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4
(4) 널리 공양하다(Extensive cultivation of offerings)
㉮ 꽃과 향과 등불로 공양하다
復次善男子야 言廣修供養者는 所有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
부차선남자 언광수공양자 소유진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또한 선남자여, 광대한 공양을 닦음이란,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의
一切佛刹極微塵中에 一一各有一切世界極微塵數佛하며 一一佛所에
일체불찰 극미진중 일일각유 일체세계 극미진수불 일일불소
모든 불국토의 극히 미세한 티끌 가운데, 하나 하나마다 각각 모든 세계의 극히 미진수와 같은
부처님이 계시고, 하나 하나의 부처님의 처소마다
種種菩薩海會가 圍遶어든 我以普賢行願力故로 起深信解하며
종종보살해회 위요 아이보현행원력고 기심신해
갖가지의 보살대중들이 둘러싸고 있나니, 나의 이러한 보현보살의
수행과 서원의 힘인 까닭이며, 깊은 믿음과 이해를 일으켜,
現前知見하야 悉以上妙諸供養具로 而爲供養이니라
현전지견 실이상묘 제공양구 이위공양
지견이 앞에 나타나나니, 모두 이러한 높고 묘한 공양구로 공양함이로다.
널리 공양하는 덕목이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예경하고, 다음은 찬탄의 인사말로 상대를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게 해주는 일이고, 다음은 말에 끝나지 않고 반드시 무엇인가를 가지고 공양하는 일이다. 부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부처님이 좋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고 부처님의 도량이 좋아서 다닌다.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 좋은 것을 나누어주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든지 건네줄 것을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음식도 좋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도 좋고 어느 사찰의 불사에 대한 소식도 좋고 합장주(合掌珠) 하나라도 좋지만 불자는 당연히 법공양(法供養)을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법공양에 대해서는 뒤에 여러 가지가 소개 되겠지만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작은 책자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필자(무지스님)는 강원의 학인들에게 늘 당부하기를 은사(恩師)스님을 뵙기 위해서나 어른들을 찾아갈 때는 빈손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한다. 금정산의 돌 하나 나무 한 토막이라도 좋지만 법공양이 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공양 올린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경전에 근거한 일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법공양이 공양 중에는 최상의 공양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 부처님들을 만나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경전에서는 “온 법계 허공계의 시방삼세 모든 세계의 먼지 속에 낱낱이 모든 세계의 먼지 수처럼 많고 많은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였으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 부처님부터 공양해야 한다. 내 가족과 친지들과 이웃들과 동료들에게 가장 먼저 공양하고 나아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양하도록 생각해야 하리라. 사람을 보되 부처님을 눈앞에 대한 듯이 보기란 어렵더라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존경과 친절한 마음을 내어 공양하라는 뜻이다.
所謂華雲과 鬘雲과 天音樂雲과 天傘蓋雲과 天衣服雲과 天種種香과
소위화운 만운 천음악운 천산개운 천의복운 천종종향
이른바, 꽃 구름, 꽃 다발 구름, 하늘 음악 구름, 하늘 일산 구름, 하늘 옷 구름, 하늘의 갖가지 향,
塗香과 燒香과 末香이라 如是等雲이 一一量如須彌山王하며
도향 소향 말향 여시등운 일일양여 수미산왕
바르는 향, 사르는 향, 가루 향, 이와 같은 등등의 구름 하나 하나의 양이 대 수미산과 같으며,
然種種燈호대 酥燈油燈과 諸香油燈이니 一一燈炷가 如須彌山하며
연종종등 소등유등 제향유등 일일등주 여수미산
갖가지 등불을 밝히나니, 우유 등, 기름 등과 모든 향유등과 같은
낱낱의 등불 심지가 수미산과 같고,
一一燈油가 如大海水하야 以如是等諸供養具로 常爲供養이니라
일일등유 여대해수 이여시등 제공양구 상위공양
낱낱 등의 기름은 큰 바닷물과 같나니,
이와 같은 등등의 모든 공양구를 구족하여 항상 공양하느니라.
부처님께 받치고 사람들에게 이바지 하는 공양거리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옛날 인도에서는 꽃 공양을 중요하게 생각한 관례가 있어서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법당에 꽃을 올리는 것이나 불교행사 때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을 표현할 때도 반드시 꽃을 보내고, 또 즐거운 일에는 음악이 빠질 수 없다. 그리고 햇빛이 뜨거운 인도에서는 해를 가리는 일산이 필수적이다. 옷이 귀하던 옛날에는 옷이야말로 매우 큰 공양이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을 아주 고급으로 장만하여 공양 올리므로 천상(天上)의 것이라 하였다. 향료가 발달한 인도에서 향을 공양하는 것도 훌륭한 공양이었으리라. 전기가 없던 시절에 등불을 밝히는 일도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일이었을까.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거리로서 빠질 수 없다.
이와 같은 등등의 공양거리로서 그 양은 세상에서 가장 큰 수미산과 같은 크기로 한다. 꽃이든 일산이든 옷이든 향이든 모두를 그렇게 많이 올린다. 등불공양에는 등불의 심지는 수미산처럼 크게 하고, 기름은 저 큰 바닷물과 같은 양으로 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얼마나 크고 넉넉한 마음인가. 보시하고 공양할 때 돈이든 물건이든 음식이든 이와 같이 여한 없이 시원스럽게 해야 한다.
사찰에서는 공양시간이 되면 대상이 누구든 “공양하십시오.”라고 한다. 공양이라는 말은 부처님께 이바지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을 보고 공양하라는 그 말 속에는 그가 누구든 당신도 부처님이니 공양을 받아 마땅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러 온 사람이거나 사찰에 해를 끼치러 온 사람이거나 선악을 불문하고 모두가 부처님이니 공양 받아 마땅하다는 숭고한고 거룩한 뜻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불자의 가정에서는 반드시 공양이라는 말부터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 법공양(法供養)이 으뜸이다(Requesting the turning of the Dharma wheel)
善男子야 諸供養中에 法供養이 最니
선남자 제공양중 법공양 최
선남자여,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으뜸이니,
所謂如說修行供養과 利益衆生供養과 攝受衆生供養과 代衆生苦供養과
소위여설 수행공양 이익중생공양 섭수중생공양 대중생고공양
이른바 (부처님이)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하는 공양,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공양,
중생들을 거두는 공양, 중생들의 괴로움을 대신하는 공양과
勤修善根供養과 不捨菩薩業供養과 不離菩提心供養이니라
근수선근공양 불사보살업공양 불리보리심공양
부지런히 선근을 닦는 공양, 보살의 업(보살의 해야할 일)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들이 그것이니라.
일곱 가지의 법 공양을 들고 있다.
첫째,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如說修行] 공양,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려면 먼저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야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말씀이란 곧 가르침, 불교란 두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먼저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나, 대다수의 불자들은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것을 등한시한다. 가르침을 알고 난 뒤에 그것을 수행 하든지 하지 않든지 할 일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하는 법공양이 제일 우선이다. 그래서 경전을 보시하고 법문을 들려주고 한 쪽짜리의 일지경(一紙經)이라도 널리 전해 주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공양이며 다른 공양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利益衆生] 공양이다.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고 하여 고급종교인 불교가 나서서 복지부에서나 다른 종교에서 흔히 하는 의식주문제를 돌보는 것으로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단 한 번도 의식주문제를 도와준 일이 없다. 다만 참다운 이치[眞理]를 가르침으로서 중생들에게 공양을 하였고 보시를 하였다. 조사(祖師)스님들의 어록이 무수히 많건만 어디에도 의식주문제로서 중생들을 교화하였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 설사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역사에 기록할만한 일은 못되기 때문이다. 역대 조사스님들도 오로지 진리의 가르침으로서 사람들에게 공양하고 보시하였다. 오히려 의식주문제는 언제나 세상 사람들에게 의지하였다. 물론 법공양을 위한 방편으로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방편을 쓴다고 하여 방편에만 그치고 법공양이 없는 의식주 공양은 잘못된 것이므로 불자는 언제나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공양하고 보시하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법공양이며 다른 공양보다 수백만 배나 수승한 공양이 된다.
셋째,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攝受衆生] 공양이다. 자비심으로 사람들을 거두어 주는 것으로, 자기의 어린 자녀들은 사랑하여 보살펴 주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잘 섭수하고 거두어 주는 것인데, 절대적으로 진리의 가르침으로 섭수하고 거두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거두어 주는 일은 사람이면 다 하는 일이고 자선단체에서도 얼마든지 하는 일이다. 불교라는 이름하에 사람들을 거두어 준다면 반드시 바른 이치로써 어리석은 생각과 견해를 깨우쳐주고 바로잡아주는 것이 불교적인 섭수다. 그래야 법공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물질적 공양보다 수백만 배나 수승한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하는[代衆生苦] 공양이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한 행복의 길을 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공통을 대신하는 일도 진실한 불자에게는 행복이며 즐거움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볼 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그런 일을 왜하는가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대단한 즐거움과 행복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도 감내하기 어려운데 남의 고통까지 대신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살의 자비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통은 잊은 지 오래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사실이 눈에 보이고 마음 아플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대신하는 일로써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삼는다. 이런 일은 부처님의 마음에 계합하는 것이고 또 이것이 물질적 공양보다 수백만 배나 수승한 법공양이다.
다섯째, 부지런히 선근을 닦는[勤修善根] 공양이다. 불교를 믿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 모두가 선근을 닦는 일이다. 선근을 닦는 것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교를 믿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일은 당연히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의 온갖 잡다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보다는 부처님이 깨달으시고 널리 전하신 진리의 가르침으로 이익이 되게 해야 한다.
여섯째,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不捨菩薩業] 공양이다. 보살이 할 일은 많고 많지만 흔히 두 가지를 든다. 보살은 부단히 자신의 향상과 발전을 위해서 정진하고, 한편으로는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며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자신의 향상과 발전을 위한 정진도 잘 살펴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해야 한다. 세상에는 가르침도 많고 공부를 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러므로 잘 살펴서 가장 우수한 공부, 즉 성인이 가르치신 인류 최고의 공부를 해야 사람들에게도 보다 훌륭한 혜택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함에도 반드시 부처님이 하시고 조사님들이 하셨듯이 진리의 가르침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라야 경전에서 밝힌 대로 다른 물질적 공양보다 수백만 배 수승한 공양이 되기 때문이다.
일곱째,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不離菩提心] 공양이다. 보리심이란 깨달은 사람의 마음이고, 깨달은 마음이란 깨달은 사람, 즉 부처님과 조사님들이 중생들을 대하여 쓰는 마음으로, 흔히 보살의 자비심으로도 표현된다. 부처님과 조사님들이 중생들을 대하여 쓰는 마음은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건져주려는 마음이며, 지혜의 가르침으로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려는 마음이며, 어떤 방편을 쓰더라도 진리의 길로 인도하려는 마음이다.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이 송장이라도 타고 헤엄을 쳐서 바다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절박한 심정과 같은 마음으로 보살이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또 사형에 처할 죄수가 화장실의 똥통 속을 지나서라도 도망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듯이 보살은 중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이 보리심이다. 이러한 마음을 여의지 않는 공양은 진정한 법공양이며 다른 물질적으로 의식주를 공양하는 것 보다 수백만 배나 수승한 공양이다.
그러므로 불교를 아는 불자는 법공양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 때문에 법공양에 힘써야한다. 경전에서 밝힌 대로 “꽃과 꽃다발과 천상의 음악과 천상의 일산과 천상의 옷과 천상의 여러 가지 향과 바르는 향과 사르는 향과 가루 향들을 수미산과 같이 크게 공양하고, 또 여러 가지 등불을 켜는데 우유[酥]등과 기름 등과 온갖 향유 등인데 낱낱 등의 심지는 수미산과 같고, 낱낱 등의 기름은 큰 바닷물과 같은 이러한 공양거리로 항상 공양한다.”고 하는 것 보다 법공양은 수백만 배, 수천만 배, 수억만 배가 더 수승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부처님께 공양[佛供]하는 일이 무엇인기를 화엄경의 결론이며 불교의 결론이라고 하는 이 보현행원품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불교가 물질의 공양만 중요시하고 법공양을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이 보현행원품이 널리 읽혀져야 할 것이다.
善男子야 如前供養無量功德으로 比法供養一念功德컨대
선남자 여전공양 무량공덕 비법공양 일념공덕
선남자여,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한량없는 공양의 공덕과, 한 생각의 법공양의 공덕을 비교하면,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俱胝那由他分과 迦羅分과
백분 불급일 천분 불급일 백천구지 나유타분 가라분
그 백분의 일이 못 되고, 천분의 일도 못 되며, 백 천구지 나유타 분의 일도 못되며,
가라분의 일도 못되며,
算分과 數分과 喩分과 優波尼沙陀分에도 亦不及一이니라
산분 수분 유분 우바니사타분 역불급일
산수 분, 비유 분, 우파니사타 분의 일에도 또한 미치지 못하느니라.
부처님의 식성(食性)에 맞는 음식은 법공양이다. 우리가 올리는 물질적 공양은 부처님의 식성을 무시하고 우리들의 입장에서 올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손님은 싫어하는데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만을 대접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동안 불공을 올린 것을 되돌아보자, 부처님의 식성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불공을 하였는가. 부처님은 관심이 없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올려놓고 불공을 하지는 않았는가.
何以故오 以諸如來는 尊重法故며 以如說行에 出生諸佛故라
하이고 이제여래 존중법고 이여설행 출생제불고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들은 법을 존중하시기 때문이요,
설하신 바와 같이 수행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을 출생하기 때문이며,
若諸菩薩이 行法供養하면 則得成就供養如來니 如是修行이 是眞供養故니라
약제보살 행법공양 즉득성취 공양여래 여시수행 시진공양고
만약 모든 보살이 법 공양을 행하면, 즉시 부처님 여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나니,
이와 같이 닦아 수행함이 진실한 공양이기 때문이니라.
此廣大最勝供養을 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차광대최승공양 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이는 광대하고 가장 수승한 공양이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衆生煩惱盡하면 我供乃盡이어니와 而虛空界와 乃至煩惱가 不可盡故로
중생번뇌진 아공내진 이허공계 내지번뇌 불가진고
중생들의 모든 번뇌가 다한다면 나의 공양도 다하겠지만,
이러한 허공계와 중생들의 번뇌가 다할 수 없는 까닭으로,
我此供養도 亦無有盡이니라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아차공양 역무유진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나의 이러한 공양 또한 다함이 없고, 생각 생각마다 서로 계속하여 끊어짐이 없이
신구의로 하는 일=業에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인 부처님은 법과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곧 깨달은 사람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깨달음의 가르침에 의하여 깨달은 사람이 출생한다고 하였다. 깨달음의 가르침을 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법공양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법공양을 행하면 그것은 곧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일을 불공(佛供)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이나 쌀이나 먹을 것이나 기타 물질적인 것들을 불상 앞에 올린다. 그리고는 무엇을 얼마나 맡겨 두었는지 빌고 또 빌고, 조르고 또 조른다. 한 번 빌고 두 번 빌고 세 번까지 빈다. 그것을 재고축(再告祝), 삼고축(三告祝)이라 한다. 부처님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처사다. 법공양을 해야 참으로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불공을 해야 불교가 바로 갈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것이다.
불교의 특색을 수행이라고 하는데 보현행원품에서 밝히기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 수행이며, 따라서 그것이 진실한 법공양이며, 광대하고 가장 훌륭한 공양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삶이란 눈을 뜨면서부터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또는 평생 동안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아내를 만나고, 남편을 만나고, 부모를 만나고, 자녀들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동료들을 만나고, 도반들을 만나는 등등의 일로 일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며, 사람을 통해서 평안과 행복을 느끼는 일이 될까. 그것은 곧 이 보현행원품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의 세 가지 가르침이 답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예를 다하고, 다음으로는 상대를 찬탄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무엇인가를 공양하고 이바지하는 것이다. 예경제불(禮敬諸佛)이며, 칭찬여래(稱讚如來)며, 광수공양(廣修供養), 이 세 가지만 잘한다면 사람관계에서의 평화와 행복은 보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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