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제1권 3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爾時(이시)釋提桓因(석제환인)與其眷屬(여기권속) 二萬天子俱(이만천자구) 하셨으며,

그 때에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이 그의 권속 2만의 천자(天子) 함께 하였으며, 

ㅡ석제환인(釋提桓因, Śakra-devānāṃ Indra), 수미산(須彌山)의 정상에 있는 도리천(忉利天)의 주인인 제석천(帝釋天),

천자(天子, sura) 천상계(天上界)에 사는 사람

 

復有(부유) 名月天子、普香天子、寶光天子、四大天王,與其眷屬(여기권속)  萬天子俱(만천자구) 하셨으며,

 명월천자(名月天子)ㆍ보향(普香)천자ㆍ보광(寶光)천자ㆍ사대천왕(四大天王) 그들의 권속 1 천자와 함께하였으며, 

ㅡ사대천왕(四大天王), 사왕천(四王天)의 주신으로 수미산의 4주(洲)를 수호하는 신으로,  

동방의 지국천(持國天), 남방의 증장천(增長天), 서방의 광목천(廣目天), 북방의 다문천(多聞天)을 관장하는 네 왕으로 제석천의 명을 받아 불법을 수호한다.

 

自在天子、大自在天子,與其眷屬(여기권속) 三萬天子俱(삼만천자구) 하셨으며,

자재(自在)천자ㆍ대자재(大自在)천자도 그의 권속 3만의 천자와 함께하였으며, 

 

娑婆世界主、梵天王、尸棄大梵、光明大梵等,與其眷屬(여기권속) 萬二千天子俱(만이천자구) 하셨으며,

사바(娑婆)세계의 주인이며 범천왕(梵天王)인 시기대범(尸棄大梵)과 광명대범(光明大梵)이 그들의 권속 1만 2천의 천자와 함께하였다.

사바(娑婆, Sabhā), 인토(忍土)ㆍ감인토(堪忍土)로 번역하며, 괴로움이 많아서 참아야 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말한다.  

범천왕(梵天王, Brahma), 범왕(梵王)ㆍ대범천왕(大梵天王)이라 하며,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주신으로 제석천왕과 함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有八龍王(유팔용왕)하니, 難陁龍王、跋難陁龍王、娑伽羅龍王、和脩吉龍王、德叉迦龍王、

阿那婆達多龍王、摩那斯龍王、優鉢羅龍王等,各與若干百千眷屬俱(각여약간백천권속구) 하였으며,

또한 여덟의 용왕이 있었으니, 난타용왕(難陀龍王)ㆍ발난타(跋難陀)용왕ㆍ사가라(娑伽羅)용왕ㆍ화수길(和修吉)용왕ㆍ덕차가(德叉迦)용왕ㆍ아나파달다(阿那婆達多)용왕ㆍ마나사(摩那斯)용왕ㆍ우발라(優鉢羅)용왕 등이 각각 백천의 권속들과 함께하였으며,  

 

有四緊那羅王(유사긴나라왕)하니, 法緊那羅王、妙法緊那羅王、大法緊那羅王、持法緊那羅王,

各與若干百千眷屬俱 (각여약간백천권속구)하였으며, 

또한  긴나라왕(緊那羅王)이 있었으니, 법(法)긴나라왕ㆍ묘법(妙法)긴나라왕ㆍ대법(大法)긴나라왕ㆍ지법(地法)긴나라왕도 각각의 백천 권속들과 함께하였으며, 

ㅡ긴나라왕(緊那羅王, Kiṃnara), 생긴 모양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의인(疑人)ㆍ인비인(人非人)이라 번역하고, 음악을 담당하는 신으로 가신(家臣)ㆍ가악신(歌樂神)ㆍ음악신(音樂神)이라 한다.

 

有四乾闥婆王(유사건달바왕)하니, 樂乾闥婆王、樂音乾闥婆王、美乾闥婆王、美音乾闥婆王,

各與若干百千眷屬俱(각여약간백천권속구)하였으며, 

또한  건달바왕(乾闥婆王)이 있었으니, 낙(樂)건달바왕ㆍ낙음(樂音)건달바왕ㆍ미(美)건달바왕ㆍ미음(美音)건달바왕이 각각 백천 권속과 함께하였으며, 

ㅡ건달바왕(乾闥婆王, Gandharva).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살아가므로 심향(尋香)ㆍ식향(食香)이라 하며, 제석천을 섬기고 음악을 담당하는 신으로,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와서 찬탄하고 불법을 수호한다.

 

有四阿修羅王(유사아수라왕)하니, 婆稚阿修羅王、佉羅騫馱阿修羅王、毘摩質多羅阿修羅王、

羅睺阿修羅王,各與若干百千眷屬俱(각여약간백천권속구)하였으며, 

또한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있었으니, 바치(婆稚)아수라왕ㆍ가라건타(佉羅騫馱)아수라왕ㆍ비마질다라(毗摩質多羅)아수라왕ㆍ라후(羅睺)아수라왕이 각각 백천 권속과 함께하였으며, 

ㅡ아수라왕(阿修羅王, Asura),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비천(非天)ㆍ부단정(不端正)이라 한다. 

 

有四迦樓羅王(유사가루라왕)하니, 大威德迦樓羅王、大身迦樓羅王、大滿迦樓羅王、如意迦樓羅王,

各與若干百千眷屬俱(각여약간백천권속구)하였으며, 

또한 네 가루라왕(迦樓羅王) 있었으니, 대위덕(大威德)가루라왕ㆍ대신(大身)가루라왕ㆍ대만(大滿)가루라왕ㆍ여의(如意)가루라왕이 각각 백천 권속들과 함께하였으며,  

ㅡ가루라왕(迦樓羅王, Garuḍa) 독수리같이 사납게 생긴 새로, 용(龍)을 잡아먹는다고 하며, 금시조(金翅鳥) 또는 묘시조(妙翅鳥)라고 번역한다.

 

韋提希子(위제희자) 阿闍世王(아사세왕)하였으니, 與若干百千眷屬俱(여약간백천권속구)하였으며,

또한 위제희(韋提希)의 아들인 아사세왕(阿闍世王)도 백천 권속들과 함께하였으며, 

ㅡ위제희(韋提希, Vaidehi), 중인도 마갈타국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의 부인이며, 아사세왕(阿闍世王)의 어머니이다.

마가다국 왕사성(王舍城)에서 아사세(阿闍世, 아자타삿투) 태자가 데바닷타(提婆達多)의 꾀임에 빠져서 전륜성왕으로 칭송받던 부왕 빈비사라왕(頻婆娑羅王, 기원전 580~550)을 지하 감옥에 유폐시켜서 서서히 굶어죽게 하고 있었다.
위제히 왕비는 꿀에 쌀가루를 짖이겨 몸에 바르고 장신구 등에 물을 채워서 감옥을 방문해서 왕으로 하여금 이를 먹게 하였다.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이 계신 기사굴산이 있는 방향을 향해 예배를 올리며 법문을 들려주시길 간절히 청하였고, 그의 보신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이 뛰어난 마하 목건련 존자와 부루나 존자를 그에게 보내주셨다.
그런데 새로이 왕위에 등극한 아사세왕은, 간수가 말하기를 빔비사라 왕은 위제히 부인이 다녀가고 나면 기력을 회복하고, 마하 목건련 존자와 부루나 존자가 날마다 빔비사라 왕을 찾아와 법문을 해준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이 지하 감옥에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간수의 말을 들은 아사세왕의 눈에는 살기가 돌았다.
이렇게 발각이 돼 왕비 자신마저도 유폐되었으나, 위제히 왕비는 감옥 안에서 부처님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녀의 기도에 응답해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망으로 아미타불정토를 기원하는 왕비에게 아미타불정토를 관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으며, 그 때의 가르침이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기록되어 있다.

 

各禮佛足(각예불족)하고는 退坐一面(퇴좌일면)하였다.

이들은 제각각 부처님의 발에 정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있었다.

 

爾時世尊(이시세존)께서는 四衆(사중)이 圍繞(위요)하여서, 供飬恭敬尊重讚歎(공양공경존중찬탄)이라。

爲諸菩薩(위제보살)하시어 說大乘經(설대승경)하셨으니, 名無量義(명무량의)이라

教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니라.

이때 세존(世尊)께서는 둘러앉은 사중(四衆, 사부대중)으로부터 공양과 공경과 존중과 그리고 찬탄을 받으시면서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대승경을 설하셨으니,  이름은 '무량의경(無量義經)' 이었으니, 

이는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시는 불소호념(佛所護念) 이었다. 

세존(世尊, Bhagavat), 부처님의 십호명 중의 하나이며, 부처님은 세간을 이롭게 하고 세상의 존경을 받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무량의경(無量義經) 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매우 깊고 미묘하고 뛰어난 경계의 법을 설하는 것.

 

불십호(佛十號); 부처의 10가지 다른 이름 또는 부처의 10가지 명호를 말하며, 모든 깨달은 자들이 가지는 10가지 뛰어난 공덕(功德)을 보여준다.

① 여래(如來, tathāgata, thus gone, thus come) 또는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 · 여시래(如是來)
② 응공(應供, arhat, 영어: worthy one) 또는 아라한(阿羅漢) · 아라가(阿羅呵) · 아라하(阿羅呵) · 살적(殺賊) · 불생(不生) · 응수공양(應受供養)
③정등각(正等覺, samyak-saṃbuddha, perfectly self-enlightened) 또는 정변지(正遍知) ·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 · 정각자(正覺者) · 정등각자(正等覺者) ·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
④명행족(明行足, vidyā-carana-sajpanna, perfected in knowledge and conduct) 또는 비치차라나삼반나(鞞侈遮羅那三般那) · 명행구족(明行具足)
⑤선서(善逝, sugata, well gone) 또는 수가타(修伽陀) · 호거(好去) · 호설(好說)
⑥세간해(世間解, loka-vid, knower of the world) 또는 노가비(路迦憊) · 지세간(知世間)
⑦무상사(無上士, anuttara, unsurpassed) 또는 아뇩다라(阿耨多羅) · 무상(無上) · 무답(無答)
⑧조어장부(調御丈夫, purusa-damya-sārathi, leader of persons to be tamed) 또는 부루사담먁바라제(富樓沙曇藐婆羅提) · 가화장부조어사(可化丈夫調御師)
⑨천인사(天人師, śāstā deva-manusyānāṃ, teacher of the gods and humans) 또는 사다제바마누사남(舍多提婆魔㝹舍喃) · 천인교사(天人教師)
⑩불세존(佛世尊, buddha, bhagavat, the Blessed One or fortunate one)또는 불(佛, buddha) · 불타(佛陀, buddha) · 지자(知者, buddha) · 지자(知者, buddha) 또는 세존(世尊, bhagavat) · 바가바(婆伽婆, bhagavat) · 박가범(薄伽梵, bhagavat)
부처님의 10호는 경전과 논서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모두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ㅡ 위키

 

사중(四衆, 사부대중), 사부중(四部衆)이라고도 하며, 출가한 승려인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와

재가의 신자인 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를 말한다.

 

佛說此經已(불설차경이)에 結跏趺坐(결가부좌)하시고,

入於無量義處三昧(입어무량의처삼매)하시니, 身心不動(신심부동)이시더라.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신 후에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시고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에 드시니, 

몸과 마음의 심신(身心)이 흔들리지 않는 부동(不動)이셨다.

결가부좌(結跏趺坐) 또는 가부좌(跏趺坐) 또는 연꽃 자세(파드마사나)는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놓고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는 자세를 말한다. 고대 인도의 다리를 꼬고 앉는 명상 자세로, 하타 요가보다 앞선 요가의 고대 아사나이며, 힌두교, 탄트라, 자이나교, 불교 전통에서 명상을 위해 널리 사용된다.
변형된 자세로는 쉬운 자세(수카사나), 반 연꽃 자세, 묶인 연꽃 자세, 영적 결합 자세 등이 있다. 고급 변형 자세에서는 다리를 연꽃 자세 또는 반 연꽃 자세로 유지한다. 가부좌는 바닥에 앉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으며, 억지로 다리를 자세에 맞추려고 하면 무릎에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 ananta-nirdeśa-pratiṣṭhāna-samādhi) 무량한 가르침의 실상이라는 이름의 삼매.

 

*여래께서 설법하실 때가 이르렀음 보이시는 것은,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대승경(大乘經)을 말씀하시려는 것으로, 

이 대승경에는 17 가지의 명칭이 있으니, 매우 깊은 공덕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첫째, 무량의경(無量義經)이란, 글자의 뜻을 성취하는 것으로, 이 법문으로써 매우 깊고 미묘한 경계의 법을 설명하시려는 까닭이니, 그 매우 깊고 미묘한 경계라는 것은 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가장 뛰어난 경계이다.

둘째, 가장 뛰어난 수다라(修多羅)의 삼장(三臧) 중에서 가장 미묘하고 뛰어난 장(臧)을 성취하신 까닭이며, 

셋째, 대방광(大方廣)이라 이름한 것은 무량한 대승문 중에서 중생의 근기에 수순하여 머물러 유지함을 성취한 까닭이며, 

넷째, 교보살법(敎菩薩法)이라 한 것은 근기가 성숙한 보살을 교화하여 그릇에 따라 법을 성취하는 까닭이며, 

다섯째, 불소호념(佛所護念)이라 한 것은 부처님 여래에 의하여 이 법이 있는 까닭이며,  

여섯째, 모든 부처님의 비밀법(秘密法)이라 한 것은 이 법이 매우 깊어 오직 여래께서만 아시는 까닭이며,  

일곱째, 모든 부처님의 일체제불장(一切佛藏)이라 한 것은 여래의 공덕과 삼매의 장이 이 경에 있는 까닭이며,  

여덟째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곳의 밀처(密處)라 한 것은 근기가 미숙한 중생들은 법기(法器)가 아니므로 주지 않은 까닭이며,  

아홉째, 능히 모든 부처님을 낳는 능생일체제불경(能生一切諸佛經)이라 한 것은 이 법문을 듣고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까닭이며, 

열째, 모든 부처님의 도량(道場)이라 한 것은 이 법문을 듣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는데, 나머지 경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며,  

열한째, 모든 부처님께서 굴리신 법륜(法輪)이라 한 것은 이 법문이 능히 모든 장애를 깨뜨리는 까닭이며,  

열두 번째, 모든 부처님의 견고한 사리(舍利)라 한 것은 여래의 진여법신(眞如法身)이 이 경에서 무너지지 않는 까닭이며, 

열셋째, 모든 부처님의 크고 교묘한 대교방편경(大巧方便經)이라 한 것은 이 법문에 의하여 큰 보리를 이루고 나서 중생을 위하여 하늘(天)ㆍ사람ㆍ성문ㆍ벽지불 등의 법을 설하는 까닭이며,  

열넷째, 설일승경(說一乘經)이라 한 것은 이 법문으로써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구경의 실체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승(二乘)의 도는 구경이 아닌 까닭이며,  

열다섯째, 제일의(第一義)에 머무른다고 한 것은 이 법문이 곧 여래의 법신이 구경에 머무르는 곳인 까닭이며,

열여섯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 이름한 것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 물에서 나온다(出水)는 뜻이니 소승의 탁한 진흙물에서 다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요, 또한 연꽃이 진흙물에서 나온다는 뜻이니, 모든 성문이 여래가 대중 가운데 앉아 계시는 데에 들어가서 모든 보살과 같이 연꽃 위에 앉아서 위없는 지혜의 청정한 경계를 말씀하심을 듣고 여래의 비밀장을 증득함을 비유한 것이고, 

  둘째, 꽃이 핀다는 것은 중생들이 대승에 대한 그 마음이 겁이 많고 연약하여 능히 믿음을 내지 못하므로, 여래의 청정 미묘한 법신을 열어 보여서 믿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까닭이다.

열일곱째, 최상의 법문이라 이름한 것은 성취를 섭취하는 까닭이니,

성취를 섭취한다는 것은 한량 없는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자신(字身)과 빈바라(頻婆羅)ㆍ아촉파(阿閦婆) 등의 게송(偈頌)을 섭취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17구의 법문은 총상(總相)이고 나머지 구는 별상(別相)으로,

경에 “모든 보살을 위하여 대승경을 말씀하시니 무량의(無量義)라 이름한다”라고 한 것은 이와 같은 것들이다. ㅡ 묘법연화경론우바제사(妙法蓮花經論優波提舍)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제1권 2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復(부) 有學無學(유학무학) 二千人(이천인)이시니,

 아직 배우는 유학(有學)의 이들과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무학(無學)들이 2천 인이나 있었으며, 

ㅡ 유학(有學)은 아직 배우는 이로써, ’라는 말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고,

무학(無學)은 아라한이다.

 

摩訶波闍波提比丘尼(마하파사파제) 與眷屬(여권속) 六千人俱(육천인구)하시며,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 비구니는 그의 권속 6천 인과 함께 하였으며, 

ㅡ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 Mahā-prajāpati), 한역하여 대애도(大愛道)라 하며, 부처님의 이모이며, 마야부인(摩耶夫人)이 돌아가신 뒤, 정반왕의 부인이 되어서 부처님을 양육하였다.

 

羅睺羅母(라후라모)이신 耶輸陁羅比丘尼(야수다라비구니)께서도 亦與眷屬俱(역여권속구) 하셨다.

라후라의 어머니인 야수다라(耶輸陀羅) 비구니도 또한 그의 권속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八萬人(팔만인)께서도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8 인이 있었으니, 

ㅡ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Bhodhisattva-Mahāsattva) 보살과 마하살이 결합된 말로 보살은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상으로 각유정(覺有情) 또는 도중생(道衆生)이라 번역하며,

마하살(摩訶薩)은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대중생(大衆生) 혹은 대유정(大有情)이라 번역하며, 보살의 많은 계위(階位) 중 10지(地) 이상의 보살을 표시하기 위해서 마하살이라 한다.

 

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개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不退轉(불퇴전)하시며,

모든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서 물러나지 않으, 

ㅡ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범어 Anuttara-samyak-saṃbodhi),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으로, 위없이 바른 깨달음, 곧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였다’는 등의 13구(句)는 보살의 공덕 성취를 나타내 보인 것으로, 

13구(句)에 공덕을 이문(二門)으로 포섭하나니,

첫째 상지문(上支門)과 하지문(下支門)으로,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을 말하는 것다.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총상이고, 그 나머지는 별상이 된다. 

둘째는 사(事)를 섭취하는 문으로, 모든 보살이 어떤 청정한 지(地) 가운데에 머물러서 어떠한 방편을 가지며, 어떠한 경계 가운데에서 응당 지어야 할 것을 지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지(地)의 청정함이라는 것은 8지 이상의 3지는 상이 없는 무상행(無相行)으로서 고요하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다시 사(事)를 섭취하는 문이 있으니, 모든 지(地)에서 섭취하는 뛰어난 공덕이 이승(二乘)의 공덕과는 같지 아니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8지는 무공용(無功用) 지혜로서 8지 위나 8지 아래와 같지 않기 때문이며,

아래와 같지 않다는 것은 8지 아래의 공용의 행으로는 능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요,

위와 같지 않다는 것은 8지 위의 무상행(無相行)은 능히 움직일 수 없고, 자연스럽게 행하기 때문이다.

9지 중에서 뛰어나게 정진하는 다라니문을 얻어 사무애(四無碍)ㆍ자재를 구족하기 때문이요,

10지 중에서는 물러나지 아니하는 법륜으로 부처님의 지위를 받아 전륜성왕의 태자와 같기 때문이며, 함께 공덕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皆得陁羅尼(개득다라니)하셨으며, 樂說辯才(낙설변재)하시고, 轉不退轉法輪(전불퇴전법륜)하시며,

모두 다라니(陀羅尼)  잘하는 변재(辯才)를 얻어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不退)의 법륜(法輪) 굴리시며, 

ㅡ다라니(陀羅尼, dhāraṇi), 총지(總持)이며, 진언(眞言)이나 주문(呪文)을 번역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범문(梵文) 그대로 외우는 것이다. 

*법륜(法輪, dharmacakra)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가진 보배로 된 바퀴인, 윤보(輪寶)가 일체의 모든 것을 다 파괴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불법은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뜨릴 수 있다는 뜻으로 법륜이라 한다.

 

供養(공양) 無量百千諸佛(무량백천제불)하셨으며, 於諸佛所(어제불소)에서

殖衆德本(식중덕본) 하셨으니, 常爲諸佛之所稱歎(상위제불지소칭탄)하셨으며,

무량한 백천의 부처님을 공양하였으며, 여러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서 모든 덕의 근본인 덕본(德本, 선근 善根)을 심었으므로 항상 여러 부처님께서 칭찬하셨으며,

 

以慈修身(이자수진)하시고 善入佛慧(선입불혜) 하시며,

대자비(大慈悲)로써 몸과 마음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혜를 잘 이해하였으며, 

 

通達大智(통달대지) 하시고 到於彼岸(도어피안) 하셨으며, 

 지혜의 대지(大智)를 통달하여 피안(彼岸) 이르렀으며, 

ㅡ피안(彼岸, pāramitā) 중생들의 미혹된 세계를 차안(此岸)이라 하고, 깨달음의 세계, 즉 번뇌의 미혹한 바다의 저편을 깨달음의 피안이라 한다.

 

名稱(명칭) 普聞無量世界(보문무량세계)하시니, 能度(능도) 無數百千衆生(무수백천중생)이시라.

그 이름이 무량한 세계에 널리 알려져서, 무수한 백천의 중생을 능히 제도할 수 있는 하는 분들 이었다.

*불퇴전(不退轉)에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 법을 들음에 머물러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모든 다라니를 얻었다”라고 한 것이고,

둘째, 요설(樂說)에서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변재”라고 한 것이고,

셋째, 법을 설함에서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물러나지 않는 법륜을 굴린다”고 한 것이고, 

넷째, 선지식에 의지하여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몸과 마음의 업으로 색신(色身)의 섭취에 의지하는 까닭이니 경에 “무량한 백천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까닭이요, 여러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모든 선근을 심은 까닭이다”라고 하였고, 

다섯째, 모든 의심을 끊음에서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항상 여러 부처님께서 칭찬하셨다”라고 하였으며,

여섯째, 어떠어떠한 일을 설법하기 위하여 그들의 법에 들어가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대자비로써 몸과 마음을 닦는다”라 하였으며,

일곱째, 일체지혜의 여실한 경계에 들어가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부처님 지혜에 잘 들었다”라고 한 것이고,

여덟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에 의거하여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큰 지혜를 통달하였다”라고 한 것이고,

아홉째, 여실한 경계에 들어가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피안에 이르렀다”라고 한 것이고,

열째, 지어야 할 것을 짓는 데에 주지(住持)하여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한량없는 백천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其名曰(기명왈); 文殊師利菩薩、觀世音菩薩、得大勢菩薩、常精進菩薩、不休息菩薩、寶掌菩薩、藥王菩薩、

그분 들의 이름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ㆍ관세음(觀世音)보살ㆍ득대세(得大勢)보살ㆍ

상정진(常精進)보살ㆍ불휴식(不休息)보살ㆍ보장(寶掌)보살ㆍ약왕(藥王)보살

 

勇施菩薩、寶月菩薩、月光菩薩、滿月菩薩、大力菩薩、無量力菩薩、越三界菩薩、跋陁婆羅菩薩、

용시(勇施)보살ㆍ보월(寶月)보살ㆍ월광(月光)보살ㆍ만월(滿月)보살ㆍ대력(大力)보살ㆍ무량력(無量力)보살ㆍ월삼계(越三界)보살ㆍ발타바라(跋陀婆羅)보살

 

彌勒菩薩、寶積菩薩、導師菩薩,如是等(여시등)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八萬人俱(팔만인구)하셨다.

미륵(彌勒)보살ㆍ보적(寶積)보살ㆍ도사(導師)보살 등이시니, 이러한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8 인과 함께 하셨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제1권 1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Lotus Sūtra 또는 Sūtra on the White Lotus of the True Dharma) 또는 법화경(法華經)은 부처님의 40년 설법을 집약한 경전으로,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었으며,

아직도 중요한 근본 경전으로서 모든 이가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는 대도(大道, 一乘)를 보이기 위한 것이며,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보살 또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화경(法華經)의 원명은 삿다르마푼다리카 수트라(Saddhar mapundarika­sutra)라고 하며 '백련화(白蓮華)와 같은 올바르고 깨끗한 가르침'이라는 뜻이며,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법화경(法華經)은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의 삼단(三段)으로 구분하여서  일경 삼단(一經三段), 또는 전체를 본문과 적문(迹門)으로 나누고 각각을 다시 3단으로 분류하는 2문 6단(二門六段)으로 보기도 하며, 전체는 7권의  28품(品, 28 장 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경 삼단(一經三段)의 구성                                      

①개경(開經, 서분 序分) ㅡ 삼품(三品)    
第一品, 덕행품(德行品) 
第二品, 설법품(說法品) 
第三品, 십공덕품(十功德品) 

 

②정종분(正宗分, 본론 本論) ㅡ 14品
第二品, 방편품(方便品)  
第三品, 비유품(譬喩品) 
第四品, 신해품(信解品) 
第五品, 약초유품(藥草喩品) 
第六品, 수기품(授記品) 
第七品, 화성유품(化城喩品) 
第八品,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 
第九品, 수학무학인기품(數學無學人記品) 
第十品, 법사품(法師品) 
第十一品, 견보탑품(見寶塔品) 
第十二品,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 
第十三品, 권지품(勸持品) 
第十四品, 안락행품(安樂行品) 

第十五,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 
第十六,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第十七,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제17의 19게송까지

 

③유통분(流通分, 본문 本門) ㅡ 14品

第十七,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제17의 19게송이후 부터

第十八,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 
第十九,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第二十, 상불경보살품(常不經普薩品) 
第二十一, 여래신력품(如來神力品) 
第二十二, 촉루품(囑累品) 
第二十三, 약왕보살본사품(藥王普薩本事品) 
第二十四,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 
第二十五,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第二十六, 다라니품(陀羅尼品) 
第二十七,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 
第二十八,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 
 

2문 6단(二門六段)의 구성은

서품(序品)에서부터 第十四의 안락행품(安樂行品)까지의 14품은 적문(迹門),

第十五의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서부터  第二十八의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까지를 본문

 

중생이 부처를 이루기 위한 길로 7가지의 비유를  법화칠유(法華七喩) 또는 법화칠비(法華七譬)라 하며, 
①삼거화택(三車火宅)의 비유(火宅喩)
②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窮子喩)
③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藥草喩)
④화성보처(化城寶處)의 비유(化城喩)
⑤계중명주(契中明珠)의 비유(契珠喩)
⑥빈인계주(貧人繫珠)의 비유(衣珠喩)
⑦양의병자(良醫病子)의 비유(醫子喩)

 

1. 서품(序品)

ㅡ청중(聽衆)

 

如是我聞(여시아문) 하였으니,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직역하면 “이와 같이 나에게 들렸다.”는 뜻으로, 내 의지로 듣고 나의 생각대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나에게 들려진 것이고, 그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씀하신 그대로 여기에 전한다는 뜻이다.

아문여시(我聞如是), 문여시(聞如是)라고도 한다.

 

一時(일시)佛(불)께서 住王舍城(주와사성) 耆闍崛山(기사굴산) 中(중)에 계실 때,

與大比丘衆(여대비구중) 萬二千人俱(만이천인구) 하셨다. 

어느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비구 대중 1만 2천 인과 함께 하셨으니, 

ㅡ왕사성(王舍城, Rājagṛha) 고대 인도 마갈타국의 수도

기사굴산(耆闍崛山,Gṛdhrakūṭa) 왕사성 동북쪽에 있는 산의 이름으로, 영취산(靈鷲山)이라고도 한다. 

*왕사성은 다른 모든 성보다 뛰어나고, 기사굴산은 다른 모든 산보다 뛰어난 것이니, 이 법문이 가장 뛰어나다는 뜻을 나타내어서, 경에 “바가바(婆伽婆,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기사굴산에서 머무르셨다”고 한 것이다.

 

皆是阿羅漢(개시아라한)이시며 諸漏已盡(제루이진)하였으며, 無復煩惱(무부번뇌)하시니,

이들 모두는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고,  

ㅡ아라한(阿羅漢, Arhan) 응공(應供)ㆍ살적(殺賊)ㆍ불생(不生)ㆍ이악(離惡)이라 한역하고, 존경받을 만한 성자를 말하며, 대승에서 소승의 성자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기도 하고, 또 부처님의 열 가지 십호명(十號名) 중의 하나이다.

 

逮得己利(체득기리)하시고 盡諸有結(진제유결)하셨으니, 心得自在(심득자재)하신 분들이시라.

자신의 이로움을 얻어 모든 존재(有)의 결박으로부터 벗어났으며, 

마음을 잘 조복(調伏)하여 자재함을 얻어서 심해탈(心解脫)을 잘 얻었고, 혜해탈(慧解脫)을 잘 얻으서 피안(彼岸)에 이른 분들이었다.

 

其名曰(기명왈)하자면, 阿若憍陳如、摩訶迦葉、優樓頻螺迦葉、伽耶迦葉、那提迦葉、舍利弗、大目揵連、

그분들의 이름은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가야가섭(伽耶迦葉)ㆍ나제가섭(那提迦葉)ㆍ사리불(舍利弗)ㆍ대목건련(大目犍連), 

 

摩訶迦旃延、阿㝹樓馱、劫賓那、憍梵波提、離婆多、畢陵伽婆蹉、薄拘羅、摩訶拘絺羅、難陁、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ㆍ아누루타(阿㝹樓馱)ㆍ겁빈나(劫賓那)ㆍ교범바제(憍梵波提)ㆍ리바다(離婆多)

필릉가바차(畢陵伽婆蹉)ㆍ박구라(薄拘羅)ㆍ마하구치라(摩訶俱絺羅)ㆍ난타(難陀),

 

孫陁羅難陁、富樓那彌多羅尼子、須菩提、阿難、羅睺羅,如是衆所知識 大阿羅漢等(대아라한등)이시라.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ㆍ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ㆍ수보리(須菩提)ㆍ아난(阿難)ㆍ라후라() 등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진  아라한들 이셨다.

*‘모두 아라한이다’ 등의 16구(句)는 성문의 공덕 성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아라한(阿羅漢)의 공덕 성취에 대한 16구에 세 가지의 문(門)으로 뜻을 나타내 보이나니, 삼문(三門)이란;

첫째 상상(上上)을 일으키는 상상기문(上上起門)이요,

둘째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의 문이요,

셋째 사(事)를 섭취하는 문이다.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계빈국(罽賓國)의 이언(利言)역 심삼진 번역

 

如是我聞(여시아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 佛 在王舍城 耆闍崛山中(일시 불 재왕사성 기사굴산 중),

與大比丘衆 及菩薩衆俱(여대비구중 급 보살중구)。

부처님께서 큰 비구 대중들과 보살들과 함께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시던 어느 한 때에  

 

時 佛世尊 卽入三昧(시 불세존 즉입삼매),名廣大甚深(명광대심심)。

그 때에 부처님 세존께서는 곧 넓고 크고 매우 깊은 광대심심삼매(廣大甚深三昧)에 드셨는데, 

 

爾時衆中(이시중중) 有菩薩摩訶薩(유보살마하살),名觀自在(명관자재)。

그 법회에 모인 대중 가운데에는 관자재(觀自在, 관세음)라 이름하는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있었으니, 

 

行深般若波羅蜜多時(행심반야바라밀다시),照見五蘊皆空(조견오온개공),離諸苦厄(이제고액)。

관자재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행하여서온(五蘊)이 모두 공(空)한 것이라서 실체가 없음을 비추어 보고는 모든 괴로움과 괴로움의 고액(苦厄)을 여의었으니,  

 

卽時 舍利弗(즉시 사리불) 承佛威力(승불위력),合掌恭敬(합장공경) 白觀自在菩薩摩訶薩言(광자재보살마하살)

바로 그 때에 사리불(舍利弗, 사리자, 지혜제일) 존자가 공송하게 합장하고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서 관자재 보살마하살께 여쭈었다.

 

“善男子(선남자)!若有欲學(약유욕학) 甚深般若波羅蜜多行者(심심반야바라밀다생자) 云何修行(운하수행)?

선남자여, 만약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겠습니까?


如是問已(여시문이) 爾時(이시) 觀自在菩薩摩訶薩告(관자재보살마하살고) 具壽舍利弗言(구수사리불언)

이와 같은 물음을 마쳤을 때, 관자재 보살마하살(관세음보살)이 구수(具壽) 사리불 존자에게 말했다.

구수(具壽), 혜명(慧命), 구족계를 수지하고 도과를 증득하여 자리이타행을 갖춘 연장자인 수행자를 ‘나이가 있는 자의 구수(具壽)’라는 뜻으로 지칭될 때도 있다. 산스크리트어 sthavira는 넓고 견고한 상태에 이른 사람이나 연장자 즉, 존경할만한 선배를 일컬어 상좌(上座), 대덕(大德), 수좌(首座), 존자(尊者) 라고도 하며, 실체나(悉替那)·타비라(陀比羅)라고도 음역하고, 대체로 계를 수지한지 20년 이상 지난 대비구를 부를 때의 존칭이었다.

 

“舍利子(사리자)!若善男子(약선남자)、善女人(선여인) 行甚深般若波羅蜜多行時(행심반야바라밀다행시)

應觀五蘊性空(응관오온성공)。

“사리자여,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물질적인 색(色)과 정신적인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오온(五薀)의 자성(自性)이 공하다는 것을 관(觀)하여야 하나니, 

 

舍利子(사리자)!色不異空(색불이공),空不異色(공불이색)。

사리자여,물질이나 형상의 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空) 또한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과 다르지 않으며, 

 

色卽是空(색즉시공),空卽是色(공즉시색)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이  공(空)이요, 

공(空)이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이라. 

 

受、想、行、識(수상행식) 亦復如是(역부역시)。

감각의 수(受)와 생각의 상(想)과

의욕 또는 의지 또는 지어감의 행(行)과 의식의 식(識) 또한 그러하나니, 

ㅡ受不異空(수불이공), 空不異受(공불이수), 想不異空(상불이공), 空不異想(공불이상)

行不異空(행불이공), 空不異行(공불이행), 識不異空(식불이공), 空不異識(공불이식)


舍利子(사리자)!是諸法空相(시제법공상),不生不滅(불생불멸)、不垢不淨(불구부정)、不增不減(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공한 공상(空相)은 나지도 않는 불생(不生)이요, 없어지지도 않는 불멸(不滅)이며,  

더럽지도 않은 불구(不垢)이고, 깨끗하지도 않은 부정(不淨)이며, 

늘어나는 것도 아닌 부증(不增)이고, 줄어드는 것도 아닌 불감(不減)이라.

 

是故(시고),空中無色(공중무색),그러므로 공(空)한 가운데에는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도 없고

無受、想、行、識(무수상행식)  받아들여서 느끼는 수(受)와, 생각하는 상(想)과 지어가는 행(行)과 의식의 식(識)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 눈으로 보는 빛의 색(色)과 소리를 듣는 성(聲)과, 냄새를 맡는 향(香)과, 맛을 보는 미(味)와  닿임의 촉(觸) 의식으로 분별하는 법(法)도 없으며, 

無眼界,乃至 無意識界(무안계 내지무의식계) 눈의 경계인 안계(眼界) 없고, 의식의 경계인 의식계(意識界) 없는 것이며, 

無無明亦無無明盡(무무명역무무명진) 무명(無明)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하였다는 것도 없으며,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늙어서 죽는 노사(老死)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한 노사진(老死盡)도 없으며, 

無苦、集、滅、道(무고집멸도괴로움의 () 괴로움의 원인인 () 괴로움이 다한 () 괴로움을 없애는 길의 () 없으며, 

無智,亦無得(무지 역무득)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라 할 것 없고, 지혜를 얻는다는(得) 것 또한 없는 것이니, 

 

以無所得故(이무소득고)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菩提薩(보리살타) 보리살타(菩提薩埵,보살)은

依般若波羅蜜多故(의반야바라밀다고) 반야바라밀다(도피안의 지혜)를 의지하여서 

心無罣㝵(심무괘(가)애) 마음에 걸림이 없고,

無罣㝵故(무괘(가)애고),無有恐怖(무유공포)마음에 꺼리고 걸림이 없어서 자유로우므로 두려움이 없으며, 

 

遠離顚倒夢想(원리전도몽상)뒤바뀌어 전도(顚倒)된 헛된 망상의 몽상(夢想) 아주 멀리 여의었으므로, 

究竟涅槃(구경열반)구경에는 번뇌를 떠나서 깨우침의 지혜인 구경열반(究竟涅槃)에 들게 되었나니,

 

三世諸佛(삼세제불) 依般若波羅蜜多故(의반야바라밀다고)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러한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셨으므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보리(菩提)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얻으셨느니라.

 

故知 般若波羅蜜多(고지 반야바라밀다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반야바라밀의 지혜는 

是大神呪(시대신주가장 신비한 주문의 대신주(大神呪)이며, 

是大明呪(시대명주가장 밝은 주문인 대명주(大明呪)이며, 

是無上呪(시무상주가장 높은 주문인 무상주(無上呪)이며, 

是無等等呪(시무등등주무엇과도 비교할  없는 주문인 무등등주(無等等呪)이라서,

能除一切苦(능제일체고) 일체의 온갖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으로, 

眞實不虛(진실불허)참으로 진실하고 허망한 것이 아니니.

故說般若波羅蜜多呪(고설 반야바라밀다주) 그러므로 이 반야바라밀의 지혜의 주문을 말하나니 

卽說呪曰(즉설주왈주문은  이러한 것이니;

 

揭帝 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 僧莎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帝 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僧莎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如是 舍利弗(여시 사리불)!諸菩薩摩訶薩(제보살마하살)

於甚深般若波羅蜜多行(어심심반야바라밀다행) 應如是行(응여시행)。

사리불이여,이와 같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매우 깊은 심심(甚深) 반야바라밀다를 행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러하게 수행하여야 하느니라.

 

”如是說已(여시설이) 卽時(즉시),世尊 從廣大甚深三摩地起(세존 종광대심심삼마지기),

讚觀自在菩薩摩訶薩言(찬관자재보살마하살)

이와 같은 설법 끝내자,곧 세존께서  넓고 크고 매우 깊은 광대심심(廣大甚深) 삼마지에서 일어나셔서 관자재 보살마하살을 찬탄하셨으니, 

 

“善哉 善哉(선재선재)!善男子(선남자)!如是 如是(여시여시)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그러하고 그러하나니! 

 

如汝所說(여여소설) 甚深般若波羅蜜多行(심심반야바라밀다행) 應如是行(응여시행)

그대가 설한 것과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러하 수행해야 하나니, 

 

如是行時(여시행시),一切如來皆悉隨喜(일체여래개실수희)。”

그러하게 수행한다면, 일체의 모든 여래께서 모두 따라서 기뻐하시느니라.


爾時世尊 說是語已(이시세존 설시어이),具壽舍利弗大喜充遍(구수사리불대희충편)

觀自在菩薩摩訶薩 亦大歡喜(관자재보살마하살 역대환희)。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을 마치셨을 때, 구수 사리불 존자는 크게 기뻐하는 마음이 가득차고 두루하였으며,

관자재 보살마하살도 역시 크게 기뻐하였으며, 

 

時彼衆會(시피중회) 天人阿修羅(천인아수라)、乾闥婆等(건달바등)

聞佛所說(문불소설)皆大歡喜(개대환희) 信受奉行(신수봉행)。

그 때의 그 법회에 모였던 하늘(天)ㆍ사람(人)ㆍ아수라(阿修羅)ㆍ건달바(乾闥婆) 등도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믿고 받아서 받들어서 신수(信受)하고 봉행(奉行)하였다.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당(唐)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한역, 이운허 번역

 

無苦、集、滅、道(무고집멸도괴로움의 () 괴로움의 원인인 () 괴로움이 다한 () 괴로움을 없애는 길의 () 없으며, 

ㅡ ① 고(苦) 즉, 고제(苦諦, Duhakaha Satya)란, 삶은 고통이라는 통찰하는 것으로,

색(色)ㆍ 수(受)ㆍ 상(想)ㆍ행(行)ㆍ식(識)의 오중(五衆, 오온)이 '나'라고 집착하는 삶은 태어나는 괴로움의 생고(生苦), 늙어가는 괴로움의 노고(老苦), 병들어서 죽는 괴로움의 병고(病苦)괴로움과, 끝내는 죽는 사고(死苦)의 고고(苦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의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수나 싫은 사람을 만나는 괴로움의 원증회고(怨憎會苦)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의 구부득고(求不得苦)의 모든 것은 연기(緣起) 하여 발생하고, 무상(無常)한 것으로 항상하지 않은 것이라서 변하여서 무너지는 고통의 괴고(壞苦)

색(色)ㆍ 수(受)ㆍ 상(想)ㆍ행(行)ㆍ식(識)의 오중(五衆, 오온)이 '나'라고 집착으로 인한 괴로움의 오음성고(五陰盛苦, 오취온)의 행고(行苦)이고, 

②集(집) 즉, 집제(集諦, Samudaya Satya)란, 깨치지 못한 범부(凡夫)가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은 업(業)과 번뇌(煩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통찰하여서, "아(我, 나)"와 "아소(我所 나의 것)"이라는, 고통의 원인인 무지(無知) ·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아집(我集) 또는 망집(妄執)을 관찰하는 것이다.

③滅(멸), 멸제(滅諦, Nirodha Satya)는 고통의 원인인 갈애(渴愛) · 아집(我集) 또는 망집(妄執)을 관찰하여서 완전히 소멸하여서 열반(涅槃), 해탈(解脫)을 이루는 것이며,

道(도) 도제(道諦, Mārga Satya)는 고통원인을 소멸 시키는 행 또는 수행을 하는 진리로써 
정견(正見) · 정사(正思) ·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命) · 정정진(正精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의 팔정도(八正道)와 사념처(四念處) · 사정근(四正勤) · 사여의족(四如意足) · 오근(五根) · 오력(五力) · 칠각지(七覺支) · 팔정도(八正道)의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과 
보살의 원행(願行)인 보살도(菩薩道)의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반야(般若, 지혜)의 육바라밀(六波羅蜜) 또는 육바라밀에 방편(方便) · 원(願) · 역(力) · 지(智)의 네 가지를 추가한 십바라밀(十波羅蜜)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苦集滅道(고집멸도)는 고제(苦諦)가 집제(集諦)의 원인이 되는 것임을 통찰하고,

멸제(滅諦)는 도제(道諦)의 원인이 된다 것을 관찰하여서 이러한 4가지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닦아 수행하는 것이다.

 

無智,亦無得(무지 역무득)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라 할 것 없고, 지혜를 얻는다는(得) 것 또한 없으며, 

ㅡ우리 모두가 갖추고 있는 본래의 묘하고 밝은 묘명청정(妙明淸淨)한 자리에 이미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라서 지(智)를 다시 얻어야 할 것도 없으며,

일반적인 지혜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내세울 것도 없으며, 

 

以無所得故(이무소득고)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집착하여서 비교하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이지만, 

묘명청정(妙明淸淨)한 자리는 자유로운 것으로 더 이상 얻어야 할 것이 없는, 완전히 갖추어진 자리이다.

 

菩提薩(보리살타) 보리살타(菩提薩埵,보살)은

ㅡ보리살타(菩提薩唾, 보디사트바 bodhisattva), 산스크리트어 보디(bodhi)는 보리(菩提)는 깨달음의 뜻이며

사트바(sattva)는 존재 또는 유정(有情)을 말하는 것으로 보리살타는 깨달은 존재의 각유정(覺有情)이라는 뜻으로 깨달은 중생의 뜻이다.

보살은 대승에서는 깨달음을 이룬 중생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초기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依般若波羅蜜多故(의반야바라밀다고) 반야바라밀다(도피안의 지혜)를 의지하는 까닭에 

ㅡ반야(般若, 프라즈냐 prajñā)는 지혜(智慧)로서, 제법의 실상인 우주 만물의 본성을 관찰하는 '조(照)'를 하여서,

유위법은 괴로움의 고(苦)로써 변하고 무너지는 것이고, 일시적인 것으로써 무상(無常)한 것이나,

진리는 실체가 없는 무아(無我)로써 참된 진리가 가득 찬 공(空)한 것이나,

다만 중생의 집착과 상대적인 소견의 인연을 따라 생기(生起)하는 것을 보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하여서, 얻는 보리의  대지(大智)인 무분별지(無分別智, 정견 正見, 깨달음)에 의지하는 까닭에,

 

心無罣㝵(심무괘(가)애) 마음에 걸림이 없고, 

ㅡ마음에 집착이나 편견이 없으므로 혼란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無罣㝵故(무괘(가)애고),無有恐怖(무유공포)마음에 꺼리고 걸림이 없어서 자유로우므로 두려움이 없으며, 

 

遠離顚倒夢想(원리전도몽상)뒤바뀌어 전도(顚倒)된 헛된 망상의 몽상(夢想) 아주 멀리 여의었으므로, 

ㅡ색(色)ㆍ 수(受)ㆍ 상(想)ㆍ행(行)ㆍ식(識)의 오중(五衆, 오온)이 '나'라고 집착해서 유(有)와 무(無), 생(生)과 멸(滅), 더러운 구(垢)와 깨끗하다는 정(淨), 더욱 많아지는 증(增)과 줄어든다는 감(減)의 모든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것에 의지해서 사성제(四聖諦)를 알지 못하고, 얻을 것이 있다는 유소득(有所得)을 위하여 진리를 떠나서 살아가는 뒤바뀐 전도(顚倒)의 삶을 멀리 떠났으므로, 

 

究竟涅槃(구경열반)구경에는 번뇌를 떠나서 깨우침의 지혜인 구경열반(究竟涅槃)에 들었으니, 

ㅡ반야(般若)의 지혜(智慧)를 얻어서 일체의 상대적인 소견(所見)의 모든 속박을 떠나서, 즉 번뇌의 차안(此岸)을 떠나서 도피안(到彼岸)하여서 번뇌의 불이 꺼진 적멸(寂滅)의 완전한 열반(涅槃, 니르바나)에 들게 되었다.

 

三世諸佛(삼세제불) 依般若波羅蜜多故(의반야바라밀다고)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셨으므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이러한 보리(菩提)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얻었느니라.

 

故知 般若波羅蜜多(고지 반야바라밀다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반야바라밀의 지혜는 

是大神呪(시대신주가장 신비한 주문의 대신주(大神呪)이며, 

是大明呪(시대명주가장 밝은 주문인 대명주(大明呪)이며, 

是無上呪(시무상주가장 높은 주문인 무상주(無上呪)이며, 

是無等等呪(시무등등주무엇과도 비교할  없는 주문인 무등등주(無等等呪)이라서,

能除一切苦(능제일체고) 일체의 온갖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으로, 

眞實不虛(진실불허)참으로 진실하고 허망한 것이 아니니.

故說般若波羅蜜多呪(고설 반야바라밀다주) 그러므로 이 반야바라밀의 지혜의 주문을 말하나니 

卽說呪曰(즉설주왈주문은  이러한 것이니;

 

揭帝 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 僧莎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帝 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僧莎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ㅡ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가세 가세 저 너머의 완전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가서, 보리(菩提, Bodhi)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세!

보리를 위한 가르침을 수행하고 실천하여서 고통의 차안을 떠나서, 보리(菩提, Bodhi)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세!

제법(諸法)은 흘러가면서 변하는 것이니 그러한 것을 통찰하여서, 보리(菩提, Bodhi)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세!

모든 상대적이고 이원적인 소견을 버리고, 중도의 보리(菩提, Bodhi)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세!

오중(五衆, 오온)에 집착해서 "아(我, 나)"와 "아소(我所 나의 것)"를 가리는 번뇌의 속박을 버리고, 중도의 보리(菩提, Bodhi)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세!

보리의 대지(大智)인 무분별지(無分別智, 정견 正見, 깨달음)에 의지하고 실천하여서, 중도의 보리(菩提, Bodhi)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세!

유소득(有所得)을 위하여 진리를 떠나서 살아가는 뒤바뀐 전도(顚倒) 삶의 길을 멀리 떠나서, 중도의 보리(菩提, Bodhi)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세!

우리 모두가 갖추고 있는 본래의 묘하고 밝은 묘명청정(妙明淸淨)한 자리에 안주하여서, 중도의 보리(菩提, Bodhi)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세!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당(唐)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한역, 이운허 번역

 

舍利子(사리자)!是諸法空相(시제법공상)사리불이여,  모든 법의 공한 공상(空相) 

ㅡ지시대명사로서의 是(시), 이러한 諸法(제법), 즉 일체 우주의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일체법은 空相(공상)이라.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하니,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일체의 만법(萬法)이 모두 항상하지 않고 변천(變遷)해 가는 것으로 고정된 실체없는 것이라서 집착하여 매달릴 것이 없는, 여여(如如)한 공(空)한 진리의 상(相)이더라.

 

不生不滅(불생불멸),나지도 않는 불생(不生)이요, 없어지지도 않는 불멸(不滅)이며,  

ㅡ그래서 그 실상(實相)을 보니, 이러한 諸法(제법)이 실제로는 새로 생겨나는 것이 없는, 즉 변천(變遷)해 가는 것이라서 불생(不生)이요, 변해서 옮겨가는 것일 뿐이니 불멸(不滅)인 것이며,

 

청화스님; 우리 중생은 실상과 실존을 못보고 가상(假相)만 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법이 다 비어 있는 실상에서 본다면 생도 없고 멸도 없단 말입니다. 어째서 그런고 하면 영생하니까! 가상을 본다고 할 때의 우리는 상대적인 것만 보는 것으로 - 생(生)이 있고 사(死)가 있고 모든 분별이 있지만, 물질이라는 것은 결국은 우리가 봐서 물질인데, 물질도 결국은 마음이니까, 모든 법이 상대유한적인 그런 것들이 다 비어버려서 - 실다운 모습 - 참다운 실상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그야말로 참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단 말입니다. 이것은 영생(永生)과 똑 같습니다.

영생하는 가운데서 무슨 생(生)이 있고 멸(滅)이 있겠습니까.
사람 몸뚱아리 몇 천번 나고 죽는다고 하더라도 역시 생명은 죽지 않고 낳지 않습니다.
인연 따라서 몸뚱아리만 낳고 죽고 하는 것이지 생명 자체는 생도 없고 멸도 없습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이와 같이 낳음도 없고 - 원래 생겨남이 없으니 멸도 없습니다.
우리 중생은 근원을 못 보고서 그냥 겉만 보기 때문에, 부모님한테 의지해서 나오면 나온다 하고 모양이 없어지면 그 때는 죽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생명은 죽음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서 공부가 툭 틔어서 본질을 보면 그때는 격세즉망(隔世卽忘)이라, 그 때는 한번 생을 바꿔도 바뀜이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수원수생(隨願受生)이라, 자기 원하는데 가서 자기 멋대로 태어난단 말입니다. 천상에 올라가려면 올라가는 것이고 인간으로 올려면 인간세상에 오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 우리 눈을 비롯해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요소가 청정해야지요. 청정하려면 오랜 동안 삼매(三昧)에 잠겨야 합니다. 오랫동안 삼매에 잠기지 안하면 우리한테 있는 찌꺼기가 안 녹습니다. 찌꺼기가 녹아버려야 앞서 말씀한 탐심 진심도 안 일어나고 동시에 나(我)라는 생각도 없고 동시에 우리 몸뚱아리나 물질을 떠나서 몸뚱아리나 물질을 구성한 근본 요소를 우리가 알 수가 있단 말입니다.ㅡ마이너스 갤러리

 

不垢不淨(불구부정),더럽지도 않은 불구(不垢)이고, 깨끗하지도 않은 부정(不淨)이며, 

ㅡ그 변해서 옮겨가는 諸法(제법)의 실상적인 면의 진리의 공상(空相)에서 보니, 더러운 것도 아닌 불구(不垢)이고, 

깨끗하거나 맑다고 할 것도 없는  부정(不淨)이라서 더럽고 깨끗하다는 상대적인 것을 벗어난 것이며,

 

不增不減(불증불감)。늘어나는 것도 아닌 부증(不增)이고, 줄어드는 것도 아닌 불감(不減)이라.

 

청화스님; 흔히 모든 중생이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합니다만, 잘못 생각하면 부처님에게는 불성이 많이 있고, 우리한테는 불성이 적게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만 사실은 누구한테나 불성은 똑 같이 있습니다.

다만 발견하는 정도가 얼마만치 더 많이 발견했는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천지우주에 충만한 불성을 다 발견하신 분이고, 우리 중생은 아직 다 발견을 못했단 말입니다. 그것 뿐인 것이지 불성 자체에서는 석가모니한테나 독사한테나 강도한테나 있는 불성은 똑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불성은 사람 하나 죽는다고 해서 불성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 것이고, 또한 석가모니가 열반(涅槃)에 든다고 해서 불성이 안 줄어듭니다. 천지 우주가 다 파괴된다고 해도 불성은 안 줄어듭니다. 원자폭탄 핵무기가 우주를 진멸시킨다 하더라도 불성은 조금도 더함도 덜함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거품 같은 물질만 변동하는 것이지 순수 에너지인 생명자체 불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더함도 없고 감함도 없단 말입니다.

 

是故(시고),空中無色(공중무색),그러므로 공(空)한 가운데에는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도 없고

ㅡ是故(시고), 그러므로, 유(有)와 무(無), 생(生)과 멸(滅), 더러운 구(垢)와 깨끗하다는 정(淨),

더욱 많아지는 증(增)과 줄어든다는 감(減)의 모든 상대적이면서 상호의존하는 제법은 공(空)한 것이니,

그 공한 가운데에는 항상하는 실체의 색(色)도 없는,

공(空)하다는 것은, 텅비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대적인 개념을 초월한 상호 의존의 연기(緣起)의 실상(實相), 진실의 공덕(功德)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無受、想、行、識(무수상행식)  받아들여서 느끼는 수(受)와, 생각하는 상(想)과 지어가는 행(行)과 의식의 식(識)도 없으며, 

ㅡ是故(시고), 그러므로, 감각하는 느낌에 매달리는 수(受)와, 생각하여서 헤아리고 상상하는 상(想)과 

의욕으로 행하여서 모든 것을 지어가는 행(行)과 분별하는 의식의 식(識)도 없으며,

즉 반연하여서 느끼고 헤아려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가는 모든 반연하는 것들이 항상한 실체가 있거나 진실한 것이 아니라서 집착할 것이 없는 진리의 공(空)이며,

 

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ㅡ是故(시고), 그러므로, 눈, 즉 시각(視覺)으로 보는 것과 귀, 즉 청각(聽覺)으로 듣는 것과,

코, 즉 후각(嗅覺)으로 냄새를 맡는 것과 입, 즉 미각(味覺)으로 맛을 보는 것과

몸, 즉 촉각(觸覺)을 느끼는 모든 제법(諸法)이 항상한 실체가 있거나 진실한 것이 아니라서 집착할 것이 없는 진리의 공(空)이며,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ㆍ 뜻(意)의 육근(六根)이 '나'라고 집착할 것이 없는 진리의 공(空)이며, 

색(色)ㆍ 수(受)ㆍ 상(想)ㆍ행(行)ㆍ식(識)의 오중(五衆, 오온)이 '나'라고 집착할 것이 없는 진리의 공(空)이며, 

 

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 눈으로 보는 빛의 색(色)과 소리를 듣는 성(聲)과, 냄새를 맡는 향(香)과, 맛을 보는 미(味)와  닿임의 촉(觸) 의식으로 분별하는 법(法)도 없으며, 

ㅡ물질의 색상(色相)ㆍ 느낌의 수상(受相)ㆍ생각의 상상(想相)ㆍ 지어감의 행상(行相)ㆍ분별의 식상(識相)의 모든 의식작용으로 분별하여서 시비를 가리는 모든 것이 집착해서 얻고자 하여도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공(空)이며, 즉 우리 개개인이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며, 

 

無眼界,乃至 無意識界(무안계 내지무의식계) 눈의 경계인 안계(眼界) 없고, 의식의 경계인 의식계(意識界) 없는 것이며, 

ㅡ눈으로 색을 보는 안식계(眼識界)와 귀가 소리를 듣는 이식계(耳識界)와 코가 냄새를 맡는 비식계(鼻識界)와 혀가 맛을 느끼는 설식계(舌識界)와 몸으로 닿는 것을 느끼는 신식계(身識界)와 이러한 모든 것을 분별하고 헤아리는 의식계(意識界),

즉 육근(六根, 육내처 六內處)과 육경(六境, 육외처 육외六外處)과 육식(六識)의 18계(十八界)가 '나'라고 집착할 것이 없는 진리의 공(空)이며,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ㆍ 뜻(意)의 여섯 가지 감각인 육근(六根)은 내적 감각 기관인 안계(眼界), 이계(耳界), 비계(鼻界), 설계(舌界), 신계(身界), 의계(意界)이며,

여섯 가지 외부 대상인 색계(色界), 성계(聲界), 향계(香界), 미계(味界), 촉계(觸界), 법계(法界)는 육경(六境)으로,

육식(六識)은 외부 대상인 육경(六境)과 육근(六根)이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여섯 가지 의식으로서 안식계(眼識界), 이식계(耳識界), 비식계(鼻識界), 설식계(舌識界), 신식계(身識界), 의식계(意識界)이다.

 

無無明亦無無明盡(무무명역무무명진) 무명(無明)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하였다는 것도 없으며, 

ㅡ'나'라고 할 것이 없는 진실한 공(空), 집착과 분별을 벗어난 공(空), 진리의 자리, 우리의 본성인 밝은 명원체(明元體), 불성(佛性), 등이라고 이름하는 그 자리에는 진리를 모르는 무명(無明)이라 할 것도 없으며, 그 무명이 다하여서 깨쳤다거나 무명을 없애야 한다고 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묘하게 밝은 묘명원체(妙明元體)이라서 무명도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분별하고 집착하면서 알고 모른다고 상대적으로 이분화하는 유(有)와 무(無)가 없는 진리만이 가득찬 공(空)이기 때문이다.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늙어서 죽는 노사(老死)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한 노사진(老死盡)도 없으며, 

ㅡ생(生)과 멸(滅)로 이분(二分)된 상대적인 것이 없으므로 죽음의 공포도 없고, 그 죽음을 벗어나서 해탈하고자 하는 것도 없으며,

즉 진리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다만 변하여 옮겨 가는 것일 뿐,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사에는 생(生)과 사(死)를 서로 떨어진 분단(分段)의 세계로 생각하여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분단생사(分段生死)의 관(觀)과 죽은은 단지 몸만 바뀌어 변화된 세계라고 보는 변역생사(變易生死)에서 변역생사 또는 변이생사로 보는 관(觀)이 있다.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당(唐)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한역, 이운허 번역

 

600권의 대반야바라밀다경을  한문(漢文)의 260자로 요약하여 대승 불교의 깊은 진리를 함축한 경전이다.

이 경을 동아시아에 한문으로 번역하여 전래한 사람이 바로 동아시아사 대표적 불교 구법 여행의 '대당서역기'를 지은 당나라의 현장 법사이다. 원래 현장 이전에도 반야심경이라는 불경 자체는 '마하반야바라밀다명주경'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알려져 있었다.

번역문으로는 현장 (649년 번역본)과 함께 불경 번역의 거두로 꼽히는 412년 쿠마라지바(구마라습)의 번역본이 있으나, 현장의 번역이 더 유명하며, 조계종에서 정한 반야심경 한국어 표준번역도 현장이 한역한 반야심경을 기준으로 한다.


원래 반야심경도 다른 경전과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반야심경의 내용을 설한 계기, 장소, 설해진 후의 결과 등이 다 쓰인 광본(廣本)이 있으나, 반야심경 자체가 짧으면서 핵심을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대승 불교 의식에서는 이 짧은 반야심경이 독송되고, 티베트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광본을 독송한다.

이 산스크리트어 광본을 두고, 소품반야경과 대품반야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창작된 광본을 현장, 또는 누군가가 산스크리트로 역번역(back-translation)했다고 보는 불교학자(대표적으로 Jan Nattier)들도 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쓰는 관용구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중국식 언어습관이 섞인 산스크리트어 조어가 광본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하나, 현재로서 반야심경 위경 논란은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산스크리트 원본이 있었다 하더라도, 각 번역자의 선택에 따라 번역본 혹은 음역본이 쿠마라지바나 현장에 의해 첨삭되었다는 점은 대체로 학계에서 인정하는 편이며, 학계에선 현장과 쿠마라지바 둘 다 짧은 판본만 건드렸지 광본을 번역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 광본의 대표 역자로는 저 두 사람이 아닌 법월法月(739년역), 반야般若/리언利言(790년역), 법성法成(856년역), 지혜륜智慧輪(860년역), 시호施護(980년역) 등이 있다.

소본의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 사본은 일본 법륭사(法隆寺)에 패엽본으로 소장하고 있고, 광본의 산스크리트 사본은 일본 나라 하세데라(奈良 長谷寺)가 소장하였다.

반야심경은 대승 불교에서 핵심으로 다루는 '공 사상'을 설명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이 널리 알려진 경구이다. 재미있는 점은, '공 사상의 측면에서 보면'이라는 전제 하에 초기불교의 교리가 깡그리 부정되는 듯하다는 것이다. 순서대로, 초기불교에서 무아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오온과 육입처, 육경, 육식은 물론, 순관과 역관을 포함한 연기의 제1항부터 제12항, 사성제가 깡그리 모두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없다'고 하는 것은 진짜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자성(自性: 고정불변하는 실체, 혹은 본성)이 없다는 말이다. 

스리랑카 출신 승려가 일본에서 반야심경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고 책을 내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 대충의 요지는 '색즉시공은 불교의 교리에 부합하고 철학적으로 보아도 논리가 맞지만,

공즉시색은 말이 안 되는, 공즉시색은 틀렸다.'는 주장이다. 이는 상좌부 불교의 관점 때문인데, 상좌부에서는 공(空), 즉 무아(無我)인 것은 물질, 마음, 마음부수, 닙바나로 실제로 있는 것 네 가지 전부이며, 그러므로 공은 물질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는 '모든 가로수는 나무이다'와 '모든 나무는 가로수이다' 두 가지 명제의 참/거짓 여부와도 비슷하다.

반면 대승 불교에서는 공(空)뿐 아니라 유식(唯識)을 함께 고려해서 논리를 전개한다.

공 사상에 따르면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이 '색즉시공'이고, 유식 사상에 따르면 그러한 하나를 모든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이 '공즉시색'이다. 이를 통해 '하나의 빛이 온 세상을 장엄하게 비춘다'는 화엄(華嚴)의 사상이 성립하므로 대승불교에서는 '공즉시색'을 빠뜨리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이는 상좌부 불교와 대승 불교의 교리적 차이, 그리고 이를 믿는 지리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해프닝이라 볼 수 있겠다. ㅡ 나무위키

 

摩訶 般若 波羅蜜多 心經(마하 반야 바라밀다 심경)

摩訶(마하): 크고 위대하다.


般若(반야, 프라즈냐 prajñā): '지혜', '깨달음의 지혜' ’참지혜‘, ’해탈의 지혜‘


波羅蜜多(바라밀다, 파라미타 pāramitā): 피안(彼岸)에 이르는 길, 완성

ㅡ반야(般若)는 참 지혜(智慧), 우리 인간이 축적한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서 번뇌를 떠난 성자의 참다움에서 우러나온 지혜로써, 사실 일반 중생에게는 반야가 없고 성자에게만 반야, 즉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있습니다.  

바라밀(波羅蜜)은 ‘도피안(到彼岸)’하는 것으로, 번뇌에 쌓인 우리 중생이 사는 세계인 차안(此岸)에서 고해(苦海)의 강이나 바다를 건너는 도(到), ‘도피안(到彼岸)’을 해서 피안(彼岸), 즉 해탈(解脫),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이르는 것입니다.

 

心經(심경): 心(심, 흐리다야 hṛdaya)은 ‘심장’ · ‘본질’ · ‘핵심’이라는 뜻으로, 지혜의 완성에 대한 핵심을 설한 경’이라는 뜻이며, 경의 골수(骨髓), 가장 중심(中心)의 정수(精髓)가 되는 경을 심경이라 합니다.

피안, 즉 ‘영생의 해탈에 이르는 거룩한 지혜의 가장 귀중한 경’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라는 것입니다.

 

청화스님; 부처님 경전은 무슨 경(經)이든 소중하지 않는 경이 있으리요만, 반야심경(般若心經)은 가장 짧은 동시에 불교의 모든 철학을 함장을 시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앞서 말씀과 같이 피안에 이르는 - 영생의 해탈에 이르는, 우리 중생은 지금 죽고 살고 헤매고 번뇌를 일으키고 하는 차안(此岸)에 있는데, 중생의 그런 고생스런 고생 바다를 건너서 영생의 저 언덕, 영생의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거룩하고 가장 귀중한 경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은 ‘피안에 이르는 거룩한 지혜의 가장 골수의 경’이란 말입니다.

 

서문(序文)

觀自在菩薩 行 深般若波羅蜜多 時(관자재보살   행 심반야바라밀다 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세음보살)께서 깊은 참 지혜의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행(行)하실 때, 

照見 五薀皆空,度 一切苦厄(조견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

다섯 가지 쌓임의 오온(五薀, 정신적 물질적인 것) 모두가 공(空)한 것으로 실체가 없음을 비추어 보는 조견(照見)하시고,

모든 괴로움과 재앙의 고액(苦厄)에서 벗어나시니, 

ㅡ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의 오정(五情)이 색(色)ㆍ 수(受)ㆍ 상(想)ㆍ행(行)ㆍ식(識)의 오중(五衆)을 받아들여서 쌓여서 '나'라고 생각하는 오온(五薀)이 공(空)한 것으로, 

즉, 물질적인 색(色)과 정신적인 수상행식(受想行識)오온은 변해가는 것으로써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통찰함으로써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세음보살을 더욱 깊은 의미로 해석해서 관자재보살이라 하며, 우주만유를 막힘없이 자재롭게 원만무결(圓滿無缺)하게 관찰(觀察) 할 수 있는 보살(菩薩)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상대유한적(相對有限的)이라서 막히지만, 부처님과 같이 천지 우주를 다 통달해서 일체를 다 아는 자재(自在)로운 지혜 또는 자재롭게 모두를 다 관찰(觀察)하는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우리 중생을 구제(救濟)하는 자비로운 보살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체만유(一切萬有)를 다 알고 생사를 초월(超越)한 통달무애(通達無礙)의 지혜로써 중생을 영원의 저 언덕으로 인도하는 보살이 관세음보살입니다.ㅡ청화스님 설법 참고

 

“舍利子(사리자)!사리불(舍利弗)이여,

色不異空(색불이공),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고

空不異色(공불이색), (空) 또한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다르지 않으며,

色卽是空(색즉시공),물질이나 형상의 색(色)이 공(空)이요, 

空卽是色(공즉시색), 공(空)이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이라. 

受、想、行、識,亦復如是(수  상  행  식 역부여시) 감각의 수(受)와 생각의 상(想)과

의욕 또는 의지 또는 지어감의 행(行)과 의식의 식(識) 또한 그러하나니, 

ㅡ色(색, 물질) 受、想、行、識(수상행식, 정신)은 변해가는 것이라서 실체가 없는 것임을 통찰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모든 물질적 형상(色)은 근본적으로 공(空)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없다'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연기(緣起)의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물질이나 형상의 색(色)만이 아니라 受、想、行、識(수상행식)의 정신적인 것도 모두 마찬가지로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실체가 없는 공(空)이다.

受不異空(수불이공), 空不異受(공불이수), 想不異空(상불이공), 空不異想(공불이상)

行不異空(행불이공), 空不異行(공불이행), 識不異空(식불이공), 空不異識(공불이식)

 

청화스님의 말씀을 정리하였음; 천지 우주의 모든 것을 우리 중생이랑 통 털어서 유상(有相) 무상(無相), 유정(有情) 무정(無情) 다 털어서 한꺼번에 말할 때에 오온이라 합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 안 보이는 것 하여튼 다 털어서 말할 때에 오온이라 하는데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위대한 도인들이 영생에 이르는 지혜를 닦을 때, 맨 먼저 정신과 물질이 다 비어 있음을 비춰본다는 말입니다.

불교라는 것은 언제나 ‘내가 없다’ 또는 ‘물질이 공이다’ 하는 공 지혜를 떠나서는 불교가 성립이 안 됩니다.
좋다 궂다 또는 너다 나라고 하는 그런 것이 있으면 불교의 깊은 의미를 음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내 앞에 네가 있고, 내가 있고 또 선(善)이 있고 악(惡)이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것은 중생의 차원에서 보는 것으로, 사실 관세음보살이나 도인들이 볼 때는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의 업장(業障)의 정도에서 보니까 밉다 곱다 귀엽다고 하는 것으로, 청정한 안목으로 볼 때에는 그러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못 느끼면 불교를 알 수가 없습니다. 즉, 우리가 보는 것은 결국은 다 빈, 공(空)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분자(分子)를 볼 수 있는 현미경(顯微鏡)을 쓰고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분자를 볼 수 있는 현미경으로 세상을 본다면 천지 우주는 다 분자로만 보일 것이고, 원자(原子)를 볼 수 있는 현미경을 쓰고 본다면 천지 우주는 그 때는 원자로만 보일 것입니다.
부처님의 불안(佛眼)이라, 부처님의 안목(眼目)은 천지 우주를 광명(光明)으로 보는, 천지 우주의 근원은 어떠한 것이라도 전부 다 순수한 광명 에너지가 꽉 차있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현미경을 이용하지 않으면 전자(電子)도 못 보고 분자(分子)도 못 본단 말입니다.
우리가 쓰는 안목은 삼독심(三毒心), 탐욕(貪慾)이나 또는 성내는 마음이나, 어리석은 마음의 독심(毒心)에 가려서 바로 못 보기 때문에, 나와 네가 있다는 벽을 세워버리고, 그러한 경계에서 보니까 여러 견해가 생겨서 시비(是非)가 생긴단 말입니다.
헌데 참다운 진리, 영생의 해탈에 이르는 반야지혜를 우리가 얻고자 할 때, 제일 먼저 무엇이 중요한가!

아무리 내가 귀엽지만은 결국은 나를 비롯한 천지 우주가 다 비어 있다는 것을 비추어 봐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리불(舍利弗, Śāriputta) 또는  우바실사(優婆室沙), 사리불다라(舍利弗多羅), 사리보달라(奢利補怛羅), 사리자(舍利子), 추로자(鶖鷺子)라고 하며, BC 6~4세기경에 마갈타국 왕사성 북쪽 나라촌의 바라문의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인도 히말라야 산의 사리조(舍利鳥)라는 새는 그 눈이 아름답고 영롱한 새로 알려졌는데, 사리자의 어머니가 눈이 영롱한 미인이었고, 그 예쁜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해서 사리자라고 이름하게 되었다. 

당시의 갠지스 강 중류지방에는 사문들의 탁월한 지도자 6명이 잇달아 출현했는데, 이들을 ‘6사외도’라 하며, 사리불은 6사외도 중의 한 사람인 산자야의 제자였다.
사리불은 아사지(목건련 존자)가 탁발하는 것을 보고, 그의 안정되고 위엄이 있고 늠름함에 이끌려 탁발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그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벗이여, 당신은 누구에게 출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나는 붓다에게 출가했으며, 붓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사리풋타는 계속해서, “그대의 스승은 무엇을 설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목건련 존자는 대답 대신 게송을 읊었다.
'모든 법은 원인으로부터 발생하니, 여래께서는 그 원인을 밝혀주셨네.
또 그것들의 소멸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나니, 이것이 대 사문의 가르침이라네

그의 말에 감복하여 친구 목건련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을 이끌고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도에서 부처님의 명성이 높아지고, 그의 설법에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받고자 귀의하는 자가 늘어났다고 전한다. 주로 교화활동에 종사했으며, 부처님의 실질적인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부처님보다 먼적 입적하셨다.

 

*육사 외도(六師外道)=당시 인도 우파니샤드 철학에 기초하여 62견(六十二見) 또는 360종 이설(異說)이라 불리는 다양한 사상이 나타났는데, 육사외도는 그 가운데서 (불교 이외에) 가장 세력이 큰 여섯 집단이었다.

1.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 자이나교의 교주.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영혼을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고행을 제시하였다.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을 지키며,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였다.

2. 산자야 벨랏티풋타(Sanjaya Belatthiputta)=진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懷疑論)과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했다.
산자야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사람 두 명이 바로 사리풋다와 목갈라나이다. 이 둘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듣고 산자야의 가르침에 회의를 느껴 다른 제자 250명과 함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였다. 산자야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마하비라 이전에는 상당한 규모의 종단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회의론과 불가지론은 하나의 생각하는 관점이 되기는 하나 고뇌하는 사람에게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불교와 자이나교에 나누어져서 흡수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단멸론자이자 유물론자. 순세파(順世派, Carvaka)라고 한다. 현세의 삶이 최초이자 최후이므로 인간은 그저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아지타는 삶은 사대원소의 결합이며 죽음은 사대원소가 흩어져 무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사후 세계나 영혼의 존재는 완전히 부정했으며, 현세도 없고 미래세도 없다고 보았다. 윤회도 없고 선악에 따른 과보도 없으므로, 도덕을 부정하였다.

4.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숙명론자. 사명외도(邪命外道).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12원소설(지수화풍ㆍ공ㆍ득ㆍ실ㆍ고ㆍ락ㆍ생ㆍ사ㆍ영혼)을 주장했으며, 그 가운데는 영혼도 포함되고 인간의 영혼도 하나의 원소로 파악했던 유물론자이다.
의지의 작용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했고 인과와 업보를 부정하고 무인(無因) 무연(無緣)을 주장했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수행으로 해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막칼라 고살라의 주장으로는 모든 인간은 8백 40만 겁을 윤회하는 동안 저절로 고통이 없어져 스스로 해탈한다는 것이다.

5.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ayana)=인간을 구성하는 것을 일곱 가지 요소로 보았다. 이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고락(苦樂)ㆍ생명(生命)ㆍ영혼(靈魂)이다.
일곱 가지 요소는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생명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은 나지도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므로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죽이는 자도 없고, 살해되는 자도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칼로 인간의 목을 자른다고 해도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곱 가지 요소 사이로 칼이 지나갈 뿐이라는 것이다.

6. 푸라나 캇사파(Purana Kassapa)=선악(善惡)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마음대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선악은 없다고 주장했다. 살생, 도둑질, 간음 등의 악행을 저질러도 인간이 임의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반대로 보시와 방생 같은 선행을 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인간의 관념에 따른 것이므로 선행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업(業)은 없으며 업에 의한 응보도 없고, 업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인과나 운명이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보았다.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10 14

 

阿難!是五蘊陰 五妄想成,汝今欲知因界淺深,唯色與空是色邊際;唯觸及離是受邊際;

唯記與忘是想邊際;唯滅與生是行邊際;湛入合湛歸識邊際。

아난아,  5 가지의 쌓인 오온음(五蘊陰)은 다섯 가지 망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네가 지금 원인의 경계인 인계(因界)의 깊고 얕음의 천심(淺深)을 알고자 하면,

오직 물질(色)과 공(空)은 색음(色陰)의 가장자리인 변제(邊際)이고, 

닿음의 촉(觸)과 떨어짐의 이(離)는 수음(受陰)의 변제(邊際)이며, 

기억하는 기(記)와 잊음의 망(忘)은 상음(想陰)의 변제(邊際)이고, 

사라짐의 멸(滅)과 생겨나는 생(生)은 행음(行陰)의 변제(邊際)이며, 

맑은 담(湛)에 들어가서 맑음과 합하는 것은 식음(識陰)의 변제(邊際)로 돌아가느니라.

ㅡ오음(五陰)과 오탁(五蘊)은 한 생각이 혼미하고 허망하여 이를 받아들이고 이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가리고 감춘 폐장(蔽藏)인 것이다. 인계(因界)란, 본래는 경계가 없는 것인데 망상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색(色)이 스스로의 색(色)이 못되고 공(空)으로 인하여 있게 되어서 색음(色陰)이 변제가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멸(滅)함까지도 스스로 멸(滅)하는 것이 아니라 생(生)겨남으로 인하여 멸함이 있게 되어서 행음(行陰)의 변제가 되며, 행음(行陰)이 흘러 도망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성품이 원래 맑음에 들어가 맑음과 어울려서 식음의 변제(識陰)를 이루는 것이다.

 

此五陰元重疊生起,生因識有滅從色除,理則頓悟乘悟倂銷,事非頓除因次第盡。

我已示汝劫波巾結,何所不明再此詢問?

 5음(五陰)의 근원이 겹겹이 쌓여서 생겼으니, 생겨날 때에는 식음(識陰)으로 인하여 생겨나고,

없어질(滅) 때에는 색(色)을 따라 없어지나니,

이치(理)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서 깨달음에 의지하여 모두 사라지지만,

일(事)은 단번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차례를 따라서 하나하나 없어지나니,

내가 이미 너에게 겁바라건(劫波羅天) 수건의 매듭으로 보여주었거늘, 무엇이 분명하지 않아서 다시  묻는 것인가?

ㅡ식(識)을 겁바라건(劫波羅天) 수건에 비유하였고, 색을 마지막 매듭에 비유하셨다.

그 매듭은 수건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의식으로 인하여 일어나고 견해(解)가 차례를 따르는 까닭에 멸하는 것이 색음을 따라 없어지는 것이다. 

오음이 생기는 것을 미세함에서부터 거친 것에 이르는 것이닌, 이는 미혹한 습기로 말미암아 의식이 있는 것이며, 

이렇게 수음으로 말미암아 색음에 이르고 멸함에 대해서도 거친 것에서부터 미세함에 이르는 것이니,

그래서 반드시 색음을 먼저 깨뜨린 뒤에야 수음이 나타나며, 행음을 깨뜨린 뒤에 식음이 나타남에 이르는 것이다.

'이치(理)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서 깨달음에 의지하여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수건이 본래 없는 것임을 알면 매듭도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며, 

'일(事)은 단번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차례를 따라서 하나하나 없애야 한다'는 것은 중근(中根)은 완전히 깨닫고서도 반드시 점차로 수행해서 닦아 나가야 하는 것으로, 만약 돈오로 인하여 점수(漸修)를 하지 않는다면 알기만(解)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며, 이치만 집착하고 일(事)은 미혹하여 마침내 치우치고 삿됨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汝應將此妄想根元心得開通,傳示將來末法之中諸修行者,令識虛妄深厭自生,知有涅槃不戀三界。

너는 마땅히  망상(妄想)의 근원을 가지고 마음을 열어 통달해서, 장래 말법(末法) 세계에서 수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주어서  허망함을 깨닫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싫어하는 생각이 저절로 우러나게 하며, 열반이 있음을 알아서 3계(界)에 연연하지 않도록 하여라.

 

3. 유통분(流通分)

阿難!末世衆生 不信正法 當生邪見 誹謗大笑 毁非佛說 是人 現世 罣於業網 三災 八難 九橫 來侵

瘋癩 痼疾 常纏其身 跛聾盲啞 人皆輕淺 命終 即墮阿鼻地獄 一日一夜 萬死萬生 萬般苦痛 無有休息

謗此經故 獲罪如是 汝當宣布 令彼衆生 回心懺悔 信解修證

아난아! 말세의 중생들이 정법(正法)을 믿지 않고 항상 사견(邪見)을 내다가 홀연히 이 경전을 만나서 크게 비웃으며 비방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잘못된 것이라고 헐뜯으면, 그 사람은 현재 세상에서 업장의 그물에 걸려서 삼재(三災)와 팔난(八難)과 9 가지의 횡액이 침범하여 문둥병과 고질병이 항상 그 몸을 얽어매며 절름발이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로 태어나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과 천대를 받다가 죽자마자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하루 낮 하룻밤 사이에 만 번을 죽고 만 번 살아나며 온갖 고통이 그치지 않을 것이니라.

이 경전을 비방한 까닭에 그러한 죄를 받을 것이니, 너는 마땅히 선포해서 저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을 돌려 참회하고 믿고(信) 이해하고(解) 닦아(修) 증득(證)하게 하여라.  

 

阿難!若復有人遍滿十方,所有虛空 盈滿七寶,持以奉上 恒沙諸佛,承事供養心無虛度。

於意云何,是人以此施佛因緣,得福多不?”

아난아, 만약 어떤 사람이 시방에 두루 가득하고 허공을 가득 채울만큼의 7보로써, 항하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잠시도 헛된 마음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이 이렇게 부처님께 보시한 인연으로 얼마나 많은 복을 받겠는가?


阿難答言:“虛空無盡、珍寶無邊,昔有衆生施佛七錢,捨身猶獲轉輪王位,況復現前虛空旣窮,佛土充遍皆施珍寶,窮劫思議尚不能及,是福云何更有邊際?”

아난 존자가 답하기를, 

“허공도 다함이 없고 보배도 끝이 없으니, 옛날 어떤 중생이 부처님께 돈 7전(錢)만을 보시하고도, 오히려 몸을 버린 뒤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거늘, 더욱이  눈앞의 허공을 이미 다하고 부처님의 국토가 가득 차는 진보(珍寶)를 보시한이겠습니까!

겁이 다하도록 말하거나 생각하여도 오히려 따를  없거늘, 어찌  복에 끝이 있겠습니까!


佛告阿難:“諸佛如來語無虛妄。若復有人身具四重、十波羅夷,瞬息卽經此方他方阿鼻地獄乃至窮盡,

十方無閒靡不經歷,能以一念將此法門,於末劫中開示未學,是人罪障應念銷滅,變其所受地獄苦因成安樂國,

得福超越前之施人百倍千倍千萬億倍,如是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제불여래(諸佛如來)의 말씀에는 허망함이 없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몸으로  가지의 사중죄(四重罪, 음행 살생, 투도, 거짓말)와  가지 바라이(波羅夷) 죄를 범하여 순식간에 이곳  곳의 아비지옥(阿鼻地獄)을 겪어야  지경이거나, 심지어 시방의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끝까지 두루  겪어야  지경이라도, 일념(一念)으로  법문을 가지고 말겁(末劫) 가운데 배우지 못한 이들을 깨우칠  있다면,  사람의 죄와 업장은 능히 한 생각으로써 소멸해서,  받을 지옥고통의 원인은 변하여 안락한 국토가 되느니라. 

따라서 얻는 복도 앞의 칠보로 보시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 백배 천배 천만억 배이며, 숫자로 계산하고 어떠한 비유(譬喩)로도 미칠  없을 것이니라.

 

阿難!若有衆生,能誦此經能持此呪,如我廣說窮劫不盡,依我教言如教行道,直成菩提無復魔業。”

아난아, 만약 어떤 중생이 능히  경을 외우고  주문을 지닌다면, 그 공덕을 내가 아무리 겁이 끝나도록 오래 설할지라도  설할  없나니, 내가 가르친 교언(敎言)을 의지해서 가르친 대로 도를 행한다면, 바로 보리를 성취하여  이상 마업(魔業)이 없을 것이니라.


佛說此經已,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一切世閒天人、阿修羅,及諸他方菩薩、二乘、聖仙童子,幷初發心大力鬼神,皆大歡喜作禮而去。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여 마치시자,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와 모든 세상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와 다른 곳에서 온 보살과 이승(二乘)과 성선동자(聖仙童子)와 처음 발심한 대력귀신(大力鬼神)들이 모두 환희하면서 예를 올리고 그 자리를 떠나 갔다.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十 終 수능엄경 10권을 마침

 

개운조사의 유서; 

나는 속세의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1730년) 일찍 부모를 여의고 봉암사에서 어린 소년의 나이로 머리를 깍고 그 후 10년 동안 스승을 구하여 강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본사로 돌아와 환적암에서 스승을 만나 수행하는 법을 듣고 백련암(白蓮庵)에서 금을 연마하여 구슬을 얻고(수다원과), 심원사에서 보임출태(사다함과)하고 유집임경(아나함과)하는 동안에 여가를 활용하여 '유가심인정본수능엄왕경'의 원고를 (보현 존사에게서 구결로 전수 받은 유가심인록을 근본으로 하여 경을) 초하여 마쳤으나 발행할 시기가 아직 이르고 면벽(아라한과)이 더 급하기에 우선 보류하여 간행하지 못하고 여러 마리의 용으로 하여금 교대하여 지켜 보호하게 하고 지리산 묘향대로 떠난다.

100년 뒤에 큰 인연이 있는 사람이 이를 인쇄하여 널리 배포할 것이니, 그 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서 끝내는 모두 보리의 인과를 이룰 것이다. ~ 생략 ~

*개운조사님은 경북 상주의 개운동에서 태어나셨으며, 아버지는 김씨이고 어머니는 양씨이셨다. 부모님의 태몽에 달 속에 일양(一陽)인 금성을 끌어 안는 꿈을 꾸고 잉태하셨다고 하며, 3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 살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 

상주읍에 계시는 외숙부께서 가엾이 여겨서 거두어 기르셨는데 한 해도 채 못되어 문경 도대동으로 이사하였으며, 7 살에 외숙부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없으므로 상주가 되어 피눈물을 흘리며 3년상을 치루었고 9 살에 외숙모마져 돌아가셔서 역시 피눈물로 3년상을 마치니 이웃 사람들이 양씨짐에 효동(孝童)이 태어났다고 하였다. 

그 뒤로 세간이 무상함을 깨달아서 점잖은 어른을 만날 때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물으니, 사람들이 도리어 비웃었다. 어느 날 스님을 만나 처음으로 부처님께서 생노병사를 보고 출가하시어 도를 닦았다는 사실을 듣고는 환하게 깨달아지고 환희하는 마음이 마치 새장을 벗어난 새와 같았다. 그래서 1년만에 제사를 마치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혜암(慧庵)선사의 시자가 되었는데 그 때는 13살 이었다 한 해가 못되어 스승이 입적하시니, 끝없이 애통하게 여기다가 확실하게 무생(無生)함을 깨달았다. 

6년 동안 환적암(幻寂庵)에 머물다가 19살에 스승을 찾아 나섰다.

은밀한 곳에서 남모르게 도를 닦아 증득한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나의 모습이 신선의 풍채로 변하였으며, 일마다 기적이 많은 것을 보고 양봉래(楊蓬來)가 출현했다고 하면서 사방 이웃에서 끊임없이 찾아들므로 오래도록 선정에 들기가 어려워서 부득히 멀리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떠날 무렵에 원고는 경전을 얹어 놓는 시렁 천장 위에 깊이 간직해 놓고서 후세의 어진 이를 기다리며 바위 위에 멱 가지 흔적을 (바위에 주먹으로 동천(洞天)을, 손톱으로 한좌(閑坐)를) 남겨서 그것을 보고 믿고 따르게 하였다. (100 년뒤에 상주군 화북면 용유리의 심원사(尋源寺), 천장에 간직되어 있던 것을 1952년에 양성 스님께서 발견하였으며, 그 바로 직후에 그 절은 화재로 탔다고 함) 

불성이나 도(道)의 힘은 우주가 다 같은 것이나, 그 닦아 증득하는 여하에 따라 여러 가지로 차이가 생기는 것이니 힘써 정진해야 한다. 신해(信解)하여서 증득하는 것이 공(功)이고 자신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는 것이 덕(德)이다.

 

유가심인(瑜伽心印)이란 마음에 인(印)을 친다는 뜻이고

능엄(楞嚴)에서 능(楞)은 네모날 능이고, 엄(嚴)은 꾸미고 장엄한다는 뜻이므로 글자 그대로를 해석하면 네모난 것을 꾸미고 장엄한다는 뜻이 된다. 즉 네모란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동시에 오행(五行)에 있어서는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이고, 사람에 있어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를 말한다.

그러므로 능엄(楞嚴)이란 4대로 화합된 인간의 몸을 거룩하게 꾸미고 장엄한다는 뜻이다.~생략~ 윤양성 큰 스님에게 이렇게 들었다. ㅡ 유가심인(瑜伽心印) 정본(正本) 수능엄경(首楞嚴經)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10 13

 

汝等存心秉如來道,將此法門於我滅後傳示末世,普令衆生覺了斯義,無令見魔自作沈孽,

保綏哀救消息邪緣,令其身心入佛知見,從始成就不遭歧路,

너희들은 마음에 새겨서 여래의 도(道)를 받들어서  법문을 간직했다가, 내가 열반한  말법(末法) 세상에 전하여서,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이 뜻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고, 견마(見魔)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죄를 짓지않게 하여 편안하게 보호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구제해서 삿된 인연의 사연(邪緣)이 사라지게 하여서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성취해서 갈림길을 만나지 않도록 하여라.

ㅡ견마(見魔), 사견(邪見)과 전도(顚倒)된 것으로 인하여 거짓으로 몸과 마음을 뒤엎는 것을 견마(見魔)라 한다.

 

如是法門先過去世,恒沙劫中微塵如來,乘此心開得無上道。識陰若盡,則汝現前諸根互用,

從互用中能入菩薩金剛乾慧,圓明精心於中發化,如淨琉璃內含寶月,

이러한 법문은 앞선 과거세(過去世)에 항하 강의 모래수화 같이 무수한 겁(劫)을 지내오면서 모든 불여래께서도  것을 의지하여 마음을 열려서 더없이 높은 무상도(無上道)를 증득하셨으니, 

만약 식음(識陰)이  사라지면 네 앞에 나타나는 모든 제근(諸根, 육문 육문)이 서로 융통하게 작용할 것이니, 

서로 융통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보살의 금강간혜(金剛乾慧)에 들어가 원만하고 밝고 정밀한 원명정심(圓明精心)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마치 깨끗한 유리 안에 보배의 달인, 보월(寶月)을 머금은 듯 할 것이라. 

 

如是乃超十信、十住、十行、十迴向、四加行心、菩薩所行金剛十地、等覺圓明,

入於如來妙莊嚴海,圓滿菩提歸無所得。

이와 같이 10신(十信)과 10주(十住)와 10행(十行)과 10회향(十迴向)과 4가행심(四加行心)의 마음으로 보살이행하는 금강10지(十地)를 뛰어넘어 등각(等覺)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여래의 묘장엄해(妙莊嚴海)에 들어가서 보리를 원만히 이루고 더 이상 증득할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경지로 돌아가느니라.

ㅡ금강간혜(金剛乾慧)는 등각의 후심으로 묘각(妙覺)에 이르는 것이고,

10신(十信)과 10주(十住)와 10행(十行)과 10회향(十迴向)과 4가행심(四加行心)는 닦아 나아가는 길이다. 


此是過去先佛世尊,奢摩他中毘婆舍那,覺明分析微細魔事,魔境現前汝能諳識,心垢洗除不落邪見,

陰魔銷滅天魔摧碎,大力鬼神褫魄逃逝,魑魅魍魎無復出生,直至菩提無諸少乏下劣增進,於大涅槃心不迷悶。

이는 과거의 부처님 세존께서 사마타(奢摩他) 가운데 비바사나(毗婆舍那)로 밝은 깨달음의 명각(覺明)의 지혜로 분석하신 미세한 마의 미세마사(微細魔事)이니, 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나더라도 네가 이를  알아서 마음의 때를 씻어 버리고 삿된 견해의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으면, 음마(陰魔)가 소멸하고 천마(天魔)는 꺾여 무너지며, 대력(大力)의 귀신은 넋을 잃고 달아나며, 

이(魑), 매(魅), 망(魍) 양(魎)이  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니  바로 보리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모자라는 소핍(少乏, 이승)하거나 하열(下劣, 이승 二乘)을 막론하고 더욱 증진(增進)하여 대열반(大涅槃)에 대한 마음이 어두워지지 않을 것이니라. 

 

若諸末世愚鈍衆生,未識禪那不知說法,樂修三昧汝恐同邪,一心勸令持我佛頂陁羅尼呪,

若未能誦,寫於禪堂或帶身上,一切諸魔所不能動。汝當恭欽十方如來,究竟修進最後垂範。”

만약 말세에 어리석고 우둔한 중생이 선나(禪那)를 알지 못하며, 설법할 줄도 모르면서 삼매(三昧) 닦기를 즐기지만, 네가 볼 때 삿된 마와 함께 어울릴 것이 염려된다면, 나의 불정다라니주(佛頂陀羅尼呪)를 권하여 일심으로 지니게 하여라. 

만약 외우지 못한다면 선당(禪堂)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기만 하여도, 일체의 마가 조금도 동요시킬  없을 것이니,

너는 마땅히 시방의 여래께서 최후에 가르켜 주신 구경(究竟)의 자리까지 닦아 나아가는 법을 공경히 받들어야 하느니라.”


阿難卽從坐起,聞佛示誨頂禮欽奉憶持無失,於大衆中重復白佛:“如佛所言,五陰相中五種虛妄爲本想心,

我等平常未蒙如來微細開示,又此五陰爲倂銷除?爲次第盡?如是五重,詣何爲界?

唯願如來發宣大慈,爲此大衆淸明心目,以爲末世一切衆生作將來眼。”

아난 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이라 대어 절하며 정중히 받들어 기억하여 잃지 않고, 대중 가운데에서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5음(五陰)의 상(相) 가운데서 다섯 가지 부질없이 생각하는 마음이 본래 생각하는 마음의 근본인 본상심(本想心)이 된다고 하셨으나, 저희들은 평소에 여래의 자세한 가르침을 열어 보이심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5음(五陰)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차례로 없어지는 것입니까?

이와 같은 다섯 겹으로 쌓인 것은 어디까지가 그 경계인 것입니까?

부디 여래께서는자비을 베푸시어 이 대중들을 위해서 마음의 눈을 맑고 밝게 하여 주시고, 

말세(末世)의 일체중생들을 위하여 장래의 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佛告阿難:“精眞妙明本覺圓淨,非留死生,及諸塵垢乃至虛空,皆因妄想之所生起,

斯元本覺妙明眞精,妄以發生諸器世閒,如演若多迷頭認影。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정밀하고 진실한 정진(精眞)의 미묘하고 밝은 본각(本覺)은 원만하고 청정하여서 생사와 온갖 티끌 번뇌와  내지는 허공에 이르기까지도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건만, 모두가 부질없는 망상(妄想)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는 본래의 원본각(元本覺)으로서 묘하고 밝은 묘명(妙明)한 것이고 진실하고,

정밀한 진정(眞精)한 것인데, 허망하게 기세간(器世閒)을 발생시키는 것이 마치 연야달다(演若達多)가  머리를 미혹하여 그림자로 잘못 아는 것 같으니라.

ㅡ생사는 허망한 업인(업인)과 티끌과 때의 허망한 인연의 망연(망연)으로 인한 것으로, 청정한 성품 가운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지만, 오음의 현상의 5 가지의 망상이 근본이 되는 것이다.

 

실라벌성(室羅筏城) 안에 살던 연야달다(演若達多)가 어느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홀연히 거울 속의 머리에서 눈섭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에서 얼굴과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서 까닭없이 미쳐 날뛰었다 ㅡ 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7

 

妄 元無因,於妄想中立因緣性,迷因緣者稱爲自然;彼虛空性猶實幻生,因緣、自然,皆是衆生妄心計度。

阿難!知妄所起,說妄因緣;若妄元無,說妄因緣元無所有,何況不知,推自然者。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원인이 없는 것이거늘, 부질없는 생각 가운데 인연의 성품이 성립되는 것이라.

인연을 모르는 자는 자연이라고 하나,  허공의 성품도 오히려 환영(幻影)으로 생긴 것이므로 인연이나 자연이라 함은 모두가 중생들이 망심(妄心)으로 헤아려 생각한 것이니라.

아난아! 허망한 것이 생긴 이유를 알면 허망한 망인연(妄因緣)을 말할 수 있을 것이나, 

만약 허망한 것이 원래 없는 것이라면 망인연(妄因緣)을 말하고자 하여도 원래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자연이라고 미루어 생각할 수 있겠는가!

ㅡ허망한 망(망)은 원인 없는 것이므로 헤아려 생각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것이라. 자연이라고 추측하는 것도 망령되게 추측하는 망계(망계)인 것이다.

 

是故如來與汝發明五陰本因同是妄想。

그러므로 여래께서 네가 발기하게 하여서 밝혀 주시기를 5음의 본인(本因)이 모두 허망한 망상(妄想)이라 하는 것이니라.

 

1.허망한 오음 근본의 첫 번째 색음(色陰)은 본래 견고망상(堅固妄想)
汝體先因父母想生,汝心非想則不能來想中傳命,如我先言心想醋味口中涎生,心想登高足心酸起,

懸崖不有醋物未來,汝體必非虛妄通倫,口水如何因談醋出?是故當知,汝現色身名爲堅固第一妄想;

너의 몸이 처음에 부모를 생각함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니, 만약 제 마음이 생각하지 않았다면, 생각 가운데 능히 와서 생명을 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는 마치 내가 앞에서 말하기를, ‘마음으로 신맛을 생각하면 입에서 침이 생기고, 높은 벼랑에 오르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온다’고 한 것과 같나니, 높은 벼랑이 참으로 있는 것도 아니  물건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몸이 정녕 허망과 통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물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하여 입에 침이 생기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것을 너의 현재 색신(色身)이 견고한  번째 망상의 견고망상(堅固妄想)이라 하며,

ㅡ생각(想)은 허망한 그림자와 같은 현상이며 욕애(慾愛)의 깊은 맥락이라서 타고난 몸은 애욕을 생각함으로부터 흘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몸이 처음에 부모를 생각함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 한 것이다. 

중음신(中陰身)으로 있을 때의 마음이 애욕을 생각하는 것을 타고서 가만히 구한 까닭에 '마음이 생각 가운데 생명을 전한다'고 한 것이며, 

민액 허망하지 않다면 허망함에 감음할 수가 없을 것이니, 몸이 생각(想)으로 인하려 생기고, 마음이 생각(想)으로 인하여 일어나며, 생명이 생각(想)으로 인하여 전하는 것이니 생각이 서로 굳어져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즉 오음개공(五陰皆空)인 것이다.

 

2.허망한 오음 근본의 두 번째 수음(受陰)의 허명망상(虛明妄想)

卽此所說臨高想心,能令汝形眞受酸澀,由因受生能動色體,汝今現前順益違損二現驅馳,名爲虛明第二妄想

여기에서 말한 바와 같이 높은 곳에 오른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네 몸으로 하여금 참으로 시큼한 것이나 발바닥이 저려오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하나니, 수음(受陰) 생김으로 인하여 색신(色體, 몸) 움직일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네 앞에서 순(順)하면 유익(益)하고, 거스리면(偉) 해로운(損)  가지로 치달리는 것을 두 번째의 비고 밝은 허명망상(虛明妄想)이라 하며, 

ㅡ높은 곳에 오른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부질없는 것이나 발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거스리고 순종하는 역순(逆順)하는 것으로 손익(損益)이 눈 앞에 있으면 수음은 실체가 없으면서도 작용하기 때문에 허명망상(虛明妄想)이라 하였다

 

3.허망한 오음 근본의 세 번째 상음(想陰)의 융통망상(融通妄想)

由汝念慮使汝色身,身非念倫汝身何因,隨念所使種種取像,心生形取與念相應,寤卽想心寐爲諸夢,

則汝想念搖動妄情,名爲融通第三妄想;

 생각으로 말미암아 너의 색신(色身, 몸)을 부리나니, 몸은 생각과 같은 것이 아니거늘, 너의 몸은 무슨 까닭으 생각을 따라 부림을 당해서 갖가지로 형상을 취하는 취상(取像)하여서 마음이 생각을 일으키면 몸(形)은 취해서 생각과 서로 호응하는 것인가?

깨어 있는 동안은 생각하는 마음이요, 잠자는 동안은 모두가 꿈이니,

네 생각으로 요동하는 허망한 정의 망정(妄情)을 이름하여  번째의 융통망상(融通妄想)이라 하며, 

ㅡ생각은 허무한 정이고 색신은 실체이다. 허무함과 실체가 같지 않음에도 서로 부릴 수 있는 것은 생각(想)으로 말미암아 통하는 것이며, 마음이 허망한 형상을 내면 몸은 실물을 취하는 것이니, 마음과 몸의 쓰임은 다르지만 서로 호응할 수 있는 것은 생각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자나 깨나 요동하고 변화하여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을 따르게 하고 대상으로 하여금 마음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4.허망한 오음 근본의 네 번째 행음(行陰)의 유은망상(幽隱妄想)

化理不住 運運密移,甲長髮生 氣銷容皺,日夜相代 曾無覺悟。
阿難!此若非汝,云何體遷?如必是眞,汝何無覺?則汝諸行念念不停,名爲幽隱第四妄想;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러 있지 않고 쉬지 않고 은밀하게 옮겨가서 손톱(甲), 발톱(甲)이 자라고 털(髮)이 나고 기운이 사라지고 용모가 쭈그러져서 밤낮으로 서로 바뀌고 있으나, 일찍이 깨닫지 못하나니, 

아난아, 이것이 만약 네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몸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이며, 만약 진정한 너라면 어찌하여 너는 깨닫지 못하는 것인가?이렇게 너의 모든 작용(行陰)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번째의 유은망상(幽隱妄想)이라 하며,   

 

5.허망한 오음 근본의 다선 번째 식음(識陰)의 전도미세정상(顚倒微細精想)

又汝精明湛不搖處名恒常者,於身不出見聞覺知,若實精眞不容習妄,何因汝等曾於昔年睹一奇物,

經歷年歲憶忘俱無,於後忽然覆睹前異,記憶宛然曾不遺失,則此精了湛不搖中,念念受熏有何籌筭?

네가 정밀하고 밝으며 맑은 정명심(精明湛, 의식의 체 體)이고 흔들리지 않는 곳을 영원히 변치 않는 항상(恒常)한 것이라고 한다면, 몸에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견문각지(見聞覺知, 의식의 작용)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만약 참으로 정밀하고 진실한 경지의 정진(精眞)이라면 망(妄)을 익히는 작용을 용납하지 않아야 할 것이나,

무슨 까닭으 너희들이 예전에 어떤 기이한 물건을 본 뒤에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기억하는지 잊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가, 뒤에 홀연히 앞의 본 것과는 다른 것을 보게 되면, 기억이 완연하여져서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인가?

이 정밀(精)하고 밝고(了) 맑게(湛) 요동하지 않는 가운데 생각마다 훈습하는 것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ㅡ옛것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허망한 습기의 망습(妄習)이고,

맑음이 미혹 용동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 식음이 생각마다 훈습(薰習)을 받아서 그 허망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阿難當知!此湛非眞,如急流水望如恬靜,流急不見非是無流,若非想元寧受想習?

非汝六根互用合開,此之妄想無時得滅?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것은 맑고 고요함이 참된 것이 아니라서 마치 급히 흐르는 급류(急流)와 같아서 보기에는 고요한 듯하나 그 흐름이 빠른 것이라서 볼 수 없는 것일 뿐, 흐르지 않는 것이 아니니, 

만약 생각의 근원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부질없는 습기의 상습(想習)을 받아들이겠는가?

너의 육근(六根)이 서로 작용하여 합하거나 열리지 않는다면, 이 망상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니,

 

故汝現在 見聞覺知中串習幾,則湛了內罔象虛無,第五顚倒 細微精想。

그러므로 네가 현재에 보고(見) 듣고(聞) 깨닫고(覺) 아는(知) 가운데를 꿰어 익히는 관습(串習)의  미세한 기미이니,

맑고 뚜렷한 심료(湛了)한 가운데 형상도 없이 허무한 것을 다섯 번째의 뒤바뀐 미세하고 정밀한 전도미세정상(顚倒微細精想)이라 하느니라.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10 12

 

▷오십마경(五十魔境) ㅡ 5.식음(識陰) ㅡ 5.숭화수풍(崇火水風)으로 전화종(顚化種)에 태어남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圓融根互用中已得隨順,便於圓化一切發生,

求火光明、樂水淸淨、愛風周流、觀塵成就,各各崇事以此群塵,發作本因立常住解,是人則墮生無生執,

諸迦葉波幷婆羅門,勤心役身事火崇水,求出生死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五計著崇事迷心從物,立妄求因,求妄冀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顚化種。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다하여 끊어지고 공하여져서 이미 생멸은 없어졌으나, 적멸(寂滅)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미묘한 정묘(精妙)함이 원만하게 성취된 것이 아니니,

만제약 원융하여진 모든 감각 기관(諸根)이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 이미 순조롭게 따르는 능력을 얻어서 ‘원만하게 변화하는데에서 일체의 모든 것이 발생한다 생각하여서불(火)에서 광명(光明) 이치를 구하고물(水)에서 맑은 이치를 즐기고바람(風)에서 두루 흐르는 이치를 좋아하여서, 그러한 이치를 관찰하고 각각 숭배하고 섬기면서이것이 많은 물질인 군진(群塵)을 만들어내는 근본원인인 본인(本因)이라고 여기면서 영원히 변치 않고 상주(常住)한다는 견해를 세우면

 사람은 곧 무생(無生)이 생(生)하는 것이라는 집착에 떨어져서가섭파(迦葉波)와 바라문(婆羅門)들과 같이 몸과 마음을 괴롭히면서 불을 섬기고, 물을 숭상하여서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무리와 반려(伴侶)가 되어서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 잃게 되나니, 

이러함을 ‘다섯 번째의 숭배하고 섬기는 것에 집착하여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물질을 따르면서 부질없이 구하는 인(因)을 세워서 부질없이 희망하는 결과(果)를 구한다 하는 것이니

원만한 통달한 원통(圓通)의 경지를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져버려서 바뀌고 변하는 전화종(顚化種)으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가섭(迦葉)이라는 이름은 당시의 인도에서는 고귀한 이름이라서 부처님 생존 시에도 가섭’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사람이 많았으며,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에서 세분의 유명한 가섭(迦葉)은; 

첫째,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바로 전해 받은 가섭 존자로서, 특별히 위대하신 분이라고 해서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 하며, 구마라가섭 이라고도 하며, 

둘째, 삼가섭이라는 가섭 삼형제로서, 가야성(迦倻城) 지방에서 천명이나 되는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정신적 지도자였으나,  그들은 불(火)을 숭상하는 외도(外道)였으나 부처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했으며, 이들의 귀의로 인하여 불교 승단이 큰 승단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셋째, 초전 법륜시에 녹야원에서 부처님 제자가 된 다섯 비구 중에 십력가섭(十力迦葉)이란 분으로서의 와빠(Vappa, 바파)를 말한다. ㅡ청암스님

 

▷오십마경(五十魔境) ㅡ 5.식음(識陰) ㅡ 6.영멸의(永滅依)으로 단멸종(斷滅種)에 태어남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圓明計明中虛,非滅群化,以永滅依爲所歸依,

生勝解者,是人則墮歸無歸執,無相天中諸舜若多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六圓虛無心,成空亡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斷滅種。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다하여 끊어지고 공(空)하여져서 이미 생멸은 없어졌으나, 적멸(寂滅)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미묘한 정묘(精妙)함이 원만하게 성취된 것이 아니니,

만약 원만하게 밝은 원명(圓明) 가운데에서 그 밝음이  비었음을 헤아려서, 일체의 변화하는 모든 것은 멸하지 않는 비멸(非滅, 절멸 絶滅)한 것으로, 영원히 멸하는 영멸(永滅, 외도 열반)이 귀의할 곳이라고 집착하여서,

이를 수승한 이치의 승해(生勝)라고 안다면,  사람은 곧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을 돌아갈 곳이라고 집착하게 되어서 무상천(無想天) 가운데의 모든 순야다(舜若多, 공성 空性에 집착하는 부류)들과 반려(伴侶)가 되어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 잃게 되나니,

이러함을 여섯 번째의 원만하게 비어 없는 원허무심(圓虛無心)으로 공하여 결과가 없는 공망과(空亡果)를 성취하는 라고 하며

이러함으로 원만한 통달한 원통(圓通)의 경지를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져버려서 단멸종(斷滅種)으 태어나게 되느니라.

ㅡ순야다(舜若多)는 공(공)이라 하며, 무상천과 순야다를 말한 것은 곧 단멸(단멸)이라고 집착하는 외도이기 때문이다.

 

▷오십마경(五十魔境) ㅡ 5.식음(識陰) ㅡ 7. 탐상고신(貪常固身)으로 망연종(妄延種)에 태어남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圓常固身常住,同于精圓長不傾逝生勝解者,

是人則墮貪非貪執,諸阿斯陁求長命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七執著命元,立固妄因趣長勞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妄延種。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다하여 끊어지고 공하여져서 이미 생멸은 없어졌으나, 적멸(寂滅)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미묘한 정묘(精妙)함이 원만하게 성취된 것이 아니니,

만약 원만하고 항상한 원상(圓常)함에 몸이 견고하게 상주(常住)를 바라면서 정밀하고 원만함의 정원(精圓)과 같이 되어서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승해(生勝)로 안다면,  사람은 탐하지 않아야  것을 탐내는 집착에 떨어져서, 오래 살기를 구하는 아사타(阿斯陀, 무비 無比, 장수선 長壽仙)들과 반려(伴侶)가 되어서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나니, 

이를 ‘일곱 번째의 생명의 근원을 집착하여 견고하게 하려는 허망한 망인(妄因)을 세워서 영원히 수고로움의 노과(勞果) 나아간다' 하며, 

원만하고 통달한 원통(圓通)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부질없이 목숨을 연장하려는 망연종(妄延種)으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오십마경(五十魔境) ㅡ 5.식음(識陰) ㅡ 8.유욕고명(유욕고명)으로 천마종(天魔種)에 태어남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觀命互通卻留塵勞恐其銷盡,便於此際坐蓮花宮,廣化七珍多增寶媛,縱恣其心生勝解者,是人則墮眞無眞執,咤抧迦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是名第八發邪思因,立熾塵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天魔種。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다하여 끊어지고 공하여져서 이미 생멸은 없어졌으나, 적멸(寂滅)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미묘한 정묘(精妙)함이 원만하게 성취된 것이 아니니,

생명(목숨)이 서로 통하는 이치를 관찰해서고 문득 번뇌의 진노(塵勞)를 머물러 두려는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사라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문득  기회에 연화궁에 앉아서 널리 일곱 가지의 칠보(七寶)를 널리 변화시켜서, 보배와 예쁜 여인들을 많이 모아 마음 즐기면서 이를 승해(生勝)라고 안다면, 

 사람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여기는 집착에 떨어져서, 타지가라(吒枳迦羅, 욕계천상의 자재천의 무리)들과 반려(伴侶)가 되어서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게 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나니, 

이러함을 ‘여덟 번째의 삿된 사유의 사사인(邪思因)을 일으켜서 진로번뇌를 치성케 하는 결과인 치진과(熾塵果)를 세운다’고 하며, 원만하고 통달한 원통(圓通)을 멀리 여의어서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천마종(天魔種)으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ㅡ욕망에 집착하는 쾌락주의이다.

 

▷오십마경(五十魔境) ㅡ 5.식음(識陰) ㅡ 9.증멸자휴(證滅自休)로 속공종(纏空種)에 태어남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於命明中分別精麤,疏決眞僞因果相酬,

唯求感應背淸淨道,所謂見苦、斷集、證滅、修道,居滅已休,更不前進生勝解者,是人則墮定性聲聞,

諸無聞僧、增上慢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九圓精應心,成趣寂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纏空種。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다하여 끊어지고 공하여져서 이미 생멸은 없어졌으나, 적멸(寂滅)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미묘한 정묘(精妙)함이 원만하게 성취된 것이 아니니,

생명(명)이 밝아진 가운데 정밀과 거칢의 정추(精麤)를 분별하며, 진실과 허위의 진위(眞僞)를 판단해서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하여서, 오직 감응(感應)하기만을 구하고, 청정한 도를 등지나니,

이른바 고(苦)를 보고 괴로움의 원인인 집(集)을 끊으며, 괴로움이 사라지는 멸(滅)을 증득하기를 희망하여서 도를 닦아 적멸(寂滅)해진 경지에 그쳐서 거기에 머물러 더 이상 정진(精進)하지 않고, 이를 훌륭한 경지의 승해(生勝)로 안다면, 

 사람은 정성성문(定性聲聞, 대승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성문)에 떨어져서 더 이상 얻어야 할  없이 얻었다고 교만을 부리는 증상만(增上慢)에 빠진 무식한 비구인 무문승(無聞僧)들과 반려(伴侶)가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나니, 

이를 ‘아홉 번째의 정밀하게 응하는 마음의 원정응심(圓精應心)을 원만한 것으로 여겨서 적멸(寂)로 나아가는 취적과(趣寂果)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니,

원만하고 통달한 원통(圓通)을 어기 열반성(涅槃城)을 등져서 공(空)에 얽매인 속공종(纏空種)으 태어나게 되느니라.

ㅡ'생명(命)이 밝아진' 것은 식음이 사람짐으로 인하여 중생이 생명을 받는 근본 이유인 원유(元由)를 밝힌 것으로, 

생멸이 식음에 연유하는 것이며 정추(精麤)한 것이 업장으로 연유된 것이므로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제(四諦)로서 분별하고 가려서 고(苦)와 집(集)을 거칠고 거짓된 진위(眞僞)라고 여기고,

고(苦)가 사라님과 고(苦)를 사라지게 하는 도(道)를 진정(眞正)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적멸로 나아가는 원인만을 오로지 닦아서 적멸의 결과에 강음하기를 구하여는, 소족(小足)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멸에 안주하여 그치는 것이니, 소과(小果)를 이룰 뿐이다.

 

▷오십마경(五十魔境) ㅡ 5.식음(識陰) ㅡ 10.존각입증(존각입증)으로 각원명불화원종(覺圓明不化圓種)에 태어남  

又善男子,窮諸行空已滅生滅,而於寂滅精妙未圓,若於圓融淸淨覺明,發硏深妙卽立涅槃,

而不前進生勝解者,是人則墮定性辟支,諸緣獨倫不迴心者成其伴侶,迷佛菩提亡失知見,

是名第十圓覺㳷心,成湛明果,違遠圓通背涅槃城,生覺圓明不化圓種。㳷 검푸를 홀

 선남자가 모든 행음(行陰)이 다하여 끊어지고 공하여져서 이미 생멸은 없어졌으나, 적멸(寂滅)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미묘한 정묘(精妙)함이 원만하게 성취된 것이 아니니,

만약 원융(圓融)하고 청정한 밝은 청정강명(淸淨覺明)에 대하여 심묘(深妙, 정밀한 식음)을 연구하여 밝혀 내는 것이 곧 열반이라 주장하며, 더 이상 정진(精進)하지 않으면서, 이를 수승한 승해(生勝)의 경지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은 정성벽지(定性辟支)에 떨어져서, 모든 연각(緣覺, 정성연각 定性緣覺)이나 독각(獨覺,  정성독각 定性獨覺)들과 반려(伴侶)가 되어서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知見)을 잃게 되나니,

이러함을 ‘열 번째의 깨달음의 융통한 마음을 원만히 갖추는 원각홀심(圓覺㳷心, 각지통홀 覺知通㳷)을 고요하고 밝은 심명과(湛明果) 성취하려는 자’라고 하며, 

원만하게 통달한 원통(圓通)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을 등져서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지지 못하고 변화하지 않는 각원명불화원종(覺圓明不化圓種)으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阿難!如是十種禪那中途成狂因依,或未足中生滿足證,皆是識陰、用心交互故生斯位,

衆生頑迷不自忖量,逢此現前各以所愛,先習迷心而自休息,將爲畢竟所歸寧地,

自言滿足無上菩提,大妄語成外道邪魔,所感業終墮無閒獄、聲聞、僻支不成增進。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의 선나(禪那)를 닦다가 중도에서 잘못된 견해를 이루어서 미혹함으로 인하여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 가운데에서 만족하게 증득했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모두 식음(識陰)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얽히고 설킨 때문에 이 지위에 태어나는 것이니, 중생들이 완고하게 미혹하여서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이러한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각각 저마다 애착하여 온 이전의 습기로 마음을 미혹하게 하여서,

스스로 멈추어 쉬면서, '장차 돌아가 편안히 쉴 곳'으로 여기고 스스로 말하기를 ‘더없이 높은 무상보리(無上菩提)를 깨달았다’고 대망어(大妄語)를 짓게 되는 것이니,

그러다가 외도(外道)와 사마(邪魔)가 감응하여 받은 업보가 끝나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고,

성문(聲聞)과 벽지(, 연각 緣覺)의 이승(二乘)은 더 이상 증진(增進)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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