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者는 請轉法輪(청전법륜)이요
6. Requesting the Turning of the Dharma Wheel
여섯째는 설법하여주기를 청함이요.
여섯째, 설법하여주기를 청함이란, 청한다는 말은 배우기 위해서 청하는 것이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도 자기자랑과 아는 체하기를 좋아한다. 설법하여주기를 청하는 일은 자신이 아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은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나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무엇이나 묻고 설명하여 주기를 청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는 체하면 싫어하지만 물으면 좋아한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그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자꾸만 아는 체하는가. 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자(孔子)님의 인품을 말할 때 반드시 배우기를 싫어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을 든다. 그래서 오늘 날 공자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어릴 때는 세상 모든 것들이 처음 보는 것이라 보는 것 마다 묻고 듣는 것 마다 묻는다. 부모를 성가시게 할 정도로 알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어릴 때 그 마음 그대로만 가지고 산다면 누구나 공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초심(初心)은 좋았으나 후심(後心)이 문제였다. 아름다운 삶을 사는 보살은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설명해 주기를 청하는 그 어릴 때의 마음, 즉 초심을 계속하여 유지하는 삶이다.
보현행원품의 주인공은 선재동자다. 선재동자의 장점이자 특징은 53명이나 되는 많은 선지식들을 한분 한분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받는 일이다. 그 이야기가 행원품의 전부다. 가르침을 받기에 앞서 반드시 먼저 청하였다. 청하지도 않는데 먼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가 않다. 53명의 선지식 중에는 출가한 스님도 있고 재가한 거사나 보살도 있고 기생도 있고 뱃사공도 있다. 사마외도(邪魔外道)도 있고 온갖 신들도 있다. 그들 모두가 선재동자의 선지식이다. 오직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생각할 뿐, 배움의 길에서는 스승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재동자는 불교공부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상이자 모델이다. 그의 삶과 배움의 자세를 닮으면 매우 훌륭한 인생이 보장된다. 아름다운 보살의 삶은 곧 배우기를 좋아하는 선재동자와 같은 삶이기도 하다.
七者는 請佛住世(청불주세)요
7. Requesting that the Buddhas Abide in the World
일곱째는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기를 청함이요.
일곱째,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기를 청함이란, 혹 정신이 잘못 되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신의 몸을 망치고 수명을 단축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들 세상에 오래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청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단순하게 말로만 오래 오래 머무르시기를 바라고 청원을 드리는데 끝이지 않고 말과 마음과 행동을 다 기울여 오래 살 수 있도록 의식주를 제공하고 약과 치료를 도와주면서 구체적으로 건강하고 오래 머무르시도록 하는 일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의 삶은 대단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옛날 어떤 사형수가 사형집행일을 앞두고 자신의 감방에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를 보고 부러워서 쓴 글에, “저 미물과 같은 보잘 것 없는 벌레가 되어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토로 하였다. 그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과 경외심은 참으로 이와 같기 때문에 누구나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도록 보살피고 이바지해 드리는 일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보살계(菩薩戒)에는 “병든 사람을 보고 간병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려는 보살은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이러한 덕행(德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八者는 常隨佛學(상수불학)이요
8 Maintaining the profound Dharma of the Buddhas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움이요.
여덟째,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움이란, 앞에서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보다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하는 자세다. 무엇인가 배우려고 하면 세상에는 스승도 많고 가르치는 데도 많다. 불교만 하더라도 곳곳이 사찰이요, 사람마다 스승이다. 그런데 진정 어느 사찰 어떤 스승을 찾아가야 불교를 바르게 알 수 있을까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보현행원품에는 장소는 말하지 않고 부처님을 따라 배우라고만 했는데 부처님이란 바르고 참된 이치를 깨달아 아는 사람을 말한다. 불교란 참되고 바른 이치[眞理]이므로 당연히 참되고 바른 이치를 잘 아는 스승을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항상 따라 배워야 하는데, 배우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특히 경험이 없는 초보자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엉뚱한 곳에서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잘못만나 허송세월하는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데는 스승 없이 혼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서 배우는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로 그 효과가 다르다. 그러므로 반드시 견해가 올바른 스승을 만나야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견해가 각양각색이니 바른 스승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현명한 선택이라고 권할만한 길은 사람보다 전래되어 온 경전과 어록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필자(무비스님)는 1960년 이후부터 회상을 가지고 있는 선원과 강원의 모든 선지식들을 거의 다 찾아다니면서 한두 철씩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끝내는 한 스승을 모시지 못하고 경전(經典)과 어록(語錄)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쳐 온 수많은 스승들의 큰 가르침과 경책으로 눈을 열어 주신 덕분에 그나마 경전과 어록에 의지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보살의 아름다운 서원의 삶은 사람이든 경전이든 부지런히 쉬지 않고 따라서 배우는 정진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九者는 恒順衆生(항순중생)이요
9. Always accommodating and adapting to all beings
아홉째는 항상 중생들을 수순함이요.
아홉째, 항상 중생들을 수순함이란,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다보면 자신을 비우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생활방식만을 수순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가까운 부부사이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도 그렇고, 형제나 친구사이라도 그렇다. 이유는 모두가 하나하나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이리라. 모든 사람은 각각 자신의 견해와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독립된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생활습관을 수순하여 산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고 진정 아름다운 보살의 마음이다.
가끔 “참다가 참다가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은 못 참는다. 나도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 것이다.”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견디고 살아 온 사이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꽤나 잘 살아 온 것 같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어디에서도 그 보상은 받을 곳이 없다. 처음부터 자신을 비우고 오로지 수순하는 자세로 살았어야 옳다. 사실은 알고 보면 설사 수순하지 않고 자기방식대로 사는 것도 실은 공연한 아집(我執)을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참으로 수순하는 삶은 불평도 없다. 자신이 수순한다는 생각이 없이 수순하는데 무슨 불평과 기대하는 것이 있겠는가. 이것이 보살의 아름다운 삶의 또 한 모습이다. 그래서 자신을 비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수순하는 것을 불자의 대표적인 덕목이라 한다.
十者는 普皆廻向(보개회향)이니라
10. Benefiting and Brining Happiness to All Beings with Great Practices
열째는 모두 다 회향함이니라.
열째, 모두 다 회향함이란, 기도회향, 불사회향, 선근회향 등 회향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리고 불교의 수많은 용어 중에서 매우 훌륭하고 우수한 낱말이다. 공덕을 쌓고 복을 짓고 지혜를 닦아도 회향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 회향이란 자신이 닦은 모든 수행과 공덕과 지혜를 전부 남을 위해서 나눠주라는 뜻이다. 즉 조그마한 복덕도 모두 남을 위해서 쓸 줄 아는 사람이 보살이며 불자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육신의 능력이든 다 남에게 회향해야 한다. 회향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정체되면 변질되어서, 나중에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일생을 사는 동안을 요즘은 1백년 전후로 잡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살았든 늦어도 40세가 되면 회향하는 시간으로 생각해야한다. 돈을 버는 사람은 돈으로 회향하고, 지식을 쌓은 사람은 지식으로 회향하고, 기술을 익힌 사람은 기술로 회향해야하고, 부귀공명을 가진 사람들은 부귀공명으로 회향해야한다. 불교를 공부하고 도를 닦으며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회향하는 시기로 삼아야 한다.
인생 40이 되어서도 회향하지 않으면 다시 또 언제 회향하겠는가. 얻을 것은 다 얻었고 닦을 것은 이제 다 닦았다. 설사 1백세가 되는 날까지 발전하고 전진한다하여도 40부터는 회향하면서 나아가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세상에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바람직한 불교인은 자신이 가진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남들에게 회향하는 삶을 살줄 알아야한다. 회향이 없는 인생은 사람다운 사람, 즉 보살이 아니다.
보현행원품이 화엄경의 결론이며 불교의 결론이라는 말의 뜻이 여기에 있다. 보현보살과 같은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 불교이다. 열 가지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아주 빼어난 아름다운 마음씨와 구체적인 실천모습이다. 성불(成佛)을 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한 능력배양이다. 사람들을 제도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며 불교공부의 결실이다. 사람들을 제도한다는 것은 곧 보현보살의 열 가지 구체적인 행동지침의 실현을 말한다.
善財가 白言호대 大聖이시여 云何禮敬으로 乃至廻向이니잇고
선재 백언 대성 운하예경 내지회향
선재동자가 말하였습니다.
대성이시여, 어떻게 예배하고 공경하며, 내지 어떻게 회향하여야 합니까?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하고 그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려면 열 가지 광대한 행원을 닦아야 함을 말씀하시고, 다시 그 열 가지 덕목을 낱낱이 열거하여 밝히자 선재동자는 자세히 설명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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