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發心(발심)의 利益(이익)

菩薩發是心故(보살발시심고) 則得少分見於法身(즉득소분견어법신)

보살이 이 마음을 발하였기 때문에 곧 약간의 분야에서 법신을 볼 수 있다.

 

[是心= 직심(直心), 심심(深心), 대비심(大悲心)

元曉 : 이것은 자리(自利)의 공덕을 밝힌 것이니, 이는 상사견(相似見)이므로 조금(少分)이라고 말한 것이다.

* 憨山 : 십주위보살(十住位菩薩)은 진여법신을 추리로 관찰하는 비량관문(比量觀門)을 의지하기 때문에 약간의 분야에서 진여법신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여덟 종류의 모습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 십주위 가운데 초주보살은 팔상성도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물처럼바람처럼]

 

[전절에서 직심(直心) 심심(深心) 대비심(大悲心) 등 보살의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과 네 가지 방편을 설한바 있다. 여기서는 그러한 신성취발심을 갖게 되면 어떠한 이익이 있는가를 밝히는 부분이다.
보살이 이러한 신성취발심을 일으키기 때문에, 법신(法身)이 무엇인가를 이해함으로서, 소분 법신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 법신을 다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대서원(大誓願)을 일으킨다. 즉 신성취발심에 의하여 이 대원력이 몸에 갖추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원력을 바탕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원력을 바탕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원생신(願生身)이라 한다. 석가세존의 생애인 팔상성도(八相成道)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석존(釋尊)은 보살로서 도솔천에 주하다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도솔천을 떠나 카피라성의 정반왕비(淨飯王妃)인 마야부인에 입태하게 된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제 1상이다. 본론에서는 주태(住胎)까지 설하지만 제 2상은 출태(出胎) 즉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며, 제 3상은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이고, 제 4상은 성을 넘어 출가하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이다. 제 5상은 6년 동안의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이며, 제 6상은 마구니에게 항복 받고 성도하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이다. 그리고 제 7상은 본론에서도 나오는 전법륜(轉法輪) 즉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이고 제 8상은 45년간의 중생교화(衆生敎化) 후에 구시나가라에서 입멸하는 쌍림열반상( 林涅槃相)이다.
이와 같은 석존의 생애는 원생신(願生身)으로서 응신불(應身佛)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같은 성도(成道), 전법륜(轉法輪) 입열반(入涅槃) 등 불타의 활동은 사실상 완전한 불(佛)이 아니고, 보살로 칭해지고 , 그렇다고 십지(十地)의 지상(地上) 법신보살도 아니라고 일컫고 있다.
법장은 이에 대하여, 최초로 소분법신(少分法身)을 나타낸 것이며, 다음의 팔상(八相) 시현은 이 보살의 이타공덕(利他功德)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여하튼 이 보살은 법신진여를 증득하기 이전의 십주(十住) 보살이라는 것이다.
이 보살은 과거 무량세 이래의 유루업(有漏業), 즉 번뇌가 아직 완전히 차단된 것이 아니어서 얼마간 남아 있어, 그 때문에 성불의 팔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생사의 미세한 고(苦)는 받고 있다는 것이다.-전종식]

 

[앞의 네 가지 방편을 종합하면서 석존의 팔상성도(八相成道)를 나타내어 보살이 실제로 수행하는 과정을 세 가지로 나누어 격려하고 찬탄하였습니다. 먼저 발심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십주위보살(十住位菩薩)은 진여법신을 추리로 관찰하는 비량관문(比量觀門)을 의지하기 때문에 약간의 수행분야에서 진여법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덟 가지 모습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십주위 가운데 초주보살은 팔상성도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팔상성도란 이른바 도솔천에서 내려와 모태에 들어가서 머물다가 출생하고 출가해서 성도(成道)하여 진리를 펴다가 열반에 들어간 것입니다.-수선]

 

以見法身故(이견법신고) 隨其願力(수기원력) 能現八種利益衆生(능현팔종리익중생)

법신을 보기 때문에 그 원력에 따라 능히 여덟 가지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하나니,

所謂從兜率天退(소위종도솔천퇴) 入胎住胎出胎(입태주태출태)

이른바 도솔천으로부터 물러나 入胎=모태에 들어가고, 住胎=모태에 머물다가 出胎=모태에서 출생하고,

出家成道(출가성도) 轉法輪入於涅槃(전법륜입어열반)

출가하여 成道=도를 이루고, 轉法輪=법륜을 굴리다가 열반에 드시니,

 

[兜率天(도솔천)=지족천(知足天), 욕계 6천 중 제 4천으로 석가모니불이 보살로 여기에 머물다 내려옴. 

* 元曉 : 이것은 이타(利他)의 덕을 나타낸 것이다. 能現八種利益衆生은 《화엄경》에서 십주 처음의 발심주를 찬탄하여 말하기를 “이 발심보살이 여래의 일신(一身)과 무량신을 얻어 모두 일체의 세간에 성불하게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然是菩薩未名法身(연시보살미명법신)

그러나 이 보살은 아직 법신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는 것은, 

以其過去無量世來(이기과거무량세래) 有漏之業未能決斷(유루지업미능결단)

그는 과거 한량없는 세상으로부터의 유루의 업을 아직 결연히 끊지는 못하나,

隨其所生(수기소생) 與微苦相應(여미고상응) 亦非業繫(역비업계)

그가 태어날 곳을 따라서 미세한 괴로움과 상응하긴 하지만 역시 업에 얽매이진 않으니,

以有大願自在力故(이유대원자재력고)

대원의 자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운 : 아라한은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나오지 않지만, 보살은 미세한 번뇌를 남겨 다시 세상으로 나오니, 이는 업에 얽매여서가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 憨山 : 초주보살이 미세한 변역생사와 업을 따르는 분단생사가 있는 까닭을 말해보자. 이 보살은 중생을 남김없이 교화하겠다는 대원력 때문에 일부러 번뇌의 혹을 남겨 둔 채 업을 따르는 윤생(潤生)의 과보를 받으면서 과거세의 업을 결연히 끊지 않는다. 그 때문에 보살의 변역생사와 업을 따르는 분단생사의 미세한 괴로움이 있다. 업을 따르는 변역생사가 있으므로 아직은 법신보살이 아니며, 대원력을 지녀 수명의 길고 짧음을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범부가 혹업에 얽매여 받는 분단생사도 아닌 것이다.]

 

[이 보살은 과거 무량세 이래의 유루업(有漏業), 즉 번뇌가 아직 완전히 차단된 것이 아니라 얼마간 남아 있어, 그 때문에 성불의 팔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생사의 미세한 고(苦)는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소의 유루업이 있다 하더라도, 이 보살이 업에 속박되거나 계박(繫縛)당하는 업생신(業生身)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초발심시의 대서원의 힘으로 자재력(自在力)을 가지고 있으며, 이 원력에 의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원생신(願生身)이기 때문이다. 경전 속에는「이러한 보살에 대해서까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수 있다」고 설해져 있지만, 이것은 실제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초학의 보살이 아직 정정취(正定聚)의 바른 자리에 들어가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기 위하여, 다시 말하면 태만한 자에 대한 공포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불타가 방편을 빌어 설한 것으로서, 그로 인해서 더욱 분발하여 용맹심을 갖도록 고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방편설이다. 따라서 보살이 한 번 발심한 뒤에는 대서원에 의해서 마음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겁을 먹고 약해지는 일은 멀리 사라져 없는 것이며, 결코 연각 등 이승지(二乘地)에 떨어진다는 두려움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설사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보살의 보리심은 상실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주보살이 지상(地上)보살과 다른 것은 미세한 변역생사(變易生死, 보살이 일부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고 죽는 것)와 업을 따르는 분단생사(分段生死, 개인의 업력에 이끌려서 나고 죽는 것)의 괴로움이 있기 때문임을 간별하여 밝혔습니다. 이 초주보살은 아직은 진여법신을 증득하진 못하고 단지 십신(十信)을 성취한 힘에 의해서 약간의 수행분야에서만 진여를 보기 때문에 아직은 법신보살이라고 하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과거 한량없는 세상으로부터 지었던 유루의 업을 아직은 결연히 끊지를 못하여 태어날 곳을 따르는 이 점에서 법신보살과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태어난 곳을 따라 변역생사와 업을 따르는 분단생사의 미세한 괴로움과 상응하긴 하지만 역시 혹업(惑業)에 얽매어 받는 중생들의 분단생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대원으로 수명의 길이를 자유자재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如修多羅中(여수다라중) 或說有退墮惡趣者(혹설유퇴타악취자)

수다라=경에, 혹은 "혹 어떤 이가 물러나 악한 세계로 떨어진다"고 설하는 것 같은 것은,

非其實退(비기실퇴) 但爲初學菩薩(단위초학보살) 未入正位(미입정위)

그것은 실제로 물러난 것=實退이 아니고, 초학의 보살이 아직 정위에 들지도 못하고서

而懈怠者恐怖(이해태자공포) 令使勇猛故(령사용맹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를 위해 두렵게 하여 하여금 용맹하게 정진하게 하려는 까닭이다.

 

[元曉 : 이는 《본업경》에서 “칠주(七住:불퇴주)가 되기 전은 퇴분이 되므로 만약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이에 일겁 내지 십겁에 보리심이 퇴전하게 되는 것이니, 정목천자와 법제왕자와 사리불 등이 제칠주에 들고자 하다가 악지식과 악인연을 만났기 때문에 범부의 불선한 악 중에 들어간 것과 같으며, 내지 설한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여기서 이뜻이 실제로 퇴전함이 아님을 풀이한 것이다.]

 

[다음에 경전의 말씀은 방편교에 통한다는 것입니다. 즉 경전에서, "혹 이 보살이 수행에서 물러나 범부의 악한 세계로 떨어진다"라고 말한 경우는 "본업경(本業經)"에서, "십주위 가운데 칠주(七住)보살위의 이전을 수행지에서 퇴전하는 퇴분(退分)이라고 말한다. 칠주 이전의 수행지에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다면 가령 일 겁이나 내지는 십 겁을 지나는 동안에 보리심이 퇴전하여 악지식(惡知識)의 인연을 만나면 범부의 위치로 물러나 좋지 못한 세계로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방편으로 초학자들을 두렵게 하려고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의도를 잘 이해하여 불교의 수행에 박차를 가하라는 것입니다. ]

 

又是菩薩一發心後(우시보살일발심후) 遠離怯弱(원리겁약)

또한 이 보살은 한번 발심한 후에는 겁약함을 멀리 여의고

畢竟不畏墮二乘地(필경불외타이승지)

필경에 이승의 지위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若聞無量無邊阿僧祇劫(약문무량무변아승기겁) 勤苦難行(근고난행)

만약 무량무변의 아승기겁토록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부지런히 고행=勤苦難行을 하여서, 

乃得涅槃(내득열반) 亦不怯弱(역불겁약)

이에 열반을 얻는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역시 겁약하지 않으니,  

以信知一切法(이신지일체법) 從本已來(종본이래) 自涅槃故(자열반고)

일체의 법은 본래부터 스스로 열반이라고 믿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성불까지는 한없이 긴 세월인 무량무변 아승지겁(無量無邊 阿僧祗劫)의 고통과 어려운 수행을 격지 않으면, 열반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듣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관하거나 절망하는 겁약(怯弱)한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일체의 법은 본래부터 자성불생(自性不生)으로 본성이 진여이기 때문에 본래부터 열반에 들어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스스로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열반은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清淨涅槃)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 유여열반(有餘涅槃), 무여열반(無餘涅槃) 등 사종열반(四種涅槃)이 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 阿僧祇(아승기) : 아승지라고도 읽음. 셀 수 있는 수 중 가장 큰 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 구사론에서는 10의 51제곱이라고 한다.

信成就發心 行根本方便 根本方便 自性無生과 因果를 믿음 直心
能止方便 慙悔 허물을 참회함 深心
發起善根方便 善根增長 삼보를 공양함
大願平等方便 發願 중생 제도를 원함 大悲心
解行發心 육바라밀을 수행함.
證發心 眞心 분별이 없음 根本智
方便心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함 後得智
業識心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이 있음 無明業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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