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一乘 - 일승
一乘 章第五
一은 다른 것이 없다는 뜻이고, 乘은 움직여 간다는 뜻.
◎ 攝受正法是摩訶衍 -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대승(大乘)이다
㉮ 摩訶衍者出生一切
대승에 머물면서 대승을 섭수하는 것은 곧바로 이승에 머물면서 이승의 일체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을 섭수하는 것이다
汝今更說(여금갱설) 一切諸佛所說攝受正法(일체제불소설섭수정법)
그대는 이제 다시 일체 여러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바, 정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해 보라
[그대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승의 올바른 가르침을 체득하는 것에 관해 다시 설명해 보라.]
勝鬘白佛(승만백불) 善哉世尊(선재세존) 唯然受教(유연수교)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로지 부처님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대승의 바른 진리를 체득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卽白佛言(즉백불언)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으니,
世尊(세존) 攝受正法者是摩訶衍(섭수정법자시마하연)
세존이시여,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곧 대승=摩訶衍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른 가르침을 체득한다고 하는 것은 곧 대승(摩訶衍:Mahāyān)입니다.]
何以故(하이고) 摩訶衍者(마하연자) 出生一切(출생일체)
聲聞緣覺世閒(성문연각세간) 出世閒善法(출세간선법)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마하연은 온갖 성문과 연각과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을 낳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대승의 바른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 모든 성문과 연각,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善法)을 생(生)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世尊(세존) 如阿耨大池出八大河(여아뇩대지출입대하) 阿 언덕 아, 耨 김맬 녹
세존이시여, 마치 아뇩지 큰 연못에서 여덟 개의 큰 강이 흘러나오듯이,
如是摩訶衍(여시마하연) 出生一切聲聞緣覺世閒出世閒善法(출생일체성문연각세간출세간법)
마하연에서도 온갖 성문과 연각과 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이 나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항상 시원하고 맑은 물이 고여 있는 호수인 아뇩대지(阿耨大池:Anavatapa)로부터 여덟 개의 큰 강물이 흘러나오듯이, 대승의 바른 가르침에서도 성문과 연각,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법이 생겨납니다.]
世尊(세존) 又如一切種子(우여일체종자) 皆依於地而得生長(개의어지이득생장)
세존이시여, 또 마치 온갖 씨앗이 모두 땅을 의지하여 싹이 나서 자라는 것과 같이,
[세존이시여, 또한 일체의 온갖 씨앗이 대지를 의지해 성장하는 것과 같이]
如是一切聲聞緣覺世閒出世閒善法(여시일체성문연각세간출세간선법)
이러한 온갖 성문과 연각과 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이
依於大乘而得增長(의어대승이득증장) 대승을 의지하여 자랍니다.
[일체의 성문과 연각, 그리고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도 대승의 바른 가르침을 의지해 증장(增長)하는 것입니다
是故世尊(시고세존) 住於大乘攝受大乘(주어대승섭수대승)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대승에 머무르며 대승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대승에 머물면서 대승의 바른 가르침을 체득하는 것은]
卽是住於二乘攝受二乘(즉시주어이승섭수이승) 一切世閒出世閒善法(일체세간출세간선법)
곧 2승에 머물러 2승의 세간 선법과 이승의 출세간 선법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성문과 연각인 2승(二乘)에 머물면서 자신의 지적인 완성을 목표로 하는 2승의 가르침을 깨닫는 것이고, 그렇게 하여 일체의 세간․출세간의 선법을 깨달아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六處 - 여섯 가지 요점
如世尊說六處(여세존설육처) 何等爲六(하등위육)?
마치 세존께서 설하시는 여섯 가지 요점=六處를 말씀하심과 같사오니, 6처란 것은,
謂正法住正法滅(위정법주정법멸) 波羅提木叉(바라제목차) 叉 깍지낄 차, 갈래 차,
이른바 ① 바른 법이 머무는 것 (바른 가르침의 유지)=正法住, ② 바른 가르침(법)의 소멸=正法滅, ③ 계본=波羅提木叉,
比尼出家受具足(비니출가수구족) 尼 신중 니, 여승 니,
④ 교단의 규범=毘尼, ⑤ 출가하는 것, ⑥ 구족계를 받는 것이며,
爲大乘故說此六處(위대승고설차육처) 대승을 위하여 이러한 여섯 가지 요점을 설하셨으니,
何以故(하이고)? 正法住者(정법주자) 爲大乘故(위대승고)
왜냐하면, 바른 법=正法의 유지는 대승을 위하기 때문이니,
說大乘住者卽正法住(설대승주자즉정법주)
대승이 머무는 것이 곧 정법이 머무는 것이라고 설하는 것이며,
正法滅者(정법멸자) 爲大乘故(위대승고) 說大乘滅者卽正法滅(설대승멸자즉정법멸)
정법의 소멸은 대승을 위하여 말씀하신 때문이므로, 대승의 소멸이 곧 정법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하는 것이며,
波羅提木叉(바라제목차) 比尼此二法者(비니차이법자) 義一名異(의일명이)
바라제목차=계본과 비니=교단의 규범, 이 두 가지는 뜻은 한 가지면서 이름만 다른 것이니,
比尼者卽大乘學(비니자즉대승학)
교단의 규범은 곧 대승의 배움입니다.
何以故(하이고) 以依佛出家而受具足(이의불출가이수구족)
그 까닭은 부처님에 의지하여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는 것이므로
是故說大乘威儀戒是比尼(시고설대승위의계시비니)
그러므로 대승의 위의인 계=大乘威儀戒가 곧 比尼=교단의 규범이며,
是出家是受具足(시출가시수구족) 출가이며, 구족계를 받는 것이라 설하는 것이며,
是故阿羅漢無出家受具足(시고아라한무출가구족)
그러므로 아라한은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는 일이 없사오니,
何以故(하이고) 阿羅漢依如來出家受具足故(아라한의여래출가수구족고)
왜냐하면 아라한은 여래를 의지하여 출가하였고, 또 구족계를 받는 까닭입니다.
◎ 二乘有恐怖 - 이승(二乘)들은 두려움이 있다.
阿羅漢歸依於佛(아라한귀의어불) 阿羅漢有恐怖(아라한유공포)
아라한은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나, 아라한은 공포가 남아 있으니,
[그렇지만 아라한은 부처님께 귀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라한에게는 아직 완전히 번뇌를 끊지 못해 생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며]
何以故(하이고) 阿羅漢於一切無行怖畏想住(아라한어일체무행포외상주)
왜냐하면, 아라한은 一切無行=온갖 것에 대한 행이 없으며, 두려워하는 생각에 머물기 때문에
[즉 아라한은 아직 일체의 보살행을 닦지 않아서 실천 수행에 대해 다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如人執劍欲來害己(여인집검욕래할기) 是故阿羅漢無究竟樂(시고아라한무구경락)
마치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와서 나를 해치려 함과 같으므로, 아라한은 끝까지 즐거움이 없나니,
[아라한은 보살행 하는 것에 대해 마치 어떤 사람이 생사의 번뇌를 상징하는 칼을 들고서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라한에게는 중생을 구제함으로서 느끼는 진정한[究竟] 즐거움이 없습니다.]
何以故(하이고) 世尊(세존)! 依不求依(의불구의) 如衆生無依(여중생무외)
그 까닭은 세존이시여, 의지할 데를 구하지 않는 이에게 의지하는 것인데, 저 중생들은 의지처가 없으므로
[그러므로 아라한은 자신의 생사 해탈을 위해 부처님께 의지할 뿐 다른 것에서 의지처를 구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어리석은 중생들은 마음에 중심이 되는 의지처가 없으므로]
彼彼恐怖(피피공포) 以恐怖故則求歸依(이공포고즉구귀의)
그들은 가는 데마다 공포를 느끼고, 공포를 느낌으로 말미암아 의지처를 구하나니,
[모든 대상과 현상에 대해 공포를 느껴 무엇인가 의지할 곳을 찾게 됩니다.]
如阿羅漢有怖畏(여아라한유포외) 以怖畏故依於如來(이포외고의어여래)
그와 같이 아라한은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므로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라한도 아직 생사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사 해탈을 위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 唯有如來得般涅槃 - 오로지 여래만이 열반의 세계를 얻음
世尊(세존) 阿羅漢辟支佛有怖畏(아라한벽지불유포외)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두려움을 갖습니다.
[세존이시여 성문 중에서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과 스스로 연기의 이치를 깨달은 벽지불[綠覺]은 아직 생사에 대한 공포와 실천 수행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是故阿羅漢辟支佛(시고아라한벽지불) 有餘生法不盡故有生(유여생법불진고유생)
또한 아라한과 벽지불에게는 有餘=업의 잔재가 남아 있어, 生法=윤회와 재생으로 이어지는 성질이 다하지 않았으므로 태어남이 있으며,
[그리고 아라한과 벽지불은 아직 완전히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사의 유한한 법에 저촉을 받습니다.]
有餘梵行不成故不純(유여범행불성고불순) 事不究竟故當有所作(사불구경고당유소작)
有餘= 업의 잔재가 있음에 梵行=청정한 행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순수하지 못하며,
일이 끝나지 못하였으므로 마땅히 지어야 할 바가 있으며,
[또한 아직 청정한 보살의 실천 수행 [梵行]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의 때가 남아 있어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며, 수행에 있어서도 부처님의 경지인 구경(究竟)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보살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스러움(梵, ārya)은 멸제의 청정한 특성을 이름하기 때문이고, 성스러운 행을 현증하므로 梵行이라 한다
不度彼故當有所斷(불도피고다유소단) 以不斷故去涅槃界遠(이불단고거열반계원)
피안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이 있으며, 끊지 못한 것이 있으므로 열반의 세계=涅槃界와는
거리가 머나이다.
[또한 생사를 벗어난 피안의 세계인 열반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반드시 끊어야 할 생사의 번뇌가 있으므로 부처님의 깨달음 상태인 열반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唯有如來應正等覺得般涅槃(유여래응정등각득반열반)
그 까닭을 말하면, 오직 여래ㆍ응공ㆍ정등각만이 반열반에 들 수 있사오니,
[왜냐하면 오직 여래․응공․평등하고 바른 진리를 깨달은 정변지만이 완전한 깨달음인 반 열반을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며 ]
成就一切功德(성취일체공덕) 온갖 공덕을 모두 성취한 까닭이오며,
[널리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일체의 온갖 공덕을 달성하기 때문이며,]
故阿羅漢辟支佛不成就一切功德(고아라한벽지불불성취일체공덕)
아라한ㆍ벽지불은 온갖 공덕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나
[아라한과 벽지불은 아직 부처님처럼 모든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일체 모든 공덕을 성취하지는 못하였으나]
言得涅槃者是佛方便(언득열반자시불방편)
열반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부처님의 방편일 뿐이니,
[수행을 통해 번뇌를 제거해 열반을 증득했다고 아라한들에게 말씀하신 까닭은 다만 부처님의 교묘한 수단[方便]일 뿐입니다.]
唯有如來得般涅槃(유유여래득반열반) 成就無量功德(성취무량공덕)
오직 여래만이 般涅槃=완전한 열반에 들 수 있사오니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까닭이오며,
[오직 부처님만이 완전한 깨달음인 반 열반을 얻을 수 있으니, 그것은 널리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불가사의한 공덕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故阿羅漢辟支佛成就有量功德(고아라한벽지불성취유량공덕)
아라한ㆍ벽지불은 有量功德=한량 있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나,
[다만 아라한과 벽지불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의 유한한 공덕을 성취한 것이나]
言得涅槃者是佛方便(언득열반자시불방편)
열반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부처님의 방편입니다.
[그런데도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인 반 열반을 성취했다고 말한 것은 오직 그들을 제도하기 위한 부처님의 교묘한 수단=방편인 것입니다.]
唯有如來得般涅槃(유유여래득반열반) 一切所應斷過(일체소응단과)
오직 여래만이 반열반을 얻었사오니, 온갖 끊어야 할 허물을
[오직 여래께서만이 반 열반을 성취하였으니, 그것은 당연히 끊어야 할 일체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
皆悉斷滅(개실단멸) 成就第一淸淨(성취제일청정)
모두 끊어 버리고 제일가는 청정을 성취한 까닭이오며,
[가장 훌륭한 청정공덕을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阿羅漢辟支佛有餘過(아라한벽지불유여과) 非第一淸淨(비제일청정)
아라한이나 벽지불은 남은 허물이 있으므로 제일가는 청정이 아니지만
言得涅槃者是佛方便(언득반열자시불방편)
열반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부처님의 방편입니다.
唯有如來得般涅槃(유유여래득반열반) 爲一切衆生之所瞻仰(위일체중생지소첨앙)
오직 여래만이 반열반을 얻으시어 온갖 중생들의 우러러 봄이 되어
瞻 볼 첨, 仰 우러를 앙,
[오직 부처님만이 반 열반을 성취해 일체 모든 중생에게 존경을 받는 까닭은]
出過阿羅漢辟支佛菩薩境界(출과아라한벽지불보살경계)
아라한, 벽지불, 보살들의 경계에서 초월하였사오며,
[오직 부처님만이 아라한과 벽지불 그리고 보살의 경지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是故阿羅漢辟支佛去涅槃界遠(시고아라한벽지불거열반계원)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은 열반계와의 거리가 멀지만,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은 진정한 깨달음의 상태인 열반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 것이니]
言阿羅漢辟支佛(언아라한벽지불) 觀察解脫四智(관찰해탈사지)
아라한과 벽지불이 해탈하는 네 가지 지혜를 관찰하여
[다만 아라한과 벽지불은 해탈과 4성제를 통해 네 가지 지혜[四智]의 궁극적인 가르침인 사리의 마지막인 구경(究竟)을 관찰하고]
究竟得蘇息處者(구경득소식처자) 亦是如來方便有餘不了義說(역시여래방편유여불요의설)
마침내 번뇌가 쉬는 경지=蘇息處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 역시 여래의 방편이니, 업의 잔재를 남기는 것이고 궁극적인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한 가르침=不了議設일 뿐입니다.
蘇 차조기 소, 향할 소, 되살아날 소
[수행 정진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상태인 소식처(蘇息處)를 성취했다고 말하셨으나, 그것은 다만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사용한 교묘한 방편일 뿐, 아직도 대승의 참된 이치를 완전히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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