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4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3. 소지상분(所知相分) ① 6
▶論曰: 復次遍計有四種:一自性遍計`二差別遍計`三有覺遍計`四無覺遍計.
▷논문; 또한 변계(遍計)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변계이고, 둘째는 차별변계이며, 셋째는 명언(名言)을 잘 아는, 유각(有覺)변계이고, 넷째는 명언을 잘 알지 못하는, 무각(無覺)변계이다.
변계(遍計)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두루 ~라고 헤아린다', '널리 ~라고 헤아린다', '일반적 또는 보편적으로 ~라고 헤아린다'이다. '헤아린다'라는 뜻의 계(計)는 전통적인 용어인 계탁(計度) 또는 계탁분별(計度分別)의 줄임말이다.
계탁분별을 줄여서 그냥 분별(分別)이라고도하며, 계 · 계탁 · 계탁분별 · 분별을 순한글로는 일반적으로 헤아림이라고 한다. 계 · 계탁 · 계탁분별 · 분별 · 헤아림은 특히 제6의식의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대해 생각(量)하고 사유(思惟), 뜩히 심사숙고하고 분별(分別)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 계탁분별의 본질적 성질 즉 본질은 제6의식과 상응하는 산혜(散慧) 즉 산란된 지혜이다.
계탁분별의 정의인 '생각하고 사유하고 구별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 그 자체에는 본래 부정적인 의미가 없지만, 선정에 의해 나타나는 바른 지혜, 즉 무루혜가 아니라는 점에서 계탁분별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변계(遍計)라는 낱말의 문맥에서의 계탁분별, 즉 계(計) · 계탁 · 분별 · 헤아림은 항상 부정적인 의미인 그릇된 헤아림의 뜻으로 사용된다.ㅡ위키
有覺者,謂善名言. 無覺者,謂不善名言.如是遍計,復有五種:一依名遍計義自性,謂如是名有如是義;二依義遍計名自性, 謂如是義,有如是名;三依名遍計名自性,謂遍計度未了義名;四依義遍計義自性,謂遍計度未了名義;五依二遍計二自性,謂遍計度此名此義.如是體性.
유각(有覺)은 명언(名言)을 잘 아는 것을 말하고, 무각은 명언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변계에 다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명칭(名)에 의지해서 대상(義)의 자성을 두루 계탁하는 의명변계의자성(依名遍計義自性)이니, 이러한 명칭(名)에 이러한 대상(義)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대(義)상에 의지해서 명칭(名)의 자성을 두루 계탁하는 의의변계명자성(依義遍計名自性)이니, 이러한 대상(義)에 이러한 명칭(名)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명칭(名)에 의지해서 명칭(名)의 자성을 두루 계탁하는 의명변계명자성(依名遍計名自性)이니, 아직 알지 못한 대상(義)의 명칭(名)을 두루 계탁하는 것이며,
넷째는 대상(義)에 의지해서 대상(義)의 자성을 두루 계탁하는 의의변계의자성(依義遍計義自性)이니, 아직 알지 못한 명칭(名)의 대상(義)을 계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명칭(名)과 대상(義), 두 가지에 의지해서 두 가지의 자성을 두루 계탁하는 의이변계이자성(依二遍計二自性)이니, 이것의 명칭(名)과 이것의 대상(義)은 이와 같은 체성이라고 두루 계탁하는 것이다.
▶釋曰:善名言者,謂解名言.不善名言者,謂牛羊等,雖有分別,然於文字,不能解了.
▷해석한다; ‘명언(名言)을 잘 안다’는 것은 명언을 잘 이해하는 것을 말하고,
‘명언(名言)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소ㆍ양 등을 분별하지만, 문자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論曰: 復次摠攝一切分別,略有十種:一根本分別,謂阿賴耶識;二緣相分別,謂色等識;三顯相分別,謂眼識等幷所依識;四緣相變異分別,謂老等變異`樂受等變異`貪等變異`逼害時節代謝等變異` 捺落迦等諸趣變異,及欲界等諸界變異;五顯相變異分別,謂卽如前所說變異,所有變異;六他引分別,謂聞非正法類,及聞正法類分別;七不如理分別,謂諸外道聞非正法類分別;八如理分別,謂正法中,聞正法類分別;九執著分別,謂不如理作意類,薩迦耶見爲本, 六十二見趣相應分別;十散動分別,謂諸菩薩,十種分別.
▷논문; 또한 모든 분별(分別)을 모두 포섭하면 대략 열 가지가 있으니,
첫 째는 근본분별(根本分別)이니, 아뢰야식을 말하며,
둘 째는 반연하는 상의 연상분별(緣相分別)이니, 색식(色識) 등을 말하는 것이며,
셋 째는 현현함의 상의 현상분별(顯相分別)이니, 안식 등의 의지처의 식인 의식(依識)이며,
넷 째는 반연의 모습이 변이함의 연상변이분별(緣相變異分別)이니, 늙음 등의 변이, 즐거움의 감수작용인 낙수(樂受) 등의 변이, 탐욕 등의 변이, 핍박ㆍ시절의 대사(代謝) 등의 변이, 지옥 등 모든 윤회세계(趣)의 변이 및 욕계 등 여러 세계의 변이를 말하는 것이며,
다섯 째는 현현의 모습이 변이함의 현상변이분별(顯相變異分別)이니, 곧 앞에서 말한 변이와 같은 모든 변이를 말하며,
여섯 째는 남이 이끄는 타인분별(他引分別)이니, 정법이 아닌 종류를 듣거나 정법의 종류를 듣고 분별하는 것이며,
일곱 째는 진리가 아닌 불여리분별(不如理分別)이니, 모든 외도가 정법이 아닌 종류를 듣고 분별하는 것을 말하며,
여덟 째는 진리 그대로의 여리분별(如理分別)이니, 정법 안에서 정법의 종류를 듣고 분별하는 것이며,
아홉 째는 집착분별(執着分別)이니, 진리가 아닌 작의의 종류로서 살가야견을 근본으로 삼아서 62견(見)과 상응하는 분별이며,
열 째는 산란된 움직임의 산동분별(散動分別)이니, 모든 보살의 열 가지 분별이다.
62견(見), 석존 재세시(在世時)에 주장된 이교도의, 62가지의 잘못된 견해로서, 자신과 세계에 관하여 불교의 정도(正道)에서 빗나간 견해(사상)의 총칭이다.
▶釋曰:摠攝一切分別,略有十種者,是摠摽擧,後當別釋. 根本分別者,謂阿賴耶識, 是諸分別根本,自體亦是分別.
緣相分別者,謂色等識, 爲所緣相, 所起分別. 顯相分別者,謂眼識等幷所依識, 顯現似彼所緣境相所起分別. 有所分別,或能分別故, 名分別
▷해석한다; ‘일체분별을 모두 포섭하면 대략 열 가지가 있다’는 것은 총표(總標)를 든 것이니, 나중에 마땅히 별도로 해석할 것이다.
첫 째의 ‘근본분별(根本分別)’이란 아뢰야식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든 분별의 근본으로서, 그 자체도 역시 분별이다.
둘 째의 ‘반연의 모습의 연상분별(緣相分別)’이란 색식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인식대상의 소연상(所緣相) 때문에 일으켜진 분별이며,
셋 째의 ‘현현함의 모습의 현상분별(顯相分別)’이란 안식 등의 의지처인 식, 즉 소의식(所依識)을 말하며, 그 인식대상과 비슷한 상을 현현하여 일으켜진 분별이며, 분별의 대상, 혹은 분별의 주체가 있기 때문에 분별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緣相變異分別者, 謂卽緣相所有變異. 緣此緣相變異分別,故名緣相變異分別. 謂老等變異者, 身中大種, 衰朽改易, 名老變異分別. 此故說名緣相變異分別. 等者,等取病死變異. 樂受等變異亦爾, 謂由樂受,身體改易, 等者等取苦及不苦不樂.貪等變異亦爾,等者等取瞋癡. 逼害時節代謝等變異亦爾,謂身變異, 爲所緣境,所起分別.逼害者,謂殺縛等. 時節代謝者, 謂寒時等時節改易. 捺落迦等諸趣變異者, 等取傍生及餓鬼趣, 及欲界等諸界變異亦爾,等者等取色`無色界.
넷 째의 ‘반연의 모습이 변이함의 연상변이분별(緣相變異分別)’이란 반연하는 연상(緣相)의 모든 변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 반연하는 연상(緣相)의 변이를 반연하는 분별이기 때문에, 반연의 모습이 변이하는 분별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늙음 등의 변이’는 신체에서 물질 구성요소인 대종(大種)이 쇠락하여 바뀌는 것을 늙음의 변이의 분별이라 이름하고, 따라서 반연하는 연상(緣相)이 변이함의 분별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등(等)’이란 병듬과 죽음의 변이를 가리키며, 즐거움의 감수작용인 낙수(樂受) 등의 변이 역시도 그러하며, 즐거움의 감수작용인 낙수(樂受)로 인하여 신체가 바뀌는 것을 말하며,
‘등(等)’은 괴로움의 감수작용인 고수(苦受)와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감수작용의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를 말하며,
탐욕 등의 변이 역시 그러하며, ‘등(等)’은 성냄과 어리석음도 가리키는 것이다.
핍박ㆍ시절의 대사 등(等)의 변이도 역시 그러하며, 신체가 변이하여 인식대상인 소연경(所緣境)이 되어 일으키는 분별이며,
‘핍박’은 살해ㆍ결박 등을 말하고, ‘시절(時節)의 대사’는 추울 때 등과 같이 시절이 바뀌는 것을 말하며,
‘지옥 등 모든 윤회세계의 변이’는 축생ㆍ아귀 등의 세계(趣)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며, 욕계 등 모든 세계의 변이도 역시 그러해서 ‘등(等)’은 색계와 무색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顯相變異分別者, 謂眼識等顯現,似彼所緣境相,所有變異,緣此顯相變異分別,此亦如前所說,老等種種變異,由此亦於老等位中,變異起故.他引分別者,謂由他教,所起分別,此復二種:一聞非正法類`二聞正法類. 此復二種:於法分別, 謂聞正法類. 或善或不善,聞非正法類, 亦如是釋.
다섯 째의 ‘현현의 모습이 변이함의 현상변이분별(顯相變異分別)’이란 안식 등이 현현하여 그 인식대상과 비슷한 모습의 모든 변이를 말하며, 이 현현하는 모습(相)의 변이를 반연하여 분별하는 것이니, 이것도 앞에서 말한 늙음 등의 갖가지 변이와 같은 것이니, 이 역시도 늙음 등의 단계에서 변이하여 일으키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 째의 ‘남이 이끄는 타인분별(他引分別)’이란, 남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일으켜지는 분별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그 첫째는 정법이 아닌 종류를 듣는 것이고, 그 둘째는 정법의 종류를 듣는 것이다.
이에 다시 두 가지가 있어서 법에 대하여 분별하는 것이니, 이른바 정법의 종류를 듣고 선이 되거나 혹은 불선이 되는 것이며, 정법이 아닌 종류를 듣고서도 역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不如理分別者,謂諸外道及彼弟子,聞非正法類,爲因分別.如理分別者,謂正法中,諸佛弟子,聞正法類,爲因分別.執著分別者,謂不如理作意爲因,依止我見,起六十二諸惡見趣相應分別,如經廣說.散動分別者,謂諸菩薩,如後所說,十種分別.
일곱 째의 '진리가 아닌 불여리분별(不如理分別)’이란 모든 외도와 그 제자들이 정법이 아닌 종류를 들은 것을 원인으로 삼고 분별하는 것을 말하며,
여덟 째의 '진리 그대로의 여리분별(如理分別)’이란 정법 안에서 모든 불제자들이 정법의 종류를 들은 것을 원인으로 삼아서 분별하는 것을 말하며,
아홉 째의 '집착분별(執着分別)’이란, 진리가 아닌 작의를 원인으로 삼고 아견에 의지해서 잘못된 62견(見)과 상응하는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니, 경전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바와 같으며,
열 째의 '산란된 움직임의 산동분별(散動分別)’이란, 모든 보살이 아래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열 가지 분별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論曰:一無相散動`二有相散動`三增益散動`四損減散動`五一性散動`六異性散動`七自性散動`八差別散動`九如名取義散動`十如義取名散動.爲對治此十種散動,一切般若波羅蜜多中,說無分別智.如是所治,能治應知具攝般若波羅蜜多義.
▷논문; 첫째는 비존재 상의 산란된 움직임인 무상산동(無相散動)이고,
둘째는 존재 양상의 산란된 움직임인 유상산동(有相散動)이며,
셋째는 증익의 산란된 움직임인 증익산동(增益散動)이고,
넷째는 손감의 산란된 움직임인 손감산동(損減散動)이며,
다섯째는 한 성품의 산란된 움직임인 일성산동(一性散動)이고,
여섯째는 다른 성품의 산란된 움직임인 이성산동(異性散動)이며,
일곱째는 자성의 산란된 움직임인 자성산동(自性散動)이고,
여덟째는 차별의 산란된 움직임인 차별산동(差別散動)이며,
아홉째는 명칭 그대로 대상을 취하는 산란된 움직임의 여명취의산동(如名取義散動)이고,
열째는 대상 그대로 명칭을 취하는 산란된 움직임의 여의취명산동(如義取名散動)이다.
이 열 가지의 산동(散動)을 다스리기 위해서 모든 반야바라밀다에서 무분별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다스려지는 소취(所治)와 능히 다스리는 능취(能治)는 반야바라밀다의 의미를 모두 포섭하는 것으로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釋曰:此中無相散動者,謂此散動,卽以其無,爲所緣相.爲對治此散動故,『般若波羅蜜多經』言:實有菩薩.言實有者,顯示菩薩實有空體.空卽是體,故名空體.
▷해석한다; 이 중에서 ‘비존재 양상의 산란된 움직임인 무상산동(無相散動)’은 다음과 같으니, 이 산란된 움직임의 산동은 곧 그 비존재인 무(無)로써 소연(所緣, 인식대상)의 상(相)을 삼는 것이니, 이 산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반야바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에서는 “실제로 보살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실제로 있다”고 말한 것은 보살에게는 실제로 공의 자체인 공체(空體)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공은 곧 이 자체이기 때문에 공체(空體)라 이름하는 것이다.
有相散動者,謂此散動,卽以其有,爲所緣相.爲對治此散動故,卽彼經言:不見有菩薩.此經意說,不見菩薩,以遍計所執及依他起爲體.增益散動者,爲對治此散動故.卽彼經言:色自性空.由遍計所執色自性空故.
‘존재 양상의 산란된 움직임인, 유상산동(有相散動)’은 다음과 같으니, 이 산동은 곧 그 존재인 유(有)로써 소연(所緣, 인식대상)의 상(相)을을 삼는 것이니, 이 산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경전에서 “보살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며, 이 경전의 취지는 보살을 보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으로써 체를 삼기 때문이다.
‘증익의 산란된 움직임의 증익산동(增益散動)’에서, 이 산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곧 그 경전에서 “물질(色)의 자성은 공(空)이다”라고 말하였으니, 변계소집성인 물질(色)의 자성이 공한 색자성공(色自性空)이기 때문이다.
損減散動者,爲對治此散動故,卽彼經言:不由空故.謂法性色性不空故.一性散動者,爲對治此散動故,卽彼經言:色空非色.何以故?若依他起,與圓成實,是一性者,此依他起,應如圓成實, 是淸淨境.
‘손감의 산란된 움직임의 손감산동(損減散動)’에서, 이 산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곧 그 경전에서 “공(空)에 의거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으니, 법성의 색성(色性)은 공이 아닌, 불공(不空)이기 때문이다.
‘한 성품의 산란된 움직임의 일성산동(一性散動)’은, 이 산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곧 그 경전에서 “물질은 공으로서 물질이 아닌, 색공비색(色空非色)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왜냐하면 만약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이 한 성품이라면, 이 의타기성은 마땅히 원성실성과 같이 청정한 경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異性散動者,爲對治此散動故, 卽彼經言: 色不離空. 何以故?此二若異,法與法性,亦應有異.若有異性,不應道理, 如無常法與無常性.若取遍計所執自性,色卽是空`空卽是色.何以故? 遍計所執,色無所有,卽是空性, 此空性卽是彼無所有,非如依他起與圓成實,不可說一.
‘다른 성품의 산란된 움직임인 이성산동(異性散動)’은, 이 산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곧 그 경전에서 “물질은 공을 떠나지 않는, 색불이공(色不離空)이다”라 하였으니, 왜냐하면 만약 색(色) 공(空), 이 둘이 다르다면 법과 법성 역시 마땅히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성품이라면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 마치 무상법(無常法)과 무상성(無常性)과 같으며,
만약 변계소집의 자성을 취한다면, 물질은 곧 공인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공은 곧 물질인, 공즉시색(空卽是色)인 것이니, 무슨 까닭에서 인가? 변계소집성인 물질(色)은 실재함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라 곧 공의 성품이고, 이 공의 성품은 곧 그것이 실재함이 없으며, 의타기성과 원성실성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自性散動者,爲對治此散動故,卽彼經言:舍利子!此但有名,謂之爲色.何以故?色之自性, 無所有故. 差別散動者,爲對治此散動故,卽彼經言:自性無生無滅,無染無淨.生卽有染`滅卽有淨,無生滅故,無染無淨,如是諸句,有如是義.
‘자성의 산란된 움직임의 자성산동(自性散動)’은, 이 산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곧 그 경전에서 “사리자여, 이것은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니, 그것을 물질(色)이라고 말한다”고 하였으니, 왜냐하면 물질(色)의 자성은 실재함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다.
‘차별의 산란된 움직임인 차별산동(差別散動)’에서, 이 산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곧 그 경전에서 “자성에는 생겨남도 없고 소멸함도 없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잡염도 없고 청정도 없는 무염무정(無染無淨)이다. 생겨나면 곧 잡염이 있게 되고, 소멸하면 곧 청정함이 있으나, 생멸이 없기 때문에 잡염도 없고 청정도 없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모든 구절에 이러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如名取義散動者,謂如 其名於義散動.爲對治此散動故,卽彼經言:假立客名,別別於法,而起分別.言別別者,謂別別名.如義取名散動者,如義於名而起散動.爲對治此散動故,卽彼經言:假立客名,隨起言說,非義自性,有如是名.爲對治此十散動故,說般若波羅蜜多.由此說爲因,無分別智生.
‘명칭 그대로 대상을 취하는 산란된 움직임의 여명취의산동(如名取義散動)’이란, 그 명칭 그대로 대상에 대하여 산란되게 움직이는 것이니, 이 산란된 움직임을 다스리기 위해서 곧 그 경전에서 “객관의 명칭을 가립하여 개별적으로 법에 대해서 분별을 일으킨다”고 말하였으며, ‘개별적’이란 개별적인 명칭을 말하는 것이다.
‘대상 그대로 명칭을 취하는 산란된 움직임의 여명취의산동(如名取義散動)’이란, 대상 그대로 명칭에 대해서 산란된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 산란된 움직임을 다스리기 위해서 곧 그 경전에서 “객관의 명칭을 가립하여 따라서 언설을 일으키고, 대상이 아닌 자성에 이러한 명칭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열 가지 산란된 움직임의 산동(散動)을 다스리기 위해서 반야바라밀다를 말씀하셨으니, 이 말씀을 원인으로 삼음으로써 무분별지혜를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論曰:若由異門,依他起自性,有三自性.云何三自性,不成無差別?若由異門, 成依他起,不卽由此成遍計所執及圓成實.若由異門,成遍計所執,不卽由此成依他起及圓成實.若由異門,成圓成實,不卽由此成依他起及遍計所執.
▷논문; 만약 이문(異門, 다른견해)에 의하지 않는다면 의타기자성에 세 가지 자성이 있는 것이니, 어찌하여 세 가지 자성은 무차별을 이루지 않는 것인가?
만약, 이문(異門, 다른견해)으로 인하여 의타기성을 이룬다면, 이로 인하여 곧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만약 이문(異門, 다른견해)으로 인하여 변계소집성을 이룬다면, 곧 이로 인하여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만약 이문(異門, 다른견해)으로 인하여 원성실성을 이룬다면 곧 이로 인하여 의타기성과 변계소집성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釋曰:此義如前道理解釋.
▷ 해석한다; 이 뜻은 앞에서 말한 도리와 같이 해석하기 바란다.
攝大乘論釋卷第四 終 섭대승론석 제 4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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