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10 3

 

涅槃義別,略有四種:一本來自性淸淨涅槃,謂一切法相眞如理,雖有客染而本性淨,具無數量微妙功德,無生無滅湛若虛空,一切有情平等共有,與一切法,不一不異,離一切相一切分別,尋思路絕,名言道斷,唯眞聖者自內所證,其性本寂,故名涅槃;

열반의 뜻의 차이가 대략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이니, 일체법의 참다운 모습인 진여의 본체인 진여리(眞如理)를 말하는 것으로, 비록 객진번뇌에 오염되어 있긴 했지만 본성이 청정하고 무량하고 미묘한 공덕을 갖추었으며, 응적담연(凝寂湛然)하기 때문에 생겨남이 없는 무생(無生)이고, 멸함도 없는 무멸(無滅)이며,

담연(湛然)해서 허공과 같으며, 모든 유정들에게 평등하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다. 

제법과 하나도 아닌 불일(不一)이고 다른 것도 아닌 불이(不異)이며, 모든 형상을 떠난 이일체상(離一切相)이고,

모든 분별을 떠난 이일체분별(離一切分別)이고, 생각으로 헤아려서 아는 것이 아닌 심사노절(尋思路絕)이며,

언어로 표현할  없는 명언도단(名言道斷)으로, 오직 참다운 성자만이 스스로 내면적으로 증득하는 것이며,

 성품이 본래부터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ㅡ전의(轉依) 의해 현현해서 얻어지는 소현득(所顯得) 열반에 관하여  종류의 열반을 별도로 자세히 해설한다.


二有餘依涅槃,謂卽眞如出煩惱障,雖有微苦所依未滅,而障永寂,故名涅槃;

둘째는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으로,  진여가 번뇌장을 벗어난 것을 말하며, 미세한 괴로움의 의지처가 있어서 아직 멸하지 않았을지라도, 장애를 영원히 고요하게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에서 의(依)는 몸의 의지처인 의신(依身)을 말한다. 고통 세계의 원인인 번뇌는 끊었으나, 아직 과거의 업보로 받은 이숙고과(異熟苦果)의 신체가 남아 있는 상태이다. 

대승에서는 괴로움의 과보의 주체인 제8식을 나머지 의지처인 여의(餘依)라고 말하며, 이미 열반을 증득하긴 했지만, 아직 이숙의 의지처인 유루의 제8식을 멸하지 않았으므로 유여의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아라한의 최후신(最後身)이 아직 회신멸지(灰身滅智), 즉 몸을 재로 만들고 지혜를 멸해서 몸과 마음이 함께 아주 없어지지 않은 기간을 말한다.


三無餘依涅槃,謂卽眞如出生死苦,煩惱旣盡,餘依亦滅,衆苦永寂,故名涅槃;

셋째는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니,  진여가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난 것을 말하며, 번뇌를 이미 모두 없애고, 나머지 의지처도 역시 멸하여 많은 괴로움을 영원히 고요하게 하였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四無住處涅槃,謂卽眞如出所知障,大悲般若常所輔翼,由斯不住生死涅槃,利樂有情窮未來際,用而常寂,故名涅槃。

넷째는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니,  진여가 소지장을 벗어난 것을 말하며,

대자비와 반야에 항상 둘러싸임으로써 생사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즉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으며,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미래세가 다하도록 할지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一切有情皆有初一,二乘無學容有前三,唯我世尊可言具四。

일체 유정에게는 모두 처음의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 하나만이 있으며,

2승의 무학에게는 앞부분의  가지가 있음이 인정되며,

오직 우리 세존께서만이 이러한  가지를 갖추고 계신다고 말할  있다.


如何善逝有有餘依?

▷묻습니다; 어째서 선서(善逝, 부처님)에게 유여의열반이 있다는 것입니까?

문답으로써  가지를 판별하는 것으로, 먼저 부처님에게 유여의열반이 있는 것에 관하여 문답한다.

 

雖無實依而現似有。或苦依盡說無餘依,非苦依在說有餘依,是故世尊可言具四。

▷답한다; 비록 진실한 의지처가 없지만, 있는 것으로 사현하며, 혹은 괴로움의 의지처인 고의(苦依)를 다하였으므로 무여의열반이라고 말하고, 괴로움의 의지처가 아닌 비고의(非苦依)가 있으므로 유여의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네 가지를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若聲聞等有無餘依,如何有處說彼非有?

▷묻습니다; 만약 성문 등에게 무여의열반이 있다고 말한다면, 어째서 '승만경'에서 그들, 2승에게는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2()에게 무여의열반이 있다는 것에 관한 문답이다.

 

有處說彼都無涅槃,豈有餘依彼亦非有?

▷답한다; 그곳에서는 그들에게 모두 열반이 없다고 말하였거늘, 어째서 유여의열반 역시도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논주의 반대질문이다.


然聲聞等身智在時有所知障,苦依未盡,圓寂義隱,說無涅槃,非彼實無煩惱障盡所顯眞理有餘涅槃。爾時未證無餘圓寂,故亦說彼無無餘依,非彼後時滅身智已,無苦依盡無餘涅槃。或說二乘,無涅槃者,依無住處,不依前三。

그러나 성문 등은 최후의 신체와 지해인 신지(身智)가 있을 때에는 소지장도 있고 괴로움의 의지처도 아직 멸진하지 않아서 원적(圓寂)의 뜻이 감추어진 까닭에 열반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참으로 번뇌장을 다하여 나타난 진리인 유여의열반마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때에는 아직 무여의열반의 원적을 증득하지 못한 까닭에 역시 그들에게 무여의열반이 없다고 말한 것이니,

 다음의 유여의열반 이후의 최후의 신체와 지해(智解)를 멸하고  때에도 괴로움의 의지처를 멸진한 무여의열반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혹은 2승에게 열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주처열반에 의거해서 말한 것으로, 앞의  가지에 의거한 것은 아니다.

ㅡ경문(經文) 해설하는 것으로,  문단은 정성(定姓) 2승에 의거해서 말한다.

 

신지(身智)는 아라한의 최후신(最後身)이 아직 회신멸지(灰身滅智)하지 않은 기간의 최후신과 지해(智解)를 말한다.


又說彼,無無餘依者,依不定性二乘而說,彼纔證得有餘涅槃,決定迴心求無上覺,由定願力留身久住,非如一類入無餘依。

또한 그들에게 무여의열반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부정성(不定姓)의 2승에 의거해서 말한 것으로, 그들은 유여의열반을 증득할 무렵에 결정적으로 마음을 돌이켜서 최상의 깨달음을 구하고, 선정과 서원의 힘에 의해 신체를 남겨 두어 오래도록 머무나니, 정성이승(定姓二乘)의  부류가 무여의열반에 들어가는 것과는 같지 않다.


謂有二乘深樂圓寂,得生空觀,親證眞如,永滅感生煩惱障盡,顯依眞理有餘涅槃。彼能感生煩惱盡故,後有異熟,無由更生。現苦所依任運滅位,餘有爲法旣無所依,與彼苦依同時頓捨,顯依眞理無餘涅槃。

어떤 정성이승 열반의 원적(圓寂)을 매우 즐겨서 아공관을 얻고 직접 진여를 증득하여서 태어남을 초감하는 번뇌장을 영원히 멸진해서 진리에 의거하는 유여의열반을 현현하나니,

그는 능히 태어남을 초감(招感)하는 번뇌장을 멸진시킨 까닭 다음 존재의 이숙이 다시 태어날 까닭이 없으며,  

현재의 괴로움의 의지처가 자연히 멸하는 단계에서는 나머지 유위법도 이미 의지처가 없으므로,  괴로움의 의지처와 동시에 단박에 버려서 진리에 의거하는 무여의열반을 현현하는 것이다.

ㅡ이승에게 무여열반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爾時雖無二乘身智,而由彼證,可說彼有。此位唯有淸淨眞如,離相湛然,寂滅安樂,依斯說彼與佛無差。但無菩提利樂他業故,復說彼與佛有異。

그 때는 비록 2승의 최후의 신체와 지해의 신지(身智)가 없지만, 그들이 증득하였으므로 그들에게 무여의열반이 있다고 말할  있으며, 이 지위에서는 오직 청정한 진여만이 있으며, 형상을 떠나서 담연(湛然)하고 적멸 안락하다. 

참다운 진여에 의거해서 그들이 부처님과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 다만 깨달음과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의 업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부처님과 차이가 있다고 다시 말하는 것이다.

 

諸所知障,旣不感生,如何斷彼得無住處?

▷묻습니다; 모든 소지장은 이미 태어남을 초감하지 않거늘, 어떻게 그것을 끊어서 무주처열반을 얻는 것입니까?

이하는 소지장(所知障) 단멸하여 열반을 얻음에 관하여 외인(外人) 논주가  가지로 문답하는 것으로, 먼저 열반을 얻지 않아야 한다고 묻는,  모든 소지장의 자체는 계박하는 박법(縛法) 아니니, 업을 일으키고 태어남을 촉진하지 않기 때문이거늘, 어떻게 그것을 단멸해서 무주처열반을 얻는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彼能隱覆法空眞如,令不發生大悲般若,窮未來際利樂有情,故斷彼時顯法空理。此理卽是無住涅槃,令於二邊俱不住故。

답한다; 그것이 능히 법공진여를 은복하여서 대자비와 반야를 일으켜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것을 끊을 때, 법공 도리를 현현하며, 이 도리가 곧 무주처열반이니, 생사와 열반의 두 극단 모두에 머물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若所知障亦障涅槃,如何斷彼不得擇滅?

▷묻습니다;  만약 소지장도 역시 열반을 장애한다고 말한다면, 어째서 그것을 끊어서 택멸(擇滅, 열반)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ㅡ소지장을 끊으면 택멸(擇滅) 얻어야 하지 않느냐고 외인이 묻는 것이다.

 

택멸(擇滅)은 열반의 다른 명칭으로, 열반은 지혜의 간택(簡擇)하는 힘에 의해 번뇌를 끊은 자리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택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擇滅離縛,彼非縛故。

답한다; 택멸이란 계박(縛)을 떠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소지장은 계박이 아니기 때문이다.

택멸(擇滅) 지혜의 간택(簡擇) 의해 계박을 끊고 () 증득하는 것으로, 소지장은 유정을 계박하고 생사의 고통을 초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지장을 끊고 나서도 택멸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旣爾,斷彼寧得涅槃?

▷묻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을 끊어서 어떻게 열반을 얻는 것입니까?

열반은 계박을 해탈하는 것이므로, 외인이 이렇게 묻는 것이다.

 

非諸涅槃皆擇滅攝,不爾,性淨應非涅槃。

▷답한다; 모든 열반을 다 택멸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다면 자성청정열반은 열반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다.

ㅡ본래자성청정열반의 체성(體性) 택멸에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다.

 

能縛有情住生死者,斷此說得擇滅無爲,諸所知障不感生死,非如煩惱能縛有情,故斷彼時不得擇滅。然斷彼故,法空理顯,此理相寂說爲涅槃,非此涅槃擇滅爲性,故四圓寂諸無爲中,初後卽眞如,中二擇滅攝。

능히 유정을 계박해서 생사에 머물게 하는 번뇌장을 끊어서 택멸무위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모든 소지장은 생사를 초감하지 않는 것으로 번뇌장이 능히 유정을 계박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소지장을 끊을 때에 택멸(擇滅)을 얻지 않는 것이나, 그것을 끊었으므로 법공 도리가 현현하고, 이 도리인 이상(理相)이 고요하므로 열반이라 말하는 것이며,

이 무주처열반은 택멸을 체성으로 삼지 않으므로 네 가지 열반인 사원적(四圓寂)은 모든 무위법 중에서 처음의 본래자성청정열반과 나중의 것은 곧 진여이고, 가운데 두 가지인 유여의열반과 무여의열반은 택멸에 포함된다.

 

若唯斷縛得擇滅者,不動等二四中誰攝?

▷묻습니다; 만약 오직 계박(번뇌)을 끊는 것만으로 택멸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부동무위(不動無爲)와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의 두 가지는 네 가지 중에서 무엇에 포함됩니까?

ㅡ부동무위(不動無爲)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 계박을 끊어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허공무위ㆍ택멸무위ㆍ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ㆍ진여무위의  가지 중에서 어디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가라고 외인이 묻는 것이다.

 

非擇滅攝,說暫離故。擇滅無爲唯究竟滅,有非擇滅非永滅故。或無住處亦擇滅攝,由眞擇力滅障得故。

擇滅有二:一滅縛得,謂斷感生煩惱得者;二滅障得,謂斷餘障而證得者。故四圓寂諸無爲中初一卽眞如,後三皆擇滅。不動等二暫伏滅者非擇滅攝,究竟滅者擇滅所攝。

▷답한다; 비택멸무위에 포함되나니, 잠시 떠난다고 '현양성교론' 제18권에서 말한 때문이다.

택멸무위는 오직 구경멸(究竟滅)일 뿐이고, 비택멸이 아닌 것도 있기 때문이며,

혹은 무주처열반도 역시 택멸에 포함되나니, 참다운 간택의 힘인 진택력(眞擇力)에 의해서 장애를 끊고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택멸(擇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계박을 끊고서 얻는 멸박득(滅縛得)이니, 태어남을 초감하는 번뇌장을 끊고서 얻는 것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장애를 끊어서 얻는 멸장득(滅障得)이니, 나머지 장애를 끊고서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네 가지 열반인 사원적(四圓寂)은 모든 무위법 중에서 처음의 하나인 자성청정열반은 진여이고,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의 셋은 모두 택멸이다.

부동무위 등 두 가지는 잠시 조복ㆍ단멸하는 측면에서는 비택멸에 포함되나, 구경멸인 측면에서는 택멸에 포함된다.


旣所知障亦障涅槃。如何但說是菩提障?

▷묻습니다; 소지장은 역시 열반을 장애하거늘, 어째서 다만 이것이 보리의 장애인 보리장(菩提障)이라 하는 것입니까?

ㅡ소지장이 오직 보리의 장애인 보리장(菩提障)이라는 것에 관하여 외인이 묻는 것이다.

 

說煩惱障但障涅槃,豈彼不能爲菩提障?應知聖教依勝用說,理實俱能通障二果。

▷답한다; 번뇌장은 다만 열반을 장애한다고만 말하거늘, 어찌 소지장이 보리의 장애가 될 수 없겠는가?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성스러운 가르침은 뛰어난 작용인 승용(勝用) 의거해서 말하는 것이며, 진실로 모두 능히 통해서 열반과 보리(菩提)의 두 가지의 증과인 이과(二果)를 장애하는 것이다.

 

如是所說四涅槃中唯後三種名所顯得。

이상과 같이 말한  가지의 사열반(四涅槃) 중에서 오직 나중의  가지만을 이름하여 현현해서 얻어지는 소현득(所顯得)이라 하며,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 것으로,

 가지 열반 중에서 처음의 자성청정열반을 제외한 까닭은, 그것이 본래 적정한 것으로서 새롭게 미혹을 끊어서 증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나머지  가지는 장애를 끊어서 현현하기 때문에 전의(轉依) 의해 현현해서 얻어지는 소현득(所顯得)이라 이름한다.


二所生得,謂大菩提。此雖本來有能生種,而所知障㝵故不生,由聖道力斷彼障故,令從種起,名得菩提。起已相續窮未來際,此卽四智相應心品。

둘째는 생겨나서 얻어지는 소생득(所生得)이니, 대보리(大菩提)를 말하며,

이것은 본래부터 능히 생겨나게 하는 종자가 있지만, 소지장에 장애되기 때문에 생겨나지 못하는 것이며,

성스러운 수도의 성도력(聖道力)으로써 그 장애를 끊기 때문에, 종자로부터 일어나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니, 일어난 후에는 미래세가 다하도록 상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네 가지 지혜인 사지(四智)가 심왕(心王)과 심소(心所)에 통하므로 상응하는 심품(心品)인 것이다.

ㅡ전의(轉依) 의해 생겨나서 얻어지는 소생득(所生得) 보리(菩提) 관하여 자세히 해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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