은 최초의 환희지(歡喜地)를 나타내는 것이며,

제9 회향 이래 곧바로 제9지에 이르기까지의 모두가 신위(神位)에 들어가는 것은 승진지(昇進智)가 통하니, 우물(祐物, 만물을 돕는 것)이 무한해서, 작위하지 않고 사념이 없으면서도 지혜가 스스로 두루 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우선 간략히 설한 것일 뿐, 자세한 내용은 나중의 경문에 있다.


무릇 선재동자가, 선지식의 발심한 기간의 구근(久近, 짧고 김)과 세상에 머문 기간의 다소(多少, 많고 적음)를 물은 것 모두는 대비(大悲)의 행을 성취하여 길이 함양하고 키워나감을 밝힌 것이며,

주겁(住劫)의 구원(久遠)은 대자비의 깊고 두터움을 밝힌 것이니, 지혜에 있으면 구원의 겁도 1찰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관세음보살은 명호와 설한 바의 법으로써 자비경(慈悲經)이라 호칭하는 것과 같으며,

또 10회향에서 제7회향(七迴向)의 선지식으로서 제8회향의 정취(正趣) 보살과 함께 7회향과 8회향의 자비와 지혜의 비지이문(悲智二門)을 성취하는 것이니, 반드시 이와 같이 그 전후(前後)를 회통하여야, 비로소 그 경문의 뜻을 요달할수 있는 것으로,

하나의 법만 보아서는 능히 불심(佛心)을 요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십지(十地)는 십회향(十廻向) 및 여러 법문(法門)들과 함께 원만하게 수행을 쌓아서 자비와 지혜가 완성되고 과거의 서원이 성취됨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환희지에서 원구성만심(願求成滿心)을 얻는 것은 이전 10회향의 원심(願心)에 의거해서 원만함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2ㅡ6. 덕(德)과 행이 원만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재롭고 무한한 문(德滿行圓利生自在無限門)이니,

이는 제3선(第三禪)에 있으며, 제7회의 경문이니, 범본(梵本)이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백만억의 게송은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의 교설에 의하여 설한것이다.

이 경전은 여래가 3승인(三乘人)을 교화한 후, 3승의 대중들을 거느리고 보리수 아래에 가서 최초로 정각을 성취하였을 때에 '화엄경'을 설한 것으로서 하나하나를 차례대로 배열하여 거듭 그 회상을 펴서 제3선(第三禪)에 이른 것이다.

'영락본업경'에서는 “11지의 등각위(等覺位)가 일생보처 보살의 지위가 된다”고 하였으니,

이 11지(十一地)에서 보현행이 원만하여져서 12지에서 묘각여래(妙覺如來)가 되기 때문에,

이를 일생(一生)의 주(主)로 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선재동자가 수행으로서 법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 불모(佛母)인 마야 부인을 본 것이 바로 그 수행의 실천이다.

이는 자비에서 비롯된 지혜의 실천으로 좇아 행을 성취하는 십지의 행문(行門)을 밝히는 것으로,

곧 야천(夜天), 여신(女神) 및 여래가 태자였을 때의 아내인 구파(瞿波, 한역으로 수호지 守護地)의 열 분의 여중(女衆, 여자 대중)들로서 대비(大悲)를 성장시켜 대자비지(大慈悲地)를 수호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예를 들어, 보살의 수행단계인 등각위(等覺位)에서 자비를 행하는 행이 원만하여져서, 바로 자비로부터 지혜를 낳아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곧 불모를 보는 견불모(見佛母)로 나타낸 것이니, 모(母)는 자비의 뜻이다.

대지혜를 낳아서 중생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등각위(等覺位)에서의 열 분의 선지식에 해당되기 때문에 마야생불(摩耶生佛,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낳았다)이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부처가 바로 지혜이기 때문이다.


2ㅡ7. 덕행이 원만한 불과의 성취를 끝낸 문이니(德行圓滿成佛果終門), 

즉 제8회 보광명전에서 설한 11품의 경문인 것으로,

'십정품'이 그 처음이 되고, 그 다음은 '십통품'과 '십인품'과 '아승기품'과 '여래수량품'과 '보살주처품'과 '불불사의법문'과 '여래십신상해품'과 '여래수호광명공덕품'과 '보현행품'과 '여래출현품' 등이다.

 

초회에서 질문한 것에 준거하여 보면, 10정(十頂, 십정품)은 있어도 설한 곳이 있지 않으니 이는 경문에서 온전하게 갖추지 못한 때문이다. 총체적으로는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낸 것 중에서 미륵보살을 본 것이 바로 그 행이니, 이는 선재 동자가 일생에 불과를 성취한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밝힌 때문에, 마침내 누각 안에서 3생(三生)의 행 모두가 금(今, 현재) 가운데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3생(三生)이란,

첫째 과거의 구원(久遠)에서 도를 보아 수행하는 생(生, 전생)이며,

둘째 현재에 과(果)를 얻어서 원만한 생(현생)이며,

셋째 미래에 정각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일 생(후생)이니,

이러한 모두가 누각 안의 지금에 현전하여 (今現前), 고금(古今)과 거래(去來)와 현재(現在)가 없어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3생의 상(相, 특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운데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니, 다만 지혜로서 세속을 따라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곧 3생인 것이다.

 

만약 진(眞, 진리)을 기준으로 하여 논한다면, 보리심을 발한 때(時)도 없고, 수행하여 도를 본 때(時)도 없으며, 현재의 생에서 과(果)를 얻은 때(時)도 없고, 미래에 정각을 성취함을 보일 때(時)도 없는 것이니,

이는 3세(三世)와 심량(心量)이 성품의 체(體)가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본성에는 본질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이며)

안립(安立)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처소도 없는 무처(無處)이고 의지함도 없는 무의주(無依住)이기 때문에 성불하는 때의 성불시(成佛時)라 이름한 것이다.

 

만약 자심(自心, 자기 마음)에서 능히 보리심을 발하는 때(순간)나 미래에 정각을 성취할 때(순간)가 있음을 본다면,

곧 정식(情識, 분별하는 의식)의 생멸인 것일 뿐이니, 보리심을 참되게 발심하는 때(時)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현보살의 끊임없는 수행을 포함한 신심(信心)과 불과(佛果)는 결코 보광명전(普光明殿)을 떠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이세간품(離世間品)’ 또한 보광명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는 인(因)과 과(果)가 ‘보광명(普光明)의 부동한 대지혜’라는 동일한 본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바로 이 지혜가 수행의 길에서 도달하는 궁극적인 귀결점이 됩니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신심(信心)과 불과(佛果) 모두가 보광명전을 여의지 않는 것이며,

나아가 늘 보현의 시종(始終)이 없는 행을 행하는 '이세간품'이 역시도 보광명전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인(因)과 과(果)가 본질적으로 부동(不動)인 보광명대지(普光明大智)와 동본(同本, 같은 본성)의 승진공(昇進功)의 종결(귀결점)로 삼기 때문에, 때(時)도 다시 체(體, 실체)가 없고 지혜 또한 고정되게 의지함이 없는 무의(無依)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미륵 보살이 선재동자로 하여금 문득 최초의 스승인 문수사리 보살을 다시 보게 한 것은, 그 과(果)에 이르는 것이 인(因)의 기초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밝힌 것이며,

선재동자가 문수 보살을 생각하는 순간에 문수 보살의 이름을 듣고는 자신의 몸이 보현 보살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은, 정각(正覺)의 행(行, 수행)의 과(果)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인(因)과 과(果)와 행(行, 수행)이 일시에 회통하여 성취되어서 모두가 원만한 것을 포괗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이는 지혜의 경계에서 능히 일체 중생의 다겁(多怯, 오랜 세월)의 정량(情量, 심량, 역량)이 바로 일시(一時)에 포함되기 때문이며,  이는 지혜는 무정(無情)이기 때문이며,

다만 10신(十信)의 단계에 있는 부동지불(不動智佛)의 전제(前際)ㆍ중제(中際)ㆍ후제(後際)가 없기 때문이며,

이것은 문수사리 보살이10신에서 설한 게송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ㅡ게송; "일념으로 무량한 겁을 널리 관(觀)하니 (一念普觀無量劫)
가는 곳도 없고 오는 곳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구나. (無去無來無住處)
이와 같이 3세의 일을 요달하여 안다면 (如是了知三世事)
모든 방편을 초월해 10력(力)을 이루리라.(超諸方便成十力)"

2ㅡ8. 보현의 행해(行海)가 항상 행하는 문이니(普賢行海常行門),

즉 제9회에서 설한 '이세간품'이 이에 해당된다.

세간에 상주하여 무한한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 정(情)에 이끌린 업(業)의 작용에 상응(相應)하지 않는 것이니,

가령 선재동자가 행(行, 수행)을 나타낸 것 중에서, 최초의 선지식인 문수 보살을 억념하자, 문득 보현 보살의 명호를 듣게 되는 것과 자신이 보현 보살의 몸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스스로 불과(佛果)를 성취해 마치고 나서 항상 보현 보살의 시종(始終)이 없는 행을 수행하는 것이니,

이러한 보현행 역시 본보광명(本普光明)의 의주(依住)함이 없는 지혜에서 옮겨가지 않은 것임을 칭한 것이다.

 

고인(古人, 옛 성현)이 해석하기를, “보광명전(普光明殿)이 거듭 언급되는 것, 구체적으로 ‘보광명전에서의 세 차례의 법회’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세 번의 법회가 실제로 반복해서 열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 대체(大體)는 다만 하나의 보광명의 의주(依住)함이 없는 대지혜(一箇普光明無依住大智)가 초발심의 인(因)과 불과(佛果)와 행만(行滿, 수행의 성취)를 행하는 것을 원만히 회통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의 삼사(三事) 모두가 이 보광명의 지혜를 여의지 않기 때문에 시(時)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지혜에 의거하여 발심한 이후로 시종일관 정견(情見)의 자취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2ㅡ9. 여래의 출현하지도 않고 사그라지지도 않는 부처 지혜의 항과문(恒果門)이다(如來不出不沒佛智恒果門).

즉 제10회에서 설한 '법계품' 1품의 경문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법계가 부처의 영속적인 과보의 항과(恒果)이기 때문이다.

 

2ㅡ10. 믿음을 통해서 6위(位)의 인법(人法)이 나아가 구해야 할 문을 나타낸 것이다(表通信六位人法所進求門).

즉 각성동회(覺城東會) 대탑묘의 처소에서 선재동자가 문수 보살과 아울러 하입위(下入位, 아래 지위)의 5위(五位)의 선지식을 보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상의 열 가지 십문(十門)은 보광명전에서 10신(十信)의 가르침을 설한 이래에 총체적으로 거듭 서술함으로써 배우는 학자(學者)들로 하여금 쉽게 경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아울러 선재동자가 만난 선지식(善知識)들로서, 법을 나타내는 단계를 대략적으로 들어서 회통하여서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다.

 
승진의 단계를 세 가지 문으로 나눈 것 중에서의 세 번째, 부처님께서 법을 설한 설법처(說法處)와 법좌의 좌체(座體)를 거듭 편다는 것의 뜻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법을 설한 처소와 의취(意趣)를 편 것이며,

둘째 광명을 놓은 처소와 의취(意趣)를 편 것이며,

셋째 법좌의 체(體)와 의취(意趣)를 편 것이다.


3ㅡ1 법을 설한 처소와 의취를 편것에서, 그 처소에 10 가지가 있고 그 의취에는 12 가지가 있다.
처소 1, 보리장 보리수 밑의 1회(會)는 희련하(熙連河)의 강변에 있으며,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의 취락까지의 거리가 5리이니 1우후지(牛吼地, 한 마장)이 된다.

 

이 아란야(숲속의 고요한 수행처)의 처소에서 도(道)를 성취한 것은 세간법(세간의 관습)에 의지한 것이며, 이는 중생을 교화하는 법칙(방편)이지만, 부처 자신에게는 그러한 집착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승천(昇天)하는 것도 모두가 방편으로 나타낸 것이지만,

여래의 지체(智體)는 시방으로 두루하면서도 가고 옴이 없이 색신(色身)을 대현(對現)하는 것이다. 이는 세간을 위하여 색신을 나투어서 법을 성취하는 것을 보임으로써 본받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 한 단락은 여래가 스스로의 자과법(自果法)을 들어서, 중생들을 수행하도록 권하고 이끌어 수행하게 하는 거자과법권중생수행문(擧自果法勸衆生修行門)인 것이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2권을 마침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一 十迴向品第二十五之九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⑨ ㅡ 4

ㅡ제9(第九) 무착무박해탈회향(無着無縛解脫廻向) ㅡ 4

 

ㅡ보현 보살 대지(大智)의 사원(四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爲一切衆生(위일체중생) 

修普賢行(수보현행) 生大智寶(생대지보) 於一一心中(어일일심중) 知無量心(지무량심) 

隨其依止(수기의지) 隨其分別(수기분별) 隨其種性(수기종성) 隨其所作(수기소작) 

隨其業用(수기업용) 隨其相狀(수기상상) 隨其思覺(수기사각) 

種種不同(수기부동) 靡不明見(미불명견) 

무착무박해탈심으로 일체의 중생들을 위하여 보현행(普賢行)을 닦아서(修)   

대지보(大智寶, 대 지혜의 보배)를 내고  

일일심(一一心, 낱낱의 마음) 가운데에서 무량심(無量心)을 알아 

그 의지함을 따라 수기의지(隨其依止)하고, 그 분별함을 따라 수기 분별(隨其分別)하고,

그 종성을 따라 수기종성(隨其種性)하고, 그 짓는 바를 따라 수기소작(隨其所作)하고, 

그 업의 작용을 따라 수기업용(隨其業用)하고, 그 형상을 따라 수기상상(隨其相狀)하고,

그 생각으로 깨닫는 바를 따라 수기사각(隨其思覺)하여서 

갖가지의 종종(種種)이 부동(不同)함을 미불명견(靡不明見)하여, 밝게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成就普賢大願智寶(성취보현대원지보) 

於一處中(어일처중) 知於無量(지어무량) 不可說處(불가설처) 

如於一處(지어일처) 於一切處(어일체처) 悉亦如是(실역여시)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대원(大願)과 지보(智寶, 지혜보배)를 성취하여 

일처(一處, 한 곳)에서 무량하고 불가설한 처(處, 곳)을 알고,  

마치 일처(一處, 한 곳)에서와 같이 일체처(一切處, 모든 곳)에서도 모두 그와 같이 알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習普賢行業智地(수습보현행업지지) 

於一業中(어일업중) 能知(능지) 無量不可說不可說業(능지무량불가설불가설업) 

其業(기업) 各以種種緣造(각이종종연조) 明了知見(명료지견) 如於一業(여어일업) 

於一切業(어일체업) 悉亦如是(실역여시)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행업(行業)과 지지(智地, 지혜의 지위)를 수습하여서

일업(一業, 하나의 업) 가운데에서 능히 무량하게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업(業)을 알아서 

그 업이 각각 저마다의 연(緣)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밝게 보아서, 지견(知見)하여 알고,

일업(一業, 하나의 업)에서와 같이 일체업(一切業)에서도 모두 그와 같다는 것을 알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習普賢知諸法智(수습보현지제법지)  

於一法中(어일법중) 知不可說不可說法(지불가설불가설법)  

於一切法中(어일체법중) 而知一法(이지일법) 如是諸法(여시제법) 各各差別(각각차별)

無有障碍(무유장애) 無違無着(무위무착)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이 제법지(諸法智, 모든 법을 아는 지혜)를 수습하여서

일법(一法, 하나의 법) 가운데에서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법을 알고  

일체법(一切法) 가운데에서 일법(一法, 하나의 법)을 알아서  

이러한 제법(諸法)들이 각각(各各)으로 저마다 차별(差別)하다는 것을 앎에  

장애(障碍)가 없으며, 어긋남도 없는 무위(無違)요 집착함도 없는 무착(無着)입니다.

 

ㅡ보현 보살의 문설(聞說) 이원(二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住菩薩行(주보살행) 

得具普賢無碍耳根(득구보현무애이근) 於一言音中(어일언음중)

知不可說不可說言音(지불가설불가설음) 無量無邊種種差別(무량무변종종차별) 

而無所着(이무소착) 如於一言音(여어일언음) 於一切言音(일체언음) 悉亦如是(실역여시)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살행(菩薩行, 보현 보살의 행)에 머물러서 

보현 보살의 무애이근(無碍耳根, 장애없는 이근)을 구족하여  

일언음(一言音, 하나의 말소리) 가운데에서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언음(言音)을 알아서  

무량하고 무변하여서 종종(種種)으로 차별함에 무소착(無所着)하여 집착하지 않으며,

일언음(一言音, 하나의 말소리)과 같이 일체언음(一切言音)에서도 모두 그와 같다는 것을 알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普賢智(수보현지) 起普賢行(기보현행)

住普賢地(주보현지) 於一一法中(어일일법중) 演說不可說不可說法(연설불가설불가설법)

其法廣大(기법광대) 種種差別(종종차별) 敎化攝受(교화섭수) 不可思議方便相應(불가사의방편상응)

於無量時(어무량시 於一切時(어일체시) 隨諸衆生(수제중생) 所有欲解(소유욕해) 

隨根隨時(수근수시) 以佛音聲(이불음성) 而爲說法(이위설법) 以一妙音(이일묘음) 

令不可說(영불가설) 道場衆會無量衆生(도량중외무량중생) 皆悉歡喜(개실환희)

一切如來所(일체여래소) 無量菩薩(무량보살) 充滿法界(충만법계) 立殊勝志(입수승지)

生廣大見(생광대견) 究竟(구경) 了知一切諸行(요지일체제행) 住普賢地(주보현지)

隨所說法(수소설법) 於念念中(어념념중) 悉能證入(실능증입) 一刹那頃(일찰나경) 

增長無量(증장무량) 不可說不可說大智慧聚(불가설불가설대지혜취)

盡未來劫(진미래겁) 如是演說(여시연설) 於一切刹(어일체찰) 

修習廣大虛空等行(수습광대허공등행) 成就圓滿(성취원만)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지(普賢智, 보현 보살의 지혜)를 닦고 

보현행(普賢行, 보현의 행)을 일으키고, 보현지(普賢地, 보현의 지위)에 머물러서

일일법(一一法, 낱낱의 법) 가운데에서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법을 연설하나니, 

그 법이 광대하고 갖가지로 종종(種種)로 차별하며 

불가사의한 방편으로 상응(相應)하여 교화(敎化)하고 섭수(攝受)하며, 

무량시(無量時, 무량한 시간)와 일체시(一切時, 모든 시간)에서  

중생들의 소유욕해(所有欲解, 중생들의 모든 욕망과 이해)를 따라

그들의 근성과 시(時, 시기)에 따라 (적당한 때에 맞추어) 부처님의 음성으로 설법(說法)을 하나니, 

일묘음(一妙音, 하나의 묘음)으로 

불가설하게 많은 도량의 대중들과 무량한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환희(歡喜)하게 하며,

일체의 모든 여래소(如來所, 여래의 처소)에서마다 무량하게 많은 보살들이 법계(法界)에 충만하여 

수승지(殊勝志, 수승한 뜻)를 세우고, 광대견(廣大見, 광대한 견해)을 일으켜서, 

구경(究竟)에는 일체의 제행(諸行)을 요지하여 분명하게 알며, 

보현지(普賢地, 보현 보살의 지위)에 머물러서 설법(說法)하는 바를 따라서,

염념(念念, 순간순간)마다 능히 모두에 증입(證入, 증득하여 들어감)하여

일찰나경(一刹那頃, 한 찰나 사이)에 무량하게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대지혜취(大智慧聚, 대지혜의 무더기)를 증장하게 하고 

미래겁(未來劫)이 다하도록 그와 같이 연설하여서

일체찰(一切刹, 모든 세계)에서 광대한 허공등행(虛空等行, 허공과 같은 행)을 수습하여 원만하게 성취합니다.

 

ㅡ보현 보살의 요지제근(了知諸根)의 일원(一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習普賢諸根行門(수습보현제근행문) 

成大行王(성대행왕) 於一一根中(어일일근중) 悉能了知無量諸根(실능요지무량제근)

無量心樂(무량심락) 不思議境界(불사의경계) 所生妙行(소생묘행)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제근행문(諸根行門, 모든 근기를 아는 행)을 닦아서

대행왕(大行王)이 되어 일일근(一一根, 낱낱 근기) 가운데에서

능히 무량하게 많은 제근(諸根)과 무량심락(無量心樂, 무량한 마음의 즐김)과

불가사의한 경계(境界)에서 생기는 바의 묘행(妙行)을 분명하게 압니다.

  

ㅡ보현 보살이 세간법(世間法)을 미세지혜(微細智慧)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住普賢行大廻向心(주보현행대회향심) 

得色甚微細智(득색심미세지) 身甚微細智(신심미세지) 刹甚微細智(찰심미세지) 

劫甚微細智(겁심미세지) 世甚微細智(세심미세지) 方甚微細智(방심미세지) 時甚微細智(시심미세지) 

數甚微細智(수심미세지) 業報甚微細智(업보심미세지) 淸淨甚微細智(청정심미세지) 

如是等一切甚微細(여시등일체심미세) 於一念中(어일념중) 悉能了知(실능요지)

而心不恐怖(이심불공포) 心不迷惑(심불미혹) 不亂不散(불란불산) 不濁不劣(불탁불열) 

其心一緣(기심일연) 心善寂定(심선적정) 心善分別(심선분별) 心善安住(심선안주)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행(普賢行)의 대회향심(大廻向心)에 머물러 

색(色, 물질)에 대한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신(身, 몸)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찰(刹, 세계)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겁(劫)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세(世, 세상)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방(方, 방위)에 대한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시(時, 시간)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수(數, 숫자)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업보(業報)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와,

청정(淸淨)함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를 얻나니(得), 

이와 같은 모든 것에 매우 자세한 지혜의 심미세지(甚微細智)들을

일념(一念, 한 순간)에 능히 모두 요지(了知)하나,

그 마음은 불공포(不恐怖)하여 두렵지 않으며, 

그 마음은 불미혹(不迷惑)하여, 미혹하지도 않으며,

그 마음은 불란(不亂)하여 어지럽지도 않으며, 불산(不散)하여 흩어지지도 않으며,

불탁(不濁)하여 탁하지도 않으며, 불열(不劣)하여 열등하지도 않아서

그 마음은 일연(一緣, 하나에 반연)하고 (한 가지의 일이나, 하나의 사물에 반연하고)

마음이 선적정(善寂定)하여 고요하게 잘 머무르며, 그 마음은 선불별(善分別)하여 잘 분별하고 

그 마음은 선안주(善安住)하여 잘 안주합니다.

 

ㅡ보현 보살의 중생취(衆生趣)를 아는 미세지혜(微細智慧)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住菩薩智(주보살지) 修普賢行(수보현행)

無有懈倦(무유해권) 能知一切衆生(능지일체중) 趣甚微細(생취심미세) 

衆生死甚微細(중생사심미세) 衆生生甚微細(중생생심미세) 衆生住甚微細(중생주심미세) 

衆生處甚微細(중생처심미세) 衆生品類甚微細(중생품류심미세)

衆生境界甚微細(중생경계심미세)  衆生行甚微細(중생행심미세)

衆生取甚微細(중생취심미세) 衆生攀緣甚微細(중생반연심미세) 

如是等一切甚微細(여시등일체심미세) 於一念中(어일념중) 悉能了知(실능요지)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살지(菩薩智, 보살의 지혜)에 머물러 

보현행(普賢行)을 수습함에 있어서 무유해권(無有懈倦)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능히 일체의 모든 중생들의 위(趣,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등의 갈래)를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사(衆生死, 중생들의 죽음)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생(衆生生, 중생의 태어남)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주(衆生住, 중생들의 머뭄)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처(衆生處, 중생들이 사는 처소)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품류(衆生品類, 중생들의 품류)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경계(衆生境界)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행(衆生行)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취(衆生取, 중생 취함)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와 

중생반연(衆生攀緣, 중생 각자의 반연하는 바)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심미세(甚微細) 모두를 능히 알아서,

이와 같은 일체의 모든 심미세(甚微細)를 일념(一念, 한 순간)에 능히 요지(了知)합니다.

 

ㅡ환생자는 뛸꾸, 양씨, 린포체, 라마 등으로 불립니다. 
뛸꾸는 화신이란 뜻이지만, 부처님의 4신 중 하나인 화신과는 동음이의어입니다.

대부분의 환생자는 부처가 아니니까, 높은 분이 다시 오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합니다. 
양씨는 다시 존재함, 다시 태어남을 뜻합니다.
린포체는 귀중하다는 의미입니다. 보석도 린포체라고 부르고 온갖 귀하고 좋은 것들을 다 린포체라고 부릅니다.

성스러운 산이라는 카일라스도 강 린포체(귀중한 눈(산))이라고 부르죠.
라마는 스승이란 뜻입니다.
제도적으로 겔룩파에서 린포체가 되는 방법은 제가 알기론 셋이 있습니다. 이전 생에 린포체였던지, 이번 생에 다창(티벳 사원의 특정 단위) 규모의 사원의 방장을 지내던지, 수행으로 큰 성취를 이뤄 이름을 떨치면 됩니다. 때문에 린포체 중에는 성자가 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이전 생의 수행의 성취와 상관없이 린포체가 된 경우도 아주 많아서, “활불”이라는 번역이 맞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제가 린포체를 이해하는 방식은 이전 생의 보상입니다. 공부로든(다창 방장이 되려면 학창시절 최상위권의 성적이 필요조건입니다. 충분조건은 아니고요.), 수행으로든 특정 기준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면 다음 생에 받는 보상이죠. (물론 스스로 린포체로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유언을 남기는 분들도 종종 계십니다.)
린포체가 되면 사원 내에서 많은 대우를 받습니다. 좋은 스승에게 공부를 배우고, 사원의 단체 행사시 상석에 앉고, 육체노동에서 모두 열외 되는 등의 혜택이 있습니다. 그러나 린포체의 수가 매우 많다 보니 모든 린포체가 존경받을 만한 행실을 보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원 안에서도 린포체 제도에 대해 시선이 마냥 좋지만은 않고, 여러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린포체 제도가 없어지지 않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그래도 린포체 출신 수행자들이 꽤 높은 비율로 모범적인 삶을 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린포체 역시 한 번 되면 영원히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의 행실에 따라 다음 생에 다시 찾아질지, 말지가 결정되니까요. 전생의 삶이 엉망이었다면 대개 더 이상 찾아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주 방한하시는 여러 종파의 린포체들을 린포체라는 이유만으로 존경하거나 우러러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각자 스스로의 경험으로 잘 검증한 뒤, 가르침을 받거나 스승으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린포체를 찾고 검증하는 과정 역시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습니다. 이전 생에 스승께서 입적하시기 전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을 예언하시기도 하고, 또 다른 큰 스승들께서 환생자가 태어나실 즈음 점을 쳐서 발견하시기도 하십니다. 또 새로 태어난 환생자를 발견한 후에도 정말 전생의 스승이 맞는지 여러 단계의 테스트를 거칩니다. 여러 물건 중 전생에 쓰던 물건을 정확히 골라내는 것 역시 이 과정 중 하나입니다.
관련 일화로는 현 달라이 라마 스님의 자서전에 보면, 달라이 라마 스님이 어릴 적 부모님께 “나는 높은 사람이니 잘 대우하라”고 하셨다는 대목이 있죠. 또 우리나라에도 개봉한 적 있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다큐멘터리가 이 검증 과정을 조금 다루기도 합니다. 이 다큐의 주인공인 린포체가 마지막 검증 단계를 통과 못해 사원에서 쫓겨나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죠.
깨달은 자 혹은 부처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는 견해는 소승학파의 견해입니다. 설일체유부가 대표적으로 이 견해를 주장했죠. 설일체유부에서는 부처가 되면 소멸합니다.
이와 달리 대승학파에서 부처는 화신으로 욕계의 중생을 제도하러 태어나고, 보신으로 보살들을 제도하러 태어난다고 합니다. 윤회를 벗어났는지 여부는 있는 공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번뇌장을 제거했는지 여부에 따릅니다. 윤회하는 중생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고 꼭 여전히 윤회에 머문다는 뜻은 아닌 것이죠.ㅡ출처 린포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작성자 땐진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一 十迴向品第二十五之九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⑨ ㅡ 3

ㅡ제9(第九) 무착무박해탈회향(無着無縛解脫廻向) ㅡ 3

 

ㅡ제근(諸根) 삼업(三業)의 일원(一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勤修普賢諸根行願(근수보현제근행원) 

得聰利根(득총이근) 調順根(조순근) 一切法自在根(일체법자재근) 無盡根(무진근) 

勤修一切善根根(근수일체선근근) 一切佛境界平等根(일체불경계평등근) 

受一切菩薩不退轉記大精進根(수일체보살불퇴전기대정진근) 

了知一切佛法金剛界根(요지일체불법금강계근) 

一切如來智慧(일체여래지혜) 光照(광조)  金剛焰根(금강염근) 

分別一切諸根自在根(분별일체제근자재근) 安立無量衆生於一切智根(안립무량중생어일체지근) 

無邊廣大根(무변광대근) 一切圓滿根(일체원만근) 淸淨無碍根(청정무애근)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제근행원(諸根行願, 안이비설신의 6근의 행원)을

근수(勤修)하여 부지런히 닦아

총명하고 날카롭고 영리한 총리근(聰利根)과 유순근(調順根)과, 

일체법에 자재한 일체법자재근(一切法自在根)과, 무진근(無盡根)과,  

일체의 선근근(善根根)과 일체 부처님의 경계에 대한 평등근(平等根)과  

일체보살의 수기를 받아서 불퇴전한 대정진근(大精進根)과,  

일체불법의 금강계를 분명히 아는 요지일체불법금강계근(了知一切佛法金剛界根)과,

일체의 여래지혜(如來智慧)의 광명으로 광조(光照)하는 금강염근(金剛焰根)과, 

모든 근기를 자재하게 분별하는 분별일체제근자재근(分別一切諸根自在根)과, 

무량하게 많은 중생들을 일체지에 안립시키는 안립무량중생어일체지근(安立無量衆生於一切智根)과,  

무변광대근(無邊廣大根)과 일체원만근(一切圓滿根)과, 

청정하여 걸림이 없는 청정무애근(淸淨無碍根)을 얻느니라.

 

ㅡ신통력(神通力) 상업(三業)의 일원(一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普賢行(수보현행) 得一切菩薩神力(등일체보살신력) 

所謂無量廣大力神力(소위무량광대력신력) 無量自在智神力(무량자재지신력) 

不動其身(부동기신) 普現一切佛刹神力(보현일체불찰신력) 

無碍不斷自在神力(무애부단자재신력) 普攝一切佛刹(보섭일체불찰) 置於一處神力(치어일처신력) 

一身遍滿一切佛刹神力(일신편만일체불찰신력) 無碍解脫遊戲神力(무애해탈유희신력) 

無所作一念自在神力(무소작일념자재신력) 住無性無依神力(주무성무의신력) 

一毛孔中(일모공중) 次第(차제) 安立不可說世界(안립불가설세계) 

遍遊法界諸佛道場(편유법계제불도량) 示諸衆生(시제중생) 

皆令得入大智慧門神力(개령득입대지혜문신력)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보현행(普賢行)을 닦아서(修)   

일체 보살의 신통력(薩神力)을 얻나니 소위(所謂)

무량하고 광대한 대력(大力)의 신력(神力)과, 무량하고 자재한 지혜의 지신력(智神力)과, 

그 몸이 부동(不動)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일체의 모든 불찰(佛刹) 두루 나타내는 신력(神力)과,  

걸림이 없고 끊임없이 자재(自在)한 신력(神力)과,  

일체의 불찰(佛刹)을 두루 섭수하여 한 곳에 둘 수 있는 신력(神力)과,  

일신(一身)으로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는 신력(神力)과, 

걸림이 없는 해탈로 노니는 무애해탈유희신력(無碍解脫遊戲神力)과, 

지음이 없는 한 생각이 자재한 무소작일념자재신력(無所作一念自在神力)과,  

성품이 없고 의지함이 없음에 머무는  주무성무의신력(住無性無依神力)과, 

하나의 일모공(一毛孔) 가운데에서 차제(次第, 차례대로)로 불가설한 세계을 안립(安立)하고서 

법계의 모든 부처님 도량에 두루 다니는 것을 중생들에게 보여서 

대지혜의 문에 들어가게 하는 개령득입대지혜문신력(皆令得入大智慧門神力)이니라. 

 

ㅡ입보현분(入普賢門)의 삼원(三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入普賢門(입보현문) 生菩薩行(생보살행)

以自在智(이자재지) 於一念頃(어일념경) 普入無量諸佛國土(보입무량제불국토)

一身容受無量佛刹(일신용수무량불찰) 獲能嚴淨佛國土智(획능엄정불국토지)하

恒以智慧(항이지혜) 觀見無邊諸佛國土(관견무변제불국토) 永不發起二乘之心(영불발기이승지심)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보현문(普賢門)에 들어가 보살행을 생(生)하여 일으키고 

그러한 자재지(自在智)로서 일념경(一念頃, 한 순간)에 무량한 제불국토(諸佛國土)에 두루 들어가나니,   

일신(一身)이 무량한 불찰(佛刹)을 수용하여 능히 불국토를 엄정(嚴淨)하게 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서 

항상 그 지혜(智慧)로서 무변하게 많은 모든 불국토를 관견(觀見)하여 관찰하여서 

영원히 이승(二乘)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ㅡ일신(一身)이 무량한 불찰(佛刹)을 수용하는 것은

'일다무애(一多無碍, 많고 적음이 서로 걸리지 않음)'이고

등허실지천등(等虛室之千燈, 천 개의 등을 방안에 밝혀도 서로 동등하게 비추일 뿐)'의 뜻과 같은 것으로,

나 한 사람이 모든 사람들을 수용해서 이해하여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융화하면서 함께 존재하는 것인데,

아견ㆍ아애ㆍ아집 때문에 틈이 생겨서 그렇게 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참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普賢方便行(수보현방편행)

入智慧境界(입지혜경계) 生如來家(생여래가) 住菩薩道(주보살도)

具足不可說不可說無量不思議殊勝心(구족불가설불가성무량불사의수승심) 

行無量願(행무량원) 未曾休息(미증휴식) 了知三世一切法界(요지삼세일체법계)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방편행(方便行)을 닦아서 

지혜(智慧)의 경계(境界)에 들어가 여래가(如來家)에 태어나 보살도(菩薩道)에 머물러    

불가설하고 불가설하게 많은 무량하고 불가사의한 수승심(殊勝心)을 구족하여서  

무량하게 많은 무량원(無量願)을 미증휴식(未曾休息)하여 쉬지않고 행하여 

삼세(三世)의 일체의 모든 법계(法界)를 분명히 요지 알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成就普賢淸淨法門(성취보현청정법문)

於一毛端量處(어일모단량처) 悉包容盡(실포용진) 虛空遍法界(허공편법계)

不可說不可說一切國土(불가설불가설일체국토) 皆使明見(개사명견)

如一毛端量處(여일모단랑처) 遍法界虛空界(편법계허공계)

一一毛端量處(일일모단양처) 悉亦如是(실역여시)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청정법문(淸淨法門)을 성취하여

일모단(一毛端, 하나의 털끝)에서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허공계와 법계에 있는 일체의 모든 국토를 포용하여

그러한 모두를 명견(明見)하여, 밝게 보아서

마치 하나의 일모단(一毛端)과 같은 털끝 만한 곳에서와 같이  

일체의 모든 법계와 허공계의 일일모단(一一毛端, 낱낱의 털끝)과 같은 곳에서도 모두 그와 같이 합니다. 

ㅡ어느 한 특정한 모단만이 아니라, 법계와 허공계를 모두 에워싸는, 무외(無外)한 모두를 에워쌀 수가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고 10현문의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

좁고 넓은 것이 자유자재하다는 것입니다.  

ㅡ청량스님은 광대즉입어무간(廣大卽入於無間)이라, 넓은 입장에의 그 넓은 것은 사이가 없는 작은 것의 안에도 들어간다, 즉 광대한 세계가 인허진(鄰虛塵) 안에 모두 들어간다. 가장 작은 물질의 단위를 불교에서는 인허진이라 하는데, 거의 허공과 같은 먼지를 말하는 것으로, 인허진 다음에 허공인 것입니다. 요즘 과학계에서는 무슨 분자ㆍ원자ㆍ퀵스니 해서, 더욱 작은 물질로 쪼개어서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일찍이 인허진이라 했습니다.

가장 큰 것을 바깥이 없는 무외(無外)라고 하는데, 툭 터지게 깨달은 사람의 표현과 세상 사람들의 망상으로 짜낸 표현과는 천양지차이지요. 그런 작은 먼지인 인허진이 무외(無外), 바깥이 없는 정도로 넓고 큰 것까지도 다 에워싼다.’

그와 같이 넓고 큰 것이 자유자재하다. 우리 존재는 본래 그렇게 살도록, 다 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게 수용하지 못해서 끊임없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자기 중심으로, 자기 이해만을 계산해서 주장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ㅡ보현 보살 방편의 삼원(三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成就普賢深心方便(성취보현심심방편) 

於一念心中(어일념심중) 現一衆生(현일중생) 不可說不可說劫念心(불가설불가설겁염심)

如是乃至現一切衆生(여시내재현일체중생) 爾許劫念心(이허겁염심)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깊은 마음의 심심방편(深心方便)을 성취하여

일념심(一念心, 한 순간의 마음) 가운데에서   

한 중생의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겁(세월) 동안의 마음인 겁념심(劫念心)을 나타내고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일체의 모든중생들에 이르기까지의 겁념심(劫念心)을 나타내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入普賢廻向行方便地(입보현회향행방편지) 

於一身中(어일신중) 悉能包納盡法界(실능포납진법계) 不可說不可說身(불가설불가설신) 

而衆生界(이중생계) 無所增減(무소증감) 如一身(여일신)

乃至周遍法界一切身(내지주변법계일체신) 悉亦如是(실역여시)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회향행(廻向行)의 방편지(方便地)에 두루 들어가서,

일신(一身, 한 몸) 가운데에서 법계가 다하도록 불가설하고 불가설한 몸들을 모두 능히 포용하여 들이되, 

중생계는 무소증감(無所增減)하여 늘어 나거나 줄어들지 않으며,

일신(一身, 한 몸)에서와 같이, 법계에 가득한 일체의 몸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와 같이 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成就普賢大願方便(성취보현대원방편)   

捨離一切想倒心倒見倒(사리일체상도심도견도) 普入一切諸佛境界(보입일체제불경계) 

常見諸佛虛空界等淸淨法身(상견제불허공계등청정법신) 相好莊嚴(상호장엄) 

神力自在(신력자재) 常以妙音(상이묘음) 開示演說(개시연설) 無碍無斷(무애무단) 

令其聞者(영기문자) 如說受持(여서수지) 於如來身 了無所得(요무소득)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 보살의 대원(大願)의 방편(方便)을 성취하여  

일체의 모든 상도심(想倒, 상전도, 잘못된 생각), 심도(心倒, 심전도, 잘못된 마음)

견도(見倒, 견전도, 잘못된 견해)를 떠나서 일체제불의 경계에 두루 들어가서  

허공계와 같은 부처님의 청정법신(淸淨法身)의 장엄한 상호(相好)를 항상 친견하며, 

자재한 신력(神力)의 묘음(妙音)으로, 걸림없이 무애(無碍)하고 끊임 없이 무단(無斷)하게

항상 법을 열어서 연설하여, 듣는 문자(聞者)들로 하여금 그 말씀하신 바대로 여설(如說)하게 수지(受持)하게 하시나,  

여래신(如來身)은 무소득(無所得)하여 얻는 바가 없음을 아십니다.  

 

ㅡ보현 보살 지위(地位)의 이원(二願)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普賢行(수보현행) 住菩薩地(주보살지) 

於一念中(어일념중) 入一切世界(입일체세계) 所謂入仰世界(소위입앙세계) 覆世界(복세계) 

不可說不可說(불가설불가설) 十方網一切處廣大世界(시방망일체처광대세계)

以因陀羅網分別方便(이인다라망분별방편) 

普分別一切法界(보분별일체세계) 以種種世界(이종종세계) 入一世界(입일세계)  

以不可說不可說 無量世界(이불가설불가설무량세계) 入一世界(입일세계)  

以一切法界所安立無量世界(이일체법계소안립무량세계) 入一世界(입일세계) 

以一切虛空界(이일체허공계) 所安立無量世界(소안립무량세계) 入一世界(입일세계) 

而亦不壞安立之相(이역불괴안립지상) 悉令明見(실령명견)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행(普賢行)을 닦아서(修), 보살지(菩薩地, 보살의 지위)에 머물러 

일념(一念, 한 순간)에 일체의 세계에 들어가나니, 소위(所謂)

앙세계(仰世界, 위로 우러러 보고 있는 세계), 복세계(覆世界, 벌집 같이 아래로 향한 것),

불가설하고 불가설하게 시방으로 얽혀있는 일체의 모든 곳의 광대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며,

인다라망(因陀羅網)의 분별방편(分別方便)으로,  일체의 모든 널리 분별하여서 

그러한 갖가지의 종종세계(種種世界)로써 하나의 일세계(一世界)에 들어가고, 

그러하게 불가설하고 불가설하게 많은 무량세계(無量世界)로써 하나의 일세계(一世界)에 들어가며, 

그러한 일체법계에 안립(安立)한 무량세계(無量世界)로써 하나의 일세계(一世界)에 들어가며, 

그러한 일체의 허공계(虛空界)에 안립(安立)한 무량세계(無量世界)로써 하나의 일세계(一世界)에 들어가되 

그 안립(安立)한 상(相)을 불괴(不壞)하여 무너뜨리지 않고, 그 모두를 분명하게 보게 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이무착무박해탈심) 修習普賢菩薩行願(수습보현보살행원) 

得佛灌頂(득불관정) 於一念中(어일념중) 入方便地(입방편지) 

成滿安住衆行智寶(성만안주중행지보) 悉能了知一切諸想(실능요지일체제상) 

所謂(소위) 衆生想(중생생) 法想(법상) 刹想(찰상) 

方想(방상) 佛想(불상) 世想(세상) 業想(업상) 行想(행상) 界想(계상) 解想(해상)

根想(근상) 時想(시상) 持想(지상) 煩惱想(번뇌상) 淸淨想(청정상) 成熟想(성숙상)

見佛想(견불상) 轉法輪想(전법륜상) 聞法解了想(문법해료상) 調伏想(조복상)

無量想(무량상) 出離想(출리상) 種種地想(종종지상) 無量地想(무량지상) 菩薩了知想(보살요지상)

菩薩修習想(보살수습상) 菩薩三昧想(보살삼매상) 菩薩三昧起想(보살삼매기상) 菩薩成想(보살성상) 

菩薩壞想(보살괴상)  菩薩歿想(보살몰상) 菩薩生想(보살생상) 菩薩解脫想(보살해탈상)

菩薩自在想(보살자재상)  菩薩住持想(보살주지상) 菩薩境界想(보살경계상)劫成壞想(겁성괴상)

明想(명상) 闇想(암상) 晝想(주상) 夜想(야상) 半月想(반월상) 一月想(일월상) 一時想(일시상)

一歲變異想(일세변이상) 去想(거상) 來想(내상) 住想(주상) 坐想(좌상) 睡想(수상) 覺想(각상) 

如是等想(여시등상) 於一念中(어일념중) 悉能了知(실능요지) 

而離一切想(이이일체상) 無所分別(무소분별) 斷一切障(단일체장  無所執着(무소집착) 

一切佛智(일체불지) 充滿其心(충만기심) 一切佛法(일체불법) 長其善根(장기선근) 

與諸如來(여제여래) 等同一身(등동일신) 一切諸佛之所攝取(일체제불지소섭취) 

離垢淸淨(이구청정) 一切佛法(일체불법) 皆隨修學(개수수학) 到於彼岸(도어피안)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보살의 행원을 닦아 익혀서 불관정(佛灌頂)을 얻어, 

일념(一念, 한 순간)에  방편지(方便地)에 들어가 

여러 가지의 중행(衆行)에 안주하는 지보(智寶, 지혜보배)를 성만(成滿, 성취)하여

일체의 모든 제상(諸想, 생각들)을 모두 분명하게 요지할 수 있으니, 소위(所謂)

중생이라 생각하는 중생상(衆生想)과, 법이라는 생각의 법상(法想)과, 세계라는 생각의 찰상(刹想)과 

방향(방위)에 대한 생각의 방상(方想)과, 부처라는 생각의 불상(佛想)과 세상이라는 생각의 세상(世想)과

업이라는 생각의 업상(業想)과 행한다는 생각의 행상(行想)과 경계라는 생각의 계상(界想)과

이해한다는 생각의 해상(解想)과 근기라는 생각의 근상(根想)과 시간이하는 생각의 시상(時想)과

가진다는 생각의 지상(持想)과 번뇌하는 생각의 번뇌상(煩惱想)과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청정상(淸淨想)과

성숙한다는 생각의 성숙상(成熟想)과 부처님을 친견 하는 생각의 견불상(見佛想)과,

법륜을 굴린다는 생각의 전법륜상(轉法輪想)과 법을 듣고 이해한다는 문법해료상(聞法解了想)과 조복상(調伏想)과

한량이 없다는 생각의 무량상(無量想)과 벗어난다는  출리상(出離想)과 갖가지 지위라는 생각의 종종지상(種種地想)과

한량이 없는 지위란 생각의 무량지상(無量地想)과 보살이 분명하게 안다는 생각의 보살요지상(菩薩了知想)과 

보살이 닦는다는 생각의 보살수습상(菩薩修習想)과 보살의 삼매라는 생각의 보살삼매상(菩薩三昧想)과 

보살이 삼매에서 일어난다는 생각의 보살삼매기상(菩薩三昧起想)과

보살이 성취한다는 생각의 보살성상(菩薩成想)과 보살이 무너진다는 생각의 보살괴상(菩薩壞想)과 

보살이 돌아가시는 보살몰상(菩薩歿想)과, 돌아가셔서 다시 태어나는 보살생상(菩薩生想)과,

보살이 해탈한다는 생각의 보살해탈상(菩薩解脫想)과 보살이 자유롭다는 생각의 보살자재상(菩薩自在想)과

보살이 머물러 지닌다는 생각의 보살주지상(菩薩住持想)과 보살의 경계라는 생각의 보살경계상(菩薩境界想)과 

겁이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생각의 겁성괴상(劫成壞想)과 밝다는 생각의 명상(明想)과

어둡다는 생각의 암상(闇想)과 낮이라는 생각의 주상(晝想)과 밤이라는 생각의 야상(夜想)과

보름이라는 생각의 반월상(半月想)과 한 달이라는 생각의 일월상(一月想)과 일시상(一時想)과

한 해가 변천하여 간다는 생각의 일세변이상(一歲變異想)과 간다는 생각의 거상(去想)과

온다는 생각의 내상(來想)과 머무른다는 생각의 주상(住想)과 앉아 있다는 생각의 좌상(坐想)과

잠잔다는 생각의 수상(睡想)과 깨달음이라는 생각의 각상(覺想)이라. 

이와 같은 등의 생각들을 일념(一念, 한 순간)에 모두 요지(了知)하여 분명하게 알 수 있어서 

일체상(一切想, 모든 생각, 망상)을 여의어서 분별하지 않으며,  

일체장(一切障, 일체의 장애)를 끊어서 집착하지 않으며, 

일체의 모든 불지(佛智)가 그 마음에 충만(充滿)하며,  

일체의 모든 불법(佛法)으로 그 선근(線根)이 증장하게 하여서 

모든 여래들과 더불어 동등한 일신(一身)이 되어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의 소섭취(所攝取, 포섭하시는 바)가 되나니,  

이구(離垢, 때를 벗음)하여 청정(淸淨)하며, 

일체의 불법을 모두 수수학(隨修學)하여 따라 배워서 피안(彼岸)에 이릅니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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