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 / 고승학
Ⅳ. 기신론의 여래장 개념
기신론은 크게 ⑴ 본 논서를 짓게 된 동기를 설한 부분(因緣分),
⑵ 大乘이 의지하는 대상(法)인 중생심과 대승의 실현하고자 하는 바(義)로서 본체(體)·속성(相)·작용(用)의 三大를 소개한 총론 부분(立義分),
⑶ 총론에 소개된 중생심과 三大등에 대한 해설 부분(解釋分),
⑷ 실천 수행의 길을 제시한 부분(修行信心分),
⑸ 실천 수행을 권하며 그에 따른 이익을 설하는 부분(勸修利益分)으로 나뉘어져 있다.
본 논서의 중심을 이루는 주요 개념들을 法數에 따라 열거해 보면, 一心, 二門(眞如·生滅), 三大(體·相·用), 三發心(信成就·解行·證), 四信(根本=眞如·佛·法·僧), 五門(施·戒·忍·進·止觀)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一心부터 三發心까지는 해석분에서, 四信과 五門등은 수행신심분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본 장에서는 기신론 해석분의 생멸문에 치중해서 논의하려 하는데, 그것은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진여문에서 설하는 존재의 실상인 진여는 우리의 개념적 분별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신론의 목표가 중생을 상대적 집착으로부터 떠나게 하고 自他不二의 큰 수레(大乘)에 태우는 것이라 할 때, 절대성·보편성을 상징하는 ‘진여’라는 개념을 어떻게든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여문에서 진여를 단지 “言說相, 名字相, 心緣相을 떠나 있는 것”으로 설하는 것은 진여를 인식론적으로 초월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릴 뿐, ‘참으로 그러한(如如)’ 현상 세계에 대한 해명으로서는 미흡할 것이다. 따라서 기신론은 진여문에서 “비록 ‘진여’라 말하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모양이 없으며, ‘진여’라는 말은 결국 말에 의하여 말을 버리는(因言遣言) 것”이라고 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생멸문에서 중생심의 역동적인 전개 과정 및 그 역동성 속에 숨어있는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원리(如來藏, 本覺)를 드러내려 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먼저 생멸문의 토대이자 眞妄화합식으로 정의된 알라야식 개념을 능가경의 識說과 비교하면서 논의하고, 생멸문의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아울러 본래 유식사상의 주요 개념이었던 ‘훈습’이 기신론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전개되었는지를 살핌으로써 본 논서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무명(染法)으로부터의 해탈(還滅)이 여래장(淨法)의 작용력에 의하여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려는 데에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작용력, 곧 淨法훈습 중 진여의 용훈습에 함축된 여래의 자비의 의미에 대해서도 되짚어보고자 한다.
1. 기신론의 알라야식 개념 ― 능가경과 관련하여
원효는 기신론의 一心二門설의 근거를 입능가경의 “⑴ 寂滅이란 일심이라 이름하며, ⑵ 일심이란 여래장이라 이름한다”라는 구절에서 찾고 있다. 그는 중생의 망념이 사라진 현상계의 있는 그대로의 고요한 모습(寂滅), 곧 진여는 절대적이며 평등한 한 마음(一心)과 다르지 않다고 보고, ⑴을 진여문에 대응시킨 것이다. 또한 ⑵는 그러한 일심(진여)이 무명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여래의 본성이 중생에게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생멸문에 대응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효는 기신론의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전제를 능가경에 의지하여 해설하고 있지만, 기신론에서 능가경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생멸문의 알라야식 개념이다.
기신론은 생멸문을 정의하면서 “심생멸이란 여래장에 의하므로 생멸심이 있는 것이다. 불생불멸이 생멸과 화합하여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것이 알라야식이다”라고 설하는데, 이로부터 ‘불생불멸’이란 곧 여래장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원효 역시 생멸심(能依)이 의지하는 본체(所依)인 불생불멸은 여래장이며, 알라야식에 두 가지 뜻(覺과 不覺)이 있는 것 또한 이 의식이 불생불멸과 생멸의 화합식이라는 사실에 대응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불생불멸(각)과 생멸(불각)이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非一非異)”는 말은 무슨 뜻인가? 원효는 양자가 같다고 할 경우에는 불각으로서의 생멸하는 모습이 사라질 때 불생불멸이라는 마음의 본체도 따라서 사라져야 할 것이고, 다르다고 할 경우에는 고요한 마음의 본체(불생불멸=각)가 무명(생멸=불각)에 훈습되어 움직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斷見과 常見으로부터의 중도설을 나타낸 것으로, 특히 ‘무명에 의한 진여의 훈습’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신론의 알라야식이 순수한 유식사상의 識說로는 해석될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기신론의 알라야식 개념은 유식사상과 여래장사상의 교섭 결과 성립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앞 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승만경은 여래장을 “6식 및 心法智를 초월한 것”으로 설하였고, 이로부터 여래장을 의식과 관련하여 해명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능가경은 승만경보다는 성립 시기가 늦으며,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간의 교섭이 잘 나타나 있는 후기 여래장 경전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능가경에는 여래장사상 고유의 여래장 개념도 나타나 있다. 예컨대 “여래장은 모든 善과 不善의 因이며, 두루하여 모든 갈래의 生을 능히 짓는다”, “여래장은 여래의 경계이다” 등의 말은 일법계인 중생계와 열반계의 근거이며 難信難解한 인식 대상으로서 여래장을 설명하는 부증불감경, 승만경 등의 사상과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능가경은 다음과 같이 여래장과 알라야식과의 관련을 논함으로써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의 교섭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혜여, ⑴ 알라야식은 여래장이라 이름하나니, 무명인 칠식과 함께 함이 큰 바다에 물결이 항상 끊이지 아니함과 같아서 (중생의) 몸과 함께 생겨났기 때문이다. (여래장은) 無常의 허물을 떠났으며, 我라는 허물을 떠나 자성이 청정하다. 나머지 7식은 저 심·의·의식 따위의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는 생멸의 법이니, 7식은 그러한 허망한 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모든 법을 여실히 잘 분별하지 못하고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의 형상을 보고 名相에 집착하므로 자기 마음으로 하여금 색상을 보게 하고 苦樂을 얻게 하고 해탈의 因을 떠나게 하고, 名相으로 하여금 부수적 번뇌인 貪이 나게 한다. 저 생각의 모든 因과 모든 감관들이 완전히 소멸함으로써 차례로 생겨나지 않으면, 나머지 의식 분별에 苦樂의 감수가 생겨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少想定과 滅盡定에 들어가며 等持(samāpatti, 완전한 禪定)와 四禪과 實諦와 해탈에 들어간다.
그러나 수행자가 해탈이라는 相을 내는 것은 허망한 상을 전환하여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혜여, ⑵ 여래장식은 알라야식 가운데에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7식은 생과 멸이 있지만, 여래장식은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저 7식은 모든 경계를 念觀(생각)함으로써 생기기 때문이며, 이러한 7식의 경계는 모든 성문, 벽지불, 외도의 수행자가 알 수 없는 것이다.
위에서 ⑴은 알라야식과 여래장을 동일시함으로써 알라야식의 불생불멸의 뜻을 나타내고, ⑵는 알라야식과 여래장을 구분함으로써 알라야식의 생멸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⑴은 또한 7식(轉識)과 여래장으로서의 알라야식(藏識)의 관계를 파도와 바다에 비유하여, 7식이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멸을 일으키며, 그런 표면적 의식이 소멸하여 수행자가 ‘해탈’이라는 생각을 내지만, 그것은 단지 ‘허망한 相’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곧 진정한 해탈은 파도에 비유되는 알라야식이라는 심층 의식의 전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⑵는 여래장은 알라야식에 있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알라야식을 단지 생멸하는 의식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아울러 ⑴에서는 알라야식과 7식을 구분하고 있지만, ⑵는 알라야식을 순간적으로 생멸하는 의식 가운데 하나인 제7식으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동일한 문헌 안에서 이러한 모순이 발생한다는 점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능가경의 이러한 이중적인 識說은 기신론의 알라야식 개념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밖에 능가경은 알라야식에 業相, 轉相, 眞相의 三相이 있다고 설하는데, 알라야식에 변하지 않는 참모습(眞相)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알라야식이 단지 개개인의 의식의 흐름만을 가리키지 않고 현상계를 산출하는 불변의 토대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능가경은 알라야식(藏識)을 그것의 전변인 7식(轉識)의 因으로 인정하면서, 장식은 전식이 소멸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임을 주장한다. 또한 생멸하는 의식(相續)의 소멸이란 알라야식의 眞相이 아닌 그 業相만이 소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알라야식 자체가 소멸한다면, 이는 외도의 斷滅論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능가경은 意識이 소멸하여 7식이 함께 소멸한 것을 열반이라고도 설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의식’이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능가경에서 알라야식의 참모습, 본체(眞相)를 불생불멸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기신론의 생멸문에서도 그 실체가 되는 것은 불생불멸로서의 여래장이다. 원효는 기신론이 알라야식을 “불생불멸의 마음이 생멸과 화합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역으로 “생멸이 불생불멸의 마음과 화합한 것”이라고는 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기신론의 용어 사용 및 어순에도 심오한 의미가 숨어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으나, 더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쨌든 기신론의 알라야식이 단순한 생멸심이 아님은 분명하며, 능가경의 다소 혼란스런 알라야식 개념을 이어받아 불생불멸과 생멸의 요소가 결합한 것으로 체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능가경에서 제시된 업상과 전상의 개념은 기신론에서 支末불각의 三細가운데 無明業相(알라야식 내부의 무명에 의하여 불각의 망념이 움직인 것)과 能見相(업상으로 인해 생겨난 주관적 의식) 개념으로 연결된다.
능가경은 이와 같이 생멸하는 의식 현상의 배후에 불생불멸의 알라야식의 본체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래장의 常住性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래장의 상주성을 부인하는 이들을 향하여 “我見을 수미산처럼 일으킬지언정 空見을 일으켜 增上慢(교만)을 품지 마라”고 설하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서 空見을 공격하는 이유는 “모든 법이 오직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모른 채 유와 무에 집착하여 惡取空을 일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능가경의 이러한 唯心사상은 유식사상에서 단지 개인의 한정된, 오염된 의식에 지나지 않았던 알라야식을 절대적·보편적 의식으로 끌어올린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유심사상은 기신론에서 “心→意→意識”의 도식으로 중생의 의식과 번뇌가 전개되어 나오는 모습을 설명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 海印의 뜨락
'대승기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 7 (0) | 2023.01.31 |
---|---|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 6 (0) | 2023.01.31 |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3 (1) | 2023.01.29 |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 2 (0) | 2023.01.28 |
大乘起信論에서의 ‘如來藏’ 개념 연구(고승학) 1 (0) | 2023.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