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三十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11

 

ㅡ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 ㅡ5

 

譬如眞如(비여진여) 一切法中(일체법중) 畢竟無盡(필경무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諸衆生(어제중생) 廻向無盡(회향무진)

譬如眞如(비여진여) 與一切法(여일체법) 無有相違(무유상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不違三世一切佛法(불위삼세일체붑법)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법 가운데에서 필경(畢竟)에는 무진(無盡)하여 다함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에게 다함없이 무진(無盡)하게 회향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법에 무유상위(無有相違)하여 서로 위배되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과거ㆍ현재ㆍ미래, 삼세의 일체 불법(佛法)에 위배하지 않으며,

ㅡ선근은 시대와 장소, 나라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도 어기지 않고 통하는 것입니다.

 

譬如眞如(비여진여) 普攝諸法(보섭제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盡攝一切衆生善根(진섭일체중생선근) 

譬如眞如(비여진여) 與一切法(여일체법) 同其體性(동기체성)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與三世佛(여삼세불) 同一體性(동일체성)

비유하자면, 진여가 제법을 보섭(普攝, 널리 포섭)하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들의 모든 선근이 다하도록 포섭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법과 더불어 체성(體性)이 동일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삼세불(三世佛, 삼세의 부처님)들과 동일한 체성(體性)이며,

ㅡ신부들의 교과서라고 하는 “천국의 열쇠”를 제가 어릴 때 읽었는데,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선행을 하는 것인가?’에서 결국은 ‘선행을 하면 천국에 들어간다. 선행이 천국의 열쇠다.’로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은 善이다.’ ‘선행이 하나님이다.’한 것과 같이,

여기에서도 선근회향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더불어 동일체성이라서, 부처 불(佛) 자(字)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선근회향이 천국의 열쇠이다' 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네요.ㅡ무비스님

 

譬如眞如(비여진여) 與一切法(여일체법) 不相捨離(불상사리)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攝持一切世出世法(섭지일체세출세법)

譬如眞如(비여진여) 無能暎蔽(무능영폐)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영폐(暎蔽) 덮어서 가린다 

一切世間(일체세간) 無能暎蔽(무능영폐) 

譬如眞如(비여진여)  不可動搖(불가동요)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一切魔業(일체마업) 無能動搖(무능동요)

譬如眞如(비여진여) 性無垢濁(성무구탁)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修菩薩行(수보살행) 無有垢濁(무유구탁)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有變易(무유변이)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易 쉬울 이, 바꿀 역

愍念衆生(민념중생) 心無變易(심무변이)

譬如眞如(비여진여) 不可窮盡(불가궁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非諸世法(비제세법) 所能窮盡(소능궁진)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법과 더불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상사리(不相捨離)인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출세간법(世出世法)을 섭지(攝持, 섭수하여 지님)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무능영폐(無能暎蔽)하여 그 어떠한 것으로도 가릴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세간이 무능영폐(無能暎蔽)하여 가릴 수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불가동요(不可動搖)하여 가히 흔들어 동요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마업(魔業)으로도 능히 동요(動搖)시킬 수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성(性, 성품)이 무구탁(無垢濁)하여 때묻고 혼탁하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보살행(菩薩行)을 닦아서 무유구탁(無有垢濁)하여 때묻어서 혼탁하지 않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무유이변(無有變易)하여, 쉽게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을 민념(愍念, 애민하게 생각함)하는 마음이

부변이(無變易)하여 쉽게 변하지 않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불가궁진(不可窮盡)하여, 끝까지 다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법(世法, 세간법)으로 능히 다할 수 없는 것이니라. 

 

진여의 성품은 항상 각오(覺悟)하여 깨어있는 것이다.

譬如眞如(비여진여) (성상각오)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普能覺悟一切諸法(보능각오일체제법)

譬如眞如(비여진여) 不可失壞(불가실괴)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諸衆生(어제중생) 起勝志願(기승지원) 永不失壞(영불실괴) 

譬如眞如(비여진여) 能大照明(능대조명)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以大智光(이대지광) 照諸世間(조제세간)

비유하자면, 진여의 성(性, 성품)이 항상 각오(覺悟)하여 깨어 있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널리 일체법을 능히 보능각오(普能覺悟)하여 두루 깨어있게 할 수 있으며,

(깨우칠 수 있게 할 수 있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불가실괴(不可失壞)하여 잃어버리거나 파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승지원(勝志願, 수승한 지원)을 일으키게 하여서

영원히 잃어버리거나 파괴되지 않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능히 대조명(大照明)하여 밝게 비출 수 있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대지광(大智光, 큰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세간을 밝게 비추며, 

ㅡ진여는 잠잘 때에도 그 놈의 것이 비추고 있으니까, 무슨 소리나 기척이 나면 금방 일어나는, 참 신기한 물건이지요.

五蘊山頭古佛堂(오온산두고불당)에  毘盧晝夜放毫光(비로주야방호광)이라

어떤 비구니 스님의 오도송인데, 오온으로 된 이 몸뚱이 안에 비로자나 광명이 항상 비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몸뚱이를 떠나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譬如眞如(비여진여) 不可言說(불가언설)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一切言語(일체언어) 所不可說(소불가설)

譬如眞如(비여진여) 持諸世間(지제세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能持一切菩薩諸行(능지일체보살행) 

譬如眞如(비여진여) 隨世言說(수세언설)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隨順一切智慧言說(수순일체지혜언설) 

譬如眞如(비여진여) 遍一切法(편일체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遍於十方一切佛刹(편어시방일체불찰) 現大神通(현대신통) 成等正覺(성등정각)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有分別(무유분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諸世間(어제세간) 無所分別(무소분별) 

譬如眞如(비여진여) 遍一切身(편일체신)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遍十方刹無量身中(편시방찰무량신중)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無生(체성무생)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方便示生(방편시생) 而無所生(이무소생)

 

비유하자면, 진여는 불가언설(不可言說)한 것이라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언설로서도 말할 수 없는 것이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모든 세간을 지(持, 유지)하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 보살들의 제행(諸行)들을 능히 유지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수세언설(隨世言說)하여, 세간의 언설을 따르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지혜의 언설(言說)에 수순(隨順)하여 따르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법에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시방의 일체 불찰(佛刹, 부처님 세계)에 두루하면서 대신통(大神通)을 나타내고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보이며, (선근회향, 즉 선행이 정각으로 이루는 것이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무유분별(無有分別)하여 분별함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에서 분별하지 않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편일체신(遍一切身)하여, 일체의 모든 몸에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시방찰(十方刹, 시방 세계)의 무량신(無量身) 가운데에 두루하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무성(無生)인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방편(方便)으로 생(生, 태어 남)을 보이나, 이무소생(而無所生)하여 태어남이 없으며, 

 

ㅡ진여(眞如)는 무소불재(無所不在)한 것이다.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所不在(무소부재)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十方三世諸佛土中(시방삼세재불토중) 普現神通(보현신통) 而無不在(이무불재)

비유하자면, 진여가 부소불재(無所不在)하여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시방으로 삼세의 제불토(諸佛土, 모든 불국토) 가운데에서 

신통을 보현(普現)하여 널리 나타내어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ㅡ무비스님이 전하는 춘성 스임의 일화

춘성 스님이 12시간 이상 걸리는 완행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가는데, 어떤 목사가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라고 하니까  “무소부재라! 무소부재라면 없는 데가 없다는 뜻 아닌가?”

“아~ 그렇다.”고, “하나님은 없는 데가 없다.”고 하니까

“그러면 저 기차 칸에도 있겠네? 저기 저 들판에도 있겠네? 저 산에도 있겠네?”하니까 

“그렇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 화장실의 똥통에도 있겠네?” 그러니까 이 목사가 어떻게 하나님을 똥통에다 비유를 하느냐고, 

“똥도 하나님이라야 무소부재인 것이지, 만약에 똥통에는 하나님이 없다면 어떻게 무소부재인 것인가?라고 하면서 

목사가 '그러면 부처는 어떤 것인가?'하고 물으니까

'똥이 부처님이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譬如眞如(비여진여) 遍在於夜(편재어야)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一切夜(어일체야) 放大光明(방대광명) 施作佛事(시작불사) 

譬如眞如(비여진여) 遍在於晝(편재어주)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悉令一切在晝衆生(실령일체재주중생) 見佛神變(견불신통) 演不退輪(연불퇴륜) 

離垢淸淨(이구청정) 無空過者(무공과자) 

譬如眞如(비여진여) 遍在半月(변재반월) 及以一月(급이일월)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諸世間次第時節(어제세간차제시절) 得善方便(득선방편) 於一念中(어일념중) 知一切時(지일체시) 

譬如眞如(비여진여) 遍在年歲(변재년세)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住無量劫(주무량겁) 明了成熟一切諸根(명료성숙일체제근) 皆令圓滿(개령원만) 

譬如眞如(비여진여) 遍成壞劫(변성괴겁)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住一切劫(주일체겁) 淸淨無染(청정무염) 敎化衆生(교화중생) 咸令淸淨(함령청정) 

譬如眞如(비여진여) 盡未來際(진미래제)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비유하자면, 진여는 편재어야(遍在於夜)하여 밤에도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야(一切夜)에 대광명(大光明)을 놓아 불사(佛事)를 지어 베풀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편재어주(遍在於晝)하여 낮에도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낮에 있는 일체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불신통(佛神變)을 보고, 

불퇴전의 법륜을 펼치고, 이구(離垢, 때를 벗음)하여 청정하게 하여서 무공과자(無空過者, 헛되이 보내지 않음)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반월(半月, 보름)이나, 일월(一月, 한 달)에도 편재(遍在)하여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의 차제시절(次第時節, 시절이 차례로 바뀜)에서

선방편(善方便, 좋은 방편)을 얻어서 일념(一念, 한 순간) 가운데에서 일체시(一切時, 모든 때)를 알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년세(年歲, 매 해)에 편재(遍在)하여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무량겁(無量劫) 동안 머물면서

모든 근기들이 성숙하는 것을 명료(明了)하게 분명히 알아서 그 모두로 하여금 원만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성괴겁(成壞劫)에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겁(劫)에서도 무염(無染)하여 물들지 않고 청정히 머물면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그 모두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며,

ㅡ성괴겁(成壞劫), 성겁이나 괴겁, 별이 없어지고ㆍ생기고,  

세포가 생기고ㆍ없어지고, 생기고ㆍ없어지고,

사람이ㆍ생기고 없어지고, 생기고ㆍ없어지고,

춘하추동 사계가 바뀌는 모든 곳에 진여가 두루두루합니다.

 

盡未來際(진미래제) 修諸菩薩(수제보살) 淸淨妙行(청정묘행) 成滿大願(성만대원) 無有退轉(무유퇴전) 

譬如眞如(비여진여) 遍住三世(변주삼세)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令諸衆生(영제중생) 於一刹那(어일찰나) 見三世佛(견삼세불) 未曾一念(미증일념) 而有捨離(이유사리) 

譬如眞如(비여진여) 遍一切處(변일체처)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超出三界(초삼계출) 周遍一切(주변일체) 悉得自在(실득자재)

譬如眞如(비여진여) 住有無法(주유무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了達一切有無之法(요달일체유무지법) 畢竟淸淨(필경청정)

비유하자면, 진여가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보살의 청정한 묘행(妙行)을 닦아서 

대원(大願)을 원만하게 이루어 퇴전하지 않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삼세(三世)에 두루 머무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일찰나(一刹那)에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보고서

미증일념(未曾一念(, 일찍이 한 순간)도 사리(捨離)라여 버리고 떠나지 않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삼계(三界)를 초출(超出, 초월)하여 

일체처에 두루하는 모든 자재(自在, 자유로움)함을 얻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유무(有無)의 법(法)에 머무는 것과 같이,

(진여는 유법 무법에 모두 머무는 것과 같이,

진여는 유ㆍ무, 유상ㆍ무상, 비유상ㆍ비무상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유무법(有無法)을 요달(了達)하여 필경에 청정하며,  

 

ㅡ진여의 체성이 청정함에 대한 비유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淸淨(체성청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能以方便(능이방편)  集助道法(집조도법) 淨治一切諸菩薩行(정치일체제보살행)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明潔(체성명결)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令諸菩薩(영제보살) 悉得三昧明潔之心(실득삼매명결지심)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無垢(체성무구)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遠離諸垢(원리제구) 滿足一切諸淸淨意(만족일체제청정의)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我我所(무아아소)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以無我我所淸淨之心(이무아아소청정지심) 充滿十方諸佛國土(충만시방제불국토)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平等(체성 평등)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獲得平等一切智智(획득평등일체지지) 照了諸法(조료제법) 離諸癡翳(이제치예) 

譬如眞如(비여진여) 超諸數量(초제수량)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與超數量(여초수량) 一切智乘(일체지승) 大力法藏(대력법장) 

而同止住(이동지주) 興遍十方(흥변시방) 一切世界廣大法雲(일체세계광대법운) 

譬如眞如(비여진여) 平等安住(평등안주)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發生一切諸菩薩行(발생일체제보살행) 平等住於一切智道(평등주어일체지도) 

譬如眞如(비여진여) 遍住一切(변주일체) 諸衆生界(제중생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滿足無碍一切種智(만족무애일체종지) 於衆生界(어중생계) 悉現在前(실현재전)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有分別(무유분별) 普住一切音聲智中(보주일체음성지중)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具足一切諸言音智(구족일체제언음지) 

能普示現種種言音(능보시현종종언음) 開示衆生(개시중생) 

譬如眞如(비여진여)  永離世間(영리세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普使衆生(보사중생)永出世間(영출세간)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청정(淸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능히 방편으로 조도법(助道法, 도를 돕는 37 조도품)을 모아서 일체의 보살행을 정치(淨治)하여 청정하게 다스리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명결(明潔)하여, 밝고 정결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로 하여금 삼매의 명결심(明潔心)을 얻게 하며,

(삼매에 들었을 때와 같은 깨끗한 마음을 얻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무구(無垢)하여 때가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제구(諸垢)를 원리(遠離)하여 멀리 벗어나서  

일체의 모든 청정의(淸淨意, 청정한 뜻)을 만족하게 하며,

비유하자면, 진여는 무아아소(無我我所)하여 '나'와 '내것'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나'와 '내것' 없는 청정한 마음으로 시방의 모든 불국토(佛國土)에 충만하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평등(平等)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평등한 일체지지(一切智智)를 획득하여 제법을 비추어 보며, 모든 치예(癡翳, 어리석음의 때)를 여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수량(數量)을 초월한 것과 같이

(아무리 넓고 큰 것일지라도 진여의 양에는 미치지 못하여 수량을 초월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수량(數量)을 초월한  일체지의 승(乘)의 대력법장(大力法藏)과 더불어

함께 동지(同止)하여 머물러서 시방의 모든 세계에 광대한 법구름을 두루 일으키며,

(시방의 모든 세계에 그 영향력을 끼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평등하게 안주하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보살행을 발생(發生)하여 일으켜서 일체지도(一切智道)에 평등히 머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의 모든 중생계에 두루 머무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걸림이 없는 무애일체종지(無碍一切種智)를 만족하게 하여 

모든 중생계에서 현재전(現在前)하여 그 모두의 앞에 나타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분별이 없는 무유분별(無有分別)하여

일체음성지(一切音聲智, 음성의 지혜) 안에 두루 머무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언음지(言音智, 언음의 지혜)를 구족하여서  

갖가지의 종종언음(種種言音)을 널리 시현하여 중생들에게 개시(開示)하여 열어보이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영리세간(永離世間)하여 세간을 영원히 떠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영원히 출세간(出世間)하여, 세간을 벗어나게 합니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22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보고(寶鼓)의 묘음(妙音)의 충분히 잘 어울려서 극해궁겁(克諧窮劫, 겁이 다하도록)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ㅡ'극(克)'은 능(能)함이요 '해(諧)'는 조화이다ㅡ 음운이 조화롭고 우아하여 곡조가 비교할 바가 없는 무비(無比)하는 말이다.

 

'아승기 보생(寶生)'이란, 보배로 능히 갖가지 법보(法寶)를 낳는 것이며,

또한 중생이 능히 발심하는 것으로서 보배를 삼는 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보신(寶身)'이란, 보배로서 갖가지의 몸을 삼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보구(寶口)'란, 보배를 입의 형상으로 삼아서 능히 법음(法音)을 연설하는 것이며,

'보심(寶心)'이란, 보배를 마음의 형상으로 삼아서 의업(意業)과 대지원보(大智願寶)를 구족하는 것이며, 
'대의(大意)'는 하여상(下如上)하여 아래도 위와 같아서, 인과의 같음으로써 해석한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경문에서 스스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대강으로는, 과(果)로써 인(因)한 바를 아는 것이니, 위와 같은 장엄들 모두가 대원(大願)으로 행을 일으켜서 성취하는 바이니, 

마치 화장세계가 모두 보현의 원력(願力)을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는 원(願)을 말미암아서 행을 일으킴을 밝힌 것이다.

 

보신업(寶身業)과 어업(語業)과 의업(意業)이란 것은 보배를 3업(三業)으로 삼은 것이니,

스스로의 3업으로부터 행을 일으켜 언전(言詮)과 사유(思惟)와 거취(去就)를 세우는 것을 마음의 보배인 것이다.

 

제23 단락에서, 보살신(菩薩身)으로 불찰을 장엄하여 그 가운데에 충만하기를 원(願)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그 아래의 경문은 위와 같은 장엄이 다시 백배를 초과해서, 이러한 선근을 통하여 장차 회향하는 것을 모두 들고 매듭지은 것이다.
제24 단락에서 “불자야” 이하에서 열 가지 회향의 소유를 든 것은 경문에 다 갖추어져 있으니,

가령 대지가 진동하는 단락 가운데에서 지진동(地振動)에 3 가지의 뜻이 있으니,

1. 가르침을 설하는 위의와 감응으로 진동하는 것이며(說教威感動),

2. 대중이 법을 듣고 기뻐하는 것으로 진동하는 것이며(大衆聞法悅樂動),

3. 부처의 신덕(神德)을 추대하여 진동하게끔 불러들이는 것이다(推佛神德致令動).

 

모든 제천(諸天)들이 공양을 일으키는 것에 2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1. 부처님 가르침의 법문을 설한 감응을 초래한 공양이며(說佛教法門門招感供),

2. 모든 천(天)들이 법을 듣고 환희하면서 공양을 일으키는 것이다.(諸天聞法歡喜興供)

 

공양의 색수(色數)는 경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이며,

일체 불찰의 무량한 아승기의 모든 부처의 제불경계(諸佛境界)에서 여래의 화신이 모든 제천(諸天)들을 능가함을 나타낸다는 것은 법을 설해서 덕을 나타낸 것이니, 법과 경계가 서로 부합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하늘의 공양을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일체 체계의 도솔천궁에서도 역시 모두 이와 같다는 것은 시방이 이와 똑같음을 한꺼번에 매듭지은 것이며, 
이 때 부처의 신력(神力)으로 말미암아 시방으로 각각 백만의 불찰미진수를 초과한다는 것을 든 것은―10주에선 백(百)이요, 10행에선 백천(百千)이요, 이 지위에선 백만(百萬)이다― 승진하는 지견지(知見智)가 더욱 늘어나는, 증광의 양(量)을 밝힌 것이다.

이와 같이 '백만 세계의 미진수 밖에서 왔다(百萬世界微塵數之外而來)'는 것은,

미혹하여서 (깨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외(外, 밖)이라 칭하고,

승진으로 오해(悟解)하여 지위에 들어가는 것을 내(來, 온다)하고 말한 것이다.

 

백만 불찰미진수 보살의 동명(同名)의 금강당(金剛幢)이 와서 “훌륭하도다”라고 찬탄하면서 금강당보살을 칭찬한 것은 지혜가 회통하여서 도(道)에 합치하기 때문에 동명(同名)의 명호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또한 지금의 지혜가 고금과 더불어 회통하고 합치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또한 이 같은 등의 찰진(刹塵) 경계에 미치나니, 이러한 모두가 무미혹(無迷惑)으로 모든 미혹에서 벗어난 금강지(金剛智, 금강과 같은 지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그러한 국토의 티끌 수만큼이나 수많은 세계에까지 미치는데, 이는 전적으로 모든 망상에서 벗어난 금강 같은 지혜 덕분입니다.

세계의 명호를 금강광(金剛光)이라 한 것 역시도 이와 같은 뜻이다.


“이 때” 이하의 6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게송을 설한 덕을 찬탄함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서 알 수 있을 것이며,

그 이하의 94행 게송은 2행이 한 게송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그 가운데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넓어져서 지위에 따라 수기(授記)를 받아서 작불(作佛)한다는 것은, 지위에 따라 승진하에 지혜와 대자비가 넓어짐을 밝힌 것이지, 시일이나 세월의 겁량(劫量)의 늦고 빠름이나, 넓이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모두는 수행의 지위로서 불과(佛果)의 명호(名號)를 세운 것이다.

26) 십지품(十地品)①


1. 환희지(歡喜地)①


이 품(品)을 해석함에 있어서 4 가지의 문으로 나눌 것이니,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것이며,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것이며,

셋째 승진의 단계를 펴는 것이며,

넷째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으니;

어찌하여 그 명칭을 '십지품(十地品)'이라 하는 것인가?

해석하여 말하자면, 여래의 보광명지(寶光明智)로서 지(地)의 체(體)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예를 들자면, 경문에서 “이 같은 보살이 이미 여래의 보광명지를 밟았다(如是菩薩已踐如來普光明地)”는 것은 바로 대원경지(大圓鏡智)가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즉 설한 바의 4지(四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와 일체지(一切智)의 차별을 이 지혜의 체(體)로 삼음으로써, 모든 보살이 비록 10주ㆍ10행ㆍ10회향에 오른다 할지더라도 이 체를 여의지 않는 것이며,

도력(道力)이 충분하지 않는다면, 다시 10바라밀을 통하여 10중(重)으로 닦아 나아가서 그 도력을 원만케 하는 것을 10지라 하는 것이며,

또 하나의 바라밀에 스스로 10법을 갖추고 있는 것을 10지라 칭하는 것이며,

십십(十十) 속에 백(百)을 갖추어서, 백(百)이 십(十)으로 옮겨가지 않기 때문에 10지라 칭하는 것이며,

나아가 십백(十百)과 십천(十千)과 십만(十萬)과 십십만(十十萬)과 십억(十億)과 나아가 십불가설(十不可說)에 이르기까지의 십수(十數)가 일다(一多, 하나와 많음)의 무진함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10지라 말하는 것이다.


이 10지의 법이 십(十)을 인(因)으로 해서 통하는 것이니, 즉 10신(信)의 믿음인 10개의 불과를 통하여 곧바로 보광명전에서 설한 10 개의 불과인 부동지불(不動智佛)로써 첫 믿음의 초신(初信)으로 삼은 것이니,

나아가 무애지불과 해탈지불과 함께 10개의 지불(智佛)을 통하여 믿는 바의 신과(信果)로 삼은 것이다.

 

닦아 나감에 있어서 10주ㆍ10행ㆍ10회향을 거치면서도 오히려 10신에서의 10개의 지과(智果)로서 10지의 체(體)를 성취하는 것이니, 10 개의 지불(智佛)은 부동지불(不動智佛)을 근본으로 삼고,

부동지불은 보광명지(普光明智)를 근본으로 삼고,

보광명지는 무의주지(無依住智)를 근본으로 삼고,

또한 무의주지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마치 선재동자가 미륵보살을 보자 미륵보살이 선재동자로 하여금 다시 첫 번째의 선지식인 문수사리를 보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뜻이다.

 

그리하여 5위(位)가 원만하게 될때까지 첫 믿음의 초신(初信)의 불과를 여의지 않는 것이니,

이로써 10지법(十地法)이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통섭한 일제(一際) 법문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 명호를 십지품(十地稟)이라 칭하는 것이며,

'품(品)'이란, 균등하게 나누는 것인, 일다(一多)의 차례와 승진동별(昇進同別)의 층급이란 뜻으로,

이러한 것이 바로 승진(昇進)이 없는 가운데 닦아 나아가는 것이요, 층급(層級)이 없는 가운데에서의 층급인 것이다.

 

다시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10지의 체(體)가 만약 10신에서 능히 자기 마음이 초신(初信)의 불과를 믿지 않는다면 10지 또한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며,

10신의 초심(初心)에 10지ㆍ11지의 불과가 없다면 신심 역시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시종(始終)이 총체적으로 완전한 부동지(不動智)의 과(果)이기 때문이며,

능히 마음을 믿는 신심(信心) 역시도 또한 불과(佛果)이기 때문이며,

믿는 바의 소신불과(所信佛果) 역시도 또한 불과이기 때문이며,

수행의 신(身, 몸) 역시도 또한 불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신심(信心)이라야 비로소 신심을 성취하게 되는 성신(成信)인 것이니,

그 닦는 바의 소수인과(所修因果)가 시종일관 부동지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문의 10주ㆍ10행ㆍ10회향 모두가 지위에 따라 닦아 나가는, 수위진수(隨位進修)의 인과(因果)인 십불(十佛)의 열 가지 부처 명호가 있기 때문에, 10지ㆍ11지는 10회향 중에서 불과의 통호(通號)를 취할 뿐, 다시 부처의 명호를 따로 세우지 않는 것이며,

이후의 10지ㆍ11지는 단지 10회향 가운데에서의 이지(理智)와 대비(大悲)의 묘용을 취하여 쌓아 나감으로서, 그 덕행의 공(功)을 성숙하게 하는 것으로, 다시 다른 법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10회향 중에서의 10 개의 불과로 인한 명칭이 모두 동일한 묘(妙)인 것이니,

10회향에서 이미 이(理)와 사(事), 비(悲)와 지(智)의 묘용을 회통하여 법이 성취되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 역시도 천(天)에 오른다고 말하지 않고,

타화천왕 역시도 멀리서 본다고 말하지 않고,

또한 부처를 맞이함도 없음과 아울러 공양을 일으킴도 없음에도,

고인(古人)이 “10지에서 부처를 맞이하는 것과 법좌를 펼치지 않는 것은 경문이 부족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경문에서 뜻하는 바를 얻은 것이 아니다.

다만 법칙이 10회향 중의 대원과 지혜 및 자비와 같아서 수행을 그와 같이 원만하게 하는 까닭에 법좌, 등이 없는 것으로, 이는 법칙이 지(地) 이전의 옛 법을 의지하는 것일 뿐, 다시 다른 가행(加行)의 진수(進修)가 있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10지 법문이 단지 10신과 10주 중의 법칙에 의거해서 부동지를 체(體)로 삼는 것이니,

10주 중 열 분의 월불(月佛)과 10행 중 열 분의 안불(眼佛)과 10회향에서 열 분의 묘불(妙佛)이 10신 중 부동지불 위에 가행으로 닦아 나아가는 명칭이 되는 것이니, 10지도 이와 같이 초법(初法, 최초의 법)에서 옮기지 않은 불이(不移)에 준거해서 알아야 한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三十 十迴向品第二十五之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10

 

ㅡ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 ㅡ5

 

譬如眞如(비여진여) 無能測量(무능측량)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等虛空界(등허공계) 盡衆生心(진중생심) 無能測量(무능측량)

譬如眞如(비여진여) 充滿一切(충만일체)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一刹那中(일찰나중) 普周法界(주변법계)

비유하자면, 능히 진여(眞如)를 측량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善根廻向) 역시도 그와 같아서

허공계와 같이 평등한 중생심(衆生心)을 다하여도 측량할 수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에 충만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찰나(一刹那中, 한 찰나)에 법계에 널리 두루할 수 있으며,

ㅡ비록 밥 한 그릇을 부처님께 올릴 뿐인 공양일지라도, 그 마음으로 올리는 축원은 일체중생들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는 것으로 회향하는 것이 주변법계(普周法界) 일찰나 법계에 널리 두루하는 선근회향입니다.ㅡ무비스님

 

譬如眞如(비여진여) 常住無盡(상주무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究竟無盡(구경무진)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有比對(무유비대)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普能圓滿一切佛法(보능원만일체불법) 無有比對(무유비대)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堅固(체성견고)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體性堅固(체성견고) 非諸惑惱之所能沮(비제혹뇌지소능저) 

譬如眞如(비여진여) 不可破壞(불가파괴)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一切衆生(일체중생) 不能損壞(부능손괴) 

비유하자면, 진여가 항상 상주(常住)하여서 무진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구경(究竟)에 다함이 없이 무진(無盡)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무비대(無比對, 비교할 상대가 없음)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능히 일체의 불법(佛法)을 두루 원만하게 할 수 있음에 무비대(無比對)하여비교할 상대가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견고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이 체성이 견고하여서 제뇌혹(諸惑惱, 모든 번뇌)이 능히 저해(沮害)하지 못하,

비유하자면, 진여가 불가괴(不可破壞)하여, 파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손괴(損壞) 할 수 없으며,

ㅡ몸은 쇠사슬로ㆍ밧줄로 묶을 수 있지만, 이 진여, 진여불성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불가파괴(不可破壞)한 것입니다

 

譬如眞如(비여진여)  照明爲體(조명위체)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以普照明(이보조명) 而爲其性(이위기성)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所不在(무소부재)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一切處(어일체처) 悉無不在(실무불재) 

譬如眞如(비여진여) 遍一切時(편일체시)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遍一切時(편일체시)

비유하자면, 진여가 조명(照明)하여 밝게 비춤으로서 체성을 삼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이, 널리 조명(照明)하는 것으로서 그 성(性, 성품)을 삼았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없는 곳이 없는 무소불재(無所不在)인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이, 일체처에 실무부재(悉無不在)하여 없는 곳이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편일체시(遍一切時)하여 어느 때에나 두루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이, 편일체시(遍一切時)하여 어는 때에나 두루하며,

ㅡ앞에는 공간을 비유하였고, 여기에서는 시간입니다.

진여는 시간성ㆍ공간성을 다 초월하는 것과 같이, ‘진정한 선행은 시간성ㆍ공간성을 다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譬如眞如(비여진여) 性常淸淨(성상청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住於世間(주어세간) 而體淸淨(이체청정)  

 

비유하자면, 진여의 성(性, 성품)이 항상 청정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세간(世間)에 머무르나, 그 체(體, 체성)은 청정하며, 

 

ㅡ진여(眞如)를 법무애(法無碍)에 비유함  

譬如眞如(비여진여) 於法無碍(어법무애)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周行一切(주행일체) 而無所碍(이무소득) 

譬如眞如(비여진여) 爲衆法眼(위중법안)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能爲一切衆生作眼(능위일체중생작안) 

譬如眞如(비여진여) 性無勞倦(성무노권)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倦 게으럴 권, 일할 로 

修行一切菩薩諸行(수행일체보살제행) 恒無勞倦(항무노권)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甚深(체성심심)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其性甚深(기성심심)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有一物(무유일물)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了知其性(요지기성) 無有一物(무유일물)

비유하자면, 진여가 법(法)에 걸림이 없어서 무애()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곳을 주행(周行)하여 다님에 무소애(無所碍)하여 장애가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중법안(衆法眼, 여러 가지 법의 눈)인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능히 일체의 중생들을 위하여 작안(作眼)하여 눈이 되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성(性, 성품)이 무노권(無勞倦)하여 성품이 피로하거나 게으름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 모든 보살들의 제행(諸行)을 모두 수행함에 있어서

무노권(無勞倦)하여 피로함나 게으름이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심심(甚深)하여 매우 깊은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그 성(性, 성품)이 심심(甚深)하여 매우 깊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무유일물(無有一物)으로서, 하나의 물건도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그 성(性, 성품)이 무유일물(無有一物)하다는 것을 알,

ㅡ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여기에 하나의 물건이 있으니, 항상 몸을 움직이고(動), 정신을 쓰(用)고 있으나,

동용중수부득(動用中收不得)하여, 그러한 가운데에 있는 그놈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바로 진여자성입니다. 무아(無我)로써 참 나를 삼고, 
하나의 물건도 없는 것으로써 물건을 삼는, 즉 전체로 삼는 것입니다.

 

譬如眞如(비여진여) 性非出現(성비출현)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其體微妙(기체 미묘) 難可得見(난가득견)

譬如眞如(비여진여) 離衆垢翳(이중구예)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慧眼淸淨(혜안청정) 離諸癡翳(이제치예) 

譬如眞如(비여진여) 性無與等(성무여등)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成就一切諸菩薩行(성취일체제보살행) 最上無等(최상무등)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寂靜(체성적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善能隨順寂靜之法(선능수순적정지법)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有根本(무유근본)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能入一切無根本法(능입일체무근본법)

비유하자면, 진여의 성(性, 성품)이 출현(出現)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이것이 진여라고 성품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그 체(體)가  미묘하여서 보기 어려운 난가득견(難可得見)하며,

(그 체가 미묘하여서 하나하나 분석해서 찾아들어가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중구예(衆垢翳, 모든 때와 번뇌)를 떠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혜안(慧眼, 지혜의 눈)이 청정하여서 제치예(諸癡翳, 모든 어리석음의 때, 번뇌)를 떠났으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성(性, 성품)이 무여등(無與等)하여 더불어 같을 것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보살행을 성취하는 최상(最上)의 비교할 수 없는 무등(無等)이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적정(寂靜)한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적정법(寂靜法)을 능히 잘 수순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근본이 없는 무유근본(無有根本)인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능히 일체의 모든 무근본법(無根本法)에 능히 들어가며,

 

ㅡ체성이 무변(無邊)함에 대한 비유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無邊(체성무변)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淨諸衆生(정제중생) 其數無邊(기수무변)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無着(체성무착)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畢竟(필경) 遠離一切諸着(원리일체제착)

譬如眞如(비여진여) 無有障碍(무유장애)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除滅一切世間障碍(제별일체세간장애)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무변(無邊)하여 끝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을 청정(淸淨, 훌륭)하게하되 그 수 무변(無邊)하여 끝이 없으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무착(無着)하여 집착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필경(畢竟)에는 일체의 모든 집착을 원리(遠離)하여 멀리 여의었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무유장애(無有障碍)하여 장애가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세간의 장애를 제멸(除滅)하여 제거하였으며, 

ㅡ몸은 밧줄로 묶고 쇠사슬로 묶으면 장애를 받는 것이지만, 진여는 장애를 안 받을 뿐만 아니라,

몸을 장애하면 할수록 우리 진여는 더 자유로워집니다.ㅡ무비스님

 

譬如眞如(비여진여) 非世所行(비세소행)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非諸世間之所能行(비제세간지소능행)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無住(체성무주)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一切生死(일체생사) 皆非所住(개비소주) 

譬如眞如(비여진여) 性無所作(성무소작)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一切所作(일체소작) 悉皆捨離(실개사리)

譬如眞如(비여진여) 體性安住(체성안주)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安住眞實(안주진실)

譬如眞如(비여진여) 與一切法(여일체법) 而共相應(이공상응)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與諸菩薩(여제보살) 聽聞修習(청문수습) 而共相應(이공상응) 

譬如眞如(비여진여) 一切法中(일체법중) 性常平等(성상평등)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於諸世間(어제세간) 修平等行(수평등행) 

譬如眞如(비여진여)  不離諸法(불이제법) 善根廻向(선근회향) 亦復如是(역부여시) 

盡未來際(진미래제)不捨世間(불사세간)

비유하자면, 진여가 비세소행(非世所行)인 것으로, 세간이 행할 바가 아닌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이 능히 행할 수 있는 바가 아니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이 무주(無住)하여 머무름이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생사(生死) 머무르지 않는 비소주(非所住)이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성(性, 성품)이 무소작(無所作)으로 짓는 바가 없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소작(所作, 짓는 바)을 모두 버려서 여의었으며,

비유하자면, 진여의 체성(體性)이 안주(安住)하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진실에 안주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법에 상응(相應)하여 (잘 어울리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들의 청문(聽聞)하여 수습(修習)하는 것에 상응(相應)하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일체법에서 항상 평등한 성품인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에서 평등행(平等行)을 닦으며,

비유하자면, 진여가 제법을 불리(不離)하여 떠나지 않는 것과 같이 

선근회향 역시도 그와 같아서 미래제(未來際,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세간을 불사(不捨)하여 버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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