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대승론(攝大乘論) 상권 10
아 승 가(阿 僧 伽, 무착) 지음. 불타선다(佛陀扇多) 한역. 김묘주 번역
義增上者,復如經所說:菩薩成就三十二法故,名爲菩薩,助益樂深心故。於一切衆生,令入一切智智,稱己智滅慢故;淳厚深心故;不作恩愛,怨及非怨等心故,永親故,盡至涅槃;美言悅目先應故;不斷彼心故;所許之事不休息,不疲倦意故;聞義無厭足故.
매우 뛰어난 뜻의 의증상(義增上)이란, 경전에서 “보살이 32가지의 법을 성취하면 보살이라 이름한다”고 말씀한 바와 같으니,
일체 중생에 대해서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깊은 마음이기 때문이며,
일체 모든 것을 아는 일체지지(一切智智)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며,
자신의 지혜에 계합하기 때문이며, 아만을 소멸하기 때문이며,
순수하고 후덕한 순후심심(淳厚深心)이기 때문이며, 은애(恩愛)를 짓지 않기 때문이며,
원수와 원수가 아닌 이에게 평등한 마음의 등심(等心)이기 때문이며,
영원히 가까이하여 열반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며, 좋은 말로 기쁘게 먼저 말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마음이 중단되지 않기 때문이며,
수용한 대승의 교법에 대해서 쉬지 않고 피로나 권태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며,
대승의 교의를 듣고서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自過見患故;見他作過不說故;一切威儀行菩薩心業故;布施中不求報故;一切有道處,不著修戒故;不瞋一切衆生忍故;聚集一切善根法,以精進故;離無色界禪故;順方便智故.
스스로의 죄에 대한 허물을 보기 때문이며, 남의 잘못을 보고 들춰내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위의(威儀) 가운데 보살의 마음을 행하기 때문이며, 보시에 대해서 과보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윤회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계율을 닦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에 대해서 성내지 않고 인욕하기 때문이며,
모든 선근법을 섭수하고자 정진하는 때문이며, 무색계를 여의고 선정을 닦기 때문이며,
방편에 수순하여 지혜를 닦기 때문이다.
四攝法所攝方便故;破戒`持戒不二心故;勤劬聞妙法故;樂住阿蘭若故;不樂世閒種種事故;不希樂小乘故;於大乘見大利益故;遠離惡知識故;親近善知識故;淨四梵行故.
사섭법(四攝法)에 들어가는 방편이기 때문이며,
계율을 파하는 파계(破戒)와 지키는 지계(持戒)의 두 마음이 없기 때문이며,
간절하고 공경스럽게 승묘한 법을 듣기 때문이며,
즐겁게 아련야(阿練若, 아란야)에 머물기 때문이며, 세간의 갖가지 일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며,
소승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며, 대승 안에서 큰 이익을 보기 때문이며,
나쁜 악지식(惡知識, 악우 악惡友)을 멀리하기 때문이며, 착한 선지식(善知識, 선우 善友)을 가까이하기 때문이며,
청정한 네 가지의 사범행(四梵行, 사무량심)을 행하기 때문이다.
사섭법(四攝法), 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 취하는 네 가지 기본적인 것으로,
첫째, 보시섭(布施攝)은 재물을 기꺼이 베풀거나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며,
둘째, 애어섭(愛語攝)은 남에게 미소띤 얼굴과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대하는 것이며,
셋째, 이행섭(利行攝)은 신ㆍ구ㆍ의의 3업에 의한 선행으로써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며,
넷째, 동사섭(同事攝)은 자타가 일심이 되어 중생과 같이 하면서 제도하는 것이다.
아련야(阿練若), 범어 ārāṇya의 음역(音譯)으로 아란야(阿蘭若)라고도 한다. 마을에서 떨어진 고요하고 한가한 공한정처(空閑靜處)를 말하는 것으로, 세속의 번뇌ㆍ산란ㆍ투쟁 등이 이르지 않는 곳으로서 출가 구도자가 머무는 곳이다.
사범행(四梵行),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네 가지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말한다.
五神通遊戲故;依智故;住有行不住有行,衆生不捨故;一向定言故;重實語故;菩薩心爲首故。如是等句,初句中差別應知,助樂深心故,於一切衆生此助樂深心故。
천안통(天眼通)ㆍ천이통(天耳通)ㆍ신족통(神足通)ㆍ타심통(他心通)ㆍ숙명통(宿命通)의 오신통(五神通)에서 노닐기 때문이며,
지혜에 의지하는 의지(依智)이기 때문이며,
바른 행에 머물거나 혹은 바른 행에 머물지 않는 중생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한결같이 결정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며, 참다운 실어(實語)를 존중하기 때문이며,
보살심(菩薩心)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상과 같은 문구들은 첫 번째 문구를 분별한 것으로,
일체 중생에게 이익과 안락을 더하여 주려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有十六種作事差別應知。是中十六種作事者,轉轉行作;不退作;他所不勸,而自行作;不瞋作;不望報作,三句不望報故,有益`無益不瞋喜,乃至後生隨逐故;彼相似口業故,有二句;苦樂中,不二等作事;不怯弱作事;不退轉作事;方便攝作事.
이러한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마음 때문에 16가지의 16종작사(十六種作事)의 차이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여기서 16종작사(十六種作事)란,
첫째는, 전전하여 가행하는 전전행작(轉轉行作)이고, 둘째는 퇴전이 없는 불퇴작(不退作)이며,
셋째는 남이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가행하는 자행작(自行作)이며, 넷째는 성내지 않는 불진작(不瞋作)이며,
다섯째는 과보를 바라지 않는 불망보작(不望報作)으로, 이에 과보를 바라지 않는 삼구(三句)가 있으니, 유익(有益)에도 기뻐하거나 성내지 않으며, 무익(無益)에도 기뻐하거나 성내지 않으며, 나아가 후생(後生)에도 따르는 것이다.
여섯째는 서로 비슷한 구업과 신업이니, 이에 두 가지 문구의 차이가 있으며,
일곱째는 즐거움(樂)에 대해서도 괴로움(苦)에 대해서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에 대해서도 평등한 등작사(等作事)이고,
여덟째는 겁약(怯弱)하지 않는 불겁약작사(不怯弱作事)이며,
아홉째는 퇴전하지 않는 불퇴전작사(不退轉作事)이고,
열째는 방편으로 섭수하는 방편섭작사(方便攝作事)이며,
除障作事,二句,相續不斷念彼心作事;勝至作事,七句,六波羅蜜正修行,及攝取行正事;成就行作正事,六句,親近知識`聽聞正法`樂蘭若`捨惡覺心`正念功德二句`大乘功德二句;成就作事三句,無量淸淨`得益力`得證功德;彼令住作事四`將衆功德`除疑教受`財法攝取心故`不雜心故。
열 한째는 장애를 제거하는 제장작사(除障作事)이니, 두 가지의 다름이 있는 문구가 있으며,
열 두째는 상속하여 끊임없이 생각하는 그 마음의 작업이고,
열 셋째는 뛰어나게 이르는 승지작사(勝至作事)로써, 이에 일곱 가지의 다름이 있으니, 6바라밀의 바른 수행이고, 보살이 중생을 네 가지로 인도하는 4섭법(攝法)의 바른 정사(正事)인 것이다.
열 넷째는 가행을 성취하는 것으로, 이에 6 문구가 있으니,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정법을 청해 들으며, 아련야를 좋아하고, 나쁘게 헤아리는 것을 버리는 바른 생각의 공덕이니 이에 다른 두 가지가 있으며, 대승의 공덕이니 또한 이에 두 가지의 차이가 있으며,
열 다섯째는 성취작사(成就作事)이며, 세 가지의 다름이 있으니, 무량 청정하고, 위력을 얻으며, 증득하는 공덕이다.
열 여섯째는 그것을 안주하게 하는 것에 네 가지의 차이가 있으니, 대중을 제어하는 공덕이고, 의혹을 없애는 것이며, 가르치는 것이며, 재물과 법을 포섭하는 마음이니, 잡염심이 없기 때문이다.
如是等句,與初句解釋差別應知。如經說:依於初句故,句別有功德;依於初句故,句別義別爾。如是智相釋已。
이상과 같은 여러 문구는 첫 번째 문구의 차별된 해석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경전에서 “최초의 문구에 의지하기 때문에 문구를 구별하는 공덕이 있는 것이며,
최초의 문구에 의지하기 때문에 문구의 구별과 의미의 구별도 그러한 것이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지혜의 지상(智相)을 해석한 것이다.
攝大乘論卷上 終 섭대승론 상권을 마침.
아상가 또는 무착(無着)(Asanga, 300년 ~ 390년?)은 인도 대승불교의 사상가이며, 북서 인도 간다라 지방(현대의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방) 부루사부라성의 브라만 집안에서 3형제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카우실카(kausika), 어머니는 비린치(Vrinci)였으며, 형제 3명 중 장남이었다. 그의 동생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 세친) 역시 불교 사상가이며, 성장하여 소승불교의 유부(有部)에 출가했으나, 후일 중인도 아유차국으로 가서, 유식파로 전향해서 대승의 유가행에 힘썼다.
<공(空)>의 교리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자살하려고 고민했을 때, 동방, 비데하국(현재의 비하르주 북부)의 핀돌라(Pindola) 아라한을 만나서 겨우 소승의 공관(空觀)도 체득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할 수 없는 아상가는 인도 중부의 아요딘야(현, 아우드)에 가서 대승불교의 수행의 하나인 유가행에 노력했다. 거기에서 마이트레야(미륵)에게서 대승의 공(空)사상을 공부하고, 대승불교도가 되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이트레야가 직접 『유가사지론』을 설교하도록 요청하고, 아상가는 해탈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유식(唯識)사상 유포의 단서가 되었다. 또한 그는 마아트레야에게서 일광삼매를 배웠는데, 대승의 교의를 용이하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는 대승을 비방하는 동생 바스반두를 아요디야에 불러서 위대한 대승불교자로 키웠다.전설에 의하면, 아상가는 수행중 도솔천에 올라 미륵보살의 계시를 받고, 이에 의해 《유가사지론》 ·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을 전지강설(傳持講說)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이들 저서는 아상가가 아유차국에서 유가행의 스승이었던 마이트레야로부터 받은 학설로서, 후세에 마이트레야가 미륵보살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미륵보살의 계시(啓示)에 의한 것으로 전하여지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유식설을 조직 · 체계화한 《섭대승론》(攝大乘論)을 지었고, 그 밖에 《육문교수습정론》(六門敎授習定論)·《순중론》(順中論)·《현양성교론》·《대승아비달마집론》 등을 저술하여 유가행파의 대표적 논사(論師)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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