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5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3. 소지상분(所知相分) ② 1
ㅡ제3 분별장(分別章)의 나머지 부분.
▶論曰:復次云何得知,如依他起自性,遍計所執自性,顯現而非稱體?
由名前覺無稱體相違故`由名有衆多多體相違故`由名不決定雜體相違故.此中有二頌:
▷논문; 또한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 Other dependent, Dependent nature)과 같이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 Fully conceptualized, Imaginary nature)이 현현할지라도 자체(體)에 계합하지 않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명칭(名)에 대한 지각이 없음으로 인하여 체에 계합함과 위배되기 때문이고,
명칭(名)에 많은 것이 있음으로 인하여 체가 많음에 위배되기 때문이며,
명칭(名)은 결정적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체의 잡염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게송이 있으니,
“由名前覺無, 多名不決定, 成稱體多體, 雜體相違故.
명칭에 대한 지각이 없음과 많은 명칭과 결정적이지 않음으로 인하는 것이니,
체에 계합함과 체가 많음과 체의 잡염이 위배됨을 이루기 때문이라네.
法無而可得, 無染而有淨, 應知如幻等, 亦復似虛空.”
법은 비존재(無)이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잡염이 없고 청정함이 있으니,
환상(幻) 등과 같으며 또한 허공과 같은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리라.
▶釋曰:如依他起自性,遍計所執分, 雖顯現可得, 而非稱彼體.爲顯此義故, 說由名前覺無稱 體相違故等.
若依他起`遍計所執, 同一相者,應不待名, 於義覺轉. 如執有甁,
▷해석한다; 의타기자성과 같이 변계소집분은 현현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 체에 계합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명칭(名)에 대한 지각이 없음으로 인하는 것이니, 체에 계합함과 위배되기 때문이다’는 등으로 말하는 것이다.
만약 의타기성과 변계소집성이 동일한 일상(一相)이라면, 마땅히 명칭(名)을 기다리지 않고 대상(義)에 대해서 지각이 일어나야 할 것이니, 병(甁)이 존재한다고 집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若離甁名, 於甁義中, 無有甁覺. 若此甁名與彼甁, 義同一相者,甁覺應轉;以非一相,是故不轉.
由此名義,若體相稱, 則成相違, 此中安立名爲依他起`義爲遍計所執, 以依他起,由名勢力成所遍計故.
만약 병의 명칭(名)을 여읜다면 병이라는 대상(義)에 대하여 병이라는 지각이 없을 것이며,
만약 이 병의 명칭(名)과 그 병의 대상(義)이 동일한 일상(一相)이라면 병의 지각이 마땅히 일어나야 할 것이나,
일상(一相)이 아니기 때문에 지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 명칭(名)과 대상(義)으로 인하여 만약 체와 상이 계합한다면 곧 위배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안립은 명칭(名)을 의타기성으로 삼고, 대상(義)을 변계소집성으로 삼는 것이니,
의타기성은 명칭(名)의 세력으로 인하여 소변계(所遍計, 경 境)를 이루기 때문이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가지가지의 연(緣)으로 생긴 것일 뿐, 실체(實體)가 없는 존재를 실아실법(實我實法)이라고 집착하는 미(迷)한 마음의 능변계(能遍計)와, 그 식(識)의 대상(境)인 소변계(所遍計)에 의해서 나타난 것일 뿐, 실체가 없는 체성도무(體性都無)이다.
又於一義,有衆多名,若名與義同一相者,義應如名,亦有多種.若爾,此義應成多體, 一義多體, 則成相違.
是故兩性,若同一相,則成第二相違過失.
또한 하나의 대상인 일의(一義)에 대해서 많은 명칭(名)이 있고, 만약 명칭(名)과 대상(義)이 동일한 일상(一相)이라면, 대상 역시도 마땅히 명칭(名)과 같이 많은 종류가 있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러하다면 이 대상(義)은 마땅히 많은 체의 다체(多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하나의 대상인 일의(一義)로서 체가 많은 다체(多體)라면 곧 위배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만약 두 자성이 동일한 일상(一相)이라면, 곧 두 번째 위배됨의 과실을 이루게 될 것이다.
又名不決定,以一瞿聲,於九義轉.
또한 명칭(名)은 결정적이지 않은 것이니, 하나의 볼 구(瞿, 산스크리트 go)라는 소리는 아홉 가지의 뜻으로 전전하는 것이니,
아홉 가지 뜻의 구의(九義)는 장소의 방(方)ㆍ짐승의 수(獸) 또는 우(牛)ㆍ땅 지(地)ㆍ빛 광(光)ㆍ말 언(言)ㆍ금강보(金剛寶)ㆍ눈의 안(眼)ㆍ하늘의 천(天)ㆍ물 수(水)이다. 산스크리트 go에 이와 같은 뜻이 있는 것을 말한다.
若執名義同一相者,多義相違,應同一體,則成第三相違過失.由執牛等非一相義,同一性故,初一伽他,重顯此義.於中成者,顯依他起`遍計所執非一義成. 瞿 볼 구
만일 명칭(名)과 대상(義)이 동일한 일상이라고 집착한다면 많은 대상(義)에 위배되는 것이니,
만약 동일체라면 곧 세 번째 과실을 이룰 것이니, 소 우(牛) 등은 하나의 모습이 아닌 것이나, 대상(義)이 동일한 성품이라고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니, 첫 번째의 게송에서 이러한 의미를 거듭 나타내었으니,
그 게송의 성칭체다체(成稱體多體)에서 ‘이룬다는 성(成)’은 의타기성과 변계소집성이 하나가 아닌 뜻을 이룬다는 말이다.
法無而可得等者,此一伽他,以幻等喩,開悟弟子. 弟子有二相違疑問: 云何法無而現可得? 云何無染而有淸淨? 此中兩喩,釋此疑問. 如幻等者, 譬如幻象, 實無所有, 而現可得. 應知此中義亦如是, 雖現可得而非實有.
‘법은 비존재(無)이지만 얻을 수 있다’는 등은 다음과 같으니,
이 한 게송은 요술 등의 비유로써 제자를 깨우치는 것이다.
제자에게 두 가지의 의문이 있었으니,
“법이 비존재(無)이거늘 어떻게 현재 얻을 수 있는가?”와 “어찌하여 잡염이 없는 청정함이 있는 것인가?”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의 비유로써 이 의문을 해결하였으니,
‘환상 등과 같다는 여환등(如幻等)’이란, 비유하자면 환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현재에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니, 여기서의 대상 역시도 이와 같이 현재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似虛空者, 譬如虛空, 雖非雲等所能染污, 性淸淨故, 而離彼時, 說名淸淨. 當知諸法亦復如是, 雖實無染, 性淸淨故, 然客障垢, 得滅離時, 說名淸淨.
‘허공과 비슷하다는 사허공(似虛空)’이란, 비유하자면 허공은 본성이 청정하기 때문에 구름 등이 능히 오염시킬 수 없지만, 그러한 구름 등이 없을 때를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법도 역시 이와 같아서, 실제로는 잡염이 없고 본성이 청정한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장애의 오염이 소멸하였을 때,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論曰:復次何故,如所顯現實無所有,而依他起自性非一切,一切都無所有? 此若無者,圓成實自性,亦無所有.此若無者,則一切皆無.若依他起及圓成實自性無有,應成無有染淨過失.旣現可得雜染`淸淨,是故不應一切皆無.此中有頌:
▷논문; 또한 무슨 까닭에 현현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의타기자성은 일체 모두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인가?
만약 이것이 없다면 원성실자성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만약 이것이 없다면 곧 일체가 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잡염과 청정이 없다는 과실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잡염과 청정을 현재에서 얻는 까닭에, 마땅히 일체가 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若無依他起, 圓成實亦無, 一切種若無, 恒時無染淨.”
만약 의타기성이 없다면, 원성실성 역시도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모든 종류가 없다면, 잡염과 청정이 어느 때에도 없을 것이라네.
▶釋曰:若依他起, 如所可得不如是有, 旣爾何不一切一切都無所有? 此若無者, 圓成實性, 亦應無有. 何以故? 由有雜染淸淨有故.若二俱無, 則一切種,皆無所有.今當顯此非都無有, 有謗雜染淸淨過故. 雜染淸淨, 旣現可得, 故此二性俱非不有. 若執爲無,則撥現有雜染淸淨, 言無所有.
▷해석한다; 만약 의타기성이 있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일체 모두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인가?
만약 이것이 없다면 마땅히 원성실성 역시도 없어야 할 것이니, 왜냐하면 잡염이 있음으로써 청정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두 가지 모두가 없다면, 곧 모든 종류도 다 없어야 할 것이니, 마땅히 이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나타내어야 할 것이니,
잡염과 청정을 비방하는 과실이 있게 되기 때문이고, 잡염과 청정은 현재에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타기성과 원성실성, 두 가지 자성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만약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집착한다면, 곧 현재 잡염과 청정이 있는 것을 부정하면서 없다고 말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論曰:諸佛世尊,於大乘中,說方廣教,彼教中言:
▷논문;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대승 안에서 방광(方廣)의 가르침을 말씀하셨으니, 그 가르침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방광(方廣), 세간 출세간을 다 아우르는 내용의 설법, 즉 대승 경전을 가리키며, 대승의 경에서 설하는 이치는 방정(方正)한 것이므로 방(方)이라 하며, 그 뜻이 원만히 구비되었고 언어가 풍족하므로 광(廣)이라 한다.
云何應知遍計所執自性?應知異門,說無所有. 云何應知依他起自性? 應知譬如幻`炎`夢`像`光影`谷響`水月`變化. 云何應知圓成實自性?應知宣說四淸淨法.
“변계소집자성을 어떻게 알아야 마땅한 것인가? 마땅히 알지니, 이문(異門, 다른 견해)에서는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라고 말하는 것이다.
의타기자성을 어떻게 알아야 마땅한 것이가? 마땅히 알지니, 비유하자면 요술ㆍ아지랑이ㆍ꿈ㆍ영상(像)ㆍ그림자ㆍ메아리ㆍ물에 비친 달ㆍ변화(化)와 같은 것이다.
원성실자성을 어떻게 알아야 마땅한 것인가? 마땅히 알지니, 네 가지의 청정법인 사청정법(四淸淨法)이라고 널리 말하는 것이다.
何等名爲四淸淨法?一者自性淸淨,謂眞如`空`實際`無相`勝義`法界;二者離垢淸淨,謂卽此離一切障垢;三者得此道淸淨,謂一切菩提分法,波羅蜜多等;四者生此境淸淨,謂諸大乘妙正法教. 由此法教,淸淨緣故,非遍計所執自性;最淨法界,等流性故,非依他起自性.如是四法,摠攝一切淸淨法盡.此中有二頌:
무엇을 네 가지 청정법인 사청정법(四淸淨法)이라 이름하는 것인가?
첫째는 자성청정(自性淸淨)이니, 이른바 진여(眞如)ㆍ공(空)ㆍ실제(實際)ㆍ무상(無相)ㆍ승의(勝義)ㆍ법계(法界)이며,
둘째는 오염을 여읜 이구청정(離垢淸淨)이니, 이른바 모든 장애를 여읜 것이며,
셋째는 이것을 증득한 도의 도청정(道淸淨)이니, 이른바 모든 보리분법(菩提分法)과 바라밀다 등이며,
넷째는 이것을 생겨나게 한 경계의 경청정(境淸淨)이니, 이른바 모든 대승의 미묘하고 올바른 교법이다.
이 교법의 청정함의 조건(緣)으로 인하여 변계소집자성이 아닌 것이며,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평등히 흘러나오는 성품이기 때문에 의타기자성이 아닌 것이며,
이와 같은 네 가지의 법에 네 가지의 사청정법(四淸淨法)을 다 포괄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게송이 있으니,
“幻等說於生, 說無計所執, 若說四淸淨, 是謂圓成實.
요술(幻) 등은 생겨남(生)을 말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無)이라고 말하는 것은 헤아려서 집착한 것이라.
만약 네 가지의 청정을 말한다면, 이를 원성실성이라 말하는 것이라네.
自性與離垢, 淸淨道所緣, 一切淸淨法, 皆四相所攝.”
자성(自性, 자성청정)ㆍ오염을 여읜 이구(離垢, 이구청정)ㆍ도(道, 도청정)ㆍ인식대상의 소연(所緣, 경청정)의 청정 등
모든 청정한 법 모두는 네 가지의 사상(四相)에 포섭된다네.
▶釋曰:自性淸淨者,謂此自性,本來淸淨,卽是眞如自性,實有一切有情平等共相;
由有此故, 說一切法, 有如來藏. 離垢淸淨者, 卽此眞如, 遠離煩惱`所知障垢,卽由如是淸淨眞如, 顯成諸佛.
▷해석한다; ‘자성청정’이란 이 자성이 본래 청정한 것을 말하는 것이니, 곧 진여자성(眞如自性)이고 참존재인 실유(實有)로서 모든 유정의 평등한 공상(共相)이다.
이것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체법에 여래장(如來藏)이 있다고 말하며,
‘오염을 여읜 이구청정(離垢淸淨)’이란, 곧 이 진여가 번뇌장과 소지장의 오염을 멀리 여읜 것으로, 이와 같은 청정한 진여로 인하여 모든 부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得此道淸淨者,謂能得此眞如聖道卽是淸淨,謂念住等菩提分法,及以一切波羅蜜多.生此境淸淨者, 生此能證菩提分法所緣境界.生此境界,卽是淸淨,故名生此境淸淨,卽契經等十二分教. 何以故? 若此聖教,是遍計所執, 應成雜染因. 若是依他起,應成虛妄.最淨法界,等流性故,非是虛妄.旣離二自性,故成圓成實.
‘이것을 증득한 도의 청정인 도청정(道淸淨)’이란, 이 진여를 증득한 성스러운 성도(聖道)가 청정한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4념주(四念住) 등의 보리분법과 모든 바라밀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생겨나게 한 경계의 경청정(境淸淨)’이란, 이 능히 증득하는 보리분법을 생겨나게 하는 인식대상의 경계인 소연경계(所緣境界)이다.
이것을 생겨나게 하는 경계가 청정하기 때문에, 이것을 생겨나게 하는 경청정(境淸淨)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곧 계경(契經) 등 12분교(分敎)이니, 무슨 까닭에서인가?
만약 이 성스러운 가르침의 성교(聖教)가 변계소집성이라면 마땅히 잡염의 원인을 이루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의타기성이라면 마땅히 허망됨을 이루어야 할 것이며,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평등히 흘러나오는 성품이기 때문에 허망된 것이 아니니, 이미 이 두 자성을 여읜 까닭에 원성실성을 이루는 것이다.
又此四種,於大乘中,隨說一種,應知是說圓成實性. 於中初二,無有變異,圓成實故,名圓成實.
後之二種,無有顚倒,圓成實故,名圓成實.
또한 이 네 가지는 대승 안에서 한 종류를 말하는 것을 따라 원성실성이라 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그 중에서 자성청정과 이구청정, 두 가지는 변이(變異)가 없는 원성실이기 때문에 원성실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도청정과 경청정의 두 가지는 전도(顚倒)됨이 없는 원성실이기 때문에 원성실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後伽他中,具頌此義.幻等說於生者,謂依他起,此中名生.若於是處,說一切法,譬如幻事,乃至變化, 應知此說依他起性. 說無計所執者,若於是處,說無有色,乃至說無一切諸法,應知此說遍計所執性.
가타(伽他, 게송)의 뒷 부분에서 이러한 의미를 갖추어 읊었으니,
‘요술(幻) 등은 생겨남(生)을 말한다’란, 의타기성을 여기서는 생겨남의 생(生), 즉 인연에 의한 생멸(生滅)이라 이름한 것이며,
만약 여기에서 일체법을 비유하여 요술(幻) 나아가 변화(化)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의타기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비존재(無)라고 말하는 것은 헤아려서 집착한 것이라네’란, 만약 이곳에서 물질(色)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나아가 일체의 제법이 비존재(無)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변계소집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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