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대승론(攝大乘論) 상권 9
아 승 가(阿 僧 伽, 무착) 지음. 불타선다(佛陀扇多) 한역. 김묘주 번역
如常無常不二,如是苦樂不二`淨不淨不二`空不空不二`有我無我不二`定不定不二`有性無性不二`有生不生不二`滅不滅不二`永定不永定不二`性滅不性滅不二`世閒涅槃不二,如是等句差別,諸佛一切密語,以此三種性句隨順,應知如常等諸句中說。
於中有偈:
상주(常住)ㆍ무상(무無常)ㆍ상주도 무상도 아닌 것과 같이,
괴로움(苦)ㆍ즐거움(樂)ㆍ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님과
청정(不淨)ㆍ부정(淨)ㆍ청정도 부정도 아님과 공(空)ㆍ불공(不空)ㆍ공도 불공도 아님과
자아ㆍ무아ㆍ자아도 무아도 아님과
고요함의 정(定)ㆍ고요하지 않음의 부정(不定)ㆍ고요함도 고요하지 않은 것도 아님과,
자성이 있는 유성(有性)ㆍ자성이 없는 무성(無性)ㆍ자성이 있음도 자성이 없는 것도 아님과,
생겨남의 유생(有生)ㆍ생겨나지 않음의 불생(不生)ㆍ생겨남도 생겨나지 않는 것도 아님과
소멸의 멸(滅)ㆍ불멸(不滅)ㆍ소멸도 불멸도 아님과,
영원히 고요한 영정(永定)ㆍ영원히 고요지 않은 불영정(不永定)ㆍ영원히 고요함도 아니고 영원히 고요하지 않은 것도 아님과,
자성적멸의 성멸(性滅)ㆍ자성적멸이 아닌 불성멸(不性滅)ㆍ자성적멸도 아니고 자성적멸이 아닌 것도 아님과,
세간ㆍ열반ㆍ세간도 열반도 아닌 것 역시 그러하나니,
이와 같은 문구의 차별은 모든 부처님의 비밀스런 뜻의 말씀이니, 이 세 가지 자성의 문구로써 마땅히 수순해야 하나니, 상주 등의 모든 문구에서 말한 바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如諸法所無, 及如見非一, 如是法非法, 不二義所說。
제법이 존재하지 않으나, 지금 한 종류가 아닌 것과 같이, 즉 법은 실재하지 않으나 무량한 종류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법이고 법이 아닌 것이니,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뜻에서 말하는 바이네.
彼一分事故, 亦說名爲事, 二分不名事, 非事眞實說。
그 한 부분의 일분(一分)에 의거함으로써, 역시 존재라고 말하나니,
두 부분의 이분(二分)에서 보면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것이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네.
如見非如有, 是故說爲見, 如是彼亦見, 是故說爲無。
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나, 본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그것은 역시 볼 수 있으므로,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무(無)라 말하는 것이네.
自體自無故, 自事中不住, 取者本亦無, 故說爲無性。
자체 스스로가 존재하지 않는 무(無)이므로, 자체에 머물지 않으며,
취하는 것 역시 본래 존재하지 않는 무(無)이므로, 자성이 없는 무성(無性)이라 말하네.
無性義故成, 上上依義故, 無生亦不滅, 永寂性滅故。
자성이 없는 무성(無性)의 뜻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다음다음의 의지처의 뜻이기 때문이네.
생겨남도 없고 역시 소멸함도 없으며, 영원히 고요하여 자성이 적멸한 성멸(性滅)이기 때문이네.
然有四種意趣故,及有四種密語漸次,一切佛語隨順解釋應知。一者法同意趣故,所謂我是無量無邊時,號曰毘婆尸正眞正覺;二者時節意趣,所謂若稱多寶如來名者,卽定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無量壽經說,若有衆生願取無量壽世界卽生爾.
그런데 네 가지의 취지인 사종의취(四種意趣)와 네 가지 비밀스런 말인 사종밀어(四種密語)의 순서가 있으니,
이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으로서 마땅히 수순해서 해석해야 하는 것으로,
첫째는 법이 동등한 취지인 법동의취(法同意趣)이니, 이른바 “나는 무량한 옛적에 비바시정진정각(毘婆尸正眞正覺)이라 이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둘째는 시절의 취지인 시절의취(時節意趣)이니, 소위 “만약 다보여래의 명호를 부르는 이는 결정적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또한 '무량수경'에서 “만약 어떤 중생이 무량수세계를 발원하면 곧 왕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三者義中閒意趣,如經所說,供養若干如許恒沙等,供養親近已得解大乘義爾;
四者順衆生心意趣,所謂或有衆生讚行布施,彼者復謗毀說。如是布施,如是持戒,及餘者說修事。是以故,說四種意趣。
셋째는 의미 중에서 다른 취지인 의중간의취(義中閒意趣)이니, 경전에서 “조금만 공양해도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친근함과 같으며, 대승법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넷째는 중생의 마음에 수순하는 취지인 순중생심의취(順衆生心意趣)이니, 혹 어떤 중생을 위해서 보시를 찬탄하고 다시 비방함과 같으니, 보시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지계와 나머지 수행도 역시 그러한 것으로,
이러한 까닭에 네 가지 취지의 사종의취(四種意趣)를 말하는 것이다.
四種密語漸次,一者勸發漸次,所謂或聲聞乘,或大乘中衆生法性勝故,順世諦理所說;二者相漸次,隨所法相說中示現;三者對治漸次,隨所說八萬四千衆生行;四者發願漸次,隨所異義言音聲字義餘說隨所。有偈:
네 가지 비밀스런 말의 사종밀어(四種密語)의 순서는 다음과 같으니,
첫째는 권하여 일으키는 순서인, 권발점차(勸發漸次)이니, 성문승에서 혹은 대승에서 중생과 법의 자성인 법성(法性)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은, 세속제의 도리에 수순해서 말한 바이며,
둘째는 상의 순서인 상점차(相漸次)이니, 이러함으로써 제법의 상(相)을 나타내 보이며,
셋째는 다스림의 순서인 대치점차(對治漸次)이니, 이곳에서 8만 4천 가지의 중생행을 말하는 것이며,
넷째는 발원의 순서인 발원점차(發願漸次)이니, 여기에서는 별도의 의미로써 언어ㆍ음성ㆍ문자의 뜻이 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함에 대한 게송이 있으니,
非實而作實, 顚倒中善住, 煩惱善染故, 得無上菩提。
견고하지 않음의 비실(非實)을 견고함의 실(實)로 삼아서 전도됨에 잘 머물며
번뇌에 잘 물들기 때문에 최상의 무상보리를 얻네.
欲解釋大乘經者,彼應以三種相差別故,略作解釋:一者因緣說`二者因緣所生諸法相說`三者以說聞義故說。
대승경전을 해석하려는 이는 마땅히 대략 세 가지 상(相)의 차이에 의거해서 해석해야 하나니,
첫째는 인연(因緣)을 말하고,
둘째는 인연에 의해 생겨난 제법의 상을 말하며,
셋째는 의미를 말하나니, 들음에 의해서 말하는 것이다.
是中因緣集說者,如說言習所生法,彼如是還彼報識,順識中迭互緣故生。
이 중에서 인연을 모아서 말한다는 것은 “언어의 훈습에서 생겨난 법, 그것은 다시 그것의 보식(報識, 과보식)에 수순하는 순식(順識, 전식)이 다시 서로 조건이 되어 생겨나네”라고 말한 바와 같으며,
순식(順識), 제8 아리야식을 제외한 일곱 가지 식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생기식(生起識)ㆍ전식(轉識)이라고 한다.
彼復順識相諸法,同念見識性。然彼憶持相分別相及法體相,是以此示現三種性相成。如說同念見者,彼知三相爾。
그 수순하는 순식상(順識相)의 제법은 다 같이 염식(念識, 유상식有相識, 상분)과 견식(見識, 유견식有見識, 견분)이 있는 자성(性)이며, 그것은 생각하여 지니는 억지(憶持)의 상이고, 분별의 상이며, 법의 자체인 상인 법체상(法體相)인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세 가지 자성의 삼종성상(三種性相成)을 나타내는 것이니,
“다 같이 염식(念識, 유상식有相識, 상분)과 견식(見識, 유견식有見識, 견분)이 있으니, 그 세 가지 삼상(三相)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바와 같은 것이다.
云何復彼相解釋分別相者,他性中無,成就性中有,彼二有無。有覺無覺`有見無見,眞實同時,彼他性中,依非衆生分別,衆生成就者,行彼覺故,彼不覺,如說分別,他性中成就,彼處有不覺及覺故。略說彼二邊.
또한 그 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인가?
분별상은 의타성 중에서는 비존재의 무(無)이고,
성취성은 존재하는 유(有)이니, 그 두 가지의 유무(有無)와
인식할 수 있음의 각(覺)과 인식할 수 없음의 무각(無覺)과
진실을 보지 못하는 유견(有見)과 진실을 보는 무견(無見)이 동시에 있으니,
그 의타성 가운데 중생의 분별성은 존재하지 않으나, 중생의 성취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작용(行)할 때 그것을 인식(覺)하면 곧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불각(不覺)이니,
게송에서 “망분별성과 의타성 가운데에 성취성이 있네.
인식하지 못하는 불각(不覺)함과 인식의 각(覺)이 있기 때문에 간단히 그 두 가지 극단의 이변(二邊)을 말한다네”라고 한 바와 같은 것이다.
所說義解釋,所謂先已說句,餘句示現彼分別,或功德增上故`或義增故。功德增者,所謂說佛功德善覺慧,不二行無相法,究竟佛行行故。得一切佛法,到無障道,不退轉法,無障境界,不思住.
설하여진 내용의 의미를 해석한다면, 먼저 문구(句)를 말하는 것이고, 다음에 나머지 문구로써 분별하여 나타낸 것이며, 혹은 공덕이 매우 뛰어난 때문이고, 혹은 의미가 매우 뛰어난 때문이다.
공덕의 매우 뛰어남이란 부처님의 공덕을 말하는 것이니, 매우 청정한 깨달음의 선각혜(善覺慧)이고, 두 가지가 현행하지 않는 불이행(不二行)이며, 무상법(無相法)이고, 부처님의 행을 궁극적으로 모두 행하는 구경불행행(究竟佛行行)이며, 모든 불법을 증득한 득일체불법(得一切佛法)이고, 장애가 없는 도에 이른 도무장도(到無障道)하신 것이다.
외도 등에 의해 퇴전하지 않는 불퇴전법(不退轉法)으로서 장애가 없는 경계이고, 불사의함에 안주하는 것이다.
ㅡ여래의 경계에 대해서 우선 총덕(總德, 최청정각最淸淨覺)을 설한 후에 21가지의 별덕(別德)을 들어서 그 원만함을 나타낸다.
達三世,遍一切世界身,一切法無疑,知一切成就慧無疑,諸法知,無分別知。一切菩薩正受智,不二佛行得最究竟,不離如來解脫智盡,至無邊中佛地,通達法界,最虛空界盡爾。
삼세에 통달하고, 모든 세계에 두루 몸을 나타내는 변일체세계신(遍一切世界身)이며, 제법에 대해서 의심이 없으며, 일체를 아는 지혜를 성취하셨으며,
제법에 대한 지혜가 의혹이 없는 무의(無疑)이고, 무분별(無分別)을 아는 것이며,
모든 보살이 바로 수용하는 지혜인 정수지(正受智)인 것이다.
두 가지가 아닌, 불이(不二)의 부처님의 행으로 최상의 궁극적인 최구경(最究竟)을 증득하였으며,
여래의 해탈 지혜를 떠나지 않고 다 이루나니, 중간과 이변(二邊)이 없는 부처님 지위에 이르러서,
법계를 통달하며, 최허공계(最虛空界)를 이루어 미래 세상을 다하는 것이다.
善覺佛者,此句餘句所解釋應知。如是善說法體成。善覺慧者,此善覺慧諸佛如來,十九種諸佛功德攝成應知。
매우 청정한 깨달음의 선각(善覺)의 부처님이란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문구는 나머지 문구로써 해석되는 것이니, 이렇게 해서 법의 체성을 잘 말하게 되는 것이며,
매우 청정한 깨달음의 지혜인 선각혜(善覺慧)란, 부처님 여래의 매우 청정한 깨달음이니, 이것에 19 가지의 불공덕이 포섭되는 것이다.
智中一向無障,無分別功德,事`非事二相眞如最淨,說自然佛所作不休息行功德`法身中身心業無分別功德`一切障對治功德`降伏一切外道功德`世閒生世閒法不能染功德`法住功德,受記功德`一切世界中示現報身應身功德`決疑功德,種種行入功德`未來生法智功德`隨信示現功德`無量身化衆生行功德`同法成波羅蜜功德`異佛世界隨信示功德`三種佛身說法不斷功德,乃至世閒際一切衆生助成一切樂及無量功德,因此說故。
지혜에 대해서 한결같이 장애가 없는 지중일향무장(智中一向無障)이고,
분별이 없는 무분별공덕(無分別功德)이며,
존재와 비존재의 두 가지의 이상(二相)이 없는 진여의 가장 청정함에서 자연스럽게 불사(佛事)를 지으며,
쉬지않고 행하는 공덕이며, 법신의 의지처(身)ㆍ심(心)ㆍ업(業)에 대해서 분별이 없는 무분별공덕(無分別功德),
모든 장애를 다스리는 일체장대치공덕(一切障對治功德), 모든 외도를 항복시키는 공덕,
세간에 머물러도 세간법에 오염되지 않는 공덕, 정법에 안주하는 법주공덕(法住功德), 수기(授記)하는 공덕,
일체 세계에서 보신과 응신을 나투는 공덕, 의심을 완전히 끊은 결의공덕(決疑功德),
갖가지 행에 들어가게 하는 공덕, 미래에 법의 지혜를 일으키는 공덕, 믿음을 따라 시현하는 공덕,
무량신(無量身)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가행 공덕, 평등한 법으로 바라밀을 성취하는 공덕,
믿음을 따라 다른 불세계를 시현하는 공덕, 세 가지 불신의 설법이 중단되지 않는 공덕,
나아가 세간이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도와서 일체의 즐거움을 이루는 공덕,
다함이 없는 무량(無量)공덕이니, 이로 인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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