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6권 7
번뇌심소와 8식의 상응관계를 밝힌다
此十煩惱,何識相應?藏識全無,末那有四,意識具十。五識唯三,謂貪、瞋、癡。無分別故,由稱量等,起慢等故。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10 가지 번뇌심소는 어떠한 식(識)과 상응하는 것인가?
장식(藏識)에서는 전혀 없으나, 말나식에는 치(癡, 아치)ㆍ유신견(有身見, 살가야견)ㆍ만(慢, 아만)ㆍ탐(貪, 아애) 의 4 가지 심소가 있으며
의식(意識)에서는 10 가지 모두를 갖고 있으며,
5식(五識)에서는 오직 세 가지이니, 탐ㆍ진ㆍ치 심소가 있으니,
5식(五識)에는 수념분별과 계탁분별이 없기 때문에, 만ㆍ의(疑) 등의 심소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고, 헤아리는 칭량(稱量) 등에서 만심소 등을 일으키는데, 5식(五識)은 헤아리는 작용을 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심소들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 · 악견(惡見)의 6가지 마음작용이 번뇌심소를 구성한다. 이들 중 치(癡)는 무명(無明)이라고도 하며, 악견(惡見)은 부정견(不正見)이라고도 한다.
악견(惡見)은 그 행상(行相)에 따라 살가야견(薩迦耶見: 유신견)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5견으로 세분된다. 따라서, 번뇌심소는 펼쳤을 때는 10가지가 되며 그렇지 않을 때는 6가지가 된다. -위키
번뇌심소와 5수(受)와의 상응관계를 밝힌다.
此十煩惱何受相應?貪、瞋、癡三俱生分別,一切容與五受相應。貪會違緣憂苦俱故。瞋遇順境,喜、樂、俱故。
이 10 가지 번뇌심소는 어떠한 수(受, 느낌)와 상응하는가?
탐ㆍ진ㆍ치의 3 심소는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에서도 후천적인 분별(分別)에 의해 생겨나는 것에서도 모두 5수(受)와 상응한다고 인정되는 것으로,
탐심소가 거슬리는 위연(違緣)을 만났을 때에는 우수(憂受)ㆍ고수(苦受)와 함께하게 되기 때문이고,
진(瞋)심소가 수순의 대상을 만났을 때에는 희수(喜受)ㆍ낙수(樂受)와 함께하게 되기 때문이다.
5수(五受)는 느낌 · 지각 · 정서의 마음작용인 수(受) 또는 수온(受蘊)을 5가지로 세분한 고수(苦受, 괴로움) · 낙수(樂受, 즐거움) · 우수(憂受, 슬픔) · 희수(喜受, 기쁨) · 사수(捨受, 무덤덤함, 평온)를 말한다. 줄여서 낙(樂) · 고(苦) · 희(喜) · 우(憂) · 사(捨)라고도 한다. 5수는 '증상력 즉 뛰어난 작용력을 가진 5수'라는 뜻에서 5수근(五受根)이라고도 하며, 5수의 각각을 낙근(樂根) · 고근(苦根) · 희근(喜根) · 우근(憂根) · 사근(捨根)이라고 한다.
有義俱生分別起慢容與非苦四受相應。恃苦劣薀,憂相應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의 만(慢)심소와 후천적으로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의 만(慢)심소는 고수(苦受)는 아닌 네 가지의 사수(四受)와 상응함이 인정되나니,
고수(苦受)가 있는 열등한 온(蘊)을 믿을 때에는 우수(憂受)와 상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有義俱生亦苦俱起。意有苦受前已說故。分別慢等純苦趣無。彼無邪師、邪教等故。然彼不造引惡趣業。要分別起能發彼故。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의 만(慢)심소는 역시 고수와도 함께 일어난고 하였으니, 극심한 고통의 세계에서 의식에 고수가 있다는 것은 앞의 본 논서 제5권에서 이미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만심소 등은 순전히 고통만 있는 세계에서는 없으니, 거기에는 삿된 스승이나 삿된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악취(惡趣)로 이끄는 업을 짓지 않으니, 반드시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써 능히 만(慢)심소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유가사지론' 제59권에서 설하였다.
疑、後三見容四受俱。欲疑無苦等,亦喜受俱故。二取若緣憂俱見等,爾時,得與憂相應故。
의(疑)심소와 나머지의 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의 3 세 악견(惡見)은 네 가지의 느낌의 사수(四受)와 함께하는 것이 인정되나니, 욕계에서 고수 등은 없는 것인가라고 의심할 때에 역시 희수와 함께하기 때문이고,
두 가지 견취견이 만약 우수(憂受)와 함께하는 악견 등을 반연할 때에는 우수(憂受)와 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有義俱生身邊二見但與喜、樂、捨受相應。非五識俱,唯無記故。分別二見容四受俱。執苦俱薀爲我、我所常,斷見翻此,與憂相應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유신견ㆍ변견(邊見)은 다만 희수ㆍ낙수ㆍ사수(捨受)와 상응할 뿐, 5식과 함께하지는 않으니, 5식과 함께하지 않으므로 고수(苦受)가 없기 때문에 오직 무기이며,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유신견과 변견(邊見)은 오직 무기(無記)이므로 우수(憂受)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두 견해는 네 가지 느낌의 사수(四受)과 함께하는 것이 인정된다.
고수(苦受)와 함께하는 5온을 집착해서 아(我, 나)ㆍ아소(我所, 나의 소유)이며 상주하는 것으로 삼는다면, 단견(斷見)이 반대로 뒤집어져서 우수(憂受)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有義二見,若俱生者亦苦受俱。純受苦處,緣極苦蘊,苦相應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두 견해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는 역시 고수(苦受)와도 함께하나니, 순전히 고통만 받는 세계에서 극심한 고통의 5온을 반연할 때에는 고수와 상응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論說俱生一切煩惱,皆於三受現行可得。廣說如前。餘如前說。
논서, '유가사지론' 제59권에서 말하기를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의 일체 번뇌는 모두 세 가지 느낌의 삼수(三受)에서 현행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구체적으로는 본 논서 5권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나머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의 유신견과 변견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此依實義。隨麤相者,貪、慢、四見樂、喜、捨俱。瞋唯苦、憂、捨受俱起。癡與五受皆得相應,邪見及疑四俱除苦。
이러함은 진실된 의미의 실의(實義)에 의해 말한 것이나, 그 두드러진 추상(麤相)을 따라 말하여 밝힌다면,
5견(見) 중에서 사견(邪見)을 제외한 유신견 · 변집견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4 가지 악견과 탐ㆍ만은 낙수ㆍ희수ㆍ사수와 함께하나니, 탐ㆍ만ㆍ4 가지 악견의 행상(行相)이 오직 기쁨(欣)일 뿐이므로, 우수(憂受)ㆍ고수(苦受)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瞋)심소는 오직 고수ㆍ우수ㆍ사수와 함께 일어나나, 진(瞋)심소는 오직 근심이나 슬픔의 행상(行相)일 뿐이므로 고수ㆍ우수ㆍ사수와 함께하는 것이며,
치(癡)심소는 5수(受)와 모두 상응할 수 있으니,
사견(邪見)과 의(疑) 심소는 고수를 제외한 낙수 · 우수 · 희수 · 사수의 사수(四受)와 함께한다.
貪、癡俱樂,通下四地。餘七俱樂,除欲通三。疑、獨行癡,欲唯憂、捨。餘受俱起如理應知。
탐(貪) 심소ㆍ치(癡)심소가 낙수와 함께하는 것은 하계의 4지(地)인 욕계ㆍ초선천(初禪天)ㆍ제2선천ㆍ제3선천에 통하며,
나머지 일곱 가지가 낙수와 함께하는 것은, 오직 제6식과 함께하기 때문에, 욕계를 제외한 나머지 셋에 통한다.
의(疑) 심소 및 홀로 작용하는 치(癡)심소는 욕계로서는 오직 우수와 사수뿐이니,
나머지가 수(受, 느낌)와 함께 일어나는 것은 논리에 맞게 알아야 한다.
번뇌심소와 별경심소와의 상응관계를 밝힌다.
此與別境幾互相應?貪、瞋、癡、慢,容五俱起。專注一境得有定故。疑及五見各容四俱。疑除勝解不決定故。見非慧俱不異慧故。
이 번뇌 심소가 몇 가지의 별경심소와 서로 상응하는 것인가?
탐ㆍ진ㆍ치ㆍ만 심소는 사욕(邪欲) · 사승해(邪勝解) · 사염(邪念) · 사정(邪定) · 사혜(邪慧)의 5 심소와 함께 일어난다고 인정되며,
하나의 대상에 집중할 때에 정(定)심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疑)와 다섯 악견은 각각 4 가지 심소와 함께하는 것이 인정되나니, 의심소에서는 사승해(邪勝解)를 제외하는 것은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악견은 사혜(邪慧)심소와 함께하지 않으니, 사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별경심소(別境心所), 욕(欲, chanda) · 승해(勝解, adhimoksa) · 염(念, smrti) · 정(定, 三摩地, samādhi) · 혜(慧, prajñā)의 5가지 마음작용.
번뇌심소의 3성(性)을 판별한다.
此十煩惱何性所攝?瞋唯不善,損自他故。餘九通二。上二界者,唯無記攝。定所伏故。若欲界繫,分別起者,唯不善攝。發惡行故。若是俱生,發惡行者,亦不善攝,損自他故。餘無記攝,細不障善,非極損惱自他處故。
이 10 가지 번뇌심소는 어떠한 성(性, 성품)에 속하는 것인가?
진(瞋)심소는 오직 불선이니, 자신과 남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고,
나머지 9 가지는 불선(不善)과 무기(無記)의 두 가지에 공통되나니,
9 가지 번뇌심소가 위의 상이계(上二界)라면 오직 무기에만 포함되나니, 반드시 조복되기 때문이며,
욕계에 계박된 것이라면,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라면 오직 불선에만 포함되나니, 악행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라면, 악업을 일으키는 것은 역시 불선에 포함되니 자신과 남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고, 그 나머지는 무기에 포함되나니, 미세하여 선을 장애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거나 해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當知俱生,身邊二見唯無記攝,不發惡業。雖數現起,不障善故。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선천적으로 일어난 구생기(俱生起)의 유신견ㆍ변견은 오직 무기에만 포함되는 것으로 악업을 일으키지 않으니, 여러 번 현행하지만 선을 장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번뇌심소가 계박되는 세계를 밝힌 계박분별(界繫分別)이다.
此十煩惱何界繫耶?瞋唯在欲,餘通三界。生在下地未離下染,上地煩惱不現。在前要得。彼地根本,定者彼地煩惱容現前故
이 열 가지 번뇌심소는 어떤 세계에 계박되는가?
진(瞋)심소는 오직 욕계에만 있으나, 나머지는 3계(三界)에 통하나니,
하부 지위의 하지(下地)에 태어나 살면서 아직 열등한 잡염을 떠나지 못한 때에는 상부 지위인 상지(上地)의 번뇌를 현전하지 않으니, 반드시 그 지위의 근본정(根本定)을 얻은 자만이 그 지위의 번뇌를 현전한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번뇌심소가 상지(上地)와 하지(下地)에서 현전(現前)하는 관계를 밝힌, 상하상기문(上下相起門)이다.
상지(上地)는 여러 지(地)가 있을 때 서로를 비교하여 하위에 위치하는 지(地)에 대하여 상위에 위치하는 지(地)
하지(下地)는 여러 지(地)가 있을 때 서로를 비교하여 상위에 위치하는 지(地)에 대하여 하위에 위치하는 지(地)
謂有漏道雖 不能伏分別起惑 及細俱生 而能伏除俱生麤惑,漸次證得上根本定。彼但迷事。依外門轉,散亂麤動,正障定故。得彼定已,彼地分別、俱生諸惑,皆容現前。
모든 유루도는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의 미혹과 미세한 선천적인 구생(俱生)의 것을 조복시킬 수는 없지만, 능히 선천적인 두드러진 미혹인 구생추혹(俱生麤惑)을 조복하고 제거하여 점차 상계의 근본정을 증득하나니,
선천적인 두드러진 미혹인 구생추혹(俱生麤惑)은 다만 현상에 미혹하고 감각기관(根)에 의해 전전하며,
산란하고 두드러지게 작용하여서 바로 선정을 장애하기 때문이니,
그 선정을 증득한 뒤에 그 지위의 선천적이거나 분별에 의한 모든 미혹을 다 현전한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生在上地,下地諸惑,分別俱生皆容現起生。第四定中有中者,由謗解脫,生地獄故。身在上地,將生下時,起下潤生俱生愛故。
상부 지위인 상지(上地)에 태어나 살면서는 하부 지위인 하지(下地)의 모든 미혹은 선천적이거나 분별에 의한 것이거나 모두 현전할 수 있으며,
제4선정의 중유(中有)에 태어나는 자가 해탈을 비방함으로써 지옥에 나기도 한다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몸이 상지(上地)에 있으면서 장차 하지(下地)에 태어나고자 할 때에는, 하지(下地)에 태어남을 촉진하는 선천적인 애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중유(中有, antarabhāva), 즉 바르도(Bardo)는 불교에서 사유(死有)에서 생유(生有)로 이어지는 중간적 존재를 말하며, 중음(中陰), 중간계(中間界)라고도 한다.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① 생유(生有) ② 사유(死有) ③ 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④ 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되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而言生上不起下者,依多分說,或隨轉門。下地煩惱亦緣上地。'瑜伽'等說欲界繫貪,求上地生,味上定故。旣說瞋恚憎嫉滅道,亦應憎嫉離欲地故。摠緣諸行,執我、我所,斷常慢者,得緣上故。
'유가사지론' 제58권의 내용을 회통하자면, 상지에 태어나서 하지의 견(邊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의 세 악견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많은 것의 다분(多分)에 의해서 말한 것이거나 근기에 따른 방편문이다.
하지의 번뇌는 역시 상지도 반연하나니, '유가사지론' 등에서 욕계에 계박된 탐(貪)심소가 상지에 태어남을 구하고, 상지의 선정을 음미한다고, '유가사지론' 제 62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진(瞋)심소는 멸제ㆍ도제를 싫어하고 질투한다고, '유가사지론' 제 58권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역시 욕망을 떠난 지위도 싫어하고 질투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모든 행(行)을 반연해서 아(我, 나)ㆍ아소(我所, 나의 소유)로 집착하여서 단멸이나 상주하는 것이라고 여겨서 거만한 자는 상지를 반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餘五緣上其理極成。而有處言貪、瞋慢等不緣上者,依麤相說或依別緣。不見世閒執他地法爲我等故。邊見必依身見起故。
나머지 치(癡)ㆍ의(疑)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의 5 가지 번뇌심소는 상지(上地)를 반연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논리가 매우 타당하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과 '유가사지론' 제58권ㆍ제59권에서 탐ㆍ진ㆍ만 심소 등이 상지를 반연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두드러진 추상(麤相)에 의해서 말하거나 혹은 별도로 자신을 반연하여 나(我)로 삼는 것을 반연하는 것에 의해 말한 것이니,
세간에서 다른 지위의 법에 집착해서 자아 등으로 삼는 것을 보지 못하는 때문이고,
변견은 반드시 유신견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上地煩惱亦緣下地。說生上者於下有情,恃己勝德而陵彼故。摠緣諸行,執我、我所斷常愛者,得緣下故。疑後三見如理應思。而說上或不緣下者,彼依多分,或別緣說。
상지(上地)의 번뇌도 역시 하지(下地)를 반연하나니,
상계에 태어나는 자가 하계의 유정에 대해서, 자신의 뛰어난 덕을 믿어서 그들을 멸시한다고, '유가사지론' 제59권에서 말하기 때문이며,
총체적으로 여러 행을 반연하여 아(我, 나)ㆍ아소(我所, 나의 소유)라는 유신견이나,
단멸ㆍ상주한다는 변견에 집착해서 애착하는 자는 하지를 반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疑)와 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의 세 악견은 논리에 맞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나, 상계의 미혹은 하계를 반연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많은 것의 다분(多分)에 의한 것이거나 또는 별도로 반연하여서 말한 것이라고, '유가사지론' 제58권에서 말한 것을 회통한다.
번뇌심소와 유학(有學) 등에 속하는 관계를 밝힌, 학등분별(學等分別)이며,
번뇌심소는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에 포함된다.
此十煩惱學等何攝?非學、無學,彼唯善故。
이 10 가지 번뇌는 유학(有學) 등에 대해서는 무엇에 포함되는 것인가?
유학도 무학도 아닌 것이니, 이 아니다.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은 오직 선(善)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此十煩惱何所斷耶?非非所斷,彼非染故。分別起者唯見所斷。麤易斷故。
若俱生者唯修所斷。細難斷故。見所斷十實俱頓斷。以眞見道摠緣諦故。
이 열 가지 번뇌가 단멸되는 번뇌인 소단(所斷) 중에서는 어떠한 것인가?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비소단(非所斷)이 아니니, 단멸해야 할 것이 아닌 비소단법(非所斷法)은 잡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의 번뇌심소는 오직 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일 뿐이니, 두드러져서 단멸하기가 쉽기 때문이며,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의 것은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수도단(修所斷)일 뿐이니, 미세하여 단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견도에서 단멸되는 10 가지는 참으로 단박에 단멸되는 될 수 있으니, 진견도(眞見道)는 4성제(四聖諦)를 총체적으로 반연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