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제 7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5. 피입인과분(彼入因果分) 4

 

▶論曰:如是六種波羅蜜多,所得勝利,云何可見?謂諸菩薩,流轉生死,富貴攝故`大生攝故`大朋大屬之所攝故`廣大事業加行成就之所攝故`無諸惱害性薄塵垢之所攝故`善知一切工論明處之所攝故,勝生無罪,乃至安坐,妙菩提座,常能現作一切有情,一切義利,是名勝利.

논문;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바라밀다로부터 얻게 되는 뛰어난 이익의 승리(勝利)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보살은 생사에 유전할지라도 부귀를 포섭하는 까닭에, 부귀하고 자재하니, 범천(梵天)ㆍ제석천(帝釋天) 등에서 생을 받기 때문이고,

훌륭한 삶의 대생(大生)을 포섭하는 까닭에 인간계에 태어날지라도 최상의 과보를 받기 때문이며,

널리 알려진, 대명(大朋)의  권속을 포섭하기 때문이며, 광대사(廣大事) 가행의 성취를 포섭하기 때문이며, 

모든 고뇌가 없고 번뇌가 미약함을 포섭하기 때문이며,

공예 기술  모든 학문의 아는 것의 명() 포섭하기 때문에, 뛰어난 생의 승생(勝生)으로서 죄가 없으며,

나아가 승묘한 보리좌에 편안히 앉아서, 많은 유정에게 항상 나투어 모든 이익을 지으니,

이를 뛰어난 이익의 승리(勝利)라 하는 것이.

바라밀다의 공덕에 관한, 제10 공덕장(10 功德章).

 

명(明)은 범어 vidyā의 번역어로서, 배운 것을 분명히 한다는 뜻이며, 학예(學藝)ㆍ학문을 말한다.


▶釋曰:今當顯說波羅蜜多,所得勝利.勝生無罪者,非如外道雖得勝生,而名有罪,雜染污故.又彼勝生,皆是無常.

해석한다; 이제 마땅히 바라밀다가 얻는 뛰어난 이익의 승리(勝利)을 말하는 것이니,

‘뛰어난 생(勝生)으로서 죄가 없다’는 것이란, 외도가 뛰어난 생을 받을지라도 죄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 잡염에 오염된 때문이고, 또한  뛰어난 생은 모두 무상(無常)하기 때문이다.

외도의 뛰어난 생이 유죄(有罪) 이유를 밝힌다.

 

波羅蜜多果,非無常,由說乃至安坐妙菩提座故.又彼勝生,唯能自利,不能利他,由不說彼常,能現作有情義利.

波羅蜜多所得勝果,常能現作一切有情,一切義利.如是名爲諸到彼岸,得無罪等,勝果義利.

바라밀다의 결과는 무상(無常)하지 않으며, 나아가 승묘한 보리좌에안히 앉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며,

또한  뛰어난생은 오직 자신만을 이롭게 할 뿐이지 남을 이롭게  수는 없는 것이니, 그는 유정을 이롭게 하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라밀다가 얻는 뛰어난 결과의 승과(勝果)는 항상 나투어 많은 유정에게 모든 이익을 짓는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모든 바라밀다가 무죄 등의 뛰어난 결과의 승과의리(勝果義利)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論曰:如是六種波羅蜜多,互相決擇,云何可見? 世尊於此一切六種波羅蜜多,或有處所以施聲說`或有處所以戒聲說`或有處所以忍聲說`或有處所以勤聲說`或有處所以定聲說`或有處所以慧聲說.

如是所說,有何意趣?謂於一切波羅蜜多,修加行中,皆有一切波羅蜜多,互相助成.如是意趣.

논문;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바라밀다가 서로 결택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세존께서는  여섯 가지 바라밀다에 대해서 어떤 곳에서는 보시의 이름으로 말씀하시고, 

어떤 곳에서는 계율의 이름으로 말씀하셨으며, 어떤 곳에서는 인욕의 이름으로 말씀하시고, 

어떤 곳에서는 정진의 이름으로 말씀하셨으며, 어떤 곳에서는 선정의 이름으로 말씀하시고, 

어떤 곳에서는 지혜의 이름으로 말씀하셨으니,

이렇게 말씀하신 것에 어떠한 의취(意趣) 있는 것인가? 

모든 바라밀다의 가행을 수행하는 가운데에는 일체의 모든 바라밀다가 있으며, 서로 도와서 이루는 것이라는 의취(意趣) 있는 것이다.

11 호현장(第 十一 互顯章).


▶釋曰:於三百頌般若波羅蜜多等經中,本爲說一波羅蜜多,乃說一切波羅蜜多.於如是說,有何意趣? 於修一時,一切相助,應知此中,有是意趣.謂修施時,防護身語,由此有戒波羅蜜多,而相助成.乃至了知施之因果,由此有慧波羅蜜多,而相助成.其餘相助,如應當知.

해석한다; '대반야경'의 도섭품(度攝品)의 3 게송의 반야바라밀다 등의 경전에서 본래 하나의 바라밀다를 설명하기 위하여 모든 바라밀다를 말씀하셨으니,  

이러함에 어떠한 의취(意趣) 있는 것인가? 

하나를 수행할 때, 일체가 서로 돕는 것이니, 이러한 의취(意趣)가 있다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보시를 수행할  신업과 구업을 보호하나니, 이것은 지계바라밀다가 있어서 돕는 것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보시의 인과를 아는 것은 지혜바라밀다가 있어서 서로 돕기 때문이며,

 나머지가 서로 돕는 것도 그 상응하는 바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


▶論曰:此中有一嗢拕南曰:

논문; 이러함에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數相及次第, 訓詞修差別, 攝所治功德, 互決擇應知.”

決擇결택, 도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

숫자(數)ㆍ양상(相)ㆍ차제(次第, 순서)ㆍ훈사(訓辭, 말)ㆍ수행(修行)ㆍ차별(差別)ㆍ소섭(所治, 포섭)

다스려지는 것의 소치(所治)ㆍ공덕이 서로 결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釋曰:次第頌前,其文易了.

해석한다; 그 문장이 알기 쉬우니 순서대로 앞의 내용을 읊으면 된다.


6. 피수차별분(彼修差別分) 1
 
▶論曰:如是已說彼入因果.彼修差別,云何可見?由菩薩十地.何等爲十?一極喜地`二離垢地`三發光地`四焰慧地`五極難勝地`六現前地`七遠行地`八不動地`九善慧地`十法雲地,

▷논문; 이상과 같이 그것에 들어가는 인과를 말하였으니, 그것을 수행하는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보살의 10() 의거하는 것이니, 무엇을 10지라 하는 것인가? 

첫째는 극희지(極喜地, 환희지歡喜地)이고, 둘째는 이구지(離垢地)이며, 셋째는 발광지(發光地)이고, 

넷째는 염혜지(焰慧地)이며, 다섯째는 극난승지(極難勝地, 난승지)이고, 여섯째는 현전지(現前地)이며, 

일곱째는 원행지(遠行地)이고, 여덟째는 부동지(不動地)이며, 아홉째는 선혜지(善慧地)이고, 

열째는 법운지(法雲地)이다. 

 

如是諸地,安立爲十.云何可見?爲欲對治十種無明所治障故.所以者何? 以於十相所知法界,有十無明所治障住.

이와 같은 여러 지위(地)를 안립하여  가지로 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가지의 십종무명(十種無明)의 다스려야  장애인 소치장(所治障)을 다스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서 인가?  가지 상의 알아야  소지법계(所知法界)에  가지 무명의 다스려야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云何十相,所知法界?謂初地中,由遍行義;第二地中,由最勝義;第三地中,由勝流義;第四地中,由無攝受義;

第五地中,由相續無差別義;第六地中,由無雜染淸淨義;第七地中,由種種法無差別義;

第八地中,由不增不減義`相自在依止義`土自在依止義;第九地中,由智自在依止義;第十地中,由業自在依止義`陁羅尼門三摩地門自在依止義.此中有三頌:

무엇이  가지 상의 알아야  소지법계(所知法界)인가? 

초지에서는 두루 행함의 편행의(遍行義) 의거하고, 

2지에서는 가장 뛰어남의 최승의(最勝義) 의거하며, 

3지에서는 뛰어난 흐름의 승유의(勝流義) 의거하고, 

4지에서는 섭수가 없는 무섭수의(無攝受義) 의거하며, 

5지에서는 상속이 차별없는 상속무차별의(相續無差別義) 의거하며,

6지에서는 잡염과 청정이 없는 무잡염청정의(無雜染淸淨義) 의거하며, 

7지에서는 갖가지 법의 차별이 없는, 종종법무차별의(種種法無差別義) 의거하고, 

8지에서는 증가도 감소도 없는 부증불감의(不增不減義) () 자재한 의지의 상자재의지의(相自在依止義) 국토가 자재한 의지의 토자재의지의(土自在依止義) 의거하며,

9지에서는 지혜가 자재한 의지의 지자재의지의(智自在依止義) 의거하고, 

10지에서는 업이 자재한 의지의 업자재의의(智自在依止義) 다라니문(陀羅尼門)ㆍ삼마지문(三摩地門) 자재한 의지의(依止義) 의거한다. 

이러함에 세 개의 게송이 있으니, 

ㅡ10() 수행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수행의 차이를 대치장(對治章)ㆍ입명장(立名章)ㆍ득상장(得相章)ㆍ수상장(修相章)ㆍ수시장(修時章)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가운데, 다스림의 제1 대치장(1 對治章)이다.


“遍行最勝義, 及與勝流義, 如是無攝義, 相續無別義,

두루 행함의 편행의(遍行義)ㆍ가장 뛰어남의 최승의(最勝義)뛰어난 흐름의 승유의(勝流義)

이와 같은 섭수가 없음의 무섭수의(無攝受義)상속의 차별이 없는 의미의 상속무차별의(相續無差別義)와


無雜染淨義, 種種無別義, 不增不減義, 四自在依義.

잡염과 청정이 없는 무잡염청정의(無雜染淸淨義)갖가지 차별이 없는 종종법무차별의(種種法無差別義)

증가도 감소도 없는 부증불감의(不增不減義) 가지 자재한 의지의 의(義)와


法界中有十, 不染污無明, 治此所治障, 故安立十地.”

법계 안에  가지의 염오가 없는 무명이 있으니, 

이렇게 다스려야  장애를 다스리는 것이니, 그러므로 10지(十地)를 안립한다네.


復次應知如是無明,於聲聞等,非染污,於諸菩薩,是染污.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와 같은 무명은 성문등에게는 염오가 아닌 비염오(非染污)이나,

보살에게는 염오(染污)라는 것을!


▶釋曰:依彼因果,修位差別,故問答言. 云何十相所知法界?謂初地中,由遍行義,乃至第十地中,由業自在依止義`陁羅尼門三摩地門自在依止義,由十種相,法界可知,故名十相所知法界.

 해석한다; 그 인과(因果)에 의지해서 수행의 지위를 구분하는 것이므로 문답으로 말하기를

‘무엇이  가지의 알아야  상(相)의 소지법계(所知法界)인가?’라고 하였다.

‘초지(환희지)에서는 두루 행함의 편행의(遍行義) 의거한다’에서부터 ‘제10지에서는 업이 자재한 의지의 의미와 다라니문ㆍ삼마지문이 자재한 의지의 의미에 의거한다’까지의  가지의 상에 의거해서 법계를   있는 까닭 ‘열 가지 상의 알아야  십상소지법계(十相所知法界)’라 말하는 것이다.

 

謂地地中,各有一相所知法界,由無明力,不能了知,爲欲對治,如是無明, 故立十地. 又所治障有其十種, 故立十地. 何等名爲所治十障?一異生性;二於諸有情,身等邪行;三遲鈍性,於聞思修,而有忘失;四微細煩惱現行,俱生身見等攝,此最下品故`不作意緣故`遠隨現行故,應知是微細;

각각의 지위마다 각각  가지 상의 알아야  법계가 있으나, 무명력(無明力)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무명을 다스리기 위해서  가지 지위인 십지(十地)를 건립한 것이며,

또한 다스려야  장애의 소치장(所治障)에   가지가 있기 때문에 10지를 건립한 것이니,

무엇을 다스려야   가지 장애의 소치십장(所治十障)이라 하는 것인?

첫째는 아집과 법집을 갖는 유정인, 범부의 성품인 이생성(異生性)이고,

둘째는 모든 유정에 있어서 신체 등의 삿된 행의 사행(邪行)이며,

셋째는 더디고 둔한 성품이니, 듣고 사유하며 수행함에 있어서 잊어버림이 있는 것이며,

넷째는 법집(法執) 분별의 종자를 체(體)로 하는 미세한 번뇌 현행하여, 신견(身見) 등과 함께 생겨는 것이니, 이러한 미세한 번뇌를 3 가지로 나타내자면,

보살의 마음을 오염시킬 수 없어서 가장 하품에 포함되기 때문이고,

후천적으로 분별해서 일어나는 분별기번뇌(分別起煩惱)가 아닌,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이기 때문에 무작의가 없음을 반연하는 불작의연(不作意緣)이기 때문이며,

본래부터 신체를 좇아서 일어나는 구생성(俱生性)인 까닭에, 멀리 따라서 현행하는 원수현행(遠隨現行)이기 때문이니, 이러한 것이 미세한 것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五於下乘般涅槃;六麤相現行;七細相現行;八於無相作行;九於饒益有情事,不作行;十於諸法中,未得自在.

다섯째는 생사의 괴로움을 두려워해서 오로지 생사를 버리고자 하는 열등한 교법에서의 반열반이며,

여섯째는 잡염과 청정의 두드러진 추상(麤相)에 집착해서 무상(無相)에 안주하지 못하는, 두드러진 모습의 추상현행(麤相現行)이며,

일곱째는 아직 모든 유위법의 상속상을 여의지 못하여 유전(流轉)의 생에 집착하는, 미세한 모습의 세상현행(細相現行)이며,

여덟째는 무상(無相)의 작의력(作意力)에 의해 짓는 행인, 무상작행(無相作行)이며,

아홉째는 유정을 이롭게 있어서의 작의가 아닌 행, 즉 의식적인 노력이 아닌 무공용행(無功用行)이며,

열째는 일체법에 대해서 아직 자재를 얻지 못한, 미득자재(未得自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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