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대승론(攝大乘論) 하권 8
아 승 가(阿 僧 伽, 무착) 지음. 불타선다(佛陀扇多) 한역.
諸菩薩於微小迴中,有何患?捨衆生益果`菩薩法離已,共諸小乘等同解脫是患。
菩薩上迴中,有何利益?世閒法中,自身及他身得自在故,一切道一切衆生視己身故,多以三乘中,
種種善巧方便,化衆生令住故。是中說偈:
모든 보살이 미약하고 작은 전환인 미약증회(微弱益迴)에 머물면 어떠한 과실이 있는 것인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증과를 버리고, 보살법을 떠나며, 소승들과 함께 해탈을 같이하게 되나니, 이러한 과실이 있게 된다.
보살이 최상의 전환인 상회(上迴)에 머물면 어떠한 이익이 있는 것인가?
세간법 가운데에서 자신과 타인의 자재를 얻으며, 일체의 윤회세계인 일체도(一切道)에서 모든 중생의 신(身)을 나타내며, 삼승에서 갖가지 뛰어난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안주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게송으로 설하나니,
正覆迷凡夫, 不正一切現, 諸菩薩常正, 不假自然行。
미혹한 범부는 진실을 덮고 가려서 바르지 않은 모든 것이 현현하나,
모든 보살은 항상 바르고 거짓되지 않은 것을 자연스럽게 행하네.
不說而說知, 非義正義故, 彼身有轉事, 正說爲解脫。
말하지 않음의 불설(不說)과 말함의 설(說)은,
진정하지 않은 대상의 비의(非義)와 진정한 대상인 정의(正義)이니,
그 의지처(身)에 전환이 있음을 바르게 말하여, 해탈이라 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라.
世閒及涅槃, 若生現智者, 爾時彼世閒, 卽說爲涅槃。
세간과 열반에 대해서, 만약 평등하게 보는 지혜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 때에는 세간을 곧 열반이라 말한다네.
不捨非不捨, 善知世閒故;無利無有衰, 善知涅槃故。
세간을 잘 아는 까닭에 버리지 않고, 버리지 않음도 아니니,
이익도 없고 쇠퇴함도 없는 것으로 곧 증득함도 아니고 증득하지 않음도 아니니,
열반을 잘 알기 때문이라네.
ㅡ이상의 게송들은 전의를 나타낸 것이다.
如是說滅勝已。
이상과 같이 멸의 뛰어남인 멸승(滅勝)을 설명하였다.
智勝云何知?以三種佛身故,說智勝事,一眞身`二報身`三應身。是中諸佛眞身者,謂法身,依一切法得自在故。
報身,若以種種諸佛衆會中,顯明法身,所依佛世界淸淨依,受大乘法樂故。
所有依法身者,從兜率天中,託身生,受欲出家,親近外道,苦行成道,轉法輪,示大涅槃。是中說偈:
지혜의 뛰어남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 것인가?
3 가지의 불신으로써 지혜의 뛰어난 승사(勝事)를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진신(眞身, 법신)이고, 둘째는 보신(報身)이며, 셋째는 응신(應身)이다.
이 중에서 모든 부처님의 진신(眞身)은 법신(法身)을 말하는 것이니, 일체법에 대하여 자재를 얻는 의지처이기 때문이며,
보신(報身)은 갖가지 법회에 모든 부처님의 나타내는 것이니, 법신을 의지처로 삼고, 불세계의 청정한 의지처로서 대승의 법락을 향수(享受)하기 때문이다.
응신(應身)은 법신에 의지하고, 도솔천으로부터 탁태(託胎)하여 태어나며, 욕락을 수용하고, 출가하여 외도를 가까이하고, 고행하여 도를 이루며, 법륜을 굴리고 대열반을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게송으로 설하나니,
ㅡ그 증과인 지혜의 뛰어남을 진신ㆍ보신ㆍ응신의 3신(身)에 의거해서 설명한다.
得相自在事, 以攝受身故, 分別甚深德, 諸佛作念事。
증득(得)ㆍ상(相)ㆍ자재(自在)ㆍ섭수(攝受)ㆍ의지신(身)에 의하며,
분별(分別)ㆍ매우 심오한 심심(甚深)ㆍ덕(德)ㆍ생각(念)으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불사를 하시네.
諸佛如來法身有何相?略有五種應知。
모든 부처님 여래의 법신에는 어떤 상(相)이 있는 것인가?
대략 다섯 가지의 오종상(五種相)이 있다고 알아야 하나니,
ㅡ법신의 상을 의지처의 전환인 전신(轉身)ㆍ청정법의 백법(白法)ㆍ무이(無二)ㆍ상주(常住)ㆍ불가사의(不可思議)의 5 가지로 설명한다.
一轉身相,一切煩惱障分他相性迴轉中,一切障得解脫,現法自在處,淨分依轉,迴他相性故。
첫째는 의지처의 전환인 전신(轉身)의 상(相)이니,
모든 번뇌의 장애 부분의 의타상을 전환하여 모든 장애를 해탈하고,
현전법에 자재하며, 의타상을 전환하여 청정분의 의타상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白法體相,能滿十波羅蜜,得十自在故。是中命自在`心自在及資用自在者,爲滿檀波羅蜜故。
業自在及生自在者,爲滿尸羅波羅蜜故。信自在者,爲滿羼提波羅蜜故。
願自在者,爲滿毘離耶波羅蜜故。五通所攝如意通者,爲滿禪波羅蜜故。
智自在及法自在者,爲滿般若波羅蜜故。
둘째는 청정법의 백법(白法)을 자체로 하는 상이니, 능히 10 바라밀을 원만히 하여 10 가지의 자재를 얻기 때문이니,
이 중에서 수명의 명자재(命自在)ㆍ마음의 심자재(心自在)ㆍ도구의 자용자재(資用自在)는 단(檀, 보시)바라밀을 원만히 하기 때문이고,
업자재(業自在)ㆍ태어남의 생자재(生自在)는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을 원만히 하기 때문이며,
믿음의 신자재(信自在)는 찬제(羼提, 인욕)바라밀을 원만히 하기 때문이며,
서원의 원자재(願自在)는 비리야(毘離耶, 정진)바라밀을 원만히 하기 때문이며,
오신통을 포함하는 여의통(如意通)은 선정바라밀을 원만히 하기 때문이고,
지혜의 지자재(智自在)ㆍ법자재(法自在者)는 반야바라밀을 원만히 하기 때문이다.
不二相,事非事二相故,依一切法非事故,有爲`無爲不二相。業煩惱無,爲有現相時現得自在故。別`不別是一不一相,是中一切諸佛不異身故,無量身心故,示現成佛。於中說偈:
셋째는 두 가지가 없음의 불이상(不二相)이니, 존재와 비존재의 사(事)와 비사(非事)의 두 가지의 상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법에는 유(有)와 무위(無爲)의 두 가지가 없는 불이(不二)의 상이며,
업의 번뇌가 짓는 바가 아니고 유위법의 상을 시현함이 자재하기 때문이며,
다른 성품과 동일 성품의 별(別)과 불별(不別)의 두 가지가 없는 상이며,
이 중에서 모든 부처님의 의지처는 차별이 없는 불이신(不異身)이기 때문에 무량신(無量身)으로 성불을 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 게송으로 설하나니,
自稱無我故, 離別無有身, 是彼本順故, 分別得立名。
스스로 무아에 계합하니, 별도의 의지신(身)이 없음이요,
그 근본에 수순하니, 분별하여 명칭을 안립하였네.
性差別無異, 具足及無始, 不分別一佛, 或多依久處。
종성의 차별은 다르지 않은 무이(無異)이니, 구족하여 시초가 없는 무시(無始)이기 때문이라.
아득한 무시(無始)로부터 한 분의 부처님 혹은 많은 의지신을 분별하지 않으시네.
常相,依眞如淨相,本願力取作事不盡故。
넷째는 상주(常住)의 상이니, 진여의 청정함에 의지하는 상이고,
본원력으로 취하며, 지어야 할 불사가 다하지 않은 때문이며,
不思議相,彼眞如淨中,唯內所證知,世閒餘未曾有,及非測量境界。
다섯째,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상이니, 그 진여의 청정함 가운데에서 오로지 내면에서 증득하는 지혜이기 때문이고,
세간에는 일찍이 없는 미증유(未曾有)이며, 사량하여 측량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닌 것이다.
云何復此法身 見覺觀故,彼初得? 暫念大乘無分別`藉彼得智,五種相善修故,一切諸地中,善集助道行,微小難壞障,能令壞故,如金剛三昧,彼三昧中,閒壞一切障故,依彼身轉故得。
또한 이 법신을 어떻게 각관(覺觀, 심사尋伺)을 하여서 최초로 증득하는 것인가?
대승법을 반연하는 무분별지혜와 후득지혜를 5 가지의 오종상(五種相)으로 잘 닦음으로써 모든 지위에서 자량의 조도행(助道行)을 잘 쌓고, 미세하여 파괴하기 어려운 장애를 능히 없애기 때문이다.
마치 금강삼매와 같이, 삼매에서 모든 장애를 없애기 때문이고, 그 신(身, 의지처)가 전환됨으로써 증득하는 것이다.
각관(覺觀), 거친 마음으로 처음 생각하는 것을 각(覺)이라 하고, 세밀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
각관(覺觀)은 심사(尋伺)이며, 심(尋)은 찾아 헤매는 마음과 사물에 대한 개략적인 사고 작용, 사(伺)는 그보다 세심한 분별 작용을 가리킨다. 번뇌에 수반되는 수번뇌(隨煩惱)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선정=定도 무의식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생각하고 살피는 작용이 있다. 그러나 심사와 다른 점은 선정은 '바르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고 심사는 바르지 못한 것이며, 이 각관(覺觀), 즉 심사(尋伺)버려야 2선으로 들어갈 수 있다.
復有幾種自在故,法身得名爲自在?略說五種:世界`身相好`無分別無邊聲響音`不可觀頂自在故,轉色陰。
上妙無量最樂行自在,轉迴受陰故。說一切名身`句身`字身自在,轉迴想陰故。應身願顯引衆攝
取白法自在事,轉迴行陰故。如鏡觀見作事憶持智自在事,轉迴識陰故。
또한 몇 가지 자재로써 법신이 자재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인가? 대략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불국토(世界)ㆍ자신(身)ㆍ상호(相好)ㆍ분별이 없고, 가없이 무변한 음성ㆍ머리를 볼 수 없이 높은 불가관정(不可觀頂)의 자재이기 때문이니, 물질의 색음(色陰)를 전환함에 의한 것이며,
둘째, 승묘(勝妙)하고 무량하며, 최상의 즐거움의 행의 자재이니, 감수작용의 수음(受陰)을 전환함에 의한 것이며,
셋째, 일체의 모든 명칭의 명신(名身)ㆍ문구의 구신(句身)ㆍ글자의 자신(字身)에 대한 자재이니, 표상작용의 상음(想陰)을 전환함에 의한 것이며,
넷째, 몸을 나투는 응신(應身)ㆍ서원ㆍ현현ㆍ대중을 포섭함ㆍ청정법한 백법(白法)을 포섭함에 있어서의 자재이니, 결합작용의 행음(行陰)을 전환함에 의한 것이며,
다섯째, 거울과 같은 지혜ㆍ평등하게 보는 지혜ㆍ관찰의 지혜ㆍ할 바를 이루는 지혜의 자재이니, 식별작용의 식음(識陰)을 전환함에 의한 것이다.
ㅡ법신이 5음(陰)의 의지처를 전환하여 5 가지 자재를 얻음을 밝힌 것이다.
'The Awakening of Faith' by Ashvagosha.
The faculty of thought. The consciousness of self and of environment and all the imperfect ideas arising from these, trying to distinguish between all the objects of the senses, is called thought, as well as the faculty of distinguishing things. This increases with the senses, with desires, and with their sorrows. 생각의 능력, 즉 상음(想陰), 이것은 자아(我)와 주변 환경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분별)로 부터 모든 불완전한(오염된) 관념을 일으키는 것이며, 감각을 따라 모든 대상들을 구별하는 능력, 이것을 생각이라 한다. 이 상음은 모든 감각, 욕구(욕망)과 그 슬픔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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