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問曰(문왈) '八犍度阿毘曇(팔건도아비담) 六分阿毘曇等(육분아비담등) 從何處出(종하처출)?
묻나니, 8건도아비담(9건도의 논장)과 6분아비담(육분 논장) 등은 무엇을 근거로 나온 것입니까?

 

8건도아비담(犍度阿毘曇, Aṣṭagranthābhidharma) 건도(skandha)란 무더기=聚를 의미한다. 잡(雜)․결(結)․사(使)․지(智)․행(行)․대(大)․근(根)․정(定)․견(見)의 여덟 부분으로 나누기에 8건도라 한다.

6분아비담(分阿毘曇, Saṭpādābhidharma)= 6족론(足論)이라고도 한다. 『법집이문족론(法集異門足論, Saṅgītiparyāya)』․『법온족론(法蘊足論, Dharmaskandha)』․『시설족론(施設足論, Prajñaptiśāstra)』․『식신족론(識身足論, Vijñānakaya)』․『계신족론(界身足論, Dhātukāya)』․『품류족론(品類足論, Prakaraṇapāda)』의 여섯 논을 말한다.


答曰(답왈) 佛在世時 法無違錯(불재세시 법무위착) 佛滅度後(불멸도후)

初集法時 亦如佛在(초집법시 역여불재)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법을 어기거나 등지는 일=違錯이 없었으며,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처음으로 법(법장)을 결집할 때 역시도 부처님 생존 시와 같았으나,

 

後百年(후백년) 阿輸迦王(아수가왕) 作般闍于瑟大會(작반사우금대회)

諸大法師 論議異故(제대법사 논의이고) 有別部名字(유별부명자)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100년 후에 아수가(Aśoka, 아육왕)라는 왕이 있어, 반사우금대회(무차대회)를 열었으니, 이때 모인 여러 대법사들이 서로 다른 주장과 뜻을 펼치게 되어 여러 부(nikāya)의 이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반사우금대회(般闍于瑟大會, Pañcavarṣapariṣad)= 5년마다 열리는 대회로 수행승들과 신자들에게 공양을 베푼다. 무차대회(無遮大會)라고도 하는데, 무차란 어느 누구도 막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nikāya(니까야)=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의 상좌부 불교권에서 주로 보는 불경을 말한다. 팔리어로 쓰였으므로 팔리 경전이라고도 한다.
니까야가 팔리어 버전이라면, 산스크리트어를 거쳐 한문으로 번역되어 한중일 등의 대승 불교에서 전해지는 한문 버젼이 아함경이다. 결국 니까야와 아함경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내용이 일치하지만 250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관계로 서로 다른 부분도 꽤 있다.

니까야(nikaya)의 본래 단어뜻은 모임, 모음인데 길이나 주제나 숫자별로 경들을 모았기 때문에 경전의 이름이 되었다.
보통 5부 니까야라해서 5개로 나눈다.
1. 디가 니까야 : '디가'는 길다라는 뜻이다. 즉, 긴 거 모음. 내용이 긴 만큼 자세하다. 34개
2. 맛지마 니까야 : '맛지마'는 중간이라는 뜻이다. 즉, 중간길이 모음. 중간길이의 경을 모아놓았다. 152개
3. 쌍윳따 니까야 : '쌍윳따'는 소들에게 하나의 멍에를 얹어 연결하다라는 뜻으로, 주제별로 연결하다라는 의미다. 주제별 경 모음. 56개 주제 2,904개
4. 앙굿따라 니까야 : 1부터 11까지 숫자별 모음. 가장 나중에 만들어졌다. 앞의 3개의 경 내용들을 숫자별로 분류한 거라 중복이 많다. ex) 4가지 속박은 4시리즈에
5. 쿳다까 니까야 : 15개의 독립된 경


從是以來(종시이래) 展轉至(전전지) 姓迦旃延 婆羅門道人(성가전연 바라문도인)

이로부터 점차 전해져 내려오며 펼쳐지다가 가전연(Katyāyana, 마하가전연)이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 도인에 이르렀으니,

*여기에서의 가전연(迦旃延)은 나형외도로 오늘날의 자이나교도입니다.

 

智慧利根(지혜이근) 盡讀三藏 內外經書(진독삼장 내외경서) 欲解佛語故(욕해불어고)

그는 지혜롭고 예리해 삼장과 안팎의 경서를 모두 읽고는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는 지혜로 영리하게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 걸림 없고 막힘없는 것인 줄 명백하게 이해하여(利根)삼장(三藏)을 비롯한 안팎의 경서(經書)를 달통하여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풀이하고자 발지경팔건도(發智經八犍度)를 지었으니)

 

作'發智經八犍度'(작'발지경팔건도') 初品是世閒第一法(초품시세간제일법)

'발지경팔건도(Jñānaprasthāṇāṣtagrantha)'를 지었으니, 초품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법이었느니라.

(초품(初品)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法)을 풀이하는데 있어서 세상 제일이었습니다.)

 

발지경팔건도(發智經八揵度, Jñānaprasthāṇāṣtagrantha. 설일체유부의 소의론으로 『발지론(發智論)』이라고 한다. 현장이 한역한 『발지론(發智論)』이 전해지는데, 제8장(44절)부터 『팔건도론(八揵度論)』이라 부르기도 한다.

 

後諸弟子等(후제제자등) 爲後人不能盡解(위후인불능진해)

'八犍度'故 作'鞞婆娑'('팔건도'고 작'비바사')
그 뒤에 여러 제자들이 '팔건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후세의 사람들을 위하여 '비바사(대비바사론, Vibhāṣā-sāstra)'를 지었으니,

비바사(鞞婆娑, Vibhāṣā.)=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 Mahāvibhāṣāśāstra)』을 가리킨다.


有人言(유인언) 六分阿毘曇中(육분아비담중)

第三分八品之名'分別世處分'(제삼분팔품지명'분별세처분')

어떤 분이 말하기를, '6분아비담(Saṭpādābhidharma)' 가운데 제3분의 8품을 이름하여 '분별세처(分別世處)'라 하며,

 

此是'樓炭經' 作六分中第三分(차시'누탄경' 작육분중제삼분) 是目犍連作(시목건련작)

이는 곧 '누탄경(장아함)'으로 여섯 분 가운데 제3분을 이룬다고 하는데, 이것은 목건련 존자께서 지은 것이요 

(어느 분께서 말씀하기를 육분아비담 가운데 제 삼분(三分팔품(八品)의 이름을 분별세처분(分別世處分)이라 하는데 이것은 누탄경(樓炭經)의 육분(六分중 제 삼분(三分)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육분 중 초분(初分팔품은 목건련존자께서 지은 것이며,) 

누탄경(樓炭經)= 장아함(長阿含)』 제4권 「기세경(起世經)」

목갈라나(Moggalāna) 존자는 한역해서 목건련(目犍連) 존자, 목련(目連) 존자,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 존자라고 한다. 목갈라나(Moggalāna) 존자는 마가다국의 서울 라자그리하(Rājagaha-왕사성) 근교의 꼴리따(Kolita) 마을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나 마을 이름을 따라서 어릴 때는 꼴리따(Kolita)라 불렸다. 또 어머니 이름이 목갈리(Moggalī) 또는 목갈리니(Moggalinī)였기 때문에 목갈라나 또는 마하목갈라나라고도 불렸다.

처음엔 육사외도(六師外道) 중 큰 세력인 회의론자 산자야(Sanjaya, 刪闍耶)에 귀의해 그의 제자로 있었으나, 목갈라나와 사리풋다는 이내 스승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이해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사리풋타는 라자그리하(왕사성) 시내에 탁발하러갔다가 부처님의 제자 ‘다섯 비구’ 중 막내인 앗사지(Assaji, 阿說示, 마승/馬勝) 비구가 점잖고 위엄 있게 자기 정신을 걸음걸이에 잘 집중시키면서 흔들림 없는 태도로 걸어가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만큼 경행(經行) 중에 있던 앗사지 비구는 한순간도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앗사지 비구의 늠름한 모습에 매료돼 사리풋타가 쫓아가서 앗사지 비구에게 물었다. 
“벗이여, 당신은 누구에게 출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나는 붓다에게 출가했으며, 붓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사리풋타는 계속해서, “그대의 스승은 무엇을 설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앗사지는 대답 대신 게송을 읊었다.

'모든 법은 원인으로부터 발생하니, 여래께서는 그 원인을 밝혀주셨네.
또 그것들의 소멸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나니, 이것이 대 사문의 가르침이라네(Vin.i.40).'

그리하여 목갈라나와 사리풋타는 함께 했던 제자들을 이끌고 불문에 귀의한 뒤 두 사람은 부처님 상수제자가 됐다. 즉, 부처님 10대 제자, 4대 성문(聲聞)에 포함될 정도로 믿음이 독실한 아라한이 됐다.
부처님께서는 목갈라나 존자와 사리풋타 존자를 비구들이 본받아야 하는 이상적인 제자라고 선언하셨다. 특히 목갈라나 존자는 효성이 지극해서 어머니를 지옥에서 제도한 일화로 유명하다. - 아미산
 

六分中 初分八品(육분중 초분팔품) 四品是 婆須蜜菩薩作(사품시 바수밀보살작)

6분 가운데 초분의 8품 중의 4품은 바수밀(Vasumitra)보살이 지은 것이며, 

 

바수밀 (婆須蜜, Vasumitra) 화수밀(和須蜜) · 바수밀다(婆須蜜多) · 바수밀다라(婆須蜜多羅) · 벌소밀달라(筏蘇蜜多羅) 또는 한역으로 천우(天友) · 세우(世友)라 하며, 북인도 건타라국 사람으로 불멸 후 600년(56) 가니색가왕 때에 가습미라국에서 『대비바사론』을 편찬하던 제4 결집 때에 상좌(上座)로 활약하였다. 학식이 풍부하여 당시에 존중히 여기던 법구 · 묘음 · 각천과 함께 바사사대론사(婆沙四大論師)의 결집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저서로는 '이부종윤론 1권'이 있다.

 

四品是 罽賓阿羅漢作(사품시 계빈아라한작) 餘五分 諸論議師所作(여오분 제론의사소작)

나머지 4품은 계빈(케시미어)의 아라한이 지은 것이라 하며, 나머지 5분은 다른 논사들이 지은 것이라고 하였느니라.

(계빈(罽賓 Kophen)아라한이 지은 것이라고도 하며, 나머지 오분(五分)은 수많은 논사가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계빈(罽賓, Kaśmīra, 카시미어)= 북인도 지역


有人言(유인언) 佛在時(불재시) 舍利弗 解佛語故 作阿毘曇(사리불 해불어고 작아비담)

어떤 분은 이렇게도 말하나니, '부처님 생존 시에 사리불이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아비담(논장)을 지었는데, 

(어느 분께서 말씀하기를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적에 사리불존자께서 부처님의 말씀을 풀이해서 논장(論藏)을 지었다고 하는데) 

 

後犢子道人等 讀誦(후독자도인등 독송) 乃至今名爲'舍利弗阿毘曇'(내지금명위 '사리불아비담')
나중에 독자부의 도인=犢子道人들이 즐겨 읽고 외어 오늘에 이르면서 '사리불아비담(사리불 논장, Śāriputrābhidharma)'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摩訶迦旃延 佛在時(마하가전연 불재시) 解佛語 作昆勒(해불어 작곤륵)

또한 마하가전연(Mahākātyāyana) 존자께서 부처님 생존 시에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곤륵(협장)을 지었으니

 

昆勒秦言篋藏(곤륵진언협장) 乃至今行 於南天竺(내지금행어남천축)

皆是廣解佛語故(개시광해불어고)

'곤륵은 진나라 말로는 협장'을 지었는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천축에 알려져 있으니, 모두가 부처님의 말씀을 자세히 풀이하기 위한 것이니라.

(온갖 논의사(論議師)가 이렇게 부처님의 말씀을 다양하게 풀이하였기 때문입니다.)

곤륵(昆勒)=범어 Piṭaka의 속어형인 Peṭaka 혹은 Paiṭaka의 음사어이다. 역유역공(亦有亦空)을 주장하는 일파라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如說五戒(여설오계) 幾有色 幾無色(기유색 기무색)?

마치 5계(戒)를 설함에 있어 무엇은 색이 있고 무엇은 색이 없으며, 

(마치 오계(五戒)를 설할 때무엇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라고 하며 무엇을 모습이 없다고 하는 것이며)

 

幾可見 幾不可見(기가견 기불가견)? 무엇은 볼 수 있고 무엇은 볼 수 없으며,

 

幾有對 幾無對(기유대 기무대)? 무엇은 마주 대할 수 있고 무엇은 마주 대할 수 없으며, 

 

幾有漏 幾無漏(기유루 기무루)? 무엇은 유루(번뇌가 있음)이고 무엇은 무루(번뇌가 없음)이며, 

(무엇이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는 삿된 견해에서 비롯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로 펼쳐지게 되는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는 모든 불선업의 버릇 배어나오는 유루(有漏)이고,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는 삿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에 의해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는 모든 불선업의 버릇 다하여 배어나오지 않게 되는 무루(無漏)이며)

 

幾有爲 幾無爲(기유위 기무위)? 무엇은 유위(인위적인 조작이 있음)이고 몇은 무위(인위적인 조작이 없음)이며, 

(무엇이 생주멸(生住滅) 펼쳐지는 유위(有爲)이고, 무엇이 생주멸(生住滅) 사라진 무위(無爲)인 것입니까?)

 

幾有報 幾無報(기유보 기무보)? 무엇은 과보가 있음이고 무엇은 과보가 없음이며, 

 

幾有善 幾不善(기유선 기불선)? 어떤 것이 훌륭한 것이며 어떤 것이 훌륭하지 못한 것이며,

 

幾有記 幾無記(기유기 기무기)? 몇은 유기(선악의 분별이 있고 과보가 있음)이고 몇은 무기(선악의 분별이 없으므로 과보가 없음)인가 라고 함과 같으니, 

무기(無記, avyākṛta)= 아직 선(善)이나 악(惡)이 발현하지 않은 상태

 

如是等 是名阿毘曇(여시등 시명아비담) 이러한 것들을 아비담(논장)이라 하느니라


復次 七使(부차 칠사) 欲染使(욕염사) 瞋恚使(진애사) 有愛使(유애사)

憍慢使(교만사) 無明使(무명사) 見使 疑使(견사 의사) 

또한 7사(업, 습관)란 욕염사(오욕)ㆍ진애사(성냄)ㆍ유애사(애욕)ㆍ교만사ㆍ무명사ㆍ견사(삿된 견해)ㆍ의사(의혹) 이니, 

(일곱 개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모습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여 따르는 버릇(七使)이 있나니, 오욕(五欲)에 물들어 따르는 버릇=욕염사 성내고 노여움을 따르는 버릇=진애사애욕을따르는 버릇=유애사남을 업신여기고(憍) 얕잡아 보는 것(慢)을따르는 버릇=교만사전생의 온갖 번뇌인 무명(無明)을따르는 버릇=무명사삿된 견해를따르는 버릇=견사, 의혹을 따르는 버릇=의사입니다.)

 

是七使(시칠사) 幾欲界繫(기욕계결) 幾色界繫(기색계결) 幾無色界繫(기무색계결)?

이러한 7사= 7종의 업의 버릇의 몇몇은 欲界繫=욕계의 번뇌이고, 몇몇은 色界繫=색계의 번뇌이며, 몇몇은 無色界繫=무색계의 번뇌이니,

(이렇게 일곱 가지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모습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여 따르는 버릇(七使)이 어떻게 욕계(欲界)에 매이도록 하는 것이고, 색계(色界)에 매이도록 하는 것이며 무색계(無色界)에 매이도록 하는 것입니까?)

 

無色界(무색계, arūpa-dhātu) 무색계(無色界)는 물질의 얽매임을 뛰어넘어 고도의 정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네 단계 무색정[四無色定]에 의해 도달되는 경지이기도 하다.

 

幾見諦斷 幾思惟斷(기견제단 기사유단)?

무엇은 견도위(무루지, 수다원, 초지 또는 환희지)에서 끊어지고 무엇은 수도위(보살 10지 또는 사향사과)에서 끊어지며, 

(무엇이 견제(見諦)의 도(道)에서 끊어지는 것이며, 무엇이 사유(思惟)를 통해서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까?)

*견제도(見諦道)= 사지(四地)인 아비발치지(阿鞞跋致地)로 수다원과(須陀洹果)를 뜻함.

 

幾見苦斷 幾見集斷(기견고단 기견집단) 幾見盡斷 幾見道斷(기견집단 기견도단)?

몇몇은 견고의 지위에서 끊고=見苦斷, 몇은 견집의 지위에서 끊고=見集斷, 몇은 견진의 지위에서 끊고=見盡斷, 몇은 견도의 지위에서 끊으며=見道斷, 

(고제(苦諦)에서 어떠한 견해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고, 집제(集諦)에서 어떠한 견해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며, 멸제(滅諦)에서 어떠한 견해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고, 도제(道諦)에서는 어떠한 견해가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까?)

고제(苦諦)=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 

집제(集諦)= 인(因) 집(集) 생(生) 연(緣), 

멸제(滅諦)= 진(盡) 멸(滅) 묘(妙) 출(出), 

도제(道諦) = 도(道) 여(如) 행(行) 달(達).

 

幾遍使 幾不遍使(기편사 기불편사)?

몇은 두루하는 번뇌이며 몇은 두루하지 않는 번뇌이니라.

 

일반적으로 번뇌는 이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이지적 측면의 번뇌= 迷理惑과 본능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정의적 측면의 번뇌=迷事惑으로 나룰 수 있다. 이지적 번뇌는 나쁜 스승이나 사교(邪敎) 사설(邪說)에 의해 유도되거나 잘못 생각함으로써 일어나는 후천적 번뇌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예리하기는 하나 취약하여 올바른 관찰에 의해 그것이 오류라고 판단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정의적 번뇌는 음식이나 잠 섹스에 대한 욕망 등 유정이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는 본능적 욕구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무디면서도 무거워 올바른 관찰만으로 즉각적으로 제거되지 않으며, 그것을 억제 소멸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오류라는 사실이 체득될 만큼의 오랜 기간 반복된 관찰 수습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어떤 이념은 그것이 오류라고 판단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전향할 수 있지만, 담배는 그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유부 아비달마에서는 전자를 4제 진리성을 관찰함으로써 즉각적으로 끊어지는 번뇌 즉 견도소단(見道所斷, 줄여서 見所斷) 또는 견혹(見惑)이라 하고, 후자는 선정을 통해 반복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끊어지는 번뇌 즉 수도소단(修道所斷, 줄여서 修所斷) 또는 수혹(修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견소단의 번뇌에는 다시 고제(苦諦, 현실의 실상)에 미혹한 번뇌 내지 도제(道諦,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도)에 미혹한 번뇌 등 네 가지가 있는데, 이는 각기 고제 내지 도제를 관찰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이기 때문에 견고소단(見苦所斷, 정확한 명칭은 見苦諦所斷)·견집소단(見集所斷)·견멸소단(見滅所斷)·견도소단(見道所斷)이 라고 한다. 이같이 번뇌에는 견소단의 네 가지와 수소단(수도소단, 修道所斷) 한 가지 도합 5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를 5부(部)라고 한다.
10수면 가운데 5견과 의(疑)가 오로지 견소단이라면, 나머지 탐·진·만·무명은 양자에 공통된 번뇌이다. 왜냐하면 탐·진·만 세 가지는 정의적 번뇌이기는 하나 결국 5견과 '의'를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5견에 탐착함으로써 그것을 정견이라 주장하고, 그러한 견해에 오만해지며, 나아가 다른 견해를 무시하고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명의 경우, 그 자체로서 생겨나는 무명[不共無明]은 견소단이지만, 탐·진·만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나는 무명은 수소단자이자 견소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멸론의 입장에서 업과 그 과보를 부정하는 사견은 바로 인과의 구조를 띤 4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취는 유신·변집·사견 등의 저열한 지식을 뛰어난 이치일반(즉 諦)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는 4제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에 각기 견고소단·견집소단·견멸소단·견도소단 모두에 포함된다.-도로아미타불아멘
 

3도(三道, triṣu mārgeṣu, mārga-traya, three holy paths, three paths)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수행(修行)의 3단계인 견도(見道) · 수도(修道) · 무학도(無學道)를 말한다.
즉, 3도는 성문과 보살 모두에게 해당하는 수행의 3단계이다. 성문은 부파불교의 수행자를 뜻하고 보살은 대승불교의 수행자를 뜻한다.
불교의 수행계위는 모두 윤회의 원인인 3계의 번뇌를 극복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3도(三道) 또한 마찬가지이며, 모든 번뇌를 견소단(見所斷) · 수소단(修所斷) 즉 견혹(見惑) · 수혹(修惑)으로 나누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불교에서 번뇌를 분류하는 방식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모든 번뇌를 크게 이지적(理智的)인 번뇌인 견혹(見惑)정의적(情意的)인 번뇌인 수혹(修惑)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지적인 번뇌란 이성[理] 또는 견해[智]와 관련된 번뇌를 말하며 정의적인 번뇌란 마음[情] 또는 의지 · 의사[意]와 관련된 번뇌를 말한다. 무명(無明)처럼 이지적인 측면과 정의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는 번뇌도 있으며, 의심[疑]과 같은 이지적인 측면만을 가지는 번뇌도 있다. 정의적인 측면만을 가지는 번뇌는 없다. 예를 들어, 무명은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생겨난 후천적인 견해로서의 무명도 있고 부처의 상태가 아닌 모든 이의 마음[情] 또는 의지 · 의사[意]에서 항상 발견되기에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무명도 있는데, 이 후자와 같은 것을 정의적인 번뇌라 한다. 말하자면, 정의적인 번뇌 즉 수혹(修惑)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선천적인 번뇌라고 할 수 있다.
번뇌를 견혹(見惑)과 수혹(修惑)으로 나누는 것은 3도(三道)의 수행계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한편,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 등의 교학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견도 · 수도 · 무학도의 3도가 정확히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가 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는 모두 3도보다 더 세분화된 수행계위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수행론을 다룰 때 크게는 견도 · 수도 · 무학도의 3도에 의거하여 논하지만 보다 자세히는 자신들이 세운 세분된 수행계위 체계에 따라 논한다.
부파불교는 성문4과 · 4향4과 · 5위 · 9지의 수행계위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승불교 일반에서는 10지 또는 52위의 보살 수행계위를 가지고 있으며, 대승불교 가운데 유식유가행파의 경우 뢰야3위와 5위의 수행계위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41위 또는 52위와 연결하여 논하기도 한다.

견도(見道, darśana-mārga)는 수행자가 모든 견혹(見惑)에서 벗어나는 지위이다. '진리[諦]를 보는 단계[道]'라는 뜻에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하고, '진리를 봄'이라는 뜻에서 견제(見諦)라고도 하며 또한 '견도의 지위'라는 뜻에서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모든 견혹은 무루지(無漏智) 즉 무루의 지혜가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에 마치 해머로 바위를 산산이 깨뜨리듯이 한꺼번에 끊어진다. 불교에서는 견도를 성취한 유정을 성인 또는 성자라 부른다.
견도(見道)는수행자가 모든 견혹(見惑)에서 벗어나는 지위이다.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모든 견혹은 무루지(無漏智) 즉 무루의 지혜가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 즉 엄밀히 말해 16심(十六心) 즉 16찰나(十六剎那) 동안 마치 해머로 바위를 산산이 깨뜨리듯이 한꺼번에 끊어진다.
견도(見道)는 부파불교의 수행계위인 성문의 4향4과에서는 수다원향(須陀洹向) 즉 예류향(預流向)에 해당하고,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5위(五位)의 수행계위에서는 제3위인 통달위(通達位)에 해당하고, 대승불교 일반의 52위(五十二位)의 보살 수행계위에서는 초지(初地), 즉 10지(十地) 가운데 첫 번째 계위, 즉 환희지(歡喜地)에 해당한다.

수도(修道, bhāvanā-mārga)는 수행자가 수혹(修惑)을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기간 또는 지위이다.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한다. 수도(修道)는 성인이 깨달음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길 또는 과정이므로, 진정 '성인의 길' 또는 '성스러운 길' 또는 '무루성혜(無漏聖慧)의 길'이라는 뜻의 성도(聖道, ārya-mārga, holy path, sacred path)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성도(聖道)는 불교 혹은 8정도를 뜻하기도 한다. 수도(修道) 또는 성도(聖道)는 "간략히 말해" 부파불교의 4향4과(四向四果)와 대승불교의 보살10지(菩薩十地)를 말한다.
수도(修道)는 수행자가 수혹(修惑)을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기간 또는 지위이다.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한다.

무학도(無學道, aśaiksa-mārga)는 수행자의 수행이 완료되어 무학(無學) 즉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지위이다. 무학위(無學位)라고도 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로 '여래10호 가운데 하나로서의 아라한' 즉 부처의 지위, 즉 불지(佛地) 또는 여래지(如來地)이다.
무학도(無學道)는 수행자의 수행이 완료되어 모든 번뇌를 끊고 진리를 증득한 상태로, 무학(無學) 즉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지위이다. 무학위(無學位)라고도 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로 아라한 즉 부처의 지위이다.

諸阿羅漢更問(제아라한갱문) 誰能明了集 毘尼法藏(수능명료집 비니법장)?

모든 아라한들에게 다시 묻기를, 누가 명료히 비니(계율) 법장을 결집할 수 있겠습니까?  

 

皆言 長老憂婆離(개언 장노우바리) 於五百阿羅漢中 持律第一(어오백아라한중 지율제일)

我等今請(아등금청)

모두가 대답하기를, 장로 우바리(Upāli)는 5백 아라한 가운데서 지계제일이시니, 저희들 모두가 지금 부탁드립니다.

 

우파리(憂婆離)=지계제일 우바리 존자.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의 한 사람이며, 하층 계급인 슈드라 출신으로서 석가족(釋迦族)의 이발사였으나, 부처님이 성도한 후 고국에 갔을 때 출가하였다. 출가한 후로는 계율을 매우 엄중히 지켰으므로 '지계(持戒) 제일' 또는 '지율(持律) 제일'이라고 불린다. 제1차 결집 당시에 율장 부분을 암송하였으며, 마하가섭, 아난다와 함께 '결집의 3인'으로 꼽힌다. 優婆利, 優波利 등으로도 적는다. 

 

卽請言(즉청언) 起 就師子座處坐(기 취사자좌처좌)

說佛在何處 初說毘尼結戒(설불재하처 초설비니결계)?

그리고는 곧바로 우파리에게 청하여, '그대는 일어나 사자좌에 앉으시지요! 부처님께서 어디에서 처음으로 비니결계(율장의 계)를 정하셨습니까?'

 

憂婆離受僧教(우파리수승교) 師子座處坐 說(사자좌처좌 설)

장로 우파리 존자가 대중의 청=敎을 받고 사자좌에 앉아서 말씀하였으니,

 

如是我聞 一時(여시아문 일시) 佛在毘舍離(불재비사리)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Vaiśālī, 바리샬리)에 계셨을 때에 

 

비사리(Vaiśālī, 毘舍離)=바이샬리, 베살리(Vesali: 팔리어) 또는 비사리(毗舍離)는 인도 비하르 주에 있는 고대 도시로, 십육대국 시기 리차비족과 밧지 동맹의 수도였다. 고타마 붓다의 시대에 베살리는 매우 큰 부유하고 번영하며 사람들로 붐비며 음식이 풍요한 도시였다. 그곳에는 7707가지의 놀이터와 그만큼의 연꽃 연못이 있었다. 고급 창부 암바팔리는 그녀의 미모로 유명하였고 도시를 부유하게 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도시는 세 개의 벽이 있었는데 각각의 담에는 문들과 감시탑이 있었다. 붓다고사는 베살리가 넓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의 바이샬리는 널리 상업도시로 알려져 있었고, 불경 및 불전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바이샬리는 석가모니 부처와 인연이 깊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출가한 뒤 가장 먼저 바이샬리에 와서 우드라카 라마푸트라와 알라라 칼라마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던 적이 있으며,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바이샬리를 자주 방문했다. 특히 그는 바이샬리에서 이루어지던 민주주의적 방식에서 따서 자신의 교단(상가)을 조직했다. 불교 교단을 의미하는 '상가'(僧伽)라는 단어는 원래 이 지역에서 발생한 상공업자들의 동업조합(길드)이나 공화제를 의미하는 단어였으며, 그 조직을 불교 교단 측이 채용하면서 이름 역시 따온 것이었다.
또한 그가 상가를 세우고 이모이자 양어머니인 마하프라자바티의 출가를 받아들인 곳도 이곳 바이샬리에서였으며, 석가모니 부처는 입멸 석 달 전에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하안거를 보내고, 어느 날 탁발을 하고 돌아오는 언덕에서 그를 모시던 제자 아난다(아난존자)에게 "아름다운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열반을 예고하였다. 쿠시나가라로 떠나기 전, 석가모니 부처는 바이샬리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자신의 발우를 남겼다고 한다.

 

爾時 須提那 迦蘭陁長者子(이시 수제나 가란타장자자) 初作婬欲(초작음욕)

그 때에 가란타(Sudinna-Kalandaputra) 장자의 아들인 수제나(Sudhāna 혹은 Sudinna.)가 처음으로 음행을 저질렀는데, 

 

가란타(迦蘭陀, Sudinna-Kalandaputra)= 베살리 교외의 가란타 마을의 사람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고자 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자 단식으로 출가를 허락 받는다. 뒤에 부모가 갖가지로 환속을 종용하지만 듣지 않자 결국 부모는 대를 이을 자식을 만들고자 그의 처를 데리고 찾아간다. 아들을 낳으니 Bījaka라고 했으며, 부처님께서는 이로 인해 음계(婬戒)를 제정하셨다고 한다.

 

以是因緣故(이시인연고) 結初大罪(결초대죄)

이러한 인연으로 처음으로 대죄가 결정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음행이 큰 죄라고 정하셨습니다.)

 

二百五十戒義 作三部(이백오십계의 작삼부) 七法 八法 比丘尼(칠법 팔법 비구니)

毘尼增一(비니증일) 憂婆利問(우바리문) 雜部 善部(잡부 선부)

250계를 3부로 나누어 7법ㆍ8법ㆍ비구니의 비니증일(율장증일)ㆍ우바리문(Upāliparipṛcchā)ㆍ잡부ㆍ선부가 제정되었으니, 

(이백오십계()를 정의(定義)하시며 삼부(三部)로 나누어 일곱 가지 법과 여덟 가지 법으로 반드시 지키도록 하였으며 비구니의 율장(律藏)과 증일(增一우파리존자의 질문 잡부(雜部선부(善部등)

증일(增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법수(法數)에 따라 정리하여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적멸위락(寂滅爲樂)등의 3법인(法印)과 4념처(念處) 8정도(正道) 37조도품 및 10() 5(안반(安般-아나빠나삿띠) 3() 4() 6() 8(결금(結禁등 거의 모든 불교 교리를 총 망라하였음.

 

如是等八十部(여시등팔심부) 作毘尼藏(작비니장)

이와 같이 해서 80부의 비니장(율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와 같이하여 80부(部)가 만들어져 율장(律藏)이 되었습니다.)

 

80비니장이란 우바리가 80번에 걸쳐서 송출한 근본율장으로 80송률이라고도 한다. 4분율이나 5분율은 이로부터 분파한 것이나, 이는 현존하지 않는다.

 

諸阿羅漢 復更思惟(제아라한 부갱사유) 誰能明了集 阿毘曇藏(수능명료집 아비담장)?

아라한들이 다시 사유하기를, ‘누가 능히 아비담장(논장)을 명료히결집할 수 있을까?’ 하고는

 

念言 長老阿難(염언 장로아난) 於五百阿羅漢中(어오백아라한중)

解修妒路義第一(해수투로의제일) 我等今請(아등금청)

‘장로 아난은 5백 아라한 가운데서 수투로(sūtra, 경)의 이치를 이해하는데 제일이시니, 우리들은 지금 그를 청하도록 합시다.’

 

卽請言(즉청언) 起 就師子座處坐(기 취사자좌처좌)

그리고는 곧바로 청하여 말하기를, '일어나서 사자좌에 앉으십시요'

 

佛在何處 初說阿毘曇(불재하처 초설아비담)?

'부처님께서는 어디에서 최초의 아비담(논장을)을 설하셨습니까?' 물으니,

 

阿難受僧教(아나수승교) 師子座處坐 說(사자좌처좌 설)

아난 존자는 대중의 청을 받아들여 사자좌에 앉아서 말하기를,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婆提城(여시아문 일시 불재사바제성)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바제성(Śravasti, 사위성)에 계셨으니, 

사바제성(舍婆提城, Śravasti)= 사위성, 코살라국의 수도

 

爾時 佛告諸比丘(이시 불고제비구) 諸有五怖(제유오포) 五罪 五怨(오죄 오원)

그 때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가지 두려움=五怖와 다섯 가지 죄=五罪와 다섯 가지 원한=五怨이 있나니, 

 

不除不滅(불제불멸) 是因緣故(시인연고) 此生中身(차생중신)

心受無量苦(심수무량고) 復後世墮惡道中(부후세타악도중)

이를 뽑아내어 없애지 않으면, 이 인연으로 일하여 이 생 가운데에서 몸과 마음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후세에는 악도(삼악도) 가운데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악도(惡道, durgati)= 지옥, 아귀, 축생 등의 존재로 태어나는 것

 

諸有無此五怖(제유무차오포) 五罪 五怨 是因緣故(오죄 오원 시인연고)

모든 유의 이러한 五怖=다섯 가지 두려움ㆍ五罪=다섯 가지 죄ㆍ五怨=다섯 가지 원한이 없어지게 되면 

 

於今生種種身(어금생종종신) 心受樂 後世生 天上樂處(심수락 후세생 천상락처)

이로 인해 금생에서 몸과 마음으로 갖가지 즐거움을 받고, 후세에는 천상의 즐거운 곳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금생에 여러 가지 몸을 받을 때 마음대로 즐거움 누릴 수 있게 되고, 후세에도 천상에 나게 되어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느니라. )

 

何等五怖應遠(하등오포응원)?

무엇이 멀리 여의어야 할 五怖=다섯 가지 두려움인가? 

 

一者殺(일자살) 二者盜(이자도) 三者邪婬(삼자사음) 四者妄語(사자망어)

五者飮酒(오자음주) 如是等名 阿毘曇藏(여시등명 아비담장)

첫째는 살생이요, 둘째는 훔치는 일=도둑질이요, 셋째는 삿된 음행=邪婬이요, 넷째는 망어요, 다섯째는 음주이니,
이러한 것들을 아비담장(논장)이라고 합니다. 

 

三法藏集竟(삼법장집경) 諸天 鬼神 諸龍(제천 귀신 제룡) 天女 種種供養(천녀 종종공양)

雨天華香(우천화향) 幡蓋 天衣(번개천의) 供養法故(공양법고)

세 법장을 결집해 마치니, 하늘ㆍ귀신ㆍ용ㆍ천녀 등이 갖가지로 공양하여, 하늘의 꽃ㆍ향ㆍ번기ㆍ일산ㆍ하늘옷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렸으니, 법(참된 가르침)에 공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於是說偈(어시설게) 이러함에 대해 게송으로 된 말씀이 있으니,

 

憐愍世界故(연민세계고) 集結三藏法(집결삼장법)

세간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삼장을 결집해 마치노라.
十力一切智(십력일체지) 說智無明燈(설지무명등)
10력과 일체지께서 말씀하신 지혜는 무명의 등불이라네.

是時(시시) 長老阿難 一心合手(장로아난 일심합수) 向佛涅槃(향불열반)

方如是說言(방여시설언)
이때 장로 아난은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쪽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佛初說法時(불초설법시) 爾時我不見(이시아불견)

부처님께서 최초에 설법하실 때에, 그 때를 나는 보지 못하였거니와

 

如是展轉聞(여시전전문) 佛在波羅柰(불재바라나)

다음과 같이 전해들은 바로는, 부처님께서 바라내(바라나시)에 계시면서

佛爲五比丘(불위오비구) 初開甘露門(초개감로문)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최초로 감로의 문을 여시어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처음으로 불도(佛道)를 여시어 선정(禪定)이라는 감로로 열반문에 이르게 하셨나니)


說四眞諦法(설사진제법) 苦集滅道諦(고집멸도제)
4제(사성제)의 법을 연설하셨으니, 고ㆍ집ㆍ멸ㆍ도의 진리입니다.


사성제(四聖諦)=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 진리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의 성도(成道) 후 자기 자신의 자내증(自內證)을 고찰하여 설한 것이 십이인연(十二因緣)이라면, 사제설은 이 인연설을 알기 쉽게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체계를 세운 법문이다. 십이연기설이 이론적인 것임에 대해 사제설은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것이며, 오히려 실천을 주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성도 후 좌선사유(坐禪思惟)에 의해 스스로의 깨침을 즐겼으나, 인연의 이치가 매우 어려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설법 방법을 연구하여 사제설을 고안하였으며,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比丘)를 상대로 처음 설법한 것이 사제의 가르침이다.
첫째의 고제(苦諦)는 불완전하고 더러움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이다. 이 고(苦)는 구체적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4고(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애별리고(愛別離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온성고(五蘊盛苦)의 네 가지를 합한 8고로 하고 있다.
특히 자기 중심적인 애증(愛憎)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뇌는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구부득고는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앞의 것과 같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에 생기는 고통들이다. 오온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를 개괄한 것으로, 오온(五蘊 : 一切法)에 대한 자기 중심적인 집착을 가진다면 모든 것이 고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둘째의 집제(集諦)란 집기(集起), 즉 사물이 모여 일어나기 위한 원인이므로 고의 원인이나 이유라는 뜻이 된다. 고의 원인으로서 ‘도처에서 열락(悅樂)을 추구하여 그치지 않는 갈애(渴愛)’를 뜻하는데, 십이연기설에서는 무명(無明)과 갈애를 고뇌의 원인으로 함께 보고 있다.
그러나 갈애는 무명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므로 그 속에 무명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갈애는 모든 번뇌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갈애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의 삼애(三愛)가 있다. 욕애는 감각적 욕구인 오욕(五欲)에 대한 갈애로서, 현실에 있어서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애욕을 말한다. 유애는 존재를 뜻하는 유(有)에 대한 갈애로서, 사후에 천국 등의 훌륭한 곳에 태어나고 싶다는 욕구이며, 이도 자기 중심적인 욕구이며, 천국 등도 윤회계(輪廻界)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무유애의 무유는 비존재, 즉 허무를 말한다. 어떠한 존재도 절대 확실한 안온세계(安穩世界)가 아니기 때문에 꿈과 같이 아무것도 없는 허무계(虛無界)를 안주(安住)의 땅으로 삼는 것을 무유애라 하는데, 무유애 또한 자기 중심적인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는 것을 금하고 있다.
무아(無我)나 현세적 입장에서 볼 때 이 갈애는 번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고통의 원인을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으로 풀이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에게 맞으므로 탐욕을 일으키고, 맞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며, 그것이 다시 갖가지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셋째의 멸제(滅諦)는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향인 열반(涅槃)의 세계를 가리킨다. 즉 모든 번뇌를 대표하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함으로써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해탈을 얻음을 말한다.
넷째 도제(道諦), 도는 이상향인 열반에 도달하는 원인으로서의 수행방법이며, 구체적으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가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팔정도는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의 수행법이다.
이는 또 유(有)나 무(無)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中道)의 수행법으로서 원시불교의 근본교의를 이루고 있다.

사제 중의 고는 생사과(生死果)이고, 집은 생사인(生死因)이며, 멸은 열반과(涅槃果)이다. 이는 다시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열기(還滅緣起)의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두 가지는 생사유전의 고통과 그 원인을 말하고 멸과 도의 두 가지는 유전을 벗어나 무고안온(無故安穩)의 열반과에 도달할 수 있는 환멸의 수행법을 말한다.
그러나 후기의 학자들은 성문(聲聞)이 고집하는 사제의 견해를 파(破)하기 위하여 일체의 제법(諸法)이 공적(空寂)하다는 입장에서 볼 때는 고·집·멸·도가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집착을 깨뜨려서 사제의 진의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또한 선가(禪家)에서는 사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고제는 한 생각 물든 마음이 생기는 것을 뜻하고, 집제는 그 생각이 거듭 이어지는 것을 뜻하며,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멸제라 하고, 멸이 멸하지 않음을 철저히 아는 것을 도제라고 하였다. 즉 사제를 모두 한 생각에 둔 것이다.-다움백과

 

阿若憍陳如(아약교진여) 最初得見道(최초득견도)

아야교진여(Ājñata-Kauṇḍinya)가 최초로 견도를 얻었고
八萬諸天衆(팔만제천중) 皆亦入道迹(개역입도적)
8만의 하늘 무리들까지도 모두가 도적(paṭipadā)에 들어갔다네.

 

*道迹(도적)=일체의 성인들께서 가시어 머무시는 곳인 까닭에 ()”이라 합니다.

*3도(三道, triṣu mārgeṣu, mārga-traya, three holy paths, three paths)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수행(修行)의 3단계인 견도(見道) · 수도(修道) · 무학도(無學道)를 말한다. 즉, 3도는 성문과 보살 모두에게 해당하는 수행의 3단계이다. 성문은 부파불교의 수행자를 뜻하고 보살은 대승불교의 수행자를 뜻한다.
불교의 수행계위는 모두 윤회의 원인인 3계의 번뇌를 극복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3도(三道) 또한 마찬가지이며, 모든 번뇌를 견소단(見所斷) · 수소단(修所斷) 즉 견혹(見惑) · 수혹(修惑)으로 나누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견도(見道, darśana-mārga)는 수행자가 모든 견혹(見惑)에서 벗어나는 지위이다. '진리[諦]를 보는 단계[道]'라는 뜻에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하고, '진리를 봄'이라는 뜻에서 견제(見諦)라고도 하며 또한 '견도의 지위'라는 뜻에서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모든 견혹은 무루지(無漏智) 즉 무루의 지혜가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에 마치 해머로 바위를 산산이 깨뜨리듯이 한꺼번에 끊어진다. 불교에서는 견도를 성취한 유정을 성인 또는 성자라 부른다.
수도(修道, bhāvanā-mārga)는 수행자가 수혹(修惑)을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기간 또는 지위이다.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한다. 수도(修道)는 성인이 깨달음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길 또는 과정이므로, 진정 '성인의 길' 또는 '성스러운 길' 또는 '무루성혜(無漏聖慧)의 길'이라는 뜻의 성도(聖道, ārya-mārga, holy path, sacred path)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성도(聖道)는 불교 혹은 8정도를 뜻하기도 한다. 수도(修道) 또는 성도(聖道)는 "간략히 말해" 부파불교의 4향4과(四向四果)와 대승불교의 보살10지(菩薩十地)를 말한다.
무학도(無學道, aśaiksa-mārga)는 수행자의 수행이 완료되어 무학(無學) 즉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지위이다. 무학위(無學位)라고도 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로 '여래10호 가운데 하나로서의 아라한' 즉 부처의 지위, 즉 불지(佛地) 또는 여래지(如來地)이다.

 

是千阿羅漢(시천아라한) 聞是語已(문시어이) 上昇虛空(상승허공) 高七多羅樹(고칠다라수)

이때 모였던 천 명의 아라한들은 이 말을 듣자 허공으로 날아 일곱 개 다라수(Tāla)의 높이까지 올라가서 

 

다라수(Tāla, 多羅樹)=인도의 해안 주변에서 자라는 종려과의 교목으로, 높이 약 20m에 이르며, 수액(樹液)은 사탕의 원료로 쓰이고 열매는 식용함.
길고 넓은 잎으로 부채·모자·우산 등을 만들고, 특히 고대 인도인들은 이 잎에 경문(經文)을 침으로 새기거나 대나무로 만든 붓으로 썼으며, 이 나무의 높이= 78척을 길이의 단위로 쓰기도 함.

 

皆言(개언) 咄(돌) 無常力大(무상력대) 如我等 眼見佛說法(여아등 안견불설법)

今乃言我聞(금내언아문)

입을 모아 말하였으니, 애달프다. 무상의 힘은 참으로 커서 우리들은 부처님과 함께하여 설법을 보고 듣고 하였으나 이제는 내가 들었다.’라고 말하여야 하는구나.

 

便說偈言(편설게언)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我見佛身相(아견불신상) 猶如紫金山(유여자금산)

내가 부처님의 몸=佛身을 뵈오니, 마치 자마금 빛의 금산과 다름없어,
妙相衆德滅(묘상중덕멸) 唯有名獨存(유유명독재)
묘한 상호와 뭇 공덕이 사라지시고, 오직 이름만이 오롯이 남아 계시도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그 모습오온에 의한 번뇌의 불길 끈 공덕으로 이 세상에 오직 한 분 그렇게 불릴 수 있다네.)

금산(金山)수미산(須彌山)을 둘러싼 첫 번째 금위산(金圍山).


是故當方便(시고당방편) 求出於三界(구출어삼계)

그러므로 방편을 써서,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를 벗어나기 소원하여,
勤集諸善根(근집제선근) 涅槃最爲樂(열반최위락)
모든 선근 부지런히 모아야 하나니, 열반은 가장 즐거운 일이라네.
(이러한 까닭에 방편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삼계에서 벗어나서 무상정등정각 구하게 하는 것으로, 부지런히 훌륭하기 그지없는 참된 가르침(善法)을 모아,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 걸림 없고 막힘없음을 명백하게 이해하여야(善根) 열반이라는 으뜸가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리라.)

삼계(三界)=욕계는 욕계삼욕으로 불리는 식욕·성욕·수면욕 등의 욕망을 가진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색계는 욕계의 위에 있는 세계로서 천인이 거주하는 곳을 말한다. 이 세계는 선정의 깊이에 따라 4가지로 나뉘는데, 사선천 또는 사정려처라 불린다. 무색계는 물질을 싫어하며 벗어나고자 사무색정을 닦은 사람이 죽은 뒤에 태어나는 천계를 말한다. 이 세계는 4가지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비상비비상처는 삼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이기 때문에 유정천이라고도 한다. 삼계는 이처럼 여러 세계로 분류되고 각각의 세계에 따라 수명이나 고통의 정도가 다르지만 모두 윤회의 과정에 있는 고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는 것은 윤회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삼계를 모두 초월하여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爾時 長老阿泥盧豆 說偈言(시시 장로 아나로두 설게언)
그때 아니로두(아나율) 장로가 게송으로 말씀하여,

咄世閒無常(돌세간무상) 如水月芭蕉(여수월파초)

애달프다, 세간은 무상하여서, 물속의 달과 같고 파초와 같도다.
功德滿三界(공덕만삼계) 無常風所壞(무상풍소괴)
공덕이 삼계에 가득하시더니, 무상의 바람결에 파괴되었네.


爾時 大迦葉 復說此偈(이시 대가섭 부설차게)
그때 대가섭 존자도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無常力甚大(무상력심대) 愚智貧富貴(우지빈부귀)

무상의 힘은 참으로 커서, 어리석건 지혜롭건 가난하건 부귀하건
得道及未得(득도급미득) 一切無能免(일체무능면)
도를 얻었건 아직 얻지 못하였건, 어느 누구도 면할 길이 없구나.

非巧言妙寶(비교언묘언) 非欺誑力諍(비사광력쟁)

교묘한 말재주가 묘한 보배는 아니며, 속임수나 힘으로 겨룰 수 있는 바도 아니니,
如火燒萬物(여화소만물) 無常相法爾(무상상법이)
마치 불이 만물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무상의 모습은 언제나 그러하다네.

(무상(無常)이라는 일체법의 실상(實相)이 그러한 것이니.)

 

大迦葉語阿難(대가섭어아난)

대가섭 존자가 아난 존자에게 말하였으니,

從'轉法輪經'至'大般涅槃'(종'전법륜경' 지 '대열반경') 集作四阿含(집작사아함) 

전법륜경(Dharmacakrapravartanasūtra)에서 대반열반경(Mahāparinirvāṇasūtra)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아서 네 가지 아함을 결집하니, 

 

'增一阿含(증일아함)' '中阿含(중아함)' '長阿含(장아함)' '相應阿含(상응아함)'

是名修妒路法藏(시명수투로법장)

증일아함(Ekottarāgama)ㆍ중아함(Madhyamāgama)ㆍ장아함(Dīghāgama)ㆍ상응아함(Saṃyukt- āgama)이니, 이러함을 수투로법장(sūtrapiṭaka, 경)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이러함을 ‘경(經)이라는 법장(法藏)’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爾時(이시) 下坐比丘 持衣鉢還僧(하좌비구 지의발환승)

이때 아래자리의 비구는 교범파제(교범바제)의 의발을 거두어 대중에게로 돌아왔습니다. 

 

是時中閒(시시중간) 阿難思惟諸法(아난사유제법) 求盡殘漏(구진잔루)

그동안 아난 존자는 모든 법=諸法의 실상에 대하여 깊은 사유를하면서 남은 번뇌가 다하기를 바라며,

 

其夜坐禪經行(기야좌선경행) 慇懃求道(은근구도)

그날 밤 좌선과 경행하면서 은근히(간절히) 불도를 구하였으나, 

(그동안 아난존자는 제법(諸法)에 대하여 깊은 사유를 하며, 남아 있는 번뇌=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에서 비롯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로 펼쳐지게 되는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는 모든 불선업의 버릇 배어나오는 유루(有漏)를 남김없이 지우고자, 그날 밤 앉아서 좌선(坐禪)과 경행(經行)을 하면서 은근하게 불도(佛道)를 구하였습니다.)

 

是阿難智慧多(시아난지혜다) 定力少 是故不卽得道(정력소 시고불즉득도)

아난은 지혜는 많으나 선정의 힘=定力이 적었기 때문에 당장에 도를 얻지 못하였으니,

(이렇게 아난존자는 지혜가 많았으나 오욕(五慾)에 물들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지는 산란한 마음을 그치게 하는 정()의 힘이 부족한 까닭에) 

 

定智等者 乃可速得(정지등자 내가속득)

선정과 지혜가 균등한 자만이 신속히 도를 얻는 것이다. 

(산란한 마음 사라진 정(定)의 힘과 지혜가 어느 것 하나 치우침 없는 사람이어야 빠르게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분명히 아난존자께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셨다고 하였으나, 여기에서 다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고자 하는 것은, 앞의 것은 견도(見道)이고 지금은 수도(修道)를 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득도(得道)를 이루고자하는 것입니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는데에는 이러한 차례가 있습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後夜欲過 疲極偃息(후야욕과 피극언식) 卻臥就枕 頭未至枕(각와취침 두미지침)

廓然得悟(확연득오) 偃 누울 언. 卻 물리칠 각. 枕 베개 침

늦은 밤=後夜에 피로가 극심하여 잠시 누우려고 머리를 베개에 대려는 찰나에 활짝 깨달았으니, 

(새벽은 다가오고 피로가 쌓여 한숨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눕고자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라는 모습이 거리낌 없고 막힘없이 ()”함을 (廓然)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마치 번갯불이 번쩍이는 찰나에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확연(廓然)에 대해 이리 써놓은 것은함부로 깨달았다는 망상(妄想)에 헤매지 말라 타이르는 것입니다이 순간부터 일체법에 걸림 없고 막힘없게 되어 천지간을 맘대로 노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확연득오(廓然得悟)를 자내증(自內證)”이라고도 하나니신증(身證)인 것으로열반을 택하면 성문(聲聞)이요일체중생을 택하면 대승(大乘)인 것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如電光出 闇者見道(여전광출 암자견도)

마치 번갯불에 소경이 길을 보는 것과 같았으니,


阿難如是 入金剛定(아난여시 입금강정) 破一切諸煩惱山(파일체제번뇌)

아난존자는 이와 같이 금강정에 들어가서 온갖 번뇌의 산을 무너뜨리고, 

(아난존자는 이와 같이 금강정(金剛定)을 통해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게 되어 막힘이 없이 훤히 꿰뚫어볼 수 있게 되었고,) 

 

得三明 六神通(득삼명 육신통) 共解脫 作大力阿羅漢(공해탈 작대력아라한)

삼명과 6신통과 공해탈을 얻어 큰 힘을 지닌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산처럼 쌓인 일체의 번뇌를 깨부수어 삼명(三明)과 육신통 공해탈(共解脫)을 얻게 되었으며 반야바라밀과 함께하는 방편의 힘을 지닌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三明(삼명)= 범어 tisro vidyāḥ. 팔리어 tevijja이다.

3명이란 원래는 바라문의 3베다(리그베다․야쥬르베다․사마베다)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불교에서는 부처님과 아라한이 지니는 3종의 신통력을 가리키게 되었다. 3종이란

①과거세를 지혜로써 꿰뚫어 보는 능력(pūrva-nivāsa-jñāna-sākṣātkriyā-vidyā),

②미래의 생사를 꿰뚫어 보는 능력(cyuty-upapāda-jñāna-sākṣātkriyā-vidyā),

③번뇌가 다했음을 지혜로써 꿰뚫어 보는 능력(āsrava-kṣaya-jñāna-sākṣātkriyā- vidyā)을 말한다.

共解脫(공해탈,  śūnyatā-vimokṣa)= 일체는 인연으로 생하는 것으로 그 본체 실체가 없다는 공(空)의 도리에 통달해 일체법에 대해 자재를 얻은 상태를 말한다.

육신통(六通) 
①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②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③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④ 불가사의한 경계가 자유자재인 신족통(神足通)
⑤ 전생에 일어났던 일들을 아는 숙명통(宿命通)
⑥번뇌가 다 사라져서 다시는 미혹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 누진통(漏盡通)

*大力阿羅漢(대력아라한)= 반야바라밀을 ()”라 하며 ()”은 방편의 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까닭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한 일체중생을 화합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크다고 하는 것으로, 대력(大力)이 이름 앞에 붙으면 대승(大乘)의 아라한인 것입니다.

 

卽夜到僧堂門(즉야도승당문) 敲門而喚(고문이환) 敲 두드릴 고.  喚 부를 환

곧바로 한 밤에 승당으로 가서 승당문을 두드리며 소리쳐 부르니, 

 

大迦葉問言(대가섭문언) 敲門者誰(고문자수)?

대가섭 존자가 묻기를, '문을 두드리는 이가 누구시오?'

答言(답언) 我是阿難(아시아난)

아난존자가 대답하여, '저 아난입니다.'

 

大迦葉言(대가섭언) 汝何以來(여하이래)?

대가섭 존자가 묻기를, '그대는 무슨 일로 왔는가?'

 

阿難言(아난언)  我今夜得盡諸漏(아금야득진제루)

아난 존자가 대답하여, '제가 오늘 밤에 남아 있던 모든 누(번뇌, 유루)가 다하였습니다.'

 

大迦葉言(대가섭언) 不與汝開門(불여여개문) 汝從門鑰孔中來(여종문약중래)!

鑰 자물쇠 약

대가섭 존자가 말하기를, '그대에게 문을 열어 주지는 않겠으니, 그대가 열쇠구멍=鑰孔으로 들어오라.'

阿難答言(아난답언) 可爾(가이)! 卽以神力 從門鑰孔中入(즉이신력 종문약공중입)

아난 존자가 대답하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는 곧 신통력으로 열쇠구멍을 통해 들어가서 

 

禮拜僧足懺悔(예배승족참회) 大迦葉(대가섭) 莫復見責(막부견책)!

대중=僧의 발아래 예배(절)하고 참회하면서 말하였으니, '대가섭 존자시여, 더 이상 질책하지 말아 주십시오.'


大迦葉手摩 阿難頭言(대가섭수마 아난두언) 我故爲汝 使汝得道(아고위여 사여득도)

그러자 대가섭 존자께서 손수 아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내가 짐짓 그대를 위하여, 그대로 하여금 도를 얻게 하고자 그렇게 했느니라.

 

汝無嫌恨 我亦如是(여무염한 아역여시) 以汝自證(이여자증)

그대는 나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라(한을 품지 말아라). 나 역시 그대가 증득한 바와 같으며,

 

譬如手畫虛空(비여수주허공) 無所染著(무소염착)

마치 손으로 허공을 만지는 것 같으니 집착할 바가 없는 것과 같이, 

(나도 이와 같이 네 스스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훤히 드러내 밝히기를 바랐느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에 그림을 그릴지라도 허공이 물듦이 없듯이) 

阿羅漢心亦如是(아라한심역여시) 一切法中得無所著(일체법중득무소착)

復汝本坐(부여본좌)

아라한의 마음도 그러하여, 모든 법에 집착할 바가 없으니, 그대는 그대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시라.'

(아라한의 마음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법(一切法)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으므로 아무런 애착도 없게 되어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게 되는 것으로, 너는 다시 네 자리로 돌아가 앉아라.)

是時(시시) 僧復議言(승부의언)

이때 대중(아라한)들이 다시 논의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憍梵波提已取滅度(교범파제이취멸도) 更有誰能結集法藏(개유수난능결집법장)?

'교범파제 존자가 이미 멸도를 하셨으니, 다시 누가 법장을 결집할 수 있을 것인가?'

(교범바제존자가 이미 생명의 불길 꺼뜨리고 무여열반의 나루터로 건너가 버렸으니, 다시 또 누가 있어 앞장서 법장(法藏)을 결집할 수 있겠습니까?)

 

長老阿泥盧豆言(장노아니로두언) 是長老阿難(시장노아난) 於佛弟子(어불제자)

常侍近佛 聞經能持(상시근불 문경능지) 佛常歎譽(불상탄예)

아니로두(아나율) 장로가 말하였으니, '이 아난 장로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설법을 들어 잘 지니었으므로 부처님께서도 항상 기뻐하시며 칭찬하셨으니,

 

是阿難能結集經藏(시아난능결집경장)

이 아난 장로야 말로 능히 경장을 결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내용으로는 아난이 부처님께 위촉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음.)


是時(시시) 長老大迦葉 摩阿難頭言(장노대가섭 마아난두언)

이때 장로인 대가섭 존자가 아난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말씀하기를

 

佛囑累汝(불촉루여) 令持法藏(영지법장) 汝應報佛恩(여응보불은) 囑 부탁할 촉

'부처님께서 그대에게 법장을 지니라고 위촉하셨으니, 그대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시라.'

 

佛在何處最初說法(불재하처최초설법)?

'부처님께서 어디에서 최초의 설법을 하셨는가?'

 

佛諸大弟子 能守護法藏者(불제대제자 능수호법장자) 皆以滅度(개이멸도)

唯汝一人在(수여일일재)

부처님의 큰 제자들로서 법장을 수호할 만한 이는 모두 멸도 하셨으니, 이제 오직 그대 한 사람뿐이라, 

 

汝今應隨佛心(여금응수불심) 憐愍衆生故(연민중생고) 集佛法藏(집불법장)

그대는 부처님의 마음을 따르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뜻에서 부처님의 법장을 결집하시도록 하라.

 

是時(시시) 阿難禮僧已(아난예승이) 坐師子牀(좌사자상)

이때 아난 존자가 일어나 대중에게 예를 올리 나서 사자좌 앉으니

사자좌(師子床,  siṁhāsana)=부처님의 자리를 의미하며, 원래 인도에서는 국왕 등이 앉는 자리를 가리킨다. 사자란 부처님을 백수의 왕인 사자(獅子)에 비유한 것이다.

 

時大迦葉說此偈言(시대가섭설차게언)

때에 맞추어 대가섭 존자가 게송으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佛聖師子王(불성사자왕) 阿難是佛子(아난시불자)

거룩하신 부처님=佛聖은 사자왕이시고, 아난은 부처님의 제자(아들)로써

師子座處坐(사자좌처좌) 觀衆無有佛(관중무유불)
사자좌에 올라 앉아 있으나, 대중을 살펴봐도 부처님은 계시지 않네.

如是大德衆(여시대덕중) 無佛失威神(무불실위신)

이와 같은 대덕의 무리도, 부처님이 없으시매 위신력을 잃었도다.
如空無月時(여공무월시) 有宿而不嚴(유숙이불엄)
마치 허공에 달이 없을 때, 별만으로는 장엄스럽지 못함과 같구나.


汝大智人說(여대지인설) 汝佛子當演(여불자당연)

그대의 대지인(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 부처의 아들로써 당연히 연설하여야 하나니,
何處佛初說(하처불초설) 今汝當布現(금여당포현)

부처님이 어디에서 처음으로 설법하셨는지, 이제 그대는 마땅히 드러내 보이시라.

是時 憍梵波提 心覺生疑(시시 교범파제 심각생의) 語是比丘言(어시비구언)

이때 교범파제는 궁금한 생각이 일어나 그 비구에게 물었으니,

 

僧將無鬪諍事 喚我來耶(승장무투쟁사 환아래야)? 無有破僧者不(무유파승자부)?

佛日滅度耶(불일멸도야)?

'승가에 다툼과 겨룸이 없을진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기에 나를  오라고 하는 것인가? 혹시 승단을 파괴하는 자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혹시 태양과 같은 부처님=佛日께서 열반에 드시어 멸도하신 것은 아닌가?'

 

是比丘言(시비구언) 實如所言 大師佛已滅度(실여소언 대사불이별도)

그 비구가 대답하기를, '실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크나큰 스승이신=大師이신 부처님께서 이미 멸도하셨습니다.'

 

憍梵波提言(교범파제언) 佛滅度大疾(불멸도대질) 世閒眼滅(세간안멸)!

교범파제가 말했다. '부처님의 열반은 너무나 빠르시구나. 세간의 눈이 사라지셨구나!'

 

能逐佛轉法輪將(능축불전법륜장) 我和上舍利弗 今在何所(아화상사리불 금재하소)?

부처님을 뒤따르시며 법륜을 굴리시던 장수인 나의 화상(upādhyāya) 사리불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화상(和上, upādhyāya)= 혹은 화상(和尙)이라고도 하며, 본래 계사(戒師)를 가리키지만 후대에는 고승에 대한 존칭어가 되었다.

 

答曰(답왈) 先入涅槃(선입열반)

비구가 대답했다.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드셨습니다.'

 

憍梵波提言(교범파제언) 大師法將 各自別離(대사법장 각자별리) 當可奈何(당가내하)!

奈 어찌 내

교범파제가 말씀하였습니다. '대사와 함께 참된 가르침=法을 펼치실 장수=法將이신 대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떠나셨으니,지금 당장 어찌하랴!'

 

摩訶目伽連 今在何所(마하목가연 금재하소)?

마하목건련(Mahāmaudgalyāyaṇa)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마하목건련(摩訶目伽連, Mahāmaudgalyāyaṇa)= 목건라야나(目犍羅夜那) ·목가략자(目伽略子) 등으로 음사하며,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목건련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명으로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꼴리따의 바라문 가문에서 출생했으며,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기 전에는 마을 이름을 따서 ‘꼴리따’로 불렸다.
처음에는 사리불(舍利佛)과 함께 바리사바(波離옵婆) 외도인 산사야(刪옵耶)에게서 도를 배우고 그 학문에 정통하여 100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그러나 사리불이 석가의 설법을 듣고 법안정(法眼淨)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는 그 100명의 제자를 이끌고 불문에 집단 귀의한 뒤 석가의 가르침을 받은 후 스승을 잘 도와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그는 신통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날아 다니는 물체를 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처님과도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죽마고우였던 사리불과 출가해 산자야의 제자가 되었지만 늘 그의 사상에 부족함을 느낀 이후 앗사지(馬謄 마등)가 전해준 인연게를 듣고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고 부처님의 교화를 받은 후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다.
목건련은 효심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하다.
그의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신통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부처님께 도움을 청한다.
이후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면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하게 되는데 이는 우란분재의 효시가 된다.
이후 이교도의 공격으로 죽음을 맞을 때까지 목건련은 초기 불교 교단에 큰 공헌을 했다.
우란분재는 다른 말로 백중(百衆) 또는 백종(百鍾)이라 불린다.
백중 혹은 백종이란 말은 100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불,법,승 삼보께 공양을 올려, 저 세상으로 간 부모님들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법회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목건련은 사리불과 더불어 부처님을 배반한 데바닷타의 무리 500명을 부처님 품안으로 귀의 시키는 등 부처님 법을 널리 펴는데 매진했다.- 목야

是比丘言(시비구언) 是亦滅度(시역멸도)

그 비구가 대답하였으니, '역시 멸도 하셨습니다.'

 

憍梵波提言(교범파제언) 佛法欲散 大人過去(불법욕산 대인과거) 衆生可愍(중생가민)

교범파제가 말씀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이 흩어지려는가. 큰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렸구나! 중생들이 불쌍하도다.'

 

問(문) 長老阿難 今何所作(장노아난 금하소작)?

그리고는 다시 묻기를, '아난 장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是比丘言(시비구언) 長老阿難(장노아난) 佛滅度後(불멸도후)

憂愁 啼哭 迷悶 不能自喩(우수 제곡 미민 불능자유)

그 비구가 대답하였으니, 장로(āyuṣmat) 아난께서는 부처님께서 멸도하시자 슬픔과 근심으로 슬피 울며 미혹한 채 번민할 뿐,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다른 이들은 부처님의 멸도를 바라보면서 일체법의 덧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으나, 아난은 오직 부처님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을 뿐이라는 것.)

 

長老(장노, āyuṣmat)= 법구경(法句經) 봉지품(奉持品)에서 謂懷諦法(우회체법) 順調慈仁(순조자인) 明遠清潔(명원청결) 是為長老(시위장노) 진리의 법을 가슴에 간직하여, 조순하고 인자한 마음을 가지며, 밝게 통달하여 깨끗한 그런 사람을 장로라 부른다.

 

憍梵波提言(교범파제언) 阿難懊惱 由有愛結(아난오뇌 유유애결) 別離生苦(별리생고)

懊 한할 오,

교범파제가 말씀하셨으니, '아난이 오뇌하는 것은 애착의 번뇌가 남아 있어서 이별에 따라 생기는 괴로움이니라.' 

(아난장로가 뉘우쳐 한탄하는 것은 오개(五蓋)에 덮여 제멋대로 날뛰는 거친 마음에 묶이게 된 것=結이 남아 있어 헤어짐에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羅睺羅復云何(라후라부운하)?

라후라(Rāhula)는 어찌하고 있는가?

 

라후라(羅睺羅, Rāhula)=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얼마 전에 태어나자 석가모니는 자신을 묶는 인연이 하나 더 생긴 것을 탄식하여 "라훌라[아들이 태어났을 당시 일식이 일어났기에 '(태양을 가리는) 장애물=일식'이라는 의미로 라훌라라고 지었다는 말도 있다.]"라고 탄식하였으므로 '라훌라'를 이름으로 삼았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것도 이별의 고통을 낳는다고 보기에(그리고 고통이 번뇌를 낳고), 그만큼 라훌라를 사랑했다는 징표로 해석하기도 한다. 부처가 된 뒤, '나는 일체 중생에 대하여 아들과 같이 여기어, 아들인 라훌라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훌라가 태어났기 때문에 석가모니는 고대 인도의 크샤트리아(찰제리) 계급 남성들이 짊어지고 있던 자손을 이어나가야 할 의무를 수행한 것이 되었으며, 갓난아기인 라훌라를 놔두고 출가했다.

석가모니가 부처가 된 후 고국으로 돌아와 설법하자 야쇼다라는 아들 라훌라에게 "네 아버지를 찾아가 유산(왕위계승권)을 물려달라고 청하여라." 하고 시켰다. 라훌라가 어머니에게 들은 대로 행하니, 석가모니는 "나의 유산은 너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니 법의 유산을 물려받아라."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에서 제자 사리푸트라를 라훌라의 스승으로 삼고 출가시켜버렸다. 그리고 "다시 세속에 돌아가지 말거라"고 간곡히 말한다. 이 때문에 석가모니의 아버지이자 라훌라의 할아버지인 정반왕은 아들에게 후계자 문제를 따졌고, 석가모니는 '부모가 살아 계실 적에 출가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부모를 모시고 집안을 이끌 장자는 원칙적으로 출가할 수 없다.'라는 계율을 새로 만들었다. 결국 정반왕의 뒤는 석가모니의 사촌 마하나마가 이어 왕이 되었는데, 이후 코살라국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라훌라는 출가 당시 어린아이였는데, 처음에는 자만하여 수행을 게을리하기도 했다. 나이도 어렸고 왕족의 자손이고 아버지는 만인의 존경을 받는 종교 지도자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17살 무렵에는 한창 사춘기라도 왔는지 누가 부처가 있는 곳을 물으면 기원정사에 있는데도 주암원(晝闇園)에 있다고 하고, 거꾸로 주암원에 있을 때는 기원정사에 있다고 하여 골탕 먹이기도 했다. 아난이 이를 부처에게 고하자 부처는 라훌라를 불러 물을 떠오게 하여 자신의 발을 씻게 한 뒤, "아들아, 이 아비가 발 씻은 이 물을 네 입으로 마시고 내일 이 대야로 탁발을 받아 와서 먹을 수 있겠느냐?" 하고 물었다. 라훌라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자, 부처는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너도 이 대야와 같다. 대야도 물도 본래 그 자체는 깨끗했지만 거기에 더러운 발을 씻었으니 물도 대야도 더러워졌다. 네 마음도 본래는 깨끗하지만 입에는 진실과 신의가 없고 심성은 억세며, 정진에 힘쓰지 않아서 마음이 더러워졌고 그 더러워진 마음을 담고 있는 네 몸마저도 사람들이 더럽게 여긴다. 이 또한 더러워진 물과 그 물을 담았던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라훌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 정진에 노력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라훌라는 아라한이 된 뒤에도 설법에는 영 꽝이었다고 한다. 설법을 해도 대중들이 내용을 쉽게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불교 기록에 따르면 라훌라는 공부하는 요령도 없었고, 아는 지식을 남들에게 쉽게 설명해주는 요령도 많이 부족했던 듯하다. 그래서 정말 단순하게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는데, 남들에게 설법을 해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는 어느 객승이 라후라 숙소에 머무르게 되어 화장실에서 잠을 청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사미는 비구와 한 방을 쓸 수 없다는 계율이 있어 비구인 객승과 함께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를 알고 석가모니는 이 규제를 없앴다. 그리고 어린 라훌라가 1일 1식을 견디지 못해 아침마다 배고파서 훌쩍이자, 어리거나 병든 수행자에 한해서 조식을 허용하도록 규칙을 바꾸었다. 무엇보다 석가모니는 대체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나친 고행을 하거나 너무 엄격히 규율을 지킴은 나쁘다고 여겼다. '규율을 지키기 위해서 규율을 지키는 것'을 나쁘게 본 셈이다. 당장 출가 초기에도 단식 수행을 하던 중 '이런 걸로는 깨달음을 얻기 힘들다.'며 그만두고 식사를 했더니 다른 고행자들이 타락했다며 떠나버린 적도 있다. 제자였던 데바닷타는 훨씬 더 엄격한 계율을 주장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교 승단을 떠났다.
후에는 '십대제자' 중에서 '밀행제일'로 불린다. 뭇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마음을 닦고 선행을 하는 밀행을 일생 동안 함으로써, 훗날 티베트 불교의 주류를 이루는 밀교의 주요 개조로 존중받았다.-나무위키

 

答言(답언) 羅睺羅 得阿羅漢故(라후라 득아라한고) 無憂無愁(무우무수)

但觀諸法 無常相(단관제법 무상상)

비구가 대답하여, '라후라는 아라한의 경지를 얻은 까닭에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오직 모든 법의 무상한 모습만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라훌라는 아라한으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한 까닭에 애태우거나 속상함 없이 오로지 제법(諸法)의 무상(無常)한 모습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憍梵波提言(교범파제언) 難斷愛已斷(난단애이단) 無憂愁(무우수)

교범파제가 말했다. '끊기 어려운 애욕(애착)을 이미 끊었으니, 근심과 걱정이 없을 것이로다.'

 

憍梵波提言(교범파제언) 我失離欲大師(아실리욕대사)

於是尸利沙樹園中住(어시시리사수원중주) 亦何所爲(역하소위)?

교범파제는 다시 말씀하기를, '나도 더 이상 살 의욕이 없으니 대사를 따라 떠나야 할 것이로되, 이 시리사수 동산에 머물러 무엇을 하겠는가?'

 

我和上 大師皆已滅度(아화상 대사개이멸도) 我今不能復下 閻浮提(아금부능부하 염부제)

住此般涅槃(주차반열반)

'나의 화상이나 큰 스승께서 모두 멸도 하셨으니, 나는 이제 다시 염부제로 내려갈 수도 없으니, 차라리 여기에 머물며 완전한 열반에 들자구나.'

(나의 첫 번째 화상(和尙)과 대사(大師)께서는 모두 멸도(滅度)에 드셨거니와나도 이제 다시 염부제로 내려갈 필요 없이 머물러 있는 이곳에서 반열반에 들어야겠구나.)

 

說是言已 入禪定中(설시언이 입선정중) 踊在虛空 身放光明(용재허공 신방광명)

이와 같이 말하고는 바로 선정에 들어 허공 속으로 몸을 솟구쳐 광명을 뿜었다.

 

又出水火 手摩日月(우출수화 수마일월) 現種種神變(현종종신변)

또한 물과 불을 내뿜거나,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지기도 하는 등 갖가지 신통 변화을 드러내시고 

 

自心出火燒身 身中出水(자심출화소신 신중출수) 四道流下(사도류하)

至大迦葉所(지대가섭소)

마음으로 불을 내어 몸을 사르니, 몸 가운데에서 물이 나와 사방으로 흘러, 대가섭 존자가 있는 곳에까지 이르렀으며, 

 

水中有聲 說此偈言(수중유성 설차게언)
물속에서 음성이 들려오니, 그 말씀이 이러한 게송이었습니다.

憍梵鉢提稽首禮(교범발제계수례) 妙衆第一大德僧(묘중제일대덕승)

교범발제(교법바제)는 머리를 조아려, 묘하기가 대중 가운데 으뜸이신 대덕승께 예배드립니다.

聞佛滅度我隨去(문불멸도아수거) 如大象去象子隨(여대상거상자수)

부처님의 멸도를 듣고 저 또한 따라가오니, 마치 큰 코끼리가 떠나자 새끼 코끼리도 따라가듯 하나이다.

大迦葉復言(대가섭언) 대가섭이 다시 말하기를,

汝與佛疊 僧伽梨衣(여여불첩 승가리의) 以足蹈上(이족도상) 是汝突吉羅罪(시여돌길라죄)
疊 겹쳐질 첩, 거듭 첩. 蹈 밟을 도. 

그대가 부처님의 시자를 하면서 승가리를 접을 때 발로 그 위를 밟았으니 이러함도 너의 돌길라죄이니라. 

 

阿難言(아난언) 爾時 有大風起(이시 유대풍기) 無人助我捉衣(무인조아착의) 

아난이 말하여, 그때 큰 바람이 불었는데 아무도 내가 옷 개는 일을 돕는 이가 없었으며, 

 

時風吹來 墮我腳下(시풍취래 타아각하) 非不恭敬 故蹈佛衣(비불공경 고도불의)
捉 잡을 착.  腳 다리 각 

때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 와서 내 발 밑에 떨어진 것이지 제가 공경하지 않기에 부처님의 옷을 밟은 것은 아닙니다.

(그때, 큰 바람이 불었는데 제가 가사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잡으려 할 적에 아무도 도울 수 있는 이가 없었고 때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 제 발 아래 떨어진 것이지 공경함이 없어서 그리된 것이 아니나니 그러한 까닭으로 부처님의 승가리를 밟게 된 것입니다.)
大迦葉復言(대가섭언) 대가섭 존자가 거듭 말하기를,

佛陰藏相(불음장상) 般涅槃後以示女人(반열반후이시여인) 

是何可恥(시하가취)? 是汝突吉羅罪(시여돌길라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음부의 모습=陰藏相을 여자들에게 보였으니, 이 어찌 창피한 짓이 아닌가? 이것이 그대의 돌길라죄이니라.

 

阿難言(아난언) 爾時 我思惟(이시 아사유)
‘若諸女人 見佛陰藏相者(약제여인 견불음장상자) 便自羞恥女人形(갱자수취여인형) 

아난이 말하기를, 그때 내가 만약에 여자들이 부처님의 음장상을 본다면 문득 자신들의 여자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고 

 

欲得男子身(욕득남자신) 修行佛相 種福德根(수행불상 종복덕근)
羞 부끄러울 수
남자로 태어나기를 원해 부처님의 상호를 닦아 복덕의 뿌리를 심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以是故 我示女人(이시고 아시여인) 不爲無恥而故破戒(불위무취이고파계)
그런 까닭에 제가 여자들에게 보였을 뿐이지 창피한 줄 몰라서 계법을 파한 것이 아닙니다.
(그때, 제가 헤아려보건대 만약 뭇 여인들이 부처님의 음장상(陰藏相)을 보게 되면 문득 스스로 여인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껴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수행을 하여 남자의 몸을 갖고자 할 것이니 복덕의 뿌리를 심게 되는 것이요, 이러한 까닭에 제가 여인네들에게 보여줬던 것으로, 부끄러움이 없거나 계(戒)를 깨뜨리고자 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大迦葉言(대가섭언) 汝有六種突吉羅罪(여유육종돌길라죄) 盡應僧中悔過(진응승중회과)!
대가섭 존자가 다시 말하기를, 그대는 여섯 가지 돌길라죄를 범하였으니, 허물들을 대중들에게 모두 털어놓고 참회하라.


阿難言(아난언) 諾(낙) 隨長老大迦葉及僧所教(수장노대가법급승소교)!
諾 대답할 낙, 허락할 낙
아난 존자 답하기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가섭 장로와 대중들에게 교법에 따라 의 가르침을 따라 참회하겠습니다.

是時(시시) 阿難長跪合手(아난장궤합수) 偏袒右肩(편단우견) 脫革屣(탈혁사)
六種突吉羅罪懺悔(육종돌길라죄참회) 跪 꿇어앉을 궤. 屣 신 사,
이때 아난 존자가 오른 쪽 무릎을 끊고 합장한 채, 오른쪽 어깨를 걷어 올리고 신을 벗고 여섯 가지 돌길라죄를 참회하였으며, 


大迦葉於僧中(대가섭어승중) 手牽阿難出(수견아난출) 語阿難言(어아난언)
牽 끌 견, 이끌 견
대가섭 존자가 대중 가운데서 손수 아난 존자를 이끌어내어 밖으로 나오도록 하고, 아난장로에게 말씀하기를,

 

斷汝漏盡 然後來入(단여누진 연후래입) 殘結未盡 汝勿來也(잔결미진 여물래야)
그대는 누(āsrava, 번뇌)를 다 끊은 뒤에야 들어오라. 번뇌=結를 다 끊기 전에는 들어오지 말라.
(너는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는 삿된 견해에서 비롯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로 펼쳐지게 되는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는 모든 불선업의 버릇 배어나오는 유루(有漏)가 끊어져서 다한 다음에야 들어올 수 있거니와 오개(五蓋)에 덮여 제멋대로 날뛰는 거친 마음에 묶이게 된 것(結) 남아 있어 다하지 못하였다면 찾아오지 말라.)


如是語竟 便自閉門(여시어경 편자폐문)
이와 같은 말을 끝내고는 손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結集

爾時 諸阿羅漢議言(이시 제아라한의언) 誰能結集毘尼法藏者(수능결집 비니법장자)?
이 때에 아라한들이 의논했다. 어는 분이 비니(계율)의 법장을 결집할 수 있겠는가?
(그때에 모든 아라한이 삼장(三藏)에 대해 논의(論議)하고자 말씀하였습니다. 어느 분이 계율의 법장을 결집할 수 있겠습니까?)


長老阿泥盧豆言(장노아니로두언) 舍利弗是第二佛(사리불시제이불) 有好弟子(유호제자)
아니로두(아나율) 장로가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은 제2의 부처님으로서 훌륭한 제자를 두었으니 


字憍梵波提秦言牛齝(자교범파제) 柔軟和雅(유연화아) 常處閑居(상처한거)

이름이 교범파제(Gavāṃpati)이며, 부드럽고 온화하고 우아하며 항상 한적한 곳에 머물며,

 

교범파제(憍梵波提, Gavāṃpati)= 교범발제(憍梵鉢提), 가범파제(伽梵波提)라고도 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아라한, 사리불의 제자이며, 계율을 잘 알아 ‘해율제일(解律第一)’이라고 한다. 항상 온화하고 우아하며 한적한 곳에 머무르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간직할 줄 아는 호부장자(豪富長者)였다. 교범파제는 전생에 비구였는데, 남의 조 밭에서 이삭 하나를 따서 영글었는지 영글지 않았는가를 보다가 몇 알을 땅에 떨어뜨려서 이로 인해 500년 동안 소가 되어 그 빚을 갚다가 사람의 몸을 받았다고 하여 진나라 말로는 우사(牛呞)이다.

 

住心寂燕(주심적연) 能知毘尼法藏閑 (능지비니법장한) 한가할 한. 燕 제비 연,
마음을 고요하게 간직하며, 비니법장=율장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며, 


今在天上 尸利沙樹園中住(금재천상 시리사수원중주) 遣使請來(견사청래)  遣 보낼 견,
지금 천상의 시리사수(Śirīṣavana) 동산에 머물고 계시니, 사람을 시켜 그를 청해 오도록 하십시다.

 

시리사수(尸利沙樹, Śirīṣavana.)= 인도에 나는 향나무의 일종이며, 줄기 · 가지에서 진(樹膠)을 받아 향을 만드는 나무. 시리사수는 콩과 식물인데 우리나라에도 있는 자귀나무와 가까운 식물로 꽃의 색깔만 다를 뿐 유사한 식물로서 학명은 ‘Acacia sirissa’ 또는 ‘Albizzia lebbek, Mimosa sirissa’이다. 이 나무는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서 자생하거나 혹은 널리 재배되고 있으며 영명으로는 ‘Lebbek Tree’, ‘Flea Tree’, ‘Frywood, Koko’라고도 한다.
재미있는 명칭으로 ‘Woman’s tongues Tree’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바람이 불 때 콩과 식물인 이 나무의 꼬투리에서 씨앗들이 매우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지는 것을 여인들의 수다스러운 혀에 비유한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 나무의 크기는 18m에서 30m에 이르며 흰색의 향기로운 꽃이 피는데 15~30cm의 꼬투리 안에 6개에서 12개의 씨가 들어 있다. 씨앗은 사료로 쓰기도 하지만 커피나 차 대용으로 이용하기도 하며 수피는 비누로서도 이용하기도 한다.
이 나무가 고대 인도로부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이 시리사나무의 목재가 Albizzia, Kokko, Lebbek 등으로 부르며 선박을 건조하거나 가구재, 장남감 등에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이 시리사나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자귀나무(일명 합환수 (合歡樹), 학명 Albizia julibrissin, 영명 Silktree Mimosa, Pink Siris)와 같은 종류의 나무인데,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시리사수는 꽃이 흰색에서 연황색이며, 자귀나무는 붉은 색 계열이다.
우리나라의 자귀나무는 그 껍질을 합환피(合歡皮)라 하여 한약재로 사용하는데 혈액순환과 신경 안정에 효과가 있으며 임파선염 등의 치료제와 구충제로도 이용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나무를 합환수(合歡樹)부르는 것은, 밤이면 잎이 오므라들어 서로를 포옹한다고 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이 나무를 정원에 심어놓으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는 속설도 있다.-불교신문

 
大迦葉語 下坐比丘(대가섭어 하좌비구) 汝次應僧使(여차응승사)
대가섭 존자께서 아래에 앉아 있는=下座의 비구에게 분부하기를, 그대가 대중의 심부름을 하라.


下坐比丘言(하좌비구언) 僧有何使(승유하사)?
아래에 앉아 있던 비구가 묻기를, 어떤 승려를 모셔오면 되는 것입니까? 

大迦葉言(대가섭언) 僧使汝至天上 尸利沙樹園中(승사여지천상 시리사수원중)
憍梵波提阿羅漢住處(교범파제아라한주처)
대가섭 존자가 이르시기를, 그대는 천상의 시리사수 동산에 계시는 교범파제 아라한이 계신 곳으로 가서 그 분을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是比丘歡喜踊躍 受僧勅命(시비구환희용약 수승칙명) 白大迦葉言勅(백대가섭언칙) 

조서 칙,
그 비구는 승가의 부탁에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대중의 칙명을 받아 들이고는 대가섭 존자에게 묻기를,

我到憍梵波提阿羅漢所(아도교범파제아라한소) 陳說何事(진설하사)?
제가 교범파제 아라한의 처소에 가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까?

大迦葉言(대가섭언) 到已 語憍梵鉢提(도이 어교범발제)
大迦葉等 漏盡阿羅漢(대가섭등 누진아라한) 皆會閻浮提(개회염부제)
僧有大法事 汝可疾來(승유대법사 여가질래)
대가섭 존자가 말씀하기를, 도착한 뒤에 교범파제에게 ‘대가섭 등 샘이 없는=漏盡 아라한들이 모두 염부제에 모여서, 대중에 큰 법사가 있으니 그대는 속히 이리로 오라’고 하여라.
 

是下坐比丘 頭面禮僧(시하좌비구 두면예승) 右繞三帀(우요삼잡)
如金翅鳥 飛騰虛空(여금시조 비등허공)
아래에 앉아 있던 그 비구는 고개를 숙여 대중의 발에 예를 올리고는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돈 다음, 마치 금시조(Garuḍa)처럼 허공을 날아 올라서 

 

금시조(金翅鳥, Garuda)=힌두 신화에 나오는 새로 비슈누 신(神)의 탈것(vāhana). '리그베다 Ṛgveda'에는 해를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이 새에 비유했는데, 학자들은 솔개처럼 생긴 가루다가 비슈누와 관련이 있는 것은 비슈누가 원래 태양신임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신화에 따르면 가루다는 태양신 수리아의 마부(馬父) 아루나의 동생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다른 아내와 나가(nāga : 뱀)인 그 아들들에게 노예로 잡혔는데 독수리 비슷한 솔개와 뱀 사이에 계속되는 증오는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가는 가루다에게 불로장생약(amṛta)을 한 잔 얻어오면 어머니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가루다는 얼마간의 어려움을 겪지만 그 일을 해냈고 천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슈누를 만나 그의 탈 것 겸 상징이 되어 봉사할 것을 동의했다.
가루다는 몸의 색깔이 에메랄드 빛이고 솔개 부리와 둥근 눈, 금날개, 4개의 팔이 있으며, 솔개처럼 생긴 가슴·무릎·다리가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또한 매 같은 모습에 날개를 지닌 사람 모습 비슷한 신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두 손은 경배하는 모습으로 잡고 나머지 두 손은 우산과 불로장생약 병을 들고 있다. 때로 비슈누가 그의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가루다 상(像)은 비슈누를 열렬히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숭배심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쓰이며 굽타 시대에는 그 모습을 동전에 새기기도 했다.
힌두교가 네팔과 동남아시아에까지 퍼지면서 가루다도 알려져 기념물에 자주 등장한다. 동남아시아의 몇 나라에서는 왕족과 관련이 있다.


往到憍梵波提所(왕도교범파제소) 頭面作禮(두면작례) 語憍梵波提言(어교범파제언)
교범파제의 처소에 이르러서,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 교범파제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軟善大德(연선대덕) 少欲知足 常在禪定(소욕지족 상재선정)
부드럽고도 착하신 대덕이시여, 욕심 적으시고 만족함을 아시면서 항상 선정에 계시는군요.


大迦葉問訊有語(대가섭문신유어) 今僧有大法事(금승유대법사)

可疾下來 觀衆寶聚(가질하래 관중보취)
대가섭 존자께서 문안하시고 또한 말씀을 전하시되 ‘지금 대중에 큰 불사가 있으니 속히 내려오셔서 대중에게 율장의 보물더미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是時 大迦葉與千人俱(시시 대가섭여천인구) 到王舍城 耆闍崛山中(도왕사성 기사굴산)

告語阿闍世王(고어아사세왕)

이때, 마하가섭존자를 비롯한 천 명의 아라한이 함께 왕사성 기사굴산(Gṛdhrakūṭaparvata)에서 머물기로 하고 아사세 왕에게 이르기를 

 

기사굴산(耆闍崛山, Gṛdhrakūṭaparvata)=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왕사성(Rājagriha)의 동쪽에 위치하는 작은 산으로 부처님께서 자주 머무시던 곳이다. 이 말의 어의는 ‘독수리 봉우리’로, 산정이 독수리의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給我等食 日日送來(급아등식) 今我曹等 結集經藏(금아조등 결집경장) 不得他行(부득타행)

우리들의 밥을 날마다 보내 주십시요. 우리들은 지금부터 경장을 결집하므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지금 경장(經藏)을 결집하고자 하니, 쉽사리 움직일 수 없으므로, 저희들에게 매일 음식을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是中夏安居三月(시중하안거삼월) 初十五日說戒時(초십오일설계시)

集和合僧(집화합승)

여기에서 하안거(Varṣa)에 들기를 석 달, 첫째 달 보름날 계를 설할 때에 화합승이 다 모이니, 

(이렇게 이곳에서 하안거 석 달을 보내기로 하고 첫째 달 보름이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를 하게 되는 때라고 말하자 승려들이 화합하여 승가(僧伽)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안거(夏安居, Varṣa)= 우기 3개월간 한 곳에 머물러 선정수행에 전념하며 지내는 것

안거(安居)= 결제. 범어 'varṣa'의 한역으로 불교의 수행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서 수행하는 기간을 말한다. 남방불교에서는 여름 한 차례만 안거를 행하며, 북방불교에서는 여름 3개월 동안 행하는 하안거(夏安居)와 겨울 3개월 동안 행하는 동안거(冬安居)가 있다. 즉 1년에 두 번 안거를 행하게 된다.
인도에서는 바라문교에서 안거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비구(比丘)들이 여름에 행각하다가 폭풍우를 만나고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하여 비난을 받았으므로 여름에는 외출을 금지하고 수행을 하게 한 것이 불교 안거의 기원이다.
안거의 원래 뜻은 우기(雨期)를 뜻하고, 이러한 우기에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불제자가 한곳에 모여 조용히 도심(道心)을 일으켜 수행하게 된다. 안거의 시기에 관하여서는 『행사초(行事鈔)』에 “4월 16일부터 시작하여 7월 15일에 끝난다.” 하고, “그 다음날 16일을 자자(自恣)의 날로 삼는다.”고 하였다.
당나라의 현장(玄奘)은 우기인 5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안거를 행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인도 승려들의 안거의 예를 들고 있다. 4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의 안거를 전안거(前安居)라 하고, 5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의 안거를 후안거(後安居)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結制)하여 7월 15일 해제(解制)하는 하안거와,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하여 다음해 1월 15일에 해제하는 동안거를 채택하여 행하고 있다. 그리고 안거기간 동안은 한곳에서만 수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몇 안거를 났느냐 함이 곧 승려의 수행이력이 되기도 한다.
안거는 각 본산의 사찰별로 행하며, 안거를 실시하는 사원은 안거자 명단을 작성하고, 안거 중의 각 소임을 정한다. 안거 중에는 좌선 · 간경(看經) 등에 의하여 수행을 행하는 것이 관례이나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좌선 위주로 수행한다. 안거를 마치고 해제하는 날은 대중공양(大衆供養) 등을 베풀어 그 동안의 노고를 달래는 풍습이 있다. 특히 7월 15일의 해제하는 날에는 우란분재(盂蘭盆齋) 등을 거행한다.

포살(布薩, upavasatha)= 팔리어 우포사다(uposadha)의 음을 한자로 표현한 말이다. 수행자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 지난날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참다운 부처님 제자로서의 삶을 점검하는 것을 뜻한다.
포살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매월 보름과 그믐, 한 달에 두 번 수행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지켜야 할 계목을 크게 소리 내어 읽고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함으로써 청정함을 잊지 않고 계에 의지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짐하기 위한 의식으로 진행한다.
이는 초기 교단의 중요한 의식으로써 승가의 단결과 화합에 필요한 행사이기도 했다. 《율장대품 포살건도》에는 포살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포살 날 정해진 시간에 수행자들이 모이면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일어나 “계본을 읽겠으니 죄 있는 사람을 발로 참회하시오”하고 선언한 다음 포살을 시작한다.

자자(自恣)= 수행자들이 모여 안거(安居) 기간의 허물을 지적해 주고 받는 의식을 뜻한다. 안거를 끝내고 자자를 행하는 날을 ‘자자일’이라고 한다. 안거를 함께 한 스님들은 서로 간에 허물을 지적하고 참회함으로써 수행자 본연의 청정함을 유지하려는 제도이다.

 

大迦葉入禪定 以天眼觀(대가섭입선정 이천안관) 今是衆中(금시중중)

誰有煩惱未盡 應逐出者(수유번뇌미진 응축출자)!

대가섭 존자가 선정에 들어 천안으로 이 대중 중에서 번뇌가 다하지 못해서 내 보내야 할 자가 누구인가를 살펴보니, 

(마하가섭존자가 선정(禪定)을 통해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게 되어 막힘없이 꿰뚫어 보는 천안(天眼)으로 이 대중 가운데 누가 아직 번뇌가 다하지 못하여 대중 가운데서 내보내야할 사람인지 살펴보시니,)

 

唯有阿難 一人不盡(유유아난 일인부진) 餘九百九十九人(여구백구십구인)

諸漏已盡(제루이진) 淸淨無垢(청정무구)

오직 아난 한 사람만이 번뇌를 다하지 못하였고 , 나머지 999명은 모든 누(번뇌)가 이미 다하여 청정무구하였습니다.

(오직 아난존자만 홀로 번뇌를 다하지 못하였고, 나머지 구백 구십 구 명의 아라한은 이미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는 삿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의 유루(有漏)를 이미 다하여 청정(淸淨)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大迦葉從禪定起대가섭종선정기) 衆中手牽阿難出 言(중중수견아난 출)

牽 끌 견

대가섭 존자는 선정에서 일어나, 대중 가운데서 손수 아난을 끌어내면서 말하였으니,

(마하가섭존자가 선정(禪定)에서 일어나 대중 가운데서 손수 아난존자를 끌어내어 밖으로 나오도록 하고는 말씀하시기를 지금 청정(淸淨)한 대중이 경장을 결집하고자 한다.)

 

今淸淨衆中 結集經藏(금청정중중 결집경장) 汝結未盡 不應住此(여결미진 불응주차)

이제 청정한 대중이 모여서 경장을 결집하려는데 그대는 번뇌=結가 아직 다하지 못했으니, 여기에 머물 수 없다.

(너는 오개(五蓋)에 덮여 제멋대로 날뛰는 거친 마음에 묶이어= 번뇌의 불길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니 이곳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是時 阿難慚恥悲泣(시시 아난참치비읍) 而自念言(이자념언)

慚 부끄러울 참, 慙과 同字. 恥 부끄러워할 치, 부끄러울 치. 泣 울 읍, 

그때 아난은 수치심에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我二十五年 隨侍世尊(아이십오년 수시세존) 供給左右(공급좌우)

未曾得如是苦惱(미증득여시고뇌)侍 모실 시

내가 25년 동안 세존을 따라다니면서 좌우에서 시봉을 하였어도 이러한 괴로움을 당한 적은 없었나니, 

 

佛實大德 慈悲含忍(불실대덕 자비함인)

부처님은 실로 대덕이시어, 자비롭고 인자하셨구나.’


念已 白大迦葉言(념이 백대가섭언)

이러한 생각을 마치고는 대가섭 존자에게 말했습니다.

 

‘我能有力 久可得道(아능유력 구가득도) 但諸佛法(단제불법)

阿羅漢者 不得供給 左右使令(아라한자 불득공급 좌우사령)

내가 도를 얻을 힘을 갖춘 지는 오래되었으나, 다만 부처님들의 법에 아라한이 된 이는 좌우에서 심부름을 하는 시봉을 시킬 수 없게 되어 있기에, 

 

以是故 我留殘結 不盡斷耳(이시고 아유잔결 부진단이)殘 해칠 잔, 

그러므로 나는 번뇌를 남겨 두고 다 끊지 않았을 뿐입니다.


大迦葉言(대가섭언) 汝更有罪(여갱유죄)

대가섭 존자가 다시 말했으니, 그대에게는 또한 죄가 있으니, 

 

佛意不欲聽女人出家(불의불욕청여인출가) 汝慇懃勸請(여은근권청) 佛聽爲道(불청위도)

부처님의 뜻에는 여자의 출가를 허락하실 생각이 없었는데 그대가 은근히 조르고 부탁하여 부처님께서 너의 청을 받아들여 도에 들어오도록 하였으니, 

 

以是故 佛之正法 五百歲而衰微(이시고 불지정법 오백세이쇠이) 衰 쇠할 쇠,

是汝突吉羅罪(시여돌길라죄)突 갑자기 돌

그러한 까닭에 부처님의 정법은 5백 년으로 기울게 되고 힘을 잃게=衰微하여 졌나니, 이것이 그대가 돌길라(Duṣkṛta) 죄를 범한 것이다.”

 

돌길라(突吉羅, Duṣkṛta)= 악작(惡作), 악설(惡說)이라는 계율의 죄명으로 몸과 입으로 지은 나쁜 업, 즉 계를 범한 죄를 가리킨다. 비구의 250계 가운데 백 가지를 범하는 소죄(少罪)이다.

 

阿難言(아난언) 我憐愍瞿曇彌(아연민구담미) 又三世諸佛法(우삼세제불법)

皆有四部衆(개유사부중) 我釋迦文佛云何獨無(아석가분불운하독무)?

아난이 말하기를, 나는 구담미(Gautamī)를 가엾이 여겼기 때문이며, 또한 3세의 부처님 법에 모두 가까이 四部衆=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이 있는데, 어찌 석가모니부처님(Buddha Śākamuni)에게만 없을 수 있겠습니까?”

 

구담미(瞿曇彌,  Gautamī, 대애도, 大愛道)= Mahāprajāpati를 가리킨다. 석존의 이모이자 양모(養母)로서 나중에는 출가해 최초의 비구니가 된다.

 

大迦葉復言(대가섭언) 佛欲涅槃時(불욕열반시) 近俱夷那竭城(근구이나갈성)

脊痛 四疊漚多羅僧敷臥(등창 사구다라승부와) 語汝言(어여언) 我須水(아수수)

대가섭 존자가 다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구이나갈성(Kuśinagara) 근처에서 등창이 나셔서 구다라승(Uttarāsaṅga)을 네 겹으로 포개고 누우셔서 그대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는데,

 

구이나갈성(俱夷那竭城, Kuśinagara, 拘尸那揭羅=구시나갈라)= 부처님이 열반하신 곳. 인도 힌두스탄 평야에 있는 지금의 카시아(Kasia) 지방이다. 붓다 생존 당시부터 외딴 곳으로서 당시는 마라족(族)이 살았으며, 당시로는 가장 가난한 빈민과 천민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부처님이 당신의 죽음의 장소로 이곳을 택한 것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자비정신의 발로이기도 했고, 마라족이 독실한 불교신도들이였기도 했기 때문이다. 
붓다는 중인도 쿠시나가라 성 밖의 발제하(跋提河) 서안(西岸)에 있는 언덕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열반에 드신 후 화장하였으며, 때는 BC 483년 음력 2월 15일, 나이는 80세였다. 따라서 쿠시나가라는 부처님 생애와 관련되는 4대 성지의 하나이다. 현재 5세기경의 것이라고 하는 거대한 열반상을 안치한 열반당(涅槃堂)이 있다.

구다라승(漚多羅僧, Uttarāsaṅga)= 가사의 일종으로 중의(中衣) 또는 상의(上衣)라고도 한다. 또는 3의(衣) 가운데 중간의 가치를 지닌다는 뜻에서 중가의(中價衣)라고도 하며, 속옷이 아닌 윗도리이고, 울다라승(鬱多羅僧)의 잘못된 표기입니다.

 

汝不供給(여불공급) 是汝突吉羅罪(시여돌길라죄)!

그대는 드리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대의 돌길라 죄이로다.

 

阿難答言(아난답언) 是時 五百乘車(시시 오백승차) 截流而渡(절류이도)

令水渾濁(영수혼탁) 以是故不取(이시고불취) 截 끊을 절. 渾 흐릴 혼, 

아난이 대답하기를, 그때에 5백 대의 수레가 물을 건너면서 물을 흐리고 더러운 까닭에 물을 뜨지 못했습니다.

 

大迦葉復言(대가섭언) 正使水濁 佛有大神力(정사수탁 불유대신력)

대가섭 존자가 다시 말했으니, 설사 물이 흐리고 더럽더라도 부처님께서는 큰 신통력이 있으셔서 

 

能令大海濁水淸淨(능령대해탁수청정) 汝何以不與(여하이불여)?

큰 바다의 탁한 물도 맑고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시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떠다 드리지 않았는가? 

 

是汝之罪 汝去作突吉羅懺悔(시여지죄 여거작돌길라참회)!

이러함이 그대의 죄이니, 그대는 물러 가서 돌길라죄를 참회하는 의식을 하여야 할것이니라.

 

大迦葉復言(대가섭부언) 佛問汝(불문여) 若有人四神足好修(약유인사신족호수)

可住壽一劫(가주수일겁) 若減一劫(약감일겁) 

대가섭 존자가 다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그대에게 묻기를 ‘어떤 사람이 四神足=네가지 신족통을 잘 닦는다면 수명을 일 겁 동안 머물게 하거나 혹은 일 겁을 줄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다. 

 

4신족(四神足, catvāra-ddhi-pāda)= 사여의족(四如意足)이라고도 하며, 사여의분(四如意分), 사여의(四如意)라고도 한다.
‘신족(神足)’이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기초적으로 필요한 힘, 즉 성취의 기초라 하겠다. 그리고 사신족(四神足)이란 뜻한 대로 할 수 있는 신통(神通)을 얻기 위해 뛰어난 선정에 드는 네 가지 방편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통을 얻기 위해서 뛰어난 선정에 들어야 하고, 그 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네 가지 기반[四神足], 네 가지 기초적으로 필요한 힘이 있어야 한다. 선정(禪定)을 체득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4가지 조건이기도 하다.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욕신족(欲神足)= 선정을 얻고자 간절히 원하는 일. 열반(涅槃)이라는 수행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의욕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욕정(欲定)이라 한다. 
② 근신족(勤神足, 精進)= 더욱 더 선정에 정진하는 일. 뛰어난 선정에 들려고 노력하고 그러한 정진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정진신족이고 팔정도의 정정진(正精進)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얻어진 선정의 상태를 근삼마지(勤三摩地)라고 한다. 
③ 심신족(心神足)= 마음이 흐트러짐 없이 올바로 유지하는 일. 심신족이란 뛰어난 선정에 들려고 하는 마음에 집중하고, 그 마음의 활동을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④ 관신족(觀神足, 思惟)= 지혜에 의해서 깊이 생각하는 일. 마음을 집중해서 깊은 성찰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佛四神足好修(불사신족호수) 欲住壽一劫(욕주수일겁) 若減一劫(약감일겁)

부처님께서는 4신족을 잘 닦으신 분이기에, 수명을 한 겁 동안 머물게 하거나 혹은 한 겁을 줄이고자 하셨던 것이나,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신족통(神足通)으로 훌륭하게 선정(禪定)과 마음이 함께하여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사유할 수 있게 되신 분이기에 마음만 잡수시면 일 겁(동안을 머무실 수 있고 아니면 일 겁(동안의 업을 줄여주시고자 하셨다.)

 

汝默然不答(여묵연부답) 問汝至三 汝故默然(문여지삼 여고묵연)

그런데 그대는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세 차례나 거듭 물으셨거늘 

*부처님은 4신족을 닦으셨기에 수명을 한 겁까지 연장시킬 수 있었으니, 부처님께서는 아난이 부처님이 세상에 더 계시기를 원하는지를 넌지시 물어보신 것이다.

 

汝若答佛(여약답불) 佛四神足好修(불사신족호수) 應住一劫 若減一劫(응주일겁 약감일겁)

그대는 세 차례 다 묵묵히 대답치 않았다. 그대가 만일 부처님께 대답했다면 부처님께서는 4신족을 잘 닦은 분이시니 틀림없이 한 겁 동안 머무셨거나 혹은 한 겁을 줄이셨을 것이다. 

(네가 만약 부처님의 물음에 답을 하였더라면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신통으로 훌륭하게 선정(禪定)과 마음이 함께하여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사유할 수 있게 되신 분이시기에 틀림없이 일 겁(동안 더 머무셨을 것이며 일 겁 동안의 지은 업도 줄여주셨을 것이다.)

 

由汝故(유여고) 令佛世尊 早入涅槃(영불세존 조입열반) 是汝突吉羅罪(시여돌길라죄)!

너로 말미암은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일찍 열반에 드셨으니, 이것이 그대의 돌길라죄이라.

 

阿難言(아난언) 魔蔽我心 是故無言(마폐아심 시고무언)
我非惡心 而不答佛(아비악심 이불답불)

아난이 말하였으니, 마가 저의 마음을 가렸기에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던 것이지 나쁜 생각 때문에 부처님께 대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是時(시시) 大迦葉作是語竟(대가섭작시어경) 住須彌山頂(주수미산정)

撾銅揵稚 說此偈言(과동건치 설차게언) 撾 칠 과, 揵 멜 건, 세울 건, 稚 어릴 치
이때 대가섭(마하가섭) 존자는 말씀을 마치자 수미산 꼭대기에서 있는 구리판=銅揵稚(구리종)을 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구리판(銅揵稚, 구리종, chaṇṭā)= 구리종을 말하는 것으로 안에 종을 칠 수 있는 추가 있는 것이 서양의 종에 가까움. 목어(木魚)는 안에서 두드리는 법이 없고 종은 밖에서 치는 법이 없었거늘 뒤 바뀌어 그게 옳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 말법(末法) -마하바라밀다경


佛諸弟子(불제제자) 若念於佛(약념어불)

부처님의 제자들이여! 만약 부처님을 생각하신다면
當報佛恩(당보불은) 莫入涅槃(막입열반)
마땅히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할지언정, 열반에 들려 하지 마시오.


是揵稚音(시건치음) 大迦葉語聲(대가섭어성) 遍至三千大千世界(편지삼천대천세계)

皆悉聞知(개실문지)

이렇게 판 소리(종소리)와 대가섭 존자의 말씀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울려 퍼져서 모두가 듣고 알 수 있었으며 

 

諸有弟子 得神力者(제유제자 득신력자) 皆來集會 大迦葉所(개래집회 대가섭소)

신통력을 지닌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두 대가섭 존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모였습니다.

 

爾時(이시) 大迦葉告諸會者(대가섭고제회자) 佛法欲滅(불법욕멸)

이때 대가섭 존자가 대중에게 고하였으니,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이 멸하려 하나니, 

 

佛從三阿僧祇劫 種種勤苦(불종삼아승기겁 종종근고) 慈愍衆生(자민중생)

學得是法(학득시법)

부처님께서 삼 아승기겁 동안 여러 가지 고행을 하시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이 법을 배워서 얻으셨으며, 

(일체중생을 한없이 사랑하여 항상 걱정근심 벗어난 편안함으로 즐거운 일을 구할 수 있게 하고자 생각하시어=大慈 이렇게 참된 가르침()을 통해 제법(諸法)이 ‘공(空)’하여서 삼세에 걸쳐 치우치지 않는 것임을 배우도록 하여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도록 하셨다.)

 

佛般涅槃已(불반열반이) 諸弟子知法 持法 誦法者(제제자지법 지법 송법자)

皆亦隨佛滅度(개역수불멸도) 法今欲滅(법금욕멸) 

부처님께서는 이미 반 열반에 드셨으니, 그의 제자들로서 법을 알고, 법을 지키고, 법을 외우는 많은 이들도 모두 부처님을 따라 열반에 들어 가버린다면, 법이 멸하고자 함에 (참된 가르침(法)이 지금 사라지려 함에)

 

未來衆生 甚可憐愍(미래중생 심가련민) 失智慧眼(실지혜안) 愚癡盲冥(우치맹명)

미래의 중생들이 매우 가엾고 불쌍하게, 지혜의 눈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소경이 되리라. 

(미래의 중생은 지혜의 눈을 잃게 되어, 어리석은 눈먼 장님이 될 것이니 매우 불쌍하고 가엾나니,)

 

佛大慈悲 愍傷衆生(불대자비 민상중생) 我曹應當 承用佛教(아조응당 승용불교)

須待結集經藏竟(수대결집경장경) 隨意滅度(수의멸도)

부처님께서는 크신 자비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셨으니, 우리들도 마땅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해 모름지기 경장이 완전히 결집되기를 기다리고 나서 각자의 의사를 좇아 멸도 하도록 합시다.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을 한없이 사랑하여=大慈와, 중생이 오도(五道)를 오가며 여러 가지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한없이 가엾고 안쓰럽게 생각하는=大悲의 마음을 우리들도 마땅히 이어받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교화하여야 하나니, 모름지기 경장(經藏)을 결집하고 마친 다음에야 뜻에 따라 생명의 불길 꺼뜨리고 무여열반의 나루터로 건너가시기 바랍니다.)


諸來衆會 皆受教住(제래중회 개수교주)

모임에 참석하고자 찾아온 모든 대중이 하나같이 가르침을 받아들여 머물러 있었습니다.

 

爾時(이시) 大迦葉選得千人(대가섭선득천인) 除善阿難(제선아난)

盡皆阿羅漢(진개아라한)

그때 대가섭 존자가 가려 뽑으니 그 수가 천 명에 이르렀고, 아난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아라한으로 

 

得六神通 得共解脫(득육신통 득공해탈) 無礙解脫(무애해탈)

육신통(six supernormal powers)을 지녔고, 공해탈(vimokṣa)과 무애해탈(apratighavimokṣa)을 얻었으며, 

 

*육신통(六神通, six supernormal powers)=신통에 해당하는 인도 원어 abhijña(산스크리트어. 이하 ⒮로 표기) 혹은 abhiñña(팔리어. 이하 ⒫로 표기)는 초월적인 지식이나 능력을 말한다. 신(神)은 ‘인간이 아닌 신적이다’는 의미이고, 통(通)은 ‘걸림이 없다’는 뜻이다. 이를 신통(神通) 또는 신통력(神通力)·신력(神力)·통력(通力)이라고도 한다. 육신통은 신족통(神足通)·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숙명통(宿命通)·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육신통은 삼명(三明)에 근거하여 발달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초기 경전에 붓다는 삼명을 성취하여 성불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므로 삼명이 육신통보다 더 이른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육신통은 삼명을 더 자세하게 나누고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공해탈(共解脫, vimokṣa)=‘무아’를 꿰뚫어서 실현한 해탈로 혜해탈(慧解脫)에 멸진정의 심해탈을 얻은 것을 말하며, 구해탈(俱解脫)이라고도 한다. 
*삼해탈(三解脫)= 유위법(제행)의 ‘무상’을 꿰뚫은 해탈을 무상해탈(無相解脫)이라 하고, ‘고’를 꿰뚫어 실현한 해탈을 무원해탈(無願解脫)이라 하며, ‘무아’를 꿰뚫어서 실현한 해탈을 공해탈(空解脫)을 말함.

*무애해탈(無礙解脫, apratighavimokṣa)=무애(無礙)란 막히거나 걸림이 없다는 뜻으로, 중생을 제도하는데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 대자대비한 마음을 말한다. 
*삼무애(三無礙)= 세 가지 무애(無礙)에는
① 총지무애- 보살이 대총지(大總持), 즉 대다라니(大陀羅尼)를 얻어 선법(善法)을 잃지 않고 악법(惡法)을 일으키지 않으며, 일체의 언어제법(言語諸法)을 분별해 남김없이 요달하므로 걸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 
② 변재무애- 보살이 대변재(大辯才)를 얻어 중생의 근기를 따라 대승ㆍ소승의 법을 설해 모두 통달케 하는 것을 말한다. 
③ 도법무애- 보살이 대지혜(大智慧)를 얻어서 능히 대승ㆍ소승의 법과 세간의 언어와 문자를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한량없이 깊고 많은 뜻을 섭지(攝持)한 무애심(無礙心)이 자유인의 마음이다. 무애심은 무소득(無所得)의 마음이고 얻을 바가 없는 마음이다. 소득이란 집착을 말하며, 집착을 떠난 무소득의 마음이 무애심이다. 무애심이 된 후라야 무애행)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미산

 

悉得三明 禪定自在(실득삼명 선정자재) 能逆順行諸三昧(능역순행제삼매)

皆悉無㝵(개실무애)

모두 삼명(three knowledges)을 얻었고 선정이 자재로우니, 거꾸로 들거나 혹은 순서대로 드는 등 모든 삼매를 행함에 (구차제정을 행함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습니다.

(모두 삼명(三明)을 터득하여 선정(禪定)을 통해 일체법에 걸림 없고 막힘없었으며 능히 모든 삼매를 통해 구차제정(九次第定)으로 12연기를 순역으로 관한다거나 8등지(等地)․9차제정(次第定)을 순역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있어 모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3明=3달(三達), 3증법(三證法), 삼명(三明)이라는 용어는 원래 브라만교에서 사용되었던 것인데 붓다가 이 용어를 차용하고 변경하여 다른 의미를 갖게 하였다. 브라만교에서 삼명은 3베다(veda), 곧 리그베다(ṛg-veda)·사마베다(sāma-veda)·야주르베다(yajur-veda)를 아는 지혜를 말한다. 붓다는 삼명을 번뇌를 제거하는 지혜로 사용하였다.

삼명[tri-vidya(산스크리트어), ti-vijjā(팔리어)]은 붓다나 아라한이 가지는 숙명지명(宿命智明)·천안지명(天眼智明)·누진지명(漏盡智明)을 말한다. 지명(智明)이란 vindati(√vij, to know)에서 파생된 명사로 ‘꿰뚫어 앎’이라는 의미다. 각각 전생을 보고, 내생을 보고, 현생에서 번뇌를 모두 끊을 수 있는 지혜이다. 삼명은 천안지·숙명지·누진지라고 부르며, 숙명통(宿命通)·천안통(天眼通)·누진통(漏盡通)이라고도 한다.

① 천안지명, 천안명(天眼明)= 자기나 다른 사람의 미래 세상에 대한 일을 분명하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본다. 천안명은 단순히 거리상으로 멀리 있는 것을 보는 생리적 능력이라기보다 차라리 세계관에 가까운 지혜를 말한다. 즉, 일체 중생이 무명(無明)으로 인해 고통에 쌓여 있음을 여실하게 보는 지혜와 같다. 

② 숙명지명, 숙명명(宿命明)= 자기나 다른 사람의 지난 생의 일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모두 다 아는 지혜를 말한다. 한 생, 두 생, 과거 여러 생에 걸친 우리의 전생을 숙세(宿世)라고 한다. 즉, 숙명통은 겹겹이 쌓인 우리 과거 전생의 일을 알고, 현재의 일을 명료하게 알고, 미래의 모든 일들을 추단해 아는 지혜를 말한다. 

③ 누진지명, 누진명(漏盡明)= 번뇌를 끊고 생사의 속박을 벗어나 열반의 이치를 깨달아 얻는[證得] 지혜를 말한다. 번뇌가 멸진하여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에서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불교에서는 세 번째 누진지가 가장 중요시 된다. 앞에 나열했던 천안명을 통해서 육도 중생의 모든 현실적인 삶을 관조한 다음, 숙명명을 통해서 숙세의 모든 인과관계를 꿰뚫어 보게 되면, 오늘의 자기 존재를 모두 알게 된다. 즉, 인간존재의 연기적 인과관계를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며, 존재를 둘러싼 고(苦)의 원인을 환하게 꿰뚫어 보게 된다. 그렇게 원인과 결과를 잘 알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다 끊을 수 있고, 그래서 해탈할 수 있게 된다.
초기 불교 경전에 의하면 삼명(三明)으로 붓다는 정각을 성취하였다. 순차적으로 세 가지 지명을 증득하고 정각을 이루는데, 초야에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인 숙명지를, 중야에 중생의 생사를 볼 수 있는 천안지를, 후야에 번뇌의 소멸을 이룰 수 있는 누진지를 성취하여 성불하였다. 삼명은 사선(四禪)에 의하여 발생한다. 사선을 순차적으로 증득한 뒤, 마지막 제4선에서 삼명을 성취하게 된다. 사선은 선정(禪定)·삼매(三昧)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선에 의해 맑아진 마음 상태에서 세 가지 지혜를 얻고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삼명경(三明經, Tevijja Sutta)』에서 삼명을 갖춘 브라만(tevijja-brahma)은 세 가지 베다에 통달한 브라만을 가리킨다. 브라만교에서 삼명은 오로지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 계급에게만 알려지는 것으로 비밀스러운 것이다. 반면에 불교에서의 삼명은 바르게 수행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개방적이다. 브라만교에서 삼명을 갖춘 브라만은 범천(梵天)에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붓다는 삼명 브라만들이 다섯 가지 욕망에 물들고 애착이 굳어져서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신라의 승려 원측(圓測)은 그의 저서인 『인왕경소(仁王經疏)』에서 숙명지를 전생을 아는 지혜로, 천안지를 내생을 아는 지혜로, 누진지를 열반을 아는 지혜로 주석하고 있다.
삼명에 다시 3가지 신통을 합하여 육신통(六神通)이라고 한다. 육신통은 신족통(神足通)·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숙명통(宿命通)·누진통(漏盡通)을 지칭한다.

 

誦讀三藏(송독삼장) 知內外經書(지내외경서) 諸外道家 十八種大經(제외도가 십팔종대경)

盡亦讀知 皆能論議(진역독지 개능논의) 降伏異學(강복이학)

삼장을 읽어 외우고, 안팎의 경서를 알아 외도들의 열여덟 가지 기본경전=大經도 모두 읽어서 알았으며, 모두 토론=論議으로써 외도=異學들을 다 항복시켰습니다.

(삼장(三藏)을 모두 외워 읽어낼 수 있으며, 안팎의 경서를 알고 모든 외도들의 열여덟 종의 기본 경전(經典)도 익히 알아 하나같이 논의(論議)에 능하였으므로 온갖 삿된 학문을 모조리 항복시킬 수 있는 분들이었던 것입니다.)

 

問曰(문왈) 是時 有如是等 無數阿羅漢(시시 유여시등 무수아라한)

何以故正選取千人(하이고 정선위천인) 不多取耶(불다취야)?

묻나니, 이때 이와 같은 아라한이 헤아릴 수 없이 많거늘어찌하여 천 명만 가려 뽑고 더 이상 뽑지 않았습니까?

 

答曰(답왈) 頻婆娑羅王得道(빈바라사왕득도) 八萬四千官屬 亦各得道(팔만사천관속 역각득도)

답하나니, 빈바사라왕(Bimbisāra)이 도를 얻었을 때 8만 4천의 궁인과 관리=官屬들도 각각 도를 얻었으며, 

(빔비사라왕이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에 들어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자팔만 사천의 궁인과 관리들도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에 들어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 Bimbisāra.)=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마가다국을 통치하던 왕이며, 아사세의 부왕이기도 하다.

 

是時 王教勅宮中(시시 왕교칙궁중) 常設飯食 供養千人(상설음식 공양천인)

阿闍貰王 不斷是法(아사세왕 부단시법)勅조서 칙

이때 왕은 궁중에 칙령을 내려 항상 밥과 반찬을 마련해 놓고 천 사람에게 음식을 공양하였는데, 아사세(Ajātaśatru) 왕도 이 법을 끊지 않고 시행하였으며,


아사세(阿闍貰, Ajātaśatru)=중인도 마갈타국의 왕. 阿闍多說咄(돌)路·阿社多設咄路라 음역. 未生怨이라 번역. 아버지는 頻婆娑羅(빈비사라)왕이며 어머니는 韋提希(위제희)라고 한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에 점을 치니 이 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 하여 未生怨(미생원)이라 한, 즉 나기 전에 원한을 맺었다는 뜻이다. 왕이 늙도록 아들이 없음을 걱정하여 신에게 기원하였는데 한 점술가가 말하기를 「비부라산에 있는 선인이 죽으면 태어난다」고 하였다. 왕은 그 때를 기다리지 않고 선인을 죽이니 부인이 곧 아기를 배었다. 그래서 아이가 원한을 품었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높은 누각을 짓고 그 위에서 낳아 떨어뜨렸으나 한 손가락만 잘라졌을 뿐 다치지 않았다고 하여 無指·折指(무지, 절지)라고 이름한다. 장성한 태자는 뒤에 새 교단을 조직하려는 야심을 가진 제바달다의 꼬임을 받아, 부왕을 죽이고 어머니를 가두는 등, 역적죄를 감행하였다. 즉위 후에 작은 나라들을 합병하고 인도를 통일할 기틀을 세웠고, 후에 몸에 종기가 번져 부처님께 가서 과거의 죄를 참회하니 곧 나았다고 하며, 부처님께 귀의하여 교단의 보호자가 되어 불경을 첫 번째 결집할 때 도와주어 대사업을 왕성케하였으며, 불멸 후 24년에 죽었다.

 

爾時(이시) 大迦葉思惟言(대가섭사유언) 그때마하가섭존자가 사유하기를 

 

若我等常乞食者(약아등상걸식자) 當有外道 强來難問(당유외도 강래난문)

廢闕法事(폐궐법사) 闕 대궐 궐

‘우리들이 항상 걸식만 하면, 외도들이 와서 難問=억지 질문(어려운 질문)을 내어서 법사(vidhi)를 폐지하여야 하게 될지도 모르니, 

 

법사(法事, vidhi)=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공양(供養) 등의 행사

 

今王舍城 常設飯食 供給千人(금왕사성 상설반식 공급천인)

是中可住 結集經藏(시중가주 결집경장)

지금 왕사성에서 항상 밥과 반찬을 베풀어 천 사람에게 공양하고 있으니, 여기에 머물면서 경장을 결집하면 되리라.

 

以是故 選取千人(이시고 선취천인) 不得多取(불득다취)

이러한 까닭에 천 명의 사람만 가려 뽑고 더 이상 뽑지 않았던 것입니다.

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諸大阿羅漢 各各隨意(제대아라한 각각수의) 於諸山林 流泉谿谷(어제산림 유천계곡)

處處捨身而般涅槃(처처사신 이반열반)

모든 대 아라한도 각자의 뜻에 따라 여러 산림과 물과 샘이 있는 계곡 등 곳곳에서 몸을 버리어 반열반에 들어가고

 

更有諸阿羅漢(갱유제아라한) 於虛空中 飛騰而去(어허공중 비등이거)

또 그 밖의 아라한도 허공으로 높이 날아올라 세상을 등지는 것이었습니다.

 

譬如鴈王 現種種神力(비여안왕 현종종신력) 令衆人心信淸淨(영중인심신청정)

然後般涅槃(연후반열반) 鴈 기러기 안 

비유하자면 마치 부처님=鴈王께서 그러하셨듯이, 여러 신통력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맑고 깨끗한=淸淨한 믿음을 지니게끔 한 다음에 반열반에 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안왕(雁王)= 부처님. 기러기의 왕이 모든 기러기들을 바른 길로 이끌 듯이 부처님 또한 그러하셨기에 안왕이라 칭한 것.

六欲天乃至 遍淨天等(육욕천내지 변정천등) 見諸阿羅漢 皆取滅度(견제아라한 개취멸도)

各心念言(각심념언)

6욕천(kāma-loka)에서 변정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아라한들이 다 열반에 드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6욕천(欲天)=욕계(欲界) 6도(六道)는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이렇게 여섯인데, 이 중의 천상도(天上道)에 욕계 육천(6욕천)이 있다. 즉 욕계에 있는 여섯 욕망의 하늘(kāma-loka)을 말한다.
변정천(遍淨天, śubhakṛtsnāḥ-devaḥ)=
색계의 하늘로 두루 즐거움을 향수하는 신들의 세계이다. 제3선의 경지에 배대된다.

색계(色界)는 욕심을 떠나 욕심이 전혀 없어서 마음에 평정이 가득 넘치는 단계로서, 이를 선정(禪定)과 연관시켜 천상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여기에서는 4가지 선정이 전개된다. 즉, 초선(初禪), 제이선(第二禪), 제삼선(第三禪), 제사선(第四禪)의 제 삼선부터 소정천(小淨天), 무량정천(無量淨天), 변정천(遍淨天) 3개의 하늘이 펼쳐지고, '화엄경'에서는 이곳의 주인을 변정천(遍淨天)이라 부른다.

 

佛日旣沒(불일개몰) 種種禪定 解脫 智慧 弟子光亦滅(종종선정 해탈 지혜 제자광역멸)

‘부처님의 해=佛日도 이미 떠나셨고, 갖가지 선정ㆍ해탈ㆍ지혜를 갖춘 제자들의 광채도 사라져 가는구나. 

(부처님은 해와 같으신데 이미 떠나셨고 갖가지 선정과 해탈 지혜를 지닌 제자분들도 앞서 생명의 불길 꺼뜨려 무여열반의 나루터로 건너가시는구나.)

 

是諸衆生 有種種婬怒癡病(시제중생 유종종음노치병) 是法藥師(지법약사)

輩今疾滅度(배금질멸도) 誰當治者(수당치자)?

이 많은 중생들에게는 갖가지 음욕=淫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의 병이 있는데, 법의 약사들이 사라져가니, 

이제 누가 그들을 고쳐 주겠는가?

 

無量智慧大海中 生弟子蓮華(무량지혜대해중 생제자연화) 今已乾枯(금이건고)

法樹摧折 法雲散滅(법수최절 법운산멸)

무량한 지혜의 큰 바다에서 제자라는 연꽃이 피어났건만, 이제 이미 말라 버렸고, 참된 가르침=法의 나무도 꺾이고 부러졌으며, 참된 가르침=法의 구름은 산산이 흩어지고,

 

大智象王旣逝(대지상왕기서) 象子亦隨去(상자역수거)

큰 지혜의 코끼리왕이 떠나시자 아기 코끼리까지 따라가 버리고, 

 

法商人過去(법상인과거) 從誰求法寶(종수구법보)?

참된 가르침=法을 파는 상인도 이미 떠났으니, 누구에게서 법의 보배를 구하리오?

 

如偈說(여갈설) 마치 다음과 게송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佛已永寂入涅槃(불이영적입열반) 諸滅結衆亦過去(제멸결중역과거)

부처님이 이미 영원한 열반에 드셨고, 모든 번뇌를 멸한 무리들도 역시 떠나 버렸으니,

世界如是空無智(세계여시공무지) 癡冥遂增智燈滅(치명수증지등멸) 遂 드디어 수
세상이 이와 같이 텅 비어 지혜로운 이 없게 되었으니, 어리석음이 늘어나고 지혜의 등불도 곧 꺼지리라.

 

爾時 諸天禮摩訶迦葉足 說偈言(이시 제천에마하가섭족 설게언)
그때 모든 하늘의 신들이 마하가섭 존자의 발에 예를 올리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耆年欲恚慢已除(기년욕애만이제) 其形譬如紫金柱(기형비여자금주) 耆 늙은이 기 

어른께서는 욕심과 성냄과 교만 모두를 제하시고, 그 형상은 자색의 황금 기둥=紫金柱과 같으시니.
上下端嚴妙無比(상하단엄묘무비) 目明淸淨如蓮華(목명청정여연화)

위아래 단정하여 묘함은 견줄 이 없으시고, 그 눈은 맑고 밝아 마치 연꽃과 같습니다.


如是讚已(여시찬이) 白大迦葉言(백대가섭언)

이와 같이 찬탄을 하고는 대가섭(마하가섭) 존자에게 말하였으니,

 

大迦葉(대가섭, Mahākāśyapa)=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두타제일. 마하카샤파(Mahā-kāśyapa)가 본명이고 한역해 마하가섭 외에 가섭파(迦葉波), 대가섭(大迦葉), 대음광(大飮光), 음광승존(飮光勝尊)이라고도 부른다. 불멸 후 부처님 제자들을 이끈 영도자 역할을 했으며, 제1차 불전결집을 주도했고, 부처님 법을 이은 제1대 조사(祖師)이다. 
 

大德迦葉(대덕가섭) 仁者知不(인자지부)? 法船欲破 法城欲頹(법선욕파 법성욕퇴)

頹 무너질 퇴

대덕 가섭존자시여, 그대는 아십니까? 법의 배가 깨어지려 하고, 법의 성이 무너지려 하고, 

 

法海欲竭 法幢欲倒(법해욕갈 법당욕도) 法燈欲滅(법등욕멸)

법의 바다가 고갈되려 하고, 법의 깃대가 부러지려 하고, 법의 등불이 꺼지려 하고, 

 

說法人欲去(설법인욕거) 行道人漸少(행도인점소) 惡人力轉盛(악인력전성)

법을 연설하는 사람이 떠나려 하며, 도를 행하는 사람이 차츰 적어지고, 악한 사람의 힘이 더욱 극성스러워지려 합니다.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을 실은 배가 부서지려 하고 있고참된 가르침()을 품은 성()이 무너지려 하고 있으며참된 가르침()의 바다는 말라가고 있고 참된 가르침()의 깃발은 부러지려 하고 있으며참된 가르침()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고참된 가르침()을 일러주던 사람들은 떠나려 하고 있으며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에 대해 자세히 살피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더럽고 추한 짓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나니) 

 

當以大慈建立佛法(당이대자건립불법)

마땅히 큰 자비를 베푸시어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을 바로 세워 주소서!


爾時(이시) 大迦葉心如大海(대가섭심여대해) 澄靜不動 良久而答(징정부동 양구이답)

澄 맑을 징 

이때 대가섭 존자의 마음이 바다같이 맑아져서 요동함이 없이 한참을 있다가 대답했으니,

(그때 마하가섭존자의 마음은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맑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不動이므로 잠시 가만히 계시다가 답하셨습니다.)

 

汝等善說(여등선설)! 實如所言(실여소언) 世閒不久 無智盲冥(세간불구 무지망명)

於是大迦葉 默然受請(여시대가섭 묵연수청)

그대들의 말씀 참으로 훌륭하여이다! 진실로 그대들이 말한 바대로, 지혜가 없게 되어 눈먼 장님이 되고 어리석게 될 것이니, 이렇게 대가섭 존자는 침묵으로 청을 받아들이니, 

 

爾時 諸天禮大迦葉足(이시 제천예대가섭족) 忽然不現 各自還去(홀연불현 각자환거)

그때 모든 하늘의 신들은 마하가섭 존자의 발에 예를 올리고 홀연히 사라져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是時 大迦葉思惟(시시 대가섭사유)

이때 대가섭=마하가섭 존자는 사유하였으니,

 

‘我今云何使(아금운하사) 是三阿僧祇劫(시삼아승기겁)

難得佛法 而得久住(난득불법 이득구주)?

‘내가 지금 이 3아승기겁이 지나도록 만나기 어려웠던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을 얻게 되었거니와, 어찌하여야 오래도록 세간에 머무르게 할 수 있을까? 하였습니다.

 

如是思惟竟(여시사유경) 我知是法可使久住(아지시법가사구주)

이와 같이 생각=思惟를 끝내고는 ‘나는 이 법을 오래도록 세간에 머물 수 있게끔 하여야 할 것이거니와,

 

應當結集修妒路(응당결집수투로)阿毘曇 毘尼 作三法藏(아비담 비니 작삼법장)

妒 강새암할 투

마땅히 수투로(Sūtra, 경전)와 아비담(아비달마,대법, 교법)과 비니(계율)를 결집해서 삼장(경, 율, 논)을 지어야 하리라. 

 

*수투로(修妒路, Sūtra)=수다라(修多羅)라고 하며 경전(經典)에 대한 음역.

*아비담(阿毘曇, abhidharma)= 또는 아비담마(abhidhamma)의 음사. 대법(對法) 승의법(勝義法)이며, 론(論) 또는 론서(論書).

아비달마(Abhidharma)’란 불교학의 역사에 있어서 한 시대에 국한해서 부르는 말이다. 
즉, 부파불교시대에 불교를 연구한 학문을 아비달마라 하고, 부파불교시대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 한다. 
‘달마(dharma-다르마)’라는 말은 진리란 말로 불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인도사회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나,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 혹은 법(法), 진리란 말로 사용된다. 
아비달마(Abhidharma)라는 말은 불교 독자적인 용어인데, 문자적으로 보면, ‘법(法)’으로 번역되는 dharma에다가 ‘~에 대해’를 뜻하는 접두어 ‘abhi-’가 첨가돼 만들어진 단어이다. 
따라서 아비달마의 뜻은, 「abhi + dharma = 대(對) + 법(法)」으로서 대법(對法)이라 하겠는데, ‘교법(dharma)에 대한(abhi-) 연구’라는 의미이다. -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학습⋅연구’라는 의미이다. 
불교 진리[법(法)]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해석을 아비달마라 했으며, 현장(玄奘) 법사는 아비달마를 ‘대법(對法)’이라 번역했다. 실제에 있어서는 경전 중에 난해한 문구를 주석하기도 하고, 간단한 경전을 상세하게 해석 설명하기도 하며, 여러 경전에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교설들을 한데 모아 교리 체계를 조직하기도 한 것이 아비달마이다. 
아비달마를 한 마디로 말하면, 부처님 가르침(법)의 표준화 작업이라 할 수도 있다. 
아비달마들로 이루어진 책을 논서(論書)라 하는데, 이런 논서들은 B.C. 2세기 무렵 아소카왕(Asoka, B.C. 304~232)시대부터 작성되기 시작했고, 점차 많은 논서가 작성되고, 기원 전후에는 그것들을 모은 논장(論藏)이 성립돼,「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이라는 삼장이 구비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삼장(三藏)이 불교문헌의 총칭이 됐다. 말하자면 삼장이 곧 대장경이다. - 아미산

*비니(毘尼,毘尼, 毗尼, vinaya)= 율(律), 계율, 교단의 규범. 많은 경에서는 이 비니(毗尼)보다는 ‘비나야(毘奈耶)’로 번역되어 쓰였다.

삼장(三藏)=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 흔히 '경ㆍ율ㆍ논 삼장이라 한다.
①경장(經藏, Sutta Pitaka)은 교법(法, Dhamma), 즉 부처님 가르침을 다섯 부분(다섯 묶음/five Nikayas)으로 나누어 5부로 구성돼 있다. 
②율장(律藏)은 승가 즉 교단생활에 관한 금율(禁律)과 행지(行持)를 규정한 것이다. 불멸 후 200- 300년 이후에 성립됐을 것으로 본다.

③논장(論藏, Abhidhamma Pitaka)은 경장에 설해진 법에 대한 해석과 철학적 논의이다. 많은 논서가 있으나 대표적인 논장은 칠론(七論)이다. 

 

如是佛法可得久住(여시불법가득구주) 未來世人可得受行(미래세인가득수행)

그러면 불법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을 것이며, 미래세의 사람들이 받들어 행할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이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이 세간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되면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이거니와 미래세의 사람들도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이고 자세히 살펴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 佛世世勤苦 慈愍衆生故(불세세근고 자민중생고)

學得是法 爲人演說(거득시법 위인연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세세에 부지런히 고행을 하시며,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까닭에 이 법을 배워 얻으셨으며, 사람들에게 설하여 주셨기에 

 

我曹亦應承用佛教 宣揚開化(아조역응승용불교 선양개화)

우리들도 이제 마땅히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佛教=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선양하고 펼쳐야 되기 때문이라.

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是故當知 是佛所教(시고당지 시불소교) 非佛自言“如是我聞”(비불자언'여시아문')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바로서,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하신 것은 아니며,

 

佛一切智人 自然無師故(불일체지인 자연무사고) 不應言“我聞”(불응언'아문')

부처님은 온갖 지혜=一切智를 갖추신 분이라, 자연히 스승이 없는 까닭에 ‘내가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라. 

 

若佛自說“如是我聞”(약불자설'여시아문') 有所不知者 可有此難(유소불지자 가유차난)

만일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하셨다면 아직 알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 됨에, 이는 힐난을 받게 될것이나,

 

阿難問佛 佛教是語(아난문불 불교시어)

아난이 부처님께 물으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하게 하셨던 것으로, 

 

是弟子所言“如是我聞”(시제자소언'여시아문') 無有咎(무유구)

이는 제자들이 말한 바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함은 허물이 되지 않느니라.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여쭙자 부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통해 가르침을 내리셨던 것으로 이에 제자 되는 이가 그 말씀을 들은 대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하였으니, “라고 한 것에 허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復次 欲令佛法 久住世閒故(차 욕령불법 구주세간고)

또한 불법을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또한,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이 세간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끔 하고자 하는 까닭에)

 

長老摩訶迦葉等 諸阿羅漢 問阿難(장노마하가섭등 제아라한 문아난)

마하가섭 장로 등 아라한들이 아난에게 묻기를,

 

佛初何處說法(불초하처설법)? 說何等法(설하등법)?

부처님께서 최초에 어디서 설법을 하셨는가? 어떤 법을 말씀하셨는가?

(장로 마하가섭을 비롯한 모든 아라한이 아난존자에게 “부처님께서 최초에는 어느 곳에서 설법을 하셨으며 법을 설하실 적에는 어떻게 하셨느냐?”등등을 물었던 것입니다.)

阿難答 “如是我聞(이난답 여시아문) 一時 佛在波羅捺國(일시 불재바라나국)

仙人鹿林中(선인녹림중) 爲五比丘說 是苦聖諦(위오비구설 시고성제)

아난 존자가 대답하기를, 이와 같이 내가 들었습니다. 어느 때=一時 부처님께서 바라나국(Bārāṇasi) 선인들이 머물던 사슴 숲(Mṛgadāva,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고성제를 말씀하셨으니, 

 

바라나국(波羅捺國, Bārāṇasi)=Baraṇa강과 Asi강 사이에 있는 도시로 갠지스강의 북쪽 연안, 현재의 베나레스(Benares),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남동부 갠지스강 연안에 위치한 인구 100만의 고대도시이다. 힌두교 7개 성지(聖地)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며, 많은 순례자가 연중 끊임없이 모여들어 갠지스강에서 목욕재계를 한다. 
이들 순례자를 위해 갠지스강변에는 길이 약 4km에 걸쳐 가트라는 계단식 목욕장 시설이 마련돼 있다. 바라나시는 비단 힌두교 성지일 뿐만 아니라, 시크교 ․ 자이나교 ․ 불교 등에서도 성지로 치고 있어서 한층 종교적 색채가 짙은 도시이다. 
붓다께서 성도 후 바라나시 근교 이시빠따나(Isipatana, 仙人住處)에 있는 녹야원(鹿野苑, 미가다야/Migadaya)으로 가서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만나 최초로 설법을 한 곳이다. 즉, 최초로 법의 바퀴[법륜(法輪)]를 굴린 곳[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이므로 불교 4대 성지의 하나이다. 붓다 당시에 바라나시는 카시(Kashi)왕국 수도였다. 따라서 예전엔 바라나시를 카시(Kashi)라고도 했다.

녹야원(鹿野苑 Mṛgadāva)의 다섯 비구 - 초전법륜(初轉法輪) - 

①꼰단냐(Kondanna:倧蓮如) - 카운딘야(Kauṇḍīnya), 콘다냐, 교진여(橋陣如), 아야교진여(阿若橋陳如).
②와빠(Vappa:婆頗) - 바슈파(Bāṣpa), 바파(婆頗, Vappa), 바수라, 뱌시파, 십력가섭(十力迦葉). 
③밧디야(Bhaddhiya:婆提) - 바드리카(Bhadrika), 발제(跋提), 바제(婆提)
④마하나마(Mahanama:摩訶男) - 마하나만(Mahānāman) -마하마남, 마하남. 부처님의 사촌동생 구리태자(俱利太子). 
⑤아싸지(Assaji:阿說示) - 아슈와지트(Aśvajit), 아슈바짓(Asvajit), 알비(頞鞞), 아설시, 마승(馬勝).   

我本不從他聞(아본불종타문) 法中正憶念 得眼 智 明 覺(법중정억념 득안 지 명 각)

내가 본래 다른 이에게 들은 적이 없는 법이었으며, 가르침을 바르게 억념하니, 눈과 지혜가 밝아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고성제(苦聖諦)= 무상(無常((무아(無我)를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참된 가르침()에 대해 뒤바뀌지 않도록 바르게 기억하고 생각하여 혜안을 통해 밝은 반야지혜로 제법(諸法)을 깨달아 그 실상(實相)을 터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성제(苦聖蹄)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는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로서, ()를 규명함을 말한다. 괴로움으로 충만해 있는 고의 근본원인은 생로병사 4(四苦), 줄여서 생사, 생사는 윤회전생 한다.

생로병사 4고에 애별이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를 더해 8(八苦)를 말하기도 한다.  

 

是經 是中應廣說(시경 시중응광설) 如'集法經'中廣說(여'집법경'중광설)

이 경에 대하여 널리 자세시 말씀하셨으니, 마치 '집법경'에서 설하신 것과 같습니다.

佛入涅槃時 地六種動(불입열반시 지육종동) 諸河反流 疾風暴發(제하반류 질풍폭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모든 강과 하천의 물이 거꾸로 흘렀으며, 질풍과 폭풍이 갑자기 일어나고, 

 

六種動(육종동)=여섯 가지 진동이란, 땅이 움직이는=動(동), kampita, 일어나는=起(기), calita, 솟아오르는=湧(용), vedhita, 크게 부딪쳐 소리내는=擊(격), garjita, 은은히 소리 내는=震(진), kṣubhita, 포효하듯 소리를 내는=吼(후), raṇita을 말한다.

'대지도론' 제14권에서는 “동쪽에서 솟아 서쪽으로 빠지고, 서쪽에서 솟아 동쪽으로 빠지고, 남쪽에서 솟아 북쪽으로 빠지고, 북쪽에서 솟아 남쪽으로 빠지고, 가에서 솟아 중간으로 빠지고, 중간에서 솟아 가로 빠진다(東涌西沒西涌東沒. 南涌北沒北涌南沒. 邊涌中沒中涌邊沒)”고 말함.

湧 샘솟을 용, 擊 칠 격, 吼 울 후

 

黑雲四起 惡雷掣電(흑운사기 악뇌제전) 雹雨驟墮 處處星流(박우취타 처처성류)

掣 억누를 철, 雹 우박 박, 驟 달릴 취, 달릴 추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났으며, 모진 우레와 번개가 일어났으며, 우박과 폭우가 갑작스레 몰아쳤으며, 곳곳에서 별이 떨어지고, 

 

師子惡獸哮吼喚呼(사자악수효후환호) 諸天世人皆大號咷(제천세인개대호도)

諸天人等皆發是言(제천인등개발시언)

獸 짐승 수, 哮 으르렁거릴 효, 성낼 효, 吼 울부짖을 후, 喚 부를 환, 咷 울 도,

사자를 비롯한 모진 짐승들이 포효하며 소리 높여 울부짖고, 하늘과 세간의 사람들 모두 크게 울부짖으며 한결같이 말하기를, 

 

佛取涅槃 一何疾哉(불취열반 일하질재) 世閒眼滅(세간안멸)

‘부처님께서 열반을 취하심이 어찌 이렇게 빠르십니까? 세상의 눈이 사라졌도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當是時閒 一切草木(당시시간 일체초목) 藥樹 華葉一時剖裂(약수 화엽일시부렬)

剖 쪼갤 부, 裂 찢을 렬, 

이 때에 세간의 온갖 초목과 약수의 꽃과 잎이 일시에 찢어지고, 

 

諸須彌山王 盡皆傾搖(제수미산왕 진개경요) 海水波揚 地大震動(해수파양 지대진동)

山崖崩落(산애붕락) 崖 벼랑 애, 언덕 애, 崩 무너질 붕

모든 수미산왕을 비롯한 모든 왕이 모두 비스듬히 쓰러지느라 흔들리고, 바닷물은 파도가 솟구치고, 땅은 크게 진동하였으며, 

 

諸樹摧折 四面煙起(제수최절 사면연기) 甚大可畏(기대가외)

산과 벼랑이 무너져 내리고, 모든 나무들이 갑자기 꺾어져 부러졌으며, 사방에서 연기가 올라와서 몹시 두려웠습니다.

 

陂池江河盡皆嬈濁(피지강하개요탁) 彗星晝出(혜성주출)

陂 비탈 피, 嬈 번거로울 뇨, 약할 뇨, 濁 흐릴 탁, 彗 비 혜, 살별 혜

둑과 강, 모두가 흔들려 탁해지고, 혜성이 낮에도 나타났으니, 

(못과 강하천의 둑이 무너져 물이 마르고 모든 것들이 어지럽고 더럽게 변하였으며 실별이 대낮에 나타났습니다.)

 

諸人啼哭 諸天憂愁(제인제곡 제천우수) 諸天女等 郁伊哽咽(제천여등 경연)

涕淚交流(체루교류)

啼 울 제, 哭 울 곡, 郁 성할 욱, 답답할 울, 哽 목멜 경, 咽 삼킬 연,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울고, 모든 하늘이 수심에 잠겼으며, 모든 천녀들이 두드러지게 오열하면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으며,

 

諸學人等 默然不樂(제학인등 묵연불락)

모든 학인들이 묵연히 침통해 하였고, 

(제법(諸法)이 ‘공(空)’하여서 삼세에 걸쳐 치우치지 않는 것임을 배우는 모든 사람=學人들이 즐거움이 사라져서 말없이 가만히 있었으며,)

 

諸無學人 念有爲諸法 一切無常(제무학인 념유위제법 일체무상)

모든 무학 지위의 사람들은 유위의 법은 일체가 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제법(諸法)이 ‘공(空)’하여서 삼세에 걸쳐 치우치지 않는 것임을 배워 아무런 삿된 견해가 없게 된 사람=無學人도 일체법무상(一切法無常)이라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만을 다소곳이 새길 뿐이니,)


如是天 人 夜叉 羅剎(여시 천 인 야차) 犍闥婆 甄陁羅(건달바 견다라)

摩睺羅伽 及諸龍等(마후라가 급제용등) 皆大憂愁(개대우수)

이와 같이 하늘ㆍ사람ㆍ야차(yakṡa)ㆍ나찰(Rākṣasa)ㆍ건달바(Gandharva)ㆍ견다라(Kiṃnara)ㆍ마후라가(mahoraga) 및 용 등이 모두 큰 근심에 빠졌으며, 

 

야차(夜叉, yakṡa.) 팔부신중(八部神衆)---팔부중(八部衆), 팔부신(八部身) 중의 하나로 어딘가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존재를 가리키던 말이다. 불교에 들어와서는 팔부대중의 하나가 되어, 비사문천(毘沙門天)의 권속으로 북방을 수호한다고 여겨졌다. 또한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로 알려져 있다.

나찰(羅刹, Rākṣasa)= 악귀(惡鬼)의 일종으로, 힌두 신화에 나오는 악마나 악귀의 전형이다.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는 능력이 있어 동물이나 괴물로 변하기도 하고, 여자의 경우에는 아름다운 여자로도 변한다. 해가 진 후, 특히 초승달이 뜬 캄캄한 밤에 가장 힘이 세지만 해가 떠오르면 쫓겨간다. 특히 제물과 기도를 싫어한다. 나찰 중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이들의 왕으로 머리가 10개인 라바나이다. 락사시, 즉 여자 악마인 푸타나는 크리슈나가 어린아기일 때 독이 있는 자기의 젖을 먹여 죽이려고 한 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크리슈나가 젖을 빨아 죽게 된 것은 오히려 푸타나 자신이었다.
라크샤사가 다 똑같이 사악한 것은 아니어서, 어떤 라크샤사는 야크샤(자연의 정령)들과 더 유사한 반면, 어떤 라크샤사들은 전통적으로 신에게 대항해온 아수라와 비슷하다. 그러나 대개 라크샤사라 하면 공동묘지를 떠돌며 사람의 살을 파먹고 마술이라도 부린 듯이 소젖을 바싹 짜 마셔버리는 악마들을 가리킨다.
라크샤사는 〈라마야나 Rāmāyaṇa〉를 그린 라자스탄의 그림들에 힘차게 묘사되어 있다. 전형적인 조각에서의 라크샤사는 무섭게 튀어나온 이빨, 보기 흉한 눈, 기이하게 꼬불꼬불한 눈썹을 지닌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여러 가지 끔찍한 무기들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건달바(犍闥婆, Gandharva)= 인도신화에서 천상의 신성한 물 소마(Soma)를 지키는 신이며, 그 소마는 신령스런 약으로 알려져 왔으므로 건달바는 훌륭한 의사이기도 하며, 향만 먹으므로 식향(食香)이라고도 한다.

천룡팔부 중의 하나로, 긴나라와 더불어 제석천을 받들고 음악을 연주하며, 그 음악으로 여성을 매료시킨다고 한다. 심향(尋香)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견다라(甄陀羅, Kiṃnara)= 반인반수의 뿔 달린 귀신이다. 긴나라(緊那羅)라고도 하며, 본래 악사(樂士)의 기능을 담당한 신이었다가 팔부신중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였다. 군복을 입은 모습에 왼손에 삼차극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를 기른, 단정한 형태로 서 있다. 의인(擬人) 혹은 인비인(人非人), 가신(歌神), 악신(樂神)으로 한역되며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명치 않다. 제석천이 노래와 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위한 가무의 신이다.

마후라가(摩睺羅伽, mahoraga.)=‘몸집이 크고 배로 기어 다니는 존재’라는 뜻으로 곧 뱀신을 가리키며, 지룡(地龍)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가진 음악의 신으로 땅속의 모든 요귀를 쫓아내는 임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뱀을 상징하는 신으로 땅속의 마귀를 진압하는 신중이다. 석굴암에서는 오른 손으로 칼을 들고 있고, 왼손은 자연스레 구부려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있다. 

 

諸阿羅漢 度老病死海 心念言(제아라한 도노병사해 심념언)

늙음ㆍ병듦ㆍ죽음의 바다를 건너 간 모든 아라한들은 마음속으로 이러한 생각을 했으니,

(모든 아라한이 늙고 병들어 마침내 죽게 되는 생사고해(生死苦海벗어나 무여열반의 나루터에 이르렀기에 마음속으로 새기어 말하기를,)

 

已渡凡夫恩愛河(이도범무은애하) 老病死劵已裂破(노병사승이열파)

이미 범부가 은혜와 애욕=恩愛의 대하를 건너, 노ㆍ병ㆍ사의 문서를 찢어버렸네,

 

見身篋中四大蛇(견신협중사대사) 今入無餘滅涅槃(영입무여멸열반)篋 상자 협

이 몸이라는 상자 속에 4대라는 큰 뱀이 담긴 것을 보게 하였거니와, 이제 생명의 불길 꺼뜨리시어 무여멸열반(nirupadhiśeṣanīrvaṇa)에 드셨구나.

 

무여멸열반(無餘滅涅槃)=열반은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유여열반이란 아라한의 도를 이루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을 완전히 제거해 다시는 생사를 윤회하는 않는 성자의 도를 이루었지만 아직 몸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무여열반이란 아란한의 도를 이룬 성자가 죽음의 세계로 여여하게 들어가서 다시는 형상의 몸을 받지 않는 적멸의 상태에 이른 것을 말한다. 이를 반열반(般涅槃)이라고도 한다. 반열반에서 ‘반(般)’자는 가장 수승하다는 뜻이다. 가장 수승한 것은 바로 윤회에 물들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셨다고 하는 것은 고요한 적멸의 세계에 들어 다시는 생사를 윤회하지 않는 불생불멸의 안온한 경지에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체의 번뇌를 끊고,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는 완전 원만한 멸(滅)에 드시므로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고도 한다.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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