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대승론(攝大乘論 5

  (  무착지음불타선다(佛陀扇多한역.  

 

如是說因果,修差別已 是中云何增上戒勝事知?如菩薩地持中說。

受菩薩戒品中,略復有四種勝故,勝事應知:差別勝`同不同戒勝`上勝及甚深勝。

이상과 같이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와 수행의 차이를 말하는 중에서 매우 높은 계율의 뛰어난 승사(勝事)를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의 '수보살계품(受菩薩戒品)'에서 말한 바와 같으며,

또한, 대략 네 가지 뛰어남의 사종승(四種勝)이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뛰어난 차별의 차별승(差別勝)이고,

둘째는 공통되거나 공통되지 않는 계율의 뛰어남인, 동부동계승(同不同戒勝)이며,

셋째는 최상의 뛰어남인 상승(上勝)이고,

넷째는 매우 심오함의 뛰어남인, 심심승(甚深勝)이다.

ㅡ3() 가운데 매우 높은 계율의 수행에 관하여 설명한다. 보살의 삼학 수행은 성문등과 그 차원이 다르므로 3학의 명칭 앞에 증상(增上)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是中差別勝者,謂受戒`攝善法戒`作衆生益戒故。是中上戒者,二種戒住義故知:

攝善法戒,集佛法住義故;作衆生益戒者,教化衆生住義故知。

 중에서 뛰어난 차별의 차별승(差別勝)이란, 계율을 받는 수계(受戒, 율의계, 섭률의계), 

선법을 포섭하는 계율의 섭선법계(攝善法戒),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계율의 작중생익계(作衆生益戒)의 대승보살이 닦는 계법인 3취정계(聚淨戒)이다.

여기에서 받은 계율의 수계(受戒, 율의계, 섭률의계)는 두 가지 계율에 안주하는 뜻으로, 수계를 근본으로 해서 섭선법계와 작중생익계를 건립하기 때문이며, 

선법을 포섭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법계가 불법을 쌓음에 안주하는 뜻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작중생익계(作衆生益戒) 중생을 교화함에 안주하는이다.

 

수계(受戒), 현장의 역본은 율의계(律儀戒)로 한역하고 있다. 율의계는 섭률의계(攝律儀戒)의 준말이다.

수계작법(受戒作法)에 의해 5계ㆍ10계ㆍ구족계 등을 받아 지녀서 몸이나 입으로 짓는 악업을 따로따로 해탈케 하는 계율이므로 별해탈계(別解脫戒)라고도 한다.

진제의 역본인 진본(陳本)에는 섭정호계(攝正護戒)로, 급다(笈多)ㆍ행구(行矩)의 역본[隋本]에는 수호계(守護戒)로 되어 있다.

3취정계(聚淨戒), 대승과 소승의 모든 계법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취(聚)라고 하고, 그 계법의 자성이 청정하므로 정(淨)이라고 한다.


聲聞同戒,諸菩薩性重不同行。不同戒者,制重同行故,彼戒中隨所聲聞犯,於中菩薩不犯戒;隨所菩薩犯戒,是中聲聞不犯戒。

성문은 공통된 계율의 동계(同戒)이고, 모든 보살의 자성죄인 성중(性重, 성죄性罪)은 공통되지 않은 부동계(不同戒)이니,

부동계(不同戒)란 가벼운 죄인 제중(制重, 차죄)과 함께 현행하기 때문이다. 

 계율 중에서 성문에게는 범하는 것이 되지만 보살에게는 범하는 것이 아닌 계율이 있고,

보살에게는 범하는 것이 되지만 성문에게는 범하는 것이 아닌 계율이 있다.

 

성중(性重), 현장의 역본은 성죄(性罪)로 한역하였다. 성죄(性罪)는 자성죄(自性罪)ㆍ실죄(實罪)라고도 하며, 살생ㆍ도둑질ㆍ사음 등은 어떠한 환경에서 행하여도 본질적으로 죄악의 행위이기 때문에 성죄라고 하며, 

성죄에 대한 금계(禁戒)를 성계(性戒)ㆍ성중계(性重戒)ㆍ주계(主戒)ㆍ구계(舊戒)라고 한다.

제중(制重, 차죄), 현장의 역본은 차죄(遮罪)로 한역하였다. 차죄는 제죄(制罪)ㆍ차제(遮制)라고도 하며, 여러 가지 과실을 수반하기 때문에, 또 세간의 비방을 피하기 위해서 석존이 제정한 계를 범하는 가벼운 죄를 말한다.

음주는 대개 차죄라고 하며, 차죄에 대한 금계를 차계(遮戒)ㆍ이악계(離惡戒)ㆍ객계(客戒)ㆍ신계(新戒)라고 한다.

성계가 제정되지 않더라도 성죄는 죄이기 때문에 범해서는 안 되지만, 차죄는 차계가 제정되어야 비로소 죄가 된다.


菩薩防身口心戒,聲聞唯防身口,是故菩薩起心犯戒,非諸聲聞。略說所有一切衆生惡,而有益身口意業,彼一切菩薩應行,及彼中學,如是共不共勝應知。

보살은 신(身)ㆍ구(口)ㆍ심(心)을 막는 계율을 갖추지만, 성문은 오직 신(身)ㆍ구(口) 만 막는 계율만 있으니,

보살은 마음(心)으로 범하는 계율이 있지만 성문은 그렇지 않은 까닭이다. 

말하자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신업ㆍ구업ㆍ의업을  모든 보살은 마땅히 행야 하고 닦아야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공통되거나 공통되지 않음의 뛰어남(勝)인, 동부동계승(同不同戒勝)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上勝復有四種上故:種種無量戒上故;攝取無量功德上故;一切衆生助益樂心眷屬上故;

阿耨多羅三藐三菩提住上故,及得無量功德`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최상의 뛰어남인, 상승(上勝) 또한  가지가 최상이기 때문이니,

갖가지의 무량한 계율이 최상이기 때문이고, 무량한 공덕을 섭수함이 최상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의 이익과 안락의 그 마음과 권속을 돕는 것이 최상이기 때문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안주함이 최상이기 때문에 무량한 공덕을 얻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是中甚深。若菩薩如是方便善巧故,殺生等十種業修行,是以不惡成,得無量功德,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或應化身業`口業,是甚深戒應知。

이 중에서 매우 심오함의 심심(甚深)은 다음과 같으니,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은 훌륭한 방편에 의해서 살생(殺生) 등의 10 가지 업을 행할지라도 죄악이 되지 않으며, 무량한  공덕을 이루어서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며, 또한 변화로 신업과 구업을 나타내나니, 이러한 것이 매우 심오한 계율의 심심승(甚深勝)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是以作國王,治國計,種種示衆生惱事。是以化衆生安置善處,示種種生惱,餘衆生示餘益,餘者令心以發,發已先化,化已心迴。此是菩薩戒甚深勝事。如是四種勝事,略說菩薩上戒勝事應知。如是分別,復有菩薩戒差別無量,亦如比尼響方廣修多羅中。如是說增上戒勝已。

이러한 까닭에 혹은 국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중생을 괴롭히는 갖가지 일들을 시행하나니, 이는 중생을 교화하여 계율에 편안히 두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괴롭히는 갖가지 일들을 보이지만, 진정으로는 그 나머지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니, 나머지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서 우선 교화되게 하고, 교화된 후에는 마음을 전환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이 갖는 계율의 매우 심오하고 뛰어난 심심승사(甚深勝事)인 것이다.

이러한  가지의 뛰어난 4승사(四勝事)로서 보살의 최상 계율의 뛰어남을 대략 분별한 것이라고 알아야 하며,

또한 보살계의 차별은 무량한 것이니, 율(律)의 집대성인 '비니향방광수다라(比尼響方廣修多羅, 비나야구사Vinayakośa)'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이상과 같이 매우 높은 계율의 상계(上戒)의 승사(勝事)를 설명하였다.

ㅡ비니향방광수다라(比尼響方廣修多羅, 비나야구사Vinayakośa) 중국에 전역(傳譯)되지 않은 것이다.


增上心勝事復云何知?略有六種差別應知:念差別`種種差別`業作事差別`現氣差別`業差別。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增上心)의 뛰어난 승사(勝事)를 어떻게 알아야 하는 것인가?

대략 6 가지의 차이가 있다고 알아야 하나니, 인식대상의 차이인 염차별(念差別), 

여러 가지의 종종차별(種種差別), 짓는 업작사차별(業作事差別), 

현현의 현차별(現差別), 능력의 차별인 기차별(氣差別), 업차별(業差別)이다.

ㅡ매우 높은 선정의 증상심학(增上心學) 관한 설명이다. 


念大乘法故。大乘光明,一切功德積聚三昧,三昧王現護,首楞嚴等三昧無量種種故。

인식대상의 차이인 염차별(念差別)은 대승법을 반연하기 때문이고, 

여러 가지의 종종차별(種種差別)은 대승광명삼매ㆍ일체공덕적취삼매(一切功德積聚三昧)ㆍ삼매왕현호삼매(三昧王現護三昧)ㆍ수릉엄삼매 등의 삼매가 여러 가지로 무량한 때문이며,

ㅡ진제 역본인 진본(陳本)에서는 이들 삼마지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一切法雜念智顯順故,阿犂耶識一切障諸惡使令除故。禪定樂行已,隨所生故。處生故,一切世界無障。神通現故。

일을 짓는 업작사차별(業作事差別)은 일체법의 총체적인 상을 반연하는 지혜인 일체법잡염지(一切法雜念智)에 수순함으로써 아리야식에 장애되는 모든 악의 번뇌인 악(惡)을 제거하기 때문이며,

현현의 의 현기차별(現氣差別)은, 선정의 즐거움인 선정락(禪定樂)을 행하여 태어나고자 하는 바를 따라 생을 받기 때문이며,

능력의 차별인 기차별(氣差別)은 모든 세계의 걸림이 없는 무장(無障) 신통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動`放光`遍視`異事作`來往`略廣,一切色身入同行,往上下作,自在隱蔽他,神現念與樂,放光現大神通故。

업차별(業差別)은 움직이고 빛을 내며, 두루 가득하게 나타내 보이며, 변화하고 왕래하며, 간략히 하고 광대하게 하며, 모든 색신에 들어가며, 동행(同行)하여 위로 나타나거나 아래로 숨는 등의 하는 바가 자재하여서 다른 이의 신통을 조복하고, 생각하여 지니는 즐거움을 베풀며, 광명을 놓는   신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攝一切苦行,現十種苦行故。十種苦者,所謂受許苦行,菩提願許故。不退苦行,世閒諸苦不退故。不背向苦行,一切衆生惡行苦行中,彼現現事故。現苦行,作惡衆生中,作一切利益義現故。不染苦行,世閒生,以世閒法不染故。

또한 모든 고행을 포섭하는 10 가지 고행을 나타내나니, 열 가지 고행의 십종고(十種苦)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받아들여서 맹세함의 수허고행(受許苦行)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소원을 맹세하는 때문이며,

둘째, 퇴전하지 않음의 불퇴고행(不退苦行)은 세간의 모든 고통으로 인하여 퇴전하지 않고자 하기 때문이며,

셋째, 등지지 않음의 불배향고행(不背向苦行)은 모든 중생의 악행과 고행에 현재를 나타나기 때문이며,

넷째, 현전의 현고행(現苦行)은 악행을 하는 중생에 대해서도 모든 이익되는 나타내기 때문이며,

다섯째, 오염되지 않음의 불염고행(不染苦行)은 세간에 머무르나 세간법에 오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信苦行,於大乘雖無解,一切甚大事信故。證苦行,衆生法無我證故。順覺知苦行,諸如來甚深密語所說順覺知故。

不寂靜不染苦行,不捨世閒,彼不染故。行苦行,住一切障解脫諸佛如來乃至世閒衆生際,自然作一切衆生一切義行故何者。復順覺知苦行,所有諸佛密語說,若隨彼所覺。

여섯째, 믿음의고행(信苦行)은 비록 대승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대승의 심오하고  성품을 믿기 때문이며,

일곱째, 통달의 증고행(證苦行)은 중생과 법무아를 증득하기 때문이며,

여덟째, 수순하여 깨달음의 순각지고행(順覺知苦行)은 모든 여래의 매우 심오하고 비밀스러운 심심밀어(甚深密語) 수순하여 깨달아 알기 때문이며,

아홉째, 고요하지 않고 잡염되지 않은 불적정불염고행(不寂靜不染苦行)은 세간을 버리지 않으나 그것에 오염되지도 않기 때문이며,

열째, 가행의 행고행(行苦行)은 일체장애해탈에 머물러서 모든 부처님과 세간의 중생계를 다하며,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또한 수순하여 깨닫는 순각지고행(順覺知苦行)은 모든 부처님의 비밀스런 말씀의 제불밀어(諸佛密語)에 대하여 수순하여 깨닫는 것이다.


所謂云何菩薩布施成?若使無所布施,而彼無量十方世界,作布施成。云何布施喜心成?若一切布施不喜樂。

云何布施信成?若使諸如來信不去。云何布施與意成?若使自身令與布施。云何樂布施成?若使一切時,無所布施。

이른바 보살은 어떻게 보시를 행하는 것인가?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서 보시를 행하나, 보시하는 바가 없음이며,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는 것인가? 일체의 보시에 대해서 기쁘고 즐거워하는 바가 없음이며,

어떻게 보시의 믿음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모든 여래의 믿음을 받지 못할지라도 보시를 행하는 것이며,  

어떠한 마음을 보시에 두는 것인가? 다른 이들에게 스스로 보시를 하게 하는 것이며,

보시에 대해서 어떻게 즐거워 하는 것인가? 항상 보시하는 바가 없음으로써 이다.


云何布施大事成?若於布施起不堅相。云何布施增長成?若使起妒心。云何布施盡意成?若使不住於盡法時。

云何布施自在成?云何布施無量成?若不住無盡故。如布施,如是持戒等乃至般若波羅蜜,隨順應知。

보시에 대해서 어떻게 대사(大事)를 이루는 것인가? 보시가 견고하지 못하다는 상(相)을 일으키는 것이며,

보시에 대해서 어떻게 증장(增長)을 이루는 것인가? 질투하는 투심(妒心) 일으키는 것이며,

보시에 대해서 어떻게 궁극에 이르는 것인가? 궁극에 이른, 진법시(盡法時)에 머물지 않으며,

어떻게 보시의 자재함을 이루는 것인가? 어떻게 보시의 무량함 이루는 것인가? 

머물지 않는 불주(不住)이고 다함이 없는 무진(無盡)이기 때문이니, 

이러한 보시와 같이 지계바라밀에서부터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수순하는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한다.


云何殺生成?若使衆生世閒害。云何偸盜成?若使餘者未與衆生而自取之。云何邪婬成?若使婬邪而行。

云何妄語成?若使如妄語作妄語說。云何綺語成?若使常以空門行而行。

살생(殺生)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중생의 세간을 끊어지게 하는 것이며,

도둑질의 투도(偸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다른 이가 주지 않는 것을 중생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며,

삿된 음행의 사음(邪淫)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삿된 음행을 행하는 것이며,

거짓말의 망어(妄語)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거짓되게 말을 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교묘하게 꾸미는 기어(綺語)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항상 공문(空門)의 행으로 행하는 것이며


云何惡口成?若使到智彼岸。
云何兩舌成?若使善知諸法而能詮說。

云何貪成?若使常與無常,禪定法令得故修行。

云何瞋心成?若使一切煩惱心中取行。云何邪見成?若使一切處,到一切事,如實邪見。

욕설의 악구(惡口)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지혜의 피안에 잘 이르게 하는 것이며, 

이간질하는 말의 양설(兩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법을  알고 능히 나타내어서 말하는 것이며,

어떻게 탐욕(貪慾)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상주ㆍ무상ㆍ선정법을 증득하고자 수행하는 것이며,

어떻게 성냄의 진심(瞋心)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모든 번뇌심(煩惱心) 가운데에서 취하여 행하는 것이며,

어떻게 삿된 견해의 사견(邪見)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모든 곳에서 일체의 삿된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經明甚深佛法,何等法而說甚深?是中有此說:常法佛法,依法身常故。斷見法佛法,滅一切障故。

生法佛法者,能生應身故。有覺法佛法者,八萬四千衆生行有對治故。

어떠한 법을 경전에서 밝히는 매우 심오한 심심불법(甚深佛法)으로써 매우 심오한 심심(甚深)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상주하는법(常法)의 불법은 법신이 의지하여 상주하기 때문이며, 

또한 단멸하는 단견법(斷見法)의 불법은 모든 장애를 단멸하기 때문이며,

또한 생기하는 생법(生法)의 불법은 능히 응신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또한 깨침이 있는법(覺法)의 불법이니, 8만 4천 가지 중생의 행과 그에 대한 다스림의 대치(對治)가 있기 때문이다.


有貪法佛法者,有貪衆生取如己故。如是有瞋法佛法`有癡法佛法`見有凡夫法佛法`無染法佛法,眞如成就已,一切障不能染故。離染法佛法者,生世閒而世閒法,不能染故。以是義故,名爲甚深佛法。

또한 탐욕이 있는 탐법(貪法)의 불법은 탐욕이 있는 중생을 자신과 같이 섭수하기 때문이며,

이와 같이 성냄이 있는 진법(瞋法)의 불법이고, 어리석음이 있는법(癡法)도법이며,

또한 범부의 범부법(凡夫法)을 불법으로 보며,

잡염이 없는 무염법(無染法)도 불법이니, 진여가 성취되어 모든 장애가 오염시킬  없기 때문이며,

잡염을 여읜 이염법(離染法)이 불법이니, 세간에 머물지라도 세간법이 오염시킬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매우 심오한 심심불법(甚深佛法)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修諸波羅蜜化衆生,令佛國淸淨,現一切佛法故,諸菩薩三昧作事差別應知。如是說增上勝心已。

또한 모든 바라밀을 닦아서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함은 모든 불법을 나타내기 때문이니,

이러함은 모든 보살의 삼매에서의 차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매우 높고 뛰어난 마음의 증상승심(增上勝心)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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