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2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2. 소지의분(所知依分) ② 2
▶論曰: 如是已說阿賴耶識安立異門. 安立此相, 云何可見? 安立此相, 略有三種:
一者安立自相` 二者安立因相` 三者安立果相.
▷논문; 이와 같이 아뢰야식을 안립하는 다른 견해들을 말하였다.
이 아뢰야식의 상(相)을 안립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아뢰야식의 상(相)을 안립함에 간략히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자체의 자상(自相)을 안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원인의 인상(因相)을 안립하는 것이며,
셋째는 결과의 과상(果相)을 안립하는 것이다.
此中安立阿賴耶識自相者, 謂依一切雜染品法所有熏習, 爲彼生因, 由能攝持種子相應.
此中安立阿賴耶識因相者, 謂卽如是一切種子阿賴耶識, 於一切時與彼雜染品類諸法, 現前爲因.
此中安立阿賴耶識果相者,謂卽依彼雜染品法, 無始時來,所有熏習,阿賴耶識相續而生.
이 중에서 아뢰야식의 자체의 자상(自相)을 안립한다는 것이란,
일체의 모든 잡염품의 법이 훈습에 의해서 그것이 생겨나는 생인(生因)이 되고, 능히 종자를 거두어 지니는, 섭지종자(攝持種子)하고, 상응하는 것을 말한다.
이 중에서 아뢰야식의 원인의 인상(因相)을 안립하는 것이란,
이와 같이 일체 모든 것의 종자인 아뢰야식이 언제나 항상 그 잡염 품류의 제법이 현전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중에서 아뢰야식의 결과의 과상(果相)을 안립한다는 것이란,
그 잡염품의 법이 아득한 무시(無始)로부터 있어 온 훈습에 의지해서 아뢰야식이 상속하여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ㅡ아뢰야식의 상에 관하여 말하는 제4 상장(第4 相章).
▶釋曰:如是已說阿賴耶識安立異門. 非說異門卽了其相, 是故次說此識自性`因性`果性. 此中安立自相者,
謂緣一切雜染品法,所有熏習,能生於彼功能差別識爲自性. 爲欲顯示如是功能, 故說攝持種子相應.
▷해석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을 안립하는 다른 견해들을 말하였으나, 다른 견해를 말한다고 해서 곧 그 상(相)을 아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까닭에 다음으로 이 식 자체의 성품인 자성(自性)ㆍ원인의 성품인 인성(因性)ㆍ결과의 성품인 과성(果性)을 말한다.
‘이 중에서 자체의 자상(自相)을 안립한다’는 것은, 모든 잡염품의 법이 모든 훈습을 조건의 연(緣)으로 하고, 그것을 일으키는 특수한 작용의 공능차별(功能差別)의 식을 자성으로 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작용의 공능(功能)을 나타내기 위해서 종자를 거두어 지니는 섭지종자(攝持種子)하고 상응하는 것이다.
謂依一切雜染品法, 所有熏習,卽與彼法,爲能生因. 攝持種子者,功能差別也. 相應者,是修義.是名安立此識自相.
此中安立因相者, 謂卽次前所說品類,一切種子 阿賴耶識, 由彼雜染品類諸法熏習, 所成功能差別, 爲彼生因.
是名安立此識因相.
일체의 모든 잡염품의 법에 의지해서 모든 훈습이 있으니, 그 법이 능히 생겨나게 하는 생인(生因)이 되는 것이다.
‘거두어 지닌 종자의 섭지종자(攝持種子)’란 특수한 작용의 힘인 공능차별(功能差別)이며,
‘상응(相應)한다’는 것은 수행의 의미로써 이것을 이 식 자체의 자상(自相)을 안립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이 중에서 원인의 인상(因相)을 안립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품류의 모든 일체 종자이니,
아뢰야식은 그 잡염 품류의 제법의 훈습으로 인해서 공능차별(功能差別, 특수한 작용의 힘)이 이루어져서 생겨나는 생인(生因)으로 삼는 것이니,
이를 이 아뢰야식의 원인의 인상(因相)을 안립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此中安立果相者, 謂卽依彼雜染品法, 無始熏習, 此識續生, 而能攝持無始熏習.是名安立此識果相.
‘이 중에서 결과의 과상(果相)을 안립한다’는 것은 그 잡염품의 법이 아득한 무시로부터의 훈습에 의지해서 이 식이 상속하여 생(生)기는 것으로, 능히 아득한 무시로부터의 훈습을 거두어 지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 식의 결과의 과상(果相)을 안립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此中自相,是依一切雜染品法, 無始熏習, 爲彼生因, 攝持種子識爲自性, 果性因性之所建立.
此中因相, 是彼雜染品類諸法, 熏習所成, 功能差別, 爲彼生因,唯是因性之所建立.
此中果相,是依雜染品類諸法,無始熏習,阿賴耶識相續而生,唯是果性之所建立.是三差別.
이 중에서 자체의 자상(自相)이란, 모든 잡염품의 법이 아득한 무시로부터의 훈습에 의해서 생겨나는 생인(生因)으로, 종자식(種子識)을 거두어 지니는 것을 자성(自性)으로 삼는 것이니, 자상(自相)은 결과의 과성(果性)과 원인의 인성(因性)을 갖추는 식의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원인의 인상(因相)은 그 잡염 품류의 제법의 훈습으로 이루어진 공능차별(功能差別, 특수한 작용의 힘)로서 그것이 생겨나는 생인(生因)이 되는 것이니, 오직 인성(因性)만이 건립하는 바이며,
이 중에서 결과의 과상(果相)은 잡염 품류의 제법이 아득한 무시로부터의 훈습에 의지해서 아뢰야식이 상속하여 생겨난 것으로, 오직 결과의 과성(果性)만을 건립하는 것이다.
이러함이 세 가지의 차이인 것이다.
▶論曰:復次何等名爲熏習? 熏習能詮,何爲所詮. 謂依彼法俱生`俱滅, 此中有能生彼因性,是謂所詮.
如巨勝中,有花熏習,巨勝與花俱生`俱滅, 是諸巨勝, 帶能生彼香因而生 .
▷논문; 또한 무엇을 훈습이라 하는 것인가? 훈습은 능전(能詮)의 언어이다.
무엇을 능전(能詮)이 나타내는 의미의 소전(所詮)의 의의(意義)인 것인가?
그것은 법과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는 것이니, 그 가운데에 능히 그것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의 성품이 있는 것을 소전이라 하는 것이다.
거승(苣蕂, 깨와 참깨의 총칭인, 호마胡麻)에 꽃의 훈습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거승과 꽃이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는 것이니, 이 모든 거승은 그 향기를 내는 원인을 띄고 생겨나는 것이다.
ㅡ훈습에 관하여 설명의 제5 훈습장(第5 熏習章).
설명할 전(詮)은 나타내는 것의 의미로써, 능전(能詮)은 어구(語句)ㆍ문장ㆍ교법 등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에 따라 나타나는 의의(意義)와 내용을 소전(所詮)이라 한다.
又如所立,貪等行者,貪等熏習,依彼貪等俱生`俱滅,此心帶彼生因而生.
或多聞者,多聞熏習,依聞作意俱生`俱滅, 此心帶彼記因而生,
由此熏習,能攝持故,名持法者. 阿賴耶識熏習道理,當知亦爾.
다시, 이와 같이 탐욕 등을 행하는 자의 탐욕 등의 훈습이 그 탐욕 등과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기 때문에, 그 마음은 그것이 생겨나는 원인의 생인(生因)을 띄고 생겨나는 것이다.
혹은 많이 듣는 자의 많이 듣는 훈습은 듣는 작의(作意)와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기 때문에, 그 마음은 그것이 기억하는 원인을 띄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훈습이란, 능히 거두어 지녀서 섭지(攝持)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을 지니는 지법자(持法者)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으니, 아뢰야식의 훈습의 도리 또한 역시 그와 같은 것으로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작의(作意), 대상을 인식함에 있어서 심왕과 심소(心所, 심리작용)를 대상에 주의시켜서 인도하는 작용으로, 촉(觸) 심소(心所) 다음에 일어나며, 이로 인해서 감수작용의 수(受)가 있게 되는 것이다.
▶釋曰:謂依彼法俱生`俱滅, 此中有能生彼因性, 是謂所詮者.
謂卽依彼雜染諸法俱生` 俱滅阿賴耶識, 有能生彼諸法因性,是名熏習,
▷해석한다; ‘그것은 법과 함께 생겨나는 법구생(法俱生)이고, 함께 멸하는 구멸(俱滅)이기 때문에, 능히 이 가운데에서 그것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의 인성(因性)이 있는 것이다.
'이를 소전(所詮)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곧 그 모든 잡염법과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함으로써 아뢰야식에 능히 그 모든 법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의 성품이 있는 것으로 이것을 훈습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論曰:復次阿賴耶識中,諸雜染品法種子,爲別異住`爲無別異?
非彼種子有別實物, 於此中住,亦非不異. 然阿賴耶識如是而生,有能生彼功能差別,名一切種子識.
▷또한, 아뢰야식 안의 모든 잡염품의 법종자는 별개의 다른 것으로서 머무는 것인가?
별개의 다른 것이 아닌 것인가?
그것의 종자는 별도의 사물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안에서 머무는 것 역시 별개의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이렇게 해서 생겨나고, 능히 그것을 생기게 하는 특수한 작용의 힘인 공능(功能)이 있는 것이니, 이를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ㅡ아뢰야식과 종자의 불일불이성을 논한, 제6 불일불이장(第6 不一不異章).
▶釋曰:阿賴耶識中,雜染法種子,爲異`爲不異?
▷해석한다; 아뢰야식 안의 잡염품의 종자는 별개의 것인, 이체(異體)인가?
별개의 것이 아닌 동체(同體)인 것인가?
ㅡ아뢰야식과 종자가 동체(同體)인가, 이체(異體)인가를 묻는 것이다.
若爾何失?若有異者, 彼諸種子應分分別, 阿賴耶識剎那滅義, 亦不應成, 有別異故.
만약 그렇다면 무슨 과실이 있게 되는 것인가?
만약 별개의 것이라면 그 모든 종자는 마땅히 부분마다 개별적이어야 할 것으로, 아뢰야식의 찰나멸의 뜻이 성립되지 않아야 할 것이니, 개별적이고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ㅡ아뢰야식의 여섯 가지 종자의 속성인 육의(六義) 가운데 하나로써, 종자는 아뢰야식 안에서 고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생기하고 소멸하면서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由善`不善熏習力故,種子應成善`不善性,然許無記. 若不異者, 云何有多?此不應理. 是故二說俱有過失.
선과 불선의 훈습력으로 인하여 종자는 마땅히 선과 불선의 성품을 이루어야 하는 것, 즉 종자는 선과 불선의 성질을 띄고 있지만 아뢰야식은 무기(無記)라고 인정되는 것이니,
만약 별개의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많은 종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 종자는 무수히 많이 있지만 아뢰야식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가지의 설(說) 모두에 과실이 있는 것이다.
非彼種子有別實物, 於此中住, 亦非不異, 乃至名一切種子識者, 爲避如前所說過失, 故不定取異及不異.
‘그것의 종자는 별도의 사물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안에서 머무는 것 역시 별개의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니, 나아가 일체종자식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과실을 피하기 위해서 결정적으로 별개나 별개가 아님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ㅡ아뢰야식과 종자는 별개라거나 별개가 아닌, 어느 한쪽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으로,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如是而生者,謂由如是品類而生. 有能生彼功能差別者, 謂有能生雜染品法功能差別相應道理.
由與生彼功能相應故, 名一切種子識. 於此義中,有現譬喩,如大麥子, 於生自芽,有功能故, 有種子性.
若時陳久,或火相應, 此大麥果功能損壞,爾時麥相雖住如本, 勢力壞故, 無種子性.
阿賴耶識,亦復如是, 有生雜染諸法功能,由此功能相應故,說名一切種子識.
‘이렇게 해서 생겨난다’는 것은 이와 같은 품류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을 말하며,
‘능히 그것을 생기게 하는 특수한 작용의 힘인 공능차별(功能差別)’이라는 것은 능히 잡염품의 법을 생기게 하는 공능차별(功能差別)과 상응하는 도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생기게 하는 작용의 힘인, 공능(功能)과 상응하기 때문에 일체종자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대해서 현실적인 비유가 있으니, 마치 보리와 같은 것으로,
스스로 싹을 내는 작용의 힘인 공능(功能)이 있기 때문에 종자의 속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동안 묵었거나 혹은 불(火)과 상응한다면, 이 보리는 결과를 내는 작용의 힘인, 공능(功能)을 상실하여서, 보리의 모습은 본래와 같지만 공능(功能, 작용의 힘)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종자의 속성이 없는 것이다.
아뢰야식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니, 모든 잡염법을 생기게 하는 작용의 힘인 공능(功能)이 있으며, 이 작용의 힘인 공능(功能)과 상응함으로써 일체종자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論曰:復次阿賴耶識與彼雜染諸法, 同時更互爲因 ,云何可見?
譬如明燈. 焰炷生燒同時更互.又如蘆束,互相依持, 同時不倒. 應觀此中, 更互爲因,道理亦爾.
如阿賴耶識爲雜染諸法因,雜染諸法,亦爲阿賴耶識因,唯就如是安立因緣,所餘因緣,不可得故.
▷논문; 또한 아뢰야식과 그 모든 잡염법은 동시에 서로 원인이 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비유하자면, 밝은 등불의 불꽃과 심지가 생겨나고 타는 것이 동시에 서로 그렇게 이어지는 것과 같으며,
또한 갈대 묶음이 서로 의지하여 동시에 함께 쓰러지지 않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서로 다시 원인이 되는 도리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마땅히 관찰하여야 하는 것이다.
아뢰야식이 모든 잡염법의 원인이 되는 것과 같이, 모든 잡염법 역시도 아뢰야식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니,
오직 이렇게 해야만 인연을 안립할 수 있고 나머지로는 인연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ㅡ아뢰야식과 잡염품이 서로 원인ㆍ결과의 관계에 있음을 말하는 제7 갱호위인과장(第7 更互爲因果章).
▶釋曰:復次阿賴耶識與彼雜染諸法 同時更互爲因云何可見?者, 欲以喩顯,故爲此問.
譬如明燈焰,炷生燒同時更互者,謂一剎那燈炷爲依發生燈焰, 是則燈炷, 爲焰生因;
卽此剎那焰復能燒所依燈炷,是則燈焰,爲炷燒因.餘喩亦爾.
▷해석한다; ‘또한, 아뢰야식과 그 모든 잡염법은 동시에 서로 원인이 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는 비유로써 나타내기 위해서 이렇게 질문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밝은 등불의 불꽃과 심지가 생겨나고 타는 것이 서로 동시에 그렇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니, 한 찰나의 등불의 심지를 의지해서 등불의 불꽃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곧 등불의 심지는 불꽃이 생기는 원인이 되고, 이 찰나의 불꽃은 다시 능히 의지처인 등불의 심지를 태우는 것이니, 곧 등불의 불꽃은 심지가 타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다른 비유 역시도 그러한 것이다.
如是顯示有俱有因,由因現在住,卽見果生故.
이와 같이 구유인(俱有因)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원인은 현재에 머물러 결과가 생기는 것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6인(六因)은 6인(六因) · 5과(五果) · 4연(四緣)의 인과설에서의 6인(六因)은 6가지 종류의 원인이다.
①능작인(能作因) ②구유인(俱有因) ③동류인(同類因)
④상응인(相應因) ⑤변행인(遍行因) ⑥이숙인(異熟因)
구유인(俱有因)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함께하면서 서로 인과관계를 이루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從如阿賴耶識, 爲雜染諸法因,乃至所餘因緣,不可得故者, 此言顯示阿賴耶識與雜染法,更互爲因,卽是因緣.
‘아뢰야식이 모든 잡염법의 원인이 됨과 같다’로부터 나아가 ‘나머지로는 인연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아뢰야식과 잡염법이 다시 상호의 원인이 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이 곧 인연인 것이다.
ㅡ여기서 인연은 광의(廣義)의 인연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인과관계만을 가리킨 것으로, 즉 4연(緣) 중의 인연으로서, 직접적인 자기 결과를 원인으로 하고, 그 원인을 연(緣)으로 함을 말한다. 이에 능생(能生)의 종자와 능훈(能熏)의 현행(現行)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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