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8 6

 

有義一切皆通二斷,論說預流果已斷一切一分有支,無全斷者故。若無明支唯見所斷,寧說預流無全斷者?若愛、取支唯修所斷,寧說彼已斷一切支一分?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일체 모두가  가지의 단멸에 통한다는 것이다.

논서,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말하기를 “예류과는 이미 일체에서 일부분의 지분인 유지(有支)을 단멸하였으나, 전부 단멸한 이는 없다”고 한 까닭이니,

만약 무명의 지분은 오직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면, 어째서 예류과에서는 전부 단멸한 자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만약 애(愛)ㆍ취(取)의 지분이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면, 어째서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이미 모든 지분의 일부분을 단멸했다고 말하겠는가?

 

又說全界一切煩惱皆能結生,往惡趣行唯分別起煩惱能發。不言潤生唯修所斷,諸感後有行皆見所斷發,

또한 계의 일체 번뇌 모두는 능히 다음 생(生)을 받는다고 '유가사지론' 59권에서 말하였으며, 

악취(惡趣)에서 왕래하는 행(行)은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번뇌만을 능히 일으킨다고 '유가사지론' 59권에서 말하였다.

생을 촉진하는 윤생(潤生) 오직 수도에서 단멸될 뿐이며, 모든 미래세의 존재를 초감하는  모두가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으로써 일으킨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 

ㅡ모든 성스러운 가르침 중에서 태어남을 촉진하는 윤생(潤生) 미혹은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수소단(修所斷)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삼계의 번뇌가 능히 다음 생을 받게하는 결생(結生)하는 것기 때문이며,

역시 모든 미래세의 존재인 후유(後有) 초감하는 () 모두 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으로써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오직 악취(惡趣) 행만이 분별의 미혹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견소단(見所斷, darśana-prahātavya)은 무루혜(無漏慧)에 의한 4제(諦)의 관찰인 견도(見道)에 의해 끊어지는 법(法)들을 말하며, 여기서의 법은 번뇌(煩惱)인 유루법(有漏法)들과 이것들과 상응하여 함께 발생하는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들을 말한다.

수소단(修所斷, bhāvanā-heya)은 선정(禪定)을 통한 반복된 관찰, 즉 4제(諦)를 관찰하고 나서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자주자주 도(道)를 수습하는 것인 수도(修道)에 의해 끊어지는 법(法)으로, 여기서의 법은 번뇌(煩惱)인 유루법(有漏法)들과 이것들과 상응하여 함께 발생하는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들을 말한다. 수도소단(修道所斷), 수단(修斷) 또는 수혹(修惑)이라고도 한다.-위키

 

由此故知無明、愛、取三支亦通見、修所斷。

이것에 의거하여 무명(無明)ㆍ애(愛)ㆍ취(取)의 세 지분은 역시 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 수도에서 단멸되는 수소단(修所斷)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然無明支正發行者,唯見所斷,助者不定,愛、取二支正潤生者唯修所斷,助者不定。

그러나 무명(無明)의 지분에 있어서 진정으로 행(行), 즉 총보업(總報業)을 일으키는 것은 오직 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일 뿐이며, 일정하지 않은 도움이며,

애(愛)ㆍ취(取)의 두 지분에 있어서 진정으로 생(生)을 촉진하는 것은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수소단(修所斷)일 뿐이며, 일정하지 않은 도움이다.

 

又染污法自性應斷,對治起時彼永斷故,一切有漏不染污法非性應斷,不違道故。

然有二義說之爲斷。一離縛故,謂斷緣彼雜彼煩惱,二不生故,謂斷彼依令永不起。

또한 염오법(染污法)은 자성이 마땅히 단멸되어야 하는 것이니, 다스리는 무루지혜의 법인 무루명법(無漏明法) 일어날 때에는 그것이 영원히 단멸되기 때문이며, 

모든 유루의 불염오법(不染污法)은 자성이 마땅히 단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니, 도(道)를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지 뜻이 있으니, 그것을 단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하나는 계박을 떠나는 이박(離縛)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그것을 반연하여 그것에 잡란되는 번뇌를 끊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불생(不生)이 때문이니, 그것의 의지처를 단멸해서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말한다.

ㅡ모든 단멸(斷) 뜻을 자세하게 해설한다.


依離、縛斷說有漏善、無覆無記唯修所斷,依不生斷說諸惡趣無想定等唯見所斷。

계박을 떠나는 단멸에 의거해서 유루선(有漏善)ㆍ무부무기(無覆無記)는 오직 수도에서 단멸될 뿐이니,

불생(不生)단멸에 의거해서 모든 악취와 무상정(無想定) 등은 오직 견도에서 단멸될 뿐이라고 '유가사지론' 제57권에서 말하였다.


說十二支通二斷者,於前諸斷如應當知。

유가사지론 등에서 십이지(十二支)가  가지 단멸됨에 통한다고 말한 것은, 앞의 여러 가지 단멸에 상응하는 것에 맞추어  알아야 하는 것으로,

ㅡ무명ㆍ애()ㆍ취() 자성단(自性斷)이고, 

() () 일부분은  가지 단멸에 공통되며,

() 등의 일곱 가지는 오직 이계단(離繫斷) 불생단(不生斷)이니, 잡염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十樂、捨俱,受不與受共相應故,老死位中多分無樂及容捨故,十一苦俱非受俱故。

수(受)와 노사(老死)의 지분을 제외한 열 가지 지분은 낙수(樂受)ㆍ사수(捨受)와 함께하나니,

수(受)의 지분은 느낌(受)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고, 

노사(老死)의 단계에서는 대부분 낙수와 객(客), 육식(六識)의 사수(捨受)가 없기 때문이며,

앞의 열 가지에서 노사의 지분을 첨가한 11 가지는 고수(苦受)와 함께하나니, 수(受)의 지분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ㅡ 삼수(三) 함께함을 판별한, 제십삼삼수구문(第十三三受俱門).


十一少分壞苦所攝,

11 가지 지분의 일부분은 자기가 사랑하던 것이 없어질 때에 느끼는 괴로움인 괴고(壞苦)에 포섭되며,

ㅡ12 가지 지분 중에 공통적으로 고고(苦苦) 행고(行苦) 속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제외하여서 ‘일부분인 소분(少分)’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老死位中多無樂受,依樂立壞故不說之。十二少分苦苦所攝,一切支中有苦受故。

十二全分行苦所攝,諸有漏法皆行苦故。依捨受說十一少分,除老死支如壞苦說。

實義如是,諸聖教中隨彼相增所說不定。

노사(老死)의 단계에서는 대부분 낙수(樂受)가 없으니, 낙수에 의거해서 괴고를 건립하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며,

12 가지 지분의 일부분은 신체적으로 배고프거나, 병이 나거나, 춥고 덥거나, 힘든 노동을 할 때에 느끼는 괴로움인 고고(苦苦)에 포섭되나니, 모든 지분 중에는 고수(苦受)가 있기 때문이며,

12 가지 지분의 전부는 생멸 변화에 의해서 느끼는 고통인 행고(行苦)에 포섭되나니, 모든 유루법은  생멸 변화의 괴로움이기 때문이며,

사수(捨受)에 의거해서 말한다면, 11 가지 지분의 일부분으로, 노사(老死) 지분은 제외하는 것으로 괴고에서 말한 바와 같다. 

진실한 의미로써 말한다면 이상과 같으나, 여러 성교(聖教)에서는  상(相)의 증성함을 따라 설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ㅡ열두 가지 지분 중에서  가지 괴로움인 삼고(三苦)를 판별한, 제십사삼고분별문(第十四三苦分別門).


皆苦諦攝,取薀性故。五亦集諦攝,業、煩惱性故。

모두 고제(苦諦)에 포함되나니,취온(取蘊)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행(行)ㆍ유(有)ㆍ무명ㆍ애(愛)ㆍ취(取)의 5 가지는 역시 집제(集諦)에 포섭되나니, 업과 번뇌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ㅡ4성제(聖諦)에 포섭되는 관계를 판별한, 제십오사제문(第十五四諦門)으로,

다섯 가지가 집제(集諦) 포섭된다는 것은, ()ㆍ유() 업의 속성이고,

무명ㆍ애()ㆍ취() 번뇌의 성품이기 때문이.

 

諸支相望增上定有,餘之三緣有無不定。契經依定唯說有一。

모든 지분이 서로 배대하여서 증상연은 반드시 있으나,

나머지연(三緣)은 있고 없음이 일정하지 않으니, 경전에서는 결정적인 것에 의거해서 오직 하나만이 있다고 말씀하였다.

ㅡ'연기경(緣起經)' 하권에서 오직 하나의 증상연(增上緣)만이 있다고 말씀한 것은 결정적으로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한 것으로, 나머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회통하는 것이다.

 

愛望於取,有望於生,有因緣義。

애(愛) 지분을 취(取)에 배대하고, 유(有) 지분을 생(生) 지분에 배대한 것은 인연(因緣)의 뜻이 있으며,

ㅡ애(愛)가 증성한 것을 취(取)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애(愛) 종자가 취(取)를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 등의 다섯 가지 지분을 바꾸어 유(有)라고 이름하고, 생겨난 현행을 생이라 이름하므로,

따라서 애를 취에 배대하고, 유를 생에 배대하여서 인연의 뜻이 있게 되는 것이.

 

若說識支是業種者,行望於識亦作因緣。餘支相望無因緣義。 

만약 식(識)의 지분은 업종자라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 말한 때문이라고 한다면, 행(行)을 식(識)에 배대하여도 역시 인연이 되나, 나머지 지분을 서로 배대하는 것에는 인연의 뜻이 없다. 

ㅡ4() 판별한, 세십육사연문(第十六四緣門).


而'集論'說無明望行有因緣者,依無明時業習氣說,無明俱故假說無明,實是行種。

그러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에서 무명을 행(行)에 배대하여 인연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명 시기(時)의 업습기(業習氣)에 의거한 것이며,

무명과 함께하기 때문에 가정적으로 무명이라고 말한 것으로, 실제로는 행의 종자인 행종(行種)인 것이다.

ㅡ'대승아비달마집론' 4권의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무명을 () 배대하여 인연의 뜻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명과 동시(同時) 의지의 업인 사업(思業) 의거한 것으로, 진정한 무명은 아니다.

 

'瑜伽論'說諸支相望無因緣者,依現愛、取唯業有說。

'유가사지론' 제 10권에서 모든 지분을 서로 배대하여 인연이 없다고 말한 것은,

현행의 애(愛)ㆍ취(取) 및 오직 업(業)이 있는 것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ㅡ'유가사지론' 10권의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가지의 삼(三) 있다고 말하고, 모든 지분을 서로 배대하여 인연이 없다고  것은 현행의 ()ㆍ취() 의거한 것으로, 종자에 의거한 것이 아니며,

또한 업종자의 존재인 유(有) 의거해서 말한 것으로, (등의 다섯 가지의 종자에 의거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연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고 회통하는 것이다.


無明望行,愛望於取,生望老死,有餘二緣。有望於生,受望於愛,無等無閒,有所緣緣。

무명(無明)을 행(行)에 배대하고, 애(愛)를 취(取)에 배대하며, 생(生)을 노사(老死)에 배대해서는 그 나머지  가지 연(緣)인, 등무간연(等無間緣)과 소연연(所緣緣)이 있으니,

유(有)를 생(生)에 배대하고, 수(受)를 애(愛)에 배대하면 등무간연은 없으나, 소연연은 있으며,

()ㆍ수() 지분은 종자이기 때문에, 종자를 현행에 배대하면 등무간연이 아닌 것이다.

 

餘支相望,二俱非有。此中且依鄰近順次不相雜亂實緣起說。異此相望爲緣不定,諸聰慧者如理應思。

나머지 지분을 서로 배대하면, 등무간연(等無間緣)과 소연연(所緣緣)의 두 가지 모두가으니,

 가운데에서는 또한 가까이하는 근(近), 순서가 있는 순차(順次), 서로 잡란하지 않는 참다운 연기(緣起)에 의거해서 말하는 것이며,

이것에 다르게 서로 배대해서는 연(緣)이 되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니, 총명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모두 바른 이치에 맞게 생각해야 하리라.

 

惑、業、苦三攝十二者,無明、愛、取是惑所攝。行、有一分是業所攝,七、有一分是苦所攝。

혹(惑)ㆍ업(業)ㆍ고(苦)의  가지에 12지(支)를 포섭시키는 것을 말한다면,

무명(無明)ㆍ애(愛)ㆍ취(取)는 혹(惑, 미혹)에 포함되며,

행(行)과 유(有)의 일부분은 업(業)에 포함되며,

식(識) 등 다섯 가지와 생(生)ㆍ노사(老死)의 지분의 7 가지와 유(有)의 일부분은 고(苦, 괴로움)에 포함된다.

ㅡ미혹ㆍ업ㆍ괴로움과 12() 포섭관계를 판별한, 제십칠혹업고섭지문(第十七惑業苦攝支門).


有處說業全攝有者,應知彼依業有說故。有處說識業所攝者,彼說業種爲識支故。

'유가사지론' 제56권과 '십지경론(十地經論)' 제8권 등에서 유(有)를 업(業)에 모두 포섭시킨다고 말한 것은, 

그것은 업의 존재에 의거해서만 말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며,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 식(識)도 업(業)에 포함된다고 말한 것은, 업종자를 식의 지분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惑業所招獨名苦者,唯苦諦攝爲生厭故。由惑業苦卽十二支,故此能令生死相續。

혹(惑, 미혹)과 업(業)에 초감된 것만을 독립적으로 고(苦, 괴로움)라고 이름한 것은, 오직 고제(苦諦)에만 포함되므로 혐오를 일으키기 때문이며,

혹(惑)ㆍ업(業)ㆍ고(苦)는 12 가지 지분에 의거하기 때문에, 이것이 능히 생사(生死)를 상속하게 하는 것이다.

ㅡ생사(生死) 상속(相續) 관한  번째 해설로써, 분단생사(分段生死)와 불사의변이생사(不思議變易生死) 관하여 설명한다.

 

復次,生死相續由內因緣,不待外緣,故唯有識。因謂有漏、無漏二業正感生死,故說爲因。緣謂煩惱、所知二障助感生死,故說爲緣。

또한 생사(生死)를 상속하는 것은, 내부의 인(因, 원인)과 연(緣)에 의한 것으로서 외부의 연을 기다리지 않으므로, 오직 식(識)만이 있으며,

인(因, 원인)이란, 유루와 무루의  가지 업을 말하는 것이니, 진정으로 생사를 초감하기 때문에 인(因, 원인)이라 하는 것이며,

연(緣)이라는 것은 번뇌장과 소지장을 말하는 것으로, 도와서 생사를 초감하기 때문에 연(緣)이라 하는 것이다.


所以者何?生死有二:一分段生死。謂諸有漏善、不善業,由煩惱障緣助勢力,所感三界麤異熟果。

身命短長隨因緣力,有定齊限,故名分段。

▷묻습니다; 어찌하여 그러한 것입니까?

▷답한다; 생사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단생사(分段生死)로써, 모든 유루의 선ㆍ불선의 업이 번뇌를 돕는 연의 세력에 의해서 초감한, 삼계의 구체적인 상인 추이숙과(麤異熟果)를 말하는 것이니, 몸(身)과 목숨에 장단(長短)이 있으며, 인(因, 원인) 연(緣)의 세력을 따라 결정적인 제한(際限)이 있기 때문에 분단(分段)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ㅡ생사(生死) 체(體) 나타낸다.  


二不思議變易生死。謂諸無漏有分別業,由所知障緣助勢力,所感殊勝細異熟果,由悲願力改轉身命,無定齊限,故名變易。無漏定願正所資感,妙用難測,名不思議。

둘째는 부사의변역생사(不思議變易生死)이니, 모든 무루의 유분별의 업이 소지장(所知障)의 연이 돕는 세력에 의해서 초감한, 뛰어나고 미세한 수승세이숙과(殊勝細異熟果)를 말하는 것이니,

자비와 원력의 힘에 의거해서, 몸(身)과 목숨 전환하여 결정적인 제한이 없기 때문에 변역(變易)이라고 이름하며,

무루의 선정과 원력에서 진정으로 의지하고 초감되어서 승묘한 작용이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부사의(不思議)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或名意成身,隨意願成故,如契經說,如取爲緣,有漏業因續後有者而生三有,如是無明習地爲緣,無漏業因有阿羅漢、獨覺、已得自在菩薩,生三種意成身。

혹은 의성신(意成身)이라고 이름하나니, 의지의 원력, 즉 대비심(大悲心)을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취(取)의 지분을 연(緣)으로 하고 유루의 업을 인(因, 원인)으로 하여서 미래세의 유(有)를 상속한 자가계에 태어나며,

이와 같은 무명습지(無明習地)를 연(緣)으로 하고 무루의 업인 유분별(有分別)의 후득지(後得智)를 인(因, 원인)으로 하며, 대승으로 전향한 아라한과 독각  8지(地) 이상으로 이미 자재를 얻은 보살의  가지 의생신(意生身)을 일으킨다”고 '승만경(勝鬘經)'에서 말하고 있다.

 

무명습지(無明習地)는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의 번뇌를 다섯 가지로 분류한 5주지번뇌(五住地煩惱)로써,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ㆍ애욕주지(愛欲住地)ㆍ색애주지(色愛住地)ㆍ유애주지(有愛住地)ㆍ무명주지(無明住地)의 하나이며, 이것은 곧 소지장(所知障)으로서 법집(法執)에 포함된다.


亦名變化身,無漏定力轉令異本,如變化故。如有論說,聲聞無學永盡後有,云何能證無上菩提?依變化身證無上覺,非業報身,故不違理。

역시 변화신(變化身)이라고도 이름하나니, 무루의 선정의 힘으로써 전환하여 근본, 즉 분단신(分段身)과 다르게 함에 있어서 변화와 같기 때문이며, '현양성교론' 제16권에서 말한 것과 같다.

성문의 무학은 영원히 미래세의 존재인 후유(後有)를 다하나니,

어떻게 능히 최상의 깨달음인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한다고 하는 것인가?

변화신에 의거해서 최상의 깨달음인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며, 업보신(業報身)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바른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若所知障助無漏業能感生死,二乘定性應不永入無餘涅槃,如諸異生拘煩惱故

만약 법집에 의해 생기하는, 소지장(所知障)이 무루의 업을 도와서 능히 생사를 초감한다고 말하는 2승의 결정적인 종성인 정성(定姓)은 영원히 무여의열반에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모든 범부가 번뇌에 얽매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8 5

 

老非定有,附死立支。病何非支?

不遍定故。老雖不定,遍故立支。諸界、趣、生,除中夭者,將終皆有衰朽行故。

▷묻겠습니다; 늙음의 노(老)는 반드시 존재 형성의 지분이 아닌 것이니, 죽음의 사(死)에 덧붙여서 지분(支)으로 건립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하여 병(病)을 지분(支分)으로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답한다; 병(病)은 보편적인 것도 아니고 결정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늙음의 노(老)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이기 때문에 지분으로 건립하는 것으로,

모든 계(界, 삼계)ㆍ취(趣, 오취)ㆍ생(生, 사생)에서 일찍 죽는 자를 제외하고 장차 죽으려  때에 모두 노쇠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ㅡ삼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

5취(五趣),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

4생(四生), 태생(胎生)ㆍ난생(卵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

 

名色不遍,何故立支?定故立支。胎、卵、濕生者,六處未滿,定有名色故。

▷묻습니다; 명색(名色)도 보편적인 것이 아닌데, 무슨 까닭으로 지분으로 건립한 것입니까?

▷답한다; 결정적이기 때문에 지분으로 건립한 것이다.

태(胎)로 태어나는 태생(胎生), 알로 태어나는 난생(卵生), 습기로 태어나는 습생(濕生)에는 여섯 가지 인식기관인 육처(六處)가 아직 구족되지 않았을 때부터 반드시 명색이 있기 때문이다.


又名色支亦是遍有,有色化生初受生位雖具五根,而未有用,爾時未名六處支故。

初生無色雖定有意根,而不明了,未名意處故,由斯論說十二有支一切一分上二界有。

또한 명색(名色)의 지분도 역시 보편적인 것이니, 색계에서 화생(化生)의 초기에 생명을 받는 단계에서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인 오근(五根)을 갖추지만, 아직 작용이 있지 않은 때에는 아직 6처의 지분인 육처지(六處支)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처음 무색계에 태어날 때에는 의근(意根)이 있지만, 명료하지 않으므로 아직 의처(意處)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이러함으로 논서,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말하기를 “12유지의 모든 하나하나의 지분이 색계와 무색계에 있다”고 한 것이다.


愛非遍有,寧別立支?生惡趣者不愛彼故。

定故別立,不求無有生善趣者定有愛故,不還潤生愛雖不起,然如彼取定有種故。又愛亦遍,生惡趣者於現我境亦有愛故,依無希求惡趣身愛經說非有,非彼全無。

▷묻습니다; 갈애(愛)는 보편적이지 않은 것인데, 어째서 별도의 지분으로 건립한 것입니까?

악취에 태어난 자는 그곳을 애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답한다. 결정적이기 때문에 별도로 건립한 것이다.

미래세의 존재(有)가 없기를 구하지 않으며, 살기 좋은 세계에 태어나는 자는 반드시 애착이 있기 때문이며,

불환과(不還果)가 태어남을 촉진하는 것은 애착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그것의 취착과 같이 반드시 종자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애(愛)도 역시 보편적인 것으로, 악취에 태어나는 자는 현재의 자아와 대상에 대해서 역시 애착이 있기 때문이며,

악취의 몸을 희구하는 애착이 없는 것에 의거해서 경전, '연기경(緣起經)' 상권에서 있지 않다고 말씀한 것으로, 그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何緣所生立生、老死,所引別立識等五支?

▷묻습니다; 무엇에 반연하여 생겨난 것에는 생ㆍ노사의 지분으로 건립하고, 이끌려진 소인(所引)에는 별도로 식(識)ㆍ명색(名色)ㆍ6처(六處)ㆍ촉(觸)ㆍ수(受)식 등의 다섯 가지 지분으로 건립한 것입니까?

 

因位難知差別相故,依當果位別立五支。謂續生時因識相顯,次根未滿名色相增,次根滿時六處明盛,依斯發觸,因觸起受,爾時乃名受果究竟,依此果位立因爲五。果位易了,差別相故,摠立二支以顯三苦。然所生果若在未來爲生厭故,說生、老、死。若至現在,爲令了知分位相生,說識等五。

▷답한다; 원인의 단계인 인위(因位)에서는 차별상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결과의 단계에 의거해서 별도로 다섯 가지 지분으로 건립한 것이다.

다음 생이 이어지는 시기에는 원인인 식(識)의 상(相)을 나타내며,

다음에 감각기관이 아직 구족하지 않은 때에는 명색(名色)의 상(相)을 증장시키며,

다음에 감각기관이 구족할 때에는 6처(六處)가 분명하게 성숙하며,

이것에 의지해서 촉(觸)을 일으키고, 촉에 의거하여 수(受)를 일으키나니, 그 때를 과보를 받는 수과(受果)가 다 이루어진다고 이름하며,

이 과보의 단계에 의지해서 원인을 건립하여 다섯 가지로 삼나니,

과보의 단계에서는 차별된 상(相)을 알기 쉽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생(生)과 노사(老死)의 두 가지 지분인 이지(二支)을 건립함으로써 삼고(三苦)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생겨난 과보인 소생과(所生果)가 미래에 있을 때에는 혐오를 일으키기 때문에 생ㆍ노사라고 말하며,

만약 현재에 이르렀을 때에는 분위가 서로 생겨나게 하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에 식(識) 등의 다섯 가지로 말하는 것이다.

 

삼고(三苦)란 태어남은 행고(行苦), 늙음은 괴고(壞苦), 죽음은 고고(苦苦).


何緣發業摠立無明?潤業位中別立愛、取?

▷묻습니다; 무엇에 반연한 까닭으로, 업을 일으키는 데에 총체적으로 무명만을 건립하고, 업을 성숙시키는 지위에서는 별도로 애ㆍ취(取)의 지분을 건립한 것입니까?

 

雖諸煩惱皆能發潤,而發業位無明力增,以具十一殊勝事故,謂所緣等,廣如經說。於潤業位愛力偏增,說愛如水能沃潤故。要數漑灌方生有芽,且依初後分愛取二,

▷답한다; 모든 번뇌는 다 업을 일으키고 성숙시키지만, 업을 일으키는 단계에서는 무명의 세력만이 증성하여서, 11 가지 뛰어난 십일수승사(十一殊勝事)를 갖추기 때문이니,

인식대상의 뛰어남 등을 말하는 것으로, 자세한 것은 '연기경(緣起經)'의 상권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으며,

업을 성숙시키는 단계에서는 애(愛, 갈애)의 세력만이 집중적으로 증성하나니, 갈애는 물(水)이 능히 기름지고 윤기 나게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까닭에 반드시 여러 번의 물을 끌어 대어 비로소 유(有)라는 싹을 일으키는 것이며,

또한 애(愛, 갈애) 처음과 나중에 의거해서 애ㆍ취 두 가지를 나누나니,

ㅡ애(愛, 갈애) 증성한 것을 취(取, 취착)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에 처음을 애(愛, 갈애)라고 이름하고 나중을 취(取, 취착)라고 이름한다.

 

無重發義立一無明。雖取支中攝諸煩惱,而愛潤勝說是愛增。

거듭해서 업을 일으키는 뜻이 없으므로 하나의 무명만으로 건립하나니, 취(取)의 지분 중에서 모든 번뇌를 포함하지만, 애가 성숙시키는 것에 뛰어나므로 애가 증성시킨다고 말하는 것이다.

ㅡ업을 일으키는 발업(發業)의 뜻은 거듭해서 일으키는 뜻이 없음을 말한다.

 

십일수승사(十一殊勝事), 제1은 인식대상의 뛰어남의 소연승(所然勝)으로, 두루 잡염법과 청정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제2는 작용의 뛰어남인 행상승(行相勝)으로, 진실한 것을 조복하고 허망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제3은 인연의 뛰어남인 인연승(因緣勝)으로, 미혹과 업이 생겨나는 근본이기 때문이며,

제4는 평등하게 일으킴의 뛰어남의 등기승(等起勝)이니, 평등하게 능히 능인연(能引緣)ㆍ소인연(所引緣)ㆍ능생연(能生緣)ㆍ소생연(所生緣)의 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제5는 전이의 뛰어남의 전이승轉異勝)이니, 수면(隨眠)ㆍ전박(纏縛)ㆍ상응(相應)ㆍ불공(不共)의 네 가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며,

제6은 삿된 행의 뛰어남인 사행승(邪行勝)이니, 4성제에 대해서 증익ㆍ손감의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제7은 모습의 뛰어남인 상상승(相狀勝)이니, 미세한 자상(自相)이 두루 애착할 만한 것과 애착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의 공상(共相)에 널리 통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며,

제8은 작업의 뛰어남의 작업승(作業勝)이니, 유전(流轉)이 의지처인 소의(所依)를 조작하고, 적정함이 능장(能障)의 일을 조작하기 때문이며,

제9는 장애의 뛰어남의 장애승(障礙勝)이니, 뛰어난 법과 광대한 광법(廣法, 무위진여無爲眞如)를 장애하기 때문이며,

제10은 따라서 전전함의 뛰어남인 수전승(隨轉勝)이니,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따라서 전전하기 때문이며,

제11은 다스림의 뛰어남인 대치승(對治勝)이니, 두 가지 승묘한 지혜에서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諸緣起支皆依自地,有所發行依他無明?,

如下無明發上地行。不爾,初伏下地染者,所起上定應非行支,彼地無明猶未起故。

▷묻습니다; 모든 연기(緣起)의 지분은 모두 자기 지위에 의지한다고 '유가사지론' 제56권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어떤 상지(上地)에서 일으켜지는 행(行)은 다른 하지(下地)의 무명(無明)에 의지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답한다; 하지(下地, 욕계)의 무명이 상지(上地)의 행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 하지의 잡염을 조복시킨 자가 일으킨 상지의 선정은 행(行)의 지분이 아니어야 하는 것으로, 그 지위의 무명은 오히려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從上下地生不上者,彼緣何受而起愛支?彼愛亦緣當生地受,若現若種,於理無違。

▷묻습니다; 상지(上地)와 하지(下地)로부터 상지가 아닌 곳에 태어나는 자는, 어떤 수(受)를 반연해서 애(愛)의 지분을 일으키는 것입니까?

▷답한다; 그 애(愛)는 역시 다음에 태어나는 지위의 수(受)가 현행이나 종자를 반연한다고 말하는 것이 바른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此十二支十因二果定不同世,因中前七與愛、取、有或異或同,若二、三、七各定同世。

如是十二一重因果足顯輪轉及離斷常,

 12지(支)에 대해서 10인(十因)과 2과(二果)는 반드시 같은 지위(地)가 아닌 것으로,

 가지 원인인 10인(十因)중의 앞의 일곱 가지 원인과 애(愛)ㆍ취(取)ㆍ유(有)는 혹은 다르기도 하고 혹은 같기도 하며,

생(生)과 노사(老死)의  가지와 갈애(愛)ㆍ취(取)ㆍ존재의 형성의 유(有)의  가지와 10인(十因)중의 앞의 일곱 가지 각각 반드시 같은 지위인 정동세(定同世)이니,

이와 같은 12지의   겹침의 일중(一重)의 인과로써 윤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단멸과 상주불변의 두 극단을 떠나는 데에 충분한 것이다. 

ㅡ대승에서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세일중(二世一重) 인과를 건립한다.

 

施設兩重實爲無用,或應過此便致無窮。

  겹치는 양중(兩重)의 인과를 시설하는 것은 참으로 쓸모 없는 것으로, 혹 이것을 지나갈지라도 문득 끝없이 소급하는 과실을 가져오는 것이다.

ㅡ소승에서는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 건립하여, 12연기설은 과거는 무명(無明)ㆍ행(行),

현재는 식(識)ㆍ명색(名色)ㆍ육처(六處)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

미래는 생(生)ㆍ노사(老死) 3() 걸쳐 윤회하는 인과를 밝히는 교리이.


此十二支義門別者,九實,三假,已潤六支合爲有故,卽識等五三相位別名生等故。

五是一事,謂無明、識、觸、受、愛五,

 12 가지 지분에 있어서 뜻의 부문인 의문(義門)의 차이를 말하자면,

ㅡ열일곱 가지의 여러 부문인 제문(諸門) 판별하는 것으로, 먼저 가실(假實) 판별한, 제일가실문(第一假實門).

 

무명ㆍ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 9 가지는 자체가 있는 요소인 구실(九實)이며,

존재의 형성인 유(有)ㆍ생(生)ㆍ노사(老死)의 3 가지는 자체가 없는 요소인 삼가(三假)이며,

이미 성숙된 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의 여섯 가지 지분을 합해서 존재의 유(有)로 하기 때문이니,

 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의 5 가지 지분의  가지 양상인 삼상(三相)의 단계가 다른 것을 생(生) 등으로 이름하기 때문이며, 

무명ㆍ식ㆍ촉(觸)ㆍ수(受)ㆍ애의 다섯 가지는  가지 일인 일사(一事)라고 말한다.

ㅡ생(生)ㆍ노사(老死)  자체가  등의 다섯 가지 법으로, 그것의 생(生)ㆍ이(異)ㆍ멸(滅)의  가지 상(三相)에서, 생겨남 태어남의 지분인 생지(生支)이고, 변화하는 이(異) 늙음의 지분이며, 멸함의 멸(滅) 죽음의 지분이다.

 

餘非一事。三唯是染,煩惱性故。

나머지는 일사(一事)가 아니니, 무명ㆍ애ㆍ취의 3가지 지분은 오직 잡염으로, 번뇌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ㅡ12()  가지 일인 것과 그것이 아님을 판별한, 제이일사비일사(第二一事非一事門).

 

七唯不染,異熟果故。七分位中容起染故,假說通二,餘通二種。

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ㆍ생(生)ㆍ노사(老死)의 7 가지는 오직 잡염되지 않은 칠유불염(七唯不染)이니, 이숙과이기 때문이며,

일곱 가지 분위 중에서 잡염을 일으킨다고 인정되기 때문에 가정적인 것으로,

즉 일곱 가지는 오직 잡염되지 않은 불염(不染)으로 선(善)과 무기(無記) 가지에 통한다고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말하고 있으며,

나머지 행(行)ㆍ유(有)의 2 가지 지분은 잡염과 잡염되지 않은  가지에 통한다.

ㅡ잡염과 잡염되지 않음을 판별한, 제삼염불염문(第三染不染門).


無明、愛、取說名獨相,不與餘支相交雜故。餘是雜相。

무명ㆍ애ㆍ취의 지분은 잡염과 잡염되지 않은 것의 독립적인 상(獨相)이라 이름 하나니, 나머지 지분과 서로 뒤섞이지 않기 때문이며, 그 나머지 지분은 뒤섞인 잡상(雜相)이다.

ㅡ독립적인 모습과 뒤섞이는 모습을 판별한, 제사교잡분별문(第四交雜分別門).

독립적인 모습의 독상(獨相)이란,  체(體)만을 지분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지분과 서로 뒤섞이지 않는 것이다.

 

六唯非色,謂無明、識、觸、受、愛、取,餘通二種。

무명ㆍ식ㆍ촉ㆍ수ㆍ애ㆍ취, 여섯 가지는 오직 색법이 아닌 것으로, 나머지는 색법과 색법이 아닌  가지에 통하며,

ㅡ두 가지 지분이 색법인 것과 색법이 아닌 것을 판별한, 제오색비색문(第五色非色門).

 

皆是有漏,唯有爲攝,無漏、無爲非有支故。

모두 유루로써 오직 유위법에 포섭되며, 

ㅡ열두 가지 지분이 모두 유루(有漏)이고 유위법임을 판별한, 제육유루유위법(第六有漏有爲門).

 

무루와 무위법은 윤회의 원인적 지분인 유지(有支)가 아니기 때문이다.

ㅡ열두 가지 지분이 무루(無漏) 무위법이 아닌 이유를 밝힌, 제칠무루무위법(第七無漏無爲門).


無明、愛、取唯通不善、有覆無記,行唯善、惡,有通善、惡、無覆無記,餘七唯是無覆無記,七分位中亦起善、染。雖皆通三界,而有分有全。

무명ㆍ애ㆍ취는 오직 불선과 유부무기에 통하며,

행(行)은 오직 선과 악이고, 유(有)는 선ㆍ악ㆍ무부무기에 통하며,

그 나머지 일곱 가지는 오직 무부무기일 뿐이다. 

ㅡ열두 가지 지분의 3() 판별한, 제팔삼성분별문(第八三性分別門).

 

일곱 가지 분위 중에서도 역시 선과 잡염을 일으키나니, 모두계에 통하지만, 부분적이기도 하고 전부이기도 하다.

 열두 가지 지분이 3계에서 어떻게 있는가를 판별한, 제구삼계문(第九三界門)으로, 욕계에서는 열두 가지 지분이 전부 있고, 색계와 무색계에는 12() 일부분이 있을 뿐이다.


上地行支能伏下地,卽麤、苦等六種行相 有求上生而起彼故。

상지의 행지(行支)는 능히 하지의 것을 조복하나니, 곧 두드러짐과 괴로움 등의 여섯 가지 작용의 육종행상(六種行相)이니,  상지에 태어나기를 구하여 일으키는 행(行)의 지분 있기 때문이다.

ㅡ능히 다스리는 것과 다스려지는 것을 판별한, 제십능소치문(第十能所治門)으로, 

상지(上地) 행지(行支)란, 두드러짐의 추(麤)ㆍ고(苦)ㆍ장(障, 장애)ㆍ적정함의 정(靜)ㆍ승묘함의 묘(妙)ㆍ떠남의 이(離) 여섯 가지 작용인 육행상(六行相)이며,

하지 12() 관찰하여 추(麤)ㆍ고(苦)ㆍ장(障, 장애) 삼고,

상지 세계의 일체를 관찰하여 정(靜)ㆍ묘(妙)ㆍ이(離) 삼는다.

 

一切皆唯非學無學, 聖者所起有漏善業,明爲緣故,違有支故,非有支攝。由此應知,聖必不造感後有業,於後苦果不迷求故,

일체가 모두 오직 유학도 무학도 아니니, 성자가 일으킨 유루의 선업은 지혜인 명(明)을 연(緣)으로 삼기 때문이고,

12 가지 지분인 십이유지(十二有支)에 거스르기 때문에 12 가지 지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니,

이러함으로 마땅히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하나니, 성인은 반드시 미래세의 존재를 초감하는 업을 짓지 않으며, 미래세 존재의 고통스러운 과보를 미혹되게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ㅡ열두 가지 지분이 유학(有學) 무학(無學) 아님을 판별한, 제십일학등분별문(第十一學等分別門).

 

雜修靜慮資下故業,生淨居等,於理無違。

선정을 닦아서 하지의 선정의 업을 의지하여 정거천(淨居天)등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른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비판하여 묻기를, 만약 성자(聖者) 업을 짓지 않는다면, 다섯 가지 정거천(淨居天) 업을 잡염되게 닦는 것은 어째서 () 지분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답변한 것으로, 

하지의 선정의 업이란, 색계의 4선천(第四禪天)의 9 중에서 하부의 3천,  복생천(福生天)ㆍ광과천(廣果天)ㆍ무상천(無想天)이다.

 

정거천(淨居天), 제4선천의 9천 가운데에서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한 성인이 나는 하늘인 상부의 5천, 즉 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현천(善現天)ㆍ선견천(善見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이다.


有義無明唯見所斷,要迷諦理能發行故,聖必不造後有業故。愛、取二支唯修所斷,貪求當有而潤生故,九種命終心俱生愛俱故。餘九皆通見、修所斷。

먼저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무명은 오직 견도에서 단멸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4성제의 도리에 미혹해서 능히 행(行)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성인은 반드시 미래세의 존재의 업을 짓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며,

애ㆍ취 두 가지 지분은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으로,

다음 생(生)의 존재를 탐구하여, 태어남을 촉진하기 때문이며,

임종할 때의 아홉 가지 마음인 구종명종심(九種命終心)은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애(愛)와 함께한다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5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나머지 아홉 가지는 모두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과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에 통한다.

ㅡ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 등의  가지 단멸을 판별한, 제십이삼단문(第十二三斷門)

 

구종명종심(九種命終心), 3계(界)로부터 3계에 태어날 때에는 각각 태어남을 촉진하는 윤생(潤生)의 마음에 각각 세 가지가 있으므로 전부 아홉 가지가 된다.

즉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의 마지막 마음으로, 이 때에 4종의 애착(愛着)을 일으키며 이 애착에 의하여 미래의 생을 받게 된다는 것으로, 
① 현재의 자신에 애착 .
② 현재의 권속에 탐회(貪喜)에 애착 .
③ 현재의 재산에 기쁨의 애착 .
④ 미래의 자신에 대하여 후유(後有)의 애착 .
이 네 가지 애착 중에서 마지막 하나는 바로 다음 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앞의 3 가지는 간접 원인된다 .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8 4

 

復次,生死相續由諸習氣,然諸習氣摠有三種:一名言習氣。謂有爲法各別親種。名言有二:一表義名言,卽能詮義音聲差別。二顯境名言,卽能了境心、心所法。隨二名言所熏成種,作有爲法各別因緣。

또한 태어나고 죽는 생사(生死)를 상속함은 모든 습기에 의거하며, 모든 습기에 총체적으로 세 종류인 삼훈습(三熏習)이 있으니,

첫째는 명언습기(名言習氣)로써, 유위법이 각각 다르게 직접 훈습된 종자인 친종(親種)을 말하는 것으로,  

언어 즉, 명언(名言)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뜻을 표현하는 언어의 표의명언(表義名言)으로, 능히 뜻을 나타내는 음성의 차이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을 나타내는 언어의 현경명언(顯境名言)으로, 능히 대상을 요별하는 심왕과 심소법으로,  

두 가지 언어인 명(名)과 언(言)에 따라서 훈습된 종자가 유위법의 각각 다른 인연이 되는 것이다.

 

명언습기(名言習氣)는 명언종자ㆍ명언훈습종자라고도 하며, 언어인 명언(名言)을 사용한 개념적인 사고에 의하여 이식된 종자 또는 모든 종자를 총칭하여 명언종자라고 하기도 하는 것으로, 심리활동의 대부분이 언어에 의한 개념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종자는 언어활동에 의해 아뢰야식에 이식된 잠재적인 에너지이며, 또한 언어활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二我執習氣。謂虛妄執我、我所種。我執有二:一俱生我執,卽修所斷我、我所執。二分別我執,卽見所斷我、我所執。隨二我執所熏成種,令有情等自、他差別。

둘째는 아집습기(我執習氣)이니, 허망하게 나(我)ㆍ나의 소유인 아소(我所) 집착하는 종자를 말하는 것으로, 아집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아집인 구생기아집(俱生起我執)으로, 곧 수도에서 단멸되는 나ㆍ나의 소유라는 집착이며,

다른 하나는 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아집인 분별기아집(分別起我執)으로, 곧 견도에서 단멸되는 나ㆍ나의 소유라는 집착이으로,  

이러한 두 가지 아집에 따라서 훈습된 종자가 유정 등으로 하여금 자신과 남의 차별을 짓게 만든 것이다.

 

아집습기(我執習氣)는 아집종자ㆍ아집훈습종자라고도 하며, 자아가 실재한다는 견해인 아견(我見)에 의해 아뢰야식에 이식된 종자이다.

①구생기아집(俱生起我執), 말나식이 아뢰야식의 견분(見分을 대상으로 하고, 의식이 5취온(取蘊)을 대상으로 하여 각각 나(我)ㆍ나의 소유인 아소(我所)로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②분별기아집(分別起我執), 신체에 대한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아집이다.

 

三有支習氣,謂招三界異熟業種。有支有二:一有漏善,卽是能招可愛果業。二諸不善,卽是能招非愛果業。隨二有支所熏成種,令異熟果善、惡趣別。應知我執、有支習氣於差別果是增上緣。

셋째는 유지습기(有支習氣)이니, 삼계의 이숙과를 초감하는 업종자를 말하는 것으로,

윤회세계의 원인인 유지(有支)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유루선(有漏善)으로, 곧 능히 애착할 만한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의 과보 초감하는 업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불선법(不善法)으로, 곧 애착할 만한 것이 아닌,  지옥ㆍ아귀ㆍ축생의 3악취(惡趣)의 괴로움의 과보를 초감하는 업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유지(有支)를 따라서 윤회세계의 훈습된 종자가 이숙과로 하여금 살기 좋은 세계인 선취(善趣)와 살기 괴로운 세계인 악취(惡趣)의 차별이 있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라! 아집습기와 유지습기는 차별 있는 과보에 대해서 증상연이 되는 것이다.

명언습기는 일체법을 생기시키는 직접적인 인연인 친인연(親因緣)이고, 아집습기와 유지습기는 증상연으로,  

아집습기는 우리로 하여금 자타의 구분이 있게 하는 증상연이고, 

유지습기는 이숙과로 하여금 선이나 악취의 차이가 있게 하는 증상연이다.

 

유지습기(有支習氣)는 업습기ㆍ업종자라고도 하며, 유정을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삼유(三有)에서 생사윤회하게 만드는 종자이다. 선이나 악업에 훈습된 종자로서, 미래의 생존상태인 유(有)를 결정하고 발생하는 직접 원인이며, 

유지(有支)에서 유(有)는 3유(有), 즉 3계(界)이고, 지(支)는 원인이라는 뜻이다.

 

此頌所言業習氣者,應知卽是有支習氣。二取習氣應知卽是我執、名言二種習氣,取我、我所及取名言而熏成故,皆說名取。俱等餘文義如前釋。

 게송에서 말한 업습기는  유지습기라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이취(二取)습기는  아집습기와 명언습기임을 알아야 하며, 나ㆍ나의 소유를 취착하고 언어를 취착해서 훈습되기 때문에 모두 취(取)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게송에서 ‘함께함의 구(俱)’ 등의 다른 문구의 뜻은 앞에서 해석한 바와 같다.

 

復次,生死相續由惑、業、苦,發業潤生煩惱名惑,能感後有諸業名業,業所引生衆苦名苦,惑、業、苦種皆名習氣。前二習氣與生死苦爲增上緣,助生苦故,第三習氣望生死苦能作因緣,親生苦故。

또한 태어나고 죽는 생사(生死)가 상속하는 것은 혹(惑, 미혹)ㆍ업(業)ㆍ고(苦, 괴로움) 의거하며,

업을 일으키고 윤회의 삶을 촉진하는 번뇌를 ‘혹(惑, 미혹)’이라 이름하며,

능히 미래세의 삶인 후유(後有)를 초감하는 모든 업을 ‘업(業)’이라 이름하며,

업에 이끌려 생겨나는 갖가지 고통을 ‘고(苦, 괴로움)’라 이름하며,

혹(惑, 미혹)ㆍ업(業)ㆍ고(苦, 괴로움)의 종자를 모두 ‘습기(習氣)’라고 이름한다. 

앞의 혹(惑, 미혹)ㆍ업(業),  가지 습기는 생사의 괴로움의 증상연이 되나니, 도와서 고통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번째의 고(苦, 괴로움)의 습기는 생사의 괴로움에 대하여 능히 인연이 되나니, 직접 고통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번째 해설로서 생사를 12유지(有支) 설명하는 것으로, 먼저 생사(生死) 미ㆍ혹ㆍ업ㆍ괴로움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頌三習氣,如應當知。惑、苦名取,能、所取故,取是著義,業不得名。

게송에서 말하는  가지 습기는 상응하는 것에 맞게 알아야 하나니,

혹(惑, 미혹)ㆍ업(業)을 이취습기(二取습習氣)라 이름하는 것은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이기 때문이며, 취(取)는 취착의 뜻이고.

업(業)은 명칭을 얻지 못하여 업습기(業習氣)일 뿐이다.

 

俱等餘文義如前釋。此惑、業、苦,應知摠攝十二有支,謂從無明乃至老死,如論廣釋。

게송에서 ‘함께함의 구(俱)’ 등의 다른 문장은 뜻이 앞에서 해석한 바와 같으며,

혹(惑, 미혹)ㆍ업(業)ㆍ고(苦, 괴로움) 총체적으로 12유지(有支)를 포함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곧 무명으로부터 나아가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인 것으로,

논서 '유가사지론'제9권ㆍ제10권,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 등에서 자세히 해석한 바와 같다.

 

然十二支略攝爲四:一能引支。謂無明、行,能引識等五果種故。此中無明唯取能發正感後世善、惡業者,卽彼所發乃名爲行,由此一切順現受業別助當業皆非行支。

그런데 12지(十二支)를 간략히  가지에 포함시킬 수 있으니,

첫째는 능인지(能引支)로써, 무명(無明)과 행(行) 말하는 것으로, 능히 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 다섯 가지 결과의 종자인 오과종(五果種)을 이끌기 때문이다. 

 가운데에서 무명(無明)은 오직 진정으로 다음 생을 초감하는 선ㆍ악의 업을 일으키는 것만을 취하는 것으로, 곧 그것이 일으킨 것을 행(行)이라고 이름하나니, 이것에 의해 현세에 받는 모든 업과 미래세에 받는 업은 모두 행의 지분인 행지(行支)인 것은 아니다.

 

二所引支。謂本識內親生當來異熟果,攝識等五種,是前二支所引發故。此中識種謂本識因,除後三因,餘因皆是名色種攝,後之三因如名次第卽後三種。

둘째는 이끌려지는 지분인 소인지(所引支)이니, 근본식 안에서 직접 미래의 이숙과에 포함되는 식(識)ㆍ명색(名色)ㆍ6처(六處)ㆍ촉(觸)ㆍ수(受) 다섯 가지를 일으키는종(五種)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이전의  가지의 지분(支分, 무명과 행)에 이끌려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며,

 가운데에서 식의 종자인 식종(識種)이란, 근본식 중의 원인을 말하는 것이며,

6처(六處)ㆍ촉(觸)ㆍ수(受)의  가지 원인을 제외한 나머지 원인은 모두 명색의 종자에 포함되며,

6처(六處)ㆍ촉(觸)ㆍ수(受)의  가지 원인은 명칭의 순서와 같이  이후의  가지 종자인 후삼종(後三種)이 되는 것이다.

 

或名色種摠攝五因,於中隨勝立餘四種,六處與識摠別亦然。

혹은 명색(名色)의 종자에 총체적으로 다섯 가지 원인을 포함하기도 하나니,

 가운데에서 뛰어난 것을 따라 나머지  가지 종자를 건립하며,

여섯 가지 인식기관인 육처(六處)와 식의 총체적인 것과 개별적인  역시도 그러하다.

집지(執持)하는 데에는 식(識)이 뛰어나고, 식을 일으키는 데는 처(處)가 뛰어나며, 대상을 접촉하는 데에는 촉(觸)이 뛰어나고, 느낌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수(受)가 뛰어나다.

 

'集論'說識亦是能引,識中業種名識支故,異熟識種名色攝故。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는 식(識) 역시도 능히 이끄는 능인(能引)이라고 말한 것은 식(識) 가운데의 업종자를 식의 지분인 식지(識支)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며, 이숙식의 종자는 명색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ㅡ'대승아비달마잡집론' 4권의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거기에서는 () 역시 능인(能引)이라하여서, 여기에서 말한 것과 다른 이유는, 원래 근본식 중에 공통적으로 () 식(識)이 있으므로 () 종자를 식의 지분인 식지(識支)라고 말하였으나, 만약 그러하다면 식지(識支)의 종자는 명색(名色) 포함 되는 것이다.

 

經說識支通能、所引,業種識種俱名識故,識是名色依非名色攝故。

경전, '분별연기초승법문경(分別緣起初勝法門經)'의 상권에서 식의 지분인 식지(識支)는 능히 이끄는 지분인 능인(能引)과 이끌려지는 지분인 소인(所引)에 통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업종자인 업종(業種)과 식의 종자인 식종(識種) 모두를 식(識)이라고 이름한 때문이니, 식은 명색의 의지처라고 말하고 명색에 포섭된다고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識等五種由業熏發,雖實同時,而依主伴、摠別、勝劣、因果相異,

식(識)ㆍ명색(名色)ㆍ6처(六處)ㆍ촉(觸)ㆍ수(受) 등 다섯 가지의 종자인 오종(五種)이 업에 의해 훈습되고 일어나는 것은 실제로 동시(同時)이지만,

비판하여 묻기를,  오종(五種)은 이전 찰나와 이후 찰나에 훈습되는가? 아니면 동시에 훈습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주체(主)와 

ㅡ식(識)ㆍ명색(名色)ㆍ6처(六處)ㆍ촉(觸)ㆍ수(受)  5 중에서 (근본식) 주체로 하는 것을 이숙과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수반(伴)되는 것,

ㅡ식(識)을 제외한 나머지 명색(名色)ㆍ6(六)ㆍ촉()ㆍ수() 지분을 말한.

 

총체적(總)인 것과 

ㅡ명색(名色)ㆍ6처(六處)ㆍ촉(觸)ㆍ수(受)의 4 가운데에서 명색(名色) 말하는 것으로,  체성(體性)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개별적(別)인 것,

ㅡ6처(六處)ㆍ촉(觸)ㆍ수(受)의 3법은 뜻과 작용이 협소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별(別)이라 한다.

 

뛰어난(勝) 것과 

ㅡ6처(六處)ㆍ촉(觸)ㆍ수(受)의 3 중에서 6처는 수(受) 등의 의지처이기 때문에 뛰어난 승(勝)이라 이름한다.

 

열등한(劣) 것, 

ㅡ촉(觸)과 수(受) 지분은 6처(六處)에 의지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열등한 열(劣)이라 이름한다.

 

원인(因)과 

ㅡ나머지 2법인, 촉(觸)과 수(受) 중에서 촉(觸)은 능히 수(受)를 생겨나게 하기 때문에 원인이라 한다.

 

결과(果)의 차이에 의거하는 것이다. 

ㅡ 수() 촉(觸)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결과의 체성이다.

 

故諸聖教假說前後,或依當來現起分位有次第故說有前後。

따라서 모든 성스러운 가르침에서는 가정적으로 앞뒤의 순서를 말하는 것으로, 혹은 미래와 현행의 분위(分位)에 의해서 순서가 있기 때문에 앞뒤 순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ㅡ 만약 식(識)ㆍ명색(名色)ㆍ6처(六處)ㆍ촉(觸)ㆍ수(受) 등 다섯 가지의 종자인 오종(五種)이 동시에 훈습된다면, 어찌하여 앞뒤의 순서가 있게 되는가라는 비판에 대한 답변이다.

 

由斯識等亦說現行,因時定無現行義故。復由此說生引同時,潤未潤時必不俱故。

이것에 의해 식(識) 등을 현행에 있다고도 말하나니, 원인의 시기에는 반드시 현행의 뜻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이에 의거해서 생겨나는 것과 이끄는 것이 동시라고 말하나니,

성숙과 미성숙의 시기는 반드시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 훈습할 때에 아직 현행할  없다면, 어째서 '연기경(緣起經)' 상권에서 생겨나는 생(生) 이끄는 인(引) 동시(同時)라고 말씀하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한 것으로, 장차 일어날 만한 지위에 있어서 동시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三能生支。謂愛、取、有,近生當來生、老死故。謂緣迷內異熟果愚發正能招後有諸業爲緣,引發親生當來生、老死位五果種已,復依迷外增上果愚緣境界發起貪 愛緣愛復生欲等四取,

셋째는 능히 생겨나게 하는 지분인 능생지(能生支)이니, 애(愛)ㆍ취(取)ㆍ유(有)이니, 가까운 장래에 생(生)과 노사(老死)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내부의 이숙과에 미혹한 어리석음에 반연하여 참으로 능히 미래세의 존재를 초감하는 여러 업을 일으켜서 연(緣)으로 삼고, 직접 미래세의 생ㆍ노사 단계의 5과를 일으킬 만한 종자를 이끌어 내며,

다시 외부의 증상과에 미혹한 어리석음에 의해 경계수(境界受)를 반연하여 탐(貪, 탐욕)을 일으키며,

애(愛)를 연으로 하여 다시 욕취(欲取)   가지 취착인 사취(四取)154)을 일으키며,

ㅡ사취(四取)는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ㆍ아어취(我語取)로써, 3 번뇌를  가지로 나눈 것이기도 하고, 또한 12연기설 중의 취지(取支) 자세히 구분한 것이기도 하.

 

愛、取合潤能引業種及所引因,轉名爲有,俱能近有後有果故

애(愛)와 취(取)를 합하여 촉진시키는 능인(能引)의 업종자  이끌려지는 원인인 소인지(所引支, 식ㆍ명색ㆍ6처ㆍ촉ㆍ수) 를 바꾸어 유(有)라고 이름하나니, 모두 능히 가까운 장래에서의 존재(有)의 과보를 있게 하기 때문이다.

 

有處唯說業種名有,此能正感異熟果故。復有唯說五種名有,親生當來識等種故。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오직 업의 종자인 업종(業種)만을 유(有)라고 이름한다고 말한 것은, 이것이 능히 참으로 이숙과를 초감하기 때문이며,

또한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오직 다섯 가지 종자인 오종(五種)만을 유(有)라고 이름한다고 말한 것은 직접 미래세의 식(識) 등을 일으킬 만한 종자이기 때문이다.

 

四所生支。謂生、老死,是愛、取、有,近所生故。謂從中有至本有中,未衰變來皆生支攝,諸衰變位摠名爲老,身壞命終乃名爲死。

넷째는 생겨나는 지분인 소생지(所生支)이니, 생(生)ㆍ노사(老死) 말하는 것으로, 애(愛)ㆍ취(取)ㆍ유(有)의 가까이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며,

중유(中有)에서부터 본유(本有)에 이르기까지, 아직 노쇠하지 않은 미래를 모두 태어남의 지분인 생지(生支)에 포섭시키며,

모든 노쇠하는 단계를 총체적으로 늙음의 노(老)라 하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는 것을 죽음의 사(死)라 이름한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8 3

 

분별을 일으키는 양상으로, '삼십송' 18게송  4句를 자세하게 해설한, 연생분별(緣生分別)이며, 

  가지 중에서 처음에 현행을 일으키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먼저 종자생(種子生) 판별한다.

本識中種容作三緣,生現分別,除等無閒,謂各親種是彼因緣,爲所緣緣於能緣者

근본식 중의 종자는 인연, 소연연, 증상연의 삼연(三緣)이 되어 현행의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 인정되나, 등무간연을 제외하며, 각각 가까운 종자는 그것의 인연이 된다. 

소연연이 되는 것은 능히 반연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며,

능히 종자를 반연하는 심왕ㆍ심소법에 대해서, 종자를 그것의 소연연(所緣緣)으로 삼는다.

 

若種於彼,有能助力或不障㝵,是增上緣。生淨現行應知亦爾。現起分別展轉相望容作三緣,無因緣故。

만약 종자가 그것에 대해서 능히 돕는 힘이 있거나 혹은 장애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증상연이 되며, 청정의 현행을 일으키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고 마땅히 알아야 하며,

현행의 분별은 전전하여 서로 배대하는데  가지 연이 되는 것이 인정되나니,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생(現行生) 판별한다. 현행은 직접 자체를 판별하지 않으므로 인연이 없는 것이다.


謂有情類自他展轉容作二緣,除等無閒。

유정의 무리는 자신과 타인으로 전전하여 소연연(所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의  가지 연(緣)이 되나, 등무간연은 제외한다.

자신과 남(他) 몸으로 서로 배대하여 소연연과 증상연이 되고, 등무간연은 오직 각각 하나의 ()에만 국한되므로 제외된다.

 

自八識聚展轉相望,定有增上緣,必無等無閒,所緣緣義或無或有。

자신의 8식의 모임인 자팔식취(自八識聚)는 전전하여 서로 배대함에 있어서 반드시 증상연이 있으나, 등무간연은 필히 없으며, 소연연의 뜻은 혹 없기도 하고 혹 있기도 하다.

 

팔식취(八識聚), 8식 하나하나와 아울러 그 상응법(심소) 등의 견분과 상분 등을 총체적으로 팔식취라 한다.


八於七有,七於八無,餘七非八所仗質故,第七於六五無一有,餘六於彼一切皆無,第六於五無,餘五於彼有,五識唯託第八相故。

제8식은 7식에 대해서 소연연의 뜻이 있으나, 7식은 제8식에 대해서 없으니, 나머지 7식은 제8식이 의지하는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며,  

제7식을 6식에 대해서 말한다면, 5식에는 없으나 제6식에는 있으며,

나머지 6식은 그 제7식에 대해서 일체가 모두 없으며,

제6식은 5식에 대해서 없으나, 나머지 5식은 제 6식에 대해서 있으니, 5식은 오직 제8식의 상분에만 의탁하기 때문이다.


自類前後第六容三,

자기 부류인 자류(自類)의 이전 찰나와 이후 찰나에 관하여 말하자면,

자신의 8식의 하나하나의 자기 부류인 자류(自類) 이전 찰나와 이후 찰나로 서로 배대한 전후상망(前後相望)을 논한다.

 

제6식에는  가지가 있는 것이 인정되나,

이전 찰나의 6식은 이후 찰나의 6식에 대하여 소연연ㆍ등무간연ㆍ증상연의 삼연(三緣)이 되는 것으로, 인연(因緣) 제외한 것은 현행을 상망(相望)하여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餘除所緣,取現境故,

나머지 7식에서는 소연연을 제외하나니, 현재의 대상만을 취하기 때문이다.

6식을 제외한 나머지 7식에는 소연연(所緣緣) 제외하나니,  7식은 이전 찰나의 생각을 반연하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인연이 없다.

 

許五後見緣前相者,五七前後亦有三緣,前七於八所緣容有,能熏成彼相、見種故。

5식의 이후 찰나의 견분이 이전 찰나의 상분을 인식대상으로 한다고 진나(陳那, Dignāga)의 '관소연연론(觀所緣緣論)'에서인정하므로, 전5식과 제7식의 이전 찰나의 것이 이후 찰나에 대해서 역시 인연을 제외한 나머지  가지 연(緣)이 있다고 하였으니,

7식은 제8식에 대해서 소연연이 능히 그 제 8식의 상분ㆍ견분의 종자를 훈습하는 일이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同聚異體展轉相望,唯有增上。諸相應法所仗質同,不相緣故。或依見分說不相緣,依相分說有相緣義。謂諸相分互爲質起,如識中種爲觸等相質。不爾,無色彼應無境故,設許變色亦定緣種,勿見分境不同質故。

같은 모임인 동취(同聚)의 다른 자체가 전전하여 서로 배대함에는 오직 증상연이 있으니, 모든 상응법(심소)은 의지하는 본질이 같으므로 서로 반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견분에 의해서는 서로 반연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상분에 의해서는 서로 반연하는 뜻이 있다고 말하나니, 모든 상분이 서로 본질이 되어 일어나므로, 식(識) 중의 종자를 촉(觸)심소 등의 상분의 본질로 하는 것과 같으니,  

그렇지 않다면 무색계에서 촉(觸) 등의 5변행심소(遍行心所) 등 대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사 무색계의 제8의 심왕ㆍ심소가 색법을 변현한다고 허용할지라도 반드시 종자만을 반연하나, 견분의 대상이 같은 본질인 동질(同質)이 아니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同體相分爲見二緣,見分於彼但有增上,見與自證相望亦爾。

자체가 같은 동체(同體) 상분은 견분의 소연연과 증상연의 연(緣)이 되나니,

견분은 그 상분에 대해서 오직 증상연만 있을 뿐이며, 견분이 자증분을 서로 배대하여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견분은 자증분에 대해서 소연연과 증상연이 되고, 자증분은 견분에 대해서 오직 증상연만 되고,

또한 견분은 증자증분에 대해서는 오직 증상연만 된다.

 

餘二展轉俱作二緣,此中不依種相分說,但說現起互爲緣故。淨八識聚自、他展轉皆有所緣,能遍緣故。唯除見分非相所緣,相分理無能緣用故。

나머지  가지인 자증분과 증자증분은 전전하여 소연연과 증상연 되나니, 여기에서는 종자의 상분에 의거해서 말하지 않고 다만 현행이 서로 연(緣)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정한 제8식의 모임인 정팔식취(淨八識聚)는 자신과 타인으로 전전하여 모두 소연연이 있으니, 능히 두루 반연하기 때문이나, 오직 견분이 상분의 소연연이 아닌 것만을 제외하나, 상분은 이치에는 능연의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旣現分別緣種現生,種亦理應緣現種起,現種於種能作幾緣?

▷묻겠습니다; 이미 현행의 분별이 종자ㆍ현행을 반연하여 일어남을 말하였습니다. 

종자도 이치가 역시 현행ㆍ종자를 반연하여 일어나야 하나니, 현행ㆍ종자는 종자에 대해서 능히  가지의 연이 되는 것입니까?

 

종자를 일으키는 것을 밝힌다.

種必不由中二緣起,待心、心所立彼二故。現於親種具作二緣,與非親種但爲增上,

種望親種亦具二緣,於非親種亦但增上。

▷답한다; 종자는 반드시 중간의  가지 연(緣)인 등무간연과 소연연에 의거해서는 일어나지 않나니, 심왕ㆍ심소를 기다려서   가지를 건립하기 때문이다. 

현행은 직접 훈습한 종자인 친종(親種)에 대해서는 모두 인연과 증상연의 두 가지 연이 되며,

직접 훈습하지 않은 종자인 비친종(非親種)에 대해서는 다만 증상연이 될 뿐이다. 

종자를 자신이 직접 훈습한 친종(親種) 배대하여 역시  가지 연을 갖추나니,

자신이 직접 훈습하지 않은 종자인 비친종(非親種) 대해서는 다만 증상연이 될 뿐이다.


依斯內識互爲緣起,分別因果理教皆成,所執外緣設有無用,況違理教何固執爲?

이러한 내부의 식이 서로 연(緣)이 되어 일어나는 것에 의거해서, 분별(심왕ㆍ심소)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바른 논리와 성스러운 가르침이 모두 성립되는 것이다.

집착된 외부대상인 소집외연(所執外緣)이 설사 있다고 할지라도 작용이 없거늘,

바른 논리와 성스러운 가르침에 위배하면서 고집하는 것이 무엇에 쓸모가 있겠는가?

→총체적으로 결론 맺으면서 소승에서 주장하는 바의 마음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대상인 심외연(心外緣) 논파하였다.

 

雖分別言,摠顯三界心及心所,而隨勝者諸聖教中多門顯示,或說爲二、三、四、五等,如餘論中具廣分別。

‘분별(分別)’이라는 말은 총체적으로계의 심왕과 심소를 나타내지만, 수승한 것을 따라서 여러 성스러운 가르침 중에서 여러 부문으로써 나타내 보이고 있으니, 어떤 곳에서 둘ㆍ셋ㆍ넷ㆍ다섯 가지 등으로 말하나니, 본 논서의 3성(性) 부문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다른 논서, 즉 '유가사지론'의 제38권ㆍ제73권ㆍ제74권 등에서 갖추어 자세하게 분별한 것과 같다.


雖有內識,而無外緣,由何有情生死相續?頌曰:

비록 내부의 식, 즉 내식(內識)만이 있다고 말하지만, 외부의 대상인 외연(外緣)이 없다면, 무엇에 의거해서 유정이 생사에 상속하겠는가? '삼십송'의 제19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으니, 


由諸業習氣 二取習氣俱, 前異熟旣盡 復生餘異熟。

모든 업습기(業習氣)가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2취(二取)의 습기와 함께함으로써

이전에 생겨난 과보(果報)인 이숙(異熟)이 이미 멸한다면, 

다시 다른 이숙(후에 생겨나는 과보)을 생겨나게 한다네.

유정상속(有情相續) 연유를 밝힌 것으로, 유정의 상속에는 내심(內心) 종자를 ()으로 하고 ()으로   있기 때문에, 심외실경(心外實境) 없을지라도  상속에는 조금도 지장이 없는 것이다.

 

이숙(異熟)은 vipāka의 번역으로 과보라는 뜻으로, 이숙이라는 의미는 선 또는 악의 업인(業因)에 의해서 이것과 성질이 다른 무기(無記), 즉 비선비악(非善非惡)인 결과를 산출하는 것을 말한다.

 

論曰:諸業謂福、非福、不動,卽有漏善、不善思業。

▷논하여 말한다.

‘모든 업, 제업(諸業)’이란, 복(福, 낙과)과 복이 아닌 비복(非福, 고과) 부동(不動)을 말하는 것으로, 곧 유루의 선ㆍ불선의 의지로 짓는 업(思業)인 것이다. 

→복(福), 욕계의 선업으로서 즐거움의 과보인 낙과(樂果) 초감할 만한 것.

→비복(非福), 욕계의 악업으로서 괴로움의 과보인 고과(苦果)를 초감할 만한 .

→부동(不動), 색계와 무색계에 속하는 선정의 의업(意業).

 

業之眷屬亦立業名,同招引滿異熟果故。

업의 권속도 역시 업(業)이라는 명칭을 건립하는 것은 인업(引業)과 만업(滿業)의 이숙과를 초감하기 때문이다.


此雖纔起無閒卽滅,無義能招當異熟果。而熏本識起自功能,卽此功能說爲習氣,是業氣分熏習所成,簡曾、現業,故名習氣。如是習氣展轉相續,至成熟時招異熟果,此顯當果勝增上緣。

이 현행의 업은 일어나자마자 바로 다음 찰나에 멸하여 능히 미래의 이숙과(異熟果)를 초감할 만한 뜻이 없지만, 근본식에서 자신을 일으킬 만한 세력의 자공능(自功能)을 훈습하나니, 곧  세력인 공능(功能)을 습기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업의 기분(氣分)으로, 훈습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전의 업과 현재의 업을 가려내기 때문에 습기라 이름하며,

이와 같이 습기가 전전하고 상속하여서 성숙한 때에 이르러서는 이숙과를 초감하나니,

이것은 미래 과보의 뛰어난 증상연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전의 업이란, 설일체유부에서 과거에 체(體) 있다고 하는 증업(曾業) 말하는 것이며,

현재의 업이란, 순세외도(順世外道)에서 일체의 과보는 오직 현재의 업이 얻는 것으로서, 지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相見、名色、心及心所、本末,彼取皆二取攝。彼所熏發,

親能生彼本識上功能,名二取習氣,此顯來世異熟果心及彼相應諸因緣種。

상분과 견분, 정신적인 요소인 명(名), 물질적인 요소인 색(色), 심왕과 심소, 근본 제 8식과 지말의 제 7식  여덟 가지에 의한 인식인 팔취(八取) 모두 2취(二取)에 포함되나니,  

그 팔취(八取)에 훈습되고 능히 그것을 직접 일으키며,

근본식에 있는 공능(功能) 2취(二取)2취 습기(習氣)라고 이름하나니, 이 이취습기(二取習氣)는 미래세의 이숙과(異熟果)의 심왕과  상응법(심소)의 모든 인연종자를 나타내는 것이다.

→ 이취습기(二取習氣)는 명언종자(名言種子)로서 업종자와 다른 것이다.


俱謂業種二取種俱,是疏親緣互相助義,業招生顯,故頌先說。

제19게송에서 ‘함께함의 구(俱)’란, 업종자와 2취종자(二取種子)와 함께함으로써 소소연연(업종자)과 친소연연(2취 종자)으로서 서로 돕는다는 뜻이며,

‘업(業)’은 태어남의 생(生)을 초감하는 작용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게송에서 먼저 말한 것이다.


前異熟者,謂前前生業異熟果。餘異熟者,謂後後生業異熟果。雖二取種受果無窮,而業習氣受果有盡,由異熟果性別難招,等流、增上性同易感。

게송에서 ‘이전의 이숙인 전이숙(前異熟)’이라 한 것은 전전생(前前生)의 업의 이숙과(異熟果)를 말하는 것이며,

‘다른 이숙의 여이숙(餘異熟)’이라는 것은 다음다음 생인 후후생(後後生)의 업의 이숙과를 말하는 것이며,

2취종자(二取種子)는 과보를 받음이 끝이 없지만, 업습기는 과보를 받는 것이 다함이 있으며,

이숙과(異熟果)는 성품이 다른 것에도 있고, 초감하기 어려운 것도 있으며,

등류과(等流果)와 증상과(增上果)는 성품이 같은 것에도 있고 초감하기 쉬운 것도 있기 때문이다.


由感餘生業等種熟,前異熟果受用盡時,復別能生餘異熟果。由斯生死輪轉無窮,何假外緣方得相續?此頌意說由業、二取、生死輪迴皆不離識,心、心所法爲彼性故。

미래의 다른 생을 초감하는 업 등의 종자가 성숙함으로써, 이전의 이숙과를 수용하는 것이 다할 때, 다시 별도로 능히 다른 이숙과를 생겨나게 하나니, 이것에 의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다.

어째서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외부대상인 외연(外緣)을 의지하여 비로소 상속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가?

이 게송의 뜻은 다음과 같으니, 업습기와 이취습기에 의해서 생사에 윤회하고,

업습기와 2취 습기 모두는 식(識)을 떠나지 않으니, 심왕과 심소법을 그 생사의 자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비판에 답변한 것이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8 2

 

有尋等地說生起因是能生因,餘方便攝。此文意說六因中現種是因緣者,皆名生起因,能親生起自類果故,此所餘因皆方便攝。

'유가론'의 유심사지(有尋伺地)에서 말하기를, 생기인은 능생인이고 나머지는 방편인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으니, 여섯 가지 원인인 육인(六因) 중에서 현행과 종자의 인연인 것은 모두 생기인(生起因)이라 이름하는 것으로, 능히 자기 부류의 결과가 직접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며,  

이것의 나머지 원인은 모두 방편인에 포함된다. 

→견인인(牽引因)ㆍ생기인(生起因)ㆍ섭수인(攝受因)ㆍ인발인(引發因)ㆍ정이인(定異因)ㆍ동사인(同事因)의 6(因) 중에서 인연의 종자인 견인인ㆍ생기인ㆍ인발인ㆍ정이인ㆍ동사인 이외의 것, 

 비인연법(非因緣法) 섭수인(攝受因)  나머지 수설인(隨說因)ㆍ관대인(觀待因)ㆍ상위인(相違因)ㆍ불상위인(不相違因) 가리킨다.

 

10인(十因), 수설인(隨說因)ㆍ관대인(觀待因)ㆍ상위인(相違因)ㆍ불상위인(不相違因) 

견인인(牽引因)ㆍ생기인(生起因)ㆍ섭수인(攝受因)ㆍ인발인(引發因)ㆍ정이인(定異因)ㆍ동사인(同事因)

 

非此生起唯屬彼因,餘五因中有因緣故。非唯彼九名所餘因,彼生起因中有非因緣故。

'유가사지론'의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에서 말하는 생기인(生起因)은 오직  원인, 즉 10인 중의 제4 생기인(生起因)에만 속하지는 않으니, 나머지 5 가지 원인 중에도 인연인 것이 있기 때문이며, 

오직  9 가지만을 나머지 원인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아니니, 그 생기인 중에도 인연이 아닌 것이 있기 때문이다.


或菩薩地所說牽引、生起種子卽彼二因,所餘諸因卽彼餘八。

雖二因內有非能生因,而因緣種勝,顯故偏說。雖餘因內有非方便因,而增上者多,顯故偏說。

제2사(第二師)의 견해로써, 혹은 보살지에서 말하는 끌어당기는 종자인 견인종(牽引種)과 생겨나게 하는 종자인 생기종(生起種)이라는 것은  10인 중의 견인인(牽引因)과 생기인(生起因)  가지 원인으로, 나머지 모든 원인이라는 것은   나머지 여덟 가지를 말하며,  

 가지 원인 중에서도 능생인이 아닌 것이 있지만, 인연의 종자가 뛰어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하는 것이며,

나머지 원인 중에서도 방편인이 아닌 것이 있지만, 증상연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하는 것이라 하였다.


有尋等地說生起因,是能生因餘方便者,生起卽是彼生起因,餘因應知卽彼餘九。雖生起中有非因緣種,而去果近,親顯故偏說。雖牽引中亦有因緣種,而去果遠,親隱故不說。餘方便攝,准上應知。

'유가사지론'의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에서 말한 10인(因) 중의 제4 생기인(生起因)인은 심(尋)심소가 있는 지위에서의 생기인은 능생인이고, 나머지는 방편인이라고 설한 것의 의미는 다음과 같으니,

생기인이란  그것의 생기인이고,나머지 원인의 여인(餘因)이란   나머지 아홉 가지 원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생겨나게 하는 종자인 생기종(生起種) 중에서도 인연이 아닌 종자가 있기는 하지만, 결과를 버리는 것이 가깝고, 친인연(親因緣, 명언종자名言種子)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하는 것이며,

끌어당기는 종자인 견인종(牽引種) 중에도 역시 인연인 종자가 있지만, 결과를 버리는 것이 멀고 친인연이 은복되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니, 나머지는 방편인에 포함된다는 것도 위의 내용에 견주어서 알아야 할 것이다.


所說四緣依何處立?復如何攝十因、二因?

論說因緣依種子立,依無閒滅立等無閒,依境界立所緣,依所餘立增上。

▷묻습니다; 위에서 말한 인연(因緣) · 등무간연(等無間緣) · 소연연(所緣緣) · 증상연(增上緣)의 사연(四緣)을 어떤 의지처에 의거해서 건립한 것입니까?

또한 어떻게 10인(因)과 2인(因)에 포함되는 것입니까?

▷답한다; 논서, '유가사지론' 제5권에서 말하기를 “종자의 의지처에 의거해서 인연을 건립하고, 무간멸의 의지처에 의거해서 등무간연을 건립하고, 경계의 의지처에 의거해서 소연연을 건립하고, 나머지 의지처에 의거해서 증상연을 건립한다”고 4연(緣)은 15처(處)에 의거함을 밝히고 있으니,

 4() 15() 의거함과 10인과 2인에 포함되는 관계를 밝힌다.


此中種子卽是三、四、十一、十二、十三、十五,六依處中因緣種攝。雖現四處亦有因緣,而多閒斷,此略不說。

 가운데에서 종자(種子)란,  제3ㆍ제4ㆍ제11ㆍ제12ㆍ제13ㆍ제15의 여섯 가지 의지처 중의 인연종자(因緣種子)에 포함되며,

현행의 제11ㆍ제12ㆍ제13ㆍ제15  가지 의지처에도 역시 인연인 것이 있지만, 많이 단절되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해서 말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오직 종자를 말하고 현행을 말하지 않으므로 3ㆍ제4 의지처를 제외한 나머지  가지 의지처(11ㆍ제12ㆍ제13ㆍ제15)에도 역시 현행의 인연인 것이 있긴 하지만, 많이 단절되므로 여기서는 생략해서 인연에 포함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或彼亦能親辦自果,如外麥等亦立種名。

혹은 그것도 역시 능히 직접 자기 결과를 판별하므로, 외부의 맥(麥, 보리) 등과 같이 역시 종자라는 명칭을 건립한 것이다.

 가지 의지처(11ㆍ제12ㆍ제13ㆍ제15) 중의 현행이 능히 인연이 되는 것도 역시  가운데의 종자라는 말에 포함되는 것으로, 직접 자기 결과를 판별하기 때문이다.


或種子言唯屬第四,親疏、隱顯、取捨如前。

혹은 종자라는 말은 오직 제4의 의지처에만 속하는 것으로, 멀고 가까움, 은(隱, 은복)과 현현이 있으므로 취하고 버리는 것은 앞에서 제2사(第二師)가 말한 바와 같으며,

→제4의 의지처는 15 중의 4성숙된 종자의 의지처인 유윤종자의처(有潤種子依處)이다.

 

言無閒滅境界處者,應知摠顯二緣依處非唯五、六,餘依處中亦有中閒二緣義故。或唯五、六,餘處雖有而少隱故,略不說之。

무간멸(無閒滅)ㆍ경계의 의지처인 경계처(境界處)라는 것은, 마땅히 알아야 하니 총체적으로 등무간연(等無間緣)과 소연연(所緣緣)의  가지 연(緣)의 의지처를 나타내는 것으로, 오직 제5와 제6의지처가 될뿐인 것은 아니며,

앞의 제1사(第一師)의 견해와 같이 나머지 의지처 중에서도 역시 중간의 등무간연ㆍ소연연의  가지 연의 뜻이 있기 때문이며,

제2사(第二師)의 견해와 같이 혹은 오직 제5와 제6의지처뿐이니, 나머지 의지처에도 비록 있긴 하지만 약간 조복되기 때문에 생략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論說
因緣能生因攝,增上緣性卽方便因,中間二緣攝受因攝。雖方便內具後三緣,而增上多,故此偏說。餘因亦有中閒二緣,然攝受中顯故偏說。初能生攝,進退如前。

논서, '유가사지론' 제38권에서 말하기를 “인연은 능생인에 포함되며,

증상연의 속성은 곧 방편인에 포함되며,

등무간연(等無間緣) · 소연연(所緣緣)은 섭수인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방편인 속에는 뒷부분의 세 가지 연(緣)을 갖추었지만 증상연이 많기 때문에 이것에 비중을 두어서 말한 것이며,

나머지 원인에도 역시 중간의 두 가지 연(緣)이 있지만, 섭수인 중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한 것이며,

첫 번째의 인연을 능생인에 포함시키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진퇴(進退)는 앞에서와 같다.

앞에서 인용한 '유가사지론'의 보살지에서 밝힌 것에 의거해서, 만약 공통적으로 6() 취한다면 나아감의 진(進)이라 하고, 만약 오직  가지 인만을 취한다면 물러남의 퇴(退)라고 이름한다. 

또한 6인을 취하는 중에서 오직 종자만을 취한다면, 능생인(能生因) 현행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아니므로 물러남의 퇴(退)라고 하며,

만약 아울러 현행을 취한다면, 그것을 나아감의 진(進)이라 한다. 

또한 '유가사지론'의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문장에 의해 만약 공통적으로 6인을 취한다면, 나아감의 진(進)이라 이름하고, 오직 하나의 원인만을 취하면 물러남의 퇴(退)라고 말한다.


所說因、緣必應有果,此果有幾?依何處得?

果有五種:一者異熟。謂有漏善及不善法,所招自相續異熟生無記。二者等流。謂習善等所引同類,或似先業後果隨轉。三者離繫。謂無漏道斷障所證善無爲法。四者士用。謂諸作者假諸作具所辦事業。五者增上。謂除前四餘所得果。

▷묻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10인(因)과 4연(緣)은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이 결과에 몇 가지가 있으며, 어떤 의지처에 의거해서 얻는 것입니까

▷답한다; 결과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숙과(異熟果)이니, 유루의 선ㆍ불선의 법에 초감된 자기 상속의 이숙생(異熟生)의 무기를 말하며,

둘째는 등류과(等流果)이니, 선 등을 익혀서 이끌어진 같은 부류의 인동류(引同類)와 혹은 이전의 선업(先業)과 비슷하게 이후의 결과가 따라서 전전하는 것을 말하며,

셋째는 이계과(離繫果)이니, 무루도가 장애를 끊고 증득한 선의 무위법을 말하며,

넷째는 사용과(士用果)이니, 모든 작용의 주체가 모든 만드는 도구를 의지하여 판별한 사업을 말하며,

다섯째는 증상과(增上果)이니, 앞의 네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얻어진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4() 15() 결과를 얻는 것을 밝힌다.

 

'瑜伽'等說習氣依處得異熟果,隨順依處得等流果,眞見依處得離繫果,士用依處得士用果,所餘依處得增上果。

'유가사지론' 제 5권 등에서 말하기를 “습기의 의지처인 습기의(習氣依)는 이숙과(異熟果)를 얻으며,

수순의 의지처인 수순의(隨順依)는 등류과(等流果)를 얻으며,

진실한 견해의 의지처인 진견의(眞見依)는 이계과(離繫果)를 얻으며,

주체의 작용의 의지처인 사용의(士用依)는 사용과(士用果)를 얻으며,

나머지 의지처는 증상과(增上果)를 얻는다”고 하였다.


習氣處言,顯諸依處感,異熟果一切功能。

제1사(第一師)의 견해로써 습기의 의지처인 습기의(習氣依)라는 말은 모든 의지처가 이숙과(異熟果)를 초감하는 모든 세력을 나타낸다고 하였으며,

이숙과(異熟果) 열다섯 가지 의지처 중에 3습기의 의지처, 4성숙된 종자의 의지처, 12차별된 세력의 의지처, 15장애하지 않는 것의 의지처 등으로 다섯 가지로써 얻거나, 또는 이외에 8작용의 의지처를 첨가하여 여섯 가지 의지처로써 얻는다고도 말한다.

 

隨順處言,顯諸依處引等流果一切功能。

수순의 의지처 인 수순의(隨順依)란, 모든 의지처가 등류과(等流果)를 이끄는 모든 세력을 나타내며,

등류과(等流果) 습기ㆍ성숙된 종자ㆍ진실한 견해ㆍ수순ㆍ차별된 세력ㆍ화합ㆍ장애하지 않는 것의 의지처  일곱 가지 의지처로써 얻는다. 또는 이외에 주체의 작용의 의지처를 첨가하여 여덟 가지 의지처로써 얻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여기에 작용의 의지처를 덧붙여서 아홉 가지 의지처로써 얻는다고 말한다.

 

眞見處言,顯諸依處證離繫果一切功能。

진실한 견해의 의지처인 진견의(眞見依)란, 모든 의지처가 이계과(離繫果)를 증득하는 모든 세력을 나타낸다.

이계과(離繫果) 진실한 견해ㆍ수순ㆍ차별된 세력ㆍ화합ㆍ장애하지 않는 것의 의지처  다섯 가지 의지처로써 얻는다. 또는 여기에 주체의 작용인 사용(士用)ㆍ작용의 의지처의 둘을 첨가하여 일곱 가지 의지처로써 얻는다고 말한다.

 

士用處言,顯諸依處招士用果一切功能。

주체의 작용의 의지처인 사용과(士用果)란, 모든 의지처가 사용과(士用果)를 초감하는 모든 세력을 나타내며,

사용과(士用果) 감각작용ㆍ주체의 작용ㆍ작용ㆍ화합ㆍ장애하지 않는 것의 의지처  다섯 가지 의지처로써 얻는다. 또는 여기에 다시 습기ㆍ성숙된 종자ㆍ무간멸ㆍ진실한 견해ㆍ수순ㆍ차별된 세력의 의지처  여섯 가지를 덧붙여서 열한 가지 의지처로써 얻는다고 말한다.

 

所餘處言,顯諸依處得增上果一切功能。

나머지 의지처라는 말은 모든 의지처가 증상과(增上果)를 얻는 모든 나타내며, 

증상과(增上果) 언어ㆍ경계ㆍ감각기관ㆍ장애의 의지처 등의  가지 의지처와 나머지 열한 가지의 일부분으로써 얻는다.

 

不爾,便應太寬太狹。

그렇지 않다면 문득 크게 관대하거나 크게 협소한 것이어야 한다.

만약 위에서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면, 예를 들면 습기라는 것을 오직 3습기의 의지처에만 배대하고, 성숙된 종자의 의지처  나머지  가지 의지처에 둔다든가, 3의지처 중에서 () 아닌 것까지도 역시 이숙과를 얻을  있다고 말한다면, 관대함의 관(寬)의 과실 되며,

또한 나머지 성숙된 종자의 의지처   가지 중에서 업종자도 있는데, 그것이 이숙과를 얻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협소함의 협(狹)이라는 과실이 있게 된다.


或習氣者唯屬第三,雖異熟因餘處亦有,此處亦有非異熟因,而異熟因去果相遠,習氣亦爾,故此偏說。

제2사(第二師)의 견해로써, 혹 습기는 오직 제3의 의지처에만 속하고 이숙인은 다른 의지처에도 역시 있으나, 이 의지처에도 역시 이숙인이 아닌 것이 있지만, 이숙인은 결과를 버리는 양상이 멀고, 습기도 역시 그러하므로, 따라서 이것에 비중을 두어 말하는 것이다.

치우쳐서 습기가 이숙과를 얻는다고만 말한 것이다.


隨順唯屬第十一處,雖等流果餘處亦得,

수순의(隨順依)는 오직 제11의 의지처에만 속하며, 등류과를 나머지 다른 의지처로써도 역시 얻을 수 있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등류과를 얻을  있는 일곱 가지 혹은 여덟 가지 의지처 중에서 수순의를 제외한 나머지를 가리킨다.

 

此處,亦得非等流果,而此因招勝行相顯,隨順亦爾,故偏說之。

 의지처로써도 역시 등류과가 아닌 것을 얻을  있지만,  원인은 뛰어난 법을 초감하는 작용이 두드러지고 수순도 역시 그러하므로, 따라서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한 것이다.

 

眞見處言唯詮第十,雖證離繫餘處亦能,此處亦能得非離繫,而此證離繫相顯故偏說。

진실한 견해의 의지처인 진견의(眞見依)란, 오직 제10의 의지처만을 말하는 것으로, 이계과(離繫果)를 증득하는 것이 나머지 다른 의지처로써도 역시 가능하고, 이 의지처로써도 역시 능히 이계과가 아닌 것을 얻을 수 있지만,

이것이 이계과를 증득하는 모습이 두드러지므로, 따라서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한 것이다.

→다른 의지처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계과(離繫果) 얻을  있는 다섯 가지 혹은 일곱 가지 의지처 중에서 진실한 견해의 의지처를 제외한 나머지  가지 혹은 여섯 가지를 가리킨다.


士用處言唯詮第九,雖士用果餘處亦招,此處亦能招增上等,而名相顯,是故偏說。所餘唯屬餘十一處,雖十一處亦得餘果,招增上果餘處亦能,而此十一多招增上,餘已顯餘,故此偏說。

주체의 작용의 의지처인 사용의(士用依)라는 말은 오직 제9의 의지처만을 말하는 것으로, 사용과(士用果)는 다른 의지처로써도 역시 초감되고 또한  의지처로써도 역시 증상과 등을 초감할  있지만, 명칭도 모습도 두드러지므로, 따라서 이에 비중을 두어 말하는 것이다.

나머지 다른 의지처란 앞의 네 가지 결과의 의지처를 제외한 나머지의 11 가지 의지처에만 속하며,

11 가지 의지처로써도 역시 나머지 다른 결과, 즉 5과(果) 중에서 증상과를 제외한 나머지 4과(果)를 얻으며,

증상과를 초감하는 것은 다른 의지처로써도 역시 가능하지만,  11 가지가 증상과를 많이 초감하고, 나머지로써도 이미 나머지 결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11 가지에 비중을 두어 말하는 것이다.

나머지  가지 의지처로써 나머지  가지 결과를 얻는 것을 이미 나타냈기 때문에 치우쳐 11 가지 의지처로써 증상과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 10인(因)과 4연(緣)의 많고 적음에서 결과를 얻는 것을 밝힌다.
如是卽說此五果中,若異熟果,牽引、生起、定異、同事、不相違因增上緣得

이상과 같이 말한다면,  5과 중에서 이숙과(異熟果)는 견인인(牽引因)ㆍ생기인(生起因)정이인(定異因)ㆍ동사인(同事因)ㆍ불상위인(不相違因)과 증상연(增上緣)으로써 얻으며,

 

若等流果,牽引、生起、攝受、引發、定異、同事、不相違因,初後緣得。

등류과(等流果)는 견인인(牽引因)ㆍ생기인(生起因)ㆍ섭수인(攝受因)ㆍ인발인(引發因)ㆍ정이인(定異因)ㆍ동사인(同事因)ㆍ불상위인(不相違因)과 초연(初緣, 인연)ㆍ후연(後緣, 증상연)으로써 얻으며,

 

若離繫果,攝受、引發、定異、同事、不相違因,增上緣得。

이계과(離繫果)는 섭수인(攝受因)ㆍ인발인(引發因)ㆍ정이인(定異因)ㆍ동사인(同事因)ㆍ불상위인(不相違因)과 증상연(增上緣)으로써 얻는다.

 

若士用果,有義觀待,攝受、同事、不相違因,增上緣得。有義觀待,牽引、生起、攝受、引發、定異、同事、不相違因,除所緣緣餘三緣得。若增上果,十因、四緣一切容得。傍論已了,應辯正論。

사용과(士用果)에 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으니,

첫 번째의 견해는 관대인ㆍ섭수인ㆍ동사인ㆍ불상위인과 증상연으로써 얻는다고 하는 것이며,

두 번째의 견해는 관대인ㆍ견인인ㆍ생기인ㆍ섭수인ㆍ인발인ㆍ정이인ㆍ동사인ㆍ불상위인 그리고 소연연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연(緣)으로써 얻는다고 하였다.

증상과는 10인과 4연으로써 일체를 얻는 것이 인정되니,

15 가지 의지처에 의거해서 4연을 설명한, 방론(傍論)을 이미 요별하였으니 마땅히 정론을 판별하리라.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8 1

 

如是四緣依十五處義差別故,立爲十因。云何此依十五處立?

이상과 같은 4연(四緣)을 15처(處)에 의거하면 뜻이 다른 까닭에 10인(十因)을 건립하나니,  

이 10인(十因)을 15처에 의거해서 어떻게 건립하는 것인가?

→4연(緣)의 뜻을 세분하여 자세하게 10인(因)과 15의처설(依處說)을 건립하며,

이하는 15처(處)에 의거하여 10인(因)을 판별한, 십오의처(十五依處)이다.

 

10인(十因), 수설인(隨說因)ㆍ관대인(觀待因)ㆍ견인인(牽引因)ㆍ생기인(生起因)ㆍ섭수인(攝受因)ㆍ인발인(引發因)ㆍ정이인(定異因)ㆍ동사인(同事因)ㆍ상위인(相違因)ㆍ불상위인(不相違因).

수설인(隨說因)은 언어를 말하며, 보고 듣고 깨달아 앎의 견문각지(見聞覺知)에 따라 그 뜻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원인에 대하여 '유가사지론' 제5권ㆍ제38권과 '현양성교론' 제18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 등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一語依處。謂法名想所起語性,

제1은 언어의 의지처인 어의처(語依處)이니, 법(法)ㆍ명(名)ㆍ상(想) 심소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자성을 말하나니,  

→의지처인 의처(依處)는 원인과 별개의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언어의 의지처인 어의처(語依處)는 언어,  의지처로서 지업석(持業釋)의 득명(得名)이다. 아래의 14 가지 의지처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해석해야 한다.

 

卽依此處立隨說因,謂依此語隨見聞等說諸義故,此卽能說爲所說因。

  의지처에 의거해서 수설인(隨說因)을 건립하나니, 이 언어로 표현하는 주체의 원인인 능전인(能詮因)의 언어에 의거해서 보고 듣는  등을 따라 언어로 표현되는, 즉 표현의 대상의 결과인 여러 소전과(所詮果) 말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능전(能詮)을 소전(所詮)의 원인으로 삼는 것이다.

표현의 주체인 능설(能說)인 언어를 표현대상인 소설(所說)인 일체법의 원인으로 삼는다.

 

有論說此是名、想、見,由如名字取相執著隨起說故,

어떤 논서에서 말하기를 “이것은 명(名) 상(想)심소  견분으로, 명자(名字)와 같이 상(相)을 취하여 집착하는 까닭에 따라서 언어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 4에서 말한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수설인(隨說因) 명칭ㆍ상() 심소ㆍ견분의  가지 법을 체(體) 삼으며, () 견분은 능전(能詮) 명칭과 같이 대상의 모습을 취하고 집착을 일으키고,  

()심소는 견분에 의해 상(相, 상분) 취하여 집착하는 것이니, 명칭과 같이 일어나는 상분을 취하고 집착하여 따라서 언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가지 법으로써 원인으로 삼아서 생겨난 언어는 그것의 결과인 것이다.

 

若依彼說,便顯此因是語依處。

만약  설에 의거해서 말한다면, 곧  원인인 명(名, 명칭)ㆍ상(想) 심소ㆍ견분(見分)의 세 가지 법은 언어의 의지처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二領受依處。謂所觀待能所受性,卽依此處立觀待因。謂觀待此,令彼諸事或生或住或成或得,此是彼觀待因。

제2는 감수작용의 의지처인 영수의처(領受依處)이니, 관대(觀待)하는 감수작용의 주체ㆍ대상의 자성을 말하는 것으로, 곧  의지처에 의거해서 관대인(觀待因)을 건립하는 것이다. 

이것에 관대하여  모든 사물을 생(生)겨나게 하거나 머물(住)게 하거나 이루어지(成)게 하거나 얻(得)게 하는 사사(四事)를 말하며, 이것이 그것의 관대인(觀待因)인 것이다. 

 

관대인(觀待因), 몸과 마음이 즐거움을 구하여 수용할 때, 그 얻은 것에 대하여 구하는 원인이 된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괴로움은 즐거움의 관대인이고, 기갈(飢渴)은 음식의 관대인이 된다.


三習氣依處。謂內外種未成熟位,卽依此處立牽引因,謂能牽引遠自果故。

제3은 습기의 의지처인 습기의처(習氣依處)이니, 내부ㆍ외부의 종자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미성숙위(未成熟位) 말하는 것으로, 곧  의지처에 의거해서 견인인(牽引因)을 건립하나니, 능히 먼곳 자기 결과인 자과(自果)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견인인(牽引因)은 습기(習氣)를 말하며, 일체법은 보고 듣고 깨달아 알 때마다 아뢰야식에 훈습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장차 연을 만나면 온갖 현상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것이 아뢰야식 중에서 아직 성숙되지 않아서 현실에서 그것의 특수한 결과를 끌어오지 않았을 때에도 그 자체에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 결정적인 속성인 정성(定性)이 있기 때문에 그 종자를 견인인(牽引因)이라 한다.


四有潤種子依處。謂內外種已成熟位,卽依此處立生起因,謂能生起近自果故。

제4는 성숙된 종자의 의지처인 유윤종자의처(有潤種子依處)이니, 내부와 외부의 종자가 이미 성숙한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곧  의지처에 의거해서 생기인(生起因)을 건립하나니, 능히 가까운 자기의 결과인 자과(自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종자가 진정한 자기 결과인 자과(自果)를 낼 때의 종자를 생기인(生起因)이라 한다.


五無閒滅依處。謂心心所等無閒緣。

제5는 무간멸의 의지처인 무간멸의처(無間滅依處)이니, 심왕과 심소법이 결과가 되는 심왕ㆍ심소의 등무간연을 말하며, 

 

六境界依處。謂心、心所所緣緣。

제6은 경계의 의지처인 경계의처(境界依處)이니, 심왕ㆍ심소의 소연연(所緣緣)을 말하며,

→체(體)는 일체법에 통하고, 결과는 오직 심왕ㆍ심소법이며, 유루ㆍ무루는 원인ㆍ결과에 모두 통한다.

 

七根依處。謂心、心所所依六根。

제7은 감각기관의 의지처인 근본처(根本處)이니, 심왕ㆍ심소의 의지처인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육근(六根)을 말한다.

→8식과 5근을 체로 삼으며, 결과는 오직 심왕과 심소이다.


八作用依處。謂於所作業、作具、作用,卽除種子餘助現緣。

제8은 작용의 의지처인 작용의처(作用依處)이니, 지은 업인 소작업(所作業)에 있어서 만드는 도구의 작용으로, 즉 종자를 제외한 나머지 돕는 현연(現然)으로, 소소연연(疎所緣緣)을 말하는 것이며,

→친인연(親因緣)의 종자생종자ㆍ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ㆍ현행훈종자의 관계 이외의 다른 보조연인 조연(助緣)을 만드는 도구인 작구(作具)작용의 의지처이다.

 

九士用依處。謂於所作業、作者、作用,卽除種子餘作現緣。

제9는 주체의 작용의 의지처인 사용의처(士用依處)이니, 소작업(所作業) 대해서 짓는 주체의 작용으로, 곧 종자를 제외한 나머지 짓는 현연(現然)으로, 친소연연(親所緣緣)이며,

→앞에서 말한 친인연(親因緣)의 관계 이외의 다른 보조연인 조연(助緣)을 짓는 주체의 작용이다.

 

十眞實見依處。謂無漏見,除引自種於無漏法能助、引、證。

제10은 진실한 견해인 일체 무루 정견(正見)의 의지처인 진실견의처(眞實見依處)이니, 무루의 견해가 자기 종자를 이끄는 것을 제외한 무루법을 능히 돕고 이끌고 증득하는 것을 말하며,

→무루의 정견이 자기 종자를 이끌어 내는 작용은 인연에 속하기 때문에 이것은 제외한,  밖의 무루유위(無漏有爲)의 구생법(俱生法)을 돕고 또한 무루무위법을 증득하는 작용을 말한다.

 

 

摠依此六立攝受因,謂攝受五辦有漏法,具攝受六辦無漏故。

총체적으로  여섯 가지에 의거해서 섭수인(攝受因)을 건립하나니,

여섯 가지 중에서 유루(有漏)에는 통하지 않는 제6 진실한 견해의 의지처인 진실견의처(眞實見依處)를 제외한, 다섯 가지에 섭수되어 유루법을 판별하고, 모두 여섯 가지에 섭수되어 무루를 판별하기 때문이다.

 

섭수인(攝受因)은 유루법ㆍ무루법을 성립하는 데 섭수하는 것으로서, 무간멸(無間滅)ㆍ경계(境界)ㆍ근(根)ㆍ작용ㆍ사용(士用)ㆍ진실견(眞實見)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十一隨順依處。謂無記、染、善現種諸行,能隨順同類勝品

제11은 수순의 의지처인 수순의처(隨順依處)이니, 무기ㆍ잡염ㆍ선의 현행ㆍ종자의 제행 능히 같은 종류와 뛰어난 품류인 승품(勝品)의 

→뛰어난 품류인 승품(勝品)이라  것은, 자기와 같은 부류가 하품(下品)의 원인이 되는 것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다.

 

諸法,

일체법에 수순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욕계의 법은 3계ㆍ무루법의 원인이 되고, 색계의 법은 색계ㆍ무색계ㆍ무루법의 원인이 된다. 

무색계의 법은 무색계ㆍ무루법의 원인이 되고, 무루법은 무루법의 원인이 된다.

 

卽依此處立引發因,謂能引起同類勝行及能引得無爲法故。

  의지처에 의거해서 인발인(引發因)을 건립하나니, 능히 같은 종류의 뛰어난 법을 이끌어 내고 무위법을 이끌어 증득하기 때문이다.

→선ㆍ악ㆍ무기의 3성(性)의 유루법  무루법의 현행ㆍ종자는 같은 부류에서 뛰어난 법인 승품법(勝品法)에 수순하여 능히 이것을 이끌어 일으키고, 또한 무루법은 무위법을 이끌어 얻는다. 그러므로 이끌어 내는 원인인 인발인(引發因)이라는 명칭을 건립한 것이다.

 

아뢰야식 중의 종자ㆍ현행이 선ㆍ악ㆍ무기의 3성(性)을 갖추어서 자기와 같은 부류나 자기 이상의 뛰어난 세력이 있는 모든 법을 이끌어 내는 것을 인발인(引發因)이라고 한다.


十二差別功能依處。謂有爲法各於自果有能起證差別勢力,卽依此處立定異因,謂各能生自界等果及各能得自乘果故。

제12는 차별된 세력의 의지처인 차별공능의처(差別功能依處)이니, 유위법이 각각 자기 결과인 자과(自果)에 대해서 능히 일으키고 증득하는 차별의 세력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곧  의지처에 의거해서 정이인(定異因)을 건립하나니,

각각 능히 자기 세계인 자계(自界) 등의 결과를 일으키고, 각각 능히 자기 교법의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유위법은 각각 자기 결과에 대해서 이끌어 내는 인생(引生)의 힘이 있다. 

자계(自界)의 법은 자계법(自界法)의 원인이 되고, 자계 중에서 자성(自性)은 자성의 원인이 된다.

자성 중에서 색법은 색법에게 원인이 되고, 색법 중에서 내부의 색법인 오근(五根)은 내부 색법의 원인이 되며, 외부 색법은 외부 색법에게 원인이 되는 등, 모두 각각의 결과를 이끄는 세력의 공능(功能)의 차별이 있다. 

또한 선업(善業)이 인천(人天)의 제8식을 이끌고, 악업은 악취(惡趣)의 제8식을 이끄는  등도 그에 상당한 결과를 이끌고 상당하지 않은 결과는 이끌지 않으며, 또한 무루유위법이 무위진여(無爲眞如)를 이끌어 증득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정이인(定異因)은 정별인(定別因)이라고도 하며, 제법의 자성공능(自性功能)의 차이성을 말한다. 곧 선인(善因)은 선과(善果)를 악인(惡因)은 악과(惡果)를 심법(心法)은 심법을 색법(色法)은 색법을, 이와 같이 각자 다른(他) 것과 다르게(異) 결정된 자성이 자성의 원인인 것을 말한다.


十三和合依處。謂從領受乃至差別功能依處,於所生、住、成、得果中有和合力,

제13은 화합의 의지처인 화합의처(和合依處)이니, 감각작용(受)의 의지처로부터 나아가 차별된 세력인 공능(功能)의 의지처에 이르기까지, 생(生)겨나고 머물(住)고 이루어지(成)고 얻(得)어지는 사사(四事)의 결과 중에서 화합의 세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

→앞의 여섯 가지 원인인 관대인(觀待因)ㆍ견인인(牽引因)ㆍ생기인(生起因)ㆍ섭수인(攝受因)ㆍ인발인(引發因)ㆍ정이인(定異因)을 자성으로 삼는다. 제1의 수설인(隨說因)은 성글고 먼 소원(疎遠)하기 때문에 취하지 않는 것이다.

 

卽依此處立同事因,謂從觀待乃至定異皆同生等一事業故。

 

  의지처에 의거해서 동사인(同事因)을 건립하나니, 관대인(觀待因)에서부터 정이인(定異因)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로 생겨남 등에 있어서 하나의 일사(一事)가 있기 때문이다.

 

제1수설인(隨說因)을 제외한 제2관대인(觀待因)에서 제7정이인(定異因)까지의 여러 원인과 같이, 결과를 끌어 오고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 화합하여 일을 함께하는 원인을 동사인(同事因)이라 한다.


十四障㝵依處。謂於生、住、成、得事中能障㝵法,

제14는 장애의 의지처인 장애의처(障礙依處)이니, 생겨나고 머물고 이루어지고 얻어지는 사물(결과)에 있어서 능히 장애하는 법을 말하는 것으로,  

→장애(障碍)는 증상연(增上緣) 중에서 거슬리는 위연(違緣)과 같은 의미.

 

卽依此處立相違因,謂彼能違生等事故。

  의지처에 의거해서 상위인(相違因)을 건립하나니, 그것이 능히 생겨남 등의 사사(四事) 거스르기 때문이다.

→상위인(相違因)은 결과를 내는 것과 결과를 내는 것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十五不障㝵依處。謂於生、住、成、得事中不障㝵法,

제15는 장애하지 않는 것의 의지처인 불장애의처(不障礙依處)이니, 생(生)겨나고 머물(住)고 이루어지(成)고 얻(得)어지는  사물에 있어서 장애하지 않는 법을 말하는 것으로,

→증상연에 부득증상연(不得增上緣)을 건립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卽依此處立不相違因,謂彼不違生等事故。

  의지처에 의거해서 불상위인(不相違因)을 건립하나니, 그것이 생겨남 등의 의 사사(四事)를 장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상위인(不相違因)은 결과를 내고 결과를 이루는 데 수순하여 이롭게하는, 순익(順益)을 말한다.


如是十因二因所攝:一能生,二方便。菩薩地說牽引種子生起種子名能生因,所餘諸因方便因攝。

먼저 제1사(第一師)의 견해로써, 이상과 같은 10인(十因)은  가지 원인에 포함되나니, 하나는 능생인(能生因)이고 다른 하나는 방편인(方便因)이다. 

'유가사지론' 제 38권의 보살지에서 말하기를 “끌어당기는 종자인 견인종(牽引種)과 생겨나게 하는 종자인 생기종(生起種)을 능생인(能生因)이라 이름하며, 나머지 모든 원인은 방편인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此說牽引、生起、引發、定異、同事不相違中諸因緣種未成熟位名牽引種,已成熟位名生起種,彼六因中諸因緣種皆攝在此二位中故。

 말씀은 견인인(牽引因)ㆍ생기인(生起因)ㆍ인발인(引發因ㆍ정이인(定異因)ㆍ동사인(同事因)ㆍ불상위인(不相違因) 중의 모든 인연의 종자인 인종(引種)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단계를 견인종(牽引種)이라고 이름하며,

이미 성숙한 지위에서는 생기종(生起種)이라고 이름하며, 그 여섯 가지 원인 중의 모든 인연의 종자 모두를 아직 성숙하지 않은 미숙위(未熟位)와 이미 성숙한 이숙위(已熟位)의 단계에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雖有現起是能生因,如四因中生自種者,而多間斷,此略不說。

현행하는 것이 능히 생겨나게 하는 원인이고,  가지 원인 중에서 자기 종자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것이 있지만, 많이 단절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보살지를 생략하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현행(現行)이 종자를 훈습하여 성숙시키는 것도 역시 인연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어째서 포함시키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번째 이유로써, 6인(因)  인발인(引發因)   가지 원인 중에서 현행이 종자를 생겨나게 함을 인연으로 삼는  같은 것은 단절됨이 많기 때문에 종자의 속성이 항상 상속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므로 '유가사지론'의 보살지(菩薩地)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或親辦果亦立種名,如說現行穀、麥等種。

혹은 직접 결과를 판별하므로 역시 종자라는 명칭을 건립하나니, 현행한 맥(麥, 보리) 등의 곡식의 종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두 번째 이유로서 현행이 직접 결과를 판별하므로 종자라 이름하고, 생겨나게 하는 종자인 생기종(生起種)에 포함시킨다고 답변하는 것이다.

 

所餘因謂初、二、五、九,及六因中非因緣法,皆是生熟因緣種餘,故摠說爲方便因攝。

나머지 원인은 제1ㆍ제2ㆍ제5ㆍ제9의 원인  여섯 가지 원인 중의 인연이 아닌 법을 말하는 것으로, 모두 생겨나고 성숙함의 생숙인연(生熟因緣)의 종자의 나머지이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방편인에 포함시킨 것이다.

→나머지 원인을 방편인(方便因)에 포함시킨 것을 밝힌 것이다.


非此二種唯屬彼二因,餘四因中有因緣種故。非唯彼八名所餘因,彼二因亦有非因緣種故。

'유가사지론'의 보살지에서 말한, 끌어당기는 종자인 견인종(牽引種)과 생겨나게 하는 종자인 생기종(生起種)의 두 가지 종자는 10인(因) 중에서 오직 견인인(牽引因)과 생기인(生起因)에는 속하지는 않으니, 나머지 네 가지 원인 중에도 인연종(因緣種)이 있기 때문이다.

10인 중에서 견인인과 생기인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가지만을 나어지 원인인 여인(餘因)이라 이름하지는 않나니, 견인인과 생기인의 두 가지 원인에도 역시 인연이 아닌 종자가 있기 때문이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제7  10

 

有義五識有漏、無漏自類互作等無閒緣,未成佛時容互起故。

有義無漏、有漏後起,非無漏後容起有漏,無漏五識非佛無故,彼五色根定有漏故,是異熟識相分攝故,有漏不共必俱同境,根發無漏識理不相應故,此二於境明昧異故。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5식(識)도 유루와 무루의 자기 부류인 자류(自類)가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으로, 아직 성불하지 않았을 때에는 서로 일으키는 것이 인정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로는, 무루는 유루 이후에 일어나는 것으로, 무루 이후에 유루를 일으키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며,

무루의 5식은 부처님이 아니면 없기 때문이고,

성소작지(成所作智) 오직 불과(佛果)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섯 감각기관이 반드시 유루이기 때문이며, 이것은 이숙식의 상분에 포함되기 때문이며,  

→어째서 성소작지(成所作智) 오직 불과(佛果)에서만 일어나는 것인가!  5식의 의지처인 5() 반드시 유루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유루인가! 이것은 이숙식의 상분에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루로써 공통되지 않으며,

무루의 감각기관을 가려낸, 간(簡)

 

반드시 함께하며,

유루의 8식을 가려낸 것으로, 이것은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무루식의 의지처도 되므로 제외하는 것이다.

 

대상을 같이하며

등무간연(等無間緣)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등무간연의 감각기관은 이전 찰나와 이후 찰나에 생겨나므로 유루에 의지할  있기 때문이다.

 

감각기관이 무루의식을 일으킨다는 것에 바른 논리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니,  

  가지는 대상에 대해서 밝고 어두움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7식을 가려낸 것으로, 7식도 6식의 의지처인 소의(所依) 되기 때문이다.


三所緣緣。謂若有法是帶己相,心或相應所慮所託。此體有二:一親,二疏。若與能緣體不相離,是見分等內所慮託,應知彼是親所緣緣。若與能緣體雖相離,爲質能起內所慮託,應知彼是疏所緣緣。親所緣緣能緣皆有,離內所慮託必不生故。疏所緣緣能緣或有,離外所慮託亦得生故。

셋째는 소연연(所緣緣)이니, 무루의 밝은 명식(明識)과 유루의 어두운 감각기관인 매근(昧根)으로 존재하는 법인 유법(有法)이 자기 모습을 띠는 심왕, 혹은 상응법(심소)의 

가유(假有) 실유(實有)로서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을 말하며, 변계소집성을 가려낸다.

 

사려된 것의 소려(所慮, 소연所緣)과 의지된 것의 소탁(所託, 연緣)을 말하는 것으로,

의탁된 것의 소탁(所託)이란  () 가리킨다.

 

이것의 자체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친소연연(親所緣緣)이고, 다른 하나는 소소연연(疎所緣緣)이다.

만약 능연(能緣)과 자체가 서로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서 견분  내부의 사려된 것과 의탁된 것이라면, 그것은 친소연연(親所緣緣)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며,

만약 능연과 자체가 서로 떨어지긴 하지만, 본질로 삼아 능히 내부의 사려된 것과 의탁된 것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알라. 그것은 소소연연(疎所緣緣)이다. 

친소연연은 능연에 모두 있으니, 내부의 사려된 것과 의탁된 것을 떠나서는 반드시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며,

소소연연은 능연에 혹은 있기도 한 것이니, 외부의 사려된 것과 의탁된 것을 떠나서도 생겨날  있기 때문이다.

소소연연(疎所緣緣) 능연의 법에 혹은 있기도 하고 혹은 없기도 한 것은, 이것은 마음 밖의 법이기 때문이니,  

예를 들면, 실아(實我)에 집착하는  등은 본질이 없지만  법을 떠나서도 역시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第八心品,有義唯有親所緣緣,隨業、因力任運變故。有義亦定有疏所緣緣,要仗他變質自方變故。

제8식의 심품(心品)에 관하여 먼저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오직 친소연연만이 있으며, 업과 종자(因)의 세력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현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8() 있어서 친소연연과 소소연연의 유무(有無) 판별한 것이다.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친소연연이 있고, 역시 소소연연도 반드시 있으니, 다른 사람의 제8식이 변현한 것에 의지하여 본질로서 스스로 바야흐로 변현하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有義二說俱不應理,自他身土可互受用,他所變者爲自質故,自種於他無受用理,他變爲此不應理故。

非諸有情種皆等故,應說此品疏所緣緣一切位中有無不定。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위의  견해는 모두 바른 논리가 아닌 것으로, 자신ㆍ타인의 신체ㆍ국토를 서로 수용할  있고, 다른 사람의 제8식이 전변한 것을 자신의 본질로 삼기 때문이며, 

1(第一師) 견해를 논파하였다.

 

자기 종자를 타인에 대해서 수용하는 논리없이, 타인이 이것을 변현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며, 모든 유정은 종자가 모두 평등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第二師) 견해를 논파하였다.

 

그러므로 마땅히,  심품(心品)의 소소연연은 일체의 지위 중에서 있고 없음이 일정하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第七心品,未轉依位是俱生故,必仗外質,故亦定有疏所緣緣,已轉依位此非定有,緣眞如等無外質故。

제7식의 심품(心品)은 전의(轉依)를 이루지 못한 지위에서는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의 본질에 의지하므로, 따라서 반드시 소소연연이 있으며,

이미 전의를 이룬 지위에서는 이것이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니, 진여 등을 반연함에 있어서는 외부의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第六心品,行相猛利,於一切位能自在轉,所仗外質或有或無,疏所緣緣有無不定。

제6식의 심품(心品)은 인식작용이 강하고 예리하여 일체의 지위에서 능히 자재하게 전전하며, 의지되는 외부의 본질이 혹은 있고 혹은 없기도 한 것으로, 소소연연이 있고 없음이 일정하지 않으며, 


前五心品未轉依位麤鈍劣故,必仗外質,故亦定有疏所緣緣。已轉依位此非定有,緣過、未等無外質故。

전5식(前五識)의 심품(心品)은 전의를 이루지 못한 지위에서는 두드러지고 둔하며 미약하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의 본질에 의지하므로, 따라서 친소연연이 있고, 역시 소소연연도 반드시 있다. 

이미 전의를 이룬 지위에서는 이것이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니, 과거와 미래 등을 반연함에 있어서는 외부의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四增上緣。謂若有法有勝勢用,能於餘法或順或違。雖前三緣亦是增上,而今第四除彼取餘,爲顯諸緣差別相故。此順違用於四處轉,生住成得四事別故。

넷째는 증상연(增上緣)이니, 만약 존재하는 법인 유법(有法)이 뛰어난 세력이 있어서 능히 다른 법에 대해서 혹은 수순하고 혹은 거슬러서 위역(違逆)하는 것을 말한다. 

앞의  가지 연(緣)도 증상(增上)이지만, 이  번째는 그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취하나니, 모든 연(緣)의 차별된 상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수순과 거스름의 작용은  곳에서 전전하나니, 생(生), 주(住 머무름), 성(成, 이룸), 득(得, 얻음)의 사사(四事)가 다르기 때문이다.


然增上用隨事雖多,而勝顯者唯二十二,應知卽是二十二根。

그러나 증상연의 작용은 일에 따라서 많지만, 뛰어나게 나타나는 것은 오직 22 가지이니,  이십이근(二十二根)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법 중에서 작용이 가장 뛰어난 스물두 가지 법을 선택하여 22근(根)이라고 이름한다. 여기서 근(根)은 최승(最勝)ㆍ자재ㆍ증상(增上)의 뜻으로서, 작용이 우수한 것을 말한다. 

이에 6근(인식기관)ㆍ남근(男根)ㆍ여근(女根)ㆍ명근(命根)ㆍ5수근(受根)ㆍ5선근(善根)ㆍ3무루근(無漏根)이 있다.

 

前五色根以本識等所變眼等淨色爲性,男、女二根身根所攝故,卽以彼少分爲性。命根但依本識親種分位假立,非別有性。意根摠以八識爲性,五受根如應各自受爲性,信等五根卽以信等及善念等而爲自性。

전오색근(前五色根)은 근본식 등이 전변된 안근 등의 승의근인 정색(淨色)으로써 자성으로 삼으며,

남근(男根)ㆍ여근(女根)의  가지 근(根)은 신근(身根)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것의 일부분으로써 자성으로 삼으며,

명근(命根)은 다만 근본식의 직접적인 종자의 분위(分位)에 의거하여 가립하는 것으로 별도의 자성이 있지 않으며,

의근(意根)은 전체적으로 8식으로써 자성으로 삼으며,

5수근(受根)은 상응하는 것과 같이, 각각의 감수작용인 수(受)로써 자성으로 삼으며,

신근(信根) 등의 5근은  신(信)심소 등과 선(善)의 염(念)심소 등으로써 자성으로 삼는다.


未知當知根體位有三種:一根本位。謂在見道,除後剎那無所未知可當知故。二加行位。謂煖、頂、忍、世第一法。近能引發根本位故。三資糧位。謂從爲得諦現觀故,發起決定勝善法欲,乃至未得順決擇分所有善根,名資糧位,能遠資生根本位故。

4성제를 아직 알지 못하나 장차 알게 되는 지위에 있는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의 자체의 분위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근본위(根本位)로써, 견도에 있으며 다음 찰나를 제외하는으로서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은 장차에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가행위(加行位)이니, 난위(煖位)ㆍ정위(頂位)ㆍ인위(忍位)ㆍ세제일법위(世第一法位)를 말하는 것으로, 능히 근본위를 가까이에서 이끌어 내기 때문이며,

셋째는 자량위(資糧位)이니, 4성제의 현관(現觀)을 증득하기 위해서 결정적으로 뛰어난 선법욕(善法欲)을 일으키고, 

→선법(善法)의 욕구인 선법욕(善法欲)은 여섯 가지 현관(現觀) 중에서 신현관(信現觀) 말한다.

 

나아가 아직 순결택분(順決擇分)에서 선근을 얻지 못함에 이르기까지를 자량위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능히 근본위를 돕기 때문이다.

→순결택분(順決擇分),  가지의 사선근(四善根),  ()ㆍ정()ㆍ인()ㆍ세제일법(世第一法)이다.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 세 가지 무루근, 삼무루근(三無漏根)의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ㆍ이지근(已知根)ㆍ구지근(具知根) 중의 하나이며, 견도위(見道位)에서 일어나는 의(意)ㆍ낙(樂)ㆍ희(喜)ㆍ사(捨)ㆍ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9 가지 근(根)을 말하며, 16심(心) 중에서 앞의 15심은 견도에, 제16심은 수도(修道)에 포함된다. 

견도위의 수행자는 일찍이 알지 못하던 4성제(聖諦)의 진리를 다음 생각인 제16심에서 온전하게 아는 위치에 있으므로 이 지위에 있는 자가 가진 9근을 이렇게 이름한다.

 

於此三位信等五根意喜、樂、捨爲此根性,加行等位於後勝法求證愁慼亦有憂根,非正善根故多不說。

  가지 지위에서 신근(信根) 등의 5근과 의근(意根)ㆍ희근(喜根)ㆍ낙근(樂根)ㆍ사근(捨根)으로써  근(根)의 자성으로 삼으니, 가행위 등, 자량위의 지위에서는 이후의 뛰어난 승법(勝法)에 대해서 증득하고자 추구하고 근심하므로 역시 우근(憂根)도 있지만, 진정한 선근이 아니기 때문에 '유가사지론' 등에서 자세하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前三無色有此根者。有勝見道傍修得故。或二乘位迴趣大者,爲證法空,地前亦起九地所攝生空無漏,彼皆菩薩此根攝故。

앞의  가지 무색계에서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 있다고 '유가사지론' 제57권에서 말한 것은 뛰어난 견도인 일심진견도(一心眞見道)에서 곁으로 닦아 얻는 상견도(相見道)가 때문이다.

혹은 2승의 지위로부터 대승으로 전향해서 나아가는 자가 법공을 증득하기 위하여 10지(地) 이전에서 역시 9지(地)에 포함되는 아공의 무루를 일으키나니, 그것을 모두 보살의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菩薩見道亦有此根,但說地前,以時促故。始從見道最後剎那乃至金剛喩定,所有信等無漏九根皆是已知根性,未離欲者於上解脫,求證愁慼,亦有憂根,非正善根故多不說。

보살의 견도(見道)에서도 역시  근(根)이 있으니, '유가사지론' 제57권에서 다만 10지 이전만을 말한 것은 시기를 포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의 3()이란, 10() 이전의 승해행지(勝解行地)의 십주(十住)ㆍ십행(十行)ㆍ십회향(十廻向)에서 1() 건립하고, 10지에서 2근을, 불지(佛地)에서 3근을 건립한다.

의혹을 풀어 주기 위해서, 보살의 견도에서도 역시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 있지만, 오직 승해행지만을 말한 것은 견도 중에서는 시기를 포착한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처음에 견도의 최후 찰나로부터 나아가 금강유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근(信根)  무루의 아홉 가지의 구근(九根)은 모두 미오인과(迷悟因果)의 도리를 이미 아는 이지근(已知根)의 속성이며,

아직 욕망을 떠나지 못한 자는 상지(上地)의 해탈에 대해서 증득하고자 추구하여 근심하므로 역시 우근(憂根)도 있지만, 진정한 선근이 아니기 때문에 '유가사지론' 등에서 자세히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4성제의 도리를 아는 지위의 이지근(已知根) 체(體) 밝힌 것이다.

 

구근(九根), 믿음심소의 신근(信根)ㆍ정진 심소의 근근(勤根)ㆍ기억심소의 염근(念根)ㆍ집중심소의 정근(定根)ㆍ혜심소의 혜근(慧根)ㆍ의근(意根)ㆍ희수근(喜受根)ㆍ낙수근(樂受根)ㆍ사수근(捨受根).

이지근(已知根)은 세 가지 무루근 중의 하나로써, 수도(修道)에서 일어나는 의(意)ㆍ낙수(樂受)ㆍ희수(喜受)ㆍ사수(捨受)ㆍ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아홉 가지 근(根)을 말한다. 이것은 이미 지혜로써 미(迷)ㆍ오(悟)ㆍ인(因)ㆍ과(果)의 도리를 다 아는 것이다.

 

諸無學位,無漏九根一切皆是具知根性。有頂雖有遊觀無漏,而不明利,非後三根。

二十二根自性如是,諸餘門義如論應知。

모든 무학위에서의 무루구근(無漏九根)은 일체 모두를 갖춘 것을 아는 구지근(具知根)의 속성으로, 유정천(有頂天)에서는 유관(遊觀)의 무루가 있지만, 밝고 예리하지 않아서 뒷부분의 세 가지 근(根)이 아닌 것이다.

갖춘 것을 아는 지위의 근인 구지근(具知根) 체를 밝힌 것이다.

 

22근의 자성은 이상과 같으니, 나머지 모든 부문의 뜻은 논서, '유가사지론' 제57권과 같다고 알아야 하리라.

 

구지근(具知根)은 삼무루근(三無漏根) 중의 하나로서 아라한의 무루지(無漏智)를 말한다. 닦을 것을 모두 닦고, 끊을 번뇌도 이미 끊어 다시는 닦을 것이 없다고 아는 지혜이다.


成唯識論卷第七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7 9

 

若唯有識,都無外緣,由何而生種種分別?頌曰:

▷묻겠습니다; 만약 오직 식(識)뿐이고 외부대상인 외연(外緣)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면,

무엇에 의거해서 갖가지 분별을 일으키는 것입니까?

▷답한다; '삼십송' 제18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으니, 

이하는 식이 전변된 식소변(識所變) 의거해서 가아가법(假我假法) 건립하는  가지의 대단(大段) 중에서  번째이다. 여러 외인들의 비판을 해석하여서, '삼십송' 1게송의 “자아와 법을 가설함으로 인하여 (자아ㆍ법의) 갖가지 모습들이 생겨난다”는 문구를 자세하게 해설하는 것으로, 먼저 심법(心法) 일어나는 연유를 밝힌다.


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일체종자식이 이렇게 저렇게 전변함에 의거해서 전전하는 세력 때문에

이러저러한 (8식의 심왕과 그것에 상응하는 심소의) 분별(허망분별로써 자성을 삼는 유루법)이 생겨난다네. 

→심법(心法) 생기하는 연유를 밝힌 것이다.

심왕ㆍ심소는 반드시 소연(所緣) 의탁해서 생기하는 것인 과연 내심(內心) 있고 외경(外境) 없다면 심왕ㆍ심소는 무엇을 말미암아서 생기할 있는가라는 힐난(詰難) 대해서 심법이 생기하는 연유를 설명한 것이다.

허망분별의 생기(生起)에는 내심의 종자ㆍ현행을 ()으로 삼고 ()으로 삼을 있기 때문에, 심외(心外) 실경(實境) 없을지라도 생기(生起)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論曰:一切種識謂本識中能生自果功能差別,此生等流、異熟、士用、增上果,故名一切種。除離繫者,非種生故,彼雖可證,而非種果,要現起道斷結得故,有展轉義非此所說,此說能生分別種故。

▷논하여 말한다;  ‘일체종자식’이란 근본식 중에서 능히 스스로 결과를 일으키는 특수한 정신적인 힘인 공능차별(功能差別)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등류과(等流果)ㆍ이숙과(異熟果)ㆍ사용과(士用果)ㆍ증상과(增上果)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체종자라고 이름하며,

계박을 떠난 증과인 이계과(離繼果)를 제외하는 것은 종자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그것을 증득할 수는 있지만 종자의 결과는 아니며, 반드시 무루의 뛰어난 도인 무루승도(無漏勝道)로써 결(結, 번뇌)를 단멸하여 증득하기 때문이다. 

전전하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니, 여기에서는 능히 분별을 일으키는 종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종자로부터 지혜가 생겨나게 하고, 지혜가 미혹을 끊어 열반의 이계과(離繼果)를 증득한다.

이와 같이 종자로부터 직접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지혜를 ()하여 전전하여 생겨나게 하는 것이므로 게송에서의 일체종자식에 의거한다는 말과는 상관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5과(五果)는 이숙과(異熟果) · 등류과(等流果) · 이계과(離繫果) · 사용과(士用果) · 증상과(增上果)이며, 

①등류과(等流果)는 첫째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 즉 종자가 전후 찰나에 자류상생(自類相生)하는 것이다.

둘째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으로 그 현행은 종자의 동류(同類)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종자가 동류인(同類因)이 되어 종자와 현행의 등류과(等流果)를 일으킨다.

②이숙과(異熟果), 선ㆍ악의 업종자가 무기(無記)의 현행의 과보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③사용과(士用果), 작의(作意) 종자가 이른바 종자경각(種子警覺)으로서 현행법을 일으키는 경우 사용과(士用果)를 얻는다. 사부(士夫)의 작용이라는 뜻으로서, 사람의 노력에 의해 어떤 사업을 성공하는 것과 같이 상응인(相應因)ㆍ구유인(俱有因)의 작용에 의해 얻은 결과를 사용과라고 한다.

④증상과(增上果), 어떤 유위법이 생겨날 때, 자기 이외의 법이 직접적으로 힘을 주거나 또는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도와주는 관계로 생겨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곧 다른 것이 능작인(能作因)이 되어 그 증상력(增上力)에 의해 생긴 결과이다. 예를 들면 제7식의 종자를 구유의(俱有依)로 하여 제8식의 현행을 생겨나게 할 때 곧 증상과를 얻는 것이다.

⑤계박을 떠난 증과인 이계과(離繼果)는 무루성도(無漏聖道)의 지혜의 힘으로써 번뇌의 계박을 떠나고 끊음으로써 나타나는 열반의 진리를 가리켜서 말하기 때문에 종자생(種子生)이 아니므로 제외한다.


此識爲體故立識名,種離本識無別性故。種、識二言簡非種識,有識非種,種非識故。又種識言顯識中種,非持種識,後當說故。

이 종자는 식으로써 자체로 삼기 때문에 식(識)이라는 명칭을 건립하는 것이니, 종자는 근본식을 떠나서 별도의 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종자와 식의 두 단어로  종식(種識)이라는 용어는 종자식이 아닌 것을 가려내는 것으로, 식으로서 종자가 아닌, 현행식(現行識, 이것은 내부의 종자가 아니기 때문) 종자로서 식이 아닌, 외부의 식인 외종(外種, 이것은 식의 자체분이 아니기 때문) 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자식이라는 말은 근본식 중의 종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종자를 지니는 제8식이 아니니, 마땅히 나중에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此識中種餘緣助故,卽便如是如是轉變,謂從生位轉至熟時。顯變種多重言如是,謂一切種攝三熏習、共、不共等識種盡故。

  중의 종자가 4연(四緣) 중에서 인연(因緣)을 제외한 등무간연(等無間緣) · 소연연(所緣緣) · 증상연(增上緣)의 도움받기 때문에 문득 “이렇게 저렇게 전변한다.”고 하는 것이며,

심법을 일으키는 것은 등무간연(等無間緣) · 소연연(所緣緣) · 증상연(增上緣)의  가지 연이고, 색법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오직 증상연(增上緣)뿐이다.

 

생겨나는 지위로부터 전전하여 성숙한 때에 이르기까지, 즉 미숙(未熟)의 견인인(牽引因)의 지위로부터 이숙(已熟)의 생기인(生起因)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전변하는 종자가 많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거듭해서 ‘이러한 여시(如是)’라고 말하는 것이며,

일체 종자에  가지의 삼훈습(三熏習), 공상과 불공상(不共相) 등의 식의 종자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삼훈습(三熏習); 

①명언훈습(名言熏習)은 언어를 사용한 개념적인 사고(思考)에 의해 이식되는 것이고,

②아집훈습(我執熏習)은 자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의 아견(我見)에 의해 훈습되는 것이며,

③유지훈습(有支熏習)은 3유(有, 삼계三界)에서 생사윤회하게 만드는 훈습을 말한다.


展轉力者,謂八現識及彼相應相、見分等,彼皆互有相助力故。卽現。識等摠名分別,虛妄分別爲自性故,分別類多,故言彼彼。

‘전전하는 세력의 전전력(展轉力)’이란 여덟 가지 현행식인 팔현식(八現識)과 그것의 상응법(심소) 및 상분과 견분 등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이 모두 서로 돕는 힘이 있기 때문이며, 

현행식 등을 총체적으로 ‘분별’이라고 이름하나니, 허망분별로써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며,  

자체분ㆍ견분ㆍ상분 등으로 분별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피피(彼彼)’라고 하는 것이다.

 

현행식(現行識, pravṛtti-vijñāna)은 현재 시점에서 나타나 활동하고 있는 마음, 즉 식(識)을 말한다. 현행(現行)이란 아뢰야식에 함장된 법의 종자가 인연이 갖추어짐에 따라 현재의 법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심법(心法: 마음, 식, 특히 7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인연화합에 의해 아뢰야식이 전변하여 현재 시점의 7식(말나식과 6식)으로 나타난다고 보았고 이렇게 나타난 7식을 현행식이라고 하였다.

즉, 시각 · 청각기관 · 후각기관 · 미각기관 · 촉각기관 · 사고력을 매개로 하는 6가지 인식기능인 6식(六識)과 이들 6식에 수반되는 자아의식인 말나식(末那識)은 잠재의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대하여 '현재화된 식, 현행하는 식 또는 현세적인 식'이라는 의미에서 현행식이라 불린다. 또한 이들 7식(말나식과 6식)은 '아뢰야식이 전변하여 현재 나타나 있는 식'이라는 의미에서 전식(轉識)이라고도 불린다.-위키


此頌意說雖無外緣,由本識中有一切種轉變差別,及以現行八種識等展轉力故,彼彼分別而亦得生,何假外緣方起分別?諸淨法起應知亦然,淨種現行爲緣生故。

(게송의 총체적인 결론으로), 이 게송의 뜻은 다음과 같으니,

외부대상인 외연(外緣)은 실재하지 않지만, 근본식 중의 모든 일체 종자가 전변하는 차별에 의거하는 것이며,

여덟 가지 현행식인 팔현식(八現識) 등이 전전하는 세력으로써  분별이 역시 생겨날  있는 것이니, 어째서 외부대상인 외연(外緣)을 의지해서 비로소 분별을 일으킨다고 말하는 것인가? 

모든 청정법이 일어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하나니, 청정한 종자와 현행을 연(緣)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를 들어서 청정법을 일으키는 것을 밝혔다.

 

所說種、現緣生分別,云何應知此緣生相?

▷묻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종자와 현행을 연(緣)으로 하여 분별을 일으킨다면,

이것의 연(緣)과 생겨나는 생상(生相)을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이하 게송의 뜻을 자세하게 해설하는 것으로, 먼저(四) 설명한, 사연의(四緣義)이다.

 

緣且有四:一因緣。謂有爲法親辦自果。此體有二:一種子,二現行。種子者,謂本識中善、染、無記諸界、地等功能差別,能引次後自類功能,及起同時自類現果,此唯望彼是因緣性。現行者,謂七轉識及彼相應所變相、見、性、界、地等,除佛果善、極劣無記,餘熏本識,生自類種,此唯望彼是因緣性。

▷답한다; 연(緣)에 다시 4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연(因緣)으로, 유위법이 직접 스스로의 결과를 판별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의 체(體)에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종자이고 다른 하나는 현행이다.

종자는 근본식 중의 선ㆍ잡염ㆍ무기(無記) 및 여러 계(界)와 지(地, 지위) 등의 특수한 정신적인 세력인 공능차별(功能差別)을 말하는 것으로, 능히 다음의 자기 부류의 세력을 이끌며, 동시에 자기 부류의 현행과를 일으키며,

종자생종자의 이시인과(異時因果)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동시인과(同時因果)  가지가 있다.

 

이러한 종자는 오직 자기 부류의 종자 및 자기의 현행에 배대해서만 인연(因緣)의 성품이 되며,

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의 경우인 현행은 능훈의 현행으로써, 현행은 7전식과 그것의 상응법 및 전변된 견분과 상분, 세 가지 성품, 계(界)와 지(地, 지위) 등을 말하며,

불과(佛果)의 선(善)과 매우 미약한 무기(無記)를 제외하며, 그 나머지는 근본식에 훈습하여 자기 부류의 종자를 일으키나니, 이러한 능훈(能熏)의 현행은 오직 소훈(所熏)의 종자에 배대해서만 인연의 성품이 되는 것이다.


第八心品無所熏故,非簡所依獨能熏故,極微圓故,不熏成種。現行同類展轉相望皆非因緣,自種生故。

제8심품은 소훈처인 소훈(所熏)이 없기 때문이고, 의지처인 심왕을 가려내어 심소가 홀로 능훈(能熏)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매우 미세하고,

인위(因位) 중의 8식과 6 중의 이숙의 심왕은 매우 미세하여 능훈이 아니다.

 

원만하기 때문에 

불과(佛果) 8식은 매우 원만하여 종자를 훈습하지 않는다.

 

종자를 훈습하지 않으며, 

만약 8식이 스스로 소훈처(所熏處)로서, 다시 자신의 소훈처가 없으므로 능훈(能熏) 아니라고 말한다면, 8식과 함께하는 심소(心所)로써 능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심에 대한 답변이다.

 

현행의 같은 부류가 전전하여 서로 배대하여도 모두 인연이 아니니, 스스로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으로 현행의 같은 부류가 이전 찰나의 것을 이후 찰나의 것에 배대하여 소승의 동류인(同類因) 같이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一切異類展轉相望亦非因緣,不親生故。有說異類、同類現、行展轉相望爲因緣者,應知假說或隨轉門。有唯說種是因緣性,彼依顯勝非盡理說,聖說轉識與阿賴耶展轉相望爲因緣故。

모든 다른 부류를 전전하여 서로 배대하여도 역시 인연이 아니니, 직접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 말하기를 “다른 부류ㆍ같은 부류의 현행을 전전해서 서로 배대하여 인연으로 삼는다”라고  것은

가설이거나

실제로는 증상연(增上緣)이다.

 

혹은 근거에 따른 방편문인 수전문(隨轉門)이라고 알아야 한다. 

근거에 따른 방편문인 수전이문(隨轉理門)이란, 설일체유부에서 구유인(俱有因)  다섯 가지 () 말하여 인연으로 삼은 것에 수순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 제3권에서 오직 종자만을 인연의 성품인 인연성(因緣性)이라고 말한 것은 두드러지게 뛰어난 것을 말한 것으로, 논리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며,

'유가사지론' 제51권에서 전식과 아뢰야식은 전전하여 서로 배대해서 인연이 된다고 말한 때문이다.


二等無閒緣。謂八現識及彼心所前聚於後,自類無閒,等而開導,令彼定生。

多同類種俱時轉故,如不相應非此緣攝,由斯八識非互爲緣。

둘째는 등무간연(等無間緣)이니, 여덟 가지 현행식인 팔현식(八現識)과 그것의 심소법이 이전 찰나에 멸하나, 그 후의 바로 다음 찰나에 자기 부류에 평등하게 열어 이끌어서 그것이 반드시 생겨나게 함을 말하며,

같은 부류의 많은 종자는 동시에 전전하기 때문에 불상응행법과 같은 것은 이 연(緣)에 포함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8식도 서로 연(緣)으로 삼지 않는다.

 

등무간연(等無間緣), 심왕과 심소법이 전념(前念)에서 후념(後念)으로 전전할 때, 이전 찰나에 멸한 마음이 길을 열어 뒤에 생기는 마음을 끌어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때에 전념과 후념의 심왕과 심소의 수(數)는 같지 않을지라도 그 주체는 앞뒤가 평등하여 하나이므로 등(等)이라고 하고,

후념은 전념과의 사이에 설사 얼마의 시간이 경과한다 할지라도 다른 마음이 그 사이에 간격을 두지 않고 곧 생겨나므로 무간(無間)이라고 한다.

등무간연은 심왕ㆍ심소법에만 국한되고 다른 법에는 통하지 않으며, 또한 아라한이 열반에 들려는 최후심(最後心)의 심왕ㆍ심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마음의 작용은 반드시 이러한 관계를 갖는다.


心所與心雖恒俱轉,而相應故,和合似一,不可施設離別殊異,故得互作等無閒緣。

入無餘心最極微劣,無開導用,又無當起等無閒法,故非此緣。

심소와 심왕은 항상 함께 전전하지만 상응하기 때문에 화합해서 하나인 것과 비슷하며, 분리해서 다른 것으로 시설할  없기 때문에 서로 등무간연이   있으며,

무여의열반에 들어가려는 마음은 매우 미세하고 약하므로 열고 이끄는 개도(開導)의 작용이 없으며, 또한 장차 등무간의 법을 일으킬  있는 것이 없으므로  () 아니다.


云何知然?論有誠說,若此識等無閒,彼識等決定生,卽說此是彼等無閒緣故。卽依此義應作是說,阿陁那識三界、九地皆容互作等無閒,緣下上死生相開導故,有漏無閒有無漏生,無漏定無生有漏者,鏡智起已必無斷故,善與無記相望亦然。

▷묻습니다;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답한다; '유가사지론' 제3권에 진실한 말씀이 있으니, 만약 이 식 등의 다음 찰나에 그 식 등이 결정적으로 생겨난다면, 곧 이것은 그것의 등무간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곧 이 뜻에 의거해서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니, 아타나식(阿陁那識, 제8식)은 3계ㆍ9지에서 모두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으로 인전 되며, 하지(下地)와 상지(上地)에서 죽고 태어날 때에 서로 열어서 이끌기 때문이다.

제8식의 유루의 다음 찰나에 무루가 생겨나는 일은 있지만, 무루가 반드시 유루를 일으키지는 않으니, 대원경지는 일어나고 나서 반드시 단절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선(善)과 무기를 서로 배대하는 것 역시도 그러하다.

 

此何界後引生無漏?或從色界,或欲界後。謂諸異生求佛果者,定色界後引生無漏,彼必生在淨居天上大自在宮,得菩提故。二乘迴趣大菩提者,定欲界後引生無漏,迴趣留身唯欲界故,彼雖必往大自在宮方得成佛,而本願力所留生身是欲界故。

▷묻습니다; 이것은 어떤 세계 이후에 제8식의 무루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까?

8식에 있어서 유루(有漏) 무루를 생겨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세계의 유루 이후에 무루를 생겨나게 하는 것인가라고 외인(外人) 묻는 것이다.

 

▷답한다; 색계로부터이거나, 혹은 욕계 이후이다.

모든 범부로서 부처님의 증과를 구하는 자, 즉 돈오(頓悟)의 보살은 반드시 색계 이후에 무루를 이끌어 내나니, 그는 반드시 정거천(淨居天)의 대자재천궁(大自在天宮)에 태어나 살면서 보리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2승(乘)으로서 대보리에 나아가는 자, 즉 점오(漸悟)의 보살은 반드시 욕계 이후에 무루를 이끌어 내나니, 대보리에 나아가서 몸을 머무는 것은 오직 욕계뿐이기 때문이니, 그는 반드시 대자재천궁에 머물면서 비로소 성불할 수 있지만, 본래의 원력에 의해 머무는 생신(生身)은 욕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거천(淨居天), 색계 제4선천의 9천(天) 중 위의 5천, 즉 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견천(善見天)ㆍ선현천(善現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을 말한다. 이곳은 성자가 태어나는 곳으로서 아래 4천의 외도가 태어나는 곳과는 크게 다르며, 5정거천(五淨居天)이라고도 한다.

대자재천궁(大自在天宮) 색계의 정상에 있는 궁전으로서 외도들이 제사 드리는 대자재천이 여기에 머문다. 또한 제10지 보살이 장차 성불하려고 할 때, 이곳에서 정토(淨土)를 변현하여 시방(十方)의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성불의 관정(灌頂)을 받는다고 한다.


有義色界亦有聲聞迴趣大乘願留身者,旣與教理俱不相違,是故聲聞第八無漏色界心後亦得現前。然五淨居無迴趣者,經不說彼發大心故。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색계에서도 역시 성문으로서 대승에 나아가서 본래 원력에 의해 몸을 머무는 자가 있다는 것은,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모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따라서 성문의 제8의 무루식은 색계의 마음 이후에도 역시 현전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5정거천에는 대보리에 전향해서 나아가는 자가 없으니, '대반야경' 제129에서 거기에서는 대보리심을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第七轉識三界、九地亦容互作等無閒緣,隨第八識生處繫故。有漏、無漏容互相生,十地位中得相引故。善與無記相望亦然,於無記中染與不染亦相開導,生空智果前後位中得相引故。此欲、色界有漏得與無漏相生,非無色界,地上菩薩不生彼故。

제7전식도 3계ㆍ9지에서 역시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이 인정되나니, 제8식이 태어나는 곳을 따라 계박되기 때문이며, 

유루ㆍ무루도 서로 생겨나게 하는 것이 인정되나니, 10지의 단계 중에서 서로 이끌  있기 때문이며,

선과 무기를 서로 배대하는  역시도 그러하며,  

유부무기(有覆無記) 중에서 잡염의 아집(我執)의 제7식 또는 유부무기(有覆無記)와 잡염되지 않은 법집(法執) 또는 이숙식(異熟識)의 무부무기(無覆無記) 역시 서로를 열고 이끄나니,

아공의 이치를 체득한 바른 지혜와 증과(果), 즉 후득지(後得智)와 그것에 이끌려진 멸진정 이전의 찰나와 이후 찰나의 지위 중에서 서로 이끌  있기 때문이나, 이것은 욕계와 색계의 유루만이 무루와 서로 생겨나게   있으며, 무색계는 아닌 것이니, 10지 가운데에 있는 보살은 그곳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第六轉識三界、九地、有漏、無漏、善、不善等各容互作等無閒緣,潤生位等更相引故。初起無漏
唯色界後,決擇分善唯色界故。眼、耳、身識二界二地,鼻、舌兩識一界一地,自類互作等無閒緣
,善等相望應知亦爾。

제6전식은 3계ㆍ9지에서 유루ㆍ무루ㆍ선ㆍ불선 등이 각각 서로 등무간연으로 되는 것이 인정되나니, 태어남을 촉진하는 지위 등에서 다시 서로 이끌기 때문이며,

처음에 무루의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일으키는 것은 오직 색계 이후이며,

결택분의 선(善)인 세제일법(世第一法)은 오직 색계뿐이기 때문이며,

안식ㆍ이식ㆍ신식(身識)은 두 가지 세계인 이계(二界)와 욕계와 색계 초선천(初禪天)안 이지(二地)에서,

비식과 설식은 일계(一界)와 욕계의 일지(一地)에서 자기 부류가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이니,

선(善) 등을 서로 배대하여서도 역시 그러하다고 마땅히 알아야 한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7 8

 

若唯內識似外境起,寧見世閒情非情物處、時、身用定不定轉?

▷묻습니다; 만약 오직 내부의 식인 내식(內識)만이 외부대상에 사현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어떻게 세간의 유정과 무생물을 보는 데 장소, 시간, 유정의 몸(身), 외계대상의 작용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음으로 전전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만약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면 세간의 일과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제이세가괴종난(第二世事乖宗難).

 

如夢境等應釋此疑。

▷답한다;  꿈속의 대상 등과 같다고, 마땅히 이러한 의문을 해설해야 할 것이다.

 

何緣世尊說十二處?

▷묻습니다; 무엇에 연(緣)하여 세존께서 12처로 말씀하신 것입니까?

성스러운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제삼성교상위난(第三聖敎相違難)으로, 만약 마음 밖에 색경(色境) 등의 참다운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존께서 어떻게 12() 있다고 말씀하셨는가라고 비판하여 묻는 것이다.

 

依識所變,非別實有。爲入我空說六二法,如遮斷見說續有情。爲入法空復說唯識,令知外法亦非有故。

▷답한다; 식이 전변한 것에 의거한 것으로, 별도로 참으로 존재하는 실유(實有)는 아니다.

아공(我空)의 이치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62법을 말씀하셨으니, 단견(斷見)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상속하는 유정을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법공(法空)의 이치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오직 식뿐인, 유식(唯識)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외부대상 역시도 실유가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공(二空);

아공(我空)은 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하며, 유정의 심신(心身)에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인격적 실체로서의 아(我)가 존재하지 않는 이치 또는 그것을 깨쳐서 아집(我執)이 소멸된 경지.

법공(法空)은 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하며, 외계의 사물은 자기의 마음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이치, 또는 그것을 깨쳐서 법집(法執)이 소멸된 경지.

 

此唯識性豈不亦空?

▷묻습니다; 이 유식성(唯識性)도 어찌 공이 아닌 것입니까?

→여기서 유식성(唯識性) 의타기법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으로, 원성실성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

법집(法執) 없애서 제법무아(諸法無我) 도리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유식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라면,  유식성 자체도 역시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필경공무(畢竟空無)가 아니겠는가라고 비판하여 묻는, 제사유식성공난(第四唯識成空難).

 

3성(三性);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두루 계탁(計度)하여 집착하는 성질"이며, "fully conceptualized (완전히 개념화되다)"라고 직역되며 "imaginary nature (상상성 · 가상성)"라고 번역되며, 존재의 허망한 상태를 말한다.
의타기성(依他起性),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성질"이며, "other dependent (다른 것에 의존하는)"라고 직역되며 "dependent nature (의존성)"라고 번역되며, 연기(緣起)의 성질을 말한다.
원성실성(圓成實性), "원만히 성취한 실재하는 성질"이며, "fully accomplished (완전히 성취하다)"라고 직역되며 "absolute nature (절대성)"라고 번역되며, 존재의 진실한 상태를 말한다. 

 

不爾。

답한다; 그렇지 않다.

 

如何?非所執故,謂依識變妄執實法,理不可得,說爲法空。非無離言正智所證唯識性故,說爲法空。此識若無便無俗諦,俗諦無故眞諦亦無,眞、俗相依而建立故。撥無二諦是惡取空,諸佛說爲不可治者,應知諸法有空、不空,由此慈尊說前二頌。

▷묻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은 것입니까?

답한다; 집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의 전변에 의거해서 실법에 망령되게 집착된 것을 이치적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법공(法空)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언어를 떠나서 증득된 정지(正智)의 유식성이 없기 때문에 법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식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문득 세속제가 없게 될 것이며, 세속제가 없게 되면 진제도 역시 없어야 할 것이니, 진제와 속제는 서로 의지해서 건립되기 때문이다.

진제와 속제의 두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악취공(惡取空)이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치료할 수 없는 자라고 하셨으니, 마땅히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하나니, 일체법은 공(空)ㆍ불공(不空)이 있으며, 이에 의거해서 미륵보살께서 앞의 두 게송을 말씀하신 것이다.


若諸色處亦識爲體,何緣乃似色相顯現,一類堅住,相續而轉?

▷묻습니다; 만약 모든 색처(色處, 물질계)가 역시 식으로써 자체(體)로 삼는다고 말한다면, 무엇에 반연하여 색상(色相, 물질의 모습)으로 사현하고, 한 종류로 견고하게 상속해서 유전하는 것입니까?

 외부대상인 색경(色境)의 상(相) 마음이 아니지 않겠는가하고 비판하여 묻는, 제오색상비심난(第五 色相非心難).

 

名言熏習勢力起故,與染、淨法爲依處故。謂此若無,應無顚倒,便無雜染,亦無淨法,是故諸識亦似色現。如有頌言:

▷답한다; 명언훈습의 세력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며,

아득한 옛적부터 허망분별의 훈습력에 의해서, 상주하고 항상하며 변하지 않는 색경(色境) 상(相)이라고 집착한 것으로, 이러한 훈습에 의해서  종류의 견고한 색경의 모습으로 사현하는 것일 뿐, 마음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대상인 실경(實境) 아니다.

 

잡염과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니, 만약 이러한 색경(色境) 등의 외부대상이 없다면 마땅히 전도됨이 없어야 할 것이고, 그러하다면 문득 잡염도 없고 역시 청정법도 없게 될 것이니, 

따라서 모든 식이 역시 색법으로 사현하는 것으로,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제 4권의 게송에서 설한 것과 같다.

색경(色境) 등으로부터 잡염ㆍ청정법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욕계와 색계의 유정이 아득한 무시로부터 색경 등에 미혹되게 집착함으로써 전도(顚倒) 망심(妄心) 일으키고, 그것에 의해 번뇌ㆍ업ㆍ생() 잡염을 일으켜서 생사에서 윤회하는 것이니, 만약 색경 등이 없다면, 전도된 망심도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고, 잡염이 없으면 청정법도 있지 않아야 할 것이.


亂相及亂體 應許爲色識, 及與非色識 若無餘亦無。

잡란(亂)의 형상인 난상(亂相)  잡란의 자체인 난체(難體)를

잡란(亂) 심왕 등을 말하는 것으로, 허망하게 전도됨의 망도(妄倒)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잡란의 형상인 난상(亂相)이란 색식(色識),  상분(相分)을 말한다.

→잡란의 자체인 난체(難體) 비색식(非色識),  모든 식의 견분(見分)을 말한다.

 

색식(色識, 상분)  색식이 아닌 비색식(非色識, 견분 등)으로 인정해야 하고, 

만약 난상(亂相) 없다면 나머지 다른 것(견분) 역시도 없어야 하리라.

→나머지 다른 것이란 잡란의 자체인 난체(難體),  견분을 가리킨다.

 

色等外境分明現證,現量所得寧撥爲無?

▷묻습니다; 색경(色境) 등의 외경(外境, 외부대상)을 현재에서 분명히 깨닫고 현량으로 인식하거늘, 어째서 부정하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외부대상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는데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판하여 묻는, 제육현량위종난(第六 現量爲宗難).

 색경(色境)  다섯 가지 외부대상은 5식의 현량으로써 분명히 깨달아 알고, 현량으로 인식하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서 조금도 오류가 없거늘, 만약 외부대상이 실유(實有) 아니라면, 현량으로써 반연하여 색경 등이라는 인식을 일으킬  없지 않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現量證時不執爲外,後意分別妄生外想。故現量境是自相分識所變,故亦說爲有。意識所執外實色等妄計有故,說彼爲無。又色等境非色似色、非外似外。如夢所緣,不可執爲是實、外色。

▷답한다; 현량으로 깨달을 때에는 집착해서 외부대상으로 삼지 않으나, 이후의 의식(意識)이 분별하여 망령되게 외부대상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 따라서 현량의 대상은 자신의 상분이고, 식이 전변된 것이기 때문에 실재(有)라고 말하는 것이다.

의식이 집착한 외부의 실재(有)의 색경 등을 망령되게 실재라고 계탁한 것이므로 그것을 비실재(無)라고 말하며,

또한 색경 등의 대상은 색경이 아니면서 색경으로 사현한 것이고, 외부대상이 아니면서 외부대상으로 사현한 것으로, 꿈속의 소연(所緣, 인식대상)과 같이 집착해서 이것은 실재(有)이고 외부의 색경인 외색(外色)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若覺時色皆如夢境不離識者,如從夢覺知彼唯心,何故覺時於自色境不知唯識?

▷묻습니다; 만약 깨어 있을 때의 색경 모두가 꿈속의 대상과 같이 식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꿈에서 깨어나서 그것은 오직 마음뿐인 유심(唯心)이라고 아는 것과 같아야 할 것이거늘, 어째서 깨어 있을 때에 자신의 색경에 대해서 오직 식뿐이라고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꿈과 깨어 있을 때의 차이점을 들어 비판하여 묻는, 제칠몸각상위난(第七夢覺相違難).

 

如夢未覺不能自知,要至覺時方能追覺,覺時境色應知亦爾,未眞覺位不能自知,至眞覺時亦能追覺。未得眞覺恒處夢中,故佛說爲生死長夜,由斯未了色境唯識。

▷답한다; 꿈에서 깨지 않았을 때에는 스스로가   없는 것으로, 반드시 깨어났을  비로소 능히 깨닫는 것과 같이, 깨어 있을 때의 대상인 경색(境色)도 역시 그러하다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직 무루의 참다운 지혜인 진각(眞覺)이 아닌 지위에서는 스스로   없으니, 참다운 깨달음의 진각(眞覺)에 이르렀을 때에 역시 능히 따라서  깨닫게 되나니, 참다운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 때에는 항상 꿈속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으므로, 부처님께서 생사의  밤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함으로 색경(色境)은 오직 식뿐인 유심(唯心)이라고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外色實無可非內識境,他心實有,寧非自所緣?

▷묻습니다; 외부의 색경인 외색(外色)은 참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부의 식의 대상인 내식경(內識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거늘, 어째서 자신의 인식대상인 자소연(自所緣)이 아닌 것입니까?

마음 밖의 실재 대상인 타인의 마음을 인식하는 경우를 들어 비판한, 제팔외취타심난(第八外取他心難)으로,

 외계의 색경(色境) 등은 실체가 없고 내부의 식이 전변된 것이지만, 타인의 심식은 자기 마음을 떠나서 외부에  자체가 있는 것이다. 

만약 마음 밖의 실재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타인의 마음은 자신의 인식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그러나 타심지(他心智) 같은 것은 타인의 마음을 반연해야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이것은 마음 밖의 실재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으로서, 유식(唯識) 뜻이 성립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비판하여 묻는 것이다.

 

誰說他心非自識境?但不說彼是親所緣。謂識生時 無實作用,非如手等親執外物,日等舒光親照外境。

▷답한다; 누가 타심(他心)은 자기 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였는가?

그것은 다만 친소연(親所緣)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이니, 식이 일어날 때에는 참된 실작용(實作用)이 없어서 손 등이 직접 외부 물건을 집거나,

정량부(正量部) 논파한 것으로, 그들은 상분(相分) 건립하지 않기 때문에 심왕과 심소법이 직접 대상을 취하는 것이 마치 손(手) 등으로 외부 사물을 잡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을 논파한 것이다.

 

태양 등이 빛을 펼쳐서 직접 외부대상을 비추는 것과 같지는 않다. 

승론(勝論) 학파를 논파한 것으로, 그들은 안식이 일어날  빛을 펴서 직접 눈앞의 대상을 비추는 것이, 마치 해와  등이 빛을 펴서 직접 외부대상을 비추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을 논파한 것다.

 

但如鏡等似外境現名了他心,非親能了,親所了者謂自所變,

다만 거울 등과 같이 외부대상에 사현하는 것을 타심(他心)을 요별한다고 이름하나, 직접 요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요별되는 것은 자신이 전변된 것이다.

타인의 마음은 능히 자기 식인 자식(自識) 인식대상이 되므로, 타인의 마음을 아는 지혜인 타심지(他心智)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으로써 친소연연(親所緣緣, 상분)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오직 소소연연(疎所緣緣, 본질)으로 하며, 자기 마음 위에  영상인 상분을 현현하여서 그것으로써 친소연연으로 반연할 뿐이므로 유식(唯識) 뜻이 성립된다고 논증한 것이다.

 

故契經言無有少法能取餘法,但識生時似彼相現名取彼物。如緣他心,色等亦爾。

따라서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작은 법이라도 능히 나머지 다른 법, 즉 마음 밖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심외법(心外法)을 취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 다만 식이 일어날 때에 그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름하며 그 사물을 취한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해심밀경' 제3권에서 말하였다.

타인의 마음을 반연한다고 '유식이십론' 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색경 등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旣有異境,何名唯識?

▷묻습니다; 이미 다른 대상이 있거늘, 어째서 유식(唯識)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타인의 마음 등 다른 대상이 있으므로 유식(唯識)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비판한, 제구 이경비유난(第九異境非唯難)으로,  즉 친소연연(親所緣緣, 상분)은 아니지만 자기 마음 밖의 타인의 마음이라는 다른 대상인 이경(異境)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유식이 아닌 것이지 않겠는가하고 묻는 것이다.

 

奇哉!固執!觸處生疑,豈唯識教但說一識?

▷답한다; 기이하도다. 굳게 집착해서 닿는 곳마다 의심을 내는구나!

어째서 유식(唯識)의 가르침이 다만 나 한 사람의 식인 일식(一識)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不爾如何?汝應諦聽,若唯一識,寧有十方凡聖尊卑因果等別?誰爲誰說?何法何求?故唯識言有深意趣。識言摠顯一切有情各有八識,六位心所,所變相、見分位差別,及彼空理所顯眞如,識自相故,識相應故,二所變故,三分位故,四實性故,如是諸法皆不離識,摠立識名。

▷묻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답한다; 그대는 마땅히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만약 오직 한 사람의 식인 일식(一識)뿐이라면 어찌하여 시방에 범부와 성인, 존귀함과 비천함, 원인과 결과 등의 차이가 있겠는가?

누가 누구를 위해서 법을 설하며, 어떠한 법을 어떻게 구하는 것인가?

따라서 유식(唯識)이라는 말에는 심오한 의미의 의취(意趣)가 있으니,

식(識)이라는 말은 전체적으로 모든 유정에 각각 8식, 6위의 심소, 전변된 상분ㆍ견분 분위의 차별 및 그것의 공한 이치인 공리(空理)에서 드러나는 진여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식(識)의 자상(自相)이기 때문이고, 식과 상응하기 때문이며,

심와과 심소의 두 가지가 전변된 것이기 때문이고,

심왕과 심소 및 색법의 세 가지의 삼분위(三分位)이기 때문이며,

심왕ㆍ심소ㆍ색법ㆍ불상응행법의 4가지의 참다운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체법은 모두 식(識)에서 떠나지 않으니, 총체적으로 식(識)이라는 명칭을 건립하는 것이다.

 

唯言但遮愚夫所執定離諸識實有色等。若如是知唯識教意,便能無倒,善備資糧速入法空,證無上覺,救拔含識生死輪迴,非全撥無惡取空者,違背教理,能成是事,故定應信一切唯識。

‘유(唯, 오로지)’라는 말은, 다만 어리석은 범부가 집착하듯이 반드시 모든 식을 떠나서 참으로 색법 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만약 이와 같이 유식의 가르침의 취지를 아는 사람은, 곧 능히 전도됨이 없이 복덕과 지혜의 자량(資糧)을 잘 비축하여 속히 법공의 이치에 들어가서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하고, 유정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악취공자는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위배되므로 능히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니, 따라서 반드시 일체가 오직 식뿐이라는 유식(唯識)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7 7

 

由何教理唯識義成?豈不已說?

▷묻습니다; 어떠한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의거해서 유식(唯識)의 뜻이 성립되는 것입니까?

▷답한다; 어찌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이하는 아홉 가지 문답으로써 만유유식(萬有唯識) 도리를 자세히 해설한, 구난의(九難義)이다.


雖說未了。非破他義己義便成。應更礭陳成此教理。

▷묻습니다; 말씀하셨지만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교의(敎義)를 논파함으로써, 자신의 교의가 성립되는 것은 아닌 것이니, 다시 분명하게 이 유식을 성취하는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를 말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如契經說三界唯心。又說所緣唯識所現。

'십지경(十地經)' 제8권 등의 경전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계는 오직 마음뿐인, 유식(唯識)이라 하였으며, 또한 인식대상인 소연(所緣)은 오직 식이 현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해심밀경' 3권과 '유가사지론' 77권에서 능연(能緣) 견분과 소연(所緣) 상분은 모두 자체분이 현현된 것임을 나타냄으로써 만법유식(萬法唯識)ㆍ심외무법(心外無法) 취지를 서술하였다.

 

又說諸法皆不離心。又說有情隨心垢淨。

또한 '능가경'에서 일체법은 모두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였으며,

또한 유정은 마음을 따라 잡염되거나 청정하다고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2권에서 말씀하였다.


又說成就四智菩薩能隨悟入唯識無境。

또한  가지 지혜인 사지(四智)를 성취한 보살은 따라서 능히 오직 식(識)뿐이고 식과 독립적인 외부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치를 깨달아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으니, 

→'아비달마경'에 나오는 문장으로, 무성(無性) '섭대승론석' 4권에 인용되어 있다.

 

사지(四智), 부처님이 갖춘 4가지 원만한 깨달음의 지혜로써

①대원경지(大圓鏡智), 구경지는 제8아뢰야식을 전환하여 얻은 지혜
②평등성지(平等性智), 제7 말라 식을 전환하여 얻게 되는 지혜로써, 자타(自他) 일체의 평등을 깨닫고 대자 대비심을 일으키는 지혜이다. 정지(定智)는 평등성지(平等性智)로서 정관에 있으면서 방편을 짓지 않기 때문에 정지이며, 말나식(末那識)의 아집(我執)과 아소집(我所執)을 대치하여 평등함을 관찰한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부정지(不定智)는 번뇌에 오염된 제6식을 질적으로 변화시켜 얻은 청정한 지혜이다. 모든 대상을 직접 접촉하지 않고 관찰하여, 모든 의심을 끊고 자유자재로 설법하는 지혜이다. 묘(妙)는 불가사의한 힘의 자유자재를 뜻하고, 관찰은 모든 법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④성소작지(成所作智), 열반지(涅槃智)는 유루의 전 5식을 전회(轉廻)하여 얻는 무루지(無漏智)로써 모든 중생들을 돕는데 필요한 온갖 변화와 동작 등을 두루 갖추어 성취․완성한 경지이다. 5관(五官 : 눈·귀·코·혀·몸)의 대상에 대하여 자제하게 되며,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동작·사업을 하는 것으로, 변화신(變化神)의 지혜이다. 전 5식이 무루 종자를 의지하여 전환(轉換)하여 얻은 지혜이며,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인도하는 지혜이다. - 천석

 

一相違識相智,謂於一處,鬼人、天等隨業差別所見各異。境若實有,此云何成?

첫째는 서로 다른 식의 양상을 아는 지혜인 상위식상지(相違識相智)이니,  장소에 대하여서 아귀ㆍ사람ㆍ천인(天人) 등이 그 각각의 업의 차이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니, 

만약 대상이 참으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있겠는가?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가 다르면,  사물은 다른 모습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아는 지혜이며,

예를 들면 같은 물(水) 대해서도 아귀는 고름이나 피가 가득한 강으로 보고, 물고기는 살아가는 장소나 통로로 보며, 천인(天人) 보석으로 장식한 땅으로 보고, 인간은 깨끗한 또는 파도로 보는 등, 제각각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二無所緣識智,謂緣過、未夢境像等非實有境,識現可得。彼境旣無,餘亦應爾。

둘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식대상인 소연(所緣)으로 하는 식을 아는 지혜인 무소연식지(無所緣識智)이다. 

과거와 미래ㆍ꿈속의 대상ㆍ영상  실유(實有)가 아닌 대상을 반연할 때의 식은 현재에 있을  있으나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역시도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 현실적으로 있음을 아는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과거나 미래의 일, 꿈속의 대상, 물이나 거울에 비친 영상 등은 어느 것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나, 그것을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三自應無倒智,謂愚夫智若得實境,彼應自然成無顚倒,不由功用應得解脫。

셋째는 스스로 전도되지 않아야 함을 아는 지혜인 자응무도지(自應無倒智)이니,  

어리석은 범부의 지혜가 만약 실제의 대상을 얻는다면, 자연히 그는 전도되지 않아야 하고, 공용(功用, 작용)에 의하지 않고 해탈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공용(功用),  수행하지 않고서 오류가 없는 무전도(無顚倒) 지혜를 얻을 있다는 것은 잘못임을 아는 지혜이다. 만약 인식대상이 인식되는 것과 같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범부도 진실을 인식하게 되어서, 노력이나 정진을 하지 않고도 자연히 해탈을 이루게 될 것이.


四隨三智轉智:一隨自在者智轉智,謂已證得心自在者,隨欲轉變地等皆成。境若實有,如何可變?二隨觀察者智轉智,謂得勝定修法觀者,隨觀一境,衆相現前。境若是實,寧隨心轉?三隨無分別智轉智,謂起證實無分別智,一切境相皆不現前。境若是實,何容不現?

넷째는  가지 지혜을 따라 바뀌는 것을 아는 지혜인 수삼지전지(隨三智轉智)이다.

만약 인식대상이 실재한다면 다음의  가지와 같은 일은 있을  없는데, 현실적으로 이들  가지가 일어나므로, 인식대상은 실재하지 않음을 논증하는 것이다.

 

하나는 자재자의 지혜에 따라 바뀌는 것을 아는 지혜인 수자재자지전지(隨自在者智轉智)이니, 이미 마음의 자재함을 증득한 8지(地) 이상의 보살이 욕구를 따라  등을 변화시켜 모두 이루는 것이니, 대상이 만약 실유라면 어떻게 전변할  있겠는가? 

마음이 자재함을 얻은 보살은 마음대로, 예를 들면 땅을 물로, 또는 모래를 금으로 변화시킬  있음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관찰자의 지혜에 따라서 전전하는 지혜인 수관찰자지전지(隨觀察者智轉智)이니, 뛰어난 선정을 증득해서 법관(法觀)을 닦는 자가 하나의 대상을 관찰할 때에 갖가지 모습이 따라서 현전하는 것이니, 만약 대상이 참된 것이라면 어찌 마음을 따라 전전할 수 있겠는가? 

지관(止觀) 닦은 요가 수행자가 부처님의 교법을 관찰해서 사색할 때, 어떤 대상이 사색하는 대로 갖가지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하나는 무분별지혜에 따라서 전전하는 지혜인 수무분별지전지(隨無分別智轉智)로써, 진실을 증득한 무분별지혜를 일으킬 때에는 모든 대상의 모습이  현전하지 않으니, 만약 대상이 참된 것이라면 어찌 현전하지 않을  있겠는가?


菩薩成就此四智者,於唯識理決定悟入。又伽他說:

보살로써 이 사지(四智)를 성취한 자는 유식의 도리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니, 역시 '후엄경'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心、意、識所緣,皆非離自性, 故我說一切 唯有識無餘。

심(心)ㆍ의(意)ㆍ식(識)의 인식대상인 소연(所緣) 모두는 자성을 떠나지 않으니, 

그러므로 나는 일체가 오직 식만이 존재하고 다른 것은 없다고 말한다.

 

此等聖教,誠證非一。極成眼等識五隨一故,

이들 성스러운 가르침의 진실한 증거 문장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극성(極成)의 안식 등은 5식의 하나를 따르는 수일(隨一)이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극성(極成)의 안식 등이란, 공통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불극성(不極成)의 유법(有法) 가려내기 위해서 붙인 것이다.  대승의 다른 학파에서 주장하는 부처님의 안식 등과 소승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비무루(非無漏) 안식 등과 최후신(最後身) 보살의 불선(不善) 안식 등과 구별한 것으로, 그것들은 자타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자타극성(自他極成) 아니기 때문이다.

 

如餘,不親緣離自色等。

안식을 제외한 나머지 4식과 같이 자신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색경(色境) 등을 반연하지 않아야 하며, 

→이상 6() 인용하여 증명한 것으로, 다음은 바른 논리인 정리(正理)로써 만법유식(萬法唯識) 뜻을 논증하는 것이다.  가지 입량(立量) 열거하는데, 먼저  번째 비량(比量) 삼지작법(三支作法)으로 나타내면,

()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극성(極成) 안식 등은 직접 자신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색경 등을 반연하지 않아야 한다.

() 5 중의 하나를 따르는 수일(隨一)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 나머지 4식과 같은 것이다.

 

餘識識故, 如眼識等,亦不親緣離自諸法。

나머지 식(識)도 식(識)이기 때문에 안식 등과 같이 직접 자신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일체법을 반연하지 않아야 하나니, 

 번째 비량(比量) 삼지작법으로 나타내면;

()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나머지 식도 역시 직접 자신에게서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법을 반연하지 않아야 한다.

() 이것은 ()이기 때문이다.

() 안식 등과 같은 것이다.

 

此親所緣定非離此,二隨一故,如彼能緣。

이것의 친소연(親所緣)은 반드시 이것을 떠나는 것이 아니어야 하나니, 그것의 능연과 같이 견분과 상분의 하나를 따르는 수일(隨一)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비량을 삼지작법으로 나타내면,

() 6식의 친소연(親所緣) 반드시 6식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 견분과 상분 중의 하나를 따르는 수일(隨一) 포함되기 때문이다.

()  능연(能緣) 견분 등과 같은 것이다.

 

所緣法故,如相應法,決定不離心及心所。此等正理誠證非一,故於唯識應深信受。

소연(所緣)의 법이기 때문에 상응법과 같이 결정적으로 심왕과 심소를 떠나지 않아야 하나니, 이들 바른 논리의 진실한 증거 문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유식의 도리에 대해서 깊이 믿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번째 비량을 삼지작법으로 나타내면, 

() 6식의 친소연은 반드시 자신의 능연(能緣) 심왕과 심소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

() 이것은 인식대상인 소연(所緣) 법이기 때문이다.

() 상응법과 같은 것이다.

 

我法非有,空識非無,離有離無,故契中道。慈尊依此說二頌言:

자아와 법은 실재가 아닌 비유(非有)이고, 공(空)과 식은 비실재의 비무(非無)이며, 실재를 떠나고 비실재를 떠났기 때문에 중도에 계합하는 것이다.

미륵보살이 이에 의거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씀하셨으니; 

→다음에 총체적인 결론으로서 위에서 밝힌 것을 논증하는 것으로,

먼저 바른 논리로써 증명하기를, 자아와 법은 변계소집성이고, () 원성실성이며, () 의타기성이다.

따라서 이것은 삼성대망(三性對望)하여 중도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3성(三性)은 수행자가 수행을 통하여 알아야 할 법 또는 알아야 할 바 즉 알아야 할 모든 앎이라는 뜻에서 소지법(所知法) 또는 줄여서 소지(所知)라고 한다. '섭대승론석' 제1권과 '성유식론' 제3권에 따르면, 소지(所知) 즉 알아야 할 바 즉 3성(三性)이란 염정(染淨), 즉 염(染)과 정(淨), 즉 잡염법과 청정법을 말한다.
이들 3성(三性) 즉 알아야 할 법 즉 모든 잡염법과 청정법은 모두 그 의지처 즉 발동근거가 제8아뢰야식이기 때문에 제8아뢰야식을,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라는 뜻에서 소지의(所知依)라고도 부른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parikalpita-svabhāva), "두루 계탁(計度)하여 집착하는 성질"이며, "fully conceptualized (완전히 개념화되다)"라고 직역되며 "imaginary nature (상상성 · 가상성)"라고 번역되며, 존재의 허망한 상태를 말한다.
의타기성(依他起性, paratantra-svabhāva),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성질"이며, "other dependent (다른 것에 의존하는)"라고 직역되며 "dependent nature (의존성)"라고 번역되며, 연기(緣起)의 성질을 말한다.
원성실성(圓成實性, pariniṣpanna-svabhāva), "원만히 성취한 실재하는 성질"이며, "fully accomplished (완전히 성취하다)"라고 직역되며 "absolute nature (절대성)"라고 번역되며, 존재의 진실한 상태를 말한다. - 위키

 

다음은 성교(聖敎)로써 증명하는 것으로, 아래의 게송은 '변중변론(辯中邊論)' 1권에서 미륵보살이 말씀하신 것이다.

虛妄分別有 於此二都無, 此中唯有空 於彼亦有此。

허망분별(3계의 의타기성의 허망분별심)은 실재(有)이고, 

이것에 있어서  가지(소취所取와 능취能取 또는 자아와 법) 모두는 비실재(無)이다.

이 허망분별 중에서는 오직 공(空)이 있을 뿐이나,

그 공성에 있어서도 역시 이 허망분별이 있을 뿐이다.

 

故說一切法 非空非不空, 有無及有故 是則契中道。

그러므로 일체법은 공 아닌 비공(非空)이고, 

공성(空性) 허망한 마음의 망심(妄心) 있으므로 공(空)이 아니고, 

불공도 아닌 비불공(非不空)이라고 말하나니,

→능취와 소취 또는 자아와 법이 없기 때문에 불공(不空) 아니다.

 

허망분별, 즉 의타기성의 가유(假有)와 

2취(取), 즉 변계소집성의 실무(實無)의 비실재(無)  

실재(有)이기 때문이라.

→실재(有)는 원성실성의 실재인 실유(實有) 또는 허망분별 중에서 공성이 있다는 망중유공(妄中有空), 공성에 대해서 허망분별이 있는 공중유망(空中有妄)을 나타낸다.

 

이것이  중도에 계합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로지 ()만을 주장하는 중관학파의 청변(淸辯) 등과 같지 않고,

또한 오로지 실유(實有) 말하는 소승과 같지 않으며, 참으로 중도에 계합한다는 것을 말한다.

 

此頌且依染依他說,理實亦有淨分依他。

이 게송은 또한 잡염분의 의타기성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나, 실로는 역시 청정분의 의타기성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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