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3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2. 소지의분(所知依分) ③ 2
▶論曰:復次生無色界,若離一切種子異熟識,染污善心應無種子,染污善心應無依持.
▷논문; 또한 무색계에 태어나서, 만약 일체종자의 이숙식(異熟識)을 여읜다면 염오심(染污心)과 선심(善心)은 마땅히 종자가 없어야 할것이고, 염오심과 선심이 의지할 곳 또한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이다.
▶釋曰:生無色界者,謂已解脫.色染污善心者,謂能愛味及三摩地.應無種子者,謂應無因.應無依持者,謂應無依.
復有別義,謂此二心,若無種子, 從何而生? 若無依持,依何而轉?
阿賴耶識所攝受故,從自種生,爲所依故,令此能依,相續而轉.
▷해석한다; ‘무색계에 태어나는’ 것은 물질로부터의 해탈을 말하며,
‘염오심(染污心)과 선심(善心)’은 선정의 맛에 애착하는 것과 삼마지이며,
‘마땅히 종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마땅히 원인이 없어야 하는 것을 말하며,
‘마땅히 의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마땅히 의지처가 없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의미가 있으니, 염오심과 선심, 두 가지 마음에 만약 종자가 없다면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며?
만약 의지할 곳이 없다면 무엇에 의지해서 전전하는 것인가?
아뢰야식이 섭수함으로써, 스스로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의지처가 됨으로써, 능히 의지하는 것으로 하여금 상속해서 전전하게 하는 것이다.
▶論曰:又卽於彼,若出世心,正現在前,餘世閒心,皆滅盡故,爾時,便應滅離彼趣.
▷논문; 또한, 만약 그곳에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심(出世心)이 바로 현전한다면, 나머지 세간심은 다 멸진한 까닭에, 그 때에는 바로 그 세계(趣)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釋曰:卽於彼界,若出世心,現在前時,除此所餘,是世閒心,彼世閒心,爾時皆滅.
如是彼趣便應永斷,不由功用,自然證得無餘涅槃.旣無此理,不應撥無阿賴耶識.
▷해석한다; 그 세계(界)에서 만약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심(出世心)이 현전할 때, 이 출세심을 제외한 나머지는 세간심으로 그 세간심이 그 때에 다 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세계(趣)는 문득 영원히 단절되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의 공용(功用)에 의하지 않고 자연히 무여열반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마땅히 아뢰야식을 부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論曰:若生非想非非想處`無所有處,出世閒心,現在前時, 卽應二趣, 悉皆滅離.
此出世識,不以非想非非想處,爲所依趣,亦不應以無所有處,爲所依趣,亦非涅槃爲所依趣.
▷논문; 만약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무소유처(無所有處)에 태어나서 세간을 벗어나는 마음이 현전할 때에는 마땅히 두 세계를 다 여의어야 하는 것이니,
이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식(出世識)은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할 세계의 소의취(所依趣)로 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무소유처로써 의지할 세계의 소의취(所依趣)로도 삼지 않으며,
또한 열반을 의지할 세계의 소의취(所依趣)로 삼지도 않는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는 무색계의 제4천으로, 이 하늘은 삼계 최고의 위치이므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한다. 이 하늘에 나는 이는 하지(下地)와 같은 거친 표상작용의 상(想)이 없기 때문에 비상(非想) 또는 비유상(非有想)이라 하나, 그러면서도 아직 미세한 표상작용이 있으므로 비비상(非非想) 또는 비무상(非無想)이라고 한다.
비유상(非有想)이므로 외도들은 이곳을 참다운 열반인 진열반처(眞涅槃處)라 하고, 비무상(非無想)이므로 불교에서는 이곳도 생사윤회의 범주에 넣는다.
무소유처(無所有處), 무색계의 제3천으로서, 제2천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서 인식대상인 소연(所緣)의 공함을 관하여 무소유의 지혜를 얻어서, 그 수행한 힘으로 나게 되는 하늘이다.
▶釋曰:若生非想非非想處,或時起彼無所有處,出世閒心,令現在前,由彼處心極明利故.
又由非想非非想處,心闇鈍故,住於彼處,極明利心,起出世心,令現在前,
此出世心,不應以彼第一`第二爲所依趣,由彼二地,皆世閒故,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나서 혹 어느 때는 그 무소유처의 출세간심(出世閒心)을 일으켜서 현전하게 하나니, 그 무소유처의 마음은 극히 밝고 예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상비비상처의 마음은 어둡기 때문에, 무소유처의 극히 밝고 예리한 마음에 머물러서 출세간심을 일으켜서 현전하게 하나니, 이 출세간심은 마땅히 그 첫 번째의 비상비비상처와 두 번째의 무소유처로써 의지할 세계의 소의취(所依趣)로 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그 두 지위 모두는 세간이기 때문이다.
又生餘地,起餘地心,現在前故,二所依趣,俱不應理.
또한 다른 지위에 태어나면 다른 지위의 마음을 일으켜서 현전하기 때문이니, 두 가지의 의지할 세계인 이소의취(二所依趣)와 함께 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은 것이다.
ㅡ이 마음은 명료하기 때문에 비상비비상처에 의지하지 않고, 이미 무소유처를 여의었기 때문에 무소유처도 역시 이 마음의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又卽此心,不應涅槃,爲所依趣,有餘依故.如是三種,爲所依趣,旣不得成,若不信有阿賴耶識,此出世心,何所依趣?
또한 이 마음은 열반을 의지할 세계의 소의취(所依趣)로 삼지 않으니, 업보의 과체(果體)가 있는, 유여의(有餘依)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상비비상처, 무소유처, 열반의 세 가지는 의지할 세계의 소의취(所依趣)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아뢰야식이 존재함을 믿지 않는다면, 어떠한 곳이 출세심이 의지할 세계의 소의취(所依趣)가 되겠는가?
▶論曰:又將沒時,造善造惡,或下或上,所依漸冷. 若不信有阿賴耶識, 皆不得成.
是故若離一切種子異熟識者,此生雜染,亦不得成.
▷논문; 또한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지은 선과 악 때문에 혹은 아래부터 혹은 위로부터의 소의(所依, 의지처)가 점점 차가워지나니,
만약 아뢰야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이러한 것 모두가 성립될 수 없으므로,
따라서 만약 일체종자의 이숙식을 여읜다면, 이 생의 잡염 역시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ㅡ생전에 선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임종할 때 식이 4지(肢)의 말단에서부터 머리쪽으로 점차 거두워지고, 반대로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머리부터 식어져서 점차 아래로 내려간다고 한다.
▶釋曰:將捨命時,造善造惡,或下或上,身分漸冷,以造善者,必定上昇,若造惡者,必定下墜.若
不許有阿賴耶識爲能執受,云何得有所依漸冷?阿賴耶識,能執受故,或下或上,如其次第,隨所捨處,身卽有冷.
▷해석한다; 장차 목숨을 버리려 할 때에는, 지은 선과 악 때문에 혹은 아래부터 혹은 위로부터 신체가 점차 차가워진다. 그리하여 선(善)을 지은 자는 반드시 위로 올라가고, 악(惡)을 지은 자는 반드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만약 아뢰야식이 존재하여 집수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소의(所依, 의지처)가 점차 차가워질 수 있겠는가?
아뢰야식이 능히 집수하기 때문에 혹은 아래부터 혹은 위로부터 그 차례대로 버린 곳을 따라서 신체가 차가워지는 것이다.
▶論曰:云何世閒淸淨不成?謂未離欲纏貪未得色纏心者, 卽以欲纏善心爲離欲纏貪故,勤修加行. 此欲纏加行心與色纏心,不俱生滅故, 非彼所熏,爲彼種子,不應道理.
▷논문; 어찌하여 세간의 청정이 성립되지 않는 것인가?
아직 욕전(欲纏, 욕계)의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색전(色纏, 색계)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자는, 욕계의 선심(善心)으로써 욕계의 탐욕을 여의기 위해서 가행(加行)하여 부지런히 닦는다.
이 욕계의 가행하는 마음과 색계의 마음은 함께 생멸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소훈(所熏, 훈습처)이 아닌 것이므로, 따라서 그것의 종자가 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又色纏心,過去多生,餘心閒隔,不應爲今定心種子,唯無有故. 是故成就色纏定心, 一切種子異熟果識, 展轉傳來, 爲今因緣, 加行善心,爲增上緣.如是一切離欲地中,如應當知.如是世閒淸淨,若離一切種子異熟識,理不得成.
또한 색계의 마음은 과거의 여러 생에서의 다른 마음들과 사이가 벌어져서, 지금은 선정의 마음인 정심(定心)의 종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색계 선정의 마음을 성취하는 일체종자의 이숙과식(異熟果識)이 전전하여서 전래하여 지금의 인연이 되고,
가행의 선심(善心)이 증상연이 되는 것이다.
욕락을 떠난 모든 지위에서도 마땅히 이와 같다고 알아야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세간의 청정은 일체종자의 이숙식을 여의고는 그 도리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ㅡ아뢰야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간의 청정이 성립되지 않음에 관하여 말한, 제14 세간정장(第14 世間淨章).
욕전(欲纏)은 재물욕ㆍ식욕ㆍ수면욕ㆍ음욕ㆍ명예욕의 세간 5욕락(欲樂) 등에 얽매인 욕계를 말한다.
색전(色纏)은 물질(色)에 얽매인, 색계이다.
▶釋曰:如世閒淸淨理不得成,今當顯示.謂爲遠離欲纏貪故,以欲纏善心,修加行時,卽此欲纏加行善心,未曾爲彼色纏善心之所熏習,不俱生滅故,今色纏心,應無種子,自然而生. 又過去世色纏善心,多生所閒`餘識所隔,唯無有故`已過去故, 不得爲今定心種子.
▷해석한다; 세간 청정의 도리가 성립될 수 없음을 이제 마땅히 나타내 보이겠으니,
욕계의 탐욕을 멀리 여의기 위해서 욕계의 선심(善心)으로써 가행을 닦을 때, 이 욕계에서의 가행의 선심은 일찍이 그 색계의 선심으로부터 훈습된 바가 아니고, 함께 생멸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색계심에 종자 없이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과거세의 색계의 선심은 여러 생의 사이에서 오는 것이고, 다른 식과의 간격이 있어서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미 과거인 까닭에, 지금의 정심(定心, 선정의 마음)의 종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展轉傳來,爲今因緣者,阿賴耶識持彼種故.今色纏心, 從自種生, 加行善心,非無功力.言功力者,但增上緣,非是因緣,由彼增上力,生此色纏心,如是遠離色纏貪等,如應當知.
‘전전하여 전래하여서 지금의 인연이 된다’는 것은 아뢰야식이 그 색계의 종자를 지니기 때문에, 지금 색계의 마음이 스스로의 종자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이며,
가행의 선심에는 공력(功力, 작용의 힘)이 없지 않으니, 공력(功力)이란 다만 증상연일 뿐, 인연이 아닌 것이다.
그것의 증상력으로 인하여 이 색계의 마음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하여 색계의 탐욕 등을 멀리 여읜다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論曰:云何出世淸淨不成?謂世尊說,依他言音, 及內各別如理作意, 由此爲因,正見得生.
此他言音,如理作意,爲熏耳識` 爲熏意識`爲兩俱熏?
▷어찌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청정이 성립되지 않는 것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타인의 말과 함께 각각의 내면적인 이치 그대로 작의(作意)함에 의하는 것이며, 이것을 원인으로 해서 바른 견해가 생겨날 수 있다”고 하셨다.
이 타인의 말과 이치 그대로 작의하는 것이 이식(耳識)에 훈습되는 것인가?
의식에 훈습되는 것인가?
아니면 양쪽에서 함께 훈습되는 것인가?
若於彼法, 如理思惟,爾時,耳識且不得起,意識亦爲種種散動,餘識所間. 若與如理作意,相應生時,此聞所熏意識,與彼熏習,久滅過去,定無有體,云何復爲種子,能生後時,如理作意,相應之心?
만약 그 법에 대해서 이치 그대로 사유한다면, 그 때의 이식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며,
의식(意識) 역시도 갖가지로 산란하게 움직이는 다른 식에 의해서 중단되나니,
만약 이치 그대로 작의함과 상응해서 생겨날 때에는, 이 들음으로써 훈습된 의식과 그 훈습은 오래전에 멸하여 과거가 되어서 그 자체가 없는 것이거늘, 어떻게 다시 종자가 되어서 능히 나중에 이치 그대로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又此如理作意,相應是世閒心,彼正見相應是出世心,曾未有時,俱生俱滅,是故此心非彼所熏.
旣不被熏,爲彼種子,不應道理. 是故出世淸淨,若離一切種子異熟果識,亦不得成.
此中聞熏習攝受彼種子不相應故.
또한 이 이치 그대로 작의하는 여리작의(如理作意)와 상응하는 것은 세간심(世閒心)이고,
그 바른 견해의 정견(正見)과 상응하는 것은 출세간심(出世閒心)이다.
예전에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한 적이 없으니, 따라서 이 마음은 그것의 훈습처가 아닌 것이며,
훈습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종자가 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간 청정은 일체종자의 이숙과식(異熟果識)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니,
여기에서 들음의 문훈습(聞熏習)이 그 종자를 섭수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ㅡ아뢰야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출세간의 청정이 성립되지 않음에 관하여 설명한, 제15 출세간정장(第15 出世間淨章).
▶釋曰:如出世閒淸淨不成,今當顯示.此他言音,如理作意者,謂與言音, 相應作意. 意識亦爲種種散動餘識所閒者,是與正見相應出世閒心被閒隔義.
▷해석한다;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간 청정이 성립되지 않음을 이제 마땅히 나타내 보이겠다.
‘타인의 말’과 ‘이치 그대로 작의함의 여리작의(如理作意)’는 말과 상응하는 작의(作意)를 말한다.
의식 역시 갖가지의 산란되게 움직이는 다른 식에 의해 중단되는 것은, 정견(正見)과 상응하는 출세간심(出世閒心)이 다른 식에 의해서 사이가 벌어진다는 뜻이다.
작의(作意), 대상을 인식함에 있어서 심왕과 심소(心所, 심리작용)를 대상에 주의시켜서 인도하는 작용으로, 촉(觸) 심소(心所) 다음에 일어나며, 이로 인해서 감수작용의 수(受)가 있게 되는 것이다.
若與如理作意,相應生時者,謂於後時.此聞所熏意識與彼熏習,久滅過去定無有體者,謂經長時,已謝隔越,決定無體.云何復爲種子能生後時,如理作意,相應之心者,謂彼久滅,現無有體,不能爲因. 此中聞熏習攝受彼種子,不相應故者,謂在世閒意識之中故.言此中聞熏習者,依他言音,正聞熏習. 攝受彼種子者,在意識中,攝受出世淸淨種子.不相應故者,謂彼所計,不應理故,云何可說,此從彼生?
‘만약 이치 그대로의 여리작의(如理作意)와 상응해서 생겨날 때’란, 나중에 청정한 마음이 일어날 때의 그 시기를 말하는 것이며,
‘이 들어서 훈습된 문훈습 의식과 그 훈습은 오래전에 멸하여 과거가 되어서 반드시 자체가 없다’는 것은 오랜 기간이 지나서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결정적인 자체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어떻게 다시 종자가 되어서 능히 나중에 이치 그대로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란,
그것이 오래전에 멸하여 현재 자체가 없기 때문에 원인이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 중에서 '들음의 문훈습이 그 종자를 섭수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세간의 의식 중에 있기 때문에 ‘이 중에서’라고 말한 것이며,
‘들음의 문훈습(聞熏習)’은 남의 말을 바르게 들음으로써 훈습되는 것이며,
‘그 종자를 섭수한다’는 것은 의식에 있으면서 출세간의 청정종자를 섭수하는 것이며,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그가 사량하는 바가 도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출세간의 청정이 그 의식(意識)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論曰:復次云何一切種子異熟果識,爲雜染因, 復爲出世能對治彼淨心種子?
又出世心,昔未曾習故,彼熏習決定應無,旣無熏習,從何種生?
是故應答:從最淸淨法界等流,正聞熏習種子所生.
▷논문; 또한 어떻게 일체종자의 이숙과식(異熟果識)이 잡염의 원인이 되며,
또한 출세간과 그것을 능히 다스리는 청정한 마음의 종자가 되는 것인가?
또한 출세간의 마음은 예전부터 아직 훈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훈습은 결정코 없는 것이며,
이렇게 훈습이 없는데 어떠한 종자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마땅히 가장 청정한 법계(法界)로부터 평등히 흘러나오는, 바르게 들음의 훈습인 정문훈습(正聞熏習)된 종자가 생겨난 것이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釋曰:云何等者,謂異熟識是所治因,爲能治因,不應道理.又出世心,昔未曾習者, 謂先未生故. 彼熏習決定應無者, 由此因故,彼出世心,無有熏習,決定無疑.
▷해석한다; ‘어떻게……’ 등은 이숙식이 다스려지는 원인이면서 또한 능히 다스리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음을 말한 것이며,
'또한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심(出世心)은 예전부터 아직 훈습되지 않은 것이다’는 것은 이전에 아직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훈습은 결정적으로 없어야 한다’는 것은 이 원인으로 인하여 그 출세간의 마음에 훈습이 없음은 결정적인 것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며,
從最淸淨法界等流, 正聞熏習種子所生者, 爲顯法界異聲聞等. 言最淸淨,由佛世尊所證法界,永斷煩惱`所知障故, 從最淸淨法界所流經等教法,名最淸淨法界等流.無倒聽聞如是經等,故名正聞.由此正聞,所起熏習,名爲熏習.或復正聞,卽是熏習,是故說名正聞熏習. 卽此熏習相續住在,阿賴耶識爲因,能起出世閒心,是故說言:從最淸淨法界所流,正聞熏習,種子所生.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평등히 흘러나오는, 바르게 들어서 훈습된 정문훈습(正聞熏習)의 종자가 생겨난 것’이란,
법계는 성문등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가장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이니,
부처님 세존께서 증득하신 법계는 번뇌장과 소지장을 영원히 끊었기 때문에, 이러한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흘러나오는 가르침의 경전 등의 교법을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평등히 흘러나온 것이라 이름하며,
전도됨이 없이 이러한 경전 등을 듣기 때문에 바르게 듣는 정문(正聞)이라 하며,
이 바르게 들은 정문(正聞)으로써 일어난 훈습을 훈습이라 이름 하는 것이다.
혹은 바르게 듣는 것이 곧 훈습이기 때문에 바르게 들음의 정문훈습(正聞熏習)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곧 이 훈습이 상속해서 아뢰야식에 머무름으로서, 원인이 되어 능히 출세간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평등히 흘러나온 바를 바르게 들음의 정문훈습(正聞熏習)의 종자가 생겨나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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