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멸문(生滅門)으로부터 진여문(眞如門)에의 귀입(歸入)

 

[그 동안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여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릴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 두 문(門)을 반성하고, 생멸문(生滅門)이 본래의 진여문(眞如門)에 귀입(歸入)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심생멸문(心生滅門)은 마음의 시간적 존재로서,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이 대립된 분별(分別)의 세계이다. 분별의 망념(妄念)이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의 생멸이 있으며, 시간적(時間的)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멸의 세계에서 중생이 추구하는 것은 색심(色心)으로 구성된 오음(五陰)이다. 오음(五陰)은 오온(五蘊)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으며, 육체와 마음을 나타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말한다.
여기에서 색(色)은 육체를 말하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적 작용인 마음(心)이라고 주석되고 있다. 수(受)는 감수(感受), 상(想)은 표상(表象), 행(行)은 의지(意志)의 작용, 기타 심리적, 생리적 힘을 말하고, 식(識)은 판단(判斷)작용을 말한다.
인간의 존재는 원시불교이래 이 오음(五陰)으로 심신(心身)을 나타내고 있다.

생멸(生滅)의 세계에 있어, 자기자신은 전존재(全存在)이고, 항상 색심(色心)의 대립을 보는 것이 우리의 경험세계이다. 그러나 오음(五陰)으로 설해지는 색심(色心)을 음미해보면 그와 같은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신론'의 입장이고, 본 절의 취지이다. 객관으로 나타나 있는 육진경계(六塵境界)는 마음밖에 실재하는 대상계(對象界)가 아니라, 마음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이 '기신론'의 입장이다.-전종식]

 

復次顯示從生滅門卽入眞如門(부차현시종생멸문즉입진여문)

다시 다음에 생멸문으로부터 곧 진여문에 들어감을 나타내 보이나니,

所謂推求五陰(소위추구오음) 色之與心(색지여심)

이른바 오음을 추구해 보면 색 그것은 심과 더불어 존재하며,

五陰 色之與心: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오음이며, 이중 색(色)이외의 수상행식(受想行識)을 마음으로 본 것이다.

六塵境界畢竟無念(륙진경계필경무념) 以心無形相(이심무형상)

육진의 경계에는 필경 생각이 없는=無念이며, 마음에도 형상이 없으니, 

六塵境界 畢竟無念 :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경계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므로 마음을 떠나 따로 생각할 만한 독립된 형상이란 없다.

十方求之(시방구지) 終不可得(종불가득)

시방으로 구해도 마침내 얻을 수 없다.

十方 : 동서남북과 그 간방(間方)과 상하

 

[마음을 떠나서, 마음 밖에서 염(念)할 대상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六塵境界畢竟無念 육진(六塵)의 경계는 필경 무념(無念)'이라고 설해지고 있다. 유식(唯識)의 이치에 통달하면 외계(外界)가 있다는 망념(妄念)은 소멸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재적 진여(眞如)가 아닌 망념(妄念)일 뿐이고, 이 망념은 유식의 이치에 통달함으로써 소멸되는 것이다.

진심(眞心, 眞如)을 '물'이라 한다면 망념(妄念)은 이른바 '파도'와 같은 것이다. 파도는 천태만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떠한 고정적 실재를 나타내지 못하는 허망한 분별일 따름이고, 이와 같은 망분별(妄分別)로서의 마음은 실재성이 없어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된다.]

 

如人迷故(여인미고) 謂東爲西(위동위서) 方實不轉(방실부전)

마치 사람이 미혹한 때문에 동쪽을 서쪽이라고 하나, 방향은 실제로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이,

 

[따라서 '以心無形相 十方求之 終不可得, 마음에는 형상(形相)이 없어 시방(十方)으로 그것을 구해도 끝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망념으로서의 마음은 파악될 수 없는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실재로 알게 될 때, 그 망념은 소멸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색심(色心)의 망념과 무념(無念)의 관계를 방향을 예로 들어 해명하고 있다. 사람이 방향을 잃고 동쪽을 서쪽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동쪽이 서쪽으로 그 방향이 바뀐 것은 아닌 것과 같이, 우리 마음의 본성은 본래 불생불멸(不生不滅)로서 불변이지만, 중생은 무명의 미혹 때문에 마음을 염(念)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찰나찰나 생멸하고 있는 염(念)이 마음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 염이 참마음(眞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본래 움직이지 않는 부동(不動)의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이 점을 깊이 관찰하여, 항상 동요하는 망념(妄念)의 깊은 곳에, 동요하지 않는 부동(不動)의 심성(心性)을 발견하고, 마음은 곧 무념(無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생멸문(生滅門)을 떠나 진여문(眞如門)에 들어갈 수가 있다.]

 

衆生亦爾(중생역이) 無明迷故謂心爲念(무명미고위심위념) 心實不動(심실부동)

중생 또한 그러하여 무명의 미혹 때문에 마음=心을 일러 염이라고 하나 마음=心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으니,

若能觀察(약능관찰) 知心無念(지심무념) 卽得隨順入眞如門故(즉득수순입진여문고)

만약 능히 관찰하여 심에 념이 없음=無念임을 알면 곧 수순하여 진여문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心(심)은 진여이고 念(념)은 망념이다. 중생들은 망념을 진여라고 착각하나, 심에는 망념이 없다.

* 憨山 : 최초의 일념이 없었다면 생상(生相)이 없고, 무명망념의 생상이 없다면 중생이란 본래 없다. 그 때문에 무명을 직관하도록 가르쳐 바로 그 자리에서 일심 진여문으로 단박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였던 것이다.-물처럼바람처럼]

 

* 지운 스님의 설명

    꿈에 비유(流轉緣起, 流轉門) 還滅門
本覺   깨어 있어서 부유한 집에 있으면서 그것을 자각 究竟覺, 覺心初起 心無自性
不覺 根本無明   근본무명이 사라짐⇧
業相 阿梨耶識 꿈이 생김 업상이 사라짐 10지보살⇧
能見相 阿梨耶識 꿈 속에서 봄. 주관을 버림 9지보살⇧
現相 阿梨耶識 꿈 속에서 대상이 나타남. 객관을 버림, 무념 8지보살⇧
智相 末那識 꿈 속의 사물에 집착[法執] 법집을 버림, 隨分覺⇧
相續相 意識 꿈 속의 빈곤한 몸을 인정[我執] 아집을 버림, 相似覺⇧
執取相 感覺, 受 꿈 속에서 탐진치를 일으킴. 凡夫覺⇧
計名
字相
꿈 속의 사실에 의미를 부여 佛法 학습⇧
起業相 꿈 속에서 업을 지음. 선악의 행위 내적 관찰⇧
業繫
苦相
업에 의해 고통스러워하거나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음. 괴로움을 자각하고 보리심을 일으킴. 始覺⇧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논해온 이론의 궁극, 즉 생멸엔 본래 생멸이 없는 진여임을 관찰하게 하여 생멸문로부터 진여문으로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이에 먼저 생멸문에서 그 실제를 명확하게 제시하여 바로 불생불멸의 진여문에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이른바 중생을 이루고 있는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추구해 보았더니 색법은 심법과 더불어 존재하는데,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으로 구성된 색법인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등의 경계는 필경에 자체가 무념(無念)이고, 심법이란 심식(心識)을 떠나 밖으로 분별할 만한 허망한 생각의 모습이란 애초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시방세계에서 그것을 구해 보았으나 끝내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비유하여 마치 사람이 미혹했기 때문에 동쪽을 두고 서쪽이라고 말하지만 방향은 실제로 미혹을 따라서 전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중생도 그러하여 무명에 미혹했기 때문에 진심을 생각이라고 말하나 움직이는 생각을 추구해 보았더니 허망한 생각이 이미 사라진 과거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 잠시도 머묾이 없는 현재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참 마음은 머묾이 없기 때문에 허망한 생각의 양태로 일어나지 않기에 실제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일 이를 수행방편으로 관찰해보면 진심엔 요동하는 허망한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곧 진심을 수순하여 관찰하여 무념(無念)인 줄 알면 진여문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무념(無念)이 무심(無心)이고 진심(眞心)·진인(眞人)·원각(圓覺)입니다.-수선]


[이상으로 현시정의(顯示正義)에 있어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에 대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우리 중생심은 일심(一心)으로서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두 문이 있다.
심진여문에는 언설을 떠난 이언진여(離言眞如)와 언설로 표현하는 의언진여(依言眞如)가 있으며, 의언지여에는 번뇌망상이 완전히 사라진 여실공(如實空)과 그 여실공(如實空) 속에는 지혜광명(智慧光明)과 상락아정(常樂我淨) 등의 무량한 성공덕이 갖추어진 여실불공(如實不空)이 있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심생멸문(心生滅門)안에는 염정생멸(染淨生滅)과 염정훈습(染淨熏習) 및 체대(體大), 상대(相大), 용대(用大)의 삼대(三大)가 있다는 것도 살펴본 바 있다.
현시정의(顯示正義)의 설명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 표와 같다.-전종식]

*머리 식히는 이야기

제프리 아이븐슨 블록샴의 저서 『전생의 나를 찾아서』라는 책을 보면 전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블록샴은 1890년대 태어난 사람으로 최면을 통해 사람들의 전생을 기억하게 하여, 20년 동안 400명의 전생의 기억을 기록합니다.

책에는 제인 에반스 부인의 일곱 생의 전생이 나옵니다. 그녀는 로마 제국 통치하의 영국에서 교사의 아내로 살았습니다. 이 것은 서기 약 286년 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전생은 영국 요크에서 유대인 여성으로서 살았습니다. 서기 1190년 경에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전생은 프랑스 대부호 자크 꿰르란 사람의 하녀로서 살았고 1451년에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스페인 캐서린 공주시대 하녀로서 살았고, 그 다음은 앤 여왕 재위 시 런던의 바느질 품팔이 소녀로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은 미국의 메릴랜드 주 수녀로서 살았고 1920년 경에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1939년 현생으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전생의 이야기를 할 때 그 당시의 언어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전생에서 기억이 역사적 사실과 흡사한 부분이 많았고 역사적으로 고증이 안 된 것도 사학자들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인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전생에 유대인 부인이었던 어느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블록샴이 최면을 걸자 그 여인은 말합니다. “나는 12세기 어느 유대인의 부인 레베카이다. 남편은 값비싼 법복을 입지만 그 옷이 비싼 것처럼 보이면 안된다. 사람들은 우리집을 탐내고 유대인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가슴에 원형의 노란색 뱃지를 달아야 한다.” 그 말을 듣고 블록샴이 가슴에 뱃지를 달아야 하니 불쾌하지 않느냐고 묻자 여인은 불쾌하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전생에 중세 프랑스의 하녀였던 아리송이라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아리송은 최면을 걸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매우 흥분해 있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라고 한다.” 블록샴이 그 미인의 이름을 묻습니다. 그러자 아리송은 “사람들은 그녀가 프로망 트(Fromenteau)에서 왔다고 한다.” 블록샴이 그녀는 특별한 손님이냐고 묻자 아리송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블록샴이 왜 특별한 손님이냐고 묻자 아리송은 그녀가 왕의 정부라고 말합니다. 블록샴은 어느 왕의 정부냐고 묻자 아리송은 잠시 말이 없다가 망설이듯 ‘샤를’(샤를 7세)이라고 말합니다. 블록샴이 프랑소와냐고 묻자 아리송은 “아니다. 샤를 발루아이다. 그는 아네스 소렐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블록샴이 확인차 “아네스 다음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리송은 “소렐이다. 아네스 소렐은 프로망트의 아가씨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어 아리송은 아네스 소렐에 대해 묘사합니다. “그녀는 참 아름답다. 그리고 그녀는 고운 옷을 입었다.” 블록샴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반달과 별무늬가 있는 초록색 비단으로 만든 드레스와 가장자리를 모피로 장식한 융단으로 된 외투를 입고 머리채를 썼다. 그녀는 왕을 대신해서 우리 주인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고 했다.”고 아리송이 대답했습 니다. 그 말을 듣고 블록샴이 “당신 주인은 왕에게 돈을 빌려주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리송이 “그렇다. 주인은 전 에도 왕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블록샴은 그 말을 듣고 “당신 주인은 작위가 있는 귀족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아리송은 “그저 대상인 퀘르라고 부른다.”라고 대답했고, 블록샴은 “왕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빌려주었는가?”라고 묻자 아리송은 “2000 에퀴돌을 빌려주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에퀴돌은 1395년부터 프랑스에서 통용되었던 금화입니다. 샤를 7세의 생년이 1403년이고 재위 기간이 1422년부터 1461년까지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맞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믿기 힘든 전생이지만 내가 직접 체험해보면 그것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통섭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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