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3
▷12처(十二處)에 나아가 여래장을 밝힘.
復次,阿難!云何十二處本如來藏妙眞如性?
또 아난아, 어찌하여 12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인 묘진여성(妙眞如性)이라고 하는 것인가?
ㅡ12처에서 처(處)는 들어오는 곳으로, 육근과 육진(육경)을 합한 것이다.
육근(六根)ㅡ안, 이, 비, 설, 신, 의ㅡ6내처(六內處)
육경(六境)ㅡ색, 성, 향, 미, 촉, 법ㅡ6외처(六外處)
▷6내처(六內處)의 안처(眼處) - 색진(色塵)
阿難!汝且觀此祇陁樹林及諸泉池。於意云何,此等 爲是色 生眼見 眼生色相
아난아, 너는 또 이 기타원(祇陀園)의 숲과 온갖 샘물과 연못들을 보아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것들은 색상(色相)이 안견(眼見)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눈(眼)이 색상(色相)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ㅡ기타림과 온갖 샘과 연못은 물징의 색상(色相)으로,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은 눈(眼)이다.
*색상(色相),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 물체의 객관적인 형상.
*안견(眼見), 색상을 볼 수 있는 안식(眼識)의 작용.
阿難!若復眼根生色相者,見空非色,色性應銷,銷則顯發一切都無,色相旣無,誰明空質?空亦如是。
아난아, 만약 안근(眼根)이 색상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때에는 색상이 아니므로 색성(色性)이 반드시 사라질 것이다.
색성(色性)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일체가 모두 없어질 것이니, 색상이 이미 없어지면 어떻게 허공의 본질을 밝힐 수 있겠는가!
허공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ㅡ눈이 색상을 생겨나게 한다면 눈이 색성(色性)이 된다. 그러나 허공을 볼 때에는 이미 색상이 없으므로 색성이 마땅히 사라질 것이니, 눈 속에서 색성이 이미 없어지면 나타나는 일체가 모두 색상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 색과 공 두 법은 상대를 기다려서 나타나는 것이니 색상이 이미 없어졌다면, 허공을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호공의 본질을 밝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눈이 색처를 생겨나게 한다는 것은 허망한 생각이다.
'허공도 역시 그러하다'고 한 것은 색으로 인하여 허공도 역시 일정한 처소가 없음을 예시한 것이다.
또한 나무와 숲과 샘과 연못 등은 모두 조건과 상황에 따라 생긴,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으로 모두가 환화상(幻化相)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 색처(色處), 안식(眼識)의 소의가 되가 하는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 등의 대상체를 말한다.
若復色塵生眼見者,觀空非色,見卽銷亡,亡則都無,誰明空色?是故當知,見與色空俱無處所,卽色與見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만약 물질인 색진(色塵)이 눈으로 보는 안견(眼見)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때에는 색상(色相)이 아닐 것이므로, 보는 견(見)이 곧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 없어지면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이니, 어떻게 허공인지 색상인지를 밝힐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보는 주체(見)와 대상인 물질(色)과 허공은 모두 처소가 없는 것으로, 보는 주체(見)와 물질(色)의 두 가지는 허망한 것으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
ㅡ색이 능히 보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때에는 보는 주체가 생길 곳이 없으므로 '사라진다'고 한 것이다. 없어지면 곧 보는 주체도 없을 것인데, 누가 허공과 물질을 밝히겠는가? 그렇다면 물질이 안처(眼處)에서 생기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망령된 생각인 것이다.
阿難!汝更聽此祇陁園中,食辦擊鼓、衆集撞鍾,鍾鼓音聲前後相續。於意云何,此等爲是聲來耳邊?耳往聲處?
아난아, 너는 다시 이 기타원(祇陀園)에서 공양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대중들을 불러 모을 때에는 종을 치는데, 그 종 소리와 북소리가 앞과 뒤로 서로 이어지는 것을 들어 보아라!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소리가 귓가에서 온 것인가?
아니면 귀가 소리 있는 곳으로 간 것인가?
ㅡ오고 가는 것을 분별해야만 진실한 처소가 있을 것이니, 이는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는 것에 의하여 귀와 소리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이다.
阿難!若復此聲來於耳邊,如我乞食室羅筏城,在祇陁林則無有我;此聲必來阿難耳處,目連、迦葉應不俱聞,何況其中一千二百五十沙門,一聞鍾聲同來食處。
아난아, 만약 그 소리가 귓가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가 실라벌성(室羅筏城)에서 걸식(乞食)을 할 때에는 기타림(祇陀林)에는 내가 없는 것과 같이, 그 소리가 반드시 아난의 귓가에서 온 것이라면, 목련과 가섭은 당연히 듣지 못해야 할 것이거늘, 어떻게 1,250 사문(沙門)이 한꺼번에 종소리를 듣고 다같이 공양할 곳으로 오는 것인가?
ㅡ'내가 실라벌성(室羅筏城)에서 걸식(乞食)을 할 때에는 기타림(祇陀林)에는 내가 없는 것'이란, 소리가 귓가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른 곳에는 소리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若復汝耳往彼聲邊,如我歸住祇陁林中,在室羅城則無有我;汝聞鼓聲,其耳已往擊鼓之處,鍾聲齊出應不俱聞,何況其中象馬牛羊種種音響。
만약 너의 귀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가는 것이라면, 내가 기타림(祇陀林)에 돌아와 머물고 있을 때에는 실라벌성(室羅筏城)에는 내가 없는 것과 같이, 네가 북소리를 들을 때에는 귀가 이미 북을 치는 곳으로 갔으므로, 종소리가 함께 날지라도 마땅히 한꺼번에 듣지 못해야 할 것이며,
더욱이 어떻게 코끼리와 말과 소와 양 등의 여러 가지 소리들을 한꺼번에 다 들을 수 있는 것인가?
ㅡ'내가 기타림(祇陀林)에 돌아와 머물고 있을 때에는 실라벌성(室羅筏城)에는 내가 없는 것'이란, 귀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간다면, 다른 곳에는 귀가 없을 것이나, 다른 소리도 다 듣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귀가 간 것을 아니다.
若無來往,亦復無聞。是故當知聽與音聲俱無處所,卽聽與聲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만약 오고 감이 없다 할지라도 역시 들음마저도 없을 것인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듣는 주체(작용)와 소리는 모두 처소가 없는 것이니 듣는 주체(작용)와 소리의 두 처소는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
ㅡ견성(見性)과 색(色)과 공(空)이 실처(實處)가 없는 환망상(幻妄相)이며 인연도 자연도 아니다.
미혹하면 색과 공이 서로 허망상(虛妄相)을 내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지만,
깨달으면 정밀하게 보는 묘한 밝음의 정견모명(精見妙明)인 여래장성(如來藏性)인 것이다.
▷6내처(六內處)의 비처(鼻處) - 향진(香塵)
阿難!汝又嗅此鑪中栴檀,此香若復然於之一銖,室羅筏城四十里內同時聞氣。於意云何,此香爲復生栴檀木?生於汝鼻?爲生於空?
아난아, 너는 또 이 향로의 전단향기를 맡아보아라. 이 향기는 비록 1수(銖)만 태울지라도 실라벌성의 40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니라.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향기는 전단나무에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너의 코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阿難!若復此香生於汝鼻,稱鼻所生當從鼻出,鼻非栴檀,云何鼻中有栴檀氣?稱汝嗅香當於鼻入,鼻中出香說嗅非義。
아난아, 그 향기가 너의 코에서 생긴 것이라서 코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코에서 나왔어야 할 것이거늘, 코는 전단 나무가 아니거늘, 어떻게 코 속에 전단의 냄새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네가 향기를 맡는다고 한다면, 마땅히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콧속에서 향기가 나오는 것이라면 냄새를 맡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니라.
若生於空,空性常恒,香應常在,何藉鑪中爇此枯木?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허공의 성품은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것이니 향기도 항상 있어야 할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향로에 고목을 태워야만 향기가 생기는 것인가?
若生於木,則此香質因爇成煙,若鼻得嗅合蒙煙氣,其煙騰空未及遙遠,四十里內云何已嗅?
是故當知香鼻與嗅俱無處所,卽嗅與香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만약 전단나무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이 향의 본질은 태움으로 인하여 연기가 되는 것이므로, 만약 코가 향내를 맡을 때에는 당연히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이거늘, 그 연기가 허공으로 올라가서 채 멀리 퍼지기도 전에 40리 이내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 향내를 다 맡게 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향기와 코와 냄새를 맡는 향비후(香鼻嗅)는 다 함께 처소가 없는 것이니,
냄새를 맡는 것과 향기나는 곳의 두 처소는 허망한 것으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
▷6내처(六內處)의 설처(舌處) - 미진(味塵)
阿難!汝常二時衆中持鉢,其閒或遇油餠蜜飯 名爲上味。於意云何,此味爲復生於空中?生於舌中?爲生食中?
아난아, 네가 매일 두 때에 대중과 함께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는데, 그 사이에 간혹 유병(油餠)과 밀반(蜜飯)을 만나게 되면 최고의 맛이라 하나니,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맛은 허공에서 생기는 것인가?
혀에서 생기는 것인가? 음식에서 생기는 것인가?
ㅡ유병(油餠), 참깨, 들깨, 콩 따위의 재료 또는 밀가루를 부친 부침개.
밀반(蜜飯), 약반, 밀과 또는 약과
阿難!若復此味生於汝舌,在汝口中 秖有一舌,其舌爾時 已成飴味,遇黑石蜜 應不推移,若不變移 不名知味,若變移者舌非多體,云何多味一舌知之?
아난아, 만약 이 맛이 너의 혀에서 나온 것이라면 네 입 속에는 혀가 하나뿐이니, 그 혀가 조금 전에 단 맛이 되었을 것이므로, 흑석밀(黑石蜜, 매우 딱딱한 사탕)을 먹게 될지라도 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니,
만약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달라진다면 혀는 여러 개가 아닌데 여러 가지의 맛을 한 개의 혀로 알 수 있는 것인가?
若生於食,食非有識,云何自知?又食自知,卽同他食,何預於汝,名爲知味?
만약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음식은 아는 작용의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 비유식(非有識)이니, 어떻게 제 스스로 맛을 알겠으며?
또 음식이 스스로 맛을 아는 식자지(食自知)라면 곧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맛을 안다고 하겠는가?
ㅡ음식이 스스로 맛을 아는 것이 아니고 혀를 통해야 맛을 아는 것이니, 비록 음식이 맛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 앎이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맛을 안다고 하겠는가? 이치가 그렇지 않으므로 맛은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若生於空,汝噉虛空 當作何味?必其虛空 若作鹹味,旣鹹汝舌 亦鹹汝面,則此界人同於海魚;旣常受鹹 不了識淡,
若不識淡 亦不覺鹹,必無所知,云何名味?是故當知味舌與嘗俱無處所,卽嘗與味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너는 허공을 씹어 보아라. 어떤 맛이든가?
기필고 그 씹은 허공이 짠맛이라면, 이미 너의 혀를 짜게 하였을 것이므로 네 얼굴도 짜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 사람들은 바다의 고기와 같이 언제나 짠 것만을 느껴왔으므로 담담한 맛은 느끼지 못해야 하리라.
만약 담담한 맛을 모른다면 짠맛 역시도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니, 아무 맛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맛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맛과 혀와 맛을 보는 것은 모두 처소가 없으니,
맛보는 것과 맛은 둘 다 허망한 것으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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