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9 8

 

此十位者,五位皆具,修習位中,其相最顯。然初二位頓悟菩薩種通二種,現唯有漏,漸悟菩薩若種若現俱通二種,已得生空無漏觀故。通達位中種通二種,現唯無漏。於修習位七地已前種現俱通有漏、無漏,八地以去種通二種,現唯無漏。究竟位中若現若種俱唯無漏。

 10바라밀과 5위(位)의 포섭관계는, 다섯 가지 지위인 오위(五位)에서 모두 갖추나니,

수습위에서  양상이 가장 현저하지만 처음의  지위에서 돈오(頓悟) 보살은 10바라밀의 종자가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둘 통하나, 현행은 오직 유루일 뿐이며,

점오(漸悟) 보살은 종자이든 현행이든 둘, 모두에 통하나니, 이미 아공의 무루관법을 얻었기 때문이며,

통달위에서 종자는  가지에 통하고, 현행은 오직 무루일 뿐이며,

수습위에서 7지(地) 이전에는 종자와 현행 모두가 유루ㆍ무루에 통하고,

8지부터 종자는  가지에 통하나 현행은 오직 무루일 뿐이며,

구경위 중에서는 현행이든 종자든 모두 오직 무루일 뿐이다.

ㅡ10바라밀과 5() 포섭관계를 판별한, 제십이오위현종상섭문(第十二五位現種相攝門).

 

此十因位有三種名:一名遠波羅蜜多,謂初無數劫,爾時施等勢力尚微,被煩惱伏未能伏彼,由斯煩惱不覺現行;

 10바라밀이 수행 기간인 인위(因位)  가지 명칭이 있으니,

첫째는 바라밀(波羅蜜)이라고 이름하나니, 제1의 무수한 겁(劫)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간에는 하나의 행(行) 중에서 하나의 행을 닦으며, 그 때의 보시바라밀 등은 세력이 미약하여 오히려 번뇌에 절복당하여서 아직 그것을 조복시킬  없으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번뇌를 현행하게 되며, 

ㅡ10바라밀의 인위(因位)에서의 명칭을 판별한, 제십삼분위분별문(第十三分位分別門).


二名近波羅蜜多,謂第二無數劫,爾時施等勢力漸增,非煩惱伏而能伏彼,由斯煩惱故意方行;

둘째는 근바라밀(近波羅蜜)이라고 이름하나니, 제2의 무수한 겁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간에는 하나의 행 중에서 일체의 행을 닦으며, 그 때에 보시바라밀 등의 세력이 점차 증성해서 번뇌에 조복당하지 않고, 능히 번뇌를 조복시킨다.

그리하여 번뇌를 임의로 비로소 일어나게 하는 의방행(意方行)을 할 수 있으며, 


三名大波羅蜜多,謂第三無數劫,爾時施等勢力轉增,能畢竟伏一切煩惱,

由斯煩惱永不現行,猶有所知微細現種及煩惱種,故未究竟。

셋째는 대바라밀(大波羅蜜)이라 이름하나니, 제3의 무수한 겁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간에는 일체의 행 중에서 일체의 행을 닦으며, 그 때의 보시바라밀 등은 세력이 날로 증성해서 능히 궁극적으로 모든 번뇌를 조복시킨다. 

그리하여 번뇌를 영원히 현행하지 않게 하나, 소지장의 미세한 현행과 종자  번뇌장의 종자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구경에 이른 것이 아니다.


此十義類差別無邊,恐厭繁文,略示綱要。十於十地雖實皆修,而隨相增,地地修一。

雖十地行有無量門,而皆攝在十到彼岸。

 10바라밀의 뜻에 무변한 차이가 있지만, 번쇄한 문장을 싫어할까 염려되어 간략한 요점인 강요(綱要)만을 보이는 것이니, 10바라밀을 10지(地)에서 실로 모두 수행하지만, 상의 증성함을 따라  지(地)마다 하나의 바라밀을 닦는다고 말하는 것이며, 10지의 수행에 수 많은 부문의 무량문(無量門)이 있지만, 모두 10바라밀에 포섭되는 것이다.


十重障者:一異生性障,謂二障中分別起者,依彼種立異生性故。二乘見道現在前時,

唯斷一種名得聖性,菩薩見道現在前時,具斷二種名得聖性。

‘열 가지 무거운 장애인 십중장(十重障)’이란,

제1은 중생 성품의 장애인 이생성장(異生性障)으로, 이 장애는 극희지(極喜地)에서 단멸하는 것으로,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이장(二障) 중에서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그것의 종자에 의지해서 중생의 성품을 건립하기 때문이다.

2승의 견도가 현전할 때에는 오직 번뇌장, 하나의 종자만을 단멸함으로써 성인의 성품을 얻는다고 이름하며,

보살의 견도가 현전할 때에는 번뇌장과 소지장의  가지 종자를 모두 단멸함으로써 성인의 성품을 얻는다고 이름한다.

ㅡ열 가지 무거운 장애인 십중장(十重障) 관하여 자세히 해설하는 것으로, 먼저 체성을 나타낸다.

 

二眞見道現在前時,彼二障種必不成就,猶明與闇定不俱生,如秤兩頭低昂時等,

諸相違法理必應然,是故二性無俱成失。

범부와 성인의 두 가지 품류의 진견도(眞見道)가 현전할 때에는,  이장(二障) 종자 모두가 반드시 성취되지 않으니,

비유하자면 밝음과 어둠이 반드시 함께 생겨나지 않음과 같고, 저울의 양쪽 머리가 하나는 내려가고 다른 하나는 올라갈  등과 같은 것이다. 

서로 위배되는 상위법(相違法)의 이치 모두가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것이니, 따라서 이 두 성품을 함께 성취한다는 과실이 없는 것이다.

 () 장애의 함께하고 함께하지 않음을 밝힌 것으로,

미혹함과 성도(聖道)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오직 분별의 이장 종자에 의지해서 중생의 성품인 이생성(異生性) 건립하며,  종자는 반드시 견도(見道) 함께하지 않는 것이니, 어떻게 범부와 성인이 함께 성취되는 과실이 있겠는가!

이것은 또한 설일체유부의 비판을 회통한 것이다.


無閒道時,已無惑種。何用復起解脫道爲?

무간도(無閒道)의 시기에는 이미 미혹의 종자인 혹종(惑種)는 없거늘, 어떻게 다시 해탈도를 일으키는 작용이 있게 되는 것인가?

무간도(無間道) 해탈도(解脫道) 별도로 해설하는 것으로, 먼저 소승(小乘) 비판하여 묻는 것이다.

 

斷惑證滅期心別故,爲捨彼品麤重性故,無閒道時雖無惑種,而未捨彼無堪任性,爲捨此故起解脫道,及證此品擇滅無爲。

미혹을 끊고 적멸을 증득하는 기간의 마음이 다른 까닭에 그 품류(중생)의 추중(麤重)인 번뇌장과 소지장의 습기를 버리기 때문이며,  

무간도의 시기에 미혹의 종자는 없지만, 아직 그 습기의 자재하지 못하게 하는 성품을 버리지 않으니, 이것을 버리기 위해서 해탈도를 일으켜서  품류, 즉 성인의 택멸무위(擇滅無爲)를 증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ㅡ논주(論主) 답변으로, 무간도에서는 미혹을 끊고, 해탈도에서는 적멸을 증득한다. 

무간도에서는 이미 미혹의 종자가 없지만,  무위(無爲) 증득하고자 해서  작용이 다르기 때문에 해탈도를 일으키는 것이다.


雖見道生亦斷惡趣諸業果等,而今且說能起煩惱,是根本故。由斯初地,說斷二愚及彼麤重:

一執著我法愚,卽是此中異生性障;二惡趣雜染愚,卽是惡趣諸業果等。

견도가 일어날 때에는 역시 악취(惡趣)의 여러 업의 과보 등도 단멸하지만, 지금은 잠시 일으키는 주체인 번뇌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의거해서 초지(初地)에서  가지 어리석음의 현행  그것의 추중(종자)을 단멸한다고 '해심밀경' 제4권에서와 '유가사지론' 제78권에서 말씀하셨으니, 

첫째는 자아와 법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의 집착아법우(執著我法愚)이니, 곧  중생성품의 장애인 이생성장(異生性障)이라 하는 것이며,

둘째는 악취 잡염의 어리석음인 악취잡염우(惡趣雜染愚)이니,  악취의 여러 업과(業果) 등이라고 말한다.

 

應知愚品摠說爲愚,後准此釋。或彼唯說利鈍障品俱起二愚。彼麤重言顯彼二種,或二所起無堪任性。如入二定說斷苦根,斷苦根雖非現種而名麤重,此亦應然,後麤重言例此應釋。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어리석음의 품류인 우품(愚品)이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어리석음(愚)이라 말한다.

어째서 업의 과보 등도 역시 어리석음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하면, 제업의 과보 등은 자체가 어리석음이 아니지만, 업은 어리석음이 일으키고, 과보는 업이 초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의 것, 즉 제2지(第二地)부터의 여러 지(地)에서 어리석음과 그것의 추중(종자)을 단멸하는 것도 이러한 초지(初地)에서 자아와 법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의 집착아법우(執著我法愚)와 악취 잡염의 어리석음인 악취잡염우(惡趣雜染愚) 두 가지의 어리석음과 그것의 추중(종자)을 단멸하는 것에 견주어서 해석해야 하나니,

 그곳에서 오직 예리한 번뇌인 이사(利使)와 둔한 번뇌인 둔사(鈍使)의 장애와 함께 일어나는  가지 어리석음만을 말하는 것은, 거기서 추중이라는 말은 이사(利使)와 둔사(鈍使),  가지의 종자를 나타내는 것이며,

혹은 범부와 성인의  가지 품류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자재하지 못하게 하는 성품의 무감임성(無堪任性)이니, 두 가지 선정에 들어갈 때에 고근(苦根)을 단멸시킨다고 말하고, 단멸된 고근은 현행도 종자도 아니지만 추중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이, 이것 역시도 그러해야 하는 것이니, 이후의 추중이라는 말도 이것에 견주어서 해석해야 한다.

 

번뇌인 이사(利使)는 진리를 알지 못하여 일어나는 번뇌로서, 그 체성이 예리하며 중생의 몸과 마음을 구사(驅使)하여 핍박케 하는 것으로, 이에 아견인 유신견(有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이 있다.

둔한 번뇌인 둔사(鈍使)는 사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여 일어나는 번뇌로서 그 체성이 둔한 것으로, 이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ㆍ거만ㆍ의심이 있다.


雖初地所斷實通二障,而異生性障意取所知,說十無明非染污故,無明卽是十障品愚。二乘亦能斷煩惱障,彼是共故,非此所說。又十無明不染污者,唯依十地修所斷說。雖此位中亦伏煩惱斷彼麤重,而非正意,不斷隨眠,故此不說。

초지(初地)에서 단멸되는 것은 실로 이장(二障) 통하지만, 중생 성품인 이생성(異生性)의 장애라는 의미는 소지장을 취하나니, 여기에서  가지의 무명은 염오성이 아니라고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7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무명은  가지 장애 품류의 어리석음인 십장품우(十障品愚)이니, 2승도 역시 능히 번뇌장을 단멸하며, 번뇌장을 끊는 것은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소지장(所知障)이 아니다.

또한  가지 무명이 염오성이 아니라는 것은, 오직 10지의 수도(修道)에서 단멸되는 소지장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니,

ㅡ세친의 '섭대승론석' 7권에서  가지 무명(無明) 2() 배대하여 염오성이 아니라고 말한 때문에, 만약 번뇌장을 취한다면   가지 무명은 염오성에 통해야 하므로 여기서는 번뇌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습위(修習位)에서 역시 번뇌장을 조복하고 그것의 추중(종자)을 단멸하지만 진정한 뜻이 아닌 비정의(非正意)이니, 수면을 단멸하지 않기 때문에 이 번뇌장을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ㅡ10 보살은 번뇌장을 남겨 두어서 원력을 도와 태어나기 때문에 진정한 뜻의 정의(正意)가 아닌 것이.


理實初地修道位中亦斷俱生所知一分,然今且說最初斷者,後九地斷准此應知。

실로써 말한다면, 초지의 수도위 중에서 역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소지장의 일부분도 단멸하지만, 지금은 다만 초지(初地)에서 단멸하는 중생성품의 장애인 이생성장(異生性障) 말하는 것이며,

이후의 9지(地)에서 단멸하는 것도 이것에 견주어서 알아야 한다.


住滿地中時旣淹久,理應進斷所應斷障,不爾,三時道應無別。故說菩薩得現觀已,復於十地修道位中唯修永滅所知障道,留煩惱障助願受生,非如二乘速趣圓寂,故修道位不斷煩惱,將成佛時方頓斷故。

머물거나 원만히 마치는 지위인 주만지(住滿地)에서 대개 오래 머무나니, 따라서 이치적으로 응당 나아가서 끊어야  장애를 끊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입(入)ㆍ주(住)ㆍ만(滿)의  가지 시기인 삼시(三時)의 도(道)가 다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므로 보살은 현관(現觀)을 얻은 후에 다시 10지의 수도위 중에서 오직 소지장을 영원히 단멸하는 도를 닦는 것이다. 

번뇌장은 남겨 두었다가 서원을 도와 태어나는 것이니,  2승이 속히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과는 다르다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4권의 문장을 증거문장으로 삼아서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위에서는 번뇌장을 단멸하지 않는 것이니, 성불할 때에 비로소 단박에 단멸하는 돈단(頓斷)이기 때문이다.


二邪行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及彼所起悞犯三業。彼障二地極淨尸羅,入二地時便能永斷。由斯二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微細悞犯愚,卽是此中俱生一分;二種種業趣愚,卽彼所起悞犯三業。或唯起業不了業愚。
悞 그릇될 오 

제2는 삿된 행의 장애인 사행장(邪行障)으로, 이는 제2이구지(離垢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며,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것의 일부분과, 거기에서 일으켜지는 것이며, 탐닉해서 범하는  가지의 삼업(三業)을 말한다. 

그것은 제2지의 매우 청정한 계율을 장애하나니, 제2지에 들어갈 때에 문득 능히 영단(永斷)하는 것이며,

이것에 의거해서 제2지에서 자아와 법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의 집착아법우(執著我法愚)와 악취 잡염의 어리석음인 악취잡염우(惡趣雜染愚)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麤重)인 이사(利使)와 둔사(鈍使)를 단멸한다고 '유가사지론' 제78권에서 말하였으니,

첫째는 미세하게 탐닉해서 범하는 어리석음의 미세오법우(微細悞犯愚)이니,  소지장 가운데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것의 일부분이며,

둘째는 갖가지 업취의 어리석음인 종종업취우(種種業趣愚)이니, 곧 거기서 일으켜지며 탐닉해서 범하는  가지의 삼업(三業), 혹은 오직 업을 일으키는 기업(起業)의 어리석음과, 업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三闇鈍障,謂所知障中俱生一分,令所聞思修法忘失。彼障三地勝定摠持及彼所發殊勝三慧,入三地時便能永斷。

제3은 우둔함의 장애인 암둔장(闇鈍障)이니, 제3의 발광지(發光地)에서 단멸되는 것이며,

소지장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것의 일부분이 듣고 사유하고 닦은 문사수(聞思修)의 법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제3지의 뛰어난 선정의 수혜(修慧)를 일으킴과 총지(總持, 네 가지 다라니 중에서 법다라니ㆍ의다라니) 및 거기서 일으켜진 뛰어난 삼혜(三慧)를 장애하나, 제3지에 들어갈 때에 문득 능히 영원히 단멸하는 것이다.

 

由斯三地說斷二愚及彼麤重:一欲貪愚,卽是此中能障勝定及修慧者。彼昔多與欲貪俱,故名欲貪愚,今得勝定及修所成,彼旣永斷欲貪隨伏,此無始來依彼轉故。二圓滿聞持陁羅尼愚,卽是此中能障摠持聞思慧者。

그러므로 제3의 발광지(發光地)에서 집착아법우(執著我法愚)와 악취잡염우(惡趣雜染愚)인 이우(二愚)와 그것의 추중이사(利使)와 둔사(鈍使)를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첫째는 탐욕의 어리석음인 욕탐우(欲貪愚)이니,  이러한 것이 능히 뛰어난 선정의 승정(勝定)과 수혜(修慧)를 장애하나니, 일찍이 그것이 대부분 탐욕과 함께하기 때문에 욕탐우(欲貪愚)라 이름 하는 것으로,

지금의 제3지에서는 뛰어난 선정의 승정(勝定)과 수혜(修慧)를 증득하므로  소지장(所知障)이 영원히 단멸되며, 따라서  탐욕도 복되는 것이니, 이 탐욕은 아득한 무시(無始)로부터 그 소지장에 의지해서 전전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원만히 듣고 지니는 것과 다라니를 장애하는 어리석음인 원만문지다라니우(圓滿聞持陁羅尼愚)이니,  이러함이  능히 총지(總持)  문혜(聞慧)ㆍ사혜(思慧)를 장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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