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3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2. 소지의분(所知依分) ③ 3
▶論曰:此聞熏習,爲是阿賴耶識自性`爲非阿賴耶識自性?若是阿賴耶識自性,云何是彼對治種子? 若非阿賴耶識自性, 此聞熏習種子所依, 云何可見?
乃至證得諸佛菩提,此聞熏習,隨在一種所依轉處,寄在異熟識中,與彼和合俱轉,猶如水乳;然非阿賴耶識,是彼對治種子性故.
▷논문; 이 들음의 문훈습(聞熏習)은 아뢰야식의 자성인가? 아뢰야식의 자성이 아닌 것인가?
만약 아뢰야식의 자성이라면 어떻게 그 다스림의 대치(對治) 종자가 되는 것이며?
만약 아뢰야식의 자성이 아니라면 이 들음의 문훈습 종자의 소의(所依, 의지처)는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나아가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시기까지, 이 들음의 문훈습은 한 종류의 소의(所依, 의지처)가 전전하는 곳에 있음을 쫒아서, 이숙식(異熟識) 안에 머물러서 그것과 화합하여 함께 전전하였으니, 마치 물과 우유와 같았다.
그러나 들음의 문훈습은 아뢰야식이 아니니, 그 대치 종자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ㅡ물과 우유는 화합하긴 하지만 그 성품이 다르면서 함께 생겨난다. 이처럼 들음의 훈습은 아뢰야식과 성품이 다르긴 하지만 그 안에 화합하여 머물러서 함께 생멸하는 것을 말한다.
▶釋曰:此聞熏習,爲是阿賴耶識自性`爲非阿賴耶識自性?若爾何過?若是阿賴耶識自性,云何卽爲阿賴耶識對治種子?若非阿賴耶識自性,此聞熏習種子,卽應別有所依.乃至證得諸佛菩提者,謂乃至得諸佛所
證無上菩提.此聞熏習者,卽是最淸淨法界等流,正聞熏習.隨在一種所依轉處者,謂隨在一相續轉處.寄在異熟識中,與彼和合俱轉,猶如水乳者,此聞熏習,與異熟識,雖不同性,而寄識中,猶如水乳,和合俱轉.然非阿賴耶識等者,雖復和合,似一性轉,然非卽是阿賴耶識,是能對治阿賴耶識種子性故.
▷해석한다; 이 들음의 문훈습은 아뢰야식의 자성인가? 아뢰야식의 자성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 과실이 있는 것인가?
만약 아뢰야식의 자성이라면 어떻게 아뢰야식의 대치 종자가 되는 것인가?
만약 아뢰야식의 자성이 아니라면 이 들음의 문훈습 종자는 마땅히 별도로 소의(所依, 의지처)가 있어야 한다.
‘나아가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시기까지’는 모든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최고의 깨달음을 얻기까지를 말하며,
‘이 들음의 문훈습’은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평등히 흘러나오는 바르게 듣는 정문훈습(正聞熏習)이며,
‘한 종류의 의지처가 전전하는 곳을 쫒아 있다’는 것은, 하나의 상속이 전전하는 곳을 쫒아서 있는 것을 말하는, 즉, 어느 세계(趣)에서 어떠한 몸을 받더라도, 그 정문훈습으로 된 종자는 그 생을 좇아서 이숙식 안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숙식 안에 머물러서 그것과 화합하여 함께 전전하는 것이 물과 우유와 같다’는 것은, 이 문훈습과 이숙식의 성품이 다르지만, 식 안에 머무르는 것이, 마치 물과 우유가 화합해서 함께 전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며,
‘그러나 아뢰야식이 아니다’ 등은 비록 화합해서 같은 성품인, 일성(一性)과 유사하게 전전하지만, 문훈습은 아뢰야식이 아닌 것이니, 이 문훈습은 능히 아뢰야식을 다스리는 종자의 성품인 종자성(種子性)이기 때문이다.
▶論曰:此中依下品熏習,成中品熏習,依中品熏習,成上品熏習,依聞`思`修,多分修作,得相應故.
▷논문; 이 중에서 하품(下品)의 훈습에 의지해서 중품(中品)의 훈습을 이루며,
중품의 훈습에 의지해서 상품(上品)의 훈습을 이루나니,
듣고 사유하며 닦음의 문사수(聞思修)에 의지해서 거듭 거듭 닦아서 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釋曰:此中下中上品者,應知依聞思修所成慧說,由彼一一,有三種故.
▷해석한다; 여기에서 하품ㆍ중품ㆍ상품은 듣고 사유하며 닦음의 문사수(聞思修)의 지혜에 의지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 그 하나하나에 각각 세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ㅡ들어서 이루는 지혜인 문혜(聞慧)를 하품(下品)으로 하고,
사유해서 이루는 지혜인 사혜(思慧)를 중품(中品)으로 하며,
닦아서 이루는 지혜인 수혜(修慧)를 상품(上品)으로 한다.
復有別義,聞所成慧是下品`思所成慧是中品`修所成慧是上品.依聞思修多分修作,得相應故者,謂依聞等數數猛利而修作故.又於此中,下品爲因,得成中品,中品爲因,得成上品.
다시 다른 견해로서는, 들어서 이루는 문혜(聞慧)는 하품(下品)이고, 사유해서 이루는 사혜(思慧)는 중품(中品)이며, 닦아서 이루는 수혜(修慧)는 상품(上品)이라 하였다.
‘듣고 사유하며 닦음의 문사수(聞思修)에 의지해서 거듭 거듭 닦아서 상응할 수 있기 때문’이란, 듣는 것 등에 의지해서 누누이 맹렬하게 닦기 때문이며, 또한 이러함으로써 하품을 원인으로 삼아서 중품을 이룰 수 있고, 중품을 원인으로 삼아서 상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ㅡ세 가지 지혜의 하나하나에 다시 하품ㆍ중품ㆍ상품이 있음을 말한다.
▶論曰:又此正聞熏習種子,下中上品,應知亦是法身種子,與阿賴耶識相違,非阿賴耶識所攝,
是出世閒,最淨法界等流性故.雖是世閒,而是出世心種子性.
▷논문; 또한 이 바르게 들음의 정문훈습(正聞熏習) 종자의 하품ㆍ중품ㆍ상품은 역시 법신의 종자로서 아뢰야식과 서로 다르고, 아뢰야식에 포섭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간의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평등히 흘러나오는 성품이기 때문에, 비록 세간이지만 출세간심의 종자성(種子性)인 것이다.
又出世心,雖未生時, 已能對治諸煩惱纏` 已能對治諸嶮惡趣`已作一切所有惡業朽壞對治, 又能隨順逢事一切諸佛菩薩.雖是世閒,應知初修業菩薩所得,亦法身攝, 聲聞`獨覺所得,唯解脫身攝. 又此熏習,非阿賴耶識,是法身解脫身攝.
또한 세간을 벗어나는 마음이 비록 아직 생겨나지 않았지만, 능히 모든 번뇌의 계박을 다스리고, 이미 능히 모든 험난한 괴로움의 악취(惡趣)를 다스리며, 이미 일체의 모든 악업을 다르려서 쇠퇴시키며,
또한 능히 모든 불보살을 만나서 수순하여 섬기나니,
이것은 비록 세간이긴 하지만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얻는 바 역시도 법신에 포섭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
성문과 독각이 얻는 것은 오직 해탈신(解脫身)에만 포섭되는 것으로, 이 훈습은 아뢰야식이 아니니, 법신과 해탈신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如如熏習下中上品,次第漸增,如是如是,異熟果識,次第漸減,卽轉所依.
훈습이 하품ㆍ중품ㆍ상품의 순서로 점차 증가되면서, 이와 같이 이러이러하게 이숙의 과식(果識)이 순서대로 점차 멸하는 것이니, 곧 소의(所依, 의지처)를 전환하는 것이다.
ㅡ훈습이 순서대로 증가함에 따라, 반대로 이숙식은 순서대로 점차 멸해감을 표현한 것이다.
旣一切種所依轉已,卽異熟果識及一切種子無種子而轉,一切種永斷.
이미 일체종자의 소의(所依, 의지처)를 전환한 까닭에, 곧 이숙과의 식과 일체종자는 종자가 없는 무종자(無種子)로 전환되어서 모든 종자가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釋曰: 已能對治諸煩惱纏者,謂是能斷增上貪等,現起轉因. 已能對治諸嶮惡趣者,謂若能斷諸煩惱纏, 卽能對治諸嶮惡趣. 已作一切所有惡業朽壞對治者, 謂若雖有順後受業, 應墮惡趣,而能爲彼, 作朽壞因.擧要言之, 此聞熏習, 能治一切過去`未來`現在惡業.
▷해석한다; ‘능히 모든 번뇌의 계박을 다스린다’는 것은, 매우 강한 탐욕 등이 일어나서 전전하게 되는 원인을 능히 단멸하는 것을 말하며,
‘이미 능히 모든 험난한 괴로움의 세계인 악취(惡趣)를 다스린다’는 것은, 만약 모든 번뇌의 계박을 끊는다면 곧 능히 모든 험난한 괴로움의 악취(惡趣)를 다스리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이미 일체의 모든 악업을 쇠퇴시켜서 다스린다’는 것은, 만약 다음 세상에 받아야 할 과보업인 순후수업(順後受業)이 있을 경우에는 마땅히 괴로움의 악취(惡趣)에 떨어져야 하지만, 능히 그것을 쇠퇴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요점을 말한다며, 이 들음의 문훈습은 능히 모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악업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순후수업(順後受業)은 보통 순후업(順後業)이라 하며, 과거의 업인(業因)으로서 현세에 과보를 불러오지 않고 다음 세상에 과보를 받는 업이다.
又能隨順逢事一切諸佛菩薩者,謂是當來,逢事善友自身得因.雖是世閒,應知初修業菩薩所得,亦法身攝者,謂諸異生菩薩,名初修業菩薩,亦是法身種子故,說亦法身攝.
聲聞`獨覺所得,唯解脫身攝者,謂聲聞等正聞熏習,唯是解脫因,唯得解脫身`不得法身故.
‘또한 능히 모든 불보살을 수순하여 만나서 섬긴다’는 것은 장래에 훌륭한 벗을 만나 섬겨서 스스로의 원인을 얻게 되는 것이며,
‘이것은 비록 세간이지만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얻는 것 역시도 법신에 포섭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은,
이생(異生,범부) 보살을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라 하며, 역시 법신의 종자이기 때문에 법신에 포섭된다고 말하는 것이며,
‘성문과 독각이 얻는 것은 오직 해탈신에만 포섭된다’는 것은, 성문 등의 바르게 듣는 정문(正聞) 훈습은 오직 해탈의 원인으로서, 오직 해탈신을 얻을 뿐, 법신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문ㆍ연각의 과신(果身), 즉 아라한과 벽지불은 혹장(惑障, 번뇌장)의 계박은 벗어났지만 아직 지장(智障, 소지장)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해탈신이라고만 하며,
불과(佛果)는 큰 적정(寂靜)을 성취한 까닭에 번뇌장뿐만 아니라 소지장의 계박도 소멸되고 10력ㆍ4무외(無畏) 등 뛰어난 공덕으로 장엄되므로 해탈신의 차원을 넘어서 법신이라 한다.
▶論曰:復次云何猶如水乳?非阿賴耶識,與阿賴耶識,同處俱轉,而阿賴耶識一切種盡`非阿賴耶識一切種增.譬如於水,鵝所飮乳.又如世閒,得離欲時,非等引地熏習漸減`其等引地熏習漸增,而得轉依.
▷논문; 또한 마치 물과 우유같이, 아뢰야식이 아닌 것과 아뢰야식이 같은 곳에서 함께 전전하는데, 어떻게 아뢰야식의 일체종자는 멸진하고 아뢰야식의 일체종자가 아닌 것은 증가하는 것인가?
비유하자면 물과 거위가 마시는 우유와 같은 것이며, 또한 세간의 욕락을 여읠 때, 선정이 아닌 지위인 비등인지(非等引地)의 훈습은 점차 감소하고, 그 선정의 지위의 훈습은 점차 증가하여 전의(轉依)를 얻는 것과 같은 것이다.
▶釋曰:非阿賴耶識,與阿賴耶識,雖同處俱轉,而阿賴耶識盡`非阿賴耶識在.還卽以前水乳和合,鵝所飮時,乳盡水在,譬喩顯示.又如世閒,得離欲時,於一阿賴耶識中,非等引地煩惱熏習漸減`其等引地善法熏習漸增,而得轉依,此中轉依,當知亦爾.
▷해석한다; '아뢰야식이 아닌 것과 아뢰야식이 같은 곳에서 함께 전전하기는 하지만, 아뢰야식은 멸진해도 아뢰야식이 아닌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란,
앞에서 물과 우유가 화합하여 있을지라도 거위가 마실 때에는 우유가 없어지고 물만 남는 비유로써 나타낸 것이며,
또한 세간의 욕락을 여읠 때, 하나의 아뢰야식 안에서 선정이 아닌 지위의 번뇌의 훈습은 점차 감소하나, 그 선정 지위의 선법의 훈습은 점차 증가하여서 전의를 얻게 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기서의 전의도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論曰:又入滅定,識不離身,聖所說故.此中異熟識,應成不離身,非爲治此滅定生故.
▷논문; 또한 멸진정에 들어갔을지라도 식(識)이 신(身, 몸)을 떠나지 않음은 성인이 말씀하신 바이기 때문이니, 여기서 이숙식은 마땅히 신(身, 몸)을 떠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아뢰야식을 다스리기 위해서 멸진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ㅡ도리에 수순함을 말한, 제16 순도리장(第16 順道理章).
▶釋曰: 引入滅定,識不離言, 爲成定有阿賴耶識.
世尊說識不離身者,除異熟識,餘不得成,以滅定生,對治轉識,故觀此定,爲極寂靜.
▷해석한다; ‘멸진정에 들어가도 식(識)은 떠나지 않는다’란, 결정적으로 아뢰야식이 존재함을 성립시키기 위한 것이다.
세존께서 식(識)이 신(身, 몸)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숙식을 제외하고서 다른 것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니, 멸진정이 생긴다면, 전식을 다스리기 때문에 이 선정을 관하면 지극히 적정하게 되는 것이다.
▶論曰:又非出定,此識復生,由異熟識,旣閒斷已,離結相續,無重生故.
▷논문; 또한 선정으로부터 나와도 이 식(識)이 다시 생기는 것이 아니니,
이숙식이 중단되고 나서 결생(結生) 상속을 떠난다면 거듭해서 다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결생(結生), 윤회하면서 중유(中有)가 없어지고 모태에 다음 생을 위탁하는 것.
▶釋曰: 若執出定,此識還生,由此意故,識不離身.此不應理,以從定出,識不復生.
異熟果識旣閒斷已,離結相續,更託餘生,無重生故.
▷해석한다; 만약 선정에서 나와서 이 식이 다시 생겨난다고 집착하여서, 이러한 의미로써 식이 몸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도리에 맞지 않은 것이니,
선정에서 나올지라도 식은 다시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며,
이숙과의 식이 중단되고 나면 생을 맺는 결생(結生) 상속은 다시 다른 생에 의탁하지 않아서 거듭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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