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四 十迴向品第二十六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6. 십지품(十地品) ① ㅡ 5

 

ㅡ방광(放光)으로 청법(請法)을하다.

爾時(이시) 世尊(세존) 從眉間(종미간) 出淸淨光明(출청정광명) 名菩薩力焰明(명보살력염명)

百千阿僧祗光明(백천아승지광명) 以爲眷屬(이위권속) 普照十方一切世界(보조시방일체세계)

靡不周遍(미불주변) 三惡道苦(삼악도고) 皆得休息(개득휴식) 
又照一切如來衆會(우조일체여래중회) 顯現諸佛不思議力(현현제불불사의력)

又照十方一切世界(우조시방일체세계) 一切諸佛所加說法菩薩之身(일체제불소가설법보살지신) 
作是事已(작시사이) 於上虛空中(어상허공중) 成大光明雲網臺而住(성대광명운망대이주)

그때 세존(世尊)께서 미간(眉間)으로부터 청정한 광명(光明)을 놓으셨으니,

그 광명의 이름은 보살력염명(菩薩力焰明, 보살의 힘에서 타오르는 밝은 광명)이었으며,

수 많은 아승지(阿僧祗)의 광명이 권속(眷屬)이 되어 함께하고 있었다.
그 광명은 시방(十方)의 모든 세계를 두루 비추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그 광명이 비추이자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三惡道)의 괴로움이 모두 잠시 멈추었으며, 
또한 모든 여래의 법회의 중회(衆會)를 비추어 모든 부처님의 불사의(不思議)의 힘(力)을 드러내었으며,

또한 시방의 일체 세계에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설법하는 보살들의 몸도 비추었다.
이러한 일들을 마친 뒤,
허공 중에 커다란 광명의 구름이 마치 그물과 같이 펼쳐지면서 이루어진,

대광명운망(大光明雲網)의 대(臺)를 이루어서 머물렀다.

ㅡ薩力焰明(보살력염명): ‘보살의 힘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밝은 광명’이라는 뜻으로,

보살의 수행과 위신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ㅡ'모든 세계를 두루 비추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은, 광명은 부처님의 지혜를 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 세계에 미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방세계를 다 밝히는 것이 불교이고ㆍ부처님이시고ㆍ부처님의 광명,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ㅡ광명의 명호(名號)는 보살력염명(菩薩力焰明), 권속(眷屬)은 백청아승지광명(百千阿僧祗光明) 
하는 일은 보조시방일체세계(普照十方一切世界), 삼악도(三惡道)의 고통을 모두 쉬게하고,

일체여래의 대중들을 환하게 비춰서 모든 부처님의 불가의한 힘을 나타내는 등 

 

時(시) 十方諸佛(시방제불) 悉亦如是(실역여시) 從眉間(종미간) 出淸淨光明(출청정광명)

其光(기광) 名號眷屬作業(명호권속작업) 悉同於此(실동어차) 
又亦照此娑婆世界佛及大衆(우역조차사바세계불급대중) 幷金剛藏菩薩身(병금강장보살신)

師子座已(사자좌이) 於上虛空中(어상허공중) 成大光明雲網臺(성대광명운망대)

時(시) 光臺中(광대중) 以諸佛威神力故(이제불위신력고)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와 같이 미간에서 청정한 광명을 내셨으니, 그 광명의 이름과 권속,

그리고 광명이 행하는 작용도 모두 이와 같았다.

또한 그 광명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부처님과 대중과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의 몸과 사자좌(師子座)를 비추었으며,

그런 뒤에 위쪽 허공에 커다란 광명의 구름 그물로 이루어진 대광명운망(大光明雲網)의 대(臺)를 나타내었으니, 

그때 그 광명의 대(臺) 안에서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인하여 게송이 울려 나왔다.

ㅡ娑婆世界(사바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로서, 인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계라는 뜻도 있습니다.

ㅡ師子座(사자좌): 부처님이나 높은 법을 설하는 이가 앉는 위엄 있는 자리.

이 장면은 금강장보살이 설하려는 십지의 가르침이 한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증명하고 지지하는 보편적인 법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佛無等等如虛空(불무등등여허공) 十力無量勝功德(십력무량승공덕)

부처님께서는 견줄 이가 없는 무등등(無等等)하신 분이시며

마치 허공과 같이 광대하시고, 십력(十力)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이 뛰어난 승공덕(勝功德)을 갖추셨습니다.

ㅡ허공의 비유는 부처님의 지혜와 덕이 한정된 범위에 제한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人間最勝世中上(인간최승세중상) 釋師子法加於彼(석사자법가어피) 

부처님께서는 인간 가운데에서 최승(最勝)으로 가장 뛰어나시며,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니,

석사자(釋師子,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으로 저들(금강장 보살등)을 가피하시는도다.

 

佛子當承諸佛力(불자당승제불력) 開此法王最勝藏(개차법왕최승장)

불자여,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불력(佛力)에 의지하시어

이 법왕(法王, 진리의 왕,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보배 창고의 최승장(最勝藏, 십의 가르침)을 열어주소서!

 

諸地廣智勝妙行(제지광지승묘행) 以佛威神分別說(이불위신분별설) 

여러 지위의 제지(諸地)에 걸친 광대한 지혜와 뛰어나고 미묘한 광지승묘행(廣智勝妙行, 십지행)을

부처님의 위신력(佛威神)에 의지하여 단계의 의미와 특징을 분명하게 나누어 설하여 주소서!

ㅡ‘분별하여 설한다’는 것은 각 단계의 의미와 특징을 명료하게 밝혀 준다는 뜻.

 

若爲善逝力所加(약위선서력소가) 當得法寶入其心(당득법보입기심)

만약 선서(善逝)의 힘을 입는다면, 마땅히 법보(法寶)가 그 마음속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이면,

법의 보배가 단순한 외부 지식으로 머물지 않고 마음속에 깊이 자리할 것입니다.)

ㅡ부처님의 위신력과 금강장보살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신력으로 법을 설한다면

그 법보가 우리들 마음에 전부 들어가서 자리할 것입니다.

 

諸地無垢次第滿(제지무구차제만) 亦具如來十種力(역구여래십종력) 

제지(諸地)가 티 없이 무구(無垢)하여져서 차례로 원만하여지고,

또한 여래의 십종력(十種力, 십력) 역시도 갖추게 될 것입니다.

ㅡ보살의 수행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성숙하는 것으로,

각 지위에서 번뇌와 무지가 점차 정화되고 지혜가 깊어져서 마침내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성취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雖住海水劫火中(수주해수겁화중) 堪受此法必得聞(감수차법필득문)

비록 바닷물 속이나 겁화(劫火) 가운데 머물게 될지라도,

이 법을 감수(堪受)하여 받아들여서 감당할 만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듣게 될 것입니다.

ㅡ劫火(겁화): 세계가 파괴될 때 일어나는 거대한 불.

ㅡ어떠한 어려움과 장애가 있어도 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결국 그 가르침을 듣고 이해할 인연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其有生疑不信者(기유생의불신자) 永不得聞如是義(영부득문여시의)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의심을 일으켜 불신(不信)한다면, 이와 같은 깊은 뜻을 영원히 듣지 못할 것입니다.

ㅡ앞에서 금강장보살은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는 이들이 의심에 빠질 것을 염려한 것과 같이, 이 게송은 깊은 가르침을 받아들이려면 열린 마음과 신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應說諸地勝智道(응설제지승지도) 入住展轉次修習(입주전전차수습)

從行境界法智生(종행경계법지생) 利益一切衆生故(이익일체중생고) 

마땅히 제지(諸地)에 이르는 뛰어난 지혜의 길인 승지도(勝智道)을 설하시고,

각 지위에 들어가 머물며, 차례차례 전전(展轉)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 수습(修習)하는 수행절차의  

행경계(行境界, 수행의 경계)를 따라 법에 대한 지혜의 법지(法智)가 생겨나는 것을 설해야 하는 것은,

이는 일체의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ㅡ보살의 수행은 각 단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지위에 들어가 그 수행을 익히고 성숙시킨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고, 수행을 통해 깊어진 지혜는 개인의 깨달음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ㅡ설법을 허락하다.

爾時(이시) 金剛藏菩薩(금강장보살) 觀察十方(관찰시방) 欲令大衆(욕령대중)

增淨信故(증정신고) 而說頌曰(이설송왈).

그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시방(十方)을 두루 살펴보시고,

대중의 청정한 믿음의 정신(淨信)을 더욱 깊게 하고자 게송으로 설하셨다.

 

如來大仙道(여래대선도) 微妙難可知(미묘난가지) 非念離諸念(비념이제념) 求見不可得(구견불가득) 

여래의 위대하고 성스러운 대선도(大仙道)는 미묘하여 알기 어려운 난가지(難可知)라.

그것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비념(非念)이요,

일체의 분별을 떠난 이제념(離諸念)의 것이니, 

그러므로 그것을 찾아 보고자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로다.

ㅡ離諸念(이제념): 모든 분별적 생각을 떠난 것으로,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붙잡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無生亦無滅(무생역무멸) 性淨恒寂然(성정항적연) 離垢聰慧人(이구총혜인) 彼智所行處(피지소행처) 

(10지의 이치, 즉 모든 존재의 실상은) 생겨남도 없는 무생(無生)이요,

또한 소멸함도 없는 무멸(無滅)이나, 그 본성(性)은 청정하고 언제나 적정한 항적연(恒寂然)이시니,

이는 번뇌의 때를 벗어난 이구(離垢)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총혜인(聰慧人)이 지혜로 나아가는 소행처(所行處)로다.  

 

自性本空寂(자성본공적) 無二亦無盡(무이역무진) 解脫於諸趣(해탈어제취) 涅槃平等住(열반평등주) 

자성(自性)은 본래 공적(空寂)한 것으로, 둘로 나뉘지 않는 무이(無二)요,

다함 역시도 없는 무진(無盡)이라.

제취(諸趣, 육도)에서 벗어나 해탈(解脫), 열반(涅槃)의 평등한 경지에 머무는도다.

ㅡ自性本空寂(자성본공적): 모든 법의 본성은 고정되고 독립적인 실체가 없이 공하며 고요하다는 뜻.

 

非初非中後(비초비중후) 非言辭所說(비언사소설) 出過於三世(출과어삼세) 其相如虛空(기상여허공) 

비초(非初)라서 처음도 아니요, 비중(非中)이라서 중간도 아니요, 비후(非後)로서 나중도 아닌 것이니, 

언사(言辭)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를 초월한 것으로, 그 모습과 성품(其相)은 마치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ㅡ과거ㆍ현재ㆍ미래라고 하는 시간성도 초월한 것이요, 
기상(其相, 그 모양)이 허공과 같다는 것은 공간성도 초월했다는 뜻입니다. 

 

寂滅佛所行(적멸불소행) 言說莫能及(언설막능급) 地行亦如是(지행역여시) 難說難可受(난설난가수) 

적멸(寂滅)은 부처님께서 몸소 행하시는 불소행(佛所行)이라,

언설막능급(言說莫能及)하여, 언설로는 그 경지을 온전히 설하여 미칠 수 없는 것이요,

보살의 여러 지위에서 행하는 수행의 지행(地行)도 이와 같아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난설(難說)이요, 받아들여 이해하기도 어려운 난가수(難可受)로다.

 

智起佛境界(지기불경계) 非念離心道(비념이심도) 非蘊界處門(비온계처문) 智知意不及(지지의불급) 

부처님의 불경계(佛境界)로 일으킨 지(智, 지혜)는, 생각할 바가 아닌 비념(非念)이요, 

마음의 작용이 미칠 수 없는 이심도(離心道)요,

온(蘊, 오온) · 계(界, 18계) · 처(處, 12처)의 문(門)도 아니라서 인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지혜로는 알 수 있지만, 의(意, 뜻)으로는 미칠 수 없는 것이로다.

ㅡ蘊界= 오온(五蘊)·십팔계(十八界)·십이처(十二處) 

五蘊(오온):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十八界(십팔계):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
十二處(십이처): 육근(六根)과 육경(六境)

ㅡ심도(心道), 마음의 도는 근본 진여불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 심의식(心意識)의 심도(心道)로서,
즉 심도(心道)를 떠났다는 것은 심의식(心意識)을 떠났다는 뜻.

如空中鳥跡(여공중조적) 難說難可示(난설난가시) 如是十地義(여시십지의) 心意不能了(심의불능료) 

허공을 나는 새의 발자취의 조적(鳥跡)를 말로 설명하거나 보여 주기가 어려운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십지의(十地義)도 보통의 마음과 생각의 심경(心意, 심의식 心意識)으로는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이라.

 

慈悲及願力(자비급원력) 出生入地行(출생입지행) 次第圓滿心(차제원만심) 智行非慮境(지행비려경)

 

자비(慈悲)와 원력(願力)을 바탕으로

(허공을 나는 새의 발자취와 같은 단계들을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우니, 자비와 원력을 바탕으로 하여서) 

보살의 십지행(十地行)에 들어가며,

차제(次第, 차례)대로 마음을 원만하게 성숙시켜 나아가는 것이니,

(차례대로 수행하여 마음을 원만하게 하여서 나아가는 것이니)

이러한 지혜 수행의 지행(智行)은 보통의 생각과 사유로 헤아릴 수 있는 경계(境)가 아닌 비려경(非慮境)이로다.

ㅡ지행(智行)은 생각의 경계, 즉 의식의 경계가 아니고 심의식의 경계가 아니다.
보통 사람의 한계는 심의식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라. 높은 벼랑에 가지를 잡고 매달려서 안 떨어질려고 발버둥 치는것과 같은 한계가 심의식의 경계인데, 거기서 그 가지를 놓아버려야 됩니다. 놓아버리면 그동안의 모든 지행(智行)은 심의식의 삶은 다 부서져, 없어져 버려서 그 심의식의 경계를 초탈하게 됩니다.
그러면 비로소 여기 10지에서 밝히고자 하는 모양도 없고 흔적도 없는 이치를 이해할 수 있는 智行이요 非慮境입니다.ㅡ무비스님

是境界難見(시경계난견) 可知不可說(가지불가설) 佛力故開演(불력고개연) 汝等應敬受(여등응경수) 

이러한 경계(境界)는 깊고 미묘하여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난견(難見)이나,

지혜로 깨달아 알 수는 있지만, 말로 그 뜻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는 불가설(不可說)이로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신력(佛力)에 의지하여 그 가르침을 개연(開演)하여 펼쳐 보이고자 하나니,

그대들은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시라.

 

如是智入行(여시지입행) 億劫說不盡(억겁설부진) 我今但略說(아금단략설) 眞實義無餘(진실의무여)

이와 같이 지혜로 들어가는 수행의 지입행(智入行)과

그 깊은 뜻은 억겁(億劫)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설명한다 할지라도 다할 수 없는 설부진(說不盡)이라.

그러나 나는 지금 그 가운데 일부를 간략하게나마 약설(略說)하겠지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참된 뜻의 진실의(眞實義)를 남김없이 밝히겠노라.

 

一心恭敬待(일심공경대) 我承佛力說(아승불력설) 勝法微妙音(승법미묘음) 譬喩字相應(비유자상응)

모두 일심(一心)으로 공경하며 기다리도록 하시라.

나는 부처님의 불력(佛力)을 받들어 그 가르침을 

가장 수승한 가르침의 승법(勝法)을 미묘음(微妙音)으로

비유(譬喩)와 내용(字)어 서로 상응(相應)하도록 그 깊은 뜻을 드러내어 설하리라.

(비유와 그 비유를 표현하는 자상응(字相應)하여서, 서로 잘 맞아 떨어지게 설하리라.)

 

無量佛神力(무량불신력) 咸來入我身(함래입아신) 此處難宣示(차처난선시) 我今說少分(아금설소분) 

무량하 부처님의 신통한 불신력(佛神力) 모두가 나의 몸에 들어왔으니,

차처(此處, 그러한 이치)는 말로 드러내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이제 그 가운데 소분(少分, 일부)을 설하리라.

 

ㅡ여래와 보살이 설함을 청함에 있어서의 4 가지.

첫째 여래가 광명을 놓으니 광대(光臺)가 설함을 권한 것,

둘째 해탈월이 세 번 청한 것이며,

셋째 모든 보살들이 모두 함께 청한 것이며,

넷째 모든 부처님들이 전체에 광명을 놓아서 설함을 권하는 것으로  

총체적으로는 여섯 가지의 가지(加持)와 네 가지 사청(四請)과 두 가지의 권하는 이권(二勸)이 있다.

 

ㅡ화엄경의 각 품은 독립된 경전으로 유통되다가 후에 화엄경으로 집성되었는데,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국에서 4세기경 집대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각 품에서 가장 일찍 성립된 것은 십지품(十地品)으로, 그 연대는 AD50~150년경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 원본이 남아 있는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이다.

십지품은 십지경(十地經)ㆍ십왕경(十住經)의 이름으로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 지고 있으며,

십지경은 중관철학을 확립한 용수보살 이전에 이미 성립된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인도에서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 났으며 십지경은 그때에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어서,

대승불교의 초기경전이라 할 수 있다 
 

신화엄경론;

어째서 그 명칭을 십지품이라 했는가? 여래의 보광명지(寶光明智)로 지(地)의 체(體)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가령 경문에서 “이 같은 보살이 이미 여래의 보광명지를 밟았다”는 것은 바로 대원경지(大圓鏡智)가 이에 해당된다.

즉 설한 바의 4지(四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와 일체지(一切智)의 차별이 이 지혜를 체(體)로 삼음으로써 모든 보살이 비록 10주10행10회향에 오르더라도 이 체를 여의지 않는 것이며, 도력(道力)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시 10바라밀을 통해 10重(종)으로 닦아 나가서 그 도력을 원만케 하는 것을 10지라 정하는 것이며, 하나의 바라밀 속에 스스로 10법을 갖추는 것을 10지라 칭하는 것이며,

다시 10바라밀을 통하여 10중(重)으로 닦아 나아가서 그 도력을 원만케 하는 것을 10지라 하는 것이며,
또 하나의 바라밀에 스스로 10법을 갖추고 있는 것을 10지라 칭하는 것이며,
십십(十十) 속에 백(百)을 갖추어서, 백(百)이 십(十)으로 옮겨가지 않기 때문에 10지라 칭하는 것이며,
나아가 십백(十百)과 십천(十千)과 십만(十萬)과 십십만(十十萬)과 십억(十億)과 나아가 십불가설(十不可說)에 이르기까지의 십수(十數)가 일다(一多, 하나와 많음)의 무진함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10지라 말하는 것이다.
ㅡ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25. 십회향품(十廻向品) ②ㅡ 1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四 十迴向品第二十六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6. 십지품(十地品) ① ㅡ 4

 

ㅡ덕을 찬탄하고서 두 번째 청하는 이청(二請)

爾時(이시) 解脫月菩薩(해탈월보살) 聞是說已(문시설이) 白金剛藏菩薩言(백금강장보살언) 
佛子(불자) 今此衆會(금차중회) 皆悉已集(개실이집) 善淨深心(선정심심) 善潔思念(선결사념)

善修諸行(선수제행) 善集助道(선집조도) 善能親近百千億佛(선능친근백천억불)

成就無量功德善根(성취무량공덕선근) 捨離癡惑(사리치혹) 無有垢染(무유구염) 深心信解(심심신해) 
於佛法中(어불법중) 不隨他敎(불수타교) 
善哉佛子(선재불자) 當承佛神力(당승불신력) 而爲演說(이위연설) 
此諸菩薩(차제보살) 於如是等甚深之處(어여시등심심지처) 皆能證知(개능증지) 

그때, 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이 금강장보살의 말씀을 듣고 나서, 금강장보살께 말씀드리기를, 
“불자여, 지금 이 법회에는 모든 중회(衆會)의 대중들이 이미 모여 있으며,

깊은 마음의 심심(深心)을 선정(善淨)하여 잘 청정하게 하였으며,

생각과 마음 가짐을 선결(善潔)하여 맑고 깨끗하게 잘 가다듬었으며,

제행(諸行)을 선수(善修)하여 잘 닦았으며,

깨달음의 길을 돕는 조도(助道)를 선집(善集)하여 잘 쌓아 모았을 뿐만 아니라, 
능히 백천억의 부처님을 친근(親近)하여 가까이에서 잘 받들고 모셨으며,

무량한 공덕(功德)과 선근(善根)을 성취하였으며,

어리석음과 미혹의 치혹(癡惑)을 사리(捨離)하여 버리고 떠났으며,

더러운 번뇌에 물들지 않은 무유구염(無有垢染)이며,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는 심심신해(深心信解)하오며, 
또한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불수타교(不隨他敎)하여 다른 사람의 가르침 따르지 않습니다.
훌륭하신 불자시여!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佛神力)을 받들어 이 대중들을 위하여 십지의 가르침을 펼쳐 설하여 주소서.
이 보살들은 이와 같은 깊고 심오한 경지의 심심처(甚深處)에 대하여 모두 능히 증지(證知)여 증득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ㅡ해탈월보살은 먼저 법회에 모인 보살들이 단순하게 참석한 보살들이 아니라,

깊은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춘 이들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ㅡ善淨深心(선정심심) ㅡ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뿐 아니라 수행의 근본이 되는 마음을 가다듬은 것.

ㅡ癡惑(치혹);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그로 인해 생기는 미혹.
ㅡ垢染(구염): 마음을 더럽게 물들이는 번뇌와 집착을 비유한 것.

 

爾時(이시) 解脫月菩薩(해탈월보살) 欲重宣其義(욕중선기의) 而說頌曰(이설송왈) 

그때, 해탈월보살이 이러한 뜻을 거듭 밝히고자 게송으로 설하였으니, 

 

願說最安隱(원설최안은) 菩薩無上行(보살무상행) 分別於諸地(분별어제지) 智淨成正覺(지정성정각)

최안은(最安隱)하여 가장 안온하고 평안한 보살의 위없는 무상행(無上行)을 부디 설하여 주소서!

여러 수행의 제지(諸地)를 하나하나 구분하여 설명해 주신다면,

지혜가 청정하여져서 바른 깨달음의 정각(正覺)을 이루게 될 것이옵니다.

 

此衆無諸垢(차중무제구) 志解悉明潔(지해실명결) 承事無量佛(승사무량불) 能知此地義(능지차지의) 
이 대중들은 온갖 더러움과 번뇌가 없는 무제구(無諸垢)이며,

뜻과 이해의 지해(志解)가 실명결(悉明潔)하여 모두 밝고 깨끗하오며,

무량불(無量佛)을 승사(承事)하여 받들어 모셨으므로,

이 수행의 지위에 담긴 차지의(此地義, 십지의 각 단계에 담긴 의미와 이치)를 능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ㅡ깊은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에는 단순한 지적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청정함, 올바른 이해, 꾸준한 수행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ㅡ법화경에도 제법실상에 대해서 찬탄만 하시고 설하지 않아서,

사리불이 세 번을 청한 삼지삼청(三止三請)이 있습니다.

 

ㅡ설하지 않는 두 번째의 이유.

爾時(이시) 金剛藏菩薩(금강장보살) 言(언) 

佛子(불자) 雖此衆集(수차중집) 善淨思念(선정사념) 捨離愚癡(사리우치) 及以疑惑(급이의혹)

於甚深法(어심심법) 不隨他敎(불수타교) 然有其餘劣解衆生(연유기여열해중생)

그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말씀하시기를, 
불자들이여, 비록 이곳에 모인 대중들의 생각과 마음가짐의 사념(思念)을 선정(善淨)하여 잘 청정하게 하였으며,

어리석음의 우치(愚癡)와 의혹(疑惑)을 사리(捨離)하여 버리고 떠났으며,

매우 깊은 가르침의 심심법(甚深法)을 배움에 있어서 불수타교(不隨他敎)하여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아직도 열해(劣解)하여 이해력이 부족하여 이치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는 중생들이 있을 것이니, 

ㅡ금강장보살은 현재 법회에 모인 보살들의 수행과 지혜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청정하고 지혜로우며 깊은 법문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劣解(열해)한 중생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ㅡ劣解(열해)는 이해가 부족하거나 이치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로서, 단순히 능력이나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수행의 경험과 지혜가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심오한 가르침을 바르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 대목에서 금강장보살은 가르침을 듣는 사람의 준비 상태를 고려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聞此甚深難思議事(문차심심난사의사) 多生疑惑(다생의혹) 

그 열해한 중생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중생이)

이와 같이 깊고 헤아리기 어려운 심심난사의(甚深難思議)의 가르침을 듣는다면,

많은 의심과 의혹(疑惑)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뜻을 이해하기보다는 의심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ㅡ여기에서 우려하는 것은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 받아들여, 진리에 대한 불신이나 그릇된 견해에 빠지는 것을 염려한 것으로, 금강장보살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함께 고려한 것입니다.

 

於長夜中(어장야중) 受諸衰惱(수제쇠뇌) 我愍此等(아민차등) 是故黙然(시고묵연) 

만약 그러할 경우에는 오랜 세월 동안 장야(長夜)에서 온갖 쇠뇌(衰惱, 고통과 번민)의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니,

나는 이러한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는 까닭에 묵연(黙然, 침묵)하였던 것이니라.

ㅡ長夜(장야): 문자 그대로는 긴 밤이지만, 무명(無明)이 오래 지속되는 상태나 오랜 생사의 어둠을 비유한 것이며, 
衰惱(쇠뇌): 쇠퇴와 괴로움, 즉 고통과 번민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잘못된 이해로 의심과 그릇된 견해가 깊어지면, 중생이 오랫동안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준비가 부족한 이들이 잘못 받아들일 경우에 대한 경계입니다.

 

爾時(이시) 金剛藏菩薩(금강장보살) 欲重宣其義(욕중선기의) 而說頌曰(이설송왈) 

그때 금강장보살은 이러한 뜻을 거듭 밝히고자 게송으로 설하셨다.

 

雖此衆淨廣智慧(수차중정광지혜) 甚深明利能決擇(심심명리능결택)

其心不動如山王(기심부동여산왕) 不可傾覆猶大海(불가경복유대해) 

비록 이 대중들이 청정하고 넓은 지혜의 정광지혜(淨廣智慧)를 갖추었으며,

매우 깊고 밝고 예리한 지혜의 명리(名利)로서 능히 진리를 잘 가리고 판단할 수 있으며,

그 마음이 부동(不動)하여 마치 여산왕(如山王)과 같이 흔들리지 않으며,

큰 바다와 같이 깊어서 쉽게 뒤흔들리거나 전복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ㅡ금강장보살은 지금 모인 대중의 뛰어난 자질을 두 가지의 비유, 
如山王(여산왕): 산의 왕처럼 마음이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猶大海(유대해): 큰 바다처럼 깊고 안정되어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와 같이 대중의 수준을 인정하지만, 가르침을 듣는 이들의 이해와 수행 수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有行未久解未得(유행미구해미득) 隨識而行不隨智(수식이행불수지)

聞此生疑墮惡道(문차생의타악도) 我愍是等故不說(아민시등고불설)

아직 수행이 미구(未久)하여 오래되지 않은 이와

해미득(解未得)하여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얻지 못한 이들이 있으니,

그러한 이들은 지혜에 의지하기보다 의식과 분별에 따라 행동할 것이므로

이 깊은 가르침을 듣고 의심을 일으켜 악도(惡道)에 떨어질 수가 있을 것이니,

나는 그러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기 때문에 설하지 않았던 것이니라.

ㅡ隨識而行(수식이행): 식(識), 즉 대상을 인식하고 사량 분별하여서 의식의 작용을 따라 행동하는 것.
不隨智(불수지): 진리를 바르게 비추어 보는 지혜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
ㅡ識(식)과 智(지)는 문맥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가집니다.

이 구절에서는 일반적인 인식과 분별에 머무는 태도와,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지혜를 대비한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가르침을 듣고 자신의 기존 생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곧바로 거부하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난 말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분별에 끌려가는 태도라고 할 수 있고, 
반면 지혜에 따른다는 것은 가르침의 뜻을 차분히 살피고, 바른 이해와 수행을 통해 그 의미를 알아가는 태도입니다.

 

ㅡ깨닫기 전에는 항상 식(識)을 가지고 놀이하는, 식 놀이입니다. 그저 자기 사량 분별하는 의식작용으로 행하지

지혜를 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경지인 것입니다.

 

ㅡ세 번째 청하는 삼청(三請)  

爾時(이시) 解脫月菩薩(해탈월보살) 重白金剛藏菩薩(중백금강장보살) 言(언) 
佛子(불자) 願承佛神力(원승불신력) 分別說此不思議法(분별설차불사의법) 
此人(차인) 當得如來護念(당득여래호념) 而生信受(이생신수) 

그때 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이 다시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에게 말씀드렸다.
“불자(佛子)여, 원하옵건대 부처님의 불신력(佛神力)에 의지하시어

이 불사의(不思議)의 법(法)을 자세히 분별하여 설하여 주소서!
이 법을 듣는 사람들은 마땅히 여래께서 호념(護念)하여 주심을 받아 신수(信受, 믿고 받아들임)하게 될 것입니다.

ㅡ信受(신수):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수용의 마음입니다.

 

何以故(하이고) 說十地時(설십지시) 一切菩薩(일체보살) 法應如是得佛護念(법응여시득불호념)

得護念故(득호념고) 於此智地(어차지지) 能生勇猛(능생용맹) 

왜냐하면 십지(十地)를 설하실 때에는 일체의 모든 보살이 법이 응당히 그와 같음으로 부처님의 호념을 받게 되고,

부처님의 호념을 받으므로서  이 지혜의 지위인 지지(智地, 십지)에 대하여 용맹한 마음을 낼 수 있기 때문이며, 

 

何以故(하이고) 此是菩薩(차시보살) 最初所行(최초소행) 成就一切諸佛法故(성취일체제불법고) 

왜냐하면, 이것은 보살의 최초소행(最初所行)으로서, 보살이 최초로 행하여야 할 바요,

일체의 모든 불법(佛法)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ㅡ最初所行(최초소행)이란,  십지가 보살의 수행에서 차지하는 근본이 되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십지가 단순한 수행의 단계가 아닌, 지혜와 자비를 깊이 닦아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

 

譬如書字數說(비여서자수설) 一切皆以字母爲本(일체개이자모위본) 
字母究竟(자모구경) 無有少分(무유소분) 離字母者(이자모자) 
佛子(불자) 一切佛法(일체불법) 皆以十地爲本(개이십지위본) 
十地究竟(십지구경) 修行成就(수행성취) 得一切智(득일체지) 
是故(시고) 佛子(불자) 願爲演說(원위연설) 
此人(차인) 必爲如來所護(필위여래소호) 令其信受(영기신수) 

비유하자면, 글자를 쓰고 수를 말하는 모든 일이 다 문자의 자모(字母)를 근본으로 하여서,

문자를 이루기 위하여서는 자모(字母, 문자의 근본 체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이, 

불자여, 이와 같이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불법(佛法)은 모두 십지(十地)를 근본으로 삼고 있어서,

십지(十地)의 수행을 끝까지 원만하게 이루어서 구경(究竟)에 이르면, 수행이 성취되어 일체지(一切智)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자여, 바라옵건대 이 십지의 법을 널리 펼쳐 설하여 주소서!

이 법을 듣는 사람들은 반드시 여래의 보호하심을 받아 그 가르침을 신수(信受, 믿고 받아들임)할 것입니다.

 

ㅡ대중들이 함께 법을 청하다 

爾時(이시)  解脫月菩薩(해탈월보살) 欲重宣其義(욕중선기의) 而說頌曰(이설송왈),

그때 해탈월보살은 이러한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하여 게송으로 설하였다.

 

善哉佛子願演說(선재불자원연설) 趣入菩提諸地行(취입보리제지행)
十方一切自在尊(시방일체자재존) 莫不護念智根本(막불호념지근본)

“훌륭하십니다, 불자시여!

바라옵건대 보리(菩提, 깨달음)로 나아가는 여러 지위의 수행의 제지행(諸地行)을 널리 설하여 주소서!
시방의 모든 자재하신 세존(世尊)께서는, 

지혜의 근본이 되는 지근본(智根本)을 호념(護念)하시지 않으시는 분이 없습니다.

 

此安住智亦究竟(차안주지역구경) 一切佛法所從生(일체불법소종생)
譬如書數字母攝(비여서수자모섭) 如是佛法依於地(여시불법의어지)

안주지(安住智)하여, 이 지혜에 안주하는 것 역시도 궁극에 이르는 길이며,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불법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글을 쓰고 수를 나타내는 모든 것이 자모(字母)에 포괄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불법은 십지(十地)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ㅡ安住智(안주지)란, 지혜에 굳건히 머무는 것, 또는 지혜를 자신의 수행 속에서 안정되게 체득하는 것.

 

ㅡ대중들이 함께 게송으로 법을 청하다 

爾時(이시) 諸大菩薩衆(제대보살중) 一時同聲(일시동성) 向金剛藏菩薩(향금강장보살)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爾時), 모든 대보살중(大菩薩衆, 대 보살 대중)들이 일시에 동성(同聲, 같은 목소리)으로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을 향하여 게송(頌)을 설하였다.

 

上妙無垢智(상묘무구지) 無邊分別辯(무변분별변) 宣暢深美言(선창심미언) 第一義相應(제일의상응) 

상묘(上妙)하시어 가장 뛰어나고 미묘하시며,

무구(無垢)하시어 때 없이 청정한 지혜의 상묘무구지(無垢智)와

끝없는 무변(無邊)한 분별변(分別辯, 분별 변재)로서

가장 으뜸가는 제일의(第一義, 근본의 이치)에 상응(相應)하게

깊고 아름다운 말씀의 심미언(深美言)으로서 펼쳐 선창(宣暢)하십니다. 

 

念持淸淨行(염지청정행) 十力集功德(십력집공덕) 辯才分別義(변재분별의) 說此最勝地(설차최승지) 

청정행(淸淨行)을 염지(念持)하여 기억하고 지니셨으며,

부처님의 십력(十力)으로 공덕을 쌓으셨으며,

뛰어난 변재(辯才)로서 분별의(分別義)하시어 이치를 분명하게 밝히시나니, 

이렇게 가장 수승한 최승지(最勝地, 십지)를 설하여 주소서!

 

定戒集正心(정계집정심) 離我慢邪見(이아만사견) 此衆無疑念(차중무의념) 惟願聞善說(유원문선설) 

선정(定)과 계율(戒)을 갖추어 바른 마음의 정심(正心)을 모아,

아만(我慢)과 삿된 견해의 사견(邪見)를 여의었으며,

이 대중들은 의심하는 마음의 의념(疑念)이 없사오니,

오직 훌륭한 가르침의 선설(善說) 듣기만을 원할 뿐입니다.

ㅡ선정과 계가 있어야 마음이 바르게 안정이 되는 것이고, 
慢 게으를 만, 거만할 만, 邪 간사할 사, 
我慢(아만):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는 교만한 마음.
邪見(사견): 진리를 바르게 보지 못하는 그릇된 견해.

 

如渴思冷水(여갈사냉수) 如饑念美食(여기념미식) 如病憶良藥(여병억양약) 如蜂貪好蜜(여봉탐호밀)

我等亦如是(아등역여시) 願聞甘露法(원문감로법) 

마치 목마른 사람이 시원한 냉수(冷水)을 생각하는 것과 같고,

배고픈 사람이 맛있는 미식(美食)을 생각하는 것과 같고,

병든 사람이 좋은 양약(良藥)을 떠올리는 것과 같고,

벌이 달콤한 호밀(好蜜, 꿀)을 간절히 찾는 것과 같이

저희들 역시도 이와 같이 감로법(甘露法) 듣기를 간절히 원할 뿐입니다.

ㅡ甘露法(감로법): 감로처럼 귀하고,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

 

善哉廣大智(선재광대지) 願說入諸地(원설입제지) 成十力無碍(성십력무애) 善逝一切行(선서일체행) 

광대지(廣大智)를 지니신 훌륭하신 분이시여!

바라옵건대 여러 지위의 제지(諸地)에 들어가는 수행을 설하시어,

십력(十力)을 갖추고서 걸림 없이 나아가시는 선서(善逝)의 모든 수행의 일체행(一切行)을 밝혀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ㅡ善逝(선서, Sugata), ‘잘 가신 분’이라는 뜻이며 부처님의 십호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四 十迴向品第二十六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6. 십지품(十地品) ① ㅡ 3

 

ㅡ십지(十地)의 요강(要綱) 

普告一切菩薩衆言(보고일체보살중언) 諸佛子(제불자)諸菩薩(제보살) 願善決定(원선결정)

無雜(무잡) 不可見(불가견) 廣大如法界(광대여법계) 究竟如虛空(구경여허공) 盡未來際(진미래제)

遍一切佛刹(변일체불찰)

그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모든 보살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말씀하셨으니, 

“불자(佛子)들이여, 모든 보살의 서원(願)은

선결정(善決定)하여 깨달음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자 확고하게 결정한 것이며,

무잡(無雜)하여 욕심이나 이기적인 목적이 잡되게 섞이지 않았은 지혜로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불가견(不可見)이며,

법계(法界)와 같이 광대하고(廣大)하여서 한 곳에 한정되지 않았으며,

구경(究竟)에는 허공(虛空)과 같이 경계가 없으며,

(시간적으로 한정되지 않아서)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일체의 불찰(佛刹)에 두루 하며,

ㅡ보살의 서원은 공간적으로는 모든 세계에 두루 미치고, 시간적으로는 미래의 끝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救護一切衆生(구호일체중생) 爲一切諸佛所護(위일체제불소호)

入過去未來現在諸佛智地(입과거미래현재제불지지) 

일체의 모든 중생을 구호(救護)하여 구하고 보호하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의 보호하심을 받아서,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 지혜의 지지(智地)에 들어가며,

ㅡ보살의 수행은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제불의 가르침과 가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佛子(불자) 何等(하등) 爲菩薩摩訶薩智地(위보살마하살지지) 

佛子(불자) 菩薩摩訶薩智地(보살마하살지지) 有十種(유십종) 過去未來現在諸佛(과거미래현재제불)

已說當說今說(이설당설금설) 我亦如是說(아역여시설) 何等(하등) 爲十(위십)?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지지(智地)란 무엇인가?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지지(智地)에는 열 가지의 십종(十種)이 있으니, 

과거 · 미래 ·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설(已說)하시어 이미 설하신 것이요,

당설(當說)하시어 앞으로 설하실 것이요,

금설(今說)하시어 지금설하고 계시는 것이니,

나 역시도 이와 같이 설하겠으니, 어떠한 것이 그 열 가지인가?

ㅡ-已說(이설),  當說(당설), 今說(금설)이란, 십지의 가르침이 특정한 시대나 한 부처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설하시는 보편적이고 중요한 가르침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一者(일자) 歡喜地(환희지) 二者(이자) 離垢地(이구지) 三者(삼자) 發光地(발광지)

四者(사자) 焰慧地(염혜지) 五者(오자) 難勝地(난승지) 六者(육자) 現前地(현전지)

七者(칠자) 遠行地(원행지) 八者(팔자) 不動地(부동지) 九者(구자) 善慧地(선혜지) 十者(십자) 法雲地(법운지) 

첫째는 환희지(歡喜地)요, 둘째는 이구지(離垢地)요, 셋째는 발광지(發光地)요, 넷째는 염혜지(焰慧地)요,

다섯째는 난승지(難勝地)요, 여섯째는 현전지(現前地)요, 일곱째는 원행지(遠行地)요,

여덟째는 부동지(不動地)요, 아홉째는 선혜지(善慧地)요, 열째는 법운지(法雲地)이니라.

ㅡ1 歡喜地(환희지) ㅡ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 큰 기쁨을 얻는 경지
2 離垢地(이구지) ㅡ 번뇌의 때를 여의는 경지
3 發光地(발광지) ㅡ 지혜의 빛이 드러나는 경지
4 焰慧地(염혜지) ㅡ 지혜의 불꽃이 더욱 밝게 타오르는 경지
5 難勝地(난승지) ㅡ 뛰어넘기 어려운 경지를 성취하는 단계
6 現前地(현전지) ㅡ 깊은 지혜가 눈앞에 드러나는 경지
7 遠行地(원행지) ㅡ 매우 멀리까지 수행을 펼쳐 나가는 경지
8 不動地(부동지) ㅡ 흔들림이 없는 경지
9 善慧地(선혜지) ㅡ 지혜와 설법의 능력이 원숙해지는 경지
10 法雲地(법운지) ㅡ 구름과 같이 중생에게 법의 비를 내리는 경지

 

ㅡ십지는 보리로 향하는 가장 높은 길이다

佛子(불자) 此菩薩十地(차보살십지) 三世諸佛(삼세제불) 已說當說今說(이설당설금설) 

佛子(불자) 我不見有諸佛國土(아불견유제불국토) 其中如來(기중여래) 不說此十地者(불설차십지자)

何以故(하이고)? 此是菩薩摩訶薩(차시보살마하살) 向菩提最上道(향보리최상도)

亦是淸淨法光明門(역시청정법광명문) 所謂分別演說菩薩諸地(소위분별연설보살제지) 

佛子(불자) 此處(차처) 不可思議(불가사의) 所謂諸菩薩隨證智(소위제보살수증지) 

불자들이여, 이러한 보살의 십지(十地)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설(已說)하시어 이미 설하신 것이요,
당설(當說)하시어 앞으로 설하실 것이요,
금설(今說)하시어 지금 설하고 계시는 것이니, 

불자들이여, 나는 어떠한 부처님의 세계에서도 그곳의 여래께서 이 십지의 법문을 설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왜냐하면 이 가르침은 보살마하살이 보리(菩提, 깨달음)를 향하여 나아가는 가장 높은 길인 최상도(最上道)이기 때문이요,

또한 이 가르침은 청정한 법의 광명을 여는 광명문(光明門)인 것이니,

소위, 보살의 여러 수행 단계의 제지(諸地)를 구분하여 상세하고 명료하게 펼쳐 설한 가르침이기 때문이요,

불자들이여, 이 경지는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이니,

그것은 곧 여러 보살이 직접 증득한 지혜에 따라 알게 되는 수증지(隨證智)이기 때문이니라.

ㅡ여기서의 菩提(보리)는 깨달음을 뜻합니다.  

ㅡ수증지(隨證智) ㅡ 보살이 직접 증득한 바에 따라 얻는 지혜라는 뜻으로,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수행하여 그 진리를 체득하는 것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비에 관해 설명을 듣는 것과 실제 삶에서 미움과 집착을 내려놓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십지의 지혜도 경전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수행을 통해 직접 체득하는 차원이 중요한 것입니다.

  

ㅡ해탈월(解脫月) 보살의 청법(請法)

爾時(이시) 金剛藏菩薩(금강장보살) 說此菩薩十地名已(설차보살십지명이) 黙然而住(묵연이주)

不復分別(불부분별)

그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보살의 십지(十地)의 명칭을 모두 말씀하시고는

묵연(黙然)하시어 잠자코 계시면서, 더 이상의 내용을 분별하여 설명하지 않으셨으니,

 

是時(시) 一切菩薩衆(일체보살중) 聞菩薩十地名(문보살십지명) 不聞解釋(불문해석)

咸生渴仰(함생갈앙) 作如是念(작여시념) 何因何緣(하인하연) 金剛藏菩薩(금강장보살)

唯說菩薩十地名(유설보살십지명) 而不解釋(이불해석)?

그때 이체의 모든 보살 대중들은 보살 십지의 이름은 들었으나, 그에 대한 해석과 설명은 듣지 못하였여서,

이에 모두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간절히 바라는 갈앙(渴仰)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무슨 까닭과 어떠한 인연으로 금강장보살께서는 오직 보살 십지의 이름만을 말씀하시고,

그 뜻은 설명하지 않으시는 것인가?’

ㅡ渴(갈)은 목마름이고, 仰(앙)은 우러러 존경하며 바라는 마음으로, 갈앙(渴仰)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가르침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이는 가르침을 듣는 태도와 진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수행으로 체득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解脫月菩薩(해탈월보살) 知諸大衆心之所念(지제대중심지소념) 以頌問金剛藏菩薩曰(이송문금강장보살왈) 

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이 대중들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채리시고, 게송(頌)으로 금강장보살께 여쭈었으니, 

ㅡ해탈월보살의 단순한 개인적인 궁금증이 아니라, 법회에 참석한 보살 대중의 공통된 바람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이러한 질문과 답변의 구조는, 대중은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간절함을 드러내고,

해탈월보살은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여서 법문이 펼쳐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何故淨覺人(하고정각인) 念智功德具(염지공덕구) 說諸上妙地(설제상묘지) 有力不解釋(유력불해석)?

어찌하여 청정한 깨달음을 이루신 정각인(淨覺人)께서는 염(念)과 지혜(智),

그리고 공덕(功德)을 모두 갖추셨으면서도, 이처럼 가장 높고 미묘한 경지의 상묘지(上妙地)를 말씀하시고서,

그 뜻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는 것입니까?

 

一切咸決定(일체함결정) 勇猛無怯弱(용맹무겁약) 何故說地名(하고설지명) 而不爲開演(이불위개연)?

모든 대중들은 이미 마음을 굳게 결정(決定)하였으며, 용맹하여 두려워하거나 물러서는 마음이 없거늘,

어찌하여 수행의 경지인 지명(地명, 이름)만를 말씀하시고,

그 내용을 開演(개연)하시어 자세히 펼쳐서 설명해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ㅡ가르침의 명칭을 아는 것과 그 가르침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諸地妙義趣(제지묘의취) 此衆皆欲聞(차중개욕문) 其心無怯弱(기심무겁약) 願爲分別說(원위분별설) 

여러 지위의 제지(諸地)에 담긴 미묘한 뜻과 이치의 묘의취(妙義趣)를

이 대중 모두가 듣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 마음에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으니,

부디 저희를 위하여 그 뜻 하나하나를 구분하여 설하여 주시오서서.

 

衆會悉淸淨(중회실청정) 離懈怠嚴潔(이해태엄결) 能堅固不動(능견고부동) 具功德智慧(구공덕지혜) 

이 법회에 모인 회중(衆會)은 모두가 청정(淸淨)하며, 게으름을 떠나 엄정하고 깨끗하며,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아서 견고부동(堅固不動)하며 공덕과 지혜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相視咸恭敬(상시함공경) 一切悉專仰(일체실전앙) 如蜂念好蜜(여봉념호밀) 如渴思甘露(여갈사감로) 

서로 바라보며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며,

한결같이 온 마음을 기울여 전앙(專仰)하여 우러러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마치 벌들이 좋은 꿀을 간절히 찾는 것과 같으며,

마치 목마른 사람이 감로(甘露)를 갈망하는 것과 같이 듣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ㅡ如蜂念好蜜(여봉념호밀): 벌이 좋은 꿀을 찾고 향하듯, 보살 대중이 깊고 훌륭한 가르침을 갈망한다는 뜻이고, 
ㅡ如渴思甘露(여갈사감로): 목마른 사람이 감로를 간절히 바라듯, 대중이 십지의 법문을 절실하게 원한다는 뜻입니다.

ㅡ여기에서 세 가지 점은; 
1. 십지의 명칭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가리키는 수행과 지혜의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과
2. 가르침을 간절하게 바라는 태도를 말하고,  
3.해탈월보살이 대중을 대신하여 질문함으로써 십지의 상세한 설명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곧 십지의 이름을 듣는 단계에서, 각 지위에 담긴 깊은 뜻과 수행의 내용을 배우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ㅡ설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

爾時(이시) 大智無所畏金剛藏菩薩(대지무소외금강장보살) 聞是說已(문시설이) 欲令衆會(욕령중회)

心歡喜故(심환희고) 爲諸佛子(위제불자)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대지(大智)와 두려움 없는 무소외(無所畏)를 갖추신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해탈월보살의 말을 들으시고는 법회에 모인 대중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자,

모든 불자들을 위하여 게송(頌)을 설하셨으니, 

 

菩薩行地事(보살행지사) 最上諸佛本(최상제불본) 顯示分別說(현시분별설) 第一希有難(제일희유난) 

보살이 수행하여 나아가는 여러 경지의 보살행지(菩薩行地, 십지)와 그에 관한 가르침은

모든 부처님을 이루는 가장 높은 최상(最上)의 제불본(諸佛本)이니,

그것을 드러내어 현시(顯示)하여 밝혀 보여서, 하나하나 분별하여 설명하는 것은

가장 으뜸가는 제일(第一)이면서도 매우 희유하고 어려운 일이로다.

ㅡ最上諸佛本(최상제불본)ㅡ 보살의 수행 경지가 모든 부처님의 가장 높은 근본이라는 뜻으로, 이는 십지가 단순히 수행의 단계를 나열한 목록이 아니라, 부처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설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매우 어려운 것은, 깊은 가르침을 말로 표현하는 일과 듣는 사람이 그 뜻을 실제로 이해하는 일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微細難可見(미세난가견) 離念超心地(이념초심지) 出生佛境界(출생불경계) 聞者悉迷惑(문자실미혹) 

그 가르침은 지극히 미세하고 깊어서 쉽게 볼 수 없는 난가견(微細難可見)이며,

생각과 분별을 떠난 것이라 마음으로 헤아리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며,

부처님의 불경계(佛境界)를 드러내는 가르침이므로,

이를 듣는 사람은 모두가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미혹(迷惑) 될 수도 있음이라.

ㅡ가르침의 이치가 매우 깊고 미세하여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생각과 분별을 떠난 것으로, 일반적인 마음의 헤아림으로는 알 수 없으며, 
부처님의 경계를 드러내거나 그 경계로 나아가게 하는 가르침이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들으면 그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는 뜻으로, 
십지의 가르침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뜻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수행과 지혜가 함께 성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持心如金剛(지심여금강) 深信佛勝智(심신불승지) 知心地無我(지심지무아) 能聞此勝法(능문차승법) 

그러므로 마음을 금강과 같이 굳고 흔들림 없이 지녀야 하고,

부처님의 뛰어난 지혜의 불승지(佛勝智)를 심신(深信)하여 깊게 믿으며,

그 마음에 고정된 ‘나’가 없는 무아(無我)라는 것을 알아야만이, 이 뛰어난 승법(勝法)을 들을 수 있습니다.

ㅡ이 법문을 듣기 위해 필요한 3 가지의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1.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금강과 같이 굳건해야 하는 굳건한 마음과
2. 부처님의 뛰어난 지혜를 깊이 믿어서 진지하게 배우고 수행할 수 있는, 부처님의 지혜에 대한 신뢰
3. 마음에 고정되고 독립적인 ‘나’가 없음의 무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如空中彩畵(여공중채화) 如空中風相(여공중풍상) 牟尼智如是(모니지여시) 分別甚難見(분별심난견) 

그것은 마치 허공에 그린 그림과 같은 여공중채화(如空中彩畵)요,

마치 허공에 나타난 바람의 모습과도 같은 여공중풍상(如空中風相)이요,

성자이신 모니(牟尼, muni, 부처님)의 지혜도 이와 같으니,

그 내용을 분별하여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심난견(甚難見) 이로다.

ㅡ如空中彩畵(여공중채화)ㅡ 부처님 지혜의 경지가 일상적인 사물과 같이 고정된 형태로 파악되지 않다는 것.

ㅡ如空中風相(여공중풍상)ㅡ 바람은 움직임과 작용을 느낄 수 있지만, 고정된 대상으로 붙잡기는 어렵다는 것.

ㅡ牟尼(모니, muni)ㅡ 성자 또는 성인을 뜻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리키기도 하나,

여기에서는 부처님의 지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두 비유의 공통점은 부처님의 지혜가 무가치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대상처럼 붙잡아 분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我念佛智慧(아념불지혜) 最勝難思議(최승난사의) 世間無能受(세간무능수) 黙然而不說(묵연이불설) 

제가 부처님의 불지혜(佛智慧)를 생각해 보건데, 그것은 가장 뛰어난 최승(最勝)이요

헤아리기 어려운 난사의(難思議)라.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능수(能受)하여 능히 그것을 받아들여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가 없으므로,

내가 묵묵히 머물러 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ㅡ깊은 가르침이 어려운 것은, 그 뜻이 우리의 평소 생각과 분별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경전을 공부할 때에는 명칭과 설명을 이해하되, 열린 마음과 꾸준한 수행을 통해 그 뜻을 깊이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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