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9 6

 

次修習位其相云何?頌曰:

다음으로 수습위(修習位)의 상은 어떠한 것인가?'삼십송'의 제29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니, 

ㅡ5()  4위인 수습위(修習位),  수도(修道) 관한 해설.

 

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捨二麤重故 便證得轉依。

얻는 바가 없는 무득(無得)이고, 사량하고 분별할 수도 없는 그것은 출세간의 지혜라네.

 가지의 번뇌장과 소지장의 추하고 무거운 추중(麤重)을 을 버림으로써, 문득 전의(轉依, 열반)를 증득하네.

 

추중(麤重),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유루종자(有漏種子)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중(麤重)이란 유루종자라는 뜻으로, 그것들이 강강(强剛)해서 조유(調柔)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전의(轉依)에서 전(轉)은 전사(轉捨)와 전득(轉得), 즉 변계소집성을 전사하고 원성실성을 전득하는 것이고,

의(依)는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의 소의(所依)가 되는 의타기성을 말하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7식의 근본적인 소의이며 지종의(持種依)인 제8식이 완전한 정화를 통해 전환됨으로써 번뇌장ㆍ소지장의 종자를 전사하여 열반ㆍ보리를 전득하는 것이다.


論曰:菩薩從前見道起已,爲斷餘障證得轉依,復數修習無分別智。

此智遠離所取、能取,故說無得及不思議。或離戲論說爲無得,妙用難測名不思議。

▷논하여 말한다; 보살은 이전의 견도로부터 일어나서 나머지 장애를 끊고 전의(轉依)를 증득하기 위해서 다시 거듭 무분별지혜를 닦아 익히나니,

 지혜는 소취(所取)ㆍ능취(能取)를 멀리 떠났기 때문에 “얻는 바가 없는 무득(無得)이고 사량하고 분별할  없다”고 말하며,

혹은 희론을 떠났기 때문에 “얻는 바가 없는 무득(無得)이다”고 하고, 

신통한 작용이 측량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량하고 분별할  없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是出世閒無分別智,斷世閒故名出世閒,二取隨眠是世閒本,唯此能斷獨得出名。

或出世名依二義立,謂體無漏及證眞如。此智具斯二種義故獨名出世,餘智不然,卽十地中無分別智。

이것은 ‘출세간의 무분별지혜’이니, 세간, 즉 2취(取)의 수면(隨眠)을 끊었기 때문에 출세간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2취(取)의 수면은 세간의 근본으로, 오직 이것을 능히 끊음으로써 홀로 출세간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며,

혹은 출세간이라는 명칭은  가지의 뜻에 의해 건립되는 것이니, 체(體)가 무루인 것과 진여를 증득하는 것을 말하며,

 지혜만이 이러한  가지의 뜻을 갖추기 때문에 홀로 출세간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나머지 지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10지(地) 중에서의 무분별지혜이다.


數修此故,捨二麤重。二障種子立麤重名,性無堪任違細輕故。

令彼永滅,故說爲捨。此能捨彼二麤重故,便能證得廣大轉依。

이러한 10지(地) 중에서의 무분별지혜를 거듭 닦음으로써 ‘종자와 종자가 아닌 습기(習氣) 두 가지의 이추중(二麤重)’을 버리나니, 이장(二障)의 종자에 추중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다.  

체성이 자재하지 못한 무감임(無堪任)으로서 미세함과 가벼움에 거스르기 때문이며,

그것을 영원히 소멸시키기 때문에 게송에서 ‘버릴 사(捨)’라고 하는 것이며,

이로써 능히 이추중(二麤重) 버리므로 문득 광대한 ‘전의(轉依)’를 증득할  있는 것이다.

 

이추중(二麤重)은 종자ㆍ종자가 아닌 습기(習氣)를 말한다. 유식 교의에서 습기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

첫째는 훈습(熏習)의 기분(氣分)의 뜻으로서 종자에 사용되는 것이고,

둘째는 관습(慣習)의 기분의 뜻으로서, 번뇌의 체(體)가 이미 다한 이후에 그 습관성이 남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후자(後者)인, 습관성이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소지장(所知障)의 종자인 추중과 종자가 아닌 습기의 추중은 10지(地)의 각 지위에서 별도로 단멸하며,

번뇌장의 종자의 추중은 금강심(金剛心)에서야 비로소 없애고, 종자가 아닌 습기의 추중은 역시 각 지위에서 단멸한다.


依謂所依,卽依他起,與染淨法爲所依故。染謂虛妄遍計所執,淨謂眞實圓成實性,轉謂二分:轉捨、轉得。由數修習無分別智斷本識中二障麤重,故能轉捨依他起上遍計所執,及能轉得依他起中圓成實性。由轉煩惱得大涅槃,轉所知障證無上覺,成立唯識意爲有情證得如斯二轉依果。

‘의(依)’는 의지처인 소의(所依)를 말하는 것으로, 곧 의타기성이니, 잡염법과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며,

잡염법이란 허망한 변계소집성을 말하는 것이고, 청정법이란 진실한 원성실성을 말하는 것이다. 

‘전(轉)’이란 잡염분과 청정분의 이분(二分)을 전환해서 버리는 전사(轉捨)하고, 전환해서 얻는 전득(轉得)을 말하는 것으로, 거듭 무분별지혜를 닦아 익혀서 근본식 중의  가지 장애의 이장추중(二障麤重)을 끊음으로써, 능히 의타기성 위의 변계소집성을 전환해서 버리고, 의타기성 위의 원성실성을 전환해서 증득하는 것이다.

번뇌를 전환함으로써 대보리를 얻고, 소지장을 전환해서는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하나니,

유식(唯識)의 도리를 성취하는 의의는 유정에게 이러한  가지 전의의 증과인 이전의과(二轉依果)를 증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ㅡ전의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인 이설(異說)을 서술한 것으로 먼저 1(第一師) 견해를 서술하였다.


或依卽是唯識眞如,生死涅槃之所依故。愚夫顚倒迷此眞如,故無始來受生死苦。

聖者離倒悟此眞如,便得涅槃畢竟安樂。

 ‘의(依)’는  유식의 진여이니, 생사와 열반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전도(顚倒)되어서 이 진여에 미혹한 까닭에 아득한 무시(無始)로부터 생사의 고통을 받으나,

성자는 전도됨을 떠나서  진여를 깨달음으로써 문득 열반을 얻고 궁극에 이르러 안락한 것이다.

2(第二師) 견해를 서술하였다.


由數修習無分別智斷本識中二障麤重,故能轉滅依如生死及能轉證依如涅槃,此卽眞如離雜染性。如雖性淨而相雜染,故離染時假說新淨,卽此新淨說爲轉依,修習位中斷障證得。

거듭거듭 무분별지혜를 닦아 익혀서 근본식 중의  가지 장애의 이장추중(二障麤重)을 끊음으로써,

능히 진여에 의지하는 생사를 전환하여 단멸하고, 능히 진여에 의지하는 열반을 전환하여 증득하나니, 이것은  진여가 잡염을 떠난 성품임을 말하는 것이다. 

진여의 성(性)은 청정하지만 상(相) 잡염이기 때문에, 잡염을 버린 때를 가정적으로 새롭게 청정하게 하는 신정(新淨)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신정(新淨) ‘전의(轉依)’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수습위 중에서 장애를 끊고 증득하는 것이다. 

ㅡ이 지위에서 장애를 끊고 금강심(金剛心) 이후에 불과(佛果) 증득하는 것으로,  지위에서  증득하는 것은 아니다.

 

雖於此位亦得菩提,而非此中頌意所顯,頌意但顯轉唯識性,二乘滿位名解脫身,在大牟尼名法身故。

 지위에서 역시 보리를 증득하지만,  부분의 게송이 의미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니, 게송의 의미는 다만 유식성을 전환하는 것만을 나타낸 것으로, 

2승의 만위(滿位)를 해탈신이라고 이름하고, 대모니(大牟尼)에 있는 것을 법신이라 이름하기 때문이다.

 

대모니(大牟尼), 진여(眞如)ㆍ유식성(唯識性)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니(牟尼, muni)를 적묵(寂黙)으로 번역하는 것은, 모든 잡염을 적정하게 그치는 적지(寂止)한 고요함의 묵정(黙靜)이기 때문이다.


云何證得二種轉依?謂十地中修十勝行,斷十重障,證十眞如,二種轉依由斯證得。

어떠한 것이  가지의 전의(轉依)를 증득하는 것인가?

10지(地) 중에서  가지의 뛰어난 수행인 십승행(十勝行)을 닦고,  가지 무거운 장애인 십중장(十重障)를 끊어서  가지의 십진여(十眞如)를 증득하나니, 두 가지의 전의를 이것에 의거해서 증득하는 것이다.

ㅡ삼십송』의 29게송을  부문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해설한 것이다.

 

10지(地)는 경유하는 지위(地位)이고, 십승행(十勝行)은 닦는 원인(因)이며,

십중장(十重障)은 단멸하는 법이고, 십진여(十眞如)는 관조하는 법이다. 

이러한 10지(地), 십승행(十勝行), 십중장(十重障), 십진여(十眞如)의 네 가지 원인(因)에 의거해서 두 가지 전의(轉依)의 뛰어난 증과인 묘과(妙果)를 얻는 것이다.

10지(十地), 십승행(十勝行)은 삼십송 제29게송의 처음 2구(句)를 자세히 해설하는 것이고,

십중장(十重障)은 제3구를, 십진여(十眞如)는 제4구를 해설한 부분이다.


言十地者:一極喜地,初獲聖性,具證二空,能益自他,生大喜故。
二離垢地,具淨尸羅,遠離能起微細毀犯,煩惱垢故。三發光地,成就勝定大法摠持,能發無邊妙慧光故。

10지(十地)’는 다음과 같으니, 제1은 극희지(極喜地)로, 처음으로 성인의 성품을 얻고 아공과 법공의 이공(二空)을 모두 증득해서 능히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여  기쁨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제2는 이구지(離垢地)이니, 청정한 계율을 구족하여서 미세한 훼범을 일으키는 번뇌의 오염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제3은 발광지(發光地)이니, 뛰어난 선정과  교법의 총지(總持)를 성취해서 가없는 미묘한 지혜인 묘혜(妙慧)의 광명 내기 때문이다.

 

총지(總持, dhāraṇī)는 선법(善法)을 호지(護持)하여 흩어지지 않게 하고, 악법(惡法)을 억눌러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이에는 법(法)ㆍ의(意)ㆍ주(呪)ㆍ인(忍)의 4다라니(四陀羅尼)가 있으며,

법다라니(法陀羅尼)는 부처님의 교법을 듣고 지녀서 잊지 않는 것이고,

의다라니(意陀羅尼)는 일체법의 의취(意趣)를 총지(總持)하여 잊지 않는 것이며,  

주다라니(呪陀羅尼)는 주문(呪文)을 총지하여 잊지 않으며, 불가사의한 주술을 일으켜서 타인을 구제하는 것이며, 

인다라니(忍陀羅尼)는 일체법의 실상(實相)을 깨닫고 인지(忍持)하여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삼혜(三慧), 듣고서 얻는 지혜인 무소성혜(聞所成慧), 사유해서 얻는 지혜인 사소성혜(思所成慧), 선정 수행으로 얻는 지혜인 수소성혜(修所成慧)이다.

 

四焰慧地,安住最勝菩提分法,燒煩惱薪,慧焰增故。五極難勝地,眞、俗兩智行相互違,合令相應,極難勝故。六現前地,住緣起智,引無分別最勝般若,令現前故。

제4는 염혜지(焰慧地)이니, 가장 뛰어난 보리분법(菩提分法)에 안주하여서 번뇌의 땔나무를 태워 버리 듯 무분별지혜을 증장하기 때문이며,

제5는 난승지(難勝地)이니, 세속의 저술(書)이나 주장(論) 등을 아는 세속지혜의 작용이 서로 위배되는 것을 화합하여 상응하게 하는 것이 매우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제6은 현전지(現前地)이니, 12 연기법에 안주하는 지혜인 후득지가 분별이 없는 가장 뛰어난 지혜인 반야(般若)를 이끌어내어서 현전하게 하기 때문이다.


七遠行地,至無相住功用後邊,出過世閒二乘道故。八不動地,無分別智任運相續,相用煩惱不能動故。九善慧地,成就微妙四無閡解,能遍十方善說法故。

제7은 원행지(遠行地)이니, 집착없이 머무는 작용의 최후에 이르러서 세간과 2승의 도를 멀리 벗어나기 때문이며,

제8은 부동지(不動地)이니, 무분별지혜가 자연히 상속하여 상(相, 형상)ㆍ용(用, 작용)ㆍ번뇌에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며,

제9는 선혜지(善慧地)이니, 미묘한  가지의 걸림이 없는 사무애지(四無碍智)를 성취하여, 능히 시방으로 두루하게 법을 하기 때문이다.

 

사무애지(四無碍智), 여래에게 있는 네 가지의 걸림 없는 지해인 사무의해(四無礙解)로서 4무애변(無礙辯) 혹은 4무애지(無礙智)라고도 한다. 

법무애해(法無礙解)는 일체의 교법에 통달한 것이고, 의무애해(義無礙解)는 일체 교법의 의리(義理)에 통달한 것이고, 사무애해(辭無礙解)는 모든 언어에 통달한 것이고, 변무애해(辯無礙解) 또는 낙설무애해(樂說無礙解)는 유정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 법을 설함에 있어서 자재한 것을 말한다.


十法雲地,大法智雲,含衆德水,蔽如空麤重,充滿法身故。如是十地摠攝有爲、無爲功德以爲自性,與所修行爲勝依持,令得生長,故名爲地。十勝行者,卽是十種波羅蜜多。

제10은 법운지(法雲地)이니, 큰 교법의 지혜의 구름이 많은 덕의 물인 덕수(德水)를 함유하고서 허공과 같은 모든 추중을 가리고 법신에 충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10지의 체성(體性)을 밝히자면, 전체적으로 유위ㆍ무위의 공덕을 포함해서 자성으로 삼으며,

닦은 수행에 대하여 뛰어난 의지처인 승의(勝依)가 되어서 생겨나고 성장할  있도록 하기 때문에 지(地)라고 이름하는 이유이며,

 가지의 뛰어난 수행인  십승행(十勝行)’이란   가지 바라밀인 십바라밀(十波羅蜜) 말하는 것이다. 

 

ㅡ이하는  가지 뛰어난 수행인 십승행(十勝行) 관하여 열세 가지 부문으로 나누어 자세히 해설한, 제분분별(諸門分別)으로, 먼저 열 가지 바라밀 각각의 종류를 판별한, 제일십도상섭문(第一十度相攝門)이다.

施有三種,謂財施、無畏施、法施。戒有三種,謂律儀戒、攝善法戒、饒益有情戒。忍有三種,謂耐怨害忍、安受苦忍、諦察法忍。精進有三種,謂被甲精進、攝善精進、利樂精進。

보시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재물을 베푸는 재시(財施), 두려움이 없게 하여 주는 무외시(無畏施), 법을 가르쳐 주는 법시(法施)이며,

지계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율의계(律儀戒, 섭율의계), 온갖 선법을 닦는 섭선법계(攝善法戒), 널리 중생을 넉넉히 이롭게 하는 요익중생계(饒益衆生戒)이,

인욕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원한을 참는 원해인(怨害忍), 고통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안수고인(安受苦忍), 법을  관찰하는 제찰법인(諦察法忍)이며,

정진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데 서원을 일으키는 피갑정진(被甲精進), 모든 선법을 닦는 섭선정진(攝善精進),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이락정진(利樂精進)이다.

 

삼취정계(三聚淨戒), 대승보살이 닦는 계법으로,  

‘취(聚)’는 모았다는 뜻으로, 계율의 근본취지를 셋으로 묶어 모았다는 말
대승과 소승의 모든 계법 모두가  가운데 속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이라고 하고,

 계법의 자성이 청정하므로 ()이라고 한다.

율의계(律儀戒), 섭율의계(攝律儀戒)의 준말이며 별해탈계(別解脫戒) 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라고도 하며, 수계(受戒)하는 작법(作法)에 의해 5계ㆍ10계ㆍ구족계 등을 받아 지니며, 몸이나 입으로 짓는 악업을 따로따로 해탈하는 계법이다.

섭선법계(攝善法戒), 일체의 선(善)을 모두 하나하나 실행하는 것을 계(戒)로 삼아서 일체의 선(善)을 닦는 계(戒)로써, 작선문(作善門), 작지계(作持戒)라고도 한다. 
요익중생계(饒益衆生戒) 또는 섭중생계(攝衆生戒) 선을 쌓아가면서 중생에게 선을 베풀고 이타문(利他門)으로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靜慮有三種,謂安住靜慮、引發靜慮、辦事靜慮。般若有三種,謂生空無分別慧、法空無分別慧、俱空無分別慧。方便善巧有二種,謂迴向方便善巧、拔濟方便善巧。願有二種,謂求菩提願、利樂他願。力有二種,謂思擇力、修習力。智有二種,謂受用法樂智、成熟有情智。

선정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현전법(現前法)의 즐거움에 편안히 머무는 안주정려(安住靜慮, 안주선정), 여섯 가지 신통을 이끌어 내는 인발정려(引發靜慮, 인발선정), 유정을 이롭게 하는 사업을 판별하는 변사정려(辦事靜慮, 변사선정)이며,

반야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아공(我空)을 체득한 생공무분별지혜(生空無分別慧), 법공을 체득한 법공무분별지혜(法空無分別慧), 아공ㆍ법공을 체득한 구공무분별지혜(俱空無分別慧)이며,

방편선교바라밀(방편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닦은 모든 선근을 유정에게 회향하여 함께 깨달음을 구하게 하는 회향의 방편을  통달한 회향방편선교(向方便善巧)와 중생제도의 방편을  통달하는 구제방편선교(拔濟方便善巧)이며,

서원바라밀(원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깨달음을 구하는 구보리원(求菩提願) 남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고자 하는 이락타원(利樂他願)이며,

역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사유해서 결택하는 사택력(思擇力) 닦아 익히는 수습력(修習力)이며,

지혜바라밀  가지가 있으니, 법의 즐거움을 수용하는 수용법락지(受用法樂智) 유정을 성숙하게 하는 성숙유정지(成熟有情智)이다.

 

此十性者,施以無貪及彼所起三業爲性,戒以受學菩薩戒時三業爲性,忍以無瞋、精進、審慧及彼所起三業爲性,精進以勤及彼所起三業爲性,靜慮但以等持爲性,後五皆以擇法爲性,說是根本、後得智故。有義第八,以欲、勝解及信爲性,願以此三爲自性故。

이러한 열 가지의 자성인 십성(十性)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으니,

보시바라밀은 탐욕이 없는 무탐(無貪)  탐욕에 일으켜진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의 삼업을 자성으로 삼으며,

지계바라밀은 보살계를 닦을 때의  가지업을 자성으로 삼으며,

인욕바라밀은 성내지 않는 무진(無瞋)과 정진(精進), 살펴서 판단하는 심혜(審慧)  그러한 것으로부터 일으켜진업을 자성으로 삼으며,

정진바라밀은 부지런함  그러함으로서 일으켜진업을 자성으로 삼으며,

선정바라밀은 다만 삼마지를 자성으로 삼을 뿐이며,

나머지 다섯 가지는법을 간택(揀擇)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다. 

제6의 반야바라밀은 근본지(根本智)와 방편ㆍ서원ㆍ힘ㆍ지혜의 바라밀 후득지(後得智)라고 무성의 '섭대승론석' 제7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제8의 서원바라밀은 욕구ㆍ승해(勝解)ㆍ믿음을 자성으로 삼는다고 하였으니, 서원바라밀은   가지를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ㅡ10바라밀의 자성을 밝힌, 제이출체문(第二出體門).


此說自性,若幷眷屬,一一皆以一切俱行功德爲性。

이상의 것들은 자성(自性)을 말한 것으로, 만약 권속을 아울러서 말한다면, 그 하나하나 모두가 일체의 함께 작용하는 구행공덕(俱行功德)을 자성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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