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八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六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11

 

爲聞法故施其身(위문법고시기신修諸苦行求菩提(수제고행구보리

復爲衆生捨一切(부위중생사일체求無上智不退轉(구무상지불퇴전

법문을 듣기 위하여 몸을 바치고 모든 고행을 닦으면서 보리를 구하여서

다시 중생들을 위하여 모두 버리고 최상의 지혜 구함에 물러서지 않는도다.

 

以於佛所聞正法(이어불소문정법) 自捨其身充給侍(자사기신충급시) 

爲欲普救諸群生(위욕보구제군생) 發生無量歡喜心(발생무량환희심) 

부처님의 처소에서 바른 정법을 듣기 위하여 그 몸을 보시하여 시중을 들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서는 무량한 환희심을 내는도다.

 

彼見世尊大導師(피견세존대도사) 能以慈心廣饒益(능이자심광요익) 

是時踊躍生歡喜(시시용약생환희) 聽受如來深法味(청수여래심법미) 

그들이 대도사(大導師) 세존께서 자비심으로 능히 중생들을 널리 이익하게 하시는 것을 보고는

뛸듯이 기뻐하면서 환히하면서 여래의 깊은 법문을 청수(聽受)하여 듣고 받아들이는도다.

 

菩薩所有諸善根(보살소유제선근) 悉以廻向諸衆生(실이회향제중생) 

普皆救護無有餘(개능구호무유여) 永使解脫常安樂(영사해탈상안락) 

보살은 소유한 바의 모든 선근들로서 중생들에게 모두 회향하여서

남김없이 그 모두를 구호하여 해탈하게 하여서 영원히 안락하게 하는도다.

 

菩薩所有諸眷屬(보살소유제권속) 色相端嚴能辯慧(색상단엄능변혜) 

華鬘衣服及塗香(화만의복급도향) 種種莊嚴皆具足(종종장엄개구족) 

보살의 여러 권속들은 색상(色相, 모습)이 단정하고 지혜로운 변재(辯才)와

화만과 좋은 의복고 여러 가지의 도향(塗香, 바르는 향)으로 갖가지의 모든 장엄을 구족하였도다.

 

此諸眷屬甚希有(차제권속심희유) 菩薩一切皆能施(보살일체개능시) 

專求正覺度群生(전구정각도군생) 如是之心無暫捨(여시지심무잠사)

이러한 모든 권속들이 모두 희유하거늘, 보살은 이러한 모두를 보시하여

오로지 정각을 구하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잠시도 버리지 않는도다.

 

菩薩如是諦思惟(보살여시제사유) 備行種種廣大業(비행종종광대업) 

悉以廻向諸含識(실이회향제함식) 而不生於取着心(이불생어취착심)

보살은 이와 같이 제사유(諦思惟)하여 살펴서 생각하여, 갖가지의 광대업(廣大業)을 갖추어 행하여,

그 모두를 함식(含識, 중생)들에게 회향하지만 취하거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도다.

ㅡ업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는 모든 것은 전부 업이라서, 부처는 불업이 있고 보살은 보살업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업이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업이 있는 것으로 '업'이라는 말 자체에는 선악이 없지만, 무엇을 하는가에 따른 뿐인 것입니다. 

 

菩薩捨彼大王位(보살사피대왕위) 及以國土諸城邑(급이국토제성읍) 

宮殿樓閣與園林(궁전누각여원림) 僮僕侍衛皆無悋(동복시위개무린) 

보살이 대왕위(大王位)와 국토와 모든 성읍(城邑)과 궁전(宮殿), 누각(樓閣)과 함께
원림(園林)과 동복(僮僕)과 시위(侍衛) 모두를 무린(無悋, 아까워하지 않음)하게 보시(捨)하는 도다.

 

彼於無量百千劫(피어무량백천겁) 處處周行而施與(처처주행이시여) 

因以敎導諸群生(인위교도제군생) 悉使超昇無上岸(실사초승무상안) 

 무량한 백천(百天, 일만)의 겁 동안 처처(處處, 곳곳)를 다니면서 보시를 베풀고

모든 중생들을 가르쳐서 인도하여서 위없는 무상안(無上岸, 무상의 언덕)에 뛰어 오르게 하는도다.

 

無量品類各差別(무량품류각차별) 十方世界來萃止(시방세계래췌지) 

菩薩見已心欣慶(보살견이심흔경) 隨其所乏令滿足(수기소핍영만족) 

무량하게 각각으로 차별한 여러 품류(品類,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의 제취)들이

시방의 세계로부터 모여 올지라도, 보살이 보고서 환희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모자람을 만족하게 하여주는도다.

 

如三世佛所廻向(여삼세불소회향) 菩薩亦修如是業(보살역수여시업) 

調御人尊之所行(조어인존지소행) 悉皆隨學到彼岸(실개수학도피안)

삼세(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들께서 회향하시는 것과 같이 보살 역시도 그러한 업을 모두 닦으며

조어장부(調御丈夫) 인중존(人中尊)께서 행하신 바들을 모두 따라 배워서 피안에 이르는도다.   

 

菩薩觀察一切法(보살관찰일체법) 誰爲能入此法者(수위능입차법자) 

云何爲入何所入(운하위입하소입) 如是布施心無住(여시보시심무주)

보살이 일체법을 관찰하여서, 누가 능히  법에 들어가는 것이며?

어떠한 것이 들어가는 것이며? 어디로 들어가는 것인가?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법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으니)

이와 같이 보시심(布施心)으로 마음은 무주(無住)하여 머물지 않는도다.

(마음은 무주상보시를 행하여 머무는 바가 없고 집착하는 바가 없도다.) 

ㅡ보시와 보살행하는 거듭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집착하지 않아서, 상(相, 생색)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菩薩廻向善巧智(보살회향선교지) 菩薩廻向方便法(보살회향방편법) 

菩薩廻向眞實義(보살회향진실의) 於其法中無所着(어기법중무소착)

보살은 선교지(善巧智, 교묘한 지혜)에 회향하고, 보살은 방편법(方便法)에 회향하며

보살은 참된 이치의 진실의(眞實義)에 회향하지만, 그러한 법에 조금도 집착하지 않는도다.

ㅡ이상회향(離相廻向), 상(相, 생색)을 내지 않아야 되는데,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좋은 일을 해놓고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했다는 상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ㅡ무비스님 

 

心不分別一切業(심불분별일체업) 亦不染着於業果(역불염착어업과) 

知菩提性從緣起(지보리성종연기) 入深法界無違逆(입심법계무위역) 

마음은 일체의 모든 업을 분별하지 않고, 받는 업과(業果)에도 집착하여 물들지 않고

보리성(菩提性, 보리의 성품)이 인연을 쫓아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서

위역(違逆, 거스름)하지 않고 법계에 들어가는도다.

 

不於身中而有業(불어신중이유업) 亦不依止於心住(역불의지어심주) 

智慧了知無業性(지혜요지무업성) 以因緣故業不失(이인연고업불실) 

업(業)은 몸 가운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마음을 의지하여 있는 것도 아니니, 

지혜로서 업에는 성품이 없는 무업성(無業性)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인연으로 업을 잃지 않는도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업과를 받는도다)

ㅡ업은 연기, 인연의 도리로 일어나는 것이라서, 지혜로는 무업성(無業性)이라서,

업의 본성(성품)은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닌, 고정불변한 자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인연고(以因緣故), 인연을 따라 그 업의 과보를 받는다.

 

心不妄取過去法(심불망취과거법) 亦不貪着未來事(역불탐착미래사) 

不於現在有所住(불어현재유소주) 了達三世悉空寂(요달삼세실공적) 

지나간 과거의 법을 허망하게 취하지 않고, 미래의 일에도 탐착하지 않으며

현재에 머물지도 않나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공적(空寂)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요달하였도다.

ㅡ주련에도 많고, 스님들이 많이 인용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마음이 과거의 법을 망령되게 취하지 않고, 또한 미래사에도 탐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있는 바, 머무는 바에도 있지 않는 것이라서, 삼세가 다 공적함을 요달 하였지만,  

그러나 돌아보니 업의 인연은 여여해서, 결국은 업 놀음으로, 업으로써 이러쿵저러쿵 살아가더라.  

인연의 자성(自性)은 없지만, 전부 인연과 업이고,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이지만 전부가 죄업 때문에 문제가 야기되지만,

이치는 이치대로 분명히 있어서, 업이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사실 또한 분명히 있지만, 

그 본성은 그야말로 텅 비어 없는, 적정한 것이니까 

마음으로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든지 간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미래사에도 탐착할 것도 아니고, 현재에도 머물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菩薩已到色彼岸(보살 이도색피안) 受想行識亦如是(수상행식역여시) 

超出世間生死流(초출세간생사류) 其心謙下常淸淨(기심겸하상청정) 

보살은 이미 색(色)의 피안에 이르렀으며, 수ㆍ상ㆍ행ㆍ식 또한 그러하여서
세간의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났으니, 그 마음은 겸손하여 항상 청정하도다.

 

諦觀五蘊十八界(체관오온십팔계) 十二種處及己身(십이종처급기신) 

於此一一求菩提(어차일일구보리) 體性畢竟不可得(체성필경불가득)

5온(五蘊)과 18계(十八界), 12처(十二處)와 스스로의 몸까지를 체관(諦觀)하여 살피고 관찰하여서 
그 하나하나에서 보리를 구하자 하나, 
그 체성(體性, 성품)은 필경에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한 것이로다.

ㅡ십이처(十二處)에서 처(處)는 들어오는 곳으로  육근(六根) + 육경(六境)
육근(六根) 안, 이, 비, 설, 신, 의=6내처(六內處)  + 육경(六境)ㅡ색, 성, 향, 미, 촉, 법=6외처(六外處)  
6근(六根)은 안이비설신의의  안계(眼界)  이계(耳界) 비계(鼻界) 설계(舌界) 신계(身界) 의계(意界)

육경(六境)은 색계(色界) 성계(聲界)  향계(香界)  미계(味界)  촉계(觸界)  법계(法界) 

 

ㅡ18계(十八界)는 육근(六根) + 육경(六境) + 육식(六識)

육식(六識)은, 안식계(眼識界) 이식계(耳識界) 비식계(鼻識界) 설식계(舌識界) 신식계(身識界) 의식계(意識界)

 

不取諸法常住相(불취제법상주상) 於斷滅相亦不着(어단멸상역불착) 

法性非有亦非無(법성비유역비무) 業理次第終無盡(업리차제종무진) 

제법이 상주(常住)하여 항상하다는 상(相)을 취하지 않고, 

단멸(斷滅)하여 곧 사라지는 것이라는 상(相)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법성(法性, 현상과 성품)은 있지도 않은 것이요 없지도 않은 것이라.

업리(業理, 업의 이치)는 차제(次第, 차례)대로 무진하여 계속 되는 것이로다. 

ㅡ상주(常住)와 단멸(斷滅), 있다(有)와 없다(無)를 떠나서 중도(中道)라는 것 입니다.  

 

不於諸法有所住(불어제법유소주) 不見衆生及菩提(불견중생급보리) 

十方國土三世中(시방국토삼세중) 畢竟求之無可得(필경 구지무가득) 

제법(諸法)이 머물러 있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으며, 중생이나 보리는 보지도 않으며, 

시방 국토의 삼세 가운데에서 끝까지 구하여 찾아도 (실체를) 필경에는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로다

ㅡ우리가 이렇게 번듯이 보고ㆍ듣고ㆍ말하고ㆍ주고ㆍ받고ㆍ시시비비하면서 살고 있지만, 또 어떤 한 면으로는 적멸할 뿐이고, 그러면서 또한 이렇게 여여하게 실재하지만, 필경에는 그 실체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若能如是觀諸法(약능여시관제법) 則如諸佛之所解(즉여제불지소해) 

雖求其性不可得(수구기성불가득) 菩薩所行亦不虛(보살소행역불허)

만약 이와 같이 제법(나ㆍ너, 산하대지ㆍ산천초목 등 모든 존재)을 능히 관찰할 수 있다면,

곧 부처님께서 이해하신 바와 같을 것이니
비록 그 성품을 구하여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보살의 행을 행하는 바가 헛되지 않도다.ㅡ 중도(中道)

 

菩薩了法從緣有(보살요법종연유) 不違一切所行道(불위일체소행도) 

開示解脫諸業跡(개시해탈제업적) 欲使衆生悉淸淨(욕사중생실청정)

보살은 법이 인연을 따라 있게 되는 것임을 알아, 일체의 행할 바의 소행도(所行道)를 어기지 않고

제업(諸業)의 적(跡, 자취)을 개시(開示)하여  해설하나니, 

(그러한 이치를 열어 보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하게 (훌륭하게)하는도다.

 

是爲智者所行道(시위지자소행도) 一切如來之所說(일체여래지소설)  

隨順思惟入正義(수순사유입정의) 自然覺悟成菩提(자연각요성보리) 

이러함이 지자(智者)가 행하여야 할 바의 소행도(所行道)이라 (중도로 행하는 바이라)

일체의 모든 여래(如來, 깨달으신 분)들께서 말씀하신 바이니

수순하여 사유하여서 정의(正義, 팔정도)에 든다면, 보리를 자연각오(自然覺悟)하여 깨달아 이루리라

 

諸法無生亦無滅(제법무생역무멸) 亦復無來無有去(역부무래무유거)

不於此死而生彼(불어차사이생피) 是人悟解諸佛法(시인오해 제불법) 

제법(諸法)은 무생(無生)이요 또한 멸하지도 않는 무멸(無滅)이요,

역시 오는 것도 아닌 무래(無來)요 감도 없는 무유거(無有去)요,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라면,

그 사람은 제불법(諸佛法)을 오해(悟解)하여 깨달아 이해한 것이로다

 

了達諸法眞實性(요달제법진실성) 而於法性無分別(이어법성무분별)

知法無性無分別(지법무성무분별) 此人善入諸佛智(차인선입제불지) 

제법의 진실성(眞實性)과 법성(法性)에 분별이 없다는 것을 요달하여, 법의 성품에 분별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이러한 이는 모든 부처님의 불지(佛智)에 잘 들어간 것이로다.

 

法性遍在一切處(법성편재일체처) 一切衆生及國土(일체중생급국토) 

三世悉在無有餘(삼세실재무유여) 亦無形相而可得(역무형상이가득) 

법성(法性)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하여 일체의 중생들과 국토와 

삼세에 모두 빠짐없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역시 그 형상(形相)을 얻을 수가 없도다.

ㅡ법성은 일체의 모든 곳(處)과, 일체중생과 모든 국토에 두루 가득 차있지만 법성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닌, 

전부 법성이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전부 '법성'이다. 

‘너도 법성ㆍ나도 법성ㆍ산도 법성ㆍ하늘도 법성ㆍ강물도 법성ㆍ바다도 법성으로 법성 아닌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一切諸佛所覺了(일체제불소각료) 悉皆攝取無有餘(실개섭취무유여) 

雖說三世一切法(수설삼세일체법) 如是等法悉非有(여시등법 실비유) 

일체의 모든 제불들이 소각료(所覺了)하시어 깨달으신 바를

그러한 모두를 남김없이 섭취(攝取)하여, 비록 삼세(三世)의 일체법을 설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법 모두는 있는 것이 아닌 비유(非有)로다.

 

如諸法性遍一切(여제법성편일체) 菩薩廻向亦復然(보살회향 역부연) 

如是廻向諸衆生(여시회향제중생) 常於世間無退轉(상어세간무퇴전)

 

제법의 법성(성품)이 일체에 두루한 것을 알며, 보살의 회향 역시도 그러하다는 것을 아나니

(보살이 선용기심善用其心하여 그 마음 잘 쓰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아나니)

세간에서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에게 항상 회향하면서 물러서지 않는도다. 

 

화엄경(華嚴經) 제28권을 마침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八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六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10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如是廻向(여시회향)  

則爲了達一切諸法(즉위요달일체제법則爲承事一切諸佛(즉위승사일체제불

無有一佛(무유일불而不承事(이불승사無有一法(무유일법而不供養(이불공양

無有一法(무유일법而可滅壞(이가멸괴無有一法(무유일법而可乖違(이가괴위

無有一物(무유일물而可貪着(이가탐착無有一法(무유일법而可厭離(이가염리

不見(불견) 內外一切諸法(내외일체제법有少滅壞(유소멸괴違因緣道(위인연도)

法力具足(법력구족無有休息(무유휴식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이와 같이 회향은 곧 일체 법을 요달(了達)하여 분명히 통달하는 것이요,

모든 부처님을 섬기는 것이니, 한 부처님도 섬기지 않는 분이 없으며,

하나의 일법(一法)도 공양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하나의 일법(一法)도 파괴되지 않게 하며,

하나의 일법(一法)도 괴위(乖違)하여 어그러지거나 위배하지 않으며,

하나의 일물(一物)도 탐착할 할 것이 없으며, 하나의 일법(一法)도 싫어서 떠날 것이 없으며,

안과 밖의 일체의 제법(諸法)이 조금이라도 파괴되어 사라지거나 인연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보지 않으며,

법력(法力)을 구족하고자 쉬지 않나니, 

 

佛子(불자是爲菩薩摩訶薩(시위보살마하살第六(제육) 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견고일체선근회향)

불자들이여, 이러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견고한 일체 선근을 따르는 제6의 수순견고일체회향입니다.

 

ㅡ회향 후에는 선용기심(善用其心)으로, 비록 작은 공덕을 닦았더라도 그 뒤에 마음으로 빌어주고,

잘 되기를 바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ㅡ화엄경에는 인연ㆍ연기ㆍ인과의 도리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는가?라고 묻는다면,

선가에서는 “마음을 깨쳤다.”하고, 학자들은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시성정가(始成正覺)하니 세상이 전부 다이아몬드이고 사람들이 전부 부처님이더라!

그러므로 우리는 보살행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치와 연기의 도리가 깔려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해서 성불에 이른다는 것도 결국은 연기의 이치이고, 인과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어떤 작은 문제, 작은 멸괴(滅壞)에서도 인연의 도리 어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즉 그러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법력(法力)을 남다른 어떤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치를 잘 아는 것이 법력인 것입니다.ㅡ무비스님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住此廻向時(주차회향시) 常爲諸佛(상위제불) 之所護念(지소호념) 

堅固不退(견고불퇴) 入深法性(입심법성) 修一切智(수일체지)

隨順法義(수순법의) 隨順法性(수순법성) 隨順一切堅固善根(수순일체견고선근) 

隨順一切圓滿大願(수순일체원만대원) 具足隨順堅固之法(구족수순견고지법) 

一切金剛(일체금강) 所不能壞(소불능괴) 於諸法中(어제법중) 而得自在(이득자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회향에 머물 때에는 항상 부처님들의 호념하심을 받아서,

견고하고 물러남이 없이 깊은 법성(法性)에 들어가며,

일체지를 닦아서 법의 뜻을 따르는 수순법의(隨順法義)하며,

(법法은 드러난 현상, 의義는 그 법에 내재되어 있는 이치)

법의 성품을 따르는 수순법성(隨順法性)하며, (법法은 눈에 드러난 현상, 성性은 본질, 실상) 

일체의 견고한 선근에 수순하며, 일체의 원만한 대서원에 수순하며, 견고한 법을 구족하여 수순하나니,

일체의 금강으로도 가히 깨뜨릴 수 없는 것이요, 제법 가운데에서 자재함을 얻게 됩니다.”

ㅡ총체적으로는 단바라밀(檀波羅蜜)을 행하는 것이 찰해(刹海)에 두루 해서 법신(法身)과 지신(智身)을 무너뜨리지 않고,
통화(通化)를 성취하여 대자비를 키움으로써 부처의 소행과 같기 때문에 명칭을 삼음을 밝힌 것이다.

 

爾時(이시) 金剛幢菩薩(금강당보살) 觀察十方(관찰시방) 觀察衆會(관찰중회)

觀察法界已(관찰법계이) 入於字句(입어자구) 甚深之義(심심지의) 

修習無量廣大之心(수습무량광대지심) 以大悲心(이대비심) 普覆世間(보부세간) 

長去來今佛種性心(장거래금불종성심) 入於一切諸佛功德(입어일체제불공덕) 

成就諸佛自在力身(성취제불자재력신) 觀諸衆生心之所樂(관제중생심지소락) 

隨其善根所可成熟(수기선근소가성숙) 依法性身(의법성신) 爲現色身(위현색신)

承佛神力(승불신력) 而說頌言(이설송언) 

그 때에 금강당보살이 시방을 관찰하고 중회(衆會, 대중)을 관찰하고, 법계를 관찰하고,

자구(字句, 화엄경의 한 자ㆍ한 자, 한 구절ㆍ한 구절)의 깊은 이치에 들어가서,

무량하고 광대한 마음을 수습(修習)하고, 대비심으로 세간을 두루 덮고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 종성(種性)을 길러 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들의 공덕에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들의 자재하신 능력의 몸을 성취하며,

중생들이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를 헤아려 살피고, 그 선근을 따라 능히 성숙할 수 있게 하며,

법성신(法性身, 진리의 몸, 진여불성)을 의지하여 색신(色身, 작용의 몸)을 나타내어서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게송으로 설하였다.

ㅡ여기의 법성신(法性身)은 진리자체ㆍ법 자체의 몸, 무위진인이고,

색신(色身)은 법성신(진여불성)이 시키는 대로하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이 안 시키면 여러분이 지금 어떻게 공부하며, 말을 어떻게 하고 듣겠습니까? 

전부 진여불성의 작용입니다. 김장할 때 고무 장갑을 끼고 고춧가루, 무, 배추, 양념, 그릇도 만지고지만, 

우리는 고무장갑만 만진 겁니다. 즉, 전부 마음입니다. 경계도 마음이고 주관인 나도 마음, 객관도 전부 마음입니다.

주관 객관이 있을 수 없는, 따지고 보면 사실 주관도 객관도 없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菩薩現身作國王(보살현신작국왕) 於世位中最無等(어세위중최무등) 

福德威光勝一切(복덕위광승일체) 普爲群萌興利益(보위군맹흥이익) 

보살이 그 몸을 나투어 국왕이 되시니, 세간의 지위로서는 짝할 수 있는 이가 없는 최무등(最無等)이라

복덕과 위엄의 광명이 가장 수승하여서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을 일으키는도다.

ㅡ국왕이 아니라 어떤 작은 지위의 장(長)일지라도 그 지위를 보살행으로 활용해서 그 지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其心淸淨無染着(기심청정무염착) 於世自在咸遵敬(어세자재함준경) 

弘宣正法以訓人(홍선정법이훈인) 普使衆生獲安隱(보사중생획안은) 

그 마음이 청정하여 물들지 않으며, 세상에서 자재하시니 모두가 공경하며, 

바른 정법을 널리 펼쳐 가르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시는도다.

 

現生貴族昇王位(현생귀족승왕위) 常依正敎轉法輪(상의정교전법륜)

稟性仁慈無毒虐(품성인자무독학) 十方에 敬仰皆從化(경앙개종화) 

귀족 가운데에 태어나시어 왕이 되었으며, 바른 가르침에 의지하여 법륜(가르침)을 굴리시며, 

성품이 인자하시어 독학(毒虐, 모질고 혹독함)이 없으시니, 시방이 우러러며 교화를 따르는도다.

 

智慧分別常明了(지혜분별상명료) 色相才能皆具足(색상재능개구족) 

臨馭率土靡不從(임어솔토미불종) 摧伏魔軍悉令盡(최복마군실령진) 

지혜로 분별함이 항상 명료(明了)하시며, 색상(色相, 몸)과 재능을 두루 구족하시어

솔토(率土, 나라)를 다스리시니 모두가 복종하며, 마군을 최복(摧伏)하여 남김없이 굴복시키는도다.

 

堅持淨戒無違犯(견지정계무위범) 決志堪忍不動搖(결지감인부동요) 

永願蠲除忿恚心(영원견제분에심) 常樂修行諸佛法(상락수행제불법)이 

청정한 계율을 잘 지키어 범하지 않으시며,

결지(決志, 결정한 뜻)으로 감인(堪忍, 인내)하심에 흔들림이 없으시며, 

분에심(忿恚心, 성내는 마음)을 영원히 없애어 항상 모든 부처님들의 불법을 즐겨 수행하기를 원하는도다.

 

飮食香鬘及衣服(음식향만급의복)과 車騎牀褥座與燈(거기상욕좌여등) 

菩薩이 悉以給濟人(보살실이급제인) 幷及所餘無量種(병급소여무량종) 

음식이나 향과 화만(꽃 타래) 의복과 마차와 침상과 좌석과 등불의

이러한 모든 것을 보살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그 밖의 무량한 물건들도 모두 주는도다.

 

爲利益故而行施(위이익고이행시) 令其開發廣大心(영기개발광대심) 

於尊勝處及所餘(어존승처급소여) 意皆淸淨生歡喜(의개청정생환희) 

중생들에게 이익되게 하시고자 보시를 행하여, 그들로 하여금 광대한 마음을 내게 하시나니

존승처(尊勝處, 높으신 곳)이거나 그 외의 다른 곳에 이르기까지, 그 의(意, 뜻) 청정하여 환희하시는도다.

 

菩薩一切皆周給(보살일체개주급) 內外所有悉能捨(내외소유 실능사) 

必使其心永淸淨(필사기심영청정) 不令暫爾生狹劣(불령잠이생협렬) 

보살이 일체의 모든 것을 보시할 때에는 안팎으로 가진 모든 것을 베풀어 주되

 마음은 항상 청정하여 결코 잠시도 용열(狹劣)하지 않으시도다.

 

或施於頭或施眼(혹시어두혹시안) 或施於手或施足(혹시어수혹시족) 

皮肉骨髓及餘物(피육골수급여물) 一切皆捨心無悋(일체개사심무린) 

혹은 머리를 보시하고, 혹은 눈을 보시하고, 혹은 수족(手足, 손과 발)을 보시하며,

피부, 살, 뼈, 골수와 함께 다른 사물들까지의 모두를 보시하여도 심무린(心無悋, 아까워지 않는 마음)이로다.

 

菩薩身居大王位(보살신거대왕위) 種族豪貴人中尊(종족호귀인중존) 

開口出舌施群生(개구출설시군생) 其心歡喜無憂戀(기심환희무우연) 

보살의 몸으로 대왕의 지위에 오르는 종족(種族, 문벌)도 호귀하신 인중존(人中尊)으로 가장 높으시나,

입을 열어 혀를 중생에게 보시하되,  마음 환희하여 무우연(無憂戀)으로 미련이 없으시도다.

 

以彼施舌諸功德(이피시설제공덕) 廻向一切諸衆生(회향일체제중생) 

普願藉此勝因緣(보원자차승인연) 悉得如來廣長舌(실득여래광장설) 

그렇게 혀를 보시한 공덕으로써 일체의 중생들에게 회향하시나니, 

이러한 수승한 승인연(勝因緣)으로 모두가 여래의 광장설(廣長舌, 설법 잘하는 혀)을 얻기를 원하는도다.

 

或施妻子及王位(혹시처자급왕위) 或施其身作僮僕(혹시기신작동복) 

其心淸淨常歡喜(기심청정상환희) 如是一切無憂悔(여시일체무우회) 

혹 처자와 왕의 지위를 보시하여 내어주기도 하고, 혹  몸으로는 동복(僮僕, 하인)이 되기도 하나, 

그 마음이 청정하고 항상 환희하여 이러한 모든 일에 무우회(無憂悔, 후회하고 근심하지 않음)로다.

 

隨所樂求咸施與(수소락구함시여) 應時給濟無疲厭(응시급제무피염) 

一切所有皆能散(일체소유개능산) 諸來求者普滿足(제래구자 보만적) 

즐겨 구하는 바를 따라 모두를 베풀어 주되, 응시(應時)하여 마땅한 때를 따라 주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능히 산(散, 흩음, 보시)하여서 구하는 모든 이들을 만족하게 하는도다.

 

ㅡ어째서 수순견고일체선근 회향이라 하는 것인가?
경문에서 “불자야, 이렇게 회향할 때는 바로 부처를 따라 머무는 수순불주(隨順佛住)요,
법을 수순해서 머무는 수순법주(隨順法住)요,
지혜에 수순하여 머무는 수순지주(隨順智住)요,
보리에 수순하여 머무는 수순보리주(隨順菩提住)이다”고 하였으니,
총체적으로는 단바라밀(檀波羅蜜)을 행하는 것이 찰해(刹海)에 두루 해서 법신(法身)과 지신(智身)을 무너뜨리지 않고,
통화(通化)를 성취하여 대자비를 키움으로써 부처의 소행과 같기 때문에 명칭을 삼음을 밝힌 것이다.

또 해석하기를, 이(理)로써 행을 따르는 이순행(理順行)으로써 행이 이(理)를 따르는 행순리(行順理)요,
지혜가 자비를 따르는 지순비(智順悲)로써 자비가 지혜를 따르는 비순지(悲順智)요,
방편의 원력으로 지해(智海)를 야기시키며, 자비문을 성취하여 조화롭고 자재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수순견고일체선근(隨順堅固善根) 회향이 되는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八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六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9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以此善根(이차선근

爲欲利益(위욕이익) 一切衆生故廻向(일체중생고회향

爲欲安樂(위욕안락) 一切衆生故廻向(일체중생고회향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得大義利故(득대의리고廻向(회향)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悉得淸淨故(실득청정고廻向(회향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悉求菩提故(실구보리고廻向(회향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悉得平等故(실득평등고廻向(회향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悉得賢善心故(실득현선심고廻向(회향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悉入摩訶衍故(실입마하연고廻向(회향)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悉得賢善智慧故(실득현선지혜고廻向(회향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悉具普賢菩薩行願(실구보현보살행원滿十力乘(만심력승

現成正覺故(현성정각고廻向(회향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선근으로써 일체의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이 대의리(大義利, 큰 의의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이 보리를 구하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이 평등함을 얻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이 선한 마음의 선심(善心)을 얻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이 마하연(摩訶衍, 대승)에 들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이 어질고 선한 지혜의 현선지혜(賢善智慧)를 얻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이요,

일체의 중생들 모두가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행과 원)을 갖추고

십력승(十力乘, 불승)을 만족하여서 정각을 이루게 하고자 회향하는 것입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諸善根(이제선근)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身口意業(신구의업) 皆悉解脫(개실해탈) 無着無繫(무착무계) 無衆生想(무중생상)  

無命者想(무명자상) 無補特伽羅想(무보특가라상) 無人想(무인상) 無童子想(무동자상)

無生者想(무생자상) 無作者想(무작자상) 無受者想(무수자상) 無有想(무유상) 無無想(무무상) 

無今世後世想(무금세후세상) 無死此生彼想(무사차생피상) 無常想(무상상)

無無常想(무무상상) 無三有想(무삼유상) 無無三有想(무무삼유상)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모든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할 때,

신구의(身口意)의 업(業)이 모두 해탈하여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는 무착무계(無着無繫)요,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는 무중생상(無衆生想)이요 

수명을 가지고 살아있다는 생각도 없는 무명자상(無命者想)이요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는 무보특가라상(無補特伽羅想)이요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는 무인상(無人想)이요, 동자라는 생각도 없는 무동자상(無童子想)이요,

생겨난다는 생각도 없는 무생자상(無生者想)이요,  짓는다는 생각도 없는 무작자상(無作者想)이요,
받는다는 생각도 없는 무수자상(無受者想)이요 

있다는 생각도 없는 무유상(無有想)이요, 없다는 생각도 없는 무상상(無無想)이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이라는 생각도 없는 무금세후세상(無今世後世想)이요,

여기서 죽어 저기에서 난다는 생각도 없는 무사차생피상(無死此生彼想)이요,

영원하다는 생각도 없는 무상상(無常想)이요, 무상하다는 생각도 없는 무상상(無常想)이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유라는 생각도 없는 무삼유상(無三有想)이요,

삼유가 없다는 생각도 없는 무무삼유상(無無三有想)이요,

생각도 아닌 무상(無想)이요, 생각이 아닌 것도 아닌 비비상(非非想)입니다.

ㅡ명자상(命者想), 나이에 대한관념, '이 나이에 뭔가를 배워서 뭐하나', '이 나이에 ~~ ' 등으로 생각하는,

나이에 대한의식의 수자상(壽者相).  

ㅡ보특가라(補特伽羅), , 윤회의 주체, 12류 중생, 윤회를 거듭하는, 삭취취(數取趣).

 

非想(비상) 非非想(비비상) 如是(여시) 非縛廻向(비박회향) 非縛解廻向(비박해회향) 

非業廻向(비업회향) 非業報廻向(비업보회향) 非分別廻向(비분별회향) 

非無分別廻向(비무분별회향) 非思廻向(비하회향) 非思已廻向(비사이회향) 

非心廻向(비심회향) 非無心廻向(비무심회향) 

이와 같이 속박이 아닌 비박(非縛)으로 회향하는 것이요,

속박을 푼 것이 아닌 비박해(非縛解)로 회향하는 것이요,

업이 아닌 비업(非業)으로 회향하는 것이요, 업의 과보가 아닌 비업보(非業報)로 회향하는 것이요, 

분별이 아닌 비분별(非分別)로 회향하는 것이요,

분별이 없는 것도 아닌 비무분별(非無分別)로 회향하는 것이요, 

생각이 아닌 비사(非思)로 회향하는 것이요, 생각해서 마친 것이 아닌 비사이(非思已)로 회향하는 것이요, 

마음이 아닌 비심(非心)으로 회향하는 것이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닌 비무심(非無心)으로 회향는 것입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不着內(불착내) 不着外(불착외) 不着能緣(불착능연) 不着所緣(불착소연) 

不着因(불착인) 不着果(불착과) 不着法(불착법) 不着非法(불착비법) 

不着思(불착사) 不着非思(불착비사) 不着色(불착색) 不着色生(불착색생) 

不着色滅(불착색멸) 不着受想行識(불착수상행식) 不着受想行識生(불착수상행식생) 

不着受想行識滅(불착수상행식멸)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회향할 때, 안에도 집착하지 않는 부착내(不着內)요,

밖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외(不着外)요, 반연하는 (나 자신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능연(不着能緣)이요,

반연하는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소연(不着所緣)이요,

직접적인 원인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인(不着因)이요, 결과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과(不着果)요,

법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법(不着法)이요, 법이 아닌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비법(不着非法)이요,

생각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사(不着思)요, 생각이 아닌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비사(不着非思)요,

색(물질)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색(不着色)이요,

색(물질)이 생기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색생(不着色生)이요,

색이 멸하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색멸(不着色滅)이요,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수상행식(不着受想行識)이요,

수ㆍ상ㆍ행ㆍ식이 생기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수상행식생(不着受想行識生)이요,

수ㆍ상ㆍ행ㆍ식이 멸하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수상행식멸(不着受想行識滅)입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若能於此諸法(약능어차제법) 

不着則不縛色(불착즉불박색) 不縛色生(불박색생) 不縛色滅(불박색멸) 

不縛受想行識(불박수상행식) 不縛受想行識生(불박수상행식생) 不縛受想行識滅(불박수상행식멸)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만약 이러한 모든 법에 능히 집착하지 않는다면,

색(물질)이 생기는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불박색생(不縛色生)이요,

색(물질)이 멸하는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불박색멸(不縛色滅)이요,

수ㆍ상ㆍ행ㆍ식에도 속박되지 않는 불박수상행식(不縛受想行識)이요, 

수ㆍ상ㆍ행ㆍ식이 생기는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불박수상행식생(不縛受想行識生)이요, 

수ㆍ상ㆍ행ㆍ식이 멸하는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불박수상행식멸(不縛受想行識滅)입니다.

   

若能於此諸法(약능어차제법) 不縛則亦於諸法不解(불박즉역어제법불해) 

何以故(하이고 無有少法(무유소법) 若現生(약현생) 若已生(약이생) 若當生(약당생) 

無法可取(무법가취) 無法可着(무법가착) 一切諸法(일체제법) 自相如是(자상여시) 

無有自性(무유자성) 自性相離(자성상이) 非一非二(비일비이) 非多非無量(비다비무량) 

非小非大(비소비대) 非狹非廣(비협비광) 非深非淺(비심비천) 

非寂靜非戲論(비적정비희론) 非處非非處(비처비비처) 非法非非法(비법비비법) 

非體非非體(비체비비체) 非有非非有(비유비비유) 

만약 이러한 모든 법에 능히 속박되지 않는다면, 곧 모든 법으로부터 해탈하지도 않는 것이니, 

(우리의 진여불성은 본래 속박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서 또한 풀 것도 없는 것이니) 

그 까닭을 말하자면, 어떠한 작은 소법(少法)일지라도,

지금 생겨나거, 이미 생겨 났거나, 장차 생겨 날 것이 없는 것이므로,(본래 여여한 것이므로) 

법을 취할 수도 없는 것이요, 또한 법에 집착할 수도 없는 것이라, 일체법의 자상(自相)이 그러한 것이요,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라서 자성(自性)과 상(相)을 여의었으며,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닌 비일비이(非一非二)이요,

많은 것도 아니고 무량한 것도 아닌 비다비무량(非多非無量)이요, 

작은 것도 아니고 큰 것도 아닌 비소비대(非小非大)요,

좁은 것도 아니고 넓은 것도 아닌 비협비광(非狹非廣)이요,

깊은 것도 아니고 얕은 것도 아닌 비심비천(非深非淺)이요,

고요한 것도 아니고 희론거리도 아닌 비적정비희론(非寂靜非戲論)이요,

옳은 곳도 아니고 그른 곳도 아닌 비처비비처(非處非非處)이요,

옳은 법도 아니고 그른 법도 아닌 비법비비법(非法非非法)이요,

자체도 아니고 자체가 아닌 것도 아닌 비체비비체(非體非非體)이요,

있는 것도 아니고 있지 않는 것도 아닌 비유비비유(非有非非有)입니다.

 

菩薩(보살) 如是觀察諸法(여시관찰제법) 則爲非法(즉위비법) 於言語中(어언어중) 

隨世建立非法爲法(수세건립비법위법) 不斷諸業道(부단제업도) 不捨菩薩行(불사보살행) 

求一切智(구일체지) 終無退轉(종무퇴전) 了知(요지) 一切業緣如夢(일체업연여몽) 

音聲如響(음성여향) 衆生如影(중생여영) 諸法如幻(제법여환)  而亦不壞(이역불괴)

因緣業力(인연업력) 了知諸業(요지제업) 其用廣大(기용광대)  解一切法(해일체법) 

皆無所作(개무소작) 行無作道(행무작도) 未曾暫廢(미증잠폐) 

佛子(불자) 此菩薩摩訶薩(차보살마하살) 住一切智(주일체지) 若處非處(약처비처) 

普皆廻向(보개회향) 一切智性(일체지성) 於一切處(어일체처) 皆悉廻向(개실회향) 無有退轉(무유퇴전)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법이 아닌 비법(非法)이라는 것을 관찰하고,

언어(言語) 가운데에서 (언어로서) 법이 아닌 것을 법으로 삼아서 세상을 따라 건립하여 표현하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치이지만, 세상을 따라서 건립하여서 

비법(非法)을 위법(爲法), 법이 아닌 것으로써 법을 삼아서 표현하며) 

모든 업도(業道)를 끊지 않고, 보살행을 버리지도 않으면서 일체지를 구하여 끝내 퇴전하지 않으며, 

(중생의 업이 다 끝난 뒤, 번뇌가 다 사라진 뒤에는 보살행을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업(業)을 가지고 보살행을 하고, 욕심 가운데에 있으면서 선을 행하는 것이요) 

일체의 업연(業緣, 업과 인연)이 꿈과 같은 여몽(如夢)이요,

음성은 메아리와 같은 여향(如響)이요, 중생은 그림자와 같은 여영(如影)이요,

제법은 허깨비(환상)와 같은 여환(如幻)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역시 일체의 모든 인연(因緣)의 업연(業緣, 업과 인연)을 무너뜨리지도 않나니,

(살면서 지은 일체 인연의 업력을 그대로 가지고서 보살행을 하는, 중도이니) 

제업(諸業, 모든 업)의 작용이 광대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서,

일체법 모두는 지음이 없는 무소작(無所作)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지음이 없는 무작도(無作道)를 행함에 있어서 잠시도 멈추지 않나니,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일체지에 머무르기에, 옳은 곳이나 그른 곳이나 간에 모든 일체지의 성품에 회향하나니, 일체의 모든 곳에서 두루 회향하여 퇴전(退轉)하지 않습니다.

 

ㅡ회향의 의미

以何義故(이하의고) 說名廻向(설명회향) 永度世間(영도세간)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永出諸蘊(영출제온)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度言語道(도언어도)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離種種想(이종종상)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永斷身見(영단신견)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永離依處(영리의처)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永絶所作(영절소작)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永出諸有(영출제유)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永捨諸取(영사제취) 至於彼岸(지어피안) 故名廻向(고명회향) 永出世法(영출세법) 至於彼岸(지어피안) 

어떠한 뜻으로 회향(廻向)이라 이름하는 것인가? 세간을 영원히 건너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

(세상에 그대로 살면서 세상을 초월한 삶을 사는 출세간, 즉 피안에 이르는 것을 회향이라 하고)

여러 가지 쌓인 것의 제온(諸蘊, 오온)에서 길이 벗어나,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며,

(5온을 벗어난 진아眞我, 참나, 차별 없는 무위진인으로 사는 그것이 회향이요)

말로 하는 언어(言語)의 도(道)를 건너서 (벗어나)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

(진여불성을 떠나서는 한마디 의 말도 할 수가 없지만, 그 말을 떠나서 진여불성을 아는 것을 회향이라 하고) 

갖가지의 생각을 떠나서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갖가지의 생각을 떠난것이 회향이요)

몸이란 소견의 신견(身見)을 끊고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

(5온이 나 라고 집착하는 소견을 끊고서 진여불성에 이르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 

의지하는 곳(오온)을 영원히 여의고 피안(진여불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

짓는 바의 소작(所作)을 영원히 단절하여 피안(진여불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

모든 있음의 제유(諸有, 3계 25유)에서 벗어나 피안(진여불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

모든 집착의 제취(諸取)를 버리고 피안(진여불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하고,

세법(世法, 세간의 법)을 영원히 떠나서피안(출세간법, 진여불설)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회향이라 합니다.

 

ㅡ회향의 결과로서 머무는 곳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則爲隨順佛住(즉위수순불주) 隨順法住(수순법주) 隨順智住(수순지주) 

隨順菩提住(수순보리주) 隨順義住(수순의주) 隨順廻向住(수순회향주)

隨順境界住(수순경계주) 隨順行住(수순행주) 隨順眞實住(수순진실주) 隨順淸淨住(수순청정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는 곧

부처님에 수순하여 머물며, (설한 바대로 회향을 하는 것이 부처님을 수순하여 머무는 것) 
법에 수순하여 머물며, 지혜에 수순하여 머물며, 보리에 수순하여 머물며, 의(義, 이치, 진리)에 수순하여 머물며, 
회향에 수순하여 머물며, 경계에 수순하여 머물며, 행(行, 보살행)에 수순하여 머물며, 진실에 수순하여 머물며, 
청정함에 수순하여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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