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9권 9
四微細煩惱現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第六識俱身見等攝,最下品故,不作意緣故,遠隨現行故,說名微細。彼障四地菩提分法,入四地時便能永斷。彼昔多與第六識中任運而生執我見等同體起故,說煩惱名,今四地中旣得無漏菩提分法,彼便永滅,此我見等亦永不行。
제4는 미세한 번뇌가 현행하는 장애인 미세번뇌현행장(微細煩惱現行障)이니 제4의 염혜지(焰慧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제6식과 함께하는 아견 등에 포함되는 것을 말하며, 최하품이기 때문이고,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임운기(任運起)이기 때문에 작의(作意)하지 않고 반연하기 때문이며, 아득한 무시로부터 따라서 현행한 것이기 때문에 미세하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 장애는 제4지의 보리분법을 장애하나, 제4지에 들어갈 때,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며,
그 장애는 대부분 제6식(第六識) 가운데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임운기(任運)로서 자아에 집착하는 아견(我見) 등과 동체(同體)로서 일어나기 때문에 번뇌라 이름하며,
제4지(염혜지) 중에서 무루의 보리분법을 증득하였을 때, 그 소지장이 영원히 영멸(永滅)하며,
이 소지장(所知障)과 동체(同體) 번뇌인 아견(我見) 등도 역시 영원히 작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初二三地行施戒修相同世間,四地修得菩提分法方名出世,故能永害二身見等。
초지(극희지)ㆍ제2지(이구지)ㆍ제3지(발광지)에서는 보시ㆍ지계의 행을 실천하므로 상(相)이 세간과 같으나,
제4지(염혜지)에서는 보리분법을 닦아 증득하므로 비로소 출세간이라고 이름할 수 있으니, 따라서 능히 아견 등의 이견(二見)을 영원히 없애는 것이다.
ㅡ처음 견도(見道)에서 이미 제6식 중의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아견인 유신견(有身見)을 여의고, 지금 제4지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아견(유신견)을 모두 여의었므로 두 가지 아견을 없앤다고 말하는 것이다.
寧知此與第六識俱?第七識俱執我見等與無漏道性相違故,八地以去方永不行,七地已來猶得現起,與餘煩惱爲依持故。此麤彼細,伏有前後,故此但與第六相應。
정녕 알아야 하나니, 이것은 제6식과 함께하고 제7식과 함께하는 것으로서,
자아로 집착하는 아견 등은 제6식의 아공무루(我空無漏)의 도와 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제8지에서 부터 비로소 영원히 작용하지 않게 되며,
7지 이후에서는 아직 현행하여 일어남이 있어서 나머지 번뇌인 탐욕ㆍ성냄 등의 의지처가 되며,
이 제6식과 함께하는 아견은 두드러지고, 그 제7식과 함께하는 아견은 미세한 것으로, 조복함에 있어서 앞뒤가 있으니, 두드러진 것을 먼저 조복하고 미세한 것을 나중에 조복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은 다만 제6식과 상응하는 것이다.
身見等言亦攝無始所知障攝定愛法愛,彼定法愛三地尚增,入四地時方能永斷,菩提分法特違彼故。
아견(유신견) 등이라는 말에는 역시 아득한 무시로부터의 소지장에 포섭된 선정의 애착과 법의 애착도 포함하나니, 그 선정의 애착과 법의 애착은 제3지(발광지)에서는 아직 증성하나, 제4지(염혜지)에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영원히 단멸할 수 있으니, 특히 보리분법이 그것에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由斯四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等至愛愚,卽是此中定愛俱者;二法愛愚,卽是此中法愛俱者。
所知障攝二愚斷故,煩惱二愛亦永不行。
그러므로 제4지(염혜지)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단멸할 수 있다.
첫째는 삼마지에 애착하는 어리석음인 증지애우(等至愛愚)이니, 곧 이 가운데에서 선정의 애착과 함께하는 것이며,
둘째는 법에 애착하는 어리석음인 법애우(法愛愚)이니, 곧 이 가운데에서 법의 애착과 함께하는 것이다.
소지장에 포섭되는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가 단멸되기 때문에, 두 가지의 번뇌 애착 역시도 영원히 작용하지 않는 것다.
五於下乘般涅槃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厭生死樂趣涅槃,同下二乘厭苦欣滅。
彼障五地無差別道,入五地時便能永斷。
제5는 하위의 교법에서 반열반(涅槃障)하고자 하는 장애이며, 제5 극난승지(極難勝地)에서 단멸 되는 것으로,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에 즐겨 나아가서, 하위의 2승(乘)이 괴로움을 싫어하고 적멸을 좋아하는 것과 같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5지(난승지)의 차별이 없는 무차별도(無差別道)를 장애하며, 제5지에 들어갈 때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由斯五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純作意背生死愚,卽是此中厭生死者;二純作意向涅槃愚,卽是此中樂涅槃者。
그러므로 제5지의 난승지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단멸한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순전히 작의(作意)해서 생사를 등지는 어리석음이니, 즉 이 가운데에서 생사를 싫어하는 것을 말하며,
둘째는 순전히 작의해서 열반에 향하는 어리석음이니, 곧 이 가운데에서 열반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六麤相現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執有染淨麤相現行。彼障六地無染淨道,入六地時便能永斷。
제6은 구체적인 모습의 추상(麤相)이 현행하는 장애이며, 제6 현전지(現前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잡염과 청정의 구체적인 추상(麤相)이 있다고 집착해서 현행함을 말하며, 그것은 제6지(현전지)의 잡염과 청정이 없는 도(道)를 장애하는 것이나, 제6지에 들어갈 때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由斯六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現觀察行流轉愚,卽是此中執有染者,諸行流轉,染分攝故;二相多現行愚,卽是此中執有淨者,取淨相故,相觀多行,未能多時住無相觀。
그러므로 제6지(현전지)에서의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현재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의 생멸하는 유위법(行)의 유전을 관찰하는 어리석음으로, 곧 이 가운데에서 잡염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유위법의 유전은 잡염분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의 청정한 상이 많이 현행하는 어리석음으로, 곧 이 가운데에서 청정함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청정한 상을 취하기 때문에 형상이 있는 관법인 상관(相觀)을 많이 행하는, 즉 후득지(後得智)가 형상이 있는 청정관법인 유상정관(有相淨觀)을 짓는 것으로, 아직 형상이 없는 관법인 무상관(無相觀)에 많이 머물지 못한다.
七細相現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執有生滅細相現行。彼障七地妙無相道,入七地時便能永斷。
제7은 미세한 세상(細相)이 현행하는 장애이니, 제7 원행지(遠行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생겨나고 멸함의 미세한 생멸세상(生滅細相)이 있다고 집착해서 현행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제7지(원행지)의 형상이 없는 승묘한 묘무상도(妙無相道)를 장애하나, 제7지에 들어갈 때에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由斯七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細相現行愚,卽是此中執有生者,猶取流轉細生相故;二純作意求無相愚,卽是此中執有滅者,尚取還滅細滅相,故純於無相作意勤求,未能空中起有勝行。
그러므로 제7지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미세한 모습이 현행하는 어리석음인 세상현행우(細相現行愚)이니, 곧 이 가운데에서 생(生)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아직 유전(流轉)의 미세하게 생겨나는 세생상(細生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순전히 작의해서 형상이 없음을 구하는 어리석음인 순작의구무상우(純作意求無相愚)이니, 곧 이 가운데에서 멸(滅)함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환멸(還滅)의 미세한 상에 집착해서, 오로지 무상(無相)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지런히 구하므로, 아직 공(空) 가운데에서 상이 있는 관법의 뛰어난 승행(勝行)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八無相中作加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無相觀不任運起。前之五地有相觀多無相觀少,於第六地有相觀少無相觀多,第七地中純無相觀,雖恒相續而有加行。由無相中有加行故,未能任運現相及土。如是加行障八地中無功用道,故若得入第八地時便能永斷,彼永斷故,得二自在。
제8은 무상(無相)의 관법 속에서 가행을 짓게 하는 장애이니, 제8부동지(不動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무상관(無相觀)으로 하여금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불임운기(不任運起)를 말하는 것이며,
앞의 5지(난승지)에서는 형상이 있는 관법인 유상관(有相觀)은 많고, 형상이 없는 무상관(無相觀)은 적으며,
제6지(현전지)에서는 형상이 있는 유상관(有相觀)은 적으나, 형상이 없는 무상관(無相觀)은 많으며,
제7지(원행지) 중에서는 오로지 형상이 없는 무상관(無相觀)이 항상 상속하지만, 아직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행이며, 무상관(無相觀)에 가행이 있기 때문에 아직 자재하게 형상과 국토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행은 제8지(부동지)에서의 작용이 없는 무공용도(無功用道)를 장애하나, 제8지에 들어갈 때에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되며, 그것이 영원히 단멸된 까닭에 형상과 국토의 두 가지 자재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ㅡ제8지에 이르면 자신이 바라는 바에 따라, 크고 작은 국토와 금ㆍ은 등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由斯八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於無相作功用愚,二於相自在愚。令於相中不自在故,此亦攝土相一分故。
그러므로 제8지(부동지)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형상이 없는 것에 대해서 작용을 짓고자 하는 어리석음인 무상작공용우(無相作功用愚)이며,
둘째는 형상에 대해 자재하는 어리석음인 상자재우(相自在愚)이니, 상에서 자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며, 이것 역시도 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국토를 포함한다.
八地以上純無漏道任運起故,三界煩惱永不現行。第七識中細所知障猶可現起,生空智果不違彼故。
제8지(부동지) 이상에서는 순전히 무루도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임운기(任運起)이기 때문에, 삼계의 번뇌가 영원히 현행하지 않으나, 제7식 중의 미세한 소지장만은 아직 현행할 수 있으니, 즉 제6식의 아공(我空)의 정체지(正體智)와 후득지의 결과가 제7식의 법집(法執)에서 단멸되기 때문에 제7식의 법집에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九利他中不欲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於利樂有情事中不欲勤行,樂修己利。彼障九地四無閡解。入九地時便能永斷。由斯九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於無量所說法無量名,句字後後慧辯陁羅尼自在愚。
제9는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 중에서 실천하지 않고자 하는 장애이니, 선혜지(善慧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부지런히 실천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즐겨서 닦게 하는 것이니, 그러함은 제9지(선혜지) 중의 네 가지 걸림 없는 사무애해(四無礙解)를 장애하나, 제9지(선혜지)에 들어갈 때에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9지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설해진 무량 법문ㆍ무량명(無量名)ㆍ문구ㆍ글자ㆍ세 번째 지혜인, 후후혜변(後後慧辯)의 다라니(陀羅尼)에 자재(自在)한 어리석음이다.
於無量所說法陁羅尼自在者,謂義無閡解,卽於所詮摠持自在,於一義中現一切義故。於無量名句字,陁羅尼自在者;謂法無閡解,卽於能詮摠持自在,於一名句字中現一切名句字故。
설해진 수많은 법문인 무량소설(無量所說)의 법을 지녀서 자재하다는 것은 일체 교법의 의미에 걸림 없는 의무애해(義無礙解)를 말하는 것이니, 곧 소전(所詮)을 모두 지녀서 자재한 것으로, 하나의 의미에서 일체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무량명(無量名)ㆍ문구ㆍ글자를 모두 지녀서 자재하다는 것은 법무애해(法無礙解)를 말하는 것이니, 곧 능전(能詮)을 모두 지녀서 자재한 것으로, 하나의 명칭ㆍ문구ㆍ글자 중에서 무량명ㆍ문구ㆍ글자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於後後慧辯,陁羅尼自在者,謂詞無閡解,卽於言音展轉訓釋摠持自在,於一音聲中現一切音聲故。
세 번째 지혜인, 후후혜변(後後慧辯)의 언어를 모두 지녀서 자재하다는 것은 일체 언설에 걸림이 없는 사무애해(詞無礙解)를 말하는 것으로, 곧 음성이 전전하여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을 모두 지녀서 자재한 것이니, 하나의 음성 속에서 모든 음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二辯才自在愚。辯才自在者,謂辯無閡解,善達機宜巧爲說故。愚能障此四種自在,皆是此中第九障攝。
둘째는 변재가 자재한 것의 어리석음인 변재자재우(辯才自在愚)이니, 변재가 자재한 것이란 법을 설하는 데 걸림 없는, 변무애해(辯無礙解)를 말하는 것으로, 근기의 적절함을 잘 통달해서 그에 따라 훌륭하게 설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이 능히 이 네 가지 자재함을 장애하기 때문에 모두 제9의 장애에 포섭하는 것이다.
十於諸法中未得自在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於諸法不得自在。
彼障十地大法智雲及所含藏所起事業,入十地時便能永斷。
제10의 법운지는 제법 속에서 아직 자재함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이니, 제10법운지(法雲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다.
소지장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일부분이 제법에 대해서 자재함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제10지의 큰 법의 지혜 구름인 법운(法雲, 진여) 및 함장된 다라니문(陀羅尼門)과 삼매문(三昧門)과, 지혜가 일으키는 사업을 장애하는 것이나, 제10지에 들어갈 때에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되는 것이다.
ㅡ큰 법의 대법(大法)은 진여(眞如)를 말하는 것으로, 진여를 반연하는 지혜는 큰 구름과 같기 때문에 대법의 지혜 구름인 법운(法雲)이라 한다.
由斯十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大神通愚,卽是此中障所起事業者,二悟入微細秘密愚,
卽是此中障大法智雲及所含藏者。
그리므로 제10지(법운지)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의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나니,
첫째는 큰 신통의 어리석음이니, 곧 이 가운데에서 일으켜지는 사업을 장애하는 것을 말하고,
둘째는 미세하고 비밀한 것을 깨달아 들어가는 것의 어리석음이니, 곧 이 가운데에서 대법의 지혜 구름 및 함장된 것을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此地於法雖得自在,而有餘障,未名最極,謂有俱生微所知障及有任運煩惱障種。
金剛喩定現在前時彼皆頓斷,入如來地。
이 지위, 제10지에서는 법총지(總持)ㆍ선정ㆍ업에 자재함을 얻지만, 남아 있는 장애가 있으므로 아직 최극(最極)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니,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의 미세한 소지장이 있고, 자연히 일어나는 임운(任運)의 번뇌장의 종자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현전할 때, 그러한 것 모두를 단박에 끊고 여래지(如來地)에 들어 가는 것이다.
由斯佛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於一切所知境極微細著愚,卽是此中微所知障;二極微細㝵愚,卽是此中一切任運煩惱障種。故集論說得菩提時,頓斷煩惱及所知障,成阿羅漢及成如來,證大涅槃大菩提故。
그러므로 불지(佛地)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을 끊는다고 말하나니,
첫째는 모든 인식대상인 소지경(所知境)에 대해서 매우 미세하게 집착하는 어리석음이니, 곧 미세한 소지장이며,
둘째는 매우 미세하게 장애하는 어리석음이니, 곧 자연히 일어나는 일체의 임운번뇌장(任運煩惱障)의 종자이다.
따라서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4권에서 “보리를 증득할 때에 단박에 번뇌장과 소지장을 단멸하여 아라한이 되고, 여래가 된다”고 말하였으니, 대열반과 대보리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成唯識論卷第九 終 성유식론 제 9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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