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乘起信論에서의如來藏’ 개념 연구 / 고승학

서울大學校人文大學院 (석사학위논문)

 

. 결론

기신론은 그 저자와 번역자에 대한 의혹 때문에 僞經이 아닌가 의심을 받기도 하였지만,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가장 사랑받아온 논서 중의 하나로 꾸준히대승에의 믿음을 일으켜” 왔다. 그러나 근자에 여래장사상을 비롯하여 화엄 및 선불교 등을 실체론적이며 비불교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비판불교 운동의 영향으로 기신론 또한 그 가치가 절하되기에 이르렀다.

비판불교 운동가들은 중생에게 내재되어 있는 成佛의 因, 곧 여래장(불성) 또는 자성청정심을 모든 현상적 대상들을 산출해내는 기반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場的존재(dhātu, locus)를 상정하는 이론(dhātu-vāda)은 불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래장사상이 dhātu-vāda라면, 실체로서의 여래장이 현상적 존재들을 산출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허상에 불과한 현상적 존재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신론은 생멸하는 중생의 마음 속에 그 본성이 깨끗한 여래장이 실체로서 내재되어 있지만, 그것이 無明에 의해 물들기도 하며, 반대로 무명에 작용을 가할 수도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무명과 여래장의 영향 관계를 染法과 淨法의 상호 훈습, 染淨互熏’이라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유식의 熏習개념과도 다른, 기신론 내지 여래장사상만의 독특한 훈습 개념이다. 본 논문은 이염정호훈’ 개념에 주목하여 본 논서가 단순한 dhātu-vāda만은 아니며, ‘지혜의 자비적 전개’라는 여래장사상의 종교적 목적을 실현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기신론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은 一心, 二門, 三大등이며, 이 중에서도 최상위 개념은 일심일 것이다. 기신론 본문을 검토해 볼 때일심’은진여’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이런 일심이 진여문과 생멸문의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에, 본 논서의 의도가 절대적·보편적 마음인일심’으로부터 모든 상대적·차별적 현상 세계를 연역적으로 설명해 내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기신론을 이끌어가는 중심 개념은 일심과 함께 일심의 대상(一心法)으로서의 중생심이라는, 중생의 현실적인 마음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중생심은 생멸과 불생불멸이 미묘하게 화합한 알라야식으로 단순히 오염된 의식이 아니라는 점에 기신론의 識說의 독특한 점이 있다.

본 논문은 기신론에 대한 분석에 앞서서 여래장사상에 대한 일반적인 개요를 소개하였다. 우선如來藏’의 산스크리트 원어는 ‘tathāgatagarbha인데, 여기에서 ‘garbha’라는 말은容器’, ‘자궁’, ‘태아’ 등을 의미하며, 이러한 具象的 의미가 추상화된 결과, ‘불변의 본성’이라는 뜻의 ‘dhātu라는 말이(buddha)’에 결합되어佛性(buddhadhātu)의 개념이 생겨났다.

여래장사상에서모든 중생에게 불성(여래장)이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라는 말은 敎法으로서의 여래의 작용이 두루 미치고 있으며(法身遍滿), 중생과 여래는 모두 그 본성이 공한 참된 모습에서는 차이가 없다(眞如平等)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는 중생이 여래의 자비를 입고 지혜를 닦아 부처가 되었을 때 그러한 중생 또한 세간에 자비를 실현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래장사상에서는 지혜와 자비의 작용이 圓環的이기 때문에 여래장사상에서의法身(dharma-kāya)은 단지 진리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고, 지혜와 자비가 일체가 된 인격적 존재(理智不二法身)를 가리키게 되었다.

다음으로 기신론에 영향을 끼친 경전들을 살펴보았다. 소위여래장 삼부경’으로 불리는 초기 여래장 경전들 가운데 부증불감경에서 강조한一法界에 대한 바른 知見’은 기신론의근본무명’의 의미를 밝히는 단서가 되었으며, 승만경에서 제시된 여래장의 두 가지 의미(, 不空)는 기신론의언설에 의해 분별한 진여(依言眞如)’가 가지는 두 가지 의미(如實空, 如實不空)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생멸과 불생불멸의 화합식으로 정의된 알라야식 개념은 알라야식과 여래장을 동일시하는 능가경의 識說로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신론의 진여문은 현상계의 참모습(眞如)언설을 떠난 것(離言)”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러한 진여를 언설로 분별할 경우에도(依言) 본래 번뇌와 상응하지 않으며(如實空), 무량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如實不空)는 뜻이 있다고만 설하고 있다. 그러나 진여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수행과 깨달음의 완성태를 가리킬 뿐,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절실한 동기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알라야식을 토대로 미혹함(不覺)과 깨달음()의 세계를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는 생멸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기신론에서는 불각을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여(不如實知眞如法一故)” 발생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불각의 상태를 방향을 잃어버린 것에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비유의 의미는길을 잃는다는 개념이 올바른 방향이 따로 있음을 전제할 때에만 성립할 수 있듯이, 중생의 근본불각 역시 불각과는 별도로 각이 존재한다고 상정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히 모르는 것”으로 정의된 근본불각은 그러한 각과 불각의 상대성을 보지 못하고 양자를 절대적인 두 실재로 보는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신론에서진여’는 일반적으로 여래장을 가리키며, 여래장은 무명을 따라 오염되는 성질(隨染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히 안다”는 말은 결국 각이 불각을 떠나 있지 않고, 불각을 따라 반응하며(隨染), 불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안다는 말과 같다. 이러한 불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일으킨 중생의 수행이 始覺이며, 그 수행이 완성되어 깨끗한 지혜와 무량한 공덕을 갖추게 된 것이 本覺이다.

기존의 기신론 연구를 살펴보면, 대개 覺과 不覺의 문제에 대해 천착하거나 또는 二門과 三大의 配屬, 六染과 8식과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원효, 법장의 기신론 이해방식을 비교하거나 진여문과 생멸문을 중관과 유식사상과 연관시키는 등 기신론을 대승불교의 敎學的텍스트로만 다루는 느낌이 든다. 예컨대 진여문을 진제로, 생멸문을 속제로 볼 때, 이 二門이 모두 一心으로 귀일된다는 기신론의 사상으로부터 이 논서가眞俗別體之執’을 제거하여 세속 속에서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신론에서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은 여러 전제들을 상정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곧 진여문과 생멸문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면서 진여문의 離言진여가 생멸문의 시각의 究竟覺에 남아있는무위진여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여 本覺의 깨끗한 지혜(智淨相)와 불가사의한 공덕들(不思議業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추론하는 경우가 그러한 사례이다. 이러한 견해는 기신론의 전체적인 조망을 제시해 준다는 나름의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시각의 구경각에 어떠한 집착이 남아있는지, 본각이 이러한 구경각 보다도 한 단계 더 나아간 깨달음인지 기신론은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다.

필자는 기신론에서 시각과 본각과의 관계를 보다 분명하게 나타내 주는 것은 熏習개념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신론은 진여와 무명의 상호 훈습이라는不可思議’한 훈습을 통해 중생의 구원(還滅)과 방황(流轉), 불도의 추구(上求)과 자비의 실현(下化)를 역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본각의 여러 양태들(隨染本覺의 智淨相, 性淨本覺의 因熏習鏡, 緣熏習鏡)이 훈습 개념을 통해 설명되고 있는데, 이것은 淨法훈습으로서 진여가 중생의 무명에 작용하는 양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본래 훈습될 수 없는 진여(여래장)가 무명에 의해 훈습되는 것(染法훈습)은 중생의 불각이며, 그런 중생이 스스로 번뇌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정법 훈습 중 망심훈습) 실천 수행을 일으킨 것은 시각에 대응된다. 아울러 중생의 내부에서 여래장이 因으로서 그들을 각성시키고(정법 훈습 중 진여의 자체상훈습), 중생의 외부에서 佛菩薩의 緣으로서 그들을 이끄는 것(진여의 용훈습)은 본각의 작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이 정법 훈습 중의 망심훈습에 해당된다는 말은 여래장(진여)이 처음에 망심(업식)에 훈습을 가한(本熏) 결과 중생의 망심에 질적인 변화가 생기고 그것이 진여를 지향하려는 힘을 키워 나감(新熏)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각과 본각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불생불멸로서의 여래장은 시각을 촉발하는 효과는 있지만, 시각은 주로 중생의 생멸심에 의지하여 전개되는 중생의 자발적인 실천 수행이며, 본각은 불생불멸로서의 여래장과 중생의 外緣으로서의 여래 법신이 중생에게 가하는 上求와 下化의 작용이다.

기신론은 특히 이러한 진여의 작용(용훈습)이 끊이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그것은 부처가 무한한 중생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同體大悲’의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한다. 기신론은 이러한 동체대비가 중생과 여래가 진여로서 평등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고 설하는데, 이것은 모든 중생이 여래장(成佛의 因을 감추고 있는 존재)임을 보는 지혜가 자비의 실천으로 연결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기신론은 실천 수행 가운데 止觀門에서 모든 중생이 무명의 훈습을 받아 고통받고 있는 불쌍한 존재라는 사실을 觀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신론은 번뇌 속의 법신(在纏位), 곧 여래장을 개개인의 성불의 요인으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번뇌를 벗어난 법신(出纏位)이 중생의 외부에서 항상 중생을 이끌어주고 있음을 진여의 용훈습 개념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온 세계에 부처의 작용이 미치고 있음을 아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 신비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성청정심이 번뇌에 물드는 것 또는 무명에 의한 진여의 훈습을불가사의한 여래의 경계”로 언급하는 승만경, 기신론 등의 여래장 계열의 경전들의 修辭學(rhetoric) 또한 이론적 불철저성 보다는 이러한 신비 체험을 기술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명과 진여에 관한 설명이 본 논서의 목적대승에의 믿음을 일으키는 것에 어느 정도 부합할 수 있는가? 물론, 기신론은 그러한불가사의한 훈습’이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번뇌 망상에 시달리는 중생에게 그가 발심만 하면 그의 내적 요인(그에게 내재된 여래 법신인 여래장)과 외적 조건(佛菩薩의 同體大悲의 發願力)에 힘입어 해탈할 수 있음을 본 논서는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본 논서가 이론적인 설명을 포기한 무명의 존재론적 위상, 진여와 무명의 상호 훈습의 원리에 대하여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면, 본 논서는 그 목적인起信’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 海印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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