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 ‘舍利弗因緣第十六 卷第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16. 초품  '사리불의 인연'을 풀이함 3

 

是時 南天竺 有一婆羅門 大論議師 字提舍, 於十八種大經 皆悉通利。

是人 入王舍城 頭上戴火 以銅鍱腹。

그때 남천축에 한 바라문 출신의 대논사(大論師)가 있었으니, 이름이 제사(提舍, Tiṣya)이라. 그는 열여덟 가지 외도의 경서(經書 veda)=十八大經(십팔대경)을 모두 통달하였다. 그러한 이가 불화로를 머리에 이고 구리=銅(동)으로 배를 감싸고 왕사성(王舍城, 라자가하 Rājagṛha)에 들어왔으니, 

 

人問其故, 便言, '我所學經書甚多 恐腹破裂 是故鍱之'

又問, '頭上何以戴火?' 答言, '以大闇故'

衆人言, '日出照明 何以言闇?' 鍱 쇳조각 섭, 戴 일 대

答言, '闇有二種, 一者 日光不照, 二者 愚癡闇蔽, 今雖有日明 而愚癡猶黑'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선뜻 대답하기를, '내가 배운 경서가 매우 많아서 배가 찢어질까 두려워 감싼 것이다'

또한 '머리에는 어찌하여 불을 이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해가 떠서 밝게 비추거늘, 어찌하여 어둡다 하는가?'

대답하기를, '어두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덮인 것이니, 지금은 비록 해의 광명이 있으나 어리석음 때문에 오히려 더욱 어두울 뿐이라' 하였다.

 

衆人言, '汝但未見 婆羅門 摩陁羅, 汝若見者 腹當縮 明當闇'

是婆羅 門逕至鼓邊 打論議鼓。縮 오그라들 축, 鼓 북 고, 逕 좁은 길 경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대가 아직 바라문인 마타라(摩陀羅)를 만나지 못하였구나. 그대가 그를 본다면 배는 쭈그러들 것이고 총명함=明(명)도 어두워지리라.' 하자,

그 바라문은 즉시 북 있는 곳으로 가서 논의를 청하는 북을 두드렸다.

 

國王聞之 問是何人? 衆臣答言, '南天竺 有一婆羅門, 名提舍 大論議師 欲求論處 故打論鼓'

王大歡喜 卽集衆人 而告之曰, '有能難者 與之論議'

국왕이 북소리를 듣고는 '누가 북을 울리는 것인가'라고 물으니,

신하들이 대답하기를, '남천축에서 온 한 바라문으로, 이름이 제사(提舍 Tiṣya)인데 대논의사(大論議師)입니다. 토론할 대상을 구하기 위해 토론을 알리는 북을 울리고 있습니다.'

왕이 매우 기뻐하면서 즉시 대중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능히 難(난)=따지고 힐문할 이가 있다면 그와 토론해 보거라.'하였다.

 

摩陁羅 聞之自疑, '我以廢忘 又不業新 不知我今能 與論不?' 僶俛而來。

於道中 見二特牛 方相觝觸 心中作想, '此牛是我 彼牛是彼 以此爲占 知誰得勝?'

此牛不如 便大愁憂 而自念言, ‘如此相者 我將不如' 僶 힘쓸 민, 俛 힘쓸 면, 숙일 부, 觝 닥뜨릴 저, 觸 닿을 촉

마타라(摩陀羅 Māṭhala)는 이 말을 듣고 스스로를 하심하며, '내가 오랜 동안 공부를 쉬었으며, 또한 새로운 것을 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니, 내가 이제 그와 겨루어 토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가 고개를 떨구고 걱정하며 가고 있었는데, 도중에서 때마침 두 송아지가 싸우려는 것을 보자 문득 혼자 생각하기를 ‘이편의 소는 나요, 저편의 소는 그라 생각하고, 이러함을 점을 쳐서 누가 이길지 알아보리라’ 하였다.

그런데 이쪽의 소가 여의치 못하여 지고 말자, 그는 문득 크게 근심하고 걱정 하면서 생각하기를, ‘점괘가 이러하다면 나도 이렇게 질 모양이구나.’하였다.

 

欲入衆時 見有母人 挾一甁水 正在其前 躄地破甁, 復作是念, ‘是亦不吉' 甚大不樂。

旣入衆中 見彼論師 顏貌意色 勝相具足 自知不如。

事不獲已 與共論議。論議旣交 便墮負處。挾 낄 협, 甁 병 병, 躄 넘어질 벽, 다리를 절 벽,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려 하는데, 어떤 아낙이 병에 물을 담아 옆구리에 끼고 오다가, 그의 바로 앞에 와서 바닥에 넘어져 병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는 다시 생각하기를, ‘이 또한 매우 불길하도다.’

이에 매우 불쾌한 마음으로 대중들이 모인 곳에 들어가서 그 논사를 보니, 용모와 안색에 이길 징조가 갖추어져 있어, 자기는 스스로 여의치 못할 것이 분명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그와 더불어 토론하니,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곧 지고 말았다.

 

王大歡喜, '大智明人 遠入我國' 復欲爲之封一聚落。

諸臣議言, '一聰明人來 便封一邑 功臣不賞 但寵語論 恐非安國 全家之道,

今摩陁羅 論議不如 應奪其封 以與勝者, 若更有勝人 復以與之'

王用其言 卽奪與後人。 寵 괼 총, 현 이름 룡, 사랑할 총

왕이 몹시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크게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멀리에서 내 나라에 왔으니, 다시 한 고을을 봉해 주어 포상하고자 하노라.' 하자, 

이에 신하들이 의논한 뒤에 말하기를, '총명한 사람이 올 때마다 한 고을을 식읍으로 봉하여 주시나, 공신들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시면, 오로지 총애를 받고자 논의에만 매달리게 될 것인즉, 국가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도가 아닌 줄로 여기나이다. 오늘 마타라(摩陀羅 Māṭhala)가 논의(토론)에서 여의치 못하여 졌으니, 응당 그에게 봉했던 식읍을 빼앗아서 이긴 자에게 주셔야 합니다. 또한 다시 이기는 이가 생기면 다시 빼앗아서 그에게 물려주면 될 것입니다.' 하자,

왕은 그들의 말을 따라 당장에 빼앗아서 뒷사람(제사)에게 주게 되었다.

 

是時 摩陁羅語 提舍言, '汝是聰明人 我以女妻汝 男兒相累, 今欲遠出他國 以求本志'

提舍納其女爲婦。

이에 마타라(摩陀羅 Māṭhala)가 제사(提舍 Tiṣya)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총명한 사람이니, 내 딸을 그대의 처로 맞이해주게나.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대를 잇게 될 터이니, 나는 이제 멀리 다른 나라로 가서 본래의 뜻을 구하리라.' 하였다.

 

其婦懷妊 夢見一人 身被甲冑 手執金剛 摧破諸山 而在大山邊立。

覺已白其夫言 我夢如是。

提舍言, '汝當生男 摧伏一切 諸論議師 唯不勝一人 當與作弟子'

제사(提舍 Tiṣya)는 그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꿈을 꾸니, 어떤 사람이 몸에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금강방망이(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산들을 두드려 깨어 부순 뒤, 큰 산의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 그 남편에게 '내가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습니다'고 말하자,

제사가 말하기를, '그대는 당연히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는 모든 논사들을 모두 굴복시키되 오직 한 사람만은 굴복시키지 못하고 그의 제자가 될 것이오.' 하였다.

 

舍利懷妊 以其子故 母亦聰明 大能論議。

其弟拘郗羅 與姊談論 每屈不如, 知所懷子 必大智慧 未生如是 何況出生!

卽捨家學問 至南天竺 不翦指爪 讀十八種經書 皆令通利 是故時人 號爲長爪梵志。

사리부인이 회임을 한 뒤로, 그 뱃속의 아기 때문에 엄마까지도 매우 총명하여져서 토론에 매우 능하여게 되어, 그의 동생인 구치라(拘郗羅)가 누이와 토론하면 항상 지기만 할 뿐 상대가 되지 못하게 되었다. 구치라는 잉태한 아기가 반드시 크게 지혜로울 것임을 알고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태어난 뒤에야 어떠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

학문을 닦고자 곧 집을 버리고 떠나, 남천축까지 가서 손톱도 깎지 않은 채 외도의 十八種經書(십팔종경서)를 모두 읽어 환하게 통달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장조(長爪) 범지(梵志)라 부르게 된 것이라.

 

姊子旣生 七日之後 裹以白疊 以示其父。

其父思惟, '我名提舍 逐我名字 字爲憂波提舍' 憂波 秦言逐, 提舍 星名, 是爲父母作字。

衆人以其舍利所生 皆共名之爲舍利弗 弗秦言子。

그의 누이가 아기를 낳은 지 7일 뒤에 하얀 포대기에 싸서 그의 아버지에게 보이니, 아버지가 생각하기를, 

‘나를 제사(提舍 Tiṣya)라 부르니, 내 이름자를 따서 우바제사(憂波提舍, Upatiṣya)라 하리라.

- 우바(우파Upa)란 진나라 말로 따른다는 뜻이며, 제사(提舍 Tiṣya)는 별의 이름이다.- 

곧 이 우바제사(憂波提舍, Upatiṣya)라는 이름은 부모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사리(舍利)부인의 소생이라 하여 모두가 사리불(舍利弗)이라 불렀으니,

-불(弗, putra)은 진나라 말로 아들이라는 뜻이다.-

 

復次 舍利弗 世世本願 於釋迦文尼佛 所作智慧第一弟子 字舍利弗。

是爲本願 因緣名字 以是故 名舍利弗。

또한 사리불 존자의 세세에 걸친 본원이 석가모니부처님 계신 곳에서 지혜제일의 제자가 되어 사리불이라 불리는 것이었으니, 이것은 본원(本願)의 인연에 의한 이름으로, 이러한 까닭에 사리불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問曰, 若爾者 何以不言 '憂波提舍', 而但言'舍利弗'?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어찌하여 우바제사(憂波提舍, Upatiṣya)라 부르지 않고 단지 사리불(舍利弗, Śāri-putra)이라고만 부르는 것입니까?

 

答曰, 時人貴重其母 於衆女人中 聰明第一 以是因緣故 稱舍利弗。

답하나니,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를 귀히 여겼으니, 곧 그녀는 여러 여인들 가운데 총명하기가 으뜸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사리불이라 불리게 된 것이니라.

제 15장. 승만(勝鬘) 부인

勝鬘章第十五(승만장 제십오)

 

諸餘衆生(여제중생) 於諸甚深法(어제심심법) 堅著妄說(견착망설)

(이 세 종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중생들로서 甚深法=깊고 깊은 가르침에 집착하여 망령되게 말하며,

[올바른 신심이 확립되지 못한 그 밖의 다른 모든 중생들은 여러 심오한 법에 대하여 실체가 있는 것처럼 굳게 집착하여서허망한 말을 하거나,] 

違背正法(위배정법) 習諸外道腐敗種子者(습제외부패종자자) 腐 썩을 부, 敗 패할 패

올바른 가르침을 위배하고 여러 가지 외도의 행을 익혀서 부처님의 종자를 썩게 하는 자들은 

[또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인 정법을 등지고 외도의 삿된 외도의 법을 익혀 마치 썩은 씨앗과 같은 사람들은]

當以王力及天、龍、鬼神力而調伏之(당이왕력급천 용 귀신력이조복지)

마땅히 왕의 힘이나 하늘, 용, 귀신의 힘으로 조복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국왕의 힘과, 부처님의 정법에 귀의하여 법을 수호하는 천룡(天龍)과 귀신들의 힘으로써 그 삿된 믿음을 항복=調伏 받아야 합니다.]

 

爾時(이시) 勝鬘與諸眷屬頂禮佛足(승만여제권속정예불족)

그때 승만 부인과 모든 권속들이 부처님의 발에 정수리를 대어 예배하자, 

[이 때에 승만부인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모든 권속들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표현으로써 부처님의 두 발에 이마를 대고 예배하였습니다.]

佛言(불언) 善哉善哉 勝鬘(선재선재 승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승만이여, 

於甚深法方便守護(어심심법방편수호) 降伏非法善得其宜(항복비법선득기의)

이러한 매우 깊은 가르침(법)을 방편으로 잘 지키어 보호하며, 바르지 못한 법(가르침)을 항복 받고 그 마땅한 바를 잘한 얻었으니,

[승만이여, 심오한 부처님의 정법을 교묘한 방편을 열어 잘 수호하고, 그릇된 사법(邪法)을 항복받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汝已親近百千億佛(여이친근백천억불) 能說此義(능설차의)

그대는 지나간 세상에 백천억의 부처님을 모셨으므로 이러한 뜻을 능히 설할 수 있는 것이니라.

[그대는 이미 과거세에 한량없는 백천억의 부처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이와 같은 이치를 잘 설할 수 있는 것이니라.]

 

爾時世尊(이시세존) 放勝光明普照大衆(방승광명보조대중)

이 때에 세존께서는 뛰어난 광명을 놓아 널리 대중을 두루 비추시고, 

身昇虛空高七多羅樹(신승허공고칠다라수) 足步虛空還舍衛國(족보허공환사위국)

몸이 허공으로 7다라수 높이 만큼 올라가셔서, 허공을 걸어서 사위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時勝鬘夫人與諸眷屬(시승만부인여제권속) 合掌向佛觀無厭足(합장향불관무염족)

그때 승만 부인과 모든 권속들이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싫어함 없이 바라보면서   

目不暫捨(목불잠사) 過眼境已踊躍歡喜(과안경이용약환희)

잠깐도 한눈을 팔지 아니하였으며, 부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 기뻐하여 뛰면서 

各各稱歎如來功德(각각칭탄여래공덕) 具足念佛還入城中(구족염불환입성중)

저마다 각각 여래의 공덕이 갖추어진 것을 찬탄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성으로 돌아와서,

向友稱王稱歎大乘(향우칭왕칭탄대승) 우칭왕을 향하여 대승을 찬탄하고 

城中女人七歲已上(성중여인칠세이상) 化以大乘(화이대승)

성중에 있는 일곱  이상  여자에게 모두 대승법으로 교화하고, 

友稱大王亦以大乘化諸男子(우칭대왕역이대승화제남자)

우칭왕 역시 일곱 살 이상의 모든 남자들을 대승으로 교화하여서, 

七歲已上擧國人民皆向大乘(칠세이상거국인민개향대승)

온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모두 대승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爾時世尊入祇桓林(이시세존입기환림) 桓굳셀 환

그때 세존께서는 기타태자의 숲(기원 숲)으로 돌아 오셔서 

告長老阿難及念天帝釋(고장로아난급염천제석)

장로 아난에게 일러주었으며, 또한 천제석을 생각하시자,

應時帝釋與諸眷屬忽然而至(응시제석여제권속홀연이지) 住於佛前(주어불전)

바로 그 때에 제석은 모든 권속들을 데리고 홀연히 부처님 앞에 이르러 머무셨습니다.

 

爾時世尊(이시세존) 向天帝釋及長老阿難(향천제석급장노아난) 廣說此經(광설차경)

그때 세존께서는 천제석과 장로 아난에게  경을 자세히 말씀하시고, 

說已告帝釋言(설이고제석언) 汝當受持讀誦此經(여당수지독송차경)

제석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마땅히  경을 받아 지니고  외워라. 

憍尸迦(교시가) 善男子善女人於恒沙劫修菩提行(선남자선여인 어항사겁수보리행)

교시가, 선남자와 선여인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동안 보리행 닦으며,

行六波羅蜜(행육바라밀) 若復善男子善女人(약부선남자선여인)

 6바라밀을 행하더라도, 만약 다시 선남자와 선여인이

聽受讀誦乃至執持經卷(청수독송내지집지경권) 福多於彼(복다어피)

이 경을 받아 지니거나 읽고 외우며 내지 잘 보호한다면,  사람의 복이  사람의 복보다 많을 것이니,

何況廣爲人說(하황광위인설)?

하물며 널리 여러 사람을 위하여 말하여 주는 것이겠느냐. 

是故憍尸迦(시고교시가) 當讀誦此經(당독송차경) 爲三十三天分別廣說(위삼십삼천분별광설)

그러므로 교시가여, 마땅히  경을 읽고 외우며, 삼십삼천 위하여 자세히 분별하여 설해 줌에 있어서이겠느냐.

復告阿難(부고아난) 汝亦受持讀誦(여역수지독송) 爲四衆廣說(위사중광설)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으니, 그대 역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사부 대중을 위하여 널리 설하라.

 

時天帝釋白佛言(시천제석백불언) 이 때에 천제석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세존) 當何名斯經(당하명사경)? 云何奉持(운하봉지)?

세존이시여,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佛告帝釋(불고제석) 此經成就無量無邊功德(차경성취무량무변공덕)

부처님께서는 제석에게 말씀하셨으니,  경은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교시카여,

[이 경을 잘 받아 지녀 행한다면 헤아릴 수 없고 가이 없는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나,] 

一切聲聞緣覺不能究竟觀察知見(일체성문연각불능구경관찰지견)

모든 성문이나 연각들은 능히 이르지 못할 것이며, 관찰하여 알고   없을 것이느니라. 

[일체 모든 성문과 연각들은 이 경의 최고 경지인 구경(究竟)을 관찰하거나 알 수 없을 것이니,] 

憍尸迦(교시가) 當知此經甚深微妙大功德聚(당지차경 심심미묘 대공덕취)

교시가(교시카)여 마땅히 알아라, 이 경은 매우 깊고 미묘하며, 큰 공덕의 덩어리이니, 

今當爲汝略說其名(금당위녀약설기명)

이제 마땅히 그대를 위해서 그 이름을 간략히 말하거니,

[교시카여, 잘 알아야 한다. 이 경은 매우 심오하고 미묘한 공덕을 가지고 있음을 지금 그대를 위해 간략하게 이 경의 이름을 말하고자 하니] 

諦聽諦聽善思念之(제청제청선사념지) 諦 살필 체, 살필 제,

자세히 잘 듣고 잘 들어서, 잘 생각하여 기억하도록 하라.

[자세히 잘 듣고 생각하도록 하라.]

 

時 天帝釋及長老阿難白佛言(시 천제석급 장노아난 백불언)

그 때에 천제석과 장로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善哉世尊(선재세존) 唯然受教(유연수교)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가르침을 오롯이 잘 받아 지니겠습니다.

 

佛言(불언) 此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은

‘歎如來眞實第一義功德’(차경 탄여래진실제일의공덕) 如是受持(여시수지) 

‘여래의 진실한 제일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깨달아 증득하신 절대 진리인 여래의 진실한 제일의공덕(第一義功德)을 찬탄한 것=如來眞實功德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지녀야 하며]

‘不思議大受’(불사의대수) 如是受持(여시수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큰 받음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또한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승만부인의 열 가지 큰 서원인 불가사의한 십대수(十大受)를 설한 것=十受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지녀야 하며]

‘一切願攝大願’(일체원섭대원) 如是受持(여시수지)

온갖 소원을 거두어들인 대원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또한 대승법에 의지하여 모든 중생을 전부 구제하겠다는 일체 모든 원력(願力)=十大受도 결국은 세 가지 훌륭한 대원(大願)=三大願章 포용되나니 이 점에 유의하여 잘받아 기억해야 하며]

‘說不思議攝受正法’(설불사의섭수정법) 如是受持(여시수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올바른 가르침을 거두어들임을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보살행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증득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일체의 중생들도 제도한다는 대승의 올바른 가르침=攝受正法을 설한 것=攝受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지녀야 하며]

‘說入一乘’(설입일승) 如是受持(여시수지)

승에 들어감을 설함이니, 그렇게 받아 지니며, 

[부처님이 되는 유일한 가르침인 일승에 깨달아 들어감을 설한 것=一乘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지녀야 하며]

‘說無邊聖諦’(설무변성제) 如是受持(여시수지)

다함이 없는 진리=聖諦을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부처님의 설법이 한량없으나 그 중에서 참으로 진실한 가르침은 일승이라는 무변성제를 설한 것=無邊聖諦章이니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지녀야 하며]

‘說如來藏’(설여래장) 如是受持(여시수지) 

여래장을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닐지니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佛性을 지니고 있다는 여래장을 설한 것=如來藏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기억해야 하며]

‘說法身’(법신장)' 如是受持(여시수지)

법신을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여 여래장이 환히 나타난 (여래)법신에 대하여 설한 것=法身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기억해야 하며.]

‘說空義隱覆眞實(설공의은부진실)’ 如是受持(여시수지)

공한 뜻이 진실한 이치를 가림을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소승의 가르침만으로는 완전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공(空)한 뜻이 진실을 가린 것을 설한 것=空義眞實隱覆章이니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기억해야 하며]

‘說一諦(설일제)’ 如是受持(여시수지)

 가지 진실한 법=一諦]을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모든 번뇌가 소멸된 절대 진리=滅諦인 유일한 진리를 설한 것=一諦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기억해야 하며]

‘說常住安隱一依(설상주안은일의)’ 如是受持(여시수지)

항상 머물고 편안한  가지 의지처를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진정한 가르침에 귀의하면 그곳에 편안히 안주할 수 있다는 안온한 곳에 상주(常住)함을 설한 것=一依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기억해야 하며]

‘說顚倒眞實(설전도진실)’ 如是受持(여시수지)

전도된 견해와 올바른 견해를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說自性淸淨心隱覆(설자성청정심은부)’ 如是受持(여시수지)

‘자성의 청정한 마음이 가리워 졌음을 설함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한편 범부의 경우 여래장인 자성청정심이 번뇌에 가려져 있음을 설한 것=自性淸淨章이니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기억해야 하며]

‘說如來眞子(설여래진자)’ 如是受持(여시수지)

여래의  아들임을 설함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며, 

[대승의 참된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부처님의 진실한 제자에 대해 설한 것=眞子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기억해야 하며]

‘說勝鬘夫人師子吼(설승만부인사자후)’ 如是受持(여시수지)

승만 부인의 사자후를 설하였음이, 이와 같이 받아 지닐지니라.

[승만 부인이 대승의 올바른 가르침을 사자후한 것을 설한 것=勝鬘章이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잘 받아 지녀야 하느니라.]

復次憍尸迦(부차교시가) 此經所說斷一切疑(차경소설 단일체의)

 교시가여,  경에 설 것은 온갖 의심을 끊고 

[또한 교시가여, 이 경에서 설한 것은 일체 모든 의심을 끊고]

決定了義入一乘道(결정요의입일승도)

올바른 뜻을 결정하여 일승의 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라.  

[대승의 올바른 가르침을 밝혀서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깨달음의 경지인 1승(一乘)에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니라.]

憍尸迦(교시가) 今以此說勝鬘夫人師子吼(금이차설 승만부인 사자후)

교시가여, 지금  승만 부인이 사자후한 경을 

經付囑於汝(경부촉어여) 乃至法住(내지법주) 受持讀誦廣分別說(수지독송광분별설)

너에게 부촉하나니, 나아가 불법이 머물러 있을 때까지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자세히 분별하여 널리 설하여라. 囑 부탁할 촉 

[교시가여, 지금 승만 부인이 사자후한 이 경을 그대에게 널리 전하고 잘 수호할 것을 부촉하노라. 진리가 머물러 있을 때까지 받아 기억하고 읽고 외우며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서 잘 분별하여 널리 설하도록 하라.]

帝釋白佛言(제석백불언) “善哉世尊(선재세존) 頂受尊教(정수존교)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높으신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時 天帝釋長老阿難(시 천제석장노아난) 及諸大會天人阿修羅(급제대회천인아수라)

이 때에 천제석과 장로 아난과 여러 모임 가운데 있던 하늘 사람, 인간 사람과 아수라

乾闥婆等聞佛所說(건달바등문불소설) 歡喜奉行(환희봉행)

건달바들이 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듣고 환희하며 즐겁게 받들어 행하였다.

[이 때에 제석천과 장로 아난존자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천신과 사람, 아수라, 건달바 등이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것을 듣고 기쁘게 받들어 실행하였습니다.]

제 13장. 自性淸淨 - 깨끗한 제 성품

自性淸淨章第十三 - 자성청정장 제십삼

 

世尊(세존) 生死者依如來藏(생사자의여래장)

세존이시여, 생사라고 하는 것은 여래장에 의지하는 것이니, 

以如來藏故(이여래장고) 說本際不可知(설본제불가지)

여래장인 까닭으로  비롯한 때=本際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연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유위(有爲)의 생사는 태어났다가 죽어 없어지기를 무수히 반복하지만 여래장은 현상을 초월해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무위(無爲)의 불가사의한 법입니다.]

世尊(세존) 有如來藏故說生死(유여래장고설생사) 是名善說(시명선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 있음으로 해서 생사를 설하는 것은 善說=잘 설하는 것이라 이름하겠습니다.

[따라서 생사를 초월한 여래장의 세계에 안주하면 바로 극락정토(極樂淨土)이니, 깨달은 부처와 미혹(迷惑)한 중생의 경계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생사의 현실 속에 살지만 상주불변하는 여래장 속에서 살 수 있으면 깨친 사람이요, 생사 문제에 집착하고 함몰돼서 허덕이면 중생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世尊(세존) 生死生死者(생사생사자) 諸受根沒(제수근몰)

세존이시여, 생사=나고 죽는다고 하는 것은 바깥 것을 받아들이는 감각 기관=根이 없어지고,

次第不受根起(차제불수근기) 是名生死(시명생사)

받아들이는 근(감각 기관)이 차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을 생사라 합니다.

 

世尊(세존) 死生者(생사자) 此二法是如來藏(차이법시여래장)

세존이시여, 죽음과 태어남의 이 두 가지 법이 곧 여래장이며,

世閒言說故(세간언설고) 有死有生(유사유생) 死者謂根壞(사자위근괴)

세간의 언어로 말하기에 죽음이 있고 태어남이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감각 기관=根이 부서지는 것이며,

生者新諸根起(생자신제근기) 非如來藏有生有死(비여래장유생유사)

태어남은 새로운 감각 기관=根이 생기는 것이나, 여래장은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며,

如來藏者離有爲相(여래장자이유위상) 如來藏常住不變(여래장상주불변)

여래장은 有爲相=함이 있는 현실을 여의었으므로, 여래장은 상주하여 변하지 않습니다.

是故如來藏(시고여래장) 是依是持是建立(시의시지시건립)

그러므로 여래장은 의지하는 바이며, 거두어 지니는 바이며, 건립=세워 일으키는 바가 됩니다.

 

世尊(세존) 不離不斷不脫不異不思議佛法(불리불단불탈불이불사의불볍)

세존이시여, 이것은 여의지 않고, 끊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부사의한 불법이므로, 

世尊(세존) 斷脫異外有爲法依持(단탈이외유위법의지)

세존이시여, 끊어지고 벗어나고 달라지는 여러 가지 유위법의 의지가 되고 거두어 지니고 

建立者是如來藏(건립자시여래장) 세워 일으키는 것이  여래장입니다.

 

世尊(세존) 若無如來藏者(약무여래장자) 세존이시여, 만약 여래장이 없다면 

不得厭苦樂求涅槃(불득염고락구열반) 何以故(하이고)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할 수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여래장이 없으면 열반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여래장이 없으면 불법이 없다는 것이며, 이 여래장이 바로 불성(佛性)이며 진여(眞如)입니다]

於此六識及心法智(어차육식급심법지) 此七法剎那不住(차칠법찰나불주)

이러한 여섯 가지 의식=六識과  알음알이 지혜의 의식작용=心法智의 일곱 가지 법은 찰나적인 존재임에 잠깐도 머무르지 않으며,

不種衆苦(불종중고) 不得厭苦(불득염고) 樂求涅槃(낙구열반)

갖가지 괴로움을 심지 못하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世尊(세존) 如來藏者(여래장자) 無前際不起不滅法(무전제불기불멸법)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과거=前際 없어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는 법이므로

種諸苦得厭苦(종제고득염고) 樂求涅槃(낙구열반)

모든 괴로움을 심으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합니다.

 

世尊(세존) 如來藏者(여래장자) 非我非衆生(비아비중생) 非命非人(비명비인)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나'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목숨(생명)'도 아니고, '사람'이 아니므로 

법성게(法性偈)의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일체가 끊어졌다(無名無相絶一切)”는 말과 같은 뜻.

 

如來藏者(여래장자) 墮身見衆生(타신견중생) 顚倒衆生(전도중생)

여래장은 몸이 있다고 보는 견해에 빠진 중생이나, 전도된 중생이나, 

空亂意衆生(공란의중생) 非其境界(비기경계)

공으로 말미암아 혼돈에 빠진 중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래장은 몸이란 소견에 떨어진 중생이나 뒤바뀐 중생이나 공한 데 뜻이 어지러워진 중생이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닙니다” <금강경>의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을 말한 것과 같습니다.]

 

世尊(세존) 如來藏者是法界藏(여래장자시법계장)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법계장이며, 

法身藏出世閒上上藏(법신장출세간상상장) 自性淸淨藏(자성청정장)

법신장이며, 출세간 상상장이며, 자성청정장입니다. 

[여래장은 법신이요, 청정한 성품이요, 또한 일체 법계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중생의 경계도 부처의 경계도 모두 여래장의 세계이며]

 

此性淸淨如來藏(차성청정여래장) 而客塵煩惱(이객진번뇌)

이 성품이 청정한 여래장이 객진 번뇌와

[객진(客塵)은 우연적 부착이며, 번뇌는 마음속의 고유한 것이 아닌, 마음에 부착한 독성이기 때문에 객진번뇌(客塵煩惱)라고 하며, 외부에서 와서 청정한 마음을 더럽힌,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객과 같은 번뇌이며 분별에 의해 생긴것으로]

上煩惱所染(상번뇌소염) 不思議如來境界(불사의여래경계)

부수적 번뇌=上煩惱에 오염되는 것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여래의 경계입니다.

[객진이란 것은 본래 없었던 것으로 우연적이고 외래적인 것으로 생겼기 때문에 찾아온 손님에 비유하고, 상번뇌(上煩惱) 수번뇌(隨煩惱)를 말하는 것으로 근본번뇌에 따라서 일어나는 번뇌입니다.]

 

何以故(하이고) 刹那善心非煩惱所染(찰나선심비번뇌소염)

왜냐하면 찰나의 착한 마음=善心은 번뇌에 물든 것이 아니며, 찰나의 착하지 않은 마음 역시 번뇌에 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刹那不善心亦非煩惱所染(찰나불선심역비번뇌소염)

찰나의 나쁜 마음=不善心도 번뇌에 물든 것이 아니니, 

煩惱不觸心(번뇌불촉심) 心不觸煩惱(심불촉번뇌)

번뇌는 마음에 접촉하지 않고, 마음도 번뇌에 접촉하지 하는 것이나, 

云何不觸法(운하불촉법) 而能得染心(이능득염심)

접촉하지 아니하는 법으로 어떻게 마음을 물들일  있겠습니까.

 

世尊(세존) 然有煩惱(연유번뇌) 有煩惱染心(유번뇌염심)

세존이시여, 그러나 번뇌도 있고 번뇌가 마음을 물들이는 일도 있사오니, 

自性淸淨心而有染者(자성청정심이유염자) 難可了知(난가요지)

본래부터 청정한 마음=自性淸淸心이면서도 물듦이 있음은 참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唯佛世尊(유불세존) 實眼實智爲法根本(실안실지위법근본)

오직 불세존만이 진실한 눈이시며, 진실한 지혜로서 법의 근본이 되시며 

爲通達法(위통달법) 爲正法依(위정법의) 如實知見(여실지견)

법을 통달하시어 바른 법의 의지처 되었으므로 실제와 같이 (올바르게) 아시는 것입니다.

 

勝鬘夫人說是難解之法(승만부인설시난해지법)

승만 부인이 이와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法을 말하여 

[승만부인이 이처럼 보통 중생들이 알기 어려운 법을 부처님께 말씀드리면서] 

問於佛時(문어불시) 佛卽隨喜(불즉수희)

부처님께 여쭈어 물었을 때, 부처님은 곧 기뻐하시면서 말씀하셨다.  

[혹은 의심나는 것을 여쭈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함께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如是如是(여시여시) 自性淸淨心而有染污(자성청정심이유염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자성이 청정한 마음이면서 물듬이 있다는 것은  

難可了知(난가요지) 有二法難可了知(유이법난가요지)

가히 완전히 알기에는 어려우니라.  가지 법이 알기 어려운 것이니, 

[그렇다, 그렇다. 자성청정심인 여래장이 중생의 경우 번뇌에 물든다고 하는 이치는 참으로 알기가 어려운 것은 두 가지 종류의 법이 있기 때문이니]

謂自性淸淨心難可了知(위자성청정심난가요지)

자성이 청정한 마음이라는 것을 완전히 알기 어렵고, 

彼心爲煩惱所染亦難了知(피심위번뇌소염역난요지)

그렇게 청정한 마음이 번뇌에 물든다고 하는 것도 완전히 알기 어렵다.

[즉 자성청정심은 진실로 알기 어렵고, 또한 자성청정심이 중생의 경우 번뇌에 의해 물든다고 하는 이치도 알기 어렵다.]

如此二法(여차이법) 汝及成就大法菩薩摩訶薩(여급성취대법보살마하살)

이러한 두 가지 법은 그대와 위대한 가르침을 성취한 보살마하살만이 능히 듣고 받아들일 수 있거니와,

[이와 같이 여래장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승만부인과 이미 대승법을 성취한 보살마하살만이 여래장의 이치를 바르게 알아들을 수가 있으나] 

乃能聽受(내능청수) 諸餘聲聞(여제성문) 唯信佛語(유신불어)

다른 성문들은 다만 부처님의 말씀을 믿을 뿐이니라.

[나머지 모든 성문들은 다만 오직 부처님의 말씀을 믿어야만 할 뿐이니라.]

 

제 14장. 眞子 - 참 아들

眞子章第十四(진자장 제십사)

 

若我弟子隨信增上者(약아제자수신증상자)

만일 나의 제자로서 가르침을 따라 믿고, 信增上者=믿음이 더욱 자란 이는 

[만약 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따라 바르게 믿어 나날이 그 믿음이 더욱 더 깊어 가는 사람이라면] 

依明信已隨順法智(의명신이수순법지) 而得究竟(이득구경)

분명한 믿음을 의지하여 法智=법의 지혜를 따르고, 그리하여 끝까지 얻게 되느니라. 

[올바른 믿음을 의지하여 모든 번뇌를 떠난 올바른 지혜인 법지(法智)를 정확히 따르게 되어, 결국에는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인 구경(究竟)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隨順法智者(수순법지자) 觀察施設根意解境界(관찰시설근의해경계)

법의 지혜를 따른다는 것은 마련된 감각 기관= 뜻으로 이해함과  경계를 관찰하며, 

[법지(法智)를 정확히 따른다고 하는 것은 감각 기관인 6근(六根)과 감각 기관과 대상이 접촉되므로 생기는 분별인 6식(六識)=意解와 대상 세계인 6경(六境)의 참된 성품 등을 잘 관찰하는 것이며] 

觀察業報(관찰업보) 觀察阿羅漢眼(관찰아라한안)

업을 지어 과보 받는 것을 관찰하며, 아라한의 번뇌=隨眠을 관찰하며, 

[6근․6식․6경에서 벌어진 업(業)에 의해 그 결과로써 과보를 받는 이치를 잘 관찰하는 것이며, 아라한 또한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무명이 남아 있음을 잘 관찰하는 것며] 

觀察心自在樂禪樂(관찰심자재낙선낙)

마음의 자재로운 즐거움과 선정으로 얻는 즐거움을 관찰하며, 

[보살의 마음은 사물의 참모습을 알아 대상에 집착하지 않기에 자유자재 할 수 있는 즐거움과 마음의 흔들림이 전혀 없으므로 느끼는 선정(禪定)의 즐거움을 잘 관찰하는 것이며]

觀察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聖自在通(관찰아라한벽지불 대력보살 성자재통)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의 성스럽고 자재로운 신통을 관찰하여

[아라한과 벽지불, 그리고 대력보살 등이 갖춘 자유자재하게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신통력인 성자재통(聖自在通)을 잘 관찰하는 것으로]

此五種巧便觀成就(차오종교편관성취)

 다섯 가지 공교한 관찰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이상에서 말한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서 필요한 다섯 가지의 교묘한 수단=善巧方便을 잘 관찰하는 경지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니라.] 

 

於我滅後未來世中(어아멸후미래세중) 我弟子隨信增上(아제자수신증상)

내가 입멸(入滅, 멸도)한 뒤, 미래세 중에서 나의 제자가 따라 믿고 믿음이 더욱 자라나 

[그리고 내가 멸도한 후 미래세에 나의 제자가 믿음이 날로 깊어져서] 

依於明信隨順法智(의어명신수순법지) 自性淸淨心(자성청정심)

분명한 믿음을 의지하여 법의 지혜를 따르면, 성품이 깨끗한 마음=自性淸淨心이

[올바른 믿음으로 기꺼이 법지(法智)를 따른다면 비록 자성청정심인 여래장이 번뇌에 물들어 있더라도] 

彼爲煩惱染污而得究竟(피위번뇌염오이득구경) 污 더러울 오,

번뇌에 물들었을지라도 구경 얻게 될것이니라.

[결코 그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의 경지인 구경을 성취하게 될 것이니라.]

 

是究竟者入大乘道因(시구경자입대승도인)

 구경이라는 것은 대승의 도 들어가는 원인이니, 

[이 구경의 경지는 대승의 도(道)에 깨달아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니] 

信如來者(신여래자) 有是大利益(유시대이익) 不謗深義(불방심의) 謗 헐뜯을 방

여래라 믿는 이는 이러한  이익이 있으므로서, 깊은 이치를 비방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여래를 믿는 사람에게는 수행을 통해 반드시 열반을 성취할 수 있는 이와 같은 큰 이익이 있기 때문에 대승의 깊고 심오한 이치를 비방하지 않을 것이니라.]

 

爾時(이시) 勝鬘白佛言(승만백불언)

그때에 승만 부인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更有餘大利益(갱유여대이익) 我當承佛威神復說斯義(아당승불위신부설사의  

다시  밖에도  이익이 있사오니제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제까지 말씀하신 다섯 가지 공덕 이외에도 제가 생각하기에 다시 다른  이익이 있으니,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 받들어  이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佛言(불언) 更說(갱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다시 말하여 보아라.”

勝鬘白佛言(승만백불언) 三種善男子善女人(삼종선남자선여인)

승만 부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 부류의 선남자, 선여인이

於甚深義離自毀傷(어심심의리자훼상) 毀 헐 훼

매우 깊고 깊은 이체에 대하여 스스로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고

[세 가지 종류의 선남자, 선여인은 대승의 심오한 이치를 상하지 않고] 

生大功德(생대공덕) 入大乘道(입대승도) 何等爲三(하등위삼)

큰 공덕을 내어서 대승의 도에 들어갑니다. 어떤 것이 세 부류인가 하면, 

[부처님의 크신 공덕을 나타내어 대승의 도에 깨달아 들어가나니,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란,]

謂若善男子善女人(위약선남자선여인) 自成就甚深法智(자성취심심법지)

이른바 선남자, 선여인은 스스로 깊고 깊은 진리의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요,

[이른바 첫째는 선남자․선여인이 스스로 심오한 대승법의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며]

若善男子善女人成就隨順法智(약선남자선여인 성취수순법지)

선남자와 선여인이 法智=법의 지혜를 隨順=따르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요,

[둘째는 선남자, 선여인이 대승법의 지혜를 잘 믿어 기꺼이 따르는 것이요]

若善男子善女人(약선남자선여인) 於諸深法不自了知(어제심법불자요지)

선남자와 선여인이 모든 깊고 깊은 법을 스스로는 완전히 알지 못하나 

仰惟世尊非我境界(앙유세존비아경계) 仰 우러를 앙, 惟 생각할 유

세존께 미루어서 내가 알 만한 경계가 아니요, 

[셋째는 선남자, 선여인이 심오한 대승법을 모두다 잘 알지는 못해도 ‘내=衆生이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고] 

唯佛所知(유불소지) 是名善男子善女人(시명선남자선여인)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수 있는 바라고 하면, 이들을 선남자, 선여인이라 이름하는 것은 

[오직 부처님께서만 아실 수 있는 경지이다’라고 하여]

仰惟如來(앙유여래) 除此諸善男子善女人已(제차제선남자선여인이)

여래께 미루는 이라 할 것이니, 이 세 종류의 선남자와 선여인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 미루는 것 등이니, 이와 같은 세 가지 종류의 선남자, 선여인은 대승의 심오한 이치를 상하는 사람들의 부류에서 이미 제외되어 있습니다.]

제 9장 空義隱覆眞實 - 공한 여래장과 공하지 않는 여래장

空義隱覆眞實章第九(공의은부진실 잘제9)

 

世尊(세존) 如來藏智是如來空智(여래장지시여래공지)

세존이시여, 여래장의 지혜는 여래의 공한 지혜입니다.

여래의 지혜는 바로 여래의 공한 지혜’→ 번뇌가 완전히 공해진 부처님의 완전한 지혜, 무명주지가 남아 있지 않은 여래장을 말함

世尊(세존) 如來藏者(여래장자) 一切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일체아라한벽지불대력보살)

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모든 아라한이나 벽지불이나 대력 보살들로서는 모든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이 

本所不見本所不得(본소불견본소불득)

본래 보지 못하는 바이며 본래 얻지 못하는 바입니다.

 

世尊(세존) 有二種如來藏空智(유이종여래장공지)

세존이시여, 두 가지 여래장의 공한 지혜가 있사오니,

世尊(세존) 空如來藏(공여래장) 若離若脫若異一切煩惱藏(약리약탈약이일체번뇌장)

세존이시여, 공한 여래장=空如來藏은 온갖 번뇌장에서 혹은 떠나 있으며, 혹은 벗어나 있으며, 혹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며,

空如來藏=眞空, 不空如來藏= 妙有

世尊(세존) 不空如來藏(불공여래장) 過於恒沙(과어항사)

세존이시여, 공하지 않은 여래장=不空如來藏은 항하 강의 모래보다 많은 

不離不脫不異不思議佛法(불리불탈불이불사의불법)

여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아니한 부사의한 불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世尊(세존) 此二空智(차이공지) 諸大聲聞能信如來(제대성문능신여래)

세존이시여, 이러한  가지 공한 지혜로 모든  성문들은 능히 여래를 믿거니와, 

一切阿羅漢辟支佛空智(일체아라한벽지물공지) 於四不顚倒境界轉(어사불전도경계전)

모든 아라한, 벽지불의 공한 지혜는 네 가지 뒤바뀌지 아니한 경계에서 작용하는 것이므로  

是故一切阿羅漢辟支佛(시고일체아라한벽지불) 本所不見本所不得(본소불견본소불득)

그러므로 모든 아라한, 벽지불은 본래 보지 못하는 바이고 본래 얻지 못하는 바입니다.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공한 지혜가 네 가지 뒤바뀌지 아니한 경계에서 움직이는 것” → 네 가지 전도, 곧 열반의 네 가지 덕(德)인 상(常), 낙(樂), 아(我), 정(淨)에 대하여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부정(不淨)의 중생의 현실을 부정하고 열반을 구하려는 편협한 소견을 말함이며, 즉 진속불이(眞俗不二)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 ]

 

一切苦滅唯佛得證(일체고멸유불득증) 壞一切煩惱藏(괴일체번뇌장) 修一切滅苦道(수일체멸고도)

모든 괴로움의 소멸은 오직 부처님만이 깨달아 얻는 것이며, 모든 번뇌장을 깨뜨리고 온갖 고를 멸하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제 10 장. 一諦 - 한가지 진실한 법

一諦章第十(일제 장제10)

 

世尊(세존) 此四聖諦(차사성제) 三是無常一是常(삼시무상일시상)

세존이시여, 이러한 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서의 세가지(고제, 집제, 도제)는 무상하고 그 하나(멸제)는 항상(영원)한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三諦入有爲相(삼제입유위상)

왜냐하면, 三諦=세 가지 진리(고제, 집제, 도제) 有爲=함이 있는 相=현실(모양)에 포함되는 것이니

入有爲相者是無常(입유위상자시무상)

유위의 모양(생멸인연)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無常=항상함이 없는 것이요,

無常者是虛妄法(무상자시허망법) 무상한 것은 곧 허망한 법이며,

虛妄法者(허망법자) 非諦非常非依(비제비상비의)

허망한 법은 진실한 것이 아닌=非諦이며, 항상한 것이 아닌=非常이며, 의지할 데가 아닌=非依이니,

是故苦諦集諦道諦(시고고제집제도제) 非第一義諦非常非依(비제일의제비상비의)

그러므로 고제(苦諦), 집제(集諦), 도제(道諦) 第一義諦=제일의의 진리 아니며, 항상한 것이 아니며, 의지할 만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제 11장. 一依 - 하나의 의지할 것

一依章第十一(일의 장제11)

 

一苦滅諦(일고멸제) 離有爲相(이유위상) 離有爲相者是常(이유위상자시상)

一苦滅諦=고가 멸하는  가지 진실한  유위=함이 있는 모양을 여읜것이니, 유위의 모양을 여읜 것은 항상한 것이며, 

[유위의 현상이 아닌 일체의 괴로움이 없어진 멸성제가 열반이요, 해탈이며]

常者非虛妄法(상자비처망법) 항상한 것은 허망한 법이 아니며, (영원한 것이며)

非虛妄法者(비처망법자) 是諦是常是依(시제시상시의)

허망한 것이 아닌 법은  진실한 것=諦이며, 항상한 것=常이며, 의지할 곳=依가 되는 것이니, 

是故滅諦(시고멸제) 是第一義(시제일의)

그러므로 고가 멸하는 滅諦=진실한  제일의의 진리입니다

사성세(四聖諦)가 곧 멸성제(滅聖諦)를 증득하기 위해 설해진 교리이기 때문에 가장 으뜸가는 궁극적인 최후의 진리(第一義)를 멸성제(滅聖諦)라고 설명하는 것이며, 그 궁극적인 최후의 진리인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대한 설명하고 있음. 

 

제 12장. 顚倒眞實 - 뒤바뀐 법과 진실한 법

顚倒眞實章第十二(전도진실장제십이)

 

不思議是滅諦(불사의시멸제) 過一切衆生心識所緣(과일체중생심식소연)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滅諦이니, 온갖 중생들의 心識所緣=마음으로 반연할 바를 뛰어넘었으며, (생각하여 알아지는 대상이 아닌, 이른바 능소(能所)의 관계로 주객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며)

亦非一切(비일체) 阿羅漢辟支佛智慧境界(아라한벽지불지혜경계)

또한 모든 아라한이나 벽지불들의 지혜로도 헤아릴  있는 경계가 아닙니다. (모든 아라한, 벽지불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譬如生盲不見衆色(비여생맹불견중색) 七日嬰兒不見日輪(칠일영아불견일륜) 嬰 갓난아이 영,  

비유하면, 마치  때부터의 소경=生盲 갖가지의 빛깔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태어난 지 7일되는 아기 해를 보지 못하는 것같으니,

苦滅諦者(고멸제자) 亦復如是(역부여시) 고가 멸한 진실한 법=苦滅諦 역시 그와 같아서 

非一切凡夫心識所緣(비일체범부심식소연) 亦非二乘智慧境界(역비이승지혜경계)

온갖 범부들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이승의 지혜로 헤아릴 경계도 아닙니다.(이승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경계도 아닙니다.)

 

凡夫識者二見顚倒(범부식자이견전도)

범부의 마음(심식)은 뒤바뀐=顚倒된  가지 소견=二見(극단적인 견해)이요, 

一切阿羅漢辟支佛智者(일체아라한벽지불지자) 則是淸淨(즉시청정)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혜는 곧 청정한 것이니,

邊見者(변견자) 凡夫於五受陰(범부어오수음)

치우친 견해=邊見이라는 것은, 범부가 몸과 마음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五受陰에 대하여 

我見妄想計著生二見(아견망상계착생이견) 著 드러날 저, 저축할 저, 붙일 착,

我見= 나라는 妄想=허망한 소견으로 고집하여  가지 소견을 내는 것을 말함이며, 

是名邊見(시명변견) 所謂常見斷見(소위상견단견)

邊見=치우친 견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른바 상견 단견 그것입니다. 

변견(邊見)= 2변(二邊)= 극단적인 견해.

단견(斷見)= 단변(斷邊). 세간(世間)과 자아(自我)는 사후(死後)에 완전히 소멸된다는 견해로, 즉 인과의 상속, 업(業)의 상속 또는 심상속(心相續)을 부정하는 견해이며, 윤회가 존재하며 무위법인 열반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견해이다.
상견(常見)=상변(常邊). 세간(世間)과 자아(自我)는 사후(死後)에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견해, 유위법을 무위법으로 여기는 잘못된 견해이며, 나라는 존재(存在)가 항시(恒時) 영원(永遠)히 존재(存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견해(見解).

 

見諸行無常(견제행무상) 是斷見非正見(시단견비정견)

모든 변천하는 법=諸行 항상함이 없는=無常하다고 보는 것은 바로 단견으로 바른 소견=正見이 아니며, 

見涅槃常(견열반상) 是常見非正見(시상견비정견)

涅槃常=열반이 항상하다고 보는 것은 상견이으로 올바른 견해가 아니니, 

妄想見故(망상견고) 作如是見(작여시견)

허망한 생각으로 보는 탓으로 이와 같은  견해를 짓는 것입니다.

 

於身諸根分別思惟(어신제근분별사유) 現法見壞(현법견괴)

이 몸의 諸根=여러 감각 기관에 대하여 분별하여 사유=생각하되, 現法=현재의 존재가 부서짐만을 보아

於有相續不見(어유상속불견) 起於斷見(기어단견) 妄想見故(망상견고)

윤회 생존의 계속함=有相續을 보지 못하므로 단견을 일으키나니, 그것은 망상으로 보는 탓이며

於心相續愚闇(어심상속우암) 不解不知(불해불지)

마음의 상속에 대하여서는 캄캄하여 이해하거나 알지 못하고,  

刹那間意識境界起於常見(찰나간의식영계기어상견) 妄想見故(망상견고)

찰나(잠깐) 사이의 의식 작용(경계)를 알지 못하므로 상견을 일으키는 것이니, 허망한 생각으로 보는 탓입니다.

此妄想見於彼義(차망상견어피의)

이렇게 허망한 생각으로 보는 것이   뜻에는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여 

若過若不及作異想分別(약과약불급작이상분별) 若斷若常(약단약상)
異想=잘못된 생각으로 분별하거나, 
斷=끊어졌다고 하거나, 常=영원하다고 생각하여서

顚倒衆生(전도중생) 於五受陰(어오수음) 無常常想(무상상상)

전도된 중생들은 오수음에 대하여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苦有樂想(고유낙상) 無我我想(무아아상) 不淨淨想(부정정상)

괴로운 것을 즐겁다고 생각하며, 나라고  것이 없는=無我를 나라고 생각하며, 부정 것을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一切阿羅漢辟支佛淨智者(일체아라한벽지불정지자) 모든 아라한, 벽지불들의 청정한 지혜를 가진 이도 

於一切知境界及如來法身(어일체지경게급여래법신) 本所不見(본소불견)

일체지(一切知)의 경계와 여래의 법신에 대하여서는 본래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或有衆生(혹유중생) 信佛語故(신불어고) 起常想樂想我想淨想(기상상낙상아상정상)

혹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까닭으로, 이른바 열반 4덕(四德) 常=항상하다는 생각, 樂=즐겁다는 생각, 我= 나라는 생각, 淨= 깨끗하다는 생각을 일으키 것은

[만약 어떤 중생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여래장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기에 일체 부처님의 법신은 상주 불변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괴로움을 떠난 열반의 경지는 지극히 즐겁다고 생각하며, 깨달아 얻어야 할 참된 자아를 확립하여 진정한 내=我가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번뇌를 떠난 열반의 경지는 극히 깨끗하다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非顚倒見(비전도견) 是名正見(시명정견) 何以故(하이고)

뒤바뀐 소견이 아니니, 이것을 올바른 소견(견해)이라 이름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코 전도된 견해가 아닙니다.]

如來法身是常波羅蜜(여래법신시상바라밀) 樂波羅蜜我波羅蜜(낙바라밀아바라밀)

여래의 법신은  常波羅蜜=항상한 바라밀이며,樂波羅蜜= 즐거운 바라밀이며, 我波羅蜜='나'라는 바라밀이며,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수행을 완성하여 증득하신 여래 법신은 상주 불변하는 상(常)바라밀이며, 지극히 즐거운 낙(樂)바라밀이며, 진정한 자아가 있는 아(我)바라밀이며,]

淨波羅蜜(정바라밀) 淨波羅蜜=깨끗한 바라밀인 까닭입니다. 

[완전하게 청정한 정(淨)바라밀이기 때문입니다.]

 

於佛法身(어불법신) 作是見者是名正見(작시견자시명정견)

부처님의 법신에 대하여 이러한 견해를 갖는 것을 올바른 견해라 이름하며,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법신을 이와 같이 보는 것을 올바른 견해라 합니다.]

正見者是佛眞子(정견자시불진자) 從佛口生(종불구생)

올바른 소견을 가진 이는 곧 부처님의 참된 아들이라 하나니, 부처님의 입으로 태어 났으며, 

[이와 같이 여래 법신을 올바른 견해로 분별한다면 이 사람은 장래에 반드시 성불할 참다운 불자(佛子)라 합니다.]

從正法生(종정법생) 從法化生(종법화생) 得法餘財(득법여재)

올바른 가르침을 좇아 태어 났으며, 올바른 가르침의 교화=法火生을 좇아 태어 났으며, 불법의 가르침의 재산을 상속하는 까닭입니다.

[즉 참다운 불자는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올바른 법을 따라 배워 번뇌에서 벗어난 새 사람이 됩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법을 따라 원력으로 화생(化生)하여 진리의 보배를 얻어 마침내 성불할 것입니다.]

 

世尊(세존) 淨智者(정지자)

세존이시여, 청정한 지혜라는 것은 

一切阿羅漢辟支佛(일체아라한벽지불) 智波羅蜜(지바라밀)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혜 바라밀이며,

[세존이시여, 청정한 지혜는 일체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이 닦아야 할 지혜바라밀이며]

此淨智者(차정지자) 雖曰淨智(수왈정지) 於彼滅諦(어피멸제) 尚非境界(상비경계)

 청정한 지혜는 비록 청정한 지혜라고는 하지만,  괴로움이 멸한 진실한 법=滅諦에는 경계가 아닌데,(멸제라는 진리에 작용하지 못하거늘) 

[아라한과 벽지불이 증득한 이 청정한 지혜도 부처님께서 증득한 멸제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나니] 

況四依智(황사의지) 何以故(하이고) 三乘初業不愚於法(삼승초업불우어법)

하물며 네 가지 의지의 지혜=四依智에 작용하겠습니까. 왜냐하면, 삼승을 처음 배우는 이는 법(뜻)에 어리석지 아니하며, 

[그런데 누가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혜를 부처님께서 증득한 청정한 지혜라고 말하겠습니까? 

於彼義當覺當得(어피의당각당득) 爲彼故世尊説四依(위피고세존설사의)

그 뜻을 마땅히 깨닫고 마땅히 얻어야 하는 것이므로, 그를 위하여 세존께서는 四依=네 가지 의지할 바를 설하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누가 아라한과 벽지불이 증득한 지혜를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해 의지해야 할 네 가지 올바른 지혜=四依智라고 하겠습니까?한편 비록 성문․연각․보살인 3승의 초업(初業)이라도 법에 어리석지 않아 ‘여래장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청정한 부처님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이러한 이치를 마땅히 깨달아 알 수 있으므로 세존께서는 3승들을 위해 사의지(四依智)를 설하셨습니다.]

世尊(세존) 此四依者(차사의자) 是世間法(시세간법)

세존이시여,   가지 의지한다는 것은 세간법이며, 

[세존이시여, 이 사의지는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가 아닌 수행의 방편이므로 세간의 법이며]

世尊(세존) 一依者一切依止(일의자일체의지)

세존이시여, 一依=하나의 의지할 바라는 것은 모든 존재의 의지할 바이므로,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절대 진리인 멸제에 귀의하는 것은 일체의 진리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出世間上上第一義依(출세간상상제일의의) 所謂滅諦(소위멸제)

출세간의 상중 상의 제일의의 의지할 바이니, 이른바  滅諦=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입니다.

[이 멸제야말로 출세간법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므로 우리가 귀의하여 수행을 통해 성취해야 할, 제일가는 의지처는 바로 멸제입니다.]

제 7 장 여래장(如來藏)

如來藏 章第七(여래장  장제7)

 

聖諦者(성제자) 說甚深義(설심심의) 微細難知(미세난지) 非思量境界(비사량경계)

聖諦=성스러운 진리란 매우 깊은 뜻을 설하는 것이며, 현묘하고 미세하여 알기 어려운 것이며,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경계가 아닙니다.
[성스러운 진리=聖諦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 것이므로 매우 심오한 이치를 담고 있으며, 또한 성제는 그 의미가 매우 미묘하고 심원하여 좀처럼 알기가 쉽지 않으므로 중생의 생각=思慮分別로는 도저히 그 깊은 뜻을 알 수 없습니다=心行處滅]

是智者所知(시지자소지) 一切世閒所不能信(일체세간소불능신)

이는 지혜로운 이의 알 바이며, 모든 세간 사람들이 능히 믿을 바가 아닌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지혜를 얻은 이=智者라야 알 수 있는 바이며, 일체 세간의 중생들은 감히 그것이 깊고 오묘한 진리라는 사실을 믿지도 못할 것이니]

何以故(하이고) 此說甚深如來之藏(차설심심여래지장)

왜냐하면, 이는 매우 깊은 여래의 씨앗=如來藏을 설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제는 매우 심오한 여래장(如來藏)을 설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如來藏者(여래장자) 是如來境界(시여래경계) 非一切聲聞緣覺所知(비일체성문연각소지)

여래장이라는 것은, 곧 여래의 경계이며 모든 성문이나 연각의 알 바는 아닙니다.

[여래장이란 부처님께서 깨달은 여래의 경계(境界)이므로 일체 모든 성문과 연각의 지혜로는 알 수 없으니]

如來藏處(여래장처) 說聖諦義(설성제의) 如來藏處甚深故(여래장처심심고)

여래장의 차원에서 성스러운 진리의 뜻을 설하는 것이니, 여래장의 차원이 매우 깊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래장의 자리에서 성스러운 진리인 성제를 설하시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안주하시는 여래장의 경지는 매우 심오하기 때문에]

說聖諦亦甚深(설성제역심심) 微細難知(미세난지) 非思量境界(비사량경계)

성스러운 진리를 설하는 것 역시 매우 깊고 미세하여 알기 어려운 것이며,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경계가 아닙니다.

是智者所知(시지자소지) 一切世閒所不能信(일체세간소불능신)

이는 지혜로운 사람의 알 바이며, 모든 세간 사람들은 능히 믿을 바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참다운 지혜를 갖춘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 일체 세간의 중생들은 감히 그 깊고 오묘한 여래장의 경지를 믿지도 못합니다.]

 

제 8장 法身 - 법신

法身 章第八(법신 장제팔)

 

若於無量煩惱藏所纏(약어무량번뇌장소전) 如來藏不疑惑者(여래장불의혹자) 纏 얽힐 전,  

만약 한량없는 煩惱藏=번뇌의 더미에 얽매여 있는 여래장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면,

於出無量煩惱藏(어출무량번뇌장) 法身亦無疑惑(법신역무의혹)

한량없는 번뇌의 더미에서 벗어난 법신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於說如來藏(어설여래장) 如來法身(여래법신) 不思議佛境界及方便說(불사의불경계급방편설)

여래장과 여래의 법신을 말한 부사의한 부처님의 경계와 방편으로 설한 것에 대하여 

心得決定者(심득결정자) 此則信解說二聖諦(차즉신해설이성제)

마음으로 확신할 수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곧 두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함을 信解=믿고 이해할 것입니다.

 

如是難知難解者(여시난지난해자) 謂說二聖諦義(위설이성제의)

이렇게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른바 두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뜻을 설한 까닭이니,

何等爲說二聖諦義(하등위설이성제의)? 어떤 것이  가지 성제의 뜻을 말한 것인가?

謂說作聖諦義(위설작성제의) 說無作聖諦義(설무작성제의)

이른바 有作=지음이 있는 聖諦=성스러운 진리의 뜻을 설하는 것과 無作=지음이 없는 聖諦=성스러운 진리의 뜻을 설하는 것입니다.

[유작(有作)은 무명번뇌가 쌓인 채로 생멸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하기 때문에 불완전하지만 무작(無作)은 그 반대로 생멸이 사라진 경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완전합니다.]

 

사성제를 작성제(作聖諦)와 무작성제(無作聖諦)의 두 가지로 나누어 (1) 성문․연각의 2승이 갖는 4성제관(四聖諦觀) - 유(有)〕 작(作), 유량(有量)의 4제과 (2) 부처님․여래의 4성제관 - 무작(無作), 무량(無量)의 4제로 설하고 있다. 

 

說作聖諦義者(설작성제의자) 是說有量四聖諦(시설유량사성제) 何以故(하이고)?

作爲(유량(有量), 분량(分量))=지음이 있는 성스러운 진리의 뜻을 설하는 것은 곧 유한한 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非因他能知一切苦斷(비인타능지일체고단) 一切集證(일체집증) 一切滅修(일체멸수)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능히 모든 苦=괴로움을 알며, 모든 괴로움의 集=원인을 끊으며, 모든 괴로움의 滅=소멸을 증득하려고, 

[성문․연각의 2승은 남으로부터 가르쳐질지라도 '일체의 고(苦)를 완전히 다 알고 일체의 고의 원인을 다 끊고 일체의 고의 멸을 작증(作證)해 마치고 일체의 고멸(苦滅)에 도달하는 길을 다 닦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一切道(일체도) 是故世尊(시고세존)

온갖 道=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그 이유는 2승의 얕은 지혜로는 4성제의 도리를 순차적으로 이해했을 뿐이며 4성제를 관통하는 정신을 완전히 다 알고, 다 끊고, 다 증득하고, 다 닦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2승은 아직도 참답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므로 깨달음에 향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진리를 보았다고 하는 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有有爲生死(유유위생사) 無爲生死(무위생사) 涅槃亦如是(열반역여시) 有餘及無餘(유여급무여)

有爲=함이 있는 생사와 無爲=함이 없는 생사가 있으며, 열반 역시 이와 같아서 남음이 있는 열반=有餘涅槃과 남음이 없는 열반=無餘涅槃이 있습니다.

[따라서 생사를 초월했다고 하지만 유위의 생사, 분단생사를 넘은 것뿐이므로 그것에서 얻어진 열반이라도 유여열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說無作聖諦義者(설무작성제의자) 說無量四聖諦義(설무량사성제의)

無作聖諦=지음이 없는 성스러운 진리의 뜻을 설한다는 것은 무한한 四聖諦=네 가지 진리의 뜻을 설하는 것이니,

[무작성제는 부처님의 경지를 그대로 드러내어 상대적인 의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4성제의 의미를 설하는 것이니]

何以故(하이고)? 能以自力知一切受苦斷(능이자력지일체수고단)

왜냐하면 자기의 힘으로써 능히 모든 苦=괴로움을 알수 있으며,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참다운 부처님의 성품에서 나온 힘으로 자기가 받고 있는 일체 고(苦)를 알며,] 

一切受集證(일체수집증) 一切受滅修(일체수멸수) 一切受滅道(일체수멸도)

모든 괴로움의 集=원인을 끊을 수 있으며, 모든 괴로움의 滅=소멸을 증득하려고 모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道=길을 닦기 때문입니다.

[받고 있는 일체 고(苦)의 원인인 집(集)을 끊으며, 받고 있는 일체의 고를 멸(滅)한 상태를 증득하기 위하여 받고 있는 일체의 고를 끊기 위한 수행=道를 닦기 때문에 무작성제라 합니다.]

 

如是八聖諦(여시팔성제) 如來說四聖諦(여래설사성제)

이와 같이 여덟 가지 성제로 여래께서는 4성제를 말씀하셨으니, 

[이와 같이 작성제와 무작성제의 8성제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4성제와 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如是四無作聖諦義(여시사무작성제의) 唯如來應等正覺事究竟(유여래응등정각사구경)

이와 같은 네 가지의 無作聖諦=지음이 없는 성스러운 진리의 뜻은 오직 여래, 응공, 등정각만이 궁극적으로 깨달으심이며

[이러한 무작성제의 뜻은 오직 여래․응공․정변지이신 부처님만이 완전히 깨달아 우리를 위해 그 진리를 설하실 수 있으며]

非阿羅漢辟支佛事究竟(비아라한벽지불사구경)

아라한, 벽지불의 궁극적인 것이 아니니, 

[성문인 아라한과 연각인 벽지불은 실천 수행을 완전히 끝낸 것이 아닙니다.]

何以故(하이고) 非下中上法得涅槃(비하중상법득열반)

왜냐하면 하, 중, 상의 법으로써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방편으로써 근기에 따라 설하신 상․중․하의 방법으로는 최고의 경지인 열반을 증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何以故(하이고) 如來應等正覺(여래응등정각) 於無作四聖諦義事究竟(어무작사성제의사구경)

왜냐하면, 그것은 여래, 응공, 등정각께서는 이 無作四聖諦義=네 가지 지음이 없는 성제의 뜻에 대하여 구경하시어

[또한 여래․응공․정변지이신 부처님의 경우에 있어서만 무작성제를 깨달아 완전한 법신=事를 성취하십니다.] 

以一切如來應等正覺(이일체여래응등정각) 知一切未來苦(지일체미래고)

모든 여래, 응공, 등정각으로서 일체 미래의 괴로움을 아시며,

[일체 모든 여래․응공․정변지이신 부처님은 미래에 발생될 일체의 고(苦)를 아시며,] 

斷一切煩惱上煩惱所攝受一切集(단일체번뇌상번뇌소섭수일체집)

모든 번뇌와 上煩惱=부수적 번뇌가 攝受=거두어들이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고, 

[일체의 번뇌와 상번뇌(上煩惱)를 포함한=攝受한 고의 원인인 집(集)을 끊고,] 

滅一切意生身(멸일체의생신) 除一切苦滅作證(제일체고멸작증)

모든 의생신을 멸하며, 모든 괴로움을 멸하는 증득을 얻은 까닭입니다. 

[일체보살이 원력에 따라 몸을 자유자재로 바꿔 중생을 제도하는 의생신을 멸하여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 열반을 증득하기 때문입니다.]

 

世尊(세존) 非壞法故(비괴법고) 名爲苦滅(명위고멸)

세존이시여, 壞法=존재의 소멸을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니,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모든 변화를 초월하여 파괴되지 않는 법을 증득하셨기 때문에 일체의 고통을 소멸한 열반을 증득했다고 하신 것이니] 

所言苦滅者(소언고멸자) 名無始無作(명무시무작) 無起無盡(무기무진)

이른바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하는 것은, 비롯함(시작)이 없고, 지음이 없으며, 일어남이 없고, 다함이 없다는 것이니,

[즉 일체의 고(苦)를 멸진하여 열반을 증득한다고 하는 것은 다시는 번뇌가 생기는 시작도 없고, 의식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작위도 없으며, 또한 번뇌가 사라졌으므로 고통이 생겨나지도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완전한 지혜에서 나오는 위력은 다함이 없으며]

離盡常住(이진상주) 自性淸淨(자성청정) 離一切煩惱藏(일일체번뇌장)

다함을 여의고 항상 머물러서, 自性=제 성품이 청정하여 온갖 번뇌장을 여읜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궁극의 경지인 열반에만 안주하지 않으시고, 중생 교화를 위해 사바세계에 항상 머물고 계시는 것이며, 본래 누구나 갖추고 있는 자성(自性)은 청정하여 일체 모든 번뇌로부터 완전히 떠나 있는 것입니다.]

 

世尊(세존) 過於恒沙不離不脫不異(과어항사불리불탈불리)

세존이시여, 항하 강의 모래보다 많으며, 不離=떠나지도 않고, 不脫=벗어나지도 않으며, 不異=다르지 않으며,

[세존이시여, 비록 중생의 마음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보다 더 많은 무수한 번뇌를 떠나지 못하고 그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번뇌로 가득찬 마음과 청정한 자성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不思議佛法成就(불사의불법성취) 說如來法身(설여래법신)

생각할 수도 없는 불법을 성취하심을 여래의 법신이라 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생의 인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불법(佛法)이 중생의 마음에 모두 갖추어져=成就되어 있는 것을 여래의 법신=如來藏이라 말하는 것이며]

 

世尊(세존) 如是如來法身不離煩惱藏(여시여래법신불리번뇌장) 名如來藏(명여래장)

세존이시여, 이러한 여래의 법신은 번뇌장을 여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래장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여래 법신이 중생의 번뇌=煩惱障을 떠나지 않은 것을 여래장이라고 합니다.]

제 6장 無邊聖諦 - 진리는 끝이 없다

無邊聖諦 章第六(무변성제 장제6)

붓다(佛陀)의 중요하고 근본적인 가르침인 제일의(第一義)의 성제(聖諦 - 성스러운 진리)를 밝히는 장(章).

 

世尊(세존) 聲聞緣覺初觀聖諦(성문연각초관성제) 以一智斷諸住地(이일지단제주지)

세존이시여, 성문과 연각이 처음으로 聖諦=성스러운 진리를 관찰할 때에 一智=하나의 지혜로써 모든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를 끊으며,

[세존이시여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4성제(四聖諦)를 듣고 깨달은 성문(聲聞)과 12인연법을 깨달은 연각(緣覺)은 처음으로 고(苦)․집(集)․멸(滅)․도(道)의 4성제를 관찰함으로써 거기에서 생긴 지혜로 모든 중생의 근원적인 번뇌인 주지번뇌(住地煩惱)를 어느 정도 끊을 수 있으며]

以一智四斷(이일지사단) 知功德作證(지공덕작증) 亦善知此四法義(역선지차사법의)

一智=하나의 지혜로써 四斷=네 가지를 끊음으로써 공덕을 증득함을 알고, 또한 이 四法=네 가지 진실한 법의 뜻을 잘 압니다.

[한편 이렇게 생긴 지혜로 중생이 끊어야 할 네 가지 번뇌=四住地煩惱를 없애는 지혜인 4단지(四斷指)와 수행을 통해 얻은 공덕의 결과로써 성인의 지위에 오른 증표인 공덕작증(功德作證)을 잘 알게 되어, 고․집․멸․도 4성제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있게 잘 이해하게 됩니다.]

世尊(세존) 無有出世閒上上智(무유출세간상상지) 四智漸至及四緣漸至(사지점지급사연점지)

세존이시여, 出世閒=세간을 벗어나는 上上智=최고의 지혜는 없지만, (수행을 계속함으로써) 네 가지 반연=四緣(4성제)으로써,  가지 지혜에 점점 나아가는 것이니, 

[세존이시여, 아직 성문과 연각에서는 세간의 번뇌에 물들지 않는 지혜인 출세간상상지(出世間上上智)가 없지만 그들이 수행을 계속함으로써 점점 도지(道智)․도종지(道種智)․일체지(一切智)․일체종지(一切種智)인 4지(四智)를 갖추게 되며, 한 4성제〔四綠〕를 점점 깊이 이해하게 되며, ]

無漸至法是出世閒上上智(무점지법시출세간상상지)

점점 나아감이 없는 법이  출세간의 상상지가 됩니다.

[이와 같이 점점 4지와 4성제를 닦아 나아간다면 반드시 부처님의 최고 지혜인 출세간상상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世尊(세존) 金剛喩者是第一義智(금강유자시제일의지)

세존이시여, 金剛喩=금강석과 같다고 하는 것은 곧 제일의의 지혜이나,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지혜를 금강(다이아몬드)에 비유함은 그것이 최고 절대 지혜인 제일의지(策一義智)라는 의미이나]

世尊(세존) 非聲聞緣覺不斷無明住地(비성문연각부단무명주지)

세존이시여,  성문이나 연각으로서 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세존이시여, 성문과 연각이 아직 근본번뇌인 무명주지(無明住地)를 끊지 못한 상태에서] 

初聖諦智是第一義智(초성제지시제일의지) 성제 처음  지혜는 제일의의 지혜가 아니니, 

[처음으로 4성제를 관찰함으로써 얻게 된 지혜로는 결코 절대의 진리를 관찰하는 지혜인 제일의지(策一義智)가 될 수 없으나]

世尊(세존) 以無二聖諦智斷諸住地(이무이성제지단제주지)

세존이시여, 둘이 없는 성제를 아는 지혜로써 모든 주지(잠재적 번뇌)를 끊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성문과 연각은 원래 제일의지와 다르지 않은 무이(無二)의 성제지(聖諦智)로써 모든 번뇌(住他煩惱)를 끊어가게 됩니다.]

 

世尊(세존) 如來應等正覺(여래응등정각) 非一切聲聞緣覺境界(비일체성문연각경계)

세존이시여, 여래, 응공, 등정각은 모든 성문이나 연각의 경지(경계)가 아니고, 

不思議空智(불사의공지) 斷一切煩惱藏(단일체번뇌장)

不思議空智=부사의한 공의 지혜이니, 煩惱藏=모든 번뇌의 더미를 끊어야 합니다.

[즉 부처님은 모든 차별상을 뛰어넘어 절대 하나인 진리의 세계를 관하는 지혜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공지(空智)로써 일체 모든 번뇌의 덩어리=煩惱藏을 끊습니다.]

 

世尊(세존) 若壞一切煩惱藏究竟智(약괴일체번뇌장구경지)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번뇌의 더미가 무너진다면 究竟智=구경의 지혜이니,

[세존이시여, 여래․응공․정변지이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지혜는 모든 성문과 연각이 얻은 지혜의 경지와 같지 않으니]

是名第一義智(시명제일의지) 곧 제일의의 지혜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初聖諦智非究竟智(초성제지비구경지) 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智(향아뇩다라삼막삼보리지)

처음으로 관찰한 성스러운 진리의 지혜는 궁극적인 지혜가 아니며, 다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문과 연각이 처음으로 4성제를 관찰함으로써 생긴 지혜는 완전=究竟한 지혜가 아니고, 최고의 완전한 지혜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으로 향해 나아가는 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世尊(세존) 聖義者(성의자) 非一切聲聞緣覺(비일체성문연각)

세존이시여, 성스러움이라는 것은 모든 성문이나 연각에 대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 성(聖)의 의미가 일체 모든 성문과 연각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니]

聲聞緣覺成就有量功德(성문연각성취유량공덕) 성문과 연각은 유한한 공덕을 성취하였을 뿐이며, 

[왜냐하면 성문과 연각은 아직 수행 중에 있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은 무한한 공덕을 성취하지 못한] 

聲聞緣覺成就少分功德(성문연각성취소분공덕) 故名之爲聖(고명지위성)

성문과 연각은 부분적인 공덕(불완전한 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이름하여 ‘성스럽다’고 하는 것이나,

[겨우 조금=小分 밖에 공덕을 닦았을 뿐이니, 감히 성(聖)자를 붙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범부와 구별하기 위해서 성인(四聖)이라 부르기도 하며,]

聖諦者(성제자) 非聲聞緣覺諦(비성문연각제) 亦非聲聞緣覺功德(역비성문연각공덕)

聖諦=성스러운 진리라는 것은, 성문이나 연각의 진리가 아니며, 또한 성문과 연각의 공덕도 아닙니다.

[그러나 원래 4성제는 부처님께서 깨달은 경지일 뿐 성문과 연각이 깨달은 경지의 법은 아니며, 또한 성문과 연각이 닦은 공덕으로는 미칠 수 없습니다.]

世尊(세존) 此諦如來應等正覺初始覺知(차제여래응등정각초시각지)

세존이시여, 이러한 諦=진실한 법은 여래, 응공, 등정각이 처음으로 비로소 깨달아 아는 것이지만,

[세존이시여, 이 4성제의 진리는 여래․응공․정변지이신 부처님께서 최초에 깨달아 증득하셨으며]

然後爲無明㲉藏世閒開現演說(연후위무명각장세간개현연설),是故名聖諦。殼 '껍질 각'

그 후에 무명의 껍질에 싸여 있는 세간을 위하여 열어 보이시고 연설하셨으므로 성제라 합니다.

[그런 연후에 단단한 알 껍질과 같은 무명에 가려진 세간의 중생들을 위하여 부처님께서 아낌없이 전부 보여 주고 설하셨기 때문에 성스러운 진리=聖諦라고 하는 것입니다.]

◎ 如來有二種不受後有智 - 여래의 윤회하지 않는 두 가지 지혜

 

世尊(세존) 不受後有智有二種(불수후유지유이종)

세존이시여, 不受後有=‘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뒤의 몸을 받지 아니하는)’ 지혜에 두 가지가 있사오니,

[세존이시여, 후세에 생사의 고통을 받는 중생과 같은 몸을 받지 않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지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사오니]

謂如來以無上調御降伏四魔(위여래이무상조어항복사마)

이른바 여래께서는 無上調御= 위없는 방법으로 四魔=네 가지 악마를 항복 받고, 

[부처님께서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번뇌를 잘 다스려[調御]서 번뇌마(煩惱魔)․음마(陰魔)․사마(死魔)․천마(天魔)인 네 가지의 장애로부터 벗어났기에] 

出一切世閒(출일체세간) 爲一切衆生之所瞻仰(위일체중생지소첨앙)

모든 세간을 뛰어나서, 모든 중생의 존경을 받는 

[일체 모든 중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得不思議法身(득불사의법신) 於一切爾焰地得無㝵法自在(어일체이염지득무애법자재)

불가사의한 법신을 얻었으며, 온갖 지혜를  만한 경계에 대하여 걸림이 없는 법의 자재를 얻었으며,

[또한 영원한 생명을 갖춘 불가사의한 법신(法身)을 증득하였기에 일체의 지혜를 낼 수 있는 경지[爾焰地]에서 어떠한 장애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한 힘을 얻었으며]

於上更無所作(어상갱무소작) 無所得地十力勇猛(무소득지십력용맹)

이 위에 더 지어야 할 바도 없으며, 얻어야 할 바도 없는 경지(지위)에서 십력이 용맹하시어, 

[그리고 이미 수행과 지혜를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수행할 것도 없고, 얻을 지혜도 없는 지위에서는 부처님께서 갖추신 열 가지 지혜의 힘인 십력(十力)이 용맹하시어] 

昇於第一無上無畏之地(승어제일무상무외지지)

제일이며 위없는 無畏=두려움 없는 지위에 오르셨으며, 

[이 보다 더 높은 것이 없고 법을 설함에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경지에 오르셨으며]

一切爾炎無㝵智觀不由於他(일체이염무애지관불유어타) 不受後有智師子吼(불수후유지사자후)

모든 알아야 할 대상 경계를 걸림 없는 지혜로 관찰하되, 다 이를 말미암지 아니하고 뒤의 몸을 받지 않는 지혜로 사자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체 알아야 할 대상[爾炎]을 자유자재한 지혜로써 관찰하되 그러한 지혜 이외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으시며, 더 이상 생사의 고통을 받아 윤회하는 몸을 후세에 받지 않는다는 그러한 깨달음에서 나오는 지혜로써 중생들을 생사의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사자후를 하십니다.]

 

世尊(세존) 阿羅漢辟支佛度生死畏(아라한벽지불도생사외) 次第得解脫樂(차제득해탈락)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생사의 두려움을 벗어나서 차례로 해탈의 즐거움을 얻어서,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중생과 달리 생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차례로 해탈의 즐거움을 얻고는]

作是念(작시념) ‘我離生死恐怖(아이생사공포) 不受生死苦(불수생사고)

생각하기를 ‘나는 생사의 공포를 벗어났으므로 생사의 괴로움을 받지 않으리라’ 하나니,

[다음과 같이 생각하나니 ‘나는 생사의 공포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생사의 고통을 받지 않으리라’]

世尊(세존) 阿羅漢辟支佛觀察時(아라한벽지불관찰시)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이 관찰한 바 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이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다시는 생사의 고통이 있는 몸인 후생을 받지 않게 되어] 

得不受後有(득불수후유) 觀第一蘇息處涅槃地(관제일소식처열반지)

가장 뛰어난 안식처=蘇息處인 열반의 경지를 관하는 것입니다.

[번뇌를 모두 없앤 제일의 소식처(蘇息處)인 열반의 경지를 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蘇 차조기 소, 향할 소, 되살아날 소. 蘇息소식=끊어질 듯이 막혔던 숨을 돌려서 되쉼

 

世尊(세존) 彼先所得地(피선소득지) 不愚於法(불우어법) 不由於他(불우어타)

세존이시여, 저들이 앞에 얻은 바 열반의 경지는 법에 어리석지 않아서,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도

[세존이시여, 그들은 이미 앞에서 소승의 가르침을 깨달은 경지를 얻었기 때문에 진리[法]에 어둡지 않으며,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亦自知得有餘地(역자지득유여지) 必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필당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스스로 有餘地=불완전한 지위(남음이 있는 지위)를 얻었지만, 반드시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될것을 아는 것입니다.

[소승의 깨달음인 유여열반의 경지를 증득하여 앞으로 대승의 가르침을 따라 보살행을 하면 최고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何以故(하이고) 聲聞緣覺乘皆入大乘(성문연각승개입대승)

왜냐하면, 성문승과 연각승이 모두 대승에 들어가는 것이니

[왜냐하면 성문과 연각은 언젠가 반드시 대승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때문이며] 

大乘者卽是佛乘(대승자즉시불승) 是故三乘卽是一乘(시고삼승즉시일승)

대승은 곧 부처님의 길=佛乘이며, 그러므로 삼승(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 곧 일승이며 

[대승이란 곧 오직 부처가 되는 길을 가르친 불승이므로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3승으로 나누어 설했지만 삼승이 곧 일불승입니다.

得一乘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득일승자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일승을 얻은 이는 위없이 바른 깨달음=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는 것이 되며,

[따라서 1승을 얻은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며] 

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卽是涅槃界(아뇩다라삼막삼보리자즉시열반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열반의 경지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곧 열반의 세계이며] 

涅槃界者卽是如來法身(열반계자즉시여래법신) 열반의 경지는 곧 여래의 법신이므로 

[열반의 세계가 바로 청정한 여래의 법신입니다.] 

得究竟法身者則究竟一乘(득구경법신자즉구경일승) 無異如來(무이여래)

究竟法身=완전한 법신을 얻은 이는 곧 완전한 일승을 얻음이니, (법신은) 여래와 다르지 않으며, 

[즉 궁극적인 목표인 구경(究竟)의 법신을 얻는 것이 절대 깨달음인 1불승을 증득[究竟]하는 것이지 이것 이외에 다른 여래나 법신은 없습니다.]

無異法身(무이법신) 如來卽法身(여래즉법신) 得究竟法身者(득구경법신자)

(여래는) 법신과 다르지 않으며, 여래가 곧 법신이니, 究竟法身=완전한 법신을 얻는다는 것은 

則究竟一乘(즉구경일승) 究竟者卽是無邊不斷(구경자즉시무변부단)

완전한 일승을 얻는 것이며, 究竟=궁극적이라는 것은(완전함이라는 것은) 끝이 없으며 끊어짐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래가 곧 법신이니, 완전[究竟]한 법신을 증득하는 것이 곧 1불승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불승을 증득한 상태인 구경(究竟)이란, 시간적인 혹은 공간적인 차별을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 歸依第一義者是歸依如來 - 제일의에 귀의하는 것이 여래에의 귀의

 

世尊(세존) 如來無有限齊時住(여래무유한제시주)

세존이시여, 여래는 한량없는 시간 동안 머무시며, 

如來應等正覺後際等住(여래응등정각후제등주)

여래, 응공, 등정각은 後際=끝없는 미래와 같이 머무시니,

如來無限齊大悲(여래무한제대비) 亦無限齊安慰世閒(역무한제안위세간)

여래는 한량없으며, 크게 자비로우심=大悲 또한 한량없으며 또한 세간을 편안하게 위로하십니다.

 

無限大悲(무한대비) 無限安慰世閒(무한안위세간)

한정이 없는 자비로 한정이 없는 세간을 위로하시니, 

作是說者是名善說如來(작시설자시명선설여래)

이러한 설을 하는 이를 이름하며 여래를 잘 설하는 것이라하며,

若復說言無盡法(약부설언무진법) 常住法(상주법) 一切世閒之所歸依者(일체세간지소귀의자)

만약 다시 ‘다함이 없는 법과 항상 머무는=상주하는 법은 모든 세간의 귀의할 바이라'고 설한다면

亦名善說如來(역명선설여래) 是故於未度世閒(시고어미도세간) 無依世閒(무의세간)

또한 이름하여 잘 설하는 것이라 하며, 그러므로 여래는 아직 제도를 얻지 못한 세간과, 의지할 데 없는 세간에 대하여

與後際等(여후제등) 作無盡歸依(작무진귀의) 끝없는 미래=後際 같이 다함이 없는 귀의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모든 중생이 궁극에는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1불승의 가르침=道를 설한 것이니, 그러므로 아직 번뇌가 두터워 부처님으로부터 제도되지 못한 세상의 중생들과 아직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적어 진정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지 못한 중생들이 있다면 앞으로 차츰 부처님께 귀의해야 하며]

常住歸依者(상주귀의자) 謂如來應等正覺也(위여래응등정각야)

상주하는 귀의가 되는 이를 일컬어 이른바 여래, 응공, 등정각이라 합니다.

[즉 앞으로 부처님의 정법에 머물러 항상 의지해야할 대상은 바로 여래․응공․정변지이신 부처님 뿐이십니다]

 

法者卽是說一乘道(법자즉시설일승도) 僧者是三乘衆(승자시삼승중)

법이라 함은 곧 一乘=하나의 길이고 승이라 함은 三乘=세 가지의 대중을 말하는 것이니,

[또한 승가(僧伽)는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4성제(四聖諦) 법을 듣고 깨달은 성문과 12인연법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은 연각과 6바라밀을 닦는 보살의 3승을 말하는 것이니]

此二歸依非究竟歸依(차이귀의비구경귀의) 名少分歸依(명소분귀의)

이 두 가지에 귀의함은 궁극적인 귀의가 아니므로 少分歸依=부분귀의(불완전한 귀의)라 이름하니,

[위에서 말한 법과 승가에 귀의하는 것은 완전한 귀의가 못되는 부분적인 귀의라 이름하므로,] 

何以故(하이고) 說一乘道法(설일승도법) 得究竟法身(득구경법신)

왜냐하면, 일승의 법을 설하는 것은 궁극적인 법신을 얻는 것이며, 

[부처님의 최고 가르침인 1승도(一乘道)를 설하는 까닭은 구경법신(究竟法身)을 증득하는 데 있으니]

於上更無說一乘法身(어상갱무설일승법신) 그 외에 다시 일승의 법신을 설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이것 이외에 다른 1승법신(一乘法身)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三乘衆者有恐怖(삼승중자유공포) 歸依如來(귀의여래)

삼승의 대중들은 공포가 있으므로 여래에게 귀의하여 

[3승들은 아직 번뇌의 때가 남아 있어 삶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부처님께 귀의해야 하며] 

求出修學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구출수학향아뇩다라삼막삼보리)

벗어나기 위하여 修學=도를 닦아, 위없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삶에서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발원하여 수행함으로써 최고 깨달음의 경지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是故二依非究竟依(시고이의비구경의) 是有限依(시유한의)

그러므로 이 둘에 귀의하는 것은 궁극적인 귀의가 아니며 한계가 있는 귀의이니,

[그러므로 법과 승가 이 두 가지에만 귀의하는 것은 완전한 귀의가 아닌 불완전한[有限] 귀의라고 한것이니]

若有衆生(약유중생) 如來調伏歸依如來得法津澤(여래조복귀의여래득법진택) 津 나루 진, 澤 못 택, 

만약 어떤 중생이 여래에게 조복하여 여래에게 귀의하면, 불법의 은혜를 얻게 되고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으로부터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법문을 듣고 마음의 번뇌를 항복받아 부처님께 진실로 귀의한다면,]

生信樂心歸依法僧是二歸依(생신락심귀의법승시이귀의)

불법을 믿는 즐거움의 마음을 내어 법과 승에 귀의한다면, 

[그리고 법문을 듣는 것에 대해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을 낸 뒤에 법보(法寶)와 승보(僧寶)에 귀의한다면,] 

非此二歸依是歸依如來(비차이귀의시귀의여래)

이는 그 둘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고,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이 됩니다.
[이는 단순히 법과 승단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 됩니다.]

 

歸依第一義者是歸依如來(귀의제일의자시귀의여래) 此二歸依第一義(차이귀의제일의)

왜냐하면, 제일의에 귀의하는 것이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이니, 이  가지에 귀의하는 것과 제일의는 

是究竟歸依如來(시구경귀의여래) 何以故(하이고)

구경에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은 법인 제일의(第一義)에 귀의하는 것은 바로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니, 이상의 즉 먼저 부처님께 귀의한 후 법과 승단에 귀의하는 두 가지 귀의와 부처님께서 깨달은 절대 진리인 제일의에 귀의하는 것이 마침내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無異如來無異二歸依(무이여래무이이귀의) 如來卽三歸依(여래즉삼귀의)。

여래는 두 가지 귀의와 다르지 않으므로, 여래는 곧 삼귀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과 환희심을 내어 법과 승단에 귀의하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니, 즉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 불․법․승 3보에 귀의하는 3귀의(三歸依)인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說一乘道(설일승도) 如來四無畏成就師子吼說(여래사무외성취사자후설)

왜냐하면, 일승의 도를 설하는 것은, 여래께서 四無畏= 가지 두려움 없음을 성취하여, 사자후로 설하시는 것이니,

[또한 부처님께서 1승도(一乘道)를 설하신 까닭은 ‘여래께서는 법을 설함에 있어 전혀 두려움을 갖지 않고 자유자재로 연설하는 네 가지 무소외(四無所畏)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사자후(獅子喉)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며]

若如來隨彼所欲而方便說(약여래수피소욕이방편설) 卽是大乘無有三乘(즉시대승무유삼승)

만일 여래께서 그들의 욕망을 따라 방편으로 설하신 것이라면 곧 대승이며 삼승이 없는 것이니, 

[가령 부처님께서 저희들의 욕망을 살펴서 교묘한 수단〔方便〕으로 법을 설한다면 그것이 바로 대승의 가르침일 뿐 방편으로서의 3승은 진실이 아니므로] 

三乘者入於一乘(삼승자입어일승) 一乘者卽第一義乘(일승자즉제일의승)

삼승이 일승에 들어가는 것이며, 일승이라는 것은 곧 제일의의 승(길)이 되는 때문입니다.

제일의 [第一義]= 근본이 되는 첫째 의의
[즉 방편으로써 3승을 설한 까닭은 결국 모든 중생이 최고의 깨달음을 향한 1승으로 나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일승이란 완전한 진리의 세계인 제1의승(第一義乘)입니다.]

◎ 得少分涅槃 - 불완전한 열반, 부분적인 열반

 

世尊(세존) 阿羅漢辟支佛最後身菩薩(아라한벽지불최후신보살)

세존이시여, 아라한, 벽지불, 최후신의 보살은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 그리고 부처님의 경지 이전인 최후 단계의 보살에게는] 

爲無明住地之所覆障故(위무명주지지소부장고) 무명주지에 덮여 있기 때문에 

[아직 그 마음이 무명주지번뇌의 장애에 덮여 있는 까닭에] 

於彼彼法不知不覺(어피피법불지불각) 저 여러 가지 법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현상 사물의 본래 참모습인 제법의 실상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으며, 또한 그들은 참다운 지혜로써 제법의 실상을 알지 못하고]

以不知見故(이불지견고) 所應斷者不斷不究竟(소응단자불단불구경)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땅히 끊어야 할 바를 끊지 못하고 구경에 이르지 못하며,

[부처님이 되기 위해 반드시 끊어야 할 근본적인 번뇌인 무명주지번뇌를 끊지 못했으므로, 따라서 아직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以不斷故(이불단고) 名有餘過解脫(명유여과해탈) 非離一切過解脫(비리일체과해탈)

끊지 못하였기 때문에 허물이 남아 있는 해탈=有餘過解脫이라 이름하며, 온갖 허물을 여읜 해탈이 되지 못하므로 

[즉 끊어야 할 번뇌를 아직 끊지 못한 까닭에 아라한․벽지불․보살의 해탈을 번뇌의 세력이 남아 있는 불완전한 해탈=有餘過解脫이라고 하며]

名有餘淸淨(명유여청정) 非一切淸淨(비일체청정)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청정=有餘解脫이라 이름하며, 모든 청정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일체 모든 번뇌를 끊은 해탈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경지를 아직 번뇌의 때가 남아 있는 청정=有餘淸淨이라고 하며]

名成就有餘功德(명성취유여공덕) 非一切功德(비일체공덕)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공덕=有餘功德을 성취하였다 이름할지언정, 온갖 공덕을 성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체 모든 번뇌를 없앤 청정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경지를 아직도 더 닦아야 할 것이 남아 있는 공덕=有餘功德이라고 합니다.]

유여(有餘)=번뇌의 잔여, 남음이 있으므로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

以成就有餘解脫(이성취유여해탈) 有餘淸淨(유여청정) 有餘功德故(유여공덕고)

(모든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해탈,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청정,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공덕을 이루는 것이며,

[그래서 성문․연각․보살의 경지를 일체 모든 공덕을 성취한 것이라 하지 않으며, 아직 번뇌의 세력이 남아 있는 해탈=有餘解脫, 번뇌의 때가 남아 있는 청정=有餘淸淨, 닦아야 할 것이 남아 있는 공덕=有餘功德 등을 더 닦아야 최후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知有餘苦(지유여고) 斷有餘集(단유여집) 證有餘滅(증유여멸) 修有餘道(수유여도)

그러므로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괴로움=를 알며,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며,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는 것이니, 

[그러므로 일체의 고(苦)에 관한 진리인 고성제(苦聖諦)를 잘 알고, 고의 원인인 집성제(集聖諦)를 잘 알아서 일체의 고를 끊으며, 번뇌의 불길이 사라진 열반의 경지인 멸성제(滅聖諦)를 증득하고,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법인 도성제(道聖諦), 즉 부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중심이 되는 4성제(四聖諦)를 닦는 것을 가리켜 수행한 만큼 깨달은 소분열반(小分涅槃)을 얻는다고 이름합니다.]

是名得少分涅槃(시명득소분열반)

이를 불완전한 열반(부분적 열반)=少分涅槃을 얻었을 뿐이라고 이름하며,

得少分涅槃者(득소분열반자) 名向涅槃界(명향열반계)

불완전한 열반을 얻은 이는 열반의 경지를 향하는 것이라 합니다.

[소분열반(小分涅槃)이란 부분적 열반이며, 완전하고 진실한 대열반(大涅槃)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음을 말하며, 수행한 만큼 열반을 얻는 것을 가리켜 최고의 완전한 깨달음인 열반의 세계로 향하는 기초라고 하는 것입니다.]

 

◎ 無明住地 - 무명이 머무르는 근본 자리

若知一切苦(약지일체고) 斷一切集(단일체집) 證一切滅(증일체멸)

만일 온갖 苦=괴로움을 알고,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集=집착을 끊으며, 모든 괴로움의 滅=소멸을 증득하고

[만약 일체의 현상 사물이 고(苦)라는 것을 알고, 고의 원인인 일체의 집(集)을 끊으며, 번뇌가 사라진 열반의 경지인 일체의 멸(滅)을 증득하고,] 

修一切道(수일체도) 於無常壞世閒(어무상괴세간) 無常病世閒(무상병세간)

모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道=길을 닦는다면, 무상하게 부서지는 세간, 무상하게 병든 세간에서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과정인 일체의 도=八正道를 닦는다면, 무상(無常)하여 시시각각 파괴되어 가는 세간과 무상하여 병든 세간에서도] 

得常住涅槃(득상주열반) 於無覆護世閒(어무부호세간) 無依世閒(무의세간) 爲護爲依(위호위의)

常住=항상 머무르는 열반을 얻을 것이며, 보호해 주는 이 없는 세간, 의지할 데 없는 세간에서, 보호해 주는 이가 되고 의지할 이가 될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은 절대 진리에 상주하는 열반의 경지를 증득할 것이며, 또한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세간과 의지할 곳 없는 세간에서도 4성제를 닦음으로써 그것이 우리 마음을 보호해 주고 의지할 대상이 될 것이니]

何以故(하이고) 法無優劣故得涅槃(법무우열고득열반) 智慧等故得涅槃(지혜등고득열반)

왜냐하면, 법에는 優=뛰어남과 劣=열등함이 없기 때문에 열반을 얻으며, 지혜가 평등하기 때문에 열반을 얻으며, 

[왜냐하면 법 자체는 우열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체득하면 누구나 열반을 증득할 수 있으며, 누구나 본래 갖추고 있는 지혜는 평등하기 때문에 그 지혜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열반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解脫等故得涅槃(해탈등고득열반) 淸淨等故得涅槃(청정등고득열반)

해탈이 평등하기 때문에 열반을 얻으며, 청정이 평등하기 때문에 열반을 얻습니다.

是故涅槃一味等味(시고열반일미등미) 謂解脫味(위해탈미)

그러므로 열반은 하나의 맛=一味이고, 평등한 맛=等味이니, 이른바 해탈의 맛=解脫味입니다.

[또한 우리의 본성은 청정하고 평등하기 때문에 누구나 수행을 통해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수행의 방법과 근기가 다를지라도 진리를 증득하면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느끼기에 한맛=一味이고, 평등한 맛=等味이니, 즉 이것은 번뇌를 끊어 모든 차별을 초월하게 된 해탈의 맛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世尊(세존) 若無明住地(약무명주지)  세존이시여, 만약 무명의 잠재적 번뇌를 

不斷不究竟者(불단불구경자) 不得一味等味(불득일미등미) 謂明解脫味(위명해탈미)

끊지 못하고 다 마치지 못한 사람은 하나의 맛, 평등한 맛을 얻지 못한 것이니, 이른바 明=지혜의 맛, 脫=해탈의 맛을 말하는 것이니,

[세존이시여, 만일 무명주지번뇌를 끊지 못하고 미혹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한결같이 평등한 지혜[明]와 해탈의 맛을 증득할 수 없으니] 

何以故(하이고) 無明住地不斷(무명주지불단) 不究竟者(불구경자)

왜냐하면,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끝내지 못한 사람은 

[왜냐하면 무명주지번뇌를 끊지 못하고 미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過恒沙等所應斷法(과항사등소응단법) 不斷不究竟(불단불구경)

항하강(갠지스강)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마땅히 끊어야 할 법을 다 끊지 못했으며 

[반드시 끊어야 할 갠지스강의 모래알 보다 더 많은 번뇌의 법을 아직 끊지 못했기 때문에] 

過恒沙等所應斷法不斷故(과항사등소응단법불단고)

항하 강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마땅히 얻어야 할 법을 얻지 못하였으며, 

[수행을 통해 증득해야 할 갠지즈강의 모래알 보다 더 많은 열반의 법을 얻지 못하고 있고,] 

過恒沙等法應得不得(과항사등법응득불득) 應證不證(응증불증)

항하 강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마땅히 깨달아야 할 법을 증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갠지즈강의 모래알 보다 더 많은 깨달아야 할 법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니] 

是故無明住地積聚(시고무명주지적취) 生一切修道斷煩惱上煩惱(생일체수도단번뇌상번뇌)

그러므로 무명의 잠재적 번뇌가 쌓여서 모든 修道=닦음를 통해서 끊어야 할 번뇌와 上煩惱=부수적 번뇌를 낳으며,

[즉 무명주지번뇌가 쌓여 있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서 일체 수행을 통해 끊어야 할 번뇌와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여러 종류의 상번뇌(上煩惱)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니]

상번뇌(上煩惱)= 무엇을 하는 과정상에서 일어나는 번뇌라는 뜻.

彼生心上煩惱(피생심상번뇌) 止上煩惱(지상번뇌) 觀上煩惱(관상번뇌)

그것은 마음을 장애 하는 번뇌, 止=멈춤을 장애 하는 번뇌, 觀=관찰을 장애 하는 번뇌, 

[저 무명주지번뇌에서 부처님의 지견을 성취하려고 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심상번뇌(心上煩惱), 마음을 고요히 하려 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지상번뇌(止上煩惱), 진리를 관찰하는 수행을 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관상번뇌(觀上煩惱)와] 

禪上煩惱(선상번뇌) 正受上煩惱(정수상번뇌) 方便上煩惱(방편상번뇌)

禪=선정을 장애 하는 번뇌, 正受=삼매를 장애 하는 번뇌, 방편을 장애 하는 번뇌, 

[선정을 닦을 때 이것을 방해하는 선상번뇌(禪上煩惱), 삼매를 닦으려 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정수상번뇌(正受上煩惱), 방편을 사용하여 중생을 구제하려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방편상번뇌(方便上煩惱),]

智上煩惱(지상번뇌) 果上煩惱(과상번뇌) 得上煩惱(득상번뇌)

智=지혜를 장애 하는 번뇌, 果=과보를 장애 하는 번뇌, 得=얻음을 장애 하는 번뇌,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하려 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지상번뇌(智上煩惱), 열반의 과보를 성취하려 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과상번뇌(果上煩惱), 해탈을 증득하려 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득상번뇌(得上煩惱),]

力上煩惱(영상번뇌) 無畏上煩惱(무외상번뇌)

力=힘을 장애 하는 번뇌, 無畏=두려움 없음을 장애 하는 부수적 번뇌=上煩惱 등을 낳습니다.

[부처님께서 갖추고 있는 열 가지 힘[十力]을 증득하려고 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역상번뇌(力上煩惱), 그리고 두려움 없이 법을 설하려할 때 이것을 방해하는 무외상번뇌(無畏上煩惱) 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如是過恒沙等上煩惱(여시과항사등상번뇌) 如來菩提智所斷(여래보리지소단)

이와 같이 항하 강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부수적 번뇌=상번뇌는 여래의 보리 지혜로 끊어야 할 바이니, 

[이와 같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보다 더 많은 갖가지 종류의 상번뇌는 부처님의 지혜[菩提智]로써만 끊을 수 있으니]

一切皆依無明住地之所建立(일체개의무명주지지소건립)

그 모든 것은 모두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를 의지하여 지은 바이며(세워진 것이며)

[따라서 일체 모는 번뇌는 무명주지번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一切上煩惱起(일체상번뇌기) 皆因無明住地(개인무명주지) 緣無明住地(연무명주지)

모든 부수적 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모두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를 원인으로 한 것이며,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를 조건으로 (반연)한 것입니다.

[즉 일체 모든 상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모두 무명주지번뇌가 직접적인 원인[因]이며 또한 무명주지번뇌가 간접적인 보조원인[綠]이 되는 것입니다.]

 

◎ 如來菩提智所應斷 - 여래의 지혜라야 끊을 수 있는 무명주지 

 

世尊(세존) 於此起煩惱(어차기번뇌) 剎那心剎那相應(찰나심찰나상응)

세존이시여, 이것으로 일으킨 번뇌는(현재적 번뇌)는 찰나의 마음이 찰나에 상응하여 일어나는 것이지만,

世尊(세존) 心不相應無始無明住地(심불상응무시무명주지)

세존이시여, 心不相應=마음과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은 시작이 없는 무명의 잠재적 번뇌=住持煩惱입니다.

[세존이시여, 주객의 나뉨이 없는 본래 깨닫지 못한 무명의 상태=心不相應을 무명주지라 하며]

世尊(세존) 若復過於恒沙如來菩提智所應斷法(약부과어항사여래보리지소응단법)

세존이시여, 여래의 보리로 마땅히 끊어야 할 법이 항하 강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더라도, 

一切皆是無明住地所持所建立(일체개시무명주지소지소건립)

그 모든 것은 모두 무명 주지로 유지되는 것이며, 세워지는 것이니,

譬如一切種子皆依地生 建立增長(비여일체종자개의지생 건립증장)

비유하면, 마치 온갖 씨앗이 모두 땅을 의지하여 나서 건립하고 자라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若地壞者彼亦隨壞(약지괴자피역수괴)

만약 땅이 무너지면 그 씨앗도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過恒沙等如來菩提智所應斷法(여시과항사등여래보리지소응단법)

이와 같이 여래의 보리 지혜로 마땅히 끊어야 할 법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많아도

一切皆依無明住地生建立增長(일체개의무명주지생건립증장)

모두 무명주지를 의지하여 나서 세워지고 자라는 것이므로

若無明住地斷者(약무명주지단자) 만일 무명주지가 끊어지면 

過恒沙等如來菩提智所應斷法(과항사등여래보리지소응단법) 皆亦隨斷(개역수단)

여래의 지혜로 끊을 항하의 모래보다 많은 법도 모두 따라 끊어지는 것입니다.

如是一切煩惱(여시일체번뇌) 上煩惱斷(상번뇌단)

이와 같이 해서 모든 번뇌와 上煩惱=부수적 번뇌가 끊어지면, 

過恒沙等如來所得一切諸法(과항사등여래소득일체제법)

여래가 얻을 바  항하의 모래보다 많은 모든 법에 

通達無㝵一切知見(통달무애일체지견) 㝵 거리낄 애, 그칠 애,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시고, 모든 지견이 

離一切過惡(이일체과악) 得一切功德(득일체공덕) 法王法主而得自在(법왕법주이득자재)

온갖 過惡=허물을 여의었으며, 모든 공덕을 얻었으며, 법의 왕이신 法主=법의 주재자로서 자재를 얻었으며 

登一切法自在之地(증일체법자재지지)

모든 법의 자재로운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무명주지가 마치 대지가 온갖 식물의 종자를 싹트게 하여 자라게 하듯이 갠지스강의 모래알보다 많은 상번뇌가
무명주지에 의해 일어나 서게 되고 커지게 되나, 이 무명주지는 오직 여래의 지혜로야 만이 끊을 수 있습니다.]

如來應等正覺正師子吼(여래응등정각정사자후) 여래, 응공, 등정각께서 사자후하시기를, 

‘我生已盡(아생이진) 梵行已立(범행이립) 所作已辦(소작이판) 不受後有(불수후유)

나의 일이 이제 끝났고, 梵行=청정한 행이 이미 완성되었으며, 지어야 할 바는 이미 지어 마쳤고, 뒤의 몸=後有을을 받지 아니한다(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 하셨으며,

是故世尊以師子吼依於了義(시고세존이사자후의어요의) 一向記說(일향기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사자후로 올바른 이치를 의지하여 한결같이 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사자후로서 ‘올바른 절대의 깨달음[了義法]에 입각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면 누구나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설하신 것입니다.]

◎ 二種死

何以故(하이고) 有二種死(유이종사) 何等爲二(하등위이)?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두 가지 죽는 것이 있사오니,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하면,

[왜냐하면 두 가지 종류의 생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오니] 

謂分段死(위분단사) 不思議變易死(불사의변이사)

하나는 육체적 죽음=分段死이고, 다른 하나는 부사의 하게 변화하여 죽는=不思議變易死입니다.

[그것은 중생이 겪는 분단생사와 2승과 보살이 보이는 부사의 변역생사입니다.]

分段死者(분단사자) 謂虛僞衆生(위처위중생)

육체적 죽음=분단사는 허망한 중생을 일컫는 말이요,

[첫째 분단생사란, 중생의 업이 다르기 때문에 신체와 수명이 차별이 벌어지는 허망한 생사의 모습을 말하며,]

不思議變易死者(불사의변이사자) 부사의 하게 변하여 죽는 것은

謂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意生身(위아라한벽지불대력보살의생신)

아라한이나 벽지불이나 대력 보살들의 마음대로 태어나는 몸=意生身으로부터

[두 번 째는 부사의 변역생사이니, 즉 아라한과 벽지불인 2승의 몸과 그리고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힘을 갖춘 대력보살 등이 원력에 따라 나툰 몸인 의생신과,]

乃至究竟無上菩提(내지구경무상보리)

위없는 보리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궁극적으로 위없는 깨달음입니다)

 [보살행을 통해 모든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얻은 구경(究竟)의 위없는 보리인 부처님의 참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방편으로 나투는 생사의 모습을 말합니다.]

 

二種死中(이종사중) 以分段死故(이분단사고)

두 가지 죽음에서 육체적 죽음이 없어졌으므로 말미암아 

[두 가지 종류의 생사 중에서 아라한과 벽지불은 지혜로써 중생이 겪는 분단생사를 뛰어넘었으므로]

說阿羅漢辟支佛智(설아라한벽지불지) 我生已盡(아생이진)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혜를 일러서 ‘나의 생은 이미 다했다’=我生已盡(태어남을 다하였다)을 설하며,

 ['나의 삶은 이미 번뇌가 다했다'고 했습니다.] 

고제(苦諦)의 지혜

 

得有餘果證故(득유여과증고) 說梵行已立(설범행이립)

업의 잔재가 남음이 있는 과=有餘果]=를 증득하였으므로 청정한 행=梵行이 已立=이미 완성했다고 설하며,

[또한 아직 더 닦아야 되지만, 그래도 유한한 과보를 증득했기에 '청정한 행동=범행이 이미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멸제(滅諦)의 지혜

 

凡夫人天所不能辦(범부인천소불능판) 七種學人先所未作(칠종학인선소미작)

범부와 인간 천상의 사람의 과보를 얻을 중생은 능히 판단하지 못하며,

아라한이 되기 전의 일곱 단계 성자=七種學人들은 앞서 끊지 못하였던 

[윤회의 세계인 사람과 천인이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고, 일곱 종류의 학인들이 아직 끊지 못한] 

虛僞煩惱斷故(허위번뇌단고) 說所作已辦(설소작이설)

허망한 번뇌를 끊었으므로 所作=지어야 할 바를 已辨=모두 마쳤다고 설하며,

[허망한 번뇌를 끊었으므로 '수행을 이미 이룩했다'고 했습니다.]

도제(道諦)의 지혜

 

阿羅漢辟支佛所斷煩惱(아라한벽지불소단번뇌) 更不能受後有故(갱불능수후유고)

아라한과 벽지불이 끊은 바 번뇌는 다시 後有=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으므로

[또한 아라한과 벽지불은 어느 정도 번뇌를 끊어 다시는 후생을 받지 않기 때문에]

說不受後有(설불수후유)

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不受後有라고 설하는 것이나, 

['미래에 중생과 같이 생사 윤회하는 몸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만]

집제(集諦)의 지혜

 

非盡一切煩惱(비진일체번뇌) 亦非盡一切受生(역비진일체수생)

그러나 모든 번뇌를 다 끊은 것도 아니며, 또한 다시 受生=모든 생(윤회하는 삶)을 다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故說不受後有(고설불수휴유) 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일체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지는 못하였으니, 즉 일체 번뇌로 인해 변화하는 허망한 삶을 완전히 정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각자 수행한 만큼 번뇌를 끊었기 때문에 '미래에 중생과 같이 생사 윤회하는 몸은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有煩惱是阿羅漢辟支佛所不能斷(유번뇌시아라한벽지불소불능단)

왜냐하면, 어떤 번뇌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로는 끊지 못할 번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아라한과 벽지불에게는 끊지 못한 근원적인 무명인 번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二種煩惱

煩惱有二種(번뇌유이종) 何等爲二(하등위이)

(이와 같이 아라한과 벽지불이 능히 끊지 못한) 번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謂住地煩惱及起煩惱(위주지번뇌급기번뇌)

잠재적 번뇌=住持번뇌와 현재적 번뇌=起번뇌이며, 

[번뇌에는 각종 번뇌가 생겨날 수 있는 근본적인 바탕인 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惱)와 그 주지번뇌로부터 생겨난 갖가지 종류의 번뇌인 기번뇌가 있으며]

住地有四種(주지유사종) 何等爲四(하등위사)

잠재적 번뇌=住持번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그 넷인가?

[무명주지번뇌에는 다시 네 가지 종류가 있으니]

謂見一處住地(위견일처주지) 

현상 사물을 보고 들음에 있어 무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번뇌=見一處住持煩惱=견혹(見惑)과,

[첫째, 현상 사물을 보고 들음에 있어 무지하여 사물의 진리, 도리를 파헤치지 않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편견에서 생기는 지식상의 번뇌인 견일체처주지번뇌=견혹과]

欲愛住地(욕애주지) 욕망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번뇌(욕계의 사혹)=欲愛住持煩惱, 

[둘째, 욕계에 대한 무지[思惑]로 인하여 일어나는 번뇌인 욕계의 사혹인 욕애주지번뇌]

色愛住地(생애주지) 육체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번뇌(색계의 사혹)=色愛住持煩惱,

[셋째, 색계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일어나는 번뇌인 색계의 사혹인 색애주지번뇌]

有愛住地(유애주지) 윤회 생존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번뇌(무색계의 사혹)=有愛住持煩惱가 그 네 가지입니다.

[넷째, 무색계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일어나는 번뇌인 무색계의 사혹인 유애주지번뇌의 네 종류를 말합니다.]

 

此四種住地(차사종주지) 生一切起煩惱(생일체기번뇌)

이 네 가지 잠재적 번뇌=주지번뇌가 일체 모든 현재적 번뇌=기번뇌를 일으키는 것으로,

[이상의 네 가지 주지번뇌가 갖가지 종류의 기번뇌를 일으키는 것으로]

起者剎那心剎那相應(기자찰나심찰나상응)

현재적 번뇌=기번뇌란 찰나의 마음과 찰나에 相應=서로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니,[이러한 기번뇌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따라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과 서로 번뇌로써 상응해 복잡한 심적 작용인 번뇌를 일으킵니다.]

 

世尊(세존) 心不相應無始無明住地(심불상응무시무명주지)

세존이시여, 心不相應=마음이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은 無始無明=시작을 알수 없는 무명의 잠재적 번뇌=住持煩惱입니다.

[세존이시여, 우리 마음과 외부의 경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항상 존재하는 번뇌의 근본인 무명주지번뇌가 있기 때문입니다.]

 

世尊(세존) 此四住地力(차사주지력) 一切上煩惱依種(일체상번뇌의종)

세존이시여, 이러한 네 가지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번뇌의 힘은 모두 부수적 번뇌=上煩惱의 의지할 종자이지만,

[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무명주지번뇌의 세력은 일체의 선한 행위를 방해하려는 번뇌인 상번뇌가 의지할 곳이며 종자이지만]

比無明住地(차무명주지) 筭數譬喩所不能及(산수비유소불능급) 筭 셈 산

무명의 잠재적 번뇌=주지번뇌의 큰 힘에 비교하면 산수나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명주지번뇌에 비하면 다른 여타의 번뇌는 숫자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이 세력이 약합니다.]

 

世尊(세존) 如是無明住地力(여시무명주지력)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무명의 잠재적 번뇌= 주지번뇌의 힘은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무명주지번뇌의 세력은] 

於有愛數四住地(어유애수사주지) 無明住地其力最大(무명주지기력최대)

네 가지의 욕망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무명의 잠재적 번뇌=주지번뇌의 힘보다 매우 큰 것이니,

[무색계(無色界)에서 일어나는 번뇌인 유애주지번뇌(有愛住地煩惱)와 색계나 욕계에서 일어나는 번뇌인 수번뇌 등 네 가지 종류의 주지번뇌의 세력보다 더 큰 것이니]

譬如惡魔波旬(비여악마파순) 於他化自在天色力壽命(어타화자재천색력수명)

마치 악마 파순이 (욕계의 여섯 번째 하늘) 타화자재천에서 육체적인 능력과 수명과 권속과 

[비유하면, 마치 악마 파순(Pāpiman)이 욕계의 여섯 번째 하늘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서 육체적인 능력과 수명과 권속과] 

眷屬衆具自在殊勝(권속중구자재수승)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 및 장신구를 가장 잘 이용하듯이,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生活必需品) 및 장신구(裝身具)를 가장 잘 이용하듯이,] 

如是無明住地力(여시무명주지력) 於有愛數四住地(어유애수사주지)

이러한 무명의 잠재적 번뇌=주지번뇌의 힘은 네 가지의 윤회 생존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주지번뇌 보다 

[이 무명주지번뇌의 세력은 저 네 가지 종류의 주지무명의 세력보다 강합니다.]

其力最勝(기력최승) 恒沙等數上煩惱依(항사등수상번뇌의)

그 세력이 강하니, 항하 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부수적 번뇌=상번뇌의 의지하는 바가 되며, 

[그러므로 무명주지번뇌는 갠지스 강(恒河)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선한 행위를 하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는 상번뇌가 의지할 대상인 것이며]

亦令四種煩惱久住(역영사종번뇌구주) 역시 네 가지 잠재적 번뇌=주지번뇌를 오래 머물도록 하므로,

[또한 그것은 네 가지 종류의 번뇌를 오랫동안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阿羅漢辟支佛智所不能斷(아라한벽지불지소불능단)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지혜로도 능히 끊지 못하며,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혜로는 이 무명주지번뇌를 끊을 수 없으나] 

唯如來菩提智之所能斷(유여래보리지소능단)

오직 여래의 깨달음의 지혜=菩提智라야 능히 끊을 수 있는 것이니,

[오직 여래의 보리 지혜로써만 끊을 수 있습니다.]  

如是世尊(여시세존) 無明住地最爲大力(무명주지최위대력)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무명의 잠재적 번뇌=주지번뇌의 힘이 가장 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무명주지번뇌의 세력은 저 네 가지 종류의 주지무명의 세력보다 강한 것입니다.]

 

三種意生身生及無漏業生 - 佛菩提智所斷(부처님만이 끊을 수 있는 번뇌)

 

世尊(세존) 又如取緣有漏業(유여취연유루업) 因而生三有(인이생삼유)

세존이시여, 또 마치 번뇌의 연(取緣)과 번뇌가 있는 업=유루업의 인으로 말미암아 삼계= 三有를 낳는 것과 같이,

[루(漏)'= 번뇌]

如是無明住地(여시무명주지) 緣無漏業因(연무루업인)

이러한 무명의 주지의 연과 무루업의 因=원인으로 말미암아

生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三種意生身(생아라한벽지물대력보살삼종의생신)

아라한, 벽지불, 대력 보살들의 세 가지 의생신을 내는 것이니,

[삼계가 번뇌와 유루업인에 의해 펼쳐지는 것처럼 무명주지의 연과 무루업의 인으로 말미암아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과 같은 의생신(意生身)이 나오는 것이니]

[의생신(意生身)= 범어 마노말야(摩奴末耶), 의성신(意成身), 화생신(化生身), 변화신(變化身)] 

 

此三地(차삼지) 彼三種意生身生及無漏業生(피삼종의생신생급무루업생)

이러한 세 가지 지위와 세 가지 의생신이 낢과 무루업이 나는 것이

依無明住地(의무명주지) 有緣非無緣(유연비무연)

모두 무명주지를 의지하는 것이므로 연이 있는 것이지, 연이 없는 것이 아니며,

[이 세 가지,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과 같은 의생신도 모두 무명주지에 의지하므로 연이 없는 것이 아닌,]

是故三種意生及無漏業(시고삼종의생급무루업) 緣無明住地(연무명주지)

그러므로 세 가지 의생신 및 무루업은 모두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세 가지 의생과 무루업이 모두 무명주지를 반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의생신은 범부중생의 의생신과 불보살의 의생신이 다른 것으로, 범부는 번뇌의 생활을 영위함에 반하여 2승(阿羅漢과 辟支佛)과 보살과는 번뇌를 극복할 수 있는 무루의 업을 쌓고 있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근본적인 상이(相異)가 있다. 그렇지만 2승과 대력보살은 무명주지를 완전히 이탈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이미 설한바와 같다.]

世尊(세존) 如是有愛住地數四住地(여시유애주지수사주지)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유애주지   가지 주지는 

不與無明住地業同(불여무명주지업동)

무명주지로 업이 같지 않나이다.

無明住地異離四住地(무명주지이리사주지) 佛地所斷(불지소단)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 번뇌는 네 가지 잠재적 번뇌를 떠나는 것과 달라서  불지(佛地)에서 끊는 바이며,

佛菩提智所斷(불보리지소단) 何以故(하이고)

부처님의 菩提智=깨달음의 지혜로써 끊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阿羅漢辟支佛斷四種住地(아라한벽지불단사종주지) 無漏不盡(무루불지)

아라한과 벽지불도 네 가지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는 끊었지만 무루업은 다 끊지 못해서 

不得自在力(불득자재력) 亦不作證(역불작증)

자재력을 얻지 못하며, 역시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니,

無漏不盡者(무루불진자) 卽是無明住地(즉시무명주지)

무루업을 다 끊지 못하였다는 것은 곧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 때문입니다.

제 5장. 一乘 - 일승

一乘 章第五

一은 다른 것이 없다는 뜻이고, 乘은 움직여 간다는 뜻.

 

◎ 攝受正法是摩訶衍 -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대승(大乘)이다

 摩訶衍者出生一切

대승에 머물면서 대승을 섭수하는 것은 곧바로 이승에 머물면서 이승의 일체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을 섭수하는 것이다

 

汝今更說(여금갱설) 一切諸佛所說攝受正法(일체제불소설섭수정법)

그대는 이제 다시 일체 여러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바, 정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해 보라

[그대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승의 올바른 가르침을 체득하는 것에 관해 다시 설명해 보라.]

 

勝鬘白佛(승만백불) 善哉世尊(선재세존) 唯然受教(유연수교)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로지 부처님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대승의 바른 진리를 체득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卽白佛言(즉백불언)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으니,

世尊(세존) 攝受正法者是摩訶衍(섭수정법자시마하연)

세존이시여,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곧 대승=摩訶衍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른 가르침을 체득한다고 하는 것은 곧 대승(摩訶衍:Mahāyān)입니다.]

何以故(하이고) 摩訶衍者(마하연자) 出生一切(출생일체)

聲聞緣覺世閒(성문연각세간) 出世閒善法(출세간선법)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마하연은 온갖 성문과 연각과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을 낳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대승의 바른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 모든 성문과 연각,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善法)을 생(生)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世尊(세존) 如阿耨大池出八大河(여아뇩대지출입대하) 阿 언덕 아, 耨 김맬 녹

세존이시여, 마치 아뇩지 큰 연못에서 여덟 개의 큰 강이 흘러나오듯이,

如是摩訶衍(여시마하연) 出生一切聲聞緣覺世閒出世閒善法(출생일체성문연각세간출세간법)

마하연에서도 온갖 성문과 연각과 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이 나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항상 시원하고 맑은 물이 고여 있는 호수인 아뇩대지(阿耨大池:Anavatapa)로부터 여덟 개의 큰 강물이 흘러나오듯이, 대승의 바른 가르침에서도 성문과 연각,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법이 생겨납니다.]

 

世尊(세존) 又如一切種子(우여일체종자) 皆依於地而得生長(개의어지이득생장)

세존이시여, 또 마치 온갖 씨앗이 모두 땅을 의지하여 싹이 나서 자라는 것과 같이,

[세존이시여, 또한 일체의 온갖 씨앗이 대지를 의지해 성장하는 것과 같이] 

如是一切聲聞緣覺世閒出世閒善法(여시일체성문연각세간출세간선법)

이러한 온갖 성문과 연각과 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이 

依於大乘而得增長(의어대승이득증장) 대승을 의지하여 자랍니다.

[일체의 성문과 연각, 그리고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도 대승의 바른 가르침을 의지해 증장(增長)하는 것입니다

是故世尊(시고세존) 住於大乘攝受大乘(주어대승섭수대승)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대승에 머무르며  대승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대승에 머물면서 대승의 바른 가르침을 체득하는 것은]

卽是住於二乘攝受二乘(즉시주어이승섭수이승) 一切世閒出世閒善法(일체세간출세간선법)

곧 2승에 머물러 2승의 세간 선법과 이승의 출세간 선법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성문과 연각인 2승(二乘)에 머물면서 자신의 지적인 완성을 목표로 하는 2승의 가르침을 깨닫는 것이고, 그렇게 하여 일체의 세간․출세간의 선법을 깨달아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六處 - 여섯 가지 요점

 

如世尊說六處(여세존설육처) 何等爲六(하등위육)?

마치 세존께서 설하시는 여섯 가지 요점=六處를 말씀하심과 같사오니, 6처란 것은,

謂正法住正法滅(위정법주정법멸) 波羅提木叉(바라제목차) 叉 깍지낄 차, 갈래 차, 

이른바 ① 바른 법이 머무는 것 (바른 가르침의 유지)=正法住, ② 바른 가르침(법)의 소멸=正法滅, ③ 계본=波羅提木叉, 

比尼出家受具足(비니출가수구족) 尼 신중 니, 여승 니, 

④ 교단의 규범=毘尼, ⑤ 출가하는 것, ⑥ 구족계를 받는 것이며, 

爲大乘故說此六處(위대승고설차육처) 대승을 위하여 이러한 여섯 가지 요점을 설하셨으니,

何以故(하이고)? 正法住者(정법주자) 爲大乘故(위대승고)

왜냐하면, 바른 법=正法의 유지는 대승을 위하기 때문이니,

說大乘住者卽正法住(설대승주자즉정법주)

대승이 머무는 것이 곧 정법이 머무는 것이라고 설하는 것이며,

正法滅者(정법멸자) 爲大乘故(위대승고) 說大乘滅者卽正法滅(설대승멸자즉정법멸)

정법의 소멸은 대승을 위하여 말씀하신 때문이므로, 대승의 소멸이 곧 정법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하는 것이며,

波羅提木叉(바라제목차) 比尼此二法者(비니차이법자) 義一名異(의일명이)

바라제목차=계본과 비니=교단의 규범, 이 두 가지는 뜻은 한 가지면서 이름만 다른 것이니,

比尼者卽大乘學(비니자즉대승학)

교단의 규범은 곧 대승의 배움입니다.

 

何以故(하이고) 以依佛出家而受具足(이의불출가이수구족)

그 까닭은 부처님에 의지하여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는 것이므로

是故說大乘威儀戒是比尼(시고설대승위의계시비니)

그러므로 대승의 위의인 계=大乘威儀戒가 곧 比尼=교단의 규범이며, 

是出家是受具足(시출가시수구족) 출가이며, 구족계를 받는 것이라 설하는 것이며,

是故阿羅漢無出家受具足(시고아라한무출가구족)

그러므로 아라한은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는 일이 없사오니, 

何以故(하이고) 阿羅漢依如來出家受具足故(아라한의여래출가수구족고)

왜냐하면 아라한은 여래를 의지하여 출가하였고, 또 구족계를 받는 까닭입니다.

 

◎ 二乘有恐怖 - 이승(二乘)들은 두려움이 있다.

阿羅漢歸依於佛(아라한귀의어불) 阿羅漢有恐怖(아라한유공포)

아라한은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나, 아라한은 공포가 남아 있으니,

[그렇지만 아라한은 부처님께 귀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라한에게는 아직 완전히 번뇌를 끊지 못해 생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며]

何以故(하이고) 阿羅漢於一切無行怖畏想住(아라한어일체무행포외상주)

왜냐하면, 아라한은 一切無行=온갖 것에 대한 행이 없으며, 두려워하는 생각에 머물기 때문에

[즉 아라한은 아직 일체의 보살행을 닦지 않아서 실천 수행에 대해 다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如人執劍欲來害己(여인집검욕래할기) 是故阿羅漢無究竟樂(시고아라한무구경락)

마치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와서 나를 해치려 함과 같으므로, 아라한은 끝까지 즐거움이 없나니,

[아라한은 보살행 하는 것에 대해 마치 어떤 사람이 생사의 번뇌를 상징하는 칼을 들고서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라한에게는 중생을 구제함으로서 느끼는 진정한[究竟] 즐거움이 없습니다.]

何以故(하이고) 世尊(세존)! 依不求依(의불구의) 如衆生無依(여중생무외)

그 까닭은 세존이시여, 의지할 데를 구하지 않는 이에게 의지하는 것인데, 저 중생들은 의지처가 없으므로

[그러므로 아라한은 자신의 생사 해탈을 위해 부처님께 의지할 뿐 다른 것에서 의지처를 구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어리석은 중생들은 마음에 중심이 되는 의지처가 없으므로]

彼彼恐怖(피피공포) 以恐怖故則求歸依(이공포고즉구귀의)

그들은 가는 데마다 공포를 느끼고, 공포를 느낌으로 말미암아 의지처를 구하나니,

[모든 대상과 현상에 대해 공포를 느껴 무엇인가 의지할 곳을 찾게 됩니다.]

如阿羅漢有怖畏(여아라한유포외) 以怖畏故依於如來(이포외고의어여래)

그와 같이 아라한은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므로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라한도 아직 생사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사 해탈을 위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 唯有如來得般涅槃 - 오로지 여래만이 열반의 세계를 얻음

世尊(세존) 阿羅漢辟支佛有怖畏(아라한벽지불유포외)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두려움을 갖습니다.

[세존이시여 성문 중에서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과 스스로 연기의 이치를 깨달은 벽지불[綠覺]은 아직 생사에 대한 공포와 실천 수행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是故阿羅漢辟支佛(시고아라한벽지불) 有餘生法不盡故有生(유여생법불진고유생)

또한 아라한과 벽지불에게는 有餘=업의 잔재가 남아 있어, 生法=윤회와 재생으로 이어지는 성질이 다하지 않았으므로 태어남이 있으며,

[그리고 아라한과 벽지불은 아직 완전히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사의 유한한 법에 저촉을 받습니다.]

有餘梵行不成故不純(유여범행불성고불순) 事不究竟故當有所作(사불구경고당유소작)

有餘= 업의 잔재가 있음에 梵行=청정한 행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순수하지 못하며,
일이 끝나지 못하였으므로 마땅히 지어야 할 바가 있으며,

[또한 아직 청정한 보살의 실천 수행 [梵行]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의 때가 남아 있어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며, 수행에 있어서도 부처님의 경지인 구경(究竟)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보살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스러움(梵, ārya)은 멸제의 청정한 특성을 이름하기 때문이고, 성스러운 행을 현증하므로 梵行이라 한다

不度彼故當有所斷(불도피고다유소단) 以不斷故去涅槃界遠(이불단고거열반계원)

피안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이 있으며, 끊지 못한 것이 있으므로 열반의 세계=涅槃界와는
거리가 머나이다.

[또한 생사를 벗어난 피안의 세계인 열반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반드시 끊어야 할 생사의 번뇌가 있으므로 부처님의 깨달음 상태인 열반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唯有如來應正等覺得般涅槃(유여래응정등각득반열반)

그 까닭을 말하면, 오직 여래ㆍ응공ㆍ정등각만이 반열반에 들 수 있사오니,

[왜냐하면 오직 여래․응공․평등하고 바른 진리를 깨달은 정변지만이 완전한 깨달음인 반 열반을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며 ]

成就一切功德(성취일체공덕) 온갖 공덕을 모두 성취한 까닭이오며,

[널리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일체의 온갖 공덕을 달성하기 때문이며,]

故阿羅漢辟支佛不成就一切功德(고아라한벽지불불성취일체공덕)

아라한ㆍ벽지불은 온갖 공덕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나

[아라한과 벽지불은 아직 부처님처럼 모든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일체 모든 공덕을 성취하지는 못하였으나]

言得涅槃者是佛方便(언득열반자시불방편)

열반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부처님의 방편일 뿐이니,

[수행을 통해 번뇌를 제거해 열반을 증득했다고 아라한들에게 말씀하신 까닭은 다만 부처님의 교묘한 수단[方便]일 뿐입니다.]

唯有如來得般涅槃(유유여래득반열반) 成就無量功德(성취무량공덕)

오직 여래만이 般涅槃=완전한 열반에 들 수 있사오니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까닭이오며, 

[오직 부처님만이 완전한 깨달음인 반 열반을 얻을 수 있으니, 그것은 널리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불가사의한 공덕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故阿羅漢辟支佛成就有量功德(고아라한벽지불성취유량공덕)

아라한ㆍ벽지불은 有量功德=한량 있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나,

[다만 아라한과 벽지불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의 유한한 공덕을 성취한 것이나] 

言得涅槃者是佛方便(언득열반자시불방편)

열반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부처님의 방편입니다.

[그런데도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인 반 열반을 성취했다고 말한 것은 오직 그들을 제도하기 위한 부처님의 교묘한 수단=방편인 것입니다.]

唯有如來得般涅槃(유유여래득반열반) 一切所應斷過(일체소응단과)

오직 여래만이 반열반을 얻었사오니, 온갖 끊어야 할 허물을

[오직 여래께서만이 반 열반을 성취하였으니, 그것은 당연히 끊어야 할 일체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

皆悉斷滅(개실단멸) 成就第一淸淨(성취제일청정)

모두 끊어 버리고 제일가는 청정을 성취한 까닭이오며,

 [가장 훌륭한 청정공덕을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阿羅漢辟支佛有餘過(아라한벽지불유여과) 非第一淸淨(비제일청정)

아라한이나 벽지불은 남은 허물이 있으므로 제일가는 청정이 아니지만

言得涅槃者是佛方便(언득반열자시불방편)

열반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부처님의 방편입니다.

 

唯有如來得般涅槃(유유여래득반열반) 爲一切衆生之所瞻仰(위일체중생지소첨앙)

오직 여래만이 반열반을 얻으시어 온갖 중생들의 우러러 봄이 되어
瞻 볼 첨, 仰 우러를 앙, 

[오직 부처님만이 반 열반을 성취해 일체 모든 중생에게 존경을 받는 까닭은]

出過阿羅漢辟支佛菩薩境界(출과아라한벽지불보살경계)

아라한, 벽지불, 보살들의 경계에서 초월하였사오며, 

 [오직 부처님만이 아라한과 벽지불 그리고 보살의 경지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是故阿羅漢辟支佛去涅槃界遠(시고아라한벽지불거열반계원)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은 열반계와의 거리가 멀지만,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은 진정한 깨달음의 상태인 열반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 것이니]

言阿羅漢辟支佛(언아라한벽지불) 觀察解脫四智(관찰해탈사지)

아라한과 벽지불이 해탈하는 네 가지 지혜를 관찰하여

[다만 아라한과 벽지불은 해탈과 4성제를 통해 네 가지 지혜[四智]의 궁극적인 가르침인 사리의 마지막인 구경(究竟)을 관찰하고]

究竟得蘇息處者(구경득소식처자) 亦是如來方便有餘不了義說(역시여래방편유여불요의설)

마침내 번뇌가 쉬는 경지=蘇息處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 역시 여래의 방편이니, 업의 잔재를 남기는 것이고 궁극적인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한 가르침=不了議設일 뿐입니다.

蘇 차조기 소, 향할 소, 되살아날 소

 [수행 정진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상태인 소식처(蘇息處)를 성취했다고 말하셨으나, 그것은 다만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사용한 교묘한 방편일 뿐, 아직도 대승의 참된 이치를 완전히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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