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分別發趣道相(분별발취도상)
[전 절까지는 올바른 뜻을 나타내는 현시정의(顯示正義)와 그것을 그릇되게 이해하는 견해에 대하여 대치사집(對治邪執)으로 이를 시정하였으므로, 본 절에서는 해석분(解析分)의 마지막 절(節)로서, 일체 제불이 증득한 진여의 이치를, 일체 보살도 발심수행하여 그것을 이루고자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설하는 부분이다.]
⑴ 總說(총설)
分別發趣道相者(분별발취도상자) 謂一切諸佛所證之道(위일체제불소증지도)
분별발취도상이라 함은, 이른바 일체 제불이 증득하신 도이며,
一切菩薩發心修行趣向義故(일체보살발심수행취향의고)
일체보살이 발심하고 수행하여, 취향하는 뜻이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分別發趣道相 - 도(道)란 부처님께서 증득한 경지를 말한다. 그 경지로 마음을 내어 나아가는 모습을 나눈다는 뜻. 수행의 방법은 본래 信· 解· 行· 證, 네 가지로 나눈다.-물처럼바람처럼]
略說發心(약설발심) 有三種(유삼종) 云何爲三(운하위삼)
발심을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그 셋이라 하는가?
一者信成就發心(일자신성취발심) 二者解行發心(이자해행발심) 三者證發心(삼자증발심)
첫째는 신성취발심이요, 둘째는 해행발심이요, 셋째는 증발심이다.
[元曉 : 信成就發心이란 자리[位]가 십주에 있으며 겸하여 십신을 성취하니, 십신의 자리에서 신심을 닦아 익혀서 신심이 성취되어 결정심(決定心)을 일으켜 곧 십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신성취발심이라고 한다.
解行發心이란 십회향의 자리에 있으면서 겸하여 심행을 취하니, 십행의 자리 중에서 법공을 잘 알고 법계를 잘 수순하여 육도행(六道行-六波羅密)을 닦아서 육도행이 순결해지고 성숙되어 회향심을 일으켜 회향의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해행발심이라고 한다.
證發心이란 초지(初地) 이상에서 내지 십지의 자라에 있으니, 앞서 두 가지 상사(相似)한 발심에 의해 법신을 증득하여 진심(眞心)을 일으키는 것이다.
* 憨山 : 信成就發心 - 십신의 성취를 통해 십주(十住)를 발기한다는 뜻. 발(發)은 개발한다는 뜻도 있다.
解行發心 - 십행(十行)을 발기하여 십회향으로 나아가는 발심.
證發心 - 십지의 초지(初地)에 오른 보살이 육추의 무명상을 타파하고 나서 진여의 작용이 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진여의 작용이 발기했다는 말이다.-물처럼바람처럼]
[발심(發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 진전됨에 따라 마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등이 있듯이, 수행의 결심과 태도 및 방법 등도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그 때마다 새로운 입장에 서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은 증득(證得)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는 모습을 분별하여, 어떠한 발심이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발심(發心)은 발보리심(發菩提心)의 약칭으로서, 불타의 깨달음을 증득코자 하는 결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불타의 경계를 목표로 하여 발심하고, 수행하면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이 수행을 유지해 가는 힘은 바로 출발점에서의 결심이다. 그것이 바로 발심(發心)이다.
그러나 발심으로 수행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그 발심에 수행의 '행(行)'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수행의 결과로서 궁극적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득(證得)의 증(證)도 발심에 융합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발심(發心)을 그와 같은 넓은 의미에서 설해지고 있다.
본론에서는 발심(發心)을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해행발심(解行發心), 증발심(證發心)의 세 가지가 있다고 설하고 있다.
원효(元曉)는 이 세 가지 발심에 대하여 화엄경의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설 등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은 십신(十信)을 닦아 십주(十住)의 자리에 이르른 보살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보살이「십신」의 자리에서 신심(信心)을 닦아 그 신심이 성취되면 마음을 견고히 결정하여「십주」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라 한다고 말한다.
둘째, 해행발심(解行發心)이라는 것은「십행」을 닦아「십회향」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마음가짐으로서, 십행위(十行位)에서 능히 법공(法空)을 이해하고 법계에 수순하여 육도행(六度行)을 닦아 그것이 순수하게 성숙할 때, 더욱 분발하여 자비지혜의 회향심(廻向心)을 발하고 십회향위(十廻向位)에 들어가게 되므로 이를 해행발심(解行發心)이라고 말한다고 설하고 있다.
셋째, 증발심(證發心)이라고 하는 것은 초지(初地) 이상 내지 십지(十地)에 이르면서, 앞에서의 두 가지 상사발심(相似發心)보다 더욱 높은 발심으로 법신(法身)을 증득하고 진심(眞心)을 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아래의 도표와 같다.-전종식]
[본 항은 해석분(解釋分) 가운데 마지막 부분을 이루는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을 설명한 것으로, 전장에서 교리를 중심으로 논한 현시정의(顯示正義)와 대치사집(對治邪執)를 실천하기 위한 세 가지 발심으로 불도로 향해 나아가는 수행의 형태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이란 뜻을 일으켜 발심하고 수행하여 모든 부처님께서 체득하신 최상의 도에 나아가는 행상(行相)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을 간략히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해행발심(解行發心)·증발심(證發心)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신성취발심이란 신심을 성취시키고 결심을 발하는 내용의 발심이고, 다음에 해행발신은 이해와 실천을 확고하게 하여 가행정진하고자 하는 발심이며, 끝으로 증발심은 법신을 증득하고 진심을 드러내는 발심입니다. 즉, 믿음·이해·수행·증득하는 과정에서 발심하여 완전한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을 종합한 것입니다.
이를 좀더 살펴보면, 보리심(菩提心)을 발한 것에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십신(十信)을 성취하여 십주(十住)의 발심주(發心住)에서 삼지(三智)와 오안(五眼)이 일시에 발기한 신성취발심입니다. 둘째는 십행위(十行位) 가운데에서 법공진여(法空眞如)를 이해하고 십바라밀(十波羅密)을 순차적으로 실천합니다. 그 십행이 순수하게 익숙해지면 회향심을 발기하여 십회향위(十廻向位)에 들어가는 해행(解行)발심입니다. 셋째는 초지부터 십지까지 법신보살과 등각(等覺)·묘각(妙覺)이 지니는 마음가짐의 증(證)발심입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발심은 52계위(階位)를 수행하는 점차를 총괄하지만 그 수행의 정도가 동일하지 않아서 신성취발심과 해행발심은 상사발심(相似發心)이라 하고, 증발심은 진실발심(眞實發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발심에 있어서 이전까지는 한결같이 진여와 생멸의 두 문을 밝혀 이 두 문을 진여의 일심(一心)에 귀결시켰습니다.-수선]
⑵ 信成就發心(신성취발심)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란 신심(信心)을 성취완성하고 그 신심을 바탕으로 하여 성불(成佛)을 향한 결의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신심(信心)은 본래 심징정(心澄淨)이라 하여 '마음을 정화(淨化)시키는 힘'을 일컫는 말이다. 탁(濁)한 물을 가라앉히듯, 탁한 마음을 가라앉혀 정화시키는 힘이 곧 신심이다.
믿음(信)의 대상은 물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이다. 불(佛)을 믿으면 그 불(佛)의 청정성에 동화되어 자기의 마음도 청정해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신(信)이다. 법(法)에 대해서나 승(僧)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과(因果)의 이치를 믿는 것도 또한 그렇다. 인과의 도리를 믿는 것은 사람들에게 겸허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진리를 외경(畏敬)하는 마음을 생기게 한다.
불교에서의 신(信)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근본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 이성(理性)적 믿음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이를 네 가지 믿음(四信)으로 구분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마음의 근본인 진여의 법을 믿는 것이며, 둘째는 불(佛)에는 무량한 공덕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셋째는 법(法)에는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승(僧)은 능히 올바른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수행을 행한다고 믿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본절에서는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어떠한 사람'이 발심하고 '어떠한 행을 닦아 발심하며' '어떻게 하여 발심이 가능한가'라는 세 가지 점을 밝히는 것이다.]
① 發心(발심)의 因緣(인연)
信成就發心者(신성취발심자) 依何等人(의하등인)
신성취발심이라 함은, 어떤 사람에 의하여,
修何等行(수하등행) 得信成就(득신성취) 堪能發心(감능발심)
어떻게 수행을 닦아야만, 믿음=信의 성취를 증득하여 능히 발심을 감당할 수 있는가?
得信成就 堪能發心 어떻게 믿음을 가지고 발심하게 할 수 있는가?
所謂依不定聚衆生(소위의부정취중생) 有熏習善根力故(유훈습선근력고)
이른바 부정취의 중생에 의하는 것이니, 과거에 훈습한 선근의 힘이 있기 때문에,
信業果報(신업과보) 能起十善(능기십선) 厭生死苦(염생사고)
업의 과보를 믿고 능히 십선을 일으켜, 생사의 고를 싫어하고
欲求無上菩提(욕구무상보리) 得値諸佛(득치제불) 親承供養(친승공양)
위없는 깨달음=無上菩提을 구하고자, 모든 부처님을 만나 친히 받들어 공양하고
修行信心(수행신심) 經一萬劫(경일만겁) 信心成就故(신심성취고)
신심을 닦아 행하니, 일만 겁을 지나야 신심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元曉 : 삼취(三聚)를 나누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지금 이 글 중에서 밝혔으되, 보살 십해 이상으로 결정하여 물러남이 없는 것을 정정취(政定聚)라 하였고, 십신(十信)에 들지 못해 인과를 믿지 않는 것을 사정취(邪定聚)라 하였으며, 이 둘의 중간에서 도에 향하는 사람이 발심하여 무상보리를 구하여 하지만, 마음이 결정되어 있이 않아서 혹 나아가고 혹 물러나니 바로 십신을 말하는 것으로 부정취(不定聚)라고 하였다.
* 不定聚衆生 : 근기의 종류에 따라 삼정취(三定聚)가 있다. 성불 쪽으로 계속 나아가는 정정취(正定聚;十解부터), 거꾸로 타락해 가는 사정취(邪定聚), 연이 있으면 나아가고 아니면 미혹되게 살아가는 부정취(不定聚)로서 모도범부(毛道凡夫)라고 한다.
* 十善(십선) : 3 신업(身業) -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4 구업(口業) - 불양설(不兩舌), 불망어(不妄語), 불악어(不惡語), 불기어(不綺語;진실이 없이 교묘하게 꾸미는 말, 巧言을 하지 않음), 3 의업(意業) - 불탐욕(不貪欲), 부진애(不瞋恚), 불사견(不邪見)
* 信心成就故 : 신심을 성취한다는 것은 십신(十信)을 이룬다는 것이며, 십신을 이루면 십주(十住)에 대한 발심을 하게 된다. 이것이 범부각(凡夫覺) 발심이다.
* 부정취중생(不定聚衆生)이 신심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과거의 훈습으로 업과 과보를 믿음. 십선(十善)을 일으킴. 생사고(生死苦)를 싫어하고 깨달음을 구하고자함, 부처를 만나 공양함.]
[첫째의 '어떠한 사람이 발심하는가'에 대하여 본론은 '부정취(不定聚)의 중생'이라고 밝히고 있다. '부정취의 중생'이란 인과(因果)의 도리를 믿고, 십신(十信)의 자리에 들어왔으나, 아직 그 기간이 짧아 일만겁(一萬劫)의 오랜 기간이 경과하지 않았으므로 선연(善緣)을 만나면 진보하고 악연(惡緣)을 만나면 퇴보하는 등, 그 근성이 일정치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신(初信)에서 십신(十信)까지의 십신위(十信位)에 있는 사람을 부정취(不定聚)라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흔히 중생들을 수행의 정도에 따라 사정취(邪定聚) 부정취(不定聚) 정정취(正定聚)의 세 부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의 사정취(邪定聚)는 인과의 도리를 전혀 믿지 않고, 불도(佛道)에 뜻을 두지 않는 초신(初信) 이전의 사람을 말하고, 둘째의 부정취(不定聚)는 앞에 설명한 바와 같으며, 셋째의 정정취(正定聚)는 신심이 결정되어 결코 후퇴하는 일이 없는 십주(十住)의 초주(初住) 이상의 계위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인과를 믿지 않는 '사정취(邪定聚)'의 사람은 발심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인과의 도리를 믿는 '부정취(不定聚)'의 사람이 신심을 수행하여 발심하고 '정정취(正定聚)'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부정취(不定聚)의 중생은 문훈(聞熏)과 본각(本覺)의 내훈(內熏)과 전세에 훈습한 선근의 여력이 있기 때문에 업과 그 과보를 믿고 십선(十善)을 일으켜 생사의 괴로움을 싫어하고 위없는 보리를 구하려합니다. 그리고 모든 부처님을 만나 직접 받들어 공양하고 열 가지 신심(信心)을 수행합니다. 그리하여 일만 겁이 지나도록 그 수행을 계속하여 십종신심을 성취하기 때문에 제불보살이 십신(十信)이 충만한 마음에서 십주(十住)로 발심하여 나아가도록 가르칩니다. 혹은 제불보살의 대비심 때문에 스스로 십주에 마음을 내기도 하고, 혹은 정법이 소멸하려 하면 정법을 보호하려는 인연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십신의 마음을 성취하여 십주에서 발심한 사람은 정정취(正定聚)로 들어가 초주(初住)인 발심주(發心住)에서 범부나 소승의 지위에서 끝까지 물러나지 않습니다. 이를 여래의 종자인 습종성(習種性) 가운데 머문다고 하는데, 성불하는 정인(正因)과 서로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諸佛菩薩敎令發心(제불보살교령발심) 或以大悲故(혹이대비고) 能自發心(능자발심)
제불과 보살이 가르쳐 발심케하고, 혹은 대비심을 가진 때문에 능히 스스로 발심하기도 하며,
或因正法欲滅(혹인정법욕멸) 以護法因緣(이호법인연) 能自發心(능자발심)
혹은 정법이 소멸하려 함=因으로 인해서 정법을 보호=護法하려는 인연 때문에 능히 스스로 발심하기도 한다.
如是信心成就得發心者(여시신심성취득발심자) 入正定聚(입정정취)畢竟不退(필경불퇴)
이와 같은 신심을 성취하여 발심한 사람은 정정취(正定聚)에 들어가 필경에 물러나지 않으니,
名住如來種中(명주여래종중) 正因相應(정인상응)
이름하여 여래종 가운데 안주함이라고 하나니, 정인이 서로 호응=相應함이라고 한다.
[如來鍾(여래종) :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
* 正因相應 : 정인(正因)이라 함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진여를 말한다. 중생들이 비록 무명에 싸여 있지만 진여가 내재되어 있으므로 안으로부터 훈습하여 생사고를 싫어하고 깨달음에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것과 신심을 성취하여 발심한 사람이 정정취로 나아가 마침내 물러남이 없는 것이 서로 상응한다는 말이다.]
[둘째의 '어떠한 행을 닦아 발심하는가'에 대하여 본론은 먼저 '훈습'과 '선근력(善根力)'을 들고 있다. 훈습(熏習)은 내부로부터 나오는 진여의 내훈(內熏)과 외부에서 불보살이 가하는 외훈(外熏)에 의하여 수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며, 선근력(善根力)은 전세(前世)의 선업(善業)에 의하여 몸에 갖추어진 바탕의 힘을 말한다.
수행은, 따라서 이같은 두 가지 힘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는 업(業)의 인과(因果)를 믿고 십선(十善)을 행하게 되면, 생사의 윤회를 싫어하게 되고, 무상(無上)의 정각(正覺)을 구하고자 노력하여 여러 불타를 만나, 친히 받들어 공양하고 신심을 수행해가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심(信心)의 수행은 업의 인과를 믿고 십선을 행하며 제불을 예배 공양하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십선은 십선업도(十善業道)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의 세 가지 신선업(身善業)과 불망어(不妄語),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 불기어(不綺語)의 네 가지 구선업(口善業),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사견(無邪見)의 세 가지 의선업(意善業)을 말한다. 이에 반(反)하는 것은 십악업도(十惡業道)이다.]
若有衆生(약유중생) 善根微少(선근미소) 久遠已來(구원이래) 煩惱深厚(번뇌심후)
만약 어떤 중생이 선근이 작고 적어=微少하여, 오랜 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번뇌가 깊고 두터워서,
雖値於佛(수치어불) 亦得供養(역득공양) 然起人天種子(연기인천종자)
비록 부처를 만나고 또한 공양을 올리더라도, 인간·천상에 태어날 종자=人天種子를 일으키거나
或起二乘種子(혹기이승종자)
혹은 이승의 종자를 일으키기도 하니,
人天種子 :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천상에 날 종자.
設有求大乘者(설유구대승자) 根則不定(근즉불정) 若進若退(약진약퇴)
설사 대승을 구하는 자가 있다 하여도 근기가 일정하지 않아, 혹 정진하기도 하고 혹 퇴실하여,
或有供養諸佛(혹유공양제불) 未經一萬劫(미경일만겁) 於中遇緣(어중우연)
혹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이 있으되, 아직 일만 겁을 지나지 않아, 그 중간에 연=外緣을 만나면
亦有發心(역유발심) 所謂見佛色相(소위견불색상) 而發其心(이발기심)
또한 발심하기도 하나니, 이른바 부처님의 색상을 보고 그 마음을 발하기도 하며,
或因供養衆僧(혹인공양중승) 而發其心(이발기심)
혹은 여러 스님들=衆僧께 공양함으로 인해서 그 마음을 발하기도 하며,
或因二乘之人敎令發心(혹인이승지인교령발심) 或學他發心(혹학타발심)
혹은 이승인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마음을 발하기도 하며, 혹은 다른 사람에게 배워서 마음을 발하기도 하나니,
如是等發心(여시등발심) 悉皆不定(실개불정)
이와 같은 등등의 발심은 전혀 모두가 일정하지 않기에,
遇惡因緣(우악인연) 或便退失(혹편퇴실) 墮二乘地(타이승지)
나쁜 인연을 만나면 혹 다시 물러서고 잃음=退失하여 이승의 지위로 떨어진다.
선근(善根)이 깊은 사람과 얕은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선근의 선(善)이란 도를 향하여 나가는 것을 말한다.
[셋째의 '어떻게 하면 발심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본론은, '일만겁이 경과'한 뒤에야 '신심이 성취' 되고 '제불보살이 가르쳐 발심케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신심의 성취는 초신(初信)에서 십신(十信)까지 일만겁(一萬劫)이라는 기나긴 수행을 한 후에라야 이루어지는 것이며, 중도에 발심했다 하더라도 그 발심은 실패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일만겁의 수행이 종료되었을 때, 시기가 성숙한 것을 보고 제불보살이 가르쳐 발심(發心)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佛)이 없는 경우라도 스스로의 대비심(大悲心)을 일으켜 자력으로 발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혹은 정법(正法)이 땅에 떨어져 거짓이 횡행하는 것을 보고, 진리를 수호하겠다는 호법(護法)의 의지 때문에 스스로 발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신성취발심은 오랜 기간의 수행과 불보살의 가르침, 스스로의 대비심(大悲心), 또는 호법의 의지로 발심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하여 믿음으로 성취완성하겠다는 결심을 얻은 신성취발심자(信成就發心者)는 부정취위(不定聚位)를 탈피하여 정정취위(正定聚位)에 들어가, 절대 신심의 후퇴없이 장차 불타가 될 수 있는 여래의 집안에서 살고, 올바른 발심인 정인(正因)과 상응하게 되는 것이다.
세 가지 신성취발심 중, 첫째의 발심은 초신(初信)에서 십신(十信)까지의 십신위(十信位) 수행에, 본론에서는 일만겁(一萬劫)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는 것이지만, 이 수행의 결과 신심이 가득 차기 때문에 제불보살이 가르침을 주어 발심시킨다는 것이며, 둘째의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스스로의 대비심'과 셋째의 '정법의 파괴에 따른 호법(護法)의 의지'로 오랜 기간의 수행과 더불어 발심하여, 부정취(不定聚)의 위치에서 탈피하여 정정취(正定聚)의 첫 위치(初位)인 십주(十住)의 초발심주(初發心住)에 들어가는 것이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다.
다음은 선근(善根)이 미약하여 발심에 어려움을 겪고 실패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
이들은 선근이 미소(微少)한 중생으로서, 번뇌가 깊고 두터워, 비록 불(佛)을 만나 친히 받들어 공양한다 하더라도 깊은 신앙심을 일으킬 수가 없고, 도덕이나 세속적 종교심에 머물러, 내세(來世)에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종자를 일으키는 것에 그치고 만다. 혹은 성문연각 등 이타(利他)없이 자리(自利)를 추구하는 이승(二乘)을 향하여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설사 대승을 구하여 성불(成佛)할 결심을 일으키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선근(善根)이 미약하여, 신근(信根)이 확립되지 못하고, 조그마한 유혹에도 신심이 동요하여,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후퇴한다.
그와 같은 중생들이 행운으로 불타를 만나 친승공양(親承供養)할 때, 일만겁의 긴 세월이 경과하지 않았더라도 그 속에서 연을 만나 신심이 두터워져 발심하는 경우가 있고, 불타의 뛰어난 색상(色相)인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를 보고 일시적 환희심으로 발심하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중승(衆僧)을 공양할 때의 신앙심으로 발심하는 경우, 또는 성문연각등 이승인(二乘人)의 가르침이나 권유로 발심하는 경우, 또는 다른 사람의 하는 것을 보고 배워 발심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은 발심은 모두가 신근(信根)이 확립되지 못한 부정(不定)의 위치에서 일어난 발심에 불과하므로 만약 조그마한 곤란이나 나쁜 친구의 유혹 등 악연(惡緣)을 만나면 재빨리 발심을 단념하거나 수행하기 쉬운 이기적(利己的) 이승(二乘)의 수행으로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부정취(不定聚)의 성품을 지닌 사람은 내인(內因)과 외연(外緣)이 미소하고 하열하기 때문에 물러나 버립니다. 어떤 중생은 숙세에 훈습한 선근종자가 미소하여 오래고 먼 세월에 걸쳐서 탐욕·성냄·어리석음의 번뇌가 매우 두텁습니다. 그는 부처님이나 불상을 만나 공양을 올린다고 해도 인간과 천상에 태어날 종자인 오계(五戒)와 십선(十善)·팔재계(八齋戒) 등을 닦을 마음만 일으키며, 혹은 인간과 천상의 생사를 두려워하여 이승의 종자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설사 대승을 구하는 자가 있다고 해도 선근이 일정하지 않아 정진하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승을 구하는 자가 혹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 해도 아직 일만 겁을 지나지 못한 그 중간 과정에서 외연을 만나면 발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於中遇緣 외연을 만나다'하는 것은 혹 부처님의 색상을 부처로 보고 발심하기도 하며, 혹은 색상에 집착하여 여러 스님들께 공양함으로써 발심하기도 하며, 또는 이승인의 하열한 가르침으로 인해서 발심하기도 하며, 혹은 다른 사람의 자취에서 배우고 발심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모두가 보살의 자비와 지혜의 마음이 아닌 이러한 발심은 모두가 부정취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악한 인연을 만나면 곧 바로 후퇴하여 이승(二乘)의 지위로 떨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나모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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