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9 5

 

二緣安立諦,有十六心,此復有二:

다른 하나의 이연(二緣)은 안립제를 반연하는 것으로서, 16 가지의 십육심(十六心)이 있으며, 이에 다시 두 종류가 있으니, 

상견도(相見道) 안립제관(安立諦觀)으로서 16() 밝힌 것으로, 16심을 지어서 안립제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을 16심상견도(心相見道)라고 이름한다.

 

一者依觀所取、能取,別立法類十六種心。

첫째는 인식대상인 소취(所取)와 인식주체인 능취(能取)를 관찰하는 것에 의거해서 별도로 법(法)ㆍ유(類, 부류)의 16 가지 마음을 건립한 것이다.

 

십육심(十六心),

고제(苦諦)에 고법지인(苦法智忍)ㆍ고법지(苦法智)ㆍ고류지인(苦類智忍)ㆍ고류지(苦類智)의 4심(心),

집제(集諦)에 집법지인(集法智忍)ㆍ집법지(集法智)ㆍ집류지인(集類智忍)ㆍ집류지(集類智)의 4심,

멸제(滅諦)에 멸법지인(滅法智忍)ㆍ멸법지(滅法智)ㆍ멸류지인(滅類智忍)ㆍ멸류지(滅類智)의 4심,

도제(道諦)에 도법지인(道法智忍)ㆍ도법지(道法智)ㆍ도류지인(道類智忍)ㆍ도류지(道類智)의 4심(心)이다.

인식대상인 소취(所取)와 인식주체인 능취(能取)를 관찰함에 의거하여 4성제를 법(法)과 유(類, 부류)로 나누고, 이것을 다시 인(忍, 인가)와 지(智, 지혜)로 나눈 것을 합한 것이 16심(心)이다. 

인(忍, 인가)은 소득(所得)의 미혹을 바르게 단멸하는 무루지혜의 작용이고

지(智, 지혜)는 멸제의 도리인 멸리(滅理)를 바르게 증득하는 무루지혜의 작용이다. 

 인(忍, 인가)은 단멸의 작용이고, 지(智, 지혜)는 증득의 작용이다. 

법인(法忍)과 법지(法智)는 진리인 제리(諦理)를 반연하는, 즉 인식대상을 관찰하는 것이고,

유인(類忍)과 유지(類智)는 이전의 지혜인 지품(智品)을 반연하는, 즉 인식주체를 관찰한다.


謂於苦諦有四種心:一苦法智忍,謂觀三界苦諦眞如,正斷三界見苦所斷二十八種分別隨眠;

고제(苦諦)에 고법지인(苦法智忍)ㆍ고법지(苦法智)ㆍ고류지인(苦類智忍)ㆍ고류지(苦類智)의 사심(四心)이 있으니,

제1은 고제의 법을 관찰하는 지혜를 인가하는 고법지인(苦法智忍)으로, 삼계의 고제의 진여를 관찰해서 실로 삼계의 고제를 관찰함으로써 단멸되는 28 가지의 분별수면을 끊는 것이며,

욕계의 고제(苦諦) 밑의 10 가지 미혹과, 색계와 무색계에서 진(瞋) 제외한 나머지 각각 9 가지씩을 합하여 28 가지이다.

 

二苦法智,謂忍無閒觀前眞如,證前所斷煩惱解脫;

제2는 고제의 법을 관찰하는 지혜인 고법지(苦法智)이니, 고제의 법을 관찰하는 지혜를 인가하는 것의 바로 다음 찰나에 이전의 진여를 관찰하여서 이전에 끊은 번뇌의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며, 

 

三苦類智忍,謂智無閒無漏慧生,於法忍智各別內證,言後聖法皆是此類;

제3은 고제의 부류를 관찰하는 지혜를 인가하는 고류지인(苦類智忍)이니, 고제의 법을 관찰하는 지혜의 바로 다음 찰나에 무루의 지혜가 생겨나서, 고제의 법을 관찰하는 지혜를 인가하는 것과 고제의 법을 관찰하는 지혜에 대하여 각각 별도로 내면적으로 증득한다. 이후의 성스러운 법은 모두 이것의 유(類, 부류)라 말하는 것이다.

 

四苦類智,謂此無閒無漏智生,審定印可苦類智忍。如於苦諦有四種心,集、滅、道諦應知亦爾。

此十六心八觀眞如,八觀正智。法眞見道無閒解脫見自證分,差別建立,名相見道。

제4는 고제의 부류를 관찰하는 지혜인 고류지(苦類智)이니,

제3심心인 고류지인(苦類智忍)의 바로 다음 찰나에 무루의 지혜가 생겨나서 고제의 유(類, 부류)를 관찰하는 지혜를 인가하는 것을 살피고 결정해서 인가하는 것이다.

고제에 고법지인(苦法智忍)ㆍ고법지(苦法智)ㆍ고류지인(苦類智忍)ㆍ고류지(苦類智)의 4심(心)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제ㆍ멸제ㆍ도제에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

이  십육심(十六心) 있어서, 4성제 각각의 법인(法忍)과 법지(法智)를 합한 8 가지는 진여를 관찰하는 것은 팔관진여(八觀眞如)이고,

부류를 인가하는 유인(類忍)과 부류를 관찰하는 지혜인 유지(類智)를 합한 8 가지는 근본지혜를 관찰하는 것은 팔관정지(八觀正智)이며,  

진견도의 무간도ㆍ해탈도의 견분ㆍ자증분에 법칙함으로써 구분해서 건립하여 상견도(相見道)라 이름하는 것이다.

 

상견도(相見道),법인(法忍) 이전의 진견도(眞見道) 무간도(無間道) 견분에 법칙하고,

법지(法智) 해탈도(解脫道) 견분에 법칙한다. 

또한 부류를 인가하는 유인(類忍) 무간도의 자증분(自證分) 법칙하고,

부류를 관찰하는 지혜인 유지(類智) 해탈도의 자증분에 법칙한다.

 

八觀眞如(팔관진여), 고법지인(苦法智忍)ㆍ집법지인(集法智忍)ㆍ멸법지인(滅法智忍)ㆍ도법지인(道法智忍)

고류지인(苦類智忍)ㆍ집류지인(集類智忍)ㆍ멸류지인(滅類智忍)ㆍ도류지인(道類智忍) 

팔관정지(八觀正智),  고법지(苦法智)ㆍ집법지(集法智)ㆍ멸법지(滅法智)ㆍ도법지(道法智)

고류지(苦類智)ㆍ집류지(集類智)ㆍ멸류지(滅類智)ㆍ도류지(道類智)

 

二者依觀下上諦境別立法類十六種心。

둘째는 하지(下地, 욕계)와 상지(上地, 색계와 무색계)의 4제(諦)의 대상을 관찰함에 의거해서 별도로 법(法)ㆍ유(類, 부류) 십육심(十六心) 건립하나니,

ㅡ하지(下地, 욕계)와 상지(上地, 색계와 무색계) 4성제를 관찰함에 있어서, 4성제를 () 유(類, 부류) 나누고, 그것을 다시 인가하는 인(忍) 지(智, 지혜) 나누어 16심이 되며, 그 16심의 명칭은 앞에서와 같다.

 

謂觀現前不現前界苦等四諦各有二心:一現觀忍,二現觀智。

如其所應,法眞見道無閒解脫見分觀諦,斷見所斷百一十二分別隨眠,名相見道。

현전하는 세계(욕계)와 현전하지 않는 세계(색계와 무색계)의 고제 등의 4성제를 관찰하는 데에 각각  가지의 마음이 있으니, 하나는 현관인(現觀忍)이고, 다른 하나는 현관지(現觀智)이니,  

 상응하는 바와 같이 진견도의 무간도와 해탈도의 견분이 4성제를 관찰하는  법칙하여, 견도에서 단멸되는 미혹인 112가지의 분별수면을 끊는 것을 상견도(相見道)라 이름하는 것이다.

ㅡ욕계의 4성제에 40 가지 견혹(見惑)과, 색계와 무색계에 각각 36 가지씩(성냄을 제외함있으므로, 이들을 합하여 112가지가 된다.

 

若依廣布聖教道理,說相見道有九種心。此卽依前緣安立諦二十六種止觀別立。謂法類品忍智合說各有四觀卽爲八心,八相應止摠說爲一。雖見道中止觀雙運,而於見義觀順非止,故此觀止開合不同,由此九心名相見道。

만약 성스러운 가르침을 널리 펴는 도리에 입각해서 상견도를 말한다면, 9 가지의 구심(九心)이 있으니, 이것은  앞에서 말한 안립제를 반연하는  종류의 16심 의거해서 지(止, 사마타)와 관(觀, 위빠사나)을 별도로 건립하며, 

법을 인가하는 법인(法忍)과 제법을 관찰하는 지혜힌 법지(法智)와 부류의 인가인 유인(類忍)과 부류를 관찰하는 지혜인 유지(類智) 모두를 합쳐서 말한다면, 각각  가지의 관찰이 있으므로  여덟 가지의 팔심(八心)이 되고,

이 팔심과 상응하는 사마타를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하나가 되며,

견도 중에서는 지(止, 사마타)와 관(觀, 위빠사나)을 함께 수행하지만, 견도의 의미에 있어서는 관(觀, 위빠사나)에만 수순하고 지(止, 사마타) 아니다. 

따라서  관(觀, 위빠사나)과 지(止, 사마타) 열고 합하는 것이 같지 않으니, 이에 의거해서 지(止, 사마타)의 일심과 관(觀, 위빠사나)의 팔심을 합하여서 9 가지의 구심(九心)을 상견도(相見道)라 이름하는 것이다.

경론의 가르침에 나오는 상견도(相見道) 판별한 것으로, 보살 등은 견도 등에서 이러한 관법을 닦지는 않지만, 다만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차별을 말하는 것이다.

 

諸相見道依眞假說世第一法無閒而生及斷隨眠,非實如是。

眞見道後方得生故,非安立後起安立故,分別隨眠眞已斷故。

모든 상견도는 진실에 의지하여 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므로 세제일법(世第一法)의 바로 다음 찰나에 생겨나며, 수면을 단멸한다고 하나, 실 이와 같은 것은 아니니, 진견도(眞見道) 이후에 비로소 생겨날  있기 때문이며,

비안립제(非安立諦) 이후에 안립제(安立諦)를 일으키기 때문이며,

분별수면을 참으로 이미 끊었기 때문이다.

 

前眞見道證唯識性,後相見道證唯識相,二中初勝,故頌偏說。前眞見道根本智攝,後相見道後得智攝。

이전의 진견도(眞見道)에서는 유식성(唯識性)을 증득하고, 이후의 상견도에서는 유식상(唯識相)을 깨닫는 것이니,

이러한 두 가지 중에서 앞의 유식성 뛰어나기 때문에 '유식삼십송'의 제28 게송에서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한 것이며,

이전의 진견도를 근본지(根本智)에 포함시키고 이후의 상견도를 후득지(後得智)에 포함시킨다.

 

諸後得智有二分耶?有義俱無,離二取故。有義此智見有相無,說此智品有分別故。

聖智皆能親照境故,不執著故說離二取。

모든 후득지에는 상분과 견분의  가지 심분인 이분(二分)이 있는 것인가? 

안혜의 같은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분(二分) 모두가 없으니, 2취, 즉 능취(能取)를 떠나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 지혜에는 견분은 있고 상분은 없으니,  지혜에는 분별이 있다고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성자는 모두 직접 대상을 관조할  있기 때문이며,

견분(見分)이 있다고 말하는 것.  

 

집착하지 않아서 기 때문에 2취(取)를 떠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ㅡ상분(相分)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경론에서 2() 떠난다고 말한 것은 2() 집착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견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有義此智二分俱有,說此思惟似眞如相,不見眞實眞如性故。

又說此智分別諸法自、共相等,觀諸有情根性差別而爲說故。

호법의 정의로써는 다음과 같으니, 이 지혜에는 상분과 견분의  가지 심분인 이분(二分)이 모두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현된 진여상(眞如相)을 사유하고, 참다운 진여성(眞如性)을 보지 않는다고 '유가사지론' 제73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또한  지혜는 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 등을 분별하며, 모든 유정의 근성(根性, 근기)의 차이를 관찰한다고  '불지경론(佛地經論)' 제3권과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 제6권에서 말한 때문이며,

ㅡ이것은 후득지(後得智) 견분(見分)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앞에서 말한 1(第一師),  안혜(安慧) 등의 견해를 논파하는 것이다.

 

又說此智現身土等爲諸有情說正法故。

또한  지혜는 신체와 국토인 신토(身土) 등을 나타내어 모든 유정을 위해서법을 설한다고  '불지경론' 제3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후득지에 상분(相分)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2(第二師) 견해를 논파한 것이다.

 

若不變現似色、聲等,寧有現身說法等事?轉色薀依不現色者,轉四蘊依應無受等。

만약 사현된 색(色)ㆍ성(聲) 등을 반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몸을 나투고 법을 설하는 등의 일이 있겠는가?

색온(色蘊)의 의지처를 전변하므로 색법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사온(四蘊)의 의지처를 전변하므로 수(受) 등도 없어야 할 것이며, 

 

又若此智不變似境,離自體法應非所緣,緣色等時應緣聲等。

又緣無法等應無所緣緣,彼體非實無緣用故,由斯後智二分俱有。

또한 만약 이 지혜는 전변하여 대상으로 사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자체를 떠난 법은 소연(所緣, 인식대상)이 아니어야 할 것이며,

색(色, 빛깔)과 형상 등을 반연할 때에도 당연히 성(聲, 소리) 등을 반연해야 할 것이며,

또한 존재하지 않는 무법(無法) 등을 반연할 때에는 인식대상인 소연연(所緣緣)이 없어야 할 것이니, 그것은 자체가 실재가 아니므로 연(緣)의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함에 의거해서 후득지에는 상분과 견분의 두 가지 심분인 이분(二分) 모두가 있는 것이다.

 

此二見道與六現觀相攝云何?六現觀者:一思現觀,謂最上品喜受相應思所成慧。

此能觀察諸法共相,引生煖等,加行道中觀察諸法,此用最猛,偏立現觀。

煖等不能廣分別法,又未證理,故非現觀。

진견도(眞見道)와 상견도(相見道)의 두 가지 견도와 여섯 가지의 육현관(六現觀)의 포섭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육현관(六現觀)은 다음과 같으니, 제1은 사유의 현관인 사현관(思現觀)으로, 최상품의 희수(喜受)와 상응하는 사혜(思慧)를 말하며, 이것이 능히 일체법의 공상(共相)을 관찰하여 난위(煖位) 등을 이끌어 내며, 가행도(加行道)에서 제법을 관찰함에 있어서 이것의 작용이 가장 강하므로 그것에 비중을 두어 현관을 건립하는 것이니, 난위 등은 널리 법을 분별할 수 없고, 또한 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현관이 아닌 것이다.

현관(現觀) 현전(現前) 명료하게 현경(現境) 관찰하는 것이다.

 

二信現觀,謂緣三寶世、出世閒決定淨信,此助現觀。令不退轉,立現觀名。

三戒現觀,謂無漏戒,除破戒垢,令觀增明,亦名現觀。

四現觀智諦現觀,謂一切種,緣非安立,根本後得無分別智。

五現觀邊智諦現觀,謂現觀智諦現觀後,諸緣安立世、出世智。六究竟現觀,謂盡智等究竟位智。

제2는 믿음의 현관인 신현관(信現觀)이다. 삼보(三寶)를 반연하는 세간과 출세간의 결정적이고 청정한 믿음으로, 이것이 현관을 도와서 퇴전치 않게 하므로 역시 현관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제3은 계율의 현관인 계현관(戒現觀)이니, 무루의 계율을 말하는 것으로, 파계의 더러움을 제거해서 관찰을 더욱 지혜롭게 하므로 역시 현관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제4는 현관지제현관(現觀智諦現觀)으로, 모든 종류의 비안립제를 반연하는 근본지와 후득지의 무분별지혜이며,

제5는 현관변지제현관(現觀邊智諦現觀)으로, 현관지제현관 다음에 모든 안립제를 반연하는 세간ㆍ출세간의 지혜이며,

제6은 구경현관(究竟現觀)으로, 진지(盡智)등의 구경위(究竟位)의 지혜를 말한다.

 

진지(盡智), 10지(智) 중의 하나로서, 일체의 번뇌를 끊었을 때에 내가 이미 고제(苦諦)를 알고, 고통의 원인을 끊었으며, 멸제(滅諦)를 증득하려고 도를 수행했다고 아는 지혜이다.

구경위(究竟位)의 지혜, 5위(位) 중의 구경위(究竟位)에서의 십지(十智), 즉 세속지(世俗智)ㆍ법지(法智)ㆍ유지(類智)ㆍ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減智)ㆍ도지(道智)ㆍ타심지(他心智)ㆍ진지(盡智)ㆍ무생지(無生智)이다.


此眞見道攝彼第四現觀少分,此相見道攝彼第四第五少分。彼第二三雖此俱起,而非自性,故不相攝。
이 진견도(眞見道)에서는, 근본지(根本智)와 후득지(後得智) 중에서 오직 근본지만을 취하는 제4의 현관지제현관(現觀智諦現觀)의 일부분을 포섭하며,

상견도에서는, 제4의 현관지제현관(現觀智諦現觀)은 후득지(後得智)만을 취하고, 제5의 현관변지제현관(現觀邊智諦現觀)은 수도(修道)에 통하기 때문에 일부분을 포섭하며, 

그 제2의 신현관(信現觀)과 제3의 계현관(戒現觀)은 이것과 함께 일어나지만, 자성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포섭하지 않는 것이다.

 

菩薩得此二見道時生如來家。住極喜地,善達法界,得諸平等。

보살이 진견도(眞見道)와 상견도(相見道)의 두 가지 견도를 얻은 때에는 여래가(如來家)에 태어나고 극희지(極喜地)에 안주하며, 법계를 잘 통달하고 모든 평등을 얻으며,

ㅡ모든 평등을 얻는 득제평등(得諸平等)이란, '불지경론(佛地經論)' 2권에서 평등성지(平等性智) 상응하는 심품에서 10상평등성(相平等性) 얻는다고 하였으며, 

또한 '섭대승론석' 6권에서 모든 유정과 모든 보살  모든 여래의  가지 평등한 심성을 얻기 때문이라고 하였.

 

常生諸佛大集會中,於多百門已得自在,

항상 모든 부처님의 대집회(大集會) 중에 태어나고, 여러 백 가지 부문의 백문(百門)에 대해서 이미 자재를 얻었으며,

ㅡ유가사지론 47권에서  찰나 사이에  가지 삼마지(三摩地) 증득하고, 청정한 천안(天眼)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보며, 백의 부처님을 친견하고, 백의 세계를 움직이는  등으로 말함을 가리킨다.

 

自知不久證大菩提,能盡未來利樂一切。 
머지않아 대보리를 증득하고, 미래세가 다하도록 모든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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