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7

 

有義初一攝自性身,說自性身本性常故,說佛法身無生滅故,說證因得,非生因故,又說法身諸佛共有,遍一切法,猶若虛空,無相無爲,非色、心故。

제2사(第二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처음의 하나인 진여(眞如)에 자성신을 포섭시키나니, 자성신은 본성이 상주하는 것이라고 '대승장엄경론' 제3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부처님의 법신은 생멸이 없다고 '유가사지론' 제78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원인을 증득해서 얻는 것으로, 생겨나게 하는 원인은 아니라고 세친의 '금강반야바라밀경론' 상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또한 법신은 모든 부처님에게 공통적으로 있으며, 제법에 두루하고, 마치 허공과 같이 무상(無相)이고, 무위(無爲)이며, 색법도 아니고 심법도 아니라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然說轉去藏識得者,謂由轉滅第八識中二障麤重顯法身故,智殊勝中說法身者,是彼依止彼實性故。

그런데 장식(藏識)을 전환해서 얻는다고 무성의 '섭대승론석' 제9권에서 말한 것은 제8식 중 이장(二障)의 추중(麤重), 즉 종자와 습기를 전환해서 단멸하고, 법신을 현현하는 것에 의거하기 때문이며,

지혜가 수승(殊勝)한 가운데에서 법신을 말하는 것은, 그 지혜의 의지처이고 그 지혜의 참다운 성품인 실성(實性)이기 때문이다.

ㅡ앞에서 1(第一師) 인용한 '섭대승론석' 9권의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아뢰야식을 전환해서 법신을 얻는다고 말한 것은, 청정법계의 진여는  지혜의 의지처이며 참다운 성품이기 때문인 것을 밝힌다.

 

自性法身雖有眞實無邊功德,而無爲故,不可說爲色心等物。

자성법신은 진실하고 가없는 공덕이 있지만, 무위이기 때문에 색법이나 심법 등의 사물이라고는 말할  없는 것이다.


四智品中眞實功德,鏡智所起常遍色身,攝自受用,平等智品所現佛身,攝他受用,成事智品所現隨類種種身相,攝變化身。

사지(四智)에 상응하는 심품 중의 진실한 화현(化現)의 공덕과, 대원경지에서 일어나는 상주하고 두루하는 색신에는 자수용신을 포섭시키고,

평등성지에 상응하는 심품이 나타낸 부처님의 색신에는 타수용신을 포섭시키며,

성소작지에 상응하는 심품이 나타낸 것인, 중생의 부류에 따른 갖가지 신상(身相)에는 변화신을 포섭시키며,

ㅡ제2(第二師) 견해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진여에는 자성신(自性身) 포함시키고, 

대원경지인 실법색신(實法色身)에는 자수용신(自受用身) 포함시키며,  

평등성지의 실법(實法)에는 자수용신을, 불신(佛身)에는 타수용신(他受用身) 포함시키며, 

묘관찰지의 실법에는 자수용신을, 설법(說法)에는 타수용신과 변화신(變化身) 포함시키며,  

성소작지의 실법에는 자수용신을, 사현된 것의 소현(所現)에는 변화신을 포함시켰다.

 

說圓鏡智是受用佛,轉諸轉識得受用故。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수용하는 부처님이라고 '대승장엄경론' 제3권에서 말하였고.

모든 전식을 전환해서 수용신을 얻는다고 무성의 '섭대승론석' 제10권에서 말한 때문이니,

이 두 가지 문장에 의해서 사지(四智) 모두가 수용신(受用身)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雖轉藏識亦得受用,然說轉彼顯法身故,於得受用,略不說之。

장식을 전환해서도 역시 수용신, 즉 자수용신(自受用身)을 얻지만, 그것을 전환해서 법신을 현현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수용신을 증득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략하여 말하지 않는다.

ㅡ앞에서 인용한 '섭대승론석'의 내용과 위배되는 점을 회통한 것이다.

 

又說法身無生無滅,唯證因得,非色心等。圓鏡智品與此相違,若非受用,屬何身攝?

또한 법신은 생함도 멸함도 없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이고, 오직 원인을 증득함으로써 얻으며, 색법이나 심법 등은 아니라고 말하나니,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이것과 서로 다르며, 만약 수용신이 아니라면, 어떤 불신에 포함되겠는가?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은 그것과 다르므로, 오법(五法) 중에서 진여는 자성신에 포함되고, 대원경지는 수용신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又受用身攝佛不共有爲實德,故四智品實有色心皆受用攝。

또한 수용신에는 부처님의 불공(不共, 십팔불공법)ㆍ유위의 덕(實德)을 포함하므로, 따라서 사지(四智) 상응하는 심품의 실유(實有)의 색법ㆍ심법은 모두 수용신에 포함된다.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중생이나 2() 물론이고 보살과도 함께하지 않는, 부처님만이 갖추신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으로, 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ㆍ삼염주(三念住)ㆍ대비(大悲)를 말한다.

 

又他受用及變化身皆爲化他方便示現,故不可說實智爲體。雖說化身智殊勝攝,而似智現或智所起,假說智名,體實非智。

또한 타수용신과 변화신 모두는 타인을 교화하기 위해 방편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참다운 지혜인 실지(實智)로써 체(體)를 삼는다고는 말할  없으니,

변화신은 지혜의 뛰어남에 포섭된다고 말하지만, 지혜로 사현하고 혹은 지혜에서 일으켜지므로 가정적으로 지혜라고 이름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그 자체는 지혜가 아니며,

앞에서 인용한 '섭대승론석' 9권에서 지혜의 뛰어남인 지수승(智殊勝) 3() 포함한다고 말한 내용을 회통한다.

 

但說平等、成所作智能現受用三業化身,不說二身卽是二智,故此二智自受用攝。

다만 평등성지가 변현한 수용신과 성소작지가 변현한 삼업(三業) 변화신을 능히 현현한다고만 말하며,

 가지 불신이   가지 지혜라고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가지 지혜는 자수용신에 포함되는 것으로, 실제로는 상분(相分), 견분(見分)으로 사현하는 것이다.

ㅡ앞에서 평등성지는 수용신을 현현하고, 성소작지는 3업의 변화신을 나타낸다고 말한 내용을 해석한 것이다.


然變化身及他受用雖無眞實心及心所,而有化現心、心所法,無上覺者神力難思,故能化現無形質法。

그러나, 변화신과 타수용신은 비록 진실한 심왕과 심소(心所)는 없지만 변화로써 나타난 심왕과 심소법은 있다고 '불설불지경(佛說佛地經)'에서 말하였으며,

최상의 깨달음인 무상각(無上覺)은 신통력을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능히형질(無形質)의 법도 변화로써 나타내는 것이다.


若不爾者,云何如來現貪、瞋等?久已斷故。云何聲聞及傍生等知如來心?如來實心等覺菩薩尚不知故。由此經說化無量類皆令有心,又說如來成所作智化作三業,又說變化有依他心,依他實心相分現故。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여래께서 탐욕ㆍ성냄 등을 나타내겠는가? 오래전에 이미 끊었기 때문이며,

어떻게 성문  축생 등이 여래의 마음을 알수 있겠는가? 여래의 참다운 마음은 등각(等覺)의 보살조차도 오히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의거해서 경전, '열반경'에서 수많은 부류를 변화해서 모두 심법이 있게 한다고 말하였으며,

또한 여래의 성소작지는 삼업(三業) 변화해서 짓는다고 '해심밀경' 제5권에서와 '유가사지론' 제78권에서 말하였으며,

또한 변화신에는 의타기심이 있다고  '유가사지론' 제 58권에서 말한 것이니,

타인의 참다운 마음에 의지해서 상분으로서 현현하기 때문이다.

ㅡ'유가사지론' 58권에서 (根)ㆍ심왕(心王)ㆍ심소(心所)ㆍ업(業)과 업과(業果)의 4 가지 변화할  없다고 말한 내용을 회통한 것이다.


雖說變化無根心等,而依餘說不依如來,又化色根心心所法無根等用,故不說有。

변화신(變化身)에는 감각기관과 심법 등이 없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에 의거해서 말한 것일 뿐, 여래에 의거한 것이 아니며, 또한 변화신의 근(根)ㆍ심왕(心王)ㆍ심소법(心所法) 감각기관(根) 등의 작용이 없기 때문에 실재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ㅡ3() 갖춘 공덕의 차이점을 판별한, 제삼삼신공덕각이문(第三三身功德各異門).


如是三身雖皆具足無邊功德,而各有異,謂自性身唯有眞實常、樂、我、淨,離諸雜染,衆善所依,無爲功德,無色、心等差別相用,

이상과 같은 변화신(變化身), 자성신(自性身), 자수용신(自受用身)의  가지 불신의 삼신(三身) 모두 무변한 공덕을 구족하였지만, 각각 다른 점이 있으니,

자성신(自性身)은 오직 진정한 상주함의 상(常), 즉 열반의 경지는 생멸ㆍ변천함이 없이 상주하는 덕,

안락함의 낙(樂), 즉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無爲)의 안락한 덕

참다운 자아의 아(我), 즉 허망하게 집착하는 자아를 버리고 여덟 가지 대자재(大自在)가 있는 참다운 진아(眞我)의 덕

청정함의 정(淨), 즉 번뇌의 더러움인 구(垢)를 여의어서 담연청정(湛然淸淨)함의 덕인 사덕(四德) 만이 있으며, 모든 잡염을 버린 갖가지 선(善)의 의지처이며, 무위의 공덕이고, 색법ㆍ심법 등의 차별된 상(相)과 작용이 없는 것이다. 

 

自受用身具無量種妙色心等眞實功德,若他受用及變化身,唯具無邊似色心等利樂他用化相功德。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수많은 종류의 승묘한 색법과 심법 등의 참다운 공덕을 갖추었으니, 타수용신  변화신은 오직 무변하게 사현된 색법ㆍ심법 등이 남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작용인, 변화된 모습의 공덕만을 갖춘 것이다.

 

又自性身正自利攝,寂靜安樂無動作故。亦兼利他,爲增上緣,令諸有情得利樂故。又與受用及變化身爲所依止,故俱利攝。自受用身唯屬自利。若他受用及變化身唯屬利他,爲他現故。

또한 자성신(自性身)은 진정으로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에 포섭되나니, 적정하고 안락한 것으로서동작(無動作)이기 때문이며,

역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겸하기도 하나니, 증상연이 되어 많은 유정에게 이로움과 안락함의 이락(利樂)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수용신과 변화신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모두 이롭게 하는 자리(自利)ㆍ이타(利他) 포섭되며,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오직 자신을 이롭게 하는 자리(自利) 속하며,

타수용신  변화신은 오직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 속하는 것이니,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현현되기 때문이다.

ㅡ3() 자리(自利)ㆍ이타(利他) 포함관계를 판별한, 제사삼신이리문(第四三身二利門).


又自性身依法性土,雖此身土體無差別,而屬佛法相性異故。此佛身土俱非色攝,雖不可說形量小大,然隨事相,其量無邊,譬如虛空,遍一切處。

또한 자성신(自性身)은 법성토(法性土)에 의지하나니, 이 신토(身土)의 자체에는 차별이 없지만, 부처님과 법에 속하는 양상(佛)과 체성(法)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신체(身)와 국토(土)는 모두 색법에 포섭되지 않으니, 비록 형상과 양(量)의 크고 작음을 말할 수는 없지만, 사물의습을 따라서 말한다면  양이 무변하나니, 비유하자면 허공이 모든 곳에 두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ㅡ3() 의지처인 국토를 판별한, 제오삼신소의토분별문(第五三身所依土分別門).

 

법성토(法性土)에서의 토(土)는 장애인 질애(質礙)가 있는 색법을 말하는 것이 아닌, 오직 진여의 이체인 이(理)에 굳이 국토라는 명칭을 시설한 것일 뿐이다.

 

自受用身還依自土,謂圓鏡智相應淨識,由昔所修自利無漏純淨佛土,因緣成熟,從初成佛盡未來際,相續變爲純淨佛土,周圓無際,衆寶莊嚴,自受用身常依而住。如淨土量身量亦爾,諸根相好一一無邊,無限善根所引生故。功德智慧旣非色法,雖不可說形量大小,而依所證及所依身,亦可說言遍一切處。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오히려 자기 국토에 의지하나니, 자수용신은 신체를 떠나서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국토(土)가 곧 신체(身)이다.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청정식이 예전에 닦은 자리(自利)의 무루이고 순수하고 청정한 불국토의 인연이 성숙함에 의하여, 처음 성불할 때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상속해서 순수하고 청정한 불국토를 만들어 내나니, 두루하고 끝이 없으며, 갖가지 보배로 장엄된 것이고, 자수용신이 항상 의지해서 머무는 곳이다. 

정토의 크기와 같이 불신의 크기도 역시 그러하니, 제근(諸根)의 상(相) 하나하나가 무변하고 무량한 선근에 이끌려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공덕과 지혜도 이미 색법이 아니므로 비록 형상과 양의 크고 작음을 말할 수는 없지만, 증득하여진 진여와 의지처인 불신에 의거해서 모든 곳에 두루한다고 말할  있는 것이다.


他受用身亦依自土,謂平等智大慈悲力,由昔所修利他無漏純淨佛土,因緣成熟,隨住十地菩薩所宜;變爲淨土,或小或大,或劣或勝,前後改轉,他受用身依之而住,能依身量亦無定限。

타수용신(他受用身)도 역시 자기 국토에 의지하나니, 평등성지가 대자비의 힘에 의해, 예전에 닦은 이타(利他)의 무루이고 순수하며 청정한 불국토의 인연이 성숙함으로써, 10지 중에 있는 보살의 근기를 따라 정토를 만들어 내나니,

작기도 하고 혹은 크기도 하며, 혹 열등하기도 하고 혹은 뛰어나기도 해서 이전과 이후가 다르게 전변하나니,

타수용신은 그것에 의지해서 머물며, 의지하는 주체인 불신의 크기도 한정이 없는 것이다.


若變化身依變化土,謂成事智大慈悲力由昔所修利他無漏淨穢佛土因緣成熟,隨未登地有情所宜化爲佛土或淨或穢或小或大,前後改轉,佛變化身依之而住,能依身量亦無定限。

변화신(變化身)은 변화한 국토에 의지하나니, 성소작지가 대자비의 힘에 의해 예전에 닦은 이타행의 무루의 정토와 예토의 인연이 성숙함으로써, 아직 10지에르지 못한 유정의 근기를 따라 불국토를 만들어 내나니,

혹 정토이기도 하고  예토이기도 하며, 혹 작기도 하고 혹 크기도 한 것으로, 이전과 이후가 다르게 전변하는 것이니,

부처님의 변화신은 그것에 의지해서 머무나니, 의지하는 주체인 불신의 크기도 역시 한정이 없는 것이다.


自性身土一切如來同所證故,體無差別。自受用身及所依土雖一切佛各變不同,而皆無邊,不相障閡。餘二身土隨諸如來所化有情,有共不共,所化共者,同處同時諸佛各變爲身爲土,形狀相似,不相障閡,展轉相雜,爲增上緣。令所化生自識變現,謂於一土有一佛身,爲現神通說法饒益。

자성신(自性身)의 신체(身)와 국토(土)는 모든 여래가 똑같이 증득한 것이므로 자체에 차별이 없으며,

자수용신(自受用身)의 신체(身)와 의지처인 국토(土)는 모든 부처님의 각각 변화함이 다르지만, 모두 무변하며, 서로 장애하지 않으며,

나머지 타수용신과 변화신, 두 가지의 신체(身)와 국토(土)는 모든 여래가 교화 받는 유정을 따라 함께하는 것도 있고 함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교화 받는 유정이 함께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으니,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여러 부처님이 각각 변화하여 신체(身)와 국토(土)가 되고, 형상이 서로 비슷해서 서로 장애하지 않으며, 전전하면서 서로 섞이어서 증상연이 되며, 교화 받는 중생 자신의 식(識)으로 변현하게 하나니, 하나의 국토(土)에 한 분의 불신이 있어서 그들을 위하여 신통을 나타내고 법을 설하여 요익하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ㅡ3() 모든 부처님의 신체ㆍ국토가 교화하는 것의 같고 다른 점을 판별한, 제육삼신신토소화동이문(第六三身身土所化同異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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