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서의 시작
◎寶積(보적)의 歎佛偈頌(탄불게송) - 보적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爾時毘耶離城有長者子(이시비야리성유장자자) 名曰寶積(명왈보적)
그때 비야리성의 장자(長者)의 아들로서 보적(寶積)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At that time, in the city of Vaisali, the son of an elder, Jewel Accumulation,
[장자(長者)= 혈통이 고귀하고 지위가 높고 부유하고 위엄이 있는 등 열 가지 덕을 갖춘 이]
[비야리성=Vaisali 바이샬리, 한문으로 음사 하면 비야리, 비야리성을 무대로 해서 유마경이 결집되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교화를 다니시다가 비야리성에서 비로소 ‘내가 열반에 들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열반에 드실 것을 예고하신 장소입니다.]
與五百長者子(여오백장자자) 俱持七寶蓋(구지칠보개) 來詣佛所(내예불소)
그는 5백 명의 장자의 아들들과 함께 저마다 칠보로 꾸민 일산을 받쳐 들고, 부처님 계신 곳을 찾아와서
together with five hundred other sons of elders, came to the Buddha’s dwelling place carrying canopies adorned with the seven treasures.
頭面禮足(두면예족) 各以其蓋共供飬佛(각이기개공공양불)
부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예배하고 들고 온 일산을 모두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Prostrating with their heads at his feet, and then each of them offered their canopies to the Buddha.
[예불(禮佛)의 예배란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줄여서 예(禮) 혹은 배(拜)라고도 한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예배란 공경이며 굴복이다.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無明)을 굴복시키는 일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예배의 방식으로 대지도론(大智度論)에, "하중상(下中上)의 예가 있는데, 하(下)는 읍(揖), 중(中)은 궤(墦), 상(上)은 계수(稽首)이다. 두면예족(頭面禮足)은 으뜸가는 공양이다"라고 했다.
읍(揖)은 손을 모아 허리를 굽히는 정도를 말하는데, 합장이 이에 해당된다.
궤(墦)는 무릎을 끊고 절하는 것[墦拜]인데, 우슬착지(右膝着地)가 이에 해당된다.
계수(稽首)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공손히 절하는 것, 즉 머리와 얼굴을 상대편의 발에 대는 것으로, 흔히 오체투지(五體投地)라고 부른다. 오체투지는 인간의 신체 가운데 최상인 머리를 최하인 발에 댐으로써 최대의 공경을 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하는 절 동작에 손을 뒤집어 올리는 것이 있다. 이를 사람들은 붓다를 받들어 올린다거나, 또는 연꽃이 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이의 정확한 명칭은 접불족례(接佛足禮)라고 붓다의 발을 만지는 것 즉, 머리를 발에 대고 그 발을 손으로 만지는 것을 나타낸다. - 네줄의 행복]
佛之威神(불지위신) 令諸寶蓋合成一蓋(영제보개함성일개)
부처님께서는 그의 위신력으로 일산들을 합쳐 하나로 만들어,
The Buddha made the hundreds of canopies into one great canopy to cover the three thousand worlds by his divine power.
[合成一蓋 유마경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마음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세계의 일체 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다섯 가지 법, 지수화풍(地水火風)고 공(空, 공간)을 더해서 오법으로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세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오백 개의 일산이 한 개의 일산으로 합해졌다는 것은 각각 차별된 사상과 얼굴과 습관과 시비와 온갖 갈등이 하나로 통일된, 둘이 아닌, 하나로 뭉쳐진 진리의 세계, 그 진리의 세계를 우리가 공히 찾아야 되고, 그 진리의 세계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용납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合成一蓋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유마경 핵심을 서두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경전이 이렇게 치밀하게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遍覆三千大千世界(편부삼천대천세계) 而此世界廣長之相(이차세계광장지상)
悉於中現(실어중현)
그것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었으니, 그 세계의 깊고 넓은 모양이 온통 그 일산 가운데 나타났으며,
No matter how vast is the world it is still entirely visible in there.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었으니 우리 모두 한마음, 하나로 통일이 됐다는 것입니다.]
又此三千大千世界(우차삼천대천세계) 諸須彌山雪山(제수미산설산)
뿐만 아니라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수미산과 설산,
There were three thousand great worlds, together with Mound Sumeru, Mount Snowy,
目眞鄰陁山(목진린타산) 摩訶目眞鄰陁山(마하목진린타산)
목진린타산, 마하목진린타산,
鄰 이웃 린, 陁 비탈질 타,
Mount Mucilinda, Mount Mahamucilinda,
香山寶山金山黑山(향산보산금산흑산) 鐵圍山大鐵圍山(철위산대철위산)
향산, 보산 금산, 흑산, 철위산 대철위산과
Mount Gandhamadana, Mount Ratnaparvata, Mount Gold, Mount Blank, Mount Iron Encircling, Mount Great Iron Encircling,
[산의 의미는 아만(我慢)의 산(山), 나 잘났다고 하는 아만심을 뜻하고, 산을 비추어서 산이 다 드러난다는 것은 잘났다고 하는 개개인의 모습이라고 무비스님은 해석하십니다]
大海江河川流泉源(대해강하천유천원) 及日月星辰(급일월성진) 辰 별 진,
큰 바다와 강과 개천과 냇물과 샘물, 그리고 해와 달, 별들이며
the sea rivers rivers, springs, and the sun, moon, and stars in the sky,
天宮龍宮諸尊神宮(천궁용국제존신궁) 悉現於寶蓋中(실현어보개중)
천궁, 용궁과 여러 신의 궁전 모두가 보배일산 가운데 나타나고
the heavenly palace, the dragon palace, and the palaces of the venerable gods, all appearing in the jeweled canopy.
[悉現於寶蓋中(실현어보개중) 이 삼천대천 세계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전부 다 나타났다는 것은 개개인의 차별된 모습, 각각 다른 모습이 그대로 수용이 되고 용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백 개가 하나로 합성된 하나의 거대한 일산에 전부 나타났다는 것은 통일된 우리의 한마음속에 개개인의 개성, 개개인의 장기, 개개인의 어떤 취향, 개개인의 근기, 개개인의 근성이 전부 다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又十方諸佛(우시방제불) 諸佛說法(제불설법) 亦現於寶蓋中(역현어보개중)
또 시방에 계신 여러 부처님과 그 부처님들의 법문 말씀 하시는 모양도 또한 이 칠보의 보배 일산 가운데 나타났다.
And all the Buddhas in the ten directions, the Buddhas that are speaking the Dharma, also appeared in the jewelled canopy.
[제불(諸佛)세계 내지 온갖 삼천대천 세계가 보배 일산 가운데 나타났다는 것은 우주 삼라만상이 전부 일심소현이다. 내 마음의 나타난 바, 하나라고 하는 것이고, 둘이 아닌, 즉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모습과 저 모습이 밖으로 드러난 현상은 다르지만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통일된 하나이고 둘이 아니라는 유마경의 근본 취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爾時一切大衆(이시일체대중) 睹佛神力(도불신력) 歎未曾有(탄미증유)
그 때에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거룩한 신통력을 보고 일찌기 보지못한 일임을 찬탄하였으며,
睹 볼 도
At that time, all the people who saw the Buddha’s divine power with their own eyes exclaimed they had never seen such a demonstration before
[우리가 상상하는 부처님의 신력이 아닌, 온 우주와 삼라만상의 근본인 근본 생명체, 삼라만상의 생명의 실상, 그것이 바로 진짜 부처님의 신력입니다.]
合掌禮佛(합장예불) 瞻仰尊顏(첨앙존안) 目不蹔捨(목불잠사)
합장하고 경례하며 부처님의 존안(얼굴)을 우러러 보며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으며,
瞻 볼 첨, 仰 우러를 앙, 蹔 잠깐 잠, 잠시 잠, 捨 버릴 사
and then joined their hands in obeisance and looked up to the Buddha, unable to take their eyes off him.
於是長者子寶積(어시장자보적) 卽於佛前(즉어불전) 以偈頌曰(이게송왈)
이 때에 장자의 아들 보적이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Then the son of the elder, Jewel Accumulation, chanted this verse before the Buddha:
[偈頌(게송)= 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의 한 형태이며 선가(禪家)의 시게(詩偈)·송고(頌古)·가송(歌頌) 등을 통칭한다.
게는 범어(梵語)인 가타(Gatha) 또는 기야(Geya)의 음역(音譯)인 가타(伽陀)·게타(偈陀) 또 는 기야(祇夜)를 약칭하여 게(偈)라 하였다. 한시(漢詩)의 송(頌)의 일종이기 때문에 합하여 게송이라 하게 되었다. 게송은 범어와 한자어가 합성된 명칭인 셈이다.
게송은 인도의 가타가 운(韻)이 있는 시의 형식이었기 때문에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한시의 형식에 맞추어졌던 것 시의 한 형태로 독립되었다. 그러나 원래는 불교경전의 산문 내용을 시의 형태로 되풀이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형식을 중송(重頌)이라 하였다.
불경의 문체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장행(長行) 또는 계경(契經)이라 하여 경의 뜻을 풀어 쓰는 산문이다. 둘째는 중송(重頌) 또는 응송(應頌)이라 하여 경의 산문을 요약 서술하는 시가의 형태이다.
셋째는 가타 또는 게송이라 하여 불경의 산문과는 관계없이 불교적 교리를 시가로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송이라 함은 둘째와 셋째의 중송과 가타를 함께 일컫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성게(法性偈)로 알려져 있는 의상(義湘)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가 가장 오래된 게송이라 할 수 있다.]
目淨脩廣如靑蓮(목정수광여청연) 心淨已度諸禪定(심정이도제선정)
맑은 눈 길고 넓기가 푸른 연꽃 같고, 그 마음은 맑아 온갖 선정 다 닦으셨고
脩 포 수, 稽 생각할 계, 조아릴 계,
Your eyes are pure and broad like a blue lotus,
With a pure mind, having already achieved all meditations;
[부처님을 안장유학이라고 하는데, 관상학에서 눈이 길면은 학문이 있다고 합니다.]
久積淨業稱無量(구적정업칭무량) 導衆以寂故稽首(동중이적고계수)
오래도록 쌓은 정업은 헤아리기 한량이 없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시니 머리숙여 정례드립니다.
A long accumulation of immeasurable pure karma,
Guilding all people to nirvana, thus we bow our heads.
[이도(已度)= 이미 다 마쳤다, 건너갔다, 온갖 선정들을 다 끝냈다는 뜻.
계수(稽首)= 머리 조아릴 계(稽), 머리 숙일 계(稽). 머리를 숙인다.]
旣見大聖以神變(개견대성이신변) 普現十方無量土(보현시방무량토)
大聖=부처님께서 신비한 교화의 힘=神變을 널리 나타내시니
We have seen Great Sage’s divine transformation,
Manifesting the immeasurable lands of the ten directions,
其中諸佛演說法(기중제불연설법) 於是一切悉見聞(어시일체실견문)
시방의 한량없이 많은 나라들을 널리 드러내시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펴시니, 남김없이 모두 다 보고 듣습니다.
Among where the Buddhas expound the Dharma,
Thereupon, it is all as we have seen and heard.
法王法力超群生(법왕법력초군생) 常以法財施一切(상이법재시일체)
위대한 법왕의 法力=가르침의 힘은 세상=群生을 뛰어넘어,
항상 가르침의 재물=法財를 일체 중생에게 베푸시며
Dharma King’s Dharma power exceeds all living beings,
Always giving the wealth of the Dharma upon them all;
[법왕= 부처님= 진리의 왕의 법의 힘은, 군생(群生),=온갖 여러 중생들을 다 뛰어 넘으시어,]
能善分別諸法相(능선분별제법상) 於第一義而不動(어제일의이부동)
온갖 사물의 법상을 바르게 판단=善分別하시니
진리의 참다운 모습=第一義를 잃지 않으십니다.
Good at differentiating the many forms of the Dharma,
Unmoved by relying upon the ultimate meaning.
[능히 모든 법상(法相)을 잘 분별해서 법을 잘 알지만, 제일의=제일의 이치에 있어서 하나도 움직이는 게 없다,
제일의(第一義)= 근기 따라 삼승법(三乘法)으로 설명하는 등의 이치가 아닌, 근본(根本)적인, 진여(眞如)의 이치, 우리 본래심(本來心)의 이치에서 떠나 있지 않으며, 즉 그 제일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것.
그 사람의 근기에 맞추어서 법을 설명하지만, 가장 근본 되는 성불의 원칙에 입각해서 한다.]
已於諸法得自在(이어제법득자재) 是故稽首此法王(시고계수차법왕)
이미 제법에 자유자재하시니, 때문에 이 법왕께 머리 숙여 절하네.
Already attaining a perfect ease in all Dharmas.
Therefore, I bow to the King of Dharma;
說法不有亦不無(설법불유역불무) 以因緣故諸法生(이인연고제법생)
제법(사물)은 있는 것=有도 아니고 없는 것=無도 아닌, 인연으로 인하여 제법이 생긴 까닭에
Who expounds that the Dharma neither is nor is not.
It is because of cause and condition that all Dharmas arise.
[설법은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네, 금강경에서 부처님의 설법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라 하였으나, 없다고 하려니까 산더미처럼 부처님의 법이 많고, 있다고 하려니까 부처님을 비방하는 게 되고, 있다고 고집해도 안되고, 없다고 하는 편견에 떨어져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연이 있음으로 모든 법이 생(生)했다, 인연 즉 중생의 병 때문에, 중생의 차별된 근기들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온갖 법이 생긴 것이고, 온갖 설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처방으로 모두에게 맞출 수 없는 것처럼 체질 따라서 약이 달라지는 것과 같이, 각양각색의 인연 때문에 제법(諸法)이 생(生)했다는 것입니다.]
無我無造無受者(무아무조무수자) 善惡之業亦不亡(선악지업역불망)
나라는 실체도 없는=無我이며, 지은 것도 없는=無造이며, 받는 것도 없는=無受이지만
선악의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설하시네.
There is no self, no doer, no experiencer,
Yet the karma of good and evil does not cease;
[이는 보적이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불교의 깨달음을 드러내 놓는 것입니다.
나, 아(我)도 없는= 무아(無我) 즉 고정불변하는 어떤 주체도 없으며, 내가 없으니까 업을 짓는 자도 없다.
따지고 보면 나라고 하는 것도 사대=지수화풍(地水火風)이 인연 따라서 모인 것이고, 또 수상행식(受想行識), 즉 정신세계도 각양각색의 감정이 모여서 우리 정신세계를 형성한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나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아이고 또 내가 없으니까 내가 짓는 것이 없는=무조(無造), 짓는 것이 없으니 과보를 받는 것이 없는= 무수자(無受者)입니다.
선악지업(善惡之業)이 역불망(亦不亡), 선과 악이 또한 없어지지 않았다, 허깨비 속에서 허깨비인줄 알고 살면서도 또 온갖 웃음과 울음, 분통 터지는 일, 심지어는 죽고 싶은 등의 별별 사건들이나 아픔을 겪을 때는 꿈이라고 도저히 할 수 없지만 지나고 보면 꿈같으니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요,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가사백천겁(假使百千劫)이라도 소작업(所作業)은 불망(不亡)이라’ 백천만겁이 지난다 하여도 우리가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
始在佛樹力降魔(시재불수력항마) 得甘露滅覺道成(득감로멸각도성)
처음 佛樹=보리수 아래에서 마왕의 항복을 받으시고
불사의 법=甘露을 얻어시어 滅=열반을 얻고 깨달음을 이루시었으니
Beginning at the Buddha tree, you subdued the demons with force,
Attaining the nectar of nirvana and achieving enlightenment.
[처음 보리수 아래에서 마왕을 물리치시고, 최고의 깨달음, 감로와 같은 열반을 영원히 쟁취하셨나이다.]
[불수(佛樹)= 보리수 또는 각수(覺樹),도수(道樹)]
已無心意無受行(이무심의무수행) 而悉摧伏諸外道(이실최복제외도)
이미 마음엔 번뇌(분별)이 없고 受=받음과 行=지음도 없으시어, 모든 외도를 굴복시키셨네.
摧 꺾을 최, 伏 엎드릴 복,
Already without mind or thought and not bound by activities,
And thoroughly vanquishing all the external paths;
[已無心意無受行= 이미 심의(心意)= 우리의 생각이 없고, 사량분별도 없고, 수(受)=느낌과 행(行)=그 느낌이 흘러가는 것도 없다. 생각으로 어떤 느낌과 그 느낌이 계속 변화해가는 과정 등의 이러한 것이 없다= 무수행(無受行).
而悉摧伏諸外道= 결국은 외도, 마군은 내 마음의 움직임인 심의(心意)와 수행(受行)을 제도했다.
심의와 수행, 우리 마음이 움직이고 변해서 어떤 감각을 느끼고, 그것이 또 변화 발전해서, 따라가는 것= 수(受) 행(行)이 있으니까 온갖 마구니 즉 온갖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다 꺾어서 제도했다, 항복받았다.]
三轉法輪於大千(삼전법륜어대천) 其輪本來常淸淨(기륜본래상청정)
대천 세계에 세 번 법륜(삼전십이상(三轉十二相)의 법륜)을 굴리신(설하신) 그 가르침은 본래부터 항상 청정하고
Turning the wheel of Dharma three times in the thousand worlds,
The wheel was originally always pure.
[其輪本來常淸淨(기륜본래상청정)= 세존께서 개오(開悟)한 다음 맨 처음 가르침을 설하신 것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이 때 세존께서는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 진리를 설하셨다. 이것을 형식상(形式上) 세 가지로 나누어 세 번 설했다고 한다.
그 첫째 示轉(시전)은 이치를 보여주고 고(苦)라고 가르친 것,
둘째 勸轉은 고를 알고 그 근원인 번뇌를 끊지 않으면 안 된다고 권한 것,
셋째 證轉은 나는 이미 고를 알고 번뇌를 이미 끊었다고 증명한 것이다. 법륜(法輪)은 가르침을 뜻하며, ‘륜(輪)’에 대해 ‘전(轉)’이라고 하는 말을 쓰고 있다.]
天人得道此爲證(천인득도차위증) 三寶於是現世閒(삼보어시현세간)
천인(하늘)과 사람이 진리=道를 구함에 이를 등불=證으로 삼으시니
이로써 세간에 삼보를 나타내시네.
(이 보기 드문 법의 가르침 천신과 인간이 증득하니 그에 따라 삼보가 세상에 출현하였네)
Heavenly and human beings have attained the Way as evidence of this,
The Three Jewels are now present in the world;
[天人得道此爲證, 하늘사람 그리고 세상 인간 사람들이 도를 얻어서 이것으로써 증거를 삼았다, 증거가 되니,
三寶於是現世間, 삼보가 여기서에서부터 세간에 나타났다.
즉 부처님이 처음에 성도하셔서 오비구에게 설법한 것이 증명이고, 부처님이 설법하신 것은 법이 되고, 제자=오비구가 있으니까 승보가 있어서 불법승 삼보가 세상에 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以斯妙法濟群生(이사묘법제군생) 一受不退常寂然(일수불퇴상적연) 濟 건널 제,
이 묘법으로써 뭇 중생 제도하시니
한 번 받으면 물러남 없이 항상 열반에 들어
(이 묘한 법으로 제도받은 뭇 중생들은 헛된 상념과 두려움 없어져 항상 고요하고 평화롭구나)
To be of benefit to all sentient beings with this wonderful Dharma,
Once receiving, will never regress from the constant silence.
[以斯妙法濟群生하시니, 묘법으로써 군생= 여러 중생을 제도하시니,
一受不退常寂然이라, 한번 받아들이면 그것이 좋아서 사람들이 물러서지를 않고, 그러면서도 항상 적연하다=常寂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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