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4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3. 소지상분(所知相分) ① 5
▶論曰:若依他起自性,實唯有識,似義顯現之所依止.云何成依他起? 何因緣故,名依他起?
從自熏習種子所生,依他緣起故,名依他起;生剎那後,無有功能,自然住故,名依他起.
▷논문; 만약 의타기자성이 실제로는 오직 식(識)뿐인 것으로서 대상(義)으로 비슷하게 사현(似現)하는 의지처라면, 어떻게 의타기를 이루는 것이며? 무슨 인연으로 의타기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인가?
자신이 훈습시킨 종자로부터 생겨난 바로서, 다른 조건(緣)에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이름하며,
생겨난 찰나 후에는 작용의 힘인 공능(功能)이 없으며, 자연히 머물기 때문에 의타기라 하는 것이다.
ㅡ제3 분별장.
▶釋曰:實唯有識,似義顯現之所依止者,謂實無義, 唯有其識,與彼似義,顯現爲因, 卽此唯識,名依他起.
云何成依他起者,問自攝受.何因緣故,名依他起者,問爲他說.從自因生,生已無能暫時安住,名依他起.應自攝受,亦爲他說.
▷해석한다; ‘실제로는 오직 식뿐인 유식(唯識)으로서 대상(義)으로 비슷하게 사현(似現)하는 의지처이다’라는 것은,
실제의 대상이 없는, 오직 그 식만 존재하는 것이며, 그 대상으로 비슷하게 사현하는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곧 이 유식(唯識)을 의타기(依他起)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어떻게 의타기를 이루는 것인가?’는 스스로가 섭수하는 것을 질문한 것이고,
‘무슨 인연으로 의타기라고 이름하는가?’는 다른 것, 타(他)라는 뜻을 질문한 것이다.
스스로의 원인으로부터 생겨나고, 생겨나서는 잠시도 안주하지 않는 것을 의타기(依他起)라고 이름하며, 스스로 섭수하는 것에 상응하나, 역시 다른 것의 타(他)도 되는 것이다.
▶論曰:若遍計所執自性,依依他起,實無所有,似義顯現.云何成遍計所執?何因緣故,名遍計所執?無量行相意識遍計顚倒生相,故名遍計所執.自相實無,唯有遍計所執可得,是故說名遍計所執.
▷논문; 만약 변계소집자성이 의타기자성에 의지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대상으로 비슷하게 사현(似現)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변계소집을 이루는 것이며? 어떠한 인연으로 변계소집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인가?
무량한 행상(行相, 인식작용)은 의식이 두루 계탁하고 전도하여서 생겨나는 모습이기 때문에 변계소집이라 이름하며,
실로는 자상(自相)이 비존재이고, 오직 두루 계탁하여서 집착된 것만 얻을 뿐이므로, 변계소집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釋曰:依依他起者,謂依唯識.實無所有者,實無自體.似義顯現者,唯有似義,顯現可得.云何何故等者,如次前說.無量行相者,所謂一切境界行相.意識遍計者,謂卽意識說名遍計.顚倒生相者,謂是能生虛妄顚倒所緣境相.自相實無者,實無彼體.唯有遍計所執可得者,唯有亂識所執可得.
▷해석한다; ‘의타기자성에 의지한다’는 것은 유식에 의지함을 말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는 자체가 없는 것이고,
‘대상으로 비슷하게 사현한다’는 것은 오직 대상으로 비슷하게 사현할 뿐임을 말하고,
‘어떻게’와 ‘어떠한 인연으로’ 등은 바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무량한 행상(行相, 인식작용)’은 모든 경계의 인식작용을 말하고,
‘의식이 두루 계탁한다’는 것은 곧 의식을 변계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전도하여 생겨나는 모습’은 능히 생겨나게 하는, 허망되고 전도된 인식대상의 경계인 소연경(所緣境)의 상을 말하고,
‘실로는 자상(自相)이 비존재’라는 것은 실제로 그것의 자체가 없음을 말한다.
‘오직 두루 계탁함이 집착된 것만 얻을 뿐’이란, 오직 산란된 난식(亂識)이 집착한 것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論曰:若圓成實自性,是遍計所執,永無有相.云何成圓成實?何因緣故,名圓成實?
由無變異性故,名圓成實.又由淸淨所緣性故`一切善法最勝性故,由最勝義,名圓成實.
▷논문; 만약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은, 변계소집의 상이 영원이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원성실을 이루며? 어떠한 인연으로 원성실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인가?
변이(變異)가 없는 성품에 의거하기 때문에 원성실이라 이름하며,
또한 청정한 인식대상의 성품에 의거하기 때문이고,
모든 선법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최승성(最勝性)이기 때문이며,
가장 뛰어난 승의(勝義)에 의거하기 때문에 원성실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釋曰:是遍計所執,永無有相者,謂遍計所執自性,無性爲性.云何何故等,如前依他起中已說.
由無變異性故者,謂無虛誑性,如不虛誑性.
▷해석한다; ‘변계소집의 상이 영원히 없다’는 것은 변계소집자성은 체성이 없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어떻게’와 ‘어떠한 인연으로’ 등은 앞의 의타기성 부분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변이(變異)가 없는 성품에 의거하기 때문’이란 허망되지 않은 무허광(無虛誑)의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허망되지 않은 성품과 같다.
ㅡ이 문장은 급다(笈多)ㆍ행구(行矩)의 역본인 수본(隋本)에서는 “성실한 신하와 같다”로 되어 있고,
진제(眞諦) 역본인 진본(陣本)에서는 “세간에서 말하는 진실된 벗과 같다”로 되어 있다.
又由淸淨所緣性故,一切善法, 最勝性故.由最勝義,名圓成實者,謂由淸淨所緣性故,最勝性故,名圓成實.
‘또한 청정한 인식대상의 성품인 소연성(所緣性)에 의거하기 때문이고,
모든 선법의 가장 뛰어난 성품의 최승성(最勝性)이기 때문이며,
가장 뛰어난 승의(勝義)에 의거하기 때문에 원성실자성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이른바 청정한 인식대상의 성품에 의거하기 때문이고,
가장 뛰어난 성품이기 때문에 원성실자성이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論曰:復次有能遍計`有所遍計,遍計所執自性乃成.此中何者,能遍計?何者,所遍計? 何者,遍計所執自性?
當知意識,是能遍計,有分別故.所以者何? 由此意識用自名言熏習爲種子,及用一切識,名言熏習爲種子,
是故意識, 無邊行相, 分別而轉,普於一切,分別計度, 故名遍計.
▷논문; 또한 능변계(能遍計)가 있고 소변계(所遍計)가 있어서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이 성립되는 것이니,
무엇이 능변계(能遍計)이고? 무엇이 소변계(所遍計)이며? 무엇이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 인가?
의식(意識)이 능변계이니, 분별이 있기 때문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이 의식은 자신의 명언훈습을 종자로 삼고, 나아가 모든 식의 명언훈습을 종자로 삼기 때문이니,
따라서 의식은 무변한 행상(行相, 인식작용)으로 분별하여 전전하고, 널리 모든 것에 대해서 헤아려서 분별하기 때문에 변계라 이름하는 것이다.
又依他起自性,名所遍計.又若由此相令依他起自性, 成所遍計, 此中是名遍計所執自性. 由此相者,是如此義.
또한 의타기자성을 소변계라 이름하나니, 만약 이 상에 의거해서 의타기자성으로 하여금 소변계를 이루게 한다면, 이것을 변계소집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으로, 상에 의거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뜻이다.
능변계(能遍計), 변계소집을 일으키는 분별인 능변계가 어떤 식인가에 대해서 이 논서에서는 의식만을 들었지만, 후대의 '성유식론' 제8권에서는 의식과 제7 말나식을 들었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실아(實我)로 착각하고, 의식이 5온을 대상으로 또한 실아로 착각하는 것이다.
소변계(所遍計), 능변계의 계탁 작용에 의해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되어지는 대상, 즉 비슷하게 현현된 자아인 사아(似我)와 사법(似法)이며, 분별망집은 인연으로 생겨난 존재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소변계는 의타기의 법, 즉 5온ㆍ12처ㆍ18계 등의 인연소생법이다.
변계소집상(遍計所執自性), 소변계가 능변계의 식 위의 상분으로 떠올라 있을 때, 그것이 마음 밖에 실재한다고 집착하여 그 허망된 생각 앞에 나타나는 실아실법(實我實法)의 허망된 모습이다.
復次云何遍計, 能遍計度? 緣何境界? 取何相貌? 由何執著? 由何起語? 由何言說? 何所增益?
謂緣名爲境, 於依他起自性中, 取彼相貌,由見執著,由尋起語, 由見聞等四種言說,而起言說,
於無義中,增益爲有,由此遍計,能遍計度.
또한 무엇이 두루 계탁하고? 능히 두루 계탁하는 것이며?
어더한 경계를 반연하고? 어떠한 상을 취하는 것이며?
무엇에 의거해서 집착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말을 일으키는 것이며?
무엇에 의거해서 말하고? 어느 곳을 증익하는 것인가?
이른바 명(名, 이름)을 반연하여 대상(境)으로 삼고, 의타기자성 중에서 그 상을 취하며,
견해(見)로 인하여 집착하고, 심구(尋求)로 인하여 말을 일으키며,
보고 듣는 견문(見聞) 등의 네 가지 언설로 인하여 언설을 일으키고,
대상이 없는 무의(無義) 가운데 증익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삼으니,
이로 인하여 두루 계탁하고, 능히 두루 계탁하는 것이다.
심구의 심(尋, vitarka)의 심소는 부정심소(不定心所) 중의 하나로써, 말을 일으키기 전에 심구 사량하는 심리작용이며, 대상에 대하여 그 뜻과 이치를 대강 심구(尋求)한다.
참고로, 사찰의 사(伺, vicāra)의 심소가 그 대상을 세밀하게 분별하여 사찰(伺察)하는 것으로, 이로써 몸과 마음의 평안이나 불안이 있게 되므로 부정심소라 하는 것이다.
▶釋曰:復次云何遍計,能遍計度者,謂意識名能遍計,依他起性, 名所遍計. 爲欲顯示由此品 類能遍計度故,
又說緣名爲境等.於依他起自性中,取彼相貌者,謂卽於此依他起中, 由眼等名,取彼相貌,由取彼相,能遍計度.
▷해석한다; ‘또한 무엇이 두루 계탁하고 능히 두루 계탁하는가?’란, 이른바 의식(意識)을 능변계로 이름하고,
의타기성을 소변계하며, 이 품류로 인하여 능히 두루 계탁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또한 명(名, 이름)을 반연하여 대상으로 삼고, 의타기자성 중에 그 상을 취한다’는 것은, 이 의타기자성 중에 눈 등의 명칭으로 인하여 그 상을 취하고, 그 상을 취함으로써 능히 두루 계탁하는 것을 말한다.
由見執著者,如所取相, 如是執著.由尋起語者,如所執著,由語因尋,而發語言.由見聞等,四種言說,而起言說者,如語所說,見聞覺知,四種言說,與餘言說.於無義中,增益爲有者,如所言說,於無義中,執有義故.
‘견해(見)로 인하여 집착한다’는 것은 취해진 대상의 상과 같이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고,
‘심구(尋求)로 인하여 말을 일으킨다’는 것은 집착한 그대로의 말의 원인인 심구로 인하여 말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고,
‘보고 듣는 견문(見聞) 등의 네 가지 언설로 인하여 언설을 일으킨다’는 것은 말이 설하여진 바대로 보고 듣고 깨달아서 아는 네 가지 언설 그대로를 바탕으로 다른 언설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고,
‘대상이 없는 가운데 증익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삼는다’는 것은, 언설하는 바와 같이 대상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대상이 존재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論曰:復次此三自性,爲異`爲不異?應言非異`非不異.
謂依他起自性,由異門故,成依他起,卽此自性,由異門故, 成遍計所執,卽此自性,由異門故,成圓成實.
▷논문; 또한 이 세 가지의 삼자성(三自性)은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은 것인가?
마땅히 다르지 않은 비이(不異)이나,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닌, 비불이(非不異)라고 말해야 한다.
의타기자성은 다른 부문으로 인하여 의타기를 이루고, 이 자성은 다른 부문으로 인하여 변계소집을 이루며, 이 자성은 다른 부문으로 인하여 원성실을 이루는 것이다.
ㅡ변계소집자성은 의타기자성의 잡염분이고, 원성실자성은 의타기자성의 청정분인 것이다.
由何異門,此依他起,成依他起?依他熏習種子起故. 由何異門,卽此自性, 成遍計所執?
由是遍計所緣相故,又是遍計所遍計故.由何異門,卽此自性, 成圓成實? 如所遍計,畢竟不如是有故.
어떠한 다른 부문으로 인하여 이 의타기자성이 의타기를 이루는 것인가? 다른 훈습의 종자에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떠한 다른 부문으로 인하여 이 자성이 변계소집자성을 이루는 것인가? 이것은 두루 계탁하는 대상의 상에 의거하기 때문이고, 또한 두루 계탁하는 것에 두루 계탁되어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다른 부문으로 인하여 이 자성이 원성실자성을 이루는 것인가? 소변계와 같이 필경에는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ㅡ우리는 아득한 옛적부터 의타기의 자성 위에 집착해서 아법(我法)을 분별하고 아법의 모습을 띤 제법(諸法)의 종자를 심식에 훈습시켜 왔기 때문에, 그 습성에 의해 아법에 비슷하게 잡염의 의타기상을 일으킨다.
그 생기된 잡염의 의타기상에 다시 잠재의식에 의해 전도의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의타기상과 변계소집상은 다시 서로 연(緣)이 되어 생사에 전전히 상속하여 끊어짐이 없는 것이나, 청정한 눈을 지닌 사람의 눈에 여러 안질의 증상들을 멀리 여의고 어지러운 경계가 항상 없는 것이 원성실상인 것이다.
▶釋曰:由是遍計所緣相故者,謂彼意識,名爲遍計,此爲所取所緣境性,能生遍計, 是故亦名遍計所執.
又是遍計所遍計故者,卽彼意識, 名爲遍計,緣彼相貌,爲所取境, 爲所遍計. 由此義故, 依他起性,
亦名遍計所執自性. 如所遍計者,如彼意識遍計所執. 畢竟不如是有故者, 所遍計上, 遍計所執, 畢竟無故.
由此義故,卽此自性,成圓成實.
▷해석한다; ‘이것은 두루 계탁함의 대상인 소연(所緣)의 상에 의거하기 때문’이란,
그 의식을 변계로 이름하고, 이것을 취해진 인식대상인 소취(所取)의 성품으로 삼아서 능히 변계를 일으키기 때문에 변계소집이라 이름하고,
‘또한 변계와 소변계이기 때문’이란 그 의식을 변계로 이름하고, 그 상을 반연하여 인식대상의 경계로 삼는 것을 소변계라고 하는 것이니, 이러한 의미로 인하여 의타성도 역시 변계소집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소변계와 같이’란, 그 의식이 변계소집한 바와 같음을 말하고,
‘궁극적으로 이렇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란 소변계 위의 변계소집은 궁극적으로 비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인하여 곧 이 자성은 원성실자성을 이루는 것이다.
▶論曰:此三自性,各有幾種?謂依他起, 略有二種:一者依他熏習種子而生起故` 二者依他雜染淸淨性不成故. 由此二種,依他別故,名依他起.
▷논문; 이 삼자성에 각각 몇 종류가 있는 것인가?
의타기자성에 간략히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다른 것이 훈습하는 종자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고,
둘째는 다른 잡염과 청정의 성품이 성립되지 않는 것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의타의 차이로 인하여 의타기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遍計所執,亦有二種:一者自性遍計執故`二者差別遍計執故,由此故,名遍計所執.
변계소집자성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자체)의 변계소집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앞의 자성(자체)의 속성 차별의 변계소집이기 때문이니,
이로 인하여 변계소집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圓成實性,亦有二種:一者自性圓成實故`二者淸淨圓成實故,由此故,成圓成實性.
원성실자성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의 원성실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청정의 원성실이기 때문이니, 이로 인하여 원성실자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釋曰:雜染淸淨性,不成故者,由卽如是依他起性,若遍計時,卽成雜染,無分別時,卽成淸淨.由二分故,一性不成,是故說名依他起性.自性遍計執故者,如於眼等遍計執,爲眼等自性.差別遍計執故者,如卽於彼眼等自性,遍計執,爲常`無常等,無量差別.自性圓成實故者,謂有垢眞如.淸淨圓成實故者,謂無垢眞如.
▷ 해것한다; ‘잡염과 청정의 성품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란, 곧 이와 같은 의타기성을 두루 계탁할 때에는 곧 잡염을 이루고, 분별이 없을 때는 곧 청정을 이루기 때문이니,
이러한 두 부분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의타기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자성의 변계소집이기 때문’이란 눈 등에 대해서 두루 계탁하여서, 눈 등이 자성이 되는 것과 같으며,
‘차별의 변계소집이기 때문’이란 곧 그 눈 등의 자성에 대하여 두루 계탁하여 항상함과 무상함 등의 수많은 차별을 만들기 때문이며,
‘자성의 원성실이기 때문’이란 번뇌가 있는 단계의 유구진여(有垢眞如)를 말하고,
‘청정의 원성실이기 때문’이란 번뇌가 없는 단계의 무구진여(無垢眞如)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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