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7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6. 피수차별분(彼修差別分) 2
遍行義者, 謂此法界遍一切行,以無少法非無我故,若如是知得入初地. 最勝義者,謂此法界一切法中,最爲殊勝,若如是知得入二地.勝流義者,謂大乘教,從此所流,最爲殊勝,若如是知得入三地.無攝受義者,謂於此中,無計我所`無攝我所,如北洲人,無有繫屬,於此法界,若得證時,其中都無謂有我所,若如是知得入四地.
‘두루 행함의 편행의(遍行義)’란, 이 법계는 일체의 모든 행에 두루하니, 아무리 소법일지라도 무아(無我)가 아닌 것이 없는 까닭이라고 안다면, 초지에 들어갈 수 있으며,
‘가장 뛰어남의 최승의(最勝義)’는, 이 법계가 일체법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안다면, 제2지에 들어갈 수 있으며,
‘뛰어난 흐름의 승유의(勝流義)’란, 대승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니, 이 대승의 가르침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는 것이라고 안다면, 제3지에 들어갈 수 있으며,
‘섭수가 없는 무섭수의(無攝受義)’란, 이 안에서는 나의 소유를 계탁함이 없고, 나의 소유를 거두는 일이 없으며, 북구로주(北拘盧洲)의 사람들과 같이 계박함이 없으니, 이 법계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을 때, 그 안에서 나의 소유라고 말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제4지에 들어갈 수 있다.
북구로주(北拘盧洲)는 수미산의 4대주(大洲)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곳으로, 사람들의 수명이 천 세(歲)이고, 의식주 등이 자연히 얻어지므로 나의 소유라는 생각이 없다고 한다.
相續無差別義者,謂於此中,體無有異,非如眼等隨諸有情相續差別各各有異,若如是知得入五地.無雜染淸淨義者,謂於此中,本無雜染,性無染故,旣無雜染,卽無淸淨,若如是知得入六地.種種法無差別
義者,謂於此中,契經等法,雖有種種差別安立而無有異,若如是知得入七地.不增不減義者,謂於此中,雜染減時,而無有減,淸淨增時,而無有增.相自在依止義者,謂此法界,是相自在之所依止,於諸相中,而得自在,名相自在,隨所欲相,卽現前故.土自在依止義者,謂此法界,是土自在之所依止,於所現土而得自在,名土自在,如欲令土成金等寶隨意成故.若如是知得入八地.
‘상속의 차별이 없는 상속무차별의(相續無差別義)’이란, 이 안에서는 자체가 차이 없는, 즉 모든 부처님은 진여가 나타난 바이기 때문에 상속하여도 그 체에 차이가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눈 등도 모든 유정을 따라 상속차별하여 각각 차이가 없다고 안다면, 제5지에 들어갈 수 있으며,
‘잡염과 청정이 없는 무잡염청정의(無雜染淸淨義)’란, 이 안에서는 본래부터 잡염도 없는 것이니, 성품에 잡염이 없기 때문이다. 잡염이 없기 때문에 청정도 없다는 것으로 안다면 제6지에 들어갈 수 있으며,
‘갖가지 법의 차별이 없는 종종법무차별의(種種法無差別義)’이란, 이 안에서 계경(경전) 등의 법에 갖가지 차별을 안립하지만 차이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안다면 제7지에 들어갈 수 있으며,
‘증가도 감소도 없는 부증불감의(不增不減義)’란, 이 안에서 잡염이 감소할 때도 감소가 없으며, 청정이 증가할 때도 증가함이 없는 것이며,
‘상이 자재한 의지의 상자재의지의(相自在依止義)’는, 이른바 이 법계는 상호(相好)의 자재가 의지하는 바이니, 모든 상에 대해서 자재를 얻음을 상자재(相自在)라 하며, 원하는 상을 따라 바로 현전하기 때문이다.
‘국토가 자재한 의지의 토자재의지의(土自在依止義)’란, 이 법계는 국토 자재가 의지하는 곳임을 말하는 것으로, 현현하는 국토에 대해서 자재를 얻는 것을 국토 자재라 이름하며, 국토로 하여금 금 등의 보배를 만들고자 한다면, 마음을 따라 이루기 때문이라고 안다면, 제8지에 들어갈 수 있다.
智自在依止義者,謂此法界無㝵辯智自在所依,若如是知得入九地.業自在等依止義者,謂此法界是身等業自在所依,及陁羅尼`三摩地門自在所依,若如是知得入十地.
‘지혜가 자재한 의지의 지자재의지의(智自在依止義)란, 이 법계가 말에 걸림이 없는 지혜 자재의 의지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안다면 제9지에 들어갈 수 있으며,
‘업이 자재한 의지 업자재의의(智自在依止義) 등’이란, 소위 이 법계는 신업 등의 업이 자재한 의지처이고, 다라니와 삼마지문이 자재함의 의지처이라고 안다면 제10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如是無明, 於聲聞等非染污者,由彼不欲入諸地故.於初地中,已能通達一切諸地,何故次第復立諸地?釋此難者,雖初地中,達一切地,然由此住而得安住,由此住力建立諸地.
‘이와 같은 무명은 성문등에 있어서는 염오가 아닌 비염오(非染污)이다,'라는 것은 그는 10지에 들어감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초지 중에서 이미 능히 모든 지위에 통달하였는데, 어째서 순서대로 다시 모든 지위를 건립하는 것인가? 이러한 비판을 해석한 것이니, 비록 초지 중에서 모든 지위에 통달하지만 여기에 안주함으로써 안주를 얻으며, 이 안주하는 힘에 의해서 모든 지위를 건립하는 것이다.
▶論曰:復次何故,初地說名極喜?由此最初得能成辦自他義利勝功能故.何故二地說名離垢?由極遠離犯戒垢故.何故三地說名發光?由無退轉等持等至所依止故`大法光明所依止故.何故四地說名焰慧?由諸菩提分法焚滅一切障故.何故五地名極難勝?由眞諦智與世閒智更互相違,合此難合令相應故.
▷논문; 또한 어째서 초지를 극희지(極喜地, 환희지)라 이름하는 것인가? 이로 인하여 최초로 자신과 남의 이익을 판단하는 뛰어난 작용의 힘을 얻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2지를 이구지(離垢地)라 이름하는 것인가가? 계율을 범하는 과실을 아주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3지를 발광지(發光地)라 이름하는 것인가? 퇴전함이 없는 등지(等持, 삼마지)ㆍ등지(等至, 삼마발저)가 의지하는 바이기 때문이고, 큰 대법(大法)의 광명이 의지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4지를 염혜지(焰慧地)라 이름하는 것인가? 모든 보리분법(37 조도품)이 모든 장애를 태워 없애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5지를 극난승지(極難勝地)라 이름하는 것인가? 진제(眞諦)의 지혜와 세간의 지혜는 서로 위배되나, 이 합하기 어려운 것을 합해서 상응하게 하기 때문이다.
何故六地說名現前?由緣起智爲所依止,能令般若波羅蜜多,現在前故.何故七地說名遠行?至功用行最後邊故.何故八地說名不動?由一切相,有功用行,不能動故.何故九地說名善慧?由得最勝無㝵智故.何故十地說名法雲?由得摠緣一切法智,含藏一切陁羅尼門`三摩地門,譬如大雲能覆如空廣大障故,又於法身能圓滿故.
어째서 제6지를 현전지(現前地)라 이름하는 것인가? 연기(緣起)의 지혜를 의지처로 삼고, 능히 반야바라밀다로 하여금 현전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7지를 원행지(遠行地)라 이름하는 것인가? 의식적인 노력인 공용(功用)의 행이 궁극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8지를 부동지(不動地)라 이름하는 것인가? 모든 상과 의식적인 노력이 있는 유공용(有功用)의 행이 동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9지를 선혜지(善慧地)라 이름하는 것인가? 가장 뛰어나고 걸림없는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10지를 법운지(法雲地)라 이름하는 것인가? 총체적으로 일체법을 반연하는 지혜를 얻고, 모든 다라니문ㆍ삼마지문을 함장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큰 구름과 같아서, 허공 같은 광대한 장애를 능히 덮어 버리기 때문이며, 또한 법신에 대해서 능히 원만하기 때문이다.
ㅡ10지의 명칭의 이유에 관한 제2 입명장(第2 立名章).
등지(等持, samādhi), 일반적으로 삼마지(三摩地)ㆍ삼매(三昧)라하며,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서 망념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하며, 정위(定位)ㆍ산위(散位)에 통하지만 유심위(有心位)에만 통하고 무심위(無心位)에는 통하지 않는다.
등지(等至, samāpatti), 삼마발저(三摩鉢底)로 음역하며, 몸과 마음의 평등에 이른다는 뜻이다. 정(定)의 일곱 가지 이명(異名) 중의 하나이다.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의 2정(定)에 통하며 산위(散位)에는 통하지 않는다.
37도품(道品), 즉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분(正道分)이다.
▶釋曰:何故初地,名爲極喜?由於此時,初得能辦,自他俱利,勝堪能故.諸聲聞等眞現觀時,唯得能辦,自利堪能,不得他利,故彼不生,如是歡喜同諸菩薩.何故二地,名爲離垢?由此地中,性戒成就,非如初地思擇護戒. 性戒成故,諸犯戒垢,已極遠離.何故三地,名爲發光?由此地中,與三摩地`三摩鉢底,常不相離,無退轉故,於大乘法,能作光明. 何故四地,名爲焰慧?由此地中,安住最勝菩提分法,由住此故,能燒一切根本煩惱,及隨煩惱,皆爲灰燼.
▷해석한다; 어째서 초지를 극희지(환희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시기에서 최초로 능히 자신과 남을 모두 이롭게 함을 판단하는, 뛰어난 감당 능력을 얻기 때문이니, 모든 성문등은 진리를 현전에서 관찰할 때, 오직 스스로의 이익만을 판단하는 감당 능력을 얻을 뿐, 남의 이익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이와 같은 환희를 일으킬지라도 보살과는 다른 것이다.
어째서 제2지를 이구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계율을 범하거나 보호함과 무관한 자성청정의 계율인 성계(性戒)를 성취하기 때문이니, 초지에서와 같이 사유 결택해서 계율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성청정의 계율을 이루기 때문에, 계율을 범하는 모든 과실을 매우 멀리 여의는 것이다.
어째서 제3지를 발광지라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삼마지와 삼마발저가 항상 서로 여의지 않고 퇴전하지 않기 때문에 대승법에 대해서 능히 광명이 되는 것이다.
어째서 제4지를 염혜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가장 뛰어난 보리분법에 안주하기 때문이니, 이에 안주하기 때문에 모든 근본번뇌와 수번뇌를 능히 태워서 없애는 것이다.
근본번뇌(根本煩惱, mūla-kleśa)는 탐(貪) · 진(瞋) · 만(慢) · 무명(無明) · 견(見) · 의(疑)의 6가지 번뇌성의 마음작용들을 말하며, 이들 중 무명(無明)은 치(癡)라고도 하며, 여기서 견(見)은 악견(惡見) 즉 부정견(不正見)을 뜻한다. 즉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 · 계금취의 5견(五見)을 말한다.
수번뇌(隨煩惱)는 수혹(隨惑)이라고도 하며, 세 가지의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근본번뇌(根本煩惱)를 따라 일어난 2차적인 번뇌라는 뜻으로, 이 경우의 수번뇌를 근본번뇌와 구분하여 지말번뇌(枝末煩惱) 또는 지말혹(枝末惑)이라고도 하며,
두 번째는 마음(心, citta)를 따라 일어나서 유정을 괴롭고 혼란스럽게하는 마음작용, 즉 근본번뇌라는 뜻이며,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의미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 경우의 수번뇌는 곧 일체(一切)의 번뇌 즉 모든 번뇌를 말하며,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何故五地,名極難勝?由此地中,知眞諦智,是無分別,知諸世閒工論等智,是有分別,此二相違,應修令合,能合難合,令相應故,名極難勝. 何故六地,名爲現前?謂此地中,住緣起智,由此智力無分別住,最勝般若波羅蜜多,而得現前,悟一切法無染`無淨,
어째서 제5지를 극난승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출세간의 진지(眞智)인 진제지(眞諦智)는 무분별지혜임을 알고, 모든 세간의 공론(工論), 학예(學藝)ㆍ기술(技術) 등의 세속의 지혜는 분별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이 두 가지의 위배되는 것을 닦아서 마땅히 합해야 하는 것으로, 합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합해서 상응하게 하기 때문에 극난승지라 이름하는 것이다.
어째서 제6지를 현전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연기의 지혜에 안주하고, 이러한 연기지력(緣起智力)의 무분별에 의해서 가장 뛰어난 반야바라밀다에 안주하고 현전함을 얻어서, 일체법이 잡염도 없고 청정도 없는 무염무정(無染無淨)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於第七地,當成有行,第八地中,當成無行.何故七地,名爲遠行?謂此地中,於功用行得至究竟,雖一切相不能動搖,而於無相,猶名有行. 何故八地名爲不動? 由此地中,所有諸相,及一切行,皆不能動,無分別智,任運流行.
제7지에서는 장차 의식적인 노력이 있는 행인, 유행(有行)을 성취하고,
제8지에서는 장차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행인 무행(無行)을 성취하나니,
어째서 제7지를 원행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의식적인 노력의 공용행(功用行)의 궁극에 이르는 것이니, 모든 형상(相)이 동요시킬 수는 없지만, 무상(無相)에 대해서 아직 의식적인 노력이 있는 유행(有行)이라 부르는 것이다.
어째서 제8지를 부동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모든 형상(相)과 일체의 모든 행이 다 동요시킬 수 없으니, 무분별지혜가 자연스럽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何故九地,名爲善慧?由此地中,無㝵解智,說名爲慧,此慧妙善,故名善慧.何故十地,名爲法雲?由此地中,所有摠緣,一切法智,譬如大雲,陁羅尼門`三摩地門,猶如淨水,此智所藏,如雲含水, 又如大雲,能覆虛空. 如是摠緣,一切法智, 普能覆滅,諸廣大障. 又於法身,能圓滿者,如大雲起周遍虛空,如是此智,於諸菩薩,所依法身,悉能周遍.此中圓滿,意說周遍.
어째서 제9지를 선혜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에서는 걸림없는 이해의 지혜인 무애해지(無礙解智)를 지혜(慧)라 이름하고, 이 지혜는 승묘한 선(善)이기 때문에 선혜(善慧)라 하는 것이다.
어째서 제10지를 법운지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이 지위의 총체적으로 일체법을 반연하는 지혜는, 비유하자면 마치 큰 구름과 같고,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은 마치 청정한 물과 같기 때문이다.
이 지혜가 함장한 바는, 구름이 물을 함유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큰 구름이 능히 허공을 덮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이 총체적으로 일체법을 반연하는 지혜는 널리 광대한 모든 장애를 덮어서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신에 대해서 능히 원만하다’는 것은 큰 구름이 일어나서 허공에 두루하는 것과 같이, 이 지혜는 보살의 의지처인 소의법신(所依法身)에 두루하나니, 여기서의 원만이라는 뜻을 두루함의 주변(周遍)이라 말하는 것이다.
▶論曰:得此諸地,云何可見?由四種相:一得勝解,謂得諸地深信解故;二得正行,謂得諸地相應十種正法行故;三得通達,謂於初地達法界時,遍能通達一切地故;四得成滿,謂修諸地到究竟故.
▷논문; 이 모든 지위를 증득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네 가지의 사종상(四種相)에 의거한다.
첫째는 뛰어난 이해를 얻는, 득승해(得勝解)이니, 모든 지위에서 깊이 믿고 이해함을 얻기 때문이며,
둘째는 바른 행을 얻는, 득정행(得正行)이니, 모든 지위와 상응하는 열 가지의 십종정법행(十種正法行)을 얻기 때문이며,
셋째는 통달을 얻는, 득통달(得通達)이니, 초지에서 법계를 통달할 때 능히 모든 지위에 두루 통달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원만히 성취함을 얻는 득성만(得成滿)이니, 모든 지위를 닦아서 구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ㅡ증득의 상에 관한, 제3 득상장(第3 得相章).
십종정법행(十種正法行), 경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행법을 말하는 것으로,
① 서사(書寫):경ㆍ율ㆍ논 3장을 기록해서 오래 보존케 함.
② 공양(供養):경전이 있는 곳을 부처님의 탑묘(塔廟)처럼 공양 존중함.
③ 시타(施他):다른 이를 위해 바른 법을 말하거나 경전을 남에게 주어서 널리 교화함.
④ 제청(諦聽):다른 이가 경을 읽거나 강의하는 것을 지극한 마음으로 경청함.
⑤ 피독(披讀):경전을 독송하고 외우는 것.
⑥ 수지(受持):부처님의 교법을 받아 지님.
⑦ 개연(開演):불법을 말해서 다른 이로 하여금 믿고 알게 함.
⑧ 풍송(諷誦):소리를 내어 경전과 게송 등을 읽어서 다른 이로 하여금 좋아하 는 마음을 내게 함.
⑨ 사유(思惟):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의 뜻을 생각하고 헤아리며 기억해서 잊 지 않음.
⑩ 수습(修習):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몸소 수행해서 물러남이 없는 것.
▶釋曰:得成滿者,應知爾時,修習諸地,已至究竟.
▷해석한다; ‘원만히 성취함을 얻는다는 득성만(得成滿)’이란, 그 때에 모든 지위를 닦아 익히고 나서 구경에 이르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論曰:修此諸地,云何可見?謂諸菩薩,於地地中,修奢摩他`毘鉢舍那,由五種相修.何等爲五?謂集摠修`無相修`無功用修`熾盛修`無喜足修. 如是五修,令諸菩薩,成辦五果,謂念念中,消融一切麤重依止,離種種想,得法苑樂,能正了知周遍無量無分限相大法光明,順淸淨分無所分別無相現行,爲令法身,圓滿成辦,能正攝受,後後勝因.
▷논문; 이 모든 지위를 수행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보살은 지위마다 사마타(奢摩他)ㆍ비발사나(毘鉢舍那, 위빠사나)를 닦음에 있어서 다섯 가지 상의 수행에 의거하나니, 무엇이 그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총체적인 것을 일으키는 수행의 총수(摠修)와 형상 없음의 수행의 무상수(無相修),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수행의 무공용수(無功用修)와 맹렬한 수행의 치성수(熾盛修),
기쁘게 만족함이 없는 수행의 무희족수(無喜足修)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수행의 오수(五修)는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다섯 가지의 증과인 오과(五果)를 성취하게 하나니,
이른바 순간 순간마다 번뇌장과 소지장의 모든 유루종자의 추중(麤重)의 의지(依止)를 녹이고, 갖가지 생각을 여의어서 법의 동산의 즐거움을 얻게 하고, 바르고 두루하며, 무량하고 한정되지 않은 상의 대법의 광명을 능히 알게 되는 것이다.
청정분에 수순해서 무분별의 무상(無相) 진여가 현행하고, 법신으로 하여금 능히 바르게 그 다음 다음의 뛰어난 승인(勝因)을 섭수하는 것을 원만히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ㅡ수행의 상에 관한, 제4 수상장(第4 修相章).
▶釋曰:如一一地,有五相修,今當顯示.修奢摩他`毘鉢舍那,皆由五相,竝得修習.謂念念中,消融一切麤重依止者,謂煩惱障,及所知障,無始時來,熏習種子,說名麤重.此二障聚,由緣摠法,止觀智力,念念消融.此中意取,障聚破壞,故名消融,或令羸損,故名消融.
▷해석한다; 하나하나의 지위에서 다섯 가지 상의 수행인 오상수(五相修)가 있음을 이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사마타ㆍ비바사나를 수행함에 있어서 모두 다섯 가지의 오상(五相)에 의거해서 아울러 닦아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순간 순간의 염념(念念)마다 번뇌장과 소지장의 모든 유루종자의 추중(麤重)의 의지(依止)를 녹인다’는 것이란, 번뇌장과 소지장이 아득한 무시로부터 훈습시킨 종자를 추중(麤重)이라 하며,
이 두 가지 장애의 덩어리인 이장취(二障聚)는 총법(摠法, 무상진여)을 반연하는 지관의 지혜의 힘에 의해서 염념(念念)마다 녹이는 것이니, 여기서의 의취(意取)는 장애의 덩어리인 장취(障聚)를 파괴한다는 뜻으로 녹이는 소융(消融)이라 하는 것이니, 쇠퇴시키는 여손(羸損)하는 것이기 때문에 녹인다고 하는 것으로, 다스려야 할 장애는 소멸시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그 세력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離種種想,得法苑樂者,契經等法住種種性,遠離如是種種性想,卽是證得法苑之樂,於中可居,故名爲苑.
‘갖가지 생각을 여의어서 법의 동산의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계경(경전) 등의 법은 갖가지 성품에 머물고, 이와 같은 갖가지 성품의 성상(性想)을 멀리 여의면, 곧 법동산의 즐거움을 증득하며, 그 안에 머물기 때문에 동산이라 하는 것이다.
ㅡ교화 받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갖가지 교법이 있으니, 혹은 그 앞뒤가 달라서 의혹을 일으키기 때문에 무상(無相)에 안주하여 그 차별의 집착을 여의어야 한다.
復有餘義,於隨所受尋伺法中,不起麤顯,領納觀察,但由止觀憶念光明,而起微細,領納觀察.
다시 별도의 의미가 있으니, 처소에 따라 감수작용의 수(受)ㆍ찾고 탐구하는 심구(尋求)ㆍ정밀하게 살피는 사찰(伺察)의 심소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감수하는 영납(領納)의 관찰을 일으키지 않고, 다만 지관(止觀)의 사념의 광명에 의해서 미세한 감수의 영납(領納)의 관찰을 일으키는 것이다.
염념(念念)은 일념일념(一念一念)으로서 극히 짧은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60찰나가 1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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