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 / 고승학
서울大學校人文大學院 (석사학위논문)
3. 4종 熏習과 流轉·還滅연기
1) 기신론 의 熏習개념
우리가 현재 받고 있는 모든 苦와 樂을 이전에 행했던 業(karma)의 果報로 보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불교 교리인 業說이다. 그런데 유식불교는 그러한 업이 다시 행위자 자신의 미래의 행위를 유발하는 힘이 있음에 주목하고 그것을 ‘熏習(vāsanā)’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하였다. 몸(身)과 입(口)과 의지(意)의 업으로 나타난 결과는 ‘現行’이라 불리는데, 그것이 다시 알라야식에 저장되어 미래의 행위를 유발할 경우 ‘習氣(경향성)’ 또는 ‘種子(씨앗, bīja)’로 불리게 된다.
여기에서 현행이 그 습기 또는 종자를 알라야식에 저장하는 작용이 바로 의복에 향내가 스며드는 것으로 비유되는 ‘훈습’ 개념인 것이다. 아울러 이렇게 훈습된 종자는 마치 땅에 뿌려진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현상세계(現行)를 생겨나게 하며, 종자로부터 생겨난 이 현상세계는 그 영향력(습기)을 알라야식에 남겨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내어 결국 종자에서 종자로 이어지게 되는데(種子生現行, 現行熏種子, 種子生種子), 이것이 바로 유식에서 설명하는 輪廻(流轉, saṃsāra)의 원리인 것이다.
앞 장에서 언급했듯이 기신론의 가장 독특한 점은 모든 존재의 실상으로서 깨끗한 법(淨法)으로 간주되는 眞如또는 여래장과 온갖 번뇌의 근본인 無明사이에 상호 훈습이 이루어짐(眞妄交徹)을 인정하는 데에 있다. 일반적으로 유식사상에서는 알라야식과 같이 변화될 수 있는 존재만이 중생이 짓는 업(現行)에 의해 훈습을 받을 수 있다(所熏)고 한다. 또한 유식사상은 불변의 진여가 다른 존재를 훈습할 수 있음(能熏)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여나 여래장과 같은 불변의 존재(常法)가 무명과 같이 변화하는 존재를 훈습하고 반대로 훈습을 받는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원효는 기신론을 해설하면서 이러한 지적을 예상하고서 유식의 훈습 개념이 ‘생각할 수 있는(可思議)’ 훈습임에 대하여 이 논서의 훈습은 ‘생각할 수 없는(不思議) 훈습’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원효는 여기에서 다루는 진여에 대한 무명의 훈습에서 ‘진여’는 발생론적 설명(生義)이 불가능한 진여문에서의 진여가 아니라 생멸문의 性淨本覺에서의 진여이므로 그것이 불가능한 개념이 아니라고 부연하고 있다.
기신론은 그러한 훈습을 ⑴ 무명에 대한 정법(진여)의 훈습, ⑵ 진여에 대한 무명의 훈습, ⑶ 무명에 대한 妄心(業識)의 훈습 ⑷ 망심에 대한 妄境界(6塵: 6식의 대상들)의 훈습의 四種으로 나누며, ⑴을 淨法훈습, ⑵, ⑶, ⑷를 染法훈습으로 부르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정법 훈습은 중생이 무명의 세계로부터 진여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훈습으로, 어떤 중생에게 정법 훈습이 가해지게 되면, 그는 번뇌로부터 벗어나 열반[滅]이라는 근원적 상태로 돌아가게[還] 되므로, 이러한 훈습은 ‘還滅’의 因緣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염법 훈습은 무명과 망심, 망경계가 번갈아가면서 중생의 마음을 훈습하여 끊임없이 業을 지어 미혹의 현상 세계에 계속 머물게 하는 것으로, 이것은 ‘流轉’의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染法훈습과 流轉연기
기신론은 위의 두 가지 훈습 가운데 염법 훈습을 먼저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른바 ⑴ 진여법에 의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 무명염법의 因이 있기 때문에 곧 진여를 훈습하며,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 ⑵ 망심이 있어서 곧 무명을 훈습하여 진여법을 요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나 망경계를 나타낸다. ⑶ 망경계의 染法의 緣이 있기 때문에 곧 망심을 훈습하여 그로 하여금 念着케 하여 여러 가지 업을 지어서 일체의 身心의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다.
위의 ⑴, ⑵, ⑶은 각각 ‘무명훈습’, ‘망심훈습’, ‘망경계훈습’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⑴에서 무명염법의 因이 진여를 훈습하는 것은 근본무명의 훈습으로서 그 결과 나타난 ‘망심’은 기신론의 ‘生滅因緣’의 5意가운데 業識에 해당한다. ⑵는 무명에 의해 생겨난 망심(업식)이 무명을 다시 훈습하여 미혹된 주관과 객관 의식인 망념과 망경계를 산출하고, 그 결과 중생을 더욱 미혹하게 함을 말한다. 여기에서 ‘망념’과 ‘망경계’는 각각 轉識과 現識을 나타낸다. ⑶은 이와 같이 알라야식의 자기 전변으로 나타난 現識(妄境界)이 다시 망심을 다시 훈습함을 말하는 것으로, 智識, 相續識, 分別事識등은 이로부터 전개되어 流轉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다시 ‘3細6麤’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⑴과 ⑵의 단계에서 알라야식에는 無明業相, 能見相, 境界相이 생겨나고, ⑶의 단계에서는 이 경계상에 대하여 智相, 相續相, 執取相, 計名字相을 일으켜 분별·집착하고(‘念着’), 그 집착하는 바를 실현하고자 起業相으로써 업을 일으켜(‘造種種業’), 결국은 業繫苦相이라는 고통스런 결과를 초래하는 것(‘受於一切身心等苦’)으로 볼 수 있다.
기신론은 ⑴ 무명훈습을 다시 根本훈습과 所起見愛훈습으로 나누는데, 원효에 따르면 전자는 알라야식이 물들어 업식이 발생하게 된 것으로 근본불각에 해당하며, 후자는 이로부터 파생된 見愛번뇌로서 分別事識(여기에서는 7식을 포함한다)이 물들어 있는 지말불각에 해당한다.
또한 ⑵ 망심훈습은 업식근본훈습과 增長分別事識훈습으로 나뉘며, 각각 三乘에게는 變易생사의 고통을, 범부에게는 分段생사의 고통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것은 승만경에서 三乘이 意生身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명주지’를 끊지 못함으로써 완전한 열반을 얻지 못했다고 말한 것에 대응된다. 다시 말해 三乘은 범부가 겪는 분별사식의 번뇌와 그로 인한 분단생사를 벗어났지만, 업식(無明業相)으로부터 발생한 轉相과 現相등 근본적인, 미세한 번뇌를 끊지 못하여 변역생사의 고통은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⑶ 망경계훈습은 분별사식의 대상에 대한 집착(法執分別念)을 증장시키는 增長念훈습, 그리고 지적인 어리석음(見取)을 비롯하여 三界의 허망한 상에 대한 집착인 欲取·戒禁取·我語取등 四取를 증장시키는 增長取훈습으로 나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염법 훈습은 사실상 기신론 생멸문의 ‘不覺’, 곧 근본무명에 의한 연기(流轉)에 대한 설명이며, 알라야식으로부터 五意와 意識이 전변함을 설명한 ‘生滅因緣’을 ‘무명의 훈습’이라는 개념을 통해 부연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기신론에서 염법 훈습을 ‘진여법에 의하여 무명이 있고 무명염법의 因이 있어 진여를 훈습하는 것’으로 정의하고는 있지만, 진여가 所熏이 된다는 점만 다를 뿐, 이러한 훈습을 통하여 중생의 생사유전을 다루는 방식은 유식의 설명과도 비슷해 보인다. 오히려 기신론 만의 독특한 훈습 개념을 잘 드러내주는 것은 이하에 설명할 정법 훈습이라 할 수 있다.
3) 淨法훈습과 還滅연기
기신론 은 승만경에서 “여래장이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거이 구하게 한다”고 한 것에 대하여 (중생의 허망한 마음 속에) 진여가 있어 무명을 훈습하여 망심으로 하여금 發心, 修行하는 작용을 일으킨다고 설하고 있다(이를 진여의 ‘內熏’ 또는‘ 本熏’이라고 한다). 아울러 이러한 허망한 마음 속에 생겨난,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는 인연(厭求因緣)은 다시금 처음의 진여를 훈습하여 그 힘을 增長한다고 한다(이를 진여의 ‘新熏’이라 한다). 기신론에 따르면, 이러한 정법 훈습이 있기 때문에 중생은 스스로 자기 본성을 믿어서 제 마음 밖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수행을 닦아 오랫 동안 훈습한 힘으로 무명을 없앨 수 있으며, 무명이 멸할 경우 心相이 사라져 열반과 부처의 自然業을 이룰 수 있다.
기신론은 이와 같은 정법 훈습을 다시 ⑴ 망심훈습과 ⑵ 진여훈습으로 나누고 있다. 앞의 염법 훈습에서의 망심훈습이 무명의 훈습으로 인해 업식이 발생하고 그로부터 전개된 여러 번뇌(3세 6추) 및 生滅과 業繫의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었다면, 정법 훈습의 일종으로서의 망심훈습은 중생의 마음 속에서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열반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厭生死苦, 樂求涅槃)이 생겨나 發心, 修行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망심훈습’의 주체(能熏)를 여래장 자체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망심’이 곧 ‘여래장’이라면 다음에 살펴볼 진여훈습, 특히 자체상훈습과 구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심훈습이란, 번뇌로 뒤덮인 중생의 망심(생멸심)이 처음에 여래장에 의해 훈습을 받고난 뒤(本熏), 그 망심이 주체(能熏)가 되어 중생심(알라야식) 속에 있는 불생불멸의 진여(여래장)를 대상(所熏)으로 하여 진여의 작용력을 키운 것(新熏)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기신론은 그러한 망심훈습을, 중생이 어떤 관점에서 열반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시 분별사식훈습과 意훈습(업식훈습)의 둘로 나눈다. 곧 범부와 二乘은 생사와 열반을 다른 것으로 보고, 열반을 마음 밖에 있는 것으로 대상화하기 때문에 이들의 열반에의 희구는 사실상 염법 훈습에서의 분별사식의 집착과 다를 바 없으므로 이러한 훈습은 분별사식훈습이라 불리게 된다. 반면, 十住이상의 보살들은 모든 대상들이 오직 마음, 특히 업식의 헤아림(一切法唯是識量)임을 잘 알기 때문에 열반을 마음 밖의 것으로 대상화하지 않으며, 이들이 일으키는 훈습은 업식에까지 미치고 있으므로 이를 업식훈습 또는 의훈습이라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정법 훈습으로서의 망심훈습이 중생이 생멸심에 근거하여 수행을 일으킨 것으로 그들의 주체적인 자각과 노력을 나타낸다면, 이는 생멸문의 始覺에 대응시켜도 좋을 것이다. 한편, 진여훈습은 ⑴ 중생에게 내재된 여래장이라는 소질(因)과 함께 ⑵ 외적인 환경(外緣)으로서의 부처, 보살, 善知識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신론은 전자를 自體相훈습, 후자를 用훈습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러한 설정은 여래장의 훈습만을 말할 경우 중생이 모두 성불하여 차별됨이 없어야 할 것이라는 반론을 예상한 것이다. 기신론은 이에 대해 나무가 비록 불에 타는 성질이 있지만, 스스로는 탈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불·열반도 佛法의 因과 緣을 모두 갖추어야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신론은 우선 여래장의 작용력으로서의 자체상훈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안은 원효의 주석).
자체상훈습이란 無始의 때로부터 無漏法을 갖추고 不思議業을 갖추며[本覺不空], 境界性을 짓는 것이다[如實空]. 이 두 가지 뜻에 의하여 항상 훈습하여 훈습의 힘이 있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여 스스로 자기의 몸에 진여법이 있는 줄 믿어 발심하여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체상훈습은 결국 여래장이 중생심에 작용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승만경의 空, 不空여래장 개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중생의 外緣의 힘으로 정의된 용훈습은 ⑴ 구도자가 수행 중에 만나는 여러 사람들로서 그에게 온갖 행위를 일으켜 그의 善根을 증장시키는 差別緣과 ⑵ 모든 부처와 보살이 일체 중생을 영원히 훈습하여 중생의 見聞에 응하여 업을 일으키고 있는 平等緣으로 나뉠 수 있다. 차별연과 평등연 모두 그 훈습의 주체는 부처와 보살로서 전자의 경우, 그들이 중생 앞에 권속, 부모, 急使, 벗, 원수 등 여러 모습으로 化現함을 말한 것이며, 후자는 중생의 요구에 응하는 법신의 작용이 항상되어 끊이지 않으며, 그것이 차별없는 모습으로 나타남을 강조한 것이다. 두 경우에 부처가 이렇게 화현할 수밖에 없는 동기는 그의 ‘大悲’와 ‘同體智力’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신론은 평등연으로서의 진여의 훈습은 “중생이 삼매에 의하여야”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원효는 이에 대해 범부와 이승의 분별사식훈습을 대상으로 하는 차별연과 달리, 평등연은 보살의 업식훈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곧 이들 보살은 부처의 작용이 나타난 결과(報身)를 보되, 6식(분별사식)의 인식론적 한계(分齊)를 떠나 있으며, 그러한 진여의 평등한 작용은 고도의 정신 집중, 곧 三昧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신론은 진여훈습을 자체상훈습과 용훈습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그것은 각각 중생에게 내재된 여래장(在纏位의 법신)의 上求작용과 중생 밖에서 중생을 이끄는 여래(出纏位의 법신)의 下化작용을 나타낸 것이며, 생멸문의 本覺을 ‘훈습’이라는 개념을 통해 재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性淨본각의 二相중 智淨相을 설명하면서 제시된 ‘법력의 훈습’이라는 말과 隨染본각의 四相중 ‘因熏習鏡’, ‘緣熏習鏡’ 등의 용어를 통해서도 기신론의 본각 개념이 진여훈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본 절에서 다룬 기신론의 훈습 개념과 생멸문의 불각, 시각, 본각과의 관계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 4> 기신론 의 훈습 개념과 覺과의 관계
<표 4>에서 알 수 있듯이 기신론의 染淨互熏은 불각과 시각, 그리고 본각 개념을 여래장(진여)과 무명이라는 두 요소간의 훈습이라는 측면에서 서술한 것으로, 불각은 염법 훈습(무명, 망심, 망경계훈습)에, 시각은 정법 훈습 중의 망심훈습에 대응되며, 본각은 정법 훈습 중의 진여훈습으로 중생의 마음 속에서 열반을 희구케 하는 不空진여로서의 여래장의 무량한 공덕(자체상훈습)과 중생 주변에 여러 모습으로 현현하는 佛菩薩의 작용(용훈습)에 대응된다.
그러나 진여훈습 중의 자체상훈습이 중생 내부에 본래 물들지 않은 깨끗한 지혜(無漏法)과 무량한 공덕(不思議業相)이 있음을 믿게 하는 것이라면, 진여훈습의 용훈습은 중생의 외부에 부처와 보살 등이 있어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고 있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기신론이 용훈습에 대하여 부처의 ‘大悲’와 ‘同體智力’이 그 동기라고 서술한 것으로부터 본 논서의 목표가 중생에게 단지 깨달음의 길만을 제시하는 데에 있지 않고, 현상계에 부처의 자비가 충만되어 있음을 느끼는 종교 체험을 통해 믿음을 일으키려는 데(起信)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海印의 뜨락
'대승기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 9 (0) | 2023.02.01 |
---|---|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 8 (0) | 2023.02.01 |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 6 (0) | 2023.01.31 |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 5 (0) | 2023.01.30 |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3 (0) | 2023.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