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초품(初品) 중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를 풀이함 -8
問曰(문왈) 何以無時(하이무시)? 必應有時(필응유시)
묻나니, 어찌 때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반드시 때가 있습니다.
(어찌하여 시간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때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現在有現在相(현재유현재상) 過去有過去相(과거유과거상) 未來有未來相(미래유미래상)
현재에는 현재의 모습이 있고, 과거에는 과거의 모습이 있고, 미래에는 미래의 모습이 있습니다.
(현재가 있어 현재의 모습이 있듯이 과거가 있었기에 과거의 모습이 있는 것이고, 미래가 있을 것이기에 미래의 모습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答曰(답왈) 若令一切 三世時有自相(약령일체 삼세시유자상) 應盡是現在世(응진시현재세)
無過去未來時(무과거미래시)
답하나니, 만일 세 세상=三世의 때에 모두 자상(svalakṣaṇa)이 있어야 한다면 모두가 현재의 세상일 뿐이요, 과거나 미래의 때는 없어야 할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나름의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어야 할 것이어서, 응당 이렇게 현재의 시간이 다하게 되면 과거와 미래의 시간 없어야 할 것입니다.)
若今有未來(약금유미래) 不名未來(불명미래) 應當名現在(응당명현재)
以是故 是語不然(이시고 시어불연)
만일 지금 미래가 있다면 미래라 부르지 않고 응당 현재라 일컬어야 될 것이므로 이 말은 맞지 않느니라.
(만약 미래가 있다고 할지라도 미래라 불러서는 안되며, 마땅히 “쭉 이어짐”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렇게 여겨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問曰(문왈) 過去時 未來時(과거시 미래시) 非現在相中行(비현재상중행)
묻나니, 과거의 때와 미래의 때는 현재의 모습 속의 행이 아니며,
過去時過去世中行(과거시 과거세중행) 未來世未來時中行(미래세미래시중행)
과거의 때는 과거의 세상에서 행하졌고, 미래의 세상은 미래의 때에서 행하여 질 것이니,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은 현재의 모습이 아님을 자세히 살펴야 하며, 과거의 시간 속에서 과거의 모습만 담겨있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야 하며, 미래의 시간 속에서는 미래의 모습만 담겨있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以是故 各各法相有時(이시고 각각법상유시)
그러므로 각각의 현상과 작용=法相에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각각의 현상과 작용(法)속에 나름의 시간과 나름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答曰(답왈) 若過去復過去(약과거부과거) 則破過去相(즉파과거상)
답하나니, 만약에 과거가 다시 지나갔다고 한다면 곧 과거의 모습을 깨뜨리게 되며,
(만약 과거가 분명히 있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어서 이는 과거의 모습이 깨어지게 되는 것이고,)
若過去不過去(약과거부과거) 則無過去相(즉무과거상) 何以故(하이고)
自相捨故(자상사고) 未來世亦如是(미래세역여시)
과거가 비과거라면 과거의 모습이 없게 되나니, 왜냐하면 자상이 버려지기 때문이며, 미래의 세상 역시 그러하니라.
(만약 과거가 분명히 있으나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다면 이는 과거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시간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以是故 時法無實(이시고 시법무실) 云何能生天地好醜(운하능생천지호추)
及華果等諸物(급화과등제물)?
그러므로 때의 법이란 진실함이 없거늘 어찌 하늘과 땅의 좋고 나쁜 것들과 꽃 열매 등 모든 물건을 내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시간이라는 현상과 작용(時法)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그 어떠한 삿된 견해도 지녀서는 안되는 것이니, 어찌하여 “천지간에 아름답고 추한 때와 꽃과 열매를 비롯하여 모든 사물에 때라는 것이 있어 반드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如是等種種除邪見故(여시등종종제사견고) 不說迦羅時(불설가라시)
說三摩耶(설삼마야)
이러한 갖가지 방법으로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가라로 말하지 않고 삼마야로 말한 것이니,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삿된 견해를 없애고자 하는 까닭에, 가라(迦羅)라 말씀하시지 않고 삼마야(三摩耶)라고 설하셨던 것입니다.)
見陰 界 入生滅(견음 계 입생멸) 假名爲時 無別時(가명위시 무별시)
陰=오음과 界=18계와 入=12입의 생멸을 보고서 거짓으로 때라 말했으나 달리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니라.
(오온(五蘊)을 비롯한 12입(入)과 18계(界)라는 제법(諸法)의 생멸을 통해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게 되어 막힘없이 꿰뚫어볼 수 있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때”라고 잠시 이름 붙여 말한 것이거니와, 그외에 별도로 “때”를 분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所謂方 時 離 合 離 合 異 長 短等名字(소위방 시 이 합 일 이 장 단 명자)
이른바 方=방위와 時=때, 離=여읨과 合=합함, 離 合=하나와 異=다름, 長=긺과 短=짧음 따위의 명칭이 나오매
(이른바 장소와 시간, 여읨과 합함, 하나와 다름, 긴 것과 작은 것 등등 말과 글을 통해 분별할 수 있게 됨으로써)
出凡人心著(출범인심착) 謂是實有法(위시실유법)
범부는 마음으로 집착해서 이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라고 하니,
(평범한 세상살이 사람들은 세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삿된 견해에 붙잡혀서, “이렇게 일체법에는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는 것이다.”라고 이르니,)
以是故(이시고) 除棄世界名字語言法(제기세계명자어언법) 棄 버릴 기
이런 까닭에 세간의 명칭과 언어의 법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세계에 있는 모든 말들과 글로 되어 있는 실상(實相)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法)을 없애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問曰(문왈) 若無時 云何聽'時食'(약무시 운하청 '시식')
遮'非時食'是戒(서'비시식'시계)?
묻나니, 만일 때가 없다면 어찌하여 때에 맞게 (음식을) 먹어야 하고, 때에 맞지 않게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곧 戒=계율이 되는 것입니까?
(만약 시간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때에 맞춰 음식을 먹으라하고 때가 아니면 먹지 말라는 계(戒)라 있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我先已說(아선이설) '世界名字法有時非實法'(세계명자법유시비실법)
汝不應難(여불응난)
답하나니, 나는 이미 세간의 명칭의 법에는 ‘때’가 있지만 실제의 법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대는 따져 묻지 말라.
(제가 앞에서 이미, “세계에는 현상과 작용(法)에 다만 말과 글만 있을 뿐으로 시간이라는 현상과 작용(法)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다.”라고 말했나니, 그대는 따지고 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亦是毘尼中結戒法(역시비니중결계법) 是世界中實(시세계중실)
非第一實法相(비제일실법상) 吾我法相實不可得故(오아법상실불가득고)
또한 이 毘尼=계율 가운데 結戒=계율을 맺는 법은 세속의 법으로서 실제로 있지만, 제일의제의 실다운 법=實法의 모습은 아니며, 나라는 법의 모습은 실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뿐만 아니라 율장(律藏) 가운데 계율을 지키는 법은 이 세상에서 참으로 진실한 것이어서, 비록 제일의(第一義)에서 말하는 ‘공(空)’한 실상(實相)은 아닐지라도, 일체법에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모습을 ‘내 것’이라고 하는 마음의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으므로 얻지 못하는 까닭이며)
毘尼(비니)=비내야(毘奈耶)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모든 계율.
亦爲衆人瞋呵故(역위중인진가고) 亦欲護佛法使久存(역욕호불법사구존)
定弟子禮法故(정제자예법고) 諸三界世尊結諸戒(제삼계세존결제계) 呵 꾸짖을 가
또한 여러 사람이 화내어 책망하는 까닭이며, 또는 불법을 보호하여 오래 보존시키고자 해서, 제자들의 예법을 제정하는 까닭에 삼계의 세존께서는 모든 계를 제정하셨으니,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부터 꾸짖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거니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을 감싸서 오래도록 보존하고자 하는 까닭에, 정(定)하여 모든 제자들이 예법(禮法)으로 삼도록 하고자 하는 까닭에 모든 불세존께서는 모든 계(戒)를 지키도록 맺어놓으셨나니,)
是中不應求(시중불응구) 有何實(유하실)? 有何名字等(유하병자등)?
그러니 여기에 어떠한 진실이 있으며, 어떠한 명칭이 있는가?
(일체법의 그 어딘가에 무언가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인 것인가?)
何者相應(하자상응)? 何者不相應(하자불상응)?
어떤 것이 상응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상응치 않는 것인가?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에 대한 말과 글을 통해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서는, 어떻게 마음과 반야바라밀이 서로 어우러지게 되는 것이며,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것인가?)
何者是法如是相(하자시법여시상)? 何者是法不如是相(하자시법불여시상)
以是故(이시고) 是事不應難(시사불응난)
어떤 것이 법으로서의 여실한 모습인가? 어떤 것이 법으로서 여실치 않은 모습인가?”라고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일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이렇게 일체법에서 이와 같은 것을 실상(實相)이라고 하며,
어찌하여 이렇게 일체법에서 이와 같은 것은 실상(實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인가?”
이러함으로 인해서 무상정등정각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그렇게 따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問曰(문왈) 若'非時食' '時藥' '時衣'(약'비시식' '시약' '시의')
皆是柯邏(개시가라) 何以不說三摩耶(하이불설삼마야)?
묻나니, 만약에 때에 맞는 음식ㆍ때에 맞는 약ㆍ때에 맞는 옷이 모두 가라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들은 어찌하여 삼마야로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때가 아니면 음식을 들지 않는 것” “오전 중에 들게 되는 승려들의 음식” “때에 맞추어 입는 의복”에 나오는 “때”에 대하여서는 모두 가라(迦羅)라 하고, 어찌하여 삼마야(三摩耶)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율(律)에서는 시식(時食)․시약(時藥)․시의(時衣)에 대해 가라(kāla)라고 하기 때문.
答曰(답왈) 此毘尼中說(차비니중설) 白衣不得聞(백의불득문)
外道何由得聞而生邪見(외도하유득문이생사견)
답하나니, 이것은 비니=계율 가운데 설해진 것으로, 속인=白衣은 듣지 못하나니, 외도가 듣고서 삿된 소견을 내지 않았겠는가?
(여기에 대해 율장(律藏)에서, “재가불자(白衣)들이 들어서는 안되는 말”이라고 말씀하셨거니와, 외도들이 어떠한 이유로라도 듣게 되면 삿된 견해를 내지 않겠습니까)
餘經通皆得聞(여경통개득문) 是故說三摩耶 令其不生邪見(시고설삼마야 령기붓생사견)
다른 경은 통틀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니, 그렇기에 삼마야를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삿된 소견을 내지 않게 하였으며,
(그 밖의 다른 경(經)을 통해서도 이러한 까닭에 삼마야(三摩耶)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三摩耶詭名(삼마야궤명) 時亦是假名稱(시역시가명칭)詭 속일 궤
삼마야는 거짓으로 때를 이름 지은 것이며, 때=時 역시 거짓 이름이니라.
(삼마야(三摩耶)란 것도 무언가 정(定)해진 모습이 없어 잠시 말과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잠시 이름 붙여 말한 것(名)일 뿐이니, 그것으로 인하여 삿된 견해가 생겨나지 않게끔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又佛法中多說三摩耶(우불법중다설삼마야) 少說柯邏 少故不應難(소설가라 소고불응난)
불법에는 대개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하는 경우는 적으니, 적다고 해서 힐난하지 말라.
(또,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 가운데 삼마야(三摩耶)에 대하여 많은 말씀들이 있나니, 가끔 가라(迦羅)라고 말씀은 하시었으나 아주 적으며 그러한 까닭으로 힐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如是 我 聞 一 時”五語各各義略說竟('여시 아 문 일 시'오어각각어략설경)
‘如是=이와 같이 我=내가 聞=들었다. 一 時=어느 때(한때)’라는 다섯 어구의 정의를 간략하게 설명하여 마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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