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ㅡ제10 등법계무량(等法界無量) 회향
제10 등법계무량(等法界無量) 회향이란, 지바라밀(智波羅蜜)로서 체(體)를 삼으며,
법을 나타냄에 있어서, 선재동자가 본 안주지신(安住地神)은 여신으로,
이와 같은 곤신(坤神)의 분(分)에서 머무는 것은 서남방에 있으며,
또 중궁(中宮)에 처해서 사계(四季)를 다스리는 것은 지혜에 처해 자비를 행하는 것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그 지신(地神)이 머무는 마갈국(摩竭國)은 여래가 성도한 나라이니,
이 지위의 승진이 중도(中道)에 도달해서 여래의 지혜와 자비가 원만함과 같은 지위라는 것을 밝힌 것이며,
마갈국은 바로 염부제의 중심으로 중궁의 지위이다.
만약 해당 방위를 따른다면 제왕의 거처가 바로 이에 해당되며,
만약 지위의 승진에 따라 수행 중이라면 지혜와 자비의 원만행(圓滿行)이 이에 해당되며,
만약 회향이 나타내는 지위의 회융(會融)을 조망한다면,
이전의 천신은 지혜를 나타내고, 이 지신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러한 두 지위가 회통하여 일위(一位)를 성취하는 것이니,
중생을 양육하는 도(道)요, 덕화(德化)를 성취하는 문(門)인 것이다.
가령 백만의 지신이 대광명을 놓아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한 것은 지혜의 자비를 행하여서 백만의 행문(行門)에 자비 광명의 비춤이 두루 한 것이며,
대지가 우레와 같이 진동하는 것은 자비심이 감응하는 것이며,
갖가지 보물로 처처에 장엄한 것은 대비행이 원만해서 업의 과보가 나타남을 밝힌 것이니,
본위인과(本位因果)의 과보로 얻은 장엄을 말하는 것이니, 자세한 해석은 그 지위에 이르면 밝히겠다.
또한 지혜와 자비가 원만히 성취되어서 가르침을 시설하여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그 지혜가 마치 신(神)과 같고 그 마음이 대지와 같아서,
마치 대지가 만물을 양육하면서도 결코 수고롭게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이,
능히 낳아서 능히 양육하고 능히 지탱하여서 시종일관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은 두 가지 뜻에서,
첫째, 해당되는 지위를 장과하여서, 처음의 “불자야” 이하 33권의 게송에 이르기까지를 26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1. “불자야” 이하 “그 선근을 증장해서 성취하게 한다(令其善根增長成就)”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지혜와 자비가 원만하기 때문에 법사(法師)가 되어서 법을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자격을 모두 갖추었음을 밝힌 분(分)이다.
2. “불자야” 이하 “성냄이 없는 범행(無恚梵行)”에 이르기까지 21행의 경문은,
보살이 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며, 스스로는 범행을 닦음을 밝힌 분이다.
3.“불자야” 이하 “또한 중생을 정법에 안주하게 한다(亦令衆生安住正法)”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보살이 범행(梵行)을 행함에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4. “불자야” 이하 “모두 일체지를 성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悉得成就一切智故)”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위와 같은 법시(法施, 법의 베풂)가 낳은 선근의 회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3세의 불법을 연설하여서 걸림이 없는 변설의 무애변(無㝵辯)과 걸림이 없는 음성의 무애음성(無礙音聲)에 들어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5. “불자야” 이하 “나와 같아서 다름이 없다(得如我無異)”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보살이 모든 것을 청정하게 하여서 위와 같은 법시(法施)와 회향으로 발원된 선근으로 다시 회향함으로써,
법계와 동등한 여래가 세간에 출현함을 보게 되고,
세계와 같은 수의 무진한 중생들을 조복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을 밝힌 분이다.
6. “불자야” 이하 “영원히 모든 청정행을 무너뜨려 잃지 않게 한다(不失壞諸淸淨行)”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보살이 회향하는 선근은 마치 법계와 같이 무량함을 밝힌 분이다.
7. “불자야” 이하 “일체법에서 영원히 망실(忘失)치 않게 함이다(於一切法永不忘失)”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법계 등의 무량한 선근회향으로 일체의 중생들이 부처를 보는 견불(見佛)하게 되고
마음이 청정하게 되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8. “불자야” 이하 “차별 없는 성품처럼 회향하다(無差別性迴向)”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법계의 성품과 같이 생기함도 없고 옮겨감도 없는 무기무천(無起無遷)의 회향을 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9. “불자야” 이하 “보살이 법을 설하는 원력(願力)을 성취함이다(成就菩薩說法願力)”에 이르기까지 27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法施)를 회향한 선근으로서 일체 중생들이 부처의 법사위(法師位)에 들어가게 되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10. “불자야” 이하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취해서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不以取著利益衆生故迴向)”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무집착(無執着)으로 회향한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11. “불자야” 이하 “걸림 없는 광명이 항상 끊이지 않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無㝵光明恒,不斷故迴向)”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세간법을 위한 것도 아니고 2승법을 위한 것도 아니고 다만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불지(佛智)에 들게 하고자 회향한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12. “불자야” 이하 “부처의 광대한 문에 들어가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入佛廣大門故迴向)”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일체의 모든 선근은 오로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어서 대보리를 성취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 분이다.
13. “불자야” 이하 “휴식하지 않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다(自在神通無有休息)”에 이르기까지 23행의 경문은,
위와 같은 등의 선근의 회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대자(大慈)ㆍ대비(大悲)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의 사무량심에 머무르며, 그와 함께 두 가지 집착의 이착(二著)을 영원히 여의어서, 불지혜(佛智慧)를 원만히 성취함을 밝힌 분이다.
두 가지 집착의 이착(二著)이란, 유(有)에 집착하고 무(無)에 집착하는 것이니,
시(是)와 비(非), 자(自)와 타(他), 피(彼)와 차(此), 내(內)와 외(外), 능(能)과 소(所)가 모두가 상대적인 둘인 것이다.
14. “불자야” 이하 “응당 선근을 수습함으로써 회향한다(應以修習善根迴向)”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이와 같이 회향할 때 3유(三有)의 5욕(五欲)의 경계에 응당 탐착하지 않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는 무탐진치(無貪瞋癡)인 까닭에 선근을 수습할 수 있음을 밝힌 분이다.
15. “불자야” 이하 “대시회를 베푼다(設大施會)”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보살이 약(惡)을 버리고 선(善)을 성취하여서 일체의 온갖 마업(魔業)을 여의고 법시회(法施會)를 시설함을 밝힌 분이다.
16. “불자야” 이하 “일체 중생의 기나긴 잠을 깨닫는 음(覺悟一切衆生長夜睡眠音)”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보살이 스스로 걸림이 없는 음성의 무애음성(無㝵音聲)의 두루 함을 얻어서, 일체 중생들의 음성을 원만하게 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17. “불자야” 이하 “정념의 지혜와 변재(正念智慧辯才)”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일체 중생들이 과악(過惡, 허물과 악)을 여의고 청정함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18. “불자야” 이하 “일체지신(一切智身)”에 이르기까지 14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선근의 회향으로 청정한 지신(智身)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19. “불자야” 이하 “안주해서 보살행을 닦는다(安住修菩薩行)”에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보살이 법시(法施)의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하여서 일체의 찰(刹, 세계)를 따라 머물면서도 휴식이 없으며,
보는 견자(見者)가 이익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이상의 열아홉 단락은 법시(法施) 회향의 선근으로 자타(自他)를 요익(饒益)하게 하는 행문(行門)을 밝힌 분이다.
이하는 30권에서의 불찰을 장엄하는 회향을 밝힌 분이니, 이 등법계무량 회향 가운데에는 모두 32권과 33권의 두 권의 경문이 있기 때문이다.
20. “불자야” 이하 “광대한 지보를 얻어서 궁극적으로 원만한 것이다(廣大智寶究竟圓滿)”에 이르기까지 3지(紙)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법시공덕보(法施功德寶)의 회향으로 무량한 불찰을 모두 장엄하고 청정하게 함을 밝힌 분이다.
21. “불자야” 이하 “이같이 널리 설하다(如是廣說)”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보살이 보살신(菩薩身)으로 모든 불찰에 두루 하며, 아울러 보배 장엄의 지위가 앞전보다 백천 배를 초과하게 된 것을 밝힌 분이다.
22. “불자야” 이하 “불자야, 보살마하살의 모든 선근을 통해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해 이같이 회향한 것이다(佛子菩薩摩訶薩以諸善根普爲一切衆生如是迴向)”에 이르기까지 28행의 경문은,
총체적으로 보살이 중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23. “다시 이 선근으로써” 이하 “다 환희하도록 하기 때문에 회향한 것이다(咸令歡喜故迴向)”에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회향을 통하여 오로지 법(法)과 행(行)을 설하여 일체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여서 마치 법계와 같이 원만하게 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24. “불자야” 이하 “여래의 온갖 회상의 도량이 평등함에 머무는 것으로써 회향한 것이다(如來衆會道場平等迴向)”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法施)와 대원(大願)의 장엄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서, 그 모두로 하여금 법계의 평등함에 머물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회향하고자 원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25. “불자야” 이하 “제10 등법계무량 회향(第十等法界無量迴向)”에 이르기까지 11행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일체의 모든 선근에 회향할 때, 이 같은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심업(心業)과 함께 10종법계(十種法界)의 청정에 안주하게 되는 것을 밝힌 분이다.
26. “보살마하살” 이하 “피안에 이른다(到於彼岸)”에 이르기까지 24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法施) 등의 선근 회향으로 일체의 모든 중생들 모두가 부처를 보게 되어서 불지견(佛知見)에 들어가서 부처의 소득(所得)하심과 같아지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25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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