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대승론(攝大乘論) 하권 11
아 승 가(阿 僧 伽, 무착) 지음. 불타선다(佛陀扇多) 한역.
然復彼諸佛法界,一切時作五種作事應知:防護衆生諸難事,見者離聾盲瘖啞顚狂等,諸難作事故。救濟防護諸惡道作事,於不善處,勸令安住善處故。無方便防難作事,諸外道無方便,行解脫處,毀令住佛法故。親同見防難作事,過三界助道行故。乘防難作事,諸菩薩住異乘,及不定諸聲聞,令修行住大乘故。此諸五種作事中,一切諸佛等作事應知。是中說偈:
또한 그 모든 부처님의 법계는 언제나 5 가지의 불사를 짓는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중생의 모든 재난을 구제하는 것이니, 보기만 해도 귀먹은 이ㆍ장님ㆍ벙어리ㆍ미친 이 등의 모든 재난을 없애게 되며,
둘째는 모든 살기 괴로운 세계에서 구제하는 것이니, 불선의 장소로부터 선한 장소에 안주하게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방편이 아닌 것을 구제하는 것이니, 모든 외도로 하여금 방편이 아닌 행을 버리고 해탈을 구해서 불법에 안주하게 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친동견(親同見, 아견)을 구제하는 것이니, 삼계를 벗어나는 수도를 돕는 행이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교법을 구제하는 것이니, 다른 교법에 머무는 보살들과 부정종성의 성문들로 하여금 대승에 머물러 수행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5 가지 불사가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등작사(等作事)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因身作事差別故, 及說諸行差別事, 彼差力故諸世閒, 非彼無故諸如來。
원인(因)ㆍ의지신(依止身)ㆍ작사(作事)가 다른 까닭에, 모든 행의 차별됨을 말하는 것이라.
그러한 차이의 차력(差力)이 있는 까닭에 모든 세간이 있는 것이나, 그것이 없으므로 모든 여래는 그렇지 않다네.
若是不共聲聞緣覺`同諸佛法身成就如是功德勢者,彼以何意故,說爲一乘?
是中說偈:
만약 성문이나 연각과 같지 않고,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성취한 이러한 공덕의 세력과 함께 한다면,
그 분(부처님)은 어떠한 취지로써 일승을 말씀하신 것인가?
여기에서 게송으로 설하나니,
別取有餘者, 及持有餘故, 爲不定者說, 諸佛一乘理。
별도로 한 부류를 섭수하고, 나머지를 맡아 지니기 위함이시니,
부정종성(不定種姓)을 위해서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승의 도리를 말씀하셨다네.
오성(五姓)= 五種姓(오종성)은 ① 菩薩定姓(보살정성, 定性菩薩정성보살) · ② 獨覺定姓(독각정성, 定性緣覺정성연각) · ③聲聞定姓(성문정성, 定性聲聞정성성문) · ④三乘不定姓(삼승불정성, 不定種性부정종성) · ⑤無姓有情(무성유정, 無種性무종성)의 다섯으로,
① ② ③은, 각각 佛果(불과 · 辟支佛果벽지불과) · 阿羅漢果아라한과)를 얻는 것에 정해진 決定性(결정성),
② ③을 합쳐서 定性二乘(정성이승)이라하고,
④는 보살 및 독각 · 성문의 三類(삼류)의 本有種子(본유종자)를 아울러 갖추고, 二乘(이승)의 수행을 한 뒤 大乘(대승)에 轉向(전향)해서 佛果(불과)를 깨닫는 등, 果(과)가 결정적이 부정종성(不定種性)이다.
⑤의 무성유정은 영원히 迷界(미계)에 빠져서 苦(고)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고, 겨우 五戒(오계) · 十善(십선)의 善因(선인)을 닦아서 사람이나 天(하늘)에 태어날 수가 있게 되는 무종성(無種性)이다.
이 五姓各別(오성각별)의 說(설)은 楞伽經(능가경) 권二와 解深密經(해심밀경) 권二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이 입장에서 보면, 법화경 등과 같이 모든 중생이다 成佛(성불)할 수 있다는 說(설)에 대하여, 그것은 不定性(부정성)인 사람을 인도하여 大乘(대승)에 들어가게 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 說(설)이라고 해석한다.
信於法無我, 等有性差別, 深心應化故, 盡處唯一乘。
법무아(法無我)를 믿고, 종성의 차별이 평등하게 있으며,
심오한 심심(深心)으로 화현하시는 까닭에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일승이라네.
以何義故,一切諸佛如來等同法身,而說多佛事故? 於中說偈:
모든 부처님께서는 평등한 법신이시거늘, 무슨 까닭으로 많은 부처님의 불사를 말하는 것인가?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一界無有二, 常同有作事, 次行不順故, 釋成多佛事。
한 세계에 두 분이 계시지 않으시나, 언제나 동시에 불사를 지으시니,
순서대로 행함에 따르지 않는 까닭에 많은 부처님의 불사가 있게 되었네.
法身諸佛,云何不永涅槃?非不永涅槃應知。是中說偈: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어찌하여 궁극적으로 열반에 들지 않으시는 것이며?
또한 궁극적으로 열반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인가?
여기에서 게송으로 설하나니,
遠離一切障, 及作事不盡, 諸佛永已滅, 亦是不名滅。
모든 장애를 멀리 여의신 때문이며, 하셔야 할 바가 끝이 없기 때문이니,
부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열반에 드시나, 또한 열반에 드시지 않는다고 말한다네.
何故報身不名具眞身成?有六種相故,示現色身故;及無量佛世界中,分別現故;隨信現故;不定見眞實,異種種見故;現同生事,菩薩`聲聞`天等種種衆雜見故;及阿犂耶識等轉身現故,唯成報身不名眞身。
어째서 보신(報身)은 진신(眞身)을 구족해서 이룬다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6 가지의 상(相)이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색신(色身)을 시현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무량한 불세계에서 분별하여 시현하나니, 믿음을 따라 시현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일정하지 않게 보는 부정견(不定見)은 진실에 대하여 다르게 보기 때문이며,
넷째는 여러 가지로 보기 때문에 같은 중생의 업(事)을 나타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살ㆍ성문ㆍ하늘 등의 갖가지 법회에 섞어서 보기 때문이고,
여섯째는 아리야식 등의 의지처의 전환인 전신(轉身)이 나타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오직 보신(報身)을 이루는 것일 뿐, 진신(眞身)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ㅡ보신이 진신과 다른 점을 여섯 가지로 말하였다.
有何義故,唯是應身不名眞身?有八相故。諸菩薩遠時,得不動三昧,兜率天中`人中生事不成。宿命知者,書數筭印工巧論,受欲行餘事中,無知不成。不善說及善說法中知已,往親近外道處不成。善知三乘行故,苦行不成。
어떠한 뜻으로, 오직 응신(應身)이라고 할 뿐, 진신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8 가지의 상(相)이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모든 보살이 아득한 옛적에 부동삼매를 얻었다면 도솔천과 인간세계에서 태어나는 것이 성립되지 않으며,
둘째는 과거세를 아는 숙명지(宿命知)의 이가 글씨(書)ㆍ산술(數)ㆍ조각(印)ㆍ공예(工) 기술과 욕락을 수용하는 행 등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으며,
셋째는 잘못 말했거나 훌륭하게 말하여진 법을 알고서도 외도의 처소에 가서 가까이하는 일은 성립되지 않으며,
넷째는 삼승의 수행을 잘 알기 때문에 고행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으며,
捨百億閻浮提,一閻浮地中,成正覺轉輪不成。中閒成正覺示方便,餘處應化身作佛事,彼唯兜率天中成正覺,何故不一切閻浮提中,同時成正覺事?知此知中,無阿含證,復無餘義可解釋成。復無二佛同時一世界中現,有相違故,彼多化故,攝取四方世閒,及如無二轉輪聖王同時生故。是中說偈:
다섯째는 백억의 염부제를 버리고 다만 하나의 염부제에서 정각을 이루고 법륜을 굴힌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으며,
여섯째는 중간에 정각을 이루고 방편을 보이며 다른 곳에서 화신을 나투어 불사를 짓는다면, 그는 오직 도솔천에서 정각을 이루어야 하거늘, 어찌해서 모든 염부제에서 동시에 정각을 이루지 않는 것인가? 여기에는 아함의 증명도 없고,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다른 해석도 없으며,
일곱째는 두 분의 부처님께서 동시에 하나의 세계에 출현하지 않는 것에 위배되기 때문이니, 그 분은 화신을 많이 나툼으로써 시방 세계를 섭수하시는 것이 마치 두 분의 전륜성왕이 동시에 출현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게송으로 설하나니,
諸佛未應化, 同至多藏故, 一切相成覺, 見故而能行。
모든 부처님께서 아직 화신(化身)을 나투지 않았을 때에는 마찬가지로 대부분 모태에 있으신 것이니,
일체상(一切相)의 정각을 이루는 것을 보시기 때문에 능히 행하시는 것이라네.
一切衆生利益事,萬行修集大菩提,永入涅槃,不成願行,徒修無報故。
여덟째는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일체의 행을 하여서 대보리를 닦고 궁극에 열반에 든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으니, 서원을 행하고 애써서 수행함에 결과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ㅡ응신이 진신과 다른 점을 여덟 가지로 설명하였다.
報身`應身無常故,云何諸佛常身?依常法身故,於諸因身,應身報不定故。
復應身者,視現功德,如常受樂,及如常勢故,常事應知。
보신(報身)과 응신(應身)은 무상하거늘, 어찌하여 모든 불신(佛身)은 상주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상주하는 법신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모든 원인의 의지신인 인신(因身)에 대하여 응신의 과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응신이 공덕을 시현함이 마치 세간이 항상 즐거움을 수용하고, 항상 세력이 있음과 같다.
諸佛法身,雖無量無邊,時諸佛義處,無有假用作事。於中說偈:
모든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무량하고 아득한 옛적부터 있어 온 것이지만,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의식적인 노력인 유가용(有假用)으로 불사를 짓지는 않으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게송으로 설하나니,
諸佛德勝無異無量, 衆生因弱彼不失者, 得已得彼一切無因, 有斷彼不應順成。
부처님의 공덕은 뛰어나고 차별이 없는 무이(無異)이며 무량하나니,
중생의 원인이 미약할지라도 그것을 잃지 않으며,
증득하고 증득함의 득이득(得已得)에 일체의 원인이 없는 무인(無因)이니
그것을 단멸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攝大乘論卷下 終 섭대승론 하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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