云何彌勒受一生記乎(운하미륵 수일생기호)?
미륵이여, 어느 생에서 수기를 받으려 합니까?
In that case, why does Maitrey Bodhisattva have the prophecy (or becoming a Buddha) in the next life?
[바른 지위 제 값을 하는 자리, 부처자리에서는 네가 나중에 부처 된다는 수기 또는 약속 그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못난 사람들끼리 하는 것으로, 바른 지위에 있고 부처의 지위에 있고 제값을 하는 인간의 자리에 있다면 수기가 필요 없는=亦無受記이니, 어떻게 일생에 보리를 얻는다는 그런 받음이 되겠는가? 그것은 맞지 않다는 뜻입니다]
爲從如生得受記耶(위종여생득수기야)? 爲從如滅得受記耶(위종여멸득수기야)?
여여(진여)한 경지가 생기는 것으로부터 수기를 받으렵니까, 아니면 여여(진여)한 경지가 멸하는 것으로부터 수기를 받으려 합니까?
Is this prophecy (of Buddhahood) coming from the birth of suchness, or is it arising from the extinguishment of suchness?
[爲從如生= 누구나 가지고 있는 如= 진여 또는 근본 마음자리로부터 수기를 받으시렵니까?]
若以如生得受記者(약이여생득수기자) 如無有生(여무유생)
만약 여여한 경지가 생기는 것으로써 수기가 이루어진다면 여여는 거기에는 생기는 일이 없으며,
If the prophecy is from the birth of suchness, yet suchness is without birth.
[진여는 생이 없으니까 멸이 없는 것이나, 만약 생이 있으면 멸이 있게 되는 것이니까 진여생, 진여멸, 여생, 여멸이라는 말을 쓴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억지 물음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진여의 생으로부터 수기를 얻는 것 이라면 如無有生, 진여는 생하는 것이 없다]
若以如滅得受記者(약이여멸득수기자) 如無有滅(여무유멸)
만약 여여한 경지가 멸하는 것으로써 수기가 이루어진다 해도 여여에는 멸이 없는 것이며,
If the prophecy is from the extinguishment of suchness, yet suchness is without extinguishment.
[진여는 생기는 것이 아니니까 소멸도 없는 것으로, 우리 본래의 마음, 참나는 불생불멸이고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으로 미륵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一切衆生皆如也(일체중생개여야) 一切法亦如也(일체법여여야)
일체 중생이 다 여여하고, 일체법이 여여하며,
All sentient beings are suchness, and all Dharmas are suchness,
[일체중생이 다 진여이고 일체법이 亦如也 또한 진여이다]
[이 구절은 티베트 본에 의하면 “일체 중생이 여여하다(Sarva Sattvatathat)”이다.]
衆聖賢亦如也(중성현역여야) 至於彌勒亦如也(지어미륵역여야)
모든 성인과 현자도 여여하니, 그대 미륵까지도 여여합니다.
and all sages or wise ones are suchness, and even Mairtreya is suchness.
[진여의 마음 자리는 누구에게 다 동등하고 평등한 자리이니까 일체 성현이 다 진여이고, 미륵 당신 역시도 진여이다]
若彌勒得受記者(약미륵득수기자) 一切衆生亦應受記(일체중생역응수기)
그러므로 만약 그대 미륵이 수기를 얻었다고 하면, 일체 중생도 수기을 얻는 것이 될것 입니다.
Therefore, if you, Maitreya, have received the prophecy (of becoming a Buddha), then all sentient beings should be able to receive the prophecy.
[만약 미륵 당신이 진여의 입장을 가지고 수기를 얻었다고 한다면 一切衆生도 亦應受記=일체중생 또한 응당히 수기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 夫如者不二不異(부여자불이불이)
왜냐 하면 여여에 있어서는 不二=두 가지도 아니고 不異=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Why? All is suchness, non-dual and undifferentiated.
[진여라고 하는 것은 不二不異 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진여는 평등하니까 미륵이나 중생이나 부처나 유마거사나 다르지 않은 것이다]
若彌勒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약미륵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자)
一切衆生皆亦應得(일체중생개역응득)
만약 그대 미륵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면, 일체 중생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If you, Maitreya, attain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all sentient beings should also be able to attain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만약에 미륵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면 일체중생 또한 응당히 다 얻을 것이니, 즉 미륵보다 못한 일체 중생이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근본자리,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진여의 입장에서는 만약에 미륵이 얻으면 얻는 그 순간에 모든 중생이 같이 얻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다르지도 않고 둘이 아니니까, 즉 미륵과 우리 중생이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니까 미륵이 얻으면 일체중생이 다 얻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 一切衆生卽菩提相(일체중생즉보리상)
왜냐 하면 일체 중생 그대로가 菩提相= 깨달음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Why? All sentient beings are the mark of bodhi.
[일체중생이 곧 보리의 모습=깨달음의 모습이라는 것은 정말 결정적인 말입니다. 왜 그러냐? 미륵이 수기를 얻는데 왜 일체중생이 다 얻느냐 일체중생이 곧 보리의 상(모습)이다. 중생도 깨달음 그 자체이다. 중생의 삶 그 자체, 삶 그대로가 도이고, 진리 그대로가 삶이고, 진여 그대로가 삶 그 자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若彌勒得滅度者(약미륵득멸도자) 一切衆生亦應滅度(일체중생역응멸도)
만약 그대 미륵이 멸도(깨달음의 경계, parinirva)를 얻는다고 한다면, 일체 중생도 멸도(깨달음의 경계)에 이를 것이며,
If you, Maitreya, can attain the extinguishment of nirvana, all sentient beings should be able to do the same.
[멸도= 번뇌를 소멸해서 제도를 얻는다면, 일체중생 또한 응당히 멸도를(제도)를 얻게 될 것이다]
[멸도(滅度)=나고 죽는 큰 환란을 없애고, 번뇌의 바다를 건넜다는 뜻으로 곧 열반을 번역한 말이다.
열반(涅槃)=불교의 최고 이상이며, 니원(泥洹) 열반나(涅槃那) 라고 음역한다.
구역제사(舊譯諸師)는 번역하여 멸(滅), 멸도(滅度), 적멸(寂滅), 불생(不生), 무위(無爲), 안락(安樂), 해탈(解脫) 등 이라 하고, 신역(新譯)의 번역은 원적(圓寂)이라 한다.
멸(滅)은 生死와 因果를 멸한다는 뜻이며, 滅度는 생사의 인과를 멸하고 생사의 폭류(暴流)를 건넜다는 뜻이며, 이 멸(滅)은 곧 도(渡)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 諸佛知一切衆生(제불지일체중생) 畢竟寂滅(필경적멸)
왜냐 하면, 제불께서는 일체 중생이 필경 깨달음=寂滅을 얻고,
Why? The Buddhas know that all sentient beings ultimately enter silent extinguishment,
[일체중생이 철저히, 끝까지, 궁극적으로 적멸이다. 중생이 아무리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탐진치 삼독이 아니라 팔만사천번뇌를 일으키더라도 그 궁극의 자리, 그 근본마음의 자리, 일심의 자리는 끝내 적멸한 자리이다]
[적멸이란 寂은 有無로 공적안온(空寂安穩)의 뜻이며, 滅은 생사의 대환大患을 멸하는 것을 말한다.]
卽涅槃相(즉열반상) 不復更滅(불부갱멸)
그대로 열반의 모습이며, 다시는 멸하는 일이 없다고 알기 때문이며,
the appearance of nirvana, and there is nothing more to extinguish.
[卽涅槃相=열반모습 그대로에는 탐,진,치 삼독도 번뇌 망상도 없는 완전무결한 자리, 궁극적으로 적멸한 깊은 자리, 畢竟寂滅의 자리를 중생들은 다 가지고 있다. 속 마음 아주 깊은 자리는 본래 완전무결해서, 탐, 진, 치, 삼독 번뇌도 없고 팔만사천 번뇌도 없고, 중생의 때라고 생각하고 죄업이고 업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굳이 떨쳐버리려고 하지 말라, 본래 적멸하고 깨끗한 자리를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 그 것이 업의 바람에 의해서 물결치는 것이다. 바다가 파도친다고 해도 깊은 바다 밑까지 파도치고 동요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겉만 육식의 작용으로 물결칠 뿐, 깊은 속마음 본래심, 진여심 자리에는 전혀 파도가 없는 완전무결 한자리이다. 거기에는 일체 죄업이나, 허물이나, 일체업장도 없는 자리, 畢竟寂滅이라는 자리라는 것을 諸佛=모든 부처님은 아신다. 즉 知一切衆生이 畢竟寂滅하야 卽涅槃相이라 일체중생이 필경에 적멸해서 곧 열반의 모습 그대로 이라서 不復更滅, 다시 더 번뇌를 소멸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신다.
본래 소멸할 것이 없는 번뇌를 소멸하려고 바동바동 애를 쓰고 목이 터져라 부르는데, 그냥 다 놓아버리면 편안한 것을 모르고 번뇌, 망상이라는 환상에 속아서 아등바등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일체중생이 필경에 적멸해서 그대로 열반이라 다시 더 소멸할 것이 없는 것을 부처님은 아신다.]
[열반이란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진리를 궁구하며 미(迷)한 生死를 초월해서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를 말한다.]
[卽涅槃相(즉열반상) 不復更滅(불부갱멸)= 이 대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역본을 보면, 지겸은 “불(佛)은 중생을 버리고 혼자만 깨닫는=滅度하지 않는다. 반드시 어리석은 중생을 깨닫게 한다” 했으며,
티베트 역에서는 “중생이 모두 깨닫는=涅槃을 얻지 않으면 불은 깨닫지 않는다” 했다.]
是故彌勒(시고미륵) 無以此法誘諸天子(무이차법유제천자)
그러므로 미륵이여, 이러한 (나는 장차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것을 설하여 천상의 신들을 유혹해서는 안 됩니다.
Therefore, Maitreya, do not fool the celestial beings with such teachings.
實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실무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亦無退者(역무퇴자)
실제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킨다는 것도 없고, 또한 그러한 마음이 후퇴한다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In reality, no one is developing the intention to attain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or a person reaching the stage of non-retrogression.
[더욱 강한 표현으로 實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발할 것도 없다. ]
彌勒(미륵) 當令此諸天子(당령차제천자) 捨於分別菩提之見(사어분별보리지견)
미륵이여, 이 모든 천상의 신들로 하여금 보리(bodhi)를 분별하는 생각(見)을 버리게 해야 합니다.
Maitreya, let these celestial beings renounce their differentiated perspectives regarding bodhi.
[그동안 일생의 문제, 수기문제, 진여의 문제, 멸도의 문제 등을 이야기 하다가 궁극에는 보리, 깨달음 등의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25종류의 보리에 대한 설명으로 설명하게 됩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 菩提者不可以身得(보리자불가이신득) 不可以心得(불가이심득)
왜냐 하면 보리라는 것은 몸으로 얻을 수도 없는 것이며, 마음으로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Why? Bodhi is not something that one can attain with the body, nor can one attain it with the mind.
寂滅是菩提(적멸시보리) 滅諸相故(멸제상고)
적멸이야말로 보리이니, 모든 모습=相을 멸하였기 때문이며,
Silent extinguishment is bodhi, the cessation of all forms.
[우리 눈앞에 벌어져 있는 현상은 차별하지만, 우리의 근본 마음자리는 적멸해서 온갖 차별이 다 소멸된 자리이기 때문이다=滅諸相故. 제상=여러 가지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생의 상, 멸의 상, 선의 상, 악의 상, 남의 상, 여의 상 등의 온갖 상에 기준해서 웃고 울고, 잘났네 못났네 하지만, 우리의 본래심 보리의 마음 자리는 그러한 것들을 다 초월한 자리=滅諸相이다]
不觀是菩提(불관시보리) 離諸緣故(이제연고)
또 관(관찰)하지 않는 것이 보리이니, 온갖 대상과의 관계=緣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며,
Non-perceiving is bodhi, which is apart from all causes.
[관찰=觀은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를 통해서 무엇이 존재하는 것, 또 이것과 저것과 어떤 인연과 어떤 조건이 결합해서 이러한 사건이 있고, 이 물건은 이것과 저것과 연해서 있다. 이런 저런 온갖 조건들로 인해서 이 꽃이 이 순간 여기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관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관하지 않는 것이 보리다. 왜냐 모든 인연을 떠났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은 이것과 저것, 어떤 조건, 어떤 인연으로 있는 것이나, 보리 깨달음 자리는 그런 지엽적인 것을 가지고 논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인 뿌리, 본래심 자리를 가지고 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구하지 않는다. 본질의 자리에서는 그러한 인연적인 현상을 볼 수가 없다. 근본을 못 보니까 그래서 不觀= 보지 않는, 관찰하지 않는 것이 보리이다]
[不觀是菩提(불관시보리) 離諸緣故(이제연고)= 승조(僧肇)는 '주유마경(注維摩經)'에서
“관(觀)은 연(緣)으로부터 생(生)하고 연(緣)을 떠나면 즉 관(觀)이 없다”고 주석(註釋)하고 있다.]
不行是菩提(불행시보리) 無憶念故(무억념고)
행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리이니, 잊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憶念이 없기 때문이며,
The unconditioned is bodhi, no thoughts of remembrance.
[행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흘러간다는 것은 우리생각이 순간순간 계속 흘러가지만 본래의 마음자리에서는 행하지 않으니, 그것이 보리이다]
[승조는 ‘불행(不行)’의 “행(行)은 염(念)으로부터 생(生)하고 염(念)이 없기 때문에 행(行)이 없다,”]
斷是菩提(단시보리) 捨諸見故(사제견고)
끊어 없애는 것=斷이 보리이니, 모든 그릇된 견해=邪見을 끊어 버리기 때문이며,
To cut off (attachment) is bodhi because the mind has given up all opinions.
[諸見=온갖 소견, 있다는 소견, 없다는 소견 등의 온갖 사견들, 즉 있음에 치우쳐도 안 되고, 없음에 치우쳐도 안 되고, 있고 없는데 치우쳐도 안 되고, 또는 있고 또는 없음에 치우쳐도 안 되는, 즉 온갖 소견들을 전부 버리는 것= 斷이 보리다.]
離是菩提(이시보리) 離諸妄想故(이제망상고)
떠나는 것=離가 보리이니, 모든 망상을 떠나기 때문이며,
Separation is bodhi, separate from all delusions.
[모든 망상을 떠나면 보리라고 하는 것은 일체전도망상을 멀리하여 떠나면 보리이다.]
障是菩提(장시보리) 障諸願故(장제원고)
장애가 보리이니, 모든 잘못된 바램 (치구심) =願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며,
Obstruction is bodhi, obstructing all desires and wants.
[모든 원을 장애하는 것이 보리다. 여기서의 원(願)은 치구심, 즉 개인적인 욕망을 말하는 것으로, 諸願을 것을 障=막아서 편안히 본래의 자기모습으로 되돌아온 자리가 보리이다]
[‘장(障)’은 “진도(眞道)에는 욕(欲)의 온갖 원(願)을 막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不入是菩提(불입시보리) 無貪著故(무탐착고)
들지 않는 것=不入이 보리이니, 탐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Not entering is bodhi, free from craving.
[‘불입(不入)’은 “입(入)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順是菩提(순시보리) 順於如故(순어여고)
(진여를) 따르는 것=順하는 것이 보리이니, 여여에 따르기 때문이며,
Bodhi compiles, for it complies with suchness.
住是菩提(주시보리) 住法性故(주법성고)
머무는 것[住]이 보리이니, 법성(진여의 자성, 본성)에 머물기 때문이며,
Abiding is bodhi, for it abides with the true nature of reality.
[앞에서는 진여는 무주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머무는 것이 보리라고 한 것은 법의 자리에 머물기 때문이다. 法性= 진여의 자성에 머물기 때문에 당연한 보리이다]
[ 법성(法性)=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본성(本性).]
至是菩提(지시보리) 至實際故(지실제고)
이르는 것=至가 보리이니, 실제(진리)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To reach is bodhi, which is to reach the edge of reality.
[ 실제(實際)=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극한(極限) 또는 변제(邊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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