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⑧ ㅡ 13
ㅡ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 ㅡ7
ㅡ금강당(金剛幢) 보살의 게송(偈頌)
爾時에 金剛幢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이 때에 금강당 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다.
菩薩志樂常安住(보살지요상안주) 正念堅固離癡惑(정념견고이치혹)
其心善軟恒淸凉(기심선연항청량) 積集無邊功德行(적집무변공덕행)
보살은 지락(志樂, 세운 뜻의 즐거움)에 항상 안주(安住)하며,
정념(正念)이 견고하여 어리석음의 치혹(癡惑)을 여의었으며
그 마음이 선유(善軟)하여 매우 부드럽고 항상 청량하여서,
무변한 공덕의 행을 적집(積集)하여 쌓아 모으는도다.
ㅡ정념(正念) 그 자체가 어리석음과 미혹을 떠난 것으로, 어리석고 미혹한 것은 정념이 안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菩薩謙順無違逆(보살겸순무위역) 所有志願悉淸淨(소유지원실청정)
已得智慧大光明(이득지혜대광명) 善能照了一切業(선능조요일체업)
보살이 겸손하여서 무위역(無違逆)하여 어기지 않으며,
그 가진 바의 지원(志願, 뜻과 소원)은 항상 청정하며,
지혜의 대광명(大光明)을 이미 얻어서,
능히 일체의 모든 업(業)들을 조료(照了)하여 비추어 아는도다.
菩薩思惟業廣大(보살사유업광대) 種種差別甚希有(종종차별심희유)
決意修行無退轉(결의수행무퇴전) 以此饒益諸群生(이차요익제군생)
보살이 생각하는 광대한 업이 가지가지로 차별하여 희유하거늘 ㅡ 업력 난사의(業力 難思議)이니
뜻을 굳게 결의(決意)하여 퇴전(退轉)하지 않고 수행하여서,
그러함으로서 모든 군생(群生, 중생)들을 요익(饒益)하게 하는도다.
諸業差別無量種(제업차별무량종) 菩薩一切勤修習(보살일체근수습)
隨順衆生不違意(수순중생불위의) 普令心淨生歡喜(보령심정생환희)
모든 업들이 무량하게 갖가지로 차별하거늘
보살은 이러한 일체의 모두를 부지런히 수습(修習, 여기서는 특별히 닦는 것이 아니라 다 안다는 뜻)하여서
중생의 뜻에 불위(不違)하여 어기지 않아서
그 모두로 하여금 마음이 청정하여서 환희하게 하는도다
已昇調御人尊地(이승조어인존지) 離諸熱惱心無碍(이제열뇌심무애)
於法於義悉善知(어법어의실선지) 爲利群生轉勤習(위리군생전근습)
이미 조어사(調御師)의 인존지(人尊地, 인중존)의 지위에 올라서
모든 뜨거운 열뇌(熱惱, 번뇌)가 없어서 마음에 장애가 없으며
법의(法義, 법의 이치)를 모두 선지(善知)하여 밝게 잘 알아서
군생(群生,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힘써 근습(勤習)하여 나아가는도다.
菩薩所修衆善行(보살소수중선행) 無量無數種種別(무량무수종종별)
於彼一切分別知(어피일체분별지) 爲利群生故廻向(위리군생고회향)
보살이 닦은 여러 선행들이 무량하고 무수하게 종종별(種種別)하여 갖가지로 차별하나,
그러한 일체의 모두를 분별하여 모두 알아서
군생(群生,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회향을 하는도다.
以妙智慧恒觀察(이묘지혜항관찰) 究竟廣大眞實理(구경광대진실리)
斷諸有處悉無餘(단제유처실무여) 如彼眞如善廻向(여피진여선회향)
미묘혜(妙智慧, 미묘한 지혜)로 구경(究竟)에는 광대하고 진실한 이치를 항상 관찰하고
제유처(諸有處, 모든 존재의 문제, 경계) 모두를 남김없이 끊어서
마치 저 진여(眞如)와 같이 잘 회향하는도다.
譬如眞如遍一切(비여진여변일체) 如是普攝諸世間(여시보섭제세간)
菩薩以此心廻向(보살이차심회향) 悉令衆生無所着(실령중생무소착)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一切)에 두루한 것과 같이
그와 같이 모든 세간을 보섭(普攝)하여 널리 섭수하여서, 보살은 그러한 마음으로 회향하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무소착(無所着)하여 집착이 없게 하는도다.
菩薩願力遍一切(보살원력변일체) 譬如眞如無不在(비여진여무불재)
若見不見念悉周(약견불견염실주) 悉以功德而廻向(실이공덕이회향)
보살의 원력(願力)이 일체에 두루한 것을 비유하자면,
마치 진여(眞如)가 무불재(無不在)하여 있지 않은 곳 없는 것과 같으니,
약견불견(若見不見)하여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모두에 생각이 두루하나니,
그러한 모든 공덕으로 회향하는도다.
夜中隨住晝亦住(야중수주주역주) 半月一月亦隨住(반월일월역수주)
若年若劫悉住中(약년약겁실주중) 眞如如是行亦然(진여여시행역연)
야중수주(夜中隨住)하여 밤에는 밤을 따라 머물고,
주역주(晝亦住)하여 낮에도 낮을 따라 머물고
반월(半月, 보름)이나 일월(一月, 한달) 역시도 그에 따라 머물며
약년(若年, 여러 해)나 약겁(若劫, 오랜 세월)에도 모두 따라 머무르나니
진여(眞如)의 이와 같은 행(行, 선근회향) 역시도 그러하도다. (진여가 이러함과 같이 선행 또한 그러하도다.)
所有三世及刹土(소유삼세급찰토) 一切衆生與諸法(일체중생여제법)
悉住其中無所住(실주기중무소주) 以如是行而廻向(이여시행이회향)
모든 삼세(三世)와 찰토(刹土, 세계국토)와 일체의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제법의 그 모든 가운데에서 머물고 있으나 무소주(無所住)하여 머무름없이 머물러서
이와 같은 머무름이 없는 행으로 회향하는도다
譬如眞如本自性(비여진여본자성) 菩薩如是發大心(보살여시발대심)
眞如所在無不在(진여소재무불재) 以如是行而廻向(이여시행이회향)
비유하자면, 진여의 본자성(本自性)과 같이 보살은 그러한 대심(大心)을 일으키나니,
진여(眞如)는 있지 않은 곳이 없는 무불재(無不在)라.
이와 같이 대심의 무불재(無不在)의 행으로 회향하는도다.
譬如眞如本自性(비여진여본자성) 其中未曾有一法(기중미증유일법)
不得自性是眞性(불득자설시진성) 以如是業而廻向(이여시업이회향)
비유하자면, 진여의 본자성(本自性)과 같이
그 안에는 어떠한 하나의 일법(一法)도 있지 않아서 (어떠한 일법도 진여와 다르지 않나니)
고정된 자성(自性)을 얻지 못하는 것이 진성(眞性, 참 성품, 진여)이라,
(얻을 수 있는 고정된 어떤 자성은 진성=진여가 아니니)
이와 같은 업(얻을 수 없는 자성이 진여라는 것)으로 회향하는도다.
如眞如相業亦爾(여진여상업역이) 如眞如性業亦爾(여진여성업역이)
如眞如性本眞實(여진여성본진실) 業亦如是同眞如(업역여시동진여)
마치 진여의 상(相)과 같이 업(業)의 상(相) 역시도 그러하고
마치 진여의 성(性, 성품)과 같이 업(業)의 성(性, 성품) 역시도 그러하며
마치 진여의 성본(性本, 성품의 본성)이 진실한 것과 같이
업(業)의 성본(性本, 성품의 본성) 역시도 그와 같이 진실하도다.
譬如眞如無邊際(비여진여무변제) 業亦如是無有邊(업역여시무유변)
而於其中無縛着(이어기중무박착) 是故此業得淸淨(시고차업득청정)
비유하자면, 진여가 끝이 없는 무변제(無邊際)인 것과 같이
업(業) 역시도 그와 같이 끝이 없는 무변제(無邊際)요,
그러한 가운데에 속박이나 집착도 없는 무박착(無縛着)이니,
그러한 까닭에 이 업(業)이 청정(空)함을 얻는도다(아는도다)
ㅡ업이라고 하는 것을 진여와 같다고 보는 것으로 ‘업, 우리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결국 진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업과는 다른 개념으로, 여기에서의 업이라는 것은 '하는 짓, 행위인데, 진여 없이는 그 짓(행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분 1초의 아무리 작은 행위 하나하나에 진여가 개입되지 않는 행위는 없고, 어느 한 순간에도 진여가 개입되지 않는 시간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如是聰慧眞佛子(여시총혜진불자) 志願堅固不動搖(지원견고부동요)
以其智力善通達(이기지력선통달) 入於諸佛方便藏(입어제불방편장)
이와 같이 총혜(聰慧, 지혜가 있고 총명한)한 진불자(眞佛子)는
지원(志願)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으니
지력(智力)으로 잘 통달하여, 모든 부처님들의 방편장(方便藏)에 들어가는도다.
覺悟法王眞實法(각오법왕진실법) 於中無着亦無縛(어중무착역무박)
如是自在心無碍(여시자재심무애) 未曾見有一法起(미증견유일법기)
법왕의 진실법을 각오(覺悟)하여 깨닫는다면,
그러한 가운데에서 무착(無着)으로 집착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박(無縛)으로 속박도 없어서,
이와 같이 자재하여 마음에 장애가 없으니,
일찍이 하나의 일법(一法)도 일어나는 것을 보지 않는도다.
如來法身所作業(여래법신소작업) 一切世間如彼相(일체세간여피상)
說諸法相皆無相(설제법상개무상) 知如是相是知法(지여시상시지법)
여래의 법신(法身)이 지으시는 업이나 일체의 모든 세간은 마치 그와 같은 상(相)이니,
(일체의 모든 세간은 전부 여래법신의 상이니)
그러므로 제법(諸法)의 상(相) 모두가 무상(無相)이라 설하나니, (제법이 무상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상(相)을 아는 것이 법(法)을 아는 것이로다.
菩薩住是不思議(보살주시불사의) 於中思議不可盡(어중사의불가진)
入此不可思議處(입차불가사의처) 思與非思皆寂滅(사여비사개적멸)
보살의 머무는 곳은 부사의라.(보살은 이와 같은 불가사의에 머무르나니)
그러한 가운데에서 사의(思議)하여 헤아림은 다함이 없는 불가진(不可盡)이라,
그러한 불가사의처(不可思議處)에 들어간다면,
사(思, 생각하여 헤아림)와 비사(非思, 헤아리지 않음)가 모두 적멸(寂滅)일 뿐이로다.
ㅡ사(思, 생각하여 헤아림)와 비사(非思, 헤아리지 않음)이 모두 적멸(寂滅)한 자리, 모든 것이 끊어진 자리,
아무 생각없이 불가사의한 진여자성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소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은 상당히 편하고 넉넉한 자리라서 이 구절을 선사들이 좋아합니다.ㅡ무비스님
如是思惟諸法性(여시사유제법성) 了達一切業差別(요달일체업차별)
所有我執皆除滅(소유아집개제멸) 住於功德無能動(주어공덕무능동)
이와 같이 법성(法性, 법의 성품)을 사유하여,
일체의 모든 업이 차별(差別)하다는 것을 요달(了達)하여서
스스로에게 있는 소유(所有, 모든)의 아집(我執)을 모두 제멸(除滅)하여 멸하여서
공덕에 머물러서 무능동(無能動)으로 흔들리지 않는도다.
ㅡ법성의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끊어져서 ‘몰라ㆍ몰라’, ‘오직 모를 뿐입니다.
거기에 맛들인 선사들은 중생제도도 다 귀찮고, 중생 제도나 교화도 자기가 지금 앉아있는 그 자리까지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ㅡ무비스님
菩薩一切業果報(보살일체업과보) 悉爲無盡智所印(실위무진지소인)
如是無盡自性盡(여시무진자성진) 是故無盡方便滅(시고 무진방편멸)
보살의 모든 업(業)과 과보(果報)는 다함이 없는 무진지(無盡智)의 소인(所印, 인가)한 바이라
(보살의 업과 과보는 지혜에서 나온 것이라서 무진지의 인정을 받은 바이니)
이와 같은 다함이 없는 무진자성(無盡自性)이 다한 것이라(盡),
그러므로 다함이 없는 무진방편(無盡方便)으로 멸(滅)하는도다.
菩薩觀心不在外(보살관심불재외) 亦復不得在於內(역부불득재어내)
知其心性無所有(지기심성무소유) 我法皆離永寂滅(아법개리영적멸)
보살은 마음이 불재외(不在外)하여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 불재내(不在內(역부내)하여 안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관찰하고
그 마음(心)은 성무소유(性無所有)한 것으로, 자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아(我, 나 주관)와 법(法, 객관) 모두를 떠나서 영원히 적멸(寂滅)하도다.
ㅡ이것은 능엄경의 칠처징심(七處徵心)과 같은 내용으로,
능엄화상에서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마음의 소재를 물으시고, 아난 존자가 일곱 군데에 마음이 있다고 일곱번 답한 것으로 부처님께서 마음은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 常住眞如(상주진여)이며, 性淨明體(성정명체)임을 가리키시고 客塵煩惱(객진번뇌)를 설하여 眞見(진견)으로 이끌어 가는 내용입니다.
① 내재(在內)- 마음이 몸 속에 있다고 함, 방안에 있으면서 먼저 방 안의 것들을 보지 않고 밖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몸 안에 있는 마음이 먼저 몸 속을 보아야 하나 안을 보지 못하므로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② 재외(在外) -마음이 몸 밖에 있다고 함. 한 사람이 밥을 먹음에 여러 사람이 따라 배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지 못하나니 너의 각료능지(覺了能知)하는 마음이 실(實)로 몸 밖에 있다고 하면 밖(外)인 몸(身)과 안(內)인 마음(心)과는 하등의 상관(相關)이 없어 마음의 대상을 몸이 느끼지 못할 것이며, 반면 감각(感覺)이 신제(身際)에 있을진댄 마음이 또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나의 손을 볼 때에 마음이 따라서 작용(分別)하나니 몸과 마음이 서로를 안다면 어찌 마음이 몸 밖에 있다 할 수겠는가?
③ 잠근(潛根) -눈 속에 있다고 함.
④ 장암(藏暗) -어두운 몸 속에 있다고 함.
⑤ 수합(隨合) -합하는 곳을 따라 있다고 함.
⑥ 중간(中間) -근(根)과 진(塵)의 중간에 있다고 함.
⑦ 무착(無着) -안 밖, 중간 어디에고 있지 않다고 함.
彼諸佛子如是知(피제불자여시지) 一切法性常空寂(일체법성상공적)
無有一法能造作(무유일법능조작) 同於諸佛悟無我(동어제불오무아)
일체의 모든 법성(法性)이 항상 공적(空寂)하여서 지을 수 있는 법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저 모든 불자들이 이와 같이 안다면 모든 부처님들과 같은 무아(無我)를 깨달으리라.
了知一切諸世間(요지일체제세간) 悉與眞如性相等(실여진여성상등)
見是不可思議相(견시불가사의상) 是則能知無相法(시즉능지무상법)
일체 세간의 모든 성상(性相, 성품과 상)이 진여(眞如)와 더불어 동등하다는 것을 아나니,
그러한 불가사의한 상(相)을 보게 된다면, 이러한 것이 곧 무상법(無相法)을 아는 것이로다.
若能住是甚深法(약능주시심심법) 常樂修行菩薩行(상락수행보살행)
爲欲利益諸群生(위욕이익제군생) 大誓莊嚴無退轉(대서장엄무퇴전)
만약 능히 이러한 심심법(甚深法)에 머물 수 있다면, 항상 즐거이 보살행을 수행하여서
제군생(諸群生, 모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려는 대서(大誓, 큰 서원)로 장엄(莊嚴)하여 퇴전하지 않으리라
是則超過於世間(시즉초과어세간) 不起生死妄分別(불기생사망분별)
了達其心如幻化(요달기심여환화) 勤修衆行度群生(근수중생도군생)
이러한 것이 곧 세간을 초월하는 것이요, 생사의 헛된 망분별(妄分別)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그 마음이 마치 환화(幻化, 헛깨비)와 같다는 것을 분명하게 요달하여 아는 것이니,
여러 가지의 중행(衆行)을 근수(勤修)하여 군생(群生, 중생)들을 제도하는도다.
菩薩正念觀世間(보살정념관세간) 一切皆從業緣得(일체개종업연득)
爲欲救度修諸行(위욕구도수제행) 普攝三界無遺者(보섭삼계무유자) 遺 남길 유
보살이 정념(正念)으로 세간에서 일체의 모든 것들이
종업연(從業緣)하여 업의 연으로 인하여 얻어진다는 것을 관찰하고
구호하고 제도하고자 모든 제행(諸行)을 닦아서, 삼계에서 남김없이 보섭(普攝)하여 널리 섭수하는도다.
了知衆生種種異(요지중생종종이) 悉是想行所分別(실시상행소분별)
於此觀察悉明了(어차관찰실명료) 而不壞於諸法性(이불괴어제법성)
중생들이 종종이(種種異)하여, 갖가지로 다른 것은
모두가 상행(想行, 생각과 행)으로 분별하는 바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서
이러함을 관찰하여 모두에 밝게 명료(明了)하나,
모든 법의 법성(法性)을 불괴(不壞)하여 파괴하지 않는도다.
ㅡ상(想)과 행(行)은 마음의 작용으로, 마음이 가만히 있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으로 나아가서 생각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TV를 틀든지ㆍ책을 보든지ㆍ염불을 하든지 등등 6근으로 작용을 하는 것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일종의 작용입니다.
눈은 뭔가 보려고 하고, 귀는 뭔가 들으려고 하고, 코는 뭔가를 감지하려고 하고, 말은 입은 혀는 뭔가 먹으려고 하고, 숨 쉬려고 하고 또 대화하려고 하고, 어쨌든 가만히 안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앉아 있는데 화두가 여러 수 100번 드는 겁니다. 놓쳤다ㆍ들었다, 놓쳤다ㆍ들었다, 놓쳤다ㆍ들었다.
그렇게 되는 그것이 사람의 본래 생김새입니다.
상(想)의 행(行) 또는 상(想)과 행(行)은 마음의 행. 생각의 행, 생각의 움직임인 것입니다.
육창원후(六窓猿猴), 원숭이를 구멍이 6개가 있는 상자 안에 넣어놓고 부르면 부르는 방향을 따라 원숭이가 얼굴을 내민다는 비유가 아주 적절한 것입니다. 금강경의 應無所住(응무소주) 절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而生其心(이생기심) 그 마음이 날뛰는, 사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어서 제어하기 어렵지만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자꾸 공부하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ㅡ결(結)
智者了知諸佛法(지자요지제불법) 以如是行而廻向(이여시행이회향)
哀愍一切諸衆生(애민일체제중생) 令於實法正思惟(영어실법정사유)
지혜로눈 지자(智者)는 제불법(諸佛法)을 모두 요지(了知)하여 분명하게 알아서,
이와 같은 행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애민(哀愍)하게 여겨서 실법(實法)을 정사유(正思惟)하는도다.
ㅡ중생의 지혜가 바로 부처의 지혜이며(以衆生智是佛智)
부처의 지혜가 바로 중생의 지혜이니(佛智本是衆生智)
미혹한 자는 부처의 지혜가 중생을 짓고(迷者佛智作衆生)
깨달은 자는 중생이 바로 부처의 지혜이네.(悟者衆生是佛智)
이와 같이 체(體)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요달하면(如是了達體同別)
중생과 더불어 의지(依止)를 지음을 감당하리라.(堪與衆生作依止)
화엄경(華嚴經) 제30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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