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제 5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3. 소지상분(所知相分) ② 6

 

▶釋曰:由義處中,於一切有情, 起利益安樂增上意樂故者, 此句義,由十六業餘句顯示.

由何等業, 顯示利益安樂增上意樂? 謂展轉加行業者,卽是令入一切智智故,謂令諸有情,入一切智智,展轉化導, 譬如一燈傳然千燈,此卽顯示利益安樂增上意樂. 如是一切所餘句中,皆應配屬利益安樂增上意樂.

▷해석한다; 의처(義處)에 의거하는 내용 중에서 ‘모든 유정에 대해서 이익과 안락을 더하고자하는 이익안락증상의락(利益安樂增上意樂) 때문에’라는 문구의 의미는 열여섯 가지 업의 다른 문구로써 나타내었다.

어떠한 업들에 의거해서 이익과 안락을 더하는 의업을 나타내는 것인가?

‘전전하여 가행하는 전전가행업(展轉加行業)’은  모든 것을 아는 일체지지(一切智智)에 들어가기 위한 까닭이니, 이른바 유정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아는 지혜에 들어가게 하고자 전전하면서 교화하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하나의 등불로 전전하여서  개의 등불을 밝히는 것과 같이, 이것은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의요를 나타낸 것이니, 이와 같이 나머지 모든 문구도 마땅히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의요에 배당해야 한다.

 

無顚倒業者,卽是自知我今何假智故. 謂或雖有利益安樂增上意樂, 仍是顚倒, 如有發起利益安樂增上意樂, 勸飮酒等. 若有正智,如實自知, 方能稱量,教導有情,非增上慢,不如實知,起饒益心,勸他令作不饒益事.

‘전도됨이 없는 무전도업(無顚倒業)’이란, 스스로가 어떤 임시적인 가지(假智)를 알기 때문이니,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의요가 있을라도 전도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의요를 일으키고서 음주 등을 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약 바른 지혜가 있다면 진리 그대로를 여실하게 스스로 알아서, 능히 올바른 인식에 계합해서 유정을 교화해야 하는 것이니, 이는 증상만(增上慢)이 아니며,  

진리를 여실하게 알지 못하면 남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일으켰을지라도 남에게 권할  이롭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증상만(增上慢),성도(聖道)를 얻지 못하였으나, 이미얻 었다고 잘난체하는 거만심.


不待他請,自然加行業者,卽是摧伏慢故,謂由摧伏憍慢心故,不待勸請,自爲說法.

不動壞業者,卽是堅牢勝意樂故,不以有情行邪行故,動壞菩薩利益安樂增上意樂堅固之心.

無求染業者,卽是非假憐愍故`於親非親平等心故`永作善友乃至涅槃爲後邊故.謂後三句, 釋此三句,非爲利養恭敬等因作諸有情利益安樂,是故說名無求染業

‘남이 청함을 기다리지 않고 자연히 가행하는 자연가행업(自然加行業)’이란,  거만함을 조복한 때문이니, 교만심을 조복한 까닭에 남이 청함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설법을 하는 것이다. 

‘동요하거나 무너지지 않는 부동괴업(不動壞業)’이란,  견고하고 뛰어난 의요인 까닭에, 유정이 삿된 행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의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의요의 견고한 마음을 동요하거나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며, 

‘잡염을 구하지 않는 무구염업(無求染業)’이란,  임시적인 연민이 아니기 때문이고, 친한 이와 친하지 않은 이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이기 때문이며, 영원히 착한 벗이 되어 열반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나중의  문구는   문구를 해석한 것으로, 이익이나 공경 등을 받으려고 유정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잡염을 구하지 않는 업이라 이름한 것이다.

 

利益安樂增上意樂.云何可知?謂由相稱語身業者,卽是應量而語故`含笑先言故. 此二句中,應量而語,及先言是語業,含笑是身業.應量語者,唯作法語.言含笑者,舒顏往來,作饒益事.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이익안락증상의락(利益安樂增上意樂)을 어떻게   있는 것인가? 

이른바 ‘서로 일치하는 구업과 신업의 상칭어신업(相稱語身業)’은 올바른 인식에 상응하여 말하는 까닭이고, 미소를 머금고 말하기 때문이다.

  문구에서 올바른 인식에 상응하여 말하는 것과 먼저 말하는 것은 구업이고, 미소를 머금는 것은 신업이며,  

올바른 인식에 상응하여 말하는 것은 오직 진리의 말을 하는 것이고, 미소를 머금는 것은 웃는 얼굴로 왕래하며 이롭게 하는 것이다.

 

於樂`於苦,於無二中,平等業者,卽是無限大悲故,無限悲者,愍三苦故,於有苦有情愍其苦苦`於有樂有情愍其壞苦`於不苦不樂有情愍其行苦,不苦不樂,故名無二.

‘즐거움에 대해서도, 괴로움에 대해서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에 대해서도 평등한 업’이란  무한한 대자비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대자비는  가지 괴로움의 삼고(三苦)를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괴로움이 있는 유정에 대해서는  괴로움의 고통인 고고(苦苦)를 불쌍히 여기고, 

즐거움이 있는 유정에 대해서는  즐거움이 파괴되는 고통의 괴고(壞苦)를 불쌍히 여기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유정에 대해서는  무상하게 바뀌는 것에 대한 괴로움의 행고(行苦)을 불쌍히 여기나니,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기 때문에  가지가 없는 무이(無二)라 말하는 것이다.

 

삼고(三苦), 고고(苦苦)는 누구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인 생로병사의 고통을 말한다. 생로병사 중 특히 생과 사는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며,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는 배움을 위해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괴고(壞苦)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무너지는 고통"인데, 모든 것이 인과 연에 의해 발생한다는 연기의 법칙 즉 인과의 법칙과 모든 존재가 고정됨이 없이 항상 변화한다는 무상(無常)의 법칙에 바탕하여 일어나는 "변화하고 무너지는 고통"이다.

행고(行苦)는 오온(五蘊) 또는 오취온(五取蘊)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 자신에 대하여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함에 의해 비롯되는 고통으로 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도 한다. ㅡ위키

 

無下劣業者,卽是於所受事,無退弱故,謂不自輕,云我不能當得佛果,如此等類.無退轉業者,卽是無厭倦意故,謂勤精進修成佛因,心無厭倦.攝方便業者,卽是聞義無厭故,謂由多聞,成善巧智,饒益有情.

‘열등하지 않은 무하열업(無下劣業)’이란, 곧 수용한 대승의 교법에 대해서 약해져서 물러나지 않는 업으로, 스스로를 가벼이 여겨서 “나는 장차 불과(佛果)를 얻을  없다”고 말하지 않는, 이와 같은 부류이다. 

‘퇴전하지 않는 무퇴전업(無退轉業)’이란,  권태의 마음이 없는 까닭에 부지런히 정진하여서 성불의 원인을 닦는 것에 마음으로 권태가 없는 것이다. 

‘중생을 거두어 교화하는 방편의 섭방편업(攝方便業)’이란,  교의의 의미를 듣고서 싫어하지 않는 까닭에, 많이 들음으로써 훌륭한 방편의 지혜를 이루어 유정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厭惡所治業者,卽是於自作罪,深見過故,於他作罪,不瞋而誨故,由此方便,乃能如實調伏有情.無閒作意業者,卽是於一切威儀中,恒修治菩提心故.如是句義,如所行淸淨,契經廣說. 勝進行業者,卽是不悕異熟,而行施故,乃至由四攝事攝方便故.謂卽依前利益安樂增上意樂,修此加行,以爲增長趣向果因.

‘다스려지는 것을 혐오하는 염오소치업(厭惡所治業)’이란,  스스로 지은 죄에 대해서 깊이  허물을 보기 때문이고, 남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성내지 않고 가르치기 때문이니, 이러한 방편으로써 능히 진리 그대로 유정을 조복할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작의하는 무간작의업(無閒作意)’이란,  모든 위의(威儀) 가운데에서 항상 보리심을 닦기 때문에, 이러한 문구의 의미는 '소행청정계경(所行淸淨契經)'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바와 같으며,

‘뛰어나게 나아가는 행의 승진행업(勝進行業)’이란,  과보를 바라지 않고 보시를 행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가지 포섭하는 사섭사(四攝事)의 방편에 의하기 때문이니,  앞에서 말한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의욕에 의지해서  가행을 닦음으로써 증과에 나아가는 원인을 증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成滿加行業者,卽是於持戒`破戒,善友無二故,乃至親近善友故.

‘가행을 원만히 성취하는 성만가행업(成滿加行業)’이란,  계율을 지키고 계율을 파함에 있어서 착한 벗으로서  가지가 없기 때문이고, 나아가 착한 벗을 가까이하기 때문이다. 

ㅡ착한 벗으로서  가지가 없다는 것은, 이른바 계율을 지키거나 파하거나 그것을 거론하지 않고 그를 가까이해서 가르침을 받기 때문이다.

 

謂後六句, 釋此八句.若有習近,如是加行,速得成滿.以慇重心,住阿練若故者,由住此處,離惡尋思.世雜事者,謂歌儛等.

나중의 여섯 문구는  여덟 문구를 해석한 것으로, 만약 착한 벗을 가까이해서 그 가르침을 익히면, 이와 같은 가행을 빨리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간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아련야에 머물기 때문’이란, 아련야에 머묾으로써 나쁜 분별들을 여의기 때문이며,

'세간의 번잡한 일’이란 가무 등을 말하며,

 

成滿業者,卽是恒修治四梵住故`常遊戲五神通故`依趣智故.謂後三句,釋此三句,此成滿業所有相狀.

‘원만히 성취하는 성만업(成滿業)’이란 곧 항상 네 가지 청정의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사범주(四梵住,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머무름을 닦기 때문이고, 항상 다섯 가지의 오신통에서 노닐기 때문이며,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나중의 세 문구는 이 세 문구를 해석한것으로, 이것이 원만히 성취하는 성만업이 갖는 상이다.


大威力者,謂六神通.依趣智故者,謂依趣智`不依趣識,內智生故,由此內智現見相應安住於法.安立彼業者,卽是於住正行等.謂後四句,釋此四句.由利益安樂增上意樂故,安立有情利益安樂.御衆功德故者,由於破戒,亦不棄捨,安立不擯,令出不善,令住於善.

‘큰 위력(大威力)’은 여섯 가지의 육신통을 말하며,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이란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내면의 지혜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니,  내면의 지혜에 의거해서 현재 보는 것과 상응하여 법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것을 안립하는 안립피업(安立彼業)’이란,  ‘바른 행에 머무는' 것 등이다. 

나중의  개의 문구는   문구를 해석한 것으로, 이익과 안락을 더하려는 의요에 의거함으로써 유정의 이익과 안락을 안립하는 것이다.

‘대중을 제어하는 공덕이기 때문’이란 파계(破戒)에 대해서도 역시 버리지 않고 맞아들이고, 불선을 버리고 선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육신통(六神通), 천안통(天眼通)ㆍ천이통(天耳通)ㆍ신족통(神足通)ㆍ타심통(他心通)ㆍ숙명통(宿命通)ㆍ누진통(漏盡通,

 

決定無疑教受教誡故者,由能一向與彼教勅,非自說已還復說言我言不善,由是因緣,其言威肅.財法攝一故者,由言誠諦,以法攝取,衣服等財,還如是施.無雜染心故者,由善攝受大菩提心,饒益有情,非欲自求爲給使故.云何有情,由此善故,速證無上正等菩提?如此攝受一切有情.

‘결정적으로 의혹없이 가르치고 훈계하기 때문’이란 능히 한결같이 그에게 가르침을 주고, 스스로 말하고 나서 다시 ‘나의 말은 옳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으로 인하여 그의 말은 엄숙한 것이며, 

‘재물과 법을 하나로 포섭하는재법섭일(財法攝一)이기 때문’이란, 말이 진실하여 법으로써 중생을 거두고, 의복 등의 재물도 이처럼 베푸는 것이며,

‘잡염심이 없는 무잡염심(無雜染心)이기 때문’이란 대보리심을  섭수하여 유정을 이롭게 하며, 스스로 공양받기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정으로 하여금 속히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하게 하기 위해서, 이상과 같은 선법(善法)으로써 모든 유정을 섭수하는 것이다.


▶論曰:如說:

▷논문; 게송에서 말한 바와 같으니, 


“由最初句故, 句別德種類, 由最初句故; 句別義差別.”

최초의 문구로 말미암은 문구의 차이는 덕(德)의 종류이라.

최초의 문구로 말미암은 문구의 차이는 의미(義)의 차이라네.


▶釋曰:此伽他中,卽爲顯示前所說義,說如是言.

▷해석한다; 이 게송은 앞에서 설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말한 것이다.


攝大乘論釋卷第五 終 섭대승론석 제 5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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