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10권 4
云何四智相應心品?一大圓鏡智相應心品,謂此心品離諸分別,所緣行相微細難知,不忘不愚一切境相,性相淸淨離諸雜染,純淨圓德現種依持,能現能生身土智影,無閒無斷窮未來際,如大圓鏡現衆色像;
무엇이 네 가지 지혜인 사지(四智)와 상응하는 심품인(心品)가?
제1은 대원경지(大圓鏡智)에 상응하는 심품이니, 이 심품은 모든 분별을 떠나고 소연(所緣, 인식대상)도 행상(行相, 인식작용)도 미세하여 알기 어려우며,
모든 경상(境相, 대상)에 대하여 현전하는 불망(不忘)이며 미혹함이 없는 불우(不愚)이며, 체성(자체분)도 체상도 청정하고, 모든 잡염을 떠난 것이며,
순수하고 청정하며 원만함의 덕(德)이 있고 현행(現行)의 공덕과 종자의 공덕 의지처이며,
자수용(自受用)의 신체와 국토, 지혜(나머지 3가지 지혜)의 영상을 능히 현현하여 생겨나게 하며,
미래세가 다하도록 중단이 없고(시간적) 끊어짐이 없으니(공간적),
마치 크고 원만한 거울에 많은 사물의 영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ㅡ네 가지 지혜인 사지(四智)의 체(體)를 드러내어 차이를 판별한, 제일출체변지차별문(第一出體辦智差別門).
대원경지(大圓鏡智), 유루의 제8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아뢰야식 안의 모든 잡염법이 소멸되어 한 점의 티끌도 없는 크고 원만한 거울인 대원경(大圓鏡)과 같이 된 상태이다.
자신과 진여법계가 하나로 됨으로써, 우주 전체가 대원경처럼 변화되어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듯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아는 원만한 지혜이며, 불과(佛果)에서 처음으로 얻는다.
二平等性智相應心品,謂此心品觀一切法自他有情悉皆平等,大慈悲等恒共相應,隨諸有情所樂示現受用身土影像差別,妙觀察智不共所依,無住涅槃之所建立,一味相續窮未來際;
제2는 평등성지(平等性智)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이니, 이 심품은 일체법과 자타의 유정 모두 다 평등하다고 관찰하고 대자비 등(열 가지 평등 중에서 나머지 여덟 가지)과 항상 함께 상응한다.
모든 유정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수용신과 수용토의 모습의 차이를 나타내 보이며, 묘관찰지의 불공(不共)의 의지처이며, 무주처열반이 건립한 것이며, 미래세가 다하도록 한 부류인 일미(一味)로 상속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평등한 성품의 평등성(平等性)은 진여를 말한다. 진여는 체성이 평등하여 일체법에 두루하므로 평등성이라고 한다. 또한 지혜가 그것을 반연하므로 평등성지(平等性智)라고 한다.
유루의 제7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며, 통달위에서 그 일부분을 얻고, 불과(佛果)에 이르러 그 전분(全分)을 증득하며, 말나식(末那識)에서 자아 집착하는 아집(我執) 작용에 의한 모든 차별심이 소멸되어 일체를 평등하게 보며, 대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제도 활동을 하게 된다.
三妙觀察智相應心品,謂此心品善觀諸法自相共相無㝵而轉,攝觀無量摠持定門及所發生功德珍寶,於大衆會能現無邊作用差別皆得自在,雨大法雨,斷一切疑,令諸有情皆獲利樂;
제3은 묘관찰지(妙觀察智)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이니, 이 심품은 제법의 자상(自相, 자체상)과 보편적인 특질인 공상(共相)을 관찰하는 데 걸림없이 전전하며, 수많은 다라니와 선정의 방법 및 생겨난 공덕인 6바라밀ㆍ10력(力) 등의 보배를 거두어 관찰한다.
대중의 집회에서 능히 무량한 갖가지의 작용을 나타내는 데 모두 자재하며, 큰 법의 비인 대법우(大法雨)를 내리고, 모든 의심을 끊으며, 많은 유정들로 하여금 모두 이익과 안락함을 얻게 한다.
묘관찰지(妙觀察智), 유루의 제6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며,
‘묘(妙)’는 불가사의한 힘의 자재를 말하고, ‘관찰’은 제법을 관찰하여 정통하는 것이다.
의식(意識)에서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상태가 변화되어서 모든 사물의 자상(自相, 자체상)과 보편적인 특질인 공상(共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서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내고, 훌륭하게 법을 설하여 모든 의심을 끊게 한다.
四成所作智相應心品,謂此心品爲欲利樂諸有情故,普於十方示現種種變化三業,成本願力所應作事。
제4는 성소작지(成所作智)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이니, 이 심품은 많은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널리 시방에서 갖가지 변화의 삼업(三業)을 나타내 보여서 본원력의 해야 할 일들을 성취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 불과(佛果)에 이르러 유루의 5식인 전호식(前五識)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며, 본원(本願)의 해야 할 일을 마치는 지혜로서, 5식의 감각작용적인 상태가 변화되어 3업(業)으로 여러 변화신을 보여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한다.
如是四智相應心品雖各定有二十二法,能變所變種現俱生,而智用增以智名顯。
이상과 같이 사지(四智)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반드시 5 가지 변행심소와 5 가지 별경심소와 11 가지 선심소 및 자체의 심왕을 합한 22 가지 법이 전변하는 자체분(自體分)ㆍ 전변된 견분과 상분ㆍ종자ㆍ현행과 함께 일어나지만, 지혜의 작용이 증성하기 때문에 지혜라는 명칭으로써 나타낸다.
ㅡ사지(四智)에 상응하는 심품에 몇 가지 심왕과 심소가 있는가를 판별한, 제이상응다소문(第二相應多少門)
故此四品摠攝佛地一切有爲功德皆盡。
그러므로 이 네 가지의 사심품(四心品)에 전체적으로 부처님 지위의 모든 유위의 공덕을 전부 섭수하는 것이다.
ㅡ사지(四智)의 체(體)로써 작용을 포섭함을 판별한, 제삼이체섭용문(第三理體攝用門).
此轉有漏八七六五識相應品如次而得,智雖非識而依識轉,識爲主故說轉識得。又有漏位智劣識强,無漏位中智强識劣,爲勸有情依智捨識,故說轉八識而得此四智。
이것은 유루의 제8식ㆍ제7식ㆍ제6식ㆍ5식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을 전환하여 순서대로 증득하는 것이니, 지혜는 비록 식(識)이 아니지만, 식에 의지하여 식을 전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식을 주체로 삼기 때문에 식을 전환해서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유루의 지위에서는 지혜는 열등하고 식이 강하며, 무루의 지위에서는 지혜가 강하고 식이 열등하다.
유정에게 권장하여 지혜에 의지하고 식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8식을 전환하여 이 사지(四智)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ㅡ어떤 식을 전환해서 어떠한 지혜를 얻는가를 판별한, 제사전하식득하지문(第四轉何識得何智門).
大圓鏡智相應心品,有義菩薩金剛喩定現在前時卽初現起,異熟識種與極微細所知障種俱時捨故。若圓鏡智爾時未起,便無能持淨種識故。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보살의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 곧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이숙식의 종자를 매우 미세한 소지장의 종자와 동시에 버리기 때문이니,
만약 그 때에 대원경지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득 청정종자를 지니는 식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ㅡ전식득지(轉識得智)하는 단계를 판별한, 제오전식득지위차문(第五轉識得智位次門).
위의 견해는 정의(正義)가 아니며, 이 견해에 의하면 인과동시(因果同時)이고, 금강심의 무간도(無間道)의 시기에 대원경지가 일어난다고 한다.
有義此品解脫道時,初成佛故,乃得初起,
호법의 견해로는, 이 심품(心品)은 해탈도의 시기에 비로소 성불(成佛)하므로 곧 처음으로 일어나게 되며,
ㅡ호법의 정의로써, 이 견해에 의하면 인과동시이고 금강심의 해탈도에서 처음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異熟識種金剛喩定現在前時猶未頓捨。與無閒道不相違故。
이숙식의 종자는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에는 아직 단박에 버리지 못하는 것이니, 무간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ㅡ금강심의 무간도는 이숙식 등과 함께 생멸하기 때문에 이숙식은 장애가 아닌 법이므로, 서로 다르지 않다.
非障有漏劣無漏法但與佛果定相違故,金剛喩定無所熏識,無漏不增應成佛故,由斯此品從初成佛盡未來際相續不斷,持無漏種令不失故。
장애가 아닌 유루선(有漏善)과 이숙식(異熟識) 등의 유루법과 10지(地)의 무루(無漏)인 열등한 무루법은 오직 부처님의 지위(해탈도)인 것과는 반드시 다르기 때문이며,
금강유정에서 훈습을 받는 식이 없다면, 무루가 증성해지지 않고서 성불해야 하기 때문이므로 이 심품은 처음에 성불하고자 할 때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상속해서 단멸됨이 없는 것이니, 무루 종자를 집지해서 없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平等性智相應心品,菩薩見道初現前位違二執故,方得初起,後十地中執未斷故,有漏等位或有閒斷,法雲地後與淨第八相依相續盡未來際。
평등성지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보살의 견도 초기에 현전하는 단계에서 아집과 법집의 두 가지 집착에 거스르기 때문에 비로소 처음 일어나게 되나, 제6식에 이끌려 생겨난 것으로, 자력(自力)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후의 10지 중에서는 아직 집착을 끊지 못한 까닭에 유루 등의 단계, 즉 다만 아공관(我空觀)에서 혹은 잠시 끊어짐이 있기도 하며,
법운지(法雲地) 이후에는 (평등성지 상응심품이) 청정한 제8 (대원경지 상응심품)과 서로 의지해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상속하는 것이다.
妙觀察智相應心品,生空觀品二乘見位,亦得初起,此後展轉至無學位 或至菩薩解行地終
묘관찰지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아공을 관찰하는 심품의 경우에는 2승의 견도위에서도 대승의 돈오 보살도 견도에서도 역시처음으로 일어나고, 이후에 전전해서 무학위에 다다르게 되며,
혹은 보살의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의 단계인 승해행지(勝解行地)의 끝(終)에 이르며,
ㅡ법공(法空)의 견도에 들어가기 때문에 끝의 종(終)이라 한다.
或至上位,若非有漏或無心時皆容現起。法空觀品菩薩見位方得初起,此後展轉乃至上位,若非有漏生空智果或無心時皆容現起。
혹은 상부 지위, 즉 10지(地)ㆍ여래지(如來地)에 다다르며,
만약 유루 혹은 무심의 시기가 아니면 모두 일어남이 인정되며, 법공을 관찰하는 심품의 경우에는 보살의 견도위에서 비로소 처음 일어나게 되고, 이후에 전전해서 나아가 상부 지위에 다다르며,
만약 유루ㆍ아공의 지혜인 공지(空智)ㆍ결과 혹은 무심의 시기가 아니면 모두 일어남이 인정된다.
成所作智相應心品,有義菩薩修道位中後得引故,亦得初起。有義成佛方得初起,以十地中依異熟識所變眼等非無漏故,
성소작지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보살의 수도위 중에서 후득지(後得智)에 이끌림으로써 역시 처음으로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으며,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성불할 때에 비로소 처음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10지 중에서는 이숙식이 전변된 안식 등에 의지하므로 무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루이고 공통적인 것이 아니며, 반드시 함께하는 것으로, 대상을 같이하는 동경(同境)의 감각기관(根)이 무루식을 일으킨다는 것은 바른 논리에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ㅡ소의(所依, 의지처)인 이숙식이 불과(佛果)의 해탈도에서 유루(有漏)이기 때문에, 5근(根)도 모두 유루이다. 따라서 유루의 감각기관이 무루식(無漏識)을 일으킨다는 것은 바른 논리에 위배된다.
有漏不共必俱同境,根發無漏識理不相應故,此二於境明昧異故。由斯此品要得成佛依無漏根方容現起,而數閒斷,作意起故。
유루의 감각기관인 유루근(有漏根)과 무루식(無漏識), 이 두 가지는 대상에 대해서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심품은 반드시 성불할 때에 무루의 감각기관인 무루근(無漏根)에 의지해서 비로소 일어나는 것이 인정되며, 여러 번의 잠시 단절됨이 있는 것은, 작의(作意)로써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此四種性雖皆本有,而要熏發方得現行,
이 사지(四智)의 종성은 모두 본래부터 있는 것이지만, 반드시 훈발함으로써 비로소 현행하게 된다.
ㅡ사지(四智)의 종성(種姓)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본유(本有)인가, 비로소 일어나는 시기(始起)인가를 밝힌, 제육종성본유시기문(第六種姓本有始起門).
因位漸增佛果圓滿,不增不減盡未來際,但從種生不熏成種,
수행 기간에서는 점차 증성하고, 부처님의 지위에서는 원만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증가나 감소가 없으며,
다만 종자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며, 종자를 훈습하지 않는다.
ㅡ이것에 의해 본유신훈합생설(本有新熏合生說)의 입장임을 알아야 한다.
본유(本有)와 신훈(新熏)이 증장하여 묘관찰지와 평등성지가 되고, 대원경지와 성소작지는 오직 본유생(本有生)일 뿐이다.
왜냐하면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는 초지(初地) 이상에서 점차 나누어 얻어지기 때문에, 그 나누어 얻는 무루지(無漏智)의 현행으로부터 종자를 훈습하고, 이 신훈종자가 본유종자와 화합하여 생겨난다.
대원경지와 성소작지는 오직 불과(佛果)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새롭게 훈습되는 종자가 없고 오직 본유뿐이다.
勿前佛德勝後佛故。
옛 부처님인 전불(前佛)의 덕이 새로운 부처님인 신불(新佛)보다 뛰어나다고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니,
ㅡ만약 부처님의 지위인 불과위(佛果位)에서도 훈습이 있다고 한다면, 옛 부처님인 전불(前佛)의 덕(德)이 새로운 부처님인 신불(新佛)보다 뛰어난 것이 되므로, 모든 부처님은 평등하다는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大圓鏡智相應心品,有義但緣眞如爲境,是無分別非後得智,行相所緣不可知故。
대원경지에 상응하는 심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다만 진여를 반연해서 경계로 삼으며, 이것은 무분별지혜일 뿐, 후득지가 아니니, 행상(行相, 인식작용도 소연(所緣, 인식대상)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ㅡ사지의 인식대상인 소연(所緣]) 어떤 경계인가를 판별한, 제칠소연경계문(第七所緣境界門).
有義此品,緣一切法,莊嚴論說大圓鏡智於一切境不愚迷故,佛地經說如來智鏡諸處、境、識衆像現故,又此決定緣無漏種及身土等諸影像故,行緣微細說不可知,如阿賴耶亦緣俗故。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 심품(心品)은 제법을 반연하나니, '대승장엄경론' 제 3권에서 대원경지는 모든 대상에 대해서 미혹함이 없다고 말한 때문이며,
'불지경론' 제 3권에서, “부처님의 대원경지의 거울에는 모든 인식기관인 제처(諸處)ㆍ대상(境)ㆍ식(識), 즉 6처(處)ㆍ6경(境)ㆍ6식(識)의 18계(界)의 여러 영상이 나타난다”고 한기 때문이며,
또한 이것은 결정적으로 무루의 종자 및 신체ㆍ국토 등의 여러 영상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행상(行相, 인식작용)도 소연(所緣, 인식대상)도 미세하므로 알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라고 말하는 것이니, 아뢰야식과 같이 역시 세속도 반연하기 때문이다.
ㅡ오직 진여를 반연하기 때문에 불가지(不可知)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緣眞如故是無分別,緣餘境故後得智攝,其體是一,隨用分二,了俗由證眞故說爲後得,餘一分二准此應知。
진여를 반연하는 경우의 이것은 무분별지혜이니, 나머지 다른 대상을 반연하는 경우에는 후득지에 포함되며, 그 체(體)는 하나이지만, 작용(현행)을 따라 둘로 나누는 것이니,
세속을 요별하는 것은 진여를 증득함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후득지라 하며,
나머지 지혜를 하나이지만 둘로 나누는 것도 이것에 견주어서 알아야 한다.
ㅡ나머지 평등성지 등의 세 가지 지혜를 그 체(體, 정지正智)가 하나이지만 작용에 따라 근본지와 후득지로 나누는 것이다.
平等性智相應心品,有義但緣第八淨識。如染第七緣藏識故。
평등성지에 상응하는 심품에 대해서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다만 제8의 청정식만을 반연하나니, 염오의 제7식이 장식(藏識)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 하였다.
'성유식론(成唯識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10권 6 (0) | 2025.02.16 |
---|---|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10권 5 (0) | 2025.02.15 |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10권 3 (0) | 2025.02.14 |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10권 2 (0) | 2025.02.14 |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10권 1 (0) | 2025.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