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후서(成唯識論後序)
오흥(吳興) 심현명(沈玄明) 찬(撰)

原夫覺海澂玄,涵萬流而濬宗極,神幾闡妙,被衆象而凝至眞,朗慧日而鏡六幽,洩慈雲而淸八寓,演一音而懸解,逸三乘以遐騖,體陳如之半器,津有有於鹿園,照善現之滿機,繹空空於鷲嶺。雖絕塵於常、斷,詎遺筌於有、空?顯無上之靈宗,凝中道於茲教。

본래 깨달음의 바다인 각해(覺海) 현묘함을 맑히나니, 일체의 흐름 포용하여 지고한 가르침인 종극(宗極) 깊게 하며, 신령스러운 기미 오묘함을 여니, 삼라만상의 중상(衆象) 미쳐 지극한 진리인 지진(至眞)을 맺히게 한다.

혜일(慧日) 밝혀서,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에 있는 그윽하여 밝지 않은 6() 비추고, 

자비의 구름 드날려 상하좌우(上下左右) 동서남북(東西南北)의 8() 적시며, 

일음(一音) 연설하여 이치를 깊이 알게 하고, 3() 몰아 멀리 달리게 하며, 

진여(陳如) 그릇이 덜 찬 반기(半器)를 체득하고는 () 우려내어 녹야원에서 () 말하며, 

선현(善現) 근기가  찬 만기(萬機)를 비추어 보고는 () 뽑아내어 영취산에서 () 설하였다.

상단(斷) 대한 번뇌를 끊었지만 어찌 () () 대한 통발조차 버리겠는가? 

최상의 신령스러운 종지를 드러내고 중도(中道)  가르침에서 이루었다.

 

'성유식론(成唯識論, Vijnaptimatratasiddhi­sastra, 비즈냐프티마트라타싯디 샤스트라)'은 인도 대승불교 유가유식파의 세친(世親: c. 320~400)이 저술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기반으로 한 논서이다.

'유식삼십송'에 호법(護法: c. 530~600)이 주석을 가한 것을 주로 하였으며, 거기에다 다른 유식10대논사(唯識十大論師)의 학설을 취사선택하여 659년에 현장(玄奬)이 번역 · 편집하였다.

총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프랑스어역도 있으며, 중국과 일본의 법상종(法相宗)은 이 논에 기하여 세워진 종파이다.

유식설(唯識說)은 중기 대승불교의 유가행자(瑜伽行者)라고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여 미륵(彌勒) · 무착(無着) · 세친(世親)에 의하여 계승되고 체계화된 학설이다.

유식설은 "일체의 존재는 식(識)의 표현이며 유식(唯識)만이 진실이고 외계의 대상은 실유(實有)가 아니다"라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이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의 귀결이라고 주장한다.

'성유식론'도 이런 입장에서 먼저 외도(外道)의 설을 논파(論破)하고 이어서 대상을 낳는 주체(主體)인 아라야식, 아법2집(我法二執)의 근원이 되는 말나식, 6가지 요별작용(了別作用)을 하는 6식(六識)을 분명히 하고, 나아가 제법(諸法)을 성격상으로 나눈 3성(三性)과 3성이 공(空)임을 나타내는 삼무성(三無性)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식수행(唯識修行)의 계위인 5위(五位)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위키


逮金河滅景,派淳源而不追,玉牒霏華,緖澆風而競扇,於是二十八見迷桑鴈於五天,一十六師亂 雲牛於四主。

금하(金河)에서 빛이 사라진 뒤에,

ㅡ'금하(金河)에서 빛이 사라진 뒤'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것을 말한다.

 

순수한 근원인 순원(淳源) 가르고,  근원을 쫓지 않게 되자 옥첩(玉牒) 꽃을 떨어뜨리고 경박한 풍속을 따라 다투어 부채질하나니,

이에 28가지의 부정견(不正見) 상안(桑雁)(五)에서 미혹시키고,

16() 운우(雲牛)(四)에서 어지럽혔다.

 

오천(五天), 고대 인도에 있던 다섯 개의 정치 구획을 말하는 것으로, 동 서 남 북과 중앙의 천축국(天竺國)을 말하는 것이다.

사주(四主), 수미산을 중심으로해서 남쪽은 있는 인간의 세계인 남섬부주(南贍部洲)를 넷으로 나눈 것으로, 동쪽은 인주(人主), 남쪽은 상주(象主), 서쪽은 보주(寶主), 북쪽은 마주(馬主)라고 한다. 

인주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고, 상주는 코끼리에게 적합하고, 보주는 바다에서 갖가지 보배가 난다는 것이며, 마주는 말이 살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뜻한다.


半千將聖,茲惟世親,寔賢劫之應眞,晦生知以提化,飛光毓彩,誕映資靈,曜常明於八蘊,藻初情於六足,秀談芝於俱舍,摽說有之餘宗,攝玄波於大乘,賁硏空之至理,化方昇而照極,湛沖一於斯頌。

500 뒤에 성인인 세친(世親) 실로 어진 대겁의 응진(應眞, 부처님)으로 타고난 지혜를 감추어 교화를 인도하고, 빛을 날려 문채를 기르며, 비춤을 널리 하여 신령함을 도왔다.

상명(常明) 8()에서 빛내고, 초정(初情) 6()에서 꾸몄으며, 빼어난 담론을 '구사론(俱舍論)'에서 펼쳐, () 말하고 남은 종지를 표방하였으며, 현묘한 파도를 대승(大乘)에서 거두어 () 연찬한 지극한 이치를 꾸몄다.

교화가 비로소 떠올라 궁극을 비추고자하여 깊이 () 전일하였다.

 

응진(應眞), 여래 십호 중의 하나이며, 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 만한 법도가 없게 된 경지의 부처이다.

8온(蘊), 8온(蘊)은 '발지론(發智論)'에서 보인다. 이 문헌은 모두 8장 44절로 구성되어 있다. 8장은 각각 잡(雜)ㆍ결(結)ㆍ지(智)ㆍ업(業)ㆍ대종(大種)ㆍ근(根)ㆍ정(定)ㆍ견(見)의 8온(蘊)으로 나뉘고, 44절은 44납식(納息)으로 구성된다.

'발지론'은 유부교학의 기초를 마련한 책으로 평가되며, 주석서로는 '대비바사론'200권이 있다.

6족(足), 초기 유부(有部)에는 6종의 논서가 더 있었는데, 이들을 한데 모아 6족론(足論)이라 부르고 그 책을 신론(身論)이라 한 데서 6족(足)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唯識三十偈者,世親歸根之遺製也,理韜淵海,泛浮境於榮河,義鬱煙飆,麗虹章於玄圃。言含萬象,字苞千訓,妙旨天逸,邃彩星華,幽緖未宣,冥神絕境,孤明斂映,秘思潛津。

'유식30송'은 세친이 근원으로 돌아가서 남긴 작품이니,

그 이치는 깊은 못과 바다를 감싸 부경(浮境) 영하(榮河) 띄우고,

 뜻은 안개와 바람을 성하게 하여 홍장(虹章) 현포(玄圃) 곱게 한다.

말은 가지 형상을 포함하고, 글자는 가지 뜻을 담으며, 오묘한 뜻은 자연스럽게 뛰어나고, 

깊은 무늬는 별처럼 화려하니, 그윽한 실마리는 드러나지 않아 신묘함을 절경(絶境)에서 그윽하게 하고, 

고명(孤明) 빛을 거두어 생각을 잠진(潛津)에서 비밀스럽게 한다.


後有護法、安慧等十大菩薩,韞玄珠於八藏,聳層搆於四圍,宅照二因,棲淸三觀。升暉十地,澄智水以潤賢林;鄰幾七覺,皎行月而開重夜。優柔芳烈,景躅前修,箭涌泉言,風飛寶思,咸觀本頌,各裁斯釋,名曰成唯識論,或名淨唯識論。

이후 호법, 안혜   명의 보살이 있어 현묘한 진주를 8(八) 감추고, 층루(層樓) 사방에 솟게 하며

2인(二) 편안히 비추고, 3(三) 깃들어 맑게 하였다.

10() 올라 빛을 비추고 지혜의 물을 맑게 하여 현림(賢林) 윤택하게 하며,

7각() 내려가 기미를 보고 행월(行月) 밝게 하여 깜깜한 어둠을 열었다.

온화한 우유(優柔)는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자취는 전현(前賢) 이었으며,

화살처럼 샘물 같은 이야기가 솟구치고, 바람처럼 보배로운 생각이 날아올랐다.

이들은 모두 게송을 보고 각각 그것에 대해 해석을 실어 '성유식론' 혹은 '정유식론(淨唯識論)'이라 하였다.

 

8장(八藏), 부처님 법문을 8종으로 나눈 것을 말하는 것으로,

① 태화장(胎化藏), 부처님이 태안에서 화현(化現)하신 것 등을 말한 '처태경(處胎經)'

② 중음장(中陰藏), 죽은 뒤에 아직 새로 태어나지 못하고 머무르는 중유(中有) 때의 일을 말한 '중음경(中陰經)'

③ 마하연방등장(摩訶衍方等藏), '화엄경'ㆍ'법화경'ㆍ'열반경' 등의 대승경전.

④ 계율장(戒律藏), 부처님이 제정하신 재가(在家)ㆍ출가(出家)ㆍ대승ㆍ소승 등의 여러 가지 계품(戒品) 곧 오분율(五分律) 등.

⑤ 십주보살장(十住菩薩藏), 십지 보살의 인행(因行)을 닦아 과를 증득하는 법문을 말한 여러 대승경전.

⑥ 잡장(雜藏), 2승ㆍ3승ㆍ인천(人天) 등의 인행을 닦아 과를 증득하는 것을 섞어 말한 것.

⑦ 금강장(金剛藏), 등각 보살의 금강유정(金剛喩定)의 상을 말한 것.

⑧ 불장(佛藏), 일체 부처님께서 말하신 법문과 신통력으로 변화하여 중생들을 제도하신 등의 일을 말한 것.

 

2인(二因), 인연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으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는 인연을 견인인(牽引因)과 생기인(生起因)으로 나누어 설명하며,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에서는 동류인(同類因)과 이류인(異類因)으로 구분하였다.

 

3관(三觀), 관법(觀法)의 내용을 3종으로 나눈 것이다.

① 천태종에서 세우는 3관으로서 공관ㆍ가관ㆍ중관 등으로, 천태삼관(天台三觀).

② 화엄종에서 세우는 3관으로서 진공관ㆍ이사무애관ㆍ주변함용관 등으로, 법계삼관(法界三觀).

③ 율종에서 세우는 3관에는 성공관ㆍ상공관ㆍ유식관등으로, 남산삼관(南山三觀).

④ '종경록'에 있는 별상삼관ㆍ통상삼관ㆍ일심삼관이 있는데 이것은 삼종삼관이라 하며,

⑤ 법상종의 자은(慈恩)이 세운 삼관으로서 유관ㆍ공관ㆍ중관 등으로, 자은삼관(慈恩三觀)이다.

 

10지(地), 보살(菩薩)이 수행(修行)하는 단계(段階)로서 52위(位) 가운데 41위에서 50위까지를 말한다.

7각(七覺), 수도(修道)를 하는 데 있어서의 일곱 가지 요건(要件)으로,

① 염각지(念覺支), 잘 사념하여 정혜를 명기하여 알아차리는 깨달음의 요소.
② 택법각지(擇法覺支), 지혜(智慧ㆍ知慧)로써 법의 진위(眞僞)를 선택(選擇)하여서 안팎의 현상들을 선별하는 깨달음의 요소.
③ 정진각지(精進覺支), 선정(禪定)에 들어가서 망상(妄想)을 일으키지 않는, 정진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④ 희각지(喜覺支), 마음에 선법(善法)을 얻어 환희를 느끼는 회각, 즉 기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⑤ 경안각지(輕安覺支), 허위(虛僞)ㆍ번뇌(煩惱)를 끊어 버리고 심신의 경안(經眼)을 느끼는 제각, 즉 편안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⑥ 정각지(定覺支) : 집중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⑦ 사각지(捨覺支),  집착(執着)을 멀리 떠난 평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空心外之二取,息滯有之迷塗,有識內之一心,遣歸空之妄執。晦斯心境,苦海所以長淪,悟彼有空,覺岸於焉高蹈。九十外道亂風轍而靡星旗,十八小乘軔羬軒而扶龍轂,窮神體妙,詣賾探機,精貫十支,洞該九分,顧十翼而搏仙羽,頫九流以濬瓊波,盡邃理之希微,闡法王之奧典,稱謂雙絕,筌象兼忘。曜靈景於西申,閟虹光於震旦,濟物弘道,眇歸宗德。

마음 밖의 가지 취착된 견해를 공(空)으로 여겨 () 막힌 미혹의 길을 쉬게 하고, 

() 안의 일심(一心) 존재하게 하여 공(空)으로 돌아가는 망령된 집착을 보낸다.

마음의 경계에 대해 어두워서 고해(苦海)에 빠지는 까닭이고, 

() () 깨달아서 높은 깨달음의 언덕에 발을 딪게 되는 것이다.

90의 외도가 풍철(風轍) 어지럽혀 성기(星旗) 쓰러뜨리자 18소승(小乘) 양이 끄는 수레를 멈추어서 용곡(龍轂) 부지하였다.

신령함을 궁구하여 오묘함을 체득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르러 기미를 탐색하며,

10() 정밀하게 꿰뚫고, 9(九) 대하여 모두 관통하고,

10(十) 돌아보아 신선의 깃을 날개 치고, 9() 살펴서 구슬처럼 영롱한 파도 깊게 하며,

보기도 듣기도 어려운 깊은 이치를 다하여 법왕의 심오한 가르침을 여니,

쌍으로 끊은 쌍절(雙絶)이고, 물고기를 잡는 통발(전筌) () 겸하여 잊었다고 만하다.

신령한 빛을 서쪽에서 빛내고, 무지개의 홍광(虹光) 진단(震旦, 중국)에서 닫았구나.

중생을 구제하고자 도를 널리 펴니 모두 으뜸이 되는 가르침에 귀의하였다.

 

10지(十支), 환희지(歡喜地), 이구지(離垢地), 발광지(發光地), 염혜지(焰慧地), 난승지(難勝地), 현전지(現前地), 원행지(遠行地), 부동지(不動地), 선혜지(善慧地), 법운지(法雲地)

십지는 보살 즉 대승불교의 수행자의 수행계위를  10신(十信) · 10주(十住) · 10행(十行) · 10회향(十廻向) · 10지(十地) · 등각(等覺) · 묘각(妙覺)의 52위(五十二位)로 나눈 것에서의 하나이다. 

9분(九分), 9분경(分經)으로 추측된다. 9분경은 9부경(部經)으로서 불경의 내용을 9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게경(偈經)ㆍ중송(重頌)ㆍ수기(授記)ㆍ게송(偈頌)ㆍ감흥어(感興語)ㆍ여시어(如是語)ㆍ본생담(本生譚)ㆍ미증유법(未曾有法)ㆍ방편(方便) 등이 이에 해당된다.

10익(十翼), 공자(孔子)가 역(易)의 뜻을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說明)한 책(冊)을 말한다.

진단(震旦, 중국), 고대에 인도에서 중국을 부르던 명칭이다.


粤若大和上三藏法師玄奘。體睿舍眞,履仁翔慧。九門禪宴,證靜於融山;八萬玄津,騰流於委海。疊金牆而月曜,峻玉宇而霞騫,軼芳粹於澄蘭,孕風華於龍翼,悼微言之匿彩,嗟大義之淪暉,用啓誓言,肆茲遙踐。泳祥河之輟水,攀寶樹之低枝,循鏤杠以神遊,躝霙峯而安步,昇紫階而證道,瞰玄影以嚴因。採奧觀奇,從蒼龍於二紀;緘檀篆貝,旋白馬於三秦。

대화상 삼장법사 현장(玄奘) 예지를 체득하여 진리를 머금고, () 실천하여 지혜를 드날렸으니,

9() 선을 닦아 고요함을 융산(融山)에서 증득했고, 8만의 현묘한 가르침을 위해(委海)에서 힘차게 흐르게 하였다.

금빛 담장을 포개어 달처럼 빛나게 하고, 옥우(玉宇) 높게 하여 노을처럼 솟아오르며,

아름답고 순수함이 맑은 난초보다 뛰어나며, 바람을 품은 것이 용의 날개보다도 빛나도다.

은미한 말씀이 문채를 감춘 것을 슬퍼하고, 대의(大義)가 빛에 잠긴 것을 탄식하여 맹세의 말을 여쭈어 요원한 걸음을 시도하였도다.

상하(祥河) 철수(輟水)에서 헤엄을 치고, 진귀한 보수(寶樹) 낮은 가지를 더위잡으며, 

강철 다리인 누강(鏤杠) 따라 신묘히 노닐고,  내리는 산봉우리를 밟아 편안히 걸으며,

자줏빛 섬돌에 올라가 도를 증득하고, 현묘한 그림자를 보아 () 엄숙히 하였다.

심오함을 탐구하고 기이함을 관찰하여 창룡(蒼龍) 이기(二紀) 옮기며,

단전구(檀篆具) 묶어 말을 삼진(三秦) 돌렸다.


我大唐慶表金輪,禎資樞電,奄大千而光宅,御六辯以天飛,神化潛通,九仙賮寶,玄猷旁闡,百靈聳職。凝旒邃拱,杳通夢於宵暉;掞組摛華,煥騰文以幽贊。爰降綸旨溥令翻譯,勅尚書左僕射燕國公 于志寧、中書令高陽公 許敬宗等潤色,沙門釋神泰等證義,沙門釋靖邁等質文,肇自貞觀十九年,終于顯慶之末,部將六十,卷出一千。韜軼蓬萊,池湟環渤,載隆法寶,大啓群迷,頌德序經,竝紆宸藻,玄風之盛,未之前聞。

우리 당나라는 금륜(金輪) 경사로 여겨 표정하고, 추전(樞電) 상서로 여겨 의뢰하자,

대천(大天) 가려 자리를 빛내고, 6(六) 통솔하여 하늘에 오르게 되었다.

신령스런 변화는 드러나지 않게 통하고, 9(九)들은 보배를 예물로 주며, 심오한 도리가 두루 밝혀지고, 여러 신령들은 직분을 공경히 하였다.

면류관을 바르게 하고 손을 마주 잡고서 아련하게 초저녁 꿈에서 통하고, 생각을 펼쳐서 문장을 짓고 뛰어난 글로 그윽하게 찬탄하였다.

이에 윤지(綸旨) 내려 번역하게 하였는데, 상서(尙書) 좌복야(左僕射) 연국공(燕國公) 우지령(于志寧) 중서령(中書令) 고양공(高陽公) 허경종(許敬宗) 등에게 윤색하게 하고, 사문(沙門) 석신태(釋神泰) 등에게 증의하게 하며, 사문 석정매(釋靖邁) 등에게 문장을 질정하도록 칙령을 내렸다.

정관(貞觀) 19년에 시작하여 현경(顯慶)의 말에 마쳤으니 60() 가지고 1,000() 출간하였다.

봉래(蓬萊) 두루 지나고 지황(池湟) 발해를 감싸듯이 하여 이에 법보(法寶) 융성하자 미혹한 중생들을 크게 일깨우고, 덕을 칭송하고 () 서술하며, 아울러 신조(宸藻) 얽으니, 깊고 그윽한 풍취가 왕성하여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일이였다.

 

6변(六辨),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곡(穀)의 6부(府)인 듯하다. 

9선(九仙), 상선(上仙)ㆍ고선(高仙)ㆍ대선(大仙)ㆍ원선(元仙)ㆍ천선(天仙)ㆍ진선(眞仙)ㆍ신선(神仙)ㆍ영선(靈仙)ㆍ지선(至仙) 등을 말한다.

현경(顯慶),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연호(年號)이며, 656년에 시작해서 661년 2월까지 5년여 간이다.


粤以顯慶四年,龍棲叶洽,玄英應序,厥閏惟陽,糅茲十釋四千五百頌,彙聚群分,各遵其本,合爲一部,勒成十卷,月窮于紀,銓綜云畢。精括詁訓,硏詳夷夏,調驚韶律,藻掞天庭,白鳳甄奇,紫微呈瑞。遂使文同義異若一師之製焉,斯則古聖今賢其揆一也。

현경(顯慶) 4년, 양기가 생기고 만물이 화합하는 협읍(叶洽) 용이 깃들자 현영(玄英) () 응하여 윤달인 음력 10월에 10() 45 송을 취합하여 같은 종류끼리 모으고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근본을 좇아서 모두 합하여 1() 만들고 10권으로 묶었다.

달이 해에 다하여 가려서 모으는 일이 매듭지어졌으니, 훈고(訓詁) 정성스럽게 엮고 이하(夷夏) 연구하여 자세히 하며, () () 고르게 정비하고, 천정(天庭) 아름다운 문장으로 펴며, 봉황이 기이함을 나타내고, 자미성(紫微星) 상서를 드러냈다.

마침내 글은 같지만 뜻은 다른 것으로 하여금 마치 사람이 지은 같이 하였으니,

이것은 옛 성인과 현재 현인의 법도가 같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三藏弟子基鼎族高門,玉田華胄,壯年味道,綺日參玄,業峻林遠,識淸雲鏡。閑儀玉瑩,陵道邃而澄明;逸韻蘭芳,掩法汰而飛辯。緖僊音於八梵,舞宵鶴以翔禎,摛麗範於九章,影桐鸞而絢藻。昇光譯侶,俯潛睿而融暉,登彩義徒,顧猷暢而高視。秀初昕之琁景,晉燭玄儒,矯彌天之絕翰,騰邁眞俗。親承四辯,言獎三明,疏發戶牖,液導津涉繢功資素,通理寄神,綜其綱領,甄其第,兼撰義疏,傳之後學。庶教蟠黃陸,跨合璧於龜疇; 祥浮紫宮,掩連珠於麟籒。式罄庸謏,敍其宗致云。

삼장(三藏) 제자 () 명문거족으로 옥전(玉田) 화주()이며, 씩씩한 나이에 () 맛보고 젊은 나이에 현묘한 도리에 참여하였다.

() () ()보다 높고, 식견은 () ()보다 맑으며, 

품위 있는 거동은 옥처럼 빛나 () () 능가할 정도로 맑고 밝으며,

고상한 정취는 난초의 향기와 같아 () () 가릴 정도로 언변이 뛰어났으니,

신선의 음을 8()에서 이끌어내어 하늘의 학을 춤추게 하여 상서로운 징조를 보이며, 

아름다운 법도를 9()에서 글로 표현하여 임금의 수레를 빛나게 하듯이 문채를 꾸몄다.

() () 번역의 동료로서 슬기로움을 감추어 빛남을 융합하고, () () 의도(義徒)로서 유창(猷暢) 돌아보아 멀리 내다보았다.

이른 새벽의 선경(璿景)보다 빼어나 현묘한 선비를 진촉(晉燭)하고, 천지에 가득한 절한(絶翰) 바로잡아 진속(眞俗) 넘나들었다.

4(辯, 사무애변) 친히 받들고, 3() 장려하며, 문과 창문을 열어서 소통하고,

나루터로 직접 인도하여 건너가게 것처럼 자질이 본래 질박하며, 이치에 통달하고 신묘함을 붙여서 강령을 종합하여 품제를 밝히고, 아울러 의소(義疏) 지어 그것을 후학에게 전하였다.

가르침이 나라에 두루 미쳐 구슬이 합쳐진 합벽(合璧) 귀주(龜疇)에서 넘어서게 하고,

상서가 자궁(紫宮) 떠서 꿰어진 구슬의 연주(連珠) 인주(麟籒)에서 가리기를 바란 것이니, 

삼가 용소() 다하여 종치(宗致) 뿐이다.

 

도(道)와 수(邃), 인명(人名).

법(法)과 태(汰), 인명.

4변(四辯), 법무애(法無礙)ㆍ의무애(義無礙)ㆍ사무애(辭無礙)ㆍ낙무애(樂無礙)의 4무애변(無礙辯).

3명(三明), 아라한의 지혜에 갖추어 있는 자재하고 묘한 작용으로, 6신통(神通) 중의 숙명통ㆍ천안통ㆍ누진통에 해당하는 숙명명(宿命明)ㆍ천안명(天眼明)ㆍ누진명(漏盡明)이 3명이다.

구슬이 합쳐진 합벽(合璧), 해와 달과 별이 구슬 꿰듯이 나란히 늘어서는 시기.

귀주(龜疇), ① 거북을 말한다.

② 중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쳐서 멸하고, 기자(箕子)를 찾아 하늘의 도(道)를 물었을 때, 기자가 천지(天地)의 대법(大法)을 전달하기 위해 서술(敍述)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말한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8

 

於不共者,唯一佛變。諸有情類無始時來,種性法爾更相繫屬,或多屬一,或一屬多。

故所化生有共不共,不爾,多佛久住世閒,各事劬勞實爲無益,一佛能益一切生故。

함께하지 않는 불공(佛共)의 경우에 있어서는 오직 한 분의 부처님만이 변현하나니,

모든 유정의 무리가 아득한 무시(無始)로부터 종성법의 있는 그대로 더욱 서로 계박하여서,

혹 교화할 대상, 즉 많은 중생이 하나의 부처님인 일불(一佛)에 속하기도 하고

 교화를 받는 한 중생이 많은 부처님인 다불(多佛)에 속하기 때문에, 교화 받는 중생이 함께하기도 하고 함께하지 않기도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많은 부처님이 오래도록 세간에 머물면서 각각의 사업을 수고롭게 하는 일이 참으로 쓸 데 없게 되기 때문이며, 한 분의 부처님이 능히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ㅡ만약 교화 받는 많은 유정들이 모두 함께 한 부처님만 만난다면, 많은 부처님이 계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此諸身土若淨若穢無漏識上所變現者,同能變識俱善無漏。

純善無漏因緣所生,是道諦攝,非苦、集故。蘊等識相不必皆同,三法因緣雜引生故。

모든 불신과 국토는 청정한 곳에도 더러운 곳에도 있으니, 무루식에서 변현된 상분 능변(能變)의 식과 마찬가지로 모두 ()이고 무루이니, 순수하고 청정하며 무루의 인연(종자)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도제(道諦) 포함되며, 고제와 집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5 등의 식의 상분은 반드시 모두 같은 것도 아니니, 온(蘊)ㆍ처(處)ㆍ계(界)의 삼법(三法) 인연이 섞여서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ㅡ신체ㆍ국토의 전변의 주체인 능변(能變) 전변된 소변(所變) 판별한, 제칠신토능소변문(第七身土能所變門).


有漏識上所變現者,同能變識皆是有漏,純從有漏因緣所生,是苦、集攝,非滅、道故。

유루의  위에 변현된 신체(身)ㆍ국토(土)의 상분(相分) 능변의 식과 마찬가지로 모두 유루이니,

순전히 유루의 인연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고제와 집제에 포섭되는 것으로, 멸제와 도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ㅡ이것의 무루의 상분(相分) 능변(能變) 식에 마찬가지로 오로지 ()이고 무루이니, 상분은 견분에 섞이지 않으므로 계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善等識相不必皆同,三性因緣雜引生故,蘊等同異類此應知。不爾,應無五、十二等。

() 등의 식의 상분은 반드시 모두 같은 것도 아니니, 선(善)ㆍ악(惡)ㆍ무기(無記)의 삼성(三性) 인연이 섞여서 이끌어 내기 때문이며, 5 등의 같고 다른 점도 이것에 견주어서 알아야 하는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5온과 12 등이 없어야 할 것이.

만약 상분과 견분이 5() 등에 있어서 역시 같다고 말한다면 옳지 않으니, 왜냐하면 5온ㆍ12() 등의 차이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5온ㆍ12처 18계의 3(科)에 구별이 있는 이상, 상분과 견분 등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닌 것이.


然相分等依識變現,非如識性依他中實。不爾,唯識理應不成,許識內境俱實有故。

或識相、見等從緣生,俱依他起,虛實如識。

난타(難陀)의 견해로써, 상분 등은 식에 의지해서 변현하나니, 식의 성품 견분(見分)이 의타기성 중에 진실한 것과 같지 않으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유식의 도리인 유식리(唯識理)가 성립되지 않아야 할 것이.

(자체분) 내부대상인 상분과 견분, 모두를 실유(實有)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니,

혹은 식과 상분ㆍ견분은  같이 ()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모두 의타기성이며,

상분과 견분이 허망한 여환(如幻)이고, 진실한 종성(種姓)이기 때문에 식과 같은 것이다.

 

唯言遣外,不遮內境,不爾,眞如亦應非實。

호법의 견해의 견해로써, ‘오직’이라는 말은 변계소집성, 즉 마음 밖에서 식(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인 심외실경(心外實境)인 외부대상 부정하고, 상분(相分) 등 의타기성인 내부대상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여도 역시 실유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

 

內境與識旣竝非虛,如何但言唯識非境?

▷묻습니다; 내부대상과 식이 모두 허망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오로지 식이라고만 말하고 대상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까?

ㅡ외인(外人) 비판하여 묻는 것이다.

 

識唯內有,境亦通外,

▷답한다; 식은 오직 내부에만 있고, 대상은 역시 외부에도 통하나니, 

ㅡ대상의 상분에 있어서 내부(內) 의타기성이고, 외부(外) 변계소집성이다.

 

恐濫外故,但言唯識。或諸愚夫迷執於境,起煩惱業生死沈淪,不解觀心勤求出離,

哀愍彼故,說唯識言,令自觀心解脫生死,非謂內境如外都無。

외부대상에 치우칠까 두려우므로 다만 오직 식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범부들이 미혹하여 혹 대상에 집착해서 번뇌와 업을 일으키고 생사에 깊이 잠겨서, 마음뿐이라고 관찰하여 부지런히 해탈을 구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니,

그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오직 ()만이 존재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마음뿐이라고 관찰하여 생사를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니, 내부대상도 외부 대상과 같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니다.


或相分等皆識爲性,由熏習力似多分生,眞如亦是識之實性,故除識性無別有法。

此中識言亦說心所,心與心所定相應故。

안혜의 답변으로,  상분 등은 모두 (자체분) 체성으로 삼으니, 훈습의 세력에 의해서 여러 심분, 즉 상분과 견분으로 사현하나니, 진여는 역시 식의 참다운 성품인 실성(實性)인 것이다.

따라서 식의 성품인 식성(識性)을 제외한, 별도의 법이 있지 않으니, 가운데에서 식이라는 말은 역시 심소(心所, 마음작용)도 가리키는 것이니, 심왕(마음)과 심소는 반드시 상응하기 때문이다.


此論三分成立唯識,是故說爲成唯識論。亦說此論名淨唯識。顯唯識理極明淨故。

此本論名唯識三十,由三十頌顯唯識理乃得圓滿,非增減故。

논서는 분과로 유식의 도리를 성취하나니, 그러므로 '성유식론(成唯識論)'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논서를 ‘정유식론(淨唯識論)’이라고 이름하나니, 유식의 도리인 유식리(唯識理)를 현현해서 매우 밝고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의 본론(本論)이 되는 논서는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라고 이름하며, 30개의 게송에 의거해서 유식의 도리를 현현시켜 원만함을 이루고,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게 하였기 때문이다.

ㅡ본 논서를 가지 분단으로 나눈 중에서 3대단(大段) 해설을 마무리 짓고, 얻은 공덕을 베풀고 함께 속히 성불하기를 발원하는 결석시원분(結釋施願分)이며, 이것은 유통분(流通分) 해당된다.


已依聖教及正理,分別唯識性相義,

이상으로 성교(聖教)와 바른 논리인 정리(正理)에 의거하여, 유식성(唯識性)의 상(相)과 뜻(義)를 판별하였습니다.

ㅡ30 중에서 처음의 24송은 능변식상(能變識相) 밝혔고, 다음의 1(25게송) 유식성(唯識性)을, 뒷부분의 5송은 유식위(唯識位) 판별하였다.

 

所獲功德施群生,願共速登無上覺。

얻는 공덕을 많은 유정들에게 나누어, 함께 속히 최상의 무상각(無上覺) 오르기를 원합니다

ㅡ이 게송은 호법 논사가 조송(造頌)하여 첨가한 것이다.


成唯識論卷第十 終 성유식론 제 10권을 마침.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7

 

有義初一攝自性身,說自性身本性常故,說佛法身無生滅故,說證因得,非生因故,又說法身諸佛共有,遍一切法,猶若虛空,無相無爲,非色、心故。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처음의 하나인 진여(眞如)에 자성신을 포섭시키나니, 자성신은 본성이 상주하는 것이라고 '대승장엄경론' 제3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부처님의 법신은 생멸이 없다고 '유가사지론' 제78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원인을 증득해서 얻는 것으로, 생겨나게 하는 원인은 아니라고 세친의 '금강반야바라밀경론' 상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또한 법신은 모든 부처님에게 공통적으로 있으며, 제법에 두루하고, 마치 허공과 같이 무상(無相)이고, 무위(無爲)이며, 색법도 아니고 심법도 아니라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然說轉去藏識得者,謂由轉滅第八識中二障麤重顯法身故,智殊勝中說法身者,是彼依止彼實性故。

그런데 장식(藏識)을 전환해서 얻는다고 무성의 '섭대승론석' 제9권에서 말한 것은 제8식 중 이장(二障)의 추중(麤重), 즉 종자와 습기를 전환해서 단멸하고, 법신을 현현하는 것에 의거하기 때문이며,

지혜가 수승(殊勝)한 가운데에서 법신을 말하는 것은, 그 지혜의 의지처이고 그 지혜의 참다운 성품인 실성(實性)이기 때문이다.

ㅡ앞에서 1(第一師) 인용한 '섭대승론석' 9권의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아뢰야식을 전환해서 법신을 얻는다고 말한 것은, 청정법계의 진여는  지혜의 의지처이며 참다운 성품이기 때문인 것을 밝힌다.

 

自性法身雖有眞實無邊功德,而無爲故,不可說爲色心等物。

자성법신은 진실하고 가없는 공덕이 있지만, 무위이기 때문에 색법이나 심법 등의 사물이라고는 말할  없는 것이다.


四智品中眞實功德,鏡智所起常遍色身,攝自受用,平等智品所現佛身,攝他受用,成事智品所現隨類種種身相,攝變化身。

사지(四智)에 상응하는 심품 중의 진실한 화현(化現)의 공덕과, 대원경지에서 일어나는 상주하고 두루하는 색신에는 자수용신을 포섭시키고,

평등성지에 상응하는 심품이 나타낸 부처님의 색신에는 타수용신을 포섭시키며,

성소작지에 상응하는 심품이 나타낸 것인, 중생의 부류에 따른 갖가지 신상(身相)에는 변화신을 포섭시키며,

ㅡ제2(第二師) 견해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진여에는 자성신(自性身) 포함시키고, 

대원경지인 실법색신(實法色身)에는 자수용신(自受用身) 포함시키며,  

평등성지의 실법(實法)에는 자수용신을, 불신(佛身)에는 타수용신(他受用身) 포함시키며, 

묘관찰지의 실법에는 자수용신을, 설법(說法)에는 타수용신과 변화신(變化身) 포함시키며,  

성소작지의 실법에는 자수용신을, 사현된 것의 소현(所現)에는 변화신을 포함시켰다.

 

說圓鏡智是受用佛,轉諸轉識得受用故。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수용하는 부처님이라고 '대승장엄경론' 제3권에서 말하였고.

모든 전식을 전환해서 수용신을 얻는다고 무성의 '섭대승론석' 제10권에서 말한 때문이니,

이 두 가지 문장에 의해서 사지(四智) 모두가 수용신(受用身)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雖轉藏識亦得受用,然說轉彼顯法身故,於得受用,略不說之。

장식을 전환해서도 역시 수용신, 즉 자수용신(自受用身)을 얻지만, 그것을 전환해서 법신을 현현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수용신을 증득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략하여 말하지 않는다.

ㅡ앞에서 인용한 '섭대승론석'의 내용과 위배되는 점을 회통한 것이다.

 

又說法身無生無滅,唯證因得,非色心等。圓鏡智品與此相違,若非受用,屬何身攝?

또한 법신은 생함도 멸함도 없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이고, 오직 원인을 증득함으로써 얻으며, 색법이나 심법 등은 아니라고 말하나니,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이것과 서로 다르며, 만약 수용신이 아니라면, 어떤 불신에 포함되겠는가?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그것과 다르므로, 오법(五法) 중에서 진여는 자성신에 포함되고, 대원경지는 수용신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又受用身攝佛不共有爲實德,故四智品實有色心皆受用攝。

또한 수용신에는 부처님의 불공(不共, 십팔불공법)ㆍ유위의 덕(實德)을 포함하므로, 따라서 사지(四智) 상응하는 심품의 실유(實有)의 색법ㆍ심법은 모두 수용신에 포함된다.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중생이나 2() 물론이고 보살과도 함께하지 않는, 부처님만이 갖추신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으로, 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ㆍ삼염주(三念住)ㆍ대비(大悲)를 말한다.

 

又他受用及變化身皆爲化他方便示現,故不可說實智爲體。雖說化身智殊勝攝,而似智現或智所起,假說智名,體實非智。

또한 타수용신과 변화신 모두는 타인을 교화하기 위해 방편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참다운 지혜인 실지(實智)로써 체(體)를 삼는다고는 말할  없으니,

변화신은 지혜의 뛰어남에 포섭된다고 말하지만, 지혜로 사현하고 혹은 지혜에서 일으켜지므로 가정적으로 지혜라고 이름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그 자체는 지혜가 아니며,

앞에서 인용한 '섭대승론석' 9권에서 지혜의 뛰어남인 지수승(智殊勝) 3() 포함한다고 말한 내용을 회통한다.

 

但說平等、成所作智能現受用三業化身,不說二身卽是二智,故此二智自受用攝。

다만 평등성지가 변현한 수용신과 성소작지가 변현한 삼업(三業) 변화신을 능히 현현한다고만 말하며,

 가지 불신이   가지 지혜라고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가지 지혜는 자수용신에 포함되는 것으로, 실제로는 상분(相分), 견분(見分)으로 사현하는 것이다.

ㅡ앞에서 평등성지는 수용신을 현현하고, 성소작지는 3업의 변화신을 나타낸다고 말한 내용을 해석한 것이다.


然變化身及他受用雖無眞實心及心所,而有化現心、心所法,無上覺者神力難思,故能化現無形質法。

그러나, 변화신과 타수용신은 비록 진실한 심왕과 심소(心所)는 없지만 변화로써 나타난 심왕과 심소법은 있다고 '불설불지경(佛說佛地經)'에서 말하였으며,

최상의 깨달음인 무상각(無上覺)은 신통력을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능히형질(無形質)의 법도 변화로써 나타내는 것이다.


若不爾者,云何如來現貪、瞋等?久已斷故。云何聲聞及傍生等知如來心?如來實心等覺菩薩尚不知故。由此經說化無量類皆令有心,又說如來成所作智化作三業,又說變化有依他心,依他實心相分現故。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여래께서 탐욕ㆍ성냄 등을 나타내겠는가? 오래전에 이미 끊었기 때문이며,

어떻게 성문  축생 등이 여래의 마음을 알수 있겠는가? 여래의 참다운 마음은 등각(等覺)의 보살조차도 오히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의거해서 경전, '열반경'에서 수많은 부류를 변화해서 모두 심법이 있게 한다고 말하였으며,

또한 여래의 성소작지는 삼업(三業) 변화해서 짓는다고 '해심밀경' 제5권에서와 '유가사지론' 제78권에서 말하였으며,

또한 변화신에는 의타기심이 있다고  '유가사지론' 제 58권에서 말한 것이니,

타인의 참다운 마음에 의지해서 상분으로서 현현하기 때문이다.

ㅡ'유가사지론' 58권에서 (根)ㆍ심왕(心王)ㆍ심소(心所)ㆍ업(業)과 업과(業果)의 4 가지 변화할  없다고 말한 내용을 회통한 것이다.


雖說變化無根心等,而依餘說不依如來,又化色根心心所法無根等用,故不說有。

변화신(變化身)에는 감각기관과 심법 등이 없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에 의거해서 말한 것일 뿐, 여래에 의거한 것이 아니며, 또한 변화신의 근(根)ㆍ심왕(心王)ㆍ심소법(心所法) 감각기관(根) 등의 작용이 없기 때문에 실재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ㅡ3() 갖춘 공덕의 차이점을 판별한, 제삼삼신공덕각이문(第三三身功德各異門).


如是三身雖皆具足無邊功德,而各有異,謂自性身唯有眞實常、樂、我、淨,離諸雜染,衆善所依,無爲功德,無色、心等差別相用,

이상과 같은 변화신(變化身), 자성신(自性身), 자수용신(自受用身)의  가지 불신의 삼신(三身) 모두 무변한 공덕을 구족하였지만, 각각 다른 점이 있으니,

자성신(自性身)은 오직 진정한 상주함의 상(常), 즉 열반의 경지는 생멸ㆍ변천함이 없이 상주하는 덕,

안락함의 낙(樂), 즉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無爲)의 안락한 덕

참다운 자아의 아(我), 즉 허망하게 집착하는 자아를 버리고 여덟 가지 대자재(大自在)가 있는 참다운 진아(眞我)의 덕

청정함의 정(淨), 즉 번뇌의 더러움인 구(垢)를 여의어서 담연청정(湛然淸淨)함의 덕인 사덕(四德) 만이 있으며, 모든 잡염을 버린 갖가지 선(善)의 의지처이며, 무위의 공덕이고, 색법ㆍ심법 등의 차별된 상(相)과 작용이 없는 것이다. 

 

自受用身具無量種妙色心等眞實功德,若他受用及變化身,唯具無邊似色心等利樂他用化相功德。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수많은 종류의 승묘한 색법과 심법 등의 참다운 공덕을 갖추었으니, 타수용신  변화신은 오직 무변하게 사현된 색법ㆍ심법 등이 남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작용인, 변화된 모습의 공덕만을 갖춘 것이다.

 

又自性身正自利攝,寂靜安樂無動作故。亦兼利他,爲增上緣,令諸有情得利樂故。又與受用及變化身爲所依止,故俱利攝。自受用身唯屬自利。若他受用及變化身唯屬利他,爲他現故。

또한 자성신(自性身)은 진정으로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에 포섭되나니, 적정하고 안락한 것으로서동작(無動作)이기 때문이며,

역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겸하기도 하나니, 증상연이 되어 많은 유정에게 이로움과 안락함의 이락(利樂)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수용신과 변화신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모두 이롭게 하는 자리(自利)ㆍ이타(利他) 포섭되며,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오직 자신을 이롭게 하는 자리(自利) 속하며,

타수용신  변화신은 오직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 속하는 것이니,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현현되기 때문이다.

ㅡ3() 자리(自利)ㆍ이타(利他) 포함관계를 판별한, 제사삼신이리문(第四三身二利門).


又自性身依法性土,雖此身土體無差別,而屬佛法相性異故。此佛身土俱非色攝,雖不可說形量小大,然隨事相,其量無邊,譬如虛空,遍一切處。

또한 자성신(自性身)은 법성토(法性土)에 의지하나니, 이 신토(身土)의 자체에는 차별이 없지만, 부처님과 법에 속하는 양상(佛)과 체성(法)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신체(身)와 국토(土)는 모두 색법에 포섭되지 않으니, 비록 형상과 양(量)의 크고 작음을 말할 수는 없지만, 사물의습을 따라서 말한다면  양이 무변하나니, 비유하자면 허공이 모든 곳에 두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ㅡ3() 의지처인 국토를 판별한, 제오삼신소의토분별문(第五三身所依土分別門).

 

법성토(法性土)에서의 토(土)는 장애인 질애(質礙)가 있는 색법을 말하는 것이 아닌, 오직 진여의 이체인 이(理)에 굳이 국토라는 명칭을 시설한 것일 뿐이다.

 

自受用身還依自土,謂圓鏡智相應淨識,由昔所修自利無漏純淨佛土,因緣成熟,從初成佛盡未來際,相續變爲純淨佛土,周圓無際,衆寶莊嚴,自受用身常依而住。如淨土量身量亦爾,諸根相好一一無邊,無限善根所引生故。功德智慧旣非色法,雖不可說形量大小,而依所證及所依身,亦可說言遍一切處。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오히려 자기 국토에 의지하나니, 자수용신은 신체를 떠나서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국토(土)가 곧 신체(身)이다.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청정식이 예전에 닦은 자리(自利)의 무루이고 순수하고 청정한 불국토의 인연이 성숙함에 의하여, 처음 성불할 때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상속해서 순수하고 청정한 불국토를 만들어 내나니, 두루하고 끝이 없으며, 갖가지 보배로 장엄된 것이고, 자수용신이 항상 의지해서 머무는 곳이다. 

정토의 크기와 같이 불신의 크기도 역시 그러하니, 제근(諸根)의 상(相) 하나하나가 무변하고 무량한 선근에 이끌려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공덕과 지혜도 이미 색법이 아니므로 비록 형상과 양의 크고 작음을 말할 수는 없지만, 증득하여진 진여와 의지처인 불신에 의거해서 모든 곳에 두루한다고 말할  있는 것이다.


他受用身亦依自土,謂平等智大慈悲力,由昔所修利他無漏純淨佛土,因緣成熟,隨住十地菩薩所宜;變爲淨土,或小或大,或劣或勝,前後改轉,他受用身依之而住,能依身量亦無定限。

타수용신(他受用身)도 역시 자기 국토에 의지하나니, 평등성지가 대자비의 힘에 의해, 예전에 닦은 이타(利他)의 무루이고 순수하며 청정한 불국토의 인연이 성숙함으로써, 10지 중에 있는 보살의 근기를 따라 정토를 만들어 내나니,

작기도 하고 혹은 크기도 하며, 혹 열등하기도 하고 혹은 뛰어나기도 해서 이전과 이후가 다르게 전변하나니,

타수용신은 그것에 의지해서 머물며, 의지하는 주체인 불신의 크기도 한정이 없는 것이다.


若變化身依變化土,謂成事智大慈悲力由昔所修利他無漏淨穢佛土因緣成熟,隨未登地有情所宜化爲佛土或淨或穢或小或大,前後改轉,佛變化身依之而住,能依身量亦無定限。

변화신(變化身)은 변화한 국토에 의지하나니, 성소작지가 대자비의 힘에 의해 예전에 닦은 이타행의 무루의 정토와 예토의 인연이 성숙함으로써, 아직 10지에르지 못한 유정의 근기를 따라 불국토를 만들어 내나니,

혹 정토이기도 하고  예토이기도 하며, 혹 작기도 하고 혹 크기도 한 것으로, 이전과 이후가 다르게 전변하는 것이니,

부처님의 변화신은 그것에 의지해서 머무나니, 의지하는 주체인 불신의 크기도 역시 한정이 없는 것이다.


自性身土一切如來同所證故,體無差別。自受用身及所依土雖一切佛各變不同,而皆無邊,不相障閡。餘二身土隨諸如來所化有情,有共不共,所化共者,同處同時諸佛各變爲身爲土,形狀相似,不相障閡,展轉相雜,爲增上緣。令所化生自識變現,謂於一土有一佛身,爲現神通說法饒益。

자성신(自性身)의 신체(身)와 국토(土)는 모든 여래가 똑같이 증득한 것이므로 자체에 차별이 없으며,

자수용신(自受用身)의 신체(身)와 의지처인 국토(土)는 모든 부처님의 각각 변화함이 다르지만, 모두 무변하며, 서로 장애하지 않으며,

나머지 타수용신과 변화신, 두 가지의 신체(身)와 국토(土)는 모든 여래가 교화 받는 유정을 따라 함께하는 것도 있고 함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교화 받는 유정이 함께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으니,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여러 부처님이 각각 변화하여 신체(身)와 국토(土)가 되고, 형상이 서로 비슷해서 서로 장애하지 않으며, 전전하면서 서로 섞이어서 증상연이 되며, 교화 받는 중생 자신의 식(識)으로 변현하게 하나니, 하나의 국토(土)에 한 분의 불신이 있어서 그들을 위하여 신통을 나타내고 법을 설하여 요익하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ㅡ3() 모든 부처님의 신체ㆍ국토가 교화하는 것의 같고 다른 점을 판별한, 제육삼신신토소화동이문(第六三身身土所化同異門)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6

 

豈不此品轉五識得?非轉彼得,體卽是彼。如轉生死言得涅槃,不可涅槃同生死攝,是故於此不應爲難。有義如來功德身土如應攝在薀、處、界中,彼三皆通有漏、無漏。

▷묻겠습니다; 어찌하여 성소작지(成所作智)의 심품(心品)은 5식을 전환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까?

▷답한다; 전환해서 얻는다고 해서 자체가 곧 그것인 것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생사를 전환해서 열반을 얻는다고 말할지라도, 마찬가지로 열반을 생사에 포함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으로, 

따라서 이것에 대해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

호법의 정의로써 제3사(第三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여래의 공덕ㆍ신체ㆍ국토는 응화(應化)하는 것과 같이, 5온ㆍ12처ㆍ18계 중에 포함되며, 이 세 가지는 모두 유루와 무루에 통하는 것이다. 

ㅡ부처님의 5()12()18() 오직 무루(無漏)이고, 범부의 그것은 유루이다.


'集論'等說十五界等唯有漏者,彼依二乘麤淺境說,非說一切。謂餘成就十八界中唯有後三通無漏攝,佛成就者雖皆無漏,而非二乘所知境攝。然餘處說佛功德等非界等者,不同二乘劣智所知界等相故,理必應爾。

''대승아비달마잡집론' 등에서 15계 등이 오직 유루라고 앞에서 제1사(第一師)가 말한 것은,

2승의 두드러지고 얕은 추천(麤淺) 대상(境), 즉 두드러진 대상과 얕은 식의 지혜인 천식지(淺識智)의 자체에 의거해서 말하는 것일 뿐,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2승(乘)과 10지 보살이 아닌 부처님이 성취한 18계 중에는 오직 뒷부분의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의  가지만 있고, 무루에 공통적으로 포섭되며,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것은 모두 무루이지만, 2승이 아는 경계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앞에서 제2사(第二師)가 부처님의 공덕 등을 18계 등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2승의 열등한 지혜로 아는 18계 등의 상과 같지 않기 때문이니, 이치가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所以者何?說有爲法皆薀攝故,

무슨 까닭에서 인가?

여러 논서에서 유위법은 모두 5온에 포섭된다고 말한 때문이며,

ㅡ제1사의 견해를 부정한 것이다.

 

說一切法界處攝故,十九界等聖所遮故。若絕戲論,便非界等,亦不應說卽無漏界善常安樂解脫身等。

법은 18계ㆍ12처에 포섭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며,

19계 등은 성스러운 가르침인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4권에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만약 희론을 끊기 때문에 문득 18계 등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게송에서 역시 무루이고, 계(界)이며, 선(善)이고, 상주하는 것이며, 안락한, 해탈신 등이라고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又處處說轉無常薀,獲得常薀,界處亦然,寧說如來非薀、處、界?故言非者,是密意說。又說五識性散亂者,說餘成者非佛所成。故佛身中十八界等皆悉具足,而純無漏。此轉依果又不思議,超過尋思言議道故,微妙甚深自內證故,非諸世閒喩所喩故。

또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39권에서와 '대승장엄경론' 제3권 등의 여러 곳에서 무상한 5온을 전환해서 항상 상속하는 5온을 얻고, 18계ㆍ12처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하거늘, 어째서 여래를 5온ㆍ12처ㆍ18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따라서 아니라고 말한 것은 밀의(密意)의 말씀이며, 또한 5식은 체성이 산란하다고 앞에서 말한 제2사가 말한 것은 부처님을 제외한 나머지 부류의 성취를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바가 아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색신 중에는 18계 등을 모두  구족하며 순수한 무루이며,

 전의의 증과는 또한 생각으로 헤아릴  없는 불사의(不思議)이고,

살펴서 생각하는 심사(尋思)와 언어로 표현하는 길을 초월하였기 때문이며,

미묘하고 매우 심오하며, 스스로 내면적으로 증득한 때문이며,

세간의 모든 비유로써 표현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ㅡ전의(轉依) 증과가 갖춘 많은 () 해설한 것으로, 먼저 생각으로 헤아릴 없음의 불사의(不思議) 관하여 설명하였다.


此又是善,白法性故,淸淨法界遠離生滅,極安隱故,四智心品妙用無方,極巧便故,二種皆有順益相故,違不善故,俱說爲善。

이것은 또한 선(善)이니, 순백(純白)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청정법계는 생멸을 멀리 여의어서 매우 안온하기 때문이며,

사지(四智) 상응하는 심품은 승묘한 작용에 걸림이 없으니 매우 뛰어난 방편이기 때문이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두 가지 모두가 이로움의 순익상(順益相) 있기 때문이고,

불선(不善)에 거스르기 때문에 모두 선(善)이라 말하는 것이다.

() 덕을 해설하였다.


論說處等八唯無記,如來豈無五根三境?

▷묻겠습니다; 논서,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 12처 등에서의 5근(根)과 냄새의 향경(香境)ㆍ맛의 미경(味境)ㆍ촉감의 촉경(觸境)의 여덟 가지는 오직 무기라고 말하였는데, 어째서 여래에게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세 가지의 대상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2

외인(外人) 비판하기를, 만약 사지(四智) 상응하는 심품이 오직 ()이라고 말한다면, '대승아비달마잡집론' 4권에서 5() 3() 오직 무기(無記)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여래에게도  여덟 가지가 있어야 할것이

그런데 어째서 여래신(如來身) 있는 법을 모두 오직 ()이라고 말하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此中三釋,廣說如前。一切如來身、土等法皆滅、道攝,故唯是善,聖說滅、道唯善性故,說佛土等非苦、集故,佛識所變有漏、不善、無記相等皆從無漏善種所生,無漏善攝。

▷답한다; 이에 대하여 세 가지의 해석이 있으니, 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한 유루(有漏) 등의 세 가지 해설에서와 같다.

모든 여래의 신체와 국토 등의 진여와 사지(四智)의 5법(五法)은 모두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에 포섭되기 때문에 오직 선(善)이니, 여러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멸제와 도제는 오직 선의 성품이라고 말한 때문이며, 

부처님의 국토 등은 고제와 집제가 아니라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부처님의 청정식이 전변된 유루ㆍ불선ㆍ무기 등의 상(相) 등은 모두 무루선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무루의 선(善)에 포섭되는 것이다.

여래에게 있는 5 등은 유루 등에 비슷하긴 해도 체(體) 유루가 아니고 무루선(無漏善)임을 밝힌 것이다.


此又是常,無盡期故。淸淨法界無生無滅,性無變易,故說爲常。四智心品所依常故,無斷盡故,亦說爲常。非自性常,從因生故,生者歸滅一向記故,不見色心非無常故。然四智品由本願力所化有情無盡期故,窮未來際無斷無盡。

이것은 또한 ‘상주하는 상(常)’이니, 멸진할 때가 없는 무진기(無盡期)이기 때문이며,

청정법계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체성에 변역이 없기 때문에 상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지(四智)에 상응하는 심품은 의지처(진여)가 상주하기 때문이고, 끊어지거나 멸진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상주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자성이 상주하는 것은 아니다. 

원인(종자)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며, 생겨난 것은 소멸로 돌아간다고 한결같이 말씀하신 때문이며,

물질과 마음인 색심(色心)이 무상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지(四智) 상응하는 심품은 본원력에 의거해서, 교화 받는 유정이 다할 때가 없기 때문에 미래세가 다하도록 끊어지지 않고 멸진하지 않는 무단무진(無斷無盡)인 것이다.


此又安樂,無逼惱故,淸淨法界衆相寂靜,故名安樂。四智心品永離惱害,故名安樂。此二自性皆無逼惱,及能安樂一切有情,故二轉依俱名安樂。

이것은 또한 ‘안락(安樂)한 것’이니, 핍박이나 괴롭힘이 없기 때문이며,

청정법계는 갖가지 모습을 적정하게 하기 때문에 안락이라 이름하며,

사지(四智)에 상응하는 심품은 영원히 핍박과 괴롭힘을 떠난 까닭에 안락이라고 이름한다. 

열반과 보리,  가지는 자성이 모두 핍박과 괴로움의 핍뇌(逼惱)가 없고, 능히 모든 유정을 안락하게 하기 때문에  가지 전의를 함께 안락(安樂)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二乘所得二轉依果,唯永遠離煩惱障縛,無殊勝法,故但名解脫身。大覺世尊成就無上寂默法,故名大牟尼。此牟尼尊所得二果永離二障,亦名法身,無量無邊力無畏等大功德法所莊嚴故。

2승이 얻은  가지 전의의 증과는 오직 번뇌장의 계박만을 영원히 여의는 것일 뿐,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3념주(念住)ㆍ대비(大悲) 등 18불공법의 뛰어난 승법(勝法)이 없기 때문에 다만 ‘해탈신’이라 이름할 뿐이며,

크게 깨달으신 세존은 최고의 적묵(寂默, 모니牟尼, muni, 적정)의 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대모니(大牟尼)’라고 이름하며,

 성인이 얻은  가지 증과는 영원히 이장(二障)을 떠났으므로 역시 ‘법신’이라고 이름하며,

무량한 힘의 십력(十力)과무외(四無畏) 등의 대 공덕의 법으로 장엄하였기 때문이다.

ㅡ해탈신은 번뇌장을 여읜 것이고, 법신은 소지장을 여읜 것이다.


體依聚義摠說名身,故此法身五法爲性,非淨法界獨名法身,二轉依果皆此攝故。

체성과 의지처와 많은 공덕의 쌓임의 뜻으로써 총체적으로 말하여 신(身)이라 이름하나니,  

따라서  법신은 진여와 사지(四智)의 오법(五法)을 체성으로 삼는 것이니, 청정법계만을 홀로 법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닌 것이니,  가지 전의의 증과는 모두 이 법신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如是法身有三相別:一自性身。謂諸如來,眞淨法界,受用、變化平等所依,離相寂然,絕諸戲論,具無邊際眞常功德,是一切法平等實性。卽此自性亦名法身,大功德法所依止故。

이와 같은 법신에 세 가지 상의 차이가 있는 삼상별(三相別)이 있으니, 

첫째는 모든 부처님의 자성(自性)이기 때문에 자성신(自性身)이라 하며,

모든 여래의 진실하고 청정한 법계의 수용신ㆍ변화신의 평등한 의지처를 말하는 것으로,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남(男)ㆍ여(女)ㆍ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의 십상(十相)을 떠나 고요하며,

살펴서 생각하는 심사로(尋思路)가 끊어진 까닭에 모든 희론을 끊었으며,

무변하고 진실하며 상주하는공덕(常功德)을 갖추었으니, 이것은법의 평등하고 참다운 성품이며,

이것의 자성을 또한 법신이라고 이름하나니, 대공덕법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ㅡ이하는 법신(法身) 일곱 가지 부문으로 판별한, 제문분별(諸門分別)으로, 먼저 삼(三) 개별적인 모습을 판별한, 제일삼신별상문(第一三身別相門)이다.

 가지 모습이 있지만, 3() 모두 대공덕의 법신이라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가지 불신이  하나인 삼신즉일(三身卽一)이다.

 

二受用身。此有二種:一自受用,謂諸如來三無數劫修集無量福慧資糧,所起無邊眞實功德及極圓淨常遍色身,相續湛然,盡未來際,恒自受用廣大法樂,

二他受用,謂諸如來由平等智示現微妙淨功德身,居純淨土,爲住十地諸菩薩衆現大神通,轉正法輪,決衆疑網,令彼受用大乘法樂。合此二種名受用身。

둘째는 수용신(受用身)으로, 수용신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자수용신(自受用身)으로, 모든 여래가 무수한 삼세의 겁 동안 무량한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닦아서 일으키는 무변한 진실공덕과, 갖가지 모습을 모두 갖추기 때문에 매우 원만하고 모든 근심을 떠났기 때문에 청정하며, 자성신(自性身)을 가려내었으므로 항상하고 두루하는 색신을 말하는 것이다.

타수용신(他受用身)과 변화신(變化身)을 가려내어서 상속한 까닭에 담연(湛然)하고,

미래세가 다하도록 항상 스스로 광대한 법의 즐거움을 수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타수용신(他受用身)이니, 모든 여래가 평등성지에 의지해서 나타내 보이는 미묘하고 청정한 공덕의 몸이다. 순수한 정토에 머물면서, 10지 중에 있는 많은 보살들, 즉 변화신(變化身)의 보살들을 위해서 큰 신통을 나타내고,

ㅡ7지(地) 이전의 분단보살(分段菩薩)은 정토에 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정법륜(正法輪)을 굴려서 여러 의심의 그물을 결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 법의 즐거움을 수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둘을 합해서 수용신(受用身)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三變化身。謂諸如來由成事智,變現無量隨類化身,居淨穢土,爲未登地諸菩薩衆,二乘、異生稱彼機宜,現通說法,令各獲得諸利樂事。

셋째는 변화신(變化身)이니, 모든 여래가 성소작지에 의지해서 변화해서 중생의 부류에 따라 무량한 변화신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정토와 예토에 머물면서, 10지에 오르지 못한 모든 보살들과 2승과 범부를 위해서 그 근기에 적절하게 맞추어서 신통을 나타내고 법을 설하여 각각 이롭고 안락한 모든 이락사(利樂事)들을 얻게 한다.

 

以五法性攝三身者,有義初二攝自性身,經說眞如是法身故,論說轉去阿賴耶識得自性身,圓鏡智品轉去藏識而證得故。中二智品攝受用身。

진여와 사지(四智)의 다섯 가지의 오법성(五法性)으로써  가지 불신(佛身)을 포섭시키는 것에 대하여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처음의  가지인 진여와 대원경지에는 자성신을 포섭시키는 것이니,

경전, '불지경론' 제7권에서 진여는 법신이라고 말씀하신 때문이며,

논서,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 제9권에서 말하기를, 아뢰야식을 전환해서 자성신을 얻고,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장식을 전환해 증득한다고 한 때문이며,  

가운데의 평등성지와 묘관찰지, 지혜에 상응하는 심품에는 수용신을 포섭시킨다.

ㅡ오법으로써 3() 포섭하는 제이오법섭삼신문(第二五法攝三身門)으로, 

제1사(第一師) 진여와 대원경지에 자성신을 포함시키고, 평등성지와 묘관찰지에는 수용신을, 성소작지에 변화신을 포섭시킨다.

 

說平等智於純淨土爲諸菩薩現佛身故,說觀察智大集會中說法斷疑現自在故,說轉諸轉識得受用身故。後一智品攝變化身,說成事智於十方土現無量種難思化故。又智殊勝具攝三身,故知三身皆有實智。

평등성지(平等性智)는 순수한 정토에서 많은 보살을 위해서 불신(佛身)을 나타낸다고 '대승장엄경론' 제3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묘관찰지(妙觀察智)는 큰 법회에서 법을 말하여 의심을 끊게 하고 자재함을 나타낸다고 '대승장엄경론' 제3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모든 전식(轉識)을 전환해서 수용신을 얻는다고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 제9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마지막의 성소작지(成所作智)에는 변화신을 포섭시키나니, 성소작지는 시방 국토에서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종류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무성(無性)의 '대승장엄경론'에서 말한 때문이며,

또한 지혜의 뛰어남에 모두 세 가지 불신(佛身)을 포함시킨다고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 제9권에서 말한 때문에

삼신(三身)모두에 참다운 지혜인 실지(實智)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5

 

有義但緣眞如爲境,緣一切法平等性故。有義遍緣眞俗爲境,'佛地經'說平等性智證得十種平等性故。'莊嚴論'說緣諸有情自他平等,隨他勝解示現無邊佛影像故由斯此品通緣眞俗二智所攝,於理無違。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다만 진여를 반연해서 경계로 삼는 것이니, 제법의 평등성(平等性)을 반연하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진여와 세속을 두루 반연해서 경계로 삼는 것이니, '불설불지경(佛說佛地經)'에서 평등성지는  가지 평등한 성품을 증득한다고 말씀하신 때문이며,

'대승장엄경론' 제 3권에서 말하기를 “모든 유정의 자타의 평등을 반연하여, 타인, 즉 10지 보살의 뛰어난 지해(智解)에 따라서 무량한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신다”고 하신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품은 공통적으로 진여와 세속을 반연하여 근본지(根本智)와 후득지(後得智)의  가지 지혜에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妙觀察智相應心品,緣一切法自相共相,皆無障㝵,二智所攝。成所作智相應心品,有義但緣五種現境,莊嚴論說如來五根一一皆於五境轉故。

묘관찰지와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제법의 자체상인 자상(自相)과 보편적인 공상(共相)을 반연하는 데 모두 장애가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지혜인 이지(二智)에 포함되며,

성소작지와 상응하는 심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다만 다섯 가지 현재의 대상만을 반연하나니, 

'대승장엄경론' 제 3권에서 말하기를 “여래의 오근(五根)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섯 가지 경계에서 전전한다”고 한 때문이다.

 

有義此品亦能遍緣三世諸法,不違正理。佛地經說成所作智起作三業諸變化事,決擇有情心行差別,領受去來現在等義。若不遍緣,無此能故。

호법의 정의로써는 다음과 같으니, 이 심품(心品)은 역시 두루 3세의법을 반연한다고 말하는 것이 바른 논리에 위배되지 않으니, '불지경론' 제 6권에서 말하기를 “성소작지는  가지업의 여러 가지 변화의 사업을 일으키고, 유정의 심행(心行, 마음 작용)의 차별을 결택하며, 과거ㆍ미래ㆍ현재 등의 여러 대상을 받아들인다”고 하였으니,

만약 두루 반연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然此心品隨意樂力或緣一法,或二或多,且說五根於五境轉,不言唯爾,故不相違。

그런데  심품(心品)은 마음을 따라 즐거워하는 것의 수의락(隨意樂)의 힘을 따라, 하나  혹은 많은 법을 반연하며, 또한 오근(五根) 다섯 가지 대상인 오경(五境)에 전전한다고만 말하였을 뿐, 오직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배되지 않으며, 

ㅡ앞에서 인용한 '대승장엄경론' 3권의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논서에서 성소작지가 5() 반연한다고 말한 것은 동류(同類) 대상이기 때문에 5경을 반연한다고만 말한 것일 뿐, 반드시 오직 5경만을 반연한다는 뜻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隨作意生緣事相境起化業故,後得智攝。

작의(作意)심소를 따라 일어나고 현상계의 대상을 반연하여 변화업을 일으키기 때문에 후득지에만 포함되는 것이다.

ㅡ호법에 의하면, 성소작지는 작의(作意)심소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으로, 오직 현상계의 세속만을 반연하며, 무위법(無爲法) 반연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후득지에만 포함된다는 것이다.

 

此四心品雖皆遍能緣一切法而用有異,謂鏡智品現自受用身淨土相持無漏種,平等智品現他受用身淨土相,成事智品能現變化身及土相,觀察智品觀察自他功能過失,雨大法雨破諸疑網利樂有情。

사지(四智) 심품(心品) 모두는 두루 일체법을 능히 반연하지만, 작용의 차이가 있으니,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자수용신(自受用身)과토(淨土)의 상(相) 나타내고 무루 종자를 집지하며,

평등성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타수용신(他受用身)과 정토(淨土)의 상(相) 나타내며,  

성소작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능히 변화신(變化身)과 국토, 정토(淨土)와 예토(穢土) 모두의 상(相)을 나타내며, 

묘관찰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자타의 공덕과 과실을 관찰하고, 대법우(大法雨)를 내리며, 모든 의심의 그물을 부수어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것이다.

대상을 반연하는 작용을 판별한, 제팔연경작용문(第八緣境作用門).

 

如是等門差別多種。

이와 같은 등의 부문의 차이가 여러 종류 있으니,  

ㅡ이상의 여덟 가지 부문 이외에 여러 부문이 있음을 밝힌, 제구지예문(第九指例門).

 

此四心品名所生得,此所生得摠名菩提,及前涅槃名所轉得。

 사지(四智) 심품(心品)은 생겨나서 얻어지는 소생득(所生得)이라고 이름하며,

 생겨나서 얻어지는 소생득(所生得) 총체적으로 보리(菩提)라 이름하고,

앞에서 말한 열반을 이름하여 현현해서 얻어지는 소현득(所顯得, 소전득所轉得)이라고 한다.

전의(轉依) 의해 생겨나서 얻어지는 소생득(所生得)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

 

雖轉依義摠有四種,而今但取二所轉得,頌說證得轉依言故。此修習位說能證得,非已證得,

전의(轉依)의 뜻에 전체적으로 능히 전의를 이루는 능전도(能轉道), 전의되는 소전의(所轉依), 전의해서 버려지는 소전사(所轉捨), 전의해서 얻어지는 소전득(所轉得)의 4 가지 있지만,

지금은 다만 열반과 보리의  가지의 전의로써 얻어지는 것만을 취한다.

'유식삼십송'의 제29 게송에서 “전의를 증득한다”고 말한 때문이니, 이 수습위에서는 능히 증득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미 증득해 있는 것은 아니다. 

ㅡ제29게송에서 말하는 전의(轉依)라는 용어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因位攝故。

수습위는 수행 기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ㅡ나머지  가지 전의인 능단도(能斷道)ㆍ소전의(所轉依)ㆍ소전사(所轉捨) 증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여와 무루도가 있지만 그것은 증득의 뜻이 아니므로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後究竟位其相云何?頌曰:

마지막으로 10지(地)에서 능히 두 가지 전의(열반ㆍ보리)를 증득하는구경위의 상(相)은 어떠한 것입니까?

 '삼십송'의 제30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ㅡ이하 5() 중에서 5구경위(究竟位) 밝힌다. 수습위에서는 전의해서 얻어지는 소전득(所轉得)  가지 전의는 증득하는 지위이고 구경위는  증득해진 전의의 결과이다.

 

此卽無漏界,

 열반과 보리는  무루이고, 계(界)이며,

ㅡ여기서 (界, dhātu) 함장, 원인’의 의미이다. 일체 공덕을 저장하므로 함장’이라 하고, 세간ㆍ출세간의 사업을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不思議、善、常

생각으로 헤아릴  없는 불사의(不思議)이고, 선(善)이며, 상주하는 것으로, 

ㅡ다시는 범부의 유루세계로 되돌아 가지 않고, 이러한 세계가 소멸해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전의(轉依) 결과는 항상 불변하는 불변이(不變異) 경지인 것이다.

 

安樂。解脫身,

안락이며 해탈신(解脫身)이니, 

ㅡ생사를 벗어났으며, 번뇌의 계박ㆍ장애를 멀리 여읜 경지이다.

 

大牟尼名法。

 적묵의 대모니(大牟尼))의 법신(法身)이라 이름한다네.

ㅡ대모니(大牟尼, 적묵寂默)  가지 장애를 영원히 여의었으므로 법신(法身)이라고 이름하며,

여기에서 유식 교의의 불신관(佛身觀) 밝힌 것이다.

 

법신(法身), 성문ㆍ연각의 2승(乘)의 과신(果身)인 아라한ㆍ벽지불은 번뇌장의 계박은 벗어났지만 아직 소지장에 가려 있기 때문에 해탈신이라고만 부르며,

불과(佛果)는 큰 적정(寂靜)을 성취했기 때문에 번뇌장뿐만 아니라 소지장의 계박도 소멸되고, 10력(力)ㆍ4무외(無畏) 등으로 장엄되므로 해탈신의 차원을 넘어서 법신으로 불린다. 물론 여기서 법신은 해탈신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論曰:前修習位所得轉依,應知卽是究竟位相。此謂此前二轉依果,卽是究竟無漏界攝。諸漏永盡,非漏隨增,性淨圓明,故名無漏。

▷논하여 말한다; 앞의 수습위에서 증득한 전의는  구경위의 상(相)이라는 것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게송에서 ‘이것’이란 앞에서 말한 보리와 열반의  가지 전의의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곧 구경의 무루에 포함된다.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은, 즉 번뇌를 제거하여서 상응법의 계박인 상응박(相應縛)을 떠난 것을 따라 증성해지지 않으며,

ㅡ인식대상이 계박하는 (소연박所緣縛)이며

체성이 청정하고 ㅡ2승(乘)의 무학(無學)을 가려낸 것

원만하며 유학(有學) 가려낸 것

지혜롭기 때문에 ㅡ3승(乘)의 무학(無學)을 가려낸것

'무루’라고 이름한다.

ㅡ무루(無漏) 뜻을 해설한 것으로, 본문에서와 같은 다섯 가지 뜻을 갖춘 것을 무루라고 이름한다.

 

界是藏義,此中含容無邊希有大功德故。

 ‘계(界)’라는 것은 장(藏, 함장)의 뜻이니, 이 가운데 무변하고 희유한  공덕을 함유하기 때문이다.

보리(菩提) 능히 유위(有爲) 공덕을 함유하고, 열반은 능히 무위(無爲) 공덕을 저장한다.

 

或是因義,能生五乘世出世閒利樂事故。

혹은 원인의 뜻이기도 하니, 능히 인승(人乘)ㆍ천승(天乘)ㆍ성문승(聲聞乘)ㆍ연각승(緣覺乘)ㆍ보살승(菩薩乘)의 5승(乘)의 세간과 출세간의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사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淸淨法界可唯無漏攝,四智心品如何唯無漏?

▷묻겠습니다; 청정법계는 오직 무루에 포섭된다고 할 수 있지만, 사지(四智)에 상응하는 심품을 어째서 오직 무루라고 하는 것입니까?

ㅡ이것은 대중부를 제외한 소승으로부터의 질문으로, 15() 오직 유루(有漏)이기 때문에 이렇게 묻는 것이다.

 

道諦攝故,唯無漏攝,謂佛功德及身土等皆是無漏種性所生,有漏法種已永捨故。雖有示現作生死身,業、煩惱等似、苦、集諦,而實無漏,道諦所攝。

▷답한다; (부처님의 지혜와 신통 등 모든 공덕은 도제에 포함되는) 도제(道諦)에 포섭되기 때문에 오직 무루에 포섭되며, 부처님의 유위(有爲)의 공덕 및 신체ㆍ국토 등은 모두 무루의 종성에서 생겨난 것으로, 유루법의 종자는 이미 영원히 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시현(示現)해 보여서 생사의 몸이 되고, 업ㆍ번뇌 등이 있으며, 고제(苦諦)와 집제(集諦)로 사현하지만, 실제로는 무루이며 도제에 포섭되는 것이다.

 

'集論'等說十五界等唯是有漏,如來豈無五根、五識、五外界等?

▷묻겠습니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3권 등에서 15계 등은 오직 유루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래에게 어찌 유루의 오근(五根)ㆍ5식(五識)ㆍ오경(五境, 다섯 가지 대상) 등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ㅡ외인(外人) 비판하여 묻기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3 등에서 18(중에서 앞의 15계는 오직 유루라고 말하므로 여래의 5()5()5() 모두 유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有義如來功德身土甚深微妙,非有非無,離諸分別,絕諸戲論,非界、處等法門所攝,故與彼說理不相違。

▷답한다;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여래의 공덕ㆍ신(身)ㆍ국토는 매우 심오하고 미묘하며, 유(有, 실재)도 아니고 무(無, 비존재)도 아니며, 모든 분별을 떠났으며, 모든 희론을 끊은 것으로서, 12처나 18계 등의 법문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 말씀과 논리가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有義如來五根、五境妙定生故,法界色攝,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여래의 오근(五根)과 오경(五境, 다섯 가지 대상)은 승묘한 선정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법계의 색법(色法)에 포섭된다.

ㅡ의식(意識) 인식대상인 법경(法境) 포함되는 색법으로, 5() 5()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색법으로서 법처에 포함되는 색법인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이라고 이름한다.

 

非佛五識,雖依此變,然麤細異,非五境攝,如來五識非五識界,經說佛心恒在定故,論說五識性散亂故。

부처님이 아닌 유정의 5식(五識)은 이것에 의지해서 변화하지만,  두드러짐과 미세함의 추세(麤細)가 다르며, 오경(五境)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며,

여래의 5식은 5식의 계(界)가 아니니, 경전,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4권에서 부처님의 마음은 항상 선정에 있다고 말한 때문이며, 논서,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서 5식의 체성은 산란하다고 말한 때문이다.

 

成所作智何識相應?

▷묻겠습니다; 성소작지(成所作智)는 어떤 식과 상응하는 것입니까?

ㅡ외인이 비판하기를, ‘이미 5식이 없다면 성소작지는 어떤 () 상응하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第六相應,起化用故。

▷답한다; 제6식과 상응하는 것이니, 변화의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與觀察智性有何別?彼觀諸法自、共相等,此唯起化故有差別。

▷묻습니다; 묘관찰지와 체성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답한다; 그 묘관찰지는 제법의 자상(自相)과 보편적인 공상(共相) 등을 관찰하며,

이 성소작지는 오직 변화의 작용만을 일으키는 차이가 있다.

 

此二智品,應不竝生。一類二識不俱起故。

▷묻습니다; 이 두 가지 지혜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함께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한 부류로서 두 가지 식이 함께 일어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ㅡ외인이 다시 비판하여 묻는 것이다.

 

許不竝起於理無違,

▷답한다;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고 인정할지라도 논리에 있어서 위배되지는 않는다.

ㅡ앞의 찰나와  찰나에 별도로 일어나기 때문에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여도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同體用分俱亦非失。

체가 같은 동체(同體)로서 작용이 나누어지든 함께 일어나든, 역시 과실이 없으니,

ㅡ하나의 의식이 색깔ㆍ형태를 보고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이, 이것도  자체가 하나일지라도 뜻으로써 나누는 것과 같다.

 

或與第七淨識相應,依眼等根緣色等境是平等智作用差別,謂淨第七起他受用身土相者平等品攝,起變化者成事品攝。

혹은 제7의 청정식과 상응하는 것은, 안근 등에 의지해서 색깔ㆍ형태 등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은 평등성지 작용의 차이이며,

제7의 청정식이 타수용의 신체와 국토 등의 모습을 일으키는 것은 평등성지의 심품에 포함되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성소작지의 심품에 포함된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4

 

云何四智相應心品?一大圓鏡智相應心品,謂此心品離諸分別,所緣行相微細難知,不忘不愚一切境相,性相淸淨離諸雜染,純淨圓德現種依持,能現能生身土智影,無閒無斷窮未來際,如大圓鏡現衆色像;

무엇이 네 가지 지혜인 사지(四智)와 상응하는 심품인(心品)가? 

제1은 대원경지(大圓鏡智)에 상응하는 심품이니, 이 심품은 모든 분별을 떠나고 소연(所緣, 인식대상)도 행상(行相, 인식작용)도 미세하여 알기 어려우며,

모든 경상(境相, 대상)에 대하여 현전하는 불망(不忘)이며 미혹함이 없는 불우(不愚)이며, 체성(자체분)도 체상도 청정하고, 모든 잡염을 떠난 것이며,

순수하고 청정하며 원만함의 덕(德)이 있고 현행(現行)의 공덕과 종자의 공덕 의지처이며,

자수용(自受用)의 신체와 국토, 지혜(나머지 3가지 지혜)의 영상을 능히 현현하여 생겨나게 하며,

미래세가 다하도록 중단이 없고(시간적) 끊어짐이 없으니(공간적),

마치 크고 원만한 거울에 많은 사물의 영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ㅡ네 가지 지혜인 사지(四智) () 드러내어 차이를 판별한, 제일출체변지차별문(第一出體辦智差別門).

 

대원경지(大圓鏡智), 유루의 제8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아뢰야식 안의 모든 잡염법이 소멸되어 한 점의 티끌도 없는 크고 원만한 거울인 대원경(大圓鏡)과 같이 된 상태이다.

자신과 진여법계가 하나로 됨으로써, 우주 전체가 대원경처럼 변화되어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듯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아는 원만한 지혜이며, 불과(佛果)에서 처음으로 얻는다.


二平等性智相應心品,謂此心品觀一切法自他有情悉皆平等,大慈悲等恒共相應,隨諸有情所樂示現受用身土影像差別,妙觀察智不共所依,無住涅槃之所建立,一味相續窮未來際;

제2는 평등성지(平等性智)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이니, 이 심품은 일체법과 자타의 유정 모두 다 평등하다고 관찰하고 대자비 등(열 가지 평등 중에서 나머지 여덟 가지)과 항상 함께 상응한다.

모든 유정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수용신과 수용토의 모습의 차이를 나타내 보이며, 묘관찰지의 불공(不共)의 의지처이며, 무주처열반이 건립한 것이며, 미래세가 다하도록 한 부류인 일미(一味)로 상속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평등한 성품의 평등성(平等性)은 진여를 말한다. 진여는 체성이 평등하여 일체법에 두루하므로 평등성이라고 한다. 또한 지혜가 그것을 반연하므로 평등성지(平等性智)라고 한다.

유루의 제7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며, 통달위에서 그 일부분을 얻고, 불과(佛果)에 이르러 그 전분(全分)을 증득하며, 말나식(末那識)에서 자아 집착하는 아집(我執) 작용에 의한 모든 차별심이 소멸되어 일체를 평등하게 보며, 대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제도 활동을 하게 된다.


三妙觀察智相應心品,謂此心品善觀諸法自相共相無㝵而轉,攝觀無量摠持定門及所發生功德珍寶,於大衆會能現無邊作用差別皆得自在,雨大法雨,斷一切疑,令諸有情皆獲利樂;

3 묘관찰지(妙觀察智) 상응하는 심품(心品)이니,  심품은법의 자상(自相, 자체상) 보편적인 특질인 공상(共相) 관찰하는  걸림없이 전전하며, 수많은 다라니와 선정의 방법  생겨난 공덕인 6바라밀ㆍ10력(力) 등 보배를 거두어 관찰한다. 

대중의 집회에서 능히 무량한 갖가지의 작용을 나타내는  모두 자재하며, 큰 법의 비인 대법우(大法雨) 내리고, 모든 의심을 끊으며, 많은 유정들로 하여금 모두 이익과 안락함을 얻게 한다.

 

묘관찰지(妙觀察智), 유루의 제6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며,

‘묘(妙)’는 불가사의한 힘의 자재를 말하고, ‘관찰’은 제법을 관찰하여 정통하는 것이다.

의식(意識)에서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상태가 변화되어서 모든 사물의 자상(自相, 자체상)과 보편적인 특질인 공상(共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서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내고, 훌륭하게 법을 설하여 모든 의심을 끊게 한다.


四成所作智相應心品,謂此心品爲欲利樂諸有情故,普於十方示現種種變化三業,成本願力所應作事。

제4는 성소작지(成所作智) 상응하는 심품(心品)이니,  심품은 많은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널리 시방에서 갖가지 변화의 삼업(三業) 나타내 보여서 본원력의 해야  일들을 성취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 불과(佛果)에 이르러 유루의 5식인 전호식(前五識)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며, 본원(本願)의 해야 할 일을 마치는 지혜로서, 5식의 감각작용적인 상태가 변화되어 3업(業)으로 여러 변화신을 보여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한다.


如是四智相應心品雖各定有二十二法,能變所變種現俱生,而智用增以智名顯。

이상과 같이 사지(四智)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반드시 5 가지 변행심소와 5 가지 별경심소와 11 가지 선심소 및 자체의 심왕을 합한 22 가지 법이 전변하는 자체분(自體分)ㆍ 전변된 견분과 상분ㆍ종자ㆍ현행과 함께 일어나지만, 지혜의 작용이 증성하기 때문에 지혜라는 명칭으로써 나타낸다. 

사지(四智)에 상응하는 심품에  가지 심왕과 심소가 있는가를 판별한, 제이상응다소문(第二相應多少門)

 

故此四品摠攝佛地一切有爲功德皆盡。

그러므로   가지의심품(四心品)에 전체적으로 부처님 지위의 모든 유위의 공덕을 전부 섭수하는 것이다. 

사지(四智)의 체(體)로써 작용을 포섭함을 판별한, 제삼이체섭용문(第三理體攝用門).


此轉有漏八七六五識相應品如次而得,智雖非識而依識轉,識爲主故說轉識得。又有漏位智劣識强,無漏位中智强識劣,爲勸有情依智捨識,故說轉八識而得此四智。

이것은 유루의 제8식ㆍ제7식ㆍ제6식ㆍ5식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을 전환하여 순서대로 증득하는 것이니, 지혜는 비록 식(識)이 아니지만, 식에 의지하여 식을 전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식을 주체로 삼기 때문에 식을 전환해서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유루의 지위에서는 지혜는 열등하고 식이 강하며, 무루의 지위에서는 지혜가 강하고 식이 열등하다. 

유정에게 권장하여 지혜에 의지하고 식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8식을 전환하여  사지(四智)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식을 전환해서 어떠한 지혜를 얻는가를 판별한, 제사전하식득하지문(第四轉何識得何智門).


大圓鏡智相應心品,有義菩薩金剛喩定現在前時卽初現起,異熟識種與極微細所知障種俱時捨故。若圓鏡智爾時未起,便無能持淨種識故。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보살의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이숙식의 종자를 매우 미세한 소지장의 종자와 동시에 버리기 때문이니,  

만약 그 때에 대원경지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득 청정종자를 지니는 식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ㅡ전식득지(轉識得智)하는 단계를 판별한, 제오전식득지위차문(第五轉識得智位次門).

위의 견해는 정의(正義) 아니며, 견해에 의하면 인과동시(因果同時)이고, 금강심의 무간도(無間道) 시기에 대원경지가 일어난다고 한다.


有義此品解脫道時,初成佛故,乃得初起,

호법의 견해로는, 이 심품(心品)은 해탈도의 시기에 비로소 성불(成佛)하므로  처음으로 일어나게 되며,

ㅡ호법의 정의로써,  견해에 의하면 인과동시이고 금강심의 해탈도에서 처음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異熟識種金剛喩定現在前時猶未頓捨。與無閒道不相違故。

이숙식의 종자는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에는 아직 단박에 버리지 못하는 것이니, 무간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ㅡ금강심의 무간도는 이숙식 등과 함께 생멸하기 때문에 이숙식은 장애가 아닌 법이므로, 서로 다르지 않다.

 

非障有漏劣無漏法但與佛果定相違故,金剛喩定無所熏識,無漏不增應成佛故,由斯此品從初成佛盡未來際相續不斷,持無漏種令不失故。

장애가 아닌 유루선(有漏善)과 이숙식(異熟識) 등의 유루법과 10지(地)의 무루(無漏)인 열등한 무루법은 오직 부처님의 지위(해탈도)인 것과는 반드시 다르기 때문이며,

금강유정에서 훈습을 받는 식이 없다면, 무루가 증성해지지 않고서 성불해야 하기 때문이므로  심품은 처음에 성불하고자 할 때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상속해서 단멸됨이 없는 것이니, 무루 종자를 집지해서 없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平等性智相應心品,菩薩見道初現前位違二執故,方得初起,後十地中執未斷故,有漏等位或有閒斷,法雲地後與淨第八相依相續盡未來際。

평등성지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보살의 견도 초기에 현전하는 단계에서 아집과 법집의  가지 집착에 거스르기 때문에 비로소 처음 일어나게 되나, 제6식에 이끌려 생겨난 것으로, 자력(自力)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후의 10지 중에서는 아직 집착을 끊지 못한 까닭에 유루 등의 단계, 즉 다만 아공관(我空觀)에서 혹은 잠시 끊어짐이 있기도 하며,

법운지(法雲地) 이후에는 (평등성지 상응심품이) 청정한 제8 (대원경지 상응심품)과 서로 의지해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상속하는 것이다.


妙觀察智相應心品,生空觀品二乘見位,亦得初起,此後展轉至無學位 或至菩薩解行地終

묘관찰지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아공을 관찰하는 심품의 경우에는 2승의 견도위에서도 대승의 돈오 보살도 견도에서도 역시처음으로 일어나고, 이후에 전전해서 무학위에 다다르게 되며,

혹은 보살의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의 단계인 승해행지(勝解行地)의 끝(終)에 이르며,

ㅡ법공(法空) 견도에 들어가기 때문에 끝의 종(終)이라 한다.

 

或至上位,若非有漏或無心時皆容現起。法空觀品菩薩見位方得初起,此後展轉乃至上位,若非有漏生空智果或無心時皆容現起。

혹은 상부 지위, 즉 10지(地)ㆍ여래지(如來地)에 다다르며,  

만약 유루 혹은 무심의 시기가 아니면 모두 일어남이 인정되며, 법공을 관찰하는 심품의 경우에는 보살의 견도위에서 비로소 처음 일어나게 되고, 이후에 전전해서 나아가 상부 지위에 다다르며,  

만약 유루ㆍ아공의 지혜인 공지(空智)ㆍ결과 혹은 무심의 시기가 아니면 모두 일어남이 인정된다.

 

成所作智相應心品,有義菩薩修道位中後得引故,亦得初起。有義成佛方得初起,以十地中依異熟識所變眼等非無漏故,

성소작지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보살의 수도위 중에서 후득지(後得智)에 이끌림으로써 역시 처음으로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으며,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성불할 때에 비로소 처음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10지 중에서는 이숙식이 전변된 안식 등에 의지하므로 무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루이고 공통적인 것이 아니며, 반드시 함께하는 것으로, 대상을 같이하는 동경(同境)의 감각기관(根)이 무루식을 일으킨다는 것은 바른 논리에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ㅡ소의(所依, 의지처) 이숙식이 불과(佛果) 해탈도에서 유루(有漏)이기 때문에, 5() 모두 유루이다. 따라서 유루의 감각기관이 무루식(無漏識) 일으킨다는 것은 바른 논리에 위배된다.

 

有漏不共必俱同境,根發無漏識理不相應故,此二於境明昧異故。由斯此品要得成佛依無漏根方容現起,而數閒斷,作意起故。

유루의 감각기관인 유루근(有漏根)과 무루식(無漏識), 이  가지는 대상에 대해서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품은 반드시 성불할 때에 무루의 감각기관인 무루근(無漏根)에 의지해서 비로소 일어나는 것이 인정되며, 여러 번의 잠시 단절됨이 있는 것은, 작의(作意)로써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此四種性雖皆本有,而要熏發方得現行,

 사지(四智) 종성은 모두 본래부터 있는 것이지만, 반드시 훈발함으로써 비로소 현행하게 된다.

ㅡ사지(四智) 종성(種姓) 본래부터 존재하는 본유(本有)인가, 비로소 일어나는 시기(始起)인가 밝힌, 제육종성본유시기문(第六種姓本有始起門).

 

因位漸增佛果圓滿,不增不減盡未來際,但從種生不熏成種,

수행 기간에서는 점차 증성하고, 부처님의 지위에서는 원만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증가나 감소가 없으며,

다만 종자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며, 종자를 훈습하지 않는다.

ㅡ이것에 의해 본유신훈합생설(本有新熏合生說) 입장임을 알아야 한다. 

본유(本有) 신훈(新熏) 증장하여 묘관찰지와 평등성지가 되고, 대원경지와 성소작지는 오직 본유생(本有生)일 뿐이다.

왜냐하면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는 초지(初地) 이상에서 점차 나누어 얻어지기 때문에,  나누어 얻는 무루지(無漏智) 현행으로부터 종자를 훈습하고,  신훈종자가 본유종자와 화합하여 생겨난다.

대원경지와 성소작지는 오직 불과(佛果)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새롭게 훈습되는 종자가 없고 오직 본유뿐이다.

 

勿前佛德勝後佛故。

 부처님인 전불(前佛)의 덕이 새로운 부처님인 신불(新佛)보다 뛰어나다고 말해서는  되기 때문이니,

만약 부처님의 지위인 불과위(佛果位)에서도 훈습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인 전불(前佛) () 새로운 부처님인 신불(新佛)보다 뛰어난 것이 되므로, 모든 부처님은 평등하다는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大圓鏡智相應心品,有義但緣眞如爲境,是無分別非後得智,行相所緣不可知故。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다만 진여를 반연해서 경계로 삼으며, 이것은 무분별지혜일 뿐, 후득지가 아니니, 행상(行相, 인식작용도 소연(所緣, 인식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ㅡ사지 인식대상인 소연(所緣]) 어떤 경계인가를 판별한, 제칠소연경계문(第七所緣境界門).


有義此品,緣一切法,󰡔莊嚴論󰡕說大圓鏡智於一切境不愚迷故,佛地經說如來智鏡諸處、境、識衆像現故,又此決定緣無漏種及身土等諸影像故,行緣微細說不可知,如阿賴耶亦緣俗故。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 심품(心品)은법을 반연하나니, '대승장엄경론' 제 3권에서 대원경지는 모든 대상에 대해서 미혹함이 없다고 말한 때문이며,

'불지경론' 제 3권에서, “부처님의 대원경지의 거울에는 모든 인식기관인 제처(諸處)ㆍ대상(境)식(識), 즉 6처(處)ㆍ6경(境)ㆍ6식(識)의 18계(界)의 여러 영상이 나타난다”고 때문이며,

또한 이것은 결정적으로 무루의 종자  신체ㆍ국토 등의 여러 영상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행상(行相, 인식작용)도 소연(所緣, 인식대상)도 미세하므로   없는 불가지(不可知)라고 말하는 것이니, 아뢰야식과 같이 역시 세속도 반연하기 때문이다.

ㅡ오직 진여를 반연하기 때문에 불가지(不可知)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緣眞如故是無分別,緣餘境故後得智攝,其體是一,隨用分二,了俗由證眞故說爲後得,餘一分二准此應知。

진여를 반연하는 경우의 이것은 무분별지혜이니, 나머지 다른 대상을 반연하는 경우에는 후득지에 포함되며, 그 체(體)는 하나이지만, 작용(현행)을 따라 둘로 나누는 것이니,

세속을 요별하는 것은 진여를 증득함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후득지라 하며,

나머지 지혜를 하나이지만 둘로 나누는 것도 이것에 견주어서 알아야 한다.

ㅡ나머지 평등성지 등의  가지 지혜를  체(體, 정지正智) 하나이지만 작용에 따라 근본지와 후득지로 나누는 것이.

 

平等性智相應心品,有義但緣第八淨識。如染第七緣藏識故。

평등성지에 상응하는 심품에 대해서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다만 제8의 청정식만을 반연하나니, 염오의 제7식이 장식(藏識)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 하였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3

 

涅槃義別,略有四種:一本來自性淸淨涅槃,謂一切法相眞如理,雖有客染而本性淨,具無數量微妙功德,無生無滅湛若虛空,一切有情平等共有,與一切法,不一不異,離一切相一切分別,尋思路絕,名言道斷,唯眞聖者自內所證,其性本寂,故名涅槃;

열반의 뜻의 차이가 대략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이니, 일체법의 참다운 모습인 진여의 본체인 진여리(眞如理)를 말하는 것으로, 비록 객진번뇌에 오염되어 있긴 했지만 본성이 청정하고 무량하고 미묘한 공덕을 갖추었으며, 응적담연(凝寂湛然)하기 때문에 생겨남이 없는 무생(無生)이고, 멸함도 없는 무멸(無滅)이며,

담연(湛然)해서 허공과 같으며, 모든 유정들에게 평등하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다. 

제법과 하나도 아닌 불일(不一)이고 다른 것도 아닌 불이(不異)이며, 모든 형상을 떠난 이일체상(離一切相)이고,

모든 분별을 떠난 이일체분별(離一切分別)이고, 생각으로 헤아려서 아는 것이 아닌 심사노절(尋思路絕)이며,

언어로 표현할  없는 명언도단(名言道斷)으로, 오직 참다운 성자만이 스스로 내면적으로 증득하는 것이며,

 성품이 본래부터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ㅡ전의(轉依) 의해 현현해서 얻어지는 소현득(所顯得) 열반에 관하여  종류의 열반을 별도로 자세히 해설한다.


二有餘依涅槃,謂卽眞如出煩惱障,雖有微苦所依未滅,而障永寂,故名涅槃;

둘째는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으로,  진여가 번뇌장을 벗어난 것을 말하며, 미세한 괴로움의 의지처가 있어서 아직 멸하지 않았을지라도, 장애를 영원히 고요하게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에서 의(依)는 몸의 의지처인 의신(依身)을 말한다. 고통 세계의 원인인 번뇌는 끊었으나, 아직 과거의 업보로 받은 이숙고과(異熟苦果)의 신체가 남아 있는 상태이다. 

대승에서는 괴로움의 과보의 주체인 제8식을 나머지 의지처인 여의(餘依)라고 말하며, 이미 열반을 증득하긴 했지만, 아직 이숙의 의지처인 유루의 제8식을 멸하지 않았으므로 유여의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아라한의 최후신(最後身)이 아직 회신멸지(灰身滅智), 즉 몸을 재로 만들고 지혜를 멸해서 몸과 마음이 함께 아주 없어지지 않은 기간을 말한다.


三無餘依涅槃,謂卽眞如出生死苦,煩惱旣盡,餘依亦滅,衆苦永寂,故名涅槃;

셋째는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니,  진여가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난 것을 말하며, 번뇌를 이미 모두 없애고, 나머지 의지처도 역시 멸하여 많은 괴로움을 영원히 고요하게 하였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四無住處涅槃,謂卽眞如出所知障,大悲般若常所輔翼,由斯不住生死涅槃,利樂有情窮未來際,用而常寂,故名涅槃。

넷째는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니,  진여가 소지장을 벗어난 것을 말하며,

대자비와 반야에 항상 둘러싸임으로써 생사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즉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으며,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미래세가 다하도록 할지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一切有情皆有初一,二乘無學容有前三,唯我世尊可言具四。

일체 유정에게는 모두 처음의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 하나만이 있으며,

2승의 무학에게는 앞부분의  가지가 있음이 인정되며,

오직 우리 세존께서만이 이러한  가지를 갖추고 계신다고 말할  있다.


如何善逝有有餘依?

▷묻습니다; 어째서 선서(善逝, 부처님)에게 유여의열반이 있다는 것입니까?

문답으로써  가지를 판별하는 것으로, 먼저 부처님에게 유여의열반이 있는 것에 관하여 문답한다.

 

雖無實依而現似有。或苦依盡說無餘依,非苦依在說有餘依,是故世尊可言具四。

▷답한다; 비록 진실한 의지처가 없지만, 있는 것으로 사현하며, 혹은 괴로움의 의지처인 고의(苦依)를 다하였으므로 무여의열반이라고 말하고, 괴로움의 의지처가 아닌 비고의(非苦依)가 있으므로 유여의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네 가지를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若聲聞等有無餘依,如何有處說彼非有?

▷묻습니다; 만약 성문 등에게 무여의열반이 있다고 말한다면, 어째서 '승만경'에서 그들, 2승에게는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2()에게 무여의열반이 있다는 것에 관한 문답이다.

 

有處說彼都無涅槃,豈有餘依彼亦非有?

▷답한다; 그곳에서는 그들에게 모두 열반이 없다고 말하였거늘, 어째서 유여의열반 역시도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논주의 반대질문이다.


然聲聞等身智在時有所知障,苦依未盡,圓寂義隱,說無涅槃,非彼實無煩惱障盡所顯眞理有餘涅槃。爾時未證無餘圓寂,故亦說彼無無餘依,非彼後時滅身智已,無苦依盡無餘涅槃。或說二乘,無涅槃者,依無住處,不依前三。

그러나 성문 등은 최후의 신체와 지해인 신지(身智)가 있을 때에는 소지장도 있고 괴로움의 의지처도 아직 멸진하지 않아서 원적(圓寂)의 뜻이 감추어진 까닭에 열반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참으로 번뇌장을 다하여 나타난 진리인 유여의열반마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때에는 아직 무여의열반의 원적을 증득하지 못한 까닭에 역시 그들에게 무여의열반이 없다고 말한 것이니,

 다음의 유여의열반 이후의 최후의 신체와 지해(智解)를 멸하고  때에도 괴로움의 의지처를 멸진한 무여의열반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혹은 2승에게 열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주처열반에 의거해서 말한 것으로, 앞의  가지에 의거한 것은 아니다.

ㅡ경문(經文) 해설하는 것으로,  문단은 정성(定姓) 2승에 의거해서 말한다.

 

신지(身智)는 아라한의 최후신(最後身)이 아직 회신멸지(灰身滅智)하지 않은 기간의 최후신과 지해(智解)를 말한다.


又說彼,無無餘依者,依不定性二乘而說,彼纔證得有餘涅槃,決定迴心求無上覺,由定願力留身久住,非如一類入無餘依。

또한 그들에게 무여의열반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부정성(不定姓)의 2승에 의거해서 말한 것으로, 그들은 유여의열반을 증득할 무렵에 결정적으로 마음을 돌이켜서 최상의 깨달음을 구하고, 선정과 서원의 힘에 의해 신체를 남겨 두어 오래도록 머무나니, 정성이승(定姓二乘)의  부류가 무여의열반에 들어가는 것과는 같지 않다.


謂有二乘深樂圓寂,得生空觀,親證眞如,永滅感生煩惱障盡,顯依眞理有餘涅槃。彼能感生煩惱盡故,後有異熟,無由更生。現苦所依任運滅位,餘有爲法旣無所依,與彼苦依同時頓捨,顯依眞理無餘涅槃。

어떤 정성이승 열반의 원적(圓寂)을 매우 즐겨서 아공관을 얻고 직접 진여를 증득하여서 태어남을 초감하는 번뇌장을 영원히 멸진해서 진리에 의거하는 유여의열반을 현현하나니,

그는 능히 태어남을 초감(招感)하는 번뇌장을 멸진시킨 까닭 다음 존재의 이숙이 다시 태어날 까닭이 없으며,  

현재의 괴로움의 의지처가 자연히 멸하는 단계에서는 나머지 유위법도 이미 의지처가 없으므로,  괴로움의 의지처와 동시에 단박에 버려서 진리에 의거하는 무여의열반을 현현하는 것이다.

ㅡ이승에게 무여열반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爾時雖無二乘身智,而由彼證,可說彼有。此位唯有淸淨眞如,離相湛然,寂滅安樂,依斯說彼與佛無差。但無菩提利樂他業故,復說彼與佛有異。

그 때는 비록 2승의 최후의 신체와 지해의 신지(身智)가 없지만, 그들이 증득하였으므로 그들에게 무여의열반이 있다고 말할  있으며, 이 지위에서는 오직 청정한 진여만이 있으며, 형상을 떠나서 담연(湛然)하고 적멸 안락하다. 

참다운 진여에 의거해서 그들이 부처님과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 다만 깨달음과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의 업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부처님과 차이가 있다고 다시 말하는 것이다.

 

諸所知障,旣不感生,如何斷彼得無住處?

▷묻습니다; 모든 소지장은 이미 태어남을 초감하지 않거늘, 어떻게 그것을 끊어서 무주처열반을 얻는 것입니까?

이하는 소지장(所知障) 단멸하여 열반을 얻음에 관하여 외인(外人) 논주가  가지로 문답하는 것으로, 먼저 열반을 얻지 않아야 한다고 묻는,  모든 소지장의 자체는 계박하는 박법(縛法) 아니니, 업을 일으키고 태어남을 촉진하지 않기 때문이거늘, 어떻게 그것을 단멸해서 무주처열반을 얻는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彼能隱覆法空眞如,令不發生大悲般若,窮未來際利樂有情,故斷彼時顯法空理。此理卽是無住涅槃,令於二邊俱不住故。

답한다; 그것이 능히 법공진여를 은복하여서 대자비와 반야를 일으켜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것을 끊을 때, 법공 도리를 현현하며, 이 도리가 곧 무주처열반이니, 생사와 열반의 두 극단 모두에 머물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若所知障亦障涅槃,如何斷彼不得擇滅?

▷묻습니다;  만약 소지장도 역시 열반을 장애한다고 말한다면, 어째서 그것을 끊어서 택멸(擇滅, 열반)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ㅡ소지장을 끊으면 택멸(擇滅) 얻어야 하지 않느냐고 외인이 묻는 것이다.

 

택멸(擇滅)은 열반의 다른 명칭으로, 열반은 지혜의 간택(簡擇)하는 힘에 의해 번뇌를 끊은 자리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택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擇滅離縛,彼非縛故。

답한다; 택멸이란 계박(縛)을 떠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소지장은 계박이 아니기 때문이다.

택멸(擇滅) 지혜의 간택(簡擇) 의해 계박을 끊고 () 증득하는 것으로, 소지장은 유정을 계박하고 생사의 고통을 초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지장을 끊고 나서도 택멸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旣爾,斷彼寧得涅槃?

▷묻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을 끊어서 어떻게 열반을 얻는 것입니까?

열반은 계박을 해탈하는 것이므로, 외인이 이렇게 묻는 것이다.

 

非諸涅槃皆擇滅攝,不爾,性淨應非涅槃。

▷답한다; 모든 열반을 다 택멸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다면 자성청정열반은 열반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다.

ㅡ본래자성청정열반의 체성(體性) 택멸에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다.

 

能縛有情住生死者,斷此說得擇滅無爲,諸所知障不感生死,非如煩惱能縛有情,故斷彼時不得擇滅。然斷彼故,法空理顯,此理相寂說爲涅槃,非此涅槃擇滅爲性,故四圓寂諸無爲中,初後卽眞如,中二擇滅攝。

능히 유정을 계박해서 생사에 머물게 하는 번뇌장을 끊어서 택멸무위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모든 소지장은 생사를 초감하지 않는 것으로 번뇌장이 능히 유정을 계박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소지장을 끊을 때에 택멸(擇滅)을 얻지 않는 것이나, 그것을 끊었으므로 법공 도리가 현현하고, 이 도리인 이상(理相)이 고요하므로 열반이라 말하는 것이며,

이 무주처열반은 택멸을 체성으로 삼지 않으므로 네 가지 열반인 사원적(四圓寂)은 모든 무위법 중에서 처음의 본래자성청정열반과 나중의 것은 곧 진여이고, 가운데 두 가지인 유여의열반과 무여의열반은 택멸에 포함된다.

 

若唯斷縛得擇滅者,不動等二四中誰攝?

▷묻습니다; 만약 오직 계박(번뇌)을 끊는 것만으로 택멸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부동무위(不動無爲)와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의 두 가지는 네 가지 중에서 무엇에 포함됩니까?

ㅡ부동무위(不動無爲)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 계박을 끊어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허공무위ㆍ택멸무위ㆍ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ㆍ진여무위의  가지 중에서 어디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가라고 외인이 묻는 것이다.

 

非擇滅攝,說暫離故。擇滅無爲唯究竟滅,有非擇滅非永滅故。或無住處亦擇滅攝,由眞擇力滅障得故。

擇滅有二:一滅縛得,謂斷感生煩惱得者;二滅障得,謂斷餘障而證得者。故四圓寂諸無爲中初一卽眞如,後三皆擇滅。不動等二暫伏滅者非擇滅攝,究竟滅者擇滅所攝。

▷답한다; 비택멸무위에 포함되나니, 잠시 떠난다고 '현양성교론' 제18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택멸무위는 오직 구경멸(究竟滅)일 뿐이고, 비택멸이 아닌 것도 있기 때문이며,

혹은 무주처열반도 역시 택멸에 포함되나니, 참다운 간택의 힘인 진택력(眞擇力)에 의해서 장애를 끊고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택멸(擇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계박을 끊고서 얻는 멸박득(滅縛得)이니, 태어남을 초감하는 번뇌장을 끊고서 얻는 것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장애를 끊어서 얻는 멸장득(滅障得)이니, 나머지 장애를 끊고서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네 가지 열반인 사원적(四圓寂)은 모든 무위법 중에서 처음의 하나인 자성청정열반은 진여이고,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의 셋은 모두 택멸이다.

부동무위 등 두 가지는 잠시 조복ㆍ단멸하는 측면에서는 비택멸에 포함되나, 구경멸인 측면에서는 택멸에 포함된다.


旣所知障亦障涅槃。如何但說是菩提障?

▷묻습니다; 소지장은 역시 열반을 장애하거늘, 어째서 다만 이것이 보리의 장애인 보리장(菩提障)이라 하는 것입니까?

ㅡ소지장이 오직 보리의 장애인 보리장(菩提障)이라는 것에 관하여 외인이 묻는 것이다.

 

說煩惱障但障涅槃,豈彼不能爲菩提障?應知聖教依勝用說,理實俱能通障二果。

▷답한다; 번뇌장은 다만 열반을 장애한다고만 말하거늘, 어찌 소지장이 보리의 장애가 될 수 없겠는가?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성스러운 가르침은 뛰어난 작용인 승용(勝用) 의거해서 말하는 것이며, 진실로 모두 능히 통해서 열반과 보리(菩提)의 두 가지의 증과인 이과(二果)를 장애하는 것이다.

 

如是所說四涅槃中唯後三種名所顯得。

이상과 같이 말한  가지의 사열반(四涅槃) 중에서 오직 나중의  가지만을 이름하여 현현해서 얻어지는 소현득(所顯得)이라 하며,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 것으로,

 가지 열반 중에서 처음의 자성청정열반을 제외한 까닭은, 그것이 본래 적정한 것으로서 새롭게 미혹을 끊어서 증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나머지  가지는 장애를 끊어서 현현하기 때문에 전의(轉依) 의해 현현해서 얻어지는 소현득(所顯得)이라 이름한다.


二所生得,謂大菩提。此雖本來有能生種,而所知障㝵故不生,由聖道力斷彼障故,令從種起,名得菩提。起已相續窮未來際,此卽四智相應心品。

둘째는 생겨나서 얻어지는 소생득(所生得)이니, 대보리(大菩提)를 말하며,

이것은 본래부터 능히 생겨나게 하는 종자가 있지만, 소지장에 장애되기 때문에 생겨나지 못하는 것이며,

성스러운 수도의 성도력(聖道力)으로써 그 장애를 끊기 때문에, 종자로부터 일어나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니, 일어난 후에는 미래세가 다하도록 상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네 가지 지혜인 사지(四智)가 심왕(心王)과 심소(心所)에 통하므로 상응하는 심품(心品)인 것이다.

ㅡ전의(轉依) 의해 생겨나서 얻어지는 소생득(所生得) 보리(菩提) 관하여 자세히 해설한 것이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2

 

雖眞如性實無差別,而隨勝德假立十種。雖初地中已達一切,而能證行猶未圓滿,爲令圓滿後後建立。

진여의 성품인 진여성(眞如性) 실로 차별이 없지만수승한 덕을 따라 10 가지를 가립하나니,

초지(初地중에서 이미 일체, 즉 열 가지의 진여 통달하지만, 증득의 주체인 수행이 아직 원만하지 않으니,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 다음 단계를 건립하는 것이니,  

ㅡ진여는 본래 평등무차별의 이체(理體)로서, 실제는 서로 다른 명칭을 시설하지 않지만, 10() 계위(階位) 차이에 따라 가정적으로  ()에서 증득되는 진여에 명칭을 붙여서  가지 진여를 건립한 것이.

 

如是菩薩於十地中勇猛修行十種勝行,斷十重障,證十眞如,於二轉依便能證得。

이와 같은 보살은 십지(十地) 중에서 용맹하게  가지의 뛰어난 승행(勝行) 닦고, 

 가지 무거운 장애를 끊으며,  가지의 십진여(十眞如)를 증득하여 

문득  가지 전의(轉依)인 보리(菩提)와 열반을 능히 증득하는 것이다.

ㅡ이상은 능히 증득하게 하는 원인인 능증인(能證因) 밝혔으며, 이하 증득되는 결과인 소증과(所證果) 밝힌다.

 

轉依位別略有六種:一損力益能轉,謂初二位,由習勝解及慚愧故,損本識中染種勢力,益本識內淨種功能,雖未斷障種,實證轉依,而漸伏現行亦名爲轉。

보리(菩提)와 열반을 증득하는 전의(轉依)의 단계의 차이에는 대략 6 가지가 있으니,

1 세력을 감소시키고 능력을 증성하게 전의인 손력익능전(損力益能轉)로서, 처음의  가지 지위인 자량위와 가행위에서의 수행의 힘인 공능(功能)으로, 자량위에서 승해(勝解) 닦고 가행위에서 참회함으로써, 근본식 중의 염종자의 세력을 감소시키고 근본식 중의 청정종자의 능력을 증성하게 함을 말하며,

아직 장애의 종자를 단멸하여 실제로 전의를 증득하지는 못하였지만, 점차 현행을 조복시키므로 역시 전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ㅡ먼저 단계에 따른 여섯 가지 전의(轉依) 판별한다.

 

二通達轉,謂通達位,由見道力通達眞如,斷分別生二障麤重,證得一分眞實轉依。

2 통달전의(通達轉依)이니, 통달위(通達位)를 말하는 것으로, 견도의 힘에 의해 변행진여(遍行眞如) 통달함으로써,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가지 장애의 종자와 습기의 추중 끊고, 일부분의 참다운 진실한 전의를 증득한다.

 

三修習轉,謂修習位,由數修習十地行故,漸斷俱生二障麤重,漸次證得眞實轉依。

3 수습전의(修習轉依)이니, 수습위(修習位)이니, 10지의 수행인 십지행(十地行) 거듭 닦아 익힘으로써,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가지 장애의 추중을 점차 끊고, 참다운 전의를 점차로 증득하는 것이다.

ㅡ10지의 수행인 십지행(十地行)이라고 말하지만, 초지(初地)에서 견도를 제외한 주심위(住心位) 출심위(出心位그리고 나머지 9지이다.

 

攝大乘中說通達轉在前六地,有無相觀,通達眞俗閒雜現前,令眞、非眞現不現故。說修習轉在後四地,純無相觀長時現前,勇猛修習,斷餘麤重,多令非眞不顯現故。

세친의 '섭대승론석' 9권에서 제 2의 통달전의(通達轉依) 앞부분의 6지에 있다고 말한 은 후득지(後得智)로써 관조하는 형상이 있는 관법인 유상관(有相觀) 근본지(根本智)로써 관조하는 형상이 없는 관법인 무상관(無相觀)으로써 진제(眞諦) 속제(俗諦) 통달하는 것이 뒤섞여서 현전하여, 참다운 무상관(無相觀) 현현하게 하고, 진실하지 않은 유상관(有相觀) 나타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섭대승론석'에서 제 3의 수습전의(修習轉依) 뒷부분의 4 지위인 제7지ㆍ제8지ㆍ제9지ㆍ제10지 있다고 말한 것은 무상관이 오랫동안 현전하여 용맹스럽게 닦아 익혀서 나머지 추중을 끊고 진실하지 않은 것을 대부분 현현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四果圓滿轉,謂究竟位,由三大劫阿僧企耶修集無邊難行勝行,金剛喩定現在前時,永斷本來,一切麤重,頓證佛果圓滿轉依,窮未來際利樂無盡。

4 증과가 원만한 전의인 과원만전의(果圓滿轉依)로써, 구경위(究竟位)를 말한다. 3아승기겁 동안 무량하고 무변한 어려운 난행(難行) 뛰어난 승행(勝行)을 닦음으로써 금강유정(金剛喩定) 현전할 때에 본래의 모든 추중을 영원히 끊고 불과(佛果) 원만한 전의를 단박에 증득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유정을 이롭고 무진하게 안락하게 하는 것이.

 

금강유정(金剛喩定), 보살이 제10지의 만심(滿心), 즉 최후의 일념(一念)에서 불과(佛果)의 장애를 끊어 없애고, 참으로 묘각(妙覺)의 증득에 들어가는 단계를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라고 하고, 이 지위의 선정을 금강유정(金剛喩定)이라 이름한다. 그 자체(體)가 견고하고 그 작용이 예리하여서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기 때문에 금강석에 비유하여 이름한 것이다.

 

五下劣轉,謂二乘位,專求自利,厭苦欣寂,唯能通達生空眞如,斷煩惱種,證眞擇滅,無勝堪能名下劣轉。

제5 낮고 열등한 하열전의(下劣轉依)이니, 2승의 지위를 말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로움인 자리(自利)만을 구하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적멸을 좋아하며, 오직 아공진여만을 통달해서 번뇌의 종자를 단멸하고 ,진여의 택멸(擇滅)만을 증득하여 자재함이 없는, 일체를 아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갖추지 못한 까닭에 아직 자재하지 못한 것을 낮고 하열전의라 이름한다.

 

六廣大轉,謂大乘位,爲利他故趣大菩提,生死涅槃俱無欣厭,具能通達二空眞如,雙斷所知煩惱障種,頓證無上菩提、涅槃有勝堪能,名廣大轉。

제6은 광대전의(廣大轉依)이니, 대승의 지위를 말한다.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를 위해서 대보리에 나아가고, 생사와 열반 모두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며, 이공(二空)에서 나타난 진여를 모두 통달하고, 소지장과 번뇌장의 종자를 함께 단멸하여 최고의 보리와 열반을 단박에 증득하고, 뛰어난 자재함이 있는 것을 광대전의라 이름한 것이다.

 

此中意說廣大轉依,捨二麤重而證得故。

'삼십송' 제29의 게송에서 말하는 ‘전의(轉依)’의 뜻은 광대한 전의를 말하는 것이니, 두 가지의 추중을 버려서 증득하기 때문이다.

 

轉依義別略有四種:一能轉道。此復有二:一能伏道,謂伏二障隨眠勢力,令不引起二障現行,此通有漏無漏二道,加行根本後得三智,隨其所應漸頓伏彼。

전의(轉依)의 의미 차이에는 대략  가지가 있으니,

제1은 능히 전의를 이루는 능전도(能轉道)로써 여기에 다시  가지가 있다. 

첫째는 능히 조복하는 능복도(能伏道)이니, 이장(二障)의 수면의 세력을 조복하여서  가지 장애의 현행을 이끌어 내지 않게 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공통적으로 가행지(加行智)의 유루도와 근본지와 후득지에서의 무루도의  가지와 가행지ㆍ근본지ㆍ후득지의  가지 지혜에 의해서  상응하는 바를 따라 그것을 가행지에서는 점차로 또는 근본지와 후득지에서는 단박에 조복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전의(轉依) 자세히 해설한 것이다.

 

二能斷道,謂能永斷二障隨眠,此道定非有漏加行,有漏曾習相執所引未泯相故,加行趣求所證所引未成辦故。

둘째는 능히 단멸하는 능단도(能斷道)이니, 능히  가지 장애의 수면을 영원히 단멸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무루의 근본지와 후득지의 () 반드시 유루도와 가행지는 아니니,

유루심(有漏心)의 가행지와 유루심의 후득지의 유루도 예전에 익힌 것으로, 형상에 집착하는 것에 이끌려진 것이며, 아직 상분을 멸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가행지는 증득할 바의 진여 이끌어 일으켜지는 무분별지 나아가 구하고, 아직 판별하지 못한 때문이다

 

有義根本無分別智親證二空所顯眞理,無境相故能斷隨眠,後得不然,故非斷道。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근본무분별지혜는 직접 이공(二空) 나타난 진리에서 증득되는 것이며, 대상의 형상(상분)이 없기 때문에 이장(二障)의 수면을 단멸할  있으나,

후득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단멸의 도(道)가 아니니, 가령 무상관(無相觀)을 할지라도 상분인 대상의 상이 있기 때문에 단멸하지 못하는 것이다.

ㅡ무루심과 근본지ㆍ후득지를 밝힌다. 

 

有義後得無分別智雖不親證二空眞理,無力能斷迷理隨眠,而於安立非安立相明了現前,無倒證故,亦能永斷迷事隨眠。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후득무분별지혜는 직접 이공(二空) 진리를 증득하지 못하므로 도리에 미혹한 수면을 단멸할 능력이 없지만, 안립제와 비안립제의 상에 대해서 명료하게 현전하여 전도되지 않고 증득하기 때문에, 역시 현상(事)에 미혹한 수면을 영원히 단멸할  있는 것이다.

 

故'瑜伽'說修道位中有出世斷道世出世斷道,無純世閒道能永害隨眠,是曾習故,相執引故。

그러므로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말하기를 “수도위 중에서 출세간의 단멸하는 도인 근본지  세간(안립)과 출세간(비안립)의 단멸하는 도인 후득지가 있다. 순수한 세간도는 수면을 영원히 없애지 못하나니, 이것은 예전에 익힌 것이고, 형상에 집착하는 것에 이끌려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由斯理趣諸見所斷及修所斷迷理隨眠,唯有根本無分別智,親證理故,能正斷彼。餘修所斷迷事隨眠根本後得俱能正斷。

이러한 이치에 의거하여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과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의 본체(理)에 미혹한 모든 수면을 오직 근본무분별지혜만이 직접 진여에서 증득함으로써 그것을 능히 참으로 단멸하고

나머지는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이니, 현상에 미혹한 수면을 근본지와 후득지가 함께 능히 참으로 단멸하는 것이다.

 

二所轉依。此復有二:一持種依,謂根本識,由此能持染淨法種與染淨法俱爲所依。

聖道轉令捨染得淨。餘依他起性雖亦是依,而不能持種,故此不說。

제2는 전의되는 소전의(所轉依)이며, 여기에 다시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종자를 지니는 의지처인 지종의(持種依)로써, 근본식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능히 잡염법ㆍ청정법의 종지를 지니므로 잡염법ㆍ청정법 모두의 의지처가 된다.

성스러운도(聖道)가 전의(轉依)해서 잡염법을 버리고 청정법을 얻게 하며,

나머지 의타기성인 제 7식도 역시 의지처이지만, 종자를 집지(持)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二迷悟依,謂眞如,由此能作迷悟根本,諸染淨法依之得生,聖道轉令捨染得淨。

餘雖亦作迷悟法依,而非根本,故此不說。

둘째는 미혹과 깨달음의 의지처인 미오의(迷悟依)로써, 진여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능히 미혹과 깨달음의 근본이 됨으로써 모든 잡염법ㆍ청정법이 그것에 의지해서 생겨날  있으며, 성스러운 성도(聖道) 전의해서 잡염법을 버리고 청정법을 얻게 하며,

나머지 다른 것, 즉 의타기성인 8식도 역시 미혹ㆍ깨달음의 법의 의지처가 되지만 근본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三所轉捨。此復有二:一所斷捨,謂二障種,眞無閒道現在前時,障治相違,彼便斷滅,永不成就,說之爲捨。彼種斷故,不復現行,妄執我法。所執我法不對妄情,亦說爲捨,由此名捨遍計所執。

제3은 전의해서 버려지는 소전사(所轉捨)이며, 여기에 다시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단멸해서 버려지는 소단사(所斷捨)로써, 이장(二障)의 종자이며, 참다운 무간도가 현전할  장애와 다스리는 것이 서로 다른 까닭에 그것이 문득 단멸되어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는 것을 ‘버리는 사(捨)’라 하는 것이며,

그것의 종자가 단멸되기 때문에 다시 현행하여 망령되게 자아와 법으로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되는 자아와 법도 허망한 생각에 배대되지 않으므로 역시 ‘버릴 사(捨)’하 하는 것이니, 이것에 의거해서 변계소집을 버리는 사변계소집(捨遍計所執)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二所棄捨,謂餘有漏劣無漏種,金剛喩定現在前時,引極圓明純淨本識,非彼依故,皆永棄捨。彼種捨已,現有漏法及劣無漏畢竟不生,旣永不生,亦說爲捨,由此名捨生死劣法。

둘째는 포기해서 버려지는 소기사(所棄捨)이니, 이장(二障)의 나머지 유루와 열등한 무루 종자가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에 매우 원만하고 밝은 순수하고 청정한 근본식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 나머지 유루와 열등한 무루의 종자의 의지처가 아니므로 모두 영원히 그 종자를 버리며, 버리고 난 때에는 현재의 유루법과 열등한 무루법도 궁극적으로 생겨나지 않으며, 또한 영원히 생겨나지 않으므로 역시 ‘버리는 사(捨)’라 하며, 이것에 의거해서 생사와 열등한 무루의 법을 버린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有義所餘有漏法種及劣無漏,金剛喩定現在前時,皆已棄捨,與二障種俱時捨故。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나머지 유루법의 종자와 열등한 무루법의 종자를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에 모두 이미 버리는 것으로, 이장(二障)의 종자와 동시에 버려지는, 인과동시(因果同時)이고 무간도에서 버린다고 하였으며,

 

有義爾時猶未捨彼,與無閒道不相違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그 때에는 아직 그것을 버리지 못하나니,

무간도와 서로 다르기 때문이고,

ㅡ제8식 등의 나머지 유루법은 무간도와 다른 것임을 말한다.

 

菩薩應無生死法故,此位應無所熏識故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현전할 때의 보살에게는 생사의 법이 없는 변역생사(變易生死)이기 때문이며,

이 지위에서는 훈습되는 식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고,

ㅡ만약 금강심의 무간도(無間道)에서 유루(有漏)가 없다면 훈습을 받는 소훈식(所熏識)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 선(善)과 무루는 훈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住無閒道應名佛故,後解脫道應無用故。

무간도에 안주함을 부처님이라고 이름해야 하기 때문이며, 만약 그러하다면 이후의 해탈도는 작용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니, 

ㅡ만약 훈습 받는 식이 없다면, 이 지위의 보살도 역시 부처님이라고 이름해야 한다.

 

由此應知餘有漏等解脫道起方棄捨之,第八淨識非彼依故。

이러함 의거해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나머지 유루 등은 해탈도가 일어날 때에 비로소 유루와 열등한 무루의 종자를 버리며, 그것을 버나니, 제8청정식은 그것의 의지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四所轉得。此復有二:一所顯得,謂大涅槃。此雖本來自性淸淨,而由客障覆令不顯,眞聖道生,斷彼障故,令其相顯,名得涅槃。此依眞如離障施設,故體卽是淸淨法界。

제4는 전의해서 얻어지는 소전득(所轉得)으로, 여기에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현현해서 얻어지는 소현득(所顯得)이니, 대열반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본래부터 자성청정이지만, 객진번뇌의 장애가 덮어서 현현하지 못하게 하므로, 참다운 성스러운 도(道)가 생겨나서 그 장애를 끊는다.

따라서 그 상(相)을 현현하게 하는 것을 열반을 증득한다고 이름하며, 이것은 진여가 장애를 떠난 것에 의거해서 시설하기 때문에 체(體)가 곧 청정법계인 것이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1

 

此十一障二障所攝。

이러한 11 가지의 장애는 이장(二障) 포섭되는 것으로,

 가지 무거운 장애인 십중장(十重障)을 자세히 해설하는 가운데에서의 2(第二段)으로,

11 가지 장애를 번뇌장ㆍ소지장의 이장 ()하여, 분별기(分別起)ㆍ구생기(俱生起) 번뇌장ㆍ소지장을 조복하고 단멸하는 단계인 복단위차(伏斷位次) 밝힌다.

 

煩惱障中見所斷種於極喜地見道初斷。彼障現起地前已伏。

번뇌장 중에서 견도(見道)에서 단멸되는 미혹의 종자는 

제1의 극희지(極喜地)의 견도 초기, 즉 진견도(眞見道)의 무간도(無間道)ㆍ해탈도(解脫道)에서 단멸되는 것으로, (돈오 보살의 경우)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 번뇌장 장애의 현행은 10지 이전 단계에서 조복된다.

즉 자량위에서는 두드러진 현행을 조복하고, 가행위에서는 미세한 현행을 조복하며,

 

修所斷種金剛喩定現在前時一切頓斷。彼障現起地前漸伏,

수도(修道)에서 단멸되는 미혹의 종자는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에 (점오 보살과 유학에 공통으로) 모두 단박에 단멸되며, 그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 번뇌장 장애의 현행은 10지 이전 단계에서 점차 조복된다. 

 

初地以上能頓伏盡,令永不行,如阿羅漢由故意力前七地中雖暫現起,而不爲失,

초지(初地, 환희지 또는 극희지) 이상에서는 능히 단박에 조복하여 영원히 작용하지 않게 함이 아라한과 같으나, 고의적인 힘에 의해서 제7지 이전 중에 잠깐 현행하지만 잘못된 것이 아니다.

고의(故意) 4(前四地)에서 아견(我見) 등을 일으키고, 7(前七地)에서 탐욕 등을 일으키는 일도 있으나, 이것은 보살에게 지증(智增) 비증(悲增)  부류에 있어서,

비증(悲增) 보살이 유정의 이익을 위해 번뇌를 일으키는 일이 있으니,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려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 그는 살생을 하기 위해 고의로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드디어 지옥 중에 태어나 유정의 고통을 대신 받거나, 또는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고의로 탐욕을 일으켜서 인천(人天) 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것을 고의로 일으키는 이라고 하며, 이런 경우에는 과실이 되지 않는 것이다.

 

八地以上畢竟不行。

제8지의 부동지 이상에서는 궁극에 이르러 작용하지 않으며, 

8 이상에서는 6식이 순무루(純無漏) 상속하기 때문에 번뇌의 현행이 영원히 조복되고, 또한 분단생사(分段生死) 여의고 변역신(變易身) 받기 때문에, 윤생(潤生) 번뇌를 고의적으로 일으키지 않는다.

 

所知障中見所斷種,於極喜地見道初斷。彼障現起地前已伏。修所斷種於十地中漸次斷滅,金剛喩定現在前時方永斷盡。彼障現起地前漸伏,乃至十地方永伏盡。

소지장(所知障) 중에서 견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의 종자는 극희지의 견도 초기에 단멸하나, 그 장애의 현행은 10지 이전 단계에서 조복되며,

수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의 종자는 10지 가운데에서 점차 단멸되는 것으로,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에야 비로소 영원히 단멸되며, 그 장애의 현행은 10지 이전 단계에서 점차 조복하고 나아가 10지에서 비로소 영원히 조복되는 것이다.

 

八地以上六識俱者不復現行,無漏觀心及果相續能違彼故。第七俱者猶可現行,法空智果起位方伏,

제8의 부동지 이상에서 제6식과 함께하는 소지장(所知障) 다시 현행하지 않으니, 무루로서 관조하는 2공무루(空無漏)의 무분별지혜와 결과인 2공(空)의 무분별지혜의 결과인 멸진정(滅盡定)과 후득지(後得智)가 상속해서 능히 그 제6식의 아집과 법집에 거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제7식과 함께하는 제7식의 소지장은 오히려 현행할  있으나, 법공(法空)의 지혜와 결과가 일어나는 단계에서 비로소 조복된다.

ㅡ제7식과 함께하는 소지장은 8 이상에서도 아직 현행해야 하는 것이니, 6식의 아공지(我空智) 그것에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며, 이것은 6식의 법공지(法空智) 단계에서 조복된다.

 

前五轉識設未轉依,無漏伏故,障不現起。

전5식은 설사 전의(轉依)하지 않을지라도 제6식의 무루(無漏)로써 조복되기 때문에 전5식(前五識)의 두 가지 장애 일으키지 않는다.

 

雖於修道十地位中皆不斷滅煩惱障種,而彼麤重亦漸斷滅,

수도(修道)의 10지의 계위 중에서는 모든 번뇌장의 종자를 단멸하지는 않지만, 그것의 추중(麤重, 습기)을 점차 단멸하나니,

ㅡ번뇌장의 종자의 추중은 금강심(金剛心)에서 비로소 단멸되고, 종자가 아닌 습기의 추중은 각각의 지위인 지지(地地)에서 끊어 버리는 단사(斷捨)하게 된다.

 

추중(麤重)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종자를 추중이라고 이름하고,

둘째는 종자가 아닌 습기를 추중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후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由斯故說二障麤重一一皆有三位斷義。雖諸位中皆斷麤重,而三位顯,是故偏說。

이러한 까닭으로, 이장(二障)의 추중 하나하나를 극환희주(極歡喜住)ㆍ무가행무공용무상주(無加行無功用無相住)ㆍ최상성만보살주(最上成滿菩薩住)의 삼위(三位, 3 가지의 안주) 각각 단멸하는 뜻이 있다고 말하며,

비록 모든 지위 중에서 각각 추중을 단멸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삼위(三位)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하는 것이다.

ㅡ유가사지론 47권에서와 유가론 47권ㆍ제48권에서 열두 가지 보살의 안주함의 보살주(菩薩住) 열거하였고, 3무수대겁(無數大劫) 경유하여서 능히 모든 번뇌장품과 소지장품에 있는 추중(麤重) 단멸한다고 말한다

번뇌장품에 있는 추중은  가지 안주에서 능히 단멸한다고 하였으니,  

극환희주(極歡喜住)에서 여러 악취(惡趣) 모든 번뇌장품의 추중을  영원히 단멸하고,

무가행무공용무상주(無加行無功用無相住)에서 능히 청정무생인 장애하는 모든 번뇌품의 추중을  영원히 단멸하고, 최상성만무생인(最上成滿無生忍) 장애하는 모든 번뇌품의 추중을  영원히 단멸한다

최상성만보살주(最上成滿菩薩住)에서 모든 번뇌의 습기ㆍ수면의 장애를  영원히 끊고 여래주(如來住) 들어간다고 말하였다.

 

斷二障種漸頓云何?第七識俱煩惱障種,三乘將得無學果時,一剎那中,三界頓斷。所知障種將成佛時,一剎那中一切頓斷,任運內起,無麤細故。

이장(二障)의 종자를 점차 단멸함과 단박에 단멸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제7식과 함께하는 번뇌장의 종자는 부정종성(不定種姓)과 결정성문(決定聲聞)과 결정독각종성(決定獨覺種姓)의 3승(乘)의 수행자가 장차 무학과(아라한과)를 증득할 즈음,찰나(一剎那)에 3계의 것을 단박에 끊으며,

소지장의 종자는, 소지장(所知障)이기 때문에 부정종성(不定種姓)과 보살종성(菩薩種姓)이며, 장차 성불하고자 할 즈음에찰나 중에 모든 것을 단박에 끊는 것이다.

이 이장(二障)이 자연적으로 내면에서 일어나는 임운내기(任運內起)의 것으로, 견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을 가려낸 것으로,

수도(修道)에서의 현상(事)에 미혹한 탐욕 등을 가려낸, 추(麤)와

수도에서의 본질(理)에 미혹한 아견과 변견(邊見)을 가려낸, 미세함의 세(細)가 없기 때문이다.

ㅡ두 가지 장애의 종자를 단멸하는 돈점(頓漸) 밝힌 것으로, 이것은 보살뿐만 아니라 널리 3()을 포함하여서 말하는 것이다.

 

餘六識俱煩惱障種,見所斷者,三乘見位,眞見道中,一切頓斷。修所斷者,隨其所應,一類二乘,三界九地一一漸次九品別斷。一類二乘三界九地合爲一聚,九品別斷,菩薩要起金剛喩定,一剎那中三界頓斷。

나머지 6식과 함께하는 번뇌장의 종자 중에서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은, 3승의 견도위 중의 진견도(眞見道) 중에서 모든 것을 단박에 끊으며,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은  상응하는 바를 따라  부류의 이승, 즉 순차적으로 4과(果)를 얻는 수행자는 3계(界)ㆍ9지(地)의 것을 하나하나 점차 9품(品)으로 해서 별도로 끊으며,

다른 한 부류인, 초과(初果)의 수행자인 이승은 3계ㆍ9지를 합해서  무리의 9품으로 해서 별도로 끊는, 즉 중간의 두 과를 초월하여 제4과를 증득하며,

보살은 반드시 금강유정을 일으켜서  찰나에 3계의 9지(地)의 81품 단박에 끊는다.

ㅡ9()를 각각 9()으로 나누어서 모두 81품이 된다.

 

所知障種,初地初心頓斷一切見所斷者。修所斷者,後於十地修道位中漸次而斷,乃至正起金剛喩定一剎那中方皆斷盡,通緣內外麤細境生,品類差別有衆多故。

소지장의 종자 중에서 견도에서 단멸되는 모든 미혹은 초지의 초심(初心)에서 단박에 끊을 수 있으며,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은 나중에 10지의 수도위에서 점차적으로 끊어 나아가서 바로 금강유정을 일으킨 일찰나(一剎那)에 비로소 모두 끊어 없앤다. 

공통적으로 내부와 외부, 추(麤, 구체적인 것)와 세(細, 미세한)의 대상(境)을 반연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품류(品類)의 차이가 많은 때문이다.

 

二乘根鈍,漸斷障時必各別起無閒解脫加行勝進,或別或摠。菩薩利根漸斷障位,非要別起無閒解脫,剎那剎那能斷證故,加行等四剎那剎那前後相望皆容具有。

2승(乘)은 근기가 둔하므로 점차 장애를 끊을 때에 반드시 각각 별도로 무간도와 해탈도를 일으키는, 즉 무간도에서 1품을 끊은 다음에 해탈도를 일으키는 것 등이며,

가행도와 승진도는 수도(修道)에서 개별적으로 각각 9품을 일으키거나 혹은 총체적으로 일으킨다. 

보살은 근기가 총명하므로 장애를 점진적으로 끊는 단계에서 무간도와 해탈도를 반드시 별도로 일으키지 않으니, 찰나찰나에 무간도에서 끊고, 해탈도에서 증득할  있기 때문이다.

가행도 등의  가지는 찰나 찰나에 앞뒤로 서로 배대해서 모두 갖추어 있음이 인정되나니,

유루의 4도(道)는 색계와 무색계의 10지(地)에서는 공통적으로 모두 갖추나,  
욕계에서는 오직 가행도와 승진도만이 있고,  
무루의 4도는 유정천(有頂天)을 제외한 모두는 공통으로 4도가 있다.

ㅡ3승에 있어서 가행도ㆍ무간도ㆍ해탈도ㆍ승진도의  가지  같은 점과 차이점을 판별한 것이다.

 

ㅡ번뇌를 끊는 수행에 가행도ㆍ무간도ㆍ해탈도ㆍ승진도의 네 단계가 있어서,

가행도(加行道)는 번뇌를 끊는 지위의 예비로서 수행에 힘을 가(加)하는 기간이고,

무간도(無間道)는 근기가 성숙하여 참으로 번뇌를 끊고자 하는 단계이며,

해탈도(解脫道)는 무명(無明) 번뇌를 여읜 곳에 나타나는 진여를 얻고자 하는 찰나이며,

승진도(勝進道)는 다시 정진을 계속하여 열반에 나아가는 기간이다.

 

十眞如者:一遍行眞如,謂此眞如二空所顯,無有一法而不在故。

二最勝眞如,謂此眞如具無邊德,於一切法最爲勝故。

‘십진여(十眞如)’란 다음과 같으니,

제1의 극희지(極喜地, 환희지)는 변행진여(遍行眞如)이며, 중생 성품의 장애인 이생성장(異生性障)을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진여는 아공ㆍ법공의 이공(二空)에서 나타난 것으로서, 어느 일법(一法)에도 있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제2의 이구지(離垢地)는 가장 뛰어난 승진여(勝眞如)이며, 삿된 행의 장애인 사행장(邪行障)을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진여는 가없는 덕을 갖추어법에 있어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ㅡ증득되는 진여를 해설한 것으로, 10()  ()에서 증득되는 진여에 명칭을 붙여  가지 진여를 가립하였다.

 

三勝流眞如,謂此眞如所流教法於餘教法極爲勝故。

四無攝受眞如,謂此眞如無所繫屬,非我執等所依取故。

五類無別眞如,謂此眞如類無差別,非如眼等類有異故。

제3의 발광지(發光地)는 뛰어나게 흘러나오는 승유진여(勝流眞如)이며, 우둔함의 장애인 암둔장(闇鈍障)을 단멸함으로써 증득되는  진여로부터 흘러나오는 교법은 다른 교법에 비해서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며,

제4의 염혜지(染慧地)는 섭수됨이 없는 무섭수진여(無攝受眞如)이니, 미세한 번뇌가 현행하는 장애를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이 진여는 계박되고 소속된 바가 없어서 아집 등의 소의처(所依處, 의지처)와 인식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제5의 난승지(極難勝地)는 종류의 차별이 없는 유무별진여(類無別眞如)이니, 하위의 교법에서 반열반하고자 하는 장애를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진여는 종류의 차별이 없으니, 안근(眼根) 등의 다른 종류가 있는 것과는 다른, 즉 생사와 열반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미오일여(迷悟一如)이기 때문이다.

 

六無染淨眞如,謂此眞如本性無染,亦不可說後方淨故。

七法無別眞如,謂此眞如雖多教法,種種安立而無異故。

제6의 현전지(現前地)는 잡염과 청정이 없는 무염정진여(無染淨眞如)이며, 구체적인 상이 현행하는 장애를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이 진여는 본래부터 성품에 잡염이 없으므로 나중에 비로소 청정하게 되는 것이라 말할  없기 때문이며,

제7의 원행지(遠行地)는 법의 차이가 없는 법무별진여(法無別眞如)이며, 미세한 상이 현행하는 장애를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진여는 비록 많은 교법에서 갖가지로 안립되지만, 서로 다름이 없기 때문이며,

ㅡ이 진여는 많은 교법에서 승의(勝義)ㆍ법계(法界)ㆍ선()  여러 가지로 안립되지만, 서로 다름이 없음을 말한다.

 

八不增減眞如,謂此眞如離增減執,不隨淨染有增減故,卽此亦名相土自在所依眞如,謂若證得此眞如,已現相現土俱自在故。

제8의 부동지(不動地)는 증감(增減)이 없는 부증감진여(不增減眞如)이니, 형상이 없는 관법 속에서 가행을 짓게 하는 장애를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이 진여는 증감의 집착을 떠난 것으로서, 청정ㆍ잡염법을 따라 증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이것을 형상과 국토의 자재함이 의지처로 하는 진여라고도 이름하나니,

금(金)ㆍ은(銀) 등의 모습을 나투거나, 크고 작은 국토를 나투는 것이 자재한 이 진여를 증득하고 나면, 형상을 나타내고 국토를 변현하는 것에 모두 자재하기 때문이다.

 

九智自在所依眞如,謂若證得此眞如已,於無㝵解得自在故。

十業自在等所依眞如,謂若證得此眞如已,普於一切神通作業摠持定門皆自在故。

제9의 선혜지(善慧地)는 지혜의 자재함이 의지처로 하는 지자재소의진여(智自在所依眞如)이며, 남을 이롭게 하는 속에서 실천하려 하지 않는 장애를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이 진여를 만약 증득한다면무애해(四無礙解)에서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며,

제10의 법운지(法雲地)는 업의 자재 등이 의지처로 하는 업자재등소의진여(自在等所依眞如)이며, 제법에서 아직 자재함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끊음으로써 증득되는 이 진여를 만약 증득한다면, 널리 모든 신통스러운 작업과 총지(總持)와 여러 선정에 대해서 모두 자재하기 때문이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9 9


四微細煩惱現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第六識俱身見等攝,最下品故,不作意緣故,遠隨現行故,說名微細。彼障四地菩提分法,入四地時便能永斷。彼昔多與第六識中任運而生執我見等同體起故,說煩惱名,今四地中旣得無漏菩提分法,彼便永滅,此我見等亦永不行。

제4는 미세한 번뇌가 현행하는 장애인 미세번뇌현행장(微細煩惱現行障)이니 제4의 염혜지(焰慧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 일부분이 제6식과 함께하는 아견 등에 포함되는 것을 말하며, 최하품이기 때문이고,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임운기(任運起)이기 때문에 작의(作意)하지 않고 반연하기 때문이며, 아득한 무시로부터 따라서 현행한 것이기 때문에 미세하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 장애는 제4지의 보리분법을 장애하나, 제4지에 들어갈 때,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며, 

그 장애는 대부분 제6식(第六識) 가운데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임운기(任運)로서 자아에 집착하는견(我見) 등과 동체(同體)로서 일어나기 때문에 번뇌라 이름하며,

제4지(염혜지) 중에서 무루의 보리분법을 증득하였을 때, 그 소지장이 영원히 영멸(永滅)하며,

이 소지장(所知障)과 동체(同體) 번뇌인 아견(我見) 등도 역시 영원히 작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初二三地行施戒修相同世間,四地修得菩提分法方名出世,故能永害二身見等。

초지(극희지)ㆍ제2지(이구지)ㆍ제3지(발광지)에서는 보시ㆍ지계의 행을 실천하므로 상(相)이 세간과 같으나,

제4지(염혜지)에서는 보리분법을 닦아 증득하므로 비로소 출세간이라고 이름할 수 있으니, 따라서 능히 아견 등의 이견(二見)을 영원히 없애는 것이다.

ㅡ처음 견도(見道)에서 이미 6 중의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아견인 유신견(有身見) 여의고, 지금 4지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아견(유신견)을 모두 여의었므로  가지 아견을 없앤다고 말하는 것이다.

 

寧知此與第六識俱?第七識俱執我見等與無漏道性相違故,八地以去方永不行,七地已來猶得現起,與餘煩惱爲依持故。此麤彼細,伏有前後,故此但與第六相應。

정녕 알아야 하나니, 이것은 제6식과 함께하고 제7식과 함께하는 것으로서, 

자아로 집착하는 등은 제6식의 아공무루(我空無漏)의 도와 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제8지에서 부터 비로소 영원히 작용하지 않게 되며,

7지 이후에서는 아직 현행하여 일어남이 있어서 나머지 번뇌인 탐욕ㆍ성냄 등의 의지처가 되며,

이 제6식과 함께하는 아견은 두드러지고, 그 제7식과 함께하는 아견은 미세한 것으로, 조복함에 있어서 앞뒤가 있으니, 두드러진 것을 먼저 조복하고 미세한 것을 나중에 조복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은 다만 제6식과 상응하는 것이다.


身見等言亦攝無始所知障攝定愛法愛,彼定法愛三地尚增,入四地時方能永斷,菩提分法特違彼故。

아견(유신견) 등이라는 말에는 역시 아득한 무시로부터의 소지장에 포섭된 선정의 애착과 법의 애착도 포함하나니, 그 선정의 애착과 법의 애착은 제3지(발광지)에서는 아직 증성하나, 제4지(염혜지)에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영원히 단멸할  있으니, 특히 보리분법이 그것에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由斯四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等至愛愚,卽是此中定愛俱者;二法愛愚,卽是此中法愛俱者。

所知障攝二愚斷故,煩惱二愛亦永不行。

그러므로 제4지(염혜지)에서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단멸할 수 있다.

첫째는 삼마지에 애착하는 어리석음인 증지애우(等至愛愚)이니,   가운데에서 선정의 애착과 함께하는 것이며,

둘째는 법에 애착하는 어리석음인 법애우(法愛愚)이니,   가운데에서 법의 애착과 함께하는 것이다. 

소지장에 포섭되는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가 단멸되기 때문에,  가지의 번뇌 애착 역시도 영원히 작용하지 않는 것다.


五於下乘般涅槃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厭生死樂趣涅槃,同下二乘厭苦欣滅。

彼障五地無差別道,入五地時便能永斷。

제5는 하위의 교법에서 반열반(涅槃障)하고자 하는 장애이며, 제5 극난승지(極難勝地)에서 단멸 되는 것으로,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 일부분이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에 즐겨 나아가서, 하위의 2승(乘)이 괴로움을 싫어하고 적멸을 좋아하는 것과 같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5지(난승지)의 차별이 없는 무차별도(無差別道)를 장애하며, 제5지에 들어갈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由斯五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純作意背生死愚,卽是此中厭生死者;二純作意向涅槃愚,卽是此中樂涅槃者。

그러므로 제5지의 난승지에서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단멸한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순전히 작의(作意)해서 생사를 등지는 어리석음이니, 즉  가운데에서 생사를 싫어하는 것을 말하며,

둘째는 순전히 작의해서 열반에 향하는 어리석음이니,   가운데에서 열반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六麤相現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執有染淨麤相現行。彼障六地無染淨道,入六地時便能永斷。

제6은 구체적인 모습의 추상(麤相)이 현행하는 장애이며, 제6 현전지(現前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잡염과 청정의 구체적인 추상(麤相) 있다고 집착해서 현행함을 말하며, 그것은 제6지(현전지)의 잡염과 청정이 없는 도(道)를 장애하는 것이나, 제6지에 들어갈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由斯六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現觀察行流轉愚,卽是此中執有染者,諸行流轉,染分攝故;二相多現行愚,卽是此中執有淨者,取淨相故,相觀多行,未能多時住無相觀。

그러므로 제6지(현전지)에서의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현재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의 생멸하는 유위법(行)의 유전을 관찰하는 어리석음으로,   가운데에서 잡염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유위법의 유전은 잡염분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의 청정한 상이 많이 현행하는 어리석음으로,   가운데에서 청정함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청정한 상을 취하기 때문에 형상이 있는 관법인 상관(相觀)을 많이 행하는, 즉 후득지(後得智)가 형상이 있는 청정관법인 유상정관(有相淨觀)을 짓는 것으로, 아직 형상이 없는 관법인 무상관(無相觀)에 많이 머물지 못한다.


七細相現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執有生滅細相現行。彼障七地妙無相道,入七地時便能永斷。

제7은 미세한 세상(細相) 현행하는 장애이니, 제7 원행지(遠行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생겨나고 멸함의 미세한 생멸세상(生滅細相) 있다고 집착해서 현행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제7지(원행지)의 형상이 없는 승묘한 묘무상도(妙無相道)를 장애하나, 제7지에 들어갈 때에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由斯七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細相現行愚,卽是此中執有生者,猶取流轉細生相故;二純作意求無相愚,卽是此中執有滅者,尚取還滅細滅相,故純於無相作意勤求,未能空中起有勝行。

그러므로 제7지에서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미세한 모습이 현행하는 어리석음인 세상현행우(細相現行愚)이니,   가운데에서 생(生)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아직 유전(流轉)의 미세하게 생겨나는 세생상(細生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순전히 작의해서 형상이 없음을 구하는 어리석음인 순작의구무상우(純作意求無相愚)이니,   가운데에서 멸(滅)함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환멸(還滅)의 미세한 상에 집착해서, 오로지 무상(無相)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지런히 구하므로, 아직 공(空) 가운데에서 상이 있는 관법의 뛰어난행(勝行)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八無相中作加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無相觀不任運起。前之五地有相觀多無相觀少,於第六地有相觀少無相觀多,第七地中純無相觀,雖恒相續而有加行。由無相中有加行故,未能任運現相及土。如是加行障八地中無功用道,故若得入第八地時便能永斷,彼永斷故,得二自在。

제8은 무상(無相)의 관법 속에서 가행을 짓게 하는 장애이니, 제8부동지(不動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무상관(無相觀)으로 하여금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불임운기(不任運起)를 말하는 것이며, 

앞의 5지(난승지)에서는 형상이 있는 관법인 유상관(有相觀)은 많고, 형상이 없는 무상관(無相觀) 적으며,

제6지(현전지)에서는 형상이 있는 유상관(有相觀)은 적으나, 형상이 없는 무상관(無相觀)은 많으며,

제7지(원행지) 중에서는 오로지 형상이 없는 무상관(無相觀) 항상 상속하지만, 아직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행이며, 무상관(無相觀)에 가행이 있기 때문에 아직 자재하게 형상과 국토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행은 제8지(부동지)에서 작용이 없는 무공용도(無功用道)를 장애하나, 제8지에 들어갈 때에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되며, 그것이 영원히 단멸된 까닭 형상과 국토의  가지 자재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ㅡ제8지에 이르면 자신이 바라는 바 따라, 크고 작은 국토와 금ㆍ은 등의 형상을 나타낼  있게 된다.


由斯八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於無相作功用愚,二於相自在愚。令於相中不自在故,此亦攝土相一分故。

그러므로 제8지(부동지)에서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형상이 없는 것에 대해서 작용을 짓고자 하는 어리석음인 무상작공용우(無相作功用愚)이며,

둘째는 형상에 대해 자재하는 어리석음인 상자재우(相自在愚)이니, 상에서 자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며, 이것 역시도 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국토를 포함한다. 


八地以上純無漏道任運起故,三界煩惱永不現行。第七識中細所知障猶可現起,生空智果不違彼故。

제8지(부동지) 이상에서는 순전히 무루도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임운기(任運起)이기 때문에, 삼계의 번뇌가 영원히 현행하지 않으나, 제7식 중의 미세한 소지장만은 아직 현행할  있으니, 즉 제6식의 아공(我空)의 정체지(正體智)와 후득지의 결과가 제7식의 법집(法執)에서 단멸되기 때문에 제7식의 법집에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九利他中不欲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於利樂有情事中不欲勤行,樂修己利。彼障九地四無閡解。入九地時便能永斷。由斯九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於無量所說法無量名,句字後後慧辯陁羅尼自在愚。

제9는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 중에서 실천하지 않고자 하는 장애이니, 선혜지(善慧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 일부분이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부지런히 실천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즐겨서 닦게 하는 것이니, 그러함은 제9지(선혜지) 중의  가지 걸림 없는 사무애해(四無礙解)를 장애하나, 제9지(선혜지)에 들어갈 때에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9지에서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설해진 무량 법문ㆍ무량명(無量名)ㆍ문구ㆍ글자ㆍ세 번째 지혜인, 후후혜변(後後慧辯)의 다라니(陀羅尼)에 자재(自在)한 어리석음이다.


於無量所說法陁羅尼自在者,謂義無閡解,卽於所詮摠持自在,於一義中現一切義故。於無量名句字,陁羅尼自在者;謂法無閡解,卽於能詮摠持自在,於一名句字中現一切名句字故。

설해진 수많은 법문인 무량소설(無量所說)의 법을 지녀서 자재하다는 것은 일체 교법의 의미에 걸림 없는 의무애해(義無礙解)를 말하는 것이니, 곧 소전(所詮)을 모두 지녀서 자재한 것으로, 하나의 의미에서 일체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무량명(無量名)ㆍ문구ㆍ글자를 모두 지녀서 자재하다는 것은 법무애해(法無礙解)를 말하는 것이니, 곧 능전(能詮)을 모두 지녀서 자재한 것으로, 하나의 명칭ㆍ문구ㆍ글자 중에서 무량명ㆍ문구ㆍ글자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於後後慧辯,陁羅尼自在者,謂詞無閡解,卽於言音展轉訓釋摠持自在,於一音聲中現一切音聲故。

 번째 지혜인, 후후혜변(後後慧辯)의 언어를 모두 지녀서 자재하다는 것은 일체 언설에 걸림이 없는 사무애해(詞無礙解)를 말하는 것으로, 곧 음성이 전전하여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을 모두 지녀서 자재한 것이니, 하나의 음성 속에서 모든 음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二辯才自在愚。辯才自在者,謂辯無閡解,善達機宜巧爲說故。愚能障此四種自在,皆是此中第九障攝。

둘째는 변재가 자재한 것의 어리석음인 변재자재우(辯才自在愚)이니, 변재가 자재한 것이란 법을 설하는 데 걸림 없는, 변무애해(辯無礙解)를 말하는 것으로, 근기의 적절함을  통달해서 그에 따라 훌륭하게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이 능히   가지 자재함을 장애하기 때문에 모두 제9의 장애에 포섭하는 것이다.


十於諸法中未得自在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於諸法不得自在。

彼障十地大法智雲及所含藏所起事業,入十地時便能永斷。

제10의 법운지는 제법 속에서 아직 자재함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이니, 제10법운지(法雲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제법에 대해서 자재함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 말하며, 그것은 제10지의  법의 지혜 구름인 법운(法雲, 진여)  함장된 다라니문(陀羅尼門)과 삼매문(三昧門)과, 지혜가 일으키는 사업을 장애하는 것이나, 제10지에 들어갈 때에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ㅡ큰 법의 대법(大法) 진여(眞如) 말하는 것으로, 진여를 반연하는 지혜는  구름과 같기 때문에법의 지혜 구름인 법운(法雲)이라 한다.


由斯十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大神通愚,卽是此中障所起事業者,二悟入微細秘密愚,

卽是此中障大法智雲及所含藏者。

그리므로 제10지(법운지)에서  가지 어리석음의 이우(二愚)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나니,

첫째는  신통의 어리석음이니,   가운데에서 일으켜지는 사업을 장애하는 것을 말하고,

둘째는 미세하고 비밀한 것을 깨달아 들어가는 것의 어리석음이니,   가운데에서 대법 지혜 구름  함장된 것을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此地於法雖得自在,而有餘障,未名最極,謂有俱生微所知障及有任運煩惱障種。

金剛喩定現在前時彼皆頓斷,入如來地。

 지위, 제10지에서는 법총지(總持)ㆍ선정ㆍ업에 자재함을 얻지만, 남아 있는 장애가 있으므로 아직 최극(最極)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니,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미세한 소지장이 있고, 자연히 일어나는 임운(任運)의 번뇌장의 종자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현전할 때, 그러한 것 모두를 단박에 끊고 여래지(如來地)에 들어 가는 것이다.


由斯佛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於一切所知境極微細著愚,卽是此中微所知障;二極微細㝵愚,卽是此中一切任運煩惱障種。故集論說得菩提時,頓斷煩惱及所知障,成阿羅漢及成如來,證大涅槃大菩提故。

그러므로 불지(佛地)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나니,

첫째는 모든 인식대상인 소지경(所知境)에 대해서 매우 미세하게 집착하는 어리석음이니, 곧 미세한 소지장이며,

둘째는 매우 미세하게 장애하는 어리석음이니, 곧 자연히 일어나는 일체의 임운번뇌장(任運煩惱障)의 종자이다.

따라서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4권에서 “보리를 증득할 때에 단박에 번뇌장과 소지장을 단멸하여 아라한이 되고, 여래가 된다”고 말하였으니, 대열반과 대보리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成唯識論卷第九 終 성유식론 제 9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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