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問曰(문왈) '八犍度阿毘曇(팔건도아비담) 六分阿毘曇等(육분아비담등) 從何處出(종하처출)?
묻나니, 8건도아비담(9건도의 논장)과 6분아비담(육분 논장) 등은 무엇을 근거로 나온 것입니까?

 

8건도아비담(犍度阿毘曇, Aṣṭagranthābhidharma) 건도(skandha)란 무더기=聚를 의미한다. 잡(雜)․결(結)․사(使)․지(智)․행(行)․대(大)․근(根)․정(定)․견(見)의 여덟 부분으로 나누기에 8건도라 한다.

6분아비담(分阿毘曇, Saṭpādābhidharma)= 6족론(足論)이라고도 한다. 『법집이문족론(法集異門足論, Saṅgītiparyāya)』․『법온족론(法蘊足論, Dharmaskandha)』․『시설족론(施設足論, Prajñaptiśāstra)』․『식신족론(識身足論, Vijñānakaya)』․『계신족론(界身足論, Dhātukāya)』․『품류족론(品類足論, Prakaraṇapāda)』의 여섯 논을 말한다.


答曰(답왈) 佛在世時 法無違錯(불재세시 법무위착) 佛滅度後(불멸도후)

初集法時 亦如佛在(초집법시 역여불재)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법을 어기거나 등지는 일=違錯이 없었으며,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처음으로 법(법장)을 결집할 때 역시도 부처님 생존 시와 같았으나,

 

後百年(후백년) 阿輸迦王(아수가왕) 作般闍于瑟大會(작반사우금대회)

諸大法師 論議異故(제대법사 논의이고) 有別部名字(유별부명자)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100년 후에 아수가(Aśoka, 아육왕)라는 왕이 있어, 반사우금대회(무차대회)를 열었으니, 이때 모인 여러 대법사들이 서로 다른 주장과 뜻을 펼치게 되어 여러 부(nikāya)의 이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반사우금대회(般闍于瑟大會, Pañcavarṣapariṣad)= 5년마다 열리는 대회로 수행승들과 신자들에게 공양을 베푼다. 무차대회(無遮大會)라고도 하는데, 무차란 어느 누구도 막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nikāya(니까야)=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의 상좌부 불교권에서 주로 보는 불경을 말한다. 팔리어로 쓰였으므로 팔리 경전이라고도 한다.
니까야가 팔리어 버전이라면, 산스크리트어를 거쳐 한문으로 번역되어 한중일 등의 대승 불교에서 전해지는 한문 버젼이 아함경이다. 결국 니까야와 아함경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내용이 일치하지만 250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관계로 서로 다른 부분도 꽤 있다.

니까야(nikaya)의 본래 단어뜻은 모임, 모음인데 길이나 주제나 숫자별로 경들을 모았기 때문에 경전의 이름이 되었다.
보통 5부 니까야라해서 5개로 나눈다.
1. 디가 니까야 : '디가'는 길다라는 뜻이다. 즉, 긴 거 모음. 내용이 긴 만큼 자세하다. 34개
2. 맛지마 니까야 : '맛지마'는 중간이라는 뜻이다. 즉, 중간길이 모음. 중간길이의 경을 모아놓았다. 152개
3. 쌍윳따 니까야 : '쌍윳따'는 소들에게 하나의 멍에를 얹어 연결하다라는 뜻으로, 주제별로 연결하다라는 의미다. 주제별 경 모음. 56개 주제 2,904개
4. 앙굿따라 니까야 : 1부터 11까지 숫자별 모음. 가장 나중에 만들어졌다. 앞의 3개의 경 내용들을 숫자별로 분류한 거라 중복이 많다. ex) 4가지 속박은 4시리즈에
5. 쿳다까 니까야 : 15개의 독립된 경


從是以來(종시이래) 展轉至(전전지) 姓迦旃延 婆羅門道人(성가전연 바라문도인)

이로부터 점차 전해져 내려오며 펼쳐지다가 가전연(Katyāyana, 마하가전연)이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 도인에 이르렀으니,

*여기에서의 가전연(迦旃延)은 나형외도로 오늘날의 자이나교도입니다.

 

智慧利根(지혜이근) 盡讀三藏 內外經書(진독삼장 내외경서) 欲解佛語故(욕해불어고)

그는 지혜롭고 예리해 삼장과 안팎의 경서를 모두 읽고는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는 지혜로 영리하게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 걸림 없고 막힘없는 것인 줄 명백하게 이해하여(利根)삼장(三藏)을 비롯한 안팎의 경서(經書)를 달통하여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풀이하고자 발지경팔건도(發智經八犍度)를 지었으니)

 

作'發智經八犍度'(작'발지경팔건도') 初品是世閒第一法(초품시세간제일법)

'발지경팔건도(Jñānaprasthāṇāṣtagrantha)'를 지었으니, 초품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법이었느니라.

(초품(初品)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法)을 풀이하는데 있어서 세상 제일이었습니다.)

 

발지경팔건도(發智經八揵度, Jñānaprasthāṇāṣtagrantha. 설일체유부의 소의론으로 『발지론(發智論)』이라고 한다. 현장이 한역한 『발지론(發智論)』이 전해지는데, 제8장(44절)부터 『팔건도론(八揵度論)』이라 부르기도 한다.

 

後諸弟子等(후제제자등) 爲後人不能盡解(위후인불능진해)

'八犍度'故 作'鞞婆娑'('팔건도'고 작'비바사')
그 뒤에 여러 제자들이 '팔건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후세의 사람들을 위하여 '비바사(대비바사론, Vibhāṣā-sāstra)'를 지었으니,

비바사(鞞婆娑, Vibhāṣā.)=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 Mahāvibhāṣāśāstra)』을 가리킨다.


有人言(유인언) 六分阿毘曇中(육분아비담중)

第三分八品之名'分別世處分'(제삼분팔품지명'분별세처분')

어떤 분이 말하기를, '6분아비담(Saṭpādābhidharma)' 가운데 제3분의 8품을 이름하여 '분별세처(分別世處)'라 하며,

 

此是'樓炭經' 作六分中第三分(차시'누탄경' 작육분중제삼분) 是目犍連作(시목건련작)

이는 곧 '누탄경(장아함)'으로 여섯 분 가운데 제3분을 이룬다고 하는데, 이것은 목건련 존자께서 지은 것이요 

(어느 분께서 말씀하기를 육분아비담 가운데 제 삼분(三分팔품(八品)의 이름을 분별세처분(分別世處分)이라 하는데 이것은 누탄경(樓炭經)의 육분(六分중 제 삼분(三分)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육분 중 초분(初分팔품은 목건련존자께서 지은 것이며,) 

누탄경(樓炭經)= 장아함(長阿含)』 제4권 「기세경(起世經)」

목갈라나(Moggalāna) 존자는 한역해서 목건련(目犍連) 존자, 목련(目連) 존자,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 존자라고 한다. 목갈라나(Moggalāna) 존자는 마가다국의 서울 라자그리하(Rājagaha-왕사성) 근교의 꼴리따(Kolita) 마을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나 마을 이름을 따라서 어릴 때는 꼴리따(Kolita)라 불렸다. 또 어머니 이름이 목갈리(Moggalī) 또는 목갈리니(Moggalinī)였기 때문에 목갈라나 또는 마하목갈라나라고도 불렸다.

처음엔 육사외도(六師外道) 중 큰 세력인 회의론자 산자야(Sanjaya, 刪闍耶)에 귀의해 그의 제자로 있었으나, 목갈라나와 사리풋다는 이내 스승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이해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사리풋타는 라자그리하(왕사성) 시내에 탁발하러갔다가 부처님의 제자 ‘다섯 비구’ 중 막내인 앗사지(Assaji, 阿說示, 마승/馬勝) 비구가 점잖고 위엄 있게 자기 정신을 걸음걸이에 잘 집중시키면서 흔들림 없는 태도로 걸어가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만큼 경행(經行) 중에 있던 앗사지 비구는 한순간도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앗사지 비구의 늠름한 모습에 매료돼 사리풋타가 쫓아가서 앗사지 비구에게 물었다. 
“벗이여, 당신은 누구에게 출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나는 붓다에게 출가했으며, 붓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사리풋타는 계속해서, “그대의 스승은 무엇을 설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앗사지는 대답 대신 게송을 읊었다.

'모든 법은 원인으로부터 발생하니, 여래께서는 그 원인을 밝혀주셨네.
또 그것들의 소멸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나니, 이것이 대 사문의 가르침이라네(Vin.i.40).'

그리하여 목갈라나와 사리풋타는 함께 했던 제자들을 이끌고 불문에 귀의한 뒤 두 사람은 부처님 상수제자가 됐다. 즉, 부처님 10대 제자, 4대 성문(聲聞)에 포함될 정도로 믿음이 독실한 아라한이 됐다.
부처님께서는 목갈라나 존자와 사리풋타 존자를 비구들이 본받아야 하는 이상적인 제자라고 선언하셨다. 특히 목갈라나 존자는 효성이 지극해서 어머니를 지옥에서 제도한 일화로 유명하다. - 아미산
 

六分中 初分八品(육분중 초분팔품) 四品是 婆須蜜菩薩作(사품시 바수밀보살작)

6분 가운데 초분의 8품 중의 4품은 바수밀(Vasumitra)보살이 지은 것이며, 

 

바수밀 (婆須蜜, Vasumitra) 화수밀(和須蜜) · 바수밀다(婆須蜜多) · 바수밀다라(婆須蜜多羅) · 벌소밀달라(筏蘇蜜多羅) 또는 한역으로 천우(天友) · 세우(世友)라 하며, 북인도 건타라국 사람으로 불멸 후 600년(56) 가니색가왕 때에 가습미라국에서 『대비바사론』을 편찬하던 제4 결집 때에 상좌(上座)로 활약하였다. 학식이 풍부하여 당시에 존중히 여기던 법구 · 묘음 · 각천과 함께 바사사대론사(婆沙四大論師)의 결집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저서로는 '이부종윤론 1권'이 있다.

 

四品是 罽賓阿羅漢作(사품시 계빈아라한작) 餘五分 諸論議師所作(여오분 제론의사소작)

나머지 4품은 계빈(케시미어)의 아라한이 지은 것이라 하며, 나머지 5분은 다른 논사들이 지은 것이라고 하였느니라.

(계빈(罽賓 Kophen)아라한이 지은 것이라고도 하며, 나머지 오분(五分)은 수많은 논사가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계빈(罽賓, Kaśmīra, 카시미어)= 북인도 지역


有人言(유인언) 佛在時(불재시) 舍利弗 解佛語故 作阿毘曇(사리불 해불어고 작아비담)

어떤 분은 이렇게도 말하나니, '부처님 생존 시에 사리불이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아비담(논장)을 지었는데, 

(어느 분께서 말씀하기를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적에 사리불존자께서 부처님의 말씀을 풀이해서 논장(論藏)을 지었다고 하는데) 

 

後犢子道人等 讀誦(후독자도인등 독송) 乃至今名爲'舍利弗阿毘曇'(내지금명위 '사리불아비담')
나중에 독자부의 도인=犢子道人들이 즐겨 읽고 외어 오늘에 이르면서 '사리불아비담(사리불 논장, Śāriputrābhidharma)'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摩訶迦旃延 佛在時(마하가전연 불재시) 解佛語 作昆勒(해불어 작곤륵)

또한 마하가전연(Mahākātyāyana) 존자께서 부처님 생존 시에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곤륵(협장)을 지었으니

 

昆勒秦言篋藏(곤륵진언협장) 乃至今行 於南天竺(내지금행어남천축)

皆是廣解佛語故(개시광해불어고)

'곤륵은 진나라 말로는 협장'을 지었는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천축에 알려져 있으니, 모두가 부처님의 말씀을 자세히 풀이하기 위한 것이니라.

(온갖 논의사(論議師)가 이렇게 부처님의 말씀을 다양하게 풀이하였기 때문입니다.)

곤륵(昆勒)=범어 Piṭaka의 속어형인 Peṭaka 혹은 Paiṭaka의 음사어이다. 역유역공(亦有亦空)을 주장하는 일파라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如說五戒(여설오계) 幾有色 幾無色(기유색 기무색)?

마치 5계(戒)를 설함에 있어 무엇은 색이 있고 무엇은 색이 없으며, 

(마치 오계(五戒)를 설할 때무엇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라고 하며 무엇을 모습이 없다고 하는 것이며)

 

幾可見 幾不可見(기가견 기불가견)? 무엇은 볼 수 있고 무엇은 볼 수 없으며,

 

幾有對 幾無對(기유대 기무대)? 무엇은 마주 대할 수 있고 무엇은 마주 대할 수 없으며, 

 

幾有漏 幾無漏(기유루 기무루)? 무엇은 유루(번뇌가 있음)이고 무엇은 무루(번뇌가 없음)이며, 

(무엇이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는 삿된 견해에서 비롯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로 펼쳐지게 되는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는 모든 불선업의 버릇 배어나오는 유루(有漏)이고,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는 삿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에 의해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는 모든 불선업의 버릇 다하여 배어나오지 않게 되는 무루(無漏)이며)

 

幾有爲 幾無爲(기유위 기무위)? 무엇은 유위(인위적인 조작이 있음)이고 몇은 무위(인위적인 조작이 없음)이며, 

(무엇이 생주멸(生住滅) 펼쳐지는 유위(有爲)이고, 무엇이 생주멸(生住滅) 사라진 무위(無爲)인 것입니까?)

 

幾有報 幾無報(기유보 기무보)? 무엇은 과보가 있음이고 무엇은 과보가 없음이며, 

 

幾有善 幾不善(기유선 기불선)? 어떤 것이 훌륭한 것이며 어떤 것이 훌륭하지 못한 것이며,

 

幾有記 幾無記(기유기 기무기)? 몇은 유기(선악의 분별이 있고 과보가 있음)이고 몇은 무기(선악의 분별이 없으므로 과보가 없음)인가 라고 함과 같으니, 

무기(無記, avyākṛta)= 아직 선(善)이나 악(惡)이 발현하지 않은 상태

 

如是等 是名阿毘曇(여시등 시명아비담) 이러한 것들을 아비담(논장)이라 하느니라


復次 七使(부차 칠사) 欲染使(욕염사) 瞋恚使(진애사) 有愛使(유애사)

憍慢使(교만사) 無明使(무명사) 見使 疑使(견사 의사) 

또한 7사(업, 습관)란 욕염사(오욕)ㆍ진애사(성냄)ㆍ유애사(애욕)ㆍ교만사ㆍ무명사ㆍ견사(삿된 견해)ㆍ의사(의혹) 이니, 

(일곱 개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모습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여 따르는 버릇(七使)이 있나니, 오욕(五欲)에 물들어 따르는 버릇=욕염사 성내고 노여움을 따르는 버릇=진애사애욕을따르는 버릇=유애사남을 업신여기고(憍) 얕잡아 보는 것(慢)을따르는 버릇=교만사전생의 온갖 번뇌인 무명(無明)을따르는 버릇=무명사삿된 견해를따르는 버릇=견사, 의혹을 따르는 버릇=의사입니다.)

 

是七使(시칠사) 幾欲界繫(기욕계결) 幾色界繫(기색계결) 幾無色界繫(기무색계결)?

이러한 7사= 7종의 업의 버릇의 몇몇은 欲界繫=욕계의 번뇌이고, 몇몇은 色界繫=색계의 번뇌이며, 몇몇은 無色界繫=무색계의 번뇌이니,

(이렇게 일곱 가지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모습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여 따르는 버릇(七使)이 어떻게 욕계(欲界)에 매이도록 하는 것이고, 색계(色界)에 매이도록 하는 것이며 무색계(無色界)에 매이도록 하는 것입니까?)

 

無色界(무색계, arūpa-dhātu) 무색계(無色界)는 물질의 얽매임을 뛰어넘어 고도의 정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네 단계 무색정[四無色定]에 의해 도달되는 경지이기도 하다.

 

幾見諦斷 幾思惟斷(기견제단 기사유단)?

무엇은 견도위(무루지, 수다원, 초지 또는 환희지)에서 끊어지고 무엇은 수도위(보살 10지 또는 사향사과)에서 끊어지며, 

(무엇이 견제(見諦)의 도(道)에서 끊어지는 것이며, 무엇이 사유(思惟)를 통해서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까?)

*견제도(見諦道)= 사지(四地)인 아비발치지(阿鞞跋致地)로 수다원과(須陀洹果)를 뜻함.

 

幾見苦斷 幾見集斷(기견고단 기견집단) 幾見盡斷 幾見道斷(기견집단 기견도단)?

몇몇은 견고의 지위에서 끊고=見苦斷, 몇은 견집의 지위에서 끊고=見集斷, 몇은 견진의 지위에서 끊고=見盡斷, 몇은 견도의 지위에서 끊으며=見道斷, 

(고제(苦諦)에서 어떠한 견해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고, 집제(集諦)에서 어떠한 견해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며, 멸제(滅諦)에서 어떠한 견해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고, 도제(道諦)에서는 어떠한 견해가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까?)

고제(苦諦)=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 

집제(集諦)= 인(因) 집(集) 생(生) 연(緣), 

멸제(滅諦)= 진(盡) 멸(滅) 묘(妙) 출(出), 

도제(道諦) = 도(道) 여(如) 행(行) 달(達).

 

幾遍使 幾不遍使(기편사 기불편사)?

몇은 두루하는 번뇌이며 몇은 두루하지 않는 번뇌이니라.

 

일반적으로 번뇌는 이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이지적 측면의 번뇌= 迷理惑과 본능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정의적 측면의 번뇌=迷事惑으로 나룰 수 있다. 이지적 번뇌는 나쁜 스승이나 사교(邪敎) 사설(邪說)에 의해 유도되거나 잘못 생각함으로써 일어나는 후천적 번뇌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예리하기는 하나 취약하여 올바른 관찰에 의해 그것이 오류라고 판단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정의적 번뇌는 음식이나 잠 섹스에 대한 욕망 등 유정이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는 본능적 욕구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무디면서도 무거워 올바른 관찰만으로 즉각적으로 제거되지 않으며, 그것을 억제 소멸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오류라는 사실이 체득될 만큼의 오랜 기간 반복된 관찰 수습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어떤 이념은 그것이 오류라고 판단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전향할 수 있지만, 담배는 그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유부 아비달마에서는 전자를 4제 진리성을 관찰함으로써 즉각적으로 끊어지는 번뇌 즉 견도소단(見道所斷, 줄여서 見所斷) 또는 견혹(見惑)이라 하고, 후자는 선정을 통해 반복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끊어지는 번뇌 즉 수도소단(修道所斷, 줄여서 修所斷) 또는 수혹(修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견소단의 번뇌에는 다시 고제(苦諦, 현실의 실상)에 미혹한 번뇌 내지 도제(道諦,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도)에 미혹한 번뇌 등 네 가지가 있는데, 이는 각기 고제 내지 도제를 관찰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이기 때문에 견고소단(見苦所斷, 정확한 명칭은 見苦諦所斷)·견집소단(見集所斷)·견멸소단(見滅所斷)·견도소단(見道所斷)이 라고 한다. 이같이 번뇌에는 견소단의 네 가지와 수소단(수도소단, 修道所斷) 한 가지 도합 5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를 5부(部)라고 한다.
10수면 가운데 5견과 의(疑)가 오로지 견소단이라면, 나머지 탐·진·만·무명은 양자에 공통된 번뇌이다. 왜냐하면 탐·진·만 세 가지는 정의적 번뇌이기는 하나 결국 5견과 '의'를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5견에 탐착함으로써 그것을 정견이라 주장하고, 그러한 견해에 오만해지며, 나아가 다른 견해를 무시하고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명의 경우, 그 자체로서 생겨나는 무명[不共無明]은 견소단이지만, 탐·진·만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나는 무명은 수소단자이자 견소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멸론의 입장에서 업과 그 과보를 부정하는 사견은 바로 인과의 구조를 띤 4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취는 유신·변집·사견 등의 저열한 지식을 뛰어난 이치일반(즉 諦)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는 4제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에 각기 견고소단·견집소단·견멸소단·견도소단 모두에 포함된다.-도로아미타불아멘
 

3도(三道, triṣu mārgeṣu, mārga-traya, three holy paths, three paths)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수행(修行)의 3단계인 견도(見道) · 수도(修道) · 무학도(無學道)를 말한다.
즉, 3도는 성문과 보살 모두에게 해당하는 수행의 3단계이다. 성문은 부파불교의 수행자를 뜻하고 보살은 대승불교의 수행자를 뜻한다.
불교의 수행계위는 모두 윤회의 원인인 3계의 번뇌를 극복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3도(三道) 또한 마찬가지이며, 모든 번뇌를 견소단(見所斷) · 수소단(修所斷) 즉 견혹(見惑) · 수혹(修惑)으로 나누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불교에서 번뇌를 분류하는 방식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모든 번뇌를 크게 이지적(理智的)인 번뇌인 견혹(見惑)정의적(情意的)인 번뇌인 수혹(修惑)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지적인 번뇌란 이성[理] 또는 견해[智]와 관련된 번뇌를 말하며 정의적인 번뇌란 마음[情] 또는 의지 · 의사[意]와 관련된 번뇌를 말한다. 무명(無明)처럼 이지적인 측면과 정의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는 번뇌도 있으며, 의심[疑]과 같은 이지적인 측면만을 가지는 번뇌도 있다. 정의적인 측면만을 가지는 번뇌는 없다. 예를 들어, 무명은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생겨난 후천적인 견해로서의 무명도 있고 부처의 상태가 아닌 모든 이의 마음[情] 또는 의지 · 의사[意]에서 항상 발견되기에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무명도 있는데, 이 후자와 같은 것을 정의적인 번뇌라 한다. 말하자면, 정의적인 번뇌 즉 수혹(修惑)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선천적인 번뇌라고 할 수 있다.
번뇌를 견혹(見惑)과 수혹(修惑)으로 나누는 것은 3도(三道)의 수행계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한편,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 등의 교학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견도 · 수도 · 무학도의 3도가 정확히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가 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는 모두 3도보다 더 세분화된 수행계위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수행론을 다룰 때 크게는 견도 · 수도 · 무학도의 3도에 의거하여 논하지만 보다 자세히는 자신들이 세운 세분된 수행계위 체계에 따라 논한다.
부파불교는 성문4과 · 4향4과 · 5위 · 9지의 수행계위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승불교 일반에서는 10지 또는 52위의 보살 수행계위를 가지고 있으며, 대승불교 가운데 유식유가행파의 경우 뢰야3위와 5위의 수행계위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41위 또는 52위와 연결하여 논하기도 한다.

견도(見道, darśana-mārga)는 수행자가 모든 견혹(見惑)에서 벗어나는 지위이다. '진리[諦]를 보는 단계[道]'라는 뜻에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하고, '진리를 봄'이라는 뜻에서 견제(見諦)라고도 하며 또한 '견도의 지위'라는 뜻에서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모든 견혹은 무루지(無漏智) 즉 무루의 지혜가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에 마치 해머로 바위를 산산이 깨뜨리듯이 한꺼번에 끊어진다. 불교에서는 견도를 성취한 유정을 성인 또는 성자라 부른다.
견도(見道)는수행자가 모든 견혹(見惑)에서 벗어나는 지위이다.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모든 견혹은 무루지(無漏智) 즉 무루의 지혜가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 즉 엄밀히 말해 16심(十六心) 즉 16찰나(十六剎那) 동안 마치 해머로 바위를 산산이 깨뜨리듯이 한꺼번에 끊어진다.
견도(見道)는 부파불교의 수행계위인 성문의 4향4과에서는 수다원향(須陀洹向) 즉 예류향(預流向)에 해당하고,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5위(五位)의 수행계위에서는 제3위인 통달위(通達位)에 해당하고, 대승불교 일반의 52위(五十二位)의 보살 수행계위에서는 초지(初地), 즉 10지(十地) 가운데 첫 번째 계위, 즉 환희지(歡喜地)에 해당한다.

수도(修道, bhāvanā-mārga)는 수행자가 수혹(修惑)을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기간 또는 지위이다.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한다. 수도(修道)는 성인이 깨달음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길 또는 과정이므로, 진정 '성인의 길' 또는 '성스러운 길' 또는 '무루성혜(無漏聖慧)의 길'이라는 뜻의 성도(聖道, ārya-mārga, holy path, sacred path)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성도(聖道)는 불교 혹은 8정도를 뜻하기도 한다. 수도(修道) 또는 성도(聖道)는 "간략히 말해" 부파불교의 4향4과(四向四果)와 대승불교의 보살10지(菩薩十地)를 말한다.
수도(修道)는 수행자가 수혹(修惑)을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기간 또는 지위이다.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한다.

무학도(無學道, aśaiksa-mārga)는 수행자의 수행이 완료되어 무학(無學) 즉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지위이다. 무학위(無學位)라고도 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로 '여래10호 가운데 하나로서의 아라한' 즉 부처의 지위, 즉 불지(佛地) 또는 여래지(如來地)이다.
무학도(無學道)는 수행자의 수행이 완료되어 모든 번뇌를 끊고 진리를 증득한 상태로, 무학(無學) 즉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지위이다. 무학위(無學位)라고도 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로 아라한 즉 부처의 지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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