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悉檀中(사실단중) 一切十二部經(일체십이부경) 八萬四千法藏(팔만사천법장)

皆是實 無相違背(개시실 무상위배)

네 가지 실단 속에 일체의 12부경과 8만 4천 법(가르침)의 창고가 들어 있나니, 실로 이 모두는 서로 위배되지 않느니라. 

(사실단(四悉壇속에 십이부경(十二部經일체가 들어있고 84천 참된 가르침()이 담겨 있어서, 이러함이 실상(實相)이고 인연의 10가지 모습인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이라는 오진(五塵)과 남((), ((()이라는 현상과 작용()을 멀리 여의어서 아무런 얽매임이나 붙들림이 없는 무상(無相)과 어긋나거나 그릇됨이 없는 것입니다.)

 

실단(悉檀, siddhanta)이란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으로, 실(悉)은 변(두루, 보편)의 의미이고 단(檀)은 시(施, 보시)라는 의미다. 

세계실단(世界悉檀)= 세계(世界)란 세간사(世間事) 또는 세속(世俗)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세속적인 것을 설하되, 그 세속적인 것 중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알맞는 것을 선택하여 차차 인도(引導)해서, 마침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세계실단이라는 자비의 마음이 없이는 좀처럼 일반 사람은 불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당장 저녁 먹을 끼니가 없어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부터 주고 서서히 마음을 열게 하고, 헐벗은 사람에게는 입을 것부터 주고 얘기를 꺼내야 합니다. 그러한 세속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차차 깊이 설해 나가는 그것이 세계실단입니다.

 

*12부경(部經, dvādaśāńga-dharmapravacana)= 서기(西紀) 일 세기 경까지는 불경(佛經)이 찬드라 족이라는 브라만 계급에 의해 구전으로 전승 되었으며, 이들은 동공에 눈동자가 두 개여서 중국 사람들이 첩동신안(疊瞳神眼)이라 불렀습니다.
아난존자와 같이 이들도 한 번 들은 경문(經文)을 잊지 않고 모두 외울 수 있기에 패엽(貝葉)에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로 기록되기 전에는 이들에 의해 불경(佛經)이 전해졌으며, 이러함으로 경(經)의 처음을 아함(阿含)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뜻은 범어로 아가마(āgama)라 하니 한문으로 풀면 전설(傳說)이 됩니다. 이러함으로 불경(佛經)은 아함경(阿含經)으로 시작되어 경의 어머니라고 불리니, 이 아함경을 통해
경(經)을 12 부분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용과 형식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12분교(分敎) 혹은 12분성교(分聖敎)라고도 한다.
①관경(貫經)= 경(經, sūtra), 산문형식의 경설이며 수다라(修多羅), 수트라(sūtra)라고 합니다.
②기야경(祇夜經)=중송(重頌, geya), 응송(應頌) 노래(歌)라 하며 음역하여 기야(祇夜)산문형식에 교설에 운문의 게송을 붙여 그 내용을 거듭 나타낸 형식. 
③기별(記別, vyākaraṇa):문답체에 의한 교설. 수기경(受記經)는 수기(受記) 기답(記答) 기설(記說) 기별(記別) 기별(記莂) 설(說) 등이라 하고 음역하여 화가라(和伽羅) 내지는 화가라나(和伽羅那)이며 문법(文法)이라는 뜻을 담고도 있습니다.
④게경(偈經)=게(偈, gāthā): 산문이 없이 운문만으로 이루어진 교설이며, 고기송(孤起頌) 내지는 송(頌)이라 하고 음역하여 가타(伽陀) 게타(偈陀)라 합니다.
⑤법구경(法句經)=자설(自說, udāna), 스스로의 감흥에 의해 설해진 교설이며, 무문자설(無問自說) 자설(自說) 자설경(自說經) 감흥게(感興偈) 감흥어(感興語)라고 하고 음역하여 우타나(優陀那)라 합니다.
⑥상응경(相應經)=여시어(如是語, ityuktaka),‘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교설이며, 여시법(如是法) 본사(本事)라 하고 음역하여 이제불다가(伊帝弗多迦) 이제왈다가(伊帝曰多伽) 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라 합니다.
⑦본연경(本緣經)=본생(本生, jātaka),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이며, 본생담(本生譚)이라고도 하고 음역하여 사다가(闍多伽)라 합니다.
⑧광경(廣經)=방광(方廣, vaipulya), 제자들이 환희를 거듭하면서 질문을 거듭해 가는 일종의 교리문답으로 방등(方等) 광박(廣博)이라 하고 음역하여 비부략(毗浮略) 비불략(毗佛略) 비부라(毘富羅)라 합니다.
⑨미증유경(未曾有經)= 미증유법(未曾有法, adbhutadharma), 부처님 및 불제자들의 뛰어난 덕상을 찬탄하는 교설이며, 희법(稀法)이라 하고 음역하여 아부다달마(阿浮多達磨) 아부달마(阿浮達磨)라 합니다.
⑩천본경(天本經)=인연(因緣, nidāna), 경과 율들이 설해지게 된 배경이나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인연담(因緣譚) 연기(緣起)라 하고 음역하여 니타나(尼陀那)라 합니다.
⑪증유경(證喩經)=비유(譬喩, avādana), 주로 부처님 이외의 인물들에 대한 전생이야기이며, 비유경(譬喩經) 비유담(譬喩譚)이라 하고 음역하여 아파타나(阿波陀那)라 합니다.
⑫대교경(大教經)=논의(論議, upadeśa), 부처님이나 불제자들이 간략한 경설을 자세히 해석한 것으로, 축분별소설(逐分別所說)라 하고 음역하여 우파제사(優波提舍)라 합니다.

 

佛法中有 以世界悉檀故 (불법중유 이세계실단고 실)

불법 가운데의 유는 세계실단인 까닭에 실유이며, 

(불법(佛法)속에 담겨있는 실상(實相)세계실단(世界悉壇)이 있는 까닭에 실상(實相)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有以各各爲人悉檀故 (실유이각각 위인실단고 실)

각각위인실단인 까닭에 실유이며, 

(각각위인실단(各各為人悉檀)이 있는 까닭에 실상(實相)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며,) 

 

有以對治悉檀故 實(유이대치실단고 실)

대치실단인 까닭에 실유이며, 

(대치실단(對治悉檀)이 있는 까닭에 실상(實相)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有以第一義悉檀故 實(유이제일의실단고 실)

제일의제실단인 까닭에 실유인 것이다.

(제일의실단(第一義悉壇)이 있는 까닭에 실상(實相)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有世界者(유세계자) 有法從因緣和合故 有(유법종인연화합고 유) 無別性(무별성)

세계실단이라 함은 어떤 법이 인연 화합하는 까닭에 있을지언정 별달리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후세의 실마리가 되는 업(業)을 짓게 하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모습에 의해 일어는 모든 현상과 작용(有法)이 인연의 화합 때문에 있게 된 것으로 그 속 어디에도 분별할 수 있는 정()해진 자성(自性)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譬如車轅 軸 輻 輞 等和合故 有(비여차원축복방 등화합고유) 無別車(무별차)

轅 끌채 원, 軸 굴대 축, 輻 바퀴살 복, 바퀴살 부【俗】폭, 輞 바퀴테 망, 바퀴 테 망

비유하자면 마치 수레가 빗장과 축, 바퀴살과 바퀴 등이 화합한 까닭에 있을 뿐, 달리 수레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자면 마치 수레가 끌채와 굴대, 바퀴살과 바퀴의 테두리 등이 어울려 수레가 되는 까닭에 이러한 것들을 따로 떼어서는 그 어디에도 수레를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人亦如是(인역여시) 五衆和合故有(오중화합고유) 無別人(무별인)

사람도 그와 같아서 5온=五衆이 화합한 까닭에 있을지언정 달리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이라는 오중[五衆 오온(五蘊)]의 화합에 의해 사람이 있게 된 것으로 오온을 하나하나 나누게 되면 그 어디에도 분별할 수 있는 정()해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5온[五衆]= pañca-skandha. 존재를 이루는 다섯 부류, 곧 색온(色蘊)․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蘊)을 말한다. 이 다섯 부류가 모여 비로소 개아를 이루는데, 이른바 신심(身心)의 불교적 표현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若無世界悉檀者(약무세계실단자) 佛是實語人(불시실어인) 云何言(운하언)

만약 세계실단이 없다면 부처님은 진실한 말씀을 하시는 분인데, 어찌하여 

 

我以淸淨天眼(아이청정천안) 見諸衆生(견제중생) 隨善惡業(수선악업)

死此生彼受果報(사차생피수과보)

'내가 청정한 천안으로 모든 중생들을 보니, 선악의 업을 따라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 태어나서 과보를 받되 

 

善業者生天人中(선업자생천인중) 惡業者墮三惡道(악업자타삼암도)?

착한 업을 지은 이는 하늘이나 인간 가운데 태어나고, 악한 업을 짓는 이는 3악도에 떨어진다'고 하셨겠는가?

 

3악도(惡道)= tridurgati. 지옥․아귀․축생의 셋을 가리킨다. 악도(惡道, durgati)란 괴로움의 세계를 가리킨다.

 

復次經言(부차경언) 一人出世多人蒙慶(일인출세다인몽경)

福樂饒益佛世尊也(복락요익불세존야)

또한 경에서 '한 분이 세간을 벗어나면, 여러 사람이 경사와 복덕의 즐거움=福樂의 이익을 얻나니, 이 분이 불세존이시다'고 하였으며, 

 

如法句中說(여법구중설) 神自能救神(신자능구신) 他人安能救(타인안능구)

'법구경'에서는 '신(ātman)이 스스로 신을 구할 수 있으면 능히 다른 신도 구할 수 있거니와, 사람도 스스로를 구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도 편안할 수 있도록 능히 구할 수 있으리라, 

 

法句經=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

 

神自行善智(신자생선지) 是最能自救(시최능자구)

신이 스스로 선을 행하는 것이 지혜=智이니, 이것이야말로 능히 스스로를 구하는 것에 있어 으뜸 아니겠는가'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如 甁沙王迎經中佛說(여병사왕영경중불설) 甁 병 병

마치 부처님께서 '병사왕영경'에서 

 

凡人不聞法(범인불문법) 凡人著於我(범인착어아)

'범부는 참된 가르침=법을 듣지 못하고, 범부는 나에 집착한다'고 하셨으며, 

(부처님께서, “세간에 사는 범부들은 참된 가르침(法)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모습의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에 집착하고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又 佛二夜經中說(우불이야경중설) 佛初得道夜(불초득도야) 至般涅槃夜(지반열반야)

是二夜中閒所說經教(시이야중간소설경교) 一切皆實不顚倒(일체개실부전도)

또한 불이야경에서 '부처가 처음으로 도를 얻은 저녁부터 반열반에 든 저녁에 이르기까지 두 밤사이에 설하신 경교는 모두 다 진실하여 전도됨이 없다”고 하셨으며,

(또불이야경(佛二夜經)에서도, “한밤중에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의 끝자락에서 무상정등정각을 터득하시고 나아가 한밤중에 반열반에 드실 때까지이렇게 두 밤사이에 말씀하신 경()과 교()는 일체가 하나같이 실상(實相)에 대한 것이어서 뒤바뀜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若實無人者(약실무인자) 佛云何言(불운하언)  我天眼見衆生(아천안견중생)?

만일 참으로 사람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어찌하여 '내가 천안으로 중생을 본다'고 하셨겠는가?

(만약 사람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해진 실상(實相)이 없는 것이라면부처님께서 어찌하여 내가 천안으로 중생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是故當知有人者(시고당지유인자) 世界悉檀(세계실단)

故非是第一義悉檀(고비시제일의실단)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니,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세계실단인 까닭이지 제일의실단이 아니니라.

(이러한 까닭에 사람의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는 것은 세계실단(世界悉壇)인 까닭이지 제일의실단(第一義悉壇)이 아닌 것입니다.)


問曰(문왈) 第一悉檀是眞實(제일실단시진실) 實故名第一(실고명제일)

餘者不應實(여자불응실)

묻나니, 제일의실단은 진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제일의라 한다면 나머지는 진실치 않다는 것입니까?

 

答曰 不然(답왈 불연) 是四悉檀各各有實(시사실단각각유실) 如如 法性 實際(여여 법성 실제)

답하나니, 그렇지는 않다. 이 네 가지 실단에는 각각 진실함이 있으니, 여여함과 법성과 실제는 

 

여여(如如)= tathatā. 있는 그대로의 모습, 진리. 진여(眞如)

법성(法性)= dharmatā. 존재의 모습, 제법의 진실된 본성

실제(實際)=bhūta-koṭi. 진리의 경계

 

世界悉檀故無(세계실단고무) 第一義悉檀故有(제일의실단고유)

세계실단이기에 없고, 제일의실단이기에 있는 것이니라. 

 

人等亦如是(인등역여시) 世界悉檀故有(세계실단고유)

사람 등도 그와 같아서 세계실단이기에 있고 

(중생도 이와 같이 제일의(第一義)인 까닭에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다고 하거니와, 세계실단인 까닭에 후세의 실마리가 되는 업(業)을 짓게 하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모습에 의해 일어나게 되는 “유(有)”가 있는 것입니다.)

 

第一義悉檀故無(제일의실단고무) 所以者何(소이자하)

人五衆因緣有故有是人等(인오중인연유고유시인등)

제일의실단이기에 없으니, 왜냐하면 사람은 5중의 인연으로 사람 등이 있기 때문이니라. 

(오온(五蘊)이라는 인연으로 후세의 실마리가 되는 업(業)을 짓게 하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모습에 의해 일어나게 되는 ()”가 있게 된 까닭에 사람이 인연화합으로 있게 된 것입니다.)

 

譬如乳色香味觸(비여유색향미촉) 因緣有故有是乳(인연유고유시유)

마치 젖이 색과 냄새와 맛과 촉감의 인연 때문에 젖이란 것이 있는 것과 같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젖이 사대(四大)의 실마리(種)가 되는 색향미촉(色香味觸)이라는 유위법(有爲法)의 맨 처음 인연이 있게 된 까닭에 인연화합으로 젖이 있게 되는 것이거니와,)

 

若乳實無(약유실무) 乳因緣亦應無(유인연역응무)

만약 젖이 진실로 없다면 젖의 인연도 없어야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젖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해진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라면젖이 만들어지게 되는 인연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해진 실상(實相)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今乳因緣實有故(금유인연실유고) 乳亦應有(유역응유)

지금 젖의 인연이 진실로 있기 때문에 젖도 당연히 있는 것이다. 

(지금 젖이 인연을 실상(實相)으로 인해 있게 된 까닭에 젖도 마땅히 있게 되는 것이거니와,) 

 

非如一人(비여일인) 第二頭 第三手(제이두 제삼수) 無因緣而有假名(무인연이유가명)

마치 어떤 사람에게 두 번째 머리나 세 번째 손과 같이, 인연 없이 거짓 이름만 있는 경우와는 다른 것입니다. 

(마치 사람에게 두 번째 머리 세 번째 손이 없다는 것은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를 지니지 않게 하듯이, 인연화합에 의해 있게 된 것에는 무언가 정()해진 실상(實相)이 없어 말과 글로 표현하기 위해 잠시 붙여진 이름(名)과 같은 것입니다.)

 

如是等相(여시등상) 名爲世界悉檀(명위세계실단)

이러한 모습을 세계실단의 모습=相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어느 것 하나 치우침 없는 실상(實相)을 세계실단(世界悉壇)의 모습이라고 부릅니다.)

復次分別生身(부차분별생신) 法身供養果報故(법신공양과보고)

또한 생신과 法身= 법성생신을 분별하여 공양하는 과보인 까닭에

 

법성생신(法性生身)= 인연화합에 의한 모든 현상과 작용의 맨 처음 본바탕인 청정(淸淨)함이라는 한결같은 몸으로 태어나는 것. 유위(有爲)의 오중(五衆)인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이 청정하게 무위(無爲)의 오중인 계중(戒衆) 정중(定衆) 혜중(慧衆) 해탈중(解脫衆) 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으로 바뀌게 되는 것으로, 다른 말로 의생신(意生身)이라 부르며 오종(五種)의 의생신이 있습니다. 

청정하게 바뀌는 것이란, 오개(五蓋)에 덮여 제멋대로 날뛰는 거친 마음(覺)과 오욕(五慾)에 물들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산란한 마음(觀)을 감싸고 끌어들여 움직이지 않게 갈무리하게 되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법신(法身, dharma-kāya)=진리 그 자체” 또는 “진여의 지혜”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진여(眞如, tathatā)는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말합니다. 그리고 참모습은 인간의 본성, 궁극적인 진리,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상태, 우주 그 자체, 중생의 청정한 성품 등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구마라집은 '대지도론'에서 진여법신을 법성생신, 변화법신, 실상법신 등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성생신(法性生身)은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에서 벗어난 보살의 몸을 말합니다.

변화법신(變化法身)은 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갖가지 변화를 일으키는 법신을 의미하고,

실상법신(實相法身)은 진리의 모습을 갖춘 불신(佛身)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금강경이 있는 곳은 법신(法身)이 드러나는 것이고, 금강경으로 수행하는 보살이 성불하면 보신(報身)이 되고, 금강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존중받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은 화신(化身)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명상행자들이 경전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흔들림 없는 의지처인 진여법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깨우칠 때 그 과보로 성불하는 보신이 될 수 있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신불로서 주어진 역할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명상이 자의적 해석이 아니라 보편적 체험이 되기 위해서는 경전을 통해 진여법신의 지혜를 체득해야 합니다. 경전을 읽으면서 시작되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밀봉암

 

說摩訶般若波羅蜜經(설마하반야바라밀경) 如舍利塔品中說(여사리탑품중설)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셨으니, '사리탑품' 가운데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復次欲說阿鞞跋致(부차욕설아비발치) 阿鞞跋致相故說(아비발치상고설)

또한 아비발치와 아비발치의 모습을 설명하려는 까닭에 말씀하셨으며,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유월치 보살과 아유월치 보살의 둘로 나뉜다.
아유월치(阿惟越致, 산스크리트어 avivartika)는 아비발치(阿鞞跋致)라고도 번역하며, 불퇴(不退), 무퇴(無退), 불퇴전(不退轉), 불퇴위(不退位),  반드시 부처가 되는 지위이며, 보살에서 타락하여 범부가 되지 않는다.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의 중생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모두 불퇴전의 경지에 있는 아비발치(阿鞞跋致)이며, 그 중 대부분이 일생보처(一生補處)이다. (불설아미타경)
보살도를 실천하여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그 사람이 그렇게 한 이후에 모두 마땅히 아유월치 보살의 지위를 얻는다. 그리고 아유월치 보살인 자는 모두 마땅히 32상(相)과 자마금빛의 몸의 색깔과 80종호(種號)를 갖추게 되고, 또한 모두 마땅히 부처를 이루게 된다. (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
아비달마불교의 유부(有部)에서는 불퇴의 경지에 이른 단계를 사선근위(四善根位) 중에서 인위(忍位)라고 보았고, 대승불교에서는 십주(十住)의 제7주를 불퇴전주(不退轉住)라고 하였다.
금강정유가경의 대본 18회 중에서 제15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금강장장엄반야바라밀다교중일분(金剛場莊嚴般若波羅蜜多敎中一分)에서는 불퇴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살의 열 가지 분위[十分位]가 있으니, 말하자면 발심(發心)분위ㆍ동진(童眞)분위ㆍ초습업(初習業)분위ㆍ수행(修行)분위ㆍ생귀(生貴)분위ㆍ상응구족(相應具足)분위ㆍ정심(正心)분위ㆍ불퇴전(不退轉)분위ㆍ득관정(得灌頂)분위ㆍ일생보처(一生補處)분위다.
불퇴전 보살마하살은 온갖 성문·독각·외도·악마 등이 파괴하거나 그 마음을 항복시켜 깨달음에서 물러나게 하지 못한다. (대반야바라밀다경)
보살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신발의(新發意) 보살= 처음 보리심을 낸 자요, 신발의 보살이란 초발심(初發心)을 일으킨 보살로서, 처음 발심한 보살은 부처님의 상호를 보고는 곧 보리심을 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둘째는 구발의(久發意) 보살= 보리도를 닦아 행하는 데 있는 자요, 구발의 보살이란 이러한 마음을 일으킨 지 오래된 보살이란 의미로, 수행하는 보살은 부처님이 원만히 갖춘 온갖 착한 법을 보고는 곧 보리심을 내며,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이러한 마음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보살이다. 

셋째는 불퇴전(不退轉) 보살= 보리에서 견고하게 물러나지 않는 자요, 불퇴전 보살이란 지혜를 얻고자 일으킨 마음이 더 이상 줄어듦이 없이 견고하며 확고한 보살이란 의미이다. 물러나지 않는 보살은 여래의 몸과 모든 법이 다 평등함을 보며, 이 보살은 반야나 공의 가르침을 들어도 놀라거나 물러서는 일이 없는 지혜와 선정의 힘을 갖춘 보살이다. 

넷째는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한 생이면 부처의 지위에 있게 되는 자이다. 일생보처의 보살이란 마지막 한 생을 보살로서 실천 정진하면 다음 생에 부처가 될 것이 예정된 보살이다. 보살은 여래가 지닌 온갖 공덕과 법까지도 보지 않는데, 혜안(慧眼)이 분명하고 청정함을 얻었기 때문이며, 두 가지 소견을 끊었기 때문이며, 지혜가 청정하여졌기 때문이니, 만약에 청정함과 청정하지 아니함도 보지 않으며,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하지 않지도 않음을 보지 않는다면 곧 깨닫게 된다.

불퇴전 보살을 7지보살이라고도 하고 8지보살이라고도 한다. 영락본업경에서는 "11지의 등각위(等覺位)가 일생보처 보살의 지위가 된다"고 했으니, 이 지(地)에서 보현행이 원만해져 12지에서 묘각여래(妙覺如來)가 되기 때문에 이를 일생(一生)의 주(主)로 삼는 것이다. (신화엄경론)

又爲魔幻魔事故說(우위마환마사고설)

또한 마라=魔의 환술과 마라의 일=거짓에 대해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이며,


復次爲當來世人(부차위당래세인) 供養般若波羅蜜因緣故(공양반야바라밀인연고)

또한 미래의 사람들이 반야바라밀에 공양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한 까닭이며,

 

又欲授三乘記別故(우욕수삼승기별고) 說是般若波羅蜜經(설시반야바라밀경)

또는 3승=성문, 연각, 보살의 기별(수기, vyākaraṇa)을 주기 위해서 이 '반야바라밀경'을 설하셨나니, 

 

기별(혹은 記說 授記, vyākaraṇa, veyyākaraṇa) 성불의 예언을 의미한다. 부처님이 수행하는 사람에게 미래에 성불할 것을 예언하는 것, 시간, 국토, 불명, 수명 등을 예언하는 기별을 제자에게 주는 것을 수기(授記)라고 함.

 

如佛告阿難(여불고아난) 我涅槃後(아열반후) 此般若波羅蜜(차반야바라밀)

부처님께서 아난(Ānanda)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내가 열반(반열반, 般涅槃)에 든 뒤에 이 반야바라밀이 남방으로 갈 것이고, 

 

*반열반(般涅槃)=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이루신 다음에 부처님께서 최후에 반야바라밀과 하나로 어우러져 세간의 인연이 사라지게 되는 것. 

 

當至南方(당지남방) 從南方至西方(종남방지서방) 後五百歲中當至北方(후오백세중 당지북방)

남방에서 다시 서방으로 가서  5백년 뒤에는 북방에 이를 것이니라. 

 

是中多有信法(시중다유신법) 善男子善女人(선남자선여인)

그 곳에는 바른 법(참된 가르침)을 믿는 선남자 선여인이 많이 있어 

 

善男子善女人(선남자 kula-putra, 선여인 kula-putrī.)=‘훌륭한 가문의 젊은 남녀’를 의미하나, 대승불교에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바른 믿음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며, 통상 보살에 대한 호칭으로 쓰인다.

 

種種華香(종종화향) 瓔珞幢幡伎樂(영락당번기락) 燈明珍寶(등명진보)

以財物供養(이재물공양)

갖가지 꽃, 향, 영락. 당기, 번기, 풍악, 등불, 보물과 재물로써 공양할 것이며, 

 

若自書若教人書(약자서약교인서) 若讀誦聽說(약독속청설) 正憶念修行(정억념수행)

以法供養(이법공양)

만약 손수 쓰는=사경하거나, 남을 시켜 쓰게 하거나, 읽고 외우는=독송을 하거나, 설법을 듣거나, 바르게 잘 기억해서 수행하여 법으로써 공양하리니,

(바르게 기억하고 생각하며 수행(修行)=선정(禪定)과 함께 바르게 분별하고 사유하는 것이 참된 가르침()을 따라 공양하는 것이니라.)

 

是人以是因緣故(시인이시인연고) 受種種世閒樂(수종종세간락)

末後得三乘 入無餘涅槃(미후득삼승 입무여열반)

이 사람들은 이 인연으로 세간의 갖가지 즐거움을 받으며, 마지막에는 3승의 법을 얻어 무여열반에 들리라.”

무여열반(無餘涅槃, nirupadhiś)= 열반은 ⓢnirvāṇa ⓟnibbān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고,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이다.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완전히 소멸된 마음 상태를 말한다. 열반에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이 있는데, 전자는 열반에 이르렀으나 아직 5온이 남아 있는 열반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5온이 남아 있지 않은 열반, 즉 죽음을 뜻한다. 살아서 탐 · 진 · 치가 소멸된 상태가 유여열반이고, 죽음은 무여열반이다.

 

如是等觀 諸品中因緣事故(여시등관 제품중인연사고) 說般若波羅蜜經(설반야바라밀경)

이와 같이 관찰하여 여러 품들과 인연으로 불사를 하시기에 '반야바라밀경'을 설하시는 것입니다.


復次佛欲說 第一義悉檀相故(부차불욕설 제일의실단상고)

說是般若波羅蜜經(설시반야바라밀경) 有四種悉檀(유사종실단)

또한 부처님께서 제일의실단(siddhānta)의 상을 설하시기 위해 이 '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셨으며, 네 가지의 실단이 있으니, 

(부처님께서는 참되어 변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진실(眞實)과 하나가 되도록 제일의실단(第一義悉壇)을 일러주시고자 이렇게 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단(悉檀, siddhānta)은 ‘범주’나 ‘입장’을 의미하며 ‘성취,’ ‘종(宗)’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네 개의 실단은 불교에 대한 『대지도론』의 교상판석적 입장이기도 하다.

실단(悉檀)이란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을 말하며 실(悉)은 변(두루)의 의미이고 단(檀)은 시(施)라는 의미다. 이러한 사실단(四悉檀)의 각각을 살펴보면 

 

一者 世界悉檀(일자 세계실단) 二者 各各爲人悉檀(이자 각각위인실단)

첫째는 세계실단이요, 둘째는 각각위인실단이요, 

 

세계실단(世界悉檀, laukika-siddhānta)=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 존재일반의 실상을 드러내어 진정한 인간의 삶과 복지를 실현하는, 즉 각각의 세상에 맞추어 참된 가르침을 설하시어 범부(凡夫)를 기쁘고 즐겁게 하여 세간 속에서 반야바라밀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낙욕실단(樂欲悉檀)이라고도 하는 바른 가르침. 중생의 소망에 응해 세계의 법, 세상의 성립 이치를 설명해주어 환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각각위인실단(各各爲人悉檀, prātipauruṣika-siddhānta)= 그 사람의 능력과 자질에 맞추어 진리를 설하는 것, 중생의 성질과 능력에 따라 선근(善根)이 자라도록 하는 대기설법(對機說法)으로 생선실단(生善悉檀)이라고도 한다. 즉 업(業)의 장애에 의해 펼쳐지는 중생의 근기에 맞게 일러주어 출세간(出世間)할 수 있도록 하여 반야바라밀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참되고 바른 가르침.

 

三者 對治悉檀(삼자 대치실단) 四者 第一義悉檀(사자제일의실단)

셋째는 대치실단이요, 넷째는 제일의실단이니라.

 

대치실단(對治悉檀)=부처님이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미혹을 대치하고 이익을 주는 것, 병(번뇌)에 따라 약을 처방하여 치유(악을 끊게)하는 단악실단(斷惡悉檀)을 말한다. 즉 중생이 지닌 번뇌와 악업(惡業)을 살펴보고 깨우치게 하여 이를 없애 반야바라밀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참되고 바른 가르침.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 상대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곧 바로 진리에 들어가게 하는 입리실단(入理悉檀)이다. 즉 훌륭한 믿음으로 모든 것 내맡기어 실천하도록 하는 참되어 바른 가르침.

復次佛初生時(부차불초생시) 墮地行七步(타지행칠보) 口自發言(구자발언)

또한 부처님께서 처음 탄생하셨을 때 땅을 밟으시자 일곱 걸음 걸으시며 스스로 한 말씀하시고, 

 

言竟便默如諸嬰孩(언경편묵여제영해) 不行不語乳餔三歲(불행불어유포삼장)

諸母養育漸次長大(제모양육점차장대) 

말이 끝남에 곧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보통의 젖먹이와 다름없이 걷거나 말하지 않았으며, 세 살이 될때까지 젖을 먹고 여러 유모들에 의해 차츰차츰 자라났습니다.

 

然佛身無數(연불신무수) 過諸世閒(과제세간) 爲衆生故(위중생고) 現如凡人(현여범인)

부처님의 몸은 수효가 없어서 모든 세간을 초월했건만,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범부와 똑같은 자취를 보이셨던 것입니다.


凡人生時(범인생시) 身分諸根(신분제근) 及其意識未成就故(급기의식미성취고)

무릇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신체적 감관은 갖추어져 있으나, 의식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身四威儀(신사위의) 坐臥行住言談語默(좌와행주언담어묵)

種種人法皆悉未了(종종인법개실미료)

몸의 네 가지 위의인 앉고 눕고 걷고 가만히 있는 것과 말을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 등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갖가지 세간의 예절을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으나,  

 

日月歲過漸漸習學(일월세과점점습학) 能具人法(능구인법)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츰 배우고 익혀서 비로소 세간의 예법을 갖추게 되거늘, 

 

今佛云何生便能語能行(금불운하생편능어능행) 後更不能(후갱불능)?

以此致怪(이차치괴) 

지금의 부처님은 어찌하여 태어나시자마자 말도 하고 걷기도 하시더니, 나중에는 하시지 못하는가 하여 이를 괴이하게 여기나니,  

 

但爲此故以方便力(단위차고이방편력) 現行人法(현행인법)

다만 이러한 일을 이룸은 방편의 힘으로써 인간의 법을 행하심을 나타내시어 

 

方便= upāya-kauśalya. 방편(方便). 수단과 방법을 의미하는 말로 상대의 능력과 소질 등에 맞추어 법을 가르치는 불보살의 인도 방법을 뜻한다.

방편은 초기 논장인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등에도 등장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한 개념이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흥기한 이후, 깨달음을 얻었으나 일체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자기 자신 또한 중생계에 남겠다는 보살의 중생 구제 서원과 맞물리면서 거의 모든 대승 경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의 제7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이나 '성유식론(成唯識論)'의 제9권에서는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등의 육바라밀에 이어 방편, 원(願), 역(力), 지(智)를 더해 십바라밀을 구성하면서 방편을 하나의 독립된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추가된 4종의 바라밀은 육바라밀을 돕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방편은 보시·지계·인욕을, 원은 정진을, 역은 선정을, 지는 반야바라밀을 보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십바라밀은 '화엄경(華嚴經)' 십지품(十地品)에서 10을 완전한 숫자로 보고 육바라밀을 확충한 것으로, 대승의 초기 경전부터 이어져온 육바라밀에 방편을 하나의 독립된 개념으로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기존에 이어져왔던 방편의 여러 의미를 총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유마경의 방편론은 이 논서들과 달리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힘이요, 방편이 있는 지혜는 풀림이며, 지혜가 없는 방편은 얽힘이요, 지혜가 있는 방편은 풀림이다.’, 그리고 ‘지혜는 어머니, 방편은 아버지’라고 부르며 지혜와 방편이 한 쌍을 이루고 있다.
'법화경'의 제2 방편품(方便品)에는 ‘삼승방편 일승진실(三乘方便 一乘眞實)’이라는 즉, ‘성문, 독각, 그리고 보살승 또는 대승까지 포함하는 삼승의 모든 불교가 곧 하나의 진리이다.’라는 유명한 언급이 나온다. 또한 여기서는 ‘여래들께서는 여러 가지 절묘한 방편과 지견을 통해, 즉 원인과 이유, 비유와 인연, 언어와 해석과 교리로써 법을 설하시기 때문이며, 또 때에 맞는 절묘한 방편으로 여러 갈래로 집착하고 있는 중생들을 해탈시키시기 때문이다.’라고 지혜를 방편으로 펼친 구체적인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이후에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으로 널리 알려졌다. '법화경'의 제4 신해품(信解品)에는 화택의 비유[火宅喩], 부호의 비유[窮子喩] 등, ‘법화칠유(法華七喩)’의 다양한 방편들의 실례가 등장하고 있다.

 

如人威儀(여인위의) 令諸衆生信於深法(영제중생신어심법)

사람들의 위의와 같게 하신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깊은 법을 믿게 하셨을 뿐이니라.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위의(威儀)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모든 중생이 불도(佛道)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게끔 하는 참된 가르침()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若菩薩生時(약보살생시) 便能行能語(편능행능어) 世人當作是念(세인당작시념)

만약 보살이 탄생하셨을 때부터 바로 걷고 말을 하게되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今見此人世未曾有(금견차인세미증유) 必是天龍鬼神其所學法(필시천용귀신기소학법)

必非我等所及(필비아등소급)

‘지금 이 사람을 보건대 세상에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드문 일이니, 분명히 하늘의 용이거나 귀신으로 그가 배우는 법은 우리들이 미칠 바가 아니리라. 

 

何以故(하이고) 我等生死肉身(아등생사육신) 爲結使業所牽(위결사업소견)

不得自在(불득자재)

왜냐하면 우리들의 나고 죽는 육신은 결과 사의 업보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니, 

(왜냐하면우리들의 나고 죽는 육신은 오개(五蓋)에 덮여 제멋대로 날뛰는 거친 마음에 묶여=結, 탐진치(貪瞋癡) 삼독의 부림을 당하는 버릇=使의 업()으로 자유로움을 얻지 못하거니와,)

 

如此深法 誰能及之(여차심법 수능급지)?'

이렇게 깊은 법을 (우리가 감히) 어찌 배워 알겠는가.’

 

以此自絕(이차자절) 不得成賢聖法器(불득성현성법기)

이렇게 스스로 좌절하기 때문에 성현의 법기를 이루지 못하나니, 

(스스로 좌절하므로 성현의 참된 가르침(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불도(佛道)를 성취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爲是人故 於嵐毘尼園中生(위시인고 어남비니원중생)

이러한 (우리들 중생) 사람을 위하는 까닭에 룸비니(Lumbini) 동산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嵐毘尼, 룸비니(Lumbini)= 남비니(藍毘尼)라고 음역. 네팔 남부 테라이 지방의 룸비니에 있는, 석가모니 탄생지로 인도의 붓다가야, 녹야원(싸르나트), 구시나가라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이며, 페허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1895년 독일 고고학자인 포이러(Feuhrer)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雖卽能至菩提樹下成佛(수즉능지보리수하성불) 以方便力故 而現作(이방편력고이현작)

孩童 幼小年少成人(해동 유소년 소성인)

비록 보리수 아래에 이르러서야 불도를 이루셨으나, 방편의 힘으로써 아기, 어린이, 소년, 어른이 됨을 드러내셨으니, 

 

於諸時中次第而受(어제시중 차제이수) 嬉戲術藝服御五欲(희희 예술 복어 오욕)

여러 때에 걸쳐 차례로 놀이와 기예=기술과 기예를 배우고, 학문을 익힌 뒤에, 5욕을 누리시어 인간의 법을 갖추셨습니다. 

 

具足人法後漸見(구족인법후점견) 老病死苦生厭患心(노병사고 생염환심)

於夜中半踰城出家(어야중반 유성출가)

나중에 차제로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을 보게 되어, 이를 싫어하는 생각을 내어 한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하여 

 

到鬱特伽阿羅洛仙人所(도울특가아하락선인소) 現作弟子而不行其法(현작제자 이불행기법)

우드라카라마푸트라(울특가, Udraka-Rāmaputra)와 아라라(Ālāra-kālāma) 선인에게로 가서 제자가 됨을 보이셨으나, 끝내 그들의 법을 행하지는 않으셨습니다.(그들의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雖常用神通(수상용신통) 自念宿命(자념숙명)

비록 신통을 항상 부릴 수 있었으나, 스스로 숙명을 억념하건대, 

 

迦葉佛時持戒行道(가섭불시지계행도) 而今現修苦行六年求道(이금현수고행 육년구도)

가섭부처님(Kāśyapa) 때에 이미 계행을 지니고 닦았지만, 다시 고행을 닦는 모습 드러내 보이시어 6년간 도를 구하셨습니다.
(비록 신통을 항상 쓸 수 있었으나스스로 숙명(宿命)을 생각하니가섭불 때에 계율을 지키며 생사고해에서 벗어나는 참된 길()을 관하였고지금 현재도 육년 동안 선정(禪定)과 마음이 함께하여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사유하여, 고()를 관찰하여 참된 길()을 구하고자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菩薩雖主三千大千世界(보살수주삼천대천세계) 而現破魔軍(이현파마군)

보살이 비록 삼천대천세계의 주인이 되었으나 마군을 항복시키고 

 

成無上道隨(성부상도수) 順世法故 現是衆變(순세법고 현시중변)

無上道=위없는 도(무상정등각)를 이루었으니, 세상의 법에 순응하기 위한 까닭에 이러한 뭇 변화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今於'般若波羅蜜'(금어반야바라밀) 中現大神通智慧力故(중현대신통지혜력고)

이제 이 '반아바라밀경'에서 이러한 큰 신통과 지혜의 힘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諸人當知佛身無數(제인당지불신무수) 過諸世閒(관제세간)

사람들은 마땅히 부처님의 몸이 세간의 모든 것을 훨씬 초월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復次有人應可度者(부차 유인응가도자) 或墮二邊(혹타이변)

또한 어떤 사람은 제도될 만한하나, 두 가지 치우친 견해=二邊에 떨어져 있으니, 

(또한어떤 사람은 마땅히 무여열반의 나루터를 건널 수 있으나잘못되어 상견(常見)이나 단멸견(斷滅見)에 빠져 있거나)

 

或以無智故(혹이무지고) 但求身樂(단구신락)

혹은 지혜가 없는 까닭에 오로지 일신의 즐거움(안락)만을 구하거나 

 

或有爲道故(혹유위도고) 修著苦行(수착고행)

혹은 유위의 길에 치우친 까닭에 고행 닦기에만 집착하니,

(생주멸(生住滅)의 유위(有爲) 속에서 생사고해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하나뿐인 참된 길(道)을 구하는 까닭에 선정(禪定)과 마음이 함께하여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사유하고자 고행(苦行)에 집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如是人等(여시인등) 於第一義中(어제일의중) 失涅槃正道(실열반정도)

이러한 사람들은 제일의를 통한 열반의 바른 길을 잃게 되나니,

(이와 같은 사람이 제일의(第一義)를 통해서 어느 것 하나 치우침 없게 되면 열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놓아버리고, 바르게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제일의(第一義)=제일의제(第一義諦, para- mārtha-satya), 또는 진제(眞諦) 라고도 한다. parama는 훌륭하고 수승하다는 뜻이고 artha는 의미라는 뜻이다. 세속제는 진제(眞諦)에 대비되는 속제와 같은 말이고 산스크리트어로 saṃvṛti-satya이다. 승의제는 마음의 영원불멸한 실상을 깨닫는 일을 말하고, 속제는 마음의 동요가 빚는 갖가지 생멸의 상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佛欲拔此二邊(불욕발차이변) 令入中道(영입중도)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두 가지 치우침 (상견과 단멸견)에서 건져내어 중도에 들게 하기 위하여

 

故說摩訶般若波羅蜜經(고설바하반야바라밀경)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復次佛世尊欲令(부차불세존욕령) 衆生歡喜故說是(중생환희고설시)

般若波羅蜜經言(반야바라밀경언)

또한 불세존께서는 중생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까닭에 이렇게 '반야바라밀경'을 설하시니, 

 

汝等應生大喜(여등응생대희) 何以故(하이고)?

그대들은 마땅히 크게 기뻐하는 생각을 낼것이니라. 왜냐하면 

 

一切衆生入邪見網(일체중생입사견망) 爲異學惡師所惑(위이학악사소혹)

일체 중생이 모두 삿된 소견의 그물에 걸려 (생사고해 속에 들어), 잘못된 가르침이나 삿된 스승에게 미혹당하지만 

 

我於一切惡師邪網中得出(아어일체악사사견중득출)

나는 일체의 그릇된 스승과 삿된 그물에서 벗어나,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니라. 

 

十力大師(십력대사) 難可値見(난가치견) 汝今已遇(여금이우)

10력을 갖춘 대사(스승)는 만나기 어렵거늘, 그대들은 이제 만났노라. 

 

我隨時開發(아수시개발) 三十七品等(삼십칠품등) 諸深法藏恣汝採取(제심법장자여채취)

나는 때를 맞추어 37품을 비롯한 모든 불도의 참된 가르침인 법의 창고=法藏을 열어 보이노니, 그대들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하셨다. 

(37품(品)을 비롯한 모든 불도(佛道)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는 참된 가르침(法)의 창고를 통해 일체중생을 구하는 뜻을 일으키게 하는 해탈문을 활짝 열어 보이나니, 너희들은 마음껏 법보(法寶)를 가져 가라.)

37품(品)=sapta-triṁśad-bodhipakṣa. 37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 삼십칠보리도법(三十七菩提道法), 37각지(三十七覺支), 37도품(三十七道品), 37도분(三十七道分), 37조도법(三十七助道法), 37품도법(三十七品道法), 37품(三十七品) 등으로 부른다.  깨달음, 도(道), 보리(菩提)에 이르는 37가지 법’을 말하며, 초기불교의 '아함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37가지 도품(道品), 즉 수행법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실상 초기불교 수행법을 통칭하는 말이다.
'아함경'에서 붓다가 언급하는 37조도품은 네 가지 마음챙김=4념처(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4정근(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4여의족(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5근(五根), 다섯 가지 힘=5력(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7각지(七覺支),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8정도(八正道) 등의 일곱 가지 수행법을 합친 것이며, 이를 7과(七科)라고 한다. ]


復次(부차) 一切衆生(일체중생) 爲結使病所煩惱(위결사병소번뇌)

또한 일체의 중생들이 결사(=오개五蓋, 번뇌)라는 병으로 괴로워하지만 

(또한, 일체중생이 오개(五蓋)에 덮여 거친 마음에 묶이게 되어=結, 탐진치(貪瞋癡) 삼독의 부림을 당하는 버릇=使라는 병에 걸려서 번뇌에 물들게 되고, )

 

결사(結使)= saṃyojana. ‘얽어 매임’을 사=anuśaya는 내면에 깃든 악한 성향을 가리킨다. 결과 사는 모두 번뇌의 다른 이름. 번뇌는 심신을 계박하여 고과(苦果)를 가져오므로 결(結)이라 하며, 중생을 따라 다니면서 강요하므로 사(使)라고 함. 9결(結)과 10사(使)가 있다.

 

無始生死已來(무시생사이래) 無人能治此病者(무인능치차병자)

무시의 생사 이래 아무도 이 병을 고쳐주는 이가 없었으며,

(스스로 생사고해 속에 계속 머물면서 어느 누구하나 능히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常爲外道惡師所誤(상위외도악사소오)

항상 외도나 그릇된 스승=惡師에 현혹되어 있기에(잘못된 깃을 가기에)

 

외도(外道)=tīrthika, tīrtha-kara. 불교를 내도(內道)라고 하는데 대한 대칭으로, 대표적인 외도 사상가로는 육사외도(六師外道)가 있었다. 나중에는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가리키는, 일반적으로는 불교 외의 종교 철학 내지는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나아가 정론(正論)에서 벗어난 삿된 이론이나 삿된 이론을 펴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我今出世爲大醫王(아금출세위대의왕) 集諸法藥汝等當服(집제법약여등당복)

'내가 이제 세상을 벗어나는 대의왕(mahāvaidyarāja)이 되어 (제법에 대한 참된 가르침의) 온갖 법약(dharmabhaiṣajya)을 다 모았으니, 그대들은 이 약을 마땅히 복용하라' 하셨으니

 

是故佛說(시고불설)  摩訶般若波羅蜜經(마하반야바라밀경)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 '마하반야바라밀경' 을 설하신 것입니다.


復次有人念言(부차유인념언) 佛與人同亦有生死(불여인동역유생사)

實受飢渴(실수기갈) 寒熱老病苦(한열노병고)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여 말하기를, ‘부처님도 다른 사람과 다름이 없이 생사가 있어서, 실로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늙음과 병듦 등의 괴로움을 겪는다.’

 

佛欲斷彼意故(불욕단피의고) 說是摩訶般若波羅蜜經(설시마하반야바라밀경)

부처님께서 그러한 그들의 생각을 끊어 주기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 말씀하셨으니,

 

示言(시언) 我身不可思議(아신불가사의) 梵天王等諸天祖父(범천왕등제천조부)

'나의 몸은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며, 범천왕 등 모든 하늘의 할아버지도 

 

於恒河沙等劫中(어항하사등겁중) 欲思量我身(욕사량아신) 尋究我聲(심구아성)

不能測度(불능측도)

항하의 모래수 만큼 많은 겁 동안(오랫동안) 나의 몸을 헤아려 보거나, 나의 음성을 밝히려 하였으나 끝내 찾을 수 없었나니, 

 

況我智慧三昧(황아지혜삼매)? 如偈說(여갈설);

하물며 나의 지혜와 삼매이랴'고 하시고는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諸法實相中(제법실상중)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을
諸梵天王等(제범천왕등)

모든 범천왕들을 비롯하여

一切天地主(일체천지주)

일체 천지의 주인들(왕들이)
迷惑不能了(미혹불능료)
모두 미혹되어서 누구도 분명히 알지 못하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에 대해


此法甚深妙(차법심심묘)

이 법=참된 가르침은 심히 깊고 미묘하여
無能測量者(무능측량자)

헤아릴 이가 없건만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능히 이해할 수 없지만)
佛出悉開解(불출실개해)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모두 보여 주노니 (일체세간을 벗어날 수 있도록 부처님이 불도(佛道)를 열어주시나니)
其明如日照(기명여일조)

마치 밝은 해가 환히 비치는 것과 같도다.

 

又如佛初轉法輪時(우여불초전법륜시) 應時菩薩從他方來(응시보살종타방래)

또한 부처님께서 轉法輪=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 그 때에 다른 세계로부터 보살들이 와서 

 

欲量佛身(욕량불신) 上過虛空無量佛剎(상과허공무량불찰)

부처님의 몸을 헤아려 보고자, 위의 허공으로 한량없는 불세계(buddha-kṣetra)를 지나 

 

불세계[佛刹]=부처님이 계시는 국토, 부처님의 세계, 또는 부처님이 교화하는 국토. 불국토(佛國土), 불토, 범찰(梵刹)이라고도 한다. 정토(淨土)는 원래 불찰이지만, 예토(穢土)도 역시 부처님의 교화와 이익을 받는 곳이므로 불찰에 해당한다. 또 사원(사찰-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즉 佛土(佛刹)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①'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사는 청정한 세계라는 의미와 ②부처님이 미(迷)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출현하시는 미(迷)의 세계, 부처님이 교화(제도)의 대상인 세계도 '불토(佛土)'라고 부른다.  

 

至華上佛世界(지화상불세계) 見佛身如故(견불신여고) 菩薩說言(보살설언)
화상불 세계에까지 이르러서도 부처님의 몸은 전과 다름없어 보였으므로, 그 보살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습니다.

虛空無有邊(허공무유변) 佛功德亦爾(불공덕역이)

허공이 (정해진) 끝이 없듯이, 부처님 공덕도 그러하시니

設欲量其身(설욕량기신) 唐勞不能盡(당노불능진)
부처님 몸을 재어보려 했으나(헤아려 보려하였으나), 공연한 헛수고에 그쳤네.


上過虛空界(상과허공계) 無量諸佛土(무량제불토)

위로 한없는 허공을 지나 무량한 세계를 지났으나

見釋師子身(신석사자신) 如故而不異(여고이불이)
석가모니 사자왕의 몸, 여전히 다름이 없으시니.

佛身如金山(불신여금산) 演出大光明(연출대광명)

부처님의 몸은 금산과 같아, 큰 광명을 한없이 펼쳐내시고

相好自莊嚴(상호자장엄) 猶如春華敷(유여춘화부)

32 상호로 스스로를 장엄하심이, 마치 봄날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듯 하시네.

 

*금산(金山)수미산의 바로 앞을 감싸고 있는 금위산(金圍山).

 

如佛身無量光明(여불신무량광명) 音響亦復無量(음향역부무량)

마치 부처님의 몸매가 한량이 없듯이 광명과 음성의 울림 역시 한량이 없으시고 

 

戒定慧等諸佛功德(계정혜등제불공덕) 皆悉無量(개실무량)

계ㆍ정ㆍ혜 등을 비롯한 모든 부처님의 공덕들도 한량이 없으시니,

 

如'密迹經'中三密(여'밀적경'중삼밀) 此中應廣說(차중응광설)

밀적경에서 말씀하신 3밀과 같으니, 여기에서도 마땅히 자세히 설하시는 것입니다.

 

三密(삼밀)= 손으로 인계(印契)를 맺는 신밀(身密), 입으로 진언(眞言)을 외는 구밀(口密), 마음으로 본존(本尊)을 바라보는 의밀(意密)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삼밀의 행법은 우리의 몸·입·뜻의 삼업(三業)이 본래 부처의 삼밀과 동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 실천적 수행방법으로는 손으로 인(印:진리와 깨달음의 세계를 표시함.)을 결(結:손으로 印의 모양을 맺는 것)하고 입으로는 진언을 외우며, 뜻으로 자기가 본래 부처임을 알아서 중생과 부처는 본성이 본래 같고 범부와 부처의 본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관하게 된다.
이와 같은 수행을 계속하여 정신이 통일되면 중생의 삼업이 부처의 삼밀과 상응 일치하고 서로 걸림이 없으며, 수행자가 곧 불(佛)에 들어가고 부처가 나에게 들어오는 일여(一如)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현교(顯敎)에서는 중생의 신·구·의를 삼업이라 하고, 부처의 신·구·의를 삼밀이라고 구분하지만, 밀교에서는 부처와 중생의 양면에서 신·구·의 삼밀을 생각한다.
부처의 신·구·의 삼업의 활동은 매우 미묘하여 범부로서는 알 수 없는 경계이므로 삼밀이라고 한다. 우주의 본체를 인격화한 것이 법신(法身)여래이므로 그 신밀(身密)은 우주의 전체적 활동이고, 어밀(語密)은 우주 속의 온갖 언어·음성의 활동이며, 의밀(意密)은 우주의 온갖 정신활동을 말한다.
그리하여 삼밀은 각각 서로 융합되어 찰나에 신밀과 어밀과 의밀을 갖추게 된다. 잠깐의 의밀에도 한 생각에 신밀과 의밀을 갖추며, 한 구절의 어밀에도 신밀과 의밀을 갖춘다.

중생편에서 보면 중생과 부처가 그 체(體)에서 일체불이(一體不二)이므로 중생도 부처와 같이 미묘한 삼업의 활동이 있지만, 오직 수련한 이만이 아는 세계이고 범부로서는 알 수 없는 세계라 하여 삼밀이라 한다. 우리 나라 불교에서의 삼밀가지 수행법은 고려시대에는 성행하였으나, 조선시대가 되면 불의 삼밀 중 구밀 또는 어밀에만 일치하려는 진언(眞言)이 성행하였다.
오늘날의 우리 나라 불교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삼밀가지법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다만 영혼천도 때의 관욕(灌浴) 의식에서는 삼밀가지를 행하고 있다. 삼밀가지의 수행법은 자신의 존재를 우주와 일치시켜 인식하려는 사고양식을 낳게 하였다.

是故自現最妙功德(시고자현최묘공덕) 出大神力(출대신력)

그러므로 스스로 가장 묘한 공덕을 나타내시고 신통력=神力 나타내 보이시나니

 

如般若波羅蜜(여반야바라밀) 初品中說(초품중설)

이는 마치 '반야바라밀경' 초품에 설하신 바와 같이,


佛入三昧王三昧(불입삼매왕삼매) 從三昧起(종삼매기)

'부처님께서 삼매왕삼매 드셔서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져서 시방세계를 막힘없이 꿰뚫어보신 후) 삼매로부터 일어나셔서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 모든 삼매 가운데 가장 으뜸이고 自在하여서 능히 한량없는 법을 반연하는 모든 삼매 가운데 최상의 삼매

 

以天眼觀十方世界(이천안관시방세계擧身毛孔皆笑(거신모공개소)

천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살펴보시며, 온몸의 모공이 모두 열리고 털이 정수리를 향하여 솟구쳐서 웃음꽃이 피게 하시고,

 

천안(天眼)= 여래의 오안(五眼)의 하나.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
①육안(肉眼) :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것.
②천안(天眼) :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보고 애틋한 마음(연민심)을 일으키는 것.
③혜안(慧眼) :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
④법안(法眼) :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 남을 위해 이타행(利他行)을 하는 보살의 눈
⑤불안(佛眼) : 미세한 번뇌까지 영원히 없어져 오롯하게 밝아 모든 것을 빠짐없이 두루 비추는 것. 불지견(佛知見)의 눈'

從其足下千輻輪相(종기족하천복(폭)륜상) 放六百千萬億種種色光明(방육백천만억종종색광명)

輻 바퀴살 복, 폭

발바닥의 일천개의 바퀴=千輻輪相으로부터 6백 천 만억의 갖가지 광명을 놓으시며

 

*천폭륜상(千輻輪相) 32상의 하나. 부처님의 발바닥에 있는 천개의 수레바퀴와도 같은 무늬이며 이는 모든 법이 원만함을 나타내는 상이라 함.


從足指上至肉髻(종족지상지육계) 處處各放(처처각방)

六百千萬億種種色光明(육백천만억종종색광명)

발가락으로부터 위로는 정수리=肉髻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제각기 6천만억 가지 광명을 발하시니, 


普照十方無量無數(보조시방무량무수) 如恒沙等諸佛世界(여항사등제불세계)

皆令大明(개령대명)

시방의 한량없고 헤아릴  없는,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불세계(불국토) 비추어 모두 환하게 밝히셨습니다.

 

*佛世界(불세계)= 불국토(佛國土) 또는 불찰(佛刹)

*皆令大明(개령대명)= 광명을 놓는 이유에 대해 『대지도론』(제25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어떤 이가 부처님께서 무량한 몸으로 대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면 마음에 믿음이 청정해지고 공경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로 인해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有人見佛無量身放大光明. 心信淸淨恭敬故. 知非常人).”

 

佛從三昧起(불종삼매기) 欲宣示一切諸法實相(욕선시일체제법실상)

곧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셔서, 온갖 일체 제법의 실상에 대하여 (중생들에게) 보여 주시어 

 

斷一切衆生疑結故(단일체중생의결고) 說般若波羅蜜經(설반야바라밀경)

일체 중생의 의혹=疑結을 끊어 주시려는 까닭에 '반야바라밀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일체중생이 오개(五蓋)에 덮여 제멋대로 날뛰는 거친 마음에 묶이게 되어(結) 의심하는 버릇을 끊어내기 위한 까닭에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復次有惡邪人(부차유악사인) 懷嫉妒意誹謗言(회질투의비방언)

懷 품을 회, 嫉 미워할 질, 妒 강새암할 투, 妬와 同字, 誹 헐뜯을 비

또한 어떤 사악한 사람은 질투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비방하기를 

 

佛智慧不出於人(불지혜불출어인) 但以幻術惑世(단이환술혹세)

'부처의 지혜를 인간의 몸으로는 드러낼 수 없거늘, 환술로써 세인을 현혹시킬 뿐이라고 하였으나,

 

斷彼貢高邪慢意故(단피공고사만의고) 現無量神力(현무량신력)

그들의 사악하고 교만한 마음을 꺾기 위하여 한량없는 (반야바라밀을 통해) 무한한 신통력과  

 

無量智慧力(무량지혜력) 於般若波羅蜜中自說(어반야바라밀중자설)

무량한 지혜의 힘을 나타내어 '반야바라밀경'에서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我神德無量(아신덕무량) 三界特尊(삼계지존) 爲一切覆護(위일체부호)

'나의 신통력과 공덕은 한량이 없고 삼계에서 가장 거룩하며, 일체를 덮고 감싸고 보호하느니라.'

 

삼계(三界)= tri-dhātu. 유정이 생사윤회하며 머무는 욕계․색계․무색계의 세 가지 미혹의 세계.

①욕계(欲界, kāma-dhātu):음욕과 식욕 등 본능적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②색계(色界, rūpa-dhātu):음욕과 식욕을 여의었으며, 절묘한 물질[色]로 이루어진 청정한 세계이다. 이는 또한 네 단계 선정[四禪]에 의해 도달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③무색계(無色界, arūpa-dhātu):물질의 얽매임을 뛰어넘어 고도의 정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네 단계 무색정[四無色定]에 의해 도달되는 경지이기도 하다.

 

若一發惡念(약일발악념) 獲罪無量(획죄무량)

만약 한순간이라도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 한량없는 죄업을 받게 되나, 

 

一發淨信(일발정신) 受人天樂 必得涅槃果(수인천락 필득열반과)

한순간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면 인간과 하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며, 반드시 열반의 과보를 얻으리라.'

(한순간 믿음을 내어 맑고 깨끗함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사람이나 하늘이 되어 즐거움 누릴 수 있게 되며반드시 열반(涅槃 nirvāna)이라는 마무리를 얻게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열반(涅槃)= 더 이상의 어떠한 고통, 욕망, 자의식이 없는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를 말한다. 깨달음에 의해 업보 및 윤회에서 해방된 상태이기도 하다.

인도의 고대 사상가들은 평안·안은·안락·행복·피안 등과 같은 이상을 목적으로 하여 이에 도달하는 것을 모크샤(Moksha)라 하였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निर्वाण(니르바나)라 한다. 어원에는 많은 설이 있으나, '(불을) 불어서 끄다, 또는 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과, '소멸한다'라는 뜻의 니르바 nirva 또는 '뚜껑을 없앤다'라는 뜻의 니르브리 nirvr라는 설 등이 유력하다.
한자로 음차를 해서 열반나(涅槃那), 열반(涅槃), 니원(泥洹) 이라고도 쓴다. 원래 涅는 '녈'이라고 읽고, 두음법칙으로 단어의 앞에 올 때는 '열'이 된다.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였던 것이 → 중국에서 한자어 "녈반"으로 음차되고 → 한국에서 두음법칙으로 "열반"이 된 것이다. 산스크리트식 "니르바나"와 한자를 거친 "열반" 모두 옳은 표기이다.
사실 열반나(涅槃那)는 한어로 net-ban-na 혹은 niet-buan-na 로 읽히는 음차 표기이다.
의역할 때는 '적멸'이라 한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여기서 '적멸'이 열반을 뜻한다. 모든 번뇌를 태워 버리고,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이 지극히 고요한 상태. 멸도 등으로 쓰기도 하는 참으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해탈(解脫) 역시 열반의 의역이다.

열반이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이기는 하지만 불교의 최종 목표는 열반이 아니라 무상정등정각, 즉 최상의 깨달음을 이룩하는 것이다. 열반은 무상정등정각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편인 삼승 중 하나에 속한다.

열반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부처처럼 육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열반에 든 경우(유여의열반)가 있고 육체가 소멸한 상태로 열반에 드는 경우(무여의열반) 두 가지가 있다. 쉽게 현생에서 해탈을 통해 열반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죽음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통한 열반의 과정을 잘 모르고 있는데 스님과 같은 사람들은 죽음을 통한 열반(무여의열반)을 거쳐왔다. 이처럼 열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고 현생에서의 열반, 죽음을 통해서도 열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시공불교사전, 원불교 대사전, 한국고전용어사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처음 담아낸 책인 디가 니까야의 첫 번째 경인 범망경에서 이에 대해 아주 짧게 나온다. 디가 니까야는 팔리어로 쓰였으며 제1차 결집 때 아난다 존자를 중심으로 석가모니의 직계 제자 약 500여 명이 만장일치를 통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하고 써낸 책이다. 범망경이란 '견해의 그물'이라고도 하며, 이런 견해에 집착 또는 머물면 열반에 들 수 없다 하고 '잘못된 견해'에 대해 설명 한다. 예시 중, '지금 이 자리에서 열반을 실현했다고 주장하는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오온의 기쁨, 선정을 통한 기쁨을 열반이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이다. 이를 다룬 팟캐스트도 있다
쉽게 말해 부귀, 자식의 성공 등 생전의 삶의 모습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털어내고) 이렇다 할 마음의 작용 없이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와 유사한 이치라 할 수 있다.
상좌부 불교의 교학관에 따르면, 색계 선정을 어느 정도 배양한 수행자는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들을 마음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고 여긴다. 이때 도과(道果, magga-phala)의 지혜 역시 배양된 상태라면, 열반을 대상으로 삼아서 관찰할 경우 밝은 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스님의 부고를 불교계에서는 "입적하셨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열반과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입적 이라는 말은 '완전한'이라는 의미의 접두사인 파리(pari)를 붙여 니르브리티(parinirvana, 귀환)이라고 한다. 한역으로는 반열반(般涅槃)으로 음사한다.
그런데 94년도 첫 수능에서 열반의 의미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열반에 들다"와 "입적하다"를 같은 의미로 판단하였다. 모르면 내지를 말든지. 중등교육에서 여기까지 파고들지 않는가 보다.

 

復次欲令人(부차욕령인) 信受法故言(신수법고언)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가르침=법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我是大師(아시대사) 有(유) 十力四無所畏(십력사무소외)

'나는 큰 스승이노라. 그러므로 10력(daśa-bala)과 4무외소(catur vaiśāradya)를 지녔으며, 

 

10력(力)= daśa-bala. 부처님만이 지니는 열 가지 지적인 힘으로,

①도리에 맞는 것과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힘=處非處智力.

②업의 원인과 그 과보를 여실히 아는 힘=業異熟智力.

③4선․8해탈․3삼매․8등지 등의 선정을 아는 힘=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④중생근기의 깊고 얕음을 아는 힘=根上下智力.

⑤중생의 갖가지 바라는 바를 아는 힘=種種勝解智力.

⑥중생 및 제법의 본성을 아는 지력=種種界智力.

⑦중생이 사후에 지옥이나 열반 등을 향해 감을 아는 힘=遍趣行智力.

⑧자신 및 남의 과거를 기억해 내는 힘=宿住隨念智力.

⑨중생이 나고 죽는 모양을 아는 힘=死生智力.

⑩번뇌를 다한 경지와 그에 도달하는 방법을 아는 힘=漏盡智力.

 

*4무외소(無畏所)=catur vaiśāradya. 법을 설함에 있어서 흔들림 없는 네 가지 자신감,

正等覺無畏(정등각무외)= “나”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얻어 위대한 스승으로 거짓 없이 말하니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라는 가르침.

②일체누진무외(一切漏盡無畏) = 반야바라밀다를 얻게 되면 모든 중생의 번뇌를 남김없이 씻어 주리니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라는 가르침.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참되지 아니한 것에 기대고 얽매이는 것이 장애의 바탕이어서 낱낱의 장애를 밝히시어 걸림이 없도록 설하시며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라는 가르침.

설진고도무외(說塵苦道無畏)= 아픔과 괴로움 시름과 걱정 설움과 욕됨으로 점철되는 세속의 삶을 여의고 생사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道)을 가라고 설하시며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라는 가르침.

()”는 2가지 뜻이 있어첫 번째 중생의 입장에서 모든 것은 업()으로 빚어진 이 몸뚱이 속에 들어와 라고 내세우며 주인 노릇하는 무명의 종자인 거짓된 이 마음을 참된 것이라 여기는 어리석음에 의한 인연의 업()으로 펼쳐지는 것이어서 쉼 없이 변하고 무너져, 마침내 사라지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하고 허무하기 그지없어 참됨이 없다는 뜻이며두 번째는 반대되는 개념이어서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은 바르고 분명하여 어김이 없어, 변하거나 무너지지 아니하기에 사라져 없어지지 않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는 어느 때 어느 곳에 이 몸뚱이 머물고 있는 상황도 ()”욕망(慾望)으로 비롯된 세속의 삶에서 벗어나 출가(出家)하여 걸사(乞士)의 몸으로 아란야행을 하는 것도 ()”여서 여기서는 뒤의 것을 이릅니다.

()” 직역하면 두려움이니 다른 말로 앞에서 나온 ()”와 비슷한 맥락으로 세속의 모든 것 내팽개치고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 뿐인 참된 길()을 닦으면 반드시 반야바라밀다를 이루게 된다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에 두려워 의심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세속의 부귀 권세 명예 다 버리고 걸사(乞士)가 되어 반야바라밀다를 닦으라고 하시는 부처님 참된 가르침에 두려움과 의심을 품는 것에 대하여 ()”와 ()”를 쓰, 세속의 모든 것 내려놓고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 따라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에 두려움 내어서는 안되나니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은 거짓이 없는 참된 것이기에 반드시 해탈을 이루어 생사고해를 벗어나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마하바라밀다경

 

安立聖主住處(안립성주주처) 心得自在(심득자재)

성인들의 주인=聖主가 머무는 (법왕(法王)이 머무는 곳인 중도(中道)의)  자리에 안립해서 마음이 자재로우며(걸림이 없으며), 

 

能師子吼(능사자후) 轉妙法輪(전묘법륜) 於一切世界最尊最上(어일체세계최존최상)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였으므로) 능히 사자후를 내어, 최상의 묘한 법륜( dharma-cakra)을 굴리나니, 일체의 세계 가운데 가장 존귀하고 가장 높으니라.'

爾時菩薩捨苦行處(이시보살사고행처) 到菩提樹下(도보리수하) 坐金剛處(좌금강처)

그리고 보살은 고행하던 곳을 떠나 보리수 아래에 이르러 금강의 자리=金剛處에 앉으셨다. 

(고행을 하던 곳을 버리고 보리수(菩提樹)아래 앉으셔서 금강삼매(金剛三昧)의 처소(處所)로 삼으셨습니다.)

 

*보리수(菩提樹)= bodhidruma, bodhivṛkṣa. 일본이 원산인 ‘뜰보리수’와, 우리나라가 원산인 재래종 보리나무 독일 등에서 ‘사랑의 나무’로 사랑 받는, 30미터도 넘게 자라는 보리수부처님께 그늘을 제공한 뽕나무과의 보리수를 포함해서 4 종류가 있다. 인도의 보리수는 종자가 작고 널리 퍼지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인도에서는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힌두교도들도 신성시하여, 지나다가 이 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신을 벗고 그 주위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5번 돈 다음 그곳을 떠나는 풍습이 있다 한다. 우리나라의 재래종 보리나무는 봄에 향기로운 황백색 꽃을 피운 후 맺은 열매는, 여름 내내 흰빛이 감도는 푸르면서도 노란 색깔이다. 이때 소복한 열매가 마치 보리알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보리나무다. 쭉정이 같던 이 열매가 처서를 지나면 서서히 살이 붙기 시작하고, 서리가 내리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마침내 검붉고 통통한 먹음직스런 열매가 된다. 노루 같은 산짐승들이나 새들에겐 귀중한 먹이 감다.
일본이 원산인 ‘뜰보리수나무’는 재래종 보리수처럼 가시가 발달하지 않고 나무 모양도 덤불로 자라지 않고 가운데 큰 기둥을 중심으로 자란다. 오래 자라도 작은 키에 머문다. 재래종 보리나무와 달리 초여름에 열매가 익으며, 열매의 크기도 재래종의 두 배 이상이다. 척박한 땅이나 화분에도 잘 자라고 열매가 잘 열리므로 요즘 정원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금강의 자리=金剛處, vajrāsana. ‘견고하고 깨어지지 않는 금강(vajra)과 같은 자리’라는 의미.

 

魔王將十八億萬衆(마왕장십팔억만중) 來壞菩薩(내괴보살)

마왕(Māraḥ, Mārapāpīpān)이 18억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보살을 해치려 하였지만, 

(마왕(魔王)이 18억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는 보살의 금강유정(金剛喩定)을 무너뜨리려 하였으나,)

 

菩薩以智慧功德力故(보살이지혜공덕력고) 降魔衆已(항마중이)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즉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보살은 지혜와 공덕의 힘으로 마군들을 항복시키고는 즉시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를 얻으셨습니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를 뜻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를 이르는 말이며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고도 한다.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도수행의 궁극의 목적인 깨달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역되며, 빠알리 원어(anuttara sammasambodhid)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번역된다.
한문의 음사표기는 아누다라삼막삼보제(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지만, 속화된 발음의 변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읽는다.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是時三千大千世界(시시삼천대천세계) 主梵天王名式棄(주범천왕명식기)

이 때에 삼천대천세계의 주인이며 식기(시기, Sikhi)라 불리는 범천왕(Brahma sahāpati)을 비롯하여

 

*三千大千世界(삼천대천세계)=범어 tri-sāhasra-mahāsāhasra loka-dhātuḥ. 소천, 중천, 대천의 세 종류 천세계가 이루어진 세계.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 달, 사대주(四大洲), 육욕천(六欲天), 범천(梵天)을 합하여 한 세계라 하고, 이것의 천 배를 소천(小千)세계, 또 이것의 천 배를 중천(中千)세계, 다시 이것의 천 배를 대천세계라 한다.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에 사대주가 있고, 다시 그 주위에 아홉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물이 있는데, 이를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고 한다. 그리고 이 하나의 소세계가 천 개 모이면 소천세계(小千世界)가 된다. 다시 이 소천세계가 천 개 모여 중천세계(中千世界)가 되며, 이 중천세계가 천 개 모여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이루는 것이다. 혹은 천 개의 해․천 개의 달․천 개의 염부제․천 개의 구타니(衢陀尼)․천 개의 울달라월(鬱怛羅越)․천 개의 불바제(弗婆提)․천 개의 수미산․천 개의 사천왕천․천 개의 32천․천 개의 야마천․천 개의 도솔타천․천 개의 화자재천․천 개의 타화자재천․천 개의 범세천․천 개의 대범천을 소천세계라 하고 주리(周利)라고도 한다.

 

*主梵天王名式棄(주범천왕명식기)= 불교에서 브라흐마를 부르는 명칭. 범천(梵天), 범천왕(梵天王), 청정(淸靜), 적정(寂靜) 등으로 기록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자 맨 먼저 찾아와 불법에 귀의했으며, 이 깨달음을 중생들이 과연 이해 하겠냐는 고민에 며칠 동안 이대로 조용히 홀로 열반에 이를까 아니면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해 중생들을 구원할까 고민하던 석가모니를 설득해 불교를 세우게 했는데 이를 범천권청(梵天勸請)이라 한다. 이후 범천이라는 이름을 얻어 불교의 수호신 중 하나가 된다. 그 후로 인드라를 비롯해 아수라 등 많은 신들이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다만 남방 빨리어 문헌에는 조금 기록이 다른데, 사함빠띠라는 범천이 석가모니를 두 차례 설득했다고 나온다. 이외에 남방불전 문헌에는 여러 다른 범천들이 등장하여 유일신적 면모보다는 천인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及色界諸天等(급색계제천등) 釋提桓因及欲界諸天等(석제환인급욕계제천등)

색계(rūpa-dhātu)의 모든 신들(Devāḥ)과 석제환인(Śakradevendra)과 욕계(kāma-dhātu)의 여러 하늘들과 

 

*색계(色界, rūpa-dhātu.) 색계(色界). 욕계에서의 본능적 욕망을 여의고 오직 순수한 물질로만 이루어진 생존계.

색(色, rūpa)은 물질을 뜻하는데, 불교에서 물질은 변괴성(變壞性)과 대애성(對礙性)을 가진 법, 즉 변하고 허물어지는 성질[變壞性]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때 동일 유형의 다른 사물이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장애하는 성질[對礙性]을 가진 사물이라고 정의된다. 대애성은 질애성(質礙性)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는 색계는 물질[色]로 이루어진 세계를 뜻한다. 그런데, 3계 가운데 욕계도 물질[色]로 이루어진 세계인데, 이런 점에서 색계와 욕계를 구분할 경우 색계는 욕계의 물질보다 더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 즉 기세간(器世間)과 이러한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소의신을 가지고서 이 세계에서 거주하고 있는 유정들을 통칭한다.

*석제환인(釋帝桓因, Śakradevendra) 6욕천(欲天) 가운데 두 번째 천인 도리천(忉利天), 곧 삼십삼천의 주인이다. 수미산 꼭대기에 거주하며 그가 거주하는 성을 선견성(善見城)이라고 한다. 

*욕계(欲界, kāma-dhātu. 성욕․식욕․수면욕 등 본능적 욕망이 지배하는 생존계. 

 

*3계
욕계(欲界)의 천상에는 6천이 있고, 삼계 가운데 가장 아래에 있으며 성욕ㆍ식욕ㆍ수면욕 등의 욕망을 가진 중생[유정(有情)]들이 사는 곳이다. 6도 윤회 가운데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ㆍ아수라(阿修羅)ㆍ인간(人間) 등 5가지가 사는 곳이 전형적인 욕계이고, 그 위에 천상이 있어 이를 육욕천(六欲天)이라 한다. 
육욕천은 사왕천(四王天)ㆍ도리천(忉利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천(兜率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의 여섯 천상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비록 천상이라고 하지만 욕심이 지배하는 곳이라서 욕천(欲天)이라고 한다. 
색계(色界) 18천이 있으며, 그곳은 식욕과 음욕 등 모든 욕심을 떠났으며, 물질이 청정하고 훌륭하게 자리 잡힌 세계이다. 남녀의 구별이 없으며, 식욕이 없으니 음식도 필요 없고, 그에 따라 배설된 분뇨도 있을 리 만무하다. 바로 욕심이 없는 형상의 세계인 것이다. 여기에 사는 생명들은 어디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평정한 무심으로 마음이 통일돼 있기는 하지만, 물형은 있어서 아직 형상의 속박으로부터는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색계라 한다. 
무색계,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 이렇게 4천이 있다.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을 합하면 28천인데, 그 중 욕계 6천을 제외한 색계 18천과 무색계 4천, 22천이 선정(禪定)의 세계라는 것이다. -아미산

 

幷四天王皆詣佛所(병사천왕개예불소) 勸請世尊初轉法輪(권청세존초전법륜)

사천왕(Catvāra-lokapālā)이 모두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세존(Bhagavat)께 최초의 설법=初轉法를 굴려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사천왕(四天王)=세계의 중심에 존재하는 수미산의 네 방위를 수호하는 천부의 존재. 사대천왕(四大天王),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부른다. 수미산 중복(中腹)에 있는 사왕천(四王天)의 주인으로 제석천을 떠받들고 불법의 수호를 염원해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을 지켜주는 호법신이다. 
동쪽: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
서쪽: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광목천왕
남쪽: 칼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
북쪽: 보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

*세존(世尊)=Bhagavat. 여래 10호 가운데 하나로 부처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 뜻은 ‘지극한 복을 지니시는 분,’ ‘세상에서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 등의 의미가 있다. 어원적으로 ‘행복(bhaga)’을 ‘지니시는 분(vat)’이 된다. 바가바(婆伽婆)는 음역어이다.

*부처님의 십대명호(十大名號)=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

*初轉法輪(초전법륜)=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바라나시(Varanasi, 현재의 베나레스) 근처의 이시빠따나(Isipatana, 仙人住處)에 있는 녹야원(鹿野苑, Migadaya, 현재 지명은 Sarnath)으로 가서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만나 최초로 행한 설법을 했다. 최초로 법의 바퀴[법륜]를 굴렸다는 말이다.

 

亦是菩薩念本所願(역시보살염본소원) 及大慈大悲故(급대자대지고) 受請說法(수청설법)

이는 보살께서 마음 깊이 원하시던 근본 서원이기도 하고, 또한 대자대비하신 까닭에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법을 설하셨으니,

 

*大慈大悲故(대자대지고)= 중생을 한없이 사랑하여 항상 걱정근심 벗어난 편안함으로 즐거운 일을 구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보탬이 되고자 생각하는=大慈와 중생이 오도(五道)를 오가며 여러 가지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에 대해 한없이 가엾고 안쓰럽게 생각하는=大悲의 마음을 지니신 까닭에 그 청을 받아들여 참된 가르침(法)을 말씀하셨습니다.
 

諸法甚深者般若波羅蜜(제법심심자반야바라밀)

是以是故佛說(시이시고불설) 摩訶般若波羅蜜經(마하반야바라밀경)

모든 법=諸法 가운데 심히 깊은 것이 반야바라밀(prajñā-pāramitā)이니, 이 까닭에 부처님께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으로,

 

*제법(諸法)에 2()이 있어서첫째는 부처님의 모든 참된 가르침이요둘째는 색온(色蘊)을 비롯한 12()과 18()를 뜻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둘째를 말합니다.

*般若波羅蜜(반야바라밀)=반야(prajñā)는 지혜를, 바라밀(pāramitā)은 완성된 상태를 가리킨다. 반야바라밀은 대승보살의 실천도인 6바라밀의 하나이자 다른 5바라밀을 이끈다고 한다.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원래(原來)의 뜻은 도피안(到彼岸), 도무극(到無極), 사구경(事究竟)으로 번역할 수 있으니,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또는 '깨달음의 세계로 간다'는 의미(意味)를 가지고 있으며 그 뜻은 '이 사바세계에서 저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길'을 의미 한데, 이는 '거짓된 나'로부터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길(道)이나 노정(路程)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바 세계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한 방법(方法)을 말합니다.

*제법(諸法)의 분류(分類)
인생(人生)과 우주(宇宙)의 모든 것을 일체제법(一切諸法)이라 합니다. 일체제법(一切諸法)은 인연생멸(因然生滅)에 따른 유위법(有爲法)과 인연생멸(因然生滅)을 여읜 무위법(無爲法)으로 크게 대별(大別)합니다. 
유위(有爲)란 조작(造作)의 뜻이니, 타(他)의 인연(因緣)으로 일어나는 것이요, 무위(無爲)는 타(他)에 의지(依支)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생멸변천(生滅變遷)이 없고, 상주실체(常住實體)하는 것입니다. 
일체제법(一切諸法)은 오위(五位) 칠십오법(七十五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유위법(有爲法)에 일흔 두(七十二) 가지가 있고, 무위법(無爲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오위(五位)는 일체의 모든 법(一切諸法)을 색법(色法), 심법(心法, 心王法), 심소유법(心所有法),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무위법(無爲法)의 다섯 가지로 분류(分類)한 것입니다.
유위법(有爲法, 七十二)은 상대적(相對的)이고, 유한적(有限的)인 법(法)을 말합니다. 이를 분류(分類)하면 색법(色法), 심왕법(心王法, 心法), 심소유법(心所有法),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의 네 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색법(色法, 色蘊, 十一)은 오근(五根), 오경(五境), 무표색(無表色)입니다. 오근(五根)에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이 있습니다. 오경(五境)에는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에 하나를 더하여 무표색(無表色)이 있습니다.
심왕법(心王法, 六) 심법(心法)의 주체(主體)로서 모든 심소(心所)를 통괄(統括)하므로 심왕(心王)이라고 합니다.

육식(六識)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심소유법(心所有法, 四十六) 심소법(心所法)은 심소유법(心所有法)의 준말이며, 심왕(心王)에 종속(從屬)하여 일으키는 마음 작용(作用)이라는 뜻으로, 대상(對象)의 전체(全體)를 주체적(主體的)으로 인식(認識)하는 심왕(心王)에 대하여, 부수적(附隨的)으로 일어나는 대상을 구체적(具體的)으로 인식(認識)하는 마음 작용(作用)입니다.
수온(受蘊)은 수(受)의 심소(心所), 상온(想蘊)은 상(想)의 심소(心所)이니, 이 둘은 그 작용(作用)이 현저(顯著)하여 번뇌(煩惱)의 직접적(直接的)인 동기(動機)로 특히 경계(警戒)하여야 합니다.

심소유법(心所有法)에는 다음과 같은 마흔 여섯 가지(四十六)가 있습니다.
① 대지법(大地法, 十) 수(受), 상(想), 사(思), 촉(觸), 욕(欲), 혜(慧), 염(念), 작의(作意), 의욕(意慾), 승해(勝解, 分明한 解析), 삼마지(三摩地)가 이에 해당됩니다.  
② 대선지법(大善地法, 十) 오직 선(善)한 마음의 성품(性品)뿐으로, 선(善)한 마음의 근본(根本)이 됩니다. 신(信), 근(勤), 참(慙, 자신에게 부끄러워하는 것), 괴(愧, 타인에게 부끄러워하는 것), 사(捨), 무탐(無貪), 무진(無瞋), 불해(不害),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이 이에 해당됩니다.
③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六) 일체번뇌(一切煩惱)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에 근거(根據)해서 이루어 집니다. 무명(無明), 방일(放逸) 방종(放縱), 해태(懈怠, 게으름), 불신(不信), 혼침(惛沈, 졸음), 도거(掉擧, 分別是非)가 이에 해당됩니다.
④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二) 나쁜 행동(行動)의 근거(根據)가 됩니다. 무참(無慙), 무괴(無愧)가 이에 해당되니, 파계무참(破戒無慙)한 일에도 부끄러움도 가책(呵責)도 안 받는 것입니다.
⑤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十)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보다 정도(程度)가 약(弱)한 것입니다. 이에는 분(忿, 憤怒), 복(覆, 숨김), 간(慳, 인색), 질(嫉, 질투), 뇌(惱, 괴로움), 해(害), 한(恨), 첨(諂, 아첨), 광(誑, 속임), 교(憍, 교만)가 해당됩니다.
⑥ 부정지법(不定地法, 八) 악작(惡作, 나쁜 짓), 수면(睡眠), 심(尋, 거칠고 얕은 작용), 사(伺, 세밀하고 깊은 작용), 탐(貪), 진(瞋), 만(慢), 의(疑)가 해당됩니다. 이선정(二禪定)에 들어가야 심사(尋伺)가 끊어진다고 합니다.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十四), 비심비물(非心非物)의 존재(存在)로서, 색(色), 심(心), 심소(心所)의 삼법(三法)을 떠난 법(法)입니다. 득(得, 성취), 비득(非得, 불성취), 명근(命根, 壽命), 중동분(衆同分, 同類), 생(生), 주(住), 이(異), 멸(滅), 무상정(無想定), 무상과(無想果), 멸진정(滅盡定), 명(名), 구(句), 문(文)이 이에 해당(該當)합니다.
* 표색(表色)=몸(身)과 입(口), 두 가지의 업(二業)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의 업(業)은 표시(表示)할 수 있다고 하여, 표색(表色) 또는 표업(表業)이라고 합니다.
*무표색(無表色)=계를 받으면(受戒), 인간(人間)의 안목(眼目)에는 보이지 않지만, 몸이나 마음에 훈기(薰氣)가 생기는데, 그것을 계체(戒體)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겉으로 표시(表示)할 수가 없지만, 하나의 능력(能力)있는 에너지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무표색(無表色)입니다.

 

復次有人疑佛不得一切智(부차유인의불 불득일체지) 所以者何(소이자하)?

또한 어떤 사람은 의심하여 말하기를 '부처님은 일체지( sarvajña)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지(一切智)= 일체를 아는 자’라는 뜻으로 부처님을 달리 부르는 말. 불교나 쟈이나교에 있어서 sarvajña는 부처님(Buddha)의 동의어 내지는 그 대응어로 쓰이고 있으며, 나아가 인도의 철학과 종교에서는 쉬바신이나 비쉬뉴신과 같은 최고신의 신성이나 특징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한편, 『대지도론』 일체지를 정의해 “12입(入)을 알기 때문에 일체지라 부른다”고 한다.

 

諸法無量無數(제법무량무수) 云何一人能知一切法(운하일인능지일체법)?

모든 법은 한량이 없고 무량 무수하니, 어떻게 한 사람이 능히 일체 제법을 다 알 수 있겠는가?' 하나 

 

佛住般若波羅蜜(불주반야바라밀) 實相淸淨如虛空(실상청정여허공)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그 현상과 작용을 통해) 마치 허공과도 같이 청정한 (제법) 실상의 (중도에) 머무시며,

 

無量無數法中(무량무수법중) 自發誠言(자발성언) 我是一切智人(아시일체지인)

무량무수의 법 가운데 스스로 참되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일체지인으로서 

 

欲斷一切衆生疑(욕단일체중생의) 以是故說(이시고설) 摩訶般若波羅蜜經(마하반야바라밀경)

일체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려 하노라'고 하시며, 이런 까닭에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설하셨습니다.

 

復次有衆生應得度者(부차유중생응득도자) 以佛大功德智慧無量(이불대공덕지혜무량)

또한 어떤 중생은 응당 제도를 받고자 하나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고자 하나), 부처님의 공덕과 지혜가 한량이 없어서 

 

難知難解故(난지난해고) 爲惡師所惑(위악사소혹) 心沒邪法不入正道(심몰사법불입정도)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에, 삿된 스승에게 현혹되어 삿된 가르침=邪法에 마음이 빠져서 바른 길에 들지 못하니,

(삿된 견해에 휩쓸리어서,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하여 막힘없이 실상을 꿰뚫어보지 못하게 되어 바른 길()에 들어서지 못하나니)

 

爲是輩人起大慈心(위시배인기대자심) 以大悲手授之(이대비수수지) 令入佛道(영입불도)

이러한 무리들을 위하여, 크게 인자한 마음을 일으키시고, 크게 가엾이 여기시는 손길을 뻗어 그들을 불도에 들게 하십니다.

(중생을 한없이 사랑하여 항상 걱정근심 벗어난 편안함으로 즐거운 일을 구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보탬이 되고자 생각하는=大慈와 중생이 오도(五道)를 오가며 여러 가지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에 대해 한없이 가엾고 안쓰럽게 생각하는=大悲의 마음으로, 후세의 실마리가 되는 업(業)을 짓게 하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모습과 후세의 실마리가 되는 업(業)을 짓게 하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모습을 ‘내 것’이라고 하는 마음의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생각하는 삿된 견해로 아끼게 되는 중생의 간탐을 뽑아내주시어 불도(佛道)에 대해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게 되어 막힘이 없이 훤히 꿰뚫어볼 수 있게 하시려는 까닭에, 스스로 으뜸가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덕을 드러내어 크나큰 신통의 힘으로 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答曰(답왈) 佛於三藏中(불어삼장중) 廣引種種諸喩(광인종종제유)

爲聲聞說法不說菩薩道(위성문설법 불설보살도)

답하니, 부처님께서는 경ㆍ율ㆍ논의 3 가운데에서 갖가지 비유를 널리 인용하시어 성문을 위해 법을 설하셨지만, 보살의 도를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나,

 

*3() tripiṭaka. 경ㆍ율ㆍ논의 3장을 말한다석가의 기본 가르침인 (,dharma) 대한(abhi)() 전개하여 나름대로 ()ㆍ율()ㆍ논() 삼장(三藏) 갖춘 교학을 전개하였다. 교단의 근본 분열 이전 시기를 원시 근본 불교 시기라 하고 분열 이후 부파마다 나름의 교학을 전개해 나간 시기를 부파 불교 시기라고 하는데, 부파 불교는 이후의 대승에 의해 평가절하적 의미에서 소승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성문(聲聞) śravaka. 원래는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따르던 불제자를 뜻하던 말이었으나, 출가 수행승만을 지칭하게 것은 후대의 일이다. 대승의 입장에서 본다면 성문은 독각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깨달음을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성자이다.

*菩薩, 보살마하살(bodhisattva) 줄여 부르는 .

 

'中阿含' '本末經'(유중아함 본말경중)

오직 중아함(Madhyāmagama) 본말경에서 

 

아함경(阿含經)이란 가지 종류로 분류하여, 장아함(長阿含), 중아함(中阿含), 잡아함(雜阿含), 증일아함(增一阿含) 종류를 말한
장아함(長阿含): 22 30. 상당히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전들을 편집한 것이다.  
중아함(中阿含): 60 222. 중간 길이의 경전들을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 초기불교의 전반에 걸친 교리가 5(五誦)으로 편집되어 있다
잡아함(雜阿含): 50 1,352. 짧은 길이의 경전들을 모아서 편집한 것이다. -김용기


() '記彌勒菩薩汝當來世(기미륵보살여당래세) 當得作佛號字彌勒(당득작불호자미륵)'

亦不說種種菩薩行(역불설종종보살행)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그대는 오는 세상에 부처를 이루리니, 이름을 미륵이라 하리라' 수기(vyākaraṇa)하셨으나, 역시 갖가지 보살행을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수기(授記) 혹은 화가라(和伽羅), 산스크리트어 베야까라나(vyākaraṇa) 음사. 수기(授記)라고 번역. 기설(記說)이라고도 한다. 경의 말뜻을 문답식으로 해석하고, 부처가 제자에게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고 예언한 부분

佛今欲爲彌勒等(불금욕위미륵등) 廣說諸菩薩行(광설보살행)

是故說(시고설) '摩訶般若波羅蜜經'(마하반야바라밀경)

부처님께서 이제 미륵 등을 위하여 보살의 행을 자세히 말씀하시려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하반야바라밀경' 설하시는 것이니라.

 

復次(부차) 有菩薩修念佛三昧(유보살수념불삼매) 佛爲彼等欲令(불위피등욕령)

於此三昧得增益(어차삼매 득증익) 故說'般若波羅蜜經'(고설반야바라밀경)

또한 어떤 보살이 염불삼매 닦아 선정과 마음이 함께하여 바르게 분별하고 사유할 수 있게 되면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삼매를 통하여 더욱 훌륭한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다경'을 설하시는 것이니, 

 

*염불삼매(念佛三昧),  buddhānusmṛti-samādhi. 부처님을 관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일념( 一念)으로 불(佛)의 상호(相好)를 관(觀)하거나 또는 일심(一心)으로 법신(法身)의 실상(實相)을 관(觀)하거나 혹은 일심(一心)으로 불명(佛名)을 칭(稱)하는 행법(行法)을 인행(因行)의 염불삼매(念佛三昧)라 한다. 인행(因行)의 염불삼매(念佛三昧)가 성숙(成熱)되면 마음이 선정(禪定)에 들어가고 혹은 시방불(十方佛)이 현전(現前)하며 혹은 법신(法身)의 실상(實相)에 계합(契合)되는데 이를 과성(果成)의 염불삼매(念佛三昧)라 합니다.
염불삼매(念佛三昧)에는 인(因)과(果)의 두 경계가 있습니다. 일심으로 부처님의 상호를 관하는 관상(觀像)염불을 하거나 또는 일심으로 법신의 실상을 관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을 하거나 혹은 일심으로 부처의 명호를 외우는 행법을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불명(佛名)을 외운다 하더라도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꼭 법신자리를 믿어야 참다운 염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닦아갈 때 염불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견성하기 전에, 인행의 염불삼매가 성숙되면 마음이 선정에 들어가서 혹은 시방불(十方佛)이 현전(現前)하며 혹은 법신의 실상 이른바 진여불성에 계합되는데 이것을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라 합니다. 따라서 염불로도 견성(見性)하고 천수경으로도 견성하고 마음에서 업장만 녹아지면 다 견성합니다.-청화스님

 

*三昧(삼매), samādhi. 어떤 대상에 집중된 상태를 말한다.

붓다에 따르면 중생의 미망은 좋은 것을 탐하고 궂은 것을 미워하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시초는 이렇듯 사소하지만 모든 번뇌와 고통이 여기서부터 유래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분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또한 이러한 분별에 근거하여 일상적 삶을 영위한다. 분별없이 어떻게 하룬들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분별이 문제되는 것은 우리의 육근이 대상을 지각할 때 개입하게 되는 行(samskara) 때문이다.
행은 업의 형성력, 업력, 조건 지워진 행위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중생이 대상을 지각할 때 그의 경험을 물들이는 경향성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생의 경험세계는 업력이 산출한 것이다. 따라서 업력에 오염되지 않는 상태[三昧]를 얻는 것이 불교수행의 요체이다. 삼매는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ādhi)의 음사이다.
흔히 마음의 집중, 몰입으로 번역되며, 산란된 마음을 고요하고 맑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사람의 마음은 극히 짧은 순간에도 고요하게 머물러있지 않고 온갖 잡념으로 혼란되어 있다. 불교에서 경계하는 번뇌나 망상, 혹은 분별심 등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중생의 의식활동 자체인 것이다. 착한 생각이든 악한 생각이든 중생의 생각은 그 자체로 망상인 것이다. 그래서 공부할 때에는 물론, 심지어 놀고 있는 중에도 대개의 경우 온전히 자신이 하고 있는 동작이나 생각에 몰두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 혹은 다른 대상들에게로 빈번하게 왕래하는 것은 행(行) 내지 업력(業力)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찰나에 수 백가지 망상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초기 경전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이가 붓다에게 물었다 : "당신의 제자들은 매일 한 끼 식사만 하고 의복이나 잠자리가 그토록 거친데 어떻게 얼굴에서 빛이 납니까?" 이에 붓다가 대답했다 : "나의 제자들은 과거 일을 후회하지 않으며 미래를 근심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 삽니다.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한낮의 햇볕에 시드는 갈대와 같습니다. 저들의 얼굴이 빛나는 것은 현재 순간에 살기 때문입니다. ···"

 

如'般若波羅蜜''初品'中說(여반야바라밀경 초품중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의 '초품'에서 설하셨으니,

 

佛現神足放金色光明(불현신족방금색광명) 遍照十方恒河沙等世界(편조시방항하사등세계)

부처님께서 신족(ṛddhipāda) 나투시어 금빛 광명을 발하시니, 시방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恒河(항하), 갠지스강(Gaṅgānadī). 갠지스강의 모래 수에 비유될 만큼 헤아릴 수없이 많은 수를 말함.

 

示現大身淸淨光明(시현대신청정광명) 種種妙色滿虛空中(종종묘색만허공중)

 몸을 나타내어 보이시니, 청정한 광명과 갖가지 묘한 모습=妙色 허공에 가득하였다

 

佛在衆中端正殊妙(불재중중단정수묘) 無能及者(무능급자)

부처님이 대중 가운데 계시니, 그 단정하고 뛰어남=殊妙함을 감히 미칠 이가 없음이

 

譬如須彌山王(비여수미산왕) 處於大海(처어대해) 諸菩薩見佛神變(제보살견불신변)

비유하면 마치 수미산왕이 큰 바다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같았으니, 보살들은 부처님의 신통 변화를 보고는 

 

於念佛三昧倍復增益(어념불삼매배부증익) 以是事故說(이시사고설)

訶般若波羅蜜經(마하반야바라밀경)

염불삼매의 이익이 더욱 증장하였으며,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반야바라바라밀경'을 설하신 것이니라.

 

復次菩薩初生時(부차보살초생시) 放大光明普遍十方(방대광명보편시방)

또한 보살로써 처음 탄생하셨을 때에 큰 광명을 놓아 시방에 두루 비추시고, 

 

行至七步四顧觀察(행지칠보사고관찰) 作師子吼而說偈言(작사자후이설게언) 顧 돌아볼 고
일곱 걸음을 걸으신 뒤에 사방을 살피면서 사자후(*siṁhanāda)를 지어 *게송을 읊으셨다.

 

*師子吼(사자후), 사자는 백수(百獸)의 왕으로 상지되기에 부처님 설법을 사자에 비유하여 사자후(師子吼)라 비유하고 부처님의 자리를 사자좌(師子座)라고 한다.

*偈頌(게송), 불교계에서 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의 한 형태를 게송이라 한다. 선가(禪家)의 시게(詩偈)·송고(頌古)·가송(歌頌) 등을 통칭한다.
(偈)는 범어(梵語)인 가타(Gatha) 또는 기야(Geya)의 음역(音譯)인 가타(伽陀)·게타(偈陀) 또는 기야(祇夜)를 약칭하며, 한시(漢詩)의 송(頌)의 일종이기 때문에 합하여 게송이라 하게 되었다. 게송은 범어와 한자어가 합성된 명칭인 셈이다.
게송은 인도의 가타가 운(韻)이 있는 시의 형식이었기 때문에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한시의 형식에 맞추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게송이 시의 한 형태로 독립되었다. 그러나 원래는 불교경전의 산문 내용을 시의 형태로 되풀이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형식을 중송(重頌)이라 하였다.
불경의 문체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장행(長行) 또는 계경(契經)이라 하여 경의 뜻을 풀어 쓰는 산문이다. 둘째는 중송(重頌) 또는 응송(應頌)이라 하여 경의 산문을 요약 서술하는 시가의 형태이다.
셋째는 가타 또는 게송이라 하여 불경의 산문과는 관계없이 불교적 교리를 시가로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송이라 함은 둘째와 셋째의 중송과 가타를 함께 일컫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성게(法性偈)로 알려져 있는 의상(義湘)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가 가장 오래된 게송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화엄사상을 7언 30구로 구성한 것이다. 고려 말에 운묵(雲默)의 「석가여래행적송 (釋迦如來行蹟頌)」은 「석가보(釋迦譜)」를 5언 776구로 구성한 장편의 게송이다. 그러나 명확하게 분류하면 중송에 해당한다.


我生胎分盡(아생태분진)

내가 태를 통해 태어남을 다하였으니
是最末後身(시최말후신)

이것이 마지막 몸이라네.
我已得解脫(아이득해탈)

나는 이미 해탈을 얻었으니

(나는 이미 해탈을 통해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였거니와)
當復度衆生(당부도중생)
다시 중생을 구제하리라.

(마땅히 중생도 무여열반의 나루터를 건널 수 있게 하리라.)

 

*중생(衆生, sattva)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뜻으로 감정이나 의식을 지니는 일체 생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유정(有情)이라고도 한다. 예기(禮記)·장자(莊子) 등의 중국 고전에서도 이미 중생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유정은 당나라의 현장 이후에 통용된 번역이다. 중생의 뜻으로는 숱하게 많은 법이 임시로 화합하여 생긴 것, 또는 숱하게 많은 생사를 거치는 것 등이 있다. 특수한 예로는 대승불교도를 가리켜 '존경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나 본질을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의식을 지닌 존재인 모든 생물은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을 지닌다는 뜻으로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닌다'고 한다. 넓은 뜻으로는 깨달음의 세계에 있는 부처와 보살에게도 통하는 말이나 일반적으로는 미혹의 세계에 있는 생류를 가리킨다.


作是誓已身漸長大(작시서이신점장대) 欲捨親屬出家修無上道(욕사친속출가수무상도)

이렇게 서원을 세우신 뒤, 몸이 차츰 장대해지자, (오욕을 여의고자) 親屬=가족과 권속을 버리고 출가하여 위없는 도를 닦고자 하였습니다.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道)에 들어서 선정(禪定)과 마음이 함께하여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사유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中夜起觀見諸伎直(중야기관견제기직) 后妃婇女狀若臭屍(후기채녀여상약취시)

어느 날 밤에 일어나서 광대, 당직자, 후궁, 채녀들의 자는 모습을 보니, 마치 썩어서 악취나는 시체와 다를 바 없었기에

 

卽命車匿令被白馬(즉명차닉영피백마) 夜半踰城行十二由旬(야반유성행십이유순)

당장에 차닉(*찬타카)에게 명하여 백마를 몰게 하여, 한밤중에 성을 넘어 12 *유순쯤 달려가서 

 

*車匿(차닉) 범어 Chaṇḍaka. 원래 석가족의 노예의 자식으로 석존께서 성도후 최초로 고향을 방문했을 때 귀의했다. 성질이 고약해서 다른 수행자들을 경멸하고 욕을 잘 했다고 한다.

*由旬(유순) 범어 yojana. 유순나(由旬那)의 약칭이다. 거리의 단위로 약 7마일 혹은 9마일(10 km)에 해당한다. 또는 제왕이 하루 동안에 행군하는 거리라고도 한다.

 

到跋伽婆仙人所(도발가바선인소) 住林中以刀剃髮(주림중이도삭발)

*발가바(Bhagavat) 선인이 살고 계시는 숲에 이르러, 칼을 들어 손수 머리를 자르시고 

 

*발가바(跋伽婆) 범어 Bhagavat. 여래 10호 가운데 하나로 부처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 뜻은 ‘지극한 복을 지니시는 분,’ ‘세상에서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 등의 의미가 있다. 어원적으로 보면 ‘행복(bhaga)’을 ‘지니시는 분(vat)’이 된다. 바가바(婆伽婆)라고도 하며 세존(世尊)은 의역어이다.

 

以上妙寶衣(이상묘보의) 貿麤布僧伽梨(무추포승가리)

값진 보배옷을 거친 베옷 승가리(가사)와 바꾸어 입고는,

 

*승가리(僧伽梨)= 가사(袈裟) 겉옷 외투(外套), 범어(梵語)인 ‘카사야(Kasaya)’에서 음을 딴 것으로, 괴색(壞色)·부정색(不正色)·탁색(濁色)·탁염색(濁染色)·염색 등으로 번역된다.
색에 의한 명칭으로는 염의(染衣)·염색의·부정색의·괴색의·탁적의(濁赤衣)·황갈색의 등이 있다. 용도에 따라서는 삼의(三衣)·승의(僧衣)·비구의(比丘衣)라 하며, 공덕의 측면을 강조하여서 법복·법의·불의·공덕의라고도 한다.
인도에서는 사계절의 평상복으로 착용하였는데, 중국에 전래되면서 불교의식 및 법회 때 편삼 위에 걸치는 의식복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중엽에 흑장삼(黑長衫)과 붉은 가사가 전래되어, 전통적인 바지·저고리 위에 착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於泥連禪河側(어니연선하측) 六年苦行(육년고행) 日食一麻(일식일마)

니련선하(Nairanjara, 나이란자나아강) 강가에서 6년 동안 고행하셨으며, 

 

或食一米等(혹식일미등) 而自念言(이자념언) ‘是處非道(시처비도)'

하루에 麻=삼씨 한 알을 드시거나 혹은 쌀 한 톨을 드시다가 ‘여기는 도를 닦을 곳이 아니로다’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이것은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道)에 들어설 수 있게 하는 길이 아니다.”하시고,)

大智度初序品中緣起義釋論 第一卷 第一

龍樹菩薩造, 용수(龍樹) 지음
후진(後秦) 구자국(龜玆國) 구마라집(鳩摩羅什)

 

1. 서품 중 연기(緣起)의 이치를 풀이함 권제1

智度大道佛從來(지도대도불종래)

지도*의 큰 도는 부처님에게서 나온 것이요
智度大海佛窮盡(지도대해불궁진)

지도의 큰 바다는 부처님만이 끝까지 다 아신다.
智度相義佛無㝵(지도상의불무애)

지도의 실상(*lakṣaṇa)의 이치는 부처님만이 걸림 없으시니
稽首智度無等佛(계수지도무등불)

지도의 비할 바 없는 부처님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지도(智度), Prajñā-Pāramitā. 반야바라밀은 대승불교의 실천덕목인 6바라밀의 하나로 무상정등각을 향해 나아가는 보살마하살이 구족해야 하는 으뜸가는 자량이다. 여기에서 반야(prajñā)란 직관적이고도 종합적인 통찰의 지혜로 알음알이[知識, vijñāna)와는 구별된다.

청량스님은 "지도(智度)란 결단을 이름하여 지라 하니, 여실히 깨달아 아는 것으로 두 종류가 있으니 법의 즐거움을 수용하는 지혜와 유정들을 성숙시키는 지혜다."라고 하셨다. 

 

*상(相) 첫째는 아상・인상 할 때의 ‘상’으로서 범어로는 산즈냐(saṁjñā)인데 음역은 ‘산야’요 의역은 ‘지식(知識)’이니, 그 반대어인 쁘라즈냐(prajñā)가 ‘반야’와 ‘지혜(智慧)’로 옮겨진 것에 맞춘 것이다.

둘째는 32상・80종호 할 때의 ‘상’으로서 범어로는 락샤나(lakṣaṇa)인데 일종의 징후로 드러나서 감각기관에 감지(√lakṣ)된 모양새를 가리키므로 ‘감지새’로 옮겨놓는다.

셋째는 범어로 니미따(nimitta)에 해당하는 ‘상’인데 섬세히 가늠(√mi)된 모양새를 가리키므로 ‘가늠새’로 옮겨놓는다.

‘지식’인 산즈냐와 ‘감지새’인 락샤나 및 ‘가늠새’인 니미따 등 셋은 다시 앎의 종류인 산즈냐와 모양새의 종류인 락샤나・니미따로 다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비록 구마라집 스님은 셋 모두 동일한 상(相)으로 옮겼지만, 현장 스님은 앎의 종류에 속하는 산즈냐만을 상(想)으로 옮겨서 모양새를 나타내는 나머지 두 상(相)과 구분해놓았다.

 

有無二見滅無餘(무유이견멸무여)

有無=있고 없음의 두 견해, 남음 없이 다한 곳이
諸法實相佛所說(제법실상불소설)

모든 법의 실상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나니,
常住不壞淨煩惱(상주불괴정번뇌)

항상 머물러 무너뜨리지 않으면 번뇌가 깨끗해지기에
稽首佛所尊重法(계수불소존중법)

부처님께서 소중히 여기신 법에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僧

聖衆大海行福田(성중대해행복전)

바다 같은 성인 무리, 복전(*puṇyakṣetra) 노릇 하시나니
學無學人以莊嚴(학무학인이장엄)

유학*과 무학*들로 장엄하셨네.
後有愛種永已盡(후유애종영이진)

뒷몸 받을 애욕의 씨, 영원히 다하시고
我所旣滅根亦除(아소개멸근역제)
내 것(*attāttamīya. 我所)이란 집착 멸해 뿌리까지 없어졌네.

 

*福田(복전, puṇyakṣetra), 복과 공덕을 산출하는 밭, 공덕이라는 개념은 업과 윤회사상과 밀접한 개념으로, 선행을 하며 수도자에게 보시하는 공덕으로 말미암아 죽은 다음 천상에 태어나 (윤회를 하여 다음 생에서) 안락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으나,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될 수 없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보편적 사상이 불교에 흡수된 것으로 보임.

 

*유학(有學, śaikṣa) 배울 것이 남아 있는 상태로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고인(苦忍)에서 아라한과에 이르기 직전의 3과(果) 4향(向)의 7종의 학인, 즉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를 말한다.

 

*무학(無學, aśaikṣa, 無學位 ) 아라한과에 도달하여 모든 번뇌를 끊어 더 닦을 것이 없는 성자의 경지로서 여기에는 9종이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유학有學(sekha, Sk. śaikṣa)과 무학無學(asekha, Sk. aśaikṣa)의 둘로 구분한다.)

*내 것(attāttamīya. 我所)=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견취견(見取見)을 줄여서 오견(五見)이라고 하며,  그리고 유신견(有身見)을 아견(我見)과 아소견(我所見)로 나눈다.

아소견(我所見)이란 ‘내 것’, ‘내 소유’라는 견해이다. 모든 사물은 원래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서 가짜 존재로서 소유할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로서, 자신(自身)에게 딸린 모든 물건은 원래 일정한 소유주(所有主)가 없는 것으로,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일 뿐인데, 정말 나에게 소속된 자기의 소유물,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치우친 생각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다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에 따라 '내 것' 이라는, ‘내 소유'라는 생각이 따르게 된다. 내 옷 또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내 동생, 또는 내 물건…… . ‘나’라는 존재가 실은, 따지고 보면 허망한 것인데, 허망한 줄을 모르고서 나한테 따르는 모든 존재나 사람, 사물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이다.
아견과 아소견을 포함한 유신견이란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已捨世閒諸事業(이사세간제사업)

세간의 모든 사업 이미 다 버리시고
種種功德所住處(종종공덕소주처)

갖가지 공덕이 머무는 곳이니,
一切衆中最爲上(일체중중최위상)

온갖 무리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에

稽首眞淨大德僧(계수진정대덕승)
참되고 깨끗한 대덕승(*bhadanta. 혹은 āyuṣmat)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대덕승(bhadanta. 혹은 āyuṣmat, 大德僧)= 석가모니 부처님 또는 덕이 높은 스님.

一心恭敬三寶已(일심공경삼보이)

일심으로 삼보를 공경하고는
及諸救世彌勒等(급제구세미륵등)

세상을 구제하는 미륵(*Maitreya) 등과
智慧第一舍利弗(지혜제일사리불)

지혜가 으뜸이신 사리불(*Śāriputra)과
無諍空行須菩提(무쟁공행수보리)
다툼 없는 공을 행한 수보리(*Subhūti)께도 경례합니다.

 

*彌勒(미륵), Maitreya. 아일(阿逸, Ajita)은 미륵보살의 이칭.

*舍利弗(사리불), Śāriputr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마가다 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한다. 원래 목건련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아설시(阿說示)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동료 250명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병이 들어 고향에서 간호를 받다가 입적했다.

*須菩提(수보리), Subhūti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 사위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한다.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에 자주 등장한다.

 

*10대제자(十大弟子)는 붓다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전파한 제자로, 붓다가 입멸한 후에 불교인들이 선별한 것이다.
① 사리불 śāriputra, 지혜제일(智慧第一)
② 목건련 maudgalyāyana, 신통제일(神通第一)
③ 가섭 kāśyapa,  두타제일(頭陀第一)
④ 수보리(須菩提) subhūti, 해공제일(解空第一)
⑤ 부루나(富樓那) pūrṇa, 설법제일(說法第一)
⑥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천안제일(天眼第一) 
⑦ 가전연(迦旃延) kātyāyana,  논의제일(論議第一)
⑧ 우바리(優波離) upāli,  지계제일(持戒第一)
⑨ 나후라(羅睺羅) rāhula.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한다.
⑩ 아난 ānanda 다문제일(多聞第一)


我今如力欲演說(아금여력욕연설)

내가 이제 힘을 다해 연설하고자 하는 것은
大智彼岸實相義(대지피안실상의)

대지의 도와 피안의 실상의 이치이니,
願諸大德聖智人(원제대덕성지인)

원컨대 여러 큰 덕을 갖추시고 거룩한 지혜를 갖춘 이들이여
一心善順聽我說(일심선순청아설) 

한마음 잘 모아서 나의 말을 잘 들으시라.

*피안(彼岸),
pāra. 팔리어로는 pārimaṃ tīraṃ. ‘저편 언덕’이라는 말로서 번뇌가 그친 상태나 열반의 경지를 가리킨다. 불도수행에 있어서 도달의 목표가 되는 ‘이상의 경지’ 혹은 ‘이상 세계’를 의미한다.

피안이란 윤회의 세계에서 수행을 통해 열반의 세계로 도달하는 과정을 고통의 땅에서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 행복의 땅에 도착하는 과정에 비유한 데서 생긴 말이다. 즉 생로병사의 고통, 탐욕, 어리석음 등으로 윤회하는 이 세계를 '이쪽 언덕'이라는 뜻의 차안(此岸)이라고 하고 반대로 모든 고통과 속박에서 자유로운 깨달음의 세계를 저쪽 언덕이라는 뜻의 피안이라고 한다. 여기서 뗏목은 불교의 진리이고 뗏목을 저어서 가는 노력은 수행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수행을 바라밀이라고 한다. 바라밀은 '저쪽 언덕에'와 '도달하다' 라는 뜻이 결합한 말이다. 이것을 한자로 번역하여 '도피안'이라고 한다.  

 

問曰(문왈) 佛以何因緣故說(불이하인연고설) 摩訶般若波羅蜜經(마하반야바라밀경)?

문나니,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hetu-pratyaya)으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설하셨는가?

 

諸佛法不以無事(제불법불이무사) 及小因緣而自發言(급소인연이자발언)

부처님께서는 아무 근거 없이 법을 설하시거나 또는 사소한 인연으로 설하시지 않으시니, 

 

譬如須彌山王(비여수미산왕) 不以無事及小因緣而動(불이무사 급소인연이동)

마치 수미산왕(*Sumerupravarta-rāja)이 까닭 없이 사소한 인연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으니,

 

今有何等大因緣故(금유하등대인연고) 佛說摩訶般若波羅蜜經(불설마하반야바라밀경)?
이제 어떠한 커다란 인연이 있어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설하셨는가?

 

 *須彌山. Sumerupravarta-rāja.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산으로 주변을 구산팔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 높이가 8만 요자나(yojana)라고 한다.

*수미산(須彌山, मेरु, Sineru, Mahāmeru)은 수메루(Sumeru), 메루 산(Mount Meru) 또는 스바르가라고도 불리는, 인도 신화에서 언급하는 상상 속의 성산(聖山)이다. 문헌상으로는 대서사시 < 마하바라타 >에서 수미산이 최초로 언급되었지만, 아마 <마하바라타> 이전부터 수미산 개념은 있었을 것이다. 힌두교나 불교 등 인도에서 유래한 종교들은 저마다 수미산 개념을 받아들였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권
龍樹菩薩造, 용수(龍樹) 지음
大智度初序品中緣起義釋論 第一卷 第一
후진(後秦) 구자국(龜玆國)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 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은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주석서인도의 대승불교 승려인 용수(龍樹: 150?~250?)가 저술한 불교 논서 또는 주석서이다. 원래의 이름은 마하프라즈냐파라미타샤스트라(Mahaprajnaparamita­sastra)라 하며, 지도론(智度論) · 지론(智論) · 대론(大論) · 마하반야석론(摩訶般若釋論) 등으로도 불린다.

논서의 명칭 중 "지(智)"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prajna · 반야)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이며,

"도(度)"는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 · 바라밀다)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이다.
용수(龍樹)가 '반야경'속의 '대품반야(大品般若)'를 축조 해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산스크리트어 원본도 티베트어역 판본도 존재하지 않으며, 405년 구마라습에 의한 한역본만이 전해져 최근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어 번역본도 나오게 되었다.
구마라습의 한역본은 100권으로 되어 있는데, 원문은 10만송(頌)이었다고 전해질 만큼 방대하며, 한역으로 서품(序品)에만 주석을 다는데 34권이 소비되었고, 이후 1품에 1~3권을 할양하였다.

이것은 구마라습이 초역한 것으로서 만일 전부를 번역했다면 그 10배의 분량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100권 속에는 원시불교 · 부파불교 · 초기 대승불교로부터 인도사상에까지 이르는 광범한 인용 · 관설(關說)이 있어서 당시의 불교백과사전과 같은 것이었으나, 의도하는 바는 '중론(中論)'과 마찬가지로 반야공(般若空)의 사상을 기본 입장으로 하면서 '중론'의 부정적 입장에 대해서 제법실상(諸法實相: 모든 현상은 공(空)으로서만 진실한 형태를 취함)이라는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대승 보살의 실천도의 해명에 힘쓴 것이다.

 

용수(龍樹) 보살

나가르주나(산스크리트어: नागार्जुनः), 또는 용수(龍樹: 150년경 ~ 250년경?)는 중관(中觀 · Madhyamaka)을 주창한 인도의 불교 승려이다. 베트남 · 중국 · 대한민국 · 일본 등에서는 흔히 용수라 불리며 티베트에서는 Klu Sgrub이라 한다. 한국 조계종에서는 육조단경에 의거해 인도 제14대 조사로 보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다. 3세기 용수는 중관불교의 틀은 유지하는 동시에 상좌부 불교를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논리를 창시했기 때문에 제2의 석가모니 또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석가모니 이래 출가자 위주의 "수행 중심 불교"였는데, 이를 비판하고 대승불교 교단을 새로 만들었다.

용수는 불교의 초기경전을 연구하여 중관(中觀 · Madhyamaka)을 주창하였으며 자신의 사상을 담아 '중론(中論)'을 저술하였다. "중론"은 산스크리트어 물라 마드야마카 카리카(Mūlamadhyamakakārikā)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중도에 대한 근본적인 글(Fundamental Verses on the Middle Way)"이다.
'중론'에서 용수는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공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 그는 절대적인 무(無 · 없음)라는 관점에서 공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는 연기론의 관계에서 공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공 · 연기 · 중도는 모두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중론' 제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에는 이러한 이해를 적시한 유명한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법 · 존재 또는 현상은 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다)"의 게송이 있다.

용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지만, 구마라습의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에 의하면 용수는 인도 남부의 브라만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용수는 당시 불경 기록의 주된 언어였던 팔리어 대신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출가(出家)하여 상좌부 불교를 배우다가 후에 히말라야 산으로 들어가 노비구(老比丘)로부터 대승불교를 배웠다고 한다. 그 후 초기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많은 주석서를 저술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세웠다. 그는 '반야경(般若經)'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여 공의 교의를 철학적으로 구명하고, 대승불교 교의의 중요한 기초를 닦았다.
후일 중부 인도에서 남인도로 돌아가, 만년에는 남인도의 키스토나 강(Kistna River: 지금의 크리슈나 강(Krishna River)의 옛 이름) 하류의 흑봉산(黑峰山 · Mountain of Śrīparvata)에 살다가 그곳에서 입적한 것으로 되어 있다. 흑봉산은 후대에 나가르주나콘다(나가르주나의 언덕이라는 뜻)라고 불린 도시 근처에 있었는데, 나가르주나콘다는 지금의 안드라프라데시 주의 군투르 지역(Guntur district)에 속한다. 부파 불교의 제다부(制多部 · Caitika)와 다문부(多聞部 · Bahuśrutīya)의 사원들이 나가르주나콘다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수의 제자들 중 가장 큰 제자(상좌 또는 상족)는 제바(提婆 · 아리야데바: 170-270)로, 제바는 '백론(百論)'을 저술하였다.용수 이후의 대승불교는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결과 후세의 중국 등 여러 나라의 불교에서 용수는 중관파 · 삼론종· 천태종 등 여덟 불교 종파(八宗)의 시조이거나 최초의 발단을 제공한 조사로 존칭되고 있다.

 

◎법맥(法脈)

선종에서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통(法統)의 전승을 법맥이라고 하였다. 인도의 경우에는 이 법맥이 석가모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누구의 법맥을 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됨에 따라 과거칠불설(過去七佛說)과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이 생겨나게 되었다.
과거칠불은 지난 세상에 출현한 일곱 부처님으로서,

①비바시불(毘婆尸佛)을 시작으로 하여

②제2 시기불(尸棄佛),

③제3 비사부불(毘舍浮佛),

④제4 구류손불(俱留孫佛),

⑤제5 구나함모니불(俱那含牟尼佛),

⑥제6 가섭불(迦葉佛),

⑦제7 석가모니불로서, 이들의 법맥이 석가모니불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이후로는 인도에서 28조가 차례로 배출되었다.

그 법맥은 석가모니불-① 마하가섭(摩訶迦葉), ② 아난(阿難)-③ 상나화수(商那和修)-④ 우바국다(優婆국多)-⑤ 제다가(提多迦)-⑥ 미차가(彌遮迦)-⑦ 바수밀(婆須密)-⑧ 불타난제(佛馱難提)-⑨ 복태밀다(伏馱密多)-⑩ 협(脇)-⑪ 부나야사(富那夜奢)-⑫ 마명(馬鳴)-⑬ 가비마라(迦毗摩羅)-⑭ 용수(龍樹)-⑮ 가나제바(迦那提婆)- 라후라다(羅睺羅多)- 승가난제(僧伽難提)- 가야사다(伽耶舍多)- 구마라다(鳩摩羅多)- 사야다(闍耶多)- 바수반두(婆修盤頭)- 마노라(摩拏羅)- 학륵나(鶴勒那)- 사자(師子)- 바사사다(婆舍斯多)- 불여밀다(不如密多)- 반야다라(般若多羅)- 보리달마(菩提達磨)로 이어진다.
이러한 이십팔조설(二十八祖說)은 북위시대(北魏時代)에 길가야(吉迦夜)와 담요(曇曜)가 함께 찬술한 '부법장인연전 付法藏因緣傳'에 의거한 것이며, 이것이 후대에 불조법통으로 확정되었다. 이와 같은 인도의 선종법맥은 제28조 보리달마가 중국에 와서 선법(禪法)을 전함에 따라 널리 전승되었는데, 중국에서도 인도와 같이 초기에는 한 제자에게만 밀인(密印)을 전하여 제6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보리달마를 제1조로 한 중국의 법맥

제2조 혜가(慧可),

제3조 승찬(僧璨),

제4조 도신(道信),

제5조 홍인(弘忍),

제6조 혜능(慧能)에까지 이어진 뒤, 혜능으로부터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선종이 널리 전승되었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우리 나라의 선종법맥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6조 혜능의 법맥을 이어받고 있다. 다만 신라의 법랑(法朗)은 4조 도신의 법맥을 이었고,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서는 희양산문(曦陽山門)만이 일부 북종선(北宗禪)에 속하는 신수(神秀)의 법맥을 잇고 있다. (조선 초기의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사료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명료하지 않음)
혜능의 남종선은 남악(南嶽)과 청원(靑原)에게 이어졌고, 남악의 법은 마조(馬祖)에게로 이어졌다.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迦智山門)은 신라의 도의(道義)가 마조의 제자인 지장(智藏)의 법맥을 이어서 개산(開山)하였고, 실상산문(實相山門)은 홍척(洪陟)이 지장의 법맥을 이어 개산하였으며, 동리산문(桐裏山門)은 혜철(惠哲)이 지장의 법맥을 이어 개산한 문파이다.
또 성주산문(聖住山門)은 무염(無染)이 마조의 제자인 보철(寶徹)의 법맥을 이어 개산하였고, 사자산문(師子山門)은 도윤(道允)이 마조의 제자인 보원(普原)의 법맥을 이어서 개산하였으며, 봉림산문(鳳林山門)은 현욱(玄昱)이 마조의 제자인 회휘(懷暉)의 법맥을 이어 개산하였다. 또한 사굴산문(闍崛山門)은 범일이 마조의 제자인 제안(齊安)의 법맥을 이어 개산한 종파이다.
희양산문은 신수-지공(志空)으로 이어지는 북종선의 법맥을 이은 신라의 신행(神行)이 다시 준범(遵範)-혜은(惠隱)의 순으로 전한 법맥과, 마조-신감(神鑑)-혜소(慧昭, 신라승)로 이어지는 법맥을 함께 전승한 도헌(道憲)에 의해서 개산된 종파이다. 또한 수미산문(須彌山門)은 청원-석두(石頭)-약산(藥山)-운암(雲巖)-동산(洞山)-운거(雲居)로 이어지는 중국 조동종(曹洞宗)의 법맥을 신라의 이엄(利嚴)이 전승하여 개산한 종파이다.

임진왜란 이후의 법맥은 영관의 법맥을 이은 청허문(淸虛門)과 부휴문(浮休門)이 양대산맥을 이루었고, 이 두 문파에서 각각 여러 문파가 생겨나서 오늘날까지 그 법맥이 이어지고 있다. 법맥이란 곧 선법(禪法)의 진수를 제자에게 전하는 것으로서, 스승은 법맥을 전할 참된 제자를 구하여야만 그 임무를 다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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