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1권 5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1. 총표강요분(總標綱要分) 5

 

▶論曰:復次云何,由此十相殊勝殊勝如來語故, 顯於大乘眞是佛語,遮聲聞乘是大乘性?

由此十處,於聲聞乘,曾不見說,唯大乘中,處處見說. 謂此十處, 是最能引大菩提性`

是善成立`隨順無違,爲能證得一切智智.此中二頌:

▷논문에서; 또한, 어찌하여  상(十相)의 수승(殊勝)함과 수승한 여래의 말씀으로 인해서 대승이 참으로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성문승은 대승의 종성인 대승성(大乘性)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인가? 

 십처(十處) 성문승에서는 일찍이 설함을 보지 못하였으니, 오직 대승 안의 여러 곳에서만 설하셨기 때문이며,

 십처(十處) 대보리성(大菩提性)을 능히 최상으로 이끌어 내어서,  성립하고 수순하여 위배되지 않고, 능히 모든 것을 아는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증득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所知依及所知相, 彼入因果彼修異, 三學彼果斷及智, 最上乘攝是殊勝.

알아야  바의 의지처인 소지의(所知依), 알아야  바의 소지상(所知相),

그것에 들어가는 원인(因)과 결과(果), 그리고  수행의 차이인 수이(修異),

3학, 그것의 증과인 과단(果斷) 과지(果智) 최상승의 교법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수승(殊勝)한 것이라네.


此說此餘見不見, 由此最勝菩提因, 故許大乘眞佛語, 由說十處故殊勝.”

 말씀은 다른 곳에서   없으니, 이것이 가장 뛰어난 보리의 인(因)이 되는 것이므로

대승이 참다운 부처님 말씀이라 인정하며,

십처(十處)를 설하는 것이기에 수승(殊勝)한 것이라 하네.

 

▶釋曰:此復云何謂復顯此所說十處? 是最能引大菩提性, 是善成立隨順無違.

是最能引大菩提性者,是大菩提能引因義. 是善成立者,謂由正理等量思擇,如見導師所說道相.

言隨順者, 謂爲證得, 勤修行時,隨順住故,如隨導師所說正道隨順而住.

言無違者,謂諸地中無障㝵因, 如隨導師所說, 道中無劫賊等所有障難. 或復生死`涅槃二種互不相違.

▷설명한다; 또한 이것이 어떻게 십처(十處)를 다시 나타내는 것인가? 

이것은 대보리의 성품(性)을 능히 최상으로 이끌어 내고  성립하며, 수순하여서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보리의 성품(性)을 능히 최상으로 이끌어낸다’는 것이란, 대보리가 능히 이끌어 내는 원인의 능인인(能引因)이라는 뜻이며,

‘잘 성립한다는 선성립(善成立)’이란, 바른 논리의 정리(正理) 등의 바른 인식방법에 의거해서 사량하고 간택함을 말하는 것으로, 마치  안내자가 말한 바른 길을 보는 것과 같으며,

‘수순(隨順)한다’는 것은 증득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수행할 때, 수순하여서 안정되게 수행하기 때문이니, 길 안내자가 말한 바른 길을 따라 수순하여 가는 것 같은 것이다. 

'위배되지 않는, 무위(無違)’란, 모든 지위에서 장애의 원인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니, 길 안내자가 말한 바를 따르면, 그 도중에 도적의 겁탈 등의 모든 어려운 장애가 없음과 같은 것이며, 혹은 다시 생사와 열반의  가지가 서로 위배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復有異門,是最能引大菩提性者,謂此能引無戲論, 無分別智故.是善成立者, 謂與四理不相違故.

言隨順者, 謂與三量不相違故.言無違者,非先隨順後相違故.如有頌言:

또는, 다른 견해로서는, ‘이것이 대보리의 성품(性)을 능히 최상으로 이끌어낸다’는 것이란, 이것이 능히 희론이 없고 분별이 없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며,

‘잘 성립한다는 선성립(善成立)’이란 것은 관대(觀待)도리ㆍ작용(作用)도리ㆍ증성(證成)도리ㆍ법이(法爾)도리의  가지 도리인 사리(四理)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며,

‘수순(隨順)한다’는 것은 현량ㆍ비량ㆍ성교량의  가지 바른 인식방법의 삼량(三量)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며,

‘위배되지 않는, 무위(無違)’란, 먼저 수순하여서 그 후에도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라 하였으니,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 바와 같은 것이다.

 

사리(四理), 네 가지 도리(道理)는 관대(觀待)도리ㆍ작용(作用)도리ㆍ증성(證成)도리ㆍ법이(法爾)도리이다.

첫째, 관대도리(觀待道理)는 필요로 함을 관찰하는 도리, 즉 모든 유위법이 생겨날 때에는 반드시 갖가지 연(緣)을 필요로 함(待)을 관찰하는 도리이다.

둘째, 작용도리(作用道理)는 인연에 의해 생겨난 유위법에는 반드시 일을 이루는 작용이 있음을 말한다.

셋째, 증성도리(證成道理)는 증명하여 성립되는 도리로써, 현량(現量)ㆍ비량(比量)ㆍ성교량(聖敎量)에 의해 증명되고 성립되는 참되며 바른 도리이다.

넷째, 법이도리(法爾道理)는 본래부터의 법의 도리로써,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거나 출현하시지 않음에 관계없이 법계에 안주하는 본래부터의 도리이다. 예를들면 연기법ㆍ선인낙과 악인고과(善因樂果 惡因苦果)의 인과법 같은 것을 말한다.

삼량(三量), 바른 인식방법의 양(量, pramāṇa)으로서 현량ㆍ비량ㆍ성교량을 말한다.

첫째, 현량(現量, pratyakṣa)은 감각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서 아는 감각지(感覺知)이다. 예를 들면 안식이 안근(眼根)을 통해서 빛깔(色)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 등이다.

둘째, 비량(比量, anumāna)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비교해서 아직 알지 못하는 사실을 추측해서 아는 추리지(推理知)이다. 예를 들면 연기가 있음을 미루어서 불을 안다거나, 나비와 벌이 모이는 것을 미루어서 꽃이 있음을 아는 것 등이다.

셋째, 성교량(聖敎量, śabda)은 성언량(聖言量)ㆍ정교량(正敎量)ㆍ지교량(至敎量)이라고도 하며, 성자의 말씀에는 잘못이 없다고 해서 이것에 의해 여러 가지 사실을 미루어 아는 것이다.

 

“初任持愛悲, 後隨順不善, 非黑白我見, 有益亦有損.”

처음에 사랑과 자비의 애비(愛悲)를 지니고, 나중에 불선(不善)에 수순할지라도

흑백의 아견(我見)에 증익이 있거나 손감이 없네.

 

爲能證得一切智智者,謂於一切法中,發生無上無閒一切行相智故.善成立等,

復有餘義, 謂善成立隨順無違展轉標釋. 云何善成立?謂能隨順故.云何能隨順?謂無違轉故.

능히 모든 것을 아는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증득하기 위함’이란법에 대해서 무상(無上)이고 간격이 없는 무간(無閒)의 모든 행상(行相)을 아는 지혜를 발생시키는 것이며, 

‘잘 성립한다는 선성립(善成立)’ 등에도 다시 다른 의미가 있으니,

이른바 ‘잘 성립한다는 선성립(善成立)’과 ‘수순(隨順)한다’와 ‘위배되지 않는 무위(無違)’을 차례대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성립하는 선성립(善成立)인가? 능히 수순(隨順)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능히 수순(隨順)하는 것인가? 위배되는 무위(無違)로 전전함이 없기 때문이다.

 

ㅡ십처의 순서에 관하여 말한, 제2십의차제장(2 十義次第章).

▶論曰:復次云何如是次第說此十處? 謂諸菩薩於諸法因, 要先善已, 方於緣起應得善巧.  次後於緣所生諸法,

應善其相, 善能遠離增益損減二邊過故. 次後如是善修菩薩應正通達,善所取相, 令從諸障心得解脫.

▷논문에서; 또한 어찌하여 이와 같이 순서를 두어서 십처(十處) 말하는 것인가? 

보살은 법의 법인(法因) 대해서 우선  알고난 후에야 응당 연기(緣起)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다음에 마땅히 인연에 의해 생겨난 법에 대하여  상(相)을  알아야 하는 것이니,

증익(增益)과 손감(損減)의 양극단의 과실을 능히 멀리 여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음에 이와 같음으로써 잘 수행하는 보살은 마땅히 바르게  취한 상의 소취상(所取相)에 통달하게 되고, 

모든 장애로부터 마음의 해탈을 얻는 것이다.

 

次後通達所知相已, 先加行位六波羅蜜多,由證得故,應更成滿, 增上意樂得淸淨故.

次後淸淨意樂, 所攝六波羅蜜多, 於十地中, 分分差別, 應勤修習, 謂要經三無數大劫.

次後於三菩薩所學,應令圓滿. 旣圓滿已, 彼果涅槃,及與無上正等菩提,應現等證.故說十處如是次第.

그러한 다음에 알아야  바의 소지상(所知相) 대하여 잘 알게 되어서, 이전의 가행위(加行位)에서의 6 바라밀다를 증득하게 됨으로써 마땅히 다시 매우 높은 의욕의 증상(增上)의 의락(意樂)을 원만히 이루는 것이니, 청정함을 증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음에 청정한 의락(意樂) 포섭되는 6 바라밀다를 10지에서 각각 차이를 두는 분분차별(分分差別)로써 부지런히 닦아 익혀야 하나니, 이른바 3무수(無數, 아승지)의 대겁의 시간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한 다음에 마땅히 증상계(增上戒), 증상심(增上心), 증상혜(增上慧)의 보살학(菩薩三學)을 원만하게 해야 하며,

원만하게 하고 나서는,  증과인 열반과 무상정등(無上正等)의 보리를 평등히 증득해야 하기 때문에, 

십처(十處)를 말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순서를 두는 것이다.

 

의락(意樂), 범어 āśaya의 번역어이다. 휴식처ㆍ주처(住處)ㆍ사의(思意)ㆍ의향(意向) 등의 의미가 있으며, 의요(意樂)ㆍ의욕(意慾)ㆍ지원(志願)이라고 한역한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이며, 특히 선정 중의 작의(作意)를 가리킨다.

무수겁(無數劫)은 아승기겁(阿僧祇劫)의 번역어이다. 아승기는 범어 asaṁkhya의 음역어로서, 원래 발음은 아승기이지만 보통 아승지라고 부른다.

삼학(三學), 매우 높은 계율의 증상계(增上戒),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增上心),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增上慧)이다.

 

▶釋曰:云何如是次第說者, 問 謂諸菩薩, 於諸法因, 要先善已, 廣說乃至彼果涅槃, 及與無上正等菩提,應現等證故者答

要先了知諸法因已,後於緣起方得善巧, 必有因故,果得生起, 非自在等,由此能得因果兩智.

▷설명한다; ‘어찌하여 이와 같이 순서를 두어서 말하는가?’는 질문이며,  

‘보살은 법의 법인(法因) 대해서 모름지기  알아야 하나니, 자세히 설하자면, 그 증과인 열반과 무상정등보리를 지금 평등히 증득해야 하기 때문이다'는 대답이니,

모름지기 우선적으로 제법의 법인(法因)  알고 난 후에야 연기(緣起)에 대하여 비로소  통달할  있는 것이니,

반드시 원인(因)이 있음으로써 결과(果)가 생겨날  있는 것이다. 

자재천(自在天)을 섬기는 외도의 주장 등이 아니며, 자재천으로부터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역시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니, 이러함으로 인하여 능히 원인(因)과 결과(果)의  가지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재천(自在天)은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에서 3천 계(界)를 주관한다고 한다(혹은 욕계의 제6 天主라고도 한다).  신(神)이 세계의 본체 또는 창조의 신으로서, 만물이 자재천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된다고 한다.  신이 기뻐하면 중생이 편안하고 성내면 중생이 괴롭게 된다고 한다.

 

次後於因所生諸法,應了其相.何等爲相? 謂實無有遍計所執, 定執爲有, 名爲增益.

增益無故, 損減實有圓成實性. 遠離如是二邊過失, 故名善巧.

그러한 다음에 원인이 일으킨 인소생(因所生)의 제법에 대한 상(相)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무엇을 상(相)으로 삼는 것인가? 실제로는 변계소집(허망한 집착)이 아닌데, 결정적으로 집착해서 있다고 하는 것을 증익(增益)이라 이름하며,

비존재(無)를 증익함으로써 참존재인 원성실성(존재의 진실)을 손감(損減)하게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극단의 과실을 멀리 여의기 때문에  통달하는 선교(善巧)라고 말하는 것이다.

 

변계소집(遍計所執), 두루 계탁(計度)하여 집착하는 것이며 존재의 허망한 상태를 말한다.

원성실성(圓成實性), 원만히 성취한 실재하는 것이며, 존재의 진실한 상태를 말한다

 

次於如是所取諸相,由唯識性, 應正通達, 得無障㝵. 次於隨順入唯識性, 世俗所證, 世閒六種波羅蜜多,由勝義故,

應更證得. 是應修作,淸淨增上意樂攝義.

다음에 이와 같이 취착된 소취(所取)의 모든 상(相)에 대해서 유식성에 의거해서 마땅히 바르게 통달하여 장애가 없다면,

그러한 다음에 수순하여 유식성(唯識性)에 들어가는 것으로, 승의(勝義)에 의거해서 세속에서 증득한 세간의 6 바라밀다를 다시 증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마땅히 닦아야  응수(應修)의 청정하고 높은 의욕의 증상의락(增上意樂)의 섭의(攝義)인 것이다.

 

次於十地分分差別,應勤修習, 謂要經三無數大劫, 非如聲聞極疾三生勤修對治便證解脫.

次後卽於如是修中, 增上戒等,菩薩三學, 應令圓滿. 最後於彼學果涅槃, 煩惱永斷,

及與無上正等菩提`三種佛身,應現等證故,說十處如是次第.

그러한 다음에 10지(地)에서 각각 나누어 차이를 두어서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 익혀야 하나니, 말하자면, 3무수(無數)의 대겁 동안을 말하는 것이니, 성문이 매우 빠르게 3생(三生)에서 부지런히 닦고 다스려서 문득 증득하고 해탈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한 다음에 이와 같은 수행으로 증상계(增上戒) 증상심(增上心), 증상혜(增上慧) 등의 보살의학(三學)을 원만하게 하며,

마지막으로  수학의 증과인 학과(學果)의 열반으로 번뇌가 영원히 단멸되고,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와 자성신(自性身), 수용신(受用身), 변화신(變化身)의 삼불신(三佛身)을 평등히 증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처(十處)에 있어서 이와 같은 순서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論曰:又此說中,一切大乘,皆得究竟.

▷논문에서; 또한 이러한 설(說)에서 모든 대승의 구경(究竟)을 얻는 것이다.

 

▶釋曰:一切大乘,齊此究竟.何以故?若欲說緣起, 卽入阿賴耶識攝.若欲說諸相,卽入三自性攝.

若欲說證得,卽入唯識性攝. 若欲說波羅蜜多,卽入波羅蜜多攝. 若欲說諸地,卽入諸地攝.

若欲說諸學,卽入諸學攝. 若欲說斷及智,

卽入無住涅槃及三種佛身攝.齊是名爲一切佛語,是故但說如此次第.

▷설명한다; 모든 대승이 여기에서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만약 연기를 말하고자 한다면, 곧 아뢰야식을 이해(攝)하여 들어가며,

만약 모든 상(相)을 말하고자 한다면, 곧 삼자성(三自性)을 이해(攝)하여 들어가며,

만약 증득(證得)을 말하고자 한다면, 곧 유식성(唯識性)을 이해(攝)하여 들어간다.

만약 바라밀다를 말하고자 한다면 곧 바라밀다를 수행(攝)하여 들어가며,

만약 모든 지위를 말하고자 한다며, 곧 모든 지위를 수행(攝)하여 들어가며,

만약 보든 학(學)을 말하고자 한다면, 곧 모든 학을 수행(攝)하여 들어가며,

만약 단멸과 지혜를 말하고자 한다면 곧 무주열반과 삼불신을 수행(攝)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모든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이니, 그러므로 오직 이와 같은 순서로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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